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 지역

유럽 문화 지역

작성일 2022.06.07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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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 지역의 의식주, 종교, 명절이나 축제, 결혼식, 장례식, 랜드마크, 인물, 발달한 산업, 인종, 언어 등의 문화 요소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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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유럽 문화 지역

유럽 문화 지역의 의식주, 종교, 명절이나 축제, 결혼식, 장례식, 랜드마크, 인물, 발달한 산업, 인종, 언어 등의 문화 요소 좀 알려주세요

답변 : 아래는 유럽 스페인에 대한 하나의 정보입니다. 와!! 다하려면 엄청 길어집니다.

스페인(Spain)에 대()하여

에스파냐/스페인(Spain)

1. 스페인(SPAIN) 국기

민간용국기(CIVIL FLAG)

국기의 뜻과 의미

위로부터 빨강·노랑·빨강이 배치되어 있고 노랑은 빨강의 2배 크기이며 노랑에는 문장(紋章)이 있다. 노랑은 국토를, 빨강은 국토를 지킨 피를 나타낸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든 문장은 옛날 에스파냐에 있었던 5왕국의 문장을 조합한 것이다. 1785년 5월 25일 카를로스 3세의 영에 의해 군함용 깃발로서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1843년 10월 13일 이사벨2세가 군기(軍旗)로 사용한 이래 국기로 사용하여왔으며 그후 지금의 국기는 스페인을 상징하는 깃발이자 국기로 정착 되었다. 그러나 1931년에 스페인이 공화국이 되면서 지금의 국기대신 빨강색.노랑색.보라색의 가로형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하였으며 빨강색.노랑색.보라색의 가로형 삼색기에 문장을 삽입한 국기도 국기로 사용 되었다. 그러나 빨강색.노랑색.보라색의 가로형 삼색기는 전혀 오래가지 않았으며 국기로서도 전혀 오래 쓰여지지 않았다. 그후 1939년에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장군이 독재성향이 강한 파시스트정권을 수립하면서 지금의 국기를 국기로 부활 했다. 그대신 지금의 국기에 독수리문장이 삽입되었다. 그러한 형태의 국기는 프랑코정권시대때 마다 국기로 사용 되었다. 그러나 1975년 프랑코장군이 사망하고 파시스트정권이 무너지고 이나라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 졌다. 이것은 국기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1975년 프랑코장군이 사망한지 그로부터 3년후인 1978년 12월 6일 헌법 제4조에 따라 공식 제정하였다. 그때 당시에는 독수리문장의 형태가 프랑코시대의 국기와는 약간 바뀌어 지고 변경되었으나 1981년 10월 19일 문장에 있던 독수리를 제거하는 등의 수정을 하여 지금의 국기로 새롭게 수정하여 이를 새롭게 제정하였다. 이 나라의 각 자치주는 별도의 자치주 기(旗)를 제정하여 공식행사에서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 그리고 문장이 없는 민간용국기도 정식국기로 인정 된다.

1785년 또는 1795년에 제정되었다는 기록이 있음 그러나 지금의 국기가 그시기부터 국기로 사용 된 것은 분명함 그후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여러차례의 수정 끝에 1981년 지금의 국기로 수정

2. 스페인의 위치

정식명칭은 '에스타도 에스파뇰'(EstadoEspanol)이며, 영어명은 '스페인왕국'(KingdomofSpain)이다. 유럽대륙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포르투갈, 북쪽으로 프랑스에 접하고, 남쪽으로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의 모로코와 마주하며 동쪽으로 지중해, 북쪽으로 비스케이만(灣), 북서쪽으로 대서양에 면한다. 국토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발레아레스 제도(諸島), 카나리아 제도에 흩어져 있다. 모로코 북부에도 에스파냐령(領)인 세우타, 멜리야 및 모로코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3개의 작은 섬인 차파리나스(Chafarinas), 페논데알우세마스(PenondeAlhucemas), 페논데벨레스델라고메라(PenondeVelezdelaGomera)가 있다. 행정구역은 17개주(comunidadautonoma), 2개 해외 자치시(ciudadautonoma)인 세우타, 멜리야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지도

유럽의 남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이다.많은 소왕국들이8세기 초부터 이슬람 세력에 지배당하다가 이슬람으로부터 실지회복(失地回復)을 꾀하는 국토회복운동이1492년 성공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졌다.

