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에 대하여.... 한복

전통문화에 대하여.... 한복

작성일 2013.12.21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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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숙제로  전통문화에 대해  알아오라고 하네요... 전  한복을  알아보려고요!!!  한복의 유래 한복을  입었던 시기와 입는 시기 한복의 우수성을 알려주세요.  자세히, 꼼꼼히 적어주세요. 진지 합니다!!!


#전통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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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사회숙제로  전통문화에 대해  알아오라고 하네요... 전  한복을  알아보려고요!!!  한복의 유래 한복을  입었던 시기와 입는 시기 한복의 우수성을 알려주세요.  자세히, 꼼꼼히 적어주세요. 진지 합니다!!!

 

답변 : 아레에 올려드립니다.

 

 
한복의 유래와 역사
 
 
한복의 유래
한복의 유래와 특징

[한국 의복의 뿌리와 미적 특성의 시대적 흐름】

 

1. 한국 의복의 뿌리

우리 나라의 옷이 중국계열이 아니라 바지나 저고리를 입는 북방계 호복(胡服)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으로 아려져있다. 즉 한국인의 인종적 뿌리는 북방계 몽고인종에 관련되어 있으면 언어학에서 본다면 알타이어계에 속한다. 한국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문화적으로 북방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시초에는 북방계유목민족의 공통된 생활양식인 기마 수렵생활을 하였을 것이며 실제로 기원 전후의 한민족 역사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북쪽의 부여계(고구려) 사람들은 호전적인 기질이 농후한 기마 민족이었다. 따라서 말을 차고 사냥을 하기에 알맞은 좁은 소배의 저고리와 흘태 바지를 입었는데 이것으로써 중국이나 남방계열의 상의하상식과는 다른 형태의 복식 문화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복식은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여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것에 그거를 두고 우리 복식의 뿌리를 세계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현재 몽고나 티베트의 옷은 그 기본 양식이 확실히 우리와 비슷하다. 또 몽고의 노인우라 에서  발굴된 서기1세기경의 유적에서는 상고시대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입었던 옷과 같은 형태의 옷이 풀토 되었다. 이 노인우라 유적은 흉노족의 문화유산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서 나온 옷들은 당시 동복 아시아 사람들의 목의 전형이라고 라 호복 계통의 원초적인 형태로 여겨지고 있으며 우리 나라 복식의 원류를 살피는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북방계 양식의 옷은 남 러시아에서 몽고 동북아시아 심지어는 일본에까지도 펴져 있어 생각보다 넓게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에서 8세기까지의 일본의 복식은 우리 것과 거의 같아서 우리 나라의 가야사람들 내지는 비류 백제가 그곳에 건너가 지배층이 되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므로 복식에 있어서 북방계라는 칭호는 우리 나라 북부 지방과 봉고 중국의 북부 지방만을 칭하는 것 이 아님이 명백하다. 다만 이 지역들이 대체로 기마 수렵 유목생활을 했던 곳이어서 문화적 특성이 공통되므로 우리의 상대복식문화의 뿌리를 찾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한국복식의 기본인 바지  저고리는 북방알타이께 호복(胡服) 이라고 지칭하였다.

 

2. 미적 특성의 시대적 흐름

복식은 그 기원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발생과 동시에 장식적 계기로 인한 인간 의미적 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민족정신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복식문화의 미적 특성과 한국인특유의 미의식을 모색함은 한국복식의 전통미를 재발견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흔히들 한복의 아름다음을 예찬할 때 기와 지붕의 처마 끝같이 살픗 들린 섶코라든가 외씨 같은 버선코 우아한 배래의 곡선 등 선 자체의 미를  들곤 한다. 이러한 선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단순해 보이면서도 은은하게 흐르는 우아한 멋이 한복의 맵시를 나타내준다. 이러한 기본적인 한복의 아름다움 외에도 시대에 따라 한복의 실루엣과 생활상에 따른 미의 기준이 매우 다름도 흥미롭다.

 

1) 무풍적인 기능미의 상대 웃치레 

삼국시대의 옷치레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 시각적으로 잘 알 수 있고 몸치레는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들을 통해 당시의 찬란한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남자의 대표적인 옷차림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저고리 위에 허리띠를 매어 간단히 하고 머리에는 수건이나 삼각 현태의 고유의 모자 절풍을 섰으며 장화처럼 생긴 목이 긴 신발을 신고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옷차림은 상당히 활동적이어서 씩씩하고 호전적이었다. 는 그들의 기질을 잘 나타내준다. 고구려벽화의 남자들은 주로 이러한 차림에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냥을 하거나 의장구를 들고 행렬에 나서고 있다.

