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자 기 의 정 의☆,등 도 자 기 으l 다l 하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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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4.14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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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보고서를 쓰려고 하는데

도자기의 정의, 도자기를 만들때 필요한 재료와 도구,

도자기는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우리나라에서 처음 토기를 사용한 때는 언제 인지,[사용 시기]

조선시대 제작되어 우리 생활 속에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도자기는 무엇인가,[조선시대의 도자기] 를 알려주세요 제발☆, 부탁 드려요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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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도기·자기라고도 한다. 도자기에 사용되는 원료는 점토·장석·규석·도석 등의 무기물질이 있으며, 이것을 단독 또는 혼합하여 성형한 다음 열을 가하여 경화(硬化)시킨 제품을 말한다. 도자기에는 자기·석기·도기·토기 등을 포함한다.

1. 분류

1) 자기
배합한 소지(素地)를 1,300∼1,500℃의 높은 온도로 소성하여 소결(燒結)시킨 것으로, 일반자기는 점토·석영·장석계의 배합소지이며, 이 외에 특수원료를 사용한 것은 특수자기라고 한다. 일반자기의 소지는 대개 백색이고 유리질이어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투광성이 있으며, 두드리면 금속성을 낸다. 기계적 강도가 크고 파단면(破斷面)은 조개껍데기 모양이 된다. 유약은 석회유나 활석유(滑石釉)를 시유한 것이 많고, 전기의 불량도체이다.

강도뿐만 아니라 화학적 내식성·내열성도 뛰어나다. 특수자기는 산화물자기·지르콘자기·알루미나자기·리시아자기와 같이 일반 자기와는 다른 조성의 소지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과학의 발달과 시대의 요구와 더불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일반자기에는 없는 특성을 얻기 위하여 이들의 조성·미구조·물리적 성질·화학적 성질·전기적 특성과의 관련성, 성형 및 가공기술의 발전·규명이 매우 중요시되는 제품이다.

2) 도기
점토질의 원료에 석영·도석·납석 및 장석질 원료를 배합하여 1,200∼1,300℃에서 일단 소지를 소결시킨 다음, 다시 1,050∼1,100℃에서 숙성하는 프릿 유약(frit glaze)을 시유한 것으로, 자기에 비하여 경도(硬度)와 기계적 강도가 낮으며, 소지는 다공질(多孔質)이고 흡수성이 있다. 두드리면 탁음을 내며 투광성도 거의 없다.

3) 석기
저급점토 특히 석영·철화합물·알칼리토류 및 알칼리염류 등의 불순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점토를 주성분으로 하여 배합소지를 만들고, 1,200∼1,300℃의 온도에서 소지가 거의 흡수성이 없게 될 정도로 충분히 소결한 것이며, 제품은 일반적으로 유색이고 투광성이 거의 없다. 유약은 식염 유약, 망간 유약, 불투명한 브리스틀 유약(Bristol glaze) 등을 시유한 것이 많다.

4) 토기
일반적으로 점토로 만들며 시유하지 않은 것이 많다. 700∼900℃ 정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로 소성한 것이 많고, 그 소지는 다공성이며 기계적 강도가 낮다. 그러나 전해용 격막(電解用隔膜), 여과기, 기체 확산용 재료 등의 특수소지(알루미나질·고령토질·규조토질 등)는 기공의 크기와 분포상태, 기계적 강도, 내침식성, 전기적 특성 등 여러 특성이 요구되어 소성온도도 1,000∼1,050℃로 높아진다.



2. 역사
1) 서양
고대 이집트의 유물에는 BC 5000년경의 토기가 있으며, BC 3000년경에는 이미 청록색의 알칼리 유약을 사용한 작은 도자기제품이 있었고, BC 1500년경에는 청록색 유약 밑에 망간으로 채화한 저온유(低溫釉) 도기가 만들어졌다. 당시의 도자기제품에는 접시·굽다리접시[高杯] 이외에 인물·동물의 신상(神像) 등이 많고, 채화(彩畵)된 것도 많다. 이집트의 제도기술이 점차 주변 각지로 퍼져서 메소포타미아·이란에서도 BC 1500∼BC 1000년경에는 채화된 도기가 만들어졌다. BC 7∼BC 6세기의 바빌로니아시대가 되면서 알칼리유 도기가 크게 발달되어 시유한 벽돌로 수도 바빌론의 개선문의 벽면을 장식하였으며, 알칼리유는 그 후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사용되어 청록색의 도기를 만들었다.

