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불멸설 관련 질문7)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실화일까요?
-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장19∼31절).
이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주신 비유이시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많이 쓰셨는데,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태복음 13장34절)고 하실 정도였다.
비유란 어떤 사물을 논할 때 다른 사물과 비교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천국이나 영적 사물을 지상의 물질적인 사물들을 들어 비교하여 가르침으로서 이해를 돕는 것이다. 사람들의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 영적인 사물들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3장13∼15절 참조).
비유로 가르칠 때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 비유는 상당한 진리성이 있으나 그 비유 자체는 진리가 아니다. 비유를 해석할 때 그것을 교리의 기초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요 이미 주어진 말씀을 영속적인 이해로 이끌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목적의 비유는 한 번에 다양한 진리를 특별한 장소와 환경의 청중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비유라도 장소와 환경과 청중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거나 곡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비유 자체는 진리나 교리와 연관성이 없고 다만 교훈만 있는 것이다.
혹자는 위의 누가복음 16장19∼31절의 이야기가 사후의 상태를 묘사한 실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실제적인 것이라면 거기에 표현된 모든 사실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그 내용들을 아래와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1) 사후의 즉각적인 보상
이 이야기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즉시 심판을 받아서 각각 상급을 받은 것으로 표현되었다. 성경은 사람이 죽자 즉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요 심판은 세상 끝에 있다(마태복음 13장39-43절; 요한복음 12장48절; 사도행전 17장31절, 24장25절; 베드로후서 2장4절,9절 및 3장7절; 유다서 1장6절)고 증거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즉시 낙원과 음부에 갔으니 성경의 진리와 모순된다.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2) 낙원과 음부와의 거리
낙원과 음부 사이의 거리가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있을 만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이렇게 가까워 지옥불에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이라 할 수 있을까?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요한계시록 21장4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65장17절)고 하였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3) 마귀가 없는 지옥불의 심판
부자가 음부의 고통에서 신음하면서 세상에 살고 있는 다섯 형제들이 회개하여 음부로 오지 않게 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성경은 지옥불에 죄의 장본인인 마귀가 악인과 함께 불의 심판을 받고 소멸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요한계시록 20장10절). 부자를 범죄 하도록 미혹한 마귀는 부자의 다섯 형제들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
즉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베소서 2장2절)으로서 살아 있는데, 사단에게 미혹 당한 부자만 음부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일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4) 음부에 있는 부자의 육체
음부에 있는 부자의 모습, 즉 눈, 손, 혀에 대한 모습이 나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누가복음 24장39절)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실제적인 몸이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만약 실제 사건이라면 죽은 자의 영혼에 무슨 살과 뼈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5)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
거지 “나사로”는 천국이 아닌 “아브라함의 품”에 갔다. 아브라함의 품이 모든 거지들이 들어갈 만큼 그렇게 넓을까? 아브라함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천국과 지옥에 나타난 몸, 혀, 눈, 손가락과 부활 때에 갖게 되는 영광의 몸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의 거리와, 또 부부가 갈라져 있듯이 가족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라면 그 천국도 지옥이 아닐런지? 그 두 장소 사이의 거리가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혀를 서늘하게 해 줄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라면, 가족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졌을 경우 아브라함의 품도 생지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6)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
이 비유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선민 의식에 사로잡혔던 유대인들의 교만심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누가복음 3장8∼9절).
7) 재물과 구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사상을 비판하신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요함이 영적 부요함의 증거로서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가난한 자들은 저주를 받았다고 믿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부요나 가난함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15절). 즉 내세의 구원은 현세의 믿음에 달려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8) 아브라함과 나사로
비유 가운데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한 일이 없다. 이 이야기 가운데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특별한 경우로써 당시 유대인들이 나사로를 부활시킨 사실을 보고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는 대신 자신들의 이기심과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해할 것이며, 주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도 믿지 않을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증거 하신 것이다.
9) 당시의 민속 설화
이 비유의 출처는 당시 유대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집트의 민속 설화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옮긴 이야기인데 시-오시리스(Si-osiris)라는 사람이 사후에 지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이집트 민속 설화가 유대판으로 변형되었다. 바르 마잔(Bar Majan)이라는 한 부자 세리와 한 가난한 서기관이 죽어 장사되었는데, 이 서기관의 친구가 꿈 가운데서 이 두 사람의 형편을 보았다는 것이다. 가난했던 서기관은 광활한 낙원을 거닐고 있었고 부자 세리는 냇가에서 있었는데 목이 말라 애쓰면서 물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당시 민화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의 죄악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들의 죄악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비유이지 사람의 사후의 상태를 묘사한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끝.
첨언 : 다음 마지막 8회차에서는 “영원한 지옥은 과연 존재할까요?”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 교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현대진리연합운동(네이버에서 ‘현대진리연합운동’을 검색하면 교회 홈피 나타남)
⦿ 연락 : 다음(다음 ⇒ 카페 ⇒ 성경예언연구회)과 같은 순서로 입장하시면 핸드폰 번호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 번호로 주소를 남겨놓으시거나 연락주시면 하늘 문으로 인도하는 책자들을 무료 배송합니다.
