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와 반일감정에대해서 한번 깊게 얘기해주셨으면합니다..

독도문제와 반일감정에대해서 한번 깊게 얘기해주셨으면합니다..

작성일 2009.12.08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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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방금전에 Yahoo Japn에서 한국의 반일감정에대해서 일본의 한 개인이 수집해놓은 여러가지글을보고 참 욱해서 이렇게 글을올립니다...

 

 제가 일본어를배우고있는단계지만, 어느정도 실력이있어서. .그 사이트에개시된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어나갔는데, 스크랩한 내용을 읽어보면 전혀틀린말이없이.. 심지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게 어쩔수없이 뺏기게될수밖에없는거라는거죠..

 

 그사이트에 게시된내용을 요약해서본다면

 

1.국제법상으로나, 국제적인식으로나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영토

 

2. 한국이 제작한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와의 거리와 방향이 전혀다르게 그려져서 그 지도는 효력이없음

 

3. 한국의 세종실록지리지나, 여러 역사적문헌은 일본과 한국이 승인하지않았으므로, 효력없음

 

4. 일본과 한국이 협정한 공동어획구역에대해서 뭐라말이있던데.. 어려운말이라 해석이불가했지만..

 뉘앙스가, "공동어획이라고 인정해주니깐 한국땅이라고 우기네?" 이렇게되어있더라구요..

 

또 한국의 역사교육에대해 비판하면서, 반세기이상 근대화가 늦은주제에, 역사속의 자세함과 진실을 가르치기보단, 이유없는 반일, 치욕적인역사의 배상심리로 가르치는 국사라고하면서 글이 이어나가더군요..

 설마라고 믿고싶지만, 일본이주장하는것이 모두 진짜라서 국사시간에 독도문제에대해서 단순히 러일전쟁이후에 반환된섬이라고 일단락지은것은 아닐까요??? 한국의 역사가 사실이라면 그렇게 단순히 일단락지을이유가없지않을까요? 국제적 인식은 일본쪽으로 기울어져가는데.. 좀더 확실하고 깊게 독도에대해 가르치지않고 감정적으로 대립하도록 만들어진 국사교과서가 아닐까요??..

 

 http://www.eonet.ne.jp/~mitukiti/chon/top.htm 한국의 반일감정에대해 스크랩해놓은 사이트입니다.

정말 철저하죠.. 일본은 2005년 화해의 의미로, 일본정치가들이 태극기를손에들고 일장기를밟으며 입장하는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직한국은 일본과의 경기에 안중근의사 초상을걸어놓고, 초등학생이 그려놓은것같았는데 독도문제로 들먹거리는 일본을 그림으로 굴욕시키는등..사실을강조하기보단, 역사적인 상황을갖고 감정으로 받아칠려는거죠.. 우리가봤을땐, 멋있어보이고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국제적으로봤을땐 100년이 다되어가는 일을갖고 하는건 찌질하다고 생각하지않을까요??

 

 우리는 갖고있는 정보나 지식이 너무적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너무나 많은걸갖고있어요..

저런 개인이 저렇게 많은양을모았는데.. 일본정부가 국제재판에 제출할 서류는 더많지않을까요?

재판에서도 감정적으로 역사를 들먹이면서 말할수없습니다..

  이문제에대해서, 어느한쪽으로 치우치지않는답변 부탁드릴께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얼마전 올린 답변인데 참고하세요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지만  도움되리라 봅니다

우리는일본에 반일감정을 갖고있지만 일본은 한국에대해 염한사상(厭韓 思想)(무조건 이유없이싫다는생각)

우리가 매번 독도문제나 기타 정신대문제 한일 어업협상등에 협상에 실패하는이유는 우리는 감정적으로대치할뿐 논리가 없는데 기인 합니다 일본이 요구하는것은 감정 손가락 잘라 혈서쓰고하는감정적대처가 아닌  논리로 싸우자는것입니다 집단 항의나 하고 고함으로 냄비처럼 달라올랐다가 식어버리는 그런 감정과 단견이 아닌 논리를무장해야하는우리 입니다

 

독도문제 어제오늘1

 

독도문제

한국인에게 독도 문제란 일본의 논리와 함께 일본 측 입장에 서 있는 제3자의 논리를 극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은 '말도 안 된다'는 말로 끝나는 한국식 화법에 대해 비판 능력이 결여돼 있다고 보거나, 일본 주장을 극복할 수 없어서 변명 내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총성 없는 전쟁터' 독도 문제는 .자칫 민족 감정으로만 흐를 수 있는 영토 문제에 대해 독도가 처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역사적 고증을 통해 독도 문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우리 역사 독도)다.


