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차 브랜드와 명차를 만든 회사의 연혁좀 가르쳐주세여

세계 명차 브랜드와 명차를 만든 회사의 연혁좀 가르쳐주세여

작성일 2004.12.0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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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차 브랜드와 명차를 만든 회사의 연혁좀 가르쳐주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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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국가 : 독일
설립연도 : 1910
설립자 :
Homepage : http://www.audi.com
   
 
 
 
<!-- 레이 아웃 -->아우토 우니온의 탄생

1930년대에 들어서자 유럽전역에 걸친 경제공황의 여파로 가내 수공업 형태로 운영되던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하나 둘 씩 문을 닫았고 그나마 견실한 반더러(Wanderer), 호르히(Horch) 등과 같은 중소형 메이커들은 히틀러의 국민차 생산계획이 발표되자 독자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생존의 길을 찾아 서로 뭉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4개의 회사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DKW), 아우디(Audi)는 1932년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 아우토 우니온이 현 아우디의 모체이다.

반더러와 호르히社는 19C 말부터 자전거와 모터사이클로 일찍이 탄탄한 기반을 닦았던 회사였고 아우디는 호르히社를 설립한 어거스트 호르히(August Horch)가 회사를 떠나 새롭게 연 자동차회사였다. 자신의 이름을 다시 회사 이름으로 쓸 수 없게 되자 독일어로 호르히와 같은 '듣다'라는 뜻을 갖은 라틴어 '아우디(Audi)'를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

데카베(DKW)는 20C 초반부터 금속제품을 생산하다 1914년부터 증기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일어로 증기차(Dampf Kraft Wagen)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앞글자를 따 회사 이름을 짓고 이후 모터사이클을 생산, 1920년대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다.

9개월 간의 밀고 끌어당기는 팽팽한 협의를 거쳐 탄생한 아우토 우니온은 그제서야 BMW, 오펠, 다임러 벤츠와 같은 대형 자동차 메이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합병 후, DKW는 기존의 모터사이클과 2행정 엔진을 장착한 최저가의 자동차를 생산했고 반더러는 중상급의 11개 모델을, 아우디는 기술적인 지원을, 호르히는 럭셔리 자동차를 생산해 모든 라인업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곧 2차대전이 발발했고 대분분의 자동차 메이커가 그러했듯 아우토 우니온 또한 전쟁을 위한 군수용품 생산기지로 전락했다. 또한 군수용품의 주된 재료였던 철이 절대적으로 모자랐기에 일반인을 위한 자동차 생산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DKW만이 당시 자동차 보디를 합판으로 제작했기에 일반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으나, 그것도 극히 소량이었다.

전쟁 중, 동독 진영에 있었던 아우토 우니온의 제조공장들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이후 동독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는 IFA(Industrial Collective for Automobile)에 의해 통합되어 DKW의 전쟁 전 모델인 F8을 생산했다.

전쟁이 종식된 후, 아우토 우니온의 전 경영자들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서독 잉골스타트(Ingolstadt)에 세우고 예전의 이름과 권리를 되찾고자 애쓴 결과, 1949년부터 바바리안 지방과 마샬 플랜에 의한 정부 보조로 뒤셀도르프에 공장을 재건하고 정식으로 아우토 우니온의 재설립을 선언했다. 다음해인 1950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DKW의 이름으로 새 모델들을 선보이면서 재도약을 꿈꾸었으나, 열악한 자금사정과 경영악화로 1958년부터 다임러 벤츠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고 1965년 폭스바겐의 자본 참여와 더불어 67년에는 완전히 폭스바겐에 인수되었다. 이후, 아우토 우니온에서 생산되는 차는 앞에 아우디(Audi)를 꼭 붙이고 시리즈에 해당하는 숫자를 병기했다.

1969년 아우토 우니온에서 아우디(Audi)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로터리 엔진으로 유명한 NSU와 합병했다. 이후 책임 디자이너인 루드비히 클라우스(Ludwig Klaus)박사에 의해 개발된 아우디 100은 중상급 클래스에 도전한 아우디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 모델로 말미암아 이후 발표되는 새 모델들의 기반을 제공했다.



네바퀴 굴림의 미학 '콰트로'

아우디하면 떠오르는 네바퀴 굴림(4륜 구동)의 대명사 콰트로(quattro)는 198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선보인 아우디의 도전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아우디 80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콰트로는 상시 4륜 구동을 일반 승용차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로 말미암아 가속성과 코너링이 크게 향상 되었을 뿐 아니라 눈과 빗길에서도 안정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81년부터 참가한 WRC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었고, 1982년과 84년에는 아우디에게 우승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모델 이름으로 처음 선보였던 콰트로는 이후 네바퀴 굴림 기술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정착되어 현재까지 아우디의 모든 시리즈에 적용되고 있다.

