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장구 대다라니

신묘장구 대다라니

작성일 2023.06.19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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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처음 절에 다녀와서 스님께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매일21번씩 읽으라고 하시는데..숨이차고 힘들어서..인터넷을 찾아보니 사경하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매일 한번씩 필사체로 적는건 할수있을것같은데..사경으로 매일 한번씩 적는걸로 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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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신묘장구대다라니 뜻 원문 주문 해석에 있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의 핵심적 기도문이며 주문입니다. 기도문은 그 음률의 울림으로 밀교적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해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략의 내용은 알아야 하므로 굳이 해석합니다. 이 주문은 안보고 외울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법회시 스님들은 대부분 안보고 외움니다. 일반인도 처음에는 비치된 경을 보고 읽다가, 자꾸 반복하여 읽고 세월이 흐르면 어느 정도 외워 집니다.

경전 이름의 의미 ~ 신묘장구 = 신비하고 묘하며 장구하고, 대다라니 = 크고 신성한 글귀의 주문, 또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외우는 주문의 뜻, 은 불변의 진리인 성현의 말씀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부처님께 올리는 신묘하고 대단한 "주문"이라는 뜻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나오는 신~원래 인도에는, 석가 부처가 있을 때도, 창조신 브라만을 믿는 브라만교가 있었는데, 부처님은 창조신을 거부하고, BC624년부터~BC544년까지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후, BC5~BC4세기경에 아함경이 언어로 옮겨지고 , 대승경전은 BC2세기말에 완성되었으며,

힌두교는, 석가 사후로 부터 약 860년 뒤인,AD320년 굽타왕조에서 브라만신에 비슈뉴신과 시바신을 추가하여 3신의 힌두교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신묘장구대다리니”경에서 말하는, 관자재보살의 화신으로 언급되는, 비슈뉴와 시바신힌두교가 차용했다고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즉, 불교가 힌두교의 신을 차용했다가 보다는, 힌두교가 불교의 관자재보살의 화신을 이용하여 비슈뉴와 시바신을 추가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후, 힌두교에서는 오히려, 석가부처님을 비슈뉴신의 화신일 뿐이라며, 불교를 힌두교에 흡수하였습니다.

힌두교는, 석가 사후로 부터 약 860년 뒤인, A.D320년경 기존의 브라만교에 불교일부, 민간신앙, 토속명상을 흡수하여 삼신의 힌도교로 재탄생함. 브라만(창조신), 비슈뉴(질서유지신), 시바(파괴의 신)의 삼신.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고, 옛부터 인도에서 전래되어 오던 민간신앙인 신화의 내용중에서, 중생을 위하여 기꺼이 독배를 마심으로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다는 "시바"신에 대한 찬탄이 신묘장구대다라니 내용입니다.

이런 중생을 위하여 독배까지 마실 수 있는 "시바"신의 중생을 위한 자비심은, 자비심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행한 것이므로, 이를 찬탄하는 내용이 바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 진언입니다. 불교의 모든 진언은, 우주의 근본 에너지인 진동을 의미하므로, 계속하게 되면 다양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 수행 영험담 (불전 연구원 블로그에서 옮김)

대구에 사는, K모 여성은 오래전인 고등학교 입학시기쯤, 갑자기 관절염의 고통과 피부의 껍질이 벗겨지는 피부병을 심하게 앓게 되었다한다. 서울의 대학에서 정밀종합진료을 받았지만, 모두 정상이었고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하여, 오직 진통제에만 의존하며 고통을 견딜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다방면으로 알아보아, 시중에서 그 당시 소문난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였으나, 아무런 치료의 효험을 받지 못하였다한다. 고통이 심하여 급기야는 많은 사람들이 굿을 권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집안에서 지인 아는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 스님은 신묘장구대다라니 진언 독경을 100일동안 하루에 108번씩 매일 하도록 일러 주었다한다.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었던 그녀는, 그날부터 무릎을 꿇고않아 108염주를 돌리면서 독경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108번 독송을 하루에 마치기 힘들었지만, 점차로 반나절 정도에 끝낼수 있었다고 한다. 100일 동안에 매일 108번 독송을 마친후,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의 병이 완치되어 퇴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15년이 지난후, 또다시 똑같은 병이 발병하여 2년동안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였고, 그동안에 고통때문에 여러번 구급차를 불러서 입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에게 여러 환상이 보이고, 멀리있는 부모님의 대화가 겉에 있는 듯 자신에게 또렸이 들리기도 하고, 월드겁경기의 결과도 정확히 미리 예측하는 등,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상태가 빙의상태임을 확신하고,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신묘장구대다라니 진언 수행을 100일동안 매일 108번 독경하여 지금은 모든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요즈음도 반복될까봐 두려움 속에서 이 진언의 독경을 계속한다고 하며, 독경시에 좌선 보다는 무릎을 꿇고하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다한다. 그러면서 혹시 다른 사람도 이런 상태에 있다면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약사보전 보광전 만월보전 유리광전 : 약사여래는 "널리 광명을 펼쳐, 보석처럼 밝게 온누리를 비춰주시는 분이라는 뜻"에서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을 보광전, 만월보전, 유리광전이라고도 부른다. 가운데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좌측에 일광보살, 우측에 월광보살을 모신다. 후불탱화는 12신장 또는 사천왕이 호위하는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가 봉안된다.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의 부처인데, 약사불은 동방정토의 부처이다.

그러므로, 약사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짓게 되는데, 대개 극락전과 마주보고 짓는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모든 중생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킨다는 12대원을 세워 이를 수행하였고, 이러한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다. 즉,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고, 여러 고통을 없애주는 동방유리광세계의 부처님이다(아미타불은 보광명전, 약사불은 보광전).

치성광여래 ~ 약사여래를 "치성광여래"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온세상 우주를 "불국토"라 한다. 이런 우주를 항하사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라 하여, "삼천대천세계"라 표현한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불국토로 생각하여, 밤하늘의 무한한 광명을 비추어주는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라 하였다.

서산 개심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치성광여래도"에는 치성광여래의 좌우에,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소재보살), 달을 든 월광보살(식재보살)이 협시보살로 그려져 있다. 그 주변 좌측에 3위, 우측에 4위의 "여래"가 있는데, 이분들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여래이다( 약사전에는, 좌우측에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불교와 관계없이, 북두칠성은 한민족의 하느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알려진 영험한 약사보살 기도처 ~① 창녕 관룡사 ~우리나라 최초의 약사 기도처. 창건할 때 용이 구름타고 올라 가는 것을 봤다하여 관룡사라 이름을 지었다함. 임진왜란때 모든 건물이 불탔는데, "약사전"만 불화를 면하여, 기이하게 여긴 스님이 대들보를 확인한 바, "영화5년기유"(349년)라는 글귀를 발견하였다 한다. 이때부터 화를 면한 소문으로, 관룡사에서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이 널리 펴졌다

경산 불굴사 약사보전 ~불굴사의 약사기도 영험과 함께, 이곳 홍주암은 영험한 나반존자(독성) 기도처이기도 하다. 원효대사 최초 수행굴인 원효굴과 함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기도하여 비법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이름이 비슷한, 경주 골굴사는 12개 석굴로 이루어진 석굴사원인데, "선무도"가 유명하다 ③ 대구(경산) 팔공산 선본사 갓바위 약사여래불(영험한 산신 기도처 이기도 함)

관악산 연주암과 함께, 연주대의 마애 약사여래불(연주대는 나한기도처로도 유명하며, 그 기도는 마애불 옆의 응진전에서 함) ⑤ 당진 상왕산 영탑사~ 유리광전에 모셔진 마애약사여래불은, 아픈 곳을 치유하고, 한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⑥ 부산 금정산 약수정사~"세상에 이런 일이" TV에 등장한, 폭우때 스스로 법당마당에 자리 잡았다는 마애약사불 ⑦ 양주 장흥 용암사 약사전~우연히 송추유원지 인근, 노송아래 땅속에서 발견한 영험한 약사여래불

⑧ ​서울 북한산 승가사 약사전~승가사 보물 215호인, 마애석가여래 영험과 함께, 승가대사의 좌상(보물1,000호)을 모신 약사전의 영험과 그 옆 약수물 효험이 유명하다(왕실기도처인, 승가사의 약수물을 세종임금의 왕후인, 소현왕후가 마시고, 병이 나은 후, 승가굴의 이름을 약사전으로 변경하였다한다. 약사전 입구 바위에 새겨진 초서글씨는, 추사 김정희 글씨로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816년, 승가사를 방문하여 승가사 바로 위에 있는 “비봉”에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비봉 바로 인근에 있는 “사모바위” 바로 아래에는, 1968년1월21일, 청와대습격을 위하여(1.21 청와대 습격사건), 북한 무장공비가 잠시 머물렀다는 암굴이 있다.

