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7호선역들의 뜻을 알고 싶은데요

서울지하철 7호선역들의 뜻을 알고 싶은데요

작성일 2006.07.27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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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7호선역들의 뜻을 알고 싶은데요.

 

빨리좀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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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 溫水
조선왕조 1438년경 서울 양천구와 부천 소사구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이곳 부평도호보 일대에서 더운물이 솟아나온 기록이 있어 온수골(옷수골)이라 칭하다가 1963년 서울 시조례 제276호에 의거 온수동으로 개칭하였으며 이를 인용하여 온수역이라 명명됨.

광명사거리 光明사거리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위치한 수도 서울의 인접도시로 다른 곳 보다 해와 달이 잘 비춘다는 뜻으로 광명이라는 지명이 생겨 났으며, 이 지명을 역명으로 명명, 광명역으로 불리다가 고속철도 광명역이 들어섬에 따라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2004. 3. 29. 교통요지인 사거리에 위치한 점에 착안, 광명사거리역으로 역명 변경

철산 鐵山
뒷산이 쇠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리(牛頭里)라고 불리다가 쇠와 철을 소리는 다르게 나지만 같은 뜻이기 때문에 철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가산디지털단지 加山디지털團地
역이 위치한 행정구역명과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입지한 지역특성 감안하여 2005년 7월 1일 ‘가리봉’에서 ‘가산디지털단지’로 역명을 변경

남구로 南九老
본래 구루지 마을과 각만이 마을, 새말, 주막거리, 옻우물약수터 등의 마을이 모여 형성되었으며, 옛날에 이곳에 아홉명의 노인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구로라는 지명이 유래함

대림 大林
1949. 8. 13 대통령령 159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편입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구로 리, 도림리, 전대방리를 편입, 구로동, 신대방동, 신도림동등으로 명칭변경 신대방동의 '대' 자와 신도림동의 '림'자를 따서 대림동으로 명하였고 1984. 5. 22 2호선 서측간 개통에

신풍 新豊
샛강을 경계로 여의도와 마주보고 있는 신길동은 조선시대에 영등포 나룻터가 있던 곳으로 신풍은 수원가도 이서(以西)의 지역을 관할하는 옛 동명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라매
보라매란 순우말로 생후 일년이내의 사냥을 위해 길들여진 매를 말하는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새가 보라매임. 보라매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면서 공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름을 보라매공원이라 하였음

신대방삼거리 新大方삼거리
조선시대는 경기도 금천현 하북면 번대방리(樊大方理)였고 50.3.15일 신대방동으로 개명. 신대방은 대방동 접경의 새로 생긴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신대방동, 대방동, 상도3동의 삼거리에 위치하고 널리 알려진 지역명칭임.

장승배기
장승은 경계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리(理)수를 적어 10리나 15리마다 세워둠으로써 이정표 역할을 하는 기능도 수행했고 특히 악귀를 막는 수호의 샤머니즘이기도 했다. 흔히 장승이 서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하는데 유래는 조선중기 정조가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수원의 묘소를 참배다니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당시 나무숲이 우거진 이 곳에서 쉬기란 적적하기 그지없어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고 함

상도 上道
옛날 이곳에 상여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상투골 이라고 칭하던 것에서 유래됨

숭실대입구 崇實大入口
살피재 고개는 상도동과 봉천동 고개로서, 옛날 이곳은 수목이 울창하여 도둑이 많이 출몰하였던지라 이 재를 넘기 전에 사람들이 살펴서 가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짐

남성 南城
남성동은 신동출장소에 딸린 한동으로 사당동과 방배동 일원을 관할하던 행정관청이었음. 남성동의 유래는 효성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능행시 행차길인 현재의 사당동 일대가 예전에 여시고개, 살피재 등으로 불려짐에 따라 임금의 행차길로는 이물스러운 지명이라 신하들이 여시고개를 남쪽에 큰 재라는 의미의 남태령이라 불렀으며 재의 안쪽인 이곳이 마치 성과같다하여 재성자를 따서 남성이라 일컬어짐