한일 관계사를 통해 규명한 독도

<우리 역사 독도>는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역대 왕조가 독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한일관계사를 통해 밝힌 '독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독도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독도의 내력을 역사적ㆍ정치사회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이 책은 한일 양국의 울릉도 및 독도 관련 사료를 다루면서 독도 문제를 치밀하게 풀어나간다.

저자가 제시한 자료에는 한반도의 역대 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서 시행한 정책은 물론이고, 일본의 도전에 대처한 왕실과 민간의 구체적 응전 방식, 독도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 양국의 전략과 전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조선의 지도, 일본의 에도막부가 '독도는 조선령'이라고 세 번이나 선언한 점,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표기되지 않은 점 등도 '독도의 정체성'을 밝히는 핵심적인 자료로 제시된다
.

일본계 학자가 던지는 뼈아픈 충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급하게 다뤄야 할 것은,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일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독도영유논리를 체계화하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계의 거물들이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 발언할 때마다 '유감'이라는 말로만 항의할 게 아니라,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서 설명해줘야 한다."
호사카 교수는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있을 때마다 금세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애국심이 아니라 보다 철저한 독도 연구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독도 문제가 한창 타올랐던 1990년대 한국이 주장한 독도영유 논리에는 사실 '허점이 많았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논리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무시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막상 국제회의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정교한 일본의 논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일본은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 사회에 관철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여파로 지난해 미국지명위원회는 독도에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를 '한국'에서 한때 '미지정'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호사카 교수는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며 학교에서 독도 관련 교육을 할 때 한국의 입장만 가르치지 말고,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함께 가르치자고 제안한다.
독도 정책에 있어서 한국에게 유리한 사실 뿐만 아니라 불리한 사실들도 철저히 확인한 후에 교훈과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측 자료는 물론 일본 측 자료와 논리까지 두루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

 

1. 독도와 일본

l독도는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뿌리깊다 할 것이다.
을사조약 체결 후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40호로서 독도를 예의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시네마현으로 편입 시킨다.
2차 대전후 일본의 항복 문서가 인정한 포츠탐선언과 연합군 최고 사령부 훈령 제 677호에 의해 독도는 한국 영토임이 확연하게 인정되고, 이어 우리정부는 1952년 평화선 선언으로 이를 재차 확인한 바 있음은 주지할 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6.25 직후에는 일본의 보수 극단 주의자들이 독도에 침입 자국의 영토 표지판을 박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1952년 일본은 심지어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까지 했으며 1994년 8월에는 동해를 '일본해'로 교과서에 표기하려고 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묵인했다고 발표하여 또 한차레 독도 영육권 문제를 표면화 시켰다. 그리고 1996년 봄의 망언까지 일본은 기회있을때 마다 끈질기게, 그러나 고도의 정략적 계산을 깔고 억지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 있는 곳에 불이 있다고 일본 조야에 끈질긴 독도 망언에 우리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광태씨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만 해도 그렇다. 독도 상식의 국민적 홍보라는 면에서 크게 공헌한 이 노래는 80년대 초쯤 슬거머니 일본에 눈치를 의식한 당국에 의해서 금지곡이 되어 버린다.
그즈음 한국 산악회 소속의 한 산악회가 울릉도 청년들과 함께 독도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고 했다.
이 뜻 있는 작업 또한 외무부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일본을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거듭 뜻을 관철하려 하자 외무부가 마지못해 내린 최후 통보의 내용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수면 위에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원한다면 해저 암봉에 설치하라." 우리 땅 독도에 태극기를 꽂는 일이 왜 일본을 자극하는 행위가 될까.
그것은 제3공화국 이래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펼쳐 온 정치권이 독도 문제를 바둑의 '패'와 같이 정치적 흥정물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1996년에 우리가 열화처럼 독도 망언 규탄 열기는 독도 문제에 관한한, 한 분기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수비 대장과의 전화 통화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국내 여론 갈아 앉히기의 의미 외에도 대외적으로도 가시적인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2. 독도 영유권 문제

