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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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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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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
(일치교령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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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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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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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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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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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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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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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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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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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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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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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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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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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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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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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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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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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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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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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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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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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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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31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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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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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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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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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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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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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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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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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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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0/4 다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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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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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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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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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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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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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
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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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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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1/9~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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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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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38~3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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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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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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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
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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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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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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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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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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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36~37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메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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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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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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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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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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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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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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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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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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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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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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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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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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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제 1편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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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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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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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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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
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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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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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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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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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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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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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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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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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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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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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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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
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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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
14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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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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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15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라.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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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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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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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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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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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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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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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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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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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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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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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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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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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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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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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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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제 2편 p.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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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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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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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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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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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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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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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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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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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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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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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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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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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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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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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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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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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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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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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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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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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제2편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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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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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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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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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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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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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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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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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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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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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6/27~28 또는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를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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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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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나니,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어떤 타국인도 피를 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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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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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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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 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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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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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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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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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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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제 2편 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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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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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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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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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11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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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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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1/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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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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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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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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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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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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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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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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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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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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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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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제1편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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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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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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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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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으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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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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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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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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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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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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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 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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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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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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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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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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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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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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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아는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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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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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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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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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제 1편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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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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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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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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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11/27~28 주께서 이런 일을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목청을 높혀 주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이 낳은 태와 당신이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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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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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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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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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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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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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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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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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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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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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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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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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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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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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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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1/47~48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 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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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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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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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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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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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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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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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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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
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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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변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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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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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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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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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보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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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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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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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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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협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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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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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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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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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중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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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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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Mediator)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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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7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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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한 명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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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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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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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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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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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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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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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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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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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리아: 천지의 여왕 (Mary: Queen Over All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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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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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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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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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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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 받은 적이 많습니다.
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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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미사 (The M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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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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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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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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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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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10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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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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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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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합니다.
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입니다.
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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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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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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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연옥 (Purg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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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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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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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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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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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깁니까?
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
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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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9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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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됩니다.
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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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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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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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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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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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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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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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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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11~12 그(그리스도)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Saint)들을 온전케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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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니다.
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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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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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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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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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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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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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입니다.
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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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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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입니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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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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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합니까?
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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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8/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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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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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성상들 (Sta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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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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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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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
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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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4~5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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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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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로 경배드려야 하리라.\" 고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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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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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_60902_63007665', ' 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일치교령 3항) 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마가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5/31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으니 마가 1/9~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사도행전 2/4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사도행전 8/38~3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되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느니라. 사도행전 8/36~37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메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제 1편 p.358)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마태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14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딤전 1/15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라.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제 2편 p. 466) 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요일 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제2편 p.490) 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마태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시더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 26/27~28 또는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를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레위기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나니,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어떤 타국인도 피를 먹지 말라. 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사 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제 2편 p.514)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고전 6/11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고전 11/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제1편 p.185)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으라. 하더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마가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 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고전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 함이라. 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로마서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아는 바라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마태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제 1편 p.184) 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누가 11/27~28 주께서 이런 일을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목청을 높혀 주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이 낳은 태와 당신이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니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마태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1/47~48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 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a) 변호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b) 보조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c) 협조자 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d) 중재자 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딤전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Mediator)가 계시기 때문이니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 로마서 8/27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한 명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또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합니다.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19.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마태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습니다.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십니다.   20. 마리아: 천지의 여왕 (Mary: Queen Over All Things)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습니다. 예레미아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 받은 적이 많습니다.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미사 (The Mass)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습니다.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합니다.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입니다.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22. 연옥 (Purgatory) 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 p.389) 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깁니까?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5/9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리라. 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됩니다.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합니다.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합니다.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4/11~12 그(그리스도)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Saint)들을 온전케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입니다.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합니다.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니다.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입니다.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입니다.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합니까?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태 28/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습니다.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25. 성상들 (Statues) 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입니까?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4~5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로 경배드려야 하리라.\" 고 하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div>   ', 'https://cboard.net/sitemap/og_image.php?text=천주교&link=https://cboard.net/k/6_60902_63007665',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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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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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1.25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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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
(일치교령 3항)

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마가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5/31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
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으니

마가 1/9~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사도행전 2/4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사도행전 8/38~3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되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
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느니라.