원어명:에스파냐(España)

위치:유럽 남서부,북대서양과 지중해 연안

경위도:서경4°00',북위40°00'

면적() : 505370

해안선(km) : 4964

시간대: CET (UTC+1) Summer: CEST (UTC+2)

수도:마드리드(Madrid)

종족구성:지중해인 및 북유럽인

공용어:스페인어

종교:로마가톨릭교(94%),기타(6%)

건국일: 15세기

국가원수/국무총리 펠리페6(Felipe)국왕(2014.06즉위)

정체:입헌군주제

통화:유로화(Euro)

인구() : 47,042,984(2012)

평균수명() : 79.92(2008)

1인당 명목: GDP($) 28,976(2012)

수출규모($) : 3,096(2011)

수입규모($) : 3,649(2011)

인구밀도(/) : 94(2012)

1인당 구매력평가기준: GDP(PPP)($) 30,412(2012)

정식명칭: '에스타도 에스파뇰'(Estado Espanol)이며,영어명은'스페인왕국'(Kingdom of Spain)이다.유럽대륙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다.서쪽으로 포르투갈,북쪽으로 프랑스에 접하고,남쪽으로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의 모로코와 마주하며 동쪽으로 지중해,북쪽으로 비스케이만(),북서쪽으로 대서양에 면한다.국토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며,발레아레스 제도(諸島),카나리아 제도에 흩어져 있다.모로코 북부에도 에스파냐령()인 세우타,멜리야 및 모로코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는3개의 작은 섬인 차파리나스(Chafarinas),페논데알우세마스(Penon de Alhucemas),페논데벨레스델라고메라(Penon de Velez de la Gomera)가 있다.행정구역은17개주(comunidad autonoma), 2개 해외 자치시(ciudad autonoma)인 세우타,멜리야로 구성되어 있다.

3. 스페인/에스파냐의 역사

선사시대

에스파냐의 이베리아반도에서 구석기시대의 인종으로 현재 확인되고 있는 최고(最古)의 인종은 크로마뇽인()으로 그들의 문화를 특징짓는 동굴회화(洞窟繪畵)가 많이 남아 있다.산탄데르(Santander)의 서쪽에 있는 대표적인 알타미라 동굴회화는BC 15,000년 경의 것이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회화와 함께 유명하다.신석기시대는 적어도BC 3,000년대에 시작되었다.

신석기 문화를 시작한 인종은 분명하지 않은데,동일한BC 3,000년대에 아프리카로부터 이주하여 동부·남동부에 정착한 이베리아족이라는 주장이 있다. BC 2,000년 경에는 안달루시아에 타르테수스족이 이룩했다고 하는 동기문화(銅器文化)가 출현했으며,훗날 청동기 제조도 이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BC 1000년경부터 수세기에 걸쳐 철기문화를 가진 켈트족이 프랑스로부터 이주해 와서 이베리아족과 혼혈하였으며,갈색 피부,검은 머리칼을 특징으로 하는 켈트이베리아족이 형성되어 에스파냐 민족의 중핵이 되었다.

5. 지중해 민족의 식민

기원전10세기 경에는 고대 페니키아인이 카디스(cadiz)를 건설하고,기원전6세기에는 그리스인이 동부 해안에 식민시(植民市)인 암뿌리아스(Ampurias)를 건설하여 각각 교역활동을 하였다.카르타고 세력도 기원전6세기에 진출하여 바르키노(바르셀로나:Barcelona),카르타고노바(카르타헤나:Cartagena)를 건설하고 교역을 하였다.그러나 기원전3세기에는 교역보다는 무력으로 타호강(Tajo river)이남을 제압하였으며 그로 인해 아프리카 북해안을 비롯한 지중해에서 세력을 떨치고 로마 공화국의 해상활동과 대립하게 되었다.

6. 로마 지배와 게르만 침입

에스파냐는BC 219년 로마의 동맹시(同盟市)사군툼(현재의 지명은 사쿤토이며 발렌시아지방에 위치)한니발이 거느리는 카르타고군()의 공격을 받아,지중해 무역권을 다투는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BC 201)에 휘말리게 되었다.로마는 소()스키피오의 지휘하에BC 209년 카르타고 세력을 몰아내고 에스파냐의 새 지배자가 되었으며,로마의 지배와 수탈 그리고 도시 생활의 도입에 따라 부족국가의 오랜 정치·사회 제도는 해체되고 말았다.

언어도 공용어는 이베리아어에서 라틴어로 바뀌어 오늘날 사용하는 에스파냐어의 근간을 이루었다.종교적으로는 성()바울로와 그 제자들이 그리스도교를 포교하였고,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2, 3세기에는 신도들의 조직체를 만들었다.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에스파냐에도 영향을 미쳤다. 409년의 제1차 침입에 이어414년에 침입한 서(西)고트족은5세기 중엽에 이르러 에우리크의 지휘 아래 로마군과 먼저 온 게르만족들을 격파하여 서고트 왕국을 확립, 6세기 아타나길드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7. 이슬람의 지배

에스파냐 지역의 서고트 왕국은 서유럽 봉건제도의 확립을 위한 과도기에 종교·왕위계승 문제와 관련한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711년 이슬람 옴미아드 왕조의 침입으로 붕괴하였다.이슬람 세력은 피레네를 넘어 프랑크 왕국도 노렸으나732년의 푸아티에(Poitiers)싸움에서 패배하여 이베리아 반도로 물러났으며,그 이후8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동안 산업은 발전되었으며 농업에서는 관개시설이 건설되고 목화·복숭아·사탕수수 등의 새 작물이 재배되었다.수공업은 톨레도(Toledo)·그라나다(Granada)·알메리아(Almeria)·코르도바(Cordoba)에서 발달하였고 코르도바·세비야는 시장·수출항으로서 번창하였다.

