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의상 한복의 특징과 장점 등은 무엇인가요? 간단히 요약해...

우리나라 전통의상 한복의 특징과 장점 등은 무엇인가요? 간단히 요약해...

작성일 2004.12.07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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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장점


1. 한복은 아름다운 옷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이 인정한다.

   사선과 직선의 아름다움 - 동정,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린 아름다움 - 섶코,

   처마의 곡선을 보는 듯한 도련과 배래, 오방색을 사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품위있는 아름다움


2. 한복은 건강을 지켜주는 옷이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몸을 조이지 않음으로 건강에 아주 좋다.

   “가슴 위는 차게,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하여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이론에 잘 맞는다.

   목 부위는 시원하게 터주고, 허리끈과 대님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준다.

   또 “삼음교”라는 경혈자리에 대님을 묶어 비뇨기과 계통의 건강을 돕는다. 


3. 한복은 더불어 사는 옷이다.

   넉넉한 품과 허리로 키만 비슷하면 내옷 네가 입고, 네옷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4. 한복은 몸을 감춰준다.

   한복은 넉넉한 옷으로 뚱뚱하거나 마른 체형을 감춰주어 신체의 부끄러움을 감춰준다.

   

5. 한복은 자신이 살찌거나 마르거나 상관이 없다.

   입는 사람이 마르거나 뚱뚱해져도 아무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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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정의

한복은 한국의 옷이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 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 옷을 말한다.

특성

그 오랫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고름의 색상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 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아낙이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기 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이다. 명절과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진다. 한국에는 약 오만개의 제작업체가 있으며, 발행부수 만부가 넘는 한복 전문잡지도 다수가 있다.

삼국시대 한복의 특징

고대의 한국이 중국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예 중 하나가 의복문화이다.

중국은 조무령왕(趙武靈王)이 B.C. 307년에 한국의 저고리 고를 기병복으로 채용한 후 당대까지 관리와 서민들에게 계속 입혀졌다.

일본에는 BC 1C AD 7C에 걸쳐 지속적으로 한민족 대집단이 한국 옷을 입고 이주하여 기층문화(基層文化)의 형성(形成)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한민족(韓民族)은 원몽고(原蒙古) 내지 Tungys족과 동계(同系)로 간주되며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은 하(夏)는 서방계(西方系)이며 채도문화(彩陶文化)의 주인이고, 은(殷)은 동이(東夷)의 한 분파이며 흑도문화(黑陶文化)의 주역이라 하였고, 중국의 노고학자 이제는 산동반도가 중국 초보문화의 중심지요, 은왕조(殷王朝)의 발상지(發祥地)인 동시에 은족보다 선주했던 종족이 흑도문화(黑陶文化)를 특징으로 한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하였다

통일신라 시대의 한복의 특징

신라는 나라가 부강해짐에 따라 삼국을 통일하여 국력이 강대해지고 문화가 찬란하게 빛났으며 제반제도, 시설의 정비, 경제생활의 안정과 예술도 고도로 발달하여 민족문화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특히 불교를 신봉하여 불교예술이 극도로 발달하였으나 이 시기의 유물이나 사적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 시기는 중국에 있어서 당나라가 융성하였던 때였으므로 신라에서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천당정책을 썼는데, 제28대 진덕여왕은 왕금(王錦)이라는 비단에 수를 놓아 당나라에 보내고 김춘추를 보내어 왕과 조신의 장복(章服)을 청하여 들여왔다. 그 후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 4년에는 부녀자들까지도 중국복식을 따르도록 했는데 이것이 중국의 관복제도를 정식으로 받아들여 입게 된 최초의 일이다. 이것은 궁중이나 특수 유관자층에 한했다 할지라도 우리 복시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으므로 복식사상 일대 변천기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신라에서는 골품제도라는 것이 있어 성골 이하,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평민 등 가문과 혈통에 따른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복식의 양상도 계급에 따라 유형을 달리하게 되어 다양하게 발전했다.

