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역의 유적,유물,관광지를알려주세요

춘천지역의 유적,유물,관광지를알려주세요

작성일 2012.01.15댓글 2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방학숙제에서  춘천지역의  유적,유물,관광지의 대해조사하라고대있어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춘천시의 유적)

 

1.춘천 신매리 유적

 

종 목  사적  제489호  
지 정 일 2007.11.14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신매리 302번지 등 
시 대 신석기~삼국시대


춘천 신매리유적은 북한강 옆의 충적대지에 형성된 취락유적으로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처음 발굴조사 한 이후 한림대학교박물관,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한 지속적인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하여 신석기~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무덤이 밀집 분포된 복합유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지난 1996년 신매대교 접속도로 개설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이른 시기에 속하는 주거지와 유물들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기를 달리하는 주거지와 유물들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동북지역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로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춘천신매리유적을 후세에 길이 보존 전승을 위하여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 하고자 한다.

 

2.조양루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우두동 산5

시 대 조선시대

 

 이 누각은 조선 인조 24년(1646) 때의 춘천부사 엄황이 문소각을 세울 때 위봉문과 함께 지은 문루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종 융희 2년(1908)에 현 위치인 우두산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1층은 긴 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매우 높게 꾸몄으며 간결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3.춘천향교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교동 27-1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27년(1594)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한국전쟁으로 불탄 것을 1960년에 복원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장수루·동재·서재·동무·서무·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사당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교화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다.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수춘향약』·『향중좌목』·『향안』 등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4.춘천 혈거유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1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후평동 671 
시 대 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말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동굴 주거지이다. 1962년 성심여자대학교(현재의 한림대학교)의 신축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봉의산 중턱 동쪽 기슭의 경사면을 이용해 동굴처럼 파서 만든 것으로, 내부바닥은 직경 4m의 원형이고, 천장의 최고 높이는 2.1m이다. 또한 천장에 연기로 그을린 흔적이 있어 당시 불을 사용하던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이후에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나 무덤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3인의 사람뼈가 발견되었고, 돌도끼, 돌화살촉, 돌끌, 돌방망이, 빗살무늬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약 5000년전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5.천전리 지석묘군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4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685-7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강원도 춘천 천전리에 있는 이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발굴조사 때 10기가 무리지어 있었으나 현재는 5기가 남아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2.6∼2.2m 정도이고, 받침돌의 높이는 1.12m이며 돌화살촉 3개, 대롱구슬,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춘천 천전리 지역에서 고인돌이 무리지어 발견된다는 점은 이미 춘천분지에서 부족사회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민무늬토기를 사용하면서 소양강변에서 농경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 우리나라 선사시대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6.춘천 중도적석총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19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중도동 595-1 
시 대 철기시대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가운데에 있는 섬인 중도에 있는 원삼국시대 무덤이다.

 

중도는 옛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어 선사시대 집자리와 무덤유적이 남아있다. 중도 남쪽 끝에 있는 2기의 돌무지무덤(적석총) 중 1981년 1기에 대해 발굴이 이루어 졌다. 규모는 4변의 길이 15m이고 높이는 4m로 강돌을 이용하여 벽을 만들었다. 내부는 모래와 흙을 얇게 깔고 그 중앙에 강돌로 널방(현실)을 만들었으며, 널방 위와 주변은 다시 돌을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 내부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조각과 청동제 귀고리, 작은 쇠칼, 쇠화살촉을 비롯한 철기제품이 출토되었다.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편과 주변의 집자리에서 나온 토기편을 비교해 본 결과, 무덤주인은 2∼3세기경 이 지역 지배자로 추정된다.

 

중도의 돌무지무덤은 춘천지역이 북한강 일대의 중심지역으로 원삼국시대에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였음을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7.김청풍부원군 묘역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20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안보 1리 155-1 
시 대 조선시대


영의정 김육의 아들이며, 조선 현종의 장인인 충익 김우명(1619∼1675)의 묘역이다.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 세마, 영돈녕부사,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우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부원군의 대접을 하기 위하여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증리에 묘소를 하사하였다 한다. 시신을 배에 싣고 한강을 거슬러 가던 중 현재의 묘소 앞의 강에 이르렀을 때 배가 움직이지 않고 돌풍에 명정(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산으로 날아갔다. 명정이 날아간 곳으로 가보니 그곳이 명당이어서 하사한 땅을 취소하고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강원도 내에 있는 왕릉 이외의 묘지에는 담장이 없는데, 이 묘소는 담장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묘비는 숙종의 친필로 쓰여졌으며,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호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가 짓고 윤심이 글씨를 썼고, 전서는 서포 김만중의 솜씨이다.

 

8.신장절공 묘역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21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산 816-1 
시 대 고려시대


고려의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소이다. 평산 신씨의 시조로서, 918년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이바지하였다.

