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왜 지키나요?

안식일을 왜 지키나요?

작성일 2011.06.28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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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키는 분들만 답변 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여러분은 왜 안식일을 지키고 잇나요?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계시나요?

 

이 두가지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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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대한 통찰

  

개신교 단체들은 성경에 명시된 안식일 교리가 구약의 율법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안식일교리가 성서에 위배되는 것인지 아니면 개신교단체들이 일요일예배를 드리고 있기에 상대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지키는 안식일예배를 배격하는 것인지 규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안식일 교리의 근거 내지는 타당성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 서시매]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three Sabbath)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위 내용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영원한 안식(히 4:9)에 들어갈 수 있는 규례로 안식일을 행하신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규례(規例)는 ‘일정한 규칙이나 정해진 관례’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예수께서는 신약시대에 안식일을 규칙적인 예식으로 지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으니 개신교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처럼 안식일이 구약에 국한된 율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안식일이 폐지가 되어 일요일 예배를 지켜야 한다는 개신교 단체의 주장은 예수님의 신앙적 행위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려는 악의적인 내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안식일은 언제부터 유래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 2:1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일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유래 되었고 창조주의 권능을 기념한 날로써 거룩하고 복된 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안식일은 모세시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제정이 되었습니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안식일을 기억해서 지키라 하셨는데 안식일은 창세기 2장에서 일곱째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은 오늘날 요일제도 상으로 무슨 요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달력을 보면 한 주간의 시작은 일요일로부터 시작하여 토요일로 마쳐지고 있습니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로 흔히 주말(週末)이라고 합니다. 토요일이 일곱째 날이라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상식적인 근거를 통해서 안식일은 토요일임을 알 수 있으며 성경을 통해서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막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부활절이 일요일이라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본다면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 다음 날’이라고 증거하고 있기에 안식일은 자동적으로 일요일의 전날인 토요일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이 월요일이라면 일요일 예배가 성립되겠지만 이는 조금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입각한 예배일은 안식일입니다. 만일 안식일 지키는 것이 이단이라고 한다면 예수님도 이단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개신교 단체들은 신약에 변경된 규례를 행하면 된다고 하는데 신약에 와서 일요일 예배로 변경되었다는 근거는 성경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요일예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괴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위 사람의 시선을 고려하기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주여 주여’ 하며 말로만 하나님만을 외치는 가증한 행위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일요일 예배 혹은 주일 예배는 성경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 규례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기본스 추기경 저,『교부들의 신앙』카톨릭출판사, P.108


더러는 [계 1:10 주의 날]을 주장하는데 주의 날은 안식일입니다.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눅 6:5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즉 하나님의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1:13).
이미 육안으로도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가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의 성도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신앙의 행위들을 친히 본보여 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 신앙적 행위들을 하나하나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또한 신약에 와서는 안식일 예배의 형식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요4:22-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흘려 육신의 정결을 구하는 제사를 드렸다면

신약시대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로 신령과 진정의 영적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켜 그 영혼을 더럽히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안식일을 지켜 행하고 안식일을 굳이 잡는 인생이 축복된 사람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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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2장 18절.

내가 이 책(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참예함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으로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하면

재앙을 받고, 감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처럼,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 중.

'안식일'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1절.

천지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일곱째 날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마치시고 이 날

안식하셨음 이더라

 

하나님께선 몇째 날 주신다 하셨습니까?

일곱째 날입니다.

여섯째 날까지 천지 창조를 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창조주의 기념일'로 삼아 '안식일'로 정하시고,

십계명넷째 계명으로써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

안식일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

쉬었음이라

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

되게 하여 그날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한

안식일을 우리 생각대로 안 지켜도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일곱째 날.

안식일을 안 지키면, 하나 감한 셈이 되고  첫째 날.

일요일 예배를 보면, 하나 가한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대로라면,  안식일 안 지키고

일요일 예배보는 사람들은

재앙도 받고 천국에도 못갑니다.

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곱째 날,

성경의 안식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봐야 겠습니다.

 

먼저,  일곱째 날. 안식일.  과연,

무슨 요일일까요?

 

국어사전을 보시면 '토요일'이 '일곱째 날'이라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 되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주말'의 명화는 '한 주끝' 날. '일곱째 날'. '토요일' 밤에 합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❸그리고 성경에서도 '안식일''토요일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날. 즉 부활하신 날이

   무슨 요일입니까?

  '부활절.'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그리고,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해하기 쉽도록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라고 씌어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 후 첫날.'이 '일요일.'이면,  '안식일'은?

   '토요일'이 됩니다.

    그래서,'성경의 안식일''토요일'입니다. 즉,

   '일곱째 날'. '안식일'은 무슨 요일입니까? 바로, '토요일'입니다.

 

❹또 천주교에서 발간한 ‘교부들의 신앙’이라는 책에서 보더라도 '성경의 안식일'

   '토요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부들의 신앙, 108쪽.'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없다.

   성서의 안식일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천주교회에서도 성경의 안식일

   토요일임인정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예배를 드려야

   을 받겠습니까? 일요일이 아니라 바로,

   토요일이란 겁니다.

   성경 어디에도 일요일에

   안식일 예배를 드렸단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엔 일요일 예배가 없습니다.

   '부활절. 오순절.' 빼고는요. ^^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성경 말씀대로,

   '안식일'. '토요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안식일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너희 사이에

   너희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란

  표징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안식일지키지 않는 자들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 봅시다.

 

  출애굽기 31장 14절.

   너희는 안식일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더럽히는 자

   죽일지며  무릇 그날하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끊쳐지리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죽이라 하셨고 실제,

   구약 기록에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은 돌로 쳐 죽였단 기록이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육적이고,  신약의 율법은 영적이라서,

   '신약' 시대에 '안식일'하게 되면

   '영혼죽는다'는 걸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만큼 '안식일'

   하나님의 '절대적계명'이란 겁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중요한 안식일이 신약시대에 와서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예수님사도들은 지켰었고, 예수님 사후에도

   계속 안식일지켰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여기서, 예수님께서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지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규례란 것은

   규칙적으로 예배를 드렸단 것이기기 때문에  매주..

   안식일을 지키시는 을 보여 주셨단 겁니다.

 

   또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십자가 이전에는 안식일을 지켰으나,  이후에는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사후사도들

   안식일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대로..

   안식일을 자기 규례로 삼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안식일폐지되었단 말은

   거짓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안식일을

   일요일에 지켰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사도들

   안식일지켰을까요?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가 하리라

 

   어떤 사람들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

   그렇다면,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 토요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성경 말씀에서 가감없이 성경대로,

   토요일, 안식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입니다.

 

   즉,  성경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고 천국에 입성합시다.

 

 

http://uccspace.nethttp://www.watv.org에 가셔서 더 많은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꼭 진리 영접하시고 천국으로 입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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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복음사업6000년이 마치고 7000년째로부터 1000년안식으로 들어갈무렵

먼저 용을 잡아 천년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일을 하게됩니다.

 

천년이라는기간은 구약의 율법을통해 미리 장차 이루어질뜻을 보여 알게하셨습니다.

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 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 이라도

            반드시 다 이루리라.... 

히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일의 그림자요.참형상이 아니므로....

레25/2~5-제 칠년에는 안식년으로 여호와앞에 땅을 안식하게하라.(*출23/10~11).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땅은 6년동안 은 갈아 심어 먹고 7년째 된 해에는 아무것도

다스리지 못한채 쉬게함으로 안식년이되어있습니다.

안식년도 장차 될 일의 그림자입니다.

그 예언성취는 아담으로부터 마지막때까지 6천년이 지나면 지구엔 안식천년이 되도록

예언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아담이후  6천년이  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 지구는 이제  곧  아라비아의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곧 무저갱이 될 것입니다..

벧후 3/7-이제 하늘과 땅은....불사르기 위하여 간수 하신 바 되어...

말4/1~3-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자는 다

             초개같이 살라짐... 

이 땅은 천년동안 안식천년이되어 쉬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사단은 그천년 동안 황무지가 된 이땅에서 천년동안 갇히게됩니다.

계20/1~3-용 곧 마귀를잡아 일천년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무저갱이란 말은 이 땅이 황무지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와 같은 뜻을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른나라에 붙여

침략을 당하게 하여 포로가되게하심으로 땅은 저절로 안식을하게됩니다...

레26/32~35-..내가 너희를 열방에 포로 되게하여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

                  너희본토가 황무할 것 이므로 그 땅이 안식을 누릴것이라...

램 25/11~13-..이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동안 바벨론왕을

               섬기리라.. 

왜70년을 말씀하셨을까요?

역사를살펴보면 왕권정치로시작되는 1095년경 사울왕때부터주전 605년경 1차로돌아오는 여호야김시대까지 490년이됩니다.

490년동안 한번도안지킨 안식년이 70번이나빠진 햇수 고대로...

이스라엘 땅은 안식하게 되고 하나님 법을 안 지킨 백성들은

 그 죄가로 죄인의생활(포로생활)을 하게됩니다.

대하36/20~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매 이에 토지가안식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아의입으로 하신말씀이 응하였더라...

지금은 아담이후  6천년이  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 지구는 이제  곧  아라비아의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곧 무저갱이 될 것입니다..

벧후 3/7-이제 하늘과 땅은....불사르기 위하여 간수 하신 바 되어...

말4/1~3-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자는 다  

              초개 같을것이라...

지구의 종말인6천년이차면 지구는 불바다가되어 사막과같은 무저갱이 될것입니다.