서울 개화동 약사사~대웅전에 모셔진 약사석불입상. 이곳에서 공부하여 좌의정에 오른 송인명이 중수 후, 개화사에서 약사사로 개칭함 ⑩ 삼척 두타산 삼화사 약사전~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로서, 후삼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대업을 달성한 후, 후삼국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삼화사라 개칭 함. 약사불의 영험이 전해지며, 이곳에서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지었다고 하며, 인근에 무릉계곡과 용추폭포가 있다

장성 백양사 약사암과 영천굴~약사암의 약사여래불과 영천굴의 약수 영험이 유명하다. 아울러 인근 백양사의 칠성전은 영험한 칠성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정읍 내장산 내장사와 벽련암~ 백양사인근의 단풍거리로 유명한 정읍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암으로 창건하였는데, 추후 이 영은암을 내장사로 바꾸게 되었고, 백제 의자왕20년(660년)에 창건한 내장사(백련사)를 백련암으로 바꾸었다한다. 추사 김정희가 이 백련암을 벽련암으로 바꾸고 현판을 써주었는데, 625때 현판과 함께 전각이 소실되었다. 현재는 백련암과 벽련암이 혼용되고 있다. 내장산 벽련암에는 자생 "차밭"과 함께 국내 최고령 단풍나무가 있다.

구미 금오산 약사암 약사전, 김천 수도산 수도암 약광전, 김천 황악산 직지사 약사전~ 이 세분 약사불은, 함께 방광을 하는 형제 약사불로 알려져 있다. * 금오산 약사암 약사불은, 광배가 있는 석조약사여래인데, 구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금오산 기암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금오산은 골짜기 마다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관으로 일명 소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약사암과 범종각이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이 또한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약사암아래 절벽에는 암벽의 좌우로 조각되어 입체감을 주는 마애여래입상(보물490호)가 있다.

* 김천 수도산 수도암은, 859년 도선국사가 천하적지 수도명당이라는 "옥녀직금형" 명당자리에 사찰을 건립하고, 수도암이라 명명하였다한다. 수도암 약광전의, 광배가 있는 영험한 석조약사보살좌상은 보물296호이고, 대적광전안에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307호이며, 사찰마당에 있는 도선국사비는 신라명필 김생의 글씨로 밝혀 졌다고 합니다.

* 김천 황악산 직지사 약사전에는, 삼형제 약사불로 알려진, 영험한 광배가 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319호)은, 얼굴 마모가 심하여 "직지성보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청풍료"에 모셔져 있고, 약사전에는 새로이 조성된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직지사는 사명대사의 출가 사찰이며, 대웅전에도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직지사는 9월 중하순에 붉게 피는 꽃무릇이 장관을 이루는 데,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와 함께,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하다.

봉화 청량산 청량사 유리광전~ 영험한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광전은 청량사의 주전각인데, 좌우에 지장보살과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이 유리광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 한다(이곳의 응진전은 영험한 나한 기도처).

* 구례 사성암~원효, 도선, 의상 그리고 고려 후기 진각스님의 4분 성인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함. 높이 20미터의 절벽에, 4미터되는 음각의 "마애약사여래입상"을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설화가 있다. 이곳 절벽에 기둥을 바치고 "약사유리광전"(약사전)이라는 암자를 지었다. 약사기도처인 이곳 인근에 "도선굴"과 소원을 들어 준다는 "소원바위"가 있다. 주변 바위의 형상이 뛰어 나며, 이곳에서 구례들판과 섬진강이 조망된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보조국사가 창건한 영험 약사기도처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대웅전이 2개 있는 곳이다. 상대웅전(보물 162호)에는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58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174호), 미륵쾌불탱(국보300호)가 있고, 하대웅전(보물181호)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337호에서 최근 국보로 지정)이 있다.

*서울 북한산 흥국사 ~ 약사전을 주불로 모시는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에, 원효대사가 도봉산 망월사 인근의 “원효사”에서 수행하던 중, 도봉산 넘어, 북한산의 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고 있어, 그 서기를 뒤쫒아, 서기를 찾던 중, 이곳에서 서기를 발하는 약사여래불 형상의 바위를 발견하였다. 그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는 뜻으로, 흥성암이라는 이름을 짓었다고 한다[원효대사는, 도봉산 망월사 인근, “원효사”에서 수도하였고, 이곳 “원효사”에는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영험한 나한기도처~ 도봉산 “원효사”참조)].

그 후, 1770년 영조임금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가 있는 인근 “소령원”(경기도 파주에 있는 데, 인근 "파주 보광사"에는 숙빈 최씨의 "어심각"이 있다)에 들린 후, 궁궐로 돌아 가던 중, 폭설을 맞아 부득이 이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흥성암” 맞은편 북한산 설경에 반하여, 주전불의 “약사전”이라는 친필현판을 하사하였고, 주전불인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라는 뜻으로, 흥성암의 이름을 “흥국사”로 바꾸게 하였다.

나아가 궁궐의 상궁들이 번갈아 머무르고 “선학”을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왕실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설법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타전 안의 후면 “구품극락도”는 김홍도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약사기도도량인 흥국사는 북한산 맞은편의 노고산(한미산)기슭에 있어, 북한산 조망이 뛰어나다.

*공주 갑사~춘마곡 추갑사라 하여,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라 말하는 가을여행지인 갑사에서, 20미터쯤 떨어진 등산로 전각안에 충남도 유형문화재인 석조약사여래불이 있다. 갑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대장경판이라는 "월인석보판목(보물582호)"을 보관하고 있다. 또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를 모신 표충원이 있는 데,

이 갑사의 표충원과 유사한 곳이 밀양 표충사이다. 임진왜란의 유공자인 세분 스님 위패를, 밀양 죽림사에 모시고, 이름을 죽림사에서 표충사로 바꾸게 되었다. 인근 밀양 홍제사에는 땀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사명대사 "표충비"가 있다. 갑사, 동학사(비구니스님들이 공부하는 승가대학이 있다), 신원사(왕실 3대 산신기도처인 "중악단"이 있다) 계룡산의 3대사찰이라 한다.

*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해가야(금관가야) 불교는, 김수로왕(42.3.16 ~199.3.23) 당시에 바닷길을 통해 전파되었고, 그 시절에 창건된 밀양 만어사와 밀양 부은사, 하동 칠불사가 있다. 이블로그 저 아래, 불교의 전래, 가야불교 부분 참조].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전진의 왕 “부견”이 승려 “순도”와 사신을 통하여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하였는데, 그로부터 2년뒤인, 374년(소수림왕 4년)에, 진나라로부터 승려 “아도”가 고구려에 왔다. 그 7년 뒤인, 381년에,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여 가는 도중에, 강화도에 들리게 되어, 전등사의 전신인, “진종사”를 세웠다고 한다.

진종사는 900년 가까이 지난 뒤인, 1266년에 중창되었고, 1282년(고려 충렬왕 8년)에, 충렬왕이 태자였던 시절에 혼인을 하였던, “정화공주”가 대장경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 정화공주는 17년동안 태자비로 살면서, 왕비가 되기를 기다렸으나,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원성공주)에 밀려, 끝내 충렬왕의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공주이다. 제국대장공주(원성공주)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다.

“쿠빌라이”는 징기스칸의 손자로, 동부 유럽에 이르는, 대 몽고제국을 건설한 황제. 충렬왕이 원나라 볼모로 있을 때, 혼인동맹을 위해,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고, 결혼 후, 귀국하여 충선왕을 낳았다. 정화공주는 고려 충렬왕의 정실이지만,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에 밀려 제2비로 떨어졌다. 아들을 낳았지만, 왕위는 “제국대장공주”가 낳은, 원나라 황실의 외손자인 충선왕에게 돌아갔다. 세월이 흐른 후, 정화공주의 손자가 공양왕에 오른다.

그 후, 전등사는 1614년(광해군 6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는데, 1621년(광해군 13년)에 새로이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지어진, 보물 178호인, 전등사 대웅보전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대웅전 네 모서리의 처마밑에 있는, 손바닥과 머리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조각상”이다.

알려진 내용에 의하면, 중창불사의 대웅전 건축공사를 맡은 도편수는 아랫마을 주막의 주모와 눈이 맞았고, 둘은 공사가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함께 살기로 약속을 하였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건내 주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기 직전, 주모는 도편수가 맡긴 돈을 전부 챙겨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이에 몹시 분노한 도편수는, 도망간 주모가, 두 손바닥과 온 몸으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고통과 함께 벌거벗은 모습의 수치를 견디며, 법당에서 들려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참회하라는 뜻으로, 주모닮은 벌거벗은 여인상”을 대웅전 처마 네귀퉁이에, 새겼다고 한다. 더욱 해학적인 것은, 네귀퉁이 중에서, 두 귀퉁이의 “나상”은, 한손으로 만, 지붕을 떠받치고 있어, 마치 주모가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선조의 재치와 익살을 느끼게 하고 있다.

전등사에는, 대웅전(보물 178호), 약사전(보물 179호), 철종(보물 393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 1785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보물 1786호), 묘법연화경목판(보물 1908호)의 국가보물 6점을 보유하고 있다.