 

태조 10년(927) 대구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싸우다가 태조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해지자 태조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다가 전사하였다. 적군이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고 그의 목을 베어가자 태조는 머리없는 시신에 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도굴을 막기 위하여 묘는 하나인데 봉분을 3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이 묘에는 3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묘역에는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 및 묘비가 서 있다.

 

 

9.봉의산성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26호

지 정 일 1979.05.30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소양로 1가 산1-1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청의 뒷산인 봉의산 능선에 쌓은 산성으로,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서 쌓았다. 원형은 많이 훼손되어 1991년에 105m를 복원하였고, 1993년에 40m를 복원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봉산 산성의 둘레는 2,463척이고 높이는 10척이라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이곳에서 전사하였고, 『고려사』에는 몽고족의 4차 침입 때 춘천 주민들이 산성에 들어가 항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강원도 조방장 원호의 활동지역이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란, 몽고와의 전쟁에서 격전지였던 기록을 감안하면 고려 중엽에 쌓은 성으로 추측된다.

 

봉의산성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원형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춘천지방 사람들에게 항전의 현장이었음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이 성은 지세가 험하여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에는 좋았으나, 식수가 부족하고 크기가 작아 장기간 적의 포위에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0.춘천 증리 고분군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45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신동면 증리 산97-1

시 대 삼국시대

 

 낮은 산언덕 능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들이다.

 

오랜 세월로 무덤 위에 올렸던 봉토는 대부분 유실되었고, 당시 사용되었던 돌 재료들이 일부 땅 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1980년에 우연히 이곳에서 파괴된 무덤과 함께 유물이 수습되어 부분적으로 무덤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구조는 시체를 넣는 돌방(석실)을 쌓아올리는 말각조정으로 되어있다.

 

춘천 증리무덤들은 이 일대의 무덤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곳이다.

 

11.신매리 석실고분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46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신매리 177-14 
시 대 삼국시대


춘천시 신매리지구 농경지정리 작업 중에 발견된 고구려형식의 무덤이다.

 

무덤의 형태를 보면 시체를 두는 널방(현실)의 경우 비교적 큰 자연돌과 강돌을 사용하여 3∼4단의 벽을 쌓아 올리면서 모서리를 죽이고, 위를 하나의 큰 판돌을 올려 마무리한 말각조정 형태의 돌방무덤(석실묘)이다. 그리고 통로에 해당하는 널길(연도)를 갖추고 있다. 조사결과 2사람의 인골이 흩어져 수습되었을 뿐, 다른 유물은 없었다.

 

춘천 신매리 돌방무덤은 형식적인 면으로 보아 고구려의 전통무덤 축조형식을 따르고 있어 6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2.청평사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55호

지 정 일 1984.12.28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69외 2필지

시 대 고려시대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에 지어져 ‘백암선원’이라 부르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그후에 보현원, 문수원으로 불려오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크게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청평사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랜 세월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문수원기비와 국보였던 극락전 등이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의 극락전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남아 있는 유물로는 회전문(보물 제164호), 삼층석탑, 진락공 부도, 환숙당 부도 등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관직에 있던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숨어 지내던 문수원과 영지가 남아 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의 정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13.의암 유인석 묘역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4호

지 정 일 2000.03.11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남면 가정리 산91 
시 대 조선시대


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1842∼1915)의 묘역이다.

 

헌종 8년(1842) 춘천시 남면에서 태어나 14세 때에는 친척인 중선에게 입양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화양이사상을 익혔다.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시작하여 크게 활약하였으나, 관군의 공격으로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 이후 1908년 해외로 망명한 후 1910년 6월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을 결성하였고 여기에서 도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는 현실적인 위정척사론으로 의병운동을 전개시킨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14.소양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소양로1가 산1-1

시 대 근대

 

봉의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소양정은 삼국시대에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이요루라고 부르던 것을 조선 순종 때 부사 윤왕국이 소양정이라 고쳐 불렀다. 원래는 지금보다 아래쪽인 소양강 남안에 있었다.

 

조선 선조 38년(1605) 홍수로 없어진 것을 광해군 2년(1610) 부사 윤희당이 다시 짓고, 인조 25년(1647)에는 부사 엄황이 고쳐 짓는 등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지금 있는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6년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15.삼악산성지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0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47 
시 대  고려시대


삼악산성은 삼악산의 능선 계곡 왼쪽 정상을 따라 쌓은 성이다. 삼악산은 춘천-서울간 역로였던 곳으로, 석파령을 내려다보는 곳에 천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마주보고 있는 두 정상의 능선을 따라 산성을 쌓았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샘밭 삼한골을 거쳐 이곳에 성을 쌓아 피신처로 이용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또 삼국시대 이전에 춘천지역에 있던 부족국가인 맥국 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다.

 

산성의 길이는 약 5㎞로, 성벽은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자연석을 이용하여 자연 지형에 따라 높이 1∼3m로 쌓았다.

