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작성일 2016.06.23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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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둘 다 증산 계열 종교로 알고는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니던 동네에 대순진리회 회관이 있었고

지금 다니는 대학에 증산도 동아리가 있는걸로 기억이 나

그 차이가 뭘까 궁금해 질문 올립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참 진리를 찾아나서는 여정


多有曲岐橫易入이나  다유곡기횡이입  非無坦道正難尋이라  비무탄도정난심
 굽은 길과 갈림길이 많아 죽는 길로 쉽게 빠져드는데 탄탄한 대도의 살 길이 없는 게 아니요 바로 찾기가 어려울 뿐이니라. (증산도 도전 6:61:2)


구도를 향한 머나먼 과정에서 이런 저론 종교를 전전하기도 하고 여러 진리를 찾아서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참진리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도의 과정을 겪는 그대여 ~ 진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의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서울 심○○ 男23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게는 살고자 하는 뜻이 없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안락해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윤회야말로 극한의 고문이요, 설령 아무리 부유하게 태어난다 하여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에 무상함을 느꼈고 회의주의에 빠져,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고 삶의 이유 또한 모르겠으며, 이런 말세의 세상에 살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왜 예를 지켜야 하고 왜 진로를 설정해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며 왜 남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것들이 왜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철학과에서는 말장난이나 하고 있고, 종교는 원체 믿음이 가지 않으며, 결국 이렇게 고뇌에 빠져 살아갈 것이라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려 마음이나마 편해지고 싶었다. 당시 우울증도 겹치는 바람에 근 반년은 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서두가 무척 길어질 것 같지만, 우선 대ㅇ진리회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자리를 계기로, 지금 이곳에 오기까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였고 그때의 심정은 어떠하였는지를 돌이켜보아 앞으로의 방향에 참고함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ㅇ 시절 첫 치성을 모시고 그쪽에서 내게 이곳, 포덕소에 며칠 간 나와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에, 썩 거부감도 들었지만 호기심도 있고 짧게는 21일이라는 말에 잠시간 새로운 세상을 구경해볼 겸 꾸준히 다닐 것을 기약했다. 그렇게 다니던 것이 언 두 달이다.


치성 당일 정무란 사람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ㅡ나는 유별나게 사람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합리적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막연한 느낌으로써, 하지만 그 느낌은 나에게 한정해서 만큼은 잘 들어맞는다 생각하고 있다ㅡ처음엔 막연한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가르치는 정무는 영락없는 뱀의 눈을 하고 있었다.


최초로 난법 얘기가 나왔을 때는 ‘그저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교화를 2번 이상 듣고 보니 문득 여러 의문점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대ㅇ진리회에 관한 여러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선 인터넷으로 대ㅇ진리회에 대해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우주 1년 도표를 보았다. 순간 퍼뜩 ‘이거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막연히 느낌만을 신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이것이 개벽이다』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글을 접하였고 바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난법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에 불이 붙은 것이다. 물론 쉽게 성공할 것이란 생각은 못했지만 적어도 ‘난법자’란 ‘사람’이 꾸민 일이요, 결국 ‘인간적인 결점’이 있을 것이기에 결국 '인간적인' 능력으로 판단 가능할 것이란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개벽이다』를 읽다보니 이제까지 대ㅇ이 했던 말들은 전부 이 책 속의 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문득 첫 교화시간에 정무가 내게 보여주었던 자료가 떠올랐다. 그녀는 내게 상제님 탄강에 대한 여러 예언서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여자>의 치마폭을 벗어나면 다 죽는다'란 구절이다. 유독 이 부분이 신경이 쓰여 정무에게 이것이 무슨 의미냐 라고 물었더니 정무는 그저 ‘인터넷에 함께 있는 자료여서 프린트 해 놓았다’고 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정무와 선무의 말도 제각각이었다. 정무는 어떤 사람이 신을 보게 된 이래 그 흉측한 모습에 미치광이가 되었다라고 말한 반면 선무는 나와 마주하고 있는 자리에서 대뜸, '니 옆에 예쁘장한 여자 귀신이 앉아 있다'고 말을 하였다. 사실 선무의 말 자체도 믿음이 안 갔던 것이, 예전에 귀신을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찬양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내가 다니던 포덕소가 한 차례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사 첫 날 토지신께 치성을 모신다 하여 대문 앞에 잡귀를 쫓으려고 팥죽을 내어 놓고는 나중에 하는 말이, 당일 치성하는 날 어떤 신도는 포덕소 안으로 엄청나게 많은 신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하루는 정무가 말하길 ‘<해마>가 구체화 된 것은 체 3년이 되지 않는다. 내가 10년 공부를 하였는데 초창기에는 해마도 없었고 해서 엄청 고생했다. 지금 하는 수도는 차려진 밥상에 밥을 먹기만 하는 수준이다.’라고 하였다.『전경』에 보면 상제님 말씀하시길, "나는 해마를 위주로 하나니…."란 구절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선무에게 '이 해마가 지금 그 해마가 맞느냐?'라고 물었더니 그것이 맞다고 하여 모순을 보였다.


또한 정무는 교화 혹은 나와 주문을 읽으며 간혹 졸곤 하였는데 그 이유가 ‘지금 너의 기운이 탁해서 졸음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무보다 기를 더 잘 느껴야 할 선무는 정작 날 교화하면서 무척이나 팔팔하였고 그 옆에서 정무가 앉아 졸고 있으면 선무는 그런 정무를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본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러함에도 함부로 대ㅇ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대ㅇ에게는 신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진리야 엉망이라도, '신비'란 진법에야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물론 직접 겪은 바는 없지만 인터넷에서, 대ㅇ 신앙인으로 보이는 어떤 신도가 자신이 겪은 비상식적인 경험을 말하거나 또한 어떤 일반인은 대ㅇ 도장에 무단 침입하려 했다가 저주받은 것 같다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글을 심심찮게 보곤 하였다.


조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대ㅇ에 대한 과거 터무니없는 범죄 행각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집단 가출 사건, 구타, 금품 갈취. 혹여 그래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금릉 방면'은 정무 말마따나 박한경이 죽은 이래 나타난 (대ㅇ 내에서의) 난법자가 걸러지고 남은 진짜 진법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조사를 계속하던 중, 증산도에서 대대적으로 대ㅇ을 비판하는 글을 보았다. 그들은 박한경 사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대ㅇ의 뿌리격인 조철체를 문제 삼고 있었다. 만일 조철제가 부정된다면 그 줄기 격인 박한경이나 지금의 수많은 대ㅇ의 방면들은, 설령 금릉이 아무리 청렴결백하더라도 결국 난법이 되는 것이다. 뿌리가 썩었는데 줄기가 곧기 만무하다.