전등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2그루(수령 700년, 350년), 느티나무 2그루(수령 각 400년), 청단풍나무 1그루(수령 280년)가 있다. 전등사 은행나무는, 주지스님이 과도한 은행나무 열매공물을 요구하는 관청에 대하여, 고민을 하던 중, 홀연히 나타난 “추송”스님과 동자승, 그리고 노스님이,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하는 3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다한다. 그런데, 3스님의 마지막날 축문은, 전등사의 은행나무가, 천년만년 더 이상, 열매가 맺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축문이 끝나자,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고개를 숙인 사이에, “추송”스님, 동자승, 노스님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은행나무에는 더 이상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400년된 느티나무 2그루는, 대웅보전 뜰앞, 대웅전을 오르는 길목에 1615년 전등사를 중창하면서, “풍치목”으로 심었다고 하며, 대조루(대웅보전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누각식 건물) 동편에 심었다는 280년된 청단풍나무는, “초윤”주지스님이 대조루를 중창하면서, 1749년(영조25년)에 심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당초,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등 4곳에 보관하였는데, 유일본으로 남아있던, “전주사고본”을 임진왜란때, “묘향산사고”로 옮겼다가, “마니산사고”를 거쳐 1660년 이곳 “정족산사고”로 옮겼다고 한다. “정족산사고”에 보관 중이던, 왕조실록은 국권이 침탈된, 1910년 서울로 옮긴후,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현재의 “정족산사고”건물은 1931년 이후, 없어진 것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

철종(보물 393호)은, 중국 북송때인, 1097년 하남성 “송명사”에서 조성한 것으로, 한국종과 다르게, 상부의 음통이 없다. 전등사 예전의 동종은 일제시대때 징발되었는 데, 해방후, 이 동종을 찾기 위해, 인천항을 샅샅이 뒤졌는데, 우연히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징발된 종을, 일본군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하고, 이 철종을 전등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전등사가 있는 뒷산은 세발달린 솥을 엎어놓은 형태라 하여 정족산(231m)이라 한다(가운데 정상은 높고, 좌우 능선은 낮은, 정상을 기준으로, 남동쪽을 향해, 좌우로 능선이 있는 형태이다. 이런 형세 때문에, 정족산성(삼랑성)에 있는, 전등사에 들어가려면, “종해루”가 있는 남문이나, 문루는 사라지고 둥그런 홍예문만 있는 동문을 통해서만 들어 갈수 있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을 “정족산성”이라 말하기도하고, 삼랑성이라 말하기도 한다. 단군의 세아들인,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삼랑성(정족산성) 안에는, 전등사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 가궐지(고려 항몽시기의 임시 대궐터), 왕실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다. 삼랑성(정족산성) 성곽에 오르면(둘레 약 2.3키로, 높이 2~5미터), 전등사가 한눈에 보이며, 멀리 마니산도 보인다.

이런 강화도에, 프랑스군이, 1866(병인년) 10월16일, 프랑스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 “리델”신부와 최선일, 최인서, 심순녀등 3명의 조선 천주교도의 수로안내를 받으며, 군함 4척, 상륙군 900명을 동원하여, 갑곶진에 상륙하고, 강화부를 점령하였다. 프랑스 점령군은, 처형당한 선교사의 복수를 한다며, 닥치는 대로, 양민을 학살하고, 방화,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1866.11.7일, 양헌수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프랑스군에 의해, 해상봉쇄된, 강화바다를 은밀히 건너, 정족산성에 잠입하였다.

1866.11.9일, 낡은 구식의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잠복과 근접 작전으로,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신식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군 160여명중, 6명 사망자를 포함한 80여명 사상자를 내게 하고, 물러나게 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군은 결국, 중국 기지로 철수하였다. 이런 대승을 거둔, 양헌수”장군의 전승비정족산성(삼랑성) “동문” 안 있다("병인양요"원인과 전투 승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 저 아래 부분인, “절두산” 부분 참조/ 병인 양요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을, 우리 힘으로 물리친 전쟁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블로그 참조

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불교의 진언 부처와 보살의 모습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andsing/22195560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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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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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도 됩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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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이나 주문은

입으로 소리내어 전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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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이 있으면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됩니다

왜냐하면 내용의 뜻 풀이를 보면 불교인지 힌두교인지 구분이 안갑니다

진언을 하는 것도 힌두교적 형식입니다

오리지날 불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千手經(천수경)

淨口業眞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修里修里 摩訶修里 修修里 娑婆訶) śrī śrī mahāśrī suśrī svāhā

[깨끗하고 깨끗해서 아주 깨끗하고 좋읍니다, 나도 꼭 그렇게 깨끗한 불심대로 살겠읍니다]

‘śrī’는 ‘좋다[吉祥]’, ‘깨끗하다’, ‘깨끗이 한다[淨]’ ‘mahāśrī’는 ‘참으로(大) 좋다(吉祥)’는 뜻을,

‘suśrī’는 ‘śrī’에 ‘묘하게’라는 뜻의 형용사 ‘su’가 붙어 ‘묘하게 좋다[妙吉祥]’‧‘묘하게 깨끗하다[妙淨]’

‘svāhā’는 ‘su’라는 형용사에 ‘말하다’, ‘참되다’는 뜻의 ‘ah(또는 āha)’ 를 합한 것으로, ‘참되게 말하다(‘그러므로 <말한 바가> 이루어 지이다’는 뜻을 포함해 가진다)’ (모든 것이) ‘성취되어지이다’, 혹은 ‘원만하여지이다’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3번)

(南無 三滿多 沒馱喃 唵 度魯度魯 地尾 娑婆訶)namaḥ sarva buddhānām Oṁ turu turu jimi svāhā

‘namaḥ’는 namo, namas에서 유래된 변격동사(變格動詞)로, ‘귀의한다’ ‘sarva’란 ‘일체의’

‘buddhānām’은 ‘각자(覺者)’의 뜻을 갖는 명사 ‘buddha’에 복수 여격어미 anām이 붙어진 것으로, 위의 문장은 “일체의 각자(覺者)들께 귀의합니다”

‘Oṁ’이란 창조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우주의 생성 및 변화를 함축시켜 놓은 ‘상징적인 말’ ‘아!’ 정도의 감탄사

‘turu’란 ‘달리다’ 또는 ‘재촉하다’는 뜻을 갖는 tur의 2인칭 단수 명령형으로 ‘달리소서’

‘jimi svāhā’에서 ‘jimi’는 ‘내려오다’는 뜻의 동사 ji에 1인칭 능동어미가 붙어 ‘(남을 위해) 내려오다’

“일체의 각자(覺者)들께 귀의합니다. 아! (수레를 타고) 달리소서! 달리소서! 내려오시도다! 영광이 있기를!”

開經偈 개경게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修持 願解如來眞實義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더없이 높고, 극히 심오하며 미묘한 법 백천만 겁에 (걸쳐) 만나기 어려운 바,

내 이제 보고 듣고 받아 지니오니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케 하소서

開法藏眞言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3번)

(唵 阿羅南 阿羅馱) “oṁ āraṇam ārata”

‘āraṇam’은 ‘심연(深淵)’의 뜻을 갖는 명사 āraṇa에 대격어미 m이 붙어 ‘심연(깊은 곳)에로’

‘ārata’ 는 ‘유희(遊戱)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ram의 과거 수동분사로서, 이 둘을 합해 우리는 “아(oṁ)! 깊은 곳(진리)에로 (이르러) 유희함을‧‧‧‧” 혹은 “아! 깊은 진리를 통달하였음”

千手千眼觀自在菩薩 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陀羅尼 啓請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 계청

稽首觀音大悲呪 願力弘深相好身 千臂莊嚴普護持 千眼光明便觀照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眞實語中宣密語 無爲心內起悲心 速令滿足諸希求 永使滅除諸罪業

진실어중선밀어 무위심내기비심 속령만족제희구 영사멸제제죄업

天龍衆聖同慈護 百千三昧頓薰修 受持身是光明幢 受持心是神通藏

천룡중성동자화 백천삼매돈훈수 수지신시광명당 수지심시신통장

洗滌塵勞願濟海 超證菩提方便門 我今稱誦誓歸依 所願從心悉圓滿

세척진로원제해 초증보리방편문 아금칭송서귀의 소원종심실원만

크나큰 슬픔의 위로처[主]이신 관세음보살께 머리 숙입니다.

넓고도 깊은 원력과 상호(相好)의 몸[身]으로

천 개의 팔을 장엄하신 채 널리 (중생들을) 보호[護持]하시고

천 개 눈의 광명으로는 두루 (세상을) 비춰 보시니…

진실한 말 가운데 밀어(密語,陀羅尼)를 펼쳐 보이시어

함이 없는 마음 가운데 (중생을 위한) 슬픔의 마음 일으키셨네.

