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오페라의 특징

판소리와 오페라의 특징

작성일 2004.02.10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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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판소리와 오페라의 특징좀
가르쳐 주세요.
A4지 2장 정도의 양이요,
부탁드립니다.


#판소리와 오페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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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
판소리란 한사람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서사적인 긴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대사)로 엮어 발림(몸동작)을 곁들여 청중들 앞에서 구연하는 공연예술이다. 한국음악의 갖가지 음악언어와 표현방법이 총결집된 우리 민속음악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이며 연극적인 표현요소까지 구사하는 종합적 예술이다.

판소리의 반주는 고수가 한다.
고수가 소리북으로 반주하며 하는 추임새 ("으이", "좋지", "얼씨구")는 판소리의 흥을 한층 돋구어 준다.

판소리에는 원래 12곡이 있었고, 판소리 12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전','가짜신선타령(숙영낭자전)','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기타령'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5 마당만 전한다.

판소리의 구성요소 : 소리, 아니리, 창, 발림


오페라 :
오페라의 기원은 먼 옛날 메소포타미아와 아프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음악은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 약 3천년경 전부터 음악과 연극이 함께 발전하였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비극을 노래로 하여 그 내용을 나타내곤 했다.
그 뒤 중세기에는 교회연극을 통하여 음악과 연극적인 요소가 함께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드디어 자코포 페리가 오타니오 리누치니의 대본에 맞춰 '다프네(Dafne)'라는 오페라는 만들었다.
다프네라는 오페라는 그리스 신화를 그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나무로 변해 버린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 때가 1597년이다.
1600년에 페리와 리누치니가 만든 '유리디체'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이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 뒤 오페라는 순식간에 전 이탈리아로 퍼져 나갔고, 이후 베니스에 정착한 오페라는 상업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몬테베르디와 같은 사람이 '오르페오'를 비롯하여 오페라의 확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그 후에 글룩, 모차르트, 로시니를 거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에까지 이르렀다.

오페라의 구성요소 : 서곡, 간주곡, 아리아, 레치타티브, 중창,합창



[판소리와 오페라의 비교]

판소리는 우리 나라 전통 성악곡이고, 오페라는 서양의 음악과 연극이 어울린 종합예술이다.
둘다 모두 극과 관련된 음악 장르라는 점에서는 같다.
차이점은 판소리는 고수의 북 반주에 의해 독창자가 여러 역할을 노래하는데 다시한번 얘기하자면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와 함께 벌이는 다양한 창극조의 소리마당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오페라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배역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음악, 문학, 시, 연극, 미술적 요소로 만든 음악 종합예술 무대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말할수 있다.

판소리와 오페라는 다르다. 그러나 음악의 형태나 전체 구성을 비교해 보면 공통적인 것이 노래(성악)을 중심으로 한 예술이고, 극적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요, 지휘자에 해당하는 것은 고수며, 오페라에는 음악빠르기가 있지만 판소리는 장단으로 빠르기와 분위기를 엮어 간다.
발성에 있어 오페라는 벨칸토라는 두성 발성을 사용하는데, 벨칸토 창법의 특징은 아름다운 공명, 목에 부담을 주지 않는 두성 발성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판소리는 49가지에 해당하는 목을 사용한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하성에서 상성까지 종과 횡으로 넓혀 가며 목이 쉬도록 소리낸다. 오랜 시일을 두고 발성을 계속하다 보면 목이 터지기 시작하고 명랑한 음을 얻게 된다.



대본에 있어서 오페라도 원작자의 문학을 바탕으로 음악 대본으로 삼듯이, 판소리도 고전 문학을 대본으로 판소리를 엮는다.
오페라는 종합예술로서 다양한 구성을 묶지만 판소리는 소리꾼이 소리를 통해 인물과 장면 묘사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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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란 말의




size=2>  판소리, 판소리 하지만, 판소리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판소리를 판소리로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아니 대부분은 판소리라는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마치 우리가 늘 쌀을 먹고 살지만,
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언어학에서는 특수한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이름붙이는 특별한 이유나 원칙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낱말이 그런 것이며, 나중에 새롭게 이런저런 말조각을 연결해서 만들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이름을
붙일 때는 이름붙여지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 이름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름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름에는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size=2>  판소리라는 명칭은 판소리가 생길 때부터 붙여진 이름은 아니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이전에는 타령,
창,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唱樂), 극가(劇歌), 가곡(歌曲), 창극조(唱劇調)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김제 만경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북한 정노식이라는 사람이
1940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낸 {조선창극사}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라는 명칭은 그보다 조금 일찍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판소리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우선 책 제목에서부터 {조선판소리사}라고 하지 않고, {조선창극사}라고 함으로써,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때만 해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size=2>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라고 한다. 연세가 높은 판소리 애호가나 명창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생겨난 지 200년도 더 지난 다음에야 생긴 이름이 이제는 아주 널리 쓰이게 되고, 다른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래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다른 명칭보다 훨씬 더 판소리의 특징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판소리라는 명칭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연구할 때
으례껏 먼저 어원을 찾아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size=2>  '판소리'라는 말은 '판'과 '소리'라는 낱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러면 먼저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가 있다.


size=2>  첫째, '노름판', '씨름판', '굿판' 등에서와 같은 의미. 노름판이나 씨름판, 굿판은 노름이나 씨름, 굿이
벌어지는 장소를 뜻한다. 그리고 '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어떤 일을 벌이는 장소에는 '판'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좀 특별한 행위에만 '판'을 붙인다. 그래서 '판'이 붙을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판'이라는 말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특수한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size=2>  둘째, '씨름 한 판', '바둑 두 판' 등에서 쓰인 것과 같은 의미. 이 때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니 대개 승패를 가르는 일의 경우에는 승패가 완전히 결판나는 결과에 이르렀을 때만 '판'을 사용할 수 있다.


size=2>  셋째, '판놀음', '판굿'에서와 같은 의미. 판놀음이나 판굿은 조선조 말 전문 유랑인 집단들이 벌이던 놀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전문적인 연예인들로 조직되어, 유랑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놀이를 벌이고, 구경꾼들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이 때의 '판'이란 전문인들이 벌이는 놀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size=2>  이렇듯 '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판'을 첫 번째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하는 소리'라는 뜻이 될 것이다. 놀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경꾼과 행위자가 구분이 안 되는 놀이, 즉 놀이를 하는
사람만이 있지 따로 구경꾼이 없는 경우도 있고, 하는 사람과 구경꾼이 구별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란 당연히 구경꾼이
많이 모인 장소가 될 것이다. 구경꾼을 많이 모아놓고 벌이는 놀이가 바로 공연예술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의미 속에는 판소리가 공연예술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size=2>  두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플롯에서의 이른바 '전체'라는 개념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말하기를,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은 그 자신 앞에는 아무 것도 없고,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성질의 것이다. 끝은 이와 반대로 그 자신
필연적으로, 혹은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오나, 그것 다음에는 아무런 다른 것이 오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신 다른 것 다음에 오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구성된 플롯은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size=2>  세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전문인들이 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전문적인 기능을 습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라는 말이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판소리를 직접 부르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좋다보면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어떻게든 자기도 불러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서커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서커스를 직접 할 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예술은 전문적인 예술가만이 할 수 있고, 일반인은 그저 보거나 듣는 데 만족해야 한다. 보거나 듣는 일이 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고 들으려면 전문가에 가까운 식견과 감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부른다.
'귀명창'과 '명창'을 이렇듯 용어로 구분했다는 것은, 판소리 청중들이 판소리가 전문적인 예술이었음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size=2>  '판소리'에서 '판'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 위에 들고 있는 세 가지 모두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의미가 모두 판소리에 타당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size=2>  그렇다면 '소리'란 무슨 의미일까? '노래'가 서정적이고 짧은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소리'는 서사적인,
즉 이야기를 지닌 긴 노래를 가리킨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남도 민요나 서도 민요를 '남도 소리', '서도 소리' 한다든가, 들노래들도
'김매는 소리', '달구질 소리'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귀에 들리는 공기나
물체의 빠른 진동"이다. '소리'는 청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현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소리의 '소리'에 관한 해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판소리를 특별히 '소리'라고 한 것은 판소리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래 음악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판소리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size=2>  판소리의 '소리'는 '목소리'의 준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음악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분야는 성악이다. 그렇다면 판소리의 '소리'는 판소리가 성악의 일종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목소리는 인간의 육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적인 표현에 뛰어나다. 음악에서 성악을 제일로 친다거나, 인간의 성대를 가장 훌륭한 악기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목소리가 악기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보다 아름답다거나 정확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목소리가 다른 악기보다 뛰어난
이유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사용해온 역사가 깊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다른 악기에 비해 유연해서 표현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보다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판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를 표현의 재료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명칭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10pt">소리판의 구성




size=2>  판소리판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소리판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판소리가 불려지는 상황에다가 촛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면 된다. 우선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의 왼쪽에는 북을 치는 사람이 있다. 소리꾼은 서 있고, 북을
치는 사람은 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노래하는 사람을 '소리꾼' 또는 '창자'라고 하고, 북을 치는 사람은 '고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소리판이 다 완성되었는가? 아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 곧 청중이 빠졌다. 청중이 없는 소리판이 어디 있는가. 물론 연습을 한다든가, 녹음을
한다든가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앞에서 '판'의 의미를 말할 때도 분명히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고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청중이 있어야 한다. 판소리 창자들이나 청중들 사이에서는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이라고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첫 번째가 청중이고, 두 번째가 고수, 그 다음이 명창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청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 것은 분명하다. 창자와 고수는 판소리 음악의 공급자이고, 청중은 소비자이다. 소비자가 없다면 공급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판소리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청중을 위해서 존재하고, 청중 때문에 존재한다. 창자, 고수, 청중 이렇게 세 요소가
갖추어지면, 일단 소리판의 겉모습은 완성된다.



size=2>  그러면 이들 판소리 소리판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저 서로 얼굴이나 쳐다보고 있자고 해서 모인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창자를 보자. 창자는 우선 노래를 한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말도 한다. 가만히 보면 창자는 노래와 말을 적절하게
교체 반복한다. 노래는 '창', 말은 '아니리'라고 한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의 교체 반복 구조'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size=2>  (아니리) 이 때으 심황후가 이 말을 다 듣고 있을
이치가 있으리오마는, 소리를 허니 일이 늦게 되었겄다.


size=2>  (창 : 자진모리
face=돋움 size=2>) 심황후 기가 막혀 산호 주렴을 걷혀 버리고 보신발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 깜짝 놀래,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에이? 나보고 아버지라니? 이
말이 웬 말이여!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이 되뒶는디,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아이고, 아부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불효여식 심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에? 아니, 심청이라니? 청이라니? 이게 웬 말이여? 에이? 이게 웬 말이여? 내가 지금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죽고 없난 내 딸 청이, 이 곳이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아이고, 답답허여라! 어디, 내 딸 좀 보자!" 심봉사가 두 눈을 끔쩍끔쩍하더니마는, 부처님의 도술로 눈을 번쩍 떴구나.


size=2>  (아니리) 심봉사 눈 뜬 훈짐에 잔치에 참례한 봉사
모두 따라서 눈을 뜨는디,


size=2>  (창 : 잦은모리
face=돋움 size=2>)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띠는
소리라. '쫙 쫙'허더니마는 그저 눈을 떠버리는구나. 석 달 동안 큰 잔체의 먼저 와서 참례하고 내려간 맹인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 한 맹인 중도에서 눈을 뜨고,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다
뜨고, 지어비금주수까지 일시으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 (정권진 창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 눈뜨는 대목)


size=2>  '창'에는 장단이 있다. 그런데 때로 창 속에는 말로 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장단은 그대로 흘러가게 둔다.
이를 '도섭'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니리 속에는 노래처럼 된 부분이 있다. 물론 이 때는 장단은 없다. 이런 부분을 '창조(唱調)'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많은 것은 아니다.


size=2>  창자는 또 연기와 같은 동작을 한다. 슬플 때는 우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흥겨울 때는 춤을 추기도 한다.
뱃노래가 나오면 노 젓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런 동작을 '너름새'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발림'이라고 하지만, 발림은 대개 민요와 같은
노래를 할 때 하는 춤동작에 한정해서 쓰는 것이 옳다. 판소리에서의 동작은 춤동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연극의 연기에 근접하는 동작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따로 너름새라고 한다.


size=2>  자세히 보면 창자는 오른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 부채는 여러 개의 살을 모아 한지(韓紙)를 발라서 만든
것으로,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합죽선이다. 부채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글씨가 씌어져 있기도 하다. 창을 하면서 창자는 이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적절하게 사용한다. 어떤 때는 부채를 지팡이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부채가 편지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냥 더워서 더위를 식히느라 부채질을 하기도 한다. 요컨대, 창자에게 부채는 다목적 소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size=2>  고수는 창자의 왼쪽에 창자를 바라보고 앉아서 북을 친다. 그런데 북만 치는 게 아니라, "얼씨구", "좋다",
"잘헌다", "그렇지", "아먼" 등등의 말을 한다. 이것을 '추임새'라고 한다. 고수는 이 추임새를 잘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성준(1874- ? )이라는 고수가 추임새를 잘한 것으로 유명하고, 최근에 작고한 김동준(1928-1990)도 추임새를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추임새를 잘하면 소리꾼은 지쳤다가도 금방 힘을 얻는다고 한다.


size=2>  청중은 무엇을 하는가. 청중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소리를 듣기만 하면 되는가? 서양식 음악회라면 당연히
숨죽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서양식 공연의 감상은 근본적으로 엿보기 양식이기 때문에, 없는 듯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판소리는 그렇지 않다.
판소리는 공연 상황에 대한 청중이나 관중의 참여가 언제나 보장된다. 그뿐 아니라, 참여를 해야만 한다. 물론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 판소리의 모든 청중은 추임새를 통하여 공연에 관여할 수 있다. 참으로 훌륭한 청중은 제대로 된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청중이다.
그래서 어떤 판소리 음반은, 실황이 아니고 청중이 없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인데도 일부러 추임새를 넣은 것도 있을 정도이다.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에서 말하는 첫 번째로 중요한 청중이란 바로 제대로 된 추임새를 하는 청중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참뜻은 판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청중들을 위해서 판소리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된 청중에 의해서 판소리 소리판은 완성된다.