 

고구려 여인들도 평상시에는 남자와 같은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신발도 남자의 것과 같은 형태의 것을 신었는데 의례가 있을 경우에는 방지 위에 치마를 덧입어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이처럼 여인의 옷차림이 남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은 당시 복식의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 무풍적 활동선이라는 사살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매우 중요한 장식미의 하나로서 선 장식을 들 수 있다. 이는 저고리와 치마 두루마기 등의 소맷부리 깃 도련에 다른 천을 덧붙여 대서 장식한 것을 말한다. 쉽게 더러워지고 헤지는 곳에 다른 색이나 무늬가 있는 옷감을 댔기 때문에 실용적인 효과와 함께 독특한 장식 효과를 보여 주었다. 옷을 좀 더 선명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단정한 미적 감각을 풍기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사람들 복식미는 무풍적인 분위기가 있는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아름다움 선명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미는 사회상과 더불어 나타나는 복식의 중요한 문화적 기능중의 하나이면 또한 미적 특성이기도 하다. 한편 삼국시대의 몸 치례는 특히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많은 우물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글관을 비롯하여 귀걸이 목걸이 팔지 반지 과대와 요패 등에서 찬란하게 꽃핀 금속 공예와 욕을 장신구에 사용하는 식옥훙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 상고 시대의 황금 세공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디자인과 제작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었고 출토되는 양도 많으면 그 중에서도 귀걸이는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섬세하고 우아한 맛을 자아내어 가히 세계귀걸이 문화의 중심이다 또 금관은 움직일 때마다 금색의 영락과 푸른색의 곡옥이 조화를 이루며 떨리는 동적인 아름다움을 펼치는 장려한 관모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 나라의 풍습과 옷치레 몸치레 들을 겹쳐 보며 이 시대의 복식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활동적이고 기능적인 옷치레와 신라의 독창적이고 화려한 금속공예의 몸 치레 거기에다 기혼녀와 미혼녀의 구별이 있는 백제의 엄격한 사회 윤리 관념을 종합해 보면 삼국시대의 복식은 기능성에 중점을 둔  군복스타일의 복장이었으면 필요에 따라 장식을 가하여 아름다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률인 복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2) 표현미와 조형미가 뛰어난 근대 옷치레 

내우외환이 많았던 고려는 통일신라의 복식을 계승하면서 고유 복식 위에 중국의 관복을 겉옷으로 입게 된다. 여자의 경우는 폭이 넓고 긴 치마저고리를 상하계급 구별 없이 입었다. 말엽에 가서 엉덩이를 덮던 저고리길이가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고 선 장식도 점차 없어져 조선시대의 복장으로 옮아가게 된다. 조선시대는 한국인 특유의 민족성을 반영시키며 전통적인 고유양식을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복으로 발전 정착시켰다.

 

▶ 표현미 : 남존여비의 봉건적인 사회제도와 함께 조선 여인들의 정신세계엔 유교적 의례인 요소와 무속 의례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었다. 특히 여인들의 마음속에는 다산다남을 기원하는 무속이 뿌리깊이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남존여비사상 속에서 맺히고 닫혀진 삶을 풀이하여 새로운 삶을 살려는 부단의 노력을 그들의 일상생활인 복식에 도 반영하였다. 다남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을 새긴 박쥐노리개 들을 부적겸 장식으로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이 표현성 표출의 대표적인 예이다.

 

유교의 영향으로 인한 현실주의 자연주의가 복식에 나타나는 곳 역시 표현미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세에서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연을 사랑하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은의 복식이 곳곳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활옷의 예를 들어보자. 활옷은 흔례복의 하나로 화관을 갖추어 신부가 없는 것인데 문양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다홍색 비단 바탕에 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 부귀를 뜻하는 모란꽃과 연꽃 길살을 나타내는 만복지원 등의 문자 권세를 뜻하는 봉황 등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염원했던 바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또 호탕한 풍류와 청렴결백 의를 위하여는 추상같은 절개를 지녔던 선비의 자태는  예를 갖추어 의관을 정제하고 넓은 소매의 백색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표표히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자연과 합일하려 했던 남자의 멋을 느끼게 한다. 이들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복식의 중요한 문화적 기능으로서 표현미라는 중요한 미적 특성인 것이다.