사도행전 8/36~37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메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제 1편 p.358)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
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마태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
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
14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딤전 1/15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라.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제 2편 p. 466)

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요일 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제2편 p.490)

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마태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시더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 26/27~28 또는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를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레위기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나니,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어떤 타국인도 피를 먹지 말라.

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 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제 2편 p.514)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고전 6/11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고전 11/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제1편 p.185)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으라. 하더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마가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 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고전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 함이라.

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로마서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아는 바라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마태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제 1편 p.184)

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누가 11/27~28 주께서 이런 일을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목청을 높혀 주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이 낳은 태와 당신이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마태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1/47~48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 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
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a) 변호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b) 보조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c) 협조자

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d) 중재자

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딤전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Mediator)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

로마서 8/27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한 명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19.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마태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십니다.

 

20. 마리아: 천지의 여왕 (Mary: Queen Over All Things)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습니다.

예레미아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 받은 적이 많습니다.
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미사 (The Mass)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합니다.
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입니다.
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22. 연옥 (Purgatory)

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 p.389)

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깁니까?
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
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5/9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리라.

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됩니다.
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합니다.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4/11~12 그(그리스도)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Saint)들을 온전케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니다.
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입니다.
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입니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합니까?
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태 28/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25. 성상들 (Statues)

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
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4~5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로 경배드려야 하리라." 고 하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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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동시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을 보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으나, 하느님께서 각 인간에게 심어주신 최선을 다해 양심대로 산다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가시적인 은총의 통로인 성사가 있습니다. 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개신교에서는 세례 성사만의 유효성을 인정하나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7성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서적 근원과 성전의 근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 안에서만이 구원의 확립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 개신교 인이나 타종교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문헌 한가지 구절만 가지고 본다면 국한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문헌도 전체적으로 보고 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선행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구원의 조건에 있어서 선행은 반드시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은총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거역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거역하는 행위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곧 선행입니다. 각자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주님주님만을 외치고 남을 비방하거나 타 종교를 포용하지 못하면서 주님주님한다면 하느님께서 결코 우리를 모르신다고 하실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선행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라는 인식을 하셨기 때문에 스스로 봉사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수녀님에게 맡겨주신 직무이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셨기에 희생과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 스스로도 말씀하셨지요. "나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기 보단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입니다"라구요.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앞서 말했다 시피 교회는 하느님의 가시적 은총의 통로인 성사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고해성사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것은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로 분열되기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고 성서적 신학적 교부들의 말씀으로도 충분히 설명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 인들이 눈과 귀와 이성과 마음을 닫아서 그들 스스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어떤 성인께서 말씀하셨죠.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이해하는 것이라고요."

 

나머지는 아랫 글 참고 하세요~~

 

1. 왜 가톨릭교회인가?


제가 여러 개신교 사이트를 돌아 다녀 본 바로, 소위 정통 개신교 교단의 양식 있는 목사라는 사람들조차도 이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봅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한 뿌리이다. 서로 비난하기 보다는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가 마리아를 숭배하기를 그치고 그릇된 마리아교리를 버리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오설을 버리지 않는 한 기독교와 일치할 수는 없다. 천주교가 참된 기독교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목사들조차도 이럴진데 일반 개신교 신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일부가 아닌) 대다수 무지하고 현실안주에 급급하고 진리탐구에 게으로고 스스로를 속이는 목사들이 가르쳐준 바에 따라 앵무새처럼 천주교를 이단시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왜 현실안주를 해야만 하고 진리탐구에 어떻게 게으르며 나아가 그들의 주장이 어떤 이단설과 관련이 있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글을 풀어 나가는 첫머리에 과연 가톨릭교회는 무엇이며 왜 가톨릭교회만이 참된 교회인지 서론으로 제시하고 앞으로 글을 풀어 나가면서 무수히 등장하게 될 이단들에 대해 미리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1. 가톨릭교회