 


판소리의 종류




size=2>  우리가 흔히 판소리라고 싸잡아 일컫는 것 속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단가, 판소리, 창극, 승도창,
병창, 창작 판소리 등이 그것이다. 판소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판소리가 이런저런 다른 것을 파생시키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size=2>  1) 단가: 본격적인 판소리 창을 하기에 앞서 부르는
짧은 노래를 가리키는데, 허두가(虛頭歌), 초두가(初頭歌), 단가(端歌), 영산(靈山), 영산(瀛山)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단가(短歌)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현재 부르고 있는 단가는 40여 가지가 되는데, 이 중에서 널리 애창되는 단가는
[진국명산]·[죽장망혜]·[운담풍경]·[편시춘]·[장부한]·[초한가]·[홍문연]·[적벽부]·[사철가]·[사창화류]·[백발가]·[이산저산]·[효도가]·[호남가]·[강상풍월]·[녹수청산]
등이다. 단가는 본 판소리를 하기 전에 부르기 때문에, 가볍게 부르는 것이 보통이며, 악상도 화평한 평조(平調)가 대부분으로 지나치게 슬픈
곡조는 피한다. 단가의 내용은 절실한 현실의 문제보다 관념적이고 환상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사설의 이면에는 인생무상과 풍류적
낙천성의 두 가지 주된 정서가 깔려 있는데, 이 중에서도 인생무상감이 주류를 이룬다. 단가의 이러한 내용은 단가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단가의 마지막 구절은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 '헐 일을 허여가면서 놀아보자'와 같은 청유형으로 끝을 맺고 있다. 청중들은
이러한 청유형으로 인해 창자를 '우리'라는 일체감 속에서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청중들은 남의 놀이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단가는 이렇게 하여 소리판을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size=2>  2) 판소리: 애초에는 열두 바탕이 있었다. 판소리의
작품 수를 나타내는 말로 '마당'을 사용하기도 하고, '바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바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 소리꾼들이
'마당'이라는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전통 시대에 광대들이 하던 연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마당에서는 줄타기나 땅재주를 하고,
대청에서는 기악을 하고, 안방에서 판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마당'이라는 말은 판소리에 대한 평가 절하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땅재주나 마당에서
하지, 어디 판소리를 마당에서 하는 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판소리에 '마당'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바탕이 되는
소리'라는 뜻으로 '바탕소리'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한 바탕, 두 바탕 등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여기서는 '바탕'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였다.



size=2>  애초에 있었던 판소리 열두 바탕은,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가]·[옹고집타령]·[배비장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장끼타령]·[가신선타령]이다.
[가신선타령] 대신에 [숙영낭자전]을 넣기도 한다. 이 중에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 바탕은 현재까지 잘
전승이 되고 있으나, 나머지 일곱 바탕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전승에서 탈락했다. [가신선타령] 외에는 소설로 된 것이 남아
있어서 내용은 다 확인할 수 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의 내용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소개를 생략하고, 다소
생소할 것으로 생각되는 [적벽가]부터 그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size=2>     적벽가: 기본
줄거리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차용하고 있는데,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고 공명을 모시러 삼고초려를 하는
대목부터, 적벽대전에서 공명이 동남풍을 빌어 조조의 군사를 대파하고, 마침내 관우가 조조를 사로잡았다가 놓아주는 대목까지 부른다. 그러나 세부에
있어서는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이 창작된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박동진 씨는 늘, "예전에는 소리꾼이 소리하러 가면요, '[적벽가]
하실 줄 아십니까?' 이래 물어가지고, 모른다고 하면, '[춘향가] 할 줄 아는가?' 그러지요. 그래 모른다고 하면, '[심청가] 할 줄
아냐?' 이렇게 말을 합니다."라고 했다. 이는 그만큼 [적벽가]가 높이 평가되었다는 뜻인데, 특히 양반 청중들이 [적벽가]를 좋아했다고 한다.
[적벽가]는 전투 장면이 많고, 등장 인물도 장수들이 대부분이어서, 호령하듯 외치는 소리가 많아 부르기가 힘들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많다.
그래서 요사이는 잘 부르지 않는다. [적벽가]는 해방 후에는 임방울이 잘했고, 그 뒤를 이어서 박봉술, 박동진 등이 잘 했는데, 지금은 김일구,
송순섭 등이 가끔씩 부르고 있을 뿐이다.


size=2>     변강쇠가:
[가루지기타령], 또는 [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하며, 신재효 사설집에 전승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의 소리 중에서는 유일하게 실려 있다.
[변강쇠타령]은, 남도에 사는 천하 양골 변강쇠와 황해도에 사는 천하 음녀 옹녀의 이야기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성애만을 추구하다 자기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데, 이들은 중간에서 만나 부부가 된다. 처음에는 도시 살림을 해보지만, 강쇠가 놀기만 일삼고 강짜만 부리기 때문에
살지 못 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놀기만 일삼던 변강쇠는, 장승을 베어다 때고는 장승 동티가 나서 죽는다. 변강쇠를 치상하는
과정에서, 치상한 후에 옹녀와 살기로 하고 변강쇠를 치상하려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땅에 드러붙는 변괴가 생긴다. 그러나 사당 거사패들과
뎁득이가 지성으로 귀신에게 빌어, 붙었던 궁둥이가 떨어져 치상을 한다는 내용이다.


size=2>     옹고집타령(雍固執打令):
size=2>소설 {옹고집전}이 전하고 있어 내용을 알 수 있다. 옹진(雍眞)골 옹당촌(雍堂村)에 사는 옹고집은 욕심 많고 심술궂어, 매사를
옹고집으로 처리한다. 옹고집은 또 불도(佛道)를 멸시하여, 동냥 온 중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도승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도승은 도술을 부려,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로 또 하나의 옹고집을 만든다. 허수아비로 만든 가짜 옹고집은 옹고집의 집을 찾아가 진짜 옹고집을 내어쫓고, 그의 아내와
같이 산다. 진짜 옹고집은 가짜에게 쫓겨난 후, 갖은 고생 끝에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 도사의 용서를 받은 다음, 다시 집에 돌아와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size=2>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size=2> 소설 {배비장전}이 남아 있어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서울의 김경(金卿)이라는 양반이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서강(西江) 사는 배선달을 비장(裨將. 조선조 때 감사·수사·병사·유수 등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돕던 벼슬아치.)으로 데리고 간다. 배비장은
도덕군자인 체하는 사람으로, 제주에 도착하여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는데, 상관인 제주 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愛娘)과 방자의 계교에
의해, 애랑의 유혹을 받고 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 채 바다에 버려진다. 배비장이 버려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사실은
감영의 뜰이었는데, 배비장은 이를 모르고 헤엄쳐 나오다가 둘러선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행실의 바름을
뽐내던 배비장의 허세가 드러나고, 형식에 치우쳐 공허한 유교적 도덕 관념이 통렬하게 풍자된다. 최근에 박동진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진 바 있다.


size=2>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
size=2>[매화타령]이라고도 한다. 강릉 부사의 책방(고을 원이 사사로이 임명하여 그 비서 일을 맡아보던 사람) 골생원이 강릉의 일등 명기
매화를 만나 즐겁게 지내는데,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라는 부친의 편지가 온다. 서울에 온 골생원은 과거 시험 답안에 매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써내고 낙방하여 강릉으로 돌아온다. 강릉 부사는 거짓으로 큰 길가에 매화의 무덤을 만들고, 매화가 죽었다고 한다. 골생원은 매화의 무덤에 가
통곡하고, 매화의 초상화를 그려 껴안고 지낸다. 그러다가 황혼 무렵, 사또의 지시로 매화가 귀신인 체하고 골생원과 만난다. 다음날 매화는
골생원을 나체로 경포대로 유인하고, 골생원은 매화와 함께 자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사또에 의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size=2>     장끼타령:
[자치가(雌稚歌)]라고도 한다.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콩을 주워 먹다가, 차위(짐승을 잡는 틀)에 치어 죽자, 까투리는 여러 새들의
청혼을 받게 되나, 결국 문상 온 홀아비 장끼에게 시집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size=2>     무숙이타령:
[왈자타령(曰者打令)]이라고도 한다. '왈자'는 건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중고제 명창 김정근(金定根)이 잘 했다고 하나, 소리는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주인공 김무숙은 대방(우두머리)왈자로, 서울 중촌(中村) 갑부의 아들이며, 여자 주인공 의양은 평양에서 선발되어 궁중에 바쳐진 내의원
소속 기생이다. 의양을 한 번 본 무숙이는 대번에 반하여, 의양이를 기생 명부에서 빼내어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된다. 의양은 살림을 제법 규모
있게 꾸려나가지만, 무숙이는 여전히 허랑방탕한 생활을 한다. 보다 못한 의양은 무숙의 본처, 노복 막덕이, 대전별감 김철갑, 다방골 김선달,
평양 경주인 등과 공모하여, 무숙을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빠지게 함으로써, 마침내 개과천선케 한다는 내용이다.


size=2>     가신선타령(假神仙打令):
size=2> 사설이나 소리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노승에게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와 술을 구해 먹었으나, 속고 만 이야기라는 정도의 윤곽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size=2>  3) 병창: 병창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판소리의 특정
대목을 부르는 것인데, 가야금 병창과 거문고 병창이 있다. 가야금 병창이 언제쯤 생겼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전남
영암 출신의 김창조와 충청도 사람인 박팔괘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병창의 명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김창조 문하에서는
오수관, 한성기, 강태홍, 이소향과 같은 대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오수관의 아들 오태석은 역대 가야금 병창의 최고 명인으로 꼽히며, 정남희,
김종기, 한성기 등도 병창의 명인이었다. 정남희는 전통 판소리뿐만 아니라, 새로이 판소리적 기법으로 만든 노래들도 병창으로 많이 불렀다. 충청도
출신 명인으로는 심상건이 유명하였다.


거문고 병창은 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 신쾌동(1909-1978)이 유일하다시피 했는데, 신쾌동 이후에는 거문고 병창으로 명인급에 드는 사람이 없다.

병창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소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너름새나 발림(동작)을 할 수 없고, 발성의 기교를 제대로 다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병창의 창법은
판소리에 비해 가볍고 쉽다. 대체로 판소리를 하기에는 기량이나 성량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 병창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size=2>  4) 승도창(繩渡唱): 승도창은 줄을 타면서 부르던
판소리라고 하는데, 전승이 끊어져 현재는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 없다. 승도창에 관한 기록도 없다. 줄타기나 땅재주같은 곡예를
하던 사람은 판소리 창자와 같은 재인 광대 계층에서 나왔다. 판소리 명창 중에서 이날치는 줄타기를 하다가 판소리로 전환하여 명창이 되었으며,
장판개도 줄타기의 명수였었다. 이정업 같은 고수도 본래는 줄타기를 하였으나, 줄을 타던 중에 부상을 당하여 후에 고수로 전환하였다. 이렇듯
줄타기와 소리를 한 사람이 한 적이 더러 있었던 것으로 보아 판소리와 줄타기의 관련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size=2>  5) 창극: 창극은 연극처럼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각기 배역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 판소리를 부르는 연극적 판소리이다. 최초의 창극은 1902년 가을 고종의 즉위 40년을 경축하는
행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지금의 광화문 새문안교회 터에 신식 극장인 원각사를 설립하고, 그 경축 행사 준비의 칙명을 받은 김창환이 전국의 남녀
명창을 불러들여 준비한 [춘향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행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두 번이나 연기된 끝에 유야무야되고 말았고,
1903년 가을 강용환에 의해 창극 [춘향전]이 공연되기에 이르렀다. 이 때의 창극은 무대 천정에 전등을 밝히고, 배경으로 둘러친 흰 포장
앞에서, 여러 창자들이 둘러 서서 각자 맡은 배역의 소리를 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양식의 창극은 193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인 창극은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고나서부터 만들어졌다. 이 때의 창극은 무대 조건을 완전하게 갖추고, 새로운 대사를 많이 삽입하여 연극적인
요소를 많이 갖게 되었다. 1936년에는 조선성악연구회 직속으로 '창극좌'를 두었고, '창극좌'는 이후 194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체되기까지 여러 편의 창극을 공연하여 히트시키면서, 창극의 전형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의 창극계는 여성이 주도하게 되었는데,
여성으로만 조직된 여성 단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공연 작품도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 설화나 야사, 야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레퍼터리가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면서 명칭도 '국극'으로 바뀌게 된다. 한 때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여성 창극, 국극은 1958년 이후 기울기 시작하여,
1960년에 이르러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창극과 비슷한 것으로
입체창이 있다. 입체창이란 몇
사람의 창자가 배역을 정하여, 그 배역에 맞는 소리를 하는 양식이다. 특별한 무대 장치나 연기는 하지 않으나, 간단한 분장은 하기도 한다.



size=2>  6) 창작 판소리: 창작 판소리란 기존의 전통 판소리
외에 새로이 만들어진 판소리를 말한다. 1904년에 김창환에 의해 만들어져서 원각사에서 공연되었다는 [최병두 타령]이 아마도 최초의 창작
판소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최병두 타령]은, 강원도 관찰사 정 아무개라는 사람이 그 고을 양민 최병두를 잡아다가 곤장으로 때려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다는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일인창 형태의 판소리가 아니라, 다수의 창자가 출연하는 창극 형태였다. 이
[최병두 타령]은 후에 이인직에 의해 신소설 {은세계}로 각색되었다.



size=2>  그 외에도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수많은 창극, 혹은 국극 단체에서 공연했던 창극과 국극들도 넓게
보면 창작 판소리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판소리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하는 것이 없다.