나의 초점은 조*제에게 맞춰졌다. 조*제의 상제님 유골 도굴 사건. 두 명의 상제. 다른 주장들이야 증산도에서도『도전』을 근거로 말하는 것이기에 함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두 명의 상제라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ㅇ 측의 주장은, 상제님은 양의 공사, 옥황상제인 조철제는 음의 공사를 보아서 상제님의 공사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옥황상제의 공사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적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긴 한데, 대ㅇ에서 첫 날 정무가 했던 말이, ‘세상은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1%도 안 되며 그 1%는 나머지 보이지 않는 99%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물 위의 1%의 빙산을 옮기려면 물 밑에 보이지 않는 99%를 옮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 말마따나 눈에 보이는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99%의 음적 세계가 먼저 변해야만 하는데, 그럼 상제님은 눈에 보이는 1% 세계만 공사 보신 것이요, 옥황상제는 99%의 세계를 공사 보았다는 것을 뜻하며, 그럼 대체 누가 참 하나님이요, 애당초 눈에 보이는 1% 세계의 변화는 99%의 차원의 세계가 변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뿐, 대ㅇ에서 펼치는 주장은 대게 앞뒤가 맞는 것이 없었다.


또 다른 의문점은, 정기 치성 때 회관을 가보니 대ㅇ의 신앙인들에게서 좀처럼 개개인의 색깔을 느낄 수 없었다. 도를 닦은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맑아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생각이었고 그럼에도 각자의 개성은 살아 있어야 함이 옳다고 보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순해 보이긴 하여도 뭔가 안개 장막이 쳐 있는 것 같이 뿌옇다. 사람들은 멍~한 듯 하고, 분명 열심히 수도를 하고는 있는 것 같지만 뭔가, '좀비'같았다. 개성, 자기 색깔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의심이 점점 하늘을 찌르고 있던 중 드디어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진리의 체계는 증산도가 맞지만 진법은 대ㅇ일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연달아 두 번의 꿈을 꾸었다.


첫 번째 꿈은, 나를 가르치는 정무가 내 집에서, 내 방에서 내게 교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증산도 생각에 빠져 있었고 그런 내게 정무는, '너는 증산도 생각만 한다!'라고 화를 내며 집을 나가 버렸다. 꿈에서 깬 내게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마치 내가 상제님의 도로부터 버려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잠들었다.


두 번째 꿈은, 한 식당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문득, '아! 이 사람들은 증산도 사람들이다!'라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다가가 한 어르신께 여쭈었다. 그분은 직책이 높다기 보단 연륜, 가장 점수이 깊어 보이는 분이었다. '증산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분은 나를 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무시를 하였다. 나는 '대ㅇ에 있었다가, 증산도를 알고 싶어 왔습니다.'라고 하였더니 그제야 '호오~'라 하시며 '그럼 내가 내일 네 집으로 가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럼 제 부모님은 어쩌구요?'라고 하니 그 분은 '내가 얘기하면 되지'라며 나를 안심 시켰다. 그리고는 훌쩍 식당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면서 내일 '?시(時)'에 가겠다고 하였는데,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天時’로 들은 것 같다.


그분들에게서 뭔가 신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분들은 참으로 눈이 선하였고 개개인의 색깔도 무척 강하였다. 피부색은 회색이었고 그분들의 몸 주위엔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으며, 단언하건데 그들은 절대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신도 아닌 것 같다. 그 중간의 묘한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그 꿈을 꾼 이래, 다음 날 하루 종일 기다렸다. 정말로 누군가 집에 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가슴 졸이며 한 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이 대ㅇ진리회 주말 치성일로 처음으로 회관을 가보았다. 치성을 마치고 전철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오늘은 평소 안 가본 길로 가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평소 내리지 않던 역에 내린 바로 그 찰라, 젊은 두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학생인데요, 설문을 하려는데, 성공이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10분정도만 얘기를 들어보겠느냐' 이것은 나를 대ㅇ진리회로 이끌었던 전무가 내게 처음으로 던진 말과 매우 흡사했다. 물론 당시 전무는 단독으로 말을 걸어 왔지만 이들은 인터넷에서 말이 많던, 대ㅇ이 포덕 할 때 쓰는 전형적인 방법인, 2인 1조의 길거리 포덕 방식이었다.


느낌이 왔다. '아 이것들 대ㅇ에서 왔구나' 나는 조용히 말을 건냈다. '지금 막 회관에서 오는 길입니다'고 했더니 그들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라며 시치미를 땠다. 그래서 '대ㅇ 말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여자는 알아 듣기라도 했는지 '아뇨, 전혀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말은 그랬지만 표정을 보면 한 마디로 ‘뜨끔.’ 만일 진심으로 몰랐더라면 적어도 '그게 뭐냐?'라는 반문 정도는 해야 정상이다. 그토록 사람 많은 곳에서 속삭이듯 내뱉은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도 수상하고, 그 상황에서 의아한 표정도 아닌 피식 하는 너털웃음을 뱉었다는 것도 역시 그들이 대ㅇ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2인 1조로, 한 명은 경험자로 앞에서 이끌어 주며 시범을 보이고 뒤에 한 사람은 이제 막 포덕에 나서 현장에서 배우는 초심자인 것이다.―한 가지 웃긴 사실은, 내게 말을 걸어온 여자의 눈빛이 날 가르쳤던 정무와 완전 판박이라는 것이다. 그 여자 또한 뱀의 눈을 하고 있었다.―어쨌든 그렇게 헤어졌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무리 기운이 탁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ㅇ에 두 달 가량을 몸담았는데 하물며 내 뒤에 ‘심외수(沈外修)’를 못 알아볼까?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정무에게 ‘<포덕>은 어떤 원리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정무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포덕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두가 운자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나 붙들고 말을 건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오직 선택받은 자에게만 권하게 된다고 하였기에 이미 모순이요, 인터넷에 어떤 대ㅇ신자가 말하길, 포덕을 할 때에는 신명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주장과 다르기에 모순이며, 설령 참으로 신명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내가 두 번이나 포덕 당할 이유가 없었기에 모순이요, 만일 신명이 응하지 않고 진정 아무에게나 포덕하는 것이라면 대ㅇ에겐 신명이 붙어있지 않는 것이기에 그들은 그저 상제님을 화두로 뭉친 사교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혹시 몰라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그럼 포덕 당하는 대상이 겹치기도 하나요?'라는 질문에 정무는, 나 같은 '초심자'는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은 척 보면 누가 신자인지 다 알아본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미 모순이다. 내게 말을 걸었던 사람은 초심자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한 '경력자'로 이미 두 달 가량을 대ㅇ에 머무른 나의 심외수를 그 사람이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모순 투성이었기에 나는 비로소 ‘대ㅇ은 아니구나’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대ㅇ에서 나온 이래『이것이 개벽이다』를 마저 읽어 보았다. 그렇게 잠이 달아날 정도로 책에 미쳐서 읽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이후, 도장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으로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여 포정님으로부터 들은 여러 내용 중 귀가 탁 트인 얘기는, 증산도에도 '신비'(영적 현상 또는 체험)는 있으며 대ㅇ에서 말하는 '신비'의 정체는 바로 '허령'이라는 것이다. 조각된 의문들이 드디어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왜 그렇게 희뿌연 느낌이 들었고, 그들에게는 왜 개개인마다의 색깔이 없었는지. 비록 그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대ㅇ은 진법은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사실 대ㅇ이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내게 상제님 도를 접할 기회는 영영 없었을지 모른다. TV는 잘 보지 않을 뿐더러 집에 상생방송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상제님 관련 서적은 알지도 못했다. 그런 과정에 우연하게 대ㅇ 사람을 만났고 우연하게 상제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의 연장선으로 마침내 지금의 증산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론 내 사수는 대ㅇ진리회이며, 그렇게 위험한 집단을 내 사수로 이용한 것이나 그럼에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모두가 조상님의 덕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조상님들께서 무척이나 많은 힌트를 주신 것 같다. 나는 그저 우연히 알게 된 그 힌트들을 이리저리 맞춰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낸 것일 뿐,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시 무척이나 조상님들을 원망하였다. '아니, 어디가 진법인지는 알려줘야 제대로 수도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니야! 그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야?' 만일 그 두 번의 연속된 꿈과 두 번에 걸친 포덕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진법·난법의 경계에서 해매고 있을지 모른다.




