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1). 구석기 시대 :
- 돌을 떼어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 동굴에서 생활 하였고 열매를 따거나 사냥을 하여 배를 채웠다.
2). 신석기 시대 :
-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였다.
-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움집을 지어 생활하였다.
-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여 곡식을 빻았다.
3). 청동기 시대 :
- 청동(청동기)을 사용하였다.
- 농사짓기에 좋은 평야나 하천주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였다.
- 마을을 다스리는 지배자가 생겨났다.
*고조선 : 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서,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환웅의 아들)이 세웠으며 홍익인간(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또, 8조법을 만들어 백성을 다스렸다.
*삼국통일 : 676년 신라 문무왕 때에 신라에 의해서 통일이 되었다.
1). 삼국통일의 과정 : 당나라와 연합(동맹)➝의자왕정치로 약해진 백제의 국력이 약해짐➝나•당연합군 백제침입➝백제멸망(660)➝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늙어 국력이 약해짐➝나•당연합군 고구려 침입➝고구려멸망(668)➝나. 당 전쟁(675년)➝신라의 삼국통일(676년)
2). 삼국통일의 의미
- 삼국통일은 과정에서 외세의 협조를 얻었긴 하지만 신라가 당의 세력을 무력으로 축출하매 삼국통일의 자주적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 삼국간의 이질적 문화가 이제 통일하면서 융합되어 단일 민족문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 통일 후 평화가 다가오자 경제력이 확충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더욱 세련되고 풍요로운 문화의 꽃피울 수 있게 되었다.
*발해 : 고구려가 멸망하고 30여년 후에 고구려의 옛 장수인 대조영이 세운나라로 한반도북쪽에 세워졌다.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이었다.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문화의 특색 위에 당의 문화가 더하여 더욱 아름답고 매우 세련되었다
*후삼국 통일(고려)
1). 후삼국 통일의 과정
1. 고려 건국: 궁예가 민심을 잃어 왕건이 왕이 되고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를 고려라 하고,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다(918년)
→2. 신라의 항복: 경애왕이 견휜에게 죽음을 당하고 경순왕이 왕이 되었다. 그 뒤, 국력이 쇠퇴하고,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어 온건한 고려에 나라를 바쳤다.(935년)
→3. 후백제 멸망: 견휜과 그의 아들 신검 사이에서 왕위 계승문제로 불화가 생겨, 견휜이 패하자 견휜은 왕건에게 투항하고 고려의 왕건은 신검의 후백제를 공격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936년)
→4. 고려의 재통일: 후백제가 멸망하고 고려에 통일됨으로써 모든 나라를 통일하게 되었다.(936년)
2). 고려 : 신라는 견휜이 세운 후백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로 분열되었다가 고려로 통일되었다.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는 과거 제도가 실시되었고, 지방 제도가 정비되었다. 최승로는 `임금이 지켜야 할 28가지(시무 28조)`를 왕에게 건의하여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자 하였다. 고려는 송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 등과 무역을 하였고, 무역의 중심지는 벽란도였다. 고려의 수출품은 금, 은, 구리, 인삼, 종이, 나전칠기, 화문석, 부채등이고, 수입품은 책, 약재, 비단, 향료, 차 등이었다.
3). 북방 민족의 고려 침략
1. 거란족과의 싸움
거란족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거란을 무찔렀다.
거란족의 3차 침입 때,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족을 무찌르는 대승이 있었다.(귀주대첩)
2. 여진족과의 싸움 : 고려는 윤관으로 하여금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함경도 지역에 9성을 쌓게 금 하였다.
3. 몽고(원나라)와의 싸움 : 몽고는 여섯 차례나 침략했다. 고려는 몽고와 싸우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몽고의 침략에 대해 고려는 끝까지 항쟁하였으나, 결국에는 몽고에 굴복하고 약 200년 동안 몽고(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다.
공민왕 때 원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4. 고려시대의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 부처의 힘으로 몽고를 물리치려는 소망으로 16년에 걸쳐 만들었다.
-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금속활자 :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들어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인쇄하였다.
고려청자 :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돌며 상감이라는 무늬 새기기 방법을 사용하였다.
*조선의 건국 : 명나라를 치러 가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반대 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1392년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 종묘, 학교, 관청 등을 한양에 세웠다. 한양은 교통이 편리하고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새로운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1). 조선의 새로운 정치와 제도 : 유교의 정신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가르쳤다.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기록한 경국대전을 만들었다. 남자들은 신분증명서인 호패를 항상 지니고 다녀야 했다.
2). 조선 초기의 문화와 과학 기술의 발달 :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어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쉽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농업발전에 기여한 과학기구들로는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 간의, 해시계(앙부일구)등으로 ‘농사직설’이라는 책과 함께 우리 농업발전에 많은 영양을 주었다.
3).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 조선시대의 신분으로는 양반, 중민, 상민, 천민으로 크게 4가지였다.
*임진왜란 : 1592년 4월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입해 왔으나,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우리 군사는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계속 지기만 했다. 왜군이 한양 부근까지 쳐들어오자,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까지 피신하였다. 이 순신 장군은 학익진 전술, 빠른 조류를 이용한 전술 등을 사용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왜군에 대항하였으며, 대표적인 의병장과 관군으로는 각재우, 조헌, 고경명,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의 요청에 통신사를 파견하여 학문, 기술, 문화를 일본에 전해 주어 일본의 정치 문화 발달에 기여하였다.
*병자호란 : 후금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후, 조선에게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으나 조선에서 거절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하며 대항하였으나, 청나라에 져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태자가 인질로 잡혀 가고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청을 공격하자는 북벌 정책을 추진했다.
*실학 :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이념에 바탕을 둔 학문으로, 백성들이 잘살고 나라가 튼튼해지는 방법을 연구한 학문이다.
1). 생겨난 배경 : 당시 유학자들이 이론과 학설에 치우쳐 백성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에 힘쓰지 못했고, 실학자들은 서양 문물의 전래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2). 실학자 : 토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가져야 하며, 신분 차별을 없애야 하고, 지방 관리들은 백성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개혁을 주장하였다.
*민간 신앙 성행 및 새로운 종교 출현
1).신앙, 종교가 성행한 이유 : 조선후기 사회불안으로 정신적돌파구를 찾기위해 백성들이 신앙이나 종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2).민간신앙 : 특별한 교리나 종교조직 같은 것은 없다. 자연물신앙, 미륵신앙, 동물신앙, 가신신앙, 풍수신앙, 무속신앙 등
3).천주교와 동학 : 천주교와 동학 모두 하늘을 섬기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병인양요 :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면서 프랑스인 신부와 천주교도들을 처형한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
1). 경과 및 결과 : 병인년(1866년)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하였으나, 양헌수를 중심으로 한 조선 군대가 정족산성에서 용감히 싸워 물리쳤다.
*신미양요 :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평양 군민이 불태운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
1). 경과 및 결과 : 1871년 미국 군함이 강화도를 공격하여, 초지진 등을 점령하였으나,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강력하여 저항하여 미군을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