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불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려주새요~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려주새요~

작성일 2004.10.07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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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기독 차이점


종교체험을 통한 불교와 기독교의 비교
불교에서 지향하는 인간은 성불, 깨달음에 이른 인간이며, 기독교는 절대신(타력)에 의지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점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4장 48절: “하늘에 계신 너의 성부의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하다.”는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完德의 길을 가는 것이다.
完德의 길
1. 초심자의 정화의 길: “어린아이처럼”되는 것. 어린이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여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한다. 굳은 음식을 못 먹는 것처럼 젖을 먹어야 한다.
2. 진보자의 빛의 길: 어린이보다 성숙한 단계로서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빌립보서 3장15절)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達道자의 길: 영적인 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
이상에서처럼 철저하게 타력적인 신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八正道: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탐?진?치를 없애고 해탈하여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실천 수행해야 하는 8가지 길. 초기불교에서 4성제의 마지막 도에 해당한다. 깨달은 자가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에게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는가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위의 기독교의 깨달음을 얻는 3가지의 길은 성서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와 불교에서 신앙체험에 의한 이상의 과정을 살펴보자.
1. 正見: 바른 견해; 부처가 깨달은 바를 내가 받아들이는 신앙의 결단이다.
2. 正思: 바른 생각
3. 正語: 바른 말
4. 正業: 바른 행위
5. 正命: 바른 생활
6. 正精進: 의식주를 통한 바른 생활
7. 正念: 바른: 바른 기억
8. 正定: 바른 집중, 바른 삼매
苦集滅道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苦成諦이다. 三法印에서의 一切皆苦의 苦와 사성제의 苦는 범위에서 다르다. 一切皆苦는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며, 사성제의 고는 인간에 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성제의 고는 인간에게 해당된 苦이다.

욕망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가 열반이다. 욕망의 극소화의 길은 바로 팔정도인 것이다.

※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출발이 계시이고, 불교의 출발은 깨달음이 그 출발인 것이다. 그러므로 깨우침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불교이어야 한다.
※ 正見: 진리를 향해 마주 봄. 무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결단. 윤리적 규범의 기반은 먼저 근본적인 진리를 향한 인식에 있다. 그 출발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똑바로 인식하고 자각하는 데에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모두 고통을 받고 괴로움의 지배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苦의 극복을 위한 지리를 향해 눈을 뜨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결단은 올바른 견해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의 원리를 찾아낸 부처의 깨달음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 진리의 시선에 고정시키는 것이 正見이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은 肉化되어 인간 예수로 나타나고, 예수는 따라서 하느님인 동시에 인간이 된다. 예수의 생애는 끊임없이 자기 비움의 상태였고, 이 비움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일치를 이루게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면서 스스로가 그리스도임을 선언하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테오 16.24)라는 신앙에의 결단을 요구한다.
부처의 깨달음을 받아들인다는 결단이 정견이라는 의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아집과 잘못된 견해를 과감하게 부정하고 부처의 진리를 따르면, 궁극적으로 나도 부처처럼 진리에 일치할 수 있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正思: 바른 생각. ‘진리(부처의 가르침과 말씀)를 항상 그리워 함’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쏠림’ 工夫는 스승(夫)을 닮도록 다듬어(工) 나아가는 길을 말한다. 신앙이라는 것도 바로 스승을 열정적으로 닮아 가는 것이 신앙의 길인 것이다. 따라서 팔정도란 깨달은 부처의 모든 것을 모델로 하여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팔정도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므로 正思라고 하는 바른, 또는 올바른 생각은 부처의 생각에 나를 맞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正思(samyak-samkalpa): sam=함께, kalpa=맞추다. 즉, 나의 생각을 맞춤. 즉, 적극적으로 깨달은 자처럼 생각하여야 한다. 부처의 깨달음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했으면 그 진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것을 바로 正思유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한 남자가 한 여인을 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마음이 진리를 향해 쏠리는 것,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생각이다. 따라서 이 정사, 정사유는 진리에 대한 그리움으로서 진리를 내 안에 품겠다는 도덕성의 내면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sam-kalpa라는 말을 살펴보면, sam은 “함께”의 뜻을 지녔고, Kalpa는 “맞추다”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보아 정사유는 부처의 진리에 “나의 생각을 맞춤”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진리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 즉 진리에 나의 생각을 쏠리게 하여 고정시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됨을 말한다. 이것을 올바른 생각이라고 한다.
※ 예수도 마찬가지로 진리를 향한 태도로 “내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마태 22. 37)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도 정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正語(samyak-vac; 바른 언어): 진리 안에서 말의 참뜻을 살핌. 하이데거는 “말이란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였다. 즉, 말이 우리를 기르고 담는 그릇이라고 주장한다. 부처의 진리에 맞추어서 말의 참뜻을 깊이 자각하여야 하고, 다시 진리를 깨닫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써 말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진리를 향한 쏠림과 그리움의 표현으로서 하는 말은 올바른 말이 아닐 수 없다. 구조자의 기도나 선교는 명백한 진리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이다. 자신이 신앙으로부터의 체험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正言이다. 나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단순히 말을 줄이면 된다.