 

성 주변에서 옛 그릇 조각과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흥국사, 망국대, 대궐터, 기와를 굽던 ‘와대기’등 의미있는 옛 지명들이 전해온다. 

 

16.최재근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5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신동면 정족1리 907 
시 대 일제강점기


1917년에 세운 집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웃방·안방·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으로는 건넌방을 꾸몄다. 지금은 생활하기에 편리한 구조로 개조하였는데,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고 안방과 웃방 사이의 벽과 바깥쪽 툇마루를 없애 방을 넓혀 쓰고 있다.

 

사랑채는 대문 왼쪽에 외양간·광·방을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부엌·방·광을 놓았는데, 왼쪽은 삼량구조이나, 이 오른쪽 부분은 평사량구조를 취하고 있다.

 

17.민성기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6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동면 장학리 70 
시 대 조선시대


휘문중학교를 세운 민영휘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묘 가까이에 세운 묘막이다.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 ㄱ자인 안채와 ㄴ자인 사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웃방·안방·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에는 건넌방을 배치하였다. 부엌쪽은 옆면의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지만 건넌방쪽은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사랑채는 광·방 2칸·부엌으로 구성된다. 지붕은 안채와 마찬가지로 한쪽은 맞배지붕,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가옥 전체를 흙담으로 처리하고 기와를 얹었다.

 

18.김정은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신동면 정족1리 643 
시 대 1900년대 초


나지막한 산 아래에 세운 집으로 ㄱ자형 안채에 사랑채가 딸려 있어 전체적으로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건넌방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웃방·안방·부엌을 배치하였는데 부엌 천장에는 다락을 만들었다. 대청 뒤쪽 벽에는 2짝 문을 달고, 웃방과 안방 사이에도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였다. 안채 대청 앞쪽으로는 햇빛을 막고 비가 들지 않게 높은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덧댄 차양시설을 두었다.

 

사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부엌과 사랑방을 두었고 오른쪽에는 광과 그 뒤편으로 방을 놓았다.

 

19.방동리 고구려고분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6호

지 정 일 1985.09.13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816

시 대 고구려시대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무덤 남쪽에 있는 2기의 무덤이다.

 

내부는 크고 작은 깬돌을 포개서 만든 돌방무덤(석실묘)이고, 외부의 봉토는 거의 유실되었다. 천장은 3∼4단의 벽을 쌓아 올리면서 모서리를 죽이고 하나의 큰 판돌을 올려 마무리한 모줄임식천장(말각조정천장)이다.

 

방동리 무덤은 고구려 무덤의 후기 양식이 지방화 된 형태로, 춘천 지방이 신라가 북상하기 이전인 6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영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20.한백록 묘역 및 정문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1호

지 정 일 2000.11.18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금산리 산64, 방동리 406-2 
시 대 조선시대


충장공 한백록(1555∼1592)의 묘역과 정문이다. 한백록은 임진왜란 때 옥포해전과 합포해전 등에서 활약하였으나 미조항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 후 영조 21년(1751)에 그에 대한 정려가 내려졌다.

 

한백록의 묘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묘의 형태로, 묘 앞에는 최근에 세운 비석과 상석 망주석 등이 있고 묘의 왼쪽에는 묘갈이 세워져 있다. 효종 8년(1657)에 세운 이 묘갈은 두동강난 것을 다시 붙여 세운 것이다. 묘로 진입하는 입구 쪽에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은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 1.5㎞ 되는 곳에 사당과 함께 있다.

 

(춘천시의 유물)

 

1.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종 목  국보  제124호 
지 정 일 1967.06.21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우석로 88 국립춘천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원래 강원도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던 보살상으로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조인된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 잘려진 머리 부분을 붙일 때의 흔적과, 이마 부분의 백호가 떨어져나가면서 입은 손상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관 위로 높이 솟아 있다. 볼이 통통한 네모난 얼굴에는 눈이 가느다랗게 새겨져 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가 그어져 있으며,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검지 손가락을 편 오른손은 연꽃가지를 잡고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왼손 역시 검지 손가락을 편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발은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하고 있어서 같은 곳에서 발견된 한송사지 석불상(보물 제81호)과 반대이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데 비하여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조각 수법과 아울러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좀 더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약간 오른쪽으로 향한 듯한 얼굴과 몸은 풍요로우며, 조각수법 또한 원숙하고 정교하다.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인데,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만든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로 추정된다.