1994년 전 모델에 걸쳐 풀모델 체인지를 실시했는데, 더불어 모델 이름도 단순한 멋이 풍기는 A4(아우디 80), A6(아우디 100), A8(V8)로 바꾸었다. 2002년 A시리즈 외 스포츠성을 강조한 S3, S6, S8 시리즈가 생산되고 있으며, 영화에 먼저 소개되어 친숙한 TT 쿠페와 로드스터, SUV인 올로드 콰트로(Allraod quattro)가 있다.

1980년에 발표된 아우디 콰트로와 1994년에 선보여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A8은 '세기의 명차 100선'에 당당히 들어 아우디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 준다.
<!-- 소개대표정보테이블 -->
    국가 : 영국
설립연도 : 1919
설립자 : 월터 오웬 벤틀리
Homepage :
   
 
 
 
<!-- 레이 아웃 -->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가 설립한 벤틀리는 영국의 '빈티지 카(vintage car: 영국적 기준으로 1919-1930년 생산된 모든 차량)' 시대를 대표하는 메이커이다.

3 리터
벤틀리는 동생 호레이스(Horace Milner Bentley)와 동업으로 1919년 벤틀리자동차회사(Bentley Motor Ltd.)를 설립했는데, 처음부터 자금이 부족하여 첫 모델 3리터(3-liter)도 2년 후인 1921년에야 선보였다. 3리터는 1924년과 1927년에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한 모델로 영국에서 마력이 아닌 배기량으로 차 이름을 붙인 것은 처음이었다. 총 1,622대가 생산된 3리터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붙인 배지(badge) 색에 따라 이름이 달랐는데, 스피드 모델은 빨간색으로 'Red Label', 수퍼 스포츠 모델은 초록색으로 'Green Label', 기타 파란색은 'Blue Label'이라 불렸다.

스피드 식스
3리터 이후 1925년에 선보여 1929년과 1930년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한 6.5리터와 1928년에 우승한 4.5리터(1927-1931) 등을 발표했다. 4.5리터 중에서 수퍼차저가 장착된 Blower 4.5가 50대 정도 생산되었는데, 1928년 르망 경주 우승에 이어 1929년에도 우승을 목표로 했으나, 6.5리터 스포츠 버전인 스피드 식스(Speed Six)가 우승을 차지했다. 원래 벤틀리는 수퍼차저가 차의 디자인을 변형시킨다는 이유로 굉장히 싫어했는데, 당시 회장이었던 바나토의 강력한 주장으로 제작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4.5리터는 수퍼차저 장착으로 110hp에서 240hp으로 출력이 증가했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계속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온데다 1920년대 말 경제공황이 닥치자 그동안 자금을 공급하던 바나토마저 1931년 자금 공급을 중단하며 회사에서 손을 뗐다. 거의 파산에 이른 벤틀리는 결국 1931년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었다. 이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와 엔진과 섀시를 공유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스타일마저 거의 흡사하게 되었다. 1933년 인수 이후 처음 발표된 3.5리터는 롤스로이스의 20/25 HP의 엔진을 변형해 탑재했고, 롤스로이스의 전통대로 섀시 형태로 판매되었다.

그 외에도 벤틀리의 Mk VI는 롤스로이스 실버 도운(Siver Dawn)과, 벤틀리 S 시리즈(S-Series)는 롤스로이스 실버 클라우드(Silver Cloud)와, 벤틀리 T 시리즈(T-Series)는 롤스로이스 실버 섀도우(Silver Shadow)와, 벤틀리 멀산느(Mulsanne)는 롤스로이스 실버 스피리트(Silver Spirit)와 각각 엔진을 공유하며 상응하는 모델로 출시되었다.

그 중 S 시리즈는 1955년부터 1965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1959년 알루미늄 V8 엔진을 새로 얹으면서 SII로, 1962년 4개 헤드램프 노즈 스타일에 출력이 220마력으로 증가되면서 SIII로 발전했다. S 시리즈는 벤틀리 중 처음으로 파워 스티어링과 에어 컨디셔닝이 등장한 모델이고, 약 7,500대 정도 생산되었다.

T 시리즈
또한 1965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된 T 시리즈는 기술적인 면에서 의미있는 모델이다. 이 시기에 롤스로이스에서는 스틸 모노코크, 앞·뒤 독립 서스펜션, 디스크 브레이크를 새로이 선보였는데, 이에 따라 벤틀리도 T 시리즈부터 이러한 사양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1920-30년대 스포츠성이 강조된 벤틀리의 성격과는 다르게 좀더 편안한 승차감을 갖추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구별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T 시리즈 중에서 제임스 영(James Young)이 코치빌드한 2도어 설룬과 뮐리너 파크워드(MPW)가 코치빌드한 2도어 쿠페와 컨버터블은 1971년부터 코니시(Corniche) 라고 재명명되었다.

