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 전쟁전략은 무엇인가요

칭기즈 칸 전쟁전략은 무엇인가요

작성일 2023.07.16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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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

초토화(+공포심을 심어줘 적이 다시는 대항하지 못하게 만듬)

조직을 명확히 해서 소규모 부대라도 알아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함

로 간력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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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게 빨리 달리는 거죠.

몽골 기병대가 말 한마리만 타고 다니는게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댕기다가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 탔죠.

그래서 이동 속도가 어마무시하게 빨랐습니다.

얼마나 빠르냐면 다른 나라를 치고 들어갈 때 그 나라 전령들이 소식을 전하기도 전에 몽골군이 먼저 도착했어요.

그리고 보급도 매우 쉬웠죠.

말을 끌고 다니는데 말젖이 나오죠? 말은 풀만 먹이면 젖이 나옵니다.

물론 다 암말만 데리고 다니는건 아니지만 암말도 있었어요.

그리고 말젖을 말려서 휴대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말 타고 하루종일 달려 댕기면서 화살도 잘 쏘니까 사냥을 해서 식량을 해결하는 것도 손쉬웠고 적을 약탈해서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죠.

아주 그냥 하루종일 말 갈아타면서 우르르 몰려와 화살 쏘고 가는데 그걸 당할만한 나라가 없었지요.

몽골 기병대가 궁기병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창기병도 있었죠.

그리고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활용했고요.

지나가는 곳마다 여자와 애들은 다 죽이고 건장한 남자만 잡아다가 겁탈... 아니 겁탈이 아니라 겁박을 해서 부려 먹었습니다.

일 시키는데 싫은 티를 내면 바로 죽였고요.

싫은 티 안 내고 안 죽으려고 졸라게 열심히 일을 해도 죽을때까지 부려 먹었습니다.

적군이 성안에 틀어 박혀서 수성전을 준비한다? 그럼 오는 동안에 잡아온 포로들에게 공성무기를 만들게 하죠.

그리고 총알받이, 아 그땐 총 없었으니까 화살받이로 써먹기도 했죠.

그럼 성안에서 방어를 하고 있던 적군 입장에서는 자기나라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화살받이로 내몰아졌는데 어쩝니까?

자기네 사람들이라고 성문이라도 열어줬다가는 바로 성이 함락당할게 뻔하고 화살로 쏴죽이기도 애매하고.

사기가 팍팍 떨어지는 거죠.

그리고 무서운 협박도 했습니다.

항복을 권유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두발 달린건 다 죽여버린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죠.

그러니 적들의 입장에서는 전투의지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저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도망 가자! 라면서 탈영병도 많이 생기고요.

생물학전도 수행했죠.

돌림병 걸려서 죽은 사람이 있으면 그 시체를 성안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헝가리 침공할 당시에는 하루 최대 160킬로미터를 이동한 적도 있죠.

이렇게 빠르게 이동하니까 당하는 입장에서는 몽골 기병이 오나 안 오나 살피려고 척후를 내보냈는데 그 척후부대가 몽골군을 발견하고 본대에 알리려고 파발을 띄워도 파발보다 몽골군이 먼저 도착해 버리는 겁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말박이 새끼들이 창 들고 활 쏘면서 쳐들어오는데 대책이 없죠.

그리고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합하기 전에는 지들끼리 허구헌날 쌈박질만 한 놈들이에요.

꼬꼬마 때부터 말타고 양치면서 놀았고 심심하면 서로 개새끼야 소새끼야 하며 전쟁으로 다져졌으니 천하무적이 될수 있었던 겁니다.

약점이라면 숫자가 너무 적다보니 점령한 곳을 지배할수는 없었죠.

그냥 싸움질만 하고 돌아다녔던 겁니다.

물론 대제국을 건설한 시절도 있었으나 인구의 한계는 극복을 못했고 다시 무너지죠.

그나마 가장 잘 버텼던 나라가 고려였습니다.

무려 30년간이나 대몽항쟁을 했으니 썩 잘 버텼던 거죠.

일단 우리 민족도 말 좀 타고 활 잘 쏘기로 유명했지요.