 

2.춘천 근화동 당간지주

 

종 목 보물 제7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근화동 793-1

시 대 고려시대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이 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 쪽에 서서 이를 버티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춘천시내에서 의암호를 따라 춘천역으로 돌아가는 도로 옆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는 아무런 꾸밈새가 없는 간결한 형태이다. 마주 보고 있는 두 기둥 사이에는 2단으로 이루어진 당간의 받침돌이 놓여져 있는데, 아랫단은 둥근조각이 있고, 윗단은 16잎의 연꽃조각이 돌려져 있다. 기둥의 꼭대기는 반원형을 이루고 있고, 한 곳에만 깃대를 고정시켰던 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을 다듬은 기법이나 연꽃잎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3.춘천 칠층석탑

 

종 목 보물 제7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소양로2가 162-2

시 대 고려시대

 

춘천 시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탑이다. 조선 인조 때 이곳의 현감이었던 유정립이 인조반정으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이 탑 부근에 집을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충원사’라는 글이 새겨진 그릇을 발견하였는데, 그 후부터 충원사 내에 속하였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한국전쟁 때 심한 손상을 입어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기단의 일부가 지하에 파묻혀 있었는데, 지난 2000년에 시행된 전면적인 보수공사로 기단부의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 석탑은 아랫부분을 발굴 조사한 결과 2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놓여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윗층 기단도 탑몸돌에 비하여 제법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널판돌을 놓아 1층 탑몸돌을 괴고 있다. 7층에 이르는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그 크기가 적당히 줄고 있는데, 기단이 넓은 것에 비해 몸돌이 작아 주목되지만 7층이나 되는 높이가 비례의 불균형을 보충하여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느린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까지가 6단이고 4층 이상은 5단을 이루고 있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경쾌하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고려 중기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여서 아쉬움을 주고 있고,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거의 파손된 상태이다.

  

 

4.청평사 회전문

 

종 목 보물 제164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5

시 대 조선시대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가 세워 백암선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몇 번에 걸쳐 고치고 절을 넓혔는데 청평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명종 5년(1550) 보우선사가 이곳에 와 다시 고쳐 세운 뒤부터이다.

 

청평사의 회전문은 절에 들어설 때 만나게 되는 두번째 문인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것으로,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려는 의미의 문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앞면의 가운데 1칸은 넓게 드나드는 통로이고 양쪽 2칸은 마루가 깔려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간결한 형태로 짜여 있는데, 이는 주심포양식에서 익공계 양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건물 안쪽은 벽이 둘러진 공간에 사천왕상 등의 입상을 놓을 수 있게 했으며, 윗부분에는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만든 홍살을 설치하였다.

 

16세기 중엽 건축 양식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이 절의 서쪽 언덕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극락전이 있었는데 고려시대 건축의 수법을 보여주던 중요한 건물이었다.

 

 

5.허목초상

 

종 목  보물  제1509호 
지 정 일 2007.02.2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석사동 산27-1 
시 대 조선시대


조선중기 대표적 학자이자 문신인 미수 허목(1595-1682)의 초상으로 오사모에 담홍색의 시복을 입고 서대를 착용한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오는 반신상이다. 화폭 상부의 제발문에 따르면 1794년(정조18) 정조가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그 칠분소진을 얻고자 채제공으로 하여금 사람들과 의논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은거당(1678년 숙종이 하사한 집)에서 선생의 82세진을 모셔다가 이명기가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영정의 오른 쪽에는 채제공이 당시에 쓴 표제가 붙어 있다.

 

이 <허목 초상>은 생시진상은 아니지만 현재 원본이 전해오지 않는 실정에서 17세기 대표적인 사대부초상화의 형식을 보여줌과 아울러, 노학자의 문기어린 풍모를 잘 전달해낸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 이명기의 솜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하겠다.

 

ㅇ 규격(세로x가로) : 72.1 x 56.8 cm(그림), 28.6 x 65.8 cm(발문)

 

6.청풍부원군 상여

 

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120호

지 정 일 1982.08.0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석사동 27-1 국립춘천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초상때 나라에서 하사하여 사용하였던 상여이다. 청풍부원군은 대동법을 실시한 ‘김육’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이 청풍이며 현종의 장인이다.

 

상여는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기구이다. 긴 멜대를 중심으로 한 기본 틀 위에 관을 싣는 몸체를 조성하고 맨 위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밝은 천을 넓게 펼친 모습이다. 몸체에는 봉황머리와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검은 천 위에 색띠와 술을 늘어뜨렸는데 망자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덜려는 의미로 보여진다.

 

요여는 혼백과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셔 나르는 작은 가마이다. 긴 멜대 위에 사각형의 방처럼 생긴 몸체를 얹고 맨 위에 네 개의 지붕선이 표시된 반구형의 지붕을 올렸다.

 

명정대는 붉은 천에 청풍부원군의 신분을 밝히기 위한 깃발로서 상여의 오른쪽에 세워두었다가 시신을 운반할 때 영구 앞에 서서 행차를 표시하고 길잡이 역할을 한다.

 

만장대는 망자를 애도한 글을 적은 깃발로 명정의 뒤쪽으로 배치된다.