정리를 하고자 한다.


처음 대ㅇ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상제님의 소식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대ㅇ이 난법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무얼 걱정하는가? 그냥 증산도로 가면 되지 않는가?', '처음부터 증산도를 만났다면 이런 고민 안 했을 텐데’란 생각도 들곤 했다. 다만 이성적으로 확증할 자료를 찾기 위해 대ㅇ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로부터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여러 사건을 통해 마침내 증산도에 이르게 되었다.


증산도로 옮기길 참 잘했다란 생각이 든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전엔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제님의 강세 소식에 문득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끊이지 않았고 그것에 가세하여 내 부친께서도 나의 증산도 신앙을 만류하고 계시며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증산도 비방 발언에도 심하게 자극받곤 하였던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바로 이 입도수기 초안에 털어 놓았고 그것을 읽어보신 포정님께서 이런 방황하는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고백을 하나 하자면, 불과 얼마 전 나는 도장에서 태을주 수행을 마치고 하나의 다짐을 하였다. 나는 이곳에 내 목숨을 걸겠다. 결코 순간의 감정이 아니였다. 이러한 다짐을 하면서 한편으론 너무 쉽게 단언하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스스로 다잡을 것을 결심하며 상제님께 선언하였다. 그 순간엔 참으로 나의 마음이었으며 진심을 담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제님에 대한 믿음은 흔들렸고 마침내 그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이번 입도 시험에 응시하지 말까란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포정님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척의 발동 원리를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산다는 것은 척이 없는 것이다.'이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잘 산다는 것은 즉, 자신의 의지로써 무언가를 하고자 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며, 또한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막힘이 없고 그 결과 역시 의도한 바와 같이 긍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척이 발동하게 되면 과정과 결과에 부정적 감정, 결과가 초래됨은 물론 자신의 긍정적 감정과 긍정적 미래를 기대하고 일을 도모하려던 최초의 마음 자체에 부정적인 면이 끼어들어 대뜸 의심이 들고 부정적 감정이 섞이게 된다. 즉, 자의로써 뜻을 두었고 그것이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함에 문득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진다면 분명히 척이다. 척이 없으면 잘 살게 되며 이때 잘 살게 됨은 결국 만사가 자신이 뜻하는 대로 풀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으로 척을 판별해내는 방법이다.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또한 하려고 다짐한 일에 부정적 감정을 들게 만드는 것은 전부 척이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내 생에 무엇이 척이고 무엇이 나의 의지인가.


‘60년 동안 간절한 기도 끝에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낸다.’, ‘태어날 때부터 제 할 일 정하고 태어난다.’는 등의 성구와, 내가 상제님 도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상황으로부터 나는 내가 바로 그 ‘쓸 만한 자손’이요, 내가 태어난 이유는 상제님 도를 따르기 위함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내가 증산도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나의 진로를, 인간적인 것 이상의 ‘초인간적’인 무언가로 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한갓 세속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초인간적인 일이라면 종교든 뭐든 상관없었다. 다만 기성 종교를 받아들이기엔 무언가 거부감이 강하였고 그래서 지금까지 23년간 그 어떤 분야로도 진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러 것들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오직 재미로 시작한 일은 결국 흥이 다하면 이 지루함을 꾹 참고 이 일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언제나 중도에 손을 놓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증산도를 알게 되었고, 증산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증산도 신앙을 시작한 이래 생에 처음으로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이 아니다. 가슴으로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사명이다’, ‘아, 나는 결국 이걸 할 팔자구나’라 스스로 공감하였다.


이제까지 내게 이러한 감정을 이끌어낸 것은 없었다. 어렸을 적 그토록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에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렬히 미쳐서 했던 검도에서도, 인생의 '근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전과했던 철학과에서도, 몸 고생을 하면 뭔가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한 노가다 알바에서도, 그 어떤 것에서도 내 존재의 이유, 왜 살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 그래서 그렇게 살아서 삶은 누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대답, 하물며 내가 태어나 해야만 할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결국 아무것도 내게 답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증산도에서 나의 사명감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통감한다.


나는 상제님의 도를 일심으로 받들고 충실히 수행하여 후천 개벽 때 반드시 살아남아 내 조상님과 내 가족,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광주상무 최○○ 女27세


저는 어려서부터 2살위 오빠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서 이혼하셔서 따로 살고 계셔서 만나지 못하고 아버님은 목수일로 주로 바같생활을 하십니다.


