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모든 건국 신화에 대해 알려주세요(내공있음)

우리 나라의 모든 건국 신화에 대해 알려주세요(내공있음)

작성일 2003.04.10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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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모두 건국 신화가 7개가 있다고 하던데
어떤 것들이 있고 내용은 뭔지 알려주세요
(내공 20걸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지층 #우리 나라의 국토 #우리 나라의 행정 구역 #우리 나라의 장애는 16개로 구분된다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 #우리 나라의 역사적 인물 #우리 나라의 계절별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 덩어리의 성질 #우리 나라의 문화 #우리 나라의 화산 #우리 나라의 음악 문화유산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건국신화가 7개라고 단정을 지으셨는데, 사실 어떤 기준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개국과 관련된 신화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고조선의 건국신화, 즉 '단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제왕운기의 기록이 대표적인데, 주로 우리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이른다―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계셔,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人間世上)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그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佰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 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桓雄)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일렀다.
단군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 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아마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弓)―혹은 방자(方字)로도 되어 있다.―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 오백 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천9백8세였다.

물론 '제왕운기'에는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단군의 탄생 과정이 '환인의 아들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을 이룬 뒤 혼인하여 낳음'으로 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없는 고조선의 판역(영토)를 '신라, 고구려,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맥' 등으로 명확히 적고 있습니다.


2. 다음은 가야의 건국신화인 '수로왕 신화'입니다. 내용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이는 신라 경주 석씨의 시조가 되는 석탈해에 대한 이야기와, 허왕후 신화가 곁들여 있습니다. 굉장히 내용이 길지만 일단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낙동강은 태초로부터 이 고장의 젖줄 노릇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지만 나라의 이름도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다만 이곳에 몰려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아홉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마을마다 간(干)이라고 하는 추장이 있었다. 그들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귀간 등 아홉 사람인데 이들을 통틀어 구간(九干)이라고 했다. 이들은 추장으로서 각기 자기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솔했다.
아홉 마을에 사는 사람은 모두 7만 5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그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밥을 먹는 정도의 생활을 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매년 3월 첫 뱀의 날을 계욕일이라고 해서 계단을 만들어 놓고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홉 마을의 어른과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을 비는 제사였다. 아홉 마을이 힘을 합해서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성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음식을 정성들여 차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제사가 끝나면 물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마음껏 음식을 먹고 마시고 춤과 노래로 즐겼다.
이 날도 아홉 마을 추장들은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한창 제사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화창한 날씨로 변하였다. 구간들은 어리둥절한 채 서서 구지봉을 바라보았다. 구지봉에는 안개 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이 때,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 삼백 명의 사람들은 구지봉으로 달려갔다. 조금 전에 들리던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데 그것은 사람의 소리 같이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곳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우람한 목소리였다.
"우리들이 있다."
구간들이 대답했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구지봉이다."
"그러면 잘 듣거라. 나는 황천(皇天)의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이렇게 노래하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
이 노래를 외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되어 더욱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니라."
구간들은 이 말을 듣고 무리들과 함께 모두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런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하늘 한 가운데에서 자주빛 줄이 구지봉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들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줄끝을 찾아보았더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이 싸여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금합을 열어 보았다. 아, 그랬더니 금합 속에는 해같이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들어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나 또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일이어서 기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알들을 향해 수없이 절을 했다.
조금 뒤에 그들은 알을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가져갔다. 아도간은 금합을 아도간의 집 탑(榻- 깔거나 눕는 좁고 기다란 의자) 위에 모셔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서 왜 여섯 알을 보냈는지 그 뜻을 몰랐다. 그들은 그저 뭔가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기뻐할 따름이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아도간은 금합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금합을 열었다. 그랬더니 여섯 개의 황금알은 모두 사내아이로 변해 있지 않은가. 그들은 모두 용모가 빼어나게 잘 생겼다. 아도간은 그들을 상에 앉히고 모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사내아이들은 무럭무럭 커갔다. 십여 일이 지나자 그들은 키가 9척이나 되고 얼굴은 용 같았으며, 눈썹은 여덟 가지 색으로 되었는데 눈동자는 둘씩이나 되었다. 그들은 금빛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金)이라 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사내아이를 수로(首露)라고 불렀다.
구간들은 그들을 임금으로 대하여 무질서했던 이곳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김수로를 첫 번째 임금으로 모시었다. 나라는 대가야 또는 대가락이라 하였는데 이는 6가야 중에 하나였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는데 다섯 가야는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였다.
대가락을 이룬 여섯 가야국은 동쪽으로는 황산강, 서쪽으로는 창해, 서북쪽으로는 지리산, 동북쪽으로는 가야산에 이르렀다.
수로왕은 왕위에 오르자 임시로 궁궐을 짓고 거처했다. 임시로 지은 궁궐은 말할 수 없이 검박했다. 풀로 만든 지붕은 이엉을 자르지 않았고, 흙으로 만든 계단은 석 자를 넘지 못하게 하였다.
수로왕이 즉위한 이듬해 봄에 수로왕은 신하들과 함께 새 도읍지를 정하기 위하여 신답평으로 갔다. 수로왕은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여뀌 잎사귀처럼 좁다랗고 길기는 하나 산천이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16나한 같은 신물이 늘 여기서 지켜줄 것이오.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줄기가 우뚝 솟았는가 하면 거기서 시작하여 다시 세 번, 그리고 이곳에 이르기까지 다시 세 번, 이리하여 모두 일곱 번을 솟아오른 형상이 마치 칠성(七聖)이 살 만한 곳이오. 이곳을 개척하여 나라의 터전을 열어놓으면 마침내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오."
수로왕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모두 왕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도성을 만들 계획이 마련되었는데, 외성의 둘레가 1천5백 보였으며 그 안에 궁궐과 여러 관서의 청사와 무기고 및 창고를 건축할 터를 잡았다. 그 뒤 수로왕은 명령을 내려 새 궁궐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그 해 시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이월에 마쳤다. 수로왕은 새 궁궐로 옮겨가서 나라 일을 부지런히 보았다.
