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미륵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라는데 이거 사이비죠?

약사여래미륵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라는데 이거 사이비죠?

작성일 2023.12.05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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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입니다. 친척 중에 갑자기 추천으로 가끔 간다는데 영..믿음직하지 않아서요..네이버 검색창에 쳐도 어디안나오네요..
비슷한 종교라도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흠..
이거 사이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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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것만으로는 사이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약사여래불은 불경에 정식으로 나오는 부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4대 기도처인 대구 갓바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 바로 약사여래불이거든요.

조그만 절은 검색에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검색창에 안나오는 사찰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약사여래를 모시는 곳이라면, 일반적 사찰일 가능성도 잇습니다.

약사보전 보광전 만월보전 유리광전 :

약사여래는 "널리 광명을 펼쳐, 보석처럼 밝게 온누리를 비춰주시는 분이라는 뜻"에서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을 보광전, 만월보전, 유리광전이라고도 부른다. 가운데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좌측에 일광보살, 우측에 월광보살을 모신다. 후불탱화는 12신장 또는 사천왕이 호위하는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가 봉안된다.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의 부처인데, 약사불은 동방정토의 부처이다.

그러므로, 약사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짓게 되는데, 대개 극락전과 마주보고 짓는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모든 중생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킨다는 12대원을 세워 이를 수행하였고, 이러한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다. 즉,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고, 여러 고통을 없애주는 동방유리광세계의 부처님이다(아미타불은 보광명전, 약사불은 보광전).

치성광여래 ~ 불교적 관점에서, 온세상 우주를 "불국토"라 한다. 이런 우주를 항하사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라 하여, "삼천대천세계"라 표현한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불국토로 생각하여, 밤하늘의 무한한 광명을 비추어주는 "북극성"을, 한민족은 “칠성님,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라 하였다.

삼신각에 모시는, 일곱분,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주불인, 칠성님(치성광여래)는, 무병장수와 자손 번창을 상징하므로, 불교에서는 약사불처럼, 좌우에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소재보살)과 달을 든, 월광보살(식재보살)을 좌우 보처로 하는, “삼존불”로 하거나, “삼존불”주변, 좌측에 3위, 우측에 4위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분 여래가, 증명하고, 호위하는, “십존불”형태의 후불탱화를 하고 있기도 한다. 특이하게, “서산 개심사”는, "치성광여래도"대웅전에 모시고 있다.

알려진 영험한 약사보살 기도처 ~

창녕 관룡사 ~우리나라 최초의 약사 기도처. 창건할 때 용이 구름타고 올라 가는 것을 봤다하여 관룡사라 이름을 지었다함. 임진왜란때 모든 건물이 불탔는데, "약사전"만 불화를 면하여, 기이하게 여긴 스님이 대들보를 확인한 바, "영화5년기유"(349년)라는 글귀를 발견하였다 한다. 이때부터 화를 면한 소문으로, 관룡사에서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이 널리 펴졌다 ② 경산 불굴사 약사보전 ~불굴사의 약사기도 영험과 함께, 이곳 홍주암은 영험한 나반존자(독성) 기도처이기도 하다. 원효대사 최초 수행굴인 원효굴과 함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기도하여 비법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이름이 비슷한, 경주 골굴사는 12개 석굴로 이루어진 석굴사원인데, "선무도"가 유명하다

팔공산 갓바위~ 대구(경산) 팔공산 선본사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431호)~638년(선덕여왕7년), 원광법사 수제자인, 승려 “의현”이, 돌아가신 모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갓바위는, 석가불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는 아미타불, 약사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약사불로 알려 졌다. 조선 후기, 미륵신앙이 유행하면서, 머리에 쓴 천관을 이유로, 미륵불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어느 때부터, 왼손에 약합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약사불”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평생 1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알려진, 약사불로 믿고, 소원을 빌고 있다. 특히, 머리에 쓴 “천관”이 “학사모”와 비슷하다 하여, 각종 시험합격 기도를 많이 한다(차후, 왼손 약합을 자세히 조사하여, 약합은 왼손 엄지손가락임이 밝혀졌다). 팔공산 갓바위는 “영험한 산신기도처”로도 알려져 있다.

