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1:1 질문에 답변을 드립니다.
김해김씨 공간공파 사군파 72대손 돌림자 알려주세요.
저희 할아버지 성함이 상자언자 되십니다.
혹시 돌림자 알 수 있을까요?
학교 숙제라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점수 360 겁니다.
답변 : 님은 김해 김씨 공간공파의 선조이신 감무공파 이시군요.
조부님 : 시조 69세 / 파조 19세 상(相)O자 돌림이시고,
부친님 : 시조 70세 / 파조 20세 O현(炫)자 돌림이시며 ,
님은 : 시조 71세 / 파조 21세손 재(在)O자 용(墉)O자 돌림입니다.
니은 김해 김씨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시니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에 대(對)하여
1. 시조(始祖) : 김수로(金首露)
2. 유래(由來) :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중시조(中始祖)는 수로왕(首露王)의 12세손(世孫)인 김유신(金庾信)장군입니다. 김유신(金庾信)은 가락국(駕洛國)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曾孫)자이며 무열왕(武烈王)의 딸 지소 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신라(新羅)의 장군(將軍)이자 각간(角干)인 김무력(金武力, 구형왕의 막내아들)이고, 아버지는 당대(當代)의 이름난 장군(將軍)인 김서현(金舒玄), 어머니는 진흥왕(眞興王)의 동생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이다.
시조(始祖) : 太祖王태조왕(수로)
↓
2세 : 道王도왕(거등)
↓
3세 : 成王성왕(마품)
↓
4세 : 德王덕왕(거질미)
↓
5세 : 神王신왕(이시품)
↓
6세 : 神王신왕(좌지)
↓
7세 : 惠王혜왕(취희)
↓
8세 : 莊王장왕(질지)
↓
9세 : 肅王숙왕(겸지)
↓
10세 : 讓王양왕(구형)
↓
11세 : 世宗(세종) 武力(무력) 武得(무득)
↓
12세 : 率友(솔우) 舒玄(서현)
↓
13세 : 庾信(유신)
↓
14세 : 三光(삼광)
↓
15세 : 允中(윤중)
↓
16세 : 長淸(장청)
↓
17세 : 雄允(웅윤)
↓
18세 : 擎柱(경주)
↓
19세 : 成海(성해)
↓
20세 : 挺喆(정철)
↓
21세 : 琇胤(수윤)
↓
22세 : 天授(천수)
↓
23세 : 商佐(상좌)
↓
24세 : 浩(호)
↓
25세 : 華齊(화제)
↓
26세 : 振酉(진유)
↓
27세 : 承意(승의)
↓
28세 : 天精(천정)
↓
29세 : 恒齡(항령)
↓
30세 : 洙聖(수성)
↓
31세 : 商欽(상흠)
↓
32세 : 成雨(성우)
↓
33세 : 一曙(일서)
↓
34세 : 匡國(광국)
↓
35세 : 宗栢(종백)
↓
36세 : 繡(수)
↓
37세 : 以琢(이탁)
↓
38세 : 瑞天(서천)
↓
39세 : 陽喆(양철)
↓
40세 : 是秋(시추)
↓
41세 : 鎭國(진국)
↓
42세 : 奎祥(규상)
↓
43세 : 道浹(도협)
↓
44세 : 湯雨(탕우)
↓
45세 : 萬瑞(만서)
↓
46세 : 師孟(사맹)
↓
47세 : 相宙(상주)
↓
48세 : 邦直(방직)
↓
49세 : 益銛(익섬)
↓
50세 : 柱國(주국)
↓
51세 : 晢卿(절경)-무자손
牧敬(목경)[金寧君派김령군파(京派경파) :
益卿(익경) : 監務公派(감무공파) (四君派사군파)
↓
52세 : 시(시)
↓
53세 : 진문(振門)
↓
54세 : 공간공(恭簡公) 휘 조파(諱金+兆派)는 감무공파(사군파) 항렬표를 쓰고 있습니다.
감무공파(監務公派)에 대(對)하여
1. 파조(派祖) : 김익경(金卿派)
2. 유래(由來) :
감무(監務)란 고려(高麗) 초기(初期)부터 조선(朝鮮) 초기(初期)까지 속군현(屬郡縣)에 파견(派遣)되었던 지방관(地方官)을 말하며, 감무공파(監務公派)란 감무(監務)를 지내신 조상(祖上)의 자손(子孫)들을 말합니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는 여럿이 있으나 김해김씨(金海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라고 하면 자손(子孫)들이 대단히 많은 감무공(監務公) 휘익경파(諱益卿派)를 지칭(指稱)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상태(狀態)입니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감무공 휘 익경파(監務公諱益卿派)을 별칭(別稱)으로 사군파(四君派)라고 하기도 합니다.
감무공 휘 익경파(監務公諱益卿派)의 지파(支派)로는
1) 생원공(生員公) 휘 련파(諱鍊派),
2) 도총관공(都摠管公) 휘 추파(諱錘派)
3) 생원공(生員公) 휘 구파(諱銶派),
4) 찬성사공(贊成事公) 휘 석파(諱錫派),
5) 상서공(尙書公) 휘 감파(諱鑑派),
6) 공간공(恭簡公) 휘 조파(諱金+兆派) 등(等)이 있습니다.
- 사군파(四君派) :
사군파(四君派)에서는 파조(派祖)인 김익경(金益卿)의 손자(孫子) 김진문(金振門)이 고려말(高麗末)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자 관직(官職)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等)과 함게 은둔(隱遁) 생활(生活)하여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그의 둘째 아들 김추(金錘)는 도총관(都摠管)을, 넷째 아들 김석(金錫)은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막내 김조는 세종(世宗) 때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을 거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랐으며, 직제학(直提學)을 역임(歷任)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簡儀臺), 자격루(自擊漏), 혼천의(渾天儀) 등을 만든 것으로 전(傳)한다. 특(特)히 그는 벼슬이 옮겨질 때마다 몽은제(蒙恩祭)를 올리는 충신(忠臣)으로서도 이름이 났고, 세종(世宗)이 평소(平素)의 소원을 묻자 "백년 동안 날마다 어탑(御榻 : 임금이 앉는 제구)을 모시고 금규화(金葵化) 앞에 진퇴(進退)를 엎드려 묻기를 원(願)합니다"라고 대답(對答)한 것으로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전(傳)한다.
한편 김진문(金振門)의 6세손(世孫) 김극희(金克禧)가 명사수(名射手)로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의 막하에서 전공(戰功)을 세우고 한산도 싸움에서 전사(戰死)했으며, 그의 조카 김완(金完 : 학천군 김극조의 아들)은 역전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남원대첩(南原大捷)에 공을 세웠던 그는 1624년(인조 2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評定) 할 때 벽동(碧潼)의 성(城)을 사수했던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서기 2001년도(辛巳年)에 간행(刊行)된 김해 김씨(金海 金氏) 대동세보에 기록(記錄)된 監務公諱益卿派(감무공휘익경파) (사군파)의 대동(大同) 항렬자(行列字)는 다음과 같습니다.
3. 감무공파(監務公派) 항렬표(行列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