태평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용성국의 왕자 탈해가 바닷길을 따라 가락국으로 왔다. 그의 키는 석 자이고 머리통의 둘레는 한 자였다. 그는 홀연히 수로왕의 궁궐로 들어와서 소리쳤다.
"수로왕은 들으시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왔소이다."
수로왕은 뜻밖의 침입자를 대하고 위엄있게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렸다. 그런데 그대가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서 왕위에 오르겠다니 내가 줄 수 없다. 어찌 나를 따르는 백성들을 너에게 맡기겠는가."
이 말을 들은 탈해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우리 서로 나와서 재주를 겨루어 승부를 정하자."
수로왕은 좋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재주를 겨루는데, 탈해는 한 마리의 매가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이것을 본 수로왕은 금새 독수리가 되어 그의 뒤를 쫓아 올라갔다. 그러자 탈해는 참새가 되었다. 수로왕은 얼른 새매가 되었다. 이게 모두 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탈해는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수로왕도 역시 자기 모양으로 돌아왔다. 기세가 등등하던 탈해는 수로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미처 대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한 것을 사과 드립니다.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쫓기되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대왕께서 살생을 싫어하신 인덕으로 압니다. 제가 외람되게 왕위를 다툰 것을 진실로 사과드립니다."
수로왕은 인자하게 웃으며 그를 용서했다. 탈해는 올 때와는 달리 풀이 죽어서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떠났다. 수로왕은 탈해가 이곳에 머물러 반란을 일으킬까 경계하여 수군 오백 척을 내어 탈해를 쫓았다. 탈해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신라 쪽으로 달아났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수로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은 더욱 높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백성들에게 근심이 있었다. 그것은 왕께서 훌륭한 배필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루는 구간들이 수로왕을 찾아 뵙고 아뢰었다.
"대왕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이래로 나라가 번창하고 있으나 아직 좋은 배필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아뢰옵기 외람되오나 저희들에게 있는 처녀 가운데서 좋은 처녀가 있으면 고르시어 왕비로 맞이하십시오."
수로왕이 대답했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오. 나와 짝하여 살 왕비도 하늘이 주실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구간들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쓸쓸하게 수로왕의 곁에서 물러 나왔다. 그 뒤 수로왕은 왕비가 올테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며 유천간에게 가벼운 배와 날쌘 말을 이끌고 남쪽바다에 있는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는 승점 땅에 나가 있다가 빨리 알리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아무 영문도 모르고 왕이 시키는대로 했다.
유천간은 왕명을 받고 쏜살같이 망산도로 나갔다. 바로 그때, 가락국 앞 서남쪽 바다에 붉은 돛을 단 배 한 척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북쪽으로 향해오는 것이 보였다. 망산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은 횃불을 올렸다. 배는 마구 달려와 앞을 다투어 상륙하려고 하였다. 승점에 있던 신귀간은 이 광경을 보고 대궐로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수로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리고 구간을 보내어 그들을 영접해 오게 했다. 구간들이 달려가 왕후를 모시려 했다. 그러자 왕후는 입을 열었다.
"나와 그대들은 평소에 알아온 터수가 아닌데 어찌 내가 경솔하게 따라가겠소."
유천간 등은 왕에게 돌아가 왕후의 말을 전했다. 왕은 왕후의 말이 그럴 듯하여 신하들을 데리고 대궐을 나서서 서남쪽 60보 가량 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장막을 치고 임시로 행궁을 마련하여 왕비를 기다렸다.
"지금 대왕께서 마중을 나와 계십니다."
수로왕의 신하가 달려가 말했다.
왕후는 이 말을 듣고 배를 벌포 나루에 매어놓고 뭍으로 올라 언덕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 다음 왕후는 자기가 입고 있던 비단치마를 벗어 산신에게 예물로 바쳤다. 왕후는 자기를 따라온 신보, 조광의 내외와 노예 등 20여 명을 이끌고 사신의 안내를 받아 왕이 와서 임시로 머물고 있는 행재소 가까이 갔다.
수로왕은 왕후의 행차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가 가까이 오자 행재소를 나가 그를 맞이하였다.
"멀리서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과인은 그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소."
수로왕은 그를 장막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수로왕은 왕후를 모시고 먼 길을 따라온 시종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귀한 선물을 내린 다음 편히 쉬도록 하였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수로왕은 왕후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왕후는 조용히 왕을 항하여 입을 열었다.
"저는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씨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제가 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금년 5월의 어느 날입니다. 부왕과 왕후는 지난 밤 꿈에 황천상제를 뵈었다고 하면서 상제는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준 신령스러운 사람이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저를 보내어 짝을 짓게 하라는 분부를 하였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곧 이곳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왕후는 약간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로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신령을 받고 태어나서 공주가 언젠가 이 나라에 올 것을 알았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고 권하였으나 따르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공주를 맞이했으니 더 이상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수로왕의 말을 들은 왕후도 그 기쁨을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하늘이 이루어준 결합이었으므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두 밤이 지난 뒤에 왕후를 따라 온 시종들과 배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배에 딸린 사람들에게 각각 쌀 열 섬과 베 30필을 주었다.
수로왕은 왕후를 맞이한 뒤로 더욱 나라를 잘 다스려 대가락국의 기틀을 바로 잡아나갔다. 그리하여 나라는 점점 융성해갔다.
그의 나이 157세가 되던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백성들의 슬픔은 대단했다. 그들은 구지봉 동쪽에다 장사를 지내고 왕후가 처음 와서 내린 나루터가 있는 마을을 주포촌(主浦村)이라 하고 비단 치마를 벗었던 산등성이를 능현(綾峴)이라 하였다. 그리고 붉은 돛대가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고 불렀다.


