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에 관련된 이론들좀 알려주세요

노년기에 관련된 이론들좀 알려주세요

작성일 2013.05.2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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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기에 관련된 이론들좀 몇가지 알려주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참고하세요  

 

2007년 노인복지법 개정 시,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노인전문병원은 제외되었습니다.

노인복지법(2013.04.23 시행) 의 노인의료복지시설은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공동생활 가정"입니다.

제34조(노인의료복지시설)

① 노인의료복지시설은 다음 각 호의 시설로 한다.<개정 2007.8.3>

 

1. 노인요양시설 : 치매·중풍 등 노인성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입소시켜 급식·요양과 그 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2.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 치매·중풍 등 노인성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여건과 급식·요양,

그 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3. 삭제 <2011.6.7>

②노인의료복지시설의 입소대상·입소비용 및 입소절차와 설치·운영자의 준수사항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2007.8.3, 2008.2.29, 2010.1.18>

 

출처 노인복지법

 

 

사회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유치원생 돌보듯 치매 노인 챙기는

'치매 유치원' 늘려야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5.16 03:01

 

[8]지자체 치매지원센터의 '

    유치원式 운영'에 해법 있다

 

 

'통학버스' 운영하고 낮엔

종이접기·

글쓰기·

색칠 교육 웃음 치료 등

환자 가족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

선진국도 고급 요양시설 대신 '

치매 유치원' 확대 나서

 
 
서울에 사는 주부 김선희(53)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2008년과
2010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
부모님 두 분 모두 식사를 하시고도 안 했다고 하고,
어머니는 휴지가 보이는 족족 주머니에 넣어 온 주머니에 휴지가 가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모시기로 결정했다.

치매 환자를 한 명도 아닌 두 명 돌보지만,
김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외출을 한다.
벌써 4년째다.
15일 오전 김씨는 매우 분주했다.
부모님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차에 태웠다.
그는 "
부모님을 모시고 '유치원'에 간다"고 했다.
김씨는 차로 20분을 달려 서울 송파구 치매지원센터에 도착했다.
김씨가 말한 '
유치원'은 바로 치매지원센터였다.
센터에 도착하자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부모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김씨는 "
처음엔 부모님이 낯선 곳에 가는 걸 꺼리셨는데 꾸준히 오다 보니 아주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
대학생이 된 딸과 아들이 어릴 때 다니던 유치원과 이곳(치매지원센터)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치매지원센터에 모인 치매 환자들이 색종이로 꽃 만들기를 하고 있다.
치매 환자들이 이곳에서 하는 종이접기,
색칠공부, 글쓰기 등은 환자의 뇌를 활성화해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이덕훈 기자
 
유치원생들이 등·하원을 할 때 '
스쿨버스'를 이용하듯,
치매지원센터도 센터와 환자 집을 왕래하는 전용버스를 운영한다.
김씨와 달리 직접 차를 운전해 센터에 오기 힘든 가족들이 전용버스를 이용한다.
교육 프로그램도 유치원 과정과 비슷하다.
증세가 중한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가 센터에 함께 와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센터에서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종이접기,
색칠공부,
글쓰기,
사물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손지형 강사가 "자, 그림 안에 색칠하세요.
다 하신 분들은 제출하시고요"라고 하자,
치매 환자 9명은 밑바탕에 그려진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색칠을 했다.
강사 손씨는 "
어린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처럼
치매 환자들도 센터에서 기초 교육과 함께 사회성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치매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센터를 이용하려는 환자와 가족들이 늘어 경쟁률이 높아졌지만,
치매지원센터는 중증 치매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환자 가족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기 때문이다.
요양사 오명숙(57)씨는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동안
가족들은 식당에 주로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환자들과 있을 때

꿈도 못 꿨던 자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남편이 치매 환자인 홍수경(82)씨는 "
최근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웃음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해
그간 쌓였던 답답함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한봄을(72)씨는 "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고,
가족 입장에서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치매 유치원'
프로그램으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치매 정책 전문가인 빌헬미나 호프만 박사(스웨덴치매센터 소장)는
"치매 완치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자가 가족,
지역사회와 함께 일상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라며 "
고급스러운 요양시설을 짓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던 방식은
이미 옛날식(old-fashioned)이 됐다"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50여년 동안 요양시설 건립에 초점을 맞췄던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기존의 ' 병원 입원형' 치료 정책 대신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가족과 함께 지내며 치료를 받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
환자들이 가족,
지역사회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치매지원센터의 양과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웃음치료,
치매 치료,
치매 예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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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좋은 요양원은…

