강릉가면극

강릉가면극

[ 江陵假面劇 ]

요약 강원 강릉지방에 전승하는 가면극. 관청에 딸린 노비[官奴]들이 놀잇꾼을 하였으므로 강릉관노가면극(江陵官奴假面劇), 강릉관노탈놀이, 강릉관노가면희, 관노가면극, 관노탈놀이라고도 한다.
강릉가면극 양반광대와 소매각시

강릉가면극 양반광대와 소매각시

강릉단오제 때 놀았던 가면극으로서 산대도감(山臺都監) 갈래의 가면극과는 다른 서낭제[城隍祭] 가면극이다. 한국의 가면극 가운데 유일하게 대사가 없이 춤과 몸짓으로만 연희되는 무언극인 점이 특징이다.

강릉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 서낭제를 거행하였으며, 이 지방에서는 이를 일컬어 ‘단오굿’, ‘단오제’ 또는 ‘단오대회’라고 하였다. 강릉가면극은 단오제의 여흥으로 주로 강릉부(江陵府)에 속하는 관노들이 강릉 사창(社倉) 앞 넓은 광장에서 오후 l시부터 4시까지 연희를 벌였다.

1910년대까지 연례적으로 거행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맥이 끊겼다가 196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때 재연되었다. 1967년 강릉단오제가 중요무형문화재(13호)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행사로 거행되고 있다.

등장인물은 양반광대, 소매각시, 시시딱딱이 2명, 장자마리 2명과 그밖의 악사들이 있다. 놀이는 모두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배불뚝이 장자마리가 장난스럽게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첫째 마당을 열면 양반광대와 소매각시가 사랑을 나누는 둘째 마당이 이어진다. 셋째 마당은 험상궂은 시시딱딱이가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을 훼방하고 강제로 소매각시를 차지한다. 넷째 마당은 양반광대로부터 정절을 의심받은 소매각시가 벌이는 자살소동, 다섯째 마당은 소매각시가 다시 살아나 정절과 사랑을 확인하고 모두 화해하며 끝맺는다.

1967년 김동하(金東夏)·차형원(車亨元), 1993년 권영하(權寧夏)를 이어 2000년 김종군(金種群)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제 1마당(장자마리의 연희 시작)

두 장자마리가 나와 연희를 시작한다. 장자마리는 삼각형 고깔을 쓰고, 삼베로 짠 마대자루와 같은 옷을 입고 나와 타령(打令) 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춤을 추다가 들어간다. 춤을 출 때는 두 사람이 마주 서거나 제각기 희롱하는 동작을 하며 흥겹게 춘다.

제 2마당(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

양반광대가 꼭지에 호수(虎鬚)가 달린 삼각형 고깔을 쓰고, 직령(直領)을 입고 부채와 긴 담뱃대를 손에 쥐고 나온다. 뒤따라 소매(小梅) 각시가 나온다. 두 사람이 타령 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춤을 추며 나중에는 굿거리 장단으로 남무(男舞)를 춘다. 이 과정에서 양반광대가 소매각시에게 구애를 하며,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

제 3마당(시시딱딱이의 훼방)

시시딱딱이가 등장해 양반광대를 놀리고 소매각시를 희롱하는 등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다. 두명의 시시딲딱이는 얼굴에는 무서운 탈을 쓰고, 손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칼을 들었는데, 염불·타령 장단에 돌단춤을 추며 “쉬, 쉬”하고 나무 칼로 이곳 저곳을 두드리면서 돌아다닌다.

제 4마당(소매각시의 자살소동)

앞 마당에서 시시딱딱이의 희롱으로 억지춤을 추었던 소매각시가 양반광대에게 잘못을 빌지만 양반광대는 소매각시를 질책하며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소매각시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양반광대의 긴 수염에 목을 맨다.

제 5마당(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화해)

소매각시의 자살소동으로 양반광대는 오해를 풀고, 두 사람이 화해한다. 양반광대와 소매각시가 함께 흥겨운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와 구경하던 관중들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으로 연희가 끝난다.

역참조항목

남무, 타령, 차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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