고려는 수성전에 아주 능했고 청야 전술도 한몫을 했습니다.

몽골군이 온다 싶으면 다들 성안으로 들어가서 문 꼭 닫고 어디 와봐 이 새끼들아! 라고 하는데 그냥 성안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들판에 있는 풀까지 싸그리 불을 질러서 태워 버리고 우물을 매워 버리고 집도 허물어 버립니다.

물론 그로 인해 우리가 입는 손실도 만만치 않았지만 몽골군이 와보니 말먹이가 없네?

성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지나쳐 갔더니 또 성이 나오네? 몇개 성을 지나쳤더니 뒤에 지나쳐온 성에서 병참선을 끊어 버리네?

그렇다고 고려군이 싸움을 못하냐면 그것도 아니었죠.

원래 우리 민족이 싸움 좀 하는 민족입니다.

고려가 그렇게 잘 싸우니까 몽골도 다른 나라들에게는 너 내 부하가 되어라! 라고 했는데 고려한테는 너 동생 할래? 라고 했던 거고요.

고려가 미친척 하고 몽골과 맞짱을 떠버리면 몽골도 부담이 많이 가니까 그랬습니다.

그리고 몽골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왕조국가들에서도 우리를 대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했죠.

뭐 우리가 맨날 중국에 조공이나 바치던 속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우리가 빈정 상하면 나라가 망할수도 있었어요.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북방 이민족들과 우리가 손을 잡아 버린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공격하자니 했다가 재수 없으면 국력이 쇠해져서 망할수도 있고 그래서 살살 달랜 거죠.

우리나라가 중국의 조공 1순위 국가였는데 조공을 바친다는건 그 당시 아시아의 외교 문화의 일종이었습니다.

조공을 바치기만 하느냐? 꼴에 황제국이랍시고 체면은 유지해야 되니까 우리가 갖다 준 조공보다 더 많은걸 줬죠.

그래서 우리가 어? 이거 짭짤한데? 라면서 심심하면 찾아가서 조공을 바쳐대고 바친 것보다 더 많이 뜯어내니까 나중에 가서는 중국이 야! 니들 너무하는거 아니냐? 다녀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왔어?

상도덕이 있어야지 이렇게 맨날 찾아와서 뜯어가면 어쩌냐? 작작 좀 와라! 라고 할 정도였죠.

그리고 중국의 수많은 왕조국가중에서 그나마 나라꼴을 좀 제대로 갖춘 나라가 한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을 한족이라 부르고 중국 문자를 한자로 부르죠.

그때부터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하고요.

근데 한나라 이후로 중국에 세워진 왕조가 60개인데 그중에서 가장 오래 버텼던게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인데 청나라가 296년 버티다가 망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는 어떨까요?

신라는 거의 천년 가까이 버텼고 고구려는 700년이 넘고 고려는 475년이고 조선은 518년입니다.

나라가 한번 세워지면 아주 그냥 마르고 닳도록 버티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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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전술은 현대 전술의 원형으로 볼만 했습니다.

제오열을 미리 적 성안에 침투시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데 몽골군은 항복하지 않는 성은 모조리 죽인다는 식으로 무시무시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적의 기세를 꺽음과 동시에 정찰병을 동원해 성의 곳곳에 대해 정찰을 실시한 후 압도적인 기동전술로 기마병을 동원해 적이 예상치 못할정도로 빠른 시간에 성앞에 도착하고, 순식간에 성의 약점을 공격해 점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적들은 몽골군이 성앞에 도착하기 직전에 성문을 열어두고 항복해버렸죠.

심지어 몽골군은 1347년, 흑해 연안의 카파 성을 공격할때 투석기를 이용해 흑사병으로 숨진 시신을 성 안으로 던져 인류 최초의 세균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생물학전(Biological Warfare)의 시초라고 할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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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동방 문화와 중동 이슬람 문화 교류 중의 가장 큰 사건은 .. ​이슬람 왕국이 몽골의 상인들과 사신들을 두번이나 살해함으로 인하여 발발한 칭기스칸이슬람 왕국 침공 대전쟁 사건 입니다 . )

https://www.youtube.com/watch?v=-m7ZfjEWxac

“ 1200 년대 초 .. 몽골에서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이 일어나 세계를 흔들자 .. 중동의 이슬람 왕국의 술탄들이 쓰러졌다 . . . 이슬람 제국의 칼리파들이 힘없이 넘어졌고 , 카이사르들은 왕좌에서 떨었다 .

