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유적지!

고려청자 유적지!

작성일 2014.06.24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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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답해준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그런데...주제가 고려청자로 바뀌어 버렸네요ㅠㅠ 죄송한데 고려청자 유적지좀 알려주세요!내공 40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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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유적지

 

1.강진 고려청자 요지


종 목 사적  제6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산4번지 외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 토기나 청자를 굽던 가마터로, 강진 대구면 용운리·계율리·사당리·수동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남쪽은 바다와 가까워 해로를 통한 수송이 발달했고, 북으로는 크고 작은 산과 가까워 땔감이 풍부하였다. 또한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와 규석이 산출되어 도자기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용운천 좌우에 집중적으로 가마터가 있는데, 용운천 상류에 위치한 용운리에는 75곳의 가마터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중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마터는 고려 전기에 성립된 곳으로 청자의 기원과 초기청자의 특징을 밝힐 수 있는 지역으로 중요하다.


계율리는 현재 59곳의 가마터가 남아 있으며, 고려 전기와 후기에 양식화된 상감청자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용운천 하류의 비교적 넓은 들에 있는 사당리에는 43곳의 가마터가 있으나, 하천의 침식과 개간·도굴들로 심하게 파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최고 수준의 청자가 만들어지던 고려 중기와 후기의 가마터로, 청자 절정기의 비색과 상감청자를 비롯한 고려청자의 여러 특징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수동리는 사당리 남쪽의 들판에 있는 마을로 6곳의 가마터가 있으며, 대체로 고려 후기의 것이다. 도자기의 형태와 기법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유약의 색과 모양도 매우 다채롭다.


이와 같이 대구면 일대에는 고려 전 시대에 걸치는 가마터가 남아 있으며, 각 시기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의 청자가마터와 함께 고려청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되는 가마터라 할 수 있다.
 

 

2.부안 유천리 요지


종 목 사적  제69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4번지 
시 대 고려시대


굴포만이 있는 바닷가 앞의 넓은 들판에 자리하고 있는 가마터로, 토성으로 둘러싸인 안쪽 언덕에 주로 널려 있다. 모두 40여 곳으로 대부분 유천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남쪽에 모여 있고 북쪽 야산 기슭에도 10여 곳이 있다.


대체로 12세기 중엽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치는 시기의 것들이며, 11세기 말 이나 12세기 전반의 것도 약간 있다. 그 중 가장 우수한 도자기 조각이 나오는 곳은 12호 가마터 일대이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조각들은 최상급 고려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강진의 사당리 당전부락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면서 백자·진사백자 종류는 훨씬 양이 많고 다양하다.


도자기의 형태는 접시·완(밥그릇)·발(대접)·매병(꽃병)·병·탁잔(술병) 들로 다양하며, 특히 높이 1m 이상의 매병은 크기·무늬·제작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고려도자기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또한 ‘효문(孝文)’·‘조청(照淸)’이라는 글씨가 있어 고려 도자기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유천리 가마터는 강진 대구면 가마터 다음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3.부안 진서리 요지


종 목 사적  제70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56번지 
시 대 고려시대


유천리가마터(사적 제69호)와 함께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고려 중기 대표적 청자가마터로, 유천리 가마터에서 멀지 않은 해변에 위치한다. 특히 철회청자 조각이 많이 발견되는 곳인데 현재는 논밭으로 변하거나 바로 해안가에 있는 것이 많아서 파괴가 심하다.


진서리는 연동과 신작리·구작리의 촌락을 모두 일컫는 것으로, 모두 40여 곳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가마는 발견 당시 해안으로 뻗어나간 언덕의 남쪽 경사면에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래쪽은 이미 바닷물에 의해 무너진 상태였다.


가마는 경사면에 긴 구덩이를 파고 양쪽 윗부분으로부터 둥글게 쌓아올렸으며 위로는 2개의 연기 구멍이 있다. 몇 개의 칸을 가진 칸막이 가마로서, 칸막이의 밑부분에는 2개씩의 창살이 있다. 가마에서는 주로 13세기경에 속하는 많은 양의 초벌구이 조각과 적은 양의 청자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발견되는 도자기의 형태는 대접·접시·밥그릇(발) 종류가 가장 많으며, 매병·병·장구·합(뚜껑있는 작은 그릇)·완·주전자 등이 있다. 음각·양각·상감·철화 등의 다양한 수법이 사용되었고, 문양장식은 국화무늬·연꽃무늬·모란무늬·덩굴무늬·구름과 학무늬·버들무늬가 이용되었다.
 

 

4.광주 충효동 요지


종 목 사적  제141호 
지 정 일 1964.08.29
소 재 지 광주 북구 금곡동 179-5번지 
시 대 고려시대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가마에서 백자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5.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


종 목 사적  제211호 
지 정 일 1970.06.08
소 재 지 인천 서구 검암동 산438-21번지 
시 대 고려시대


인천 검암동 일대에서 10∼11세기에 걸쳐 청자를 만들었던 5∼6기의 고려 가마터 이다.


