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작성일 2017.12.2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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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는 기독교 신론의 핵심적 개념으로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세 인격, 3Persons, 세 분)로 존재하지만, 본질(essence)은 한 하나님이시라는 교리이다.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는 신학의 문제이다. 삼위일체란 삼위와 일체라는 뜻의 합성어다. 신학이 바로 서야 새 역사를 이룰 수 있다.

성경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삼위가 인격적으로 각각 존재하시며 신성은 똑같으나 권능이나 서열은 다르다. 예를 들어 태양이나 달과 별은 본질이 빛이므로 똑같으나 밝기의 등급은 다른 것과 같다.
 

창세기 1: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뜻은 무엇일까?
 

아담과 하와와 후손은 본질상 똑같은 사람이지만 서열상으로는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왔고 아담과 하와에게서 후손이 나왔으므로 가정은 창조의 순서가 먼저인 남편 아내 자녀 순이 된다.

예수께서도 아버지는 농부시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교회)는 가지라고 하시므로 능력이 다르다고 하셨다.

머리라는 뜻은 권위가 높고 먼저 계신분을 말한다. 머리는 먼저 낳았다는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먼저 스스로 계셨고 그 다음은 육체가 없이 말씀으로 계셨던 예수께서 마리아의 육신을 입고 성령으로 태어나셨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 오셔서 교회가 탄생했다.
아버지에게서 예수그리스도가 발출(발현)하셨고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성령이 발출하셨으므로 권세와 서열이 아버지, 아들,성령순이다

 

고린도전서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성부 하나님은 본체와 말씀과 성령으로 일체시고 성자 예수님도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부활체를 갖고 계신 일체시고 성도들도 세례와 성찬을 받은 육체 속에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일체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삼위일체 교리이다.

이 교의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되었으며, 451년 켈케톤 공의회에서 추인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식 교의로 확립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수로만 풀 수가 없다. 단수로만 풀려면 죽을 때 까지 풀어도 안 풀리고 그냥 믿으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교리가 된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인데 머리와 몸의 관계로 풀어야 한다. 머리와 몸의 본질은 같으나 관계에 있어서는 일체이면서도 동등관계가 아니고 종속관계이다. 머리는 몸을 사랑하고 지시하고 몸은 머리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이다.

머리와 몸이 동등하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다는 말과 같다. 그보다 큰 죄는 없다. 동등하다면 순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에 있어서 동등을 주장하는 것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하다가 쫓겨났고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 하나님 과 동등하게 된다고 속여 선악과를 먹게 하고 죄를 짓게 하여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했다. 오늘날 학교에서 남녀동등 교육으로 사회(가정)를 무질서하게 한 결과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므로 결혼을 회피하게 되고 출산율이 저하되어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동등이 아니라 주종이다.
 

에베소서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관계에 있어서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겸손하게 낮아지셨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본질은 같다. 하나님을 빛으로 설명한다면 하나님은 빛이시고 예수님도 빛이시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교회)도 빛이다. 하나님은 해(시편 84:11)와 같은 분이시고 예수님은 달(요한계시록 22:16 요한복음 1:9)과 같은 분이시고 성도들(교회)은 별(마태복음 5:14, 데살로니가전서 5:5)과 같은 존재이다. 동등이란 단어는 서열이란 뜻이 내포된 말인데 신성이 같다고 해야 맞는데 동등하다고 하므로 서열상 평등한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삼위일체가 동등하다고 할 때는 신성이 동등하다는 뜻인데 마치 아담 하와 자녀 삼위일체가 사람이라는 면에서 동등하다는 뜻이지 서열상 동등하다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동등하다고 하면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용어선택을 잘 못한 것이다. 동등이라는 말 보다는 본질이 같다고 해야 맞는데 동등하다고 하므로 서열상 평등하다는 오해를 하게된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도 동등하다고 하면 불효자가 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등하다고 가르친다면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가 된다. 성령도 아버지의 영으로 영적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분인데 성령과 아버지가 동등하다고 가르치면 오늘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뜻이니 하나님을 모독 하는 일이 된다. 마치 아버지 속에 있는 씨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남녀 동등이라는 말도 서열상 같다는 뜻이 아니고 여자의 머리가 남자이고 남자의 권위아래 있다는 뜻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든지 머리를 기르든지 하라고 하셨고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셨다.
 

