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달서구문화재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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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9.18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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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문화재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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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달서구의 문화재 )

 

1.분류두공부시언해-권11∼12

 

종 목 보물 제1051-2호

지 정 일 2001.08.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시 대 조선시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712∼770)의 시를 유윤겸, 조위 등이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으로 권11∼12가 합철된 1책이다. ‘두공부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두보가 공부원외랑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이며 ‘분류’는 중국 송나라의 분문집주두공보시를 참고하여 따온 것이다.

 

이 책을 살펴보면, 앞의 8장이 없는 권11에는 50편의 시가 실려있고 끝의 8장 정도가 떨어져 없어진 권12는 총47편의 시가 담겨있다. 한문으로 된 원문은 한줄, 한글로 해석해 놓은 것은 두줄로 되어 있으며, 한글에는 사성의 방점 표기가 되어 있다. 조위가 쓴 서문에는 성종 12년(1481) 가을에 한글 번역을 시작하여 그 해 12월에 완성하였다고 하였으나 그 다음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인출이 약간 늦어진 듯하다.

 

이 책이 영본 1책이며 그나마도 권11 앞의 8장과 권12 끝의 8장이 없어진 상태이기는 하나 책의 전부가 희귀한 판본으로서 한글로 표현된 유창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 등으로 볼 때 국문학·국어학 뿐만 아니라 서지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동인지문사륙-권7∼9

 

종 목 보물 제710-6호

지 정 일 2001.08.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시 대 고려시대

 

이 책은 최해(1288∼1340) 선생이 펴낸 시문집인 『동인지문』가운데 사륙변려문만을 모아놓은 것으로 권7∼9의 1책이다.

 

고려 말기의 문신 최해는 신라 최치원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 『동인지문』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은 최해가 신라 최치원에서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역대 명현들의 시문을 엮은 것으로 그 가운데 시를 「오칠」, 문을 「천백 」, 변려문을 「사륙」이라 이름하였다. 동인지문의 차례는 「오칠」, 「천백」, 「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었으며, 「오칠」 9권, 「천백」 1권, 「사륙」 15권으로 총 권수는 25권으로 되어 있다. 「사륙」에는 교서나 축문 등이 실려 있으며, 이 책은 제710-5호로 지정된 진주본과 같은 판본으로 영본이다.

 

현재 『동인지문』은 발견된 권수가 많지 않아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3.금강경삼가해-권2

 

종 목 보물 제772-4호

지 정 일 2001.08.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시 대 조선시대

 

불교의 주요경전의 하나인 『금강경』에 대한 야부, 종경, 기화 등 3인의 해설을 번역한 것으로 제2권의 1책이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도 하는데, 조계종의 근본경전으로 금강석과 같이 견실한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이다. 이 『금강경』에 대한 3인의 해설을 붙인 것으로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세조의 명(命)으로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다가 성종 13년(1482)에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승려 학조가 교정·간행하였다. 본문은 금속활자인 정축자로 찍고, 주해문은 을해자로 찍었다.

 

4.예념미타도량참법

 

종 목 보물 제1320호

지 정 일 2001.08.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시 대 고려시대

 

아미타불에게 지극한 마음을 갖고 여러가지 지은 악업을 참회하는 법회의 절차를 수록한 책이다.

 

참법이란 경전을 읽으면서 죄를 참회하는 불교 의식을 말하며,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대상으로 삼는 것을 미타참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방 극락정토에서 왕생하는 것을 바라는 신앙인들이 많아 삼국시대부터 크게 성행하였다.