해방 후의 대표적인
창작 판소리로는 월북 소리꾼 박동실이 만든 [열사가]를 들 수 있다. [열사가]는 해방 직후 일제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인물들인 이준,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열사의 항일 행적을 노래한 것에 [이순신전]을 합쳐서 이르는데, 1950년대 말 경까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불려졌다.


size=2>  1970년대에 박동진은 전승에서 탈락된 일곱 바탕의 판소리 복원 작업을 통하여
[변강쇠가]·[숙영낭자전]·[배비장전]·[장끼타령]·[옹고집전] 등을 불렀으며, [성웅 이순신]·[성서 판소리]·[유관순전] 등의 판소리를
창작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되지는 못 했으며, 본인도 자주 부르지는 않았다. [변강쇠가]만이 인기가 있어 박동진 자신에
의해 가끔 공연되고 있으며, 완창 음반이 나와 있다.



size=2>  1980년대 들어 젊은 사람들 가운데, 전통 민중 예술 장르를 사회 변혁 운동의 도구로 삼고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임진택은 판소리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임진택은 [소리 내력]·[똥바다]·[오월 광주] 등의 판소리를 만들어, 80년대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판소리를 통한 사회 비판과 풍자에 주력하였다.


size=2>  창작 판소리는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를 판소리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창작 판소리를 통한
그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회적인 데 그침으로써, 구전적 전통 속에 흡수되어 생명력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판소리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size=2>  판소리가 어느 때, 어떻게, 어떤 사람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여기서는 판소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 추정해 보고자 한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양식'이다. 그러니까 판소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판소리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며, 이를 노래로 불러야 할 필요와 노래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size=2>  판소리의 근원이 된 이야기를 근원설화라고 하는데, 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 내부에 전해 내려온
것들이다. [수궁가]의 근원설화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라고 한다. 이는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다가 염탐꾼으로
몰려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先道解)가 옥으로 찾아와 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심청가]의 근원설화로는 역시
{삼국사기}에 있는 '효녀 지은'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렇듯 판소리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 내부에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인 것이다


size=2>  [춘향가]의 근원설화로 유명한 것은 조재삼(趙在三. 순조 때의 문인)이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 들고 있는
것으로, 남원 부사의 아들 이도령이 동기(童妓)인 춘양(春陽)과 사랑을 맺은 후에 서울로 올라갔으나, 춘양은 수절을 하다가 새 사또인 탁종립에게
죽었는데, 호사가들이 이를 슬퍼하여, 노래를 만들어 춘양의 원한을 풀고 정절을 찬양했다는 내용이다. '박색고개 전설'도 [춘향가]의 근원 설화로
자주 언급된다. 관기 월매의 딸이자 천하 박색인 춘향이 이도령을 사모하여 병이 든다. 월매의 계교로 둘이 하룻밤 인연을 맺었으나, 이도령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상경해 버리고, 춘향은 자결을 한다. 박색고개에 묻힌 춘향의 원혼에 의해 신관 사또들이 부임하는 길로 죽게 되자, 장원 급제한
이도령이 내려와 춘향의 전기를 짓고, 제사를 지낸 뒤, 광대로 하여금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어떤 하나의 설화가 바로 하나의 작품으로 되었다기보다도, 여러 가지
설화가 합쳐져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섞여져서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들고
있는 [춘향가]의 근원설화는 판소리의 발생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암시를 주고 있다. 우선 [춘향가]라는 판소리가 광대에 의해 불려지게 된 것은
춘향의 원한을 달래기 위한 굿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야 할 필요성도 생기고, 또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누구인가도 드러나게 된다. 곧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당들이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굿은 무당이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광대들에
의해 판소리는 굿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판소리로 발전하면서, 내용도 '원통하게 죽은 춘향'에서 '죽을 뻔한 춘향'으로, 인물은 박색에서 미인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의 심층에 뿌리박고,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변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해내려온 전승예술이기 때문에, 발생의 근원을 따진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의 근원에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정노식 같은 이는 판소리의 근원을 신라시대의 화랑의 음악에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판소리로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까지
변모·발전된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기가 어느 때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헌을 통해서 판소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은 영조 무렵이다. 영조 때
사람인 만화재(晩華齋) 유진한(柳振漢)의 문집 {만화집(晩華集)} 가운데 [가사 춘향가 200구]가 실려 있는 것이, 현재까지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판소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작자인 유진한은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작자인 유몽인의 6대 종손으로, 영조 때 천안 지방을
중심으로 인근에 알려진 문인이었다. 그의 아들 금(?)이 쓴 글에 의하면, 유진한은 숙종 38년(1711)에 나서 정조 15년(정조 1791)에
죽었다. 또 금이 쓴 [가정견문록(家庭見聞錄)] 가운데 "부친께서 계유년(1753년)에 남쪽으로 호남 문물을 돌아보시고, 그 이듬해 봄에 집으로
돌아오시어 춘향가 일편을 지으셨는데, 이 또한 당시 선비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라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진한은 1754년에 [춘향가]를
지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 [춘향가]의 끝에 "늙은 시인이 타령의 가사를 쓰다"라는 구절이 있어, 소위 [만화본 춘향가]는 지은이인 유진한이
호남의 산천문물을 구경하는 가운데 들은 바 있었던 타령([춘향가])의 가사를 한시로 옮겨놓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통해
호남지방에 이 때 이미 [춘향가]가 존재했으며, 노래로 불려지고 있었고, 그리고 또 충청도 선비가 감동을 받아 한시로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세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특별히 호남을 돌아본 후에 지은 것으로 봐서, 충청도 지방에는 이 시기에 판소리가 없었거나, 있었다고 해도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화본 춘향가]의 내용은 현재의 [춘향가]와 매우 흡사하다. 긴 사설을 짧은 한시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체로 보아 이야기의 줄거리와 등장 인물은 현대의 것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춘향가]의 발생 시기는 이로부터 상당한 기간을 소급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생존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소리꾼은 하한담(혹 하은담이라고 함), 최선달,
우춘대 등이다. 우춘대는 1810년 경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라는 시에 등장한다.


     장안에선 모두들 우춘대를 말하지만


     오늘날 누가 능히 그 소리 이어갈까

     한 곡조가 끝나면 술동이 앞에는 천 필의 비단이
쌓이는데

     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이름있구나


  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1810년 경에 우춘대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창이었으며, 이제는 후계자가 누가 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사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우춘대는 18세기 말 경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우춘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하한담과 최선달은 전주 신청의 대방(大房)과
도산주(都山主)였다고 한다. '신청'은 무부(巫夫. 무당 가계의 남자)들의 조직체인데, 당시에 무부들은 여러 가지 연예에 종사하고 있었다.
대방은 각 도에 있는 신청의 우두머리를 말하며, 도산주는 대방을 보좌하는 직책으로 2명이 있었다. 최선달에 관해서는 충청도 결성 사람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하한담은 [갑신완문(甲申完文)]이라는 광대들의 집단 민원에 대한 관청의 처분을 적은 글에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주
신청의 대방이었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판소리사 초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관우희]에서 주목되는 점은, 송만재가 이 시를 쓰게 된 연유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재인들을 불러 노래와 재주를 구경하는 풍속이 있는데, 금년 봄 우리 아이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안이
가난하여 한 바탕의 놀이를 베풀 수 없으므로" 이 시를 짓는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 이를 보면 초기의 판소리는 과거 급제와 같은 잔치에
초대되어 가는 형태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굿으로 시작된 판소리가 이젠 인생의 중요한 계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잔치)와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판소리는 음악성이나 사설 내용이 지금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빈약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과 같은 예술성 짙은
판소리는 훨씬 후에 태어난 광대들에 의해 이룩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판소리는 광대, 그 중에서도 특히 무부들에 의하여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판소리는 무가와 장단이나 발성법이 거의 같다. 또 판소리 창자들은 거의가 다 남도 지역의 무당 가계에서 나왔다. 이런 이유를
들어 판소리가 무가에서 나왔다고 하는 주장을 '무가기원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판소리를 음악적 특성으로 말하면 남도의 민요 [육자배기]와 같다.
물론 판소리에 들어 있는 음악 전부가 [육자배기]와 같은 것은 아니다. 판소리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슬픈 가락인 계면조가 [육자배기]와 같다.
판소리가 남도 민요인 육자배기와 같은 음악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육자배기토리기원설'이라고 한다. '토리'는 민요 선율의 지역적 특색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에는 또 조선조 후기에 존재했던 판놀음의 일종인 창우집단의 광대소리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창우집단은 판놀음 중에서도
노래를 장기로 삼던 집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무가기원설이나 육자배기토리기원설, 판놀음기원설은 근본적으로는 다른 주장이 아니다. 남도 무가는
음악적으로는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으며, 창우집단은 판소리를 하는 광대들과 마찬가지로 무당 가계와 갚은 관련을 맺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소리가 남도 지역의 무가와의 깊은 관련 속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 위에 부상된 판소리가 많은 인기를 끌게 되자, 판소리의 가사를 적어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춘향전]이니, [심청전]이니 하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물론 판소리 가사가 그대로 소설이 된 것은 아니다.
판소리는 노래이고, 소설은 독서물이다. 당연히 옮기는 과정에서 읽기에 편하게 고쳐졌다. 노래는 부르는 순간에 금방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또
판소리는 늘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부르는 것이 보통이어서 앞뒤가 잘 맞지 않아도 되지만, 책으로 읽을 경우에는
일관성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도 다소의 수정이 가해졌다. 이렇게 해서 판소리문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합체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판소리문학과 판소리는 엄연히 다른 것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판소리와 악보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판소리도 악보가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판소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를 쉽게 널리 보급해서 누구나 한 곡조쯤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물론 판소리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음악은 마땅히 악보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악보가 없는 음악은 모자란 음악이거나, 예술성이 부족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악보가 없다고 하면 틀림없이 판소리를 저급한 음악, 저급한 예술로
생각해 버릴까 싶어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 판소리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다. 악보가 없는 음악은 '구두전승되는
음악'이다. 그래서 저급하다거나, 미발달 상태에 있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판소리는 판소리다운 특성을 지닌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악보를 중심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악보가 있는 음악과 악보가 없는 음악의 두 종류가
있다. 악보가 있는 음악을 예술음악이라고 하고, 악보가 없는 음악을 민속음악이라고 한다. 동양에는 악보가 없는 음악만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동양에도 악보가 있는 음악이 많이 있다. 악보가 있는 동양음악을 동양의 예술음악이라고 한다. 동양의 음악 중에서도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은 악보가 다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 더 많다고 한다.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지역의 전통음악, 인도의 전통음악,
그리고 아직도 부족사회적인 전통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지역의 음악들이 악보가 없으니, 그 수가 많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도
음악을 악보에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므로, 역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음악들이 악보가 없었을 것이다.