관악산 연주암과 함께, 연주대의 마애 약사여래불(연주대의 마애약사불은 영험한 약사기도처이고, 연주대의 응진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⑤ 당진 상왕산 영탑사~ 유리광전에 모셔진 마애약사여래불은, 아픈 곳을 치유하고, 한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⑥ 부산 금정산 약수정사~"세상에 이런 일이" TV에 등장한, 폭우때 스스로 법당마당에 자리 잡았다는 마애약사불이다. ⑦ 양주 장흥 용암사 약사전~우연히 송추유원지 인근, 노송아래 땅속에서 발견한 영험한 약사여래불이다.

⑧ ​서울 북한산 승가사 약사전~승가사 보물 215호인, 마애석가여래 영험과 함께, 승가대사의 좌상(보물1,000호)을 모신 약사전의 영험과 그 옆 약수물 효험이 유명하다(왕실기도처인, 승가사의 약수물을 세종임금의 왕후인, 소현왕후가 마시고, 병이 나은 후, 승가굴의 이름을 약사전으로 변경하였다한다. 약사전 입구 바위에 새겨진 초서글씨는, 추사 김정희 글씨로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816년, 승가사를 방문하여 승가사 바로 위에 있는 “비봉”에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비봉 바로 인근에 있는 “사모바위” 바로 아래에는, 1968년1월21일, 청와대습격을 위하여(1.21 청와대 습격사건), 북한 무장공비가 잠시 머물렀다는 암굴이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약사사~ 당초 방화동 개화산 “개화사”였는데, “약사사”로 개칭함. 경내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39호)”과 “대웅전” 모셔진, “석불입상(40호)”이, 고려 후기 양식을 지니고 있어, 고려말~조선초 사이에 창건되었다 추정한다. 1737년에 이르러, 영조임금시절, 우의정을 지냈던 송인명이 이곳 산사에서 공부하여, 재상이 된, 인연으로, 절을 중수하였고, 조선후기, 이곳에서 현령을 지냈던, 화가 “겸재 정선”은 "개화사"와 주변 한강풍경 산수화를 많이 남겼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대형 석불”은 영험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여, 조선 순조이후에, “약사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나즈막한 야산인, 개화산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한강과 행주산성이 조망되며, 남쪽으로는 김포공항이 보인다. 개화산은 봉화가 있던, 군사적 요충지이므로, 과거 건물은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 건물은 모두 198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대형 석불”은 가슴으로 모아진, 두손에, “약병”이 아닌, “꽃가지”를 들고있어, “미륵석불”임을 나타내고 있다(이 블로그 아래 쪽, “부처와 보살의 모습” 참조). 그러나, 치유영험의 “약사불”로 불리므로, 공식적으로는 그냥 “석불”이라 이름하고 있다.

삼척 두타산 삼화사 약사전~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로서, 후삼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대업을 달성한 후, 후삼국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삼화사라 개칭 함. 약사불의 영험이 전해지며, 이곳에서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지었다고 하며, 인근에 무릉계곡과 용추폭포가 있다

장성 백양사 약사암과 영천굴~약사암의 약사여래불과 영천굴의 약수 영험이 유명하다. 아울러 인근 백양사의 칠성전은 영험한 칠성님(하느님)기도처로 알려져 있다(이 블로그 아래편, 영험한 칠성기도처 참조). *장성 내장산(백암산) 백양사~ 유명한 가을 단풍관광지인, 백양사는 631년(백제무왕 32년), 승려 “여환”이 “백암사”로 창건하였다. 그후, 승려 “중연”이 1034년(고려 덕종3년)에, 중창을 하고, “정토사”라 하였는데, 1574년(선조7년)에, “환양선사”가 “백양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찰이름을 바꾼 연유에 대하여, 몇가지 전설이 있다. ① 환양선사가 영천굴(백양사에서 30분정도 거리의 절벽에 있는, 약수가 나오는 천연굴. 현재는 영천굴 앞에 약사암을 지었고, 영천굴 위의 절벽에 전각을 지어,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영천굴의 약수는 영험하다고 한다)에서 금강경을 읽고 설법을 했다고 한다. 3일째 되는날, 흰양이 나타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7일째 되는날, 꿈을 꾸었는데, 흰양이 나타나, 자기는 원래 하늘의 “천인”이었는데, 죄를 지어 짐승이 되었고, 선사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천인”으로 환생하게 되었다는 꿈이었다. 환양선사가 이튿날 아침 일찍 영천굴앞에 가보니, 흰양 한마리가 죽어 있으므로,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바꾸었다고 한다(약사암 전각에는 이런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② “환양선사”가, 백양사 대웅전에 머물면서, 경을 설법하고, 염불을 하자, 흰양들이 내려와 경청하는 등, 흰양들이 몰려 오는 일이 잦아, 절의 이름을 "정토사"에서, “백양사”로 개칭하였다는 등의 전설이 있다.