이와는 별도로 BC 4000년경의 그리스 본토 및 크레타섬에서도 무유(無釉)의 도기를 만들었으나, BC 1000년경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함과 동시에 도자기의 제작도 일단 끊기고, BC 800년경이 되어서야 부활하였다. 그 후 형태도 변하여 균형이 잡히고 아름다워져서 코린트 지방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들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아테네가 그리스의 중심세력으로 발전함에 따라 제도기술도 발달하여, 코린트 도기를 압박하고, 그리스 신화에 관련된 신(神)이나 트로이전쟁을 채화한 제품을 지중해 각지에 널리 판매하였다.

BC 3세기 말 동지중해 연안에 산화납이나 황화납을 매용제(媒溶劑)로 하는 시유기술이 발달하였으며, 이 납유는 어떤 흙과도 잘 작용하므로 녹색·갈색의 납유 도기가 동지중해 연안 각지에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로마의 발전과 함께 중요한 도기가 되어 자색의 유약도 사용하게 되었다. 로마의 납유도자기는 동로마시대의 초기까지 로마 영토였던 시리아에서 많이 만들어지고 파르티아 왕국, 사산왕조 페르시아 및 동양에도 전해졌다. 파르티아에서는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알칼리성의 녹색 유약을 입힌 도자기를 만들었으나 3세기 초 사산왕조 페르시아에 계승되고, 8세기 중엽에는 아바스왕조(사라센제국)에 의한 금은 기구의 사용금로 도기가 급속히 발달하였으며,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정밀한 채식(彩飾)이 풍부한 페르시아 도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 후 페르시아 도기는 이집트에 전해져 13세기경까지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나 이 때에는 독일에서도 높은 온도에서 굽는 경질도기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영국에 전해져서 스톤웨어라고 하여 크게 발달하였다.

16세기에는 마졸리카섬을 거쳐서 이탈리아로 전해진 에스파냐 도기의 기법을 흉내내어 만든 마졸리카(majolica)가 유럽 각지로 퍼졌으며,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벨기에에서 이주해온 도공(陶工)이 런던 지방에서 연질도기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이주해온 도공에 의해 궁중에서 즐겨 사용하는 섬세한 도기를 만들었으며 18세기에는 국영제도소(國營製陶所)가 설치되었다. 또 16세기에는 중국에서 자기가 전해져 그 제조법이 각지에서 연구되었으며, 1709년에 제틀리츠 고령토(Zettlitz Kaolin)가 발견됨으로써 독일에서 처음으로 자기제조에 성공하여 10년에는 왕립자기제조소가 설치되었다. 이 제조방법은 비밀로 되어 있었으나 점차 유럽 각지에서 자기를 만들게 되어 현재 자기는 영국·독일·러시아의 것이, 도기는 네덜란드·에스파냐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2) 중국
중국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도자기가 발달한 나라로서 한국·베트남·타이·일본 등 여러 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도자기가 발달되었다. 중국 도자기의 기원은 은(殷)·주(周)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한(漢)시대에는 녹색, 다색의 저화도 외에 고화도의 일종인 청자를 만들었으며,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천목도 만들었다. 저화도의 유법은 산시성[陝西省]·허난성[河南省]을 중심으로 화북 일대에 걸쳐서 이루어졌으며, 고화도의 청자·천목은 저장성[浙江省]의 항저우[杭州]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옛날에 월(越)나라 지방이었으므로 웨저우요[越州窯]라고 부른다.

저장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 전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으며, 그 후에도 중국 제도(製陶)의 제일가는 중심지였던 곳이다. 한(漢)·남북조는 중국 도자기의 초창기로서, 이때 만들어진 것은 망양(茫洋)한 고풍을 띠고 있으며, 가마의 수도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당시 화북 지방에서는 주로 저화도의 녹유(綠釉)를 입힌 것을 만들었으며 화중·화난[華南] 지방에서는 고풍의 한 종류인 청자를 주로 만들었다. 또 수는 적지만 천목이라고 하는 흑유(黑釉)를 입힌 것도 만들었으며, 옛 기록에 의하면 육조(六朝) 말에서 수(隋)나라에 걸쳐서는 백자도 만들었다고 한다.