이슬람의 문화·기술 수준이 당시의 서유럽을 능가하였다는 것은,이미10세기에 코르도바 도서관의 소장서적이60만 권에 이르고,그리스철학 연구도 상당수준이었으며11세기에 제지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또한 이슬람 정복의수평적성격을 에스파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공납·부역·인두세를 거두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이슬람군()조직유지가 피정복지에 행하여젔을 뿐 피정복민족 고유의 사회·정치·종교 체계에 대한 강제적 파괴와 재편은 행해지지 않았다.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도로부터 배교자(背敎者)라 불렸으나 자유민의 신분을 얻고 조세도 경감되었기 때문에 서고트 시대의 노예들이 많이 개종하였다.그리스도교도는 모사라베스(Mozarabes)라 불렸으며,공조(貢租)등의 부담을 교환조건으로 하여 종전까지의 토지지배권,교회의 유지,서고트 관습법으로 운영되는 특별자치구의 형성을 승인받았다.

8. 국토회복운동시대

에스파냐의 중세는 이슬람으로부터 실지회복(失地回復)을 꾀하는 그리스도교도의 운동,즉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으로 비롯되었기 때문에 서유럽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북부산지를 어선으로 하여 이슬람 지배를 모면했던 아스투리아스(Asturias)·나바라(Navarra)두 지방의 서고트 귀족은8세기에 들어와 남하(南下)를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른,회복운동이 진전을 보임에 따라 각지에 작은 왕국이 형성되었다.이 운동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지역의 확대가 아닌 탈환지역에서의 그리스도교도의 정착·경영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며,이것 없이는 정복군의 전진기지 유지도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국왕과 귀족은 레온(Leon)지방과 카스티야(Castilla)지방을 중심으로 농민에게 이민 특허장(移民特許狀:cartas pueblas)의 교부와 베에트리아스(behetrias)의 승인이라는 유리한 조건을 내걸고 위험부담이 큰 전선지대로의 이주를 촉진시켰다.이민 특허장에 따라 농민은 토지 개간의 특권을 얻게 되었으며 영주의 자의적 부담도 피할 수 있었다.베에트리아스는 도시에 주어진 특권으로 영주의 자유선택권을 내용으로 했기 때문에 영주의 무제한적 지배를 저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국왕과 귀족의 관계도 서유럽 국가들과 같지 않았으며,귀족이 정복하여 획득한 토지는 봉토(封土)가 아닌 군역(軍役)의 보수로 간주되었다.따라서 신하가 국왕에 대한 충성을 거부해도 토지는 몰수되지 않았다.이처럼 불완전한 장원 제도(莊園制)와 레엔 제도(봉토를 매개로 한 주종관계)가 에스파냐를 출발점으로 한 것은 중세의 특징이다.또한 국토회복운동은 종교 전쟁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으므로 이슬람의 종교적·문화적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성때문에 열광적 신앙이 육성되고 교회의 영향력이 비대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9. 절대주의시대

14세기 후반 에스파냐는 국토회복운동을 통해 강대해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1479년 아라곤(Aragon)의 페르난도2(Fernando II)가 카스티야(Castilla)여왕 이사벨(Isabel)을 아내로 맞이함에 따라 에스파냐의 통일이 이루어졌다.가톨릭 신자인 이들 두 왕이1492년 에스파냐에 남아 있는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국토회복운동이 종료되어 에스파냐는 절대주의시대에 접어들었다.카스티야와 아라곤에서는 이미13세기부터 국왕이 반항적인 귀족에 대처하기 위하여 귀족과 대립하는 사람 및 왕실재정 지지자를 도시대표로 만들었고,코르테스(Cortes)라는 신분제 의회를 만들어 통치기관으로 삼고 있었다.

왕권의 도시대표와의 제휴 정책을 계승한 이들 두 왕은 신성도시동맹(神聖都市同盟: Santa Hermandad)을 결성하였다.동맹 도시에 재판권과 경찰권을 줌으로써 도시는 귀족을 대신하여 국왕의 군사력·경찰력의 중핵이 되었고 왕권에 충실한 시민 출신의 새 귀족층을 낳는 기반이 되었다.두 왕은 또한 성채 파괴 등의 귀족억압정책을 추진하였는데,귀족을 부재지주화·궁정귀족화시키기 위하여 군인·관료로 임명하고 군사제도와 관료통치기구를 정비하였다.따라서15세기 말에 왕권은 강화되고 코르테스는 무력화하여 절대주의에의 길이 굳어졌다.