※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요한 1.1)라는 구절에서 말씀은 로고스를 의미한다. 로고스는 불교의 法(Dharma)로 이해될 수 있다. 부처의 깨달음은 법, 즉, 空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이 하느님 그리고 말씀과 일치할 수 있는 부처의 敎說을 찾을 수 있다. “법을 보는 이는 나를 보고, 나를 보면 법을 본다. 그것은 법을 보는 것에 의해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나를 보는 것에 의해 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나를 보는 자는 하느님을 보는 자이며, 나를 보는 것은 곧 로고스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여 두 종교간의 正言에 대한 말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처는 법을 발견하고 실현시켰다. 부처와 동일시되는 것은 부처의 자아가 완전히 空의 상태가 된 것을 말하며, 여기서 일체가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眞如이다. 결국 正言이란 나도 부처처럼 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다.

正業(samyak-karma-anta): 늘 깨어있는 상태에서의 행위. 정언의 正語가 완전하게 행위로 드러나고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진리를 품고 이루어지는 행위야말로 바른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행위는 윤회를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업으로 남지 않게 된다. 즉, 바른 언어(부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가 완벽하게 행위로서 연소되는 것을 말한다.

※ 신약에서 “흥청거리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닥쳐올지 모른다.”(누가 22.34)라고 하여 항상 신(진리)을 향하여 마음을 올바로 한 상태에서 행위를 하라고 한다.

正命(samyak-ajiva): 바른 생활, 바른 직업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 종교적으로 의식화된 생활. 삶이란 중생들이 연기를 깨달아 가면서 살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와 대비시킬 수 있겠으나, 기독교의 사랑은 이웃이 곧 너라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의 信行이나 사랑의 실천은 천국의 보화를 쌓는 것과 같아 사후에 그것으로 상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자비는 自他불이에 기반을 둔 실천이기에 기독교의 사랑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연기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자타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의존(自他不二)에 의한 삶이기 때문이다. 한편 불교는 一微塵中含有十方 아주 적은 존재도 주변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의존(연기)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므로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모든 존재(생명이 있든 없든)와 함께 살아지는 지혜로운 無分別의 智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正命을 강조하는 것이다.

正精進(samyak-vyayamo): 바른 노력, 자신의 해탈뿐만 아니라 곧 이웃과 사회를 위한 노력과 관심. 종교적으로 의식화된 생활은 자신의 해탈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참다운 봉사와 깊은 관심 그리고 그에 맞는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정진은 그렇게 올바르게 방향을 잡고 노력함을 뜻한다. 지금까지의 5가지 연결고리가 옳고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당위적인 것이며, 열반으로 이끌어 가는 길이라 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바로 정명에서 보았듯이 이웃을 향한 자비의 실천에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노력이란 바로 깨달음을 향한 노력이고, 그 노력은 자비의 실천을 의미한다. 즉, 지혜의 실천(반야의 실천)이 자비인 것이다. 자비는 용서와 관용이라는 것과는 다른 지혜의 다른 한 면인 것이다.

