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답변드릴게요.
이번 전쟁이 아닌 '돈바스 내전'의 경우, 배경이 된 사건인 '유로마이단 회의'를 반드시 언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로마이단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의 지역별로 다른 문화적, 성향적 차이를 언급해야 하고요. 그리고 왜 우크라이나 인들이 러시아를 증오하게 되었는지도 살펴봐야 해요. 따라서, 글이 좀 길 겁니다.
1. 우크라이나의 지역별 성향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서부(갈리치아 혹은 할리치나), 중부(드니프르 우크라이나), 돈바스를 중심으로 한 동부, 그리고 흑해 연안의 남부로 나눠지는 건 아시겠죠. 그중 동부와 남부의 경우, 소련 이전에 있었던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소련 시절까지 이어진 공업화, 산업화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러시아로부터 인구가 유입됩니다. 소련 정부에 의한 강제 이주도 있었고, 산업화된 도시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찾아온 자연스러운 유입도 있었지만요.
여하튼 이런 이유로 도네츠크, 루간스크, 마리우폴과 오데사, 크림반도 등 흑해 연안 도시들이 속한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에서 온 러시아인과, 이들과 혼인 등으로 맺어진 친 러시아계 주민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친 러시아 세력을 형성하게 되죠. 심지어 언어조차도 우크라이나 어보다는 러시아 어가 주로 사용되는 곳이 이곳입니다. 애초에 러시아 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서부의 갈리치아 지역, 즉 르비우를 중심으로 한 지역들과 키이우(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드니프르 우크라이나의 경우, 자신들을 러시아보다는 유럽의 일원으로 여기며 친 유럽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나 키예프 등은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이 무너진 18세기 이후에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지만, 서부인 갈리치아와 그 중심도시 르비우는 폴란드 멸망 이후에도 러시아가 아닌,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이 통치를 하거든요. 그러니 그들은 단 한 번도 러시아의 영토였던 적이 없기에, 러시아 이주민의 숫자도 적고 친유럽 성향이 강한 거죠.
더욱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고 소수민족의 자치권 보호에 힘쓴 레닌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 등 소련 내의 여러 소수민족 국가를 대놓고 탄압한 스탈린 통치 시기, 1932년에서 1933년 사이에 발생한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인한 대량학살에 의해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의 소련, 러시아에 대한 증오는 뼈에 새겨집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목적으로, 또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소련 정부는 러시아의 영토였던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내주죠. 레닌 시절에는 돈바스 지역을,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시절에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할양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91년 12월 26일, 소련은 붕괴되고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맞이하죠.
2. 독립 후의 우크라이나 정치지형.
이런 내부적인 갈등 요소를 안고,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분리되어 독립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계는, 바로 이 요소들 때문에 정확하게 둘로 양분됩니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에 반감을 가진 서부와 중부 우크라이나 인들과, 친러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역감정이 우크라이나 정치계의 지역적 기반이 된 거죠.
우리나라의 경우 동서 간의 지역감정 문제는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닌, 분할통치라는 통치의 구습을 답습한 군사독재 출신 정치인들이 일부러 그리 되도록 유도한 측면이 강하죠.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다릅니다. 비유하자면 거주하는 주민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 문화가 모두 다른 우리나라와 일본의 간사이 지역을 한 나라로 뭉뚱그려 놓고, '같은 나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바로 이런 탓으로, 우크라이나 정계는 둘로 나눠져서 다툽니다. 그리고 정권을 잡는 것이 서부를 기반으로 한 세력이냐, 동부를 기반으로 한 세력이냐에 따라서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도 달라지죠. 당연히 그때마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지역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극심한 반대가 이어지고요.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3년 11월에 시작되어 이듬해에 종료된 '유로마이단 사태'입니다.
3. 유로마이단 사태.
보통 서방 측, 혹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이 사건을 가리켜서 '유로마이단 혁명'이라는 말을 쓰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싫어합니다. 왜냐, 그것은 우크라이나 서부나 서방 측의 시선으로만 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죠.
보통 서방 언론은 이 사건을 가리켜 '민주화 시위'라고 주장합니다만, 실상은 다릅니다.