고린도전서 14: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안수 할 때도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므로 안수 할 수 있으나 몸인 여자가 머리인 남자에게 안수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것은 마치 몸인 남자가 머리이신 예수님을 안수하는것과 같고 몸인 예수께서 머리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안수하는 것과 같은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첫째, 성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신명기 6장 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여기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신가 단수로서 오직 한 분뿐이시라면 유대교의 유일신이나 알라를 믿는 모슬렘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은 단수인 동시에 복수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도 단수이면서 복수이다. 백조개의 세포가 모여 한 사람이 되는 원리와 같다.

본체이신 하나님은 성령과 말씀이시다.

요한계시록 21:22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바로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성 안에 성전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신령한 육체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4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다.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21 그러나 예수는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성령으로 질서를 세우셨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실 때도 성령이 함께 하시어 잉태 시키셨다.

세례를 받으실 때도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

하나님과 성령은 일체이시다. 하나님도 영이시고 성령도 영이시다. 그런고로 아버지와 성령은 일체시다. 또한 말씀을 듣고 거듭날때도 성령이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도 통달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사람의 몸을 성전 삼을 때만 비로소 위격으로서 존재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복수형이다.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백 이십 문도에게 성령이 각자 각자에게 임하셨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가 된다. 자녀가 성장하면 자녀를 낳을 수 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만 들었을 때는 능력이 별로 없었으나 성령이 임하시자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다.

 

둘째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도 단수형 복수시다. 오직 예수 한 분 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비 성경적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한 분이시지만 말씀이신 예수님은 복수형으로서 불신자라도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또는 구세주로 고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은 하나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항상 보혜사 성령이 임하신다.

모든 말씀의 근원은 하나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예수 그리스도에서 성도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마치 태양이 아무리 많은 빛을 달이나 별에게 전달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말씀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와 성도들에게 나눠 줘도 모자람이 없고 영원하시다.

 

셋째로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도 단수가 아니고 단수형 복수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한 성령이 120명의 성도들 각자 속에 들어가 새로운 인격체가 되었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거룩한 무리로서 성부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로서 성부와 하나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섬기는 신부로서 하나이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설명할 때 남편과 아내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였다. 이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모든 영의 시작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도들도 하나님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제자들이 안수 할 때 말씀을 선포할 때 듣고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이시다. 아담은 단수형 복수로서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 안에 하나인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도 단수형 복수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하나이다. 왜냐하면 주는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이기 때문이다.

 

엡 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그런고로 삼위일체의 정확한 표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는 삼위일체이다라고 해야 바른 설명이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 22절에서도 밝히 말씀 하시기를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교회)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하심으로 확증하셨다.

유대교는 유일하신 단수이신 한 분 하나님만 섬기고 기독교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개념이라면 유대교와 다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을 단수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스스로 계신 분이므로 제일 먼저 계신 분이시고 예수님은 태초 전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계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창조하셨고 2천여 년 전에 성령으로 마리아의 육신을 입고 태어 나셨고 성도는 오순절 성령이 백 이십 문도에게 내리심으로 그 곳에 교회가 탄생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을 부인하면 이단이다. 하나님은 본체와 말씀과 성령이시고 예수님도 부활하신 신령한 육체와 말씀과 성령이시고 교회 즉 성도들도 세례와 성찬을 받은 육체와 말씀과 성령이시므로 삼위가 일체가 되신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못 쓰게 하고 하나님 삼위일체라고 하도록 법으로 통과시켰다.

개탄스럽다. 세상 말세가 되니 마귀가 교회 내에 침투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용어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가 없다면 세상창조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도 세상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주가 곧 아버지시다.

기독교인들 중에 삼위일체를 정확히 해석하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못 봤다. 오늘 나는 그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다.

삼위일체라는 말의 뜻은 성부하나님 속에 본체와 말씀과 성령이 일체로 계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일체이다.