당(唐)시대에 이르러 중국은 막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화려한 귀족문화가 구축됨과 동시에 도자기도 더욱 발달하여 중국 각지에 많은 가마가 생겨났다. 당나라 때의 도자기로서 쌍벽을 이룬 것은 웨저우[越州]의 청자(靑瓷)와 상저우[邢州] 지방의 백자라고 한다. 특히 웨저우요는 당시 천하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자기가 만들어졌다고 하여, 이에 관한 많은 시와 글이 있다. 웨저우의 청자는 중국만이 아니고 한국·일본·인도·이란·이라크, 멀리 이집트 등의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무역품으로서 동양 전역, 멀리 서양의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었다.

당나라의 도자기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삼채(唐三彩)는 주로 무덤[墓]의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것이며, 주로 당의 고을이었던 장안(長安) 및 뤄양[洛陽] 부근의 고분군(古墳群)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인물·새·짐승·거마(車馬)·부엌도구·농기구·가구 등의 모양을 만들고, 여기에 아름다운 저화도의 초록·갈색·백색의 삼채유를 입혔는데, 당나라의 귀족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宋代:10∼13세기)는 중국 도자기의 최고 기술을 나타낸 시대로서, 일상용 도자기가 활발히 만들어지는 한편, 청자·백자도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남송(南宋)의 관요(官窯)에서 구워진 청자는 현재 세계적으로 진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원대(元代:13∼14세기)에는 이제까지 형태의 아름다움을 주로 하던 도자기에 채식(彩飾)을 하기 시작하여 무늬를 넣어 굽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명대(明代:14∼17세기)에는 징더전[景德鎭]에 정부의 가마가 구축되어 여태껏 시행해오던 채식기법은 더욱 발달되어 무늬를 넣어 구운 도자기 및 오채(五彩:일명 赤繪라고도 한다) 외에 금채(金彩)도 시작되었고, 말기에는 오수적회(吳須赤繪)라고 하는 수출용 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청대(淸代:17∼20세기)에 이르러서는 무늬넣기·오채 등이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채분(彩粉)을 사용하는 기법이 발명되어 정교한 자기가 활기차게 만들어졌으나, 19세기 말 청조의 혼란과 함께 도자기의 제조도 몰락하여 현재에는 새로운 조직과 함께 근대적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3) 일본
일본에서는 선사시대에 조몽식[繩文式] 토기 등이 만들어졌으며, 5∼6세기경에 물레에 의한 성형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스에기[須惠器]라고 하며 낮은 비탈에 가늘고 긴 구멍을 뚫어 가마로 사용하였다. 유약을 입힌 최초의 도자기는 당삼채를 본떠 만든 저온소성의 도기로 나라삼채[奈良三彩]라 부른다.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가마쿠라[鎌倉]시대에 걸쳐서 중국의 도자기 기술이 전파되어 세도[瀨戶] 지방에서 중국풍의 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도자기가 급격하게 발달된 것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부장들이 한국의 도공들을 인질로 데리고 귀국하여 가마를 축조하고, 도자기를 제작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현재에도 그 후예들에 의하여 규슈[九州] 지방을 중심으로 일본 각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 후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서 독일의 바그너가 일본에 들어와 새 기술을 가르치고, 일본인도 해외에 유학하여 유럽의 새로운 도자기 제조기법을 배워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석탄을 연료로 하는 새로운 양식의 가마, 석회를 이용한 유약, 석고틀에 의한 기계물레 성형 등을 시작하게 되어 서양풍의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는 데 주력하여 현재에는 서양식기의 주생산국으로 발전하였다.

4) 한국
한국의 옛 도자기는 동양인의 조용한 정신자세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 선이 곱고 색이 순하며, 내적인 품위를 지녔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찬사를 받는 한국 도자기의 역사는 약 4000년 전 북방으로부터 집단으로 이동해와서 생활하기 시작한 토착민의 무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극히 단순한 생활을 하여 필요한 도구는 돌로 만들어 쓴 석기시대를 이루었다. 이것은 4000년 이전에 조상이 이 땅으로 이동해온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108년에 한(漢)나라에 의해 사군(四郡)이 설치되고, 한의 문화를 그대로 전해 받은 귀족사회를 이루었다.