 

▶ 조형미 : 숙종 때에 제작된 기사계첩을 보면 당시 서민 여성의 복장이 재미있다. 삼국시대의 긴 저고리보다는 짧고 현재의 저고리보다는 긴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요즘 출토되는 임진왜란 전후의 유의에 많이 보이는 솜저고리를 입는 듯한 모습이어서 흥미를 끈다. 혜원이 그린 조선시대 말기의 풍속화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은 매우 선정적이다 저고리는 가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짧으며 소매도 몸에 밀착된다. 따라서 상체는 지극히 작세 표현된 반면 하체는 겹겹이 풍성한 곳곳을 껴입은 위에 폭이 넓고 긴치마를 살짝 둘러 입음으로써 구름같이 얹은머리나 삼단같이 땋아 내린 머리채와 함께 우아한 자태와 율동미를 충분히 나타내주고 있다. 긴치마를 대청마루에서는 그대로 잘잘 끌리세 입었고 길을 다닐 때는 치마 자락을 저고리 위까지 추켜 여밈으로써 주름에서 늘어지는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이는 한복만이 지닐 수 있는 단순한 조형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요 다양하게 연출되는 율동미의 극치라 할 것이다. 외출할 때는 여기에다 쓰개치마나 장옷을 입어 감추면서 비밀스럽고 은근한 멋을 한껏 풍겼다. 이처럼 우대의 복식은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이면서도 입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연출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며 유방을 가리기 어려운 짧은 저고리에서 유교사회에 있기 어려운 에로티시즘이 있었으며 장옷이나 쓰개치마에서 동양적인 윤리관념이 담긴 신비로운 은폐의 미가 있었다.

 

[한국 의복의 현대와의 조화] 

현재 우리는 서유럽인의 복장이 산업화된 양복을 한복대신에 일상생활에서 입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와 석탄 공기 물에서 나일론과 같은 합성섬유 합성염료를 만들고 의복의 생산도 기계화되어 대량 생산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는 산업혁명의 결과가 만개한 시기이며 변화의 시대이다 세상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너무 완벽한 과거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고 발전의 저해요소가 된다.

 

현재 전통한복은 일상생활에서 유리되고 명절에나 생각나면 입는 예복으로 여기고 있는 세태다. 그러므로 전통복식도 현대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전통복식의 미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전통미의 재창조 작업이 필요한 단계하고 생각된다. 이러한 창조성 역시 복식문화의 기는 중의 하나로서 현대에 알맞게 생활화된 전통의상은 마로 현대와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전통복식의 생활화를 위한 구체적인 응용방안은 다음과 같이 제시 될 수 있다.

 

1. 기능미의 강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한복이 양복보다 매우 불편해서 일상생활에 서 입기 싫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래 한복은 기능적인 북방계열의긴 저고리와 바지에서 출발하였다. 고구려벽화의 인물들이 이들을 입고 말을 타고 산을 달리면서 호랑이를 잡고 있는데 서도 느낄 수 있다. 또 의복의 자연 발생적인 입장에서 보면 서양복의 바지보다 오히려 발생기원이 앞서는 매우 기능적이고 무풍적인 의복이다. 이러한 저고리와 바지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에서 착용되었으므로 전통복식미의 핵심이다 불편한 한복이라는 인식은 산업화 작업에서 서양복에 비해 한 것은 뒤졌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복수 있다. 그러므로 한복의 편리한 기능미는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능이므로 전통의상을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능이므로 전통의상을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재창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2. 표현미와 조형미에 대한 이해

재창조 작업에는 생활의식을 나타내주는 전통미의식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내면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표현미와 조형미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현대와의 조화를 이루고 미래 복식에 응용할 수 있다.