본체의 말씀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육체와 하나 되게 하여 이천여년 전에 태어나 성육신하신 분이 예수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어주신 것이다.

예수님도 본체(부활체)와 말씀과 성령으로 삼위일체시다. 원래부터 말씀이셨고 하나님이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셨다.

성령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50일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문도들 각자 각자 속에 임재하게 하여 교회가 탄생되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지체)이다. 교회도 삼위일체이다. 교회의 구성원은 성도들인데 성도들 각자 각자가 삼위일체다. 세례(침례)받은 장차 부활체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고 성령으로 거듭 났으므로 삼위일체가 된 것이다.

아버지 삼위일체 아들 예수님 삼위일체 교회  삼위일체가 모두 아버지와 하나이다.

모든 시작은 아버지이신데 아버지는 머리가 되신다. 머리되신 아버지 하나님이 스스로 먼저 계셨고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낳으셨다. 예수님이 나시기 전에는 예수라는 이름은 없었고 하나님 말씀이셨다.

오순절 날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과 제자들도 성령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녀들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우주의 창조자시고 동, 식물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분이다.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게 한 나라의 사람들은 전부 고아가 된 느낌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 예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심으로 맘껏 부르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가 된 성도들은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직접 아버지께 기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제자들과 성도(양)의 관계를 구분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목자(목사, 신부)의 인도를 따라야 꼴(말씀, 성찬, 안수의식 )을 먹고 자라게 된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선생이고 배우는 자가 제자다. 예수께서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고 서열을 정해주셨다. 아버지는 자녀를 낳고 가르친다. 자녀는 절대 아버지 없이 존재불가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은 아담(모든 인간)의 아버지시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전하셨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이 제자에게 전수하고 전수해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배우지 않고는 절대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이다.

기독교가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하나가 되지 못할까? 그것은 하나님을 바로알지 못해서 그렇다.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영원히 풀 수 없도록 만들어진 용어가 이 말이다. 천 칠백여년 동안 이 용어 하나 때문에 수많은 이단싸움이 생겼다.

이런 용어를 만들어 공회의에서 확정해놓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골치 아픈 용어가 삼위일체라는 표현이다. 셋이 하나다는 영원한 숙제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단수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없다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가르친다.

그 결과 하나로 단합은 최고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삼위일체라고 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크리스천들 대부분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혼동하고 있거나 하나님과 성령은 동등하므로 아버지와 자녀가 동격이라고 생각한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다 라고 말씀한 적은 없다. 크리스천들 백이면 백 다 다르게 제각각 해석 하는 게 현실이다.

신앙 선배들의 애매모호한 가르침 때문에 원수가 되어 서로 이단이라고 전쟁까지 벌여 죽이고 죽는 철천지원수가 된 것이다. 아예 삼위라는 말을 빼고 성부 성자와 교회는 일체다라고 했다면 큰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나팔을 정확히 불어야 똑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기도하고 연구하며 일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ㅇ룡 박사가 풀지 못하고 고뇌하시다 소천 하셨다는 아들 박ㅇ론 박사님의 간증을 듣고 나도 이 문제를 풀려고 결심한지 어언3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풀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수수께끼같은 비밀도 알고 나면 간단한 것이다.