마지막때인지금 어떤예언이남아있습니까??

사24/1-..불로 세상을 멸절함..남은자가적음....(적지만 남은 무리가있음)

         14-동방,땅끝에서부터 하나님찬양..

계7장-..사방의바람을붙잡아 ......해 돋는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침....

동방,땅끝, 해돋는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인이 다쳐지면붙잡은 사방의바람이놓여

세계3차 대전이 일어남으로 온 세상은 불바다가 되어 사막과 같은 황무지,곧 무저갱이

될것입니다..

세상의관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 하지만..

램51/58-..백성들의 수고는 헛될것이요 민족들의수고는 불탈것인즉,,,

안식년을안지켯을때 하나님께서는 강제안식을 시키신것처럼

지금도 안식일을 안지키는자들은

강제안식 에  들어갈것입니다..   

느13/7-..너희가 어찌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히4/3~6-세상을 창조할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에 그의 모든일을 쉬셨으며 또다시 내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하ㅣ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자들이남아있거니와...하였다.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럼년 거기 들어갈자들이 남아있거니와."한 그 안식은 인류 역사 6000년이 끝나는 그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것으로 사도 바울은 해석하고 있다.

 

6일 만에 당하는 안식일이나 6년 만에 당하는 안식년을 연구해 보면 모두가 장래일의예언이 되어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성경의 예언은 1일이 1년으로 성취되게 하신 일도 있지만 (민 14장 34절, 겔 4장 6절 참고)

하루가 천년의 비유도 있다.

 

벧후3/8-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7일 제도의 안식일이나 7년 제도의 안식년이 있었으니 예언으로 비추어 볼 때

인류 역사 6000년이 지나면 지구의 안식천년이 있게 되는 것은 진리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연구해 보면 사단이 무저갱에 일천년 동안 갇힌 바 되고 성도들은 일천년 동안

왕노릇 한다는 기록이 있다.(계 20장 1~6절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은 6천년 동안에 완전한 창조를

마치시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시며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을 보이신 것이다.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라고 말한 그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러므로 아담,하와는 완성품이 되지 못하고 미완성품으로서 완성품을 만드는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완성품과 미완성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전15/44~53-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이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아담은 신령한 자 즉 완성품이 아니요,

육의 몸 즉 땅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미완성품인데, 흙에 속한 미완성품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완성품으로 변형을 받아야 된다는 말씀이다.

 

-안상홍님저  선악과복음중-

 

안식일에 대해 폄론(비판)하지 말만말씀이

"이제 부터는 아무날이나 지켜도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표징으로 주셨는 데.

폄론하지 말라고 했다고 굳이 굳이 태양숭배일인 일요일을 지킵니까?

안식 천년을 믿고 그안식에 들어가려면 표징으로 주신 안식일을 꼭지켜야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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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 왜 안식일을 지키고 있나요?

[답변]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을 지키는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만 몇 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첫째,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2:1~3).

둘째,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이란 분에게 경배를 드리고 그분만 섬겨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계명이 바로 제 4계명입니다. 만약 제 4계명이 없어진다면 만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20: 8~11).

셋째, 창조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하셨을까요. 오늘날과 같이 안식일을 잊어버리고 다른 날을 택하여 예배하거나 고의로 안식일을 부정하며 지키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넷째, 안식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날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20:20).

다섯째, 선과 악의 대쟁투가 끝나고 창조주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안식일에 여호와 앞에 나아가 경배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66:22~23). 그러므로 단 한 번도 그 중요성이 격하되거나 변경된 적이 없는 안식일은 영원한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로써 마땅히 경배 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계시나요?

[답변] 십계명에는 자신은 물론 객이나 가축까지도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가 많이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를 손수 보여 주셨지요.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 외에 아픈 자를 고치시는 등 약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바로 사랑을 실천하셨지요. 이것이 올바르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온전히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요.

 

다음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립니다.

한국 장로교의 한 장로님께서 오래전에 안식일 지키는 무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978년 현재 191개 교단에서 안식일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외에 몇 군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님의 교회(*)라는 곳이 있는데 이 집단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古) 안*홍씨와 장*자씨를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님 하나님이라 하며 안*홍씨의 안식일(토요일 일출부터 일요일 일출까지)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목까지)을 버리고 성경에 그 근거가 전혀 없는 일요일을 지키는 무리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지요.

 

다음의 글도 좀 길지만 보아 주세요.

 

 

로마의 도전과 증언

“프로테스탄트들은 왜 일요일을 지키는가?”

 

이 책을 읽는 분들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자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다.

‘로마의 도전과 증언’은 원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이하 ‘재림교회’라고 표기한다)대총회 산하의 국제종교자유협회가 발행한 책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안식일 문제에 관한 천주교회의 주장을 전재한 것이다. 이 책자가 나오게 된 배경은 아래와 같다.

지금부터 백여 년 전, 1893년 5월 1일부터 동년 10월 말일까지 개최된 시카고 세계 박람회를 앞두고 일요일에도 박람회를 계속하기로 한 계획 때문에 미국 정부는 개신교계의 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 해결 과정에서 사법부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란 해석을 내놓았고, 그에 힘입어 일요일에는 박람회를 휴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헌법정신,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정부가 금지된 분야에 관여한 사례가 되므로 재림교회 대총회는 이에 대해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그 내용을 “항의와 호소”란 제목으로 책자를 담아 전 미국의 주요 기관들과 종교 단체들 앞으로 발송했다.

이 “호소와 항의”를 받아 본 로마 가톨릭(이하 ‘천주교회’라고 부른다)측은 그들의 기관지인 “가톨릭 미러”란 신문을 통해 그 해 가을 4회에 걸쳐 ‘기독교의 안식일’이란 제목의 논설을 발표했다. 그 글의 놀라운 점은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가 비성서적이며 천주교회의 전통에 불과한 것임을 밝히고, 성서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개신교회가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철저히 변호 불능, 자가당착, 그리고 자살적인 모순임을 지적한 것이었다.

국제종교자유협회는 천주교회가 발표한 이 네 번의 논설을 하나로 묶고, 거기에 머리말과 부록1을 첨가하고, 논설 본문에 편집자의 주석과 각주, 그리고 권말에 ‘해설 : 숨겨진 역사 한 토막’을 삽입하여 ‘로마의 도전과 증언 : 프로테스탄트는 왜 일요일을 지키는가?’란 이름의 책자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것이 ‘로마의 도전과 증언’초판이었다.

이것이 다량 보급에 성공하자 천주교회측은 거기에 다시 자기들이 쓴 부록 2를 첨가한 책자를 만들어 보급했다. 그러므로 ‘로마의 도전과 증인’이란 이 책자는 재림교회의 찬조로 만들어진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작품이라 함이 좋을 것이다.

-안식일과 일요일 문제에 대한 성서적, 역사적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1999년 10월

미주 시조사 편집인

 

 

 

머리말

 

1893년 2월 24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대총회는 미합중국 대법원이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판정한 것과 의회가 종교적 문제에 관해 내린 결정에 대해 그 원칙과 영향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답변확정하여 국가와 국민 앞에 발표한 일이 있었다. 여기서 ‘종교적 문제’란 그리스도교의 안식일 문제였다.

1893년 3월 국제종교자유협회는 동 결의문을 “호소와 항의”란 제목의 소책자로 출판했다. 이 책자를 받아 본 “가톨릭 미러”지(Catholic Mirror-당시는 가톨릭 미러가 메릴랜드 발티모어에 있었으나 지금은 아이다호 주에 소재한다.-역자주)의 편집인은 동년 9월 2일, 9일, 16일, 및 23일-이렇게 4회에 걸쳐 ‘기독교의 안식일’이란 주제의 논설을 발표했다. “가톨릭 미러”지는 기본스 추기경 산하의 미국 천주교 기관지이다. 그러므로 이 논설은 추기경 자신이 친필로 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공식 승인 아래 발표된 글인 동시에 개신교계를 향한 천주교의 공개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이 논설을 통해 그들은 개신교측이 왜 일요일을 성일로 지키며 그날을 존중하는지를 천주교 앞에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의 안식일’문제에 대한 “가톨릭 미러”의 역사적 논설 전문을 여기 소개한다. 본서가 진리를 탐구하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각주와 본문 중괄호 안에 “편집자”의 글로 표시된 부분과 권말에 첨가한 부록은 연재된 논설의 일부가 아님을 밝혀 둔다.

 

- ‘로마의 도전과 증언’편집자-

 

  

 

 

<“가톨릭 미러”지의 첫 번째 논설, 1893년 9월 2일자>

 

기독교의 안식일(1)

 

기독교의 안식일은 성령과 그의 아내인

천주교회의 결합에서 나온 소산,

개신교의 모든 주장은 철저히 변호 불능, 자가당착!

 

  우리가 제목이 말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주 "호소와 항의"란 제목으로 국제종교자유협회가 발행한 21쪽에 달하는 소책자를 접수하고부터이다. 이 책자의 내용은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가 답변확정한 결의문(1893년 2월 24일자)이었다. 동 결의문은 미합중국 의회와 대법원이 일요일에는 세계 박람회를 개장하지 않기로 결의함으로써 국민의 자유를 침범했다고 하는 신랄한 논평과 비난을 담고 있었다.