 

이 책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간행된 것으로 책 끝에는 박면타가 쓴 발문이 있고, 다음으로 간행에 참여한 이단 등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시주를 담당한 상당군 한중례, 완산군부인 최씨, 상당군부인 정씨 등의 이름이 보인다. 희귀한 판본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5.무예제보번역속집

 

종 목 보물 제1321호

지 정 일 2001.08.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시 대 조선시대

 

광해군 대에 훈련도감의 도청을 맡았던 최기남이 『무예제보속집』에 일본고를 첨부하여 편찬한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 군사병법과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조는 1600년에 특히 일본을 이기려는 목적에서 훈련도감에 명하여 무예제보를 편찬하여 반포하였고, 1604년에는 무예제보에 빠진 것을 보충하여 속집을 편찬케 하였으나 이를 간행하기 전에 선조가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 때에 와서 선조의 뜻을 받들어 속집을 간행할 즈음에 김수가 일본고 4책을 얻어와서 그 가운데 일본의 지지, 토속, 구술, 검제를 약간씩 뽑아 책 끝에 덧붙였다. 번역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이때 번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국내유일본으로 조선 중기 무예와 병법, 일본고는 물론 17세기 초기의 국어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6.화원우배선의병진군공책 및 관련자료

 

종 목 보물 제1334호

지 정 일 2002.01.02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 경기 의왕시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의병장·문신인 월곡 우배선(1569∼1620) 장군의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과 그와 관련된 자료들이다.

 

우배선은 성주 화원현에서 태어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화원과 대구 일원을 중심으로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조정으로부터 의병활동의 포상으로 합천군수 등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또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화원 우배선 의병진 군공책〉은 〈의병군공책〉을 비롯하여 첩, 소지, 전령 등 12종 20건의 문서가 수록되었다. 이 가운데 〈의병군공책〉은 의병 우배선을 비롯하여 그 부하의병 88명의 군공을 적고 있는데, 이들이 올린 전공은 참살 63명·사살 604명·작살 110명으로 작은 의병부대로서의 전과로는 엄청난 수이다.

 

관련문서는 우배선의 사령교지 10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증교지 각1점, 정인홍의 간찰, 선조말엽 주요 관원들의 성명·관직명·주소 등이 적힌 각택기 등 13점이다.

 

임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특히 〈의병군공책〉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보고서로 임진왜란 때 대구 지방의 의병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7.대장일람집

 

종 목 보물 제1335호

지 정 일 2002.01.02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도서관

시 대 고려시대

 

송나라 진실이 불교 경전인 『대장경』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엮은 것인데, 고려 초 13세기 중엽에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제1권 상·중·하 1책으로 구성된 영본인데, 내용을 보면 선왕품으로부터 번뇌품에 이르기까지 총 17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판심 하단부에는 존식·정안 등의 각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판식에 있어서 송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12세기의 『능엄경』이나 『선문염송』 등과 같이 좁은 판심에 흑어미가 가늘게 이중으로 처리되어 있다. 서체도 송본과 13세기 중반에 유행한 고려본과 같은 형식이다.

 

대장일람집은 고려 초 13세기 중엽에 간행한 것으로, 현재 국내에 전하는 현존본 가운데 최고본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8.번역명의집

 

종 목 보물 제1369호

지 정 일 2003.02.0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학교

시 대 조선시대

 

송나라 법운(1088∼1158)이 불교경전에 보이는 범어음(범음)으로 한역된 단어를 유별로 정리하여 해설한 사전으로 ‘십종통호’부터 ‘사탑단당’까지 64편으로 나누어 약 2천여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각 편마다 유래와 대략적인 의미를 서술하고 하나하나 전거를 제시하며 단어의 뜻(어의)을 해설하고 있는데, 제59편인 ‘통론이제’와 같이 범어와 관련이 없는 것도 실려 있다.

 

‘번역명의집’은 처음에는 7권으로 편찬하였던 것이나 이 책은 14권으로 편찬되어 8권으로 제본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 말에 ‘소주경덕사보윤대사행업기’가 실려 있어 저자인 법운스님이 소주 경덕사의 승려로 호는 ‘무기자’, 법호는 ‘보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권2와 권7 권수제 아래에 ‘거이’, ‘거칠’, 권9 말에 ‘야이’ 등으로 천자문 함차 표시가 있어 대장경으로 편찬되었던 책을 저본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권14 말에 원나라 대덕 5년(1301)의 행업기가 붙어 있어 원나라 적사판을 저본으로 하였을 가능성 또한 높다. 이 책은 만력 12년(1584) 명나라 북장을 증보한 만력판에 편입되었다고 알려져 왔으나 훨씬 이전에 대장경에 편입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9.용비어천가 권8~10