할머니는 불교신앙을 해서 보살로 절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사촌오빠가 절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어딘가를 힘들게 가고 있는 제 앞에 저 멀리 부처님이 떠 있었습니다. 너무 생생한 꿈이었고 얼마 후 간호학과를 나와 직장생활로 서울에서 생활할 때, 길거리에서 대ㅇ진리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말씀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벅차 그 길로 치성을 올리고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정도 신앙을 하였을 때 대ㅇ에서 저를 반갑지 않게 대하는 것을 느꼈고 그 후 신앙생활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앙을 그만 두었지만 신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도 해 보았지만 저를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정신을 잃는 일이 생겨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정신분열증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ㅇ 신앙을 하지 않아서 이러는가 싶어 서울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대ㅇ진리회를 검색하다가 ‘증산도’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ㅇ과는 다르게 공식화된 사이트를 방문하고 진리 말씀을 들어보면서 모든 궁굼증이 해결 되었습니다.


또 집에서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우주1년 말씀을 듣고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도장에 전화하여 방문하였고 입문식을 올렸습니다.


도장에 나와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힘들지 않아도 되어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약을 먹지 않아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입도교육을 통해 진리말씀이 너무 좋고 확신이 들어 입도를 결심하였습니다. 입도 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면서 상제님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상제님의 참 진리는 증산도에 있다!  


 장○○ 서울


 2009년 3월 중순 어느 날, 사무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 급히 문을 열어주면서 ‘누구세요?’하니 남녀 두 사람이 절에서 왔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어떤 기운이 돌아서 인연이 되려고 그런지 찾게 되었다면서 웃는 낯으로 냉수 한 컵만 달라고 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남자분이 물 한 컵을 다 마시고 저의 조상님이 보내서 온 것 같다면서‘하는 일이 잘 되냐’고 물었습니다. 작년에 문을 닫았다고 하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데, 자신이 배부르고 잘 살면 자기가 잘나서 잘 사는 줄 알고 조상을 잘 섬기지 않기 때문에 재물을 다 뺀것 같다면서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인데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년월일을 물어보고 이런저런 애기끝에, 절은 강원도에 있지만 부천에 조상님께 공을 드릴 수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가진 돈이 3만원밖에 없다고 하니까“정성이 중요하지!”하면서 3만원을 3억이다 생각하고 정성껏 올리면 된다고 해서 바로 따라갔습니다.


대ㅇ이 아니라 대진이었기에…


 제가 따라 간 곳은, 엄청 큰 5층 건물 입구에‘대진청주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고 불안했지만 대ㅇ이란 글씨가 아니고 대진이란 글씨에 사이비 종교는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5층으로 올라가자 아무것도 없는 벽 쪽으로 놓인 큰 교자상 위에 떡과 과일을 차려놓은 채 저와 비슷한 사람 대여섯 명과 앞에서 인도하는 몇 사람과 같이 따라서 상제님께 사배 절을하고 어떤 의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같이 음복을 하면서 말하기를“곧 지축이 서고 전쟁이 일어나고 병겁이 돌면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말하면서 꼭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배우고 따르는 자만 살아날 수 있다면서 21일 동안 교육을 받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뭔가 느낌이 이상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선각사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 이런저런 설득을 하였습니다. 조상이 자손 한 사람을 살리려고 재물도 빼앗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몸속에 붙어 무당을 만들고 죽일 수도 있다고 엄청 겁을 주었습니다. 조상님이 도인을 만나게 한 것은 조상선령이 같이 살려고 하는 건데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무당이 된다’,‘ 죽일 수도 있다’는 소리에 하루 종일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보름동안 교육을 받으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니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면 자주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말을 돌리고 숨기면서 아직은 초보자라 초보자에게 대학교육을 가르쳐줘도 알아듣지를 못한다고 차후에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대ㅇ진리회… 얼마의 돈을 더 내야 하는가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증산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그들에게 인터넷에서 증산도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같이 있던 그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급하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대두목은 대ㅇ진리회가 맞다면서 증산 상제님의 일대기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면서 발등에 불 끄듯이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뭔가 잘못 돌아간 것 같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졌습니다.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그때부터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교육시간을 대충 때우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같이 왔던 여자 분이 따라나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주면서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들어갈 돈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머뭇거리다가 사주에 따라 비용이 다르게 든다면서 자기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작심을 하고, 선각사라는 사람에게 내가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물었습니다. 구석방으로 데려가 나를 앉혀놓고 전 가족의 사주를 보더니 아홉수(죽을 수)가 6개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999,999원이라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사례를 들어가며 노력만 하면 조상님이 돌봐주신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홉수가 7개도 있다고 했습니다. 황당하고 어이도 없고 돈 구할 방법도 없고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목마르게 찾던 진리가 증산도에 있다


 다시 증산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을 읽어보고 그들이 말하는 상제님의 대두목 진리는 대진이 아니라 증산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에 가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니, 내가 목마르게 찾던 진리가 여기에 다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밤새도록 증산도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전 본부에 전화를 걸어 서울지역 도장을 물어보았습니다. 영등포도장 연락처를 받아 꼭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출근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선각사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부터 증산도에서 신앙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한 후 그들에게 정중하게 거절을 하니 온갖 회유와 저주를 내린다고 했습니다. 회유와 저주에 마음이 또다시 심란했습니다. 사무실에 갈 기분도 안 나고 가봐야 할 일도 없고, 우장산 공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지금 몇 달째 놀고 있어 집안 꼴은 말이 아니고 대학생에 고3 수험생, 중학생 아이들을 생각하니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부모형제에게 도움을 받고 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미안하고 비참하고 한심스러웠습니다.


  먼저 직업을 잡은 연후에 시간이 나면 증산도 도장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정하고 행단보도를 건너려는데, 갑자기 오른쪽 장단지에 통증이 왔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통증을 느꼈습니다. 일을 보고 퇴근한 그날 밤, 잠을 자려는데 시간을 보니까 1시쯤 되었습니다. 갑자기 또 장단지가 쑤시고 통증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문득 선각사가 저주를 내린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고 또 그들이 제사를 지낸다는 밤 1시 거의 같은 시각에 제가 고통받고 있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정말 그들의 저주인가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더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증산도  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오셨는데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그렇게 밤새 아팠던 다리는,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언제 그랬느냐 식으로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걸어갔습니다. 도장 수호사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또 쉽게 가르쳐 주셔서 증산도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주 원리에 의문점이 많았고 미지의 세계에 관심이 있었는데 자세한 설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보람있고 축복받은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날부터 공부에 푹 빠져서 도장 방문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배우러 다녔습니다. 


증산 상제님 진리의 종통(宗統)과 진주(眞主)를 찾아서   박○○(23세)/


 제가 증산 상제님에 대해 처음 들어본 것은 2007년, 그러니까 재작년 대구 시내서 대ㅇ진리회 사람들을 만나면서였습니다.