흥덕왕대에 이르면 신라문화는 완숙기에 접어들어 복식이 대단히 사치했을 뿐 아니라 외래품을 숭상하고 계급의 복식질서도 문란해졌기 때문에 복식금지제도를 새로 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 의하면 의복재료도 삼국시대에 비하여 현저하게 풍부해져서 견직물(絹織物)로는 금, 사, 나, 능(綾), 주(紬), 시, 세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옷감의 종류가 다양함에 따라서 복식양식도 호화찬란하게 발전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과의 외교관계로 당나라의 패션이 유행하여 복두를 비롯해서 단령·반비·배당·표 등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통일신라의 복식은 호복 계통인 북방계통 복식을 기본으로 중국계 복식이 들어와서 우리 나라 복식구조의 일부가 되어 국속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식도 주로 귀족계급에 한한 것으로 일반서민과는 관련이 적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말기에서의 통일신라의 복식은 당제도를 상류계급의 복식으로 하고 하류계급에서는 국제(國制)를 습용하는 이중구조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 한복의 특징

저고리류

수십기의 분묘 발구 복식을 정리하여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전반기 저고리 종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시로 만든 홑저고리나 일부 소맥 저고리 외에는 거의 모두 깃 섶 끝동 겨드랑이 사이 부분을 짙은 색의 금선단이나 필단으로 장식하였다. 크기가 매우 커서 길이가 50∼80cm에 이르고 품은 70cm를 전후하여 만들어져 있어 마치 현재의 남자 저고리와 유사한 모양이다. 겉깃과 안깃 모두 네모난 목판깃이며 깃이 넓고 여기에 넓은 동정이 목을 싸는 형태로 짧게 달려있다. 이와함께 직선형 배래와 완만한 도련선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편의상 저고리를 길이에 따라 단저고리형, 중저고리형, 장저고리형을 대별하고 부분적 특징을 살펴본다.

중저고리형은 길이만 길뿐 단저고리형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를 모방하여 직금단 대신, 필단으로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보여지며 문현 중 곁마기로 추정된다. 양 옆이 트인 장저고리와 구분하고 옆이 막혔다는 의미의 곁마기는 출도복식 저고리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드랑이 사이를 별도의 옷감을 사용하여 봉재한 것은 대형이었던 당시 저고리 구성상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점차 여기에 장식성이 추가되어 화려하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칼깃 형태의 남자 저고리가 중저고리형에 포함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이것은 당시 장의를 제외한 남자 직령포류의 깃 모양이 모두 칼깃인 것과 무관하지 않는다.

장저고리형은 모두 옆트임이 있다. 이 가운데 고급 필단이나 금선단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것은 당시의 당의임이 분명한 것 같다.

치마류

전반기의 치마류는 의래용과 평상용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반기 저고리류가 모두 허리를 감추는 길이가 긴 형태이므로 당시의 모든 치마는 허리에 맞추어 입었다. 따라서 치마 허리라는 명칭도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당시의 평상용 치마 길이는 100cm전후 길이로 되어있다. 그러나 치마 폭은 현재에 비해 상당히 넒다. 이들 평상용 치마류는 모시 홑치마, 비단이나 명주로 된 겹치마, 누비치마, 솜치마 등 4계절용이 골고류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 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이어져 왔다. 저고리의 길이가 길고 여유있는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웅장한 머리모양 등 하후상박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다.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게 발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은 복식발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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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장점: 예뻐보이고, 우리 나라의 전통을 살려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역사를 알려준다.

 

 

단점: 움직일때 불편해요, 입고 벗고 하기 힘들어요!!

 

 

제 생각에는 이것밖에 안납니다.-이제 1학년이 됨...-

 

그래도 많은 점수 부탁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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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님꺼도 많이 참조하였는데요 첫번째 답변하신분꺼에 부족한분을 님꺼에서 채웠습니다. 단점이라면 긴거랄까? 어쨋든 중요한부분이있어서 감사점수 쾅!

  한복


 한복은 한국인들이 오랜 기간 착용해 온 한국의 전통 복식을 의미한다. 한복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애용하는 한민족의 민족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복은 한국인의 얼굴이며, 한복에는 한국인들의 사상과 미의식이 그대로 배어있다. 따라서 한복에 대한 연구는 결국 한국인들의 정신에 대한 연구이다.