백양사 보물로는 극락보전아미타여래좌상(보물2066호)이 있고, 최근 명부전 “지장보살좌상” 복장유물에서 “조성필공기”라는 "발원문"이 최근 발견되었는데, 이 불상이 1653년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지장보상좌상"은 조만간 보물로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2023년 현재). 전남유형문화재로, 대웅전(43호), 사천왕문(44호)가 있다. 백양사 경내의 8층탑은 8정도를 상징하며, 석가여래의 진신사리 3과를 안치하고 있다.

백양사 이팝나무~ 고려 공민왕때, 영광 "불갑사"를 중창한 각진국사가 쌍계루를 건축하면서, 쓰던 지팡이를 쌍계루 앞, 연못가에 꽂아두었는데, 그 지팡이에서 잎이 돋고, 꽃이 피는, 현재의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인근, 백양사 천진암은 사찰음식대가인 정관스님이 주석하는, “비구니 도량”이라고 한다.

* 고승들이 꽂은 지팡이가 살아난, "지팡이 전설”~ 백양사를 포함하면 전국에 6군데가 있다. ① 백양사 쌍계루앞 연못가 이팝나무 ②송광사 천진암 곱향나무(쌍향수나무) ③태백산 정암사 주목나무 ④ 영주 부석사 선비화 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⑥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등의 6군데이다.

*정읍 내장산 내장사와 벽련암~ 백양사인근의 단풍거리로 유명한 정읍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암으로 창건하였는데, 추후 이 영은암을 내장사로 바꾸게 되었고, 백제 의자왕20년(660년)에 창건한 내장사(백련사)를 백련암으로 바꾸었다한다. 추사 김정희가 이 백련암을 벽련암으로 바꾸고 현판을 써주었는데, 625때 현판과 함께 전각이 소실되었다. 즉, 기존의 영은암을→내장사로 하고, 기존의 내장사를→ 백련암→벽련암으로 바꿈. 현재는 백련암과 벽련암이 혼용되고 있다. 내장산 벽련암에는 자생 "차밭"과 함께 국내 최고령 단풍나무가 있다.

구미 금오산 약사암 약사전, 김천 수도산 수도암 약광전, 김천 황악산 직지사 약사전~ 이 세분 약사불은, 함께 방광을 하는 형제 약사불로 알려져 있다. * 금오산 약사암 약사불은, 광배가 있는 석조약사여래인데, 구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금오산 기암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금오산은 골짜기 마다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관으로 일명 소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약사암과 범종각이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이 또한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약사암아래 절벽에는 암벽의 좌우로 조각되어 입체감을 주는 마애여래입상(보물490호)가 있다.

* 김천 수도산 수도암은, 859년 도선국사가 천하적지 수도명당이라는 "옥녀직금형" 명당자리에 사찰을 건립하고, 수도암이라 명명하였다한다. 수도암 약광전의, 광배가 있는 영험한 석조약사보살좌상은 보물296호이고, 대적광전안에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307호이며, 사찰마당에 있는 도선국사비는 신라명필 김생의 글씨로 밝혀 졌다고 합니다. 김천 수도산, “청암사”에서 “수도암”까지의 길을, “인현왕후길”이라 한다(9키로, 2시간30분). 장희빈으로 인해, “페서인”된 인현왕후가, “청암사” 극락전에 3년간 머물며, 산책을 하고, 애환을 달래며, 복위를 부처님께 기원하였다던, 유서깊은 아름다운 길이다(인현왕후~아래, 영험한 나한기도처 “불영사”참조)

* 김천 황악산 직지사 약사전에는, 삼형제 약사불로 알려진, 영험한 광배가 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319호)은, 얼굴 마모가 심하여 "직지성보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청풍료"에 모셔져 있고, 약사전에는 새로이 조성된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직지사는 사명대사의 출가 사찰이며, 대웅전에도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직지사는 9월 중하순에 붉게 피는 꽃무릇이 장관을 이루는 데,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와 함께,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하다.