  제칠일 재림교회1) 신도들은 성경을 스승으로 삼는 기독교 종파들 중에 안식일이 제 7일이 제 1일로 변경된 사실이 성서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발견한 유일한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church)"이다. 그들의 주요 교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계율에 따라 토요일을 전적으로 하나님 경배하는 날로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으로 말하면 거룩한 신구약성서에 여러 번 강조된 바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에 이르도록 수천 년 동안 문자적으로 지켜 왔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에 계신 동안 교훈과 모본으로 옹호하신 원칙이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도를 제외한 세계의 프로테스탄트는 그들이 출현한 16세기 이래, 동일한 성경을 그들의 유일무오의 스승으로 소중히 받들지만 그 행위로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을 번연히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배하는 날로 정하신 날을 거부하고 성서에 그 목적을 위해 단 한 번도 언급된 일이 없는 날을 지키는 명백한 모순을 범해 오고 있다.

  일요일마다 안식일 범하는 것을 저주로 질타하지 않는 개신교회의 강단이 어디 있는가? 이 나라 방방곡곡에 산재한 개신교 목사들이 세계 박람회를 일요일에도 개최하는 것에 대해 광적인 울분을 터뜨렸던 사실과 주의 날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백만이 서명하여 제출한 수천 장에 달하는 진정서를 누가 잊을 것인가? 진정 그런 전반적이고 광범위한 흥분과 비난은 그런 요란한 항의를 유발할만한 정당한 근거가 단단히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박람회 현장에 각종 개신교 단체들을 위한 전시장 배정이 끝난 후, 대법원이 일요일 개장에 관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우리 장로교 형제들이 노출했던 그 덕스럽고 양심적인 분노를 누가 잊을 것인가?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들은 배정된 장소의 사용 또는 개장을 가차 없이 거부했으며 그들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물품 반출 권리를 요구했다. 이것은 신성을 모독하고 안식일을 범하는 전시장과는 일체의 관계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이 칼빈주의파 형제들은 다른 모든 교단들의 동정을 받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 준수를 옹호하는 순교자로 행세할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그들은 "세계, 곧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으나, 한편 그런 독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그들의 개신교 형제들은 무정하고 투기적인 정신을 발휘하여 종교적 원칙에 대한 그들의 억센 집착을 바리새인적 교만과 지독한 옹고집이라고 꼬집어 댔다. 

이 기사를 발표하는 우리의 목적은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한 조명을 통해(만일 개신교 강단에서 안식일 문제가 제거된다면, 교단은 방향을 잃고, 목사들은 그들의 즐기는 단단한 "치즈"를 빼앗기는 셈이 되겠기에) 우리 독자들이 그 문제의 모든 국면을 깊이 이해하고 분명한 결론을 스스로 얻게 하려는데 있다. 

기독교계는 원칙적으로 주일 중 첫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문제로 연합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살면서 주일 중 마지막 날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일로 지키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기독교 종파의 하나) 신도 역시 같은 날을 택하여 지키고 있다.

유대인들과 재림신도들은 모두 성경의 권위에 의해 그날이 하나님께서 명한 날임을 주장하며, 한결같이 토요일을 엄격히 지킬 것을 가르친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권위만 인정하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신도들은 기독교 신자들이므로 신약성경의 권위도 똑같이 인정한다. 즉 신약도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인 신구약 성경이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믿으며, 구세주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토요일 이외의 다른 어떤 날도 지키신 일이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확실히 발견하며, 사도행전, 편지서, 및 요한 계시록에 토요일-안식일 제도가 취소된 근거가 추호도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믿는 바를 구약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으로 확인되며, 구세주와 그의 사도들이 거의 한 세기 동안이나 생애와 실천으로 가르쳤음을 말해주는 성경의 기록에 의해 확증된다.

  숫자적으로 볼 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신도들은 세계적 개신교 교세의 극히 작은 일부를 형성한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가 아니고 진리성 여부, 사실성 여부, 정당성 여부이기 때문에 엄격히 공정을 기하기 위해 냉정하고 편견 없는 조사를 해 보지 않고 이 소규모 교단을 정죄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개신교계는 그들이 처음 생겨나던 16세기부터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에 천주교회와 철저히 같이해 왔다. 이처럼 정서와 관습이 300년이 넘도록 일치해 온 근본을 따져 보는 일은 이 문제에 관한 개신교 측의 입장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단 그 근본 옹호론이 유대인들과 재림 신도들이 제시하는 변론, 즉 그 두 제소자들의 유일한 심판자와 증인인 성경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을 경우에 한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만일 후자들이 제시하는 변론이 대다수 개신교 신자들이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만일 양편 다 공통된 스승인 성경에 호소한다면, 개신교 신자들 중 다수는 지금까지 일요일을 엄수해야 한다고 힘차고 끈질기게 아우성치던 것과는 판이하게, 거룩한 성경의 모든 허락과 가르침에 위배되는 가르침, 즉 그들이 항상 배도한 교회로 믿어 온 교회의 교리와 행습을 답변확정한 결과로 3세기가 넘도록 성경에 위배되는 오류를 가르치고 실행해 왔음을 자인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성서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이 실수의 심각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이 문제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인간가족에게 주신 가장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명령 중의 하나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하신 말씀에 직접적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생존해 있는 개신교 신도들은 어느 한 사람도 그 계명을 지킨 일이 없고, 오히려 그의 스승인 성경보다는 위에 말한 배도한 교회의 가르침을 선호하여 따르고 있다. 만일 유대인들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말이 옳다면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결코 그들의 주장과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양측 다 성경을 그들의 무오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명하신 날이 토요일인가 일요일인가를 성경이 판단 내리게 하자. 둘 중 어느 한쪽은 반드시 틀렸을 것이며, 또한 이 중대한 문제에 있어 잘못된 편에 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경고하신 것과 같이 "영원한 언약"을 범한 자들이 받을 두려운 형벌이 따르는 문제이므로 우리는 이제 양측 주장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 지대한 주제의 논의는 보통 사람의 머리에 지나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연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대답하기 쉬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평범한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성경은 주일 중 어느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가?

둘째, 신약 성경이, 그 가르침과 행습으로 원래의 그 계명을 변조 또는 수정했는가?

셋째, 개신교 신자들은 16세기 이래 그들의 무오의 안내자요 스승인 성경에 명한 날을

"거룩히" 지킴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했는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위에 제시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우리는 진리를 옹호하고 오류를 지적하는 일에 추호도 어김이 없는 해답을 가능한 한 많이 제시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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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한국어 공식 명칭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이다. 본고에서 편의상 “제칠일 재림교”로 줄여서 번역했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따르고 있는 명명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자

 

 

 

 

<“가톨릭 미러”지의 두 번째 논설, 1893년 9월 9일자>

 

기독교의 안식일(2)

 

"그러므로 신앙, 그러니까 광적 신앙은

한번 자기가 좋아하는 오류와 단단히 결합한 후에는

끝까지 그것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다."

-무어

 

지난 호 본 논설이 밝힌 약속에 따라, 우리는 성서적 기독교2) 신앙 원칙 중 가장 명백한 오류요 가장 용서할 수 없는 모순 하나를 폭로하려고 한다. 혹시 오해를 살 것 같아서, 우리는 개신교가 "무오의 성경" 외에는 아무도 스승으로 모시지 않으며, 그것을 떠나서는 어떠한 신앙 원칙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 논설을 진행하려고 한다. 천주교 신도가 영적인 문제에 관하여 자기의 판단보다는 무조건 교회의 음성에 유감없는 확신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개신교 신도는 성경 외에는 아무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영성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영감적 스승이며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경은 그들의 종교와 신앙과 행위의 근본이다. "성경, 온전히 성경, 오직 성경만이 개신교의 신앙이다."라는 칠링워스의 말은 이 사상의 한 표현이며, 이것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책", "우리 구원의 헌장", "우리 기독교 신앙의 말씀" 및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과서" 같은 말이 된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이 개신 기독교 신앙의 스승이란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는 이제 지난번에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논설을 계속하려고 한다.

  한편에는 그 가르침과 행위가 상반되는 개신교회(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를 제외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 두 신앙 집단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이 주일 중 서로 다른 날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유일한 증인인 성경의 증언을 청취하려고 한다. 우리가 거룩한 성경에서 최초로 접하게 되는 표현은 창세기 2장 2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일곱째 날 (하나님)은 모든 지으시던 일을 쉬셨다."

이 문제에 관한 그 다음 언급이 출애굽기 20장에서 발견된다. 거기서 하나님은 제7일을 지키라고 명하시면서 그 까닭을 당신께서 창조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그날 쉬신 때문이라 하셨다. 성경의 본문은 그러한 이유로 그날을 지키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제7일을 복주시고 그날을 성별하셨다."3)

다시 출애굽기 31장 15절에서 우리는 이것을 읽는다: "엿새 동안 너희는 일하라. 제7일은 안식일, 주께 거룩한 것이다." 16절에 보면, 이것은 "영원한 언약", "영원한 표징"이라 했고, 17절에서는 "주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를 만드시고 제7일에 일을 쉬신 까닭"이라 하였다.

  구약 성경에는 제7일 안식일이 126번 언급되어 있는데, 이 모든 본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그날을 먼저 지키셨으므로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그날을 "영원한 언약"으로 지킬 것을 명하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고 있다.