애초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그 어느 정부도 '독재'를 한 사례가 없습니다. 정권교체 시기가 되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이 교체되어 왔고, 특정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해 온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정경유착이나 올리가르히 문제 등 내부적으로 보면 '정치가 개인'의 부패 문제는 있었지만, 적어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선거제도 등 '민주주의 제도' 자체는 비교적 건강하게 잘 유지되어 온 민주국가였거든요. 그리고 유로마이단 사태 당시의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정권 역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통치 정당성이 확보된' 합법적인 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당 정권이 추진하는 친 러시아 성향의 정책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중부와 서부의 주민들이 '불법적인 폭력시위'를 벌여서, 결국은 '합법적인 정부'를 퇴출시켜버린 사건이 바로 '유로마이단 사태'입니다. 진짜 민주화 시위요 평화시위였던,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는 전혀 다르죠. 당시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자신들은 물론이고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 등에서도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만큼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고, 그들이 주장하는 'EU 가입'과 러시아가 아닌 서방 측과의 경제협력 요구 역시 우크라이나 전 국민의 바램이 아닌 친유럽 성향의 서부 및 중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바람이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걸 해결하고 싶었다면, 다음번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서 우크라이나 서부를 기반으로 한 친유럽 정권을 세운 후 그 정권을 통해서 해결했어야 할 문제였다는 거죠. 선거 자체가 아예 실시되지 않는, 민주주의 질서가 파괴된 상황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서부와 중부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민주주의 질서가 아닌 폭력을 사용했고, 그 결과 합법적인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야누코비치 정권 역시 경찰뿐만이 아니라 특수부대까지 동원해서 시민들을 공격하고 사살하기도 하는 잘못을 저질렀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이 경우 그 잘못은 폭력시위를 시작한 친 유럽 성향의 주민들에게 그 잘못이 있습니다. 그러니 야누코비치 정권을 지지했던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시민들 역시, 당연히 들고일어난 것이고요.
이게 바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내전의 시작입니다.
4. 분리독립 요구.
유로마이단 사태 과정 중, 2014년 2월 22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친유럽 성향의 의원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2012년 제정된 제2공용어 관련 법을 없애 버립니다. 이것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친러계 주민들을 겨냥한 것으로, 특정 지역의 총 인구 중 10%를 넘기는 소수민족의 언어는 제2 공용어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한 법이었죠.
이 법을 일방적으로 친유럽 성향의 서부 출신 의원들이 삭제해 버리자,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서 우크라이나 남동부 시민들은 들고일어납니다. 그러고는 시위를 벌이고, 일부 대도시의 경우 해당 주의 행정부를 장악하고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주민 투표를 실시하죠. 그리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우크라이나에서의 분리독립과 러시아에의 병합을 요구합니다. 이곳들이 바로 도네츠크, 루간스크, 마리우폴, 세바스토폴(크림반도), 오데사 등의 지역이죠. 즉, 우크라이나 중부와 서부가 친유럽을 주장하며 유로마이단을 일으키자, 남부와 동부 주민들 역시 친 러시아 성향을 드러내며 해당 지역들의 러시아 병합을 요구한 겁니다.
그렇다면, 제3자인 우리가 보기에는 애초에 우크라이나 동남부는 역사적으로도 러시아 땅이었던 데다가 인구 구성 역시 러시아인이 다수이고, 서로 붙어있어봐야 싸움만 하고 피곤한데 그냥 갈라서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우크라이나 동남부는 '부자 동네'거든요.
5. 경제적인 문제.
우크라이나는 딱 잘라 말해서, 그다지 잘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주로 겨울에는 밀 농사, 여름에는 해바라기를 길러서 해바라기씨를 압착해서 추출한 해바라기씨유를 수출해서 돈을 벌죠. 그 외에 중공업이나 광업 등의 경우엔, 해당 시설들이 돈바스를 중심으로 흑해 연안 지역, 즉 동남부에 몰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업시설들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자포리자 원전을 비롯한 발전 시설 역시 대부분이 동남부에 몰려있죠. 게다가 오데사를 비롯해, 곡물 수출을 위한 항구들 역시 동남부에 몰려있고요.