한편 1980년 이후 롤스로이스는 벤틀리에게 독립적인 성격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는데,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판매 비율을 살펴 보면 1986년에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6:4였다가 1991년에 5:5, 몇 년이 지난 후에는 4:6이 되었다. '벤틀리의 부활(A Bentley Revival)'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분위기 이후 출시된 첫 모델이 '멀산느(Mulsanne:1980-1998)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컨티넨탈 R(Continental R), 컨티넨탈 T(Continental T) 등이 선보였다.

1998년은 벤틀리에게 다시 한번 중요한 해라고 할 수 있는데, 폴크스바겐이 BMW와의 경쟁에서 이겨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인수하게 되었다. 또한 벤틀리의 가장 최근 모델인 아니지(Arnage)가 4,398cc BMW V8 엔진을 얹고 처음 선보였는데, BMW V12 엔진을 얹은 롤스로이스 실버 세라프(Silver Seraph)에 상응하는 모델이었다.

실버 세라프와 아니지 생산은 BMW가 실버 세라프에게는 2002년까지, 아니지에게는 단종 때까지 엔진을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BMW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다시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문제이다.

벤틀리는 1919년 설립 이래 영국 빈티지카의 대표 주자로, 그리고 롤스로이스에 인수된 이후에는 롤스로이스와의 엔진 공유 모델로, 1980년 이후에는 다시 롤스로이스 모사품이 아닌 벤틀리만의 독립적 모델로, 1998년 이후에는 폴크스바겐과 BMW의 상관관계 속에서 많은 부침을 이겨내고 꾸준히 그 이름을 지켜오고 있다.

 

<!-- 소개대표정보테이블 -->
    국가 : 독일
설립연도 : 1928
설립자 :
Homepage : http://www.bmw.com
   
 
 
 
<!-- 레이 아웃 -->호사성(luxury)과 역동성(sport)의 조화는 오랜 기간 동안 고급 자동차 제작사들의 지상 과제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확연한 성격차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두 시장을 아우르는 럭셔리 스포트 시장은 두 시장의 단순 교집합이 아닌 소비자들의 성능과 호사성에 대한 양립하며 갈등하는 욕구을 채워줄 수 있는 거대한 폭발성을 지닌 무한한 시장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두 가지 성격을 한 차종에 구현해 낸다는 것은 메이커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영역에서 성공적인 회사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 독일의 BMW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대표적인 제작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내놓았던 대표적인 차들은 고급 세단으로서도 손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성능 또한 출중해서 스포츠카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망을 모자람 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19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서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던 두 회사의 합병으로 Bayerische Flugzeugwerke AG(Bavarian Aeroplane Works 혹은 BFW)가 출발했고, 1917년에는 Rapp Motorenwerke GmbH가 Bayerische Motoren Werke 이름을 바꾸며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BMW 트레이드마크를 등록하였다. 독일은 1차 대전에서 패전했고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항공기 엔진 생산을 금지당했다. 독일 항공 산업은 좌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1922년 BMW사는 BFW사를 흡수합병하며 BFW 공장 부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BMW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생산품목은 Bayern Motor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45/60 엔진(8리터 직렬 4기통, 모터 보트, 트럭, 트랙터 등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됨)과 Bayern-Kleinmotor(바바리안 미니 엔진)으로 불린 M 2 B 15 엔진 (공랭식 수평대향 2기통 494cc, 6.5 마력, 모터사이클, 소형차 등에 쓰임)을 꼽는다.

1923년, 더블 튜브 프레임에 수평대향 엔진을 얹고 샤프트 드라이브를 적용한 모터사이클 BMW R 32가 베를린과 파리 모터쇼에서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다. 더블 튜브 프레임, 수평대향 엔진과 샤프트 드라이브는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BMW 모터사이클의 특징이자 전통이다.

