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관련 질문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관련 질문

작성일 2023.11.27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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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입니다

가운데 불상은 왜 모자를 쓰신 건가요? 모자의 의미가 모엇인가요? 왜 다른 대부분의 불상은 모자를 안쓰셨나요?





#당진 안국사지 #당진 안국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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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미륵불을 여래라 표현한것~

미륵불 ~

내세의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미래에 출현할 부처님으로, 시무외인+여원인을 하고 있으며. 사찰에 따라, 머리에 사각화관과 아미타 수인을 하고 있기도 함.

미륵보살 ~

미륵 보살은, 부처가 될 것으로 미리 수인받은 보살로서, 현재는 하늘세계인 도솔천에서 욕계,색계의 천인들을 대상으로 교화 설법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런 보살이 미래에 부처가 되기 전에, 어떻게 각 중생의 근기에 맞게 설법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모습으로 상징되므로, 그 모습의 표현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으로 대표된다.

미륵 상생보살은 도솔천에 계시는 모습이므로, 대체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걸터 앉아서 무릎을 세운 모습이다. 미륵 하생보살은 머리에 사각 또는 원형의 보관을 쓰기도 하는, 서있는 입상인데, 일정하게 정해진 수인은 없으며, 간혹 "용화수인"이라는, 꽃가지나, 꽃봉우리를 한손 또는 두손으로 받쳐든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부처의 수인, 무드라~부처의 손 모습

① 지권인~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안쪽으로 감싸진 모습을 취한 후, 왼손의 검지(집게 손가락)를 오른손의 속으로 넣어, 왼손의 검지와 오른손의 엄지와 맞닿게 하며,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진 모습의 수인. 법신인 "비로자나"만 할수 있는 수인입니다. 이는 부처와 중생, 무지와 깨달음도 둘이 아니고, "본래 하나"("불이")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한다.

항마촉지인(항마인, 촉지인, 지지인)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인데, 석가가 성도할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수인이다. 그래서, 항마촉지인은 마군, 즉 악마들을 항복받는 손모양이라는 뜻입니다. 결좌부좌한 상태에서,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배꼽부근에다 대고, 오른손은 땅을 가르키며 무릎밑으로 내리고, 있는 모양.

시무외인 ~ 중생들의 모든 두려움과 우환과 고난을 말살시켜주고 위안과 원을 들어 준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대자대비의 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른손(또는 왼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이 보이게 밖으로 향한 모양입니다. ​이때 반대편 손은 주로, 여원인을 취한다(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모두 같은 의미인, 중생이 도움을 청하면 원을 들어주고, 베풀어 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원인 (시원인, 만원인) ~ 중생들이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베풀어 주겠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대자대비의 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왼손(또는 오른손)을 가슴쯤으로 내려서, 역시 손가락들을 다 펴거나,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꾸부리며, 손바닥을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때 반대편 손은 주로, 시무외인을 취한다(여원인과 시무외인은 같은 의미인, 중생이 도음을 청하면 원을 들어주고 베풀어 준다는 뜻)

전법륜인(설법인)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후, 최초의 설법인, 녹야원에서 설법할 때의 수인으로, 무한한 법문으로서 설법하시는 모습의 손모양입니다. 왼쪽손은 허리춤에서, 약간 펼친듯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위를 향하며, 왼손의 두 손가락끝을 오른손의 손목에 붙이며, 오른손은 가슴쯤 올린후, 펼치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는 원의 모습으로, 바깥쪽으로 펼친다. 손가락 원의 모습은, 불교의 법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⑥ 선정인(삼마지인, 삼매인) ~선정인은 부처님께서 결가부좌하여, 선정삼매에 든 때의 손 모양입니다. 이 선정인은 원칙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에만 지을 수 있는 수인입니다. 그래서 선정인을 법계정인, 등지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결가부좌하고 손바닥을 편 채, 왼손은 배꼽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개어 얹어,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⑦ 아미타 구품정인~중생의 성품에 따라, 중생을 상품,중품,하품의 3등급으로 나눈 후, 다시 각 등급별로, 상생,중생,하생으로 나누는 총9등급으로 나눈 것을 구품이라 하는데, 중생을 각단계에 맞게 설법해야 모두 구제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품을 아미타 수인에 적용한 것을 구품정인이라 한다. (아미타불은 사찰에 따라, 시무외인 또는 전륜법인(설법인)의 모습으로도 표현됨)

구품정인의 ⓐ상품은, 결가부좌하고 손바닥을 편 채, 두손을 포개어 얹어,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인 선정인과 비슷하지만, 왼손 엄지는 그대로두고, 상중하생에 따라, 오른손의 엄지와 (상품상생)집게손가락을, (상품중생)중지를, (상품하생)약지를 각각 맞붙게 한다.