(그리하여 중생들의) 모든 바라고 구하는 바를 속히 만족시키어

하여금 길이 모든 죄업을 멸해 없애 주시었네

용과 천(天)(神)들, 수많은 성현(聖賢)들이 함께 애련히 돌보시어

온갖 삼매를 몰록 닦아 나가게 하시나이다

(다라니를) 받아 지니는 이 몸이 광명의 깃발이 되며

(다라니를) 받아 지니는 이 마음이 신통의 창고가 되어지니

티끌(세상)의 괴로움 씻어버리고 (괴로움의) 바다 건너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의 문을 뛰어 증득(證得)케 하여지이다.

내 지금 (관세음보살을) 칭송하며 맹세코 귀의하오니

원하는 바 마음을 좇아 모두가 원만케 되어지이다.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足道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登圓寂山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족도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대 자비이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오니, 일체의 법, 속히 알기 바라나이다.

지혜의 눈을 빨리 얻기 바라나이다. 일체 중생을 속히 제도하기 바라나이다.

훌륭한 방편을 빨리 얻기 바라나이다. 속히 반야의 배를 타기 바라나이다.

괴로움의 바다, 빨리 건널 수 있기 바라나이다. 지계와 선정의 道, 빨리 얻기 바라나이다.

열반의 산에 일찍 오르기 바라나이다. 함이 없는 집에 빨리 이르기 바라나이다.

빨리 부처님[法性] 몸과 같이 되기 바라나이다.

我若向刀山 刀山自墔折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我若向地獄 地獄自枯渴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我若向我歸 我歸自飽滿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我若向蓄生 自得大智慧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내가 칼로 만든 산에 이르면, 칼산이 저절로 꺾여지고

내가 뜨거운 불길에 이르면, 뜨거운 불길 저절로 소멸되며

내가 지옥에 이르면, 지옥이 저절로 말라버리며

내가 아귀의 세계에 이르면, 아귀들이 저절로 포만케 되고

내가 아수라의 세계에 이르면, 그들의 악한 마음 스스로 누그러지며

내가 축생의 세계에 이르면, 그들 스스로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하소서.”

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 南無大勢至菩薩摩訶薩 南無千手菩薩摩訶薩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천수보살마하살

南無如意輪菩薩摩訶薩 南無大輪菩薩摩訶薩 南無觀自在菩薩摩訶薩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나무대륜보살마하살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南無正趣菩薩摩訶薩 南無滿月菩薩摩訶薩 南無水月菩薩摩訶薩

나무정취보살마하살 나무만월보살마하살 나무수월보살마하살

南無軍茶利菩薩摩訶薩 南無十一面菩薩摩訶薩 南無諸大菩薩摩訶薩 南無本師阿彌陀佛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 나무제대보살마하살 나무본사아미타불

神妙章句大陀羅尼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Namo ratna-trayāy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Namo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歸依)‧귀명(歸命)’

ratna ‘보물’ traya ‘3종의’ ya 여격(與格)어미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 -vāya mahākāruṇikāya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namaḥ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귀명’ ārya ‘성(聖)’

Avalokiteśvarāya ‘관견(觀見)하는 신(神) 께’ ‘관자재께’

Avalokita ‘관(觀)하여 보는[見]’이란 뜻의 과거수동분사 īśvara ‘신(神)’

bodhisattvāya ‘보살께’, mahāsattvāya ‘마하살께’

mahākāruṇikaya ‘큰 자비에’ maha ‘큰’ kāruṇika, ‘자비’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Oṁ ‘아!’라는 감탄사 sarva ‘모든‧일체의’

bhayeṣu ‘두려움 가운데의’ trāṇa ‘피난처’

kara ‘되어지다’ ya 여격 tasmai는 ‘그에게’ namas는 ‘귀의합니다’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 nāma

이것을 (즉), 청경(靑頸)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讚歌)를 기억하면서

kṛtvā ‘기억하면서’ imam ‘이것을’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성관자재 찬가를’ stavaṁ ‘찬가를’

Nīlakaṇṭha ‘청경(靑頸)’ ‘청경관음’ Nīla는 ‘푸른[靑]’, kaṇṭha는 ‘목[頸]’

nāma는 ‘이름‧명호’ nāman의 주격

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hṛdayaṁ vartayiṣyāmi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 akam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hṛdayaṁ ‘마음을’ hṛdaya ‘마음’ vartayiṣyāmi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

sarvārtha는 sarva ‘일체의’ artha ‘이익’

sādhanaṁ은 ‘성취를’ śubhaṁ‘복을’ ajeyaṁ은 ‘필승(必勝)을’

sarva-bhūtānāṁ ‘일체 중생들의’

bhava ‘삶’ ‘존재’ mārga ‘길’ viśodhakam ‘청정(淸淨)을’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tadyathā 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앞의 예(例)는 다음과 같다(다시 말하건대) 아! 관(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

oṁ āloka e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 āloka는 ‘출세간(出世間)’ mati는 ‘마음’

loka는 ‘세속(世俗)’ atikrānta는 과거수동분사 ‘초월한’의 명사형 호격

ehy-ehi는 ‘오소서, 오소서’ Hare는 ‘비슈누(Viṣṇu) 신’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 -ayam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大菩薩)이시여!

mahābodhisattva는 ‘대보살’의 호격

smara-smara에서 smara는 ‘‧‧‧‧을 기억하다, 상기하다’는 동사 smaratī의 명령형

hṛdayaṁ은 hṛdaya 즉 ‘마음’에 대격어미 ṁ이 붙어 ‘마음을’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

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kuru-kuru에서 kuru는 ‘행하소서’ karma는 ‘의식’을 뜻하는 명사 karman의 대격(對格)으로, ‘의식을’ sādhaya는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dhuru-dhuru vijayanta e mahāvijayanta e

수호(守護)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dhuru-dhuru에서 dhuru는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라

vijayanta e에서 “vijayanta는 인드라(Indra)신의 별칭이 되기도 하는데, ‘승리자’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dhara-dhara dharaṇiṁdhareśvara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

dhara-dhara dharatī ‘지지‧보존‧보지(保持)하는’의 명령형

dharaṇiṁdhara는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īśvara는 ‘신’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

cala-cala malla vimalāmala-mūrtte re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不淨)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

cala-cala의 cala는 ‘움직이는‧요동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calatī의 명령형

mala <말라(神)>시여! vimala는 ‘부정을 여읜’이란 형용사, amala는 ‘청정한’의 형용사

mūrtte re는 신의 명칭, amala 즉 비슈누의 처(妻) 락쉬미(Lakṣmī)

예혜혜 로계새바라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ehy-ehi Lokeśvara rāga-viṣaṁ vināśaya dveṣa-viṣaṁ vināśaya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시여! 탐욕(貪慾)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ehy-ehi에서 ehi는 ‘오다’는 말의 명령형

Lokeśvara는 ‘세자재’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

rāga는 ‘탐욕’ viṣaṁ ‘탐욕의 독을’ vināśaya는 ‘파괴하소서’

dveṣa는 ‘진에(瞋恚)’ moha는 ‘치암(癡暗:어리석음)’ jāla는 ‘그물 망(網)’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나바

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ābha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

huluhulu는 기쁨의 탄성, ‘기쁘도다!’

malla는 <말라(神)> Hare는 관자재(觀自在) 비슈누신을 뜻하는 명사 hari

Padmanābha는 ‘연꽃’을 의미하는 Padma와 ‘허공’을 뜻하는 nābha가 결합된 말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識別)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

sarasara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 sirisiri는 ‘좌우로 움직이는’ suru는 ‘흐르소서!’

buddhyā는 buddhi‘신념(信念)’ 또는 ‘식별(識別)’ 의 구격 ‘(반조하는) 신념으로서, 식별로서’

bodhaya-bodhaya는 ‘깨닫게 하소서(이룩하게 하소서)’ bodhayatī‘깨닫다’의 명령형(aya)

매다라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사바하

maitriya Nīlakaṇṭha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

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maitriya는 ‘정이 있는’ Nīlakaṇṭha는 <청경> kāmasya는 ‘즐거움의(혹은 kāmā의)’

darśanena ‘성찰함으로서’ prahlādāya ‘쁘라흐라다(神)께’ manaḥ ‘마음을’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siddhayogeśvar- -āya svāhā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主)>께 영광이 있기를!

siddhāya는 ‘성자께’ mahāsiddhāya svāhā는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siddhayogeśvarāya ‘성자, <요가의 주>께’ yogeśvara <요가의 주>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Nīlakaṇṭhāya svāhā varāhamukha-siṁhamukhāya svāhā

<청경(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Nīlakaṇṭhāya “<청경>께 varāha는 ‘멧돼지’를 말하는데, ‘비슈누(Viṣṇu)의 화신’

mukha란 ‘얼굴’ 내지 ‘용모’ siṁha란 ‘사자(獅子)’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padma-hastāya svāhā cakrāyudhāya svāhā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사바하!

