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왜 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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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왜 내야하나요?
피(희생)를 헛되이 흘리지도, 먹지도 마십시오. 헌금 "제도" 는 불법입니다.
피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희생'을 말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사람이 가로채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헛된 희생'을 말합니다.
그 희생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나아가는 것이어서 그 피를 사람이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신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의를 관장하는 자들이 그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 제도는 가증한 것이며 불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하여 희생의 규례를 준 것인데 그 규례를 관장하라고 세운 자들이 자기들이 먹을 것을 가져 오게 하는 수단으로 변개하고 그것을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니, 그 공의 관장자를 세우신 하나님께 그 백성들이 드리는 헛된 희생은 드려질 때마다 하나님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공의 관장자들을 폐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가린 본래의 말씀을 다시 드러내시고 그들을 폐하는 것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구약에도 있고 신약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피는 자기를 희생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행위의 율법 아래에서는 그것이 진짜 짐승의 피였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마음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산제사로 드리는 마음의 희생이 곧 그 피입니다.
결국 오늘날 실제 피를 언급하며 규례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사이비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행위의 규례를 말하는 유태인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 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혈을 하면 안된다거나, 헌혈을 하지 않는다거나, 목 졸려 죽은 개고기는 살에 피가 섞여 있으므로 먹으면 안된다거나, 돼지고기는 부정한 짐승이므로 안 먹는다는 등의 모든 것이 마음의 법에 대하여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모아 사회에 돌려보내면 그것은 공의 관장자가 피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죄가 아니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합리화가 악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세상은 부정한 것입니다. 형제든 식구든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그것을 사람 앞에 자랑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피를 헛되이 흘려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 안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선’에 속한 것인 양 회자되고 있기에 따로 구분을 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자기의 희생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림도 되고 사람에게 칭찬도 받겠다는 가증함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선과 악 중에서 악에 속한 행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거쳐 간 부정한 것은 하나님께는 드림이 되지 않으며, 그것을 행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답글을 소개드립니다.
> 피를 먹지 말라는 내용을 보고 헌금에 관하여 묻고자 합니다.
> 물론 헌금을 드리는 성도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 있다고 봅니다.
> 헌금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에 대하여 복음서를 볼 때 혼란이 옵니다.
> 눅11:42-마23:23절에 헌물과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또 이 말씀을 무기로 헌금을 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니
누가 복음의 말씀은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공관복음의 필연성 증명 자료]를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태는 제자 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 마가는 성경을 잘 모르는 이방인, 누가는 이전 모세 율법 관장자, 오늘날로 하면 현재 공의 관장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같은 가르침이 다르게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오류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누구고, 마가는 누구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로만 보시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누가의 말씀은 모세 율법의 관장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현재 모세 율법의 관할 아래 있고 또 모세 율법은 공의 실현 전이므로 아직 효력이 발생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모세율법 하의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위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의 법의 의미는 예수님의 공의 실현으로 인하여 행위의 법에서 마음의 법으로 바뀌게 되면 그 또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정의와 살인의 정의와 간음의 정의 등을 바꾸어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합니다. 모세 율법 아래서는 모세 율법대로 해야 하고, 또 공의 실현 이후에는 행위의 율법은 폐하였으나 언약은 변질될 수 없는 것이므로 바울과 같은 사람은 모세 율법의 관장자였으니 그 언약대로도 행해야 하고 또 마음의 율법대로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 즉 육신으로는 죄 있게 하는 행위의 법, 즉 죄의 법을 따르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른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공의 실현 전에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듣고 하되 그들의 행위는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모세의 행위의 율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죄를 만드는 역할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참되지 않은 하나님의 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헌금을 걷은 것에 대하여는 "그들이 먼저 자원하여 시작한 것이다" 하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헌금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자들이 형제들의 궁핍함을 보고 단지 그 시대 상황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와 같은 실천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에 대하여 바울은 "내 몸에 가시가 있다" 하고 고백을 합니다. 