즉, 우크라이나 경제에 있어서는 동남부 지역이 금싸라기 땅이란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돈바스 지역의 경우, 우크라이나 국토 면적의 10% 안팎인 지역이 우크라이나 경제에서는 자그마치 25% 이상을 차지하죠. 바로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중부와 서부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미워하면서도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욕심인 거죠. 자신들 스스로도 그 땅들이 원래 자신들의 땅이 아닌 러시아 영토인 걸 알지만, 그냥 일단 우기고 보는 겁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에 들어선 친유럽 성향의 정부들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친러 성향 주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나 악질적인 것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아니라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로 활동하기 시작한 극우 성향의 민간조직들을 이용했다는 점이죠. 이러한 대표적 사례는 2014년 5월에 있었던, 오데사의 친러 성향 주민들의 시위를 공격한 친유럽 성향 조직의 공격입니다. 이 당시 양측의 충돌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죠. 그리고 이런 시위는 비단 오데사뿐만이 아닌,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마리우폴 등 여러 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러시아가 움직이죠.
6. 러시아의 선택, 크림반도 병합.
이 당시 러시아 역시, 무조건 친러 주민들을 위해서만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자신들에게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움직였고, 그 결과 먼저 선택된 것이 바로 세바스토폴을 비롯한 크림반도 지역의 병합이었죠.
2014년 당시, 크림반도 자체는 1954년 흐루시초프가 우크라이나에 할양한 상태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영토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도시이자 항구인 세바스토폴의 경우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는 특별행정구역인 상태였고, 특히나 러시아는 이 항구를 장기 조차하여 자신들의 '흑해함대'의 모항으로 삼고 있었죠. 하지만 러시아에 적대적인 친유럽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는, 흑해함대의 안전이 불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러시아에의 병합을 요구하는 각 지역들 중, 러시아는 가장 먼저 크림반도에 자국군을 투입하고 병합을 이뤄낸 겁니다.
이 당시 우크라이나 군은, 전혀 훈련이나 장비 면에서 러시아 군을 상대할 수 없는 처지였죠.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아예 교전 자체를 포기하고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는 것을 묵인합니다. 하지만 크림반도는 몰라도, 돈바스까지 러시아에 넘기기는 싫었던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병합으로 더더욱 강하게 시위를 벌이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의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돈바스 내전의 시작이죠.
7. 돈바스 분쟁과 민병대.
돈바스 내전의 발발 시기는, 대략 2014년 4월 경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내전'이 아닌 '분쟁'으로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왜냐, 적어도 친러 주민들은 이 당시 제대로 된 무장세력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때 처음에는, 친러 성향 시민들의 시위는 조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조직적이 아니었다는 말은, 비록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요구하거나 러시아와 병합시켜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그들의 무장은 일반적인 시위대가 할 수 있는 무장인 새총, 투석, 쇠 파이프 등의 무기를 동원한 폭력시위의 형태였을 뿐 본격적으로 총기를 갖추고 정부를 공격하는 형태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장한 경찰'과 '친정부 성향 민병대'를 투입합니다. 이들은 소속은 경찰이나 민병대여도,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공한 총기들로 무장한 '준 군사조직' 형태였습니다. 승패는 불 보듯 뻔했죠. 시위대는 진압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특히나 1980년 당시 계엄군이 투입된 5.18 때처럼, 친러 성향 시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죠.
이때 활약한 친정부 민병대 조직들 중 현재 매우 유명해진 조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요즘 언론에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보도되는 네오나치 성향의 '아조프 연대(당시 명칭은 아조프 대대, Azov Battalion)'입니다. 이들은 본래 한 축구팀의 훌리건들로, 극우 슬라브 민족주의에 물들면서 점차 반러 성향이 강해졌고 이후 돈바스 내전에 참가해서 '극악한 활동'을 하죠. 아조프란 이름은 마리우폴 옆의 만 형태의 작은 바다인 '아조프(아조우) 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https://www.ohchr.org/sites/default/files/Documents/Countries/UA/Ukraine_13th_HRMMU_Report_3March2016.pdf
https://www.ohchr.org/sites/default/files/Documents/Countries/UA/Ukraine_14th_HRMMU_Report.pdf
위의 두 개의 링크는, 아조프 연대의 '극악한 활동'에 대한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의 보고서 입니다. 영문 PDF 파일이니 전문을 확인하시려면 번역해서 보시길.