천칠백여 년 동안 풀지 못한 비밀을 명확하게 풀게 된 것만으로 교회에 보탬이 된 것 같아 이제는 순교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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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나 예수보다 우월하신가?
예수께서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것은 그분이 어떤 면으로도—능력 면으로나, 지식 면으로나, 연령 면으로—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시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존재한 모든 기간에, 그분의 말과 행실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월한 분이며,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보다 작은 분입니다.
하나님과 구별되는 예수
예수께서는 거듭해서 자신이 하나님과는 별개의 피조물이라는 점과 자신 위에는 하나님 곧 자신이 숭배하는 하나님,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점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곧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그분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 17:3; 사체로는 본 책자에서.) 요한 복음 20:17에서, 그분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동번역) 고린도 후서 1:3에서 사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 아버지[시로다]”라는 말로 그 관계를 확증합니다. 예수에게는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예수는 동시에 하나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I 고린토 8:6, 공동번역) 사도 바울은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선택된 천사들”을 언급하면서 구별됨을 나타냈습니다. (I 디모테오 5:21, 공동번역) 바울이 예수와 천사들을 하늘에서 서로 구별되는 존재로 말하는 것처럼, 예수와 하나님 역시 구별됩니다.
요한 복음 8:17, 18에 있는 예수의 말씀 역시 의미 심장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이 성구에서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구별된 두 개체임을 나타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참으로 두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더 나아가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과는 별개의 존재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마르코 10:18, 공동번역)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무도, 심지어 예수 자신도 하나님만큼 선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와는 구별되게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복종하는 종
예수께서는 거듭해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요한 5:19, 공동번역)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한 6:38, 39)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한 7:16) 보낸 이가 보냄을 받은 이보다 더 우월하지 않습니까?
그 관계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의 예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포도원 주인에 비하셨습니다. 주인은 유대인 교직자를 상징하는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타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을 때, 농부들은 종을 때려서 빈손으로 쫓아 보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번째 종을 그리고 나중에는 세번째 종을 보냈지만, 모두 같은 취급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주인은 “내 사랑하는 아들[예수]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습니다. (누가 20:9-16) 그런 식으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신의 입장을, 아버지가 복종하는 아들을 보내는 것으로 예시하셨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언제나 그분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종하는 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기름부어 그리스도로 삼으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에 대하여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신 종 예수의 이름으로 ··· 표징과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사도 4:23, 24, 27, 30, 공동번역.
하나님은 어느 때나 우월하시다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실 바로 그 무렵,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가 나서 “이는 내 아들, 사랑하는 자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3:16, 17, 신세)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신의 아들이고, 자신이 자신을 승인하였으며, 자신이 자신을 보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더 우월한 분인 자신이, 앞에 놓인 일을 위하여 보다 작은 자인 아들 예수를 승인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주[여호와, 신세]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심이라]”하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우월성을 지적하셨습니다. (누가 4:18)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더 우월한 분이 아직 권위를 가지지 않은 누군가에게 권위 혹은 사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더 우월하신 분임이 분명합니다. 그분은 예수에게 기름을 부으시면서, 예수에게 전에는 없던 권위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께서 그분의 왕국에 임하실 때, 자기 아들들을 하나는 예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우월성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즉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 20:23, 공동번역) 만약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었다면, 그 자리를 주는 것은 예수의 소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자리를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를 주는 것은 하나님 소관이었으며,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자신의 기도는 그분이 열등한 지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예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직전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자신보다 우월한 분이 누구인가를 나타내셨습니다. (누가 22:42) 그분은 누구에게 기도하셨습니까? 자신의 일부에게 기도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인 누군가에게, 즉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 곧 자신의 뜻보다 우월한 뜻을 가지고 계시며 자신의 뜻과 다를 수 있는 분, ‘이 잔을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분에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후, 예수께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마르코 15:34,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부르짖으셨습니까? 자신에게 혹은 자신의 일부에게 부르짖으셨습니까? 확실히, “나의 하느님”이라는 외침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로부터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누구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까? 자신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아버지여 내 영혼[영, 신세]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23:46)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영을 아버지께 부탁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죽으신 후, 사흘에 걸쳐서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박국 1:12 (신세)의 “오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분이여, 당신은 죽지 않는 분입니다”라는 말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성서는 예수께서 실제로 죽으셨으며 무덤 속에서 의식이 없었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켰습니까? 그분이 참으로 죽었다면, 그분은 자신을 부활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분이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분이 죽은 체한 것으로는 아담의 죄에 대한 대속의 값을 치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참으로 죽으심으로써 분명히 그 값을 온전히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사도 2:24) 우월한 분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다 작은 자인 자신의 종,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부활시키는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었음을 시사합니까? 사도들과 예언자 엘리야 및 엘리사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 예수 및 사도들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심으로써, 자신이 그들을 후원하고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그들 중 누구도 복수 형태의 지고의 신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예수께서는 이 사물의 제도의 끝에 관한 예언을 하실 때,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마르코 13:32, 공동번역) 만약 예수께서 지고의 신의 일부인 동등한 아들이었다면, 그분은 아버지께서 아시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히브리서 5:8에서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는 글을 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 모두를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께서 결코 배울 필요가 없는 것—순종—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누구에게도 순종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부활되어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아시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서 마지막 책의 이러한 첫마디를 유의하십시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 그리스도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묵시 1:1, 공동번역) 만약 예수 자신이 지고의 신의 일부라면, 그 지고의 신의 다른 부분—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셨으므로, 예수께서도 확실히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계속 종속된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존재하시기 전에, 그리고 땅에 계셨을 때에도,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부활되신 후에도, 계속해서 종속되는 둘째 자리에 계십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해 말하면서,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유대인 산헤드린에서 “[하나님이] 그[예수]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5:31)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빌립보 2:9)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이었다면, 어떻게 높임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어떻게 예수께서는 이전에 누렸던 것보다 더 높은 지위로 올려질 수 있었겠습니까? 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그분은 이미 삼위일체의 일부로서 높여진 분이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높임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과 동등했다면, 그분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그 하늘”로 들어가셨다고 말하였습니다. (히브리 9:24, 공동번역) 우리가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별개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순교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7:55) 분명히, 스데반은 별개의 두 개체—결코 성령이나 지고의 삼위일체 신이 아님—를 보았습니다.
계시록 4:8에서 5:7까지의 기록에는,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모습이 나타나지만, 예수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기록은 하늘의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과는 별개의 존재임을 알려 줍니다.
앞서 살펴본 내용과 일치하게, 영국 맨체스터의 「존 라일랜즈 도서관 편람」(Bulletin of the John Rylands Library)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부활 후의 하늘 생명에서도, 예수께서는 땅에서의 생애에서 지상(地上)의 예수로서 개인적 독자성을 지녔던 것처럼, 어느 모로 보나 하느님이라는 인격체와 구별되는 별개의 독자성을 지닌 분으로 묘사된다. 그분은 하느님과 나란히 그리고 하느님과 비교되어, 사실상, 천사들과 마찬가지로—하느님의 아들로서 천사들과 다른 범주에 속하고 천사들보다 훨씬 높은 계급이기는 하지만—하느님의 하늘 궁정에 있는 하늘의 또 다른 존재로 나타난다.”—비교 빌립보 2:11.
그 「편람」은 또한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지만, 천상(天上)의 그리스도로서 그분의 생명과 기능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은 그분이 신성한 신분에 있어서 하느님 자신과 동등한 수준이며 온전한 하느님임을 뜻하거나 암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분의 하늘 위격(位格)과 직무에 관한 신약의 묘사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별개의 그리고 하느님께 종속된 인물을 보게 된다.”
하늘에서의 영원한 장래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별개의 종속된, 종이 될 것입니다. 성서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느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I 고린토 15:24, 28,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일이 없다
성서의 견해는 분명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예수와 별개의 인격체일뿐 아니라, 어느 때나 예수보다 우월한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자신을 별개의 보다 작은, 하나님의 겸손한 종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성서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고린도 전 11:3) 그리고 이런 이유로 예수 자신도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28, 공동번역.
사실상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며 결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그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라일랜즈 「편람」에서 이렇게 기술하는 바와 같습니다. “지난 삼십년 내지 사십년에 걸친 신약 연구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수의 저명한 신약 학자들이, 예수는 ··· 결코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편람」은 또한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에게] 그리스도, 인자, 하느님의 아들 및 주와 같은 명예로운 칭호를 부여하였을 때, 이 칭호들은 그분이 하느님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느님의 일을 하였음을 나타내는 방법이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심지어 일부 종교 학자들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상이 성서 전체의 증거와 반대된다는 점을 시인합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월한 분이며, 예수는 종속된 종입니다.