자동차 전문제작사로 출범하지 않았던 BMW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뛰어든 것은 1928년의 일이다. Dixi로도 불리며 영국의 Austin Seven을 라이센스 생산하던 업체인 Eisenacher Fahrzeugfabrik (Eisenacher Automobile Factory)를 인수하여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존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차를 생산함으로써 위험성을 줄인다는 정책적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다. 초기에는 3/15 PS 모델만 생산하다가 1929년 중반 핸들을 왼쪽으로 옯기며 Dixi 3/15 PS DA1으로 명명해 내놓았고 같은해 BMW 3/15 PS DA2 생산이 이어졌다. (DA : Dixi Austin, Deutsche Ausfuhrung= German construction)

1929년 BMW Wartburg (DA 3), 1931년 DA4 살롱(최초의 4인승) 이 연이어 선보이며 소형차 시장의 강자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그들이 1932년 봄까지 생산한 Dixi 및 BMW 자동차는 25,356 대에 이르렀다. BMW사가 1929년 대공황의 그림자를 비껴간 비결은 작고 효율적인 차의 생산이라는 정책에 있었다.

1932년 BMW는 Austin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자체 디자인 차량으로 상위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3/20PS(1932)였다. 이듬해인 1933년 303이 등장했다. 303에는 한 쌍의 신장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직렬 6기통 엔진이 사용되었고 이는 BMW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1936년 소개된 BMW 최초의 4도어 살롱이었던 326은 초기 3 시리즈의 베스트셀링카로 기록되었다. 1937년에는 전전 BMW의 최고 스포츠카로 꼽히는 328이 소개되었다. 328은 1930년대의 2리터급 차로는 괄목할만한 속도인 190 km/h의 성능을 뽐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BMW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잿더미가 된 공장 뿐이었다. 그들은 다시 시작했다. 고급차로 기조로 경차도 만들어 팔아 자금을 돌리겠다는 전략이 수립되었다. 501, 502/2.6, 503, 507, 320CS 등은 1952년부터 1962년 사이에 나왔던 차들이다. 502부터는 V8 엔진을 얹은 고성능 모델들로 특히 507은 스타일과 성능면에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시대를 앞서는 차였다. 하지만 이 모델들의 높은 가격은 당시의 경제.시장 상황과는 괴리된 것이었다. BMW는 잘못된 정책 결정의 쓰라림을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세타의 차를 라이센싱하여 생산했던 모토쿠페(Motocoupe)와 BMW 600, BMW 700 등이 있어 그들은 재기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1960년대 들어 BMW는 잘 나가던 1930년대로의 회귀로 방향을 틀었다. BMW 1500, 1600-2 를 1962년과 67년 각각 내놓았다. 1968년에는 2500, 2800, 2800CS 등을 내놓으며 직렬 6기통의 전통을 부활시켰다. 1972년 등장한 520은 5 시리즈의 신기원을 열어준 효자 모델이었다. 같은해 설립된 BMW Motorsport GmbH에서 선보인 2002 Turbo는 터보의 시대를 선언하며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1976년에는 630CS, 630Csi가 제네바에서 데뷔했다. 1977년에는 733i, 745i 등 럭셔리의 영토를 향한 7시리즈가 등장했다. 70년대 호시절을 구가하던 BMW는 7 시리즈를 내세워 메르세데스 벤츠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다. 1978년 BMW의 모든 차종은 직렬 6기통엔진을 얹고 있었다. 가히 직렬 6기통의 전성시대였다.

198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잘나가던 BMW였지만 세대교체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이는 곧 뒤쳐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1980년 5 시리즈 제 2 세대 모델이 선보여 좋은 반을을 얻었다. 1985년에는 BMW 최초의 상시사륜구동(AWD) 모델인 325iX가 등장하기도 했다. 3시리즈와 7시리즈도 1986년 각각 제 2 세대 모델로 교체 투입되었다. 1989년에는 대형 투어링스포츠세단인 850i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장식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3,5,7 시리즈의 진화는 계속되어 모두 3 세대로의 진화를 거쳐 현재는 4 세대 모델에 이르러 있다. 엔진의 경우도 직렬 6기통에만 머물지 않고 배기량이 큰 V8, V12을 답변확정하여 파워의 증강이라는 명제에도 순응했다.

위에서 약간 언급한 BMW GmbH(1972년 설립)에서는 성능이 넘치는 차들을 꾸준히 선보여 스포츠카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77년 M1에서 시작된 M 계열의 차들은 계속된 성능 보강과 스타일링의 개선으로 M3, M5로 계보를 잇고 있다. 1989년 Z1에서 비롯된 로드스터 계보는 Z3와 Z8이 잇고 있다. 이중 Z8은 50년대 초반 BMW에게 비운을 안겨주었던 507을 계승하는 고성능 로드스터로 경이로운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스타일링 면에서도 507의 자태가 여전히 남아있다.