3. 다음은 고구려의 '고주몽 신화'입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신화는 부여의 '동명신화'를 모태로 한 신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高句麗)는 곧 졸본 부여(卒本扶餘)다. 혹 지금의 화주(和州)니 성주(成州)니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遼東)의 경계에 있다. 국사 고려 본기(本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시조 동명왕(東明王)은 성(姓)은 고씨(高氏)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 보다 앞서,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로 피해 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그 때 한 여자를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다가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解慕漱)를 만나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鴨祿)가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중매 없이 남을 따라간 것을 책망하여 여기에 귀양 보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금와가 이상히 여겨 유화를 집에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좇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들이나 되었다. 왕이 버려서 개,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며, 길에 버리면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지 않으니 도로 어미에게 주었다. 어미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하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 백중하였다.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금와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주몽과 같이 놀면 그 재주가 늘 따라가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 말하되,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니, 만약 일찍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좋은 말을 알아보아 조금씩 먹여 여위게 하고 나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했다. 왕은 살찐 것을 타고 여윈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의 어미가 왕의 다른 아들들이 여러 장수와 함께 주몽을 장차 해치려 함을 알고,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하니,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로 간들 안 되겠느냐? 속히 일을 꾸며라.”
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오이(烏伊)등 세 사람의 벗과 엄수(淹水)에 이르러 고하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백의 손자다. 오늘 도망하고 있는데 뒤쫓는 자가 따라오니 어찌하리오?”
하니, 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 주몽이 건너자 다리는 사라지고 쫓아오는 군사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국호(國號)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다.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으니, 그 때 나이 12세였다.


4. 다음 신라인데, 신라의 왕은 박,석,김 세성이 처음에 돌아가며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성씨에 대한 신화가 전합니다. 먼저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의 일이었다. 여섯 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둑 위에 모여 의논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 모르고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소. 하루 바삐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나라를 창건하여 도읍을 세우도록 합시다."
이에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남쪽 양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양은 마치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리로 달려가보니 자주빛의 큰 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알을 조심스럽게 쪼개 보았다.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며 임금의 위용을 드러내었다.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했는데, 이는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말이다.
혁거세왕은 맨 처음 입을 열어 스스로를 '알지거서간'이라 했다.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을 '거실한' 혹은 '거서간'이라 하게 되었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준 것을 소리높여 칭송하며, "이제 천자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있는 여식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구나" 하며 환호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정오 무렵이었다. 사량리라는 마을의 알영 우물가에 계룡 한 마리가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자태가 매우 고왔다. 그러나 오직 입술만은 닭의 부리처럼 생겨서 보기가 흉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애석해 하기도 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월성 북쪽 시내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다. 그런데 목욕을 끝내고 보니 어느 사이에 부리는 떨어지고 앵두같이 예쁜 사람의 입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시내를 부리가 빠졌다 해서 발천(撥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하늘이 내려준 신령한 두 아이를 모셔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고 그 알이 마치 바가지처럼 생겼는지라 성을 '박'이라 했다. 또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했다. 두 성인이 자라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고 알영은 왕후가 되니 기원전 57년의 일이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이라 하였는데 더러는 사라 혹은 사로라고도 했다.
또 처음 왕이 계정(鷄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에 김알지를 얻으면서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新羅)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은 후대의 일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는 어느 날, 왕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다. 이레 뒤에 왕의 유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이때 왕후도 따라 죽었다. 백성들이 유체를 수습하여 합장을 하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나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하는 수없이 다섯 부분으로 흩어진 그대로 각각 다섯 곳에 장사를 지내고 오릉, 또는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오릉에는 혁거세왕의 제향을 받는 제전인 '숭덕전'과 알영왕비의 탄생지라 하는 '알영정터'가 있다.
혁거세왕이 하늘로 올라간 뒤 그 뒤를 이어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즉위했다.


5. 신라 김씨의 시조 '알지 신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탈해왕 9년 봄이었다.
호공은 대궐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보고 자기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공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월성 너머 서쪽 마을을 지나가야 했다. 그 마을 옆에는 시림(始林)이라고 하는 숲이 있는데 나무가 어찌나 우거졌는지 대낮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호공은 밤늦게 이곳을 지날 때면 으레 하인을 데리고 다녔다.
이 날도 호공은 조금쯤 긴장한 채 시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 숲속은 조용하지만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무엇인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호공은 조금 전에 대궐에서 하던 일을 생각했다. 그 때였다. 죽은 듯이 조용하던 시림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꼬끼오, 꼭, 꼭, 꼬..."
호공이 깜짝 놀라 시림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 조금 전에 무슨 소리 듣지 못했느냐?"
호공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뒤에 따라오는 하인에게 물었다. 하인은 자기도 들었노라고 하며 시림 쪽으로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림에서 닭이 울다니 그곳에는 늘 신비한 구름과 안개가 서리어 있어서 서라벌 사람들은 상서로운 곳으로 여기고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호공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닭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힘차고 우렁차서 단번에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호공은 닭이 우는 쪽을 바라보다가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만큼 시커멓던 서림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차있고, 숲 위에는 자주빛 구름이 하늘에서 숲속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저건, 아무래도 시림에서 무엇인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구나.'
이렇게 생각한 호공은 하인을 데리고 자주빛 구름이 길게 뻗쳐 내린 숲속으로 달려갔다.
"아아!"
호공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숲속에 드리워진 그 구름 속에는 황금빛깔로 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숲속을 환하게 밝히던 그 광명은 바로 그 황금빛깔의 궤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궤가 걸려 있는 나무 아래에서 하얀 닭 한 마리가 목을 길게 빼고 우는 것이었다.
"아, 저것은 분명 하늘의 닭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 황금 빛깔의 궤에는 틀림없이 귀한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호공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호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대궐로 들어갔다. 아무리 밤이 이슥해졌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임금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탈해왕은 마침 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다. 탈해왕은 호공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호공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조금 전에 닭우는 소리를 들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탈해왕은 호공을 따라 시림으로 거동을 했다.