하느님의 교회는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여 어느 누구도 어떤 교회가 진정으로 참된 하느님의 교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이 현실은 하느님의 뜻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수천, 수만 종파들이 서로들 제각기 자신만이 하느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수난 전에 교회가 갈라질 것을 예견하시고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운 기도를 남겨주셨습니다. 흔히 우리가 ‘일치의 기도’라고 알고 있는 요한 복음서 17장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며 사도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그 제자들, 또 그 제자들, 이렇게 유구한 세월을 거쳐 예수님의 기도대로 하나가 된 사도들과 그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변함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교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또 어떤 약속을 하시는지 마태오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사도들에게는 가르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인 것이죠. 일치된 교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교회가 진리를 저버리게 되었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해 요한복음서 14장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16장을 한번 볼까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잘 아다시피 오순절 때에 진리의 성령이 사도들과 여타 제자들에게 내렸습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직접 간구하시고 약속하신 것에 따라 교회는 하나이며 또한 진리의 성령의 보호 하에 사도로부터 그 제자들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제자가 아닌 어느 누가 역사의 흐름에 끼어들어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헌신짝으로 만들어버리는 신성모독을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는 교회의 용어적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교회만이 영광스러운 교회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인 것입니다.

보편된 교회라는 것은 Ecclesia Catholica입니다. 바로 가톨릭교회라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는 개신교에서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거룩한 공(교)회’라고 번역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보편교회와 가톨릭교회가 동의어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공(교회)를 세계의 지평에서 봉사하는 모든 교회, 세상과 구별된 우주적 보편 교회, 인종과 계급, 국가, 사상 등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 에클레시아 가톨리카, 즉 보편교회가 가톨릭교회임을 인정해서는 기반이 흔들리는 개신교의 옹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지요.


이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서기 107년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성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타납니다.


Ubi Episcopus, ibi est communitas, ut ibi Jesus Christus,

ibi est Ecclesia Catholica.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듯이

주교가 존재하는 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한다.


개신교 측에서 가톨릭을 비방하면서 몰아세울 때 흔히 하는 말이 서기 315

년 이후 이교 신앙과 융합된 것이 가톨릭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관련된 가톨릭 측의 구체적인 문헌이나 증언 자료, 즉 예증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습니다.물론 거기에 관련된 관련 자료나 역사적 문헌

의 실체를 공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톨릭이 애초부터 존재했다는 증거는 있어도 가톨릭이 거짓된

교회이며 개신교 측의 주장대로 개신교는 역사속에서 불가견적으로 존재했

다는 증거는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측에서 내세우

는 것은 오로지 말뿐인 주장입니다.


에클레시아 가톨리카는 개신교의 주장대로 315년부터 변질된 것이 아닙니다.

에클레시아 가톨리카는 언제나 그 기원을 사도로부터 찾으며 사도교회의 맏형인

로마 교구의 주교 아래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임을 선언해 왔습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는 성 베드로 이래로 수 많은 피의 순교로 이어져 왔으며

모든 로마 주교는 예외 없이 사도 계승으로 그 계보를 성 베드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 에클레시아 가톨리카는 이미 1세기 말엽부터 이단의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바로 저 유명한 영지주의자들의 ‘예수 가현설’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예수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그 허구성을 밝혔으며 그들의 이단설을

공박했습니다. 그 이래로 교회는 순수한 신앙과 진리를 해치는 이단설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타협을 하지 않고 아무리 커다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신앙의 순수함과 진리를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하여 에클레시아 가톨리카는 2000년간 주님께서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을 온전히 지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이단이 극심하였던 4,5 세기의 교부들은 다만 그의 ’사도 전래 여부’로 그 진가를

규정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성 이레네오와 테르툴리아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은

그때까지 계승한 로마 주교의 연대표를 만들어 가톨릭교회의 정통을 표시하였습니다.


테르툴리아노는 이단파에 대하여 말하기를 "저들로 하여금 교회의 기원을 밝히게

하라. 또 저들로 하여금 주교의 교권을 받은 내력을 명백히 하여 주교들이 사도들

에게서나 혹은 그 계승자들에게서 서품 임명된 사실이 있는가를 증명하게 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가톨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부 중의 한 명이며 개신교에서도 그 신학적 기원을 두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형제들아, 원 줄기에 붙기를 원하거든 우리에게로 오라. 우리는 형제들이 원줄기에서

잘려 나간 것을 보기가 안타깝다. 교부들이 편성한 이 계보에서 성 베드로로부터 계승된

교황의 수를 세어보고 또 어떻게 그들이 계승되었는가를 상세히 고찰하라. 이것이 곧 오만 횡포한 지옥문도 쳐 이기지 못하는 반석이다.“


모든 개신교의 역사는 1517년에 결정적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한 루터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 모든 개신교에서 주장하듯이 자신이 참 교회가 되려면 당연히 사도계승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 뛰어 넘을 수 없는 1500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개신교에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비록 가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불가견적으로 각