    국가 : 미국
설립연도 : 1902
설립자 : 헨리 마틴 리랜드
Homepage : http://www.cadillac.com
   
 
 
 
<!-- 레이 아웃 -->1701년 디트로이트를 발견한 프랑스인 모스 캐딜락(Mothe Cadillac, 1656-1730) 장군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은 캐딜락은 롤스로이스, 메르세데스벤츠와 더불어 세계 3대 고급차 메이커 중 하나로 왕관과 방패 모양의 엠블럼은 캐딜락 가문의 문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1902년 헨리 마틴 리랜드(Henry Martin Leland)가 디트로이트에 "Cadillac Automobile Company"라는 간판을 내걸고 캐딜락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첫 차 모델A(Model A)를 내놓으면서 캐딜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인 모델A에 대한 반응은 성공적이었으며, 연이어 모델B, C, D가 발표되고 1904년 리랜드 팔코너(Leland & Falconer)社를 인수하여 회사명을 "Cadillac Motor Co."로 변경한다.

1907년에는 캐딜락이 유럽에 소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캐딜락의 딜러 프레드릭 베넷(Frederick Bennett)이 영국에서 3대의 캐딜락을 분해한 2,163개를 부품을 섞은 뒤 다시 조립한 차로 800km를 달리는 데 성공하여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 공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 주는 상인 토마스 드와 트로피(Thomas Dewar Trophy)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영예로운 수상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헨리 리랜드는 윌리엄 듀런트에게 5천6백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해 캐딜락은 GM의 디비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1912년 캐딜락 뿐 아니라 자동차 역사에 의미가 깊은 전기식 셀프스타터를 장작한 모델30(Model 30)이 소개되었다. 델코(Delco)社의 찰스 케터링(Charles Kettering)이 개발한 이 장치로 인해 캐딜락은 다시 한번 영국왕실로부터 드와 트로피를 받는다.

1915년에는 V8 엔진을 개발하여 실용화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전쟁 중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리랜드와 자동차만을 고집한 듀런트의 대립으로 결국 리랜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된다.

캐딜락의 강력한 라이벌 링컨(Lincoln)社가 등장한 1920년대에는 미국 최고의 코치빌더 중 하나인 플리트우드(Fleetwood)에게 보디를 주문하여 제작하는 일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927년에는 할리 얼(Harley Earl)이 디자인한 본격 클래식카 라 살(La Salle)을 발표한다.

캐딜락에는 "세계의 표준이 되자(Standard of the World)"라는 전통적인 슬로건이 있다. 셀프스타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1929년에는 맞물림식 기어박스(synchromesh gearbox)가 개발되었고, 1930년에는 V12, V16 엔진을 얹은 유선형 디자인을 선보였다.

2차대전이 종료된 후 20년간 캐딜락은 전성기를 누렸다. 경쟁사였던 팩커드(Packard)가 사라지고 링컨이 침체기를 맞은데다가 백악관에서 캐달락을 선호하고 헐리웃 스타들이 캐딜락 컨버터블을 소장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게 되었다.

1948년 시리즈 60 스페셜(Series 60 Special)에 비행기 꼬리 날개를 닮은 화려한 테일핀(tail-fin) 디자인을 처음으로 소개하였는데, 이 테일핀은 1959년형 엘도라도 세빌(Eldorado Seville)에 이르러 극치에 달한다. 한편 1953년에는 엘도라도 컨버터블(Eldorado Convertible)을 개발하여 7,750 달러에 팔았으며, 1957년에는 엘도라도 브로엄(Eldorado Brougham)을 400대만 만들어 13,074 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1969년에는 코드 810(Cord 810) 이후 미국차로는 처음으로 전륜구동 방식을 답변확정한 플리트우드 엘도라도 쿠페(Fleetwood Eldorado Coupe)를 발표했지만, 1972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대형차가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캐딜락은 침체기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1975년 소형 세빌(Seville) 4도어 세단을 발표하고, 1980년에는 디젤엔진을 장착한 뉴 세빌(New Seville)을 발표한다. 그리고 1981년에는 연료절감형 V8-6-4엔진(6,030cc)을 개발해 시마론(Cimarron)과 세빌(Seville)을 제외한 전차종에 장착하지만 별 인기가 없어 플리트우드 리무진(Fleetwood Limousine)에만 남기고 모두 교체된다.

1987년에는 피닌파리나(Pininfarina)가 디자인한 2인승 컨버터블 앨란트(Allante)를 소개하고, 1992년에는 엘도라도와 세빌을 재디자인해 부활시켰는데 세빌은 발표되던 해에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경사가 있었다.