  악보는 음악을 기록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불완전한 수단이다. 우리는 흔히
악보, 특히 서양에서 개발된 오선보가 음악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만약에 오선보가 음악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다면, 연주가의 우열은 작가가 악보에 기록한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생해 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
개발된 컴퓨터로 연주를 시킨다면 인간은 도저히 컴퓨터의 정확성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악보에 기록할 수 있는 음악의 내용은 전체 음악의 극히
일부분이어서 악보에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연주가는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 창조해서 연주한다. 그래서
연주가도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연주가가 되고자하는 사람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훌륭한 연주가에게 개인 교습을 받는 이유도 바로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것, 훌륭한 연주가가 창조해낸 것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악보의 유무는 창작과 전파, 그리고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의 차이를 유발할 뿐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악보가 있는 음악에서는 악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반면에, 악보가 없는 음악은 인간의 기억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차이에
의해 두 음악의 특성이 달라진다. 가령 서양 고전음악에서와 같은 화음은 악보가 없는 음악에서는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대규모 관현악 편성에 의한
연주에도 어려움이 있다. 악기마다 개인마다 다른 선율을 연주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습과
규범이 적용되면 된다. 예컨대 시나위같은 음악이 그렇다. 시나위 연주에서는 여러 가지의 악기가 동원되면서도 장단만 같을 뿐 각기 다른 선율을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악기 소리가 조화되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를 '부조화의 조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요컨대
'조화'라는 의미가 서양 음악에서와는 다른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음악학자(Jhon Blacking)는 악보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음악적 관습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왔다고 주장한다.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재능을, 악보를 기록하고 읽을 수 있는 소수만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또 악보가 있는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부분을 구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은
본질적으로 민속음악이라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거나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음악을, 우리는 악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전에
의해, 곧 귀로 듣고 배우는 방식으로 익혔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앞에서 개인 교습의 예를 들었지만, 이 또한 구두전승의 좋은 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보는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악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을 깡그리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악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판소리가 악보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판소리는 악보가 없기 때문에 비로소 판소리일 수 있다. 우리는 늘 판소리의 악보화가 판소리의 발전에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해 왔다. 실제로
판소리를 오선보로 채보한 것도 상당수 있고, 또 요즈음에는 새로운 국악 창작곡을 쓰거나 연주할 때 오선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의 음악
활동이 악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를 악보화하면 다소 편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면 손상되는 부분도
생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민속음악과 관련해서 더 들 수 있는 것은 계층적 성격과 집단적 성격이다. 민속음악은
비록 뚜렷하게 구분되어 대립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조직화되어 그 위의 계층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고 있는 사회적 하층 계급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민속음악은 사회가 복잡해져서 어느 정도 계층이 나누어지고, 그에 따라 음악에도 구별이 생긴 경우에만 대립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만약 어떤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런 계층의 구별 없이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민속음악이란 용어는 필요 없게 된다. 그런 사회의 음악은
민속음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특별히 민속음악이라고 할 때는, 우리의 음악문화에 이러한 계층적 대립이 존재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곧 양반 사대부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에 대한 민속음악의 대립이 그것이다.

  민속음악의 집단적 성격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음악이 어떤 뛰어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데 반해서, 민속음악은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특성이다. 민속음악은 구전되는
과정에서 갈고닦여져 남은 것이다. 따라서 구전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공동 창작품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작자를 알 수 없으며,
예술음악에서 천재성의 징표로 내세우는 개성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민속음악 속에는 민중이라는 집단의 정서와 가치가 담겨지게
된다. 우리가 판소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집단의 정서와 가치이다. 판소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민속음악은 계속성, 변이, 사회에 의한 선택이라고 하는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을 갖는다. 그러면 민속음악의 세 가지 속성을 판소리와 관련해서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한다.

  민속음악에서 계속성(continuity)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으로부터 계속 이어온 특성을 가리킨다. 어떤 경우에는 음악이 생겨난 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대강의 시점마저도 알 수가 없다.

  민속음악은 구두전승 예술이기 때문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서 기록된 역사는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속음악은 오랜 세월에 걸친 전승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이상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민속음악의 이러한 점이 전통성을 유지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준다.

  판소리에서 계속성의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에는 '제'와 '바디'가 있다. '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전승 계보를 가리킨다. '바디'는 '받다'에서 나온 말로 생각되는데, 역시 전승 계보와 관련하여
쓰이는 용어이다. 다만 '제'에 비해 '바디'는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 있어, '제' 속에 여러 가지의 '바디'가 존재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나무 가지와 같은 계통도로 표시되기도 한다.

  변이(variation)란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식적 무의식적 변화를
말한다. 민속음악의 창자는 저마다 대체로 배운 대로 노래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나 민속음악 작품은 기록되어 확정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흠집 투성이인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더러는 망각되기도 하고, 잘못 기억하여 틀려지기도 한다. 이러는 가운데 조금씩
무의식적인 변형을 입는다. 악보가 있다면 악보에 구속되어 이러한 변형을 일으킬 수 없다. 민속음악의 변이는 구두전승성이라고 하는 민속음악의
본질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런 만큼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변이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음악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변이이다. 창조적인 음악가는 자신이 배운 대로하기보다는, 이를 더 나은 형태로 바꾸고자 한다. 부단히 보다 더 나은 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진다. 근세의 최고 명창으로 일컬어지는 임방울(1904-1961)은 본래 천성의 좋은 성대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꾸준히 보다 더 좋은 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증언에 의하면, 임방울은 평상시에도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서
만족할 만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했다. 임방울이 대명창이 되어 오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노력을 통해 청중들의 기호와 감성에 맞는 훌륭한 변이형을 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민속음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창조성이 보태진다. 또 여러 가지 변이형이
존재하게 되어 다양한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민속음악에서 창조성이 발휘되는 방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본래는 같은 스승으로부터
똑같이 배운 동일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부르는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 차이가 일반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면, 다른
바디로 설정된다. 그래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들의 소리 중에서도 어떤 사람의 소리는 스승과 같은 바디에 속하는데, 어떤 사람의 소리는
바디를 따로 설정한다.

  민속음악은 언제나 수많은 변이를 거친 최종적 결과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원본이니,
정본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나 똑같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틀렸다거나 잘 못 된 것은 없다. 서로
다른 것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속음악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중의 창조성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약점이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최근 판소리에서 배운 대로 부르려는 경향이 강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르쳐준 대로, 혹은 배운 대로
부르지 않는다든지, 부를 때마다 다르게 부르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도 또한 판소리의 본질에 대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민속음악의 생명이 긴 것은 바로 이 변이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청중들의 기호와 감성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약 300여 년에 걸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판소리가 변함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변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력을 꾸준히 공급받아 왔기 때문이다. 변이는 바로 민속음악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수단이며, 새로운
생명력의 공급원인 것이다.

  판소리에서 변이를 가리키는 말로는 '더늠'이라는 것이 있다. '더늠'은 '더
넣다'에서 온 말인 듯한데, 이는 판소리에서 특별히 좋은 부분, 혹은 어느 소리꾼이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을 가리킨다. 예컨대,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혹은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이다'라고 했을 때는, 임방울이나 김창환(1854-1927)이 특별히
멋있게 고쳐 불러서 인기를 얻은 대목이 [쑥대머리]나 [제비노정기]라는 뜻이다. 또 '임방울의 더늠은 [적벽가]이다'라고 할 때는, 임방울은
[적벽가]를 특별히 멋있게 잘 부른다는 말이다.

  판소리에는 수많은 더늠이 존재한다. 판소리사에 이름 올라있는 소리꾼은 모두 한두 대목
이상의 더늠을 갖고 있다. 판소리는 이러한 더늠이 쌓여서 이루어졌다. 판소리는 결국 더늠의 예술인 것이다. 소리꾼도 더늠이 많을수록 훌륭한
소리꾼이다. 더늠을 통해서, 곧 변이를 통해서 소리꾼은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민중에 의한 선택(selection)이란, 그 음악이 존재하고 있으며, 형식을 결정하는 사회가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민속음악은 개인이 변이를 통해 창조를 하면, 사회가 선택함으로써 살아남게 된다. 사회가 훌륭한 것으로 선택해 주지 않으면, 그것은
곧 생명력을 잃어 사라지고 만다. 더구나 민속음악은 악보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사라지고 나면 영영 복원할 길이 없다.

  판소리는 본래 열두 바탕이었다가,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일곱 바탕이 전승에서
탈락하고 다섯 바탕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민중이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까지 인기가 있어 음반으로도 다수 제작되었던 중고제 판소리도 민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사라졌다.

  이렇게 민속음악은 사회에 의해 선택되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정서와 기호를 반영하는 것만이 선택된다. 따라서 민속음악에는 개성이 녹아 없어지고, 집단의 기호와 정서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감성과 기호는 고정된 채로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인간의 기호와 감성도 변하게 된다. 변하는 기호와
감성은 민속음악의 변화를 유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소리꾼은 사회 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을 이끌어나가는 선도적인 역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정정렬(1876-1938)은 흔히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했다'고 일컬어지는데, 이는 정정렬이 사회의 기호와 감성을
따라가기만 하는 소리꾼이 아니라, 사회의 감성과 기호를 이끌어나가는 미래지향적 소리꾼이었음을 뜻한다. 정정렬이 활동했던 당시에 그는 이미
동년배의 소리꾼인 송만갑(1865-1939) 등으로부터 '신식 소리꾼'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판소리의 전개 방향이 정정렬이 이미
1930년대에 추구했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 판소리는 과거에 비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도 또한 결과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의
빠른 변화를 판소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민속음악은 가장 민주적인 예술임을 알 수 있다. 항상 다수에 의해 생존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악 유산 중에는 비민주적인 유산도 많이 있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종묘제례악]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의식음악이다. 그러므로 [종묘제례악]은 봉건 체제의 체제 유지
수단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 국가의 재정과 제도의 뒷받침에 의해 유지되고 전승되었다. 이러한 예술은 아무래도 민주적인 예술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예술이라는 의미 외에,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인가하는 물음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소리는 민주적인 예술이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진정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과 성음



  판소리는 성악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목소리 자체의 음악성이 중요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성음놀음'이란 성음을 가지고 그 미감을 즐기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성음(聲音)'이란
무엇인가. '성음'이란 목소리이다. 목소리를 가지고 즐긴다는 말은 목소리의 질, 곧 목소리의 음질(音質)을 즐긴다는 뜻이다. 그러면 판소리에서는
어떤 음질을 좋다고 하는가.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목소리는 일단 보통의 소리가 아니라, 목쉰 소리이다. 그렇지만
같은 거칠고 탁한 목쉰 소리라고 할지라도, 이를 다시 크게 수리성과 천구성의 두 가지로 나눈다. 수리성은 좀더 탁하고 거친 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목 쉰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성악과는
확연히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판소리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우선 맑은 목소리를 거칠고 탁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일이 판소리 수련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거칠고 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성대를 무리하게 써서 목이 붓게 하고, 그 부은 목에 계속 무리를 가해서 마침내 터져 흉터 투성이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과 그야말로 초인적인 노력이 수반되는 어려운 과정이다. 판소리 창자가 되기 위해 수련에 임하는 사람이 그런대로 들을 만한 소리를 하기까지에도
몇 년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상적인 목소리를 비정상적인 목소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하루 이틀, 혹은 몇 달 동안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판소리에서 요구되는 소리가 일차적으로 거친 소리라고 해서 무조건하고 거칠고 탁하기만
한 소리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너무 거칠기만 하면 '떡목'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소리로 친다. 탁하면서도 맑은 맛이 있어야 하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칠고 탁한 소리는 상대적으로 맑고 깨끗한 소리가 있을 때 가치가 있다. 그것은 마치 밝은 대낮이 있음으로
해서 그믐밤의 깊고 그윽함이 더욱 크게 부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너무 맑기만 한 소리는 양성이라고 해서 좋은
소리로 보지 않는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맑은 소리 ←
      → 거친 소리


        +--------+
            +--------+

     양성 ― 천구성 ― 수리성 ―
떡목

                   
└────┘

                 
가치 있는 소리

       └─────────────┘

     
            가치 없는
소리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거칠고 탁한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판소리는
썩고 병든 소리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썩고 병들었다는 말은 사실은 적합치 않다. 판소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썩고 병든 것이
아니라, 썩고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로 인한 독소가 전혀 없는 상태, 곧 '발효'와 같은 것이다. 그러한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곰삭은
소리', 곧 충분히 삭은 소리라고 한다.

  곰삭은 소리에는 슬픔이 깃들게 된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인간을 깜깜한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슬픔도 아니요, 나를 슬프게 만든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그런 분노는 더욱 아니다. 슬픔이면서도 그런 슬픔을 야기한 대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다 가셔진, 그래서 그러한 상대마저도 이제는 용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껴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깃든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이 배인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애원성'이라고 하여,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바로 이 애원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판소리의 변모 과정을 보면,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계면조(슬픈 가락)가 우세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판소리에서 슬픈 소리의 정서적 효과가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 청중들은
현대에 올수록 슬픈 소리에서 더욱 예술성을 찾게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애원성으로만 소리를 한다면 좋은 소리가 될 수 없다. 애원성이 참 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씩씩하고 웅장한 우조 성음이 있어야만 한다. 씩씩하고 웅장한 우조 성음과 대조적으로 어울릴 수 있을 때 애원성은 참으로
애원성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는 또 낮은 소리를 중요시한다. 사실은 낮은 소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판소리 용어로는 무겁다고 한다. 무거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통찰이 요구되지만, 잠정적으로 말하면 낮음·성량이 큼·느림·굵음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예술에서는 '무겁게' 해야 잘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겁다'는 말은
'예술적으로 훌륭하다'는 말과 같다. 무겁다는 말이 앞에서 든 것처럼 다양한 내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음을 강조한 까닭은, 특히 음악의
경우에는 저음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낮은 소리는 그저 낮게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량이 커야만 한다. 성량이
크면서도 낮게 소리를 내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낮으면서도 실한 소리를 낼 수 있다. 판소리사에서 저음의 매력을 가장
잘 발휘한 사람으로는 일제강점기 5명창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정정렬을 들 수 있다. 정정렬의 소리에 대해 흔히 '도끼로 장작 패는 듯한
소리'라고도 하고, '한 짐 된다'고도 하는데, 이는 정정렬의 소리가 그만큼 실하고, 성량이 크고, 굵은 소리, 곧 무거운 소리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판소리 창자 중에는 고음으로 명성을 날린 사람들도 많다. 특히 여성 창자들의
경우에는 고음이 없으면 명창 대접을 받기 힘들다. 여성 창자들은 거칠고 탁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저음도 중요시했다. 남자 창자들의 경우에는 저음의 매력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정정렬 소리에 대한 선호도가 특히 높은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는 '무거운 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유달리 강했다.