 고급시설 아닌 환자들 웃고 떠드는

'생기있는 곳'  

 

  •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5.09 03:00

 

[5]

치매 가족 77% "

요양원엔 못 맡겨"…

믿고 맡길 곳 찾으려면

-좋은 요양원,

발품 팔아야 보인다 환자들 누워만 있는 곳은 금물

요양원 실제 소유주 찾아보고 치매 잘 아는 의료인인지 체크

-치매환자 가족이 꼭 지켜야할 것 추억 떠올릴 소품·이야기 준비

자주 방문하고 꾸준히 스킨십…

엉덩이·치아 상태 확인은 필수

 

 
10년 전 치매 증세가 시작된 시어머니를 부산의 한 요양원에 맡긴 주부 박모(50)씨는
얼마 전 몰래 요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미리 방문 신청을 하고 갔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던
시어머니가 혼자 벽을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 옆에는 손을 대지 않은 점심 급식판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차고 있던 기저귀에는 대·소변이 바싹 말라 있었다.
박씨는 "
요양원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며 "
집에서 간병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요양원에 모신 건데 다시 집으로 모셔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요양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치매 환자 가족 30가구 중 23가구(약 77%)는
"(가족인 치매 환자를) 절대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요양원을 꺼리는 치매 환자 가족은 열악한 요양원의 환경뿐 아니라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려다가 형제간 분란이 생긴다"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면 마치 버리는 것과 같은 죄의식이 생긴다" 등의 이유를 꼽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
집에서 치매 환자를 돌볼 여건이 되지 않는 가정이나 가족이 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매 증상이 악화됐을 경우에는 요양원 활용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6월 1271개에 불과했던 요양 시설은 지난해 말 4326개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
요양원이 양적으로 증가해 선택 폭은 넓어졌지만
요양 시설을 선택할 때뿐 아니라 환자를 요양원에 입원시킨 후에도
가족이 세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
요양원을 선택할 때에는 '
발품'을 많이 팔아 상황에 맞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의대 김희진 교수는 "
요양원 비용이 비싸다고 무작정 좋다고 할 수 없다"며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입소 환자 보호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요양원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매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인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
바지 원장'을 앉혀 놓고 일반인이 운영하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요양원은 환자들이 밤에 돌아다니거나 괴성을 지르면 무작정
수면제나 향정신성약물을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기웅(서울대 의대 교수) 국립중앙치매센터장은 "
생기(生氣)가 있는 요양원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
요양 시설은 환자를 상자에 넣어놓고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이 깨끗하고 조용하더라도 환자들이 누워서만 지내는 곳은
환자들이 서로 말도 걸고 왔다 갔다 하는 곳보다 훨씬 좋지 않다"며 "
환자들이 편안히 누워 있기만 하는 곳은 걸어서 들어간 내 가족(환자)도
 결국은 다른 환자들처럼 몇 개월 뒤 드러눕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요양원을 택했다고 해서 가족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김희진 교수는 "
환자를 요양원에 보낸 뒤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
증세가 악화되는 가장 큰 원인은
환자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적응해야 한다며 가족의 면회 등 접촉을 막는
요양원은 제대로 된 곳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
환자를 자주 찾아 엉덩이와 치아 위생을 점검하고 손을 잡는 등
스킨십을 가능한 한 많이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웅 센터장은 "
환자가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정체성을 떠올릴 수 있도록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고리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요양원을 찾을 때마다 환자가 예전에 애용하던 옷 등 소품,
환자와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같은 걸 들고 가라고 권했다.
환자가 자신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고 잊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
가족이 아무런 준비 없이 요양원을 찾으면 결국 '밥은 잘 드시느냐'
'운동은 자주 하시느냐' 등의 뻔한 이야기만 하고 돌아오게 된다"며 "
요양원을 찾기 전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물품을 세심하게 고민해서 가지고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좋은 요양원
노인요양병원 
치매간병 보험 
치매' 이길수 있는 전쟁 
요양원 비용 
 

 

 사회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치매 아내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 딴 남편

"요양원서 실습한 후

 아내 보낼 생각 접었다"

 

  •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5.09 03:00

 

다른 노인 질환자와 똑같이 보호사 1명이 8명씩 맡아…

"여기저기 대소변 묻어있고 밥 달라고 고함…

아비규환 "