봉화 청량산 청량사 유리광전~ 영험한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광전은 청량사의 주전각인데, 좌우에 지장보살과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이 유리광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 한다(이곳의 유리광전은 영험한 약사기도처이고, 응진전은 영험한 나한 기도처).

* 구례 사성암~원효, 도선, 의상 그리고 고려 후기 진각스님의 4분 성인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함. 높이 20미터의 절벽에, 4미터되는 음각의 "마애약사여래입상"을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설화가 있다. 이곳 절벽에 기둥을 바치고 "약사유리광전"(약사전)이라는 암자를 지었다. 영험한 약사기도처인 이곳 인근에 "도선굴"과 소원을 들어 준다는 "소원바위"가 있다. 주변 바위의 형상이 뛰어 나며, 이곳에서 구례들판과 섬진강이 조망된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보조국사가 창건한 영험 약사기도처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대웅전이 2개 있는 곳이다. 상대웅전(보물 162호)에는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58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174호), 미륵쾌불탱(국보300호)가 있고, 하대웅전(보물181호)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337호에서 최근 국보로 지정)이 있다.

*서울 북한산 흥국사 ~ 약사전을 주불로 모시는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에, 원효대사가 도봉산 망월사 인근의 “원효사”에서 수행하던 중, 도봉산 넘어, 북한산의 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고 있어, 그 서기를 뒤쫒아, 서기를 찾던 중, 이곳에서 서기를 발하는 약사여래불 형상의 바위를 발견하였다. 그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는 뜻으로, 흥성암이라는 이름을 짓었다고 한다[원효대사는, 도봉산 망월사 인근, “원효사”에서 수도하였고, 이곳 “원효사”에는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영험한 나한기도처~ 도봉산 “원효사”참조)].

그 후, 1770년 영조임금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가 있는 인근 “소령원”(경기도 파주에 있는 데, 인근 "파주 보광사"에는 숙빈 최씨의 "어실각"이 있다)에 들린 후, 궁궐로 돌아 가던 중, 폭설을 맞아 부득이 이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흥성암” 맞은편 북한산 설경에 반하여, 주전불의 “약사전”이라는 친필현판을 하사하였고, 주전불인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라는 뜻으로, 흥성암의 이름을 “흥국사”로 바꾸게 하였다. 나아가 궁궐의 상궁들이 번갈아 머무르고 “선학”을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왕실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설법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타전 안의 후면 “구품극락도”는 김홍도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약사기도도량인 흥국사는 북한산 맞은편의 노고산(한미산)기슭에 있어, 북한산 조망이 뛰어나다.

*파주 보광사~ 국가 비보사찰로 894년 도선국사가, 어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고령사”라 하였다. 그후, 1388년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이후, 1622년 중창한 보광사는, 영조가(1740년, 영조16년), 인근에 (숙종의 계비였는데, 장희빈의 모략으로, ”페서인”되었다가, 차후, 복위한 인현왕후의 무수리였던,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소령원”을, 조성하면서, 소령원 원찰에 되고 “보광사”라 개칭하였다. 대웅보전 옆에 숙빈 최씨(무수리로서, 날마다 인현왕후의 복위를 기도하고, 성은을 입어, 숙빈 지위까지 오른, 드라마 “동이” 주인공)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어실각”이 있다. 어실각 옆에는 영조가 심었다는, 수령 300년의 향나무가 있다. 그러므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기리는, 경기도 화성 "용주사"와 함께, 보광사는 영조의 “효”를 실행한 사찰로, “효”의 본보기 도량이 되었다.

보광사의 “대웅보전의 현판”은 영조대왕의 친필이다. 대웅보전의 용머리 “공포장식”도 볼거리이며, 대웅보전 천정에는, 동양화 기법으로 그려진, 보기드문 “화조화”와 “초충도”가 그려져 있다. 또 대웅보전의 벽화에는, 극락갈때 타고가는 “반야용선”, 수월관음과 동자, 연꽃위의 보살, 신장과 사자, 백호가 그려져 있어 사찰의 미술관을 보는 듯하다.