아마도 토요일이 안식일인지 또는 그날이 제 7일인지를 의심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토요일 준수가 율법을 받은 해인 주전 2514년부터 주후 1893년(이 논설이 기록된 해)까지 3383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오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유대인들의 예를 우리 눈으로 목격하거니와, 이보다 더 확실하게 역사적으로 확증된 사실은 없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민이요, 구약의 수호자들이요, 지금까지 존재해 온 유일신(唯一神) 신앙의 살아 있는 대표자들이요, 기독교 이전에 1490년 동안이나 존재했고, 주일 중 특별한 날인 토요일을 매주 지킴으로써 그들은 그날의 바른 의미와 그날을 "주께 거룩하게" 지켰고, 그 전통에 이어 추가로 1893년 동안이나 더 연장해서 지킴으로써 기독교 시대의 전 기간을 지속해 오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이유를 밝히겠지만, 이 점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오해 없이 분명히 이해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선민이 3383년 동안이나 매주 지킨 산 전통을 확인하거니와 하나님이 친히 그날을 당신 앞에 거룩히 구별해 지키라하신 것을 지적하고, 그날은 토요일이며, 그날을 어기는 자는 사형시키도록 기르쳤다."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니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 것이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생명이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출 31:14). 위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께서 친히 명하셨고 또 옛 율법에 126번이나 언급된 이 명령을 위반한 자를 죽이도록 명하셨다. 그 이상 더 심한 벌이 어디 있겠는가?

성서적 기독교 신도들 가정에서는 어린 자녀들 마음속에 가능한 한 일찍부터 구약의 십계명이 똑바로 주입된다. 그러나 열 계명 중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 이상 주일 학교와 설교단을 통해 열렬히 강조되고 잘 알려진 계명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1900여 년의 역사를 살펴서, 보조 교사인 신약 성경이 옛 율법의 명한 바를 취소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제정된 옛 율법의 토요일 안식일을 다른 날로 대치하라고 한 명령이 있는지 조사해 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옛날엔 토요일을 지켰고, 또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날이 그날이었던 만큼, 성서적 기독교 신자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권위로 옛 명령을 취소하는 형식으로 토요일 언약을 폐지하고 그 대신 다른 날을 지명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 하는 명령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서적 기독교 신자가 인정하는 유일한 스승은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바뀐 것을 구약이 말해 주지 않고 또 성서적 기독교계가 토요일이 아닌 다른 날을 성수하고 있느니 만큼, 개신교 신도라면 확실히 신약 성경을 펴서 토요일을 버리고 그 대신 종교 개혁 초기부터 개신교가 지켜 온 일요일을 지키라고 명한 말씀을 제시할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비판적으로 조사해 보았을 때 우리는 안식일이 61번 언급된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구세주께서 예외 없이 안식일(토요일)을 택하셔서 그날 회당에 가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음을 보게 된다. 사복음서에는 안식일을 도합 51번 언급되어 있다.

성 마태와 성 누가의 글에는 구세주께서 어느 날 자기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4)이라 말씀하신 기록이 있다. 그러나 기록된 그의 전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그는 그 날을 변경하고 싶다는 언질을 주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사도들과 그를 가까이 따르던 자들이 그가 돌아가신 후 아직 그가 무덤에 계시는 동안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 뚜렷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 23장 56절은 다음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들은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주일 중 첫날 이른 새벽에 그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왔다."(눅 24:1)  "향품"과 "향유"는 주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 오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안식일이 거의 되었었다"(54절).

구세주의 측근자들이 보여준 이 행동은 그가 돌아가신 후 그들의 토요일을 "거룩히" 지켰고, 일요일을 주일 중 다른 어느 날과도 다름없는 날로 간주한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한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여신도들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까지 토요일 이외의 다른 안식일을 결코 안 일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엇이 이보다 더 확실한가?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 흥미진진한 문제의 조사를 위해 전도자 성 누가가 남긴 그 후 30여년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확실히 그날이 취소된 어떤 흔적이 있다면 이 연장 기간 중 사도들의 생활을 통해 엿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차! 우리는 다시 한 번 실망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아홉 번5)이나 안식일이 언급된 것을 읽지만, 그것은 토요일, 즉 옛 안식일일 뿐이다. 만일 독자가 증거를 원할 경우를 생각하여 우리는 여기에 그 각 경우의 장과 절을 밝힌다. 사도행전 13:14, 27, 42, 44. 그리고 다시 사도행전 15:21, 및 16:13; 17:2; 18:4에 안식일 언급되어 있다.

"그(바울)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을 설득했다." 그러므로 안식일(토요일)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한다!

그러므로 구세주나 그의 사도들에 의해 원래의 안식일이 추호라도 침해당한 흔적을 신약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그와 반대로 원래의 제도가 전적으로 옹호된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예수님)가 사시는 동안 전적으로 지지하셨고 그가 돌아가신 후 30여 년간이나 변함없이 사도들이 적극적으로 안식일 활동에 참여했고 그날 이외의 다른 날을 지킨 일이 없다는 사실을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풍성히 증언해 준다.

그러므로 명백한 결론은 이것이다. 성경을 안내자로 삼는 유대인들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신도들은 자기들 편에 모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나 성서적 프로테스탄트들은 토요일을 일요일로 대치한 것을 옹호하는 단 한 구절의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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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2. 본고에서 자주 나오는 ‘성서적 기독교’란 말은 거의 매번 다 개신교 신앙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교 신앙을 비성서적이란 이유로 배격하고 “오직 성경”을 부르짖으며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신교 신앙의 선구자들이 내세운 성경 제일주의 신앙을 은근히 비꼬는 표현이기도 하다. ‘성서적 프로테스탄트’, ‘성서적 그리스도인들’, ‘성서적 친구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거듭된 ‘성서적’이란 말은 실상 ‘비성서적’이란 야유를 담고 있다. -역자주

 

각주 3. 본 논설 원문에 인용된 모든 성경 본문은 전부 천주교 성경인 Douay역 영문 성경에서 인용되었다. 그러므로 한글 번역도 가능한 한 Douay의 어감에 일치시키려고 힘썼다. -역자주

 

각주 4. 이 말씀은 마가복음 2장 28절에서도 발견된다. -편집자

 

각주 5. 이것은 아홉이 아니고 여덟이라야 맞다. -편집자

 

 

 

 

<“가톨릭 미러”지의 세 번째 논설, 1893년 9월 16일자>

 

기독교의 안식일(3)

 

"방황하는 저들에게 안내자를 보내주라.

마음이 담대한 자, 속임수를 사사받은 자를

그의 모험적 손이 타륜을 잡고 잘못 틀어

원수의 해변으로 가다가 파도에 파묻히도록!"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인 악마의 왕 사탄이 우리의 첫 모친 하와에게 "네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는 말로 그녀의 야심을 자극하여 그녀의 눈을 뜨게 해 주려고 했던 행동은 그 후에 그가 그녀의 수백만 자손을 호리는 일에 사용한 그럴 듯하고 잘 들어먹는 수많은 시도의 효시에 불과했다. 아차! 하와처럼 그녀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도록 꼬이려고 그가 제시하는 유인물(誘引物)의 가치를 늦게야 깨닫는다. 본 논설이 다루는 문제도 이 사악한 왕자의 통상적 술책에 비추어 볼 때 예외적 사항이 아니다.

지난 3세기 동안 불만과 야심으로 가득 찬 다수의 크리스챤들에게 그는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 성공할 수 있다는 찬란한 가능성을 그럴 듯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세우신 교회를 스승으로 모시기를 포기하고,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새로운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유혹이었다.

  영민한 악마는 이 계략의 찬란한 성공을 예측했다. 실제로 그 결과는 그의 교활한 기대는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모험에 앞장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담대하고 모험적인 정신 하나면 충분했다. 그 인물을 악마의 왕은 배도한 수도사 루터를 보는 순간 당장 알아보았다. 루터는 자기의 입으로 자기와 자기의 주인이 얼마나 서로 비슷한가를 그의 "탁상 담화"와 1558년 비텐베르크에서 멜랑히톤의 감수 아래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푼 그 능수능란한 과업을 루터는 기독교계에서 성취한 것이었다.6)

   루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할 때 악마가 그에게 제시한 최종 목표는 기독교적 정신의 파괴였다. 이제 우리는 그가 그 일에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들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그것들은 잘못된 것이요, 자가당착이요,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의 협잡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해 보자.

  앞에서 이미 입증한 것처럼 사복음서에 51번이나 언급된 안식일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때, 구세주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중 단 한 번도 충실한 안식일(토요일) 준수를 이탈하신 일이 없고, 비록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명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한 번도 그의 명령이나 행위로 그날을 다른 날로 대치할 생각을 암시하신 적이 없었다. 또한 성 누가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주는 것처럼(누가 24:1), 주께서 죽으시던 날 저녁 사도들과 여신도들은 주의 시신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사전에 준비했다가 안식일(토요일)이 지난 후에 사용하려고 했다. 이 사실은 혹시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 생애 중 안식일 준수에 허점이 있지나 않았나 하는 의혹을 배제한다. 성 누가가 증명하는 것처럼, 주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들의 행적이 그것을 말해 주거니와 독자가 사도행전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 후 30년 동안이나 이 점에 있어 주님의 본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안식일(토요일)을 지켰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18장 4절을 보라: "그(바울)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했다."