배고프다는 환자에 간식 주니,

보호사는

"나쁜 버릇 들이네"

 

 

   

8일 오후 임춘수씨가 집에서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임씨는 매일 아내를 데리고 30분씩 공원을 산책한다. /전기병 기자

 
 
 
 
 
 
 
 
 
 
 
 
 
4년째 치매 아내를 돌보고 있는 임춘수(69)씨는 3년 전 17년 동안 운영하던 독서실 문을 닫았다.
아내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한시도 곁을 비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임씨에게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권했지만 임씨는 손사래를 쳤다.
요양원에 보내는 건 아내를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아내를 좀 더 잘 보살피기 위해 작년 1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임씨는 지난해 10월 한 요양원에 1주일 실습을 갔었다.

"새 건물이 크고 깨끗해서 처음 갔을 때는 진짜 우리 집사람도 여기 보내볼까 싶었어요.
그런데 좀 겪어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겉만 보고 판단했다간 환자가 동물 취급받기 십상이더라니까요."

임씨가 찾은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는 요양보호사들이 가장 꺼리는 존재였다.
치매 환자는 다른 환자와 달리 통제가 안 되지만
그 요양원은 다른 노인 질환자와 똑같이
요양보호사 1명이 치매 환자 7~8명을 담당하게 했다.
임씨는 "
대·소변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소리 지르는 사람,
밥 달라고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며 "
실습생들이 없을 때에는 침대에 묶어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요양원은 환자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채용하도록 돼 있다.
이들이 3~4교대로 일하면 보통 요양보호사 1명이 평균 7명,
많게는 10명을 동시에 돌보게 된다.
간병인 1명이 치매 환자 1명을 돌보기도 쉽지 않지만 치매 환자를 위한 예외 규정은 없다.

치매 환자의 식사 시간도 임씨에겐 큰 고통이었다.
"먹기 싫다고 해도 일단 입에 넣고 봐요.
막 뱉으면 식판을 싹 치우더라고.
좀 있다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다음 식사 때까지는 국물도 안 주더라고요.
" 임씨는 "
배고플 때마다 옆에 붙어서 밥을 떠먹여 줄 사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더라"며 "
그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는 인간이 아니라 사육당하는 동물이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요양원에서 1주일을 보낸 후 '
요양원에 보내볼까' 하는 생각을 아예 접었다고 했다.
그는 "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는 요양원이 특별히 치매 환자에게 공을 들이지 않는 한
치매 환자가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는 임씨 부부의 결혼 42주년이다.
임씨는 작년 10월 2년간 돌보던 치매 아내를 숨지게 하고 따라 죽으려 했던 남편의 이야기를 꺼내자 "
"그 기사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분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
내 남은 시간은 집사람 옆을 지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집사람은 언젠가 나도 못 알아볼 거다.
그때쯤 되면 내 삶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윤형식 기자의 설레는 은퇴, 두려운 은퇴]

  

90세 노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요즘 읽고 있는 ‘
노년 예찬’이라는 책의 부제라 할 수 있는 글귀다.
프랑스 작가가 쓴 글인데 프랑스에서 활기차게
노년을 맞이하고 있는 사례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빈곤과 노화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60~80대 여성들은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80세 이상 여성 노인들은 지난 5년 동안 우울증 환자가 연평균 8.2% 증가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우연히 손에 잡힌 ‘노년 예찬(정은문고, 옮긴이 심영아)’의 저자는
70세가 넘는 프랑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콜레트 메나주.
그는 90세가 넘는 노인들을 인터뷰해 책을 만드는 신선한(?) 발상을 했다.

90세가 넘어선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 전만 해도 불가능해보였던
90대라는 나이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느 날 아침 문득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럭 겁이 났지만 이제 온 몸에 노화가 퍼져있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찾아온 노년을 어떻게 관리할지 궁금해지자 70세를 넘긴 주변의 사람들에게
‘노인’에 대해 들어 볼 요량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다들 인터뷰를 꺼렸다고 한다.

그들이 인터뷰를 거부한 것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적어도 90살은 넘겨야 노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90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콜레트 메나주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프랑스 베테랑 외교관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도 있다.

그의 인터뷰가 실린 부분쯤을 읽고 있을 때
스테판 에셀이 95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외신이 들어왔다.