‘신약 연구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수의 학자들이, 예수는 결코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존 라일랜즈 도서관 편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한 6:38, 39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
독자는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믿습니까? 그리스도교국 내의 대부분의 사람은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아무튼, 삼위일체는 여러 세기 동안 교회의 중심 교리였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문은 엄연히 존재하며, 최근에는 일부 삼위일체 지지자들까지 논쟁에 부채질을 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제목이 단지 일시적 관심사 이상의 것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장래 전체는 하나님의 참다운 본성을 아는 것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삼위일체 논쟁의 뿌리를 캐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직접 조사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요한 17:3, 공동번역.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삼위일체 가르침은 지고(至高)의 신 안에 세 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있지만, 셋이 합쳐서 단지 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셋이 모두 동등하고, 전능하며, 창조되지 않았고, 지고의 신 안에 영원히 존재한다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거짓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며 전능한 별개의 존재로 비길 데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의 예수가,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별개의 영자(靈者)였으며, 그런 이유로 예수에게는 시작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떤 의미로도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했던 적이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께 복종해 오셨고 지금도 여전히 복종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또한 성신이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그분의 활동력이라고 믿습니다.
삼위일체 지지자들은 그 교리가 종교 전통뿐 아니라 성서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삼위일체 교리 비평가들은 그것이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하며, 한 역사 자료는 “[삼위일체가] 전적으로 이교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현대 그리스도교 내의 이교 사상」(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
만약 삼위일체가 참이라면, 예수께서 지고의 신의 일부로서 하나님과 동등했던 적이 결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를 격하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거짓이라면, 누군가를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일이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나쁜 일입니다. 삼위일체가 거짓이라면, 「가톨릭교」(Catholicism)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이 믿음을 온전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의 믿음은 이것이다. 즉 우리는 삼위일체의 한 하느님을 숭배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는 일입니다.
따라서, 독자에게는 삼위일체에 대한 진리를 알고 싶어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기원과 그것이 참이라는 주장을 조사하기 전에, 이 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란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삼위일체 지지자들은 그 교리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별다른 표시가 없는 한, 성구 인용문은 「성경 전서, 개역 한글판」의 것임
]






























