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해 표기에 대한 우리의 반박 근거는 애시당초 합리적인 관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해 표기를 우리가 반박할 근거를 따지자면, 우리 민족이 여지껏 동해로 불러왔던 앞바다인데 지금 갑자기 타국의 국호를 따른 명칭으로 바꿀 수 없다...라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나라 외교부가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런 근거에 '합리성'을 갖추기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우리 입장 외에도 이웃 국가들 및 기타 세계 각국의 관점에서도 두루 용인되고 납득될만한 주장들을 골고루 내세우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합리성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에서는 국가의 자존심이나 국민정서 등 외부의 시각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한 장면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이죠.
2. 동해(일본해)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들과 세계 각국의 관점
동해(일본해)를 공유하는 4개국이란 한국-일본-중국-러시아를 말합니다. 북한까지 하면 5개국이 되겠죠.
이들이 동해를 일컫는 명칭을 보면 한국은 동해, 북한은 조선동해, 일본-중국-러시아는 모두 일본해로 표기합니다.
중국의 경우 일본과 정서적인 감정이 좋지 않아서 한국 편을 들어주고는 싶지만 일본해에 손을 들어준 이유 중 하나로 '명칭의 적절함'을 들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이미 그들이 평상시에 '동해'라고 일컫는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동중국해).
러시아의 경우엔 조선시대때부터 일본해로 부르며 드나들던 습관이 있는지라 지도 뿐 아니라 모든 학술자료에서 대놓고 일본해로 여지껏 사용해왔습니다.
19세기 한반도를 드나들던 외국 세력들은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독일, 영국 등의 제국주의 열강들입니다. 이들은 현재에도 강대국 중의 강대국들인데, 여기서 현재 가장 목청껏 일본해 표기를 두둔하는 국가가 미국, 영국이며(국제수로기구에 재촉까지) 중국 러시아까지 일본해를 두둔하는 판국에 이들이 주장하는 명칭의 효율성을 반박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전세계 지도의 95%를 점유하는 '일본해' 표기의 입장을 보면, 일본 열도가 태평양과 대륙(한반도 부분)을 분할하는 모양새라는 지리적 특성과 표준화에 따른 기술적 효율을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18~19세기 서양 국가들이 이미 일본해 표기를 사용해왔으며 방향에 따른 명칭이 아닌 고유의 명칭을 사용했다는 주장에서도 점수를 얻은 것이죠.
우리는 이전에도 서해-황해 명칭을 놓고 중국과 겨룬 적이 있는데, 이때도 자국 중심의 방향에 따른 명칭이라는 이유로 패한 적이 있습니다(중국 입장에서는 동해를 서해로 불러야 할 판국). 그리되면 국제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의미죠. 반면 중국은 황하가 흘러들어가는 바다라는 의미에서 '황해'로 표기해왔다는 역사 자료를 들이밀어서 승리했습니다.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스페인 등 2방면 이상의 바다를 낀 나라들이 많은 지중해 주변 국가의 경우에도 자국 기준의 방향에 따른 바다이름을 사용하는 국가가 실제로 없고, 고유명칭의 바다이름을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에게해, 티레니아해, 이오니아해, 아드리아해, 흑해 등등).
영국 서쪽 바다의 경우도 아일랜드를 바라보는 서쪽 바다를 '서해'라 통칭하지 않고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서쪽과 아일랜드 사이를 '아이리쉬해', 웨일즈 서남면과 아일랜드 사이를 '셀틱해'로 부르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프랑스에서는 칼레해협)의 경우 양국 합의로 '채널'이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하기로 했으며 콘월반도와 브르타뉴 반도 사이의 바다는 공식적으로 '영국해협'입니다.
단, '북해'의 경우는 방향성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이하 서유럽 공통의 북쪽 바다를 일컫는 경우죠.
국제수로기구 입장에서는 서해-동해-남해 등의 자국중심 방향 명칭은 아무리 오래전의 자국 역사자료에 있더라도 인정해주기 힘들다는 견해입니다.
동해를 국제표준으로 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는 남쪽바다를 동해로 표시해야 하며 같은 한자권인 중국은 두 개의 동해를 지근거리 지도상에서 봐야 하겠고(중국에서는 동중국해를 동해로 한문표기) 역시 한자권인 일본은 서쪽바다를 동해로 표시해야 되는 상황, 즉 제3자의 시각에서는 국제표준이라기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는 거죠.
우리의 경우 일본해로 낙점되더라도 쉽게 주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요, 동해-일본해 동시표기까지는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은 유리한 입장인 만큼 일본해 단독표기를 주장하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