 

3. 전통 복식의 합리성 주목

서양 복식의 합리성은 입체적인데 반하여 전통 복식의 합리성은 평면적인 점이다 또한 사이즈의 융통성 직선재단의 장점으로 겹쳐 입을 수 있어 형태의 다양성과 더불어 색채 겹침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들은 현대의 레이어드룩이나 루즈룩에 활용되고 동양미로서 현대인에게 공감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전통의상에서 풍기는 동양풍의 아이디어는 서양에서도 대단한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패션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한복의 역사
고조선시대에 이미 초의생활에서 벗어나 칡과 삼으로 짠 옷감을 사용하고, 전잠과 직조의 기예가 늘어감에 따라 의류문화에 진전을 보여주었다. 그 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는 옛 사기나 고분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대체로 유 ·고와 상 ·포를 중심으로 한 복장이었으며, 여기에 관모 ·대 ·화 또는 이가 첨부되었다. 유는 저고리로서 상체의 옷이고, 고는 바지, 상은 치마로서 하체의 옷이며, 여기에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허리에는 대를 띠며, 발에는 화 또는 이를 신어 포피로서의 의복의 형태를 갖추는 동시에, 그 위에 두루마기로서의 포를 더함으로써 한대성 의복 곧 북방 호복 계통의 의복을 나타낸다. 이에 있어 유는 곧은 깃에 앞을 왼쪽으로 여몄으며, 소매
가 좁고,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오늘날의 승복 ‘동방’과 비슷한 것이었으며, 허리에 띠를 둘렀는데, 특히 깃 ·도련 ·소맷부리에는 빛깔이 다른 천으로 선을 둘렀다.

 

이후 중국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중국복식의 영향을 받아 좌임이 우임으로 변하고 소매도 넓어지는데, 선은 오늘날에도 회장 ·끝동 등으로 남아 있다.

 

이 저고리를 신라에서는 위해라고 일컬었는데, 오늘날 저고리를 우티 ·우치라고 하는 방언도 이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고리라는 표현은 조선 세종 2년 원경왕후 선전의에 라는 말로 처음 나온다. 고는 용도에 따라 폭과 길이에 변화가 있었는데, 양복바지와 같이 폭이 좁은 궁고와 지금의 한복 바지와 같은 대구고가 있었고, 오늘날의 잠방이와 같은 가랑이가 짧은 곤이 있었다. 궁고는 곤과 더불어 민층의 하의였고, 대구고는 상류층의 하의였는데, 발목을 대님으로 묶기도 하였다. 이 바지를 신라에서는 가반 또는 가배라 하였는데, 지금 우리말의 고의 ·고쟁이도 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바지라는 표현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인지가 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이 호칭은 이미 널리 사용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당시는 여자도 바지를 입는 것이 기본 복제였기 때문이다.

 

상은 여자 전용의 하의로서, 고와 상을 혼용하였다. 형태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땅에 끌릴 정도였으며, 허리 부분부터 치맛자락 끝까지 잔주름이 잡혔고, 다시 치맛자락 끝에 일종의 장식연, 곧 선을 둘러 조선시대의 스란치마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상을 치마로 표현한 첫 기록은 앞에서 든 원경왕후 선전의에 와 함께 나오는 로서, 한글로는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한중만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포는 표의를 뜻하는 것으로서, 당시에는 유와 고 위에 착용하여 양복의 외투와 형상이 비슷하였는데, 오늘날의 두루마기에서와 같이 직령 ·교임 ·중거형의 것이 아니고 직령 ·교임 ·직수형의 것이었으며, 여기에 띠를 둘렀다. 이 포를 당시에는 왕공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모두 보편적으로 착용하였다. 포를 가지고 두루마기라 한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옷의 폭을 쭉 돌아가면서 다 막았다는 데서 나온 순수한 우리말 표현이며, 주의라는 명칭은 이를 거꾸로 한자화한 것이다.

 

이러한 한복의 기본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관복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습용함으로써 고려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제도를 준용하였다.

 

중국과 한국은 정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양국의 복식도 서로 영향을 끼쳤는데, 신라의 경우는 반비 ·배당을 비롯하여 여자 포제로서의 활수의 ·색사대가 그것이다. 고려 때에는 제25대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부용국이 되면서 복식 풍습도 몽골풍을 많이 따랐는데,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으며, 제31대 공민왕 때 원나라가 쇠망하고 한족의 명나라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골풍은 사라졌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골 복식의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띠가 없어지고 대신 고름을 달게 되었다. 또 여자 화관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두리는 몽골인의 고고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 ·병자의 두 국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각심이 일기 시작하여 민족 복식을 형성한다. 이에서 두드러진 것은 남자의 포제와 입제이며, 여자의 예복과 친의류이다.