대웅보전 건너편, "만세루"에는 어룡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보기드문 빼어난 수작인, “목어”가 걸려 있다. 1981년에는 절 뒤쪽에 대형 "통일대불"을 조성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대웅보전(제83호), 동종(158호), 목조보살입상(248호), 영산회상도(319호), 지장시왕도(320호), 현왕도(321호)가 있다. 이중에서, 158호 "동종"은 2023.8월 국가 “보물”로 승격지정되었다(문화재는 그 소중함에 차이가 없으므로, 2022년 12월부터, 모든 국보와 보물에 번호를 부여하지 않는 다고 한다)

*공주 갑사~춘마곡 추갑사라 하여,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라 말하는 가을여행지인 갑사에서, 20미터쯤 떨어진 등산로 전각안에 충남도 유형문화재인 석조약사여래불이 있다. 갑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대장경판이라는 "월인석보판목(보물582호)"을 보관하고 있다. 또 갑사에는,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를 모신 표충원이 있는 데, 이 갑사의 표충원과 유사한 곳이 밀양 표충사이다. 임진왜란의 유공자인 세분 스님 위패를, 밀양 죽림사에 모시고, 이름을 죽림사에서 표충사로 바꾸게 되었다. 인근 밀양 홍제사에는 땀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사명대사 "표충비"가 있다. 갑사, 동학사(비구니스님들이 공부하는 승가대학이 있다), 신원사(왕실 3대 산신기도처인 "중악단"이 있다. 영험한 산신기도처 참조)를 계룡산의 3대사찰이라 한다.

*공주 마곡사~ 640년(무왕41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산지승원의 하나이며, 백범 김구선생이 출가한 사찰. 안에 있는 4개의 싸리나무 기둥을 돌면, 극락을 간다거나, 아들을 낳는 다는 전설이 있는 대웅보전(보물801호),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100일 기도를 드린후, 걸어서 나갔다는 전설이 있는 대광보전(보물802호), 세조의 현판글씨로 알려진 영산전(보물800호), 5층석탑(보물799호),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묘법연화경7권(보물269, 270호), 석가모니불 쾌불탱(보물1260호), 그리고, 천왕문, 동종등 충남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김구선생이 은거한, 백련암으로 가는 길을, 백범명상길로 명명하였으며, 백련암 뒤쪽에는, 한가지 소원은 꼭들어 준다고 알려진 “마애불”이 있다.

*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해가야(금관가야) 불교는, 김수로왕(42.3.16 ~199.3.23) 당시에 바닷길을 통해 전파되었고, 그 시절에 창건된 밀양 만어사와 밀양 부은사, 하동 칠불사가 있다. 이블로그 저 아래, 불교의 전래, 가야불교 부분 참조].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전진의 왕 “부견”이 승려 “순도”와 사신을 통하여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하였는데, 그로부터 2년뒤인, 374년(소수림왕 4년)에, 진나라로부터 승려 “아도”가 고구려에 왔다. 그 7년 뒤인, 381년에,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여 가는 도중에, 강화도에 들리게 되어, 전등사의 전신인, “진종사”를 세웠다고 한다.

진종사는 900년 가까이 지난 뒤인, 1266년에 중창되었고, 1282년(고려 충렬왕 8년)에, 충렬왕이 태자였던 시절에 혼인을 하였던, “정화공주”가 대장경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 정화공주는 17년동안 태자비로 살면서, 왕비가 되기를 기다렸으나,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원성공주)에 밀려, 끝내 충렬왕의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공주이다. 제국대장공주(원성공주)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다. “쿠빌라이”는 징기스칸의 손자로, 동부 유럽에 이르는, 대 몽고제국을 건설한 황제. 충렬왕이 원나라 볼모로 있을 때, 혼인동맹을 위해,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고, 결혼 후, 귀국하여 충선왕을 낳았다. 정화공주는 고려 충렬왕의 정실이지만,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에 밀려 제2비로 떨어졌다. 아들을 낳았지만, 왕위는 “제국대장공주”가 낳은, 원나라 황실의 외손자인 충선왕에게 돌아갔다. 세월이 흐른 후, 정화공주의 손자가 공양왕에 오른다.

