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왜 내야하나요?

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왜 내야하나요?

작성일 2017.04.24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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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가면 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왜 내야하나요?
십일조는 왜 내야하는지 알겠는데 주정헌금을 내야하는 성경적 말씀근거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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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냥 나오지 말고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구지 성경적 말씀근거를 대라 하시니
십일조.주정헌금(약정헌금).주일헌금등등 헌금에 관한 모든것이   
저 말씀 하나로 근거가 될수 있기에 말씀드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피(희생)를 헛되이 흘리지도, 먹지도 마십시오. 헌금 "제도" 는 불법입니다.



피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희생'을 말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사람이 가로채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헛된 희생'을 말합니다.


그 희생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나아가는 것이어서 그 피를 사람이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신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의를 관장하는 자들이 그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 제도는 가증한 것이며 불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하여 희생의 규례를 준 것인데 그 규례를 관장하라고 세운 자들이 자기들이 먹을 것을 가져 오게 하는 수단으로 변개하고 그것을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니, 그 공의 관장자를 세우신 하나님께 그 백성들이 드리는 헛된 희생은 드려질 때마다 하나님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공의 관장자들을 폐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가린 본래의 말씀을 다시 드러내시고 그들을 폐하는 것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구약에도 있고 신약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피는 자기를 희생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행위의 율법 아래에서는 그것이 진짜 짐승의 피였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마음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산제사로 드리는 마음의 희생이 곧 그 피입니다.


결국 오늘날 실제 피를 언급하며 규례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사이비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행위의 규례를 말하는 유태인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 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혈을 하면 안된다거나, 헌혈을 하지 않는다거나, 목 졸려 죽은 개고기는 살에 피가 섞여 있으므로 먹으면 안된다거나, 돼지고기는 부정한 짐승이므로 안 먹는다는 등의 모든 것이 마음의 법에 대하여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모아 사회에 돌려보내면 그것은 공의 관장자가 피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죄가 아니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합리화가 악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세상은 부정한 것입니다. 형제든 식구든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그것을 사람 앞에 자랑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피를 헛되이 흘려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 안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선’에 속한 것인 양 회자되고 있기에 따로 구분을 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자기의 희생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림도 되고 사람에게 칭찬도 받겠다는 가증함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선과 악 중에서 악에 속한 행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거쳐 간 부정한 것은 하나님께는 드림이 되지 않으며, 그것을 행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답글을 소개드립니다.


> 피를 먹지 말라는 내용을 보고 헌금에 관하여 묻고자 합니다.


> 물론 헌금을 드리는 성도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 있다고 봅니다.


> 헌금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에 대하여 복음서를 볼 때 혼란이 옵니다.


> 눅11:42-마23:23절에 헌물과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또 이 말씀을 무기로 헌금을 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니


누가 복음의 말씀은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공관복음의 필연성 증명 자료]를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태는 제자 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 마가는 성경을 잘 모르는 이방인, 누가는 이전 모세 율법 관장자, 오늘날로 하면 현재 공의 관장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같은 가르침이 다르게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오류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누구고, 마가는 누구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로만 보시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누가의 말씀은 모세 율법의 관장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현재 모세 율법의 관할 아래 있고 또 모세 율법은 공의 실현 전이므로 아직 효력이 발생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모세율법 하의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위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의 법의 의미는 예수님의 공의 실현으로 인하여 행위의 법에서 마음의 법으로 바뀌게 되면 그 또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정의와 살인의 정의와 간음의 정의 등을 바꾸어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합니다. 모세 율법 아래서는 모세 율법대로 해야 하고, 또 공의 실현 이후에는 행위의 율법은 폐하였으나 언약은 변질될 수 없는 것이므로 바울과 같은 사람은 모세 율법의 관장자였으니 그 언약대로도 행해야 하고 또 마음의 율법대로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 즉 육신으로는 죄 있게 하는 행위의 법, 즉 죄의 법을 따르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른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공의 실현 전에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듣고 하되 그들의 행위는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모세의 행위의 율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죄를 만드는 역할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참되지 않은 하나님의 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헌금을 걷은 것에 대하여는 "그들이 먼저 자원하여 시작한 것이다" 하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헌금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자들이 형제들의 궁핍함을 보고 단지 그 시대 상황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와 같은 실천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에 대하여 바울은 "내 몸에 가시가 있다" 하고 고백을 합니다. 가시란 예수님이 설명을 하셨듯이 "재리"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족하다" 하신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바울의 그같은 형제를 돕는 일은 다소 물질에 대하여 마음을 쓰게 되는 부담이 있지만, 또 사단에 속한 돈에 마음을 두는 것이 전도자로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되기에 "족하다" 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기의 의"의 발현이므로 합당한 것은 아니나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그 마음이 헛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리어 "악을 선을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이 되므로 용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합리화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계시를 직접 받은 자이며, 계시를 직접 받은 자는 "모세를 신으로 삼으신 것"과 같이 신처럼 취급해 주시기 때문에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에 한하여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설명은 드리지 않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동체 생활과 재산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것도 그들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에 의하여 그렇게 한 것이고, 그 사회 상황에 따라서 그것이 바르다고 판단되었으므로 그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나니와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기록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속임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지 그것이 재산을 다 팔아 돈 가져다 내고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의 중요성을 가르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아나니아의 일을 핑계로 헌금을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경우는 그때 상황 그대로도 아니고, 아주 안하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 마치 앵벌이를 하듯이 세상으로 보내져서 돈벌어다가 그 관장자들의 명예욕과 배를 채우게 하니 예수님은 "교인 하나를 얻으면 저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라는 질타를 하신 것이고, 그 질타는 오늘날의 관장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또,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 역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이며, 그때는 행위의 율법이 폐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역시 그 헌금은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행위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합당하게 행위와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되기에 그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성경에는 어디에도 그리스도 이후에 "돈을 가지고 교회에 가져다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리가 모였을 때 돈이 필요하게 되면 회비라는 것을 정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고 자기들의 필요를 따라 추렴하여 모아서 쓰면 되는 것입니다.