 

남자의 포제는 포의 기본형에서 고려의 백저포를 거쳐 직령→ 도포 → 창의에서 조선 말기의 주의로 발전하며, 입제는 평량자 → 초립 ·흑립으로 발전한다. 여자의 예복은 중국의 활수의 ·색사대에 속한 적의 ·대삼 등이 원삼 ·활옷 ·당의 등으로 국속화되었고, 친의류는 단속곳 ·바지 또는 고쟁이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 등으로 다양해진다. 그리고 조선 말 개화기에는 양복 ·양장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한복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졌다.

 

 

한복은 계절별한복으로 구별되는것은 누비한복과 모시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또한 일반 한복에 솜으로 누볐거나 모시로 만든 한복일뿐

궂이 계절별로 한복을 분류하자면 바느질에 따라 크게 2종류로 나뉘며

깨끼바느질과 물겹바느질이라 일컷습니다.

 

깨끼바느질은 쉽게 보실수 있는 여름철 입는 한복에 쓰이고

물겹바느질은 깨끼바느질이 나오기전 여유시접을 넉넉하게 주어

쉽게 고치고 품을 늘리고 빨기 쉽게 만들은 한복 전통의 바느질입니다.

요즘은 겨울철 두툼한 원단으로 한복을 만들때 사용하는 바느질입니다.

 

세부적으로 여성한복을 보자면

라그랑저고리, 반회장저고리, 삼회장저고리(직선곁마기, 둥근곁마기),

조끼저고리, 당의가 있는데요.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지어입을수 있는 종류이며

계절에 따라 바느질의 방법은 차이가 있을수 있겠습니다(깨끼 혹은 물겹)

 

라그랑저고리라 하면 소매와 몸판이 하나로 연결된 저고리를 일컷습니다.

쉽게 생각하자면 그냥 일반 저고리입니다. (민저고리 혹은 겹저고리)

 

반회장저고리는 깃. 끝동. 고름 3가지 혹은 2가지 색상이 다를경우를 일컷는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저고리 색상은 흰색인데 깃과 고름색상만 장색일경우, 또는

끝동과 깃만 장색일경우 등등 이런 저고리를 일컷습니다.

 

삼회장저고리라 함은 곁마기가 있는 저고리로써 쉽게 겨드랑이 사이에 다른색의 원단이

덧데어있는 경우를 일컷습니다.

곁마기. 깃. 끝동. 고름의 색이 일치하거나 (색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

곁마기가 들어간 저고리를 일컷습니다. 곁마기의 모양이 직선일 경우와 곡선일경우가

있는데 그럴때 직선곁마기. 둥근곁마기라고 흔히들 일컷습니다.

 

조끼저고리는 몸판을 조끼의 모양으로  하여 소매는 대부분 색동으로 (혹은 단일색)

만들어진 저고리를 일컷습니다.  

 

당의는 조선시대 상층신분의 여성들이 입던 결혼예복인데요 지금의

신부들도 많이들 지어입고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앞에 부채꼴로 길게

내려온 섶이 배와 등을 가리는 모양의 저고리 입니다.

 

남성들 한복은 마고자. 조끼. 저고리. 바지 로 분류되며 개량이냐 전통이냐의

차이만 있을뿐 종류는 없습니다.

 

여성들과 남성들이 함께 입는 한복으로는 두루마기와 배자가 있는데

긴두루마기와 반두루마기정도로 나뉠뿐 종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현재 입고 있는 한복의 종류였으며

조선시대나 과거로 흘러흘러 간다면 궁중예복까지 그 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공주의남자 한복!!!!

 


 
        
   

 드라마 동이 한복임. 역시 우리나라 한복이 최고네요.

 

 

조끼 저고리


왼쪽 남자분 긴두루마기. 아이들이 위에 입은것이 마고자 대신 입는 배자.

여성분이 입으신 저고리가 삼회장 저고리입니다.

 

신혼 부부의 한복

 

 

아이유의 한복

 

 

*여자 한복 사진

   

*남자 한복 사진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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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인데요 숙제 제목이 '우리나라 전통 문화(놀이, 음식, 행사, 작품 등)에 대해... 전설에 대하여 1967년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에서 임동권...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 행사에 대하여...

... 제발 많이 많이 답변 (2) 여러 고장의 전통 문화 행사 ① 세종 대왕 탄신 기념 행사 ㄱ.... 다듬이질, 한복입기 등 - 볼거리 한마당:천우각 광장 무대 * 남사당놀이패 길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