그 후 낙랑문화를 이어 한국 최초의 역사국인 삼국(三國)을 세웠고, 이 삼국이 한국 도자기 발달에 크게 공헌하였다. 삼국시대에는 토기가 완전히 생활화되었으며, 용기나 기와 등에까지 화려하고 섬세한 무늬를 넣어 도자기의 공예적인 가치를 공고히 한 시기였다. 삼국시대는 일상용기로 토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는 공통점과 그 형이나 무늬 또는 질이 서로 달랐다는 외형적인 상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통일신라시대에는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다시 말해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기형이 세련되고, 도장무늬[印花文] 위에 연유(鉛釉)의 변화가 있는 유색(釉色)의 조화로 크게 발전하였다. 수천년 동안을 인간과 함께 발전하여온 토기문화는 고려의 건국으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이 쇠퇴는 고려청자의 탄생을 위한 준비기였다.

고려는 통일신라로부터 매우 평온한 방법으로 왕조를 이어받았으며, 정신문화인 불교사상은 고려예술을 낳은 모체가 되었다. 10세기 초에는 그때까지 만들어지던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에서 벗어나 자기(瓷器)로 접어든다.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용도와 실용적인 형태로의 변화는 고려자기의 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시도된 연유계의 시유도기(施釉陶器)와 회유계(灰釉系)의 시유도기의 영향이 컸다. 사학자에 의하면, 이 무렵에 중국 만당(晩唐) 또는 오대(五代)의 두 계통으로 청자기술이 한반도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중국 황허강[黃河] 유역의 북방계 청자기술이 서해 연안 중부지대에 이식된 것으로서 인천 경서동, 충청남도 보령·서산 지방에 분포된 산화소성(酸化燒成) 또는 중성소성(中性燒成)으로 보이는 조질(粗質) 청자요지가 그 계류이고, 또 하나는 중국 남부 항저우만[杭州灣] 연안의 웨저우요계의 환원소성(還元燒成) 청자기술이 남부 서해의 전통적인 고대 한국-중국 문화 교통로를 통하여 10세기 전반기에 남부 지방인 전라남도 강진, 전라북도 부안 등지에 전파·확산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고려자기의 발달은 10세기 말에 이르는 동안 제조기술이 발달되어 청자류와 함께 환원소성에 의한 백자기술이, 한편에서는 신라 이후의 회청색 토기들과 경질회유(硬質灰釉)와 연질연유(軟質鉛釉) 등이 꾸준히 양산되었다. 다시 말하면 고려시대의 도자기는 토기·청자기·백자기, 연유에 의한 유색(有色) 도기 등이 순조롭게 제작된 문화진작(文化振作)의 시기로 볼 수 있다. 11세기까지는 중국 웨저우요의 양식이, 11세기 말엽부터는 룽취안요[龍泉窯]의 기형과 유조(釉調)가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북방계의 딩저우요[定州窯], 루주요 등의 기형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에는 주로 환원소성을 하였고, 중국식의 청자 유색 ‘비색(秘色)’을 고려에서는 ‘비색(翡色)’이라고 할 만큼 유색에 대한 관심과 자신을 가졌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순청자시대가 물러나고 상감(象嵌)청자의 기법이 개발되면서 그 양상이 급변하였다. 상감은 고려인 스스로가 착안한 독창적인 문양기법이며, 고려청자를 세계적인 문화재로 만든 수훈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법은 거의 1세기 동안 전성시대를 이루었으며, 질과 양이 고려청자 중 뛰어나다. 1231년 몽골이 침입하자 조정은 40년 간이나 강화도로 천도하였으며, 민정이 소연한 속에 고려가 원나라의 영향하에 있으면서 상감기법을 비롯하여 비취색과 선을 잃고, 서서히 실용성과 안정감을 보이면서 변모하여갔다. 14세기 말 고려의 망국에 이르기까지 청자는 국운과 함께 퇴조하였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청자의 유연한 곡선은 단조롭고 둔해졌으며, 기벽이 두껍고 투박해졌다. 무늬 역시 단순화되면서 섬세하던 상감무늬 대신 기능적인 도장무늬로 변하고, 산화된 소색(燒色)은 그대로 분청자기의 색을 보여주었다. 즉 조선자기의 전신은 고려 말기의 청자임이 분명하나, 조선자기와 고려자기는 너무도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첫째, 고려자기의 생산지는 규모가 큰 관요(官窯)가 4군데, 나머지 소규모의 민요(民窯)가 70여 개소 정도로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이미 초기에 전국에 걸쳐 수백의 각종 도자기가마가 있었음을 《세종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전국의 자기가마 136개소와 도기가마 185개소가 기록되어 있다(생산되는 질과 양을 상·중·하로 구분하였다).

