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김해김씨 사군파 족보 문의좀.
김해 김씨 사군파 라는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대손이 기억이 안나네요
할아버지 김 o 호 호자돌림
아버지 김 영 o 영자돌림
나 김 o 식 식자돌림
할아버지 22
아버지 23
저 24 대손이고
제 자식은 25대손인가요?
예전에 74대손 그랬던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답변 : 님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 사군파(四君派) 이시군요.
아래 님의 뿌리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 사군파(四君派) 세계도를 만들어 올려드릴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에 사군파 항렬표 돌림자를 올려드릴테니 한번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부님 : 시조 70세 / 파조 20세 O현(炫)자 돌림이시고,
부친님 : 시조 71세 / 파조 21세 재(在)O자 돌림이시며,
님은 : 시조 72세 / 파조 22세손 O호(鎬)자 돌림입니다.
님은 김해 김씨 뼈대 있는 왕가의 후손이시니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글과 한문을 병용합니다. 한문에는 여러가지 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 양해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해당 항렬표에는 녹색 글씨로 표기합니다. 님도 한번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김해 김씨와 감무공파(사군파)에 대한 정보입니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에 대(對)하여
1. 김해 김씨(金海 金氏) 시조(始祖) : 김수로(金首露)
2. 김해 김씨(金海 金氏) 유래(由來) :
김해 김씨(金海 金氏) 시조(始祖) 김수로(金首露)에 관한 설화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타나 있다.“서기 42년 3월 가락국(駕洛國)의 아도(我刀), 오도(五刀), 피도(彼刀), 여도(汝刀), 오천(五天), 신귀(神鬼), 유수(留水), 유천(留天), 신천(神天) 등 아홉 촌장이 구지봉(龜旨峰) 산정에 모여 나라를 통솔(統率)할 군장(君長)을 얻기 위해 하늘을 향해 의식을 올리자 하늘에서 한줄기 붉은 빛이 내려와 함께 달려가 보니 금합(金盒)에 여섯 개의 알[卵]이 담겨 있었다. 이튿날 알 속에서 여섯 동자(童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首露)라고 이름 짓고 금합에서 태어났다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로 하니 그가 바로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김해김씨는 11세손 김무력 대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였는데 그는 신라 때 각간(角干)을 지냈고 뛰어남 무장(武將)이었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眞興王)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부인(萬明夫人)과 혼인(婚姻)하여 각간에 올랐고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딸과 결혼(結婚)하였고 무열왕(武烈王)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여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위업(偉業)을 달성(達成)하는데 공헌(貢獻)하여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죽은 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기도 하였다. 그 후 후손(後孫)들이 김수로(金首露)를 시조(始祖)로,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삼고 옛 가락국(駕洛國)이었던 김해(金海)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신라(新羅) 김씨(金氏)의 알지계(閼智系: 경주김씨)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金氏)의 양대산맥(兩大山脈)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繁盛)하여 왔다.
3. 김해 김씨(金海 金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김해(金海)는 경상남도(慶尙南道) 김해시(金海市) 일대(一帶)의 옛 지명(地名)으로 낙동강(洛東江) 하구(河口) 남서(南西)쪽에 위치(位置)하여 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文化) 중심지(中心地)로 발전(發展)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新羅)에 병합(倂合)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 梁山)의 관할(管轄)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改稱)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降等)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昇格)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改稱)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屬)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降等)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亂)을 평정(平定)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昇格)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格下)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昇格)되어 세조(世祖)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地方制度) 개정(改定)으로 김해군(金海郡)이 되었고, 1918년에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金海面)으로 통합(統合)되었다. 1931년에는 김해면(金海面)이 김해읍(金海邑)으로 승격(昇格)되었고 1981년 김해군(金海郡)의 김해읍(金海邑)이 김해시(金海市)로 승격(昇格)하여 분리 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金海郡)과 통합(統合)하여 김해시(金海市)가 되었다.
4. 김해 김씨(金海 金氏) 계파(系派) 및 분파(分派)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중시조(中始祖) 김유신(金庾信)의 후대(後代)에서 가세(家世)가 크게 번창(繁昌)해짐에 따라 148여 개 파(派)로 분파(分派)되었다. 대표적(代表的)인 것이 김목경(金牧卿)을 중조(中祖)로 하는 경파(京派)와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조(中祖)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그리고 김수로왕(金首露王)을 1세로 하여 56세손 김유공(金維公)을 파조(派祖)로 하는 판서공파, 51세손 김지서(金之瑞)를 파조로 하는 승사랑공파, 김평(金平)을 파조로 하는 양의공파가 있다. 이후의 파로는 40세손에서 김명택(金明澤)의 후손 판전공파, 김불비(金不比)의 후손 판서공파, 김만희(金萬希)의 후손 좌정승공파, 김종정(金宗貞)의 후손 숭정공파, 김천익(金天翼)의 후손 부호군파, 김을동(金乙棟)의 후손 판결사공파, 김문(金汶)의 후손 진사공파, 김이장(金以章)의 후손 충정공파가 있으며, 51세손 김운(金芸)의 후손 유수공파, 57세손 김대진(金大震)의 후손 운은공파, 54세손에서 김탁(金琢)의 후손 문경공파, 김근(金瑾)의 후손 부사공파, 김관(金)의 후손 한림공파, 김구(金球)의 후손 충정공파, 김련(金璉)의 후손 도사공파, 김현(金現)의 후손 숭정공파, 김호(金琥)의 후손 휴은공파, 김선(金璇)의 후손 장사공파와 56세손 김인서(金麟瑞)의 후손 참봉공파, 51세손 김득하(金得河)의 후손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50세손 김경신(金敬臣)의 후손 도총관공파, 22세손 김천려(金天與)의 후손 중 김덕휴(金德休)로 이어지는 첨정공파 등으로 나뉘어졌다.