  판소리의 예술성은 성음의 다양한 변화에서 최고로 발휘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 혹은
'목'이라고 하여도,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가 없다면 이는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으로 청중에게 제시될 때 참다운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앞에서도 들었지만, 수리성이 좋다고 하여 수리성으로만 소리를 한다든가, 애원성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좋다고 하여
애원성만을 구사한다면 절대로 좋은 소리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장단이나 조(調)·가락·리듬은 말할 것도
없고, '목' 혹은 '목재치'라고 부르는 발성 기교와 이에 따른 음색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목'이란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발성 기교를 이르는데, 판소리에서는 창자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기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대체로 소리를 떨거나 꺾는 방법인데, 구체적인 세부에 있어서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조사해 놓은 바에 따르면, 40여 가지가 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목'을 다 포괄한 것도 아니다. 판소리에서는 이
목에 따라 개인의 특성이 형성되고, 그에 따른 독특한 예술성이 드러난다. 개인의 특징적인 목을 '표목', 혹은 '표정목'이라고 한다. 음질이
나쁜 음반을 들을 때는 이 표정목을 가지고 창자를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에 오면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에게 독특한 목을 배워 목이 다양해야 명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 최고의 명창이었던 임방울이나
김연수(1907-1974)는 여러 사람에게 배워 다양한 목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명창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목은 개인마다 다르고 종류도 많기 때문에 재미 있는 이름도 많다.
'방울목'·'튀는목'·'너는목'·'줍는목'·'펴는목' 등등.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주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전주에 사는
박영선이라고 하는 사람이 한 말이다. 박영선 씨는 젊어서부터 우리 음악을 좋아하여 평생을 그 주변에서 보낸 사람이다. 농악단을 조직해서 공연도
했고, 판소리도 좋아해서 소리꾼과 접촉도 많았던 분이다. 참으로 우리 음악과 예술의 멋을 아는 분이었다. 우도 농악에서는 쇠잽이(꽹과리 치는
사람)를 제외하고는 고깔을 쓰는데, 그 고깔의 꽃들을 조금 늦춰(헐렁하게) 달아야 고개짓을 할 때 꽃들이 낭창낭창허는 모습이 참말로 멋있다고
일러준 분도 그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던가 대사습이 열리고 있던 경연장에서 나를 부르더니, "최교수. 이슬털이목이라고 아시오?"하는
것이었다. 이슬털이목이라니, 너무 예쁜 이름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말이요, 신영채(1915-1955?)가 잘 쓰던
목인디, '으 으 으 으으으으으으' 이렇게 허는 것이오."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천천히 단계적으로 위로 올렸다가, 잘게 꺾어 주루룩 내리는
목이었다. "이게 있잖소. 거 여름날 새벽에 논에 갈 때, 나락에 이슬이 잔뜩 맺혀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바지 가랭이에 걸려서 능청거리다가
이슬이 주루룩 떨어지잖소. 그거, 바로 그것을 흉내낸 목이오. 참 좋은디, 요새는 거, 이런 목을 쓰는 사람이 없단 말여." 그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역력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 아름다운 이름에 감탄했지만, 다음에는 민중들의 창조의
방식 때문에 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꾼들은 늘 생활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 앞에서 든
'방울목'·'튀는목'·'너는목'·'줍는목'·'펴는목' 등등도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민중들의 생활과 활동의 내용이지 않은가. 아마 신영채는
어느 늦은 여름날 새벽, 논길을 가고 있었으리라. 잔뜩 내린 이슬에 바지가랭이를 적시며. 처음에는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바지가랭이에 걸려 능청거리는 벼 잎에서 주루루룩 떨어지는 이슬을 보았을 것이다. 순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그는 그것을 음악으로,
그러니까 '이슬털이목'으로 형상화했으리라. 사실 모든 예술은 이렇듯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기에 서양음악은 서양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당연히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을 생활과 문화가 다른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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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장단



  판소리에서 장단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장단을 친다'라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장단이 북 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만 알기 쉽다. 그러나 장단은 북 치는 일과의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단은 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짜는 것'이기도 하다. 장단을 짠다는 것은 소리를 어떤 장단의 틀에 맞춰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 장단은 소리와 관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장단이 맞다'는 말도 쓴다. 맞다는 말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예컨대 판소리를 할 때 소리와
북의 장단이 맞다고 한다면, 소리와 북의 장단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이겠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장단이라는 말이 소리와 북 모두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민속음악에서는 장단의 틀이 어떤 음악 전체를 통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나위 같은 음악은 여러 가지의 악기가 각기 다른 선율을 연주하면서도 장단의 틀만은 꼭 지켜나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조화의 조화'를
실현한다. 산조의 경우에도 전체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장단의 틀이다. 가령 '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와 같은
형식적 틀을 지킨다. 판소리를 가르칠 때는, 음정은 다소 틀려도 별로 상관을 하지 않지만 장단이 틀려서는 안 된다고 세심한 주의를 한다. 그리고
용어의 측면에서 볼 때도 장단에 관한 용어가 발달되어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음악, 특히 판소리에서 장단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장단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필자는 장단이 음악의 요소 중에서 리듬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리듬은 또 다양한 층(level)을 가지고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여기서는 장단을 리듬의 여러
가지 층위 중에서 박자의 수준에서 말한 다음, 리듬의 본질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판소리 장단은 가장 쉽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면 서양 음악의 박자에 해당된다. 박자는
두 개 이상의 박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연속해서 반복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판소리의 박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박자를 배울 때는 북을 치면서
배우는데, 북으로 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원박이라고 한다. 원박은 실제 소리에 맞춰 북을 칠 때는 거의 치지 않고, 이를 다양하게
변화시킨 변화형(가락)만을 치지만, 설명과 교육의 편리상 상정해 둔 것이다. 판소리 장단의 원박을 구음(口音. 악기의 소리를 입으로 내는 특정한
소리로 표현한 것)과 정간보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진양조: 24박(6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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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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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 ?
size=2> : 왼손 손바닥으로 왼편 가죽을 치면서 동시에 북채로 오른편 북가죽을 힘 있게 침.

       궁:
face=돋움 size=2>? : 왼손 손바닥으로 왼편 가죽을 살짝 침.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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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손 손바닥으로 왼편 가죽을 힘있게 침.

       딱: │ : 북채로 북통의 앞쪽을 살짝
침.

       탁: ? : 왼편 가죽을 왼손 손바닥으로
꽉 막으면서 북통 꼭대기를 힘 있게 침.

       구궁:
face=돋움 size=2>? ? : 왼손 손바닥으로 왼편 가죽을 재빨리 두 번 침.

       당: ? : 왼손 손바닥으로 왼편 가죽을
치면서 동시에 북채로 북통 꼭대기를 침.

       따르닥. 그라닥: ? : 북채로 북통
오른편 가를 가볍게 굴려 소리를 냄.

    * 동그라미의 크기는 소리의 크기를 말함.


  2) 중모리: 12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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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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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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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중중모리: 12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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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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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진모리: 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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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휘모리: 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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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엇모리: 5박(혹은 10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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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엇중모리: 6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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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양조는 24박이 아니라 6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진양조를 북으로 칠 때는 그 네
개의 마디를 각각 다르게 치지만, 단순히 시간적 배분으로만 생각하면 똑같은 여섯 개의 마디가 네 번 반복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양조가 6박인가 24박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중모리와 중중모리, 자진모리와 휘모리를 박
수가 같은데도 구별하는 것은 패턴이 다르기 때문인데, 도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진모리는 12박으로 보기도 하며, 엇모리도 5박 혹은
10박으로 의견이 엇갈려 있지만, 이러한 이견은 똑같은 대상을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클라게스(Klages)라고 하는 학자는 리듬을 파도의 운동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오는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모래사장으로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온다. 우리는 거기서 리듬을 느낀다. 밀려오는 파도는
앞에 오는 것과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비슷하다. 그러나 같지는 않다.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같은 파도라고 알 수 있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매번 오는 파도가 새롭다. 리듬은 바로 그런 것이다. 똑같지는 않아야 하지만, 또 같은 것이라고 할 만큼 닮아야만 한다. 같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이 리듬의 '자유'라는 특성을, 닮아야만 한다는 측면이 '구속'의 측면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리듬은 자유와 구속의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의 긴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장단의 원박이 음악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패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원박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이제 막 배우기를 시작한 고수가 아니라면, 북을 칠 때 원박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치는 일은 없다.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 변화된 리듬형(가락이라고 함)은 원박의 패턴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것이 무슨 장단으로 되어 있는지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닮았다. 늘 변화하지만, 항상 어떤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장단의 리듬으로서의 본질이다.

  어떤 리듬학자는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고 한다. 리듬은 변화를 그 본질로 한다.
그런데 우주가 시작될려면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변화 속에서 시간은 시작된다. 시간이란 변화에 대한 지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는 완전한
조화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변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예측할 수 있을 만큼의 패턴을 지닌
변화, 바로 그것이 우주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는 말은 변화와 조화 속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태초에 장단이 있었다'라고.


 


판소리의 부침새



  우선 판소리가 장단 속에서 어떻게 '소리'로 나타나는가 표를 통해서 한번 보기로
하자.

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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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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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창 [호남가])


  윗 표에서 보듯이 박자는 규칙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소리로 부르는 사설 부분일 뿐이다. 사설의 첫째 줄 5, 6박과 11, 12박, 그리고 둘째 줄 10, 11, 12박은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곳이다. 그리고 둘째 줄 7박, 9박은 박 수는 한 개이지만, 사설은 두 음절로 되어 있다. 둘째 줄 2박, 3박은 두 박이지만 소리는
하나인데 길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귀로 듣는 소리는 한 개가 된다. 이처럼 귀로 들리는 것과 박의 흐름과는 차이가 난다.


  여기서 박자 속에 흘러가는 것으로 상정된 박과 사설이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판소리에서는 박과 사설의 관련 양상을 '부침새'라 한다. '부침새'라는 말은 '붙이다'의 명사형인 '붙임'에 '어떠어떠한
모양'이라는 뜻을 지닌 접미사 '새'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이다. 이러한 말뜻으로 보면, 부침새란 '박자의 박에 사설의 말을 붙이는 모양'이라는
의미가 된다.

  판소리 장단의 부침새는 크게 '대마디 대장단('대머리 대장단'이라고도 함)'과
'엇부침'으로 나눈다. '대마디 대장단'은 장단의 특수한 기법을 쓰지 않은 부침새라고 한다. 그러니까 대마디 대장단은 판소리에서 정상적이다,
혹은 규격에 맞다고 생각하는 부침새인데, 동편제 소리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부침새이다. 한편 '엇부침'이란 '엇'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정상적인 부침새, 곧 대마디 대장단에서 어긋난 부침새를 말한다. 여기서는 이해의 편리를 위하여 엇부침만을 설명하려고 한다. 엇부침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대마디 대장단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엇부침에는 밀부침, 당겨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괴대죽이 있다. 박자는 소리
속에서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박자는 음악적 분절(마디)이 된다. 그런가 하면 사설에도 분절이 있다. 작게는 음절에서부터
단어, 구, 절, 문장 등의 분절이 있다. 밀부침과 당겨부침은 음악적 분절인 박자와 사설의 분절인 문장의 구절과의 관련 양상에 관한 것이다.
대마디 대장단이라면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함과 동시에 사설의 구절이 시작되고, 장단의 끝박이 끝나면 사설의 구절도 끝이 나야 한다. 밀부침이란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한 뒤 한 박이나 두 박, 때로는 세 박까지 쉬었다가 사설이 시작하는 것을 가리키며, 당겨부침이란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하기
전에, 그러니까 앞 장단의 끝 부분에서 사설은 다음 구절이 미리 시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보자.


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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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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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첫째 장단과 둘째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이다. 장단이 시작하면서 사설의 구절이
시작되고, 장단이 끝나기 전에 사설의 구절도 끝나기 때문이다. 셋째 장단 앞 부분은 두 박이 쉬고 들어가기 때문에 밀부침에 해당된다. 넷째
장단의 11, 12박의 '한편'은 '한편을 바라보니'라는 구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섯 째 장단 처음에 나와야 할 것인데, 미리 나왔다. 따라서
이는 당겨부침이다.