시험기간에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잠깐 시내 교보문고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인상이 너무 좋다’며 다가온 한 여성에게 붙잡혀 조상의 음덕, 척신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소 황당했지만 시험공부로 피곤하던 차에 호기심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사회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뭐하는 곳인지나 한번 보자’싶어서 그 사람들을 따라가 종이를 불사르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간 곳은 대ㅇ진리회 중에서도 박*경 사후 대구 경북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진**회였습니다. 그 뒤로 한두 번 더 찾아갔지만 그들의 어두운 면을 보고 또 그들의 진리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후에는‘이건 아니다’싶어 연락을 끊고 다시 저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2008년 겨울, 고시원 생활을 하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중 두 명의 여성을 학교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진**회 사람들 이후로도 시내에서 길을 묻는다면서‘도를 아냐’고 말하던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전에 있었던 황당한 사건을 떠올리면서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접근 방법이 달랐습니다. 그저 심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서 설문 조사를 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사람을 며칠 뒤에 학교에서 한번 더 만났고 또 그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또다시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세 번이나 만난 것은 인연이라며 잠깐이라도 찻집에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습니다. 저도 세 번이나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다 싶었어요. 또 그들이 대ㅇ진리회라면‘나는 당신들의 이러이러한 주장이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따질 요량도 있어 근처 찻집으로 함께 갔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대ㅇ진리회(이하 대ㅇ이라 약칭함) 신흥방면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릉 방면이었습니다. 앞서 대*성주회 신도들이 나이가 좀 들었고 기복신앙을 주축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대학생 같은 젊은 층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성주회에서는 듣지 못했던 우주 1년과 상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 치성을 모시고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좀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었습니다. 대*성주회에서는 치성비용 1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그 돈을 부담스러워하자, 그들은 저에게‘대학생이면 이제 성인이고 게다가 남자가 그 정도 돈도 못 마련하냐’며 몰아부쳤습니다. 하지만 대ㅇ 금릉방면 사람들은‘저에게 형편에 맞는 대로 치성을 모시고, 진리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제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윗선의 선감들에게 연락해가며 대답해주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근 한 달간을 거기서 지내며 경기도 여주, 구미, 칠곡, 부산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을 관리하던 선감들에게 진리 얘기를 듣고 또 방면 최고인 수임선감의 강좌도 들어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틀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뭔가 논리적으로 안 맞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의문1 종통 문제


 상제님이 둘이다?


 우선, 대ㅇ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제님이 두 분이라는 사실이 저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가장 높은 상제님이 두분일 수 있나요? 대ㅇ 안에서도 대*성주회는 박한경까지 박성상제로 모시는 등 상제관, 종통관에 대한 철저한 체계가 없는 듯했습니다. 여태까지 모든 질문에 열려있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종통에 대해서 질문할 때는 다소 완고하게“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상제님이 만주로 가는 열차 안에 있는 조철제를 지명하셨다”“전경에 그렇게 적혀 있다”등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의문2 신앙 문화


 수행의 기본원칙조차 없다


 다음, 신앙하는 모습에서 기운을 받는다며 구부정한 모습으로 수행하고, 때로는 쓰러지다시피 하면서 주문을 외는 데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저는 선도(仙道)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마땅히 상제님의 도라면 선천의 선(仙)문화를 포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질문하자‘상제님의 도가 아닌 것들은 모두 사이비다’라며 한마디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수행의 가장 기본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지감, 조식, 금촉은 물론 허리를 편 바른 자세마저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의문3 신관 및 인간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비하


 방면 최고의 지도자인 수임선감의 강의에서는 다소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금릉 방면에서는 신관에 대해 파장(원자를 끊임없이 해체하면 파장으로 드러난다)과 차원(1,2차원-동식물/3차원-인간/5,6차원-신명계 등)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수임선감이 말하기를“3차원의 인간인 우리가 1차원의 송충이 애벌레들을 보면 얼마나 징그럽냐. 마찬가지로 5,6차원 이상의 신명들이 우리를 보면 애벌레보다 더 흉측하며 더럽게 보인다”며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종교든 뭐든간에 인간의 대한 존엄성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큰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의문4 포덕 행각


 포덕이 급선무다?


 다음으로 포덕에 대한 것입니다. 진리는 행하면서 깨닫는 것이라고, 옛말에 급선무란 말이 있듯이 얼른 30호 이상을 포덕해서 선무가 되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나,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급하게 다른 사람들을 더 불러오라고 하는 모습은 제게 다단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공평한 시각을 잃지 않고자, 증산 상제님을 모신다는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증산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곳의 의견이 너무나도 다른 탓에, 저는 대ㅇ에 저를 인도한 선무에게 말하길,“ 도대체 두곳 다 서로 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느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각자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똑똑하고 진실한 신도를 가지고 있을 것인데 내가 무엇을 믿고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곳에 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결국 그곳을 떠났습니다.
  
 ‘상제님 찾기’의 해답


 상생방송과『개벽 실제상황』
 그렇게 머리 아픈 한 해가 다시 지나갔습니다. 그후 대구에서였습니다. 제가 평소 책을 좋아했기에 시내 서점에 들렀는데, 그때 문득『개벽 실제상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피식 웃었습니다. 예전에 다사다난했던 상제님 진리 찾기 여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ㅇ의 정체에 대해서만 골몰했던 저로서는 사실 증산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대ㅇ과는 달리 공개적으로 서점에서 당당히 책을 판매하며, 상생방송(집에서 우연히 시청)을 송출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 그 자리에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대충 큰 틀은 알고 있었기에  수월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읽어나가던 저는 대ㅇ에서 연관성 없이 하나씩 하나씩 툭툭 던지던 반(半)편의 진리 조각들이 하나로 꿰어져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자료들과 진리의 명쾌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개벽 실제상황』은 물론 그 아래 칸에 꽂혀 있던『우주변화의 원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알려면 역시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 근처에 있던 대구 시지도장을 찾아가 최재학 포정님을 뵈었습니다. 친절한 최포정님의 간략한 진리 소개를 듣고 바로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 수행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대ㅇ에서 하던 방식과 달라 다소 헷갈렸지만 최선을 다해 따라했습니다. 그리고 근무처로 복귀한 후 연락처를 알아내 동두천 중앙도장의 한복철 포정님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갔기 때문에 처음 뵌 자리에서 바로 입문신도가 되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이후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조상님의 음덕 덕분인지 현재 근무환경이 좋아, 평일 5시에 근무가 끝나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도장에 들러 하루에 2시간씩(1시간 수행, 1시간 진리공부) 공부를 합니다. 도장에 가는 시간이 행복하고 편안합니다. 다소 이치적으로 따지는 쪽에 치우쳐 있던 제게 넓은 안목을 키워 주시고, 무엇보다 일꾼의 심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시는 한복철 포정님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나는 신앙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태사부님의 말씀을 각골명간하여, 단순한 기복신앙이나 절름발이 신앙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리를 크게 깨쳐 사람을 많이 살리는 상제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보은!