> 헌금을 드리면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 것인지 또 말라기서의 십일조에 대한 언급도 부탁합니다.


말라기에 대한 설명은 '선지서의 이해' 게시판에서 '말라기' 해제를 보시면 설명되어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란 숫자의 의미가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한(일) 사람을 택하시고, 계획(십)하신 것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산제사로 드림"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육신을 따라서 갈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돈이라고 여기는 십일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빌미로 하여 공의 관장자들이 돈을 벌어서 가져오게 했고 또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말라기 안에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 말씀 이전에 있는 모든 말씀이 패역한 마음으로 가져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질타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단지 마지막의 한절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것입니다.


위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헌물이나 십일조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으로 삼으라고, 마음이 약하므로 자각할 수 있는 기능으로써의 행위의 율법을 주신 것인데 인생들이 마음은 딴 데 두고 행위만 하니 그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것이며, 성전 문을 닫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한 이것은 폐한 행위의 율법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후의 인생들도 여전히 이 말씀을 가져다가 유물을 거두어들이는 수단으로 쓰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오늘, 성령의 법을 안 우리 역시 이 육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이 사는 수단으로써의 육신의 삶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악을 향한 마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결국 육신의 병에서도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 안에서 앞의 전제가 이러한데 뒤의 말씀만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것이 바로 육신을 살려둘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따라서 가는 이들의 결국은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으로서 본 포도나무에 접 붙은 가지 입장에서 내 가지에서 나를 열매로 맺고, 말씀을 따라감으로 연단 받아 익게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익은 것은 다 내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헌금은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불법"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 한 법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언급된 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하나님을 향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희생, 즉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스데반의 피까지 모두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나 먹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게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마음으로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 차원에서 금식과 베품을 하되, 베품을 받는 상대가 베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또한 금식을 해도 타인이 모르게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아닌, 대가는 하나님께 받겠노라는 마음으로 베풀고 금식하는 희생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희생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처럼 육적인 질서 안에서 "위로" 드리는 것은 그 관장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일 뿐이며, "아래"로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될" 피전도자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이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드림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기 위하여 내 마음의 악을 지우게 하시는 "지혜를 깨달음 받는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마 7: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헌금은 단지 금식처럼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을 위하여 위가 아닌 아래로, 간접이 아닌 "직접" 하고, "알게"가 아니라 "절대로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위 글은 카페 " 갈릴라이아 " 에 있습니다.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많은 성경 말씀이 까페에 풀어져 있습니다.

님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성경책에는 헌금 내라고 기록된 말씀은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대속물로 오시면서 율법이 바뀌고 십일조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상관없이 본인이 알아서 교회에 하시고 싶으시면 하고 하기싫으면 안하시면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주정헌금은 한주일에 얼마씩 헌금을 내겠다고 작정한 후에
그 작정대로 하는 헌금을 의미합니다. (週定, 주일 주, 정할 정)

만약에 예배를 빠져서 헌금을 하지 못했다면
그 다음주에 빠뜨린 헌금까지 다 합쳐서 헌금하라고 만든 제도가 주정헌금입니다.

신자들의 돈을 조금이라도 더 걷기위해서 만든 악습입니다.
왜냐하면 헌금이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작정을 시켜놓고 그 작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또 섹터별로 할당량을 정해놓고 채우도록 하거나 경쟁시키도록 하는 곳도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보(헌금)을 권했습니다.