이방인 개심자들도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똑같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란 말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들도 유대인들과 함께 그날 집회에 참석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그리스도 부활 이후 최초로 일요일이 언급된 것은 누가 복음 24장 33~40절과 성 요한 20장 19절에서이다. 이 두 본문은 사도들이 그날 모였던 유일한 동기를 말해 준다. 그날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부활 일요일)이었는데, 그 모임은 옛 안식일(토요일)을 버리고 새 날을 "거룩히" 지키기 위한 "새 출발"을 기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위에 말한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분명히 읽는 것처럼, 그것은 기도나 권면이나 성경 낭독도 없이, 완전히 용기를 잃고 허탈해진 사도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의 그 방에 모여 있었을 뿐이다.

  일요일에 관한 두 번째 언급은 요한복음 20장 26절부터 29절까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8일 후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날 모든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날 저녁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던 도마의 의심을 해결해 주셨다. 만일 예수께서 안식일을 변경하실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면 제자들이 다 한자리에 모인 이 때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 모임에서도 부활하신 날 저녁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특징인 기도, 찬양, 또는 성경 낭독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사도들이 일요일에 모였던 세 번째 기록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발견된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자, 그러면 이 본문이 우리 성서적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드디어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되었음을 말하는 희망적 증거가 되어 줄 것인가?

비록 유대인들이 이 일요일(즉 오순절)을 1500년 동안이나 지켜왔고, 또 기독교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18세기 동안이나 매주 지키는 안식일과 함께 지켜 왔음을 우리가 알려 줄지라도 이 본문을 가지고는 아무런 위로도 안심도 얻지 못할 것이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7)로 그 기간을 일곱이레 즉 이레씩 일곱 번을 셈 친 후 그것이 끝나는 다음 날이 축제 기간 중 가장 큰 명절로 반드시 일요일이 되곤 했다.8) 이스라엘 사람 치고 자기 민족이 이렇게 거의 3000년 동안이나 지켜 온 명절에서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는 관습의 근원을 찾으려는 사람을 볼 때 가련하게 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항상 지킨 안식일을 모독해 놓고 핑계할 말이 궁해 입장이 다급해진 성서적 기독교 신도들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자기의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의 스승인 성경을 외면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오순절에 호소하려 할 것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날이 바뀌었다는 변론을 내세우는 성경 해석자들은 흔히 사도행전 20장 6절과 7절을 제시한다. "주일 중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기 위해 모였을 때…." 운운하는 이 성구는 언뜻 보기에 우리의 기분 상한 성서적 친구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 듯이 보이긴 하나, 우리는 방해꾼이므로 그런 부스러기 같은 위로도 그들에게 용납하지 않고, 다만 "지나친 증언은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격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바이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 46절을 한 번 살펴보자.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계속하며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었다." 이 본문을 보는 순간, 일요일 성수론을 지지하기 위해 내 놓았던 구절9)이 갑자기 무력해지는 것을 못 느낄 사람이 있을까? 그 구절을 방금 본 2장 46절과 나란히 놓고 대조해 보고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천치 바보가 아닐까? 성서적 기독교 신도는 이 구절을 오직 일요일에만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계속하며 이집 저집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었다"는 성 누가의 말은 그 일이 주일 중 어느 날에도 똑같이 진행되었음을 말해 준다.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되었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이 또 하나 있다. 고린도 전서 16장 1~2절에 기록된 성 바울의 말씀이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관하여는…주일 중 첫째 날에 너희 각 사람이 따로 집에 모아 두었다가…"하는 부분이다. 우선 성 바울의 이 요청을 신도들이 잘 따라 주었다고 가정하고, 구세주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토요일마다 무슨 일을 하셨고, 또 그 후 30년 동안 그것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를 사도행전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안식일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즉 "안식일마다" 성경 말씀이 낭독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안식일마다 강론하던 그의 관습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강론했다"(사도행전 18:4). 이미 확증된 것과 같이 토요일마다 의례적으로 성경 낭독, 기도, 권면, 및 설교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 어찌 되고 돌연 그 대신 주 중의 다른 날 연보 거두는 일이 등장했다는 말인가? 이보다 더 엉뚱한 추리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심사숙고하는 이 본문의 가치를 충분히 알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여신도들이 수난 금요일 해지기 전에 한 행동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향품과 향유를 구입한 것은 시간적으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다음이었다. 그들은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여호와 앞에 거룩한" 안식일이 다 지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일요일 아침에 비로소 예수의 거룩한 시신에 향유 발라 장례 절차를 마치기 위해 묘실로 찾아갔다.

  우리는 이것을 묻고 싶다. 왜 그들은 시체 손질하는 일을 토요일에 하지 않았는가?

주님의 거룩한 시신에 향품을 넣는 일도 중요했지만 엄격히 말해서 그것은 안식일준수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안식일 준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문에서 본 일요일 바로 전의 안식일이 준수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는-안식일은 매주 반드시 성수되었으므로 그럴 리는 없다-일요일마다 연보를 모아 두라고 한 성 바울의 요청은, 그리스도의 시신 손질이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편의상 그 다음 날로, 그러니까 일요일, 즉 주일 중 첫째 날로 미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신약에 언급된 안식일(토요일)과 주일 중 첫째 날(일요일)에 관한 본문을 모두 살펴본 결과 현재까지는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된 것을 입증할 만한 어렴풋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이제 한 가지 남은 것은 신약에서 발견되는 "주의 날"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 등의 의미를 조사해 보는 일일 것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다음 번 기사를 통해 계속 다루고, 어떤 신앙 체계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변호불능, 자가당착, 그리고 자멸적임을 지적한 후 결론을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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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6. 루터에 관한 이런 비난에 우리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루터는 모든 진리를 다 깨달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웅 중의 하나이다. 만일 그가 시작한 개혁 사업이 후세들에 의해 계속되었다면, 성경을 유일한 신앙의 원칙으로 삼는 개신교가 비성서적인 천주교 유전을 따르는 것과 같은 모순은 벌써 오래 전에 탈피했을 것이다. -편집자

 

각주 7. 이것은 정확치 않은 말이다. 흔히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라고 말하나, 성경에 의하면 유월절은 유다 성력으로 정월 14일이고, 다음 날 저녁은 무교절이고, 그 다음 날이 새로 추수한 곡식 단을 흔드는 요제절이다(레위기 23:5, 6, 11). 정확히 말해서 오순절은 이 요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었다(레위기 23:15, 16). -편집자

 

각주 8. 오순절이 “반드시 일요일이 되곤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다음 날부터 세어서 50일째 되는 날이었고, 유월절은 “요일”과는 상관없이 항상 유다 성력으로 정월 14일이었으므로 오순절이 항상 일요일이었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 일요일을 1500년 동안이나 지켰다는 것은 모순된 주장이다. -편집자

 

각주 9. 사도행전 20장 7절 “주일 중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기 위해 모였을 때…”등을 말함. -역자주

 

 

 

<“가톨릭 미러”지의 세 번째 논설, 1893년 9월 23일자>

 

기독교의 안식일(4)

 

"짝짝이 지팡이를 짚고 주춤거리는 자여

한쪽은 거짓을 의지하고

괴로운 옆걸음질로 어설피 목표에 다가가는구려

그렇게 온통 불안정하니 경주에 질밖에!"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법으로 당신을 경배하는 날을 토요일 대신 일요일로 제정하셨고, 그러한 하늘의 뜻이 성령에 의해 사도들의 글에 기록되었음을 성서적 기독교 신자들에게 확신시키는 듯한 증거들을 신중히(마지막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급진적 변화의 증거가 왕왕 "주의 날"이란 표현이 들어 있는 본문이 제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안식일" 성구라 할 수 있는 본문이 신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편지서들에 모두 61개나 있고, 또 "주일 중 첫 날" 즉 일요일에 관한 본문이 9개나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하나님께서 백성의 예배일을 바꾸실 의향을 가지고 계셨다는 단서를 우리는 추호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의 본문들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려고 한다. 이 본문들을 제시하는 것은 그들의 스승인 성경에 추호의 허락이나 근거도 없는 하나의 해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속여 팔려는 죄악으로부터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첫째 본문은 사도행전 2장 20절이다. "크고 영화로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 예언이 있은 후 일요일이 몇 번이나 지나갔을까? 심판의 날을 말하는 거룩한 성경 말씀을 일요일을 말하는 것으로 얼버무리는 우행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부류의 둘째 본문은 고린도전서 1장 8절이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사도가 여기 말한 날은 심판의 날임을 모르는 숙맥이 어디 있을까?

이 부류의 다음 본문은 같은 편지서 5장 5절에서 발견된다. "육신을 멸하기 위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그 영이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근친상간 죄를 범하던 고린도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 다음 일요일에 구원을 받았다! 이 얼마나 가련한 둘러대기 논법인가?

넷째 본문은 고린도후서 1장 13~14절이다.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이것이 어느 날인가? 일요일인가? 심판 날인가?

다섯째 본문은 성 바울의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1장 6절이다.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것을 완성하신다는 것, 바로 그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선량한 빌립보 사람들은 다음 일요일에 모두 완전에 도달했으므로 오늘의 느린 변화 속도를 보고 웃을 것이다!

그러면 여섯째 본문, 빌립보 1장 10절은 무엇을 말하나 보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날이 바로 다음 일요일이었다면, 정말! 오래 기다릴 것이 없었으리라.

일곱째는 베드로 후서 3장 10절이다. "그러나 주의 날은 도적처럼 밤에 오리라." 이 본문을 일요일에 적용하면 뜻이 지나치게 괴이해 진다.