※ 성경에는 탈란트(돈의 단위로서 집안의 3명의 노예에게 돈을 맡긴 후 나중에 그 돈의 변화된 량으로 주인의 충성을 증명하는 교훈)에 관한 의 비유가 있다. 그 비유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을 잘 발휘하고 게으르지 말기를 경고하고 있다. 종교적 열정으로 예수에 귀의하려면 그냥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여 실현하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정정진의 의미일 것이다.


正念: 바른 기억, 진리를 향한 열정의 현재성. 종교적 실천에 의한 나의 변화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here and now). 삶은 현재에서만 살아지는 것이지 과거와 미래는 없는 것이다. 즉, 지금 실천되고 있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 늘 깨어 기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그와 함께 신앙의 현재적 실천을 강조한다. 종교적 진리가 갖는 현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正定(samyak-samadhi): 바른 집중, 바른 삼매. 종교적 체험의 면에서는 진리의 체현이다. 바른 삼매라는 의미는 진리와 일치된 삶을 뜻하는 것이고, 열반이다. 열반은 살아있는 동안 여기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진리의 체현된 모습이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체현을 통한 무한한 자유이고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


이와 같은 비교는 교리적 해석으로는 의미가 없을 것이지만, 종교적인 체험을 통한 비교로서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Winston King의 기독교와 불교의 대립적 비교
1. 궁극적 실제(ultimate reality):
기독교: 인격신(personal God); 유태인의 가부장적 신, 萬有를 창조하고 개개인의 삶에 간섭하는 신이다. 태고에서 출발한다.
불교: 비인격적 과정(impers7onal process): 인과율에 따르는 法(Dharma). 1) 인과율, 2) 인연화합, 3) 상의상관성, 4) 법주법계성. 출발은 현재가 강조된다.
2. 세계사의 의미
기독교: 신에 섭리에 의하여 목표를 향해 진행되어져 간다. 증명이 불가능하다.
불교: 生住異滅: 만물은 생긴 뒤 머물고, 움직이며, 멸망함을 반복한다.
불교의 시작은 현재의 '나'이므로 眼(色), 耳(聲), 鼻(香), 舌(味), 身(觸), 意(法) 즉, 인식의 주체와 대상 즉, 六根 + 六境 = 12處(12入)로서 이것은 세계(一切)이다. 그럼으로 현재의 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A. Schopenhauer: Hegel과 동시대, 같은 학교의 교수였다.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위에서의 불교의 일체와 같은 사상을 기술하고 있다. 그의 세계관은 신의 섭리에 의한 창조를 부정하고 오직 나의 의지와 표상으로서 인식되는 세계를 말하였다. 1, 2차대전이 종전된 후 대두한 실존철학에서 싸르르는 “세계의 운명은 인간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인과율을 인정하고 있다.
세계(12處)의 속성은 바로 三法印(諸行無常 一切皆苦 諸法無我) 즉, 3개의 모습에 대한 객관적 주관적 인식인 것이다.
諸行無常: 변화를 통해 모든 것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諸行은 바로 12處, 세계인 것이다. 인식의 주체인 六根과 대상인 六境이 다 함께 머무르지 않고, 항상 변하고 있다. 여기에 변해 가는 과정은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一切皆苦: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이 시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 苦는 일체의 생존을 위한 “힘들이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諸法無我: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참 나”를 발견하기 위한 것을 찾는 것이다. atman이 아닌, 모든 존재가 고정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연기에 의하여 합성되어진 여러 개의 나인 것이다. “딸기잼에는 딸기가 없다.“

3. 인간성에 대한 의미
기독교: 인간의 본질로서 개성을 존중하고, 유일한, 그리고 일회성인 존재로 인식
불교: 변치 않는 atman이 아닌, 개성이 아니라 五蘊이다. 色(地水火風), 受(emotion), 想(intelligence), 行(behavior, 의지), 識(spirit, 영성) 즉, 고정된 실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五蘊의 작용이 서로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인 것이다.
4. 구원에 대하여

기독교: 창조신이 인간에 개입하여 인간을 구원
불교: 자신에 의한 구원. 탐, 진, 치의 무명을 타파에 의하여 자신을 자신이 구원.