5. 김해 김씨(金海 金氏) 인물(人物)
조선시대(朝鮮時代)에 1289명의 과거(科擧) 급제자(及第者)를 배출(輩出)하였다.(본관이 같고 계통이 다른 본관과 구분이 안된 숫자임)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
김극검(金克儉) : 문과(文科) 세조12년(1466) 중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김기손(金驥孫) : 문과(文科) 성종13년(1482) 친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유신(金庾信) : 문과(文科) 중종11년(1516)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명악(金命岳, 1821 辛巳生) : 문과(文科) 철종5년(1854)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세진(金世鎭,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경준(金敬濬, 1862 壬戌生) : 문과(文科) 고종23년(1886) 함경도도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빈(金○, 1862 壬戌生) : 문과(文科) 태종16년(1416) 중시 을과(乙科)
김현성(金玄成, 1542 壬寅生) : 문과(文科) 명종19년(1564) 식년시 병과(丙科)
김덕승(金德承, 1595 乙未生) : 문과(文科) 광해군11년(1619) 별시 을과(乙科)
김상환(金商煥, 1699 己卯生) : 문과(文科) 영조11년(1735) 정시 을과(乙科)
6. 시조(始祖) : 태조왕(太祖王)(김수로)에서 사군파가 있기까지 그리고 님이있기까지 유래
시조(始祖) : 태조왕(太祖王)(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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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 道王도왕(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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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 成王성왕(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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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 德王덕왕(거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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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 神王신왕(이시품)
↓
6세 : 神王신왕(좌지)
↓
7세 : 惠王혜왕(취희)
↓
8세 : 莊王장왕(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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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 肅王숙왕(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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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 讓王양왕(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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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 世宗(세종) 武力(무력) 武得(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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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 率友(솔우) 舒玄(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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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 庾信(유신)
↓
14세 : 三光(삼광)
↓
15세 : 允中(윤중)
↓
16세 : 長淸(장청)
↓
17세 : 雄允(웅윤)
↓
18세 : 擎柱(경주)
↓
19세 : 成海(성해)
↓
20세 : 挺喆(정철)
↓
21세 : 琇胤(수윤)
↓
22세 : 天授(천수)
↓
23세 : 商佐(상좌)
↓
24세 : 浩(호)
↓
25세 : 華齊(화제)
↓
26세 : 振酉(진유)
↓
27세 : 承意(승의)
↓
28세 : 天精(천정)
↓
29세 : 恒齡(항령)
↓
30세 : 洙聖(수성)
↓
31세 : 商欽(상흠)
↓
32세 : 成雨(성우)
↓
33세 : 一曙(일서)
↓
34세 : 匡國(광국)
↓
35세 : 宗栢(종백)
↓
36세 : 繡(수)
↓
37세 : 以琢(이탁)
↓
38세 : 瑞天(서천)
↓
39세 : 陽喆(양철)
↓
40세 : 是秋(시추)
↓
41세 : 鎭國(진국)
↓
42세 : 奎祥(규상)
↓
43세 : 道浹(도협)
↓
44세 : 湯雨(탕우)
↓
45세 : 萬瑞(만서)
↓
46세 : 師孟(사맹)
↓
47세 : 相宙(상주)
↓
48세 : 邦直(방직)
↓
49세 : 益銛(익섬)
↓
50세 : 柱國(주국)
↓
익경(益卿) : 감무공파(監務公派) 사군파(四君派)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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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 시(蓍)
↓
53세 : 진문(振門)
↓
54세 : 연(鍊)(생원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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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 응문(應文)
↓
56세 : 한성(漢城)
↓
57세 : 사종(嗣宗)
↓
58세 : 극보(克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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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 연(淵)
↓
60세 : 수만(壽萬)
↓
61세 : 세동(世棟)
↓
62세 : 명신(命信), 명린(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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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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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 17세 : 석(錫)○
68세 / 18세 : ○태(泰)
69세 / 19세 : 상(相)○
70세 / 20세 : ○현(炫)
71세 / 21세 : 재(在)○ 용(墉)○
72세 / 22세 : ○호(鎬)
73세 / 23세 : 영(永)○
74세 / 24세 : ○식(植)
75세 / 25세 : 炯(형)○
76세 / 26세 : ○奎(규)
77세 / 27세 : 鎔(용)○
78세 / 28세 : ○淳(순)
감무공파(사군파)
일세조(김익경)→ 시 → 진문 → 연(생원)[생원공파], 추(도총관) → 우형[도총관공파]
구 → 웅진[생원공파],석 → 희문[찬성공파],감(상서) → 태보, 태준, 태현[상서공파]
조(공간공) → 자정, 극신, 극현, 홍정[공간공파]
7, 監務公諱益卿派(감무공휘익경파)(사군파) 自監務公十7世로 起錫字 항렬표
17세 錫(석)○, 18세 ○태(泰), 19세 相(상)○, 20세 ○炫(현), 21세 在(재)○, 22세 ○鎬(호), 23세 永(영)○, 24세 ○植(식), 25세 炯(형)○, 26세 ○奎(규), 27세 鎔(용)○, 28세 ○淳(순), 29세 東(동)○, 30세 ○勳(훈), 31세 重(중)○, 32세 ○會(회), 33세 源(원)○, 34세 ○柱(주), 35세 燦(찬)○, 36세 ○基(기), 37세 鍾(종)○, 38세 ○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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