왜구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 관원을 파견하고 도민을 철수했던 조선 초기의 공도정책 (空島政策)은 울릉도와 독도를 점점 잊혀져 가는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숙종 때 독도의 어업권을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 분규가 발생했다.
1883 년 공도정책이 폐기되고 개척이 이루어지면서 1895년 울릉도에 도장 . 도감을 임명해 파견했다.
이어 1900년 칙령을 발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정하고 그 관할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 독도로규정해
독도를 공식적으로 우리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1905년 러·일전쟁 중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를 통해 일방적으로 독도를 일본 행정관할에 편입하고 바로 그 해에 을사보호 조약을 강요해 우리 나라 외교권을 박탈, 독도에 '무주지선점'을 선언했다.
1945년 일본은 패전과 함께 침략지역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독도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이 말하는 '침략에 의한 약취' 지역이 아니고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영토 조항에도 독도의 포기를 명기하지 않았으므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일본측 주장이다.
이후 1952년 우리 정부가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여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키면서 영유권이 외교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평화선이 국제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항의하면서 외교문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1953년 한국전쟁 중에는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표식을 해놓았다.
그후 1956년 우리나라는 독도에 경비대를 상주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울릉도에 도항 중이던 일본 어선들이 독도의 주변해역에서 어업을 했던 실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국제법은 영해제도와 같은 국가 주권이 미치는 주변해역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국제법제도를 과거의 사실에 대입하여 독도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한 논리가 될 수 없다.
또한 일본정부는 96년 2월 20일 2백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전면적 설정을 발표하면서 경제수역 설정의 기점에 관하여 일본 관방장관은 배타적경제수역 기점 설정에 관해 "원칙적으로 독도에 관한 일본의 입장은 일관된 것으로 일부 수역을 제외시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독도 영유권 주장에 관한 일본의 기본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독도 를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제외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 정부는 독도는 교섭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독도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배타적경제수역 외측한계가 우리 영해기선으로부터 2백해리이며 중복수역에 관하여 국제법에 따른 관계국간 합의로 경계선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7월부터 계속하여 독도에 대한 학술 조사를 계속하여 왔다. 1981년에는 제4차 학술 조사 연구를 하요 '울릉도 및 독도 종합 학술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독도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하요 많은 사회 단체들이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지금까지 10,000여 그루의 각종 나무를 독도에 조림하여 500여그루나 살리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1996년 4월29일에는 '한국자생식물협회'에서 독도의 토양과 기후에 알맞은 꽃과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억지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은 17세기초 독도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래 그 주변 수역을 실제로 점용함으로써 일본 영토로서의 원시적 권원(Original Title)을 가지고 있었으며, 1905년 2월 '시네마현 고시 제 40호'에 의거 정식으로 여토 편입조치를 취함으로써 국제법상 유효한 확정적권원으로 대체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일분은 '국제법상의 선점 에 의한 합법적인 영토 취득 이라고 하면서 이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타국으로부터 아무런 항의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주장의 허구성 독도에 관한 일본최초의 기록 문헌인 <은주시청압기>에는 독도와 울릉도를 고려에 속한 것으로 은기 를 일본의 한계로 기록하고 있어 일본 영토로서의 원시적 권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자기모순일 뿐이다.
또한 국제법상으로 선점에 의한 영토 취득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1. 그 지역이 무주지역이어야 하고
2. 그 지역을 영토로 취득하겠다는 국가의 의사 표시가 있고 또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표하여아하며
3. 그지역의 실효적 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아래와 같이 세가지 요건을 모두 구비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국제법에 해당도 되지 않는다.

첫째: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512년에 한국 영토가 된 후 계속하여 한국의 영토이었으며 1905년까지 한국에 의해서 포기된 적도 없고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로부터 영유권 도전을 받은바 없으므로 독도가 무주
지역이 아니었음을 명백하다.

둘째:일본은 영토 취득 의사를 1905년 지방 자치단체의 고시를 통해 대회에 공표했다고 하나, 이를 국가의 대
외적 의사 표시로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독도는 1900년 (칙령 제41호)에 이미 한국 정부의행정 구역
개편을 통해 한국 정부의 관활하에 있었다.