이수 利水
총신대입구(이수)역은 이곳에 이수교가 있으므로 유래된 것이다. 이수교는 배물다리를 한자음으로 고친 것으로 이 다리 남쪽에 배나무골이 있고 동쪽에는 한강물이 흐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내방 內方
방배동은 관악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솟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의 方背라 한데서 연유하며, 일설에는 동네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背) 모서리(方)란 뜻으로 방배동으로 불리워 짐. 현재 운영중인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방배동 안쪽

고속터미널 高速터미널
반포동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1976년 9월 1일로 이곳은 서울역과 함께 서울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반포동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개울이 구불구불 흐르기 때문에 서릿개 또는 蟠浦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盤浦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반포 盤浦
반포라는 지명은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하여 서릿개 즉 반포(蟠浦)라 하다가 변음되어 반포(盤浦)로 칭함. 일설에는 이곳이 상습 침수지역이므로 반포라고도 함.

논현 論峴
논고개라는 고개의 지명을 본떠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현재 논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천주교회 위치가 마루턱이 높은 고개였으며, 또한 강남우체국 위에서 반포아파트까지의 산골짜기 좌우로 벌판이 펼쳐져 논밭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학동 鶴洞
학동은 마을모양이 학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학실, 학곡, 학곡동으로 지칭되었다.

강남구청 江南區廳
청담· 논현·삼성 등 3개동의 경계부근(삼성동 8번지)에 위치하고 인근 강남구청으로 인하여 강남구청역으로 명명

청담 淸潭
한강연안에 위치하는 마을로서 현재 청담동 105번지 일대에 옛날 맑은 못이 있었으며 현 134번지 일대의 한강변 물이 맑아 이 부락을 청숫골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때 청담리라 불리어졌고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어 청담동으로 지칭.

뚝섬유원지 뚝섬 遊園地
옛날 살곶이들이라고 하였으나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연면적 547,000㎡(16만6천여평), 연인원 200만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뚝섬유원지가 있어 명명되었다.

건대입구 建大入口
화양동의 동(洞)명은 70년전까지 110번지 32호에 화양정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정자가 세워진 때는 세종14년(1432년)인데 이때부터 전해 내려오며 인근에 건국대학교가 있어서 건대입구역으로 명명되었다.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大公園
인근에 동양최대의 어린이 대자연 공원인 어린이대공원("73.5.5)이 자리하고 있어 어린이대공원이라 지칭되었다

군자 君子
옛날 어느 왕의 일행이 거동하다가 마침 이곳 남일 농장터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동행하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으므로 이곳을 군자동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이곳을 명려궁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곡 中谷
동네가 능말(능동)과 면목동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므로 "가운데말", "간데말" 또는 한자음으로 "중곡"이라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용마산 龍馬山
서울의 동편에 위치한 용마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348M로서, 망우리고원, 아차산성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로 유명하며, 산중턱의 높은 암절벽을 이용하여 만든 인공폭포는 동양최대를 자랑하고, 옛날에 용의 머리와 말의 몸 형태를 한 용마가 나왔다하여 용마산이라 불리워졌으며, 이를 계승하기 위해 역명으로 결정, 사용하고 있다.

사가정 四佳亭
아차산 벌판에 거주했던 조선시대의 학자인 서거정(세종 2년∼성종19년)의 호를 따서 사가정길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면목 面牧
옛날 말을 먹여 기르던 성의 문이 있어서 구문게, 구문계, 곰계등으로 부르던 곳이다. 면목이란 말목장 또는 목문(牧門)의 소재지로 마목, 문목 등의 발음과 비슷하고, 목장을 앞에 두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1954년 8월 15일부터 중계, 하계, 면목리 등이 합해져 면목동이라 유래되었다. 그 후 기존 주거지 및 상권과 혼합된 지역으로서 지명과 동일하게 역명이 지어졌다.

상봉 上鳳
상봉동은 조선시대부터 유래하는 上里와 鳳凰洞의 자연부락을 통합하여 上里의 上자와 鳳凰洞의 鳳자를 따서 上鳳里라고 붙인데서 유래한다.

중화 中和
중화동은 예로부터 봉화산 아래 자연부락의 하나인 가운데마을(中里)과 아랫마을(下里)의 글자를 따서 중하리로 칭하였는데 1963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주민의 건의로 "下"자 대신 화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和"자를 넣자는 뜻에 따라 중화동으로 명명되었다.