한복의 가장 오래된 유형은 고구려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벽화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저고리에 해당하는 긴 상의와 바지나 치마를 입고 있으며,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의복의 형태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주목된다.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기본적인 복식의 유형은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 상의와 하의로 구성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 여성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예의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두루마기형 포를 더 입었다. 상의와 하의는 다른 색을 사용하여 장식표면이 분할된 듯이 보이며 특히 상의의 깃, 앞단, 밑단 등 의복의 가장자리에 의복보다 짙은 색의 넓은 선장식을 대준 것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허리띠까지선장식과 같은 색을 사용하여 상의의 형태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착용자의 전체 모습을 공간이 분할한 듯 지각되어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선장식은 사용된 여러 가지 문양들이나 좁은 부선들을 첨가하여 장식한 흔적들을 고려할 때, 착용자의 상의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돋보이기 위한 미적 요소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복의 가장자리를 튼튼하게 하거나 더러움을 방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복의 표면에는 작은 점문양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도 보이는데, 이것은 당시대의 직물 문양에 사용된 다양한 장식문양들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백제와 신라의 복식도 고구려와 그 기본형은 유사하나, 의복의 크기나 넓이, 색채, 관모 등의 장식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면서 의복의 형태는 한국 고유의 양식과 중국에서 들여온 외래의 양식으로 구성된 복식의 이중구조 현상이 나타난다. 이 외래 양식은 중국 당(唐)의 복식인데, 당시대에는 국제복의 성격이 강하여 사무복이나 의례복으로 착용되었다. 한국 고유 의복의 목선이 직령(直領)이라면, 외래 복식은 단령(團領)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복은 여러 양식으로 변화하는 유행현상이 나타났고, 현재의 한복의 모습이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은 실학사상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복식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래에서 소개된 복식도 한국화(韓國化)하는 현상을 보였다.

조선시대에는 복식은 대부분 양식화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유사한 의복을 입었다. 그러면서도 의복에 사용된 문양이나 소재, 장신구 등과 같이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를 두어 신분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으므로, 당시대인들은 복식을 통해 은근하게 은유적으로 자신의 신분, 지위, 학식, 개성 등을 나타냈다. 의복의 형태는 대부분 유사한 유형을 착용하였으므로, 소재의  종류나 계절용 의복의 착용여부에 따라 계절의 변화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국가적인 의례에는 왕과 왕비, 관리들은 외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관복을 입었으며, 관복의 밑에는 고유의 한복을 착용하였다. 왕이 입었던 관복으로는 면복, 곤룡포, 강사포, 제복 등이 있으며, 여기에 착용하는 모자와 신발들도 다양하게 하여 의례와 신분에 맞도록 했다. 신분의 차이는 사용하는 문양과 색채를 통해서도 나타냈다. 용문양(龍紋樣)은 왕실의 문양에만 사용되었으며, 다섯 개의 발톱이 있는 용(五爪龍)은 왕과 왕비의 복식과 기물에 사용했고, 네 개 발톱이 있는 용의 문양은 왕세자, 발톱이 세 개인 용문양은 왕세손만 사용하게 허용하였다. 관리들도 마찬가지로 문관은 학(鶴)문양 흉배를 하고 무관들은 호랑이 문양 흉배를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부착하였는데, 학과 호랑이의 숫자가 많을수록 높은 지위를 나타냈다. 색채도 신분을 상징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황색은 황제, 대홍색은 왕, 자색은 왕세자, 자주색, 남색, 녹색 등은 관리들의 품계에 따라 착용되었다.


한복은 평면으로 재단하여 입으면서 입체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특징이 있다. 그 구조는 매우 단순하고 크기에 여유가 있어서 어떠한 체형의 사람에게도 풍성하게 잘 맞는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 풍성한 형태미를 지닌 한복은 한옥의 좌식 생활에 적합하며 착용자에게 일종의 위엄과 우아함을 부여한다. 단순한 형태의 한복은 그러므로 착용자의 입음새에 따라 맵시가 드러나며, 입음새에 따라 생기는 주름은 한복의 형태미를 시각화하는 미적 요소가 된다.

풍성한 형태미를 보이는 한복은 융통성이 있어 보이며, 유동적인 선을 미적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두루마기나 바지, 치마 등은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흔들리는 유연함이 미적인 특징이 되기도 하다. 유연함을 선호한 한복에는 대체적으로 명주나 갑사, 숙고사와 같은 섬세한 소재들이 선호되었고, 도포나 치마와 저고리를 봉제할 때에도 홑겹으로 만들어 투박해 보이지 않도록 한 경우가 많았다. 족두리, 화관, 노리개, 부채 등 장신구에도 섬세한 술장식과 떨새 등을 부착하여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떨리는 효과를 표현하고 있다.

자연미를 존중한 반듯한 선과 곡선도 한복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한복에 보이는 곡선은 착용자의 윤곽선, 저고리의 각 부위, 흔들리는 요소에서 발견되는 미적 특징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착용자의 윤곽선에서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곡선으로, 중기에는 착용자의 윤곽선이 둥근맛을 주는 곡선으로, 말기에는 저고리의 도련, 배래, 깃, 섶 등에 구체적으로 표현된 곡선으로 나타났다.