ⓑ중품은, 두손을 가슴까지 들면서, 왼손은 위로, 오른손은 밖으로 향하게 하고, 상중하생에 따라, 각각 두손의 (중품상생)엄지와 집게, (중품중생)엄지와 중지, (중품하생)엄지와 약지를 마주댄다. ​ⓒ하품은, 중품과 모습이 같으나, 왼손이 오른손과 많이 떨어져 아래에 있다(하품상생, 하품중생, 하품하생).

천지인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모습 즉, "탄생불"의 손 모양입니다. 탄생불은 어린이의 모습이며, 발가벗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른 손을 번쩍 치켜 올려 하늘로 뻗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땅을 가르키는 모습입니다.

열반상(와불상) ~석가불의 열반을 상징하며, 머리를 북쪽, 얼굴은 서쪽으로 하고, 오른쪽 손과 어깨를 아래로, 옆으로 누운 모습입니다.

미륵보전 용화보전 :

현재는 도솔천에서 중생에게 설법하며, 내세에 중생을 교화할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을 모신 전각. 미래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고, 내세에 미륵불에 의해 정화되고 새롭게 이루어질 불국토인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하여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또한 자비를 상징하여 자씨전, 대자보전, 또는 장륙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장륙전이라고도 한다. 이는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내세신앙인데, 좌우에 묘량보살과 법륜보살 또는 대묘상보살과 법화림보살을 모심. ​후불 탱화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용화회상도, 또는 도솔천의 광경을 묘사하거나, 미륵불이 내려오는 모습인 미륵내영도이다→ 저승의 모습은 "사후세계 도표, 저승도표"참조

3대 미륵성지~

① 김제 모악산 금산사 ② 보은 속리산 법주사 ③ 고성군 금강산 발연사. 미륵신앙은 백제에서 특히 유행하였는데, 통일신라 시대의 "진표율사"에 의해 더욱 크게 유행하였다.

진표율사는 717년 완산주(전주) 태생인데, “3대 미륵성지”인, 속리산 법주사(553년, 진흥왕14년 의신스님이 창건)와 모악산 금산사(599년, 백제법왕1년 법왕이 창건)를 중창하고, 금강산 발연사(770년, 신라 혜공왕6년 진표율사 창건)를 창건하였다. 금강산 발연사는 고성군 외금강에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

599년(백제법왕1년)에, 왕실사찰로 세워졌다. 그 후, 766년(신라 헤공왕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고, “미륵전”을 세워, 미륵신앙의 본찰이 되었다. 1598년 정유재란때, 의병활동지라는 이유로, 왜병에 의해, “금강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1635년(인조13년)에 미륵전을 비롯하여, 중창하였다.

실제, 금산사는 화엄계열 사찰이므로, 미륵전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본불전”이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이, 장남 “신검”에 의해 3개월동안 감금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벗꽃길을 따라, 도보15분,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천왕문 입구에, 바로 닿을 수 있다.

주요 전각과 문화재로는,

대적광전(보물476호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화재로 소실되어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90년 복원한 것이다), 대장전(보물827호, 이름에서 보듯, 원래 불경을 보존하는 목탑으로 건축하였는데, 현재는 석가와 제자를 모시고 있다), 석등(보물828호), 노주(보물22호), 석련대(보물23호), 혜덕왕사탑비(보물24호), 5층석탑(보물25호, 적멸보궁앞), 방등계단(보물26호, 적멸보궁앞), 육각다층석탑(보물27호), 금산사 당간지주(보물28호)~참고로, 경주보문단지 당간지주(보물123호), 익산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236호), 영험한 지장보살 기도처인, “개심사”인근, 용현계곡에 있는,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103호)등이 있다.

