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금성)의 유적지좀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경주(금성)의 유적지좀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작성일 2009.09.13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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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빨리요.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남산지구》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했던 포석정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습니다.

보리사 마애석불(시도유형문화재 제193호)
경주시 배반동 동쪽을 향한 높이 2m의 바위벽에 새긴 마애불(자연암석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새겨진 불상).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음.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
'삼국유사'에 나오는 유명한 승려 '대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용장사지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천룡사의 옛터에 무너져 있던 탑으로, 1990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새로이 복원한 것.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함.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음.

남간사지 석정(문화재자료 제13호) = 돌우물(石井)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 동·서로 건립된 특이한 예의 두 탑.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운 것.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임.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칠불암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는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하였음은..
장인의 머리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줌.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일명 '얼음골'이라고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듦.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호)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남산 입곡 석불두(시도유형문화재 제94호)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작은 부처가 연꽃모양의 대좌에 앉아 합장하고 있는 모습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음.

경주침식곡 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2호)
경주시 내남면 백운암 동편의 침식골에 있는 이 불상은..
현재 머리 부분이 없어졌으나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경주 열암곡 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3호)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현재 머리 부분이 없는 상태.

경주약수계곡 마애입불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4호)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쏟아져 내린 골짜기를 산호곡 또는 약수계곡이라 한다.
이 계곡의 바위면에 높이가 8.6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는 머리 부분이 없어지고 어깨 아래 부분만 남아 있다.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목부분에 머리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뚫려 있다.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59호)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
이곳은 신라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큰 무덤이 있어서 삼릉계곡이라고 불리는 곳.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5호)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배리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신라 7대 일성왕(재위 134∼154)의 무덤.
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고 함.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

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경문왕의 둘째 아들인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음.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
헌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함.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음.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왕.

신라내물왕릉(사적 제188호)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었다.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높이 5.3m, 지름 2.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
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 산성으로 '신라 남산신성'이라고도 함.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지금도 큰 창고 자리에서는 불에 탄 쌀이 나온다고 함.

서출지(사적 제138호) -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
[서출지의 전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
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경주나정(사적 제245호)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

경주남산동 석조감실(문화재자료 제6호)
화랑교육원 내에 자리잡고 있는 석조 감실로, 불상을 모셔두던 곳.
최초의 인공석굴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님.

백운대 마애불입상(시도유형문화재 제206호)
경주시 내남면 마석산 암벽 위에 높이 4.6m에 달하는 커다란 불상으로 미완성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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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지구》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의 천문시설인 첨성대등이 있습니다.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부름.

[명칭 배경]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경주월성(사적 제16호)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함.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국유 연못)를 대표하는 유적.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높이는 9.17m.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사적및명승 제2호)
신라 17대 왕인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은 약 1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사적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덤의 모습은 땅 위에 둥근 봉분만 갖춘 신라 초기의 양식이며..
근처에 있는 신라 13대왕인 미추왕의 무덤과 같은 양식이다.

계림은 고목이 무성한 숲으로, 무덤의 동쪽에 있으며, 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있다.

무덤의 남쪽으로는 모양이 반달같아 반월성이라고도 부르는 월성이 있다.
이는 신라시대의 도성으로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으며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대는 신라 왕궁지역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하고 조용하게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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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능원지구》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

경주황남리고분군(사적 제40호)
경주시내 평지 무덤들 가운데 서남쪽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노동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고신라시대 무덤들로, 봉황대·식리총·금령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높이 22m, 지름 8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서북쪽 노서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현재 1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남아있음.
그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제130호 무덤은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 이루어 서봉황대라 불림.

신라 오릉(사적 제172호)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
'삼국사기'에선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는데..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 또는 사릉이라 했다고 합니다.

경주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여러 사적이 모여있는 곳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의 단위로 정한 것.
동서는 안압지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월성남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가 있는 곳까지가 동부사적지대에 해당.

재매정(사적 제246호)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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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구》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황룡사지(사적 제6호)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돌을 벽돌같은 크기로 다듬어 쌓은 탑)'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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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지구》

명활산성(사적제47호)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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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25호)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

경주석빙고(보물66호) = 얼음창고

망덕사지(사적7호)
경주 '낭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
이 절은 황룡사, 사천왕사, 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곳.

사천왕사지(사적8호)
경주 낭산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로 신문왕릉 옆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절.
경덕왕 때 향가인 '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

경주흥륜사지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고구려 승려 '아도'가 지은 것이라 전해짐.

김유신묘(사적21호)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

경주부산성(사적25호)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주사산성이라고도 함.
주사산·오봉산·오로봉산·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부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

문무대왕릉(사적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

이견대(사적159호)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음.