탈해왕은 숲속으로 길게 뻗쳐있는 자주빛 구름을 보고 나라에 경사가 난 것을 단번에 알았다.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탈해왕은 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흰 닭은 다시 한번 목을 길게 빼고 운 다음 하늘로 날아갔다.
탈해왕은 흰닭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흰닭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
"호공은 조심스럽게 저 궤를 내리도록 하시오."
호공은 하인을 시켜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궤를 내리도록 하였다. 탈해왕은 손수 궤를 열었다. 그랬더니 궤 속에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궤 안에는 잘 생긴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너무나 빼어나게 잘 생기고 씩씩해 보였다.
탈해왕은 그 아이를 두 팔로 보듬어 안았다. 그리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둥구둥구를 했다. 그러다가 탈해왕은 호공을 바라보고는,
"이건, 아무래도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내린 것 같소."
하고 말했다. 사실 탈해왕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호공이 이렇게 말하자 탈해왕은 더욱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번 일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옛 일과 비슷하므로 박혁거세가 세상에 나타나 처음으로 스스로를 가리켜 말한 이란 말에서 '알지'를 따내어 아이의 이름으로 하였다. 알지란 곧 우리나라 말에서 '아기'를 뜻하는 말이다. 알지의 성은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김(金)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자손이 바로 오늘날의 경주 김씨들이다. 그리고 금궤가 나온 시림은 숲과 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서 계림(鷄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탈해왕은 알지를 안고 대궐로 향하였다. 그러자 탈해왕의 뒤에는 새와 짐승들이 따라오면서 날고 뛰며 기뻐서 야단들이었다. 탈해왕은 알지를 정성스럽게 길렀다. 알지는 점점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혜로와 탈해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탈해왕은 마침내 좋은 날을 골라서 알지를 태자로 세우고 장차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그러나 알지는 뒷날 왕위를 유리왕의 둘째 아들 파사에게 사양하고 왕이 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그는 도량이 넓었다. 알지는 그 뒤 대보의 벼슬에 올라 다만 왕을 도왔을 뿐이다.
그 뒤, 알지의 7대 후손인 미추에 이르러 김씨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로부터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세 성이 임금을 번갈아 하였는데, 그 중에서 알지의 후손으로 왕위에 오른 이는 무려 30 여명이나 되었다.

6. 다음은 신라의 석씨 시조인 '석탈해왕 신화'입니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남쪽에 용성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항상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어서 늘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나라였다.
어느 해에 함달파가 왕위에 올랐다. 함달파는 왕위에 올라 더없이 기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자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왕자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비는 새벽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하늘을 향해 비는 것이었다.
"천지신명에게 비나이다. 저에게 왕자를 낳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그것은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왕비는 별을 보며 왕자를 낳게 해달라고 열심히 빌었다. 이렇게 7년 동안을 하루도 쉬지 않고 빌었다. 이처럼 기도한 것이 효험이 있었던지 왕비의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함달파 왕은 물론 왕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왕과 백성들이 기다리던 왕자 탄생의 날에는 모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왕비가 낳은 것은 아름다운 왕자를 낳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알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시녀들은 깜짝 놀라고 함달파 왕은 크게 노했다.
"아니 뭣이라고? 왕비가 알을 낳았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신하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함달파 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왕은 한동안 어쩔줄 모르다가 마침내 대신들을 모아놓고 좋은 방법을 의논했다.
"이 나라의 왕위를 이어갈 왕자가 없어서 왕자가 태어나길 기다렸더니 왕비의 몸에서 알이 탄생되었소. 이런 일은 고금에도 없던 일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왕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상감마마, 왕비께서 알을 낳으신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하오니 그 알을 멀리 보내는 것이 어떻까 합니다."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대신이 말했다. 다른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신하를 시켜 커다란 궤를 만들도록 했다. 그 궤 안에 알, 일곱가지 보물, 그리고 알을 모실 노예들을 넣어서 배에 실어 멀리 띄워보냈다. 왕과 왕비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궤를 실은 배는 물결치는 대로 파도에 밀려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붉은 용이 한 마리 나타나더니 배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이 배가 처음 와닿은 곳은 가락국의 앞바다였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상한 배가 들어왔다고 곧 조정에 알렸다. 가락국의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나와서 배를 맞이하려고 북을 치며 환영의 뜻을 표하고 사람을 보냈다. 그러자 그 배는 곧장 뱃머리를 돌려 계림 동쪽 아진포의 앞바다에 이르렀다.
아진포 갯가에는 할머니가 한 분 살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아진의선이라고 하는데 바닷가에 살면서 고기를 잡아 나라에 바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할머니였다. 이 날도 할머니는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캐고 있었다. 한창 조개를 캐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치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무심코 까치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까치 소리가 나는 곳은 바다 가운데에서였다.
"세상에 저처럼 이상한 일이 있을까. 까치들이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날아와서 울어대는 것일까."
할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까치들이 울어대는 바다 가운데 한 척의 배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곧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그래도 까치들은 배에서 떠나지 않고 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 위에는 큰 궤가 있지 않은가. 그 궤는 길이가 스무 자쯤 되고 폭이 열 석자쯤 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배를 끌고 바닷가로 갔다. 할머니는 궤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들었을까"
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궤를 열었다. 그러자 궤짝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눈부시게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에는 잘 생긴 사내아이가 단정하게 앉아 있고 일곱 가지 보물과 노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내아이는 키가 석 자에다 머리 둘레는 한 자나 되었다. 할머니는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사내아이는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들을 맛있는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했다. 사내아이는 한 이레가 지나자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자기는 용성국의 왕자라는 것과 그리고 가락국을 거쳐 신라에 오게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할머니는 마을의 지혜로운 노인들과 의논을 한 끝에 왕자의 이름을 알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벗어날 탈(脫)자와 궤 속에서 풀려났다는 뜻으로 '풀을 해(解)자'를 붙여서 탈해라 하였다.