금산사 미륵전(국보62호)~

복원물이 아닌, 1635년(인조13년)에 지어진, 국보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은, 그 내부는, 트인 통층이고, 외부는 3층으로 된, 우리나라 유일의, 기둥4개가 있는, 3층 누각식 “법당”이다(즉, 일반적인 누각식 “목탑”이 아닌, 법당이다. 아래 참조). 금산사 미륵전의 각층 현판에는, 1층 대자보전, 2층 용화지회, 3층 미륵전의 현판이 붙여있다. 법당 내부에는, 옥내에 있는, 부처님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인, 미륵불 11.8미터, 좌우 보살상은 8.8미터이다. 내부의 미륵불은, 일제때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이 조성한 것으로, 국가등록문화재 619호이다.

* 누각식 탑~

사방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층고를 높게 짓거나, 여러 층으로 지어진 집을 “누각”이라 한다. “”을, 누각식으로, 짓고, 그 안에 들어 갈 수 있도록, 건축한 “탑”을 “누각식 탑”이라 한다. 누각식 목탑으로, 오래된 것은, 보은 법주사 “팔상전”, 문경 봉암사 “극락전”이 있고, 화재 후, 새로 복원한,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있다. 근래 세우진, 누각식 목탑으로, 진천 보탑사 “미륵전”이 있다. 즉, 법주사 “팔상전”(국보55호)은, 누각식 “목탑”이지만, 금산사 “미륵전”(국보62호)은, 기둥4개가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누각식 3층 “법당이다.

알려진 영험한 미륵보살 기도처~

논산 반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상입상(국보323호. 일명 은진미륵)은 높이 18미터의 과거 최대 규모석불이었다(대구 "동화사"의 “통일 약사대불”은 1992년 세운, 높이 33미터의 돌로 만든, 세계 최대 석불이다. 영험한 약사기도처 참조). 고려초 한여인이 고사리를 꺽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찾아 갔더니, 크다란 바위가 땅속에서 솟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정이 불상을 조성토록 하였다.

970년(고려광종21년)부터 37년간 공사하여, 1006년(목종9년)에 완공. 거대한 불상을 세우는 방법을 문수, 보현보살이 알려 주었다 한다(모래사다리 방법으로 세움). " 관촉사 석등”(보물232호)은, 은진미륵보다 빠른, 963년(광종19년)에 조성되었으며, 광명의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하여 관촉사라 함. 영험한 미륵기도처로 알려져 있다.(​최대의 불상은, 아래 “영험한 약사기도처”, “대구 동화사” 부분 참조)

② ​파주 장지산 용암사~

용암사 뒷편에, 높이 17미터, 마애미륵불(보물93호)이 있다. “용암사”의 창건과 미륵불 조성연대를 알수없지만,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고려시대인 11세기경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해진, 설화에 의하면, 고려 13대 선종(재위 1083~1094)에게 후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후궁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이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기라. 그러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실제로 장지산에 큰 바위가 있어 서둘러 불상을 만들게 하였다.

“불상”을 조성하는 중, 꿈에 보았던 “두 도승”이 다시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상으로 조성할 것을 지시하면서, "모든 중생이 와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은 득남을 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불상이 완성되고 그 밑에 절을 창건하자, 후궁, “원신궁주”에게 태기가 있어, 왕자, 한산후 윤(왕윤)을 낳았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불상은,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도처로 널리 유명해졌다. 쌍 미륵석불의, 왼쪽 석불은 둥근 갓을 쓰고 연꽃을 들고 있고, 오른쪽 석불은 네모난 갓을 쓰고 합장을 한 모습이다.

“용암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어머니가 “서울 북한산 문수봉 문수사”와 더불어, 이곳에서 기도하여, 이대통령을 기도로 낳았다는 기념표석이 있는, 영험한 미륵기도처이다.

1954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용암사” 쌍미륵석불을 참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동자상”과 “칠층석탑”을 “미륵불” 왼쪽 어깨에 세워, 올렸는데, 이대통령 하야 이후 1987년 철거되어, 현재는 산신각 옆으로 옮겼다. 또, 범종각 인근에는, 박정희대통령이 “용암사” 방문기념으로 세운, 두개의 "석등”이 있다.