※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장19∼31절).
이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주신 비유이시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많이 쓰셨는데,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태복음 13장34절)고 하실 정도였다.
비유란 어떤 사물을 논할 때 다른 사물과 비교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천국이나 영적 사물을 지상의 물질적인 사물들을 들어 비교하여 가르침으로서 이해를 돕는 것이다. 사람들의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 영적인 사물들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3장13∼15절 참조).
비유로 가르칠 때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 비유는 상당한 진리성이 있으나 그 비유 자체는 진리가 아니다. 비유를 해석할 때 그것을 교리의 기초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요 이미 주어진 말씀을 영속적인 이해로 이끌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목적의 비유는 한 번에 다양한 진리를 특별한 장소와 환경의 청중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비유라도 장소와 환경과 청중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거나 곡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비유 자체는 진리나 교리와 연관성이 없고 다만 교훈만 있는 것이다.
혹자는 위의 누가복음 16장19∼31절의 이야기가 사후의 상태를 묘사한 실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실제적인 것이라면 거기에 표현된 모든 사실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그 내용들을 아래와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1) 사후의 즉각적인 보상
이 이야기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즉시 심판을 받아서 각각 상급을 받은 것으로 표현되었다. 성경은 사람이 죽자 즉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요 심판은 세상 끝에 있다(마태복음 13장39-43절; 요한복음 12장48절; 사도행전 17장31절, 24장25절; 베드로후서 2장4절,9절 및 3장7절; 유다서 1장6절)고 증거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즉시 낙원과 음부에 갔으니 성경의 진리와 모순된다.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2) 낙원과 음부와의 거리
낙원과 음부 사이의 거리가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있을 만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이렇게 가까워 지옥불에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이라 할 수 있을까?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요한계시록 21장4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65장17절)고 하였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3) 마귀가 없는 지옥불의 심판
부자가 음부의 고통에서 신음하면서 세상에 살고 있는 다섯 형제들이 회개하여 음부로 오지 않게 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성경은 지옥불에 죄의 장본인인 마귀가 악인과 함께 불의 심판을 받고 소멸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요한계시록 20장10절). 부자를 범죄 하도록 미혹한 마귀는 부자의 다섯 형제들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
즉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베소서 2장2절)으로서 살아 있는데, 사단에게 미혹 당한 부자만 음부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일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4) 음부에 있는 부자의 육체
음부에 있는 부자의 모습, 즉 눈, 손, 혀에 대한 모습이 나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누가복음 24장39절)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실제적인 몸이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만약 실제 사건이라면 죽은 자의 영혼에 무슨 살과 뼈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5)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
거지 “나사로”는 천국이 아닌 “아브라함의 품”에 갔다. 아브라함의 품이 모든 거지들이 들어갈 만큼 그렇게 넓을까? 아브라함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천국과 지옥에 나타난 몸, 혀, 눈, 손가락과 부활 때에 갖게 되는 영광의 몸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의 거리와, 또 부부가 갈라져 있듯이 가족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라면 그 천국도 지옥이 아닐런지? 그 두 장소 사이의 거리가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혀를 서늘하게 해 줄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라면, 가족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졌을 경우 아브라함의 품도 생지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비유인 것이다.
6)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
이 비유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선민 의식에 사로잡혔던 유대인들의 교만심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누가복음 3장8∼9절).
7) 재물과 구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사상을 비판하신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요함이 영적 부요함의 증거로서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가난한 자들은 저주를 받았다고 믿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부요나 가난함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15절). 즉 내세의 구원은 현세의 믿음에 달려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8) 아브라함과 나사로
비유 가운데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한 일이 없다. 이 이야기 가운데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특별한 경우로써 당시 유대인들이 나사로를 부활시킨 사실을 보고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는 대신 자신들의 이기심과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해할 것이며, 주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도 믿지 않을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증거 하신 것이다.
9) 당시의 민속 설화
이 비유의 출처는 당시 유대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집트의 민속 설화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옮긴 이야기인데 시-오시리스(Si-osiris)라는 사람이 사후에 지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이집트 민속 설화가 유대판으로 변형되었다. 바르 마잔(Bar Majan)이라는 한 부자 세리와 한 가난한 서기관이 죽어 장사되었는데, 이 서기관의 친구가 꿈 가운데서 이 두 사람의 형편을 보았다는 것이다. 가난했던 서기관은 광활한 낙원을 거닐고 있었고 부자 세리는 냇가에서 있었는데 목이 말라 애쓰면서 물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당시 민화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의 죄악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들의 죄악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비유이지 사람의 사후의 상태를 묘사한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끝.
첨언 : 다음 마지막 8회차에서는 “영원한 지옥은 과연 존재할까요?”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 교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현대진리연합운동(네이버에서 ‘현대진리연합운동’을 검색하면 교회 홈피 나타남)
⦿ 연락 : 다음(다음 ⇒ 카페 ⇒ 성경예언연구회)과 같은 순서로 입장하시면 핸드폰 번호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 번호로 주소를 남겨놓으시거나 연락주시면 하늘 문으로 인도하는 책자들을 무료 배송합니다.
※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