시대를 통하여 존재하였다.“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주 강생 후 세상에 존재했던 수 많은 교회 중에 사도계승과 중단 없는 연속성을 가지는 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오소독스 동방 교회뿐입니다. 만약 개신교의 주장대로 비 가견적 교회가 1500년의 세월 동안 존재했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와 오소독스 교회 외에 명멸했던 이단들의 후예임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참혹한 박해시대를 견디어내며 진리를 수호한 것도 가톨릭교회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당시 로마 중심에서 바라 본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 것도 가톨릭교회요, 진리를 왜곡하려는 세속권력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해 온 것도 가톨릭교회입니다.


루터 이후 수 없이 분열을 거듭해온 개신교는 이제 차차 살펴보겠지만 스스로 자기모순 논리에 빠져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악한 목사들은 알면서도 밝히지 않을지도 모르죠.

공격적인 개신교는 모두 억지에 의한 주장으로 가톨릭교회를 공격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질문에 대해 그들의 주장이 단 하나도 옳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쪽에서 그들의 자기모순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그들은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선의를 가지고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며 성서에 나오는 진리를 찾으려 한다면 지옥형벌은 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모순에 빠진 줄도 모르고 제대로 알아 보지도 않고 공부하려는 의지도 없이 지옥행 열차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거짓선지자와 같은 목사들이 가톨릭교회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들은 결코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개신교도들에게도 참 진리의 빛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로 가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답부터 말씀드리죠.

"오직 가톨릭 교회 내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가 정답입니다.

물론 지금 말하는 용어를 잘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는

가견적 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며 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공번된 사톨릭 교회의 외형적 제도교회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비가견적 가톨릭 교회까지 포함한 의미입니다.

앞으로 풀어 나가는 글에서 "가톨릭 교회"의 의미를 혼동하지 말고 잘 새겨서 보세요.

다시 말해서 가톨릭 교회를 우리 눈에 보이는

제도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로 한정하자면

"로마 가톨릭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다." 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개신교 신자들이나 이단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많이 괴롭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당신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살펴 보겠는데요...우선 가톨릭 교회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 봅시다.

우선

공의회의 가르침을 살펴 보겠습니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교회 16)

 

그런데 이 앞에 보면 아주 무서운 선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 14)

 

이제 잘 보세요.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자기 탓으로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자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설명하자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던 퇴계 선생이나

예수라는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싯달타나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토록 외지인 한 명 만나지 못하는

그런 원주민 중에 정말로 양심적으로 살고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 탓으로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자"가 아니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톨릭 교회 밖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힘들테지요.

그런데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여

명백히 가톨릭 교회 밖에 머무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자기 탓으로'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가

진정한 교회임을 알면서도 떠나가 냉담(冷 痰)하거나,

가톨릭 교회가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상태로 세상을 떠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가톨릭 교회가 주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사도들로 부터 중단됨 없이 이어져온 진정한

교회인지 의심이 드는 사람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성령의 지혜에 의지하여 부단히 공부하고 탐구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여 참된 교회를 판단하는 데에

잘못이 있다면 그 역시 생명에 관계된 문제에 있어서

중대한 태만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로마 교황의 지도를 따르 는 모든 신자들은

그들에게 대죄가 있든 없든,

모두 교회의 육신에 속하고,

은총으로 그 영혼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교회의 영혼에 속합니다.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인지

전혀 모르지만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 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를 알기만 하면

곧 거기에 입교할 만한 사람들은 교회의 육신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의(善意)로 다른 교파에 있는 신자들도

갖출 것을 갖추면 구원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의 (善意)란

악의(惡意)에 대칭되는 말로,

진정한 교회가 따로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심적 상태를 뜻합니다.

 

만일 알면서도 그대로 있다면

이는 분명한 악의(惡意)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참된 교회로

돌아오라는 권고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선의(善意)인지 악의(惡意)인지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설사 선의(善意)로 구원 될 수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그 교파 자체 가 진정한 교회이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그 개인의 선의 때문입니다.