  잉애걸이는 박이 떨어지고 나서 잠깐 쉬었다가 소리가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잉애'는
베틀의 '잉아'로서, 잉아는 북이 지난간 뒤에 상하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에 유추하여 이름을 붙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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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청'은 첫째 박이 시작하고 나서 잠깐 쉬었다가 나온다. 그런데 잠간 쉬었다가
나와도 쉬는 시간이 한 박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한 박을 넘으면 밀부침이 된다. 이와 같은 것을 잉애걸이라고 하며, 서양음악에서 말하는
싱코페이션(synchopation)과 같은 것이다.


  완자걸이는 세 박에 걸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3분박으로 된 장단에서 2분박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3분박으로 되는 것을 가리킨다. 완자(卍字)는 그 생김생김이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에 유추하여
이름을 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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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일색 명기' 부분이 완자걸이에 해당된다. '색'이 첫 박 중간에 시작하여
둘째 박 중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자걸이는 '박 사이사이에 사설이 붙는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완자걸이는 서양 음악에서 말하는
헤미올라(hemiola) 현상과 같은데, 이 완자걸이는 몇 번이고 겹쳐 일어날 수도 있다.


  괴대죽은 '고양이(괴) 발자국(대죽)'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하는데, 고양이가
종종걸음을 치다가 멀리 뛰어가고, 또 종종걸음을 치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괴대죽'은 한 장단 이상 사설의 말붙임이
장단의 구속력을 벗어나는 부침새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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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진 창 [심청가])


  위에서 다섯째 장단의 '아버지' 다음은, '아버지'까지 장단의 구속력을 벗어나지 않고
이어지던 소리가 여섯째 장단까지 길게 이어진다. 마치 종종걸음을 치던 고양이가 길게 훌쩍 뛰는 것과 같다. 이러한 부분이 바로 괴대죽인데,
괴대죽은 판소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괴대죽은 엇부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적인 부침새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괴대죽은 다른 엇부침과
달리 리듬상의 별다른 변화를 초래하지 않고, 다만 한 음을 길게 빼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둘째 장단은 당겨붙임이고, 넷째,
다섯째, 일곱째 장단은 밀붙임이다. 따라서 이 대목은 상황의 급박함에 맞추어 장단의 부침새 기교도 다양하게 쓰여, 그야말로 호흡이 가쁘다.


  이상으로 부침새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장단의 부침새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장단의 부침새는 판소리의 장단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장단을 직접 익혀보는 것이 중요하다. 장단과 부침새를 알고 판소리를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북, 고수



  북을 치는 사람이 고수이다.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북은 그냥 '소리북'이라고도 하고,
'고장북'이라고도 한다. 농악북과는 크기는 비슷하지만 만드는 방식이나 모양이 다르다. 농악북은 어깨로부터 허리까지 길게 매달고 뛰어다니며 쳐야
되기 때문에 가볍고, 소리도 탱탱하여 울림이 크다. 그러나 판소리북은 바닥에 발로 괴어놓고 치기 때문에 무게가 있다. 또 북의 윗부분을 치는
일이 많아서 이 부분이 약간 둥그스름하면서도 평평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농악북은 북의 양 편에 댄 가죽을 가죽끈으로 서로 묶어서 매고, 북통은
그냥 나무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지만, 소리북은 가죽을 북통 양 옆에 못으로 박아놓았고, 북통 또한 북채에 맞아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죽으로 덮어 씌웠다.

  북통에 맨 가죽은 소 겉가죽을 쓰므로 매우 질기다. 북통은 큰 통나무의 안을 파내어
쓰기도 하고(통북),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이어붙여서 만들기도 한다(쪽북). 크기는 보통 지름이 40cm 정도이고, 북통의 넓이는 25cm정도
된다. 소리북은 농악북보다 북통을 만드는 나무가 훨씬 두꺼워 무겁다. 따라서 깊이 있고, 무게 있는 소리가 난다.

북은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손은 엄지손가락을 왼쪽 북통 끝에 가볍게 걸치고 손바닥을 모아서 '궁'하고
가죽을 치거나, '구궁'하고 굴려서 친다. 오른손에는 북채를 쥐고 오른편 북가죽의 한가운데, 북통의 오른편 가장자리, 북통의 맨 위 한가운데
등을 친다. 북통의 오른편 가장자리를 '반각' 혹은 '소각'이라고 하며, 북통의 맨 위 한가운데는 '온각' 또는 '대각'이라고 한다. 북통을 칠
때는 살짝 치거나, 세게 치거나, 아니면 '따르닥'하고 굴려 친다. 북의 왼편, 손바닥으로 치는 쪽을 궁편, 북채로 치는 쪽을 채편이라고 한다.
북채는 탱자나무나 박달나무를 둥글게 깎아 쓰는데, 탱자나무를 가장 많이 쓴다. 탱자나무 북채가 부드러운 소리가 나서 판소리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북채는 지름이 약 2cm 정도이고, 길이는 25-28cm 정도 되는 것을 사용한다.

  고수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는 자세, 가락, 추임새이다.

  고수의 자세는 책상다리를 하고, 허리를 펴며, 창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앉는 것이
기본이다. 북은 왼편 무릎 앞이나 왼쪽에 놓고, 왼 무릎과 오른발 발바닥으로 움직이지 않게 받쳐 준다. 소리를 하는 도중에 쓸 데 없는 동작으로
산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고수의 자세는 자연스럽고, 의젓하며, 유연해야 한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흐트러지지 않고 부드러워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의젓해야 한다는 것은 경박하지 않고 무게 있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연해야 한다는 것은
경직되지 않아서 어떠한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여유 있는 태도를 말한다.

  잘못된 고수의 자세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① 앉은뱅이자세 : 고수가 안정되지 못하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돌리며 좌불안석하는 자세.

     ② 장님자세 : 소리꾼의 소리나 동작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자세.

     ③ 귀머거리자세 : 소리꾼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북통만 뚫어지게 내려다보며 북을 치는 자세.

     ④ 벙어리자세 : 멍하니 무기력하게 입을 벌리고,
추임새를 하지 못하는 자세.

     ⑤ 꼽추자세 : 허리를 바로 펴지 않고 볼품 사납게
앞으로 굽힌 자세.

     ⑥ 입방아자세 : 북가락에 따라 아래 위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자세로, 입장단자세라고도 한다.

     ⑦ 뱀자세 : 주로 '합'장단이나 '탁'장단을 칠
때, 혀를 날름거리는 자세.

     ⑧ 상모잽이자세 : 농악에서 상쇠가 상모를 돌리듯이
북가락에 따라 고개를 전후좌우로 돌려대는 자세.

     ⑨ 허리춤자세 : 북가락에 따라 허리를 움죽움죽하는
자세.

     ⑩ 구와증자세 : 북을 침에 따라 고수의 입이 점점
비뚤어지는 자세.

     ⑪ 보리타작자세 : 북채가 어깨너머로 넘어가는 자세.

     ⑫ 호령자세 : 소리와는 관계없이, 눈을 부릅뜨고,
얼굴은 성난 표정으로 금방 호령이라도 할 것같은 자세.

     ⑬ 비웃는 자세 : 소리는 어떤 대목을 하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고, 얼굴 표정이 소리꾼이나 소리를 비웃는 듯한 자세.

     ⑭ 놀란 자세 : 북을 세게 칠 경우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깜짝 놀라는 것 같이 치는 자세.

     ⑮ 수줍은 자세 : 얼굴은 붉어지고, 미소는
지으면서, 눈망울은 이리저리 바닥만 헤매는 자세.

  여기서 들고 있는 자세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이 없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버릇이
된 것들인데, 한번 버릇이 되어버리면 고치기가 힘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세를 바로 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락'이란 고수가 치는 다양하게 변화된 리듬형을 가리키는데, 이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습득해야 한다. 고수는 다양하게 변화된 북가락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 때나 다양한 북가락을 치는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때
즉흥적으로 소리와 잘 어울리는 북가락을 만들어 쳐야 한다. 어떤 리듬형이 소리의 어떤 부분에 잘 어울리는가를 그때그때 알아서 잘 치기 위해서는,
수많은 소리와 소리꾼을 접해야 한다.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수는 없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명고수가 되기 위해서 수련해야 하는
기간이 길고 힘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아마추어로서 최고의 명고수였던 송영주라고 하는 사람은 늘 말하기를, "북은 만 번 친 사람과 만한
번 친 사람이 다르다."고 했는데, 이 또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서만 훌륭한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면 판소리 공연 중에 고수는 어떠한 일을 맡는가. 물론 고수가 판소리 공연 중에
하는 역할은 북장단과 추임새를 통하여 하게 된다. 따라서 고수의 역할은 추임새와 북장단의 기능을 합친 것이 된다. 추임새의 기능은 뒷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북장단을 통한 기능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첫째, 반주의 기능이다. 북장단은 일단 소리에 따라 장단을 맞춰주어, 소리꾼이
소리하기에 편하게 해주는 것이 첫 번째 기능이다. 이것이 반주에 해당하는 것인가, 합주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해결해야할 과제이지만, 일단
여기서는 반주의 기능으로 보기로 한다. 고수는 소리에 알맞는 북가락을 쳐줌으로써, 소리만의 단순성을 벗어나게 하고, 또 소리에 광채를 더해 줄
수도 있다.

  둘째, 소리의 공간을 메꾸어 준다. 이는 소리가 쉬는 휴지부를 북가락으로 메꾸어
줌으로써 소리를 보충하는 구실을 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효과를 대신한다. 예컨대 수많은 군사들이 맞붙어 싸우는 전투 장면같은
곳에서는, 북가락을 힘차고 복잡하게 쳐서 군마가 뛰어다니며 싸우는 효과음을 대신할 수도 있고, '북을 두리둥 두리둥 울리면서'하는 구절에서는
북장단도 '두리둥 두리둥' 울려주어 북소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춘향이가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북통 복판을 세게 쳐서 매맞는 효과음처럼 들리게
할 수도 있다.

  넷째, 소리꾼을 도와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소리꾼이 소리를 하는 중에 템포가
느려진다면, 고수는 북장단을 약간 빨리 쳐주어 소리의 템포를 빠르게 이끌어가고, 소리가 빨라진다면 북장단을 약간 늦게 쳐주어 템포를 늦추어
일정한 템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것을 '거두기'와 '늘이기'라고 한다.

  다섯째, 보비위 기능을 들 수 있다. 보비위란 소리꾼이 기교를 부리기 위해 소리의
템포를 늘이는 경우, 이에 따라 북장단도 같이 늘어지게 친다거나(따라치기), 소리꾼이 잘못하여 박자를 빼먹거나 늘였을 경우(12박자를 11박자로
부른다거나, 13박자로 부르는 경우), 얼른 이를 가늠하여 맞춰주는 일을 말한다.

요컨대, 판소리 공연에 들어서면 소리꾼과 고수는 공동 운명체이므로, 서로 잘못은 감싸주고, 잘 하는 것은
힘을 북돋우어 더 잘 하게 하여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들을 일일이 들기로 하면 이보다 더 많은 기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두드러지는 것만을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중요성을 나타낸 말로,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고수가 더
중요하고 다음이 명창이란 뜻으로 해석한다. 이 말의 일반적 해석처럼 판소리에서 고수가 더 중요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위에서 든 여러 가지
기능으로 보아 고수도 소리꾼만큼 중요성을 가진 존재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판소리사에서 보면, 초기에는 고수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것 같다. 보수도
소리꾼의 3분의1 정도에 불과 했고, 소리를 하러 갈 때도 소리꾼은 말을 타고 가는데, 고수는 북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고수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항상 불만을 가졌고, 고수 노릇을 소리를 배우기 위한 방편 쯤으로 생각했다. 많은 명창들이 고수를 거쳐 명창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고법은 많은 발전을 했고, 이에 따라 고수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애초부터 고수가 되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 고수는 소리하다가 실패하거나, 소리꾼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독자적인 예술가로 대접받으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추임새



  '추임새'는 소리 도중에 발하는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아먼(암)' 등의 감탄사를 가리키는데,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잡가·무가 등 다른 분야의 성악곡에서도 볼 수 있다. 추임새라는 말은
'추어주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추어주다'는 '정도 이상으로 칭찬해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추임새는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게
있는 음성으로, 분위기에 맞게 해야한다. 곧, 소리가 슬플 때는 추임새도 이에 맞춰 어조를 슬프게 해야하며, 즐거운 대목에서는 추임새도 힘차고
흥겨운 어조로 해야한다. 또 소리꾼이 누구든지 간에 '좋지요', '좋습니다'와 같이 존대말을 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추임새는 고수와 청중이 한다. 그러므로 추임새 또한 고수의
추임새와 청중의 추임새 양면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수는 한편으로는 소리꾼과 함께 공연자의 입장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청중의 입장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수의 기능은 이처럼 복합적인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도 있다. 고수가 청중의 입장에서 추임새를 할 수 있는바, 이 때는
청중의 추임새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중의 추임새는 무엇인가. 우선 추임새는 판소리의 개인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감상은 개인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내용과 개인의 의식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 감상행위이기 때문이다. 추임새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판소리라는 예술작품과 청중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추임새는 또 공동체의 집단 즉흥의 현상이다. 판소리 청중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다수이다. 사람들은 집단으로 있을 때와 개인으로 있을 때는 행동 양식이 다르다고 한다.
군중심리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이다. 그런데 판소리 청중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그리고 그 추임새는 판소리가 불려지는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곧 즉흥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추임새이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 즉흥적으로 똑같은 행동(추임새)을 하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은 동질성을 느낀다. 이는 마치 우리가 축구 구경을 할 때, 한 마음이 되어서 집단으로 참여하면서 같은 느낌을 주고받는 경우와
같다. 그래서 음악은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집단의 단결을 도모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청중은 추임새를 통하여 무엇을 표현하는가. 첫째, 감동과 합의의 표현이다.
판소리로부터 전달되는 의미에 대해 감동을 하거나, 판소리에서 주장되는 것에 합의를 할 때 추임새는 튀어나온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추임새는 감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며, 토끼가 용왕에게 간을 빼내어 계수나무에다 걸어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죽을 고비로부터 벗어나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그러한 사태 전개에 대한 합의로부터 나온다.