먹골
먹골은 조선시대 먹을 제조하여 붙여진 묵동이라는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필기설에 따라 정해졌다는 설이 있다.

태릉입구 泰陵入口
태릉은 불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사적 201호로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임( 그 북쪽에는 조선 명종과 원순왕후의 능침인 태강릉이 있음)

공릉 孔陵
1963.1.1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공덕리의 孔자와 태릉의 陵자를 따서 공릉동이라는 지명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하계 下溪
하계역은 하계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명명된 이름이다.하계동을 이루는 자연부락들이 도봉구의 중앙을 흐르는 한내의 아랫쪽에 위치한다하여 동명이 붙여졌으며, 북쪽은 중계동과 접하고 서쪽은 한천을 경계로 월계동과 남쪽은 공릉동과 접하고 있다.한편 하계동에는 되룡골,윗골,오목다리,양지편 가재울 등 우리말 마을 이름이 옛부터 전해져 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중계 中溪
중계동은 한천의 중간에 위치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의 일부지역이었으며, 1881년 양주군 노원면 광명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가 1914년 양주군 노원면과 해동천면을 합하여 노해면 중계1리로 명명되었고 지명을 역명으로 하여 중계역이라 하였다.

노원 盧原
노원이란 명칭은 조선시대의 국립여관격인 원(院)터가 있었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하며, 서울 근교에서는 이와같은 홍제원, 이태원등이 있었다고 한다.

마들
예전 상계동에 역참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에 놓아 키웠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상계동 일대가 삼밭이어서 순우리말인 마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두 가지가 있다.

수락산 水落山
수락산이 바위산이기 때문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곧바로 흘러내려 수락산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도봉산 道蜂山
도봉산의 이름을 따 도봉산역으로 명명

장암 長岩
장암동은 원래 둔야면 장자리(長者理), 오암리(烏岩理), 동막리(東幕理)를 1914년에 시둔면 장암리로 부르다가 1964년에 장암동으로 개칭되면서 오늘날까지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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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암

  장암동은 원래 둔야면 장자리(長者理), 오암리(烏岩理), 동막리(東幕理)를 1914년에시둔면 장암리로 부르다가 1964년에 장암동으로 개칭되면서 오늘날까지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봉산

 도봉산역은 서울근교의 명산인 도봉산 아래에 위치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가 1914년 4월 우리나라의 부, 군, 면을 폐합할 당시 도봉산 아래의 다락원, 서말원, 무수원등 마을을 합하면서부터 도봉 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수락산

  상계동의 북쪽으로 의정부시와 경기도 남양주시 경계에 있는 수락산은 도봉산과 마주하며 서울 북쪽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산은 사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 638m로 수목은 울창하지 않으나 산세가 웅장할 뿐 아니라 계곡이 깊고 수려하며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도처에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마들

  예전 상계동에 역참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에 놓아 키웠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상계동 일대가 삼밭이어서 순우리말인 마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노원

  조선시대 육상교통의 수단인 역점으로서 노원역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 갈대만 무성하고 인가가 없어서 행인이 몹시 곤란을 당하여 나라에서 원을 세워 노원이라 하였다.

 


중계

  자연부락들이 도봉구의 중앙을 흐르는 한내(漢川)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가운데 中자와 시내 溪자를 붙여 중계라 했음.

 

하계

  하계동은 자연부락들이 도봉구의 중앙을 흐르는 한내(漢川)의 아래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릉

  1963.1.1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공덕리의 孔자와 태릉의 陵자를 따서 공릉동이라는 지명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태릉입구

  태릉은 조선 제 11대왕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능으로서 사적
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먹골

  먹골은 조선시대 먹을 제조하여 붙여진 묵동이라는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필기설에 따라 정해졌다는 설이 있다.

 

중화

  중화동은 예로부터 봉화산 아래 자연부락의 하나인 가운데 마을(中里)과 아랫마을(下里)의 글자를 따서 중하리로 칭하였는데 1963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주민의 건의로 "下"자 대신 화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和"자를 넣자는 뜻에 따라
중화동으로 명명되었다.