세계의 표준이 된다는 캐딜락의 목표는 계속 이어졌다. 엔진, 트랜스미션, 조향장치,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 5대 핵심장치를 유기적으로 통합, 제어해 주행성능과 안전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갖춘 32밸브 노스스타(Northstar) 엔진과 코너링을 하거나 미끄러지는 상황에서 프론트 휠의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작동시켜 차체를 안정시키는 스태빌리트랙(StabiliTrack) 시스템을 개발하여 기술의 캐딜락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1998년에는 4륜구동 에스컬레이드(Escalade)를 발표하고 2001년 현재 세빌, 드빌, 엘도라도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199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선보인 컨셉트카 이보크(Evoq)를 2002년 경 켄터키 공장에서 양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가 : 독일
설립연도 : 1886
설립자 : 고틀리프 다임러/칼 벤츠
Homepage : http://www.mercedes-benz.com
   
 
 
 
<!-- 레이 아웃 -->'벤츠=최고급차' 라는 등식이 어색치 않을 만큼 벤츠는 일상의 언어가 되어 있다. 수많은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인 '벤츠'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잡게 되기까지는 끊임 없는 도전과 위기를 철두철미한 장인정신과 '안전'이라는 철학으로 돌파해 온 그들의 지난한 역사가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현재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의 승용차 브랜드 중의 하나이다. 1998년,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 벤츠사와 미국 빅 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사의 합병으로 세계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사가 태어났다. 다임러 벤츠사는 1926년 독일의 다임러사와 벤츠사가 합병하여 생긴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이다.

다임러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834년3월 17일 독일의 숀도르프에서 태어나 1900년 3월 6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동차와 함께하며 세계 자동차 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86년 4륜 마차보디에 1기통 462cc엔진을 얹은 Motorwagen을 만들었고 1890년에는 슈트트가르트 인근에 DMG(Daimer Motren Gesellschaft)를 설립했다. 그의 주변에는 빌헬름 마이바흐라는 출중한 엔지니어링 디자이너가 있었으며 마이바흐 또한 다임러 벤츠 회사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칼 벤츠
칼 벤츠 (Karl Benz)는 1844년 11월 23일 독일의 칼스루헤에서 태어나 1929년 4월 4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동차를 벗삼으며 세계 자동차사에 일획을 그었다. 칼 벤츠는 1886년 3륜차에 1기통 엔진을 얹은 Patent Motorwagen으로 독일제국의 특허를 받았으며 이 차는 휘발유 엔진을 얹은 최초의 자동차로 회자되기도 한다. 칼 벤츠는 1883년 만하임 인근에 Benz & Cie.를 설립했다

다임러와 벤츠 두사람은 100km쯤 떨어진 곳에 살며 자동차에 관한 일을 했지만 생전에 서로 마주친 적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메르세데스(10세)
1900년 에밀 옐리넥은 다임러의 이사로 선출된다.에밀은 오스트로 헝가리 제국의 장군으로 니스의 영사(무관)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매우 부자인 자동차광으로 주위의 부자 친구들에게 다임러 차를 팔며 비공식 딜러 역할을 했다. 그가 이사가 되어 회사에 제안한 첫번째 자동차는 매우 뛰어난 진정한 의미의 퍼포먼스 카였다. 이에 마이바흐(이미 다임러는 죽었음) 가 내놓은 차량이 4기통 5.9리터에 35마력을 내는 차이다. 옐리넥은 이 차에 자신이 너무도 귀여워 하는 막내딸의 이름을 붙였다. '메르세데스' 이것이 메르세데스 자동차의 시초이다. 이후 옐리넥은 다임러 차의 몇몇 국가에 대한 판매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차의 이름에 메르세데스를 쓸 것을 주장하여 별 이의 없이 관철되었다.

1926년, 암울했던 독일의 경제 상황으로 인해 독일 자동차 업계에는 거센 합병과 통합의 바람이 일었다. 이때 다임러와 벤츠는 합병을 통한 살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렇게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합병은 성공적이었고, 1930년대는 그들에게 황금기로 다가 왔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그들에겐 희망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듯 했지만 다임러 벤츠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으며 오히려 최고급차의 대명사로 튼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승용, 상용 두 개부문 나뉘어 있으며 승용 부문에서는A, C, E, S, G, M, SL, SLK, CL, CLK 등 각 클래스 별로 다양한 형태의 고품격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엠블럼은 언제부터 쓰였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

다임러

(가) 1909년 다임러는 꼭지가 세 개인 별모양의 엠블럼을 등록했다. 이 별 모양은 고틀리프 다임러의 아들인 아돌프와 폴의 제안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나)
1916년에는 기존의 별 모양에 MERCEDES 로고와 네 개의 점이 들어간 원 테를 두른 엠블럼을 등록했다.

벤츠

(다)
1909년 칼 벤츠는 BENZ 로고를 월계관이 두르고 있는 형상의 엠블럼을 등록했다.