  둘째, 저항과 화해의 표시이다. 판소리의 내용에는 감동과 합의를 보낼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놀부가 곡식을 얻으러 온 흥보를 두들겨 패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놀부의 행위에 대한 저항감의 표출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
놀부에게 보내는 추임새는 화해의 표시이다. [적벽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조가 살아가게 되었을 때 보내는 추임새 또한,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혔으나 이제 전쟁에 패해 능력을 상실한 간사한 영웅에 대한 화해의 표시이다.

  셋째, 추임새는 또 심미적 황홀경(엑스타시)의 표현이다. 예술작품은 미를 감상하는
대상물이다. 훌륭한 미는 인간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순간적인 황홀경에 빠졌을 때 추임새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추임새는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추임새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잘 알고, 또 판소리로부터 진정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 정도면 진정한 청중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청중을 '귀명창'이라 하여 명창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고수의 추임새는 창자와 같은 공연자로서 하는 추임새이기 때문에, 창자와 함께 어떻게
판소리를 잘 만들어가느냐 하는 데 우선적인 목표가 있게 된다. 그런데, 고수의 기능 중에서 보통은 북가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북가락보다 추임새가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어설픈 가락보다는 멋진 추임새 한 마디가 훨씬 소리판을 생동감 있게 한다. 그러면 고수의
추임새는 어떤 일을 하는가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흥을 돋군다. 고수는 추임새를 함으로써 창자의 흥을 돋구어 주어, 보다 더
나은 소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소리꾼이 장시간 소리를 하느라고 지쳐서 소리가 자꾸 가라앉을 때, 고수의 힘찬 추임새는 창자가 힘을 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고수의 추임새는 창자의 흥을 돋굴 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흥을 돋구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리판이 잘
어울려지도록 한다.

  둘째, 소리의 강약을 보좌한다. 소리는 사설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추임새도
이에 따라 강한 곳은 강하게, 약한 곳은 약하게 함으로써 소리의 강약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셋째, 소리의 공간을 메꾼다. 소리는 가다가 숨을 쉬는 휴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서양음악은 대개 반주가 따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반주로 메꾼다. 그러나 판소리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북과 추임새뿐이다. 그래서 이런
휴지 부분이 나오면, 북가락으로 대신 메꾼다든가, 추임새로 대신 빈 공간을 채워 소리가 밋밋하지 않도록 한다.

  넷째, 북소리를 대신한다. 고수는 북가락을 넣어야 할 때, 이를 생략하고 대신
추임새로 메꿀 수 있다. 특히 북소리를 내는 것이 소리꾼이 소리를 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소리에 방해가 되는 때는 추임새로
대신하는 것이 훨씬 좋다.

  다섯째, 상대역의 대사를 대신한다. 고수가 아니리를 할 때는 고수는 추임새로써 이에
응하게 되는데, 이럴 때는 고수의 추임새가 마치 상대역의 대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이 때 간단한 대사를
즉흥적으로 지어내어 하는 경우도 있다. [춘향가] 중에서 어사와 장모가 상면하는 대목 같은 곳에서는, 소리꾼이 "어디를 갔다가 인제 오는가, 이
사람아!"할 때, 고수가 '얼씨구!'라고 추임새로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고, "서울 갔다 오네, 이 사람아."라고 간단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고수를 상대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수가 일단 상대역은 되지만, 고수는 자리를 움직일 수
없고, 추임새 이외의 말은 원칙적으로 할 수 없는 등의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 때문에, 추임새만을 통하여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임새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물론 좋은 추임새란 상황에 맞는 성음으로 무게
있게 하는 추임새일 것이다. 그러면 어떤 추임새는 하지 말아야 하는가. 좋지 못한 추임새의 예를 들어본다.

     ① 보리타작 추임새 : 처음부터 끝까지 '허이,
허이'만을 되풀이해서, 마치 보리타작할 때 서로 주고 받는 소리와 같은 추임새.

     ② 반토막 추임새 : '좋다'하면 북가락이
삐게(틀리게) 되는 까닭에 끝을 못 붙이고, '조 - ', 또는 '쪼 - '와 같이 말의 반토막만 하는 추임새.

     ③ 콩볶기 추임새 : 자진모리나 휘모리, 혹은 빠른
중중모리 등의 빠른 장단을 칠 때, 북가락에 맞추어서 마치 콩 볶는 소리와 같은 '따 따 따 따'하는 소리를 내면서 하는 추임새.

     ④ 물 마시기 추임새 : '좋다', '으이',
'얼씨구' 따위가 아니고, 마치 물 마시는 사람처럼 '허업, 허업'하는 소리를 내는 추임새.

     ⑤ 모기소리 추임새 : 여름밤의 모기소리와 같은
'앵'하는 소리로 하는 추임새.

     ⑥ 살앓이 추임새 : 생살 앓는 사람의 신음소리같이
'끙끙'하는 추임새.

     ⑦ 비웃는 추임새 : 소리를 비웃기나 하듯이
'헤이', 또는 '흥'하는 추임새.

     ⑧ 호랑이 추임새 : 호랑이가 울부짖듯 '어흥 어흥'
하는 추임새.

     ⑨ 형님 추임새 : 형이 아우를 부르듯이 '아우,
아우' 하는 추임새.

     ⑩ 초상집 추임새 : '아이고, 아이고' 하는
추임새.


 


우조, 계면조



  판소리에는 '조'라는 것이 있다. 판소리의 조에는 계면조(界面調), 우조(羽調),
평조(平調)의 세 가지가 있으나, 중심이 되는 것은 계면조와 우조이다. 계면조, 우조, 평조라고 하는 명칭은 본래부터 판소리에서 쓰이던 것은
아니고, 정악(양반 사대부들의 음악)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계면조는 '설움조', 우조는 '호령조'라고도 하는데, 본래는 이처럼 순 우리말로
일컫다가 나중에 정악 창조의 명칭을 판소리에 들여다 빌어 쓴 듯하다.

  판소리의 '조(調)'는 구성음, 선율의 형태, 악상(樂想. mood)과 같은 여러
가지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장 일반적으로는 악상, 곧 창법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서양음악에 장조와 단조가 있어서, 장조는 주로 기쁘고,
씩씩하고, 남성적이며, 단조는 슬프고, 어둡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

  {해동가요}와 {가곡원류}에서는 정악의 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평조(平調) : 평조의 성률은 정대하고 화평하다.
슬프되 편안하고, 웅심하며 화평하다. 마치 황종(정악의 12율 가운데 기초음)이 한 번 울리니, 만물이 모두 봄을 만난 것 같다.


     우조(羽調) : 맑고, 격하고, 씩씩하고, 거세다.

     계면조(界面調) : 매우 슬프게 흐느낀다.


  이상의 세 가지 기본 조에 대한 설명은 판소리의 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계면조는 판소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로서, [육자배기]나 [남도 흥타령]같은 전라도
민요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이다.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슬픈 장면이나 여자의 거동을 묘사하는 데 흔히 쓰인다.

  우조는 가곡, 시조와 같은 정악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이다.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장엄한 장면, 남성다운 장면, 유유한 장면 등에 쓰인다.

  평조도 우조와 마찬가지로 가곡, 시조와 같은 노래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명랑하고 화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쁜 장면, 흥겨운 장면에 주로 쓰인다.

  한편, 이 조들을 다시 세분하기도 하는데, 이를 간략하게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
① 진우조 : 호기 있고 위엄 있게


     1) 우 조 -+- ② 가곡성 우조 : 점잖고 품위
있게, 품위 있고 우아하게

                   +-
③ 평우조 : 즐겁고 경쾌함이 지나치지 않게

     2) 평 조 -+- ④ 평조 : 화평하고 한가하게,
혹은 담담하고 여유 있게

                   +-
⑤ 평계면 : 약간 애조를 띠고

     3) 계면조 -+- ⑥ 단계면 : 슬픈 감정을 갖고,
혹은 여린 감정을 갖고

                     +-
⑦ 진계면 : 아주 슬프고 비통하게


  이 이외에도 경드름, 반경드름(반드름), 설렁제, 등을 조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평조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경드름은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경기도 여주 출신 소리꾼 염계달이 만들어내고,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송만갑(1865-1939)이 발전시킨 것으로, '경조'라고도 하는데, 경기도 민요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이다. 경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서울 사람이나 왈자(건달)들의 행동을 그리는 장면에 쓰인다. [춘향가]에서 이별을 하면서 이도령이 춘향을 달래는 대목이나, 춘향이가
매를 맞았다는 말을 듣고 남원골 한량들이 사또를 욕하는 대목 등이다.


  반경드름은 '반드름', 혹은 '추천목'이라고도 하는데,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경기도 출신의 소리꾼 염계달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도 경기도 민요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이며, 경쾌한 느낌을 준다. [춘향가] 중에서 방자가
춘향의 그른 까닭을 따지는 대목, [수궁가]에서 용왕이 수궁 풍류를 베푸는 대목, 세상으로 살아나온 토끼가 자라를 욕하는 대목 등에 쓰인다.

  설렁제는 '덜렁제', '권마성조', '드렁조'라고도 하는데, 가마꾼이 가마를 모는
소리인 권마성을 판소리화한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 소리꾼 권삼득이 만들었다. 경쾌하고 씩씩하고 호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경박한 인물이 거드럭거리며 외치고 나가는 대목에 주로 쓰인다. [춘향가]에서 군로 사령이 춘향을 잡으러 가는 대목,
[심청가]에서 남경장사 선인들이 처녀를 사려고 외치는 대목, [흥보가]에서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가는 대목 등이 대표적이다.

  조는 소리를 들은 다음 종합적인 느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판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조에서 기본이 되는 계면조와 우조는 우리 민족의 감성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민적 감성 대
양반적 감성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이한 것 중 하나는 판소리에서 가장 흥겨운 대목은 계면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슬픔과 기쁨을
거의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 상태를 반영한다. 평조는 우조나 계면조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중간 성질의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면조는 기교적인 창법이다. 소리를 떨고 꺾어서 슬픈 감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올수록 판소리는 계면조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이는 아마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판소리의 공연방식이 무대공연을 주로 하게 되고, 음반이 제작되어 누구나 쉽게 판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됨으로써,
판소리가 서민적 감성에 보다 크게 의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민족사회가 처한 환경이 슬픈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슬픈 가락인 계면조가 더욱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판소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우리 전통음악 전반에
이와 같은 현상이 있었다. 슬픈 가락의 증대는 음악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일단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동편제, 서편제



  판소리 용어 중에서 '판소리'라는 말 말고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이 바로 '서편제'일
것이다. 공전의 대히트를 한 영화 [서편제] 때문에 '서편제'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용어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온갖 오해가 난무하고 있어서 차분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서편제라는 용어는 넓게 보면 '제'라는 개념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개념이다. 그래서 '제'라는 개념을 우선 알아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한다.

  판소리 '제'의 쓰임새를 보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지만, 일반적으로는 유파의 개념으로
쓰인다. 판소리에서 유파의 구분이 생기게 된 것은 일단, 판소리가 발전하여 다양해지고, 이 다양한 판소리를 간추려서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양한 판소리를 유형화하여, 비슷한 양식끼리 한 데 묶어 구분을 해본 것이 '제'라는 개념으로 형성되었다는 말이다.

  '제'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1940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나온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이다. {조선창극사}는 90명에 이르는 명창과 명고수의 간략한 전기와 더늠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책의 앞부분에서 판소리에 관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는 가운데, '대가닥(전승의 큰 줄기라는 의미)'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제'를 설명하고 있으며, 각 명창의 이름 아래
'동편'이니, '서편'이니, '중고'니 하여 '제'의 구분을 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오죽하면 모든 소리꾼들을 동편제나 서편제 중 하나에 포함시키는 거대한 도표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제'의 구분을 최초로 시도했던
{조선창극사}에서는 모든 소리꾼들을 다 동편, 서편, 중고 등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제'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전기 8명창들의
경우에는 아무도 '제'의 표시가 없다. 그러니까 '제'라는 것이 애초부터 있어서 '나는 이런 소리를 한다'고 표방한 것이 아니고, 나중에
판소리가 다양해지고 복잡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제'라는 관념이 생겨나 구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라는 말과 개념은 후대에
생겨나 점점 발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에 관해 논의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편제
size=2>: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으로 일컬어지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우조(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낸다.