연보는 재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니 (捐補, 기부할 연, 보충할 보)
헌금을 의미합니다. 

잘사는 신자들이 못사는 신자들을 도와줌으로
서로의 부가 평균화되는 것에 헌금의 참다운 의미가 있습니다.
넉넉한 양식있는 신자가 굶고 있는 신자에게 양식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중에 입장이 역전되면, 갚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헌금은 대형교회를 짓는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역자들이 부자가 되어 외제차타고 대형 아파트에 살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내용 또한 모세의 출애굽에서 일어난 역사인데
그 역사에도 숨겨진 컨셉이 있다는 것이니 평균케하는 헌금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는 것은
많인 거둔 자가 적게 거둔 자에게 나누어주어서 평균케되었기 때문입니다.

재력이 있고 돈의 여유가 있다면 형편이 힘든 신앙의 형제를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헌금의 참된 의미입니다.

초림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예수님 제자들은 생활이 매우 궁핍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악한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전도하다보니 돈버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리아 안디옥을 비롯하여 (행11:27~30)
고린도, 데살로니가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사는 그리스도인들도  (고후9:1~5)
돈을 걷어서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이것이 헌금이라는 개념의 시작이며 또한 헌금의 참된 의미입니다.
십일조는 폐하여진 율법입니다. 십일조를 강요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십일조를 절대로 내면 안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내든 헌금을 내든 자발적으로 내야 하는 것이지 강요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할 때마다, 꼭 인용되는 성경구절이 말라기입니다. (말3:10)




그러나 이 말씀은 패역한 종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
의로운 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말3:10는 직전의 말3:9에 연결된 것이며
말일에 나타날 패역한 이스라엘 12지파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말3:9)



어떤 개인이 십일조를 내지않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가 십일조와 돈을 빼돌리는 도적질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3장을 인용하면서 개인의 십일조를 연결시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말1: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나라 전체가 십일조를 도둑질했다는 것은 
말일에 나타나는 패역한 교회의 치리자들이 십일조를 받아서는
개인의 주머니에 횡령했다는 뜻입니다.

  너희같은 패역한 족속이 세운 나라가 십일조를 정상적으로 사용하여
  횡령하지않고 가난하고 불쌍한 신자들을 도와줌으로 부의 평준화를 이룬다는 것은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복을 산처럼 부어주겠다.
  온전한 십일조를 쌓고 가난한 사람에게 사용한다면 내가 복을 주나 주지않나 시험해봐라.

이러한 반어법적인 말씀이니
말3:10은 십일조를 자신의 주머니에 횡령하는 교회의 치리자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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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십일조, 주일헌금, 수요예배헌금, 부흥회 헌금, 생일감사 헌금, 오순절헌금, 칠칠절헌금, 
    초실절헌금, 심방감사헌금, 금요철야헌금, 구역예배헌금, 범사감사헌금, 결혼감사헌금,
    성탄절헌금, 추수감사절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건축헌금, 돌감사헌금, 출생감사헌금,
    환갑감사헌금, 이사감사헌금, 입학감사헌금, 취직감사헌금, 백일감사헌금, 기타헌금....

        ☜ 이런 수많은 헌금은 평균케한다는 의미의 참다운 연보와 관련이 없으며
           돈을 많이 걷기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사도들은 선교를 직접하지 않으면 선교비용이라도 내라고 했거든요.

여호와는 우주의 프르그래머이며 인간이 되어 온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주는 프로그램입니다.

https://youtu.be/T9AkMpe3MpI

 https://youtu.be/eao0v-_e-cw

https://youtu.be/BDeB68zyBq8

우주는 프로그램이고 우주를 만든 프로그래머가 신입니다. 우리는 지금에서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보고 이 세상도 사실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들과 종교들은 이 진실을 알지도 못 하면서 신은 없다.
믿음일 뿐이다 라고 말했지만 진실은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요? 진화는 구라입니다. 어느 빙신이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몇일도 안되어서 만드는 것을 수십억년을 기다려서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유전학적으로 인류는 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에게서 번성했다는 것이 유전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확률도 훨씬 떨어진 엉성한 진화이론보다는 프로그램 창조이론의 가능성이 높은 시대입니다. 현대의 과학자들도 수십억배가 높다고 합니다. 연구를 시작한지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떨까요? 수십억배라? 아무리 작게 작아도 수십억배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진화? 빅뱅? 그것보다 빛의 세기에 일정한 한계를 발견한 프로그램이론은 태초의 말씀 즉 태초의 정보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DNA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DNA의 AT와 GC결합이 컴퓨터 알고리즘의 2진수와 완전하게 연동된다는 것우 DNA도 인공지능 생체프로그램이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진화는 끝났습니다. 인류가 신께서 만든 태초의 말씀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어떻게 태초의 정보들로써 프로그램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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