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전통 문화

경주 전통 문화

작성일 2022.11.07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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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전통문화에는 뭐가 있나요?
검색해보니까 경주는 문화유산이나 문화재에 관한 내용밖에 없는데
이런 거 말고 예로부터 전해오는 관습이라던지 생활양식, 주거, 음식 등의 전통문화에 관련된 건 없을까요? 그리고 경주의 축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전통문화에 문화유산이 포함되는지도 궁금해요.
전통 문화에 대해서 조사해야하는데 경주는 문화재에 관련된 정보만 많더라구요.. 전통 음식도 모르겠고 마땅히 정보가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전통문화를 문화유산으로 대체해서 조사해도 가능할까요? 문화유산이 전통 문화의 일부이긴 하니..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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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경주 전통 문화

경주의 전통문화에는 뭐가 있나요?

검색해보니까 경주는 문화유산이나 문화재에 관한 내용밖에 없는데

이런 거 말고 예로부터 전해오는 관습이라던지 생활양식, 주거, 음식 등의 전통문화에 관련된 건 없을까요? 그리고 경주의 축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전통문화에 문화유산이 포함되는지도 궁금해요.

전통 문화에 대해서 조사해야하는데 경주는 문화재에 관련된 정보만 많더라구요.. 전통 음식도 모르겠고 마땅히 정보가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전통문화를 문화유산으로 대체해서 조사해도 가능할까요? 문화유산이 전통 문화의 일부이긴 하니..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ㅜㅜ

답변 : 아래와 같이 경주 문화 유산을 정리하여 답변을 합니다. 너무 많아 전부를 올리지 못하는점 양해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청자류와 금속류는 올려드리지 못합니다.

경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대(對)하여

경주 전통 문화유산

① 문화유산

1.석굴암

5.석굴암

종 목 국보 제24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시 대 통일신라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2. 경주 불국사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석굴암은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며,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3. 경주 역사 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반도를 천년이상 지배한 신라왕조의 수도로 남산을 포함한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있어 중요한 많은 유적과 기념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하시길......

경주 유적지 릉

4. 경주의 첨성재

첨성대에 대해

우수한점 :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있으며, 관측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것으로 여겨진다.

첨성대

​종 목 국보 제31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시 대 신라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5. 성덕대왕 신종이 세워 진 시기

1. 시대 통일신라시대

2. 성덕대왕 신종의 아름다운 과 멋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할 수 있습니다.

3. 성덕대왕 신종의 의미

우리나라 최대의 범종이자 정교한 세부 장식과 아름다운 종소리를 간직한 한국 범종 최고의 걸작.

종에 새겨진 비천상 사이 두 곳에 종의 내력과 만든 이들, 글쓴이 이름이 새겨진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있습니다. 또한 화려하게 새겨진 문양과 그 새긴 방법은 신라를 대표하는 종이라고 할만하지요.

4. 성덕대왕 신종이 씌이는 곳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보시면 의식법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5. 성덕대왕 과학적인점

맥놀이 현상과 음통의 영향으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종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맥놀이 현상-두개의 다른 파장을 가진 진동이 만나면서 소리가 일정한 주기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으로, 맥놀이가 1~3초에 한 번 정도로 반복될 때에 가장 좋은 소리가 납니다.

음통: 종을 칠 때에 나는 쇠 부서지는 소리를 없애 주고 소히가 멀리 퍼질수 있도록 합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국보 제29호로 지정.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독특한 점은 위에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종에 새겨진 비천상 사이 두 곳에 종의 내력과 만든 이들, 글쓴이 이름이 새겨진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있습니다. 또한 화려하게 새겨진 문양과 그 새긴 방법은 신라를 대표하는 종이라고 할만하지요.

종명(鐘銘)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했다고 합니다.

또한 종명을 지은 이는 김필월(혹은 김필해)이라고 하네요. 그의 직명(한림랑)이나 왕이 종명의 지은이로 지명한 걸 볼때 손꼽힌 문장가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형태는,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문으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화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龍)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다.