 

종 목 보물 제1463호

지 정 일 2006.04.28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 동산도서관

시 대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임과 동시에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조선시대 악장 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책으로써, 세종조의 국어학과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계명대학교 소장 『용비어천가』는 전10권 중 권8~권10의 3권으로 자체는 조선초기에 유행한 조맹부의 송설체로 판각한 것이며, 판심에는 조선초기의 형식인 흑구에 내향흑어미가 있어 초간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장차에 있어 몇 군데 오각이 있고 수정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판본 책판의 수정을 거쳐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10.홍치십사년신유사마방목

 

종 목 보물 제1464호

지 정 일 2006.04.28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 동산도서관

시 대 조선시대

 

『홍치십사년신유사마방목』은 연산군 7년(1501)에 시행한 생원·진사의 합격자 명부이다. 진사시 일소의 주시관은 우참찬 유순과 호조참판 김심, 이조정랑 남곤 등 6명이고, 이소의 주시관은 대사헌 성현 등 6명이다. 생원시의 장원은 이수정이고, 진사시의 장원은 김안국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인물중 시관이었던 남곤과 진사방의 1등 5인중 한 명인 김안로의 성명에는 사마시 합격자 발표 이후에 죄인이 된 관계로 모두 먹으로 칠해져 있다.

 

이 책은 당시 진사시험에 합격한 문의공 김식(1482-1520) 후손가에 전해져 온 것으로, 예조에서 직접 간행해서 반포한 초주갑인자본이다. 조선전기 과거제도 및 인물관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11.도은선생집

 

종 목 보물 제1465호  

지 정 일 2006.04.28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 동산도서관

시 대 조선시대

 

『도은선생집』은 여말 삼은의 한 사람인 도은 이숭인의 시문집으로 태종의 명에 의해 변계량이 편집하고 권근이 서문을 지어 시집 3권, 문집 2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초기 목판본으로 계선이 없고 본문의 첩차의 경우에는 중복표시를 하고 한자를 쓰지 않는 등의 고려 기풍이 남아 있다. 이 책과 동일한 판본이 희귀하며, 조선조 왕명에 따라 간행된 첫 번째 문집이란 점에서 조선시대 문집간행의 흐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2.진일유고

 

종 목 보물 제1466호  

지 정 일 2006.04.28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1000 계명대 동산도서관

시 대 조선시대

 

『진일유고』는 조선 초 좌정언을 역임한 진일재 성간(1427-1456)의 시문집으로,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에 형인 이조판서 성임이 글을 모으고 대제학을 역임한 그의 동생 성현이 편집하여 세조 13년(1467)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문집의 내용은 권두에 서거정이 쓴 서문과 동생 성현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 수록되어 있고, 권1-3은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4에는 부 · 서 · 기 · 설 · 서후 · 전 · 전 등 산문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그의 친구인 이승소가 1458년에 쓴 발문이 있다.

 

특히 이 문집에는 그와 교유한 강희맹 · 김수온 · 김수녕 · 노사신 · 서거정 · 이승소 · 임원준 · 이파 등과 같은 당대의 명사들과 주고받은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 문인들의 문학과 사상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초기에 간행된 몇 종 안 되는 문집으로 조선초기 문학과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3.진천동 입석

 

종 목 사적 제411호

지 정 일 1998.12.23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진천동 470-38외

시 대 청동시대

 

입석은 큰 돌을 세워 놓은 것으로 선돌이라고도 하며, 고인돌이 있는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진천동에서 선돌을 세운 주위로 석축을 네모난 형태로 둘러 쌓아 놓았고, 선돌 앞에서 제사의식을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선돌 주위에는 고인돌이 여러 기 남아있다. 주변지역은 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으나, 유적 보존을 위해 선돌 지역을 발굴조사하여 정비하였다.

