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tarka , ]

요약 불교의 진리를 깨달음 또는 깨침.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나뉘어 쓰인다. 첫째는 산스크리트와 발리어의 ‘bodhi’ 곧 보리[菩提]를 옮긴 말로, 부처[佛陀]의 깨달음을 말할 때에는 가장 완벽하고 지극한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구경각(究竟覺)·무상각(無上覺)·정각(正覺)·대각(大覺) 또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곧 더없이 높고 가장 올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이라 한다.

그래서 부처를 중국에서는 각자(覺者:깨달은 이)라고도 번역한다. 따라서 깨달은 이[佛]까지도 ‘각’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보살(菩薩)들의 깨달음은 아직 원만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수분각(隨分覺)이라 하며, 삼현위(三賢位:불교 수행의 단계)의 성자(聖者)와 이승(二乘:聲聞乘·緣覺乘)은 아직 참된 이치를 완전하게 얻지는 못하였으나 비슷하게 깨달았다고 하여 비슷한 깨달음[相似覺]이라 한다. 또 범부(凡夫)는 깨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각(不覺)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깨달음(bodhi:菩提) 그 자체의 본질을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둘로 나눈다. 본각이란 본디의 깨달음 성품(覺性)을 일컫는 것으로, 근본 진리의 참된 본체[眞本體]인 진여(眞如)의 이체(理體:理性의 근본되는 체)를 말한다. 그처럼 진여의 이체인 본디의 깨달음 성품은 모두 갖추어져 있으나, 중생은 오랫동안 무명(無明)의 삶에 물들어 무지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어둠[迷惑]에서 헤매게 된다.

이러한 진실을 알고 이성의 본체를 비로소 깨닫는 것을 시각(始覺)이라고 한다.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이 본각이며, 시각은 수행을 통해 비로소 얻어지는 깨달음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을 이각(二覺)이라 하고, 여기에 구경각(究竟覺)을 더하여 삼각(三覺)이라 하며, 이 세 가지에 다시 앞의 상사각과 수분각을 합쳐서 오각(五覺)이라 한다. 둘째는 산스크리트로 ‘비타르카(vitarka)’의 구역(舊譯)으로 각관(覺觀:신역은 尋伺)의 앞부분인 각(覺:신역은 尋)을 이른다.

당나라 현장(玄奘) 이후로 심(尋)이라 번역하고 그 이전에 각이라 번역했던 이 비타르카는 선정의 마음[定心]을 방해하는 마음[心相] 중에서 거친 정신작용을 말한다. 한자로는 다같이 각(覺)으로 쓰지만, 앞의 각(보디:菩提)은 깨달음 그대로인데, 뒤의 경우는 전혀 깨다를 각 자와는 다른 마음의 거친 분별을 일컫는 마음작용[心所]의 이름이다.

참조항목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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