한복은 백의라는 인상이 강한 의복이다. 백색은 백의민족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한민족이 애호해 온 색이다. 이 백색은 소색(素色)으로 불리었으며, 가공하지 않은 소재 자체의 색을 의미한다. 소색은 자연스러움, 천연스러움, 인공이 배제된 자연스러움을 보인다. 이 색은 세모시 백색 도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격이 있고 깊이 있는 색인데, 이러한 연유에서 한국인들은 백색을 연상시키는 연한 옥색이나 옅은 회색과 토홍색 등 명도가 높은 색도 애용하였다.

원색대비의 극치를 보이는 색동은 다른 의미에서 애용되어 온 색이다. 신부의 녹의홍상이나 황의청상, 황의홍상 등과 같이 화려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원색대비를 시도한 의복이나, 명절이나 통과의례에 착용하는 의복에 사용한 화려한 색채와 문양의 사용은 화사하고 밝은 이미지를 선호한 한국인들의 미적 정서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일상복에서는 백색 도포와 흑색 갓, 남색 치마에 검은 자주색 옷고름과 남색 끝동을 달은 옥색 저고리와 같이 강한 명도대비를 활용하여 단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색채대비로 착용자의 인격미를 나타내기도 했다.


여성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 남성 한복은 저고리와 바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어서 예의를 갖춘다. 저고리의 구성은 남성과 여성의 것이 거의 같으며, 그 길이와 각 부분의 배색에서 차이가 있다.


저고리의 구성은 몸통을 덮는 부분은 길며 여기에 소매를 붙이고, 앞 중심 부분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겉섶과 안섶을 겹쳐지게 부착하고, 목부분을 감싸서 정리하기 위해 깃을 달고 그 위에 백색의 동정을 붙여서 단정한 여며 입게 한다. 저고리의 양 옆에 옷고름을 달아 앞부분을 여며 입는 기능을 하도록 했다. 옷고름이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잘고 가늘어서 주로 여며서 묶는 역할을 했는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점차 그 길이가 길고 넓어져서, 옷고름은 기능성 외에도 장식적인 용도로 활용했음도 알 수 있다.

남성복은 저고리와 바지 위에 두루마기와 같은 포류(袍類)를 입고 머리에는 다양한 관과 갓을 착용한 의관정제(衣冠整齊)로 품격을 갖추었다. 포류의 종류도 용도에 따라 다양했는데, 구체적으로 도포, 창의, 학창의, 심의, 두루마기가 있다. 남성복은 인격미를 강조하도록 풍성한 형태를 보이면서도, 가슴 부위에는 세조대(細條帶)와 광다회(廣多會) 같은 띠를 착용하여 상체부분을 정리하여 단정해 보이도록 했다.

당시대의 대표적인 남성상은 백색이나 옥색의 도포나 심의에 흑색 관이나 복건을 착용한 선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흑백의 조화는 침착하며 냉철한 지성과 고매한 인품을 자아낸다. 가슴에 착용한 다채색 띠들은 지루하고 엄격해 보이기 쉬운 흑백대비에 생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복도 저고리와 치마를 기본으로 그 위에 배자와 두루마기를 착용하여 예의를 갖추었다. 통과의례 시에는 활옷과 원삼, 당의 등 의례복에 화관이나 족두리, 떨잠, 비녀, 노리개 등 여러 가지 장신구로 치장하였다. 여성복의 상의는 단정하고 하의는 풍성하게 하였으며, 이에 따라 풍성한 치마를 위하여 다양한 종류의 내의가 발달하였다. 여성의 정숙미를 존중했던 당시대의 여성들은 외출할 때에는 머리에 쓰개치마나 장옷을 착용하여 외부와 차단하도록 했다. 의복과 장신구에는 다양한 문양과 색채들을 표현하여, 수복(壽福), 부귀다남(富貴多男), 충효(忠孝) 등 당시대인들의 염원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음미하였다

 

 

한복에 관한 자료 및 사진이 많이 있고 잘정리된 사이트 몇개 소개해 드릴께요

저는 한브랜드 사이트에서 많이 배웠답니다

 

김치

 

오늘날의 김치 모양은 1600년대 고추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는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말리는 방법, 즉 건조를 통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법이었다. 이후 인류는 소금으로 절이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다음 단계가 발효시키는 식품저장방법이 나왔다. 김치도 이런 식품저장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우리조상들도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이용해 식품을 절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김치의 시작이였다. 당시 한반도는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을 채소를 통해 섭취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징으로 한겨울에 채소를 먹을 수 없게되자,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게 되었고,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다. 초기 김치모양을 옛 문헌등을 통해 추정해보면, 채소류를 장기간 저장하기 위한 단순한 소금절임 형태였다.

