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꿈에서 맛있는 사과를 보고 꿈에서 깨어난 후 그 사과를 먹고 싶어서 다시 꿈을 꾼 후 그 사과를 현실 세계로 가져올 수 있을 까요?
어떤 사람이 퇴근하면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혹은 너무나 잘생긴 남자)가 가게 앞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워했습니다.
드디어 어느날 마음먹고 그 아름다운 여자에게 프로포즈하려고 직접 걸어서 가보니 황당하게도 마네킹이었다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하고 행복하다는 감정이 느껴진거죠. 만일 그 사람이 마네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죽는 다면, 그 사람에겐 그 마네킹(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영원히 그리운 사람으로 남겠죠.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로인해 애뜻한 감정이 생기구요.
만일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정말 확고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예를 들면, 얼음이 녹으면 물이되어 증발되어 사라져도 얼음속에 묻혀있던 모래나 불순물이 그대로 남게 되는 것처럼, 스님들이 수행해서 무집착 무아의 경지로 나아갈 때, 그 확고한 그 무엇인가에 의해 무아의 경지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그 어떤 확고한 존재가 나타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오랜 수행을 통해 아라한이라는 경지에 이르면 더이상 나라는 집착이 사라지고, 아무도 그 사람이 어디에 존재하는 지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온 우주를 통해 그 어디에도 확고한 그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맛있는 사과를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고,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을 생각만 해도, 발바닥이 새큰거릴까요? "파블로스의 개"처럼 먹을 것을 줄 때마다 종을 울리면,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종소리만 들으면, 개는 왜 침을 흘릴 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도 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불교가 염세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국 불교는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진짜 현실이고 꿈이 아니라면, 만일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사과를 보고도 맛있겠다는 생각을 느껴서는 안되죠. 실제의 대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맏고, 맛을 느끼고, 촉감을 느낄 때만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허상에도 똑같이 반응한다는 것은 그 확고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치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온갖 영상이 비쳐지는 것처럼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으로서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 불교이고 부처님은 그렇게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상락아정의 세계, 항상 즐겁고 참다운 나(모든 중생의 차별이 없는 한마음의 나)의 안정된 경지에 계신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부처님의 일부이지요.
텔레비젼에 비친 맛있는 사과나 무서운 호랑이, 징그러운 뱀, 아름다운 여자 모두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텔레비젼에 비친 영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도 없지요. 그러나 텔레비젼을 잃어버린다면, 그러한 모습들을 다시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텔레비젼은 주인이고, 그 영상들은 손님입니다.
손님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그 주인은 결국 남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항상됨이 없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보내면 결국 떠나보낼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남게 되는 데 그것이 참다운 나입니다(수능엄경 참조).
그 참다운 나(텔레비젼)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돌맹이를 갖고 석공이 사람을 만들면 사람이 되고 토끼를 만들면 토끼가 되고 거북이를 만들면 거북이가 되듯이 영원한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영원한 미래, 그리고 모든 공간에 걸쳐 원래부터 있던 그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질 것도 없는...
석공이 가공하지 않는 그 근원인 원석을 찾아가듯, 모든 분별심에서 생겨난 온갖 집착을 여의고 그 모든 분별심이 생겨나는 주인된 마음으로 돌아가면, 나와 남의 분별이 사라지고 텔레비젼에 온갖 영상이 비치듯 온갖 중생의 모습이 나타나지요(현일체색신 삼매).
삼라만상의 온갖 중생계가 바로 부처님의 세계지요. 영원한 즐거움의 세계. 상락아정의 세계.
부처님은 모든 존재를 통틀어 절대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즐거운 분이시라고 스스로 경전에서 여러 차례 확고히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자님! 꿈속에서 본 사과를 창조한 자는 누구일까요?
분별심입니다.
온 우주와 인간과 정신세계와 시공간, 모든 것들을 창조한 자는 누구일까요?
만일 온 우주 어딘가에 그 어떤 확고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분명히 그 무엇인가에 대한 창조주가 있겠지요!
그렇지만, 모든 것은 언젠간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고, 변화합니다. 확고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보살님들은 온 우주를 환화(꿈)와 같이 보신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텔레비젼에 비친 사과 영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영상이 나타나는 텔레비젼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항상됨이 없는 거짓된 나를 버리고, 생겨날 것도 없고 사라질 것도 없는 주인된 본래의 마음을 찾는 다면,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온갖 영상이 나타나듯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지요. 사과 영상의 파일을 복사해서 1000개의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1000개의 사과 영상이 나타나고, 억만개의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억만개의 사과 영상이 나타나지만, 조금도 사과가 줄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절대 행복의 경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환화와 같은 온 우주에서 모든 차별이 없는 주인된 본래 마음을 찾으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인된 본래 마음에서 항상 모두를 가장 이롭게 하시려는 부처님의 마음이 부처님을 가장 행복하신 분으로 만든 것입니다.
원래 생겨날 것도 없고 사라질 것도 없는 본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