 

셋째, 프로테스탄트 세례는 일정한 규식이 없이

목사가 자기 방식대로 주는 예가 적지 않으므로,

그 신자들의 원죄와 본죄가 과연 사하여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성사는 합당한 질료와 예식이 충족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영세 후에 대죄 하나도 짓지 말았어야 하는데

만일 하나라도 지었 다면 고해 성사를 받지 못했으므로

죄사함을 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에 상등 통회(上等痛悔)를 하면 되지만,

상등 통회는 ’사랑’을 본질로 하는 것인 만큼

"믿기만 하면 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아 온 사람들에게

상등 통회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부들의 신앙 참조)

 

이와 같은 이유로 살펴 본다면

영세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를

하나 이상 고의로 믿지 않는 개신교인들에게는 구원의 문

이 거의 열리기 힘듭니다.

 

동방 교회인들은 교황 무류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고의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동방교회는 비록 가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사도계승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성사는 유효한 성사이므로

그들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혀있지는 않지만 고의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대죄를 짓고 있으므로

그들은 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하느님의 은총을

완전히 받아 누릴 수 없으며

 

구원의 문은 닫혀 있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책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직접 세우신

유일한 참된 교회의 일원임을 감사히 여기시고

그 받은 선물을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교인과 열교인과 이단들에게 전해주는데

성심을 다해야 합니다.

 

개신교 사람들에게 주로 공격당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성모님’입니다.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 심하지요.

그들의 주장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대부분의 주장이 ‘천주교는 성모숭배종교이다.’

‘천주교는 우상숭배 종교이다.’라는 것이죠.

 

그 근원에는 성모 경멸 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성모 마리아는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신랄한 개신교도들의 공격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에서

“사람들도 자기를 낳아 주신 어머니를 공경하고 효도를

바치는데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께는 당연지사 더욱

공경하고 효도를 바쳐야하지 않겠느냐!”는 답변을

제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감히 생각하기를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저들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로 공격을 하는데

우리는 감정에 호소하는 말로 답해서는 대화가 안 되고

자칫하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에서는

위의 답변밖에 할 수가 없을까요?

정말 저들의 공격에 적절히 대응하며

저들의 무지를 깨워줄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두서가 없을테지만

나름대로 답변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답변을 하기 전에

하나 살펴볼 문제가 있습니다.

 

개신교라고 해서 다 같은 개신교가 아닌 것입니다.

- 첫째, 개신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루터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모님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성모님을 모독하고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 둘째, 현재 한국 개신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장로교입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장로교의 경우

(제가 어찌 그 내막을 다 알겠습니까 만은 제 친구들 중에

장로교 목사들이 몇 명 있어서 들어 알고 있는 바에 따르

면) 칼뱅과 성 아우구스티노를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 사상을 따르고 있는 편인데요,

여기서 정말로 웃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여러 가지 신학적인 면에서 루터와 다른 입장을

견지했음에도 칼뱅 역시 성모 공경 사상은

투철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칼뱅이 천국에 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 개신교도들의 성모 격하 운동에

개탄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이제 개신교의 주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원래 말이 두서가 없으니 알아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대한 공적 계시입니다.

따라서 성서의 모든 내용은 성모님이나 사도들이나

성 요셉에 대해서 크게 다루지 않음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수 많은 개신교인들은 목사들이 "성서 어디에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특히 성모 승천 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승천 후의 내용인 사도행전과

서간집들도 사도들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라는 분이 누구인지,

사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는지 등에 대해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는 사도들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죽음과 성서에 나오지 않은 사도들의 행적들은

여타 문서로,

그리고 구전으로 내려와 성전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만도 하여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복음서도 있었습니다.

또한 서간집도 무수히 많았지요.

그 중에는 야고버 복음서, 도마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마리아(막달레나) 복음서 등도 있지요.

 

그리고 사도들의 직제자들이 쓴 책들도 있습니다.

그 제자의 제자들이 스승으로부터 전해 듣고 배운

사도들의 이야기와 주님의 이야기를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가르쳐주고

자신이 맡고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말해주고 있지요.

 

그렇다면 성서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

1세기 2세기의 사도들의 제자들- 이들을 교회에서는

사도 교부라고 부릅니다-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승천하신지 2천년이나 지난 지금

개신교도들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요?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외경 복음서 등은

교회에서 신약 성서를 한 묶음으로 만들었을 때

내용 상의 문제, 신학적인 문제, 저자의 불명확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서 목록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또한 사도 계승성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성전’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는 부분적으로 교회에서 인정하여

‘성전’을 이루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교부들과

그 이후의 교부들의 많은 저서들은 성서와 똑같은

권위를 가지는 성전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회의 선언들과 가르침도

성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전의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언급하도록 하고요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과연 마리아는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일 뿐인가?