padma는 ‘연꽃’ hasta는 ‘손’, ‘손에 쥔’

cakrāyudha는 비슈누(Viṣṇu)나 끄리슈나(Kṛṣṇa)의 명칭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큰 방망이(를) 보지(保持)하는 (자)>께 사바하! śaṅkha란 ‘소라고둥[螺貝]’ śabda는 ‘음(音)’ nibodhanāya는 ‘소리를 듣는 자에게’

maha ‘큰’ lakuṭa ‘방망이’ dhara ‘보지하는’ ya.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이바 사나야 사바하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사바하!

vāma ‘왼쪽의’ skanda는 ‘공격자’거나 ‘Śiva신 또는 Agni신의 아들’

deśa ‘쪽’ 또는 ‘장소’ sthita는 ‘서 있는’, ‘있는’

kṛṣṇājina ‘비슈누 화신으로서 끄리슈나(kṛṣṇa)’의 별칭 ‘흑색 성자’ ya

vyāghra ‘호랑이’ carma(n) ‘가죽’ nivasana ‘(의복의) 착용’ ya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3번)

namo ratna-trayāya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삼보에 귀의합니다.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四方讚 사방찬

一灑東方潔道場 二灑南方得淸凉 三灑西方俱淨土 四灑北方永安康

일쇄동방결도량 이쇄남방득청량 삼쇄서방구정토 사쇄북방영안강

처음 동방에 (물을) 뿌려 도량을 청결케 하였고 다음으로 남방에 (물을) 뿌려 청량함을 얻게 되었으며,

또다시 서방에 (물을) 뿌려 정토를 이루었고 또한 북방에 (물을) 뿌려 길이 평안하리니”

道場讚 도량찬

道場淸淨無瑕穢 三寶天龍降此地 我今持誦妙眞言 願賜慈悲密加護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아금지송묘진언 원사자비밀가호

도량이 청정하여 티끌 만큼의 더러움이 없나니,

불,법,승 삼보와 ‘천,룡(및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등 신들)’은 이 땅에 내려오소서

내 지금 신묘한 진언(다라니)을 외웠으니 원컨대 자비로이 은밀한 도움[加護] 주시기 바랍니다.

懺悔偈

我昔所造諸惡業 皆有無始貪瞋癡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내 지난날 지었던 모든 나쁜 짓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몸과 입, 생각을 좇아 생겨난 바 내 지금 그 모두를 참회하나이다

懺除業障十二尊佛 참제업장십이존불

南無懺除業障寶勝藏佛 寶光王火簾照佛 一切香華自在力王佛 百億恒河沙決定佛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 광왕화렴조불 일체향화자재력왕불 백억항하사결정불

振威德佛 金綱堅强消伏壞散佛 寶光月殿妙音尊王佛 歡喜藏摩尼寶積佛

진위덕불 금강견강소복괴산불 보광월전묘음존왕불 환희장마니보적불

無盡香勝王佛 獅子月佛 歡喜莊嚴珠王佛 帝寶幢摩尼勝光佛

무진향승왕불 사자월불 환희장엄주왕불 제보당마니승광불

十惡懺悔 십악참회

殺生重罪今日懺悔 偸盜重罪今日懺悔 邪行衆罪今日懺悔 妄語衆罪今日懺悔

살생중죄금일참회 투도중죄금일참회 사행중죄금일참회 망어중죄금일참회

綺語衆罪今日懺悔 兩舌衆罪今日懺悔 惡口衆罪今日懺悔 貪愛衆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 탐애중죄금일참회

瞋碍衆罪今日懺悔 癡暗衆罪今日懺悔

진애중죄금일참회 치암중죄금일참회

살생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도둑질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음행을 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거짓말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남을 속인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이간질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심한 말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애욕에 탐착한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성내고 신경질낸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어리석음의 무거운 죄, 이제 참회합니다.

百劫積集罪 一念頓蕩除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오랜 세월[百劫] 쌓여온 (그 모든) 죄 한 생각에 문득 소멸되어지이다.

마치 불[火]이 마른 풀 태워버리 듯 (죄 모두) 없어져, 남음이 없이 되어지이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忘 罪忘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죄란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는 것 마음이 멸한 즉, 죄 역시 사해지나니

죄 사해지고 마음 멸함을 (이), 진정한 참회라 이름하리라.”

懺悔眞言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唵 薩婆 菩陀 菩提薩埵耶 莎訶

“아! 위와 같이 참된 법을 요달한 각자(覺者)‧깨달은 중생에게 영광을!”

‘sarva’ ‘전체의’‧‘일체의’ ‘bodha’란 ‘지(智)’ ‘bodhi’ ‘깨달음’ ‘sattva’ ‘중생(유정)’

‘svāhā’는 ‘(모든 것이) 성취되어지이다’, 찬양을 표시하는 어구 ‘영광을!’

准提功德聚 寂靜心常誦 一切諸大難 無能侵是人 天上及人間

준제공덕취 적정심상송 일체제대난 무능침시인 천상급인간

受福如佛等 遇此如意珠 定獲無等等 南無七俱肢佛母大准提菩薩

수복여불등 우차여의주 정획무등등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준제공덕(准提功德)(을 찬탄한 수많은 게송이) 모여[聚] (전해지는 바) (그 내용에 의할 것 같으면):

고요한 마음으로 (준제진언을) 항상 외우면 일체의 모든 대 재난이

능히 그 사람을 침범치 못하리라… 천상의 신이거나 인간들

그 받을 바 복이 부처님과 같을 것인 즉, 이 여의주(준제진언을 말함)를 만났으니

마땅히 비할 바 없는 깨달음 얻게 되리라.” 준제주<准提呪>’의 공덕을 설하는

淨法界眞言 정법계진언

옴 남(3번)

(唵灠) “oṁ, raṃ”

‘raṃ’은 ‘정지.안락.적정의 상태로 만든다’는 뜻의 동사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 등 우주 구성의 5대 요소 중 ‘화대(火大) 불[火]은 모든 더러움을 태워 청정케 한다 “아! 청정케 되어지이다!”

護身眞言 호신진언

옴 치림(3번)

(唵齒嚂). “oṁ, cilim”

‘cilim’은 ‘심히 깊다’는 ‘길상(吉祥)’ 문수보살을 나타내는 ‘일자진언(一字眞言)’ “아! (부처님 마음은) 심히 깊습니다”라는. 즉 그렇듯 깊은 부처님 마음에 우리가 의지하는 바,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침범할 수 있겠는가.

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반메 훔(3번)

(唵 麽抳 鉢訥銘 吽) “oṁ maṇi padme huṁ”

‘maṇi’는 ‘마니주’, 즉 ‘여의주’를 뜻한다.

‘padme’는 ‘연화(蓮華:연꽃)’를 뜻하는 명사 ‘padma’에 접미어가 붙어 ‘연꽃의’

인도의 신 브라흐마 또는 비슈누의 화신이나 불교에서의 ‘연화수(蓮華手: padmapāṇi)보살’

‘huṁ’은 복합어. ‘원인(原因)’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hetu’라는 명사의 ‘h’와 ‘감소시키다’ 는 뜻을 갖는 과거분사의 ‘u’를 취한 채, 음편(음의 조각) ‘ṃ(아누스와라 anusvāra라고 말하며, 字母에 찍는 점(‧)을 의미한다)’, ‘원인을 감(減)한다’ 또는 ‘원인이 되는 업을 없앤다’는 뜻

准提眞言 준제진언

나무 사다남 삼먁 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3번)

“(南無 颯哆喃 三藐三菩馱 俱胝喃 怛儞也他 唵 折隷 主隷 准提 娑婆訶 部林)”

“namaḥ saptānāṃ samyak-saṃbuddha-koṭīnāṃ tad-yathā oṃ calā-cala cundi svāhā bhūrim”

“부림”‘bhūri’ ‘풍부한‧많은’ ‘반복(反復)’의 의미

‘saptānāṃ’은 ‘ ‘7의’ 또는 ‘77의’ ‘samyak-saṃbuddha’란 ‘정등정각(正等正覺)’ ‘불(佛)’ ‘koṭīnāṃ’ ‘천만’

“7(또는 77)천만의 정등정각,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또는 “칠(또는 77)구지불(七俱胝佛)께 귀의합니다”

‘tad-yathā’ ‘이와 같이[如此]’ 또는 ‘이른바[所謂]’, ‘다시 말하건대’

‘calā-cala’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cundi’는 ‘준제’

“아(oṃ)! (중생 구제를 위한) 끝없는 행을 드러내 보이시는 준제보살(여래)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

我今持誦大准提 卽發菩提廣大願 願我定慧速圓明

아금지송대준제 즉발보리광대원 원아정혜속원명

願我功德皆成就 願我勝福遍莊嚴 願共衆生成佛道

원아공덕개성취 원아승복변장엄 원공중생성불도

“내 이제 준제진언을 지녀 외웠사오니 깨달음의 마음 드러내 크나큰 원을 세우게 하소서.

(하여금) 선정과 지혜 두루 밝아지며 모든 공덕, 성취되기 바라나이다.