 

조선 숙종대에 만들어진 이 상여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상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모양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궁중에서 쓰던 상여인 ‘대여’의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7.위봉문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중앙로1가 9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인조 24년(1646)에 춘천 부사로 있던 엄황이 관청 옆에 문소각이라는 건물을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고종 27년(1890)에 민두호가 왕의 명령으로 문소각을 넓히고 고쳐서 이궁(임금이 여행하는 중에 머무는 궁전)으로 삼았는데, 위봉문은 이궁의 내삼문이었다. 1916년에 문소각 건물은 불에 타 없어지고 누각인 조양루와 위봉문만 남게 되었다. 그 뒤 1955년에는 위봉문을 도청 뒤편으로 옮겼고, 1972년에 현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강원도 영서지방에 남아 있는 내삼문(솟을대문) 중 온전하게 양식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8.서상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서상리 247

시 대 통일신라

 

 양화사터에 남아 있는 3층 석탑이다. 주변에 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탑만이 홀로 남아 옛 터를 지키고 있다.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려진 모습이다. 현재 기단은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려우나, 2층 기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윗부분만 드러나 있는 아래층 기단 위에 위층 기단이 놓여 있는데 네 모서리에 새긴 기둥표현과 맨윗돌의 비스듬한 경사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탑신은 1층에서 높다가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이 너무 급하게 줄어들어 다소 균형을 잃은 듯도 하지만 각 부의 구성이 간결하여 단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9.장절공 신숭겸 신도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지 정 일 2009.05.22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821-1번지 
시 대 조선시대


1805년(순조 5) 건립한 신숭겸 신도비는 비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비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형태인 팔각지붕형 갓석과 비신, 비대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김조순이 썼으며, 글씨는 신위가 썼고, 전자는 서매수가 썼다. 신위는 조선시대 4대 명필가였으며, 서매수는 당시 좌의정이었다.


비의 규모는 비신의 높이 228cm, 폭 106cm, 두께 39cm이다.


춘천시 서면 방동리 821-1번지내에 위치하고 있는 신숭겸 신도비는「신장절공 묘역」(강원도 기념물 제21호, 1967.6.17 지정)과 인접하여 있으며 주변의 금산리에는「춘천 한백록 묘역 및 정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1호, 2000.11.18 지정)이 위치하고 있다. 

 

10.청평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산189-2 
시 대 고려시대


청평사 입구의 환희령이라는 언덕 위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일반적으로 탑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 앞에 세우는데 이 탑은 사찰 길목의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홀로 서 있다.

 

형태는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들려 있어 날렵한 감을 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아담하면서도 안정감이 드는 탑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청평사가 고려 광종 24년(973)에 창건된 사실로 볼 때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뱀에 몸이 얽혀 갖은 고생을 하던 원나라 순제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린 뒤 뱀을 떨쳐버리게 되자 이 소식을 들은 순제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일명 ‘공주탑’이란 애칭으로도 불리운다.

 

11.월송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월송2리 666-1 
시 대 고려시대


조면사터로 전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알려주나 지금은 석탑만이 민가 골목길에 서 있다.

 

탑의 기단은 맨 윗부분을 제외하고는 땅 속에 묻혀있어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탑신은 1층 몸돌만 한돌로 되어 있고,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 3층 지붕돌과 꼭대기의 네모난 머리장식 받침돌이 합쳐져 각각 한돌을 이룬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새겼다. 둔하고 무거워보이는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거의 없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으며,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2.김정 묘역 문인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지 정 일 1998.09.05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칠전동 산41-12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문신인 김정 선생의 묘역에 있는 1쌍의 문인석이다.

 

김정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민왕 20년(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고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과『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문인석 2기는 동일한 수법으로 조각하였는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낮은 관모를 쓰고, 눈·코·입은 얇은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두 손에는 신하들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笏)을 들고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 이외에도 망주석 1쌍과 선생의 묘비가 마련되어 있는데, 문인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세운 것이다.

 

(춘천의 관광지)

 

1.오봉산 
    

위 치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기암괴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오봉산(779m)은 옛적에는 경운산으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산은 아기자기한 바위능선과 소양호의 유람선 승선의 재미를 겸할 수 있다.

 

정상에서 남쪽 산자락에는 고려 광종 24년에 창건한 청평사가 자리잡고 있다. 배후령에서 등산을 시작, 제1봉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가면 기초적인 암벽등반을 요하는 곳도 있고 아찔한 맛이 나는 곳도 있다. 제2, 3, 4봉을 오르내리면 굴참나무로 뒤덮인 제5봉 정상에 도착한다.


2.소양댐  
    

위 치 :강원 춘천시 북산면

 

충주호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인 소양호는 동양에서는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큰 사력댐으로 춘천, 홍천, 양구, 인제군에 접해 있어 내륙의 바다로 불리워진다.