이것이 지금의 논점입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일뿐이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개신교도들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의 신성과 인성과 육신을 떨어뜨릴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라는 처녀의 태중에 잉태되신

그 순간부터 그분에게서 신성과 인성과 육신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문제의 출발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일찍이 서기 100년 경부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습니다.

 

최초의 이단은 “예수 가현설”을 주장한 이단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느님이심을 주장하기 위하여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여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원론입니다.

저승이 있으면 이승이 있고 밤이 있으니 낮이 있지요.

정신과 물질이 서로 상반되듯이 신과 인간도

서로 반대 개념이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께서 신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그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지상의 이간 예수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고,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다.

영적인 존재인 그리스도가 이간 예수의 몸을

잠시 빌렸다가 십자가에 갈리기 직전에 살짝 빠져 나가고

예수는 그러는 척 환각작용을 불어 일으켰을 뿐이다.”

이것이 예수 가현설입니다.

 

이 주장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에 의해

공박당하고 이단으로 판명되게 됩니다.

성 이냐시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고통을 겪으셨고,

참으로 당신 스스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믿지 않은 이들은 그분께서 수난하신 것이

가현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실상 가현적인 사람은

바로 그들입니다.

저들이 생각하는 바대로 한다면,

저들 자신이 바로 육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물론 성교회는 마리아에 대해 “그리스도의 인성의 어머

니”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서를 볼 때 마리아에 대해 ‘주님의 어머

니’로 고백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은 바로 천주 제 2위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

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칼체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론을 정의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한 위격에서 혼합되지 않고 결합된 이중의 상태,

하느님과 인간 예수를 본다.”

 

이 말은 인간 예수의 육신 안에 결코

혼합된 것은 아니지만 때어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된

인성과 하느님의 신성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역시 신비입니다.

 

예수 가현설 이단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완전히 분리하여 신은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 네스토리우스 이단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우리는

신비라고 합니다.

하느님이면 하느님이고 인간이면 인간이지요.

이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속성은 무한하고 인간의 속성은 유한합니다.

하느님은 전지 전능 전선하시고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창조물입니다.

이런 결코 결합될 수 없는 두 속성이 만나

하나의 위격 안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론입니다.

 

성교회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인성의 어머니로

칭하는 것은 마리아의 정확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

구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이론적으로만 구분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어머니,

즉 하느님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신성(을 가진 신)의 어머니는 될 수 없기에

애써 인성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성교회의 이 선언에는 지극한 성모 공경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인성의 어머니라고 선언하지만

그 배경에는 그리스도론에서 비롯된 신성과 인성의

결합으로 인해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칭호처럼 ‘천주의 모친’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정확한 자리매김인 것입니다.

 

이것과 연관해서 성부수난설 등의 이단도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다룰 문제는 아닌 듯 싶고요...

여하튼 개신교에서 말하는 그런 육체와 인성과 신성의

구분은 정확한 신학적 배경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애매 모호한 그리스도론과 영지주의 이단설의

교묘한 결합체로써 궁극적으로는 천주교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모 마리아 모독을 위해

만들어낸 주장일 뿐입니다.

 

그들이 마리아를 예수의 인성의 어머니라고조차

고백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성교회의 선언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소위 브레인 역할을 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써 “육신의 어머니”라고 격하 시키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개신교도들은 예수의 육신과 인성과 신성을

지나치게 분리하여 주장하므로

그리스도를 두 존재로 나누게 되는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같은 주장에 빠지기 쉽지요. 네스토리우스 이단!

당시에는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거의 헛소리로 취급당했지만

현대에 와서 새롭게 등장한 신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은 그 교묘함이 훨씬 더 합니다. 함부로 섯부른 주장을 하다가는 "예수는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예수는 인간일뿐 천주 제 2위격 성자는 이 세상에 사신 적도 없다..."는 식의 주장을 무의식 중에 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과연 개신교도들이 속성의 호환,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모든 행위의

유일하고 공동의 주체로

‘그리스도의 하나의 위격’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따르고 믿는지 의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만 지니거나

육체와 정신이 없는 영혼만 지닌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지체를 이루게 된 우리는

따라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게 된 영광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지체가 되었음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를 모독하고 격하시키는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믿는다고 하여도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며

결국에 가서는 완전한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단사상에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육신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론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므로 무의식적으로 이단에 빠지는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야 할 것입니다.