내 (준제진언의) 크나큰 복으로 (세상을) 두루 장엄하오니 원컨대 모든 중생, 깨달음 얻어지이다.”

如來十大發願文 여래십대발원문

願我永離三惡道 願我速斷貪瞋癡 願我常聞佛法僧 願我勤修戒定慧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원아근수계정혜

願我恒修諸佛學 願我不退菩提心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願我分身遍塵刹 願我廣度諸衆生

원아분신변진찰 원아광도제중생

“원컨대 길이 삼악도(지옥.아귀.축생) 여의기 바라오며 탐.진.치 (삼독의 번뇌) 끊고자 하나이다.

(그리하여) 항상 불.법.승 (삼보) 가까이 하며 계.정.혜 삼학(三學)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부처님 가르침을 항상 따라서 깨달음의 마음 물러서지 않게 하여지이다.

(그러한 즉) 결정코 안양(安養:極樂世界)에 태어나 아미타 부처님을 뵈오리니

나의 몸 티끌 세상에 두루하여 원컨대 널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게 하소서.”

發四弘誓願 발사홍서원

衆生無遍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度無上誓願成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自性衆生誓願度 自性煩惱誓願斷 自性法門誓願學 自性佛道誓願成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한없이 많은 중생들, 제도코자 원하나이다. 다함이 없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자 원하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의 진리, 배우고자 원하나이다. 더없이 높은 부처님의 깨달음, 이루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의 중생심, 제도코자 원하나이다. 나의 마음 속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에 깃든 법의 진리, 배우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에 내재한 깨달음의 법, 이루고자 원하나

發願已 歸命禮三寶 발원이 귀명례삼보

南無常住十方佛 南無常住十方法 南無常住十方僧(3번)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온누리에 항상 머무시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온누리에 항상 존재해 있는 진리에 귀의합니다.

온누리에 항상 계시는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부처님이란 무엇인가? 이에 육조대사법보단경은 말하기를,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할 때, 그 부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그래서 부처님을 뵐 수 없다면 어떻게 귀의를 행할 수 있단 말인가!..<중략>…경문(經文)에 분명히 ‘스스로의 부처[自佛]에 귀의하랬지 또다른 부처[他佛]에 귀의하라고 하지 않았지 않는가!’…<후략>…”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Ⅰ. 귀의문(歸依文)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Namo ratna-trayāy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여기서 Namo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歸依)‧귀명(歸命)’의 뜻을 갖는다. ratna는 ‘보물’을 말하며, traya는 ‘3종의’라는 형용사로 ratna를 수식하며, ya는 여격(與格)어미가 된다. 이를 종합하면, 3종의 보물 즉 “삼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 -vāya mahākāruṇikāya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여기서 namaḥ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귀명’의 뜻을 갖는다. 한편 āryāvalokiteśvarāya에서 ārya는 ‘성(聖)’을 의미하며, Avalokiteśvarāya는 ‘관(觀)하여 보는[見]’이란 뜻의 과거수동분사 Avalokita에 ‘신(神)’을 뜻하는 īśvara가 붙어 ‘관견(觀見)하는 신(神)’ Avalokiteśvara, 즉 불교적 의미로서의 ‘관자재(觀自在)’에 여격(與格)어미 ya가 붙은 것으로 ‘관자재께’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bodhisattvāya는 bodhisattva 즉 ‘보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보살께’를, mahāsattvāya는 mahāsattva 즉 ‘마하살’에 여격 ya가 붙어 ‘마하살께’란 뜻을 갖는다. 그리고 mahākāruṇika는 maha 즉 ‘큰’에 ‘자비’의 뜻을 갖는 kāruṇika, 그리고 거기에 여격 ya가 붙어 ‘큰 자비에’란 뜻을 갖는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면,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이어 다음의 문장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에서 Oṁ은 ‘아!’라는 감탄사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며, sarva는 ‘모든‧일체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bhayeṣu는 ‘두려움’의 뜻을 갖는 명사 bhaya에 ‘중(中)의’라는 뜻을 갖는 처격(處格)어미 eṣu가 합해져 ‘두려움 가운데의’라는 의미를 갖는다. trāṇa는 ‘피난처’의 뜻을 갖는 명사이며, 거기에 ‘되어지다’는 뜻을 갖는 형용사 kara와 여격 ya가 붙어, 이를 앞의 것과 합해 번역하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이)에게”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이어 다음 어구로서 tasmai namas가 등장하는 바, 여기서 tasmai는 ‘그’를 뜻하는 tad의 단수 여격형으로 ‘그에게’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namas는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는다. 이를 앞의 문장과 연결시켜 보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번역을 얻을 수 있다.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 nāma

이것을 (즉), 청경(靑頸)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讚歌)를 기억하면서

그럼에도 다음 구절은 이렇듯 귀의를 행함에 대한 선행적 전제가 제시되고 있다.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kṛtvā는 ‘기억하다’는 뜻의 kṛ에 절대분사 tvā가 붙어 ‘기억하면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imam은 ‘이것’을 뜻하는 지시대명사 idam의 대격으로서 ‘이것을’이라 표기할 수 있는 즉, ‘이것을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이란 āryāvaloki- -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를 말하고 있다.

여기 āryāvalokiteśvara-stavaṁ에서 stavaṁ은 ‘찬가’의 뜻을 갖는 명사에 대격(對格)어미 ṁ이 붙어진 것으로 ‘찬가를’이라 해석될 수 있는 바, 이 구절은 ‘성관자재 찬가를’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말로서 Nīlakaṇṭha-nāma가 붙는데, 닐라깐타(Nīlakaṇṭha)에서 Nīla는 ‘푸른[靑]’을 뜻하는 형용사이며, kaṇṭha는 ‘목[頸]’을 뜻하는 명사이다. 곧 ‘푸른 목’ ‘청경(靑頸)’을 뜻하는 Nīlakaṇṭha는 원래 힌두의 신 쉬바(Śiva: 또는 비슈누)의 명칭이었는데, 후대에 불교화되어 ‘청경관음’으로 불리워진 채 관세음보살의 화신 가운데 하나가 되어진 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nāma는 ‘이름‧명호’를 뜻하는 명사 nāman의 주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앞의 구절과 합해 Nīlakaṇṭha-nāma, 즉 ‘청경의 명호’라 해석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위의 구절을 우리는 “이것을 (즉), 청경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되는 바, 이렇듯 기억을 행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말로서 귀의문은 종결된다.

Ⅱ. 발원문(發願文)‧I(전제부前提部)

이상 귀의문 구절을 놓고 생각할 때 이후 다라니의 내용은 성관자재 찬가, 즉 ‘청경의 명호’에 대한 기억이 대종(大宗)을 이루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에 앞서 다라니는 다음과 같은 ‘독송자의 발원’, 즉 발원문 부분을 첨가시키고 있다.

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hṛdayaṁ vartayiṣyāmi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 akam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여기서 hṛdayaṁ은 ‘마음’을 뜻하는 단어 hṛdaya의 대격으로 ‘마음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artayiṣyāmi는 ‘일으키다’, ‘수행하다’는 뜻의 동사 vṛt의 사역 미래형 1인칭으로,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들이 뒤에 붙어 있는데,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sarvārtha는 ‘일체의’란 뜻의 형용사 sarva와 ‘이익’을 뜻하는 명사 artha가 합해진 말이며, sādhanaṁ은 ‘성취’를 뜻하는 sādhan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성취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śubhaṁ이란 ‘안녕(安寧)’이나 ‘복(福)’을 뜻하는 śubh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복을’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ajeyaṁ은 ‘필승(必勝)’이란 뜻의 ajey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필승을’이라 해석된다.