 

상봉

  상봉동은 조선시대부터 유래하는 上里와 鳳凰洞의 자연부락을 통합하여 上里의 上자와鳳凰洞의 鳳자를 따서 上鳳里라고 붙인데서 유래한다.

 

면목

  면목은 조선시대 이곳에 말목장이 위치한다하여 지명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부터 중계,하계, 면목리 등이 합해져 면목동이 되었다.

 

사가정

  아차산 벌판에 거주했던 조선시대의 학자인 서거정(세종 2년∼성종19년)의 호를 따서 사가정길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용마산

  용마산(348M)은 경기도 구리시와의 경계를 이루는 아차산의 최고봉이다.북쪽의 북한산, 서쪽의 덕양산, 남쪽의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외사산을 형성하고 있는 이산은 예전에 용마가 나왔다하여 용마산이라 불리워졌다.


중곡

  동네가 능말(능동)과 면목동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므로 "가운데말", "간데말" 또는 한자음으로 "중곡"이라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군자

  옛날 어느 왕의 일행이 거동하다가 마침 이곳 남일 농장터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밤 동행하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으므로 이곳을 군자동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이곳을 명리궁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이대공원

  인근에 어린이 대자연 공원인 어린이대공원('73.5.5)이 자리하고 있어 어린이대공원이라
지칭되었다

 

건대입구

  역사 인근에 건국대학교가 위치함

 

뚝섬유원지

  옛날 살곶이들이라고 하였으나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연면547,000㎡(16만6천여평), 연인원 200만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뚝섬유원지가 있어 명명되었다

 

청담

  한강연안에 위치하는 마을로서 현재 청담동 105번지 일대에 옛날 맑은 못이 있었으며 현 134번지 일대의 한강변 물이 맑아 이 부락을 청숫골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때 청담리라 불리어졌고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어 청담동으로 지칭.

 

강남구청

  청담·논현·삼성 등 3개동의 경계부근(삼성동 8번지)에 위치하고 인근 강남구청으로 인하여 강남구청역으로 명명

 

학동

  학동은 마을모양이 학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학실, 학곡, 학곡동으로 지칭되었다.

 

논현

  논고개라는 고개의 지명을 본떠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현재 논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천주교회 위치가 마루턱이 높은 고개였으며, 또한 강남우체국 위에서 반포아파트까지의 산골짜기 좌우로 벌판이 펼쳐져 논밭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반포

  반포라는 지명은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하여 서릿개 즉 반포(蟠浦)라 하다가 변음되어 반포(盤浦)로 칭함. 일설에는 이곳이 상습 침수지역이므로 반포라고도 함.

 

고속터미널 

 1976.9.1일 강북에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이 이전하였고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과 환승역으로 동일 역명 제정

 

내방

  방배동은 관악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솟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의 방배(方背)라 한데서 연유하며, 일설에는 동네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背) 모서리(方)란 뜻으로 방배동으로 불리워 짐. 현재 운영중인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방배동 안쪽에(內) 자리한다고 하여 내방이라 제정.

 

이수

  이수(梨水)란 옛날 배나무를 많이 재배하던 마을 동쪽에 한강물이 흐른다고 하여 유래 되었음

 

남성

  남성동의 유래는 효성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능행시 행차길인 현재의 사당동 일대가 예전에 여시고개, 살피재 등으로 불리었으나 임금의 행차길이 이물스러운 지명이라 하여 여시고개를 남쪽의 큰 재라하여 남태령으로 고쳐부를 때 태령의 재 성(城)자를 따서 남성동이라 일컬었음.