탈해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는 탈해가 지팡이를 들고 두 명의 노예와 함께 토함산으로 올라갔다. 토함산 꼭대기에 올라간 탈해는 그곳에 하나의 돌무더기를 만들고 거기서 이렛동안 머물면서 서라벌 도성을 굽어보았다. 이레 뒤에 자기가 살만한 집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탈해는 며칠을 두고 서라벌을 살핀 끝에 건너편 산 아래에 있는 언덕에 눈이 머물렀다. 초승달처럼 굽은 그 언덕은 다시 없는 훌륭한 집터였다.
"옳지, 저기야말로 더없는 집터구나."
탈해는 산을 내려와 그 언덕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호공이라고 하는 신라의 재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일본 사람으로 표주박을 허리에 차고 신라에 건너와 귀화한 사람이었는데 박혁거세왕 때부터 신임을 받아 권세를 크게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탈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집을 차지하고 싶었다. 탈해는 곰곰 생각한 끝에 묘한 생각을 했다. 탈해는 사람을 시켜 밤중에 몰래 호공의 집에 숯부스러기와 숫돌을 묻게 하였다. 이튿날 탈해는 호공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호공을 만나자마자,
"대감님, 이 집은 우리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집을 저에게 돌려 주시지요."
호공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했다.
"이게 네 집이라고?"
"그렇습니다. 우리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집입니다."
"어림없는 소리 마라."
"틀립없습니다."
이렇게 내 집이라느니 아니라느니 하여 두 사람의 다툼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마침내 관청에 가서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판결을 맡은 관헌은 탈해에게 물었다.
"무엇으로 네 집인 것을 증명하느냐?"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대장장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동안 이웃 고을에 나가 있다가 돌아와보니 저 사람이 우리 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이 저의 집이라는 것을 알려면 이 집의 땅을 파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저의 조상들이 일하던 흔적이 나올 것입니다."
판결을 맡은 관헌은 탈해의 말을 듣고 곧 호공의 집안을 여기저기 파보기 시작하였다. 과연 탈해의 말대로 대장간이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집 땅 속에서 숫돌과 숯부스러기 등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음, 네 말이 맞았다. 호공은 즉시 이 아이에게 집을 돌려 주도록 하시오."
판결을 맡은 관헌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호공은 어쩔 수 없었다. 달리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호공은 마침내 자기 집을 탈해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런 소문은 신라의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남해왕은 탈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왕의 맏딸을 탈해에게 시집 보내었다. 이리하여 탈해는 왕의 사위가 되었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몹시 갈증을 느꼈다. 탈해는 백의라고 하는 사람을 시켜서 마실 물을 떠오게 하였다. 백의는 뿔로 된 잔을 들고 물을 뜨러 갔다. 백의는 잔에 가득 물을 떠오다가 목이 마른 것을 느끼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뿔로 만든 잔은 백의의 입술에 딱 붙어버리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백의는 할 수 없이 입술에 잔을 붙인 채로 탈해 앞으로 갔다. 탈해는 이것을 보고 곧 백의를 꾸짖었다.
"이놈, 떠오던 물을 함부로 마시었구나."
백의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빌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와 같이 무엄한 짓을 하지 않겠사옵니다."
백의가 이렇게 사죄하면서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하자 그제야 입술에서 잔이 떨어졌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백의는 탈해가 무서워서 감히 거짓말을 못하였다. 지금도 동악에는 한 우물이 있어 요내정(遙乃井)이라 부르는데, 이 우물이 바로 백의가 물을 긷던 우물이라고 한다.
이 무렵 남해왕이 승하하였다. 그 뒤를 이어 남해왕의 큰 아들인 유리왕자가 이을 차례였으나 유리 왕자는 탈해에게 왕위의 자리를 양보하였다. 탈해는 탈해대로 왕위는 유리 왕자가 올라야 한다고 거절을 했다. 이리하여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탈해는 이상한 제안을 했다. 그것은 예부터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이빨의 수효가 많다고 하니 이빨의 수효를 세어서 왕을 결정하자고 했다.(이사금의 뜻) 그리하여 그들은 떡을 가져다가 입으로 물어 떼어 그곳에 나타난 이빨의 수효를 보고 왕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유리 왕자가 어금니 한 개가 더 많아 먼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시호를 노례왕이라 하였다.
그뒤 노례왕이 승하하자 탈해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옛적 우리 집이었다'는 핑계로 호공의 집을 차지했다고 해서 성을 '옛 석(昔)'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더러는 까치 때문에 궤를 열게 되었다고 해서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떼어 버리고 남아있는 옛 석(昔)자로 성을 삼았다고도 한다.
탈해는 왕위에 오른지 23년만에 승하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탈해왕을 소천 구릉에 장사지냈다. 그 뒤 그의 혼령이 나타나 자기의 뼈를 매장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어서 능을 헤쳐 보았더니 그 해골의 둘레가 석 자 두 치이고 몸뼈의 길이가 아홉 자 일곱 치였으며 이빨은 서로 엉키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뼈마디는 떨어져 있지 않고 살았을 때처럼 붙어 있었다. 이른바 천하에 무적인 역사(力士)의 골격이었다. 그의 뼈대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궁궐에 안치하였더니 혼령이 또 나타나 자기의 뼈를 동악에 두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신라땅에 처음 나타나 동악에 올라가 쌓았던 돌무덤에 그의 뼈를 안치하고 나라에서는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내면서 그를 동악신으로 모시었다.