고창 도솔암 마애미륵불 (보물1200호)~

이 미륵불은,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조성하었다고 전해진다. 미륵불 배꼽에 있다는 "비서"를 열어 보게 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있다. 마애미륵불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발화점이 되었다.

도솔암의 마애미륵불은 영험한 미륵기도처이지만, 도솔암 내원궁은 4대 지장기도처 이기도 하다(도솔암이 있는 고창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24년, 577년에 창건하였는데, 9월 중하순, 단풍과 함께, 붉은 색의 무릇꽃(일명 붉은 상사화)이 만개를 이루는 온통 붉은 색의 장관을 연출한다.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곡성"의 찰영지이기도 하다)

* 영광 불갑사~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384년(침류왕1년)에,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는데, 백제 최초 사찰이며, 현존 하는 사찰이다. 제일 처음 지은 절이라 하여, 불갑사라 이름지었고, 영광의 법성포는 성인이 법을 지니고 도착한 포구였다는 의미의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 후기, 각진국사가 중창하였다. 보물로는 대웅전(보물830호),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1377호), 불갑사 불복장(보물 1470호), 각진국사가 심었다는, 700여년인, 참식나무 군락(천연기념물112호)이 있다. 불갑사는 매년 9월중순쯤, 온통 붉은 색의 장관을 이루는 “꽃무릇”축제가 열린다.

* 나주 불회사~불갑사와 함께, 백제 최초 사찰이며, 현존하는 사찰이다. 불회사는, 384년(침류왕1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했다는 설과, 그 보다 더 이른, 367년(근초고왕22년)에 “희연”이 창건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보물로는 대웅전(보물1310호), “건칠” 비로자나불 좌상(보물1545호)가 있다.

*건칠기법~찰흙으로 불상을 빚어, 그 위에, 삼베를 덧입히고, 옻칠을 한다음, 불상에 금물을 입히는 입히는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나주지역의 불회사(비로자나불좌상), 심향사(아미타불좌상), 죽림사(아미타불좌상)의 3사찰에는 “건칠불’을 모시고 있다.

* 나주 심향사~

원효대사가 “미륵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심향사”의 "건칠" 아미타불좌상 (보물1544호)은, 내부까지 금박으로 처리한, 보기드문 "건칠불"의 유일한 사례이다. 심향사에는 삼층석탑(보물50호)이 있다.

* 상사화와 꽃무릇(일명 붉은 상사화) ~

줄기잎과 꽃이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여, "상사화"라 하였는데, 꽃무릇도 일명, "붉은 상사화"라 말하기도 한다. ⓐ ​상사화~다년생 야생화로, 2~3월경에 줄기잎이 먼저 돋아나고, 6월말경에 줄기잎이 완전히 시든 후, 7월말~8월 초중순경에 30~50센티의 꽃대가 올라온다. 꽃대끝에, "연분홍색"의 6갈래 꽃잎의 꽃이 핀다. 즉, 줄기잎이 완전히 지고 난 뒤, 꽃대와 꽃이 핀다. 특히 상사화중, "위도"에 만 있는 "흰색 상사화", 내장산과 백암산에 만 있는 "짙은 노란색 상사화"는 세계적 희귀종이다.

꽃무릇(일명 붉은 상사화)~다년생 야생화로, 9월 중하순경에 30~50센티의 꽃대가 올라오며, 꽃대끝에, 가느린 꽃잎이 말린, 6갈래의 꽃잎이 있는 "붉은 색"의 꽃이 핀다. 꽃이 시들고 꽃대가 없어진 10월경에, 길다란 줄기잎이 돋아나서, 겨울을 지낸 후, 봄에 줄기 잎이 시든다. 즉, 꽃이 완전히 지고 난 뒤, 줄기잎이 돋아 난다. 주로 따뜻한 남쪽 사찰 주변에서 자라며, 독소가 있어 사찰에서 단청을 칠 할때, 벌레등의 퇴치용으로 섞어 사용하였다.

온통 붉은 색의 장관을 이루는, 유명한 꽃무릇 군락지는,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인데, 최근에는 김천 직지사와 법정스님이 계시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도 꽃무릇을 볼 수 있으며, 이곳들은 모두 관광과 사진 찰영 명소가 되었다.