한편 이사벨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으로 에스파냐는 남북 아메리카의 정복과 식민지 건설을 독점하게 되었다. 16세기에는 멕시코와 페루에서 은광이 발견되었으며,원주민의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값싼 은이 대량으로 에스파냐로 유입되었다.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는 공업제품,특히 모직물의 수출시장이 되었으므로16세기 중엽에는 카스티야를 중심으로 모직물공업이 번창하였다.

1516년 페르난도·이사벨 두 왕을 외조부모로 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카를로스1(독일 황제로는 카를5)가 즉위하였으며,그의 통치하에서 에스파냐 본국,식민지,독일의 합스부르크령(),네덜란드,이탈리아령이 통괄되어태양이 지지 않는에스파냐 제국이 출현하였다.카를로스1세는 코르테스를 억압하였으며,공동체적 권리 유지를 주장하고 왕권과 도시 상층부에 반대하는 시민반란을1521년 진압하여 절대주의를 완성시켰다.

그 후1556년부터 시작된 펠리프2세 시대의 에스파냐는황금시대를 맞이했으나 동시에 몰락의 원인을 잉태한 시기이기도 했다.에스파냐의 위세는 신대륙(서인도)무역의 독점 위에 구축되었고 그 무역의 기초는 모직물에 있었는데,국내 모직물 공업이 길드(guild:중세 유럽의 동업자조합)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된 산업으로서의 발전이 억제되었다.따라서 근세 농촌의 자유생산체제에서 발전한 네덜란드·영국산 모직물에 상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은을 들여오는 단순한 경유지로 전락함에 따라 국내산업은 침체하기 시작하였다.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에스파냐는 부()가 집중되어 있는 네덜란드를 통제하여 세금 징수를 강화하였으나 오히려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초래하게 되었다.에스파냐의 독주에 도전하는 엘리자베스 왕조의 영국이 네덜란드를 원조하였다. 1588년에는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 펠리프가 파견한무적함대(Armada Invincible)’의 영국 해군에 의한 격파사건은 에스파냐의 몰락과 영국의 해상권 지배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그 후30년전쟁(1618~48),부르봉 왕조의 에스파냐 지배에 따른 에스파냐 계승전쟁(170114)등으로 신흥 해상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는 크게 번성하였고 에스파냐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쇠퇴기에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황금시대를 맞았는데16세기 말부터는 세르반테스(Cervantes),로페 데 베가(Lope Feliz de Vega Carpio)등의 문학자,엘 그레코(El Greco),벨라스케스(Velasquez),무리요(Murillo)등의 화가들이 활약하였다

10. 국내혼란과 왕정복고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에스파냐는 국가체제의 재건을 꾀하였다. 1759년에 즉위한 카를로스3세 시절에 플로리다 블랑카(Florida Blanca)백작을 비롯한 개화한 정치가들이 계몽전제주의적 관념에 따라 개혁을 단행하였다.중상주의(重商主義)대신 경제자유주의가 추진되고 공업원료의 수입세가 철폐됨으로써 카탈루냐 지방에 미국산 원면(原綿)을 사용한 면직물 공업이 발달하였다.그러나 귀족 교회가 대토지를 소유하고 영세한 농민이 소작에 종사하는 농업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민들이 빈농(貧農)으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조세(租稅봉건적 지대(地代)등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이것이 면직물 공업의 국내시장 확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공업발전과 시민 계급의 성장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1807년부터 시작된 나폴레옹의 에스파냐 지배와 이에 협력한 귀족에 대한 저항은 독립전쟁으로 발전하였는데,이는 국토의 회복과 동시에 반()봉건 투쟁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1820년의 혁명은 리에고(Riego)대위의 반란 선언으로 일어난 군대 반란에서 비롯된다.반란은 각지 농민의 반봉건 투쟁과 결합, 1821년 봉건적 권리 폐지법안의 답변확정으로 시민혁명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국왕이 법안 비준을 거부하고 부르주아 계층이 합법적 개혁을 주장하며 농민운동에서 떨어져나감으로써 좌절되었다.

그 후1830년대부터는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을 기반으로 한 입헌군주제가 답변확정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카탈루냐의 공업노동자들에게 러시아 출신 바쿠닌(Bakunin)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 소개되어 대토지 소유제 아래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식을 자극, 1869년 카탈루냐·안달루시아에서 공화주의자들에 의한 반란이 일어난 데 이어1873년에는 최초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그러나 노동자·농민들의 운동은 공화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 공장·토지 점거로 확대되었다.혁명 진압을 위해 부르주아지는 부득이 봉건세력과 동맹하게 되어1875년에 알폰소12세의 왕정복고가 실현되었다.