둘째, 고려의 도자기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청자가 주류였음에 비하여,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처음부터 분청사기와 백자기가 함께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고려자기나 조선자기에는 제조된 곳을 알리는 명문이 들어 있는 것이 있다. 고려자기의 경우 관사명(官司銘)이 들어 있는 것은 모두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에서 소성된 것으로, 수효가 극히 적고, 후기의 것인 데 반하여, 조선자기의 경우에는 초기부터 중앙관요는 물론 중요 관사명과 소성한 지방명이 분명히 새겨져 있으며, 그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수효도 수천에 달한다.

조선자기는 왕실이나 사가에서 쓰는 의기(儀器)와 제기(祭器)의 제작 등 기종과 성격이 명백하였다. 사선서(司膳署)라는 기관을 따로 두고, 경기도 광주(廣州)의 중앙관요와 각 지방관요를 직접 관리할 만큼 국가적이었다. 후에 사옹방(司甕房)으로, 다시 1467년(세조 13)에 사옹원(司甕院)으로 개칭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민요로 바뀌면서 모든 기능은 자연히 마비되고 말았다. 넷째,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분청사기와 백자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임진왜란으로 재정은 고갈되고 도자기가마도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도공이 모두 일본으로 납치되어 작업이 곤란해져서 자연히 정지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수난을 딛고 일어나 다시 시작된 것이 특징이며, 색을 피한 평범하고 소박하며 큼직한 순백의 자기를 소생시키게 하였으며, 그 형이 지극히 서민적이고 분위기가 원만하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는 고려 말 퇴락된 청자의 맥을 이은 조선청자와 청자에서 일변한 분청사기, 초기의 고려계 백자, 원(元)·명(明)계 백자, 청화(靑華)백자의 영향으로 발달된 백자가 있고, 이 밖에 흑유(黑釉)·철채(鐵彩)·철사유(鐵砂釉) 등이 있으나 대별하여 분청사기와 백자기로 구분한다.

36년 간의 일제강점기하에서 한국의 도자기는 보잘것없이 퇴보하였고, 기형은 지극히 평범하여 자연히 기교가 없어졌으며, 시유방법까지 간편한 방법으로 처리하여 그야말로 막사발의 분위기가 역력한 그릇이 되었다. 그러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막사발들은 조선시대와 현대의 도자기를 이어 주었다. 8·15광복과 6·25전쟁을 겪는 동안 크게 발달하지 못한 한국의 도자기 공업은 60년대를 시발점으로 급속히 진전되어 현대적 공장이 속속 건설되고,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에는 현대화된 공장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국책산업으로 지정 육성되고 있다.

5) 베트남
베트남은 중국에 이어 예로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으며, 옛날 한(漢)·육조(六朝) 이후 중국의 도자기를 그대로 모방하였으나 베트남에는 널리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러 종류의 도자기가 있다. 베트남의 도자기의 기원은 적어도 2∼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나라와 육조의 도기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돈손 지방 및 대뢰성지(大磊城址) 등에서 발견되었다. 8∼10세기 사이의 유품에는 당(唐)나라의 웨저우요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고, 11∼13세기 사이에는 북송(北宋)의 루요[汝窯]·츠저우요[瓷州窯]·징더전요·룽취안요 등을 모방한 것이 많다. 14세기 이후에는 원·명·청시대의 무늬를 넣은 도자기·색회(色繪)·금채·분채 등을 모방한 것이 많아 역대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서 그 제작법이 전해진 것 같다.



3. 도자기공업
1) 특징
자기는 소지가 희고, 투명성이며, 흡수성(吸水性)이 거의 없고, 질이 단단하여 두드리면 맑은 소리를 낸다. 플루오르 또는 강산 이외의 화학작용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지만, 스테아타이트나 알루미나 자기 등의 특수제품을 제외한 일반자기는 급열·급랭에는 약하다. 경질과 연질이 있으며, 경질자기는 융제(融劑)로서의 장석(長石)이 적고, 소성온도는 1,350∼1,550℃로 높다. 유약도 자연히 강하며 저항성이 크다. 연질자기는 융제로서의 장석을 다량으로 배합하고, 때에 따라서는 활석·골회(骨灰)·프릿 등을 첨가하므로 소성온도가 낮아도 자기화(瓷器化)하지만 생산량은 많지 않다.