스테판 에셀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350만권이 팔린 2010년 작
`분노하라`와 2011년 작 `참여하라` 등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2차 대전 때 그는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독일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외교관이 됐으며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에셀은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에 저항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기꺼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호소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콜레트와 인터뷰에서 “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는 죽음에 대한 끌림,
죽고 싶은 욕망만이 남았다.
내일 당장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만
삶이 완결되는 단계에 이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말처럼 실천한 것 같기도 하다.

브누아트 그루는 1920년생이다.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페미니즘 월간지인
‘F.메거진’을 창간하고 직업세계의 남녀평등을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베르트랑 위페는 1918년생으로 디자이너 겸 의류사업가이다.
은퇴 후 지역문화 사업에 일조를 했으며 지금은 요양원에서 브리지 게임을 하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메니 그레구아르는 1919년생으로 유명한 방송 진행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프로그램은 정신분석을 대중화했으며 가족과 연인문제를 비롯해
동성애 같은 까다로운 성 문제를 대담하게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르네 부네 드 몽벨은 1917년생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퇴직 후
‘난민수용 연대 모임’의 의사로 활발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이들은 나이를 먹는 것은 ‘완만한 내리막 길’이라기보다는 ‘층계를 내려가는 것’처럼
분명한 단계를 느꼈다고 응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는 의미다.

1917년생인 르네 부테 드 몽벨은 “
오른쪽 안구 신경통으로 한 계단 내려왔으며
심장이 나빠 받은 수술이 두 번째 계단이다”고 말한다.
 
 
또 그들의 행동에서 느끼는 공통점은
90세가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적인 활동이다.
저작활동과 강연 등을 지속적으로,
그러나 자신의 체력에 맞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은 70세 때까지는 자신들이 노년이었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19년생인 메니 그레구아르는 아주 최근에야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끝냈으며
새로 발간한 책을 홍보하려 이곳저곳 다니르라 매우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는 “삶을 계속하기 원한다면 스스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추락하고 만다.”고 밝혔다.

그는 “노년은 정상적인 과정이며 살아내야 함을 알기 때문에
나이 들었단 사실이 슬프진 않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노년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이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기까지 한다.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에 아직도 그렇게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1920년생인 브누아트 그루는 60대와 70대 때만 해도 한물간 인사로 취급받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80세에서 90세까지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90세가 넘으면 사람들에게 일종의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폼새가 매우 유머러스하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멋진 남자를 보면 속으로
‘예전 같으면 저 남자를 한번 사귀어 볼만 하겠는데’ 중얼거린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20년 전부터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한 모임(ADMD)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80세까지 만도 영영 죽지 않을 것 같았으나
90세가 넘어서야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던 저널리스트,
방송기자,
의사였기에 이들이 행복한 노년을 누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이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조화롭게 생활하는지는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 노인들에게는 아직 매우 불행한 나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얼마 전
OECD 30개 회원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에서 노인에게 돌아가는
복지지출 비중은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노인복지지출 비중은 1.7%로 1.1%를 기록한
멕시코 덕에 꼴찌를 면했지만 OECD평균(6.8%)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이탈리아는 11.6%, 오스트리아는 10.8%의 비중을 차지했다.

65세 이상 노인가구중 중위가구소득
(전체가구를 소득 순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인빈곤율은
한국이 45.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노인빈곤율이 1.5%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는 노인 소득이 매우 불평등한데다 국가가 노인에 대한
복지지출도 적게 하다 보니 가난한 노인들이 많은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개인의 노력만으로 풀기 어려울 때는 국가나 사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한박근혜 정부의 노인복지 지출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전환을 기대한다.
윤형식 매경닷컴 대표 [email protected]

 

1987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후 부동산, 금융, 사회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2003년~2006년 베이징특파원으로 한국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과 중국의 압축성장 과정을
중점적으로 취재했다.

국제부장 부동산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는 매경닷컴 대표로 온라인과
모바일 뉴스를 총괄하고 있다. 저서 <베이징특파원 중국경제를 말하다(공저)>
<이야기로 배우는 어린이경제교실(공저)>  

 

 

 

노동

체념한 할머니의 푸념“

자식 일곱 있어도 오는데…”

 

등록 : 2013.04.22 20:15

수정 : 2013.04.23 10:33  

요양원 체험르포 (중) 여기가 모두의 미래다

 자식 집 전전, 반강제로 들어와
“총각도 나중에는 여기 있겠지”

4일 낮 경기도 한 중소도시 노인요양원에서 한 할아버지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깐 채로 잠을 자고 있다.
낙상 사고가 우려되는 노인들은 바닥에서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정국 기자 [email protected]
노인요양원의 주말은 조용한 평일과 달리 면회 오는 자식들로 시끌벅적하다.
일요일인 지난 14일,
기자가 자원봉사를 한 경기도 중소도시의 한 요양원에도 가족 열댓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김끝녀(가명·89) 할머니는 혼자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 침상의 치매 노인 가족들이 귤을 하나 건네줬을 뿐이다. 
 