셋째:일본은 독도의 현지 측량,토지 대장에 기입,해산물 포획 면허제 등을 채용하였다고 하나, 객관적으로 국
가 영역으로서 계속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는 증거가 없다. 반면에 한국은 6세기 이래 정도의 차이는 있
으나,항상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왔다.

 

3. 당당히 지켜야 할 우리국토, 독도
독도는 온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귀중한 국토이다.
신라의 이사부 이래 조상대대로 지켜져 온 독도는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독도를 아름답고 편리한 곳으로 가꾸고, 당당하게 지켜야 한다.
첫째:독도의 지리, 역사, 산업, 문화 등을 바르게 알고, 독도를 가꾸며 지키는 일에 국민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한다.

둘째:정부에서는 적극적인 개발 자세로 충분한 부두 시설, 동도와 서도를 잇는 철교 가설, 동도와 서도 사이에 흩어져 있는 다수의 암초 위에 건물 건립, 용출수 개발 및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최신 시설설비,
발전 시설(풍력, 화력 등) 건설 등 독도 개발에 힘써야 한다.


셋째:독도를 살기 좋은 낙원으로 개발하고 유인화정책을 적극추진하여 독도에 거주하는 주민을 늘려야 한다.

 

넷째:독도에 우리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답고 푸르게 가꾸어야 한다. 다섯째:독도와 울릉도를 하나의 관광
구역으로 묶어 두 섬의 절경과 함께 해안 및 해저 관광까지 포함하는 관광지로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힘써야 한다.
여섯째:독도를 초, 중, 고등학교 및 대학교 학생들과 청소년들의 국토순례 코스로 정하여 국토사랑의 마음을 일깨워야 한다.

 

한일 관계사를 통해 규명한 독도

<우리 역사 독도>는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역대 왕조가 독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한일관계사를 통해 밝힌 '

우리는  독도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독도의 내력을 역사적ㆍ정치사회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대비해야 하는데 우리는 논리가 부족하고 감정만 앞서있습니다.

자료에는 한반도의 역대 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서 시행한 정책은 물론이고, 일본의 도전에 대처한 왕실과 민간의 구체적 응전 방식, 독도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 양국의 전략과 전술 등을 역사적으로 풀어야하는데.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조선의 지도, 일본의 에도막부가 '독도는 조선령'이라고 세 번이나 선언한 점,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표기되지 않은 점 등도 '독도의 정체성'을 밝히는 핵심적인 자료로 볼수있다.

 

평화선(Peace Line, Syngman Rhee line)은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대통령령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을 공표함으로서 설정된 한국과 주변국가간의 수역 구분과 자원 및 주권 보호를 위한 경계선이다. 이는 오늘날 배타적 경제 수역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렇게 해양 경계선이 획정되었는데 이승만은 이를 "평화선"이라 불렀다. 이 경계선은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포함하고 있다

 

1952년이승만대통령은 일본에게 엄중하게 경게선을 선포하여 일본이 독도나 어로수역에 일체의 허튼수작을못하도록 못을박은것입니다 이게 평화선입니다(이승만 라인)

 

1945년 9월 27일 미국이 일본어업의 조업구역으로 설정한 ‘맥아더 라인’이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미일평화조약이 1952년에 발효됨에 따라 무효화되자 이승만은 이를 대체할 법안으로 당시 한국과 일본과의 어업분쟁에서 대한민국의 주장에 의한 방위 수역을 설정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 주변 수역 50-100해리의 범위를 가지고 있다.

 

 

1952년 1월 18일에 한국정부가 "인접해양에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 선언)을 발표하자 동년 8월 28일일본 정부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의 항의를 한국정부에 해왔다. 이로부터 독도의 영역주권의 귀속문제가 한일간에 공식적으로 문제되기 시작했다.