자기의 원료는 고령토(高嶺土)·규석(硅石)·장석 등이며, 도석(陶石)을 사용하면 단미(單味)로도 자기가 되지만, 보통은 성형에 필요한 가소성 점토(可塑性粘土)와 자기화(瓷器化)를 돕는 장석을 20% 정도씩 배합한다. 유약은 장석유·석회유·회유(灰釉) 등이 투명하지만 색유(色釉)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석기(器)의 소지는 흡수성은 없으나 불투명하며, 대부분이 철분이 함유된 착색소지로서 공업용 내산석기·건축용품·민예도기 등 종류가 많다. 조석기(粗器)와 정석기(精器)로 구분된다. 정석기는 백색 또는 미색으로 자기와 비슷하게 보이며, 자기보다 점토가 많으므로 성형하기 쉽고 소성온도는 1,250∼1,300℃ 정도이다. 조석기의 소지는 석기점토 또는 철분함량이 많은 저질점토 등을 사용하여 1,100∼1,200℃ 정도에서 소성하게 된다. 유약을 입히는 경우에는 식염유(食鹽釉)·장석유·회유 또는 브리스틀유(아연유) 등을 사용한다.



도기는 연질에서부터 경질까지 대단히 종류가 많으나, 대개 정도기·조도기로 분류되며, 소지는 보통 흡수성이 있고 불투명하며 유약을 입힌다. 정도기는 장석질 또는 석회질로서 백색이며, 1,200℃ 전후에서 소결시킨 다음 소결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는 유약을 입혀서 참구이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제품에 따라서는 건조한 소지에 유약을 입혀서 소결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소결온도가 1,000℃ 정도 되는 것도 있다. 조도기는 유색점토를 주원료로 하고, 800∼900℃ 또는 1,200℃ 정도에서 소성한 화분 등 그 용도가 다양하다. 정도기의 유약은 프릿유가 많이 사용되며, 조도기는 저온의 경우에는 납유[鉛釉], 고온에서는 회유, 브리스틀유가 많이 사용된다. 토기는 유색점토를 원료로 하여 900℃ 정도에서 소성한 것으로 거의 유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2) 원료

가소성 원료(점토류), 비가소성 원료(규석류), 매용 원료(장석류), 유약 원료로 크게 분류된다. 점토는 장석질 암석이 풍화(風化)에 의해 변질된 것으로서 원래의 위치 부근에 잔류한 1차 점토(잔류점토)와 물 등에 의해 떠내려가서 침적된 2차 점토(표적점토) 등이 있다. 1차 점토는 입자가 거칠고 가소성이 부족하지만 철 등의 불순물이 적다. 2차 점토는 입자가 곱고 가소성이 풍부하지만 철 또는 유기질 물질 등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유색이다. 고령토는 카올리나이트를 주성분으로 한 1차 점토로서 가소성은 적지만, 백색이며 내화도가 높다.



한국에서는 주로 가수형(加水型) 고령토가 산출된다. 2차 점토는 멀리 떠내려가서 침적되었기 때문에 미립이고 석영의 함량이 적으며 점토 원료 중에서 가장 가소성이 뛰어나다. 주로 아탄층(亞炭層)에서 많이 산출되므로 유기질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차 점토의 산출이 빈약하여 외국에서 일부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수입품 대신 2차 점토로 사용되는 것에는 함평점토·덕산점토 등이 있다. 저온에서 소성하면 핑크, 고온에서는 회색계가 되며, 흰 것은 도자기의 일부에, 그 외의 것은 건축용 도기 및 조도기류에 많이 사용되고, 내화도가 높으므로 내화벽돌 및 그 밖의 내화물 원료로서도 많이 쓰인다.

수입되는 2차 점토는 와목점토·목절점토 등이다. 석기점토는 적토(赤土)라고 하는 점토 중에서 석기의 원료로서 적합한 것을 말한다. 주로 운모족 광물(雲母族鑛物)로 이루어지며, 석영·장석·석회·철화합물 등이 섞여 있어서 철분이 많고, 알칼리·유기물 등을 함유한 2차 점토에 속한다. 가소성이 풍부하며 소성한 경우 철이나 석회의 함유량에 따라 황색·적색·갈색·흑갈색 등으로 된다. 건축용 타일·토관·기와 및 공업용 내산(耐酸) 제품, 조도기류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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