*부안 내소사~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변산”지구에 속하는 "내소사"는, 633년(무왕34년)에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하며, “소래사”라 하였는데, 언제 “내소사”로 바꾸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33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보물로는 대웅전(보물291호), 고려동종(보물277호), 영산회쾌불탱(보물1268호), 그리고 전북유형문화재로 3층석탑, 설선당과 요사채가 있다.

내소사 일주문부터 천왕문에 걸쳐 있는 약600미터의 길은, 수령 약150년의 전나무 700여그루가 있는,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길의 하나이다(광릉 수목원 전나무숲길, 오대산 전나무숲길). 전나무 숲길 주변에는 9월초중순경에 만개하는, “붉은 색을 띤 연노랑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화순 운주사 부부 미륵와불 (천불 천탑)~

불교적 관점에서, 온 세상 우주를 "불국토"라 한다. 하늘의 불국토를 표현하여, 밤하늘 별의 수만큼 불상과 탑을 조성하려 하였던 곳으로, 칠성별 자리 불상의 인근, "북극성"자리에 "부부미륵"을 조성하여 "세우려" 하였다. 불교에서는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라 부른다

[치성광여래는, 병장수와 자손번창을 의미하며, 주로 선교의 삼신각 또는 칠성각에 모시며, 선교의 약사여래 같은 역활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미륵의 염원을 담아 북극성을 "미륵불"로 표현하고 있다. "부부미륵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있다.

* 화순 쌍봉사~

809년 영천 은해사를 창건한 “혜철국사”가, 839년 하안거를 지낸 곳이 쌍봉사라는 내용이 있어, 쌍봉사는 적어도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영천 은해사, 아래 영험한 "나한기도처" 참조). 그후, 경문왕(861~875)때, 중국 소주성 “쌍봉사”에서 도를 깨치고 돌아온, “철감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쌍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철감선사는 경문왕 때인, 868년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쌍봉사에는, 국보1점, 보물2점, 기타 전남도 유형문화재가 여러 점있다. 철감선사부도탑(국보57호), 철감선사부도탑비(보물170호),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보물1726호)이 있다.

보물163호였던, 쌍봉사 대웅전은, 보기드문, 3층(내부는 1층구조), “누각식 목탑”으로, 1984년 화재로 소실되어, 보물에서 해제되었다.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1690년에 중수되었음이, 화재이전, 삼층 누각식 목탑의, 대웅전 상량문을 통하여 밝혀졌다. 1984년 화재당시 “대웅전”은 불탔으나, 대웅전의 “불상”들은 재빠른 이동으로, 모두 무사하였다. 현재의 대웅전은, 화재이전 사진을 참조하여, 1986년 현재의 삼층누각식 목탑으로 복원된 것이다(“누각식 탑”에 대하여는, “금산사 미륵전” 부분 참조)

안성 미양산 용화사 석조여래~

부부미륵이 땅에서 솟아 올라 생겼다는 부부미륵불로서, 불임부부 애기 낳기에 영험있다고 알려짐.

서울 구의동 아차산 영화사 미륵전~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 영화사 미륵전에 있는 미륵석불입상은,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여 지병을 치유했다는 영험설화가 전해지며,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한 미륵보살님으로 알려짐

기타 미륵보살 유적 ~ 충주 수안보 미륵대원지 미륵불, 안동의 이천동 제비원 미륵불, 익산 미륵사지.

*진천 보련산 보탑사~

고려시대 절터에, 1996년 건립한 사찰이다. 이곳에서 철야기도하며 부처님의 방광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다. 이곳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뜬, “누각식 3층 목탑”이 유명하다. 누각식 목탑은, 대부분, 모두 1~3층이 트인 형태인데, 보탑사는 내부에 계단이 있는 3층구조의 목탑이다.

(“누각식 탑”에 대하여는, “금산사 미륵전” 부분 참조). 금속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목재로만 건축한 높이 52미터 건물(아파트 14층 높이). 1층은 사방불(동방 약사불, 서방 아미타불, 남방석가불, 북방 비로자나불로 조성함), 2층 법보전(운장대와 팔만대장경번역본), 3층은 미륵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보탑사와 이름이 비슷한 포항 내연산 보경사는,

602년 신라 진명법사가 중국 진나라에서, 팔면보경(8면을 비추는 거울)을 갖고 귀국하여, 명당자리에, 이 팔면보경을 묻고 사찰을 세우면, 삼국을 통일하게 될 것이라고 왕에게 아뢰어, 진평왕이 연못을 메워 사찰을 짓고 보경사라 하였다.