1876년의 헌법에는 입헌군주제와 제한선거제가 규정되었으나 필요에 따라 헌법을 정지시키는 권한이 정부에 부여되었으며 또한 가톨릭의 국교화를 규정하였다.그러는 동안 미국의 먼로주의의 영향 등으로 아메리카 식민지는20년대에 태반이 독립하였다.또한1898년에는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패배에 따라 쿠바와 필리핀을 잃게 됨으로써 에스파냐 식민제국은 소멸하였으며 모로코와 아프리카의 일부만이 식민지로 남았다.

11. 제2공화국과 프랑코의 대부

1885년 알폰소12세가28세 나이로 서거하자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왕이1902년까지 섭정을 한다. 1902년에 친정(親政)을 시작한 알폰소13세는 농업문제,지방독립운동,노동공세(攻勢)등이 얽힌 만성적 사회·정치 위기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군사독재(192330)하에서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그러나 세계공황에 따른 경제 악화로 군사독재와 함께 군주제마저 붕괴되었다. 19314월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토지 귀족인 사모라 대통령과 공화주의자인 아사냐 총리가 이끄는 공화국으로는 민주정치 실현의 기초인 토지개혁을 실현할 가능성이 없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자주 반정부 폭동을 일으켰으며 이러한 정치불안을 이용하여 왕당파(王黨派)와 교권(敎權)파시즘을 내세운 세다당(CEDA)등이 득세하여1933년에 우익 정권이 성립되었다. 193410월 세다당원의 입각을 계기로 아스투리아스의 광산 노동자들이 혁명 코뮌을 결성하고 무력으로 맞섰으나 결국은 진압되었다.이 후에 사회당 계통의 노동총동맹(UGT)과 아나키스트 계통의 전국노동연합(CNT)이 제휴하여1936년 사모라 대신 아사냐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같은해7월 봉건 세력의 지지를 받은 군부가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내전(內戰)이 발발하였다.반란군 지역에서는 전 독재자의 아들인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결성한 팔랑헤당()협동국가주의를 내걸고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19374월에는 프랑코 장군의 주도 아래국가 셍디칼리스트 공격단,전통주의자의 에스파냐 팔랑헤당이라는 이름의 단일 국가정당으로 재편성되었다. 19393월 프랑코 장군은 독일·이탈리아의 군사원조를 얻어 수도 마드리드를 제압하여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12. 스페인의 자연환경

1)자연

스페인은 세계에서51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504,782㎢이다.본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는데 이외에 지중해와 대서양의 제도,두 개의 자치 시인 세우타,멜리야가 있다.본토의1/3정도가 산지이며 평균고도 해발660m로 유럽을 통틀어 스위스 다음가는 고산국가이기도 하다.북부에는 피레네 산맥,대서양 연안 지방에는 칸타브리아 산맥,남부에는 네바다 산맥,중앙부에는 메세타 고원이 있다.과달키비르 강,과디아나 강을 비롯해 에브로 강,두에로 강 등이 스페인의 주요 강이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토지가 비옥해 옛부터 포도,오렌지,올리브 재배가 행해졌으며 이슬람의 지배를 오래 받아 아직도 아랍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와 인접하는 한편 지브롤터 해협의 중요 항구인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안도라 공국과 접하고 있다.또한 피레네 근처에 있는 인구 약1200명 규모의 이비아Llívia)라는 마을은 프랑스 영토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2)환경

각 지방 출신에 대하여 스페인 사람들은 강하게 인식하는 편이다.출신 지역이나 국가와 같이 개인의 기본적인 면에 대한 인식은 여태껏 스페인의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가장 악명 높은 바스크나 카탈루냐,갈리시아 주의 경우에는 각 주의 독특한 감정이 상당히 심하다.다수의 바스크인과 카탈루냐 출신의 국수주의자들은 스페인 통합 이전의 개별국가로 돌아가기를 열망한다.바스크는 테러와 같은 폭력적인 행위를 통하여 이를 저지르고 있다.사실 대다수의 바스크 인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꿈을 성취하려 한다.

스페인은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화 유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본질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고유의 문화와 라틴,서고트족,로마 가톨릭,이슬람 문화에 기반하여 발전한 것으로 본다.지중해와 대서양에 가까운 자연 자원이 문화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3)지형

반도의 대부분은 평균고도가800m인 메세타라는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원은 북부가 남부보다 약간 높은 가운데 칸타브리카 산맥,이베리코 산맥,모레나 산맥,포르투갈 접경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스페인은 지형적으로 중앙고원을 중심으로5개 지역,즉 북동부의 에브로 강 유역,남부의 과달키비르 강 유역,동부의 발렌시아 해안지역,북동부 구석의 카탈루냐 산악지역,피레네 산맥에서 서부 산지에 이르는 북부 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4)하계와 토양