여덟째는 베드로 후서 3장 12절이다. "주의 날이 임함을 고대하며 촉진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해체되라라." 여기에서 본 주의 날은 바로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날이다. 만일 이 두 구절의 "주의 날"을 다음 일요일로 풀이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전야인 토요일 밤을 뜬눈으로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주의 날"을 일요일로 속여 팔려는 신성 모독적 계략을 떠받들기 위해 사용되는 성경 구절 아홉 중 여덟을 소개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직접적이고 절대적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말세적 대 기만의 증거가 아닌가?

  우리가 접하게 되는 "주의 날"에 대한 아홉 번째 언급은 사도들의 글의 맨 끝 부분에서 발견된다. 말세 예언인 계시록 1장 10절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성 요한의 말로 제시한다.

 "나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앞에서 살펴 본 여러 경우와 같이 성서적 친구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한다. 성 요한은 그의 복음서나 편지 서에서 이와 동일한 표현을 쓴 일이 있는가? 절대로 없다. 그러면 그가 일요일을 언급한 일이 있는가? 두 번 있다. 그러면 그는 일요일을 어떤 말로 표현했는가? 주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그는 "안식 후 첫날"(요한 20:1)이라 불렀다.

  다시 20장 19절을 보자. "이제 그날은 저물어 주일 중 첫째 날이 되니" 분명히 그는 영감을 받았지만 그의 복음서와 편지서 양쪽에서 모두 일요일을 "주일 중 첫째 날"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그가 그 명칭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고 추정할 것인가? 계시록을 쓸 때는 그가 영감을 더 많이 받은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는 일요일 준수가 본격화된 까닭에 새로운 명칭을 사용한 것일까?

이 질문들, 특히 마지막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열성의 증거일 뿐이다. 그와 동일한 표현이 이미 성 누가, 성 바울, 성 베드로에 의해 여덟 번이나 사용되었고, 그들은 모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의 심판 날을 "주의 날"이라 칭하게 하고, 유독 성 요한만은 따로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부르도록 요구하였을 리는 없다. 변증가들은 요지부동하게 확실한 근거들로부터 유추나 추론을 끌어내고 그 도덕적 동기를 확인하는 동시에, 그것을 근거로 밝혀진 것으로부터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끌어낸다.

여덟 번 사용된 어휘의 의미를 확실히 알았으니만큼, 그 표현이 아홉 번째 사용되었을 때도 역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아홉 번의 표현이 모두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믿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 마지막 증거에는 자매 본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포함된 내적 증거가 뚜렷하다. 성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계 1:10)고 했으며, 4장 1~2절에서 이 말의 뜻을 이렇게 해설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었다." 그때 한 음성이 그에게 말하기를 "이리로 올라오라 내가 장차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하였다. 우리도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과 함께 올라가 보자. 어디로 올라가자는 말인가?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보자는 말이다. 무엇을 보자는 말인가? "장차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보자는 말이다(계 4:1).

요한은 하늘에 올라가서 "주의 날" 또는 심판의 날에 그때 이전에 또는 그와 동시에 발생할 사건들을 계시로 보고 그것을 온전히 기록하라는 명을 받았다. 성경의 "주의 날"은 전적으로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10)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안식일은 옛 율법이기 때문에 취소되었다거나 기독교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 다른 날이 대신 책정되었음을 입증하는 작업에 쓰일 만한 모든 가용한 증거들을 일일이 찾아서 정확하게 분석해 보았다. 이상과 같이 우리가 신중한 검토를 진행한 것은 혹시라도 셋째11) 계명이 어떤 새로운 법에 의해 폐지되었다는 주장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여 그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유의 모든 주장은 1874년 감리교 감독 회의 때 내려진 결정에 의해 완전히 배제된 바 있다. 당시 뉴욕의 헤랄드 지 보도를 여기 인용한다.

  "태초에 제정되었고 모세와 선지자들에 의해 거듭거듭 확인된 안식일은 폐지된 일이 없다. 이는 도덕률의 일부이며, 그 신성성은 추호도 제거된 일이 없다."

  이러한 공식 선언은 성서적 기독교 신도 대다수에게 새 율법 아래서 셋째 계명이 영구성을 확인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우리 독자들에게 영국 국교회의 일반 기도서에 실린 39개 신조 중 스무 번째를 심사숙고할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제정하는 것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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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0. 이것은 편협한 해석이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여호와의 안식일”(출 20:10)이라 했고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마 12:8 ; 막 2:28 ; 눅 6:5)라 하셨으니 안식일을 “주의 날”이라 할 수도 있다. 계 1:10의 “주의 날”은 문맥의 성격상 장차 올 심판의 날이 아니고 안식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본문은 “주의 날에 내가(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장차 올 일들을 계시로 보았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각주 11. 천주교가 개조한 십계명에 의하면 안식일 계명이 제 3계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안식일 계명은 제 4계명이다(출애굽기 20장 참조). -편집자

 

  

 

 

부정하거나 논박할 수 없는 사실의

결   론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절대로 논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도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6세기에 성경 제일주의가 나타나자 그 운동은 교회의 재산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그 야만적 정벌주의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여지없이 파괴했다. 그 결과 교회의 창시자께서 제정하신 모든 성례와 거룩한 제사 제도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곤 성경하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 주동자들은 그것만이 그리스도교 교리의 도덕을 가르치는 그들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주장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신조는 안식일 준수의 영구한 필요성이었다. 사실상 이것은 지난 300년간 성경을 따르는 교파들 전반이 동의하는 유일한 기독교 신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 준수는 성서적 신학의 총화와 요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목사들은 매주 천주교 국가들의 안식일 준수(일요일 준수를 말함-역자주)가 개신교 세계의 원만하고 자기만족적인 안식일 준수(일요일 준수를 말함-역자주)에 비해 이완되어 있음을 쉴 새 없이 공격한다. 

세계 박람회 장을 일요일에도 열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직 결정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이 모든 개신교 강단을 통해 과시했던 대단한 의분을 누가 잊을 것인가? 그리고 한 교파는 세계 박람회에 전시하려고 반입했던 물품 상자들을 열지도 않고 그 결정에 대해 성스런 분노를 나타냈던 것을 누가 잊을 것인가?

  이 지극히 선량하고 구변 좋은 크리스챤들은 성경을 조심스레 잘 연구하고 주님 당시 그를 밤낮으로 따라다니며 그를 무한히 괴롭히고, 그의 안식일 지키는 방법이 자기들처럼 엄격하지 못하다 하여 참을 수 없으리만치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에 바빴던 유별나게 선량했던 자들과 같은 부류를 주변에서 알아보는 일에 아주 능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문제를 상식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증오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의 오만함을 지극히 경멸하면서도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다른 명칭을 찾으려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하나님은 19세기말에 이른 오늘에 와서도 그들을 따르는 자들과 동조자들이 외치는 야비한 소리를 옛날과 별로 다르지 않게 취급하실 것이다. 이 모든 사실 위에 옛날 바리새인들은 그나마 참 안식일을 지켰지만 우리의 현대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믿어주는 어리석은 "봉"들을 믿고 평생토록 참 안식일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참 안식일은 주님께서 운명하시는 날까지 지키셨고, 그를 본받아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사도들이 지킨 날이다. 가장 적극적인 계명에 대한 하나의 고의적 모독과 배척이라 할 수 있는 극심한 모순이 오늘날 성서적 기독교계의 행위에 나타나고 있다. “성경과 안식일”은 개신교 사상의 표어이다. 그러나 우리가 증명한 것처럼 사실은 그것이 “성경 대 안식일”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론과 실제 간에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성서적 선구자들과 그들 자신이 평생토록 안식일을 하루도 지킨 일이 없음을 지적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여러 번 말씀하신 날을 그들이 매주 더럽히고 있음을 이스라엘인들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스승인 성경을 업신여겨 무용지물로 만들고, 가톨릭교회가 지키는 날을 답변확정해 지키고 있다. 어느 프로테스탄트가 이 기사를 읽어본 후에도 깨끗한 양심으로 자기의 스승인 성경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뜻으로 제시하는 토요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 어길 것인가?

 세계 역사는 이보다 더 어리석고 또 자신을 바보로 보이게 만드는 원칙 유기의 표본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승은 그들에게 안식일 계명을 매주 준수할 것을 거의 페이지 마다 뜨겁게 강조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유일한 무오의 스승"으로 인정하고 순종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 스승의 제자 된 자들이 3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이게 웬 일인가!

성서적 기독교 신도들의 거대한 집합체인 감리교회의 신도들은 안식일이 결코 폐지된 일이 없음을 선언했고, 영국의 국교회를 따르는 신도들은 그들의 딸인 미국의 감독교회와 함께 앞에서 인용(1893년 9월 23일자 논설의 결론 마지막부분 참조바람)한 것처럼 그들의 신조 제 20항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제정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의하면 토요일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반복적이며, 적극적인 계명일 뿐 아니라, 이를 불순종하는 자는 극형에 처한다는 위협이 따르는 계명이다. 모든 성서적 교파들은 하나 같이 무슨 말로도 정당한 이유를 밝힐 수 없는, 우매한 입장을 스스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악은 자기를 속인다."

이 얼마나 상황에 적절한 성령의 말씀인가! 오직 성경만을 자기의 스승으로 삼고 따른다고 공언하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 유일한 스승을 무시하고,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악평하던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이라도 자기들 목적에 부합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신 명령을 어겨가며 그것들을 답변확정해 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안식일 계명 위배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극히 무서운 경고와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연재 기사를 마감하기 전에 우리는 서두에 제시했던 제목에 다시 한 번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려 한다.