이 방에는 노환으로 들어온 김 할머니를 빼곤 전부 치매 환자다.

할머니는 비닐이 쳐진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요양원은 웃풍이 세다는 이유로 창문을 반투명 비닐로 막아놨다.
그게 없다면 창밖으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으련만,
바깥은 이미 탁한 회색이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온 것은 2년 전쯤이다.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의 역장을 지낸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들 집을 전전하던 할머니는 결국 반강제로 이곳에 끌려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자랑을 많이 했다.
“키가 훤칠했어.
동네에서 김 역장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할머니의 눈은 백내장으로 인해 희뿌옇게 변했지만,
같은 방의 치매 노인들과 달리 항상 자리를 깔끔히 정돈하고 머리도 곱게 빗었다.
“원래 뭐 하셨어요?
”라고 묻자 할머니는 “
포목점을 오래 했지”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직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첫째는 어디,
둘째는 어디’ 등등 일곱째 딸까지 순서를 줄줄 댔다.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물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외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치매 증상이 심한 노인들 가운데 일부도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데,
정신이 온전한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이유는 뭘까?

 
“며느리가 빼앗아갔어.
”늘 웃던 할머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할아버지 생전에 할머니는 둘째 아들과 함께 살았다.
3년 전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등지자,
집을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고는 다른 아들 집을 전전했다.
 
1년 뒤 정든 원래 집으로 돌아온 날,
며느리는 “
어머니,
이제 전화기 필요 없으시죠?
”하더니 전화기를 가져갔다.
아흔을 앞둔 노인이 전화가 뭐 필요한가 싶어 그냥 줬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이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편하고 좋지 뭐,
신세 안 지고….
아들들이 공무원 하고 대기업에 다니느라 바쁜데 짐이 되기 싫어.
” 김 할머니는 자식들을 두둔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섭섭함을 드러냈다.
“야속하기도 하지.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 한번 입이 터지자 요양원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나는 사람하고 말을 하고 싶은데 여기는 죄다 치매 환자들이고,
밤에는 더 심심한데 그나마 요양보호사들이 잘 들어오지도 않아.”

귤을 까서 건네는 기자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나처럼 자식이 일곱이나 돼도 이런 데 들어와.
 
(기자를 가리키며) 총각들 세대야 자식도 없으니 누가 돌보겠어.
결국 이런 데 오는 거지.
나중에 오게 되면 그냥 포기해.
그럼 편해져.”

 
요양원에서 지켜본 노인들의 말년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를 깨우쳐준 김끝녀 할머니는 특별한 노인성 질환을 앓지 않았다.
단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요양원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기자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하듯 가족사를 줄줄 읊었다.
 
“내가 자식이 일곱이야. 아들 다섯명에 딸 둘.
” 기자는 처음에 치매환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주기적으로 자식의 수와 가정사를 확인했지만 그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치매는 없으시죠?
”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
치매는 무슨 치매,
정신은 30대야”라며 웃었다.


 
점심때 호흡곤란 ‘비상’
“보호자…119…산소호흡기”
병원서 돌아오자 방이 바뀌었다
가망없는 노인들의 ‘공포의 111호실’

자식 많아도 정신 또렷해도
늙었다는 이유로 요양원 내몰려



처음에는 “
시설에 만족한다”던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심을 털어놓았다.
요양원의 성의없는 돌봄 과정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남자 요양보호사들이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가는 과정도 불편해했다.
김 할머니처럼 일반 가정에서 자식들과 살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노인들이 요양원엔 많았다.
김창국(가명·96) 할아버지도 자기 방에서 매일 서예를 할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이런 노인들에게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 같았다.
 