 

삼국지 위지동전에서 고구려는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있으며,일본 문헌인 정창원고문서는 수수보리저 즉 김치무리가 일본에 전달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국 문헌인 '후주서'등에서도 절임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초기 형태의 김치류 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6세기 중국 북위때의 책인 제민요술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했으며, 주로 산미료에 담그는 '엄초법' 소금과 발효 기질을 이용하는 '발효지법', 오늘날의 장아찌에 해당하는 '엄장지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역사기록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 신문왕편에서는 혜(김치무리)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김장독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든 독이 법주사경내 현존하고 있다. 이런 점 등으로 보아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 삼국시대는 본격적인 정착 농경생활이 발달되었던 문화적 환경이 갖추어 졌기 때문에 한반도 기후와 맞아떨어지는 소금 절임을 통한 초창기 김치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채소의 소금 절임이나, 된장 간장에 담근 장아찌식 절임과 젖산발효 초기에 머무른 비교적 담백한 야채 절임류가 많았다. 그러나 김치처럼 식품의 다섯 가지 기본 맛에다 젓갈로 인한 단백 맛과 발효의 훈향을 더하는, 일곱 가지 독특한 풍미를 갖춘 발효야채식품은 한국의 김치뿐이다. 이러한 김치는 한반도의 기후, 계절, 각 가정의 생활환경 및 식습관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 정착했다.


한글

 

전세계 언어학자치고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한글은 과연 다른 문자와 비교하여 얼마나 우수한 문자일까, 위대한 문자일까?


첫째는 만들어진 기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ㅐ, ㅒ, ㅚ`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둥 애만 태웠다.

샹폴리옹은 그러나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 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Ω)이다. 각각 `ㅏ`, ` ㅗ`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 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세종 즉위 후 바로 시작했다고 해도 불과 25년만에 그리스 문자를 압도하는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건 세종대왕 혼자가 아니라 집현전 학사 모두가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창의력이 세계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한글 창제는 요새 식으로 계량화하면 노벨상 100개에 해당하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본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둘째,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소`할 때 `ㅅ` 소리가 나니까 `소`를 그려 놓고 이를 `ㅅ`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안동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 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ㄱ, ㅋ]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ㄱ, ㅋ, ㄲ]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ㅋ, ㅌ, ㅍ, ㅎ]에서 보듯이 기본자 [ㄱ, ㄷ, ㅁ, ㅇ]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ㅡ],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ㅡ]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ㅣ]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ㅣ, ㅡ]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ㅏ]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ㅓ]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점`을 찍은 것이다. [ㅗ, 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ㅗ]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ㅜ]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 왜?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과 [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 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타,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부용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ㅅ`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ㅍ`을 써서 `잎`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은 `이것`과 `을`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 -- 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의 `천, 만`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천`은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나는 세종대왕이라고 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런 경이적인 창작품은 절대 여러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하다고 수천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상대성 원리가 신의 영역을 건드린 발견이라고 해서 일류 과학자 만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고독하게 한 천재가 각각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방해가 된다.


둘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셋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중국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왕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훈민정음을 거의 혼자 발명하신 듯하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질문자인사 간단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

한복의 장점


1. 한복은 아름다운 옷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이 인정한다.

   사선과 직선의 아름다움 - 동정,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린 아름다움 - 섶코,

   처마의 곡선을 보는 듯한 도련과 배래, 오방색을 사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품위있는 아름다움


2. 한복은 건강을 지켜주는 옷이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몸을 조이지 않음으로 건강에 아주 좋다.

   “가슴 위는 차게,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하여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이론에 잘 맞는다.

   목 부위는 시원하게 터주고, 허리끈과 대님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준다.

   또 “삼음교”라는 경혈자리에 대님을 묶어 비뇨기과 계통의 건강을 돕는다. 


3. 한복은 더불어 사는 옷이다.

   넉넉한 품과 허리로 키만 비슷하면 내옷 네가 입고, 네옷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4. 한복은 몸을 감춰준다.

   한복은 넉넉한 옷으로 뚱뚱하거나 마른 체형을 감춰주어 신체의 부끄러움을 감춰준다.

   

5. 한복은 자신이 살찌거나 마르거나 상관이 없다.

   입는 사람이 마르거나 뚱뚱해져도 아무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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