그 후, 전등사는 1614년(광해군 6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는데, 1621년(광해군 13년)에 새로이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지어진, 보물 178호인, 전등사 대웅보전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대웅전 네 모서리의 처마밑에 있는, 손바닥과 머리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조각상”이다. 알려진 내용에 의하면, 중창불사의 대웅전 건축공사를 맡은 도편수는 아랫마을 주막의 주모와 눈이 맞았고, 둘은 공사가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함께 살기로 약속을 하였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건내 주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기 직전, 주모는 도편수가 맡긴 돈을 전부 챙겨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이에 몹시 분노한 도편수는, 도망간 주모가, 두 손바닥과 온 몸으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고통과 함께 벌거벗은 모습의 수치를 견디며, 법당에서 들려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참회하라는 뜻으로, 주모닮은 벌거벗은 여인상”을 대웅전 처마 네귀퉁이에, 새겼다고 한다. 더욱 해학적인 것은, 네귀퉁이 중에서, 두 귀퉁이의 “나상”은, 한손으로 만, 지붕을 떠받치고 있어, 마치 주모가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선조의 재치와 익살을 느끼게 하고 있다. 전등사에는, 대웅전(보물 178호), 약사전(보물 179호), 철종(보물 393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 1785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보물 1786호), 묘법연화경목판(보물 1908호)의 국가보물 6점을 보유하고 있다.

전등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2그루(수령 700년, 350년), 느티나무 2그루(수령 각 400년), 청단풍나무 1그루(수령 280년)가 있다. 전등사 은행나무는, 주지스님이 과도한 은행나무 열매공물을 요구하는 관청에 대하여, 고민을 하던 중, 홀연히 나타난 “추송”스님과 동자승, 그리고 노스님이,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하는 3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다한다. 그런데, 3스님의 마지막날 축문은, 전등사의 은행나무가, 천년만년 더 이상, 열매가 맺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축문이 끝나자,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고개를 숙인 사이에, “추송”스님, 동자승, 노스님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은행나무에는 더 이상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400년된 느티나무 2그루는, 대웅보전 뜰앞, 대웅전을 오르는 길목에 1615년 전등사를 중창하면서, “풍치목”으로 심었다고 하며, 대조루(대웅보전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누각식 건물) 동편에 심었다는 280년된 청단풍나무는, “초윤”주지스님이 대조루를 중창하면서, 1749년(영조25년)에 심었다고 한다.

전등사 철종(보물 393호)은, 중국 북송때인, 1097년 하남성 “송명사”에서 조성한 것으로, 한국종과 다르게, 상부의 음통이 없다. 전등사 예전의 동종은 일제시대때 징발되었는 데, 해방후, 이 동종을 찾기 위해, 인천항을 샅샅이 뒤졌는데, 우연히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징발된 종을, 일본군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하고, 이 철종을 전등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전등사가 있는 뒷산은 세발달린 솥을 엎어놓은 형태라 하여 정족산(231m)이라 한다(가운데 정상은 높고, 좌우 능선은 낮은, 정상을 기준으로, 남동쪽을 향해, 좌우로 능선이 있는 형태이다. 이런 형세 때문에, 정족산성(삼랑성)에 있는, 전등사에 들어가려면, “종해루”가 있는 남문이나, 문루는 사라지고 둥그런 홍예문만 있는 동문을 통해서만 들어 갈수 있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을 “정족산성”이라 말하기도하고, 삼랑성이라 말하기도 한다. 단군의 세아들인,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삼랑성(정족산성) 안에는, 전등사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 가궐지(고려 항몽시기의 임시 대궐터), 왕실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다. 삼랑성(정족산성) 성곽에 오르면(둘레 약 2.3키로, 높이 2~5미터), 전등사가 한눈에 보이며, 멀리 마니산도 보인다.

이런 강화도에, 프랑스군이, 1866(병인년) 10월16일, 프랑스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 “리델”신부와 최선일, 최인서, 심순녀등 3명의 조선 천주교도의 수로안내를 받으며, 군함 4척, 상륙군 900명을 동원하여, 갑곶진에 상륙하고, 강화부를 점령하였다. 1866.11.7일, 양헌수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정족산성에 은밀히 잠입하여,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런 대승을 거둔, 양헌수”장군의 전승비정족산성(삼랑성) “동문” 안 있다("병인양요"원인과 전투 승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 저 아래 부분인, “절두산” 부분 참조/ 병인 양요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을, 우리 힘으로 물리친 전쟁이다​)

전등사 경내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었는데, 현재의 “정족산사고”건물은 1931년 이후, 없어진 것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 오대산사고에 대하여는, “오대산 월정사”부분 참조).