가시란 예수님이 설명을 하셨듯이 "재리"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족하다" 하신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바울의 그같은 형제를 돕는 일은 다소 물질에 대하여 마음을 쓰게 되는 부담이 있지만, 또 사단에 속한 돈에 마음을 두는 것이 전도자로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되기에 "족하다" 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기의 의"의 발현이므로 합당한 것은 아니나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그 마음이 헛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리어 "악을 선을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이 되므로 용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합리화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계시를 직접 받은 자이며, 계시를 직접 받은 자는 "모세를 신으로 삼으신 것"과 같이 신처럼 취급해 주시기 때문에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에 한하여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설명은 드리지 않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동체 생활과 재산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것도 그들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에 의하여 그렇게 한 것이고, 그 사회 상황에 따라서 그것이 바르다고 판단되었으므로 그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나니와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기록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속임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지 그것이 재산을 다 팔아 돈 가져다 내고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의 중요성을 가르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아나니아의 일을 핑계로 헌금을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경우는 그때 상황 그대로도 아니고, 아주 안하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 마치 앵벌이를 하듯이 세상으로 보내져서 돈벌어다가 그 관장자들의 명예욕과 배를 채우게 하니 예수님은 "교인 하나를 얻으면 저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라는 질타를 하신 것이고, 그 질타는 오늘날의 관장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또,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 역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이며, 그때는 행위의 율법이 폐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역시 그 헌금은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행위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합당하게 행위와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되기에 그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성경에는 어디에도 그리스도 이후에 "돈을 가지고 교회에 가져다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리가 모였을 때 돈이 필요하게 되면 회비라는 것을 정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고 자기들의 필요를 따라 추렴하여 모아서 쓰면 되는 것입니다.
> 헌금을 드리면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 것인지 또 말라기서의 십일조에 대한 언급도 부탁합니다.
말라기에 대한 설명은 '선지서의 이해' 게시판에서 '말라기' 해제를 보시면 설명되어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란 숫자의 의미가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한(일) 사람을 택하시고, 계획(십)하신 것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산제사로 드림"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육신을 따라서 갈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돈이라고 여기는 십일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빌미로 하여 공의 관장자들이 돈을 벌어서 가져오게 했고 또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말라기 안에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 말씀 이전에 있는 모든 말씀이 패역한 마음으로 가져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질타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단지 마지막의 한절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것입니다.
위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헌물이나 십일조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으로 삼으라고, 마음이 약하므로 자각할 수 있는 기능으로써의 행위의 율법을 주신 것인데 인생들이 마음은 딴 데 두고 행위만 하니 그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것이며, 성전 문을 닫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한 이것은 폐한 행위의 율법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후의 인생들도 여전히 이 말씀을 가져다가 유물을 거두어들이는 수단으로 쓰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오늘, 성령의 법을 안 우리 역시 이 육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이 사는 수단으로써의 육신의 삶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악을 향한 마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결국 육신의 병에서도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 안에서 앞의 전제가 이러한데 뒤의 말씀만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것이 바로 육신을 살려둘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따라서 가는 이들의 결국은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으로서 본 포도나무에 접 붙은 가지 입장에서 내 가지에서 나를 열매로 맺고, 말씀을 따라감으로 연단 받아 익게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익은 것은 다 내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헌금은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불법"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 한 법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언급된 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하나님을 향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희생, 즉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스데반의 피까지 모두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나 먹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게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마음으로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 차원에서 금식과 베품을 하되, 베품을 받는 상대가 베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또한 금식을 해도 타인이 모르게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아닌, 대가는 하나님께 받겠노라는 마음으로 베풀고 금식하는 희생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희생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처럼 육적인 질서 안에서 "위로" 드리는 것은 그 관장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일 뿐이며, "아래"로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될" 피전도자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이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드림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기 위하여 내 마음의 악을 지우게 하시는 "지혜를 깨달음 받는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마 7: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헌금은 단지 금식처럼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을 위하여 위가 아닌 아래로, 간접이 아닌 "직접" 하고, "알게"가 아니라 "절대로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위 글은 카페 " 갈릴라이아 " 에 있습니다.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많은 성경 말씀이 까페에 풀어져 있습니다.
님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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