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소비 한국만 펑펑
[매일경제 2004-04-07 17:53]
"겨울철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아파트나 사무실에 들어서면 너무 더워 서 땀을 흘릴 정도로 기름을 많이 땐다."
어느 외국 증권사에 근무하는 직원의 얘기다.
비단 건물 난방뿐만 아니다. 승용차 자율10부제 등 고유가 에너지 대책이 시행 되고 있지만 수많은 나홀로 차량이 도로를 질주한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공장마다 마치 '에너지를 잡아먹는 하마'처럼 노후된 설비들이 즐비하다.
1년에 원유 가스 유연탄 등 모두 380억달러에 이르는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 라곤 상상하기 힘들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수출로 애써 벌어들이는 외화를 펑펑 낭비하 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에너지 악순환은 20여 년 간 지속돼왔다.
79년 제2차 오일쇼크 이후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당 에너지 소비량을 최대 40%까지 줄였지만 한국은 오히려 늘어났다.
20여 년 동안 각국이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고도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지식 기반 산업구조로 급속히 전환했지만 한국은 아직껏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 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유 등 주요 에너지 가격의 등락에 따라 경제가 일희일비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에너지 소비량(GDP 1000달러당)은 0.3 1ｔ(TOE, 잠정)으로 93년 이래 10여 년 동안 0.31~0.33ｔ에 머물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났다. 이 같은 소비량은 일본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비해서도 30~60%가량 높은 수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국가 대부분은 오일쇼크를 교훈 삼아 꾸준히 산업구조를 재편한 결과 에너지 소비량이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0년에 비해 2001년 에너지 소비량이 독일(0.20→0.13), 영국(0.25→0.18), 미 국(0.38→0.25), 일본(0.11→0.09), 덴마크(0.14→0.10) 모두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한국은 0.28ｔ에서 0.31ｔ으로 오히려 높아졌다. OECD 국가 가운데 0.3 0ｔ이 넘는 나라는 터키와 아이슬란드 두 나라뿐이다.
1인당 연간 에너지 사용량 역시 4.1ｔ으로 소득 2만달러 이상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 사용량 역시 올해 1월과 2월 각각 268억KWh와 273억KWh로 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했다.
최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과 비교해도 국 내 산업은 에너지 투입이 많은 저효율 구조"라며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진오 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오일 쇼크 이후 선진국은 꾸준히 산업 고도화 를 추진해 왔지만 한국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라며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대체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원유 수입(세계 6위)도 상대적으로 많다. 에너지 소비가 이 렇게 많은 이유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에 국민 개개인의 무관심이 겹친 데 따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말은 많았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국가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실행이 미흡했다는 데 있다.
물론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이 높다고 해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정식 에너지산업심의관은 "(GDP 대비)에너지 소비량 지표는 에너지 효율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최종 제품의 부가가치가 낮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산업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의 수치를 보면 한국의 산업구조가 이대로 지속되면 앞으 로 에너지 가격 등락이 심해질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지식기반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화두였던 97년 이후에도 에너지 소비량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조금씩 개선만 있었을 뿐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전환 하기 위해 장기적인 혁신 방안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79년 오일쇼크 이후 일본 등 G7 선진국 들은 에너지 대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에너지 절약형 설비투자를 많이 했다" 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최근 방문한 룩셈부르크의 철강회사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낡 은 설비를 과감하게 폐기하고 에너지를 적게 쓰는 첨단공법을 도입한 후 성과 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론 포스코처럼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기업도 적지 않다.
문제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노후 설비를 교체하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있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R&D)을 못해 기술 노하우가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설비 교체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만달러형 국가의 에너지 사용량이 이미 2만달러를 훌쩍 넘었다는 지적이다.
나홀로 자가용의 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도 에너지 를 많이 사용하는 대형 위주로 팔려나간다. 설령 에너지 효율이 높더라도 기본 적으로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대형'이기 때문에 절감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다.
에너지 대책이 한창 나왔던 지난 2월의 주택용 전력 사용량이 지난해보다 7% 이상 늘어난 44억KWh에 이른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 매일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