서울 황○○ 여 39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항상 잔병치레를 달고 자랐습니다. 중3때인 15살 때 폐결핵을 앓고 휴학하고 다시 복학했지만 그 이후로 저는 점점 더 약해졌고 그러던 중 17살이 되던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저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집안의 장손으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저희 4남 4녀 대가족을 책임지고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희 집안은 급격하게 힘들어졌습니다.


막내딸로 애교 많던 저는 아버지를 유독 많이 좋아했고, 항상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버지를 써낼 정도로 세상에 아버지는 제게 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평상시에는 무척 엄하시던 아버지셨지만 저는 혼 한번 안날 정도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기에 말 그대로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저의 정신은 아버지의 부재하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저의 정신적 성장은 멈춘 채로 늘 공허했습니다. 야간자습을 하다가도 울면서 집엘 와버렸고 저의 머릿속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돌아가셨지만 분명 지켜 보실거라는 믿음으로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꼬였고, 많은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분명히 뭔가 남들처럼 평이하지 않은 크고 작은 굴곡을 겪었습니다. 일도 뭔가 풀리려하면 한 번씩 어긋났고, 그래도 정말 최악이다 싶으면 또 뭔가가 건져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증산도를 만나게 되고 입문하면서 지나간 제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착하게 열심히 살지만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가슴 아픈 저희 집안과  돌아가신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만 뵈었던 할아버지가 꿈에 찾아오시고 할머니 두 분도 유독히 꿈에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늘 어떤 이들이 항상 저를 조상이 따라다니면서 도와준다고 해서 그냥 하는 소리려니 했는데 증산도를 입문하면서 어렴풋이나마 그동안 수없이 꾸었던 제 꿈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반 말 무렵 취업시즌이 되어 저는 교수님 추천으로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류구비중 등본이 필요하다하여 등본을 떼러가다가 저는 음주운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의 왼쪽 무릎 뒤 인대가 거의 대부분이 끊어져 파열되었고, 결국 졸업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그대로 취업도 막혀버렸습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들이 오는 걸까? 저는 낙담했고 기부스를 했지만 전혀 아물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권유했지만 저는 보조기착용을 고집했고 몇 개월을 있었지만 역시나 전혀 호전이 없어 수술을 해야한다했습니다.


정말 너무 힘든 가운데 저는 아픈 다리를 붙잡고 통증이 올 때마다 너무 힘들어 자다가 깨서 울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불쌍한 우리 막내딸..걱정하지 마라. 아버지가 네 다리 고쳐주마’하시고 다리를 만져주시니 제 다리가 깨끗이 나아 저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꿈이었습니다. 전날 통원 갔다 와서 수술을 권유받았던 터라 나을 리가 없었지만 저는 꿈이었던 게 너무 억울해서 꿈 이야기를 하며 엄마와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다음날 제 다리가 씻은 듯이 말끔히 나았고, 의사선생님도 깜짝 놀라셨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진실로 깊은 마음으로 종교를 믿어보진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 가슴에서 기도가 우러나오질 않고 머리로 기도를 하고 그동안 불교를 비롯해 천주교, 기독교, 하느님의 교회, 증산도 들어오기 전에 몇 번 갔었던 대ㅇ진리회까지 경험했지만 정말 절절히 가슴에서 기도가 안 나와서 번번히 다니다 중단을 했습니다. 


 조상을 잘 모셔야하고 태을주를 무조건 외우라던 대ㅇ진리회의 방문을 접하면서 그동안 2년 정도 다니며 어머니 하나님을 찾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던 하나님의 교회를 잠시 보류했습니다. 몸이 많이 힘들던 터라 휴직을 잠시 하고 있었기에 열심히 두 시간씩 버스타고 시흥까지 가서 치성도 몇 번 참여를 해봤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고, 진리에 대한 뿌리내용 자체가 없이 무조건 정성들여야 한다고 돈을 내야한다는 식이어서 아니다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2년 정도 다니면서 제사는 사단 마귀에게 절하는 거라고 가르침을 받았던 저는 제사를 못 지내도 개운치 않았고, 제사를 지내도 교리에 위배되는 터라 특히 제사부분에 있어서는 어려서부터 1년에 12번씩 제사를 지내며 종가 집에서 자라왔기에 교회를 다니는 2년 내내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것도 사단마귀라 하는지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조상님께 잘해야 복 받는다’라는 말은 대ㅇ진리회가 맞다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그들의 신앙은 뿌리도 없었고, 무조건 와글와글 인파에 시달리며 앉을 자리도 없이 절만 정신없이 해대었고, 정성비만 자꾸 요구를 해왔습니다. 뭔가 뿌리가 잘려나가고 중간 한 토막만 턱하니 있는 느낌이었고, 혼란스럽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교회도 대ㅇ진리회도 더 이상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ㅇ진리회를 다니면서 뭔지도 모르고 중얼중얼 외워대던 태을주가 입에 남아있어서 인터넷에 태을주 검색을 해봤습니다. 태을주와 함께 연관검색어 증산도가 나왔고, 증산도는 대ㅇ진리회처럼 돈으로 인한 부작용사례는 없었기에 안심을 하고 증산도에 대해 올라와 있던 글들을 뒤졌습니다. 그 중에서 의정부도장 이연수 수호사님의 글을 읽고 통화를 하면서 더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곧 수호사님을 통해서 책2권(생존의 비밀과 월간 개벽)을 바로 다음날 받아 볼 수 있었고, 저는 이미 통화를 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이 들어 은평도장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도장을 방문하고 며칠 공부를 하면서 당연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서서 저는 곧바로 입문을 하고 100배례 21일 정성수행을 하며 입도를 준비했습니다.