* 대구 동화사~ 영천 은해사와 더불어, 팔공산 대표사찰인 동화사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전인, 493년(소지왕15년)에, “극달”스님이 “유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스님이, 832년(흥덕왕7년)에 중창하고, “동화사”로 개칭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신라불교는, 눌지왕(411~457)시절, 육로를 통하여, 고구려 승려인 “묵호자”와, 고구려에서 온,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파하였지만, 공인을 받지 못하였다. 그 후, 이차돈의 순교로, 순교 이듬해인, 527년에 국교로 공인되었다 한다). 영천 은해사는, 영험한 나한 기도처 참조

대구시민이 “팔공산 갓바위”와 더불어, 가장 많이 기도 드린다는,"동화사"의 “통일 약사대불”은 1992년 세운, 높이 33미터의 돌로 만든, 세계 최대 석불이다. 동화사는 국민관광지로 지정. 보물은, 대웅전(보물1563호), 일주문앞 마애여래좌상(보물243호), 비로암(비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244호), 비로암(비로전) 삼층석탑(보물247호), 금당암(극락전)의 2기 동서삼층석탑(보물248호), 당간지주(보물254호), 아미타회상도(보물1610호), 목조약사여래좌상복장전적(보물1607호)등이 있다.

* 세계 최대의 불상~ ① 세계 최대의 석불 ~"동화사"의 “통일 약사대불”은 1992년 세운, 높이 33미터의 돌로 만든, 세계 최대 석불이다. 미륵석불로는, 논산 관촉사 미륵석불은 18미터이고, 파주 용암사 마애미륵불은 17미터이다. ② 세계 최대의 청동 대불~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1990년 "청동"으로 완공하였고, 2000년에 대불에, 순금으로 도금하였다. 높이 33미터로, 세계최대 청동 불상의 높이였으나, 1993년 34미터인 홍콩 포린사원의 청동대불인, “천단대불”에 뒤졌다.

좌불 ~ⓐ 부산 홍법사(2003년, 창건. 조계종)~2010년에 완공한, 높이 21미터 "아미타좌불"이 있다. 건물위에 있으므로, 좌대(건물)를 포함하면, 45미터로, 우리나라 최대 좌불이다. 1층 내부는 대웅전이며, 좌불상안에 들어가면, 티벳 달라이라마가 보내준, 부처님진신사리 탑이 있다. ⓑ 강진 남미륵사(1980년 창건. 세계불교 미륵대종 총본산)~2007년 완공한, 동양최대 규모의, 높이 36미터 "황동 아미타좌불"이 있다. 남미륵사는, 봄에 서부해당화와 붉은 철쭉이 만개하여, 봄 꽃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동굴법당 ~ 의령 봉황산 일붕사~ 일붕사 법당은, “석굴대웅전” 138평, “석굴무량수전” 90평을 비롯한, 여러 전각을 두루 갖춘,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매일 2백여명 이상의 불자들이 찾는, 영험한 소원성취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경남 의령, 봉황산 봉황대 일붕사는, 727년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그 전신이다. 이곳 봉황대는,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전승 후, 신라 성덕왕이,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고, 선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봉황산 봉황대 “성덕사”라 하였다. 조선 성종때, 이름을 “정수암”으로 하였으나, 숭유억불정책으로 불상들이 파괴되었다.

1934년, 이곳 면장과 봉황산 산주가 합세하여, 봉황대의 덕경을 위해, 관음보살상을 모셨으나, 그후, 화재로 소실되었다. 뒤를 이어, 이야용스님이 새로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으나, 1984년,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986년, 일붕 “서경보”스님은, 뒷산의 이름이 "봉황산"이라,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를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하다고 지적하므로, “혜운” 주지스님이, 드디어 동굴법당의 불사를 이룩하고, 사찰명칭을 “일붕사”로 하게 되었다 한다(일붕 서경보~동국대학교 교수와 조계종원로의원을 역임. 1988년 일붕선교종 창종. 세계최다박사학위(73개)와 세계최다저술가(733권)로, 세계기네스북에 등재, 1996년 입적).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블로그 참조

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부처와 보살의 모습(천수경기도문: 신묘장구대다라니경)~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andsing/221955604245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불교라는 종교 그 자체가 사이비입니다.