7. 다음은 고려의 왕건과 관련된 '작제건 신화'입니다. 왕건신화는 고려사 첫머리에 실려 있는 신화로 왕건까지 7대 시조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인데 유교와 불교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고려 초기는 신화 불임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인위적인 요소가 엿보입니다. 먼저 왕건신화에는 풍수지리사상이 농후하며 왕통의 신성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산신과 해신, 지기(地氣), 몽중선녀(夢中仙女)까지 동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초기 호경의 이야기와 2대 마가갑 이야기, 3대 보육의 방뇨설화, 5대 작제건의 해중 무용담 등은 이미 전승되어 오던 설화를 모방하여 이리저리 얽어놓은 느낌이 듭니다. 다만 삼국시대까지 짤막한 신화가 고려 때는 인지의 발달로 인하여 장편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신화를 살펴보면 원시 신화처럼 소박한 묘미가 사라지고 다양하고 변화가 많으나 신화의 연결이 엉성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신화는 시조신화이며 국조 탄생 신화 즉 건국 신화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백두산 기슭에 호경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몸집이 크고 힘이 셀 뿐아니라 남달리 기지와 담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호경은 날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했다. 구름에 가려 있는 산과 계곡을 헤메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산길을 달리던 호경은 어느 산마루에 앉아서 하염없이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구름이 떠내려 가는 곳은 어느 곳일까 하고 생각했다.
'저기는 분명히 사람들이 많이 살거야.'
이렇게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기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시 바삐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경은 더 생각할 것 없이 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를 따라 남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머문 곳이 개성 땅이었다.
그는 송악산 아래에 조그만 집을 짓고 아내를 맞이했다. 그는 날마다 산에 나가 사냥을 하여 생업을 이어갔다. 사냥으로는 누구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호경은 활솜씨가 뛰어났다. 이 날도 호경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갔다. 그들은 하루종일 꿩 사냥을 하다가 그만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산속에 있는 큰 굴을 찾아 그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이미 날은 컴컴해져 있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여기저기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날렵한 사냥꾼들이지만 이럴 때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들은 초조하게 밤을 새우고 있었다. 졸린 눈을 털고 있을 때 그들이 있는 굴 밖에서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담대한 사냥꾼들이지만 산중의 왕인 호랑이 앞에서는 오금을 펼 수가 없었다. 더구나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굴 속으로 뛰어들어올 기세였다.
"아무래도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한 사람 저 호랑이에게 잡혀 먹혀야 할 것 같소.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호랑이의 밥이 될려는지 우리가 쓰고 있는 관을 한 사람씩 던져 봅시다. 그리하여 호랑이가 집는 관의 임자가 호랑이의 밥이 되기로 합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구차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급한 판국이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모두 관을 벗어 호랑이 앞으로 집어 던졌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공교롭게도 호경의 관을 집어 물었다. 그 순간 아홉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지만 호경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눈을 딱 감고 굴밖으로 달려나가 호랑이와 싸우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호랑이는 간 곳이 없고, 지금 자기가 뛰쳐나온 굴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호경은 눈을 씻고 다시 살펴보았으나 틀림없이 죽을 줄로 알았던 자기는 살아 있고 살 줄로 알았던 아홉 사람은 죽은 것이다. 호경은 그제야 호랑이가 자기를 구해낸 줄 알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알리고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그 때 호경은 장례에 앞서 산신에게 먼저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문득 산신이 나타났다.
"그대는 놀라지 마오. 나는 과부로서 이 산을 다스리는 산신령이오. 그대를 굴 속에서 구해낸 것도 나였소. 그것은 내가 성골 장군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 신정(神政)을 맡아 보고자 함이오. 그대를 이 산의 대왕으로 봉하고자 하오."
산신은 이렇게 말을 하고는 호경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호경을 대왕으로 삼고 그곳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리고 아홉 사람이 같이 죽은 산은 구룡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편, 호경은 죽음에서 구해준 산신의 뜻을 따라 산속의 대왕이 되었지만 자기만을 믿고 사랑하던 아내를 잊을 길이 없었다. 호경은 밤이 되면 꿈같이 나타나서 아내와 같이 지내다가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그들에게는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이름을 강충(康忠)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용모가 빼어나고 슬기로왔다.
강충이 장성하자 영안촌에 사는 부자의 딸 구치의와 결혼하여 오관산 아래 마가갑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하루는 신간의 감간인 팔원이라고 하는 이가 이곳에 들렀다. 그는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팔원은 부소산 일대 산세를 살펴보고는 강충에게 말했다.
"만일 이 산 남쪽에 이사하여 그곳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한다면 틀림없이 삼한을 다스릴 인물이 나오게 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강충은 마을 사람들과 같이 팔원이 가르쳐 준 대로 산 남쪽으로 이사를 했다. 산에 소나무를 두루 심었더니 몇 해 되지 않아서 산은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소산을 송악산이라 부르게 되고 부소군도 송악군으로 이름을 바꾸게 하였다.
강충은 그 뒤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 상사찬이란 벼슬을 하게 되고, 마가갑에서 영주할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부지런히 일한 보람으로 재산이 늘었다. 그리고 슬하에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이제건이라 하고, 둘째 아들은 보육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다.
보육은 성품이 자애로왔다. 그는 뜻한 바 있어 지리산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평나산 아래 북갑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다시 마가갑으로 이사를 왔다. 하루는 보육이 꿈을 꾸었는데, 보육이 곡령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꿈에 보는 산과 마을이 여간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산마루에서 산천을 굽어보다가 문득 오줌이 마려웠다. 그는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줌이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오줌은 골짜기를 넘고 들을 덮어 온 세상이 은빛 바다가 되었다. 보육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닷물은 어느새 보육이 서 있는 발밑까지 찰싹대고 있었다. 그 서슬에 꿈을 깨었다.
이튿날 아침 보육은 형인 이제건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꿈 이야기를 듣은 이제건은,
"그것 참 굉장한 꿈이구나. 그것은 반드시 너한테 하늘을 떠받들 만한 아들을 낳을 징조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총각인걸요."
"하기는 그렇구나."
이제건은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럼 내 딸 덕주를 네 아내로 맞이하도록 하여라."
하고 말했다.