1954년 9월 25일 일본정부는 독도문제를 법적분쟁으로 보고 이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해결하는 제의를 한국정부에 해왔고, 1954년 10월 28일 한국정부는 이를 일축하는 항의를 일본정부에 송부했다

당시에는 일본은 국제연합의 가맹국이 아니었으나(1956년에 가입했다)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의 당사자였다. 그러나 한국은 둘 다 아니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재판은 양 당사국이 각각 국제연합의 가맹국이거나 국제사법재판소규정에 가입했어야 한다. 일본은 이 조건을 충족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이 당시에 동의를 했어도 국제사법재판소는 재판을 시작할 수 없었다

현재는 한일 모두 국제 연합의 가맹국이기 때문에, 양 당사국이 합의만 하면,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이 시작된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에는 일본인 재판관 히사시 오와다가 재판소장으로 있지만 한국인 재판관은 한명도 없다.

 

 

그러나 이 평화선은 1998년 신 한일어업조약을 체결하면서 독도를 일본에유리하도록 한국 일본 중간지대에 두기로 협정을맺었습니다 이당시 IMF사태를맞아 돈빌리는데 급급하여 일본의요구대로해준것입니다

이때 일본 대표단의한말은  우리가 평화선 선포 이후 독도에대해 한마디도못했는데 이제사 독도문제를 합법적으로 거론할수있게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해 한국과 일본의 법률적 지위가 획기적으로 변경된 것은 1999년 ‘신 한-일 어업협정’의 체결부터다. 1996년부터 일본이 독도에 관한 공격적이고 구체적인 영토권 주장을 시작하고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종래의 회피적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독도 문제를 한-일 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구조를 제공하고, 영토권 주장에서 한국이 일본과 거의 대등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독소 조항을 포함하는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원의 공동관리가 이루어지는 중간수역 속에 한국과 일본의 영토권 주장이 대립되고 있는 독도를 위치시켰다는 것이다.

 

신한일어업협정이후 동해경게선

 

김대중정부 "신한일어업협정"으로 대화퇴 어장 55% 가량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에 포함되는 바람에 대화퇴 어장에서의 우리 어선 어장이 늘어난게 아니고 오히려 줄어들었고, 중간수역 안 45%의 대화퇴 어장에서 우리 어선은 일본과 쿼터제로 조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로인하여 우리 어민들 불만이 매우 크다"

 

엄연히 우리 영토인 독도를 포기하고, 그 수역을 포기하고, 어장까지 포기한

김대중정권의 "신 한일어업협정"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주장과 반박

2008년 2월, 일본 외무성은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라는 제목의 문서를 인터넷에 게시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에 대하여 〈일본 외무성의 독도 홍보 팜플렛에 대한 반박문〉이라는 글을 게시하였다. 양측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외무성 (주장)

동북아역사재단 (반박)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제시한 자료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역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본의 관청에서 펴낸 자료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관측되며., 15세기 이후의 여러 서적에 독도를 설명하였다.

일본은 울릉도로 갈 때의 정박장으로 독도를 이용하고, 독도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여,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하였다.

17세기 중엽, 19세기 말 일본의 문서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어 있다.

일본은 17세기 말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였으나, 독도는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다.

17세기 말 돗토리 번은 에도 막부에 대한 답변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돗토리 번 소속이 아님을 밝혔다.

안용복의 진술 내용은 일본의 기록과 맞지 않는 등 의문점이 많다.

안용복의 활동은 비변사에서 철저한 조사가 있었다. 일본의 기록만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독단적인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1905년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하여 독도 영유 의사를 확인하였다.

1905년의 편입은 러일전쟁과 한반도 침탈의 과정에서 행하여진 것이며, 불법·무효한 조치이다. 한국은 외교권이 박탈된 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기초 과정에서 한국은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도록 요구하였으나 미국은 독도가 일본의 관할 하에 있다고 언급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일본은 대일강화조약 직후 독도가 일본의 관할구역에서 제외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독도는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 훈련 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본 영토로 취급되었음을 시사한다.

미 공군은 한국의 항의에 독도를 훈련구역에서 해제하였고, 한국측에 공식으로 통고하였다.

한국은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엄중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한 적이 없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한국이 이를 거부한다.

일본은 센카쿠 제도나 북방 4개 섬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하면서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재판소 회부를 주장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대응못하고 시위나 하고 혈서나 써고 그게 우리의 감정적 대응논리입니다



일본계 학자가 던지는 뼈아픈 충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급하게 다뤄야 할 것은,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일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독도영유논리를 체계화하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계의 거물들이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 발언할 때마다 '유감'이라는 말로만 항의할 게 아니라,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서 설명해줘야 한다."