 

1973년 10월에 준공된 이 댐은 높이 123m, 길이 530m, 저수량 29억톤, 발전용량 20만kw/h로서 춘천, 경기, 서울지역의 생활용수, 농업, 경공업, 홍수조절에 크게 기여하는 다목적댐이다. 양구, 인제까지 60km의 긴물길을 따라가는 관광쾌속선이 내설악까지 이어주고 있으며, 빙어, 향어, 송어등 민물낚시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3. 춘천호  
    

위 치 :강원 춘천시 사북면

 

춘천호는 1965년 2월에 준공된 춘천댐으로 생겨난 인공호수다. 북한강 줄기를 막아 만들어 진 높이 40m, 길이 453m의 콘크리트댐인 이 댐의 윗면은 5번 국도상에 놓여 춘천과 화천의 길목이 되는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댐의 윗물길과 아랫물길 일대에는 유원지가 만들어져서 식당, 방갈로, 원두막, 야영캠프장, 낚시터 등 편의시설이 되어있어 이용이 편하다. 유원지 숲 곳곳에 가족소풍을 즐길만한 공간도 있어 가족나들이에도 좋다.

 

의암댐과는 춘천순환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의암호를 따라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가족단위의 관광객은 낚시가 적격이며 댐 주변에 형성된 매운탕골은 전국적으로 그 맛이 정평나 있는데 자연산 메기매운탕, 쏘가리 매운탕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또 춘천댐 계곡과 삿갓봉, 수려한 자연환경과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집다리골 휴양림 등이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깨끗한 호수와 울창한 송림의 조용한 숲속에 캠프촌이 어울어져 호반의 정취를 더욱 느끼게 하고 겨울 빙어 낚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4.춘천닭갈비와 막국수


춘천닭갈비


춘천에 와서 닭갈비를 못 먹어보면 춘천에 온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맛이 유명하다. 닭갈비는 갈비 자체가 아니라 토막낸 닭을 포를 뜨듯이 도톰하게 펴서 양념에 재웠다가 갖은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아 먹는 요리이다.

 

강원도 춘천의 향토음식으로 춘천 닭갈비의 역사는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 판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 대용으로 개발되었다. 그것이 10년 전부터 번져나가 중심가를 파고든 것으로 3년간 군 생활에서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이 즐겨 먹었고, 값이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라 춘천 시내 대학생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도시락에 비벼 먹었을 만큼 춘천에서 학창 시절이나 군대생활을 보낸 사람들에게 구수하고 푸짐한 음식으로 기억된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중의 하나는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닭갈비는 지금도 그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대단히 싸서 70년대 초 닭갈비 1대 값은 100원 이었고, 별명이 ‘대학생갈비’, ‘서민갈비’였다.

 

이젠, 지역향토음식이라기 보다 전국적인 체인망으로 대한민국 대표음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닭고기는 백색육(White Meat)으로 결합조직 중 지방과 염류가 타 육류에 비해 보다 적게 포함되어 그 맛이 담백하며 닭고기의 섬유소는 부드럽고 씹기 편해 소화율이 높으며 그 향이 부드러워 다른 향신료나 식품과의 조화가 우수하다. 닭고기에는 비타민 A의 함량이 비교적 높고 내장과 껍질에는 풍부한 단백질, 지방,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다.

 

닭 가슴살은 22.9%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다른 동물성 식품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지방함량이 매우 낮아 (1.2%) 맛이 담백하다. 또한 다른 육류에 비해가 낮아 151Kcal/100g 정도로 체중 조절이 필요한 운동선수나 모델,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에게 필수 건강식으로 이용되고,
지금은 가족단위로 아이들과함께 같이 많이 즐기고 있다.


춘천막국수


막국수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복잡한 조리과정과 재료없이도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순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국수틀에 뽑아낸 면을 금방 삶아내어 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거나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려서 식초,겨자,육수를 곁들여 먹으면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강원도 춘천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막국수는 메밀의 겉껍질만 벗겨 낸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아 만든 거무스름한 빛깔의 국수로 메밀막국수라고도 한다.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국수틀에 눌러 빼어 끓는 물에 삶아서 냉수에 3∼4번 헹구어 사리를 만든다. 김치는 큰 것이면 대강 썰고 오이는 반으로 갈라서 얄팍하고 어슷어슷하게 썰어 소금에 잠시 절였다가 꼭 짠다. 사리를 대접에 담고 김칫국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썬 김치와 절인 오이를 얹고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린다. 김치는 동치미 ·나박김치 ·배추김치 등을 쓰는데, 젓갈과 고춧가루가 많지 않은 맑은 김치가 좋다. 국물은 김칫국물과 차게 식힌 육수를 반씩 섞으면 더욱 좋지만 이 국수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 B1 ·B2, 니코틴산 등을 함유하여 영양가와 밥맛이 좋다. 가루는 메밀묵이나 면을 만드는 원료가 되어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메밀묵과 냉면을 즐겨 먹었다. 섬유소 함량이 높고 루틴(rutin)이 들어 있어서 구충제나 혈압강하제로 쓰이는데, 이 루틴을 생산할 목적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시대의 요구조건에 딱 들어맞는 건강식음식이기에 많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춘천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먹어봐야 할 춘천의 전통막국수의 맛이다.