몸체에는 당초문을 두른 견대(肩帶)가 있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 안에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을 넣었으며, 그와 대칭으로 보상화무늬와 연꽃으로 된 당좌(幢座)가 있다. 비천상(飛天像)은 양각된 종명을 사이에 두고 2구씩 상대한 4구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寶相華)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742년 부터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신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손자 해공왕이 771년에 완성했다. 봉덕사에 달았다가 조선시대인 1460년 수해로 봉덕사가 없어지자 영묘사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鳳凰臺) 아래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였다. 1915년 8월 종각과 함께 경주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높이는 3.75미터, 입 지름은 2.27미터, 두께는 11~25센티미터이다.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실측한 결과 18.9톤이다.

♠ 성덕대왕 신종의 가치(가치와 의의)

성덕대왕 신종은 신라시대의 종으로서 국보 제 29호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종의 높이가 3.33m, 입 지름이 2.27m, 두께가 2.4cm에 달한다. 한국 종의 형식을 빠짐없이 갖춘 우리나라 최대의 종이며 섬세하고 우아한 무늬와 뛰어난 쇠를 다루는 기술은 8세기 중엽 신라의 예술을 대표하는 명작이라 할 수 있다.

♠ 성덕대왕 신종의 탄생(역사적 사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며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 종이라고도 한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자 그의 아들 혜공왕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구리(Cu) 12만 근(72t) + 주석(Sn) 25%를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 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 성덕대왕신종의 특징(특징)

성덕대왕신종의 특징은 장중하면서도 맑은 종소리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에밀레종은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세번 타종되었다. 이 종이 만들어진 770년 12월 14일 이후 그것이 종각에 걸려 있는한 변함 없이 서라벌에서 울려온 종소리였다. 낮게 내려앉은 저음이지만 그 맑은 여운은 긴 파장을 이루며 한없이 퍼져 나가는 그 소리는 장중하면서 맑은 소리였다.사람들은 이 소리를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다."고 하였다.

♠ 성덕대왕신종의 전설(전설)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그 여운의 소리가 '에밀레' 같고, 그 뜻은 "에밀레라"즉 "에미 탓으로"와 같기 때문이다. 내용인 즉 경덕왕이 대종을 만들기 위한 성금을 모으기 위하여 전국에 시주 중을 내보냈을 때 어느 민가의 아낙네가 어린애를 안고 희롱조로 "우리 집엔 시주할 것이라고는 이 애밖에 없는데요"라며 스님을 놀렸다는 것이다. 종 만드는 일에 계속 실패를 거듭하자 일관이 점을 쳐서 이것은 부정을 탄 것이니 부정을 씻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갈래로 그 부정의 원인 알아본 결과 그 아낙네 탓으로 단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애가 희생이 되어 "에밀레"로 되었다는 얘기이다. -

♠성덕대왕신종의 모양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무늬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 무늬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꽃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龍)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다. 몸체에는 당초무늬를 두른 견대(肩帶)가 있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 안에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을 넣었으며, 그와 대칭으로 보상화 무늬와 연꽃으로 된 당좌(幢座)가 있다. 비천상(飛天像)은 양각된 종명을 사이에 두고 2구씩 상대한 4구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寶相華)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비천상 사이의 2개처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된다

6. 경주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대웅전 앞 동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국보 제20호. 높이 10.4m.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7. 경주 불국사 3층석탑

국보 21호: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기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8. 경주 안압지

종 목 사적 제18호

면 적 177,172㎡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26

시 대 통일신라

경북 경주시 인교동에 있는 신라 때의 연못으로 월성의 북동쪽에 인접하였다. 《삼국사기》 674년(문무왕 14) 조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는 정교하고 도수로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의봉4년(679)’ 또는 ‘조로2년(680)’의 당나라 연호명이 있는 와전은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판상의 금동여래삼존상과 금동보살상 등의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

9. 경주 포석정

종목: 사적 제 1호

포석정터가 있는 곳(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구.

지정번호 : 사적 제1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크기 : 면적 7,432㎡

있는 곳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

구조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7,432㎡이다. 신라 헌강왕 때 이 포석정에 대한 기록이 처음 쓰여 졌으나,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의 이궁원내에 유연을 위한 자리로 만든 이 석구는, 유상곡수라는 시회를 벌일 수 있도록 특이한 구조로 만들었다.