일본의 한 교수는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있을 때마다 금세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애국심이 아니라 보다 철저한 독도 연구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독도 문제가 한창 타올랐던 1990년대 한국이 주장한 독도영유 논리에는 사실 '허점이 많았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논리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무시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막상 국제회의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정교한 일본의 논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일본은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 사회에 관철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여파로 지난해 미국지명위원회는 독도에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를 '한국'에서 한때 '미지정'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호사카 교수는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며 학교에서 독도 관련 교육을 할 때 한국의 입장만 가르치지 말고,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함께 가르치자고 제안한다.

독도 정책에 있어서 한국에게 유리한 사실 뿐만 아니라 불리한 사실들도 철저히 확인한 후에 교훈과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측 자료는 물론 일본 측 자료와 논리까지 두루 포괄하고 있는 논리와 역사가 필요합니다

 

일본의 독도침탈 장기전략과 신한일어업협정

 

위와 같은 신한일어업협정의 내용은 독도 '논쟁'문제를 '영토분쟁'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에 끌고 가서 합법적으로 독도를 탈취하려는 일본의 장기전략의 제1단계 전략에 한국 외교통상부가 말려들어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을 근원적으로 훼손시키는 협상을 한 것이 아닌가?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독도 주변 12해리의 영해를 '중간수역'에서 제외해 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국제적으로 유효하려면, 독도를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이 섬을 ‘독도’라고 표시하여 간접적으로라도 한국영토임을 시사해야지, ‘경도.위도’로 표시하여 일본영토를 대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거나 또는 아무런 표시도 않았다면, 일본측은 이 영해가 장차 '공동수역'이라거나 ‘일본영해이다’라고 해석할 터인데, 영해 12해리를 갖는다는 설명이 어떤 효과가 있겠는가?

   
국제사회에서는 아예 표시가 없는 이 섬이 국제영토분쟁지로 인식되어, 장차 이 섬이 한국에 귀속되는가 일본에 귀속되는가에 따라 이 섬 주변의 12해리 영해는 한국영해도 될 수 있고 일본영해도 될 수 있다고 해석하지 않겠는가?   
독도를 아예 표시도 못하고 ‘독도’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못해놓고, 독도 주변에 12해리 영해를 갖는다는 설명이 마치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외교통상부의 해석은 얼마나 한국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인가?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이 ‘한국의 실효적 점유’만을 ‘잠정적’으로 전제해 놓고, 한국과의 어업협정 및 기타 각종 협상과 협정을 통하여 독도를 국제령토분쟁지로 만들고 국제법상으로 점차 한국과 대등한 지위를 갖추어 가다가, 한국이 취약한 시점을 택하여 일본의 해군력 등 실력을 동원하여 독도를 탈취하여 일본의 실효적 점유.지배를 설정한 다음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독도문제’를 국제재판소로 갖고 가자고 제안한다면, 우리 대한만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일본의 장기전략 실행의 경우에 이번 새 한일어업협정의 내용이, 특히 '중간수역' 설정과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킨 것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것이 현재의 한국의 완벽한 배타적 독도영유권에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니면 일본측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이번 새 한일어업협정은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밝히지 못하고, 도리어 불필요한 중간수역을 설정한 후 한국영토인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음으로써 일본의 장기전략에 말려들어 대한민국의 배타적 독도영유권을 근저에서 훼손시키기 시작했다는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   

   
독도는 역사적 권원과 국제법적 지위를 한국만이 완벽하게 가지고 있고 일본은 갖고 있지 못하며, 실효적 점유도 한국이 하고 있는 한국의 완벽한 배타적 고유영토이다. 이번 새 한.일어업협정은 이러한 한국의 배타적 고유영토인 독도를 한국 EEZ안에 넣지 못하고 한.일공동수역인 '중간수역'. '잠정수역' 안에 넣어 한국의 배타적 독도영유권을 훼손하였다. 이 점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독도를 확실하게 수호할 수 있다고 본다.