 

5.삼악산

  
위 치 :강원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118-6

 

서울에서 북쪽으로 80km,춘천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삼악산과 등선폭포(계곡)는 경춘 국도변에서 가깝기 때문에 수도권 시민들의 주말여행이나 일일관광코스로 적합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및 기암괴석 사이로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으며 높이 10m 의 아담한 제1 폭포를 시작으로 제2,3폭포 및 선녀탕을 경유하여 삼악산 주봉(해발 654m)을 오르는 등산로는 그리 험하지 않아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협곡과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의 산세는 설악산의 빼어난 암봉미와 오대산의 웅장함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하다. 울창한 수목도 인상적이고 의암호와 북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서면 마치 다도해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6.남이섬 종합휴양지  
              

위 치 :강원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198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을 만들 때 북한강 강물이 차서 생긴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내륙의 섬이다. 1965년 수재 민병도 선생(1916~2006)이 토지를 매입, 모래뿐인 불모지에 다양한 수종의 육림을 시작하였다. 1966년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설립, 종합휴양지로 조성하여 오던 중, 90년대 말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고자 2000년 4월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2001년부터 [문화예술 자연생태의 청정정원] 역할로서 재창업을 선언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루어 나가면서 환경과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환경 분야에서는 환경운동연합 및 YMCA, YWCA 등의 시민환경단체와 함께 재활용운동, 환경감시, 환경순적 개발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문화 분야에서는 유니세프, 유네스코 등의 국제기구 및 저변의 작가군과 더불어 순수미술에서 종합예술축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지속적으로 후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60~90년대에는 최인호의 <겨울나그네> 촬영지 및 강변가요제 개최지로 알려져 행락객들의 <유원지>로 인식되어 왔으나, 2001년 12월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대만,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권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문화관광지>로 탈바꿈하였고, 최근에는 북미, 유럽, 중동에서의 관광객뿐 아니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청정환경의 <국제적 관광휴양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연평균 입장객 150만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남이섬은, 이제까지 진행해 오던 각종 환경순화적 사업과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강화하고자 2006년 3월 1일 국가형태를 표방하는 특수관광지, 나미나라공화국으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숨쉬는 나라를 만들고자, 헌법도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는 편한 상식이 법보다 아름다운,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무법천지법으로 정하였다.


7.중도관광지  
    

위 치 :강원 춘천시 중도동 603

 

중도관광지는 의암댐 건설로 생긴 섬으로서 상중도 27만평, 하중도 35만평 총 62만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반의 도시 춘천시가지에서 서북쪽으로 1.5Km의 가까운 거리로서 의암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호수의 정취를 만끽하며 자연을 한껏 숨쉴 수 있는 호수 속의 넓은 광장으로 바깥으로는 크고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듯 하고 빼어난 경관은 물론, 드넓은 잔디 광장을 갖추고 있어 MㆍT 및 야유회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춘천의 관광명소이다.

 

특히 주변의 삼악산, 구곡폭포, 소양댐, 춘천수렵장 집다리골 자연휴양림 등과 연계한 종 합 관광단지의 심장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며, 또한 이 곳에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로 청동기시대에 만든 무덤인 고인돌과 강원도 기념물 제19호인 돌무지무덤 적석총을 포함하여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암사동 움집 및 청동기시대 말기에서 철기시대에 걸쳐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도 움집등 내륙지방 문화 유적들이 있어 자연학습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넓은 잔디밭과 나무숲으로 둘러 싸인 여러 가지 놀이시설, 잘 단장된 산책로와 숲이 함께 어우러진 이 곳은 마치 외국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나오는 공원 같이 무척 아름답다.

 

특히, 영화 "와니와 준하", SBS드라마 "아버지와 아들", KBS드라마 "겨울연가" 등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하여 기념촬영 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섬이 넓어서 거닐기 보다는 연인끼리 자전거를 빌려타고 다니면 더욱 멋진 데이트가 될것이다. 또한, 저렴한 요금의 다중숙소와 콘도식구조인 중도펜션이 있어 친구들, 가족들과 묵기에도 편리하다.