불교가 석가모니를 따르는 종교인가요? 아니면 귀신을 믿는 종교인가요?

삼성각은 산신, 북두칠성, 독성의 3신을 모신 곳이고, 칠성각은 북두칠성 신을 모신 곳입니다.

그런데 절간에 삼성각, 칠성각을 짓고, 불자들은 그곳에서 복을 빈다고요?

모두 미신이며, 부파불교 시기에도 귀신에게 복을 비는 행위는 그릇되다고 했습니다

【14】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산이나 물이나 나무신[樹神]에 귀의하며 사당 세워 신(神)의 형상 그려놓고서 거기에 제사하며 복을 구한다.

【15】 스스로 귀의하여 이와 같이 하는 것 길(吉)한 것도 아니요 최상도 아니라네. 나는 온갖 괴로움에서 구제하지만 저들은 나에게 오지 않네.

【16】 만일 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대중에게 스스로 귀의하는 이 있으면 도덕과 네 가지 진리로 반드시 바른 지혜 보게 되리라.

출처: 쿳다까니까야 법구경 담마빠다

불교나 불자들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석가모니를 따른다며 사기를 치나요?

석가모니도 부정한 미신을 불자들은 왜 신봉하고, 석가모니를 따른다는 중들은 왜 석가모니의 말을 개무시하는 거죠? 자신들의 사상과 배치된 49재, 천도재, 위령제, 사주팔자, 부적 등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중들의 사기행각에 불자들이 속아넘어가서 그렇지 않겠나요?​

불자들이 정신 차려야 불교가 개혁됩니다.

석가모니 정신으로 되돌아오도록 불자들이 개혁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나 불자들이 멍청하게 속아넘어가니 불교가 개혁이 되겠습니까?

백날 불공, 염불, 108배 드려봐야 소원성취됩디까?

복이 바가지로 쏟아집디까?

모두 대승불교와 중들의 사기행각일 뿐입니다.

불교는 누구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종교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종교입니다.

또한 석가모니는 자신은 부처도 신도 아닌 인간인 아라한이라고 했음에도 불교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자 주인이며, 법신이자 비로자나불로 추대해서, 석가모니에게 빌고 절을 하면 소원성취 이루고 복을 바가지로 받는다고 사기를 치며, 석가모니도 모자라 온갖 보살, 부처, 귀신에게도 빌며 절을 하고 있지요.

과연 세속적, 미신적으로 타락한 불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줄 요약: 신이나 귀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족: 그렇다면 보살, 부처와 같은 많은 신, 귀신을 믿는 불자들은 띨띨함의 상징이군.

약사여래미륵부처님을 모시는...

... 이거 사이비인가요?? 네이버 검색창에 안나오는 사찰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약사여래모시는 곳이라면, 일반적 사찰일 가능성도 잇습니다. 약사보전 보광전...

절에 다니시는분들 도와주세요~

... 절에는 한번 가보고 싶은데 혹시 사이비 종교같은건 아닐까 걱정되서요.... 미륵부처님을 모시는 절?? 의문이네요..... 그외에도 아미타불 부처님도 계시고 약사여래부처님...

진지하게 부처님꿈 해몽 부탁드립니다...

... 무속이 모시는 "신"이 부처님법에 의지하고 있음을...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을 모신 전각. 미래불이 출현하는... 불교에서는 북극성을 "치성광여래"(약사여래)라 부른다....

예지몽 신내림

... 무속이 모시는 "신"이 부처님법에 의지하고 있음을...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을 모신 전각. 미래불이 출현하는... 불교에서는 북극성을 "치성광여래"(약사여래)라 부른다....

절..에서 공짜숙식제공하는곳잇나요??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

불교보살님들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계기가 불이란의견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

절에 다니고싶은데 어떻게시작하면...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

절은 왜 음지에 있나요?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

불교에서무교로바꾸는법이요

...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 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