신 용 하  한양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EEZ법안(입법예고)

1.EEZ설정:대한 민국은 국제 해양법 관련 규정에 따라 EEZ를 설정함.
2.EEZ의 범위: EEZ는 영해 및 접속 수역법 제2조에 규정된 기선으로부터 그 외측 한계 200해리선까지 이르
는 수역 에서 대한민국 영해를 제외한 수역으로 함. 그러나, 대한민국의 EEZ 수역과 인접국의EEZ가 중첩될 경우에는 국제법에 따라 관계국과의 합의하여 그 경계를 확정함
3.EEZ의 관할수역
4.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우리나라와 일본의 EEZ 관할 수역 분쟁 예상 지역은 독도 근해임
5.EEZ 선포로 일본 근해의 조업, 중국해의 저인망 어장, 대화퇴 오징어 어장의 출어가 금지되어 우리 나라에
도 큰 타격이 예상됨
6.EEZ에 따른 권리: 해저의 상부 수역, 해저 및 그 하토층의 생물이나 무생물 등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주권적 권리와 해수, 해류,해풍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 등 EEZ의 경
제적 개발과 탐사를 위한 그 밖의 활동에 관한 주권적 권리
7.인공섬 시설 구조물의 설치나 사용, 해양 과학 조사 및 해양 환경의 보호, 보전에 관한 관할권
8.해양법에 규정된 EEZ에 대한 그밖의 권리
9.유인도의 조건: 국제 해양법상 유인도의 조건은 두 세대 이상이 거주하고, 식수가 있어야 하며 나무가 자라
야 한다.
10.배타적 경제 수역(EEZ) 배타적 경제 수역은 자기 나라의 해안으로부터 200해리 범위 내의 수역을 의미한
다.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연안국은 수역 내의 해면과 해저,해상 ,하층토와 그 상부 수역 외 생물, 비생
물 천연자원 의 탐사, 개발, 보존 및 관리를 위한 경제적 활동에 관련한 모든 주권적 권리를 행사 할 수 있
다. 또 인공섬 등 시설물의 설치, 사용과 해양에 대한 조사와 환경 보존 등에 관한 관할권도 가진다.
11.EEZ에 관한 협약초안은 1982년 12월 제3차 유엔 해양법 회의에서 [초안](ISNT)이 작성된뒤, 1994년
11월 최종 협약이 공식적으로 발효되기에 이르렀다.

 

 

독도문제와 반일감정에대해서 한번 깊게...

... 우리는일본에 반일감정을 갖고있지만 일본은 한국에대해 염한사상(厭韓 思想)(무조건 이유없이싫다는생각) 우리가 매번 독도문제나 기타 정신대문제 한일 어업협상등에...

지나친 반일감정문제점에 대하여

지나친 반일감정이 한일 양국간에 미치는 문제점, 즉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감정이라는... 일본연예인게시판에 독도얘기가올라오고그럽니까?...

그리고 제 반일감정이 나쁜건지...

... 독도, 역사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욱일기 사용, 하시마 섬 유네스코 등재, 위안부 문제 등등.. 흔히 일본 유학... 제가 적은 반일감정 태도에 대해서 고쳐야할 부분이...

독도대해서 [내공]!!

...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냐면요... 시인 '윤동주'씨의... 의미깊게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 우리의 입장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독도가 진짜 우리땅은 맞긴 한가요?

이런 글을쓴다고 친일파는아닙니다 저도 반일감정을 가지고있는 한 청년입니다... 요즘 독도대해서 인터넷이다... 말해주셨으면합니다..... 진짜 일본놈들 독도 지네땅이라고...

일본 독도 우리 나라는 약한건가요?

... 독도문제로 떠들어대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반일감정의... 매정한가에 대해서 알려고 할겁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대해 얘기해 드릴까 합니다. 독도에 해병대가 아닌 전경이...

독도는 우리땅?일본땅?

... 독도문제로 떠들어대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반일감정의... 매정한가에 대해서 알려고 할겁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대해 얘기해 드릴까 합니다. 독도에 해병대가 아닌 전경이...

독도가 일본땅인 근거,이유

... 할 얘기 아닙니까? 이상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더 이상 역사적 문제대해서는 코멘트 하지 않겠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인터뷰 후에 조다이 의원은 다시 한번...

독도는 왜 한국 땅이죠?

... 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도와주세요 ^ ^ 영어와...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친구와 독도에 관하여 얘기를 많이 나누는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