......................................등등 수 많은 문화재들이 경주에 있습니다. 휴ㆀ

 

 dㅋ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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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박물관 안에 비치된 문화재와 불국사·석굴암과 부속문화재는 제외 시켰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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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지구》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했던 포석정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습니다.

보리사 마애석불(시도유형문화재 제193호)
경주시 배반동 동쪽을 향한 높이 2m의 바위벽에 새긴 마애불(자연암석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새겨진 불상).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음.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
'삼국유사'에 나오는 유명한 승려 '대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용장사지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천룡사의 옛터에 무너져 있던 탑으로, 1990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새로이 복원한 것.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함.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음.

남간사지 석정(문화재자료 제13호) = 돌우물(石井)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 동·서로 건립된 특이한 예의 두 탑.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운 것.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임.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칠불암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는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하였음은..
장인의 머리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줌.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일명 '얼음골'이라고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듦.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호)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남산 입곡 석불두(시도유형문화재 제94호)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작은 부처가 연꽃모양의 대좌에 앉아 합장하고 있는 모습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음.

경주침식곡 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2호)
경주시 내남면 백운암 동편의 침식골에 있는 이 불상은..
현재 머리 부분이 없어졌으나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경주 열암곡 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3호)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현재 머리 부분이 없는 상태.

경주약수계곡 마애입불상(시도유형문화재 제114호)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쏟아져 내린 골짜기를 산호곡 또는 약수계곡이라 한다.
이 계곡의 바위면에 높이가 8.6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는 머리 부분이 없어지고 어깨 아래 부분만 남아 있다.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목부분에 머리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뚫려 있다.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59호)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
이곳은 신라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큰 무덤이 있어서 삼릉계곡이라고 불리는 곳.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5호)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배리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신라 7대 일성왕(재위 134∼154)의 무덤.
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고 함.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

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경문왕의 둘째 아들인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음.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
헌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함.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음.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왕.

신라내물왕릉(사적 제188호)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었다.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높이 5.3m, 지름 2.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
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 산성으로 '신라 남산신성'이라고도 함.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지금도 큰 창고 자리에서는 불에 탄 쌀이 나온다고 함.

서출지(사적 제138호) -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
[서출지의 전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
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경주나정(사적 제245호)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

경주남산동 석조감실(문화재자료 제6호)
화랑교육원 내에 자리잡고 있는 석조 감실로, 불상을 모셔두던 곳.
최초의 인공석굴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님.

백운대 마애불입상(시도유형문화재 제206호)
경주시 내남면 마석산 암벽 위에 높이 4.6m에 달하는 커다란 불상으로 미완성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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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지구》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의 천문시설인 첨성대등이 있습니다.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부름.

[명칭 배경]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경주월성(사적 제16호)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함.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국유 연못)를 대표하는 유적.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높이는 9.17m.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사적및명승 제2호)
신라 17대 왕인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은 약 1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사적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덤의 모습은 땅 위에 둥근 봉분만 갖춘 신라 초기의 양식이며..
근처에 있는 신라 13대왕인 미추왕의 무덤과 같은 양식이다.

계림은 고목이 무성한 숲으로, 무덤의 동쪽에 있으며, 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있다.

무덤의 남쪽으로는 모양이 반달같아 반월성이라고도 부르는 월성이 있다.
이는 신라시대의 도성으로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으며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대는 신라 왕궁지역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하고 조용하게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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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능원지구》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

경주황남리고분군(사적 제40호)
경주시내 평지 무덤들 가운데 서남쪽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노동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고신라시대 무덤들로, 봉황대·식리총·금령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높이 22m, 지름 8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서북쪽 노서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현재 1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남아있음.
그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제130호 무덤은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 이루어 서봉황대라 불림.

신라 오릉(사적 제172호)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
'삼국사기'에선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는데..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 또는 사릉이라 했다고 합니다.

경주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여러 사적이 모여있는 곳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의 단위로 정한 것.
동서는 안압지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월성남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가 있는 곳까지가 동부사적지대에 해당.

재매정(사적 제246호)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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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구》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황룡사지(사적 제6호)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돌을 벽돌같은 크기로 다듬어 쌓은 탑)'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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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지구》

명활산성(사적제47호)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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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25호)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

경주석빙고(보물66호) = 얼음창고

망덕사지(사적7호)
경주 '낭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
이 절은 황룡사, 사천왕사, 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곳.

사천왕사지(사적8호)
경주 낭산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로 신문왕릉 옆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절.
경덕왕 때 향가인 '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

경주흥륜사지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고구려 승려 '아도'가 지은 것이라 전해짐.

김유신묘(사적21호)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

경주부산성(사적25호)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주사산성이라고도 함.
주사산·오봉산·오로봉산·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부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

문무대왕릉(사적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

이견대(사적159호)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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