다임러 벤츠

(라)
1926년 다임러와 벤츠가 합병되며 두 회사의 엠블럼을 활용한 새로운 엠블럼이 등록되었다. 이 엠블럼은 오늘날까지도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의 배지로 쓰이고 있다.

(마)
1933년 단순한 원 안에 세 개의 꼭지를 지닌 별이 들어있는 엠블럼이 추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회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후드 오너먼트로 사용된다.
    국가 : 영국
설립연도 : 1906
설립자 : 찰스 롤스, 헨리 로이스
Homepage : http://www.rollsroyce.com
   
 
 
 
<!-- 레이 아웃 -->헨리 로이스(Frederick Henry Royce)는 가난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엔지니어가 되었고, 찰스 롤스(Charles Stewart Rolls)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인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레이서 겸 자동차 판매업자가 되었다.

1904년 롤스는 판매할 만한 괜찮은 차를 찾고 있던 중, 2기통 10마력 엔진을 장착한 로이스의 차를 테스트하게 되었는데, 로이스의 차가 너무도 만족스러워 로이스 자동차 판매만 전담하기로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1906년 롤스로이스社(Rolls-Royce Ltd.)를 설립하고, 훗날 세계 최고의 차로 인정받게 되는 첫 차 실버고스트(Silver Ghost, 1906-1925)를 출시한다. 실버고스트로 롤스로이스의 명성이 한창 높아가던 1910년 모험심이 많았던 롤스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이후 로이스도 누적된 피로와 롤스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요양하면서 디자인 작업을 병행한다. 한편, 롤스로이스는 실버고스트 이후 선보인 20(Twenty, 1922-1929), 팬텀Ⅰ(PhantomⅠ, 1925-1929), 팬텀Ⅱ(Phantom Ⅱ, 1925-1936) 등으로 최고급차로서의 전통을 이어갔다.

1931년 롤스로이스는 벤틀리(Bentley Motors Ltd.)를 인수하였다. 이후 1949년 섀시 뿐 아니라 차체까지 모두 롤스로이스에서 생산한 최초의 차 실버도운(Silver Dawn)이 제작됐고, 1965년에는 롤스로이스의 첫 모노코크 차인 실버섀도우(Silver Shadow)가 제작되었다.

롤스로이스는 전세계 왕족과 부호들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최고급차의 대명사로 시속 125km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전자시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숙하다고 하여 차 이름에 전통적으로 '귀신'이나 '유령'이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주문생산을 원칙으로 숙련된 기술자들의 수작업으로 모든 공정이 이루어졌으며, 차 1대가 출시될 때마다 제작 과정을 기록한 책이 1권씩 함께 나왔다고 한다. 또한 롤스로이스는 돈으로만 살 수 있는 차도 아니었다. 아이젠하워가 4성 장군 시절 롤스로이스를 한대 구입하려 했으나,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회사측 반응으로 구입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완벽한 품질과 함께 명차로서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뿐 아니라 항공기 엔진 제작에도 오랫동안 관여하여 콩코드기에 장착되었던 이글 엔진(Eagle engine)을 생산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의 록히드항공사(Lockheed Aircraft Corporation)와 엔진 제작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개발 비용을 너무 과소평가하여 1971년 파산하였다. 파산 직후 국영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롤스로이스社(Rolls-Royce Limited)로 운영되다가, 1973년 민영 롤스로이스 자동차(Rolls-Royce Motor Holdings Limited)가 분리되었고, 1980년 자동차 제작사인 빅커즈(Vickers Ltd.)에 합병되었다. 한편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롤스로이스(Rolls-Royce Limited)도 1987년 민영화되었다. 빅커즈에 편입되었던 롤스로이스 자동차 부문은 1998년 다시 독일의 폴크스바겐(Volkswagen)에 인수되어 현재까지 롤스로이스의 이름으로 자동차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 : 일본
설립연도 : 1937
설립자 : 도요다 키이치로(豊田喜一郞)
Homepage : http://www.toyota.com/index3.html
   
 
 
 
<!-- 레이 아웃 -->2001년 1월 렉서스모델을 필두로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한 토요타는 일본 1위, 세계 3위의 자동차 메이커로서 내적으로는 위기의식 및 낭비제거 경영과 대외적으로는 자동차 박물관 및 교통안전 교육 등 자동차와 관련한 다양한 공익 문화사업 전개를 통한 이미지 차별화 전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26년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가 설립한 직물기계 공장인 토요다자동직기제작소의 자동차부로 출발해, 1936년 토요타 최초의 자동차인 '도요다 AA형'을 출시하고 이듬해 토요다자동차공업을 발족했다가 발음상 명료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름을 토요타로 바꾸었다.