 수행 중에 많은 공부를 하진 못했지만 처음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눈앞에 보라색 빛이 크게 원을 그렸고, 팔부분이 가볍게 떠있는 느낌도 받았고, 척추부분이 찌릿찌릿 몸 여기저기서 반응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 도공수련을 하면서 처음 몇 번은 별 느낌이 없었는데 서너 번 정도 하다보니까 머리 위 정수리부분이 간질간질 하더니 찬바람이 쏴~하니 계속 머리위로 빠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며칠을 찬바람이 나가기도 하고 또 찌릿찌릿 몸으로 들어오기도 하였습니다. 또 관운장주는 주문을 외다가 갑자기 검은 빛이나 바람 같은 것이 소름이 확 돋우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확 도망가는 걸 느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매일 집안에 청수를 아침저녁으로 올리고 상제님과 태모님 조상님께 집안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정말 희한한건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다른 종교를 가지면서 혹은 혼자서 기도드리던 마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절절하게 원인모를 눈물이 가슴에 꽉 차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거였습니다.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간절하고 가슴이 타들어가도록 한스럽고 아프고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세상에 날 낳아주신 내 부모님을 붙들고 어린아이가 잘못했다고 울고 매달리는 듯한 제 자신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수행하지 못하고 현실에 치이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 어리석은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삼생의 인연이 아니면 내도를 만나지 못한다던 상제님의 말씀처럼 이곳에 입문하면서 저는 가까이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인연으로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매일 저는 뒤뜰에 칠성단을 쌓으시고 맑은 청수 한그릇 올리시고 밤마다 시천주를 외우시던 할머니를 보면서 자랐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경(주문)을 읽으며 병을 고치고 다니셨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간간히 어머니한테서 듣고 자랐었는데, 그 인연이 저를 이곳으로, 아니면 더 오래된 조상선령님의 정성으로 제가 이 증산도에 입도하게 된 연줄이었던 듯싶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항상 무언가 공허했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슴이 늘 텅 빈 채로 막연하고 불안한 채 하루를 살던 제게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면서 제 인생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개인이 아닌 저 자신의 막중한 책임감도 들었습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시던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선령님들과 집안을 살리고 때가 다 되어가는 개벽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커다란 그릇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던 참진리를 뒤늦게 돌고 돌아서 이제야 만났지만, 현실에 급급해서 129600년만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항시 생활 중에도 일심으로 수행하고 갈고닦아 진리의 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봅니다.




김○○ 여43


저희 아버지는 대ㅇ진리회 신앙을 한 20년정도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엔 아주머니들이 늘 집에 오고 치성도 하고 해서 모두가 자식들 잘 되라고 없는 시골살림에도 성금도 열심히 내시고 신앙하셨습니다.


그후 제가 결혼을 해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공교롭게도 대ㅇ진리회 친구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때 가게에 왔던 선사,선무는 저랑 동갑내기 친구로 저에게 아버님이 신앙했던 종교라고 신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10여전 전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버려진 책을 주웠는데 그 책이 증산도에서 발행한 만화가 들어간 “개벽”이라는 책이었습니다.그때 그 소책자를 읽어보면서 내가 배운 상제님 호칭이라든지 증산도 얘기,개벽얘기,그리고 대ㅇ진리회가 난법단체이며 비리투성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증산도도장에 방문을 해서 상담을 해보니 상제님 어진도 달랐고 .... 도전책을 권유해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당시엔 그 책 내용이 제겐 좀 충격었습니다.


개벽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혼란스럽고 해서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그래서 그냥 두 종교를 접기로 하고 대ㅇ의 선사,선무도 오지말라고 하고 증산도 사람도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하지만 가게라서 자꾸만 찾아 오는 선사 선무는 모르는 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ㅇ진리회에 교화가 돼서 신앙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후각들도 입도시키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제가 입도시킨 후각들한테서 돈문제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성금에 대한 강제성과 무리함 그리고 부담감 간간히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ㅇ진리회의 모순점도 알기 시작했고 해서 죄책감에  제가 입도시킨 후각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여름엔가 그때 TV에서 증산도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상생방송에서 나오는 도전성구말씀을 보면서 옛날에 읽었던 개벽책도 생각나고 뭔가는 있는 것 같아서 도장에 전화를 해서 방문을 해달라고 했습니다.그때 이연수 수호사님이 방문해주셔서 월간개벽지와 책을 갖다 주셨어요


그때 하시는 말씀이 “종교는 건전하게 바르게 믿어야 한다”.도전말씀을 펴주시면서 종통은 태모님께 전수를 하셨다는 말씀들을 읽어주셔서 쭉 들으면서 이해는 가고 수긍은  갖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습니다. 전해주신 책도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마음을 접고 절에 다녀보기로 하고  절엘 다녔습니다.


.....천지성공이라는 책을 받아서 읽어봤는데 너무 감동적이라 3시간만에 완독을 하고 그동안 쳐박아두었던 이연수 수호사님이 주셨던 월간개벽지도 읽어보니 우주1년과 생장염장의내용과 천지공사내용등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느껴지고 이해도 정말 잘 되었습니다.책이 눈에 확들어오더라구요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보내주신 포감님을 뵙고 의정부도장을 방문하였더니 10년전에 뵙던 어진도 그대로구 이연수 수호사님이 또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며칠후 교육을 받기로 약속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면서 너무 재미가 있었고 때로는 어색했지만 수행도 열심히 하고 그날 공부했던 내용도 복습하면서 밤새워 도전도 열심히 읽었습니다.가게 운영하느라고 하루하루가 너무 바뻤지만 너무 재미 있어서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습니다.그리고 가게에 오는 친구들한테 도장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기도 하면서 제가 대ㅇ에 입도시킨 이현욱성도도 도장에 데려와서 결국은 같이 교육받고 이번에 입도응시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개벽상황꿈도 꾸었는데 우리 동네 큰 쓰나미가 몰려오고 사람들과 건물들이 다 잠기고 해서 급하게 아들 손을 잡고 아파트 옥상으로 피신을 했는데 딸이 수업하던 학교가 다 잠겨버린거예요 남편은 연락도 안되고 딸도 연락이 안되었습니다.그래서 딸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어요 너무도 큰 슬픔에 몸부림치다 꿈에서 깼습니다 그런후 가족포교에 대한 책임감을 너무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신앙하는 아름다운모습을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내주변의 좋으신분들,아직도 대ㅇ진리회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교해서 같이 신앙하는 모습을 꿈꿔봅니다.정말 반석같은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전○○ 女39


...그러던 중 대ㅇ진리회를 하던 친구이자 얘들 아빠 사촌동생이 대ㅇ진리회에서 제사를 지내주면 좋아질거라해서 제를 지내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따로 교육을 받은 것은 없었고 가을개벽이 오니 조상을 잘 모셔야한다는 설명 외에는 없었습니다.


저처럼 바쁜 사람은 금전적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후로도 많은 시련 속에서 반성과 하느님께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도 다니고 체력보강을 위해 요가도 등록을 하였습니다.