 

  1.기독교의 안식일12), 그것은 성령과 그의 아내인 천주교의 결합에서 나온 소산

2. 개신교의 모든 주장은 변호불능, 자가당착, 그리고 자멸적이다.

 

  첫 주장은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가 생기기 1천여 년 전에 그 거룩한 사명에 힘입어,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 우리가 교회의 사명에 힘입었다는 말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부르신 분이 교회에 당신의 권세를 주셔서 만민을 가르치게 하신 까닭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라 하셨고, 듣지 않는 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하듯이 벌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세상 끝까지 교회와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셨다. 교회는 주께서 보내신 스승으로서의 헌장을 가지고 있다. 이 헌장은 무오인 동시에 영구한 것이다.

개신교가 탄생했을 때는 기독교의 안식일이 너무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아무도 그 기존 제도를 역행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제도를 묵인하고 안식일 문제를 덮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300년이 넘도록 그들은 교회가 날을 변경할 권리가 있음을 시인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안식일(일요일)은 오늘날까지 성령의 아내인 가톨릭교회가 나은 자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는 개신교계가 일언반구의 반박도 내놓은 일이 없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이 토론을 위해 오직 성경만을 믿음과 행위를 가르치는 스승과 안내자로 삼을 것이다. 이 스승은 날을 변경하는 문제를 절대적인 이유로 금한다. 이 계명은 "영원한 언약"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승이 요구하는 날은 한 번도 지켜진 일이 없다. 이것이 기존 원칙을 벗어나 배도한 과정인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구태여 표현을 하자면 그것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스스로 속아 바보가 되고, 자멸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타락의 한계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아니 아직 멀었다. 그들이 가톨릭교회를 떠날 때 내놓았던 구실은 기록된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를 등지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을 그들의 유일한 스승으로 삼는다고 공언했으나 그것을 즉시 포기하고, 본 논설이 지적한 것처럼 가장 기본적 교리에 있어 그들의 유일한 스승의 명백하고 한결같고 변함없는 가르침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웃음거리, 하나의 착각, 하나의 올무"란 말로 설명해야 적절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개신교의 거짓된 ‘성서적 안식일’을 경시하는 불손한 소리를 들으면 큰소리로 호통치는 버릇을 가진 경건한 목사님들 가운데,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괴물을 해부해 놓은 우리의 논리적이고 성서적인 이 분석을 깊이 연구해 본 다음, 합리적인 반론을 제시할 분이 계시다면 우리는 진정한 존경과 화기애애한 태도로 그것을 접수하여 거기에 답할 생각이다. 단, 반론을 제기하실 분은 해부된 각 부분을 다시 합쳐서 그 혼혈 잡종을 다시 살려 힘 있는 생명체를 만들어 제출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가 이들 경건한 호통가들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말하거니와 이 일로 그들은 모두 목소리를 합하여 큰 소리로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을 것이다. 만일 이 비성서적인 괴물을 다시 내놓으면 우리가 다시 그것을 해부하여 죽여 놓을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은 그런 기회를 우리에게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요즘 방침은 “가만히 엎드려 조용히 있는 것”이므로 분명 그들은 침묵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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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2. 여기서 ‘기독교의 안식일’이란 일요일을 말하는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호와의 안식일”(출 20:10 ; 레 23:3 ; 신 5:14)과 “안식일의 주인”(마 12:8)을 무시하고 자기의 안식일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지키는 셈이다. -편집자

 

 

 

해       설

숨겨진 역사 한 토막13)

종교개혁이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정죄 받은 이유 

 

 

  종교개혁이 트렌트 공의회에서 정죄된 것은 바로 개신교측이 가진 분명한 모순 때문이었다. 개혁자들이 쉴새없이 퍼부은 비난은 가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에 주어진 진리를 떠나 배도했다는 것이었다. "기록된 말씀," "성경, 오직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등은 그들의 표어였으며, "기록된 성경 말씀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을 것을 호소"한 것이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 신앙 운동이 선언한 강령이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성경을 따르되,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교회가 내린 해석"에 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트렌트 공의회의 주된 이슈였고, 공의회의 주목적은 개혁자들에 의해 유럽 사회에 제기된 이 특별한 문제를 토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 문제에 관한 토의 사항들 중 이 문제가 첫 안건으로 등장했었다.  

공의회 대표로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전통을 포기하고 성경만을 권위의 표준으로 답변확정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었다. 회의장에서 이 견해가 결정적으로 제시된 까닭에 교황의 특사들은 실제로 교황에게 "전통을 완전히 배제하고 성경을 유일한 권위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강력한 경향이 있음"을 편지로 보고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히 프로테스탄트들이 제시한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엄청난 양보를 의미했다. 이 위기로 인해 "성경에 전통을 합친 것"이 확실하고 유일한 기초란 것을 설득시키는 작업이 극우파 가톨릭 대표들에게 위임되었다. 만일 이것이 성공하면 공의회가 종교개혁을 정죄하는 칙령을 내릴 수 있었고, 실패하면 그 일이 불가능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여러 달 계속된 후 공의회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장시일에 걸쳐 신경을 쓰며 정신력을 소모한 끝에, 드디어 로히오의 대주교가 공회장에 들어와 성경만을 주장하는 파를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변론을 제시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기록된 말씀에만 의존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만을 믿음의 표준으로 고백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떠나 전통을 따름으로 배도했다는 것으로 그들의 반역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프로테 스탄트들이 성경만을 따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 로 받든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은 순전히 거짓입니다.

  증거: 기록된 말씀은 명쾌하게 제 7일을 안식일로 지킬 것을 명합니다. 그들은 제 7일을 지키지 않고 배척합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성경을 표준으로 받든다면 그들은 성경이 일관성 있게 명하는 제 7일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 된 말씀이 명하는 안식일 준수를 거부할 뿐 아니라, 다만 교회의 전통 외에는 아 무 근거도 없는 일요일을 답변확정하여 그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을 표준으로 삼는다'는 주장은 부당하고, '성경과 전통'을 동시에 받드는 교리는 필 수적이며, 프로테스탄트들 자신의 판단 기준에 의해 튼튼하게 확됩니다."

 

 이것을 논박할 길이 없었다. 이미 1530년 프로테스탄트들의 신조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주의 날의 준수"는 다만 "교회"가 정한 것임을 시인한 때문이었다.

이 변론은 오직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대대적 환영을 받았다. "오직 성경파"는 승복하고, 공의회는 즉시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정죄하고, 종교개혁은 완전히 가톨릭교회의 성회와 권위를 대적하는 일종의 불법 반항 운동으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1546년 4월 8일 두 가지 칙령이 선포되었다. "그 첫째는, 성경과 전통을 함께 받들어 존중할 것과 제 2경전(경외서)도 정경으로 인정할 것을 명한 것이고, 둘째는 불가타(Vulgate) 성경을 유일한 라틴어 표준 성경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원어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는 권위를 부여하며, 교회가 받은 어감에 위배되는 해석, 즉 교부들의 일치한 의견과 다른 성경해석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14)

 

  이렇게 프로테스탄트측의 행위가 그들의 신앙고백에 위배된 까닭에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종교개혁 운동 전반을 단순히 교회의 권위에 항거하는 이기적 야망에 의한 반란으로 정죄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노심초사하며 찾던 좋은 구실이었다.

 이 분쟁이 결말을 짓는데 결정적 요인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측이 성경이 명하는 제 7일 안식일을 외면하고 가톨릭교회가 명한 일요일을 준수하기로 답변확정한 모순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오늘도 이 문제는 본서가 증명하는 것처럼 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를 비난하는 주요 이슈이며, 이 변론에 의지하여 그들은 개신교 전반을 "변호불능, 자가당착, 및 자멸적"이란 말로 고발,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은 어찌 해야 하며, 프로테스탄트 신앙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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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3. 이것은 국제종교자유협회가 삽입한 해설이다. -편집자

 

각주 14. 대영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nica)에서 “Augsburg Confession", "Trent, Council of.”및 “the proceedings of the Council"을 보라.

 

 

 

 

부    록  I 15)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 논설을 다시 출판하는 것은 그 출처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할 뿐 아니라, 오늘날 일요일 문제가 그 분규의 막바지에 다가가면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국제적 내지는 세계적 문제로 발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발전을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와 정반대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어디서나 실생활이 그들의 신앙고백과 철저한 일치를 보임으로써 지금 우리가 보이는 것과 같은 로마와의 접근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이 책자가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현실은 지난날의 과오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종교자유협회는 이 문제의 진정한 성격과 추세를 있는 힘을 다해 세상에 알리는 것을 그 과업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추세나 성격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누구나 그 진실과 내막을 알면 그것을 경계할 것을 믿기에,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사실을 바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문제가 교계의 전반적 사태로 발전하는 것을 예의 주시해 왔다. 교계의 전반적 현실은 실로 이 책자에 소개된 논설의 묘사와 일치한다. 우리는 대중을 향해, 특히 개신교 신자들을 향해, 아니 특히 일요일 법률의 필요를 선전하거나 미국에서 일요일 법제화 운동을 추진하는 이들을 향해 그들의 취하고 있는 노선은 로마의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며, 일단 그 일이 성사되면 즉시 "너희는 왜 일요일을 존중하느냐?" 묻는 로마의 술책과 후속수(後續手)에 희생된다는 점을 계속 경고해 왔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가 경고해 오던 사태가 이미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힘을 내어 이를 널리 경고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다.