 

숭실대입구(살피재)

  살피재 고개는 상도동과 봉천동 고개로서, 옛날 이곳은 수목이 울창하여 도둑이 많이 출몰하였던지라 이 재를 넘기 전에 사람들이 살펴서 가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짐

 

상도

  옛날 이곳에 상여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상투골 이라고 칭하던 것에서 유래됨

 

장승배기

  장승은 경계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리(理)수를 적어 10리나 15리마다 세워둠으로써 이정표 역할을 하는 기능도 수행했고 특히 악귀를 막는 수호의 샤머니즘이기도 했다.흔히 장승이 서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하는데 유래는 조선중기 정조가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수원의 묘소를 참배다니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당시 나무숲이 우거진 이 곳에서 쉬기란 적적하기 그지없어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고 함

 

신대방삼거리

 조선시대는 경기도 금천현 하북면 번대방리(樊大方理)였고 '50.3.15일 신대방동으로 개명. 신대방은 대방동 접경의 새로 생긴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신대방동, 대방동,상도3동의 삼거리에 위치하고 널리 알려진 지역명칭임.


보라매

  보라매란 순우리말로 생후 일년이내의 사냥을 위해 길들여진 매를 말하는데, 공군사관 학교의 상징새가 보라매임. 보라매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면서 공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름을 보라매공원으로 하였음

 

신풍

  샛강을 경계로 여의도와 마주보고 있는 신길동은 조선시대에 영등포 나룻터가 있던 곳으로 신풍은 수원가도 이서(以西)의 지역을 관할하는 옛 동명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림

  신대방동의 "대"자와 신도림동의 "림"자를 따서 대림동으로 명함

 

남구로

  본래 구루지 마을과 각만이 마을, 새말, 주막거리, 옻우물약수터 등의 마을이 모여 형성되었으며, 옛날에 이곳에 아홉명의 노인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구로라는 지명이 유래함

 

가산디지털단지

 역사 인근에 구로디지털단지 가산지구가 있어 붙여짐

 

철산

 뒷산이 쇠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리(牛頭里)라고 불리다가 쇠와 철은 소리는 다르게 나지만 같은 뜻이기 때문에 철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광명사거리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위치한 수도 서울의 인접도시로 광명이라는 명칭은 다른 곳 보다 해와 달이 잘 비추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천왕

  인근 주산이 굴봉이고 굴봉산 골짜기에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절 아래 마을이라는 뜻에서 천왕골로 불려진데서 역명이 유래됨

 

온수

  조선왕조 세종20년(1438년)경 서울 양천구와 부천 소사구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이곳 부평도호부 일대에서 더운물이 솟아 나온 기록이 있어 온수골이라 칭하다가 1963년 서울시 조례 제276호에 의거 온수동으로 개칭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음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온수 溫水
조선왕조 1438년경 서울 양천구와 부천 소사구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이곳 부평도호보 일대에서 더운물이 솟아나온 기록이 있어 온수골(옷수골)이라 칭하다가 1963년 서울 시조례 제276호에 의거 온수동으로 개칭하였으며 이를 인용하여 온수역이라 명명됨.

광명사거리 光明사거리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위치한 수도 서울의 인접도시로 다른 곳 보다 해와 달이 잘 비춘다는 뜻으로 광명이라는 지명이 생겨 났으며, 이 지명을 역명으로 명명, 광명역으로 불리다가 고속철도 광명역이 들어섬에 따라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2004. 3. 29. 교통요지인 사거리에 위치한 점에 착안, 광명사거리역으로 역명 변경

철산 鐵山
뒷산이 쇠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리(牛頭里)라고 불리다가 쇠와 철을 소리는 다르게 나지만 같은 뜻이기 때문에 철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가산디지털단지 加山디지털團地
역이 위치한 행정구역명과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입지한 지역특성 감안하여 2005년 7월 1일 ‘가리봉’에서 ‘가산디지털단지’로 역명을 변경

남구로 南九老
본래 구루지 마을과 각만이 마을, 새말, 주막거리, 옻우물약수터 등의 마을이 모여 형성되었으며, 옛날에 이곳에 아홉명의 노인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구로라는 지명이 유래함

대림 大林
1949. 8. 13 대통령령 159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편입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구로 리, 도림리, 전대방리를 편입, 구로동, 신대방동, 신도림동등으로 명칭변경 신대방동의 '대' 자와 신도림동의 '림'자를 따서 대림동으로 명하였고 1984. 5. 22 2호선 서측간 개통에

신풍 新豊
샛강을 경계로 여의도와 마주보고 있는 신길동은 조선시대에 영등포 나룻터가 있던 곳으로 신풍은 수원가도 이서(以西)의 지역을 관할하는 옛 동명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라매
보라매란 순우말로 생후 일년이내의 사냥을 위해 길들여진 매를 말하는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새가 보라매임. 보라매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면서 공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름을 보라매공원이라 하였음

신대방삼거리 新大方삼거리
조선시대는 경기도 금천현 하북면 번대방리(樊大方理)였고 50.3.15일 신대방동으로 개명. 신대방은 대방동 접경의 새로 생긴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신대방동, 대방동, 상도3동의 삼거리에 위치하고 널리 알려진 지역명칭임.