8.구곡폭포  
    

위 치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1리 432번지

 

봉화산 근처 아홉구비를 돌아 떨어지는 50m의 웅장한 물줄기가 장관인 구곡폭포는 1981년 2월 13일 춘천시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2,423㎢이다. 구곡폭포 매표소에서 걸어서 약 20여분 거리에 폭포가 나타나는데 그 높이와 웅장함이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고 기괴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하늘벽 바위 등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겨울철에는 빙벽 등반을 위한 동호인들의 발길이 잦다. 폭포 밑 우측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걸리는 "깔닥고개"라는 재를 넘으면 자연부락인 문배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산채비빔밥과 토속주를 판매한다. 강촌에서 자전거전용도로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타고 구곡폭포 주차장까지 하이킹을 한 후, 구곡폭포를 구경하거나 강촌 시내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구곡폭포 입구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

 

매표소에서 폭포까지의 860m 산책로는 주변경관이 아름다우며 연인과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돌탑,기타시설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고 강촌리 일대에 30여 가구의 민박집과 유스호텔, 모텔,여관 등이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9.강촌유원지  
    

위 치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강촌은 가평역을 지나 경춘 국도를 계속 달리면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 10km 북한강 줄기를 가로지른 강촌교 건너에 있는 강 마을이다. 봉화산과 삼악산 등 자그마한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주변 산들에는 아담한 폭포가 있어 피서를 하기에도 좋고 북한강의 맑은 물이 흘러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강촌역에서 구곡폭포에 이르기까지 카페와 민박집들은 완행열차에 사람들이 매달린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강촌을 찾는 사람들은 자전거로 일대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강촌의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는 강촌철교 밑 - 춘천 방향 강변(1km), 구곡교 - 구곡폭포 주차장 아래(1.8km), 강촌교-등선교 아래 강변(2.3km), 강촌역 아래 - 춘성대교 아래(8.1km) 등 네 가지가 있다.


10.마임의 집  
    

위 치 :강원 춘천시 옥천동 72-3 춘천문화마당 내 마임의 집 

   
춘천 마임의 집은 1998년 2월에 문을 열었다. 2년 6개월 동안 전국에서 찾아온 애호가들에게 마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면서 100회 공연을 가졌다.

 

특이한 장르의 전용극장으로 명물이 된 문화 공간인 "마임의 집"은 유럽의 마임축제 예술감독이 보고는 세계에서 5개밖에없는 마임극장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하였으나 마임의 집은 운영난으로 문을 닫아야했다.

그러다 2002년 2월에 다시 문을 열고 매달 한번씩 정기공연을 하면서 명맥을 이어 오다가 2004년 3월 매주 토요일 정기 공연을 하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언제나 마임을 볼 수 있는 "마임의 집"이라는 모토를 갖고 과감한 예술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마임의 집은 소극장겸 스튜디오와 춘천마임축제 사무국과 정보자료실 그리고 유진규 네 몸짓도 함께 있는 복합공간으로서, 이곳에서 마임의 중요한 사업들이 준비되고 추진된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비석가격에 대한 정보를 찾고싶다구요?

 


비석가격정보가 많은 사이트 알려드릴려구요

 


저혼자 알기에는 너무많은 정보들이 있더라구요

 

비석가격에 관한 원하는 정보가 있는곳

 


바로이곳!!비석가격에대한 정보가 흘러넘쳐요

 


어때요????비석가격에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많죠?

 

춘천지역의 유적,유물,관광지를알려주세요

방학숙제에서 춘천지역의 유적,유물,관광지의 대해조사하라고대있어요 (춘천시의 유적) 1.춘천 신매리 유적 종 목 사적 제489호 지 정 일 2007.11.14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서면...

동해시의 유적지,유물,관광지

동해시의 유적지,유물,관광지를 알려주세요. 19일 까지 부탁드릴께요. (동해시의... 이 유적은 1996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유적의 남쪽 부분인 동해항만 확장지역에서 발굴을...

춘천레고랜드 유물보존

... 너온 유물이 한두점이 아니여서... 제발 알려주세요!!... 이상의 지역을 개발하게 되면 사전에 문화재 조사를 해야... 춘천 중도 유적유물들은 '국립 춘천박물관'에 보존될...

창원 유적지,유물,관광지

창원의 유적지, 유물, 관광지알려주세요. 내일까지 부탁! 창원의 유적지 1.외동... 성산 조개더미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오랜 기간동안 창원지역의 중심지이었음을...

창원의 유적지,유물,관광지 등에 대해서...

창원의 유적지,유물 관광지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세요 사진까지 부탁드립니다...... 성산 조개더미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오랜 기간동안 창원지역의 중심지이었음을...

지역의 유적지, 유물, 특산물, 관광지좀...

... ㅠㅠ 24일까지 알려주세요 그 때까지 다 할려구요.......... (화순의 유적지) 1.화순 운주사지 일원 종 목 사적... 계곡 지역에 청동기시대의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 230...

포항시의 유물,유적지,관광지

포항시의 유물,유적지,관광지알려주세요. 필요없는 말,욕설,내공냠냠,저주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인천의 유적지,유물,관광지에 대해서...

... 미리 해 놓고 놀려구요,, 인천 그니까 우리지역의 유적지,유물,관광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찾아보니 별로 없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꼭 부탁 드립니다,, 1....

유적지, 유물, 관광지알려주세요 ~

... 무조건 부산의 유적지, 유물, 관광지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ㅠㅜ 제발... 아무튼 사진은 꼭 첨부 해주세요 ~ 많은 답변 기다릴께여 ~ 부산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