  왜 로마가 이번에 이처럼 강력하게 나왔을까? 왜 그들은 여태껏 기다리고 있었을까? 전에는 그런 행동이 그들에게 불리했다. 그들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힘 있게 나가기를 원했는데, 전에는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줄기찬 노력으로 국가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일요일이 인정을 받고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정부의 권세를 로마에 넘겨주는 일에 앞장서는 협조 정신을 발휘했다. 그래서 로마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던 일이 성사되었다.

로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이렇게 프로테스탄트가 로마의 손을 잡고 이 엄청난 일을 성취시키자 로마는 즉시 몸을 일으키고 원래의 교만과 옛 정신을 다시 발휘하여 프로테스탄트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너희는 왜 일요일을 지키느냐? 대답 좀 하라!"고 로마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눈가림 당해, 안식일을 변경한 그들의 권위를 묵인함으로써 그들의 권세를 시인한 때문이다.

이제 로마는 이렇게 인정받은 권위와 권세를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파괴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다. 이 책자에 소개된 가톨릭 미러 지의 논설 중 특히 36페이지(1893년 9월 23일자 논설의 결론)을 다시 보라. 그 이상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다시 그 페이지로 돌아가서 뉴욕 헤랄드 지의 1874년 기사의 인용문(결론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라. 이제 무엇이 드러나는가? 감리교 감독들의 진술을 미러 지가 19년 동안이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때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밖에도 저들이 차곡차곡 모아 둔 다른 재료들이 무수히 공개될 때 프로테스탄트들은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히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현재로는 이것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분쟁이다. 그런 관점의 한계 내에서 우리는 이 가톨릭 미러 지의 논설을 다시 발행하는 것이다. 제시된 쟁점들은 모두가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이다. 가톨릭교회가 내놓은 이 논설은 일요일을 지키는 프로테스탄트들을 향해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도전이다. 그들은 프로테스탄트의 "비성서적 괴물"을 죽여 놓았고, 앞으로 다시 내놓으면 또 죽일 것을 약속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옳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거기에 일치하는 행동이 따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프로테스탄트들이 답변을 하면, 저들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여 공격을 가하며, 그들이 인정한 권위를 이용하여 실력행사를 하려 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하든 안하든 프로테스탄트가 수세에 몰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로마가 프로테스탄트를 어떻게 보며, 어떤 정신으로 그들을 대하는지는 저들의 논설 마지막 문단에 잘 나타나 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피난처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정정당당하게 "기록된 말씀" 위에 "성경, 오직 성경"의 정신으로 유감없이 굳게 서서, 이른바 '기독교의 안식일'을 내어버리고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 외에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표(에스겔 12:12, 20) 외에는 아무 표도 갖지 않으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보호받을 때, 그들은 로마와 그의 모든 연합 세력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며, 유리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안고 영원한 행복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계시록 18장 및 15장 2~4를 보라.

  프로테스탄트들은 아직 자구책을 강구할 시간이 있다. 그들이 그 길을 따라 한결같이 프로테스탄트의 신앙고백 위에 설 것인가? 아니면 계속 프로테스탄트라고 공언하며 "변호 불능, 자가당착, 및 자멸적" 입장을 고수하고 가톨릭 전통을 지키면서 가톨릭의 조소와 가톨릭의 정죄를 받을 것인가? 그들은 과연 기록된 말씀만을 그들의 유일한 권위와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변호불능, 자가당착, 및 자멸적"인 교리와 관습을 따르며 그 권세의 표를 지닐 것인가?

프로테스탄트들은 성경대로 여호와의 안식일인 제 7일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천주교의 전통을 따라 일요일을 지킬 것인가? 16) 친애하는 독자여 그대는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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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5. 이것은 종교자유협회가 첨부한 부록이다. -편집자

 

각주 16. 주님 당시에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의 유전에 집착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주님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고 지적하셨다(막 7:6, 7, 8). -편집자 

 

 

 

 

부    록  Ⅱ 17)

개신교회의 신조와 행습의 모순

--이 부록은 “로마의 도전과 증언” 제1판이 출판된 후

1893년 12월 23일 가톨릭 미러지가 발표한 논설이다--편집자

 

  이 논설 기사를 찾는 사람이 많고 또 국제종교자유협회에 의해 로마의 도전: 왜 프로테스탄트들은 일요일을 지키는가? 란 제목의 소책자가 시카고에서 출판된 후 시카고, 뉴욕, 캘리포니아, 테네시, 런던,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및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판매되면서 수요가 계속 증가하여, 미러지는 부득불 이것을 영구한 형태의 책자로 꾸며서 수요에 부응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자에서 개신교계의 신조와 행습 간에 존재하는 가장 괄목할 만한 모순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모순은 어떤 합리적 방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을 유일한 스승으로 따른다고 공언하면서, 토요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재론의 여지없이 분명하고 적극적인 성경의 명령을 외면하고 자기들이 표방하는 원칙에 위배되는 가톨릭 영역에 쭈그리고 앉아, 350년 동안이나 온 세상이 보는 앞에 자기의 원칙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변호불능, 자가당착, 그리고 자멸적인 교리 체계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극단적 프로테스탄트 단체인 국제종교자유협회가 우리 기사를 재 출판할 때 첨가한 부록을 소개하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부록Ⅰ의 정독은 우리 논리의 완벽함과, 프로테스탄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다음 두 길 중 하나밖에 없음을 확인해 줄 것이다. 한 길은 부록Ⅰ의 필자의 제안처럼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의 스승인 성경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지난 350년이나 쭈그리고 앉아있던 가톨릭영역을 벗어나 성경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성 있게 가르치는 토요일을 지키기 시작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길은 더 이상 불편한 입장에 눌러 앉아 원칙에 어긋나는 생활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유일한 스승으로 고집하던 주장을 아예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의 시민, 즉 주의 교회의 자녀로 입양하여 자기모순에 속아 희생되는 필연적 결과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 책자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확고히 서 있다. 우리의 주장은 성경을 펴놓고 일일이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적인 프로테스탄트라면 그들의 스승인 성경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을 포기하고 토요일로 돌아가야 하며, 반대로 만일 그들이 일요일을 지키라 명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차라리 스승인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하고 가톨릭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편이 합리적이란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이성과 상식은 두 길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한다. 프로테스탄트는 토요일을, 가톨릭은 일요일을 성수해야 한다. 타협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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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7. 가톨릭 미러(Catholic Mirror)지는 이 논설을 책자로 만들어 일반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제종교자유협회가 ‘로마의 도전과 증언’을 발행할 때 첨부한 부록 1을 전문 그대로 전재했다. -편집자

 

 


 

 

 

 
 

 

[로마의 도전과 증언 원본]

 

 

 

긴 글 끝까지 보아 주셔서 감사드리며 읽으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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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만가지의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고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신 규례야말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에서 비롯된 사랑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을 목적 삼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하나님의 규례인 안식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창 2장 1~3절)

안식일이라 함을 "편안히 쉬는 날" 이라는 뜻으로써 태초에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입니다.

(요14장15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합니다.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요,일요일이 아니다.

막16장 9절[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공동번역 성경에는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안식 후 첫날 과 일요일 은 같은 맥락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안식후 첫날이 일요일이라면 안식일 전날은 토요일 아니겠습니까.

 ▶교회사에서 살펴본 안식일이 토요일인 증거

→교부들의 신앙 108쪽[카톨릭출판사 발행]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이 아니다

→교회사 초대편 193쪽 [대한기독교서회 발행]

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날(일요일)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이렇듯 일요일 예배가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천주교에서 분파되어 갈라져 나간 개신교에서는 일요일 예배는 성경에서 근거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천주교회에서 발행한 '억만인의 신앙'이라는 책에서는 증언하기를 [일요일은 천주고에서 만든 제도요, 개신교회가 천주교의 모든 비리에 대해 거짓을 밝히는 종교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도 천주교회에서 만든 일요일 예배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성경적인 안식일을 못 지키고 있으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일] 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표현에서 나타난 안식일이 토요일인 증거

일반적인 언어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일곱째 날이 무슨 요일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주말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한문 자체의 뜻으로는 '한 주간의 끝'이라는 뜻으로서 일주일의 끝은 일곱째 날이요,

주말이라면 토요일을 지칭하는 명사이지 일요일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국어사전

'일요일'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시면 <일요일→칠요일의 첫째날>

'토요일'을 찾아보시면 <토요일→일곱째날> 이라고 명백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

안식일은 위대하신 창조주의 권능을 기념하는 복되고 성스러운 날입니다.

이날은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 참으로 거룩한 날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영원한 표징으로 삼으시고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인 줄 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출31장 13-14절)

예수님과 신약시대 성도들도 안식일을 지키셨다

[4장 16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행18장 4절~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17잘2-3절 ~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

안식일은 시대와 역사를 초월한 하나님의 성일임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진실히 사모한다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안식일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요4장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안식일은 거룩하고 축복된 날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엄숙하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안식일을 왜 지키나요?

안식일을 지키는 분들만 답변 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여러분은 안식일을 지키고 잇나요?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계시나요? 이 두가지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나요?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나요?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아닌가요?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식일 예배를 지킨다고 전하면 질문자님께서 질문하신 것 처럼 안식일은 구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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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는 안식일 지키나요?

안식일은 안식교에서만 지키는거 아니었나요? 하나님의 교회는 일요일 예배 안지키고 안식일 예배 지키나요? 하나님의 교회도 안식교에서 분파된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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