덕주는 예쁜 처녀였다. 보육은 이제건의 말대로 덕주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마가갑에 조그만한 집을 짓고 정답게 살았다. 이 때 신라의 술사가 찾아왔다. 그는 한참동안 집 주위를 어정어정 하다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당신들이 여기에 살면 앞으로 당나라의 천자가 와서 사위가 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보육은 별 사람도 다 있다는 듯이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 뒤 보육은 딸 둘을 두었다. 두 딸은 어찌나 예쁜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으리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그 중에도 동생 진의는 더 아름답고 슬기로왔다.
하루는 언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오관산 꼭대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꿈이었는데 어찌나 오줌을 많이 누었는지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동생 진의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진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비단치마를 줄테니 꿈을 팔라고 했다. 언니는 별 애도 다 있다고 하면서 그러라고 하였다. 그러자 진의는 언니에게 비단 치마를 주며 다시 꿈 이야기를 하라고 하였다. 언니가 꿈 이야기를 다시 하자, 진의는 이야기를 두 손으로 받아 세 번 가슴에 품는 시늉을 하였다. 진의는 그제야 무엇인가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때에 당나라 숙종대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널리 산천을 구경할 목적으로 바다를 건너 패강(지금의 임진강)에 이르렀다. 마침 이 때 조수가 밀려나가서 진흙바닥이었기 때문에 발이 빠져 뭍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시종들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배에 싣고 온 엽전을 깔아서 왕자로 하여금 그 위를 밟고 상륙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 곳을 뒤에 전포(錢浦)라고 부른다.
당나라 왕자는 여러 지방을 둘러보다가 송악군에 이르렀다. 그는 곡령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다가 산세를 살펴보고 감탄을 했다.
"아, 이곳은 반드시 도읍지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시종이,
"그렇습니다. 땅 생김새가 여덟 신선이 살 만한 곳입니다."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산세를 보면서 몇 번이나 감탄을 하다가 마가갑에 있는 보육의 집으로 내려와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당나라 왕자는 보육의 집에 머무는 동안 두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끌렸다. 왕자는 기쁜 마음으로 떨어진 옷을 꿰매 줄 것을 청하였다. 보육은 자기 집에 머무르고 있는 나그네가 귀인임을 알아채고 마음 속으로 과연 술사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큰 딸을 들여 보냈다. 그런데 큰 딸이 문턱을 넘어가다가 공교롭게도 코피를 쏟아 도로 나오고 말았다. 보육은 할 수 없이 진의를 들여 보냈다. 그리하여 진의는 당나라 왕자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마침내는 사랑하게 되었다. 왕자는 몇 달 동안 진의의 집에서 지냈다. 그동안 진의는 아이를 잉태하였다. 그런데 꿈결같이 행복한 나날이 지나고 왕자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왕자는 진의에게 활과 화살을 맡기면서 말했다.
"나는 그대와 지낸 몇 달 동안을 잊지 못할 것이오. 나는 당나라의 왕자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소.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를 이어야 하오. 뒤에 아들이 나면 이것을 주오."
진의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가슴을 저며내는 것 같았다. 왕자도 안타까와 하며 돌아갔다. 그 뒤 진의는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작제건(作帝建)이라고 하였다.
작제건은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용맹스러웠다. 그는 나이 대여섯 살이 되었을 때 자기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진의는 그제야 당나라 천자로 있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작제건은 장성함에 따라 그 재주가 비상하고 육예가 뛰어나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활을 잘 쏘았다. 진의는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활과 화살을 주었다. 작제건은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며 그 활을 쏘아 보았다. 백발백중이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작제건이 신궁이라고 말했다.
작제건은 무예를 익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는 마침내 장삿배를 얻어타고 아버지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배가 얼마 가지 않아서 도중에 표류하고 말았다.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새까맣게 끼어서 사흘 동안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사람들은 모두 절망 상태에 빠진 채로 하늘에 목숨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점치는 사람이 있다가 점을 치고 나서는 바다가 사나운 것은 이 배에 삼한 사람이 있어서 용왕이 노한 것이라고 하며 삼한 사람을 찾아 바다에 버려야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작제건은 살 길이 막연한 것을 느끼고는 활을 들고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바위가 보였다. 그는 그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안개가 씻은 듯이 개고 바람은 순풍이 되어서 배는 나는 듯이 달아났다. 작제건이 올라온 곳은 바위로 된 섬이었다. 작제건은 홀로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때 어디선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한 사람 나타났다.
"놀라지 마오. 나는 서해의 용왕인데 그대가 오기를 기다렸소."
"무슨 말씀입니까."
"사실은 이곳에 백년 묵은 늙은 여우가 한 마리 있는데 그 놈은 조화를 잘 부립니다. 저녁 때가 되면 여래상으로 변하여 하늘에서 운무 사이를 뚫고 서서히 내려와 이 바위에 앉아서 꽹가리와 북을 치며 옹종경을 읽는데, 그러면 나는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소. 듣건데 그대는 활을 아주 잘 쏜다니 나를 도와 그놈을 쏘아 주오."
작제건은 용왕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용왕은 몇 번이나 당부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침내 저녁 때가 되었다. 시간이 되자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며 서북쪽에서 무엇인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부처가 틀림없었다. 작제건은 화살을 당기지 못하고 부처를 바라보았다.
"저건 정말로 여우이니 의심하지 말고 어서 활을 쏘시오."
언제 나타났는지 용왕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작제건은 이 말에 용기를 얻어 활을 겨누어 힘껏 당기었다. 활줄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부처를 명중하자 부처는 공중으로 솟았다가 떨어졌는데 과연 수백 년 묵은 여우였다.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작제건의 노고를 치하하고 용궁으로 안내하였다. 용왕은 여러 가지로 환대하며 작제건을 기쁘게 하였다.
"내 환난을 없게 하여 주어서 정말 고맙소. 내가 그대의 은덕을 보답하고자 하는 뜻에서 한 가지 묻겠소. 그대는 당나라에 가서 천자인 아버지를 뵙겠소? 아니며 내가 칠보를 줄테니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봉양하겠소?"
작제건은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나의 소망은 동쪽 땅에 가서 왕이 되는 일이오."