대ㅇ진리회를 멀리했지만 태을주는 이상하게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태을주를 검색하니 증산도가 눈에 익어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사부님의 동영상 강의를 보는데 수호사께서 전화연락을 주셔서 천지성공과 생존의 비밀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오면’은 대ㅇ진리회 친구가 읽으라고 빌려준 건데 대ㅇ진리회의 내용과 맞지 않고 했는데 천지성공과 생존의 비밀을 읽으면서 ‘아! 여기구나!’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구나하고 절망하고 있던 때 개벽후 육임조로 사람을 살린다는 부분은 새인생의 희망과 목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목욕탕에서 기절하며 한참 만에 깨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치지도 않았고 그때 간디 자선전을 읽고 있던 때라 그런지 간디의 삶속에 들어갔다온 느낌 이였고 상제님께서 제 2의 삶을 열어주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요가할때나 평소 머리 뒷부분이 뻐근하고 아파 자리 찾아 쉬어야 하고 머리가 하얗게 된 느낌이 들어서 무서울 때가 있었습니다.


증산도 도장을 찾아가기 결심을 하고 약속을 잡아 놓은 날 꿈에 어떤 한복 입은 여자 두 분이 내 머리 맡에 앉아 계신걸 보았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아는 사람은 아닌데 얼굴이 선명히 보였고 낫이 익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장에 와서 태모님과 도모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지난밤 꿈에 나타나신 두 분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절실히 느낍니다. 왜 태모님이 친히 못난 제 꿈에 나타나셨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며 진리를 갈고 닦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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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변을 보시기에 앞서
에 [증산도] 를 쳐보시고 [대순진리회]를 쳐보시기 바랍니다.

2. 증산도는 대학교 동아리가 100여군데 있고 상생방송(종교방송 채널 돌리시다 보면 나오실거에요)이 나갑니다. 대순진리회는 공식 방송채널이 없습니다.

3. 증산도 [도전]과 대순진리회 [전경]을 구해서 읽어보세요. (기독교의 성경으로 쉽게 이해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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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

1974년 안운산이 창립한 종교로서

강증산 상제님의 행적과 말씀을 믿고 따르는 종교단체입니다.

1909년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이후

상제님을 직접 따르던 종도들이

각자의 깨달음을 가지고 상제님의 진리를 펼치면서

수십개의 상제님 계열의 교파들이 생성되었는데

증산도도 상제님 계열의 한 교파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대순진리회는 1969년 우당 박한경 도전님에 의해 창설된

강증산 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민족종교입니다.


대순진리회가 1969년에 창설되었지만

종단의 전신은 무극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로 종통을 계승받으신

조정산 도주님께서 1925년 창도하신 무극도에서

일제 종교해산령 이후 해방과 함께 태극도로 그 명칭이 개칭되었으며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우당 박한경 도전님께서

태극도에서 대순진리회로 명칭을 변경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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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서로 정통이다 진짜다 하지요.


종교가 필요하시면 초기불교를 공부해보세요.

부처님의 원음을 알고 나면 딴데 가라고 해도 안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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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와 대순진리회는 강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부분만 같고, 종통종맥이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증산교와 증산도를 동일시 하는 분들이 있는데, 증산상제님을 믿는 모든 종교를 증산교라 통칭합니다. 증산도는 증산상제님을 따르는 증산교의 한 일파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증산계열은 상제님재세시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제자)들이 상제님 화천후 각기 종교를 만들었는데, 가장 큰 세력은 보천교였죠. 보천교 이후 많은 종파들이 생겨납니다. 증산도도 그 중 하납니다.

대순진리회는 엄밀히 따지면 증산계열이 아닌 무극계열이라고 보면 됩니다. 조정산 도주님은 상제님을 따르던 제자가 아니었으나, 1917년(23세시)에 강증산상제님으로 부터 계시로 종통계승을 하시고, 대순진리에 감오득도 하십니다. 종통계승후 1925년에 무극도를 창도하였고, 일본의 종교단체 해산령에 의해 1941년 해산했다가, 해방 이후 1948년 태극도로 개창하여 종교활동 시작합니다.박우당 도전께 1958년에 조정산으로 부터 종통을 계승하시고,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께서 1969년에 창설한 종단이 대순진리회입니다.

대순진리회는 1925년에 창도된 무극도와 1948년 창설된 태극도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1969년에 창설된 종단입니다. 증산도는 1984년에야 명칭을 사용했으며, 대학교 서클(동아리) 형태로 발전된 종교입니다. 증산도 포교의 근원은 대학교 동아리입니다.

대순진리회도 대진회라 하여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였으나 현재는 대순학생회를 통해 대학생 뿐 아니라 초등생,중고생을 통합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순진리회는 성금의 70%를 사용하여 구호자선,교육,사회복지사업을 통해 환원합니다.
대진대학교와 대순진리회복지재단,사단법인 대진국제자원봉사단, 의료법인분당제생병원 등이 대순진리회에서 운영하는 시설입니다.






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일단 둘 다 증산 계열 종교로 알고는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니던 동네에 대순진리회 회관이 있었고 지금 다니는 대학에 증산도 동아리가 있는걸로 기억이 나 그 차이가 뭘까...

대순진리회증산도보다 먼저 아닌가요?

... 뛰어들어 증산도대순진리회 둘 중 하나 편을... 확신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도전에 관한 질문 하나... 그리고 대순 규모랑 증산도 규모랑은 엄청나게 차이죠~ 째비가...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 여기저기서 대순진리회증산도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것... 입장에 차이를 보이는게 아닌가 몰겠습니다...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궁금합니다.... ^^ 대순진리회 안티활동...

대순진리회와 대순진리교, 증산도와...

갑자기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검색을 해봤는데요... 꼬-옥 증산도 분이 엄청나게 비방을 하던데요. 뭐가... htm (← 클릭하세요) (한마디로 명품과 짝퉁의 차이죠 ^^;)

가장 바르게 수도하는 대순진리회 방면은...

대순진리회에 많은 방면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방면마다... 방법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대순이 아니라 증산도는 어떻게 수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경험을 바탕으로한...

대종교와 증산도그리고 천도교의 차이는?

...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백과사전에 있는내용은........ 증산도(증산교)란? 요약 1901년 고부(古阜) 출신의 유생... 현재의 대순진리회에 이르기까지, 이 계열의 교파를 통틀어...

증산도? 대순진리회? 도에 대해 알아보고...

... 있는지 "증산도" 와 "대순진리회" 는 전혀 다른곳인지... 등이 궁금합니다.;; 내공 적당히 걸겠습니다. 대부분은... 것과는 차이가 있지요. 아무리 자신이 정신만 차리면 주변은...

도전과 대순전경 중 어느 것이 강증산에...

...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록 대순진리회인들은 대순전경, 증산도인들은 도전을... 대부분 대순전경과 전경의 차이점을 모르는 것 같아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증산도인 분들께 묻습니다.

... 대순진리회의 전경에 보면 ["내 일은 삼천(三遷)이라야...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증산도인의 입장이 아니라...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것은 일부 경전에만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