그리고 sarva-bhūtānāṁ은 sarva 즉 ‘일체의 bhūtānāṁ’으로, 여기서 bhūtānāṁ은 ‘유정‧중생’을 뜻하는 명사 bhūta에 복수 소유격 어미 nāṁ이 붙어 이를 ‘일체 중생들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bhava-mārga-viśodhakam에서 bhava는 ‘삶’이나 ‘존재’를 뜻하는 명사이다. mārga는 ‘길’을 뜻하는 명사이며, viśodhakam은 ‘청정(淸淨)’을 뜻하는 viśodhaka에 대격어미 m이 붙어 ‘청정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위 전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는 <열반>이란 뜻을 갖는다)’이란 (마음)을‧‧‧‧‧.” 이를 풀어보면, “저는 ‘복과 필승 등 일체의 이익 성취와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에 있어서의 청정(열반)’을 바라는 (저의) 마음을 닦아나가겠습니다”라 말할 수 있기도 할 것인 바, 이는 다라니 독송자가 가져야 할 발원의 총체적 귀결점을 제시하고 있는 동시에 발원을 행함에 앞선 다라니 독송자의 기본적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 발원문‧II(서술부敍述部)

이어 위 발원문에 대한 구체적인 원(願)이 제시되고 있는 바, 앞의 발원문을 총원(總願)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부분은 앞의 총원에 대한 각각의 개별적인 원, 즉 별원(別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원 부분이 앞의 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어구 tadyathā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냐타

tadyathā

앞의 예(例)는 다음과 같다(다시 말하건대)

이어 tadyathā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tadyathā는 ‘이것은 그것과 같다’, ‘앞의 예는 다음과 같다’는 의미이다. 즉 앞의 내용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서술을 행하게 됨을 명시한다고 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tadyathā는 ‘이것’을 의미하는 tad와 ‘‧‧‧이다’는 뜻의 yathā가 합해진 말로 ‘이것은 ‧‧‧이다’라는 서술구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굳이 표현한다면 “다시 말하건대” 쯤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이어 다음과 같은 총체적 서술부의 구절들이 등장하게 된다.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아! 관(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

그럼에도 여기 서술부는 발원의 대상, 즉 성관자재께 대한 다음과 같은 귀의의 내용을 또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여기서 “‘āloka e’는 ‘Avalok[ita]’ 표기에 대한 중앙아시아의 형식으로서,” ‘관하여 보는’을 뜻하는 ‘Avalokita’의 호격에 해당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oṁ āloka e를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ālokamati에서 āloka는 ‘출세간(出世間)’을, mati는 ‘마음’을 뜻한다. 또한 lokātikrānta에서 loka는 ‘세속(世俗)’을, atikrānta는 과거수동분사 ‘초월한’의 명사형 호격으로 이해된다. 이에 이 부분을 번역해 보면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뒤의 ehy-ehi Hare에서 ehy-ehi는 ehi가 반복되어 쓰인 것이다. 그럼에도 산스크리트어의 연성법(連聲法)에서 i와 모음이 만날 경우 i가 y로 바뀌는 까닭에 앞의 것이 ehy로 표기된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ehi는 ‘오다’는 뜻의 명령형으로 ‘오소서, 오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Hare는 ‘비슈누(Viṣṇu) 신’을 지칭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여기서는 문장 내용상 앞서 말한 청경이나 앞 구절의 āloka e로서의 ‘관하여 보는 자’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인 바, 관자재를 지칭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라 번역할 수 있다.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 -ayam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大菩薩)이시여!

여기서 mahābodhisattva는 ‘대보살’의 호격에 해당한다. 그리고 smara-smara에서 smara는 ‘‧‧‧‧을 기억하다, 상기하다’는 동사 smaratī의 명령형이며, hṛdayaṁ은 hṛdaya 즉 ‘마음’에 대격어미 ṁ이 붙어 ‘마음을’이 된다. 한편 불공(1113B) 역본에 의할 것 같으면 이 뒤에 마마(摩摩:mana)라는 표현이 추가되어 있기도 하는 바, 여기서 mana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屬格)으로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나의’라는 표현까지를 삽입하여 이를 번역하면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이시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

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kuru-kuru에서 kuru는 ‘행하다’는 뜻을 가진 Kṛ의 2인칭 단수 명령형으로 ‘행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karma는 ‘의식’을 뜻하는 명사 karman의 대격(對格)으로, ‘의식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한편 sādhaya는 ‘목적을 달성하다’는 뜻의 단어 Sādh에 사역활용 어미인 aya가 붙은 채 사역분사로 쓰여지고 있는 바,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위의 내용과 함께 이를 번역해 보면,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서 [발원문]은 끝나게 된다.

Ⅳ. 성관자재 찬가(聖觀自在讚歌:청경의 명호)

위 [발원문]에 이어 [성관자재 찬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앞의 [귀의문] 가운데 “성관자재 찬가인 청경의 명호를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한다”는 내용과의 연관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어 다라니는 다음과 같이 16항목에 달하는 [성관자재 찬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는 ‘청경의 명호’에 대한 나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 이후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기도 한다.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dhuru-dhuru vijayanta e mahāvijayanta e

수호(守護)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dhuru-dhuru에서 dhuru는 ‘지니다‧수호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Dhṛ의 명령형으로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vijayanta e에서 “vijayanta는 인드라(Indra)신의 별칭이 되기도 하는데, ‘승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에 다라니에서는 [성관자재 찬가]의 한 부분으로서 이 내용을 말하는 가운데 ‘승리자’라는 명칭 자체를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라 할 수 있다.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dhara-dhara dharaṇiṁdhareśvara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

dhara-dhara에서 dhara는 ‘지지‧보존‧보지(保持)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dharatī의 명령형이다. 또한 인도의 신 비슈누나 쉬바의 명칭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지지(支持)하소서’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 또한 dharaṇiṁdhareśvara는 dharaṇiṁdhara와 īśvara로 나뉘는 바, dharaṇiṁdhara는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이란 형용사이며, īśvara는 ‘신’을 뜻하는 말의 호격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지지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라 해석할 수 있다.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

cala-cala malla vimalāmala-mūrtte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不淨)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

cala-cala의 cala는 ‘움직이는‧요동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calatī의 명령형이다. 그리고 이어 malla vimalāmala가 등장하는데, 이 구절을 해석하는데 있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글 음역 다라니에서는 이 부분을 ‘마라 미마라 아마라’라 표기하여 그 음에 따라 이를 mala vimala amala의 도식적 관계로서 이해하게끔 하고 있는 바, 이 표기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부분을 굳이 “부정이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mala는 ‘부정’을 뜻하는 명사의 호격이며, vimala는 ‘부정을 여읜’이란 형용사, 그리고 amala는 ‘청정한’의 형용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의 공관도표를 통해 볼 때 불공(1064, 1113B) 및 가범달마(1060) 역본 등은 이 가운데 한글 음역의 ‘마라’에 해당하는 부분을 ‘마마(摩摩)’로서 한역 표기를 행하고 있는 즉, 이에 따른다면 우리는 ‘mama vimal-āmala’로서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mama는 ‘나’를 뜻하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으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vimala는 ‘부정을 여읜’, amala는 ‘청정한’이란 뜻을 갖는 즉, “나의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L. Chandra는 한글 음역 다라니를 표기하는데 있어 ‘malla vimala-amala’를 답변확정하고 있는 바, 여기서 malla는 나라야나(Nārāyaṇa)를 말하며 인도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 가운데 비슈누신에 대한 명칭으로서 쓰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라니의 구성상 [성관자재 찬가]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는 위의 신적(神的) 인물을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하고 있는 즉, 앞의 cala-cala를 첨가한 채 우리는 위 구절을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mūrtte re는 신의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 amala 즉 비슈누의 처(妻) 락쉬미(Lakṣmī)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금강지(no.1061) 역본에서는 mūrtte re 대신 ‘aryāvalokiteśvara Jina’ 즉 ‘성관자재 성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는 바, 여기서 mūrtte re 역시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이상의 관점에서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라는 해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라>나 <무르떼>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예혜혜 로계새바라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ehy-ehi Lokeśvara rāga-viṣaṁ vināśaya dveṣa-viṣaṁ vināśaya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시여! 탐욕(貪慾)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ehy-ehi에서 ehi는 ‘오다’는 말의 명령형이며, Lokeśvara는 통상적으로 ‘세자재’를 뜻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 되어질 수 있다. 이에 이 문장은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rāga-viṣaṁ vināśaya에서 rāga는 ‘탐욕’을 뜻하는 명사이며, viṣaṁ은 ‘독’을 뜻하는 명사 viṣa에 ‘을’을 뜻하는 대격어미 ṁ이 첨가된 것으로 ‘탐욕의 독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ināśaya는 ‘파괴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vināśayatī의 명령형으로 ‘파괴하소서’라 해석되는 바,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탐욕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이를 옮길 수 있게 된다.

dveṣa-viṣaṁ vināśaya에서 dveṣa는 ‘진에(瞋恚)’를 뜻하는 명사이다. 여기에 ‘독을’이란 viṣaṁ이 붙고 ‘파괴하소서’란 뜻의 vināśaya가 붙어 이를 “진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된다.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에서 moha는 ‘치암(癡暗:어리석음)’을 뜻하는 명사이며, jāla는 ‘그물 망(網)’을 뜻하는 명사이다. 즉 ‘치암(어리석음)이 얽혀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viṣaṁ과 vināśaya가 연결되어, 이는 “치암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는 기원(祈願)의 뜻으로 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나바