답변 작성자: 장로교인으로 26년 동안의 잘못된 신앙을 과감히 떨쳐 벌고

행복하신 하느님 여호와의 증인으로 개종 함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는 셋 달린 괴물을 만들어 자신들의 하느님이라고 믿는 믿음이

과연 성경적일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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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6:4 하나님은 오직 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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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교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백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쉬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신명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 ··· 4세기 말에 이르러 ··· 삼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후 그대로 유지되었다.”—(1976년판), 마이크로패디아, 제10권, 126면.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위 속의 한 하느님’이란 교리는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체계화되지 않았으며, 확실히 온전하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계화된 바로 이 교리가 처음으로 삼위일체 교리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사도 교부들 간에는 그러한 사고나 관점에 조금이라도 닮은 것조차 전혀 없었다.”—(1967년판), 제14권, 299면.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유대교에서 나온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엄격히 (하느님은 한 분의 인격체라고 믿는) 유일신파였다. 예루살렘에서 니케아에 이른 길은 거의 곧은 길이 아니었다. 4세기의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본성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었다.”—(1956년판), 제27권, 294면 좌단.


「신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좀 더 고대 사람들의 시대에 속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 사상들을 재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합리주의 철학의 삼위일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삼 위격 즉 신성한 세 위가 생겨나게 한 것 같다. ··· 신성한 삼위일체에 대한 이 그리스 철학자[플라톤, 기원전 4세기]의 개념을 ···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M. 라샤트르 편, (파리, 1865-1870년), 제2권, 1467면.


예수회의 존 L. 매켄지는 그의 편저 「성서 사전」(Dictionary of the Bible)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위격들의 본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는 그리스 철학 용어인 ‘위’와 ‘본성’이란 용어로 정의된다. 사실상 그 용어들은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정의는 일부 신학자들이 그러한 용어들과 ‘본질’ 및 ‘품성’과 같은 다른 용어들을 하느님께 그릇되게 적용한 오랜 논쟁의 결과로 생겨났다.”—(뉴욕, 1965년판), 8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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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존재했습니다.

태초에는 하나님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태초에는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만 존재했습니다.

태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었으며, 태초에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뿐이었습니다.