장승배기
장승은 경계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리(理)수를 적어 10리나 15리마다 세워둠으로써 이정표 역할을 하는 기능도 수행했고 특히 악귀를 막는 수호의 샤머니즘이기도 했다. 흔히 장승이 서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하는데 유래는 조선중기 정조가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수원의 묘소를 참배다니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당시 나무숲이 우거진 이 곳에서 쉬기란 적적하기 그지없어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고 함

상도 上道
옛날 이곳에 상여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상투골 이라고 칭하던 것에서 유래됨

숭실대입구 崇實大入口
살피재 고개는 상도동과 봉천동 고개로서, 옛날 이곳은 수목이 울창하여 도둑이 많이 출몰하였던지라 이 재를 넘기 전에 사람들이 살펴서 가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짐

남성 南城
남성동은 신동출장소에 딸린 한동으로 사당동과 방배동 일원을 관할하던 행정관청이었음. 남성동의 유래는 효성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능행시 행차길인 현재의 사당동 일대가 예전에 여시고개, 살피재 등으로 불려짐에 따라 임금의 행차길로는 이물스러운 지명이라 신하들이 여시고개를 남쪽에 큰 재라는 의미의 남태령이라 불렀으며 재의 안쪽인 이곳이 마치 성과같다하여 재성자를 따서 남성이라 일컬어짐

이수 利水
총신대입구(이수)역은 이곳에 이수교가 있으므로 유래된 것이다. 이수교는 배물다리를 한자음으로 고친 것으로 이 다리 남쪽에 배나무골이 있고 동쪽에는 한강물이 흐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내방 內方
방배동은 관악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솟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의 方背라 한데서 연유하며, 일설에는 동네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背) 모서리(方)란 뜻으로 방배동으로 불리워 짐. 현재 운영중인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방배동 안쪽

고속터미널 高速터미널
반포동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1976년 9월 1일로 이곳은 서울역과 함께 서울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반포동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개울이 구불구불 흐르기 때문에 서릿개 또는 蟠浦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盤浦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반포 盤浦
반포라는 지명은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하여 서릿개 즉 반포(蟠浦)라 하다가 변음되어 반포(盤浦)로 칭함. 일설에는 이곳이 상습 침수지역이므로 반포라고도 함.

논현 論峴
논고개라는 고개의 지명을 본떠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현재 논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천주교회 위치가 마루턱이 높은 고개였으며, 또한 강남우체국 위에서 반포아파트까지의 산골짜기 좌우로 벌판이 펼쳐져 논밭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학동 鶴洞
학동은 마을모양이 학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학실, 학곡, 학곡동으로 지칭되었다.

강남구청 江南區廳
청담· 논현·삼성 등 3개동의 경계부근(삼성동 8번지)에 위치하고 인근 강남구청으로 인하여 강남구청역으로 명명

청담 淸潭
한강연안에 위치하는 마을로서 현재 청담동 105번지 일대에 옛날 맑은 못이 있었으며 현 134번지 일대의 한강변 물이 맑아 이 부락을 청숫골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때 청담리라 불리어졌고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어 청담동으로 지칭.

뚝섬유원지 뚝섬 遊園地
옛날 살곶이들이라고 하였으나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연면적 547,000㎡(16만6천여평), 연인원 200만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뚝섬유원지가 있어 명명되었다.