가마터 주위 지세는 얕은 비탈을 이루며 바다로 이어져 있다. 현재는 발굴조사시 드러난 가마의 남은 부분에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지만, 나머지 일대는 골프장으로 변해있다. 발굴 당시 가마 1기를 조사하여 많은 녹청자조각과 가마도구들을 발견하였다. 가마는 자연 경사를 이용한 것으로 칸이 없는 통가마이다. 3차례에 걸쳐 다시 고쳤쌓았는데, 경사도 20°도 안팎의 가마바닥에 모래를 깔고 그 위에 경사진 넓적한 자기로 만든 도지미를 깔고 그릇을 구웠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마에서 구운 것은 녹청색의 짙은 청자로 유약은 녹청색·녹갈색으로 표면이 고르지 못하며, 문양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드물게 병의 몸통에 주름무늬가 보인다. 토기의 형태는 대접, 접시, 병류가 많다.


이러한 녹청색의 청자가마터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녹청자는 토기에서 변화 발전한 청자발생 이전의 것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초기 청자의 영향을 받아 지방수요용으로 대량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암동 가마터의 연대는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토유물 중 주목되는 것은 말발굽 모양의 자기로 만든 베개(도지미)와 유사한 것으로, 중국 북방 청자가마터에서 사용된 것이고, 녹청자가 녹갈색이나 암록색을 띠는 것도 중국 북방의 청자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두 지역간의 영향관계도 앞으로 연구해 볼 문제이다.
 

 

6.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종 목 사적  제310호 
지 정 일 1985.01.04
소 재 지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136번지 외 
시 대 고려시대


요지란 도자기, 기와, 그릇들을 굽던 가마터이다.


해남 진산리 일대에는 청자를 굽던 고려 전기의 대규모 가마터가 있다. 바닷가에 접한 낮은 구릉지대에 약 100여 기의 가마터가 남아 있으나, 바닷물에 의한 파괴가 심해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다른 지방의 가마터가 대부분 육지에 있는 것에 비해, 진산리 가마터는 해안을 접한 낮은 구릉지대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되는 도자기 조각들은 고려 전기 청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청자와 함께 경질·연질 토기들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지금까지 가마터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던 철회·철채청자가 함께 출토되고 있는데, 이것으로 이 일대 가마터가 생산품이 다양하고 토기와 청자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진산리 청자 가마터는 초기 청자의 생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토기와 고려청자의 관계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7.고창 용계리 청자 요지


종 목 사적  제345호 
지 정 일 1991.02.26
소 재 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산22번지 외 8필지 
시 대 고려시대


요지란 도자기, 기와, 그릇 등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이 가마터는 용계리 아산댐 뒤쪽 구릉에 있으며, 4개의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퇴적구릉 사이에서 3개의 가마가 겹쳐져 발견되었는데, 가마의 길이는 각각 38m, 31m, 14m이고 폭은 1.1∼1.2m 정도이다. 가마 벽과 천장은 돌과 점토를 섞어 쌓아 올렸다. 이곳에서 제작된 청자들은 대접·접시·병·탁잔들로 다양하고, 구름무늬·꽃무늬·덩쿨무늬들이 음각으로 제작되었다. 태평임술2년(太平壬戌二年,1022)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나와 11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한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랜 청자 가마터로, 12세기에 청자가마터가 부안 일대로 옮겨가기 전까지의 청자 발생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가마터이다.
 

 

8.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종 목 사적  제510호 
지 정 일 2011.07.28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산16 및 기산리 산 81
시 대 고려시대


경북 고령군에 있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걸쳐 도자기나 기와를 굽던 가마터이다. 본래 사적 71호의 성산사부동도요지와 사적 72호의 성산기산동도요지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인접 지역에 있는 두 요지를 통합하고 사적 제510호로 재지정하였다.


경북 고령군 성산면 사부동과 기산동에 있는 가마터의 거리는 1km 이내로, 발견되는 도자기의 대부분이 종류는 대접, 접시, 병 등 이며, 무늬는 국화, 구름 무늬가 있는 등 유물의 성격이 비슷하여 같은 시기의 가마터로 볼 수 있다. 이 중 청자요지는 14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여기에서 만들어진 기형은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이며, 기벽이 두껍고 굽은 투박하여 모래받침으로 번조하였다. 유약은 두껍게 시유하였다. 암녹색을 띠고 있으며, 무늬는 인화시문된 상감무늬가 거칠고 투박한데, 국화판 ·운문 ·와권문 등이 많다.


조선시대의 요지는 인화문과 귀얄문의 사기, 그 중에서도 상품 사기를 번조하던 분청사기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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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고려청자 요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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