 

고인돌과 선돌의 관계 및 서로의 기능적 성격을 통해 고대 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14.신당동 석장승

 

종 목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2호 

지 정 일 1986.12.05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신당동 676

시 대 조선시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돌장승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보통 몸체에 그 역할을 나타내는 글을 새겨 그것에 따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장승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으며, 마을사람들에 의해 ‘장승비’라 불리우고 있다.

 

장승은 네모난 돌기둥을 다듬어 한 면에 얼굴을 새겨 두었다. 기둥 정상에는 모자 모양을 새기고, 얼굴에는 눈썹·눈 ·코·입을 새겨 놓았는데, 입은 약간 웃는 듯한 모습이며, 코는 약간 떨어져 나갔다. 손에는 여의주봉을 들고 있어 일반적인 장승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둥 정상의 모자 조각으로 보아 문관의 형상으로 보이나, 얼굴 각 부분의 표현이 소박하고 자비스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어 미륵형 장승으로 보이기도 한다.

 

장승은 가슴에 새기는 기록과 생김새,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는데 이 장승의 경우, 코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여의주봉을 들고 있는 외형상의 특징으로 보아 장승의 눈이나 코를 달여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속설에 따라 아이 낳기를 원하는 여자들이 복을 빌던 대상이 되었거나,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마을 전체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더불어 장승이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고, 이 마을의 터가 예전에는 절의 입구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보호와 함께 사찰 경내의 경건함을 지키는 수호역할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돌장승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 대구 지역에서 복합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장승신앙의 한 형태로 남아 있다.

 

15.영제시조

 

종 목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지 정 일 1990.05.15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송현2동 청구그린1차 APT 103-106

기 능 보 유 자 박선애

 

시조창은 시조시(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부르는 것을 말하며, ‘시절가’, ‘시절단가’, ‘단가’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영조(재위 1724∼1776) 때 학자 신광수의『석북집』「관서악부」로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였다는 시가 나온다. 순조(재위 1800∼1834) 때 간행된『유예지』와『구라철사금자보』에서는 시조의 악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 후 가곡의 영향을 받아서 시조곡조가 보급됨에 따라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다.

 

영제시조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시조창이다.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가장 많고, 뚝뚝 끊어지게 불러서 경상도 특유의 액센트가 강하게 나타나며, 씩씩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악기 없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일시적 연주를 하기 때문에 초장과 중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들기도 한다. 음계는 3음의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와 5음의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되어있다.

 

영제시조는 “영남시조가 좋다”라는 말에서 “영판좋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음악성이 뛰어나며, 점잖고 격조가 높아 궁중에서까지 소중히 여기던 시조창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지역의 시조창에 비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16.모필장

 

종 목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지 정 일 2004.06.10

소 재 지 대구 달서구 본동

기 능 보 유 자  이인훈

 

모필장은 문방사우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술을 말한다. 붓은 붓털과 붓대, 붓뚜껑으로 이루어지는데 붓털의 재료로는 양, 사슴, 토끼, 족제비, 호랑이, 노루 등의 털이 사용되며, 붓의 대는 대나무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금·은 조각을 새긴 장식붓대와 옥, 상아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붓의 제작과정은 붓의 핵심인 붓털에서 시작된다. 붓털은 털이 빳빳하고 뾰족한 것, 털이 많으며 가지런한 것, 털 윗 부분이 끈으로 잘 묶여서 둥근 것, 오래 써도 털에 힘이 있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이인훈씨는 할아버지로부터 삼대에 걸쳐 붓을 가업으로 만들고 있다. 이인훈씨가 처음 기술을 습득 할 때에는 대나무 자르기, 털 벗기기, 풀 먹이기 등을 시작하였다. 그가 만든 붓 중에는 특히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붓과 암노루 겨드랑이털을 사용한 장액붓이 우수하며 그 밖에도 청모필, 양모필, 죽필 등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모필 제작기법은 특수하고 희소하여 지역 모필 제작기법의 전승 및 연구에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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