만들어진 시대

포석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기록에 없다. 49대 헌강왕(876∼886)이 포석정에서 신하들과 향연을 베풀었을 때, 남산신이 임금 앞에 춤을 추었는데 여러 신하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하였다. 남산 신이 산으로 돌아간 다음 이제는 놀아도 좋다고 하니 신하들은 물었다."그 동안 어찌하여 놀지 못하게 하셨습니까?" "그 동안 남산신이 내려오셔서 춤을 추고 가셨기 때문이다." "남산신이 어떻게 춤을 추었습니까?"신하들이 재차 물으니 임금은 손수 일어서서 남산신이 춤추던 모습을 흉내 내어 보였다. 그 후부터 그 춤이 널리 행하여 졌는데 남산신의 이름을 따서 상심무라 하였으며, 이 춤은 고려시대까지 유행되었다 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포석정은 9세기 중엽에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곡선미는 안압지 해안에서도 볼 수 있는데 포석정에서는 안압지에서처럼 강한 기백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묘하게 흘러가는 가락의 아름다움과 돌을 뜻대로 다루는 정교한 솜씨를 볼 수 있으니 신라예술이 가장 왕성하던 때를 지나 조각기술이 무르익어 가던 시대인 9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적사실

포석정일대는 성남이궁터라 한다. 이궁이란 임금이 행차하셨을 때 머무시는 별궁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랑들이 남자다운 기상을 배우던 장소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조에 헌강왕(875∼885)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는 모습을 왕이 보고 따라 추었던 데서 어무산신무또는 어무상심무라는 춤이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시대 헌강왕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곳은 신라 패망의 현장으로 더 잘 알려진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신라 말기, 고려 태조 왕건은 왕위에 올라 신라를 위협했다. 그리고 왕건이 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자 신라에서는 왕건과 친교를 맺어 국가의 운명을 연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게 마련, 신라에서 고려로 투항하는 병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등 민심이 이반되기 시작하자, 신라는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경명왕이 사망하고 경애왕이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왕위가 바뀌었어도 신라의 위엄은 서지 않고 장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여 몸을 부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애왕은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던 해 11월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었다. 『삼국사기』에 이 당시의 정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경애왕 4년(927) 11월, 견훤의 궁대가 왕경(王京, 경주)에 쳐들어왔다. 왕은 왕비 궁녀와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느라 적이 오는 줄도 몰랐다.] 이 기록에 의하면 경애왕은 갑자기 후백제 견훤의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소위 노천 파티를 벌이다가 습격을 당한다. 경애왕은 호위병도 없이 병풍을 손수 가리고 광대들에게 군사를 막게 한 후 이궁으로 달아났지만 곧바로 견훤에게 사로잡혀 왕비와 부하들 앞에서 자결한다. 이후 효종 이찬의 아들 부(傅)가 왕위에 올라 신라 최후의 경순왕이 되지만 그도 왕위에 오른 지 몇 년 안 되어 견훤에게 항복함으로써 신라는 패망한다.

보존상태

건물은 없어지고 역대 임금들이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면서 놀이를 즐겼던 전복 모양의 석조구조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손상은 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역사적 사실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입니다.

가치와 의의

신라시대 왕이나 화랑이 풍류를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는 곳이었으므로 그다지 좋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물이 흘러가는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그 가치를 평가했습니다.

문화재가 있는 곳

경주 남산 서쪽계곡 포석계의 계류 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포석정터의 틈 사이로 물이 흘러 들어오면 그 위에 술잔을 놓고 동동 띄워 술을 마셨다고함

경주 포석정1

경주 포석정2

경주 포석정 3

10. 경주 김유신 장군묘

종목 : 사적 제21호

시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충효동 산7-1번지 림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이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무덤은 지름이 30m에 달하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돌난간을 둘렀는데, 둘레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지신상을 조각한 것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조각의 깊이는 얕지만 대단히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무덤 주위의 둘레돌에 12지신상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보이는 무덤양식으로, 성덕왕릉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이 서거하자 흥덕왕(興德王)은 그를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받들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서거하자 문무왕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그 비는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경주부윤이 세운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의 비만 남아있다.

11. 경주 무열왕릉

종 목 사적 제20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2

시 대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다.

무열왕릉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가치가 있으며, 1972∼1973년에 주변을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끝으로 님의 겅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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