▶ 수행방법 상에서의 구분

기독교: 어떤 대상(신)에 대하여 찬송, 기도, 참회, 감사의 행위로 구원받는다.
불교: 자력에 의하여 무명을 끊는 방법(명상: meditation)으로 열반(Nirvana: 죽은 후 영성개념이 아닌, 삶에 있어서 탐, 진, 치를 소멸해(zero의 상태) 나가면서 사는 순간이 열반)을 얻는다.

▶ 윤리적인 면에서의 구분

기독교: 구체적, 활동적이며, 사랑을 강조(피조물이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이므로 사랑이란 구원에 전제조건이 된다.)
불교: 무집착의 윤리.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남. 자비란 나와 인식되어지는 대상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므로 이 관계가 空한 연기에 의한 것을 아는 것이 지혜(반야)이며, 이 지혜가 실천되는 것이 자비이다.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滅故彼滅 此無故彼無(잡아함경) 이므로 이것은 自他不二 物我同根 同體大悲이다. 이것은 상의상관의 관계이다.

▶ 적극성과 소극성의 면에서 구분

- 기독교: 적극적이다.
불교: 부정적이다. 불경에 不, 無字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包越: 유와 무의 현실을 떠나서 함께 포함하여 초월되어 중도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영혼에 대하여 유의 입장에서는 윤회를 통하여 인정하고 무의 입장에서는 無我이다.
우리의 세계에서 하루에 20만 에이커(8만 정보, 1정보는 3,000평)의 열대우림이 파괴, 하루에 36천에이커의 땅이 사막화로 불모지가 된다. 하루에 방출되는 유독물질은 13백만톤으로, 오존층 파괴, 기후변화, 산성비로 수자원 오염을 일으키며, 그리고 하루에 130여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하루에 4만5천명이 기아로 죽어간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 현실적인 욕망의 극대화에서 비롯하는 것일 것이다.
- 불교는 욕망의 극소화가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Robert Bellah: 종교 사회학자. 종교와 사회학의 이상적인 관계는 종교가 초월적인 이상세계를 지향하면서도 현실세계의 의미를 인정하여 종교적 이상을 현실에 실현시키려 하는데 있다고 주장.
- 서구의 가치는
1) 인간중심주의적 윤리(Ethic of anthropocentrism)로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는 절대적 가치이며 이외의 가치는 모두 도구적 가치라고 하였으나, 이어서 2) 동물중심주의적 윤리(Ethic of animocentrism)는 동물의 삶을 인정하여 인간의 윤리범위에 넣고 있다. 그리고 나서 3) 생물중심주의적 윤리(Ethic of biocentrism)로 발전하여 왔다. 여기까지가 서구의 환경에 대한 윤리의식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4) 우주-생태적 윤리(Ethic of Cosmo-Ecocentrism)를 언급하고 있다.
梵網經에 “모든 흙과 물은 모두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모두 다 나의 진실한 본체이다. 그러기에 늘 방생하고 歲歲生生 생명을 받아 머무는 법으로 다른 사람도 방생하게 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인간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고 모든 중생(무생물 포함)에 베풀어지는 것이다.