태초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었습니다.

태초에는 이 우주 만물 전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태초에는 이 세상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태초부터 영원히 하나님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만 존재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항상 연결되어 있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항상 조화롭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삼위일체를 정확히 해석하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못 봤다. 오늘 나는 그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다.
삼위일체라는 말의 뜻은 성부하나님 속에 본체와 말씀과 성령이 일체로 계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일체이다."라고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평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든 때에 서로 가장 공평하며 가장 평등합니다.

성령은 성부 및 성자로부터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일이 어떠한 경우에도 없습니다.

성부 안에는 성부만 있으며 다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성부는 한 가지 종류 뿐이며 가장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성부 안에는 이물질이 전혀 없어서 성부 속에는 100% 성부만 존재합니다.

태초부터 영원히 성자와 성령이 성부보다 조금이라도 더 초라한 상태는 0.00000001초도 없을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모두 다 모든 때에 가장 거룩합니다.

성자와 성령은 모든 때에 성부와 똑같이 존귀하며 똑같이 위대합니다.

태초에 성부만 계셨다가 하늘과 땅의 창조가 이루어질 때에 성자와 성령이 생긴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그냥 하나님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존재했던 것이죠.















아래의 사이트에 들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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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중에 삼위 일체를 정확히 해석 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보셨다구요?

당연히 그럴것입니다.

당신의 해석도 잘못 되었습니다.

잘못 되었다고 할수도 없는게.

성경에도 없는 신학적 교리를 만들어 그것을 성경적으로 해석할려니

맞게 해석 할 수가 없는 것이죠.

니케아 회의에서 공표 했다구요?

그 회의가 어떤 회의입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회의이고

바울과 제자들을 핍박하던 유대인 지도자들의 회의 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것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때에 구원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가 성경에 있습니까?

 한국어를 한문으로 표기하면 그렇게 된다구요?

왜? 뭐 때문에 모든 성경은 한글로 읽으면서 그부분만 한문을 고집한답니까?

한글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라고 친절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분 하나님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분인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 시대에 따라 일하심의 역사가 다르셨기에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지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세분 하나님으로 나눠 놓은것입니다.


나는 집에 가면 아빠입니다.

부모님댁에 가면 아들이기도 하구요.

회사에서는 어떠한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위에 언급된 세 사람은 모두 나 입니다.

그런 나를 통일 시키는것은 나의 이름 입니다.

어느곳에 있던지 그 이름으로 나는 구별됩니다.

아버지일때도, 아들일때도, 회사에서도 나의 이름은 언제나 그 이름입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였죠.

많은 교회에서 이 말씀으로 설교를 했을것 같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성경 어디에도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다 라고 말씀한 적은 없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거짓말이 되는것인가요?


한 아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고 번역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예수라고 합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바로 하나님의 이름 "예수" 입니다.

당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믿어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믿어 구원을 받습니까?

당신의 구원주는 성부,성자,성령으로 불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까?


요한복음 17장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내것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것은 다 내것이오니..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거하게 하사...


모든것이 다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생명도 이름도, 진리도 말씀도 하나입니다.

진리가 둘이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진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 말씀, 예수그리스도, 성령, 복음으로 낳은 자녀..

무엇으로 하나가 될수 있을까요?

바로 생명안에서 그 이름으로 하나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 "예수"

아직도 삼위일체와 성부, 성자, 성령을 진리로 알고 따르시겠습니까?

삼위일체를 따르지 않는다고 이단으로 정죄하시겠습니까?

성경은 예수를 알게하기 위해 기록한 책이며

성경은 오직 예수에게 인도하기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책에 씌여진 이론을 따라 예수의 이름을 알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성경에 없는 가르침과 이론 따르지 마세요.

나는 내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이 "예수" 믿으렵니다.

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는 기독교 신론의 핵심적 개념으로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세 인격, 3Persons, 세 분)로 존재하지만, 본질...

여러분이 아시는 삼위일체가 맞습니까?

... 삼위일체/박 용국 목사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는 기독교 신론의 핵심적 개념으로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세 인격, 3Persons, 세 분)로 존재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