■ 상냥함과 공손함이 실종된 ‘케어’
“남자가 참 상냥하게 잘도 먹이네.
” 9일 오전, 맹임생(가명·86) 할머니의 ‘
식사 돌봄’을 도맡은 기자에게 김끝녀 할머니가 던진 첫마디였다.
칭찬엔 이유가 있었다.
맹 할머니는 중증 치매환자다.
씹는 힘도 약해 칼로 다진 반찬을 겨우 삼킬 정도다.
요양보호사가 맹 할머니의 식사 돌봄을 기자에게 맡긴 이유도
먹는 속도가 제일 느리고 시간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1주일 정도 지난 뒤였다.

 
맹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도 ‘노동력’이 많이 들기로 소문났다.
대개 오전 11시30분부터 한시간이 주어지는 점심식사 때
맹 할머니의 식사에는 30분 이상이 걸렸다.
약을 먹이는 등 뒷정리까지 마치려면 한시간이 빠듯했다.
12시30분부터 30여분간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맹 할머니는 기피대상 1호였다.
그래서 자원봉사자처럼 노동력을 덜 수 있는 인력이 생기면
맹 할머니를 제일 먼저 맡기는 게 그 곳의 관행이었다.

 
인생의 황혼을 느리게 즐기고픈 노인들은 빠른 식사를 강요당했다.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에게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밥을 먹이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치매노인은 본인이 식사 속도 조절을 못하는데도
요양보호사가 계속 꾸역꾸역 밥을 입에 들이밀었다.
그렇게 몇 분 만에 식사 돌봄을 끝내야 요양보호사는 휴식시간을 늘릴 수 있다.
요양보호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열악한 요양보호 노동 환경이 낳은 결과다.

 
김끝녀 할머니가 기자를 칭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개 일처럼 밥을 먹이는 과정에서 상냥함과 공손함이 실종되지만
신출내기 자원봉사자인 기자는 달랐던 것이다.
“다른 분들은 이렇게 안 먹이나 봐요?”
기자가 묻자 김 할머니는 빼꼼히 열린 방문을 슬쩍 쳐다봤다.
기자가 눈치를 채고 문을 닫자 김 할머니는 대뜸 “
여기서 이렇게 상냥하게 밥 먹이는 거 처음 봤네” 하며 기자를 쳐다봤다.
성의없는 요양보호 시스템의 현실을 할머니는 또렷한 정신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119가 와도 ‘우왕좌왕’
4일 점심시간에 응급상황이 벌어졌다.
이봉래(가명·84) 할머니는 가래로 인한 호흡곤란이 자주 발생해 늘 주의를 필요로 했다.
상근하는 간호사가 “석션,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을 외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밥을 먹던 이 할머니의 기도가 갑자기 막힌 것이다.
바로 호흡 불안정 상태에 빠진 할머니를 두고 직원들은 우왕좌왕했다.
“보호자한테 연락해, 아니 119에 먼저 연락해,
아니 먼저 산소호흡기 가져와.
” 다급해진 간호사는 두서없는 주문을 마구 던졌다.
할머니에게 이내 산소호흡기가 채워졌지만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119 대원들이 도착한 뒤였다.
 
대원들이 들어와서 엉뚱한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요양원의 어느 누구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
“방을 제대로 알려주셔야죠.
” 구급요원이 역정을 내자 그제야 직원들이 이 할머니의 방으로 안내했다.
 
늘 응급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요양원인데,
응급상황 대처는 한참 미숙해 보였다.

결국 이 할머니는 응급실로 실려간 뒤 소생 가망이 없자 다시 요양원으로 실려왔다.
할머니는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임시 수용되는111호실로 옮겨졌다.
기자가 일한 보름 사이에 두 명의 할머니가 이 방에서 숨을 거뒀다.

 
9일 오전 박영희(가명·99) 할머니의 호흡도 가빠졌다.
간호사가 와 혈압을 쟀다.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붙은 팔뚝 때문에 자꾸 오작동이 났다.
“111호실로 옮기세요.
” 사무국장이 지시했다.
자원봉사로 왔던 고등학생과 기자는 박 할머니를 111호실로 옮겼다.
간호사가 이번엔 이불을 걷어 올렸다.
 
박 할머니의 발목은 힘이 빠진 채 ‘팔(八)자’ 모양으로 돌아가 있었다.
“발목 보니깐 곧 돌아가시겠네.
” 간호사가 말했다.
곧 119 구급차가 도착했고,
그날 이후로 박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만난 노인들 가운데 자식이 없거나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하는
특별한 처지의 노인은 많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인권침해와 위험요소에
노출되며 여생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이 슬픈 풍경이 우리 모두의 머지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하루하루 더해져 갔다.

이정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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