"동쪽 땅의 왕이 되려면 그대의 자손 삼건을 기다리면 되지만, 그밖의 일은 오직 운명이라 할 수 없는 일이오."
작제건은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에 실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농담을 하였다.
"젊은이는 왜 그렇게도 생각을 못 하오? 용왕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는데 어째서 그 딸을 달라고 하지 않소."
이 말에 작제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제건은 용왕에게 요청하여 그의 딸 저문의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는 이제 용왕이 준 칠보를 가지고 아내와 함께 돌아가려고 했다. 이 때 용왕의 딸 용녀가 작제건에게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칠보보다 더 귀중한 버드나무 지팡이와 돼지가 있으니 그것을 달라고 해요."
이 말을 들은 작제건은 칠보 대신 버드나무 지팡이와 돼지를 달라고 했다.
"허허, 이 두 물건은 나의 귀중한 물건인데 그렇다고 그대가 청하는 것을 거절할 수야 있나."
용왕은 이렇게 말하며 칠보에 돼지까지 주었다. 작제건은 용왕이 준 보물을 싣고 창룡굴 앞에 있는 강가에 이르렀다. 이 소문을 듣고 백주를 비롯한 이웃 고을 사람들이 영안성을 쌓고 궁실을 지어 이들을 맞이하였다.
이들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영안성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용녀는 개주 동북쪽 산기슭에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었다. 지금 개성에 있는 대정(大井)이 바로 그 우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들은 일년을 살았다. 하루는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자꾸 밖으로 나왔다.
"돼지야,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 네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 가겠으니 앞장을 서거라."
용녀가 눈치를 채고 이렇게 말하자 돼지는 알았다는 듯이 일어나 송악산 남쪽 기슭에 가서 드러누웠다. 작제건은 그곳에 새로 집을 지었다. 그곳은 바로 강충이 살았던 곳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원래 살던 영안성을 왕래하면서 30년을 살았다. 용녀는 송악산 새 집의 침실 밖에 우물을 파고 그리로 해서 용궁을 왕래하였다. 이 우물이 곧 광명사 북쪽에 있는 우물이다. 용녀는 우물을 통해서 용궁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는 남편인 작제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그렇지만 작제건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작제건은 용녀와의 약속을 어기고 용녀가 용궁으로 가는 모습을 몰래 엿보았다. 용녀는 한 소녀를 거느리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오색 구름을 일으키며 황룡으로 변하였다. 작제건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어서 감히 입을 벌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튿날 돌아온 용녀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부부의 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이미 약속을 어겼으니 나는 더 이곳에 있을 수 없소."
용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녀와 더불어 다시 용으로 변하여 우물 속으로 들어간 뒤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작제건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도 용녀는 네 아들을 남겨놓고 갔기 때문에 작제건에게는 조그만 위로가 되었다.
작제건은 아들을 잃고 쓸쓸하게 살다가 만년에는 지리산의 장갑사에서 조용히 불경을 읽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남은 용건(龍建)이라 불렀는데 뒤에 이름은 융(隆)으로 고쳤다. 그는 수염이 아름답고 풍채가 대장부의 기상이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융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그는 꿈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여인도 늠름한 융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꿈 속이기는 하지만 장차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꿈에서 깨어난 융은 꿈 속의 일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어느날 융이 송악에서 영안성으로 가다가 길에서 어느 여인을 만났는데 기이하게도 그는 꿈에서 본 여인과 똑같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융은 그를 즉시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꿈에서 만난 여인이란 뜻에서 몽부인(夢夫人)이라고 불렀다.
융은 몽부인과 행복하게 살았다. 그는 송악산 기슭에 있는 옛집에서 살다가 그 남쪽에 새 집을 짓고 이사하려 하였다. 바로 이 때에 도선대사가 당나라에서 일행지리법을 배워 가지고 와서 백두산에 올랐다가 곡령에 이르러 융의 새 집을 보고 말했다.
"아, 아까운 일이구나. 기장을 심을 곳에 어찌하여 삼을 심었을까."
도선대사가 이렇게 혼잣말처럼 하고 지나가는 것을 융이 들었다. 융은 이 말을 듣고 집히는 바가 있어서 급히 달려가 도선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그는 어찌나 급했던지 신을 거꾸로 신고 달려갔다. 이런 모습을 돌아본 도선대사는 융과 함께 송악산으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산수의 맥을 살피고, 천문을 보고 시수를 따진 뒤에 입을 열었다.
"이곳의 지맥이 백두산에서부터 수모(水母)와 목간(木幹)을 이었으니 아래 기슭이 명당자리임에는 틀림없소. 그대는 수명(水命)이니 마땅히 대수(大數)를 좇아서 집을 짓되 6.6의 36간을 지으면 곧 천지의 대운수를 따르게 될 것이오. 내년에는 틀림없이 성스러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왕건이라고 하시오."
도선대사는 이렇게 말한 다음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하다가 무엇인가 글을 써서 융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겉봉에는 '삼가 장래의 삼한을 통합할 주인인 대원군자에게 드리노라'라고 써있었다.
도선대사가 돌아간 뒤 융은 그가 말한 대로 다시 집을 고쳤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으로 이사 가서 살았다.
그런데 몽부인에게는 기이하게도 그 달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이듬해 아이를 낳고 보니 도선대사의 예언과 같이 아들이었다. 융은 도선대사가 말한대로 아들의 이름을 왕건이라고 지었다. 왕건은 뒤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고려 태조 왕건이었다.


그 외에도 건국과 관련은 안되지만 왕의 탄생을 보여주는 '금와왕 신화'가 있고, 제주도(탐라국)의 3성씨(양,고,부) 탄생과 관련된 '삼성혈 신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에는 이미 신화의 틀이 형성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유교적 이념이 신화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새롭게 '용비어천가'를 통해 조상을 신격화하게 됩니다. 즉, 중국의 성현이 보여준 사적과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업적이 동일함을 빌어 '천우신조'를 강조하여 개국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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