AA는 사끼치의 아들로 토요타자동차회사를 창립한 도요다 키이치로(豊田喜一郞)가 '일본인의 머리와 손으로 일본의 대중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만든 차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키이치로는 현 토요타市에 대형 공장을 세워 1938년부터 42년까지 시보레 트럭을 조립, 생산했으며, 2차대전 때에는 군용 트럭을 만들며 성장했으나, 1945년 전쟁 패배로 큰 타격을 입어 1950년 도산위기를 맞았다. 결국 파업으로 키이치로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자동차 제작과 판매가 분리된 별도의 회사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토요타가 이같은 어려움을 딛고 단번에 재기에 성공한 계기는 '한국전쟁(6.25)'이었다. 미국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 트럭을 조달하기로 한 것이다. 키이치로가 사장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2주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토요타는 1955년부터 토요펫 크라운과 퍼블리카, 코로나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자동차들의 성공과 도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인 'JIT 시스템' 정착, 생산혁신과 경영 안정성이 바탕되어 60년대 일본 모터리제이션의 선두주자로 성장했다.

1970년대 초반 석유 파동으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소형차가 인기를 끌게 되자 66년부터 생산된 코롤라가 각종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좋은 소형차로 평가되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히노와 다이하츠를 계열사로 두는 등 오늘날과 같은 초우량 기업으로의 기초를 다졌다.

1980년대에는 분리 운영해 오던 판매 회사를 합병해 현재의 '토요타 자동차 주식회사'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1983년 발표한 캄리가 1988년부터는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되면서 93년 미국 최고의 차로 선정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렉서스(Lexus)가 고급차 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며 벤츠나 BMW에 버금가는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더 이상 '값싼 일본차'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부호인 빌게이츠가 즐겨타는 차', '보편적인 세계화 시스템이 만들어낸 걸작' 등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인이 사랑하는 자동차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만든 회사의 연혁좀 가르쳐주세여

세계 명차 브랜드와 명차를 만든 회사의 연혁좀 가르쳐주세여 ^^* 국가 : 독일 설립연도 : 1910 설립자 : Homepage : http://www.audi.com 아우토 우니온의 탄생 1930년대에...

세계 명차들의 국적을 알고싶어요_+

... 그리고 적어도 세계 명차들의 국적은 알아... 명차하면 스포츠카를 뺄수 없는데요, 많은 브랜드가... 차들을 만든 회사죠. 지금은 F460 Modena와 F575 Maranello가 주...

세계명차에 관한 질문입니당 ~ !!! ^^

... 영국의 회사로서 럭셔리카,귀족의 카라고도 칭송받기도 합니다. BMW-아시죠?BMW,, 세계적인 명차중에 하나죠, L모양 LEXUS-LEXUS는 TOYOTA의 럭셔리브랜드입니다. 미국...

세계명차 소개 부탁드립니다!!!

... 님들께서도 가르쳐 주실때 자신이 좋아하는 차량에... Cadillac: 캐딜락의 미국의 고급 브랜드를 대표하는 차로... 비틀이라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만든 메이커....

M.TOURBILLON시계 좀 가르쳐 주세여

M.TOURBILLON시계 좀 가르쳐 주세여 시계안에M.TOURBILLON 가 써있구 CHRONO-MATIC이라구... Eberhard 는 1887년에 스위스에서 세워진 회사로 창립자의 성을 따서 만든 브랜드입니...

세계자동차 튜닝회사좀 알려주세요

... 영국의 회사로서 럭셔리카,귀족의 카라고도 칭송받기도 합니다. BMW-아시죠?BMW,, 세계적인 명차중에 하나죠, L모양 LEXUS-LEXUS는 TOYOTA의 럭셔리브랜드입니다. 미국, 한국...

은행에서 하는 일 좀 가르쳐 주세여...

이거 내일까지 숙제 인데 빨리 좀 가르쳐 주세여... 제발여... 한국은행은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하여 만든 화폐를... 또한 한국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기업사명...연혁...좀 가르쳐 주세요.

루비튜스데이의 연혁은 많이 나와있는데. 기업사명이라든지. 설립해서. 지금 매출액은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좀 가르쳐 주세요...;; Sandy Beall 이 테네시 대학...

자세한내용의 출처좀가르쳐주세여..

... 홈페이지좀 가르쳐주세여 CPU의 발달과정(Intel)과... 표명되는 브랜드 파워, 그리고 강력한 마케팅력을... 회사이다. 1996년 매출 20억 달러를 기록하고 전세계적으로...

한 행동, 인물의 가치관좀 가르쳐주세여~~

... 가치관좀 가르쳐주세여~~!! 급해여~~~!! 안중근 [安重根...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