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ābha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

huluhulu mala에서 huluhulu는 기쁨의 탄성, ‘기쁘도다!’라는 의미의 불변화사(不變化詞)가 된다(‘기뻐하다’는 동사 hulutī의 명령형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malla는 앞서 살펴본 바 비슈누의 화신 나라야나를 의미하는 즉,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말라(神)>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hulu Hare Padmanābha에서 Hare는 비슈누신을 뜻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관자재(觀自在)를 뜻하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Padmanābha는 ‘연꽃’을 의미하는 Padma와 ‘허공’을 뜻하는 nābha가 결합된 말로, 비슈누신의 명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의 화신적 성격을 띄기도 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상 문장을 옮겨 보면,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가 된다. 이는 앞의 구절에서 설명된 바, ‘탐욕‧진에‧치암’ 등 삼독이 파괴될 것에 대해 ‘성관자재’께 기쁨의 탄성을 올리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識別)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

sara-sara siri-siri suru-suru에서 sarasara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의 뜻을, sirisiri는 ‘좌우로 움직이는’이란 뜻을 갖는데, 모두 명령형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suru-suru에서 suru는 ‘흐르다‧흐르게 하다’는 동사 sru의 명령형으로서, ‘흐르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앞의 어구 전체를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구절인 buddhyā-buddhyā에서 buddhyā는 ‘신념(信念)’ 또는 ‘식별(識別)’ 등의 뜻을 갖는 명사 buddhi의 구격(具格)으로서 ‘(반조하는) 신념으로서, 식별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bodhaya-bodhaya는 ‘깨닫다’ 또는 ‘이룩하다’는 뜻의 동사 bodhayatī의 명령형으로(또는 bodh에 사역형 어미 aya가 붙어) ‘깨달으소서(이룩하소서)’ 또는 ‘깨닫게 하소서(이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상의 해석을 통해 볼 때, 이 문장에는 주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 행위의 주체자는 누구인가? 이에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suru-suru 다음에 muru-muru라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는데, 이는 아수라의 명칭으로 통칭 ‘신’이라 간략할 수 있는 말이다. 곧 “신이시여!”라 말할 수 있는 바, 전체 다라니의 내용과 굳이 연관을 시킨다면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번역상의 편리를 위해 금강지 역본의 내용을 삽입시킨 채 위 전체 문장을 의역해 보면,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무루무루<神>>시여!)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매다라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사바하

maitriya Nīlakaṇṭha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

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maitriya Nīlakaṇṭha에서 maitriya는 ‘정이 있는’의 뜻을 갖는 명칭동사이며, Nīlakaṇṭha는 <청경>을 뜻한다. 이에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에서 kāmasya는 ‘즐거움’을 뜻하는 남성명사 kāma에 속격어미 sya가 붙어진 말로, ‘즐거움의(혹은 kāmā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darśanena는 ‘바람(원함, 희구), 관찰, 봄’이란 뜻의 darśana에 구격어미 na가 붙어(어간 끝의 a가 e로 변하고 na 붙음) ‘성찰함으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prahlādāya는 비슈누 숭배자로서의 쁘라흐라다(prahlāda) 에 여격 ya가 붙은 것으로 ‘쁘라흐라다(神)께’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 ‘마음’을 뜻하는 manas의 대격 manaḥ ‘마음을’, 또한 svāhā가 붙어, 우리는 위 문장 전체를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siddhayogeśvar- -āya svāhā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主)>께 영광이 있기를!

siddhāya svāhā에서 siddhāya는 ‘성자’를 뜻하는 명사 siddh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께’라 할 수 있으며,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란 축복어가 되니,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mahāsiddhāya svāhā는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siddhayogeśvarāya svāhā에서 siddhayogeśvarāya는 siddha와 yoga와 ‘신’을 뜻하는 īśvara가 합해진 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라 할 수 있으며, 뒤에 svāhā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yogeśvara <요가의 주>는 쉬바의 호칭이 되어지기도 하는 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이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위 전체 문장을 번역해 본다면,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란 뜻을 얻을 수 있다.

니라간타야 사바하

Nīlakaṇṭhāya svāhā

<청경(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Nīlakaṇṭhāya svāhā는 Nīlakaṇṭha, 즉 ‘청경’에 여격 ya가 붙어 “<청경>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varāhamukha-siṁhamukhāya svāhā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varāhamukha-siṁhamukhāya에서 varāha는 ‘멧돼지’를 말하는데, ‘비슈누(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mukha란 ‘얼굴’ 내지 ‘용모’를 뜻하는 명사로서, varāhamukha라 함은 ‘멧돼지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을 뜻한다고 하겠다. 한편 siṁhamukhāya에서 siṁha란 ‘사자(獅子)’를 말하는 바, 여타 역본에서 표기되고 있는 narasiṁha는 ‘Viṣṇu의 화신’으로서의 ‘인사자(人獅子)’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용모’라는 뜻의 mukha가 붙어진 바, 이를 ‘사자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전체 내용을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 또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padma-hastāya svāhā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padma-hastāya svāhā에서 padma는 ‘연꽃’이란 뜻의 명사이다. 그리고 hasta는 ‘손’, ‘손에 쥔’을 뜻하는 명사로서 둘을 합하면 ‘연꽃을 손에 쥔 자’가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연꽃을 손에 쥔 자께’라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연꽃’이란 비슈누의 지물(持物)이 되어지는 까닭에 ‘연꽃을 손에 쥔 자’라 함은 곧 비슈누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이 구절을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연꽃을 손에 쥔 자’는 불교 관음보살의 화신인 연화수(蓮華手)보살로 이해되기도 한 채,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이고 있다.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cakrāyudhāya svāhā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cakrāyudhāya svāhā에서 cakrāyudha는 비슈누(Viṣṇu)나 끄리슈나(Kṛṣṇa)의 명칭이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신(Viṣṇu 혹은 Kṛṣṇa)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 부분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 역본(1113B)이거나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cakra hastāya svāhā라 표기하고 있는 바, 여기서 cakra는 ‘원반 모양의 무기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hasta는 ‘손에 쥔’을 뜻하며 여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챠크라>를 손에 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챠크라를 손에 쥔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에서 śaṅkha란 ‘소라고둥[螺貝]’이란 명사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쓰이기도 하고 Viṣṇu의 상징 자체가 되어지기도 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śabda는 ‘음(音)’을 뜻하는 명사로서, 이 둘을 합하면 ‘소라고둥 소리’가 된다. 한편 nibodhanāya는 ‘소리를 듣다’는 뜻을 갖는 nibudh의 현재분사 nibodhan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소리를 듣는 자에게’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전체 문장을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는 바,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는 Viṣṇu를 말할 것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

<큰 방망이(를) 보지(保持)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에서 maha는 ‘큰’이란 뜻이며, lakuṭa는 ‘방망이’라는 뜻의 명사로, 방망이(lakuṭa) 역시 비슈누의 지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dhara는 ‘보지하는’이란 뜻의 형용사이며, 여기에 여격 ya가 붙어 있으니, 이 문장은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 역시 비슈누를 지칭하는 표현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에서 vāma는 ‘왼쪽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skanda는 ‘공격자’거나 ‘Śiva신 또는 Agni신의 아들’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또한 deśa는 ‘쪽’ 또는 ‘장소’를 뜻하는 명사이며, sthita는 ‘서 있는’, ‘있는’의 뜻을 가지는 과거 수동분사, 그리고 kṛṣṇājina는 ‘흑색 야크(羚羊)의 가죽’ 내지 ‘비슈누 화신으로서 끄리슈나(kṛṣṇa)’의 별칭 ‘흑색 성자’를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있는 바, 이를 해석해 보면,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 된다.

여기서 <흑색 성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먀가라 잘마이바 사나야 사바하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에서 vyāghra는 ‘호랑이’를 뜻하고, carma(n)는 ‘가죽’을 뜻하는 명사이다. 그리고 nivasana는 ‘(의복의) 착용’을 뜻하는 명사이며, 그 뒤에 여격어미 ya가 붙어지는 즉, 우리는 위의 문장을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여지고 있다.

Ⅴ. 귀의문(歸依文)

이상 16항목에 걸친 [성관자재 찬가]를 통해 무려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는 바, 위 내용을 통해 볼 때 힌두 신앙의 많은 요소들이 불교 다라니와 접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다라니에 담긴 내재적 의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수다라니’에 대한 인도 신화학적(神話學的) 고찰」의 필요성을 느끼게도 되는 바, 현재 필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이 연구의 성과는 이후 또다른 논문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여하튼 이상의 [성관자재 찬가]에 이어, 다라니는 또다시 다음과 같은 [귀의문]을 등장시켜 전체 내용을 마무리짓고 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3번)

namo ratna-trayāya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삼보에 귀의합니다.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namo ratna-trayāya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삼보에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으며,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는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라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될 수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③ 현행 다라니의 해석

삼보께 귀의합니다.

크나큰 자비의 聖觀自在 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이것을, (즉) 靑頸의 名號인 聖觀自在 讚歌를 기억하면서, 귀의합니다.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다시 말하건대

아! 觀하여 보는 者시여!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者시여!

오소서, 오소서 觀自在시여!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이여!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승리자’시여!

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神’이시여!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

오소서, 오소서, ‘世自在’시여!

貪慾의 독을 파괴하시고, 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觀自在(神)’시여, ‘파드마나바’

시여!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

정이 깊은 ‘靑頸(닐라깐타)’이시여! 즐거움(kāma)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聖者, ‘요가의 主’께 영광이 있기를!

‘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者’께 영광이 있기를!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큰 방망이를 지니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V.

삼보께 귀의합니다.

聖觀自在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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