 

 - 성서의 정경(正經) -



 교회는 사도 전승(傳承)에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

했습니다.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서의 "정경"이라 한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에

46권과 신약성서 27권, 총 73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성서는 구약성서39권과 신약 성서 27권, 총 66권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저들이 얼마나 무지하며 얼마나 오만하며 얼마나 독성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

스(희랍)어가 더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

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여 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의 정경 (正經)39권이 있습니다. 이를 제1 경전(정경)이라 합니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 13~14장), 에스델서 일부(10,4~16, 24)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이라 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을 사용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태 6,14/ 집회 28,2

*마르 6,15/ 집회 48,9~10

*루가 13,27/ 1마카 3,6

*루가 24,4/ 2마카 3,26

*요한 3,12/ 지혜 9,16

*로마 1,20~32/ 지혜 13,10~19

*1베드 1,6~7/ 지혜 3,5~7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

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서로 인정하시고 사도들도 성서로 인정한 그 성서를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던 유대인들이 확정한 성서를 따를 것입니까? 사도 계승을 하고 있는 서방 교회나 동방 교회는 모두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46권의 구약 성서를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제 2경전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를 진정한 메시아로 보지 않았기에 예수에 대해 부인하려고 했다는 것 또한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서 몇 권의 문제가 아니라 46권의 구약 성서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39권의 구약성서만을 성서로 인정하는 개신교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이단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약 성서는 27권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개신교는 아무런 할말이 없습니다. 그 어떤 개신교인들도 신약 성서가 28권이라는 둥, 26권이라는 둥의 사설을 늘어놓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한국 루터교는 어떤지 몰라도 초기 루터교는 분명히 신약 성서 26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바로 ‘허수아비 편지’라고 부른 ‘야고보서’를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서는 왜 27권일까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까? 바보 같은 질문일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히 궁금하시면 주위에 아는 개신교인들에게 ‘신약 성서는 왜 27권입니까?’하고 질문을 해 보세요. 정말로 속시원히 대답해 줄 수 있는 개신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복음서는 과연 4권밖에 없을까요?

그렇다면 원 야고보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도마 복음서,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서, 마티아 복음서, 안드레아 복음서 등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행전은 무엇일까요?

또 베드로 묵시록은 무엇일까요?

이런 책들이 왜 성서가 되지 못했을까요?

신약 성서는 물론, 구약 성서 어디를 찾아봐도 성서의 목록표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약 성서 27권”의 목록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정말로 하느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전락시키는 짓입니다.

4세기까지 신약성서는 각 교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교회는 25권 정도, 어떤 교회는 한 30권 정도...이렇게 말입니다.

과연 개신교의 어느 누구가 위에 언급한 외경과 정경을 구분해서 신약 성서를 확정지었답니까? 신약 성서 27권은 1500년대에 확정된 것이 아니라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던 4세기에 가톨릭 교회에 의해 확정된 것입니다. 물론 개신교가 뿌리를 두고 있던 이단들은 그런 정경 목록조차도 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다마소 교황님께서) 이런 이런 책들을 정경으로 한다...하고 선언한 것일까요? 소위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그것은 그야말로 가톨릭 교회를 이성이 결여된 만화와 같은 종교로 전락시키는 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 성서를 저술했던 사도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었던 책들에 대해 해석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사도들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무지랭이 김갑돌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도들의 제자들만이 세세한 것을 전수받고 가르칠 수가 있었겠지요. 그 사도들의 제자들도 차례 차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르쳤을까요? 사도들의 제자들의 제자들이겠지요. 그렇게 제자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는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성서에 대해서, 성서에 근거한 신학적인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5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흐르고 200년이 흐르면서 성서도 있고 위경도 나타났고 제자들이 교육적 목적으로 지은 책들도 있고 제자들의 편지들도 있고 초대 교회 교인들의 규범집도 있고 이단들이 지은 책들도 있고 구전되어 내려오는 ‘주님의 가르침과 성서’에 대한 해석도 있고 문서로 남겨진 해석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누가 성서를 확정할 수가 있었을까요?