보경사 인근 내연산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 나오는 "내연산 삼용추도"의 내연산 12폭포가 있으며, 내연산 "소금강 전망대"에 오르면, 동해가 보이며, 마주보는 "선일대" 정자를 바라보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걸작인, "금강전도"의 완성된 모습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 문장대 ~

속리산은 신라시대에는 국가 산신제를 지냈을 정도의 중요한 산이었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이곳에 이르자, 밭을 갈던 소들이 무릎을 꿇었다고 하며, 이를 본 사람들이, 짐승도 알아보는 고승을 몰라 보았다며, 머리를 자르고 입산하였다고 하여, 속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문장대~ 세조가 속리산에서 기도와 요양을 할 때, 꿈속에서, “인근 영봉에 올라, 기도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에 “삼강오륜” 책이 한권 있어, 그 자리에서 임금이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속리산 법주사~

553년(진흥왕 14년), 의신스님이 창건하였다. 부처님법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때 지어진 후, 중수를 거듭하다가, 조선후기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 건축을 위한, “당백전” 주조를 위해 몰수당였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1990년에 청동으로 완공하였고, 2000년에 대불에, 순금으로 도금하였다. 높이 33미터로, 세계최대 청동불상의 높이였으나, 1993년 34미터인 홍콩 포린사원의 “천단대불”에 뒤졌다.

한편, 석불로 지어진, 대구 동화사의 “통일 약사대불”은 1992년 세운, 높이 33미터의 세계 최대 석불이라 한다(동화사 "약사대불"은 아래, 영험한 약사기도처 참조). 법주사는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55호)은, 553년 창건시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05년(선조38년)부터 1626(인조4년)의 20여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내부 벽면을, 석가의 일대기를 8장면으로 그렸다하여 “팔상전”이라 불린다. "팔상전"은 1~5층이 모두 트인, 5층 “누각식 목조탑”이다(“누각식 탑”에 대하여는, “금산사 미륵전” 부분 참조)

법주사에는, 쌍사자석등(국보5호), 석련지(국보64호), 사천왕석등(보물15호), 마애여래좌상(보물216호), 신법천문도병풍(보물848호), 대웅보전(보물915호), 원통보전(보물916호), 법주사 쾌불탱(보물1259호), 소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1360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1361호), 철솥(보물1413호),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1417호), 동종(보물1858호)등 국보와 보물과 지방유형문화재가 많다.

*속리산 복천암~

속리산의 배꼽부분에 위치한다는, 복천암은 720년(성덕왕19년)에, 진정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주전불인 극락전 “무량수”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충북 유형문화재에서 해제되고, 국가보물로 승격된, 수암화상부도탑(신미대사,보물1416호)과 학조화상부도탑(보물1418호)이 있고, 충북 유형문화재인, 극락보전(299호), 극락보전 후불탱화인, 삼세불도(307호), 신중도(306호), 아미타여래삼존좌상(305호)등이 있다.

“신미대사”는 복천암에서, 세종의 한글창제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고, 한글창제 발표 후에는, 수많은 불경 언해본을 발행하여, 한글 실용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보답으로 세종임금은, 복천암에 “아미타 삼존불”을 불사하였다(당시의 삼존불은, 불타서 없어 졌고, 현재는 새로이 조성된,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세조는 단종을 사사한 후, 심한 피부질환을 앓게 되어, 전국의 물좋은 곳을 다니며, 많은 사찰의 불사를 도왔다.세조는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의 공를 세운, 복천암의 신미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세조는, 신미대사를 뵙기 위해, 1464년 2월, 500여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을 막던 가지를 들어 준 소나무를 “정이품송”으로 임명했다는 설화가 있다.

“세조길”로 명명된, 법주사 우측 길을 통하여 복천암에 도착한 세조는,

신미대사와 그 제자인 학조대사와 함께 법회를 열었고, 3일 기도 후, 복천암 길목의 “목욕소”에서 목욕을 한 후, 피부병이 좋아 졌다고 한다. 이에 세조는 복천암에 “만년보력”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또 세조임금은 신미대사의 추천으로, 영동 반야-사를 중건하고, 회향법회 참석길에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설화도 있다(“영험한 문수보살 기도처 ⑥영동 "반야-사” 참조).