대강 설명하자면, 이들은 2014년부터 위 조사가 이루어진 2016년 정도까지 약 12,000명에서 16,000명의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는 내용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면 어린이에게 기름을 끼얹고 산채로 불을 질러서 태워죽인다던가, 길가던 여성들을 납치해서 성고문과 강간을 자행한 다음 증거 인멸을 위해 해당 여성들을 학살하고 그 시신은 태우거나 암매장하는 등의 극악무도한 행위들을 저질러왔죠.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아조프 대대는 '여러 친정부 성향 극우 민병대 중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러한 민병대, 그리고 우크라이나 무장경찰의 탄압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친 러시아 주민들은 자경단을 조직합니다. 가만히 있는 시민들의 집안까지 극우 민병대가 밀고 들어와 총기를 난사하고 약탈한 다음, 집에 불을 질러서 다 태워버리는 판인데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때 러시아는 친러 성향 자경대에게 총기등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양상은 또 달라집니다.
8. 진짜 내전의 시작.
친러 성향의 자경대가 조직되고 러시아가 이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하자, 이제껏 자기들 마음대로 설치던 우크라이나 정부 소속의 무장경찰과 아조프 대대등의 극우 민병대는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때부터는 아예 경찰이 아닌 '정규군'을 투입하고 탱크와 장갑차, 야포, 전투기나 폭격기를 동원해서 해당 지역에 대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진짜 내전의 시작인거죠. 젤렌스키는 티비에 나와서 러시아어로, 자신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폭격하란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했죠? 구라입니다. 2014년부터 무려 7년 넘게,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공격해 왔거든요.
그리고 이때 부족한 병력 보충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범죄 행위를 일삼은 네오나치 성향의 아조프 대대를 정규군으로 편입시키죠. 참고로 네오나치 무장조직을 정규군으로 편입시킨 나라는, 전세계 전체를 뒤져봐도 우크라이나가 유일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조차, 바그너 그룹이라는 네오나치 성향 무장단체는 비록 실제적으로는 러시아의 특수부대 일지라도 형식적으로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입니다. 또 정부와 상관없는 민간군사업체인 PMC 형태를 취하고 있고요.
여하튼 러시아는, 이 사건을 당연히 이용합니다. 물론 러시아가 친러 자경단에 무기를 공급한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확전이 되면서 자신들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거든요. 특히나 아조프 대대의 경우,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탈나치화'를 주장하는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의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죠.
이후의 사태는 대강 알고 계실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9. 러시아의 진짜 목적.
사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내세운 명분들, 즉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 이주민들과 친 러시아 세력의 안전확보, 이런 건 다 지나가는 개도 안믿는 소리일 뿐입니다. 러시아가 원한 것은 딱 세가지죠. 우크라이나 내의 친러 정권의 수립과 NATO와의 완충지역 확보, 그리고 흑해지역 완전 장악.
보통 사람들이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제 1 목표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남부회랑'의 확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사실 이건 반만 맞는 말입니다. 왜냐, 분명 러시아군의 제 1 전략목표가 남부회랑의 확립이고, 그걸 위해서 러시아 군 내부의 '정예병력'을 마리우폴 등 남부전선에 투입한 건 맞지만, 러시아가 원하는 건 남부회랑 자체가 아니라 그를 이용한 '흑해 전체의 장악'이기 때문이에요. 즉, 주요 수출품이 부피가 큰 농산물인 우크라이나에 있어서, 크림반도 뿐만 아니라 흑해연안의 항구 전체가 러시아 손에 들어가면 우크라이나는 거의 유일한 수출품의 수출길이 막혀버리는 셈이거든요.
이렇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인 부문에서 좋든 싫든 러시아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걸 노리고 러시아는 남부회랑을 완성하려고 마리우폴에 그 많은 공격을 가했던 거고요.
하지만 원하던 남부회랑은 확보했지만, 그 다음 목표들인 친러 성향 정권 수립과 나토와의 완충지역 확보는 이루지 못했죠. 오히려 이제껏 완충지대로 남아있던 북부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신청하면서, 러시아는 무려 1천 킬로미터 이상에 걸쳐 나토 소속 국가와 새로 국경을 맞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일부 이익을 얻었을지 모르나, 전략적인 면에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죠.
10. 현재의 전황.
현재의 전황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교착 상태에요.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의 6.25 당시나 임진왜란 중 정유재란을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사이트 하나 링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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