장기간에 걸친 면밀한 조사와 검토와 연구를 거쳐 어느 것이 한 점 틀림없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세월을 거슬러 스승의 스승인 사도들의 가르침과 부합하는지 밝혀야만 했습니다. 또 어느 것이 (단 하나라도) 그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인지 밝혀야만 했습니다.

누가 그 일을 했을까요? 존재하지도 않았던 개신교일까요? 아니면 이단들일까요? 바로 가톨릭교회가 아닙니까! 그 필생의 하느님 사업을 바로 가톨릭교회가 한 것입니다.

바로 성서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교회는 가톨릭교회라는 말입니다.


이런 가정은 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사도들의 가르침에 위배되지는 않았지만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바와 다른 견해가 들어가서 성서로 답변확정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렇다고 생각되면 그 책을 성서로 인정하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오만한 개신교라고 해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가톨릭교회를 철천지 원수처럼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그들이 얼마나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서라고 한 것이 성서이고 가톨릭교회에서 성서가 아니라고 한 것이 성서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학과 성서와 특히,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정통하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위경과 정경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신약 성서가 27권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위에 언급한 위경들을 (어떤 것은 정말로 조잡하여 위작이라는 티가 잘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정말로 구별이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보면 왜 정경이 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정경화 과정에서 판단 기준이 된 것이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에 대해서는 또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성전은 기록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사들과 기록되지 않은 사도들의 가르침(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같겠지요. 이런 것은 구전되어 오다가 교부들에 의해 단편, 단편으로 문서화 되었지요.)과 교회 교부들의 (성서) 해석과 신학적 가르침(이것도 크게 보아 성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입니다.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방대한 작업이 아닙니까?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책들 중 성서로 인정받은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대강 말씀드리자면

1.사도들로부터 유래해야만 한다.

사도들로부터 유래해야만 교리의 확실한 출처와 교리의 순수성이 보증되기 때문입니다.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책은 아주 훌륭한 책이지만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사도로부터 유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디다케’도 마찬가지 이유이지요.

단 반드시 직접 사도가 써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책을 참조하세요.)

2. 보편성이다.

교회 전체가 한 문헌을 사도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인정한다면 그 문헌은 정경이다.

3. 영감성이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대충 이런 식으로 주장이라도 해야 프로테스탄트가 존립할 수 있겠지요. 성경에는 프로테스탄트교의 존립근거는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프로테스탄트는 어떤 의미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일단 떨어져나가고 나서 그 떨어져나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톨릭의 어떤 교리들을 임의대로 부정한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그 부정하는 정도나 내용도 조금씩 다르지만 가톹릭과 대립할 때에는 자기들은 각각 모두 옳다는 괴상한 논리를 펴죠. 써 놓으신 내용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혹시 모르고 그러셨다면 공부해 보세요. 혹 프로테스탄트가 아닌 안티시라면 그래도 공부해 보세요. 공부해도 모르시겠으면 정확하게 어떤 게 무슨소린지 왜 모르겠다고 한번에 하나씩 질문 올리시구요. 교회 목사님이나 선배가 나눠준 전단지 또는 이상한 책자에서 다 옮겨 놓으면 너무 많아서 답하기 곤란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이런 글은 왜 올리는건가요?

 

당신들이 잘났으면 가톨릭 신경쓰지 말고

잘난대로 살지

 

참 어이없구려.

 

 

이런글 올릴시간에

예수님 말씀데로

이웃을 사랑하시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질문이의 말씀에 답변을 주실분들 .......

 

성서와 주님의 뜻을 완전히 안다고 자부하신다면 답변을 주시길 바랍니다.

 

허나 완전히 아는자는 없으니 그래도 글을 올리시겠다면 조심하여 답변을 주시길 바랍니다.

 

질문자의 글을 보니 이 형제는 개신교인이면서 침례교에 가까우신것 같은데......

 

이 형제 또한 주님의 믿음을 가진자요 말씀을 듣는자입니다.

 

허나 주님의 뜻을 완전히 아는자는 아니니 다른 형제분들 또한 정말 완전히 주님 뜻을 안다 한다면

 

이분보다 많이 안다면 이분을 더 깨달을수 있게 주님의 영광을 드릴수 있게 할수 있다면 글을 올리시는것에

 

지장이 없다 봅니다.

 

허나 논쟁이나 비난이나 비방의 글을 올리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로써 해서는 안되는 일이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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