하계망은 크게3개가 있다.고원을 흐르다가 대서양으로 유입되는 두에루·타호·과디아나 강이 이루는 하계망이 그것인데,이중 두에로 강은 고원 북부를,나머지2개 강은 고원 남부를 흐른다.피레네 산맥과 이베리코 산맥의 물이 유입되는 반도 최대의 유량을 보유하는 에브로 강은 거의 직선으로 흐르다가 지중해로 들어간다.모레나 산맥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물이 모이는 과달키비르 강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3대 하계망 외의 주요 강으로 남동부에서 흐르는 후카르 강과 세구라 강을 꼽을 수 있다.주요 광물은 결정질 암석과 석회암이며,북서부에 습윤한 산성 토양,동부와 남부에 석회질 토양,칸타브리카,북부 이베리코,카르베토베토니카,모레나 산맥,두에로 하곡 및 사라고사와 살라망카에 규산질 토양이 나타난다.고원의 고지대 및 동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침식작용에 의한 토양의 황폐화 현상이 특히 심하다.자연침식 외에 벌목을 통한 침식도 무시 못해1920년대 이래 정부에서는 침식을 막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5)기후

북위27°(카나리아 제도)44°사이에 걸쳐 있는 스페인은 북반구 온대지역으로 일반적으로 서부 지중해성기후권에 속한다.북대서양풍이 연중 계속 불어오며,사하라로부터 불어오는 덥고 건조한 기류의 영향도 받는다.피레네 산맥과 칸타브리카 산맥은 여름 동안 아열대기류의 북부 한계를 이루어 건조한 기후가 유지되게 하는 등 스페인 기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스페인은 기후에 따라 크게3지역으로 구분된다.해양성기후인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지역의 평균기온은 겨울에9,여름에18℃이며,연평균강우량은965㎜이다.중앙 고원지역은 대륙성기후로 평균기온은 겨울에4,여름에24℃이고,연평균강우량은380㎜이하이다.마지막으로2,750m이상의 산악지대는 겨울에0℃이하,여름에11℃이하의 평균기온과1,150㎜이상의 연평균강우량을 보인다.

6)식생과 동물

북부지역은 습윤한 기후로 낙엽수림과 초원으로 덮여 있고,북부 고원과 에브로 강 유역은 습도가 낮고 기온차가 심해 주로 곡물이 생산된다.에브로 강 상류지역과 남부 고원,안달루시아,동부지역에서는 올리브와 포도가,발렌시아와 무르시아의 관개지역에서는 오렌지를 비롯한 감귤류와 쌀이 재배된다.남동부에서는 관개를 통한 화초,철 이른 과일,채소 등의 재배가 이루어진다.북부와 중남부의 산악지역에서는 소가 사육된다.고원지대에는 양이 가장 흔한 가축이며,돼지는 서부와 북서부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에서 사육된다.피레네 산맥과 북동부 산악지대에서 여전히 곰과 늑대가 발견되지만 대부분의 야생동물류는 거의 멸종되었으며,스페인 야생염소,사슴,멧돼지 등도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다.

13. 스페인의 비즈니스 에티켓

1)복장

스페인 사람들을 포함한 유럽인들은 격식을 중요시 한다.따라서 바이어와 처음 만나는 자리이거나 중요한 미팅인 경우에는 반드시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편안한 차림도 무관하다.

공식적인 만찬이나 사교행사에 초대받았을 경우에는 특별히 복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우리나라의 비즈니스맨들은 정장차림이라고 하면 통상 낮에 입는 양복을 생각하지만,유럽 사교모임에서의 정장에는 다양한 드레스코드가 있으므로,사전에 드레스코드를 확인하여 의상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특히 여성 기업인의 경우 한국식 정장차림으로 저녁모임에 가는 경우 매우 어색해 보일 수 있으므로 저녁 사교모임이 예상되는 경우 정장 원피스나 칵테일 드레스 등을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좋다.

2)인사

스페인에서는 악수,포옹,도스 베소스(dos besos)등의 인사 법이 있다.비즈니스 만남,특히 첫 만남에서 가장 일반적인 인사 법은 악수이다.남녀가 악수를 나눌 경우 여성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매너이며,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좋다.한국처럼 악수를 하면서 몸을 숙일 필요는 없다.포옹의 경우 주로 막역한 사이에 나누며,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경우 남성들 사이에서도 사용하는 인사 법이나,첫 미팅 시에는 바람직한 인사 법이 아니다.

두 번의 키스라는 의미의도스 베소스(dos besos)”는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대면서 하는 인사 법으로,반드시 뽀뽀를 할 필요는 없고 가볍게 쪽 소리를 내는 것이다.과장된 소리를 내거나 정말 입을 맞출 경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으므로 유의하도록 한다.스페인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양인에게 첫 비즈니스 미팅부터 스페인 식 도스 베소스로 인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혹시 상대방이 해당 인사 법으로 인사를 해 올 경우,스페인에서는 매우 보편화된 인사 법이므로 거부감을 느끼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선물

스페인에서는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선물을 주고 받지 않으며,구체적인 성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싼 선물을 할 경우 상대에게 부담을 주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그러나 명함 집,책갈피 등 한국적인 느낌을 담은 작은 선물들은 부담 없이 건넬 수도 있다.또한 미팅에서의 선물보다 크리스마스,새해 등의 카드 발송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비즈니스 파트너의 집이나 별장 등으로 초대를 받은 경우에는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20유로 미만의 중저가의 와인이나 꽃 등을 선물하는 것이 무난하다.