▶ 환경보살이 지향해야 할 6바라밀의 완성

布施: 환경보살이 완성해야 할 삶의 양식으로서 布施는 준다는 말이다. 무엇을 준다는 것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 홀로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알기 때문에 나에게만 머물고 있지 않고 때가 되면 흘러갈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 바로 보시라고 말할 수 있다. 보시는 마치 흐르는 물이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 것처럼, 모든 관계들이 살 수 있도록 흘러가게 하는 생명의 원리인 것이다. 보시를 통해서 모든 존재와의 연대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忍辱: 인간의 욕망을 소유의 방향으로만 투사시킬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존재하고 있는 모든 존재를 향해 열려있는 삶으로 지향하는 보살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데 이 욕망의 절제를 환경보살이 가야할 두 번째 양식인 忍辱이라 할 수 있다.
持戒: 이렇게 자신과 전 존재가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고, 이 대전제 앞에서 자신을 극소화시키는 삶을 지킬 줄 아는 것을 持戒라고 할 수 있다.
精進: 이러한 생태적으로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환경보살은 쉼 없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禪定: 이러한 노력으로 환경보살은 마침내 모든 존재와 원만한 관계성을 회복하여 평화로운 삶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禪定이라 할 것이다.
知慧: 이와 같은 5가지 환경보살의 완성되어져야 할 삶의 양식은 모든 존재가 나와 뗄 수 없는 관계성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知慧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一切衆生 實有佛性).

출처; 금강대 최종석교수의 자료집




불교기독 공통점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은 윤리와 도덕적인 부분인데 윤리와 도덕적차원은 다 같습니다.
모든 종교들의 교리와 행위에 있어서 윤리와 도덕적차원은 거의 같습니다.

인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효도하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런 말은 모든 종교가 공히 하는 말입니다.

십계명으로 말하지만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게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한 계명인데 하나님께 대한 계명만 타 종교와 다르고 사람에게 대한 계명은 모든 종교와 같다는 말이 됩니다. 참고로 불교도 십계명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종교. 혹은 철학의 목적은 같습니다.좀 더 나은 삶의 영위.사랑 평화 존중 자비 희망 기쁨 행복 이를 향한 인간의 너무나 본능적인 목마름,,,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다같이 어울어지는 이상적인 세계.그것을 모든 종교는 바라고 있습니다. 이 중요한 사실 하나만 가슴 깊이 이해한다면 공통점에 대한 이해는 충분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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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은요.

우선 기독교는 오직 다른 생물들보다는 인간을 더소중히하는것이고요 또 인간이

죽으면 기독교 생활을 잘했던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으

로 간다. 이런것등이있어요.

그리고또 불교는 인간과 동물,식물 모든 생물을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래서 어떤 스님들은 절대 고기를 먹지않습니다.그리고 인간은 죽으면 다시 태어

난다고 믿죠 즉 전생이 있다고믿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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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불교,기독교,이슬람교의 차이점공통점알려주세요 ㅜㅜ A4용지 1장써야하는데 ㅋ 지금 차이점 : 불교 - 기독교 - 이슬람교 - 공통점 : 이런식으로 알려주세요...

불교기독교공통점과 차이점

불교기독교차이점을 간략하게 가르쳐 주세요 특히 석가모니와 예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얘기해주시면 고맙겟습니다 그냥 사전같은 데서 끌어 오시지 말고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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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5학년인데요 숙제를 하고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공통점을 알아오래요... 좀알려주세요 빠른 시간내로요 부탁드립니다 꼭 빠른 시간이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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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그대로 기독교와불교,이슬람교의 특징,공통점,차이점좀설명해주세요.. 세계의 종교는 크게 2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1. 유일신 계열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2....

불교의 공통점 차이점 알려주세요!

... ㅠㅠ 유교와 불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공통점,차이점을 쓰라는 건 따로따로 쓰라는 걸까요..? 급해요ㅠㅠㅠ 내공 겁니다 유교와 불교는 동아시아...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공통점요...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공통점 좀.. 자세한 내용이나 필요한 자료는 출저에 올려놓운 곳에 가보세요^-^ 종교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종교를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불교,기독교,이슬람교의 차이점과...

공통점과 차이점알려주세요 ' 3' 기독교와 이슬람 교도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반면에 불교는 계열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써만 믿고 고대...

의미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요.....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의미와 기독교의 구원에 의미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간단하게 말고 자세하게 부탁합니다.. 불교는 자신만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