칭기즈칸 , 그는 천수를 누리고 영광이 최고에 이른 상태에서 죽었으며 ,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자식들에게 자기가 죽은 후에도 중국 정복을 완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

“ 칭기즈칸 테무진 , 그의 눈에는 항상 타오르는 용맹의 불이 있는 것 같았고 , 얼굴에는 진리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있는 것 같았다 . ” . . . . . . . . . . . - - -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 몽골비사 > 중에서 .. - - -

테무진은 .. 1162 년에 태어났는데 .. 10 살 때 부친을 잃고 많은 고생을 하게 된다 . . . 20 살 때 어릴 때 약혼했던 보르테와 결혼 하였는데 .. 몇달 후 아내 보르테가 납치를 당하게 된다. . . 9 개월 후 테무진은.. 아내를 납치한 메르키트와 타이치우드 부족을 정복하고 아내를 되찾고 초원의 강자로 떠올랐으며 ..

1196 년 34 살 때 에는 부친을 독살한 타타르족 원정에 나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 전통적인 씨족, 부족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 . 1204 년에는 몽골의 마지막 나이만 부족을 정복했다 .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예케 몽골 울루스(= 큰 몽골 나라) , 통치자의 칭호는 칭기즈칸 이었다 .

테무진 칭기즈칸은 .. 용맹과 거짓이 없는 정직과 항상 공명정대 하였으며 , 부족 간에 서로 납치하는 것과 몽골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금지시키고 ,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았으며 전리품을 평등히 분배했으며 , 넓은 마음과 포용력이 컸으며 , 칭기즈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보다 나라의 법이 우위에 선다는 것을 선언했다 .

칭기즈칸이 48세가 된 1210 년, 금나라 사신이 몽골의 복종을 요구하러 왔다 . . . 그러나 칭기즈칸이 이를 거부함으로 전쟁이 발발하였다 . . . 1211 년 쿠릴타이를 소집해 원정을 결정하고 진군을 개시한 칭기즈칸은 1215년 금나라 수도 중도 ( 中都 = 오늘날의 베이징 ) 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 내었다 .

칭기즈칸은 매우 넓어진 영역을 다스리게 되자 교역과 상업 문화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 .

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문화가 발달한 호라즘 왕국과 교역 조건을 협상하고 관계를 공식화 하기 위해 상인들과 사신을 보냈다 .

그러나 호라즘의 북서쪽 오트라트 (= 카자흐스탄 남부 ) 의 총독이 .. 몽골 상인들을 간첩 첩자로 몰아 죽이고 물자를 빼앗았다 . . . 칭기즈칸은 다시 사신을 보내어 총독을 처벌한 후 관계 개선을 요구했지만 .. 무함마드 2세는 이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사신들을 죽였다 . . . 이에 크게 격노한 칭기스칸은 대전쟁을 선포 하였다 .

1219 년 서방 대원정을 떠난 칭기즈칸은 이듬해 봄 호라즘 영역에 도착하여 그 해가 끝나기 전에 호라즘 왕국의 군대를 계속 격파하고 주요 성과 도시들을 속속 점령 , 중동의 절반을 차지한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

이슬람 호라즘 왕국 무함마드 2세는 .. 몽골군에 쫓겨다니며 도망가다가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

※. 칭기스칸의 어록 에서 ..

= “ 나와 나의 신하와 부하 군사들 .. 우리는 일평생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가졌다. . . 나는 사치를 멀리하고 절제를 존중하였다 . . . 나는 칸으로서의 나의 소명이 중요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무거웠음을 느끼고 늘 살아 왔었다 .

나와 나의 부하들은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 " . . . . . . . . . . - - - 이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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