4)약속

스페인의 바이어나 기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통상적으로 미팅 신청을 하면 회신을 받는 데 약 일주일 가량이 소요되며,최초 접촉을 메일로 했을 경우에는,해당 메일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지워버리거나 무시할 수 있으므로 유선상으로 수신여부를 확인한 후 회신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출장 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최소한1개월 전에는 미팅을 신청하여 항공권 구매 이전에 미팅 일정이 확정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우선 정해진 약속은 되도록 변경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 최소한 일주일 전에 해당 사실을 통보하고 정중히 양해를 구해야 한다.

사람들을 비롯한 라틴계 민족은 게으르거나 시간을 잘 지키기 않는다는 편견이 있으나,비즈니스맨들은 글로벌화 되면서 시간개념도 매우 철저해졌다.따라서 바이어를 방문할 때도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좋다.특히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방문의 경우 건물 로비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담당자에게 안내하는데 시간이 소요되므로15분 전에는 도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식사

스페인 사람들은 식사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2~3시간씩 이어진다.통상적인 식사시간이 한국과 달라 점심은2~4,저녁은9~11시 사이가 가장 일상적이므로,배고픔을 참지 못하다 음식이 나오면 급히 먹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경우 사전에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두는 것도 좋다.식사시간에 대화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므로 음식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유의하고,적절한 대화주제를 몇 가지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식사시간에는 가급적 양손을 테이블 위에 두되 팔꿈치로 기대지 않도록 하며,상대방과 속도를 맞추도록 한다.서양식 테이블 기본매너(빵과 물의 위치,냅킨사용,와인 잔의 구별 등)는 사전에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다.스페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으므로,식사 중의 술은 와인 한 두 잔으로 족하다.과도하게 술을 권하거나 속칭원 샷을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로 보여질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6)역사 문화적 금기사항

①역사/정치적 금기사항

스페인은1936~1939년에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내전을 치렀으며,왕당파를 이끈 프랑코의 승리로 내전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반대파들의 게릴라 활동과 이에 대한 탄압이 계속된 갈등의 역사가 있다.현재까지도 프랑코를 지지하는 세력과 악랄한 독재자로 기억하는 세력간의 이념적 갈등이 있으며,지역간의 갈등 또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로는 왕실의 존재의미 자체에 의문을 던지거나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따라서 스페인 사람과의 대화 시에는 프랑코에 대한 평가나 왕실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등의 행위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흥분을 유발할 수 있으며,입장 차가 다른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라면 분위기가 험악해져 필요한 비즈니스 상담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수가 있다.

②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 지양

유럽인들은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시한다.자신에 대한 신상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비즈니스 상대방도 같은 태도를 보이기를 기대하거나 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따라서 스페인 사람들과 업무상으로 만났을 때,친밀감을 높인다는 의도로 개인적인 신상정보(나이,결혼여부,가족관계,종교 등)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절대 삼가 해야 한다.특히 여성의 경우는 오랫동안 사업관계를 유지해 온 친밀한 비즈니스 파트너인 경우에도 서로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14. 스페인의 문화

에스파냐는 과거 번영하였던 대제국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며,문화의 모든 면에서 민족적 전통의 보존·발전이 중요시되고 있다.피카소 등의 경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현대 에스파냐 사람의 뛰어난 재능은 흔히 그 활동무대를 국외에서 발견하면서도 에스파냐적 성격을 잃지 않고 있다.오늘날의 에스파냐가 문화적으로 침체한 원인은 사회적·경제적 후진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그중에서도 보수적 체제가 취하고 있는 엄격한 통제는 문화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1966년에'신문보도법'이 제정되어 그때까지의 엄격한 사전 검열제가 자발적 협의로 고쳐졌지만 아직도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에스파냐는 유럽 여러 나라와 매우 다른 독특한 문화 전통을 이루어왔고,지방마다 고유의 풍속·민예를 가진 데다가'태양의 땅(Tierra del Sol)'라고 일컫는 남국적 풍토가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매우 많다.

주로 프랑스·영국·독일에서 해마다30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민속행사로는 투우가 있으며 갖가지 무용도 독특하다.안달루시아는 에스파냐의 전통춤인 플라멩고의 본고장으로 이 고장 남부에는 플라멩고 클럽들이 많이 있으며,여름에는 플라멩고 축제가 열린다.

또한 문화유산이 각지의 박물관과 건축물 속에 많이 남아 있다.특히 펠리프2세 때인16세기 이래 수도로서 에스파냐의 중심지였던 마드리드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왕궁, 1819년에 창설된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등이 있다.