세조와 관련된 길은, 속리산 세조길(법주사~복천암/평지길, 편도 1시간~1시간30분)과 오대산 선재길(월정사~상원사/이 블로그 위쪽, "영험한 문수보살 기도처"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과 세조임금" 참조)이 있다.

*속리산 상환암~

거대한 암벽으로 둘려 쌓여 있어, 속리산 여러 암자중에서, 경치가 가장 수려하다는 상환암은, 원래, 710년(성덕왕9년)에, 창건된 “길상암”이었는데, 고려 공양왕3년에,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고, 태조 이성계는, 차후 조선 건국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후손 세조는 이곳 상환암에서 선왕 이성계와 여러 선왕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드린 후, 무한한 환희심이 들어, 이곳 암자 이름을 “상환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속리산 인근 관광지~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은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정이품송” 수령 = 현재 2023년-세조당시 1464년=560년+당시 수령40~50년으로 추정하면= 수령 600년 이상). "정이품송"을 지나, 귀가길을 말티재를 경유하는 코스로 잡으면,

보은 속리산 말티재 입구에는, “속리산 테마파크”가 있는데, 이곳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카페에 앉아, 속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을 볼수 있다. 연결되는 말티재 상단에서, 말티재 전망대를 방문하면, 아래로 보이는 굽이굽이 돌고 도는, 말티재의 모습과 함께, 시원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고, 말티재를 굽이굽이 돌며 내려가는 스릴을 맛볼 수있다. 속리산 인근, 대청댐에는 "청남대"가 있다.

익산 미륵사지 (국보 11호) ~

백제에서 유행하였다는 미륵신앙으로,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 사찰이었다"라는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서측 탑 수리 보수를 위하여, 2009년 탑을 해체 하였는데, 이 탑에서 "금제 사리호", "금제 사리봉안기", 돈으로 사용되던 "금제 막대", "옥구슬"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금제 사리봉안기"에는 193자의 또렷한 글씨의 "봉안기"가 써여 있었는데, 이글에 의하면, 백제 "무왕"40년(639년) 1월29일에, 이 사찰을 건립 봉안하며, 귀족 세력가 "사택덕적"씨의 딸이며, "무왕의 왕비"가 후원하여 이 사찰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성시기는 삼국유사와 일치하지만,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에 의하여,

백제 무왕의 부인은, 신라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로 알려져 왔다. "봉안기"는, "백제 무왕의 부인"이 "사택적덕"이라는귀족의 딸임을 밝히고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에 의하면, 가난한 "서동"은 절세 미인으로 알려진 "선화공주"와 사귀기 위하여, 신라로 갔으며, "서동요"를 지어, 결국 선화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하였다한다. 하지만, 봉안기에는 "무왕"은, 가난한 민간인 "서동"이 아닌, 정통 왕족인 "법왕" 아들이라 하고 있다. 이것은, "선화공주" 뿐만 아니라, "서동" 또한 사실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백제 26대 성왕(재위 523~554년) ~성왕 16년(538년)에, "공산성"의 웅진(공주)에서, "사비성"의 부여로 천도한다. "사비성"은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로, 내성을 "부소산성"라 한다.

성왕은 554년, 신라군에 포위된 아들 "창"을 구하기 위하여 출정하다가, 신라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다. 왕위를 이어받는 "창"이 27대 위덕왕(재위 554~598)이며, 28대 혜왕(재위 598~599), 29대 법왕(재위 599~600), 30대 무왕(재위 600~641), 31대 의자왕(재위 641~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이다.

그러므로, 백제 “무왕”은,

“서동’이 아니고, 정통 “법왕” 아들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블로그 참조

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부처와 보살의 모습(천수경기도문: 신묘장구대다라니경)~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andsing/221955604245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이건 전형적인 고려초기 불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갓을 쓰신 부처님들은 종종 있습니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순 없어요. 그리고 갓의 의미는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대부분 갓을 쓰고 계신 부처님은 미륵 부처님인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입상이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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