건대입구 建大入口
화양동의 동(洞)명은 70년전까지 110번지 32호에 화양정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정자가 세워진 때는 세종14년(1432년)인데 이때부터 전해 내려오며 인근에 건국대학교가 있어서 건대입구역으로 명명되었다.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大公園
인근에 동양최대의 어린이 대자연 공원인 어린이대공원("73.5.5)이 자리하고 있어 어린이대공원이라 지칭되었다

군자 君子
옛날 어느 왕의 일행이 거동하다가 마침 이곳 남일 농장터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동행하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으므로 이곳을 군자동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이곳을 명려궁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곡 中谷
동네가 능말(능동)과 면목동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므로 "가운데말", "간데말" 또는 한자음으로 "중곡"이라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용마산 龍馬山
서울의 동편에 위치한 용마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348M로서, 망우리고원, 아차산성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로 유명하며, 산중턱의 높은 암절벽을 이용하여 만든 인공폭포는 동양최대를 자랑하고, 옛날에 용의 머리와 말의 몸 형태를 한 용마가 나왔다하여 용마산이라 불리워졌으며, 이를 계승하기 위해 역명으로 결정, 사용하고 있다.

사가정 四佳亭
아차산 벌판에 거주했던 조선시대의 학자인 서거정(세종 2년∼성종19년)의 호를 따서 사가정길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면목 面牧
옛날 말을 먹여 기르던 성의 문이 있어서 구문게, 구문계, 곰계등으로 부르던 곳이다. 면목이란 말목장 또는 목문(牧門)의 소재지로 마목, 문목 등의 발음과 비슷하고, 목장을 앞에 두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1954년 8월 15일부터 중계, 하계, 면목리 등이 합해져 면목동이라 유래되었다. 그 후 기존 주거지 및 상권과 혼합된 지역으로서 지명과 동일하게 역명이 지어졌다.

상봉 上鳳
상봉동은 조선시대부터 유래하는 上里와 鳳凰洞의 자연부락을 통합하여 上里의 上자와 鳳凰洞의 鳳자를 따서 上鳳里라고 붙인데서 유래한다.

중화 中和
중화동은 예로부터 봉화산 아래 자연부락의 하나인 가운데마을(中里)과 아랫마을(下里)의 글자를 따서 중하리로 칭하였는데 1963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주민의 건의로 "下"자 대신 화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和"자를 넣자는 뜻에 따라 중화동으로 명명되었다.

먹골
먹골은 조선시대 먹을 제조하여 붙여진 묵동이라는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필기설에 따라 정해졌다는 설이 있다.

태릉입구 泰陵入口
태릉은 불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사적 201호로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임( 그 북쪽에는 조선 명종과 원순왕후의 능침인 태강릉이 있음)

공릉 孔陵
1963.1.1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공덕리의 孔자와 태릉의 陵자를 따서 공릉동이라는 지명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하계 下溪
하계역은 하계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명명된 이름이다.하계동을 이루는 자연부락들이 도봉구의 중앙을 흐르는 한내의 아랫쪽에 위치한다하여 동명이 붙여졌으며, 북쪽은 중계동과 접하고 서쪽은 한천을 경계로 월계동과 남쪽은 공릉동과 접하고 있다.한편 하계동에는 되룡골,윗골,오목다리,양지편 가재울 등 우리말 마을 이름이 옛부터 전해져 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중계 中溪
중계동은 한천의 중간에 위치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의 일부지역이었으며, 1881년 양주군 노원면 광명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가 1914년 양주군 노원면과 해동천면을 합하여 노해면 중계1리로 명명되었고 지명을 역명으로 하여 중계역이라 하였다.

노원 盧原
노원이란 명칭은 조선시대의 국립여관격인 원(院)터가 있었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하며, 서울 근교에서는 이와같은 홍제원, 이태원등이 있었다고 한다.

마들
예전 상계동에 역참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에 놓아 키웠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상계동 일대가 삼밭이어서 순우리말인 마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두 가지가 있다.

수락산 水落山
수락산이 바위산이기 때문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곧바로 흘러내려 수락산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도봉산 道蜂山
도봉산의 이름을 따 도봉산역으로 명명

장암 長岩
장암동은 원래 둔야면 장자리(長者理), 오암리(烏岩理), 동막리(東幕理)를 1914년에 시둔면 장암리로 부르다가 1964년에 장암동으로 개칭되면서 오늘날까지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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