마드리드 남서쪽70km에 있는 톨레도(Toledo)는 타호강()에 둘러싸인 요새지로 에스파냐 가톨릭교의 중심이며 화가 그레코(El Greco)가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에스파냐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이슬람교도의 지배가 가장 길었던 지방으로 아랍 문화의 보고이다.특히 코르도바(Cordoba)·세비야(Sevilla)·그라나다(Granada)의 세 도시는 아랍 지배하에서 번영을 누린 곳이며,코르도바의 메스가타 대성당,세비야의 알카사르,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 등은 옛 문화적 번영을 짐작하게 한다.

15. 스페인의 의,식,주

1) 의(衣)

옷은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입고요. 플라멩고의 고장이니깐 플라멩고 의상들도 있고요 밥은 스페인 지방마다 특산물이 달라서 바르셀로나에서는 해변이 있어서 빠에야 먹고 발렌시아는 오렌지가 특산물이고 스페인 대표음식 하몽이랑 샹그리아 과일 해산물이랑 타파스 그리고 군것질 디저트도 많이 있어요 주는 현대식 건물에서도 많이사는데 건물이 화려해요. 유럽이니깐 제가 다녀온 사진도 첨부할께요

Asturias 아스뚜리아스

Murcia 무르씨아인데 많은 아랍 영향 이 뚜렸이 보입니다.

Flamenco 프라멩꼬 춤 의상으로서 잘 알려저 있지만 사실 Andalucia

스페인 남쪽 집시들의 영향 입니다.

Salamanca 살라망까

플라멩고

바디스

Pais Vasco 빠이스 바스꼬

2) 식(食) 음식

1. 파에야(paella)

파에야는 다양한 스페인음식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발렌시아 지방 음식으로 쌀과 채소, 해안지역의 해산물 등이 합쳐져 개발된 음식이다. 해물과 닭고기나

돼지고기,토끼고기를 넣기도 한다

2. 가스파초(gaszpacho)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여름에 즐겨먹는 찬 스프로, 토마토를 주원료로 오이,

양파,피망 등을 넣고, 믹서에 갈거나 잘게 썰어 야채와 올리브 등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식성에 맞게 소금과 식초 등으로 간을 한후 차게 하여 먹는다.

1. 파에야(paella)

파에야는 다양한 스페인음식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발렌시아 지방 음식으로 쌀과 채소, 해안지역의 해산물 등이 합쳐져 개발된 음식이다. 해물과 닭고기나

돼지고기,토끼고기를 넣기도 한다.

2. 가스파초(gaszpacho)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여름에 즐겨먹는 찬 스프로, 토마토를 주원료로 오이,

양파,피망 등을 넣고, 믹서에 갈거나 잘게 썰어 야채와 올리브 등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식성에 맞게 소금과 식초 등으로 간을 한후 차게 하여 먹는다.

3. 상그리아(sangria)

스페인에서 유래된 음료로 레드와인에 사과, 복숭아, 오렌지 등의 과일과 설탕과 같은

감미료를 넣어 만든 음료이다

빠에야(Paella) :

야채, 육류, 해산물, 쌀로 끓이는 스페인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요리

토르티야(tortilla):

옥수수와 밀가루로 만든 빵

초리조(Chorizo) :

매운 소세지

가스파초(Gazpacho) :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토마토·오이·피망·완두콩 등 여러 야채로 만든 수프

파바다 아스투리아나(Fabada Asturiana) :

흰 강낭콩과 소세지(혹은 베이컨 등)를 함께 끓여서 만든 스튜

코시도 마드리예노(cocido madrileño) :

마드리드에서 유래한 병아리콩으로 만든 스튜

하몽(Jamon) :

돼지 다리를 고지대의 신선한 바람으로 염장으로 1-3년정도 숙성시킨 대표음식.

스페인 바(Bar)에 가면 쇠고리로 걸려진 하몽을 보게 됩니다.

또르띠야 :

감자를 주로 하여 각종 야채와 햄종류를 넣어 달걀을 많이

풀어 구운 음식으로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스빠쵸(Gaspacho)로 안달루시아(스페인 남부) :

지역의 여름철 대표 음식.

토마토와 양파, 파프리카 등 각종 야채를 식초와 올리브유를 곁들여 갈은 차가운 스프

3) 주(住) 주거

플라멩코와 투우, 돈키호테, 레알마드리드, 톨레도, 세비야, 그라나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을 구성하는 대표적 단어들이다. 하지만 건축으로

스페인을 바라본다면 인식의 영역은 좀더 확장된다.

[ 지식백과]에스파냐의 문화(두산백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완성되었을 때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 높이 170m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을 올라가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구엘 공원모자이크 장식은 가우디 건축의 특징으로, 사진의 도마뱀은 용을 표현한 것이다.

카사 밀라외부는 물론 내부 역시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8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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