     서편제 :
size=2>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계면조(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징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 면에서는 엇부침이라하여, 매우 기교적인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발림(육체적 표현. 동작)이 매우
세련되어 있다.

     중고제 :
face=돋움 size=2>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 전승된 소리로, 송흥록과 동시대 사람인 강경 출신
김성옥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음악적 특색은 비동비서(非東非西), 혹은 동·서편의 중간인데, 일제강점기 이후 전승이 끊어졌다.

위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제'에는 동편제·서편제·중고제의 세 가지 종류가 있으며, '제' 구분의
기준은 전승 지역·전승 계보·음악적 특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고제의 경우, 현재는 전승이 끊어져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특성에 관해서도 '비동비서'니, '동·서편의 중간'이니 하여,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 실체나 개념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편제와 서편제이다.


  우선 동·서편의 구분이 전승 지역에 따라 가능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주지하다시피
판소리는 사람이 지니고 있으며, 사람은 한 곳에 붙박혀 사는 게 아니고, 마음대로 옮겨다닐 수 있다. 교통이 불편하여 내왕이 적었던 전통
시대에는 그래도 옮겨다니는 범위나 횟수가 적었지만, 개화 이후에는 교통의 발달로 소리꾼의 내왕이 전국적인 범위로 행해졌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의 소리가 꼭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전승 지역에 따른 판소리 '제'의 구분은 개화 이전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몰라도,
현대에 오면 전혀 타당성이 없게 되었다. 더구나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예술 양식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소리꾼이 어디 출신이라고 해서 바로 서편제 소리꾼이니, 동편제 소리꾼이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전승 계보에 대해 살펴보자. 판소리는 전승 예술이다. 그러니까 판소리꾼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어떤 소리를 전수받았는가가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판소리 창자들은, 특히 창조성이 강한 창자들은
선생에게 배운 대로만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 창조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동편제 소리의 정통 가문 출신이었으면서도,
새로운 양식의 소리를 개발하여 가문으로부터 독살 당할 뻔했던 송만갑 같은 사람이 좋은 예이다. 그러니까 동편제 소리꾼의 제자라고 해서 바로
동편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요사이는 또 많은 선생으로부터 다양한 소리를 전수받는 경향이 점점 더 늘고 있으며, 그런 사람일수록 명창
소리를 듣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전승 계보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몇몇 이유로 인하여 전승 계보 또한 판소리
유형을 나누는 효과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예를 들자면 김소희 같은 사람은 처음에는 가장 전형적인 동편제 소리꾼인 송만갑에게
배웠으나, 나중에는 전형적인 서편제 소리꾼인 정정렬과 박동실에게 배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했다. 그러면 전승 받은 것만 보아서는 김소희의
'제'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예컨대 강도근처럼 전형적인 동편제 소리를 했던 송만갑과 김정문,
유성준에게만 배우고, 송만갑과 김정문의 소리 양식만을 끝끝내 고집한 경우이다. 이럴 때는 보다 쉽게 동편제 소리꾼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음악적 특성에 의한 구분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검토해
보자. 앞에서 동편제 혹은 서편제 소리의 특성으로 든 사항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판소리가 공유하는 특질이다. 모든 판소리는 대마디
대장단과 엇부침을 지니고 있으며, 또 경우에 따라 소리 끝을 끊어 내기도 하고, 늘여빼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되는 특질을 다 갖추어야 한 편의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위에서 든 어느 한 쪽의 특성만으로는, 앙상한 추상물에 지나지 않아서 온전한 예술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동편제 소리니 서편제 소리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동편제와 서편제라는 관념일 뿐이다. 결국 이 음악적 특성이라는
것도, 어떤 소리가 어떤 관념에 더 근접한 것인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사용할 때만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제'라고 하는 것은 현대 판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는 더 이상 적절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판소리를 대할 때 '제'라는 틀로 판소리를 보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판소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아직 만들어지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더 이상 소설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실효성이 없는 낭만주의니 사실주의니 하는 잣대로 현대
소설을 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그것마저 없으면 판소리를 유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라는 용어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판소리를 바라다보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제'라는 용어는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퍽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디



  '바디'라는 이 예쁜 이름은 판소리의 전승계보와 관련하여 쓰인다. '바디'는
'받다'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그런데 '바디'는 '제'보다는 작은 개념이다. 그래서 '제' 속에 여러 개의 바디가 존재하게 된다. '바디'
대신에 '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같은 스승한테 똑같은 소리를 배워도 각자 개성이 있어 소리는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보다 스승의 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배운 대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배운 대로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무언가 자기만의 것을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계보에 속하는 소리들을 따서 넣을 수도 있다. 계보의 순수성을
고집하지 않으려는 개방적인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 사람이 하는 소리는 배운 것과는 다른 소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이 소리는 이제 다른 '바디'가 된다. 그리고 바디의 이름은 처음 그 소리를 시작한 사람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른다. 예컨대,
[김세종 바디 춘향가], [정정렬 바디 춘향가], [송만갑 바디 적벽가], 이런 식이다. 물론 하나의 바디로 설정되어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소리가 예술적으로 훌륭해서 청중들의 호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전승되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디가 같으면 같은 작품의 개념으로 보아도
된다. 바디가 다른 경우에만 이본(異本)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남아서 전승되고 있는 바디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바디는 '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표시하기로 한다.

 


동편제 계보 1.


borderColorLight=black border=1 130%" LINE-HEIGHT:
15px; 0px>





















































































>
>송흥록



face=돋움 size=2>송광록



face=돋움 size=2>송우룡



>
>유성준


>
>(바디)



face=돋움 size=2>임방울



>



>



>
>김연수


>
>(바디)



face=돋움 size=2>오정숙



face=돋움 size=2>이일주



face=돋움 size=2>조소녀



face=돋움 size=2>민소완



face=돋움 size=2>정광수



face=돋움 size=2>김영자



>



face=돋움 size=2>박초월



face=돋움 size=2>최난수



face=돋움 size=2>강광례



face=돋움 size=2>남해성



>



face=돋움 size=2>조통달



>



face=돋움 size=2>김수연



>



face=돋움 size=2>전정민



>



face=돋움 size=2>박동진



>



>



>
>송만갑


>
>(바디)



face=돋움 size=2>장판개



>



>



>
>김정문


>
>(바디)



face=돋움 size=2>강도근



face=돋움 size=2>안숙선



face=돋움 size=2>전인삼



face=돋움 size=2>박록주



face=돋움 size=2>박송이



face=돋움 size=2>한농선



face=돋움 size=2>박봉래



>
>박봉술


>
>(바디)



face=돋움 size=2>김동준



face=돋움 size=2>송순섭



face=돋움 size=2>김일구



face=돋움 size=2>안숙선



>
>김소희


>
>(바디)



face=돋움 size=2>신영희



>



face=돋움 size=2>안행련



>



face=돋움 size=2>안숙선



>



face=돋움 size=2>이명희



>



face=돋움 size=2>박계향



>


* 유성준 바디는 [수궁가]와 [적벽가], 김정문 바디는 [흥보가], 박봉술 바디는 [적벽가], 박초월
바디는 [흥보가], 김소희 바디는 [춘향가]를 주로 전승하였다. 이 중에서도 김소희 바디 [춘향가]는 극히 일부에서만 송만갑 바디를 계승하였다.



동편제 계보 2



정춘풍 ―
박기홍 ― 조학진 ―박동진 ― 강정자


(바디)

* 정춘풍 바디는 [적벽가]만을 전승하였다.


동편제 계보 3.




borderColorLight=black border=1 130%" LINE-HEIGHT:
15px; 0px>






















>
>김세종


>
>(바디)



face=돋움 size=2>김찬업



face=돋움 size=2>정재근



face=돋움 size=2>정응민



face=돋움 size=2>정권진



>



face=돋움 size=2>성우향



>



face=돋움 size=2>성창순



face=돋움 size=2>이임례



face=돋움 size=2>조상현



face=돋움 size=2>은희진



face=돋움 size=2>박춘성



>


* 김세종 바디는 [춘향가]만을 전승하였다. 때로 김세종 바디를 '정응민 바디'라고 일컫기도 한다.


서편제 계보




borderColorLight=black border=1 130%" LINE-HEIGHT:
15px; 0px>





































































































































































>
>박유전



>
>정창업


>
>(바디)



>
>김창환


>
>(바디)



face=돋움 size=2>김봉학



face=돋움 size=2>정광수



>



>



face=돋움 size=2>오수암



>
>박초월


>
>(바디)



face=돋움 size=2>최난수



face=돋움 size=2>강광례



face=돋움 size=2>조통달



>



face=돋움 size=2>김수연



>



>
>김연수


>
>(바디)



face=돋움 size=2>오정숙



face=돋움 size=2>이일주



>



face=돋움 size=2>민소완



>



>
>정정렬


>
>(바디)



face=돋움 size=2>김여란



face=돋움 size=2>최승희



>



>



face=돋움 size=2>박초선



>



>



face=돋움 size=2>이기권



face=돋움 size=2>홍정택



>



>



face=돋움 size=2>강종철



>



>



face=돋움 size=2>김소희



face=돋움 size=2>이명희



>



>



face=돋움 size=2>안숙선



>



>



face=돋움 size=2>신영희



>



>



face=돋움 size=2>박계향



>



>



face=돋움 size=2>김연수



face=돋움 size=2>오정숙



face=돋움 size=2>이일주



>



face=돋움 size=2>조소녀



>



face=돋움 size=2>민소완



>



face=돋움 size=2>김소영



>



face=돋움 size=2>박동진



>



>



>



>
>이날치


>
>(바디)



>
>김채만


>
>(바디)



face=돋움 size=2>공창식



face=돋움 size=2>조몽실



>



>



face=돋움 size=2>공기남



>



>



face=돋움 size=2>박종원



face=돋움 size=2>한승호



>



>



face=돋움 size=2>박후성



>



>



>
>박동실


>
>(바디)



face=돋움 size=2>공대일



>



>



face=돋움 size=2>한애순



>



>



face=돋움 size=2>김동준



face=돋움 size=2>이성근



>



face=돋움 size=2>장월중선



face=돋움 size=2>정순임



>



face=돋움 size=2>김소희



face=돋움 size=2>이명희



>



face=돋움 size=2>안숙선



>



face=돋움 size=2>정재근



>
>정응민


>
>(바디)



face=돋움 size=2>정권진



>



>



>



face=돋움 size=2>성우향



>



>



>



face=돋움 size=2>성창순



face=돋움 size=2>이임례



>



>



face=돋움 size=2>조상현



face=돋움 size=2>은희진



>



>



face=돋움 size=2>박춘성



>



>



>



face=돋움 size=2>김소희



face=돋움 size=2>이명희



>



>



face=돋움 size=2>안숙선



>



>


* 김창환 바디는 [흥보가], 김채만 바디 중에서 박종원 계통은 [적벽가], 박동실 바디는 [심청가],
정정렬 바디는 [춘향가], 정응민 바디는 [심청가]를 주로 전승하였다.

 


중고제 계보


borderColorLight=black border=1 130%" LINE-HEIGHT:
15px; 0px>














>
>김성옥



face=돋움 size=2>김정근



>
>김창룡


>
>(바디)



>



>
>김창진


>
>(바디)



face=돋움 size=2>박동진



>
>이동백


>
>(바디)



face=돋움 size=2>강장원


* 중고제 소리는 주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가 전승되고 있었는데, 박동진에게 이어진 소리는
[심청가]이며, 다른 소리는 부분적으로 전승되는 한두 대목을 제외하고는 전승이 끊어졌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어떤 사람의 소리를 다른 바디로 설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체로 합의가 된 상태에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같은 작품인데도
'김채만 바디'라고도 하고, '이날치 바디'라고도 한다.


  '제'나 '바디'는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그릴 수는 있지만,
이것은 전승의 실상, 곧 무엇을 얼마나 이어받았는지는 무시하고 작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전승계보 하나만을 가지고 판소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와 '바디'를 말할 때는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


 


판소리사



가.
형성기

  문헌을 통해서 판소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은 영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 때 사람인 만화재(晩華齋) 유진한(柳振漢)의 문집인 {만화집} 가운데 [가사 춘향가 200구](흔히 이것을 [만화본 춘향가]라고
한다)가 실려 있는데, 이것이 현재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판소리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인 것이다.

  [만화본 춘향가]의 내용은 현재의 [춘향가]와 거의 같다. 긴 사설을 짧은 한시로
번역했기 때문에 자세한 세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보아 '결연 - 사랑 - 이별 - 수난 - 재회'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줄거리와 등장 인물에
있어서는 현재의 것과 차이가 없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보아 판소리는 이미 18세기 중반 이전, 그러니까 대체로 17세기 말 경에는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

  초기의 판소리는 민중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르는 사람도
민중이고 청중도 주로 민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판소리는 서서히 양반 층으로 침투하게 되어 기록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모를 겪게 되는데, [만화본 춘향가]는 그러한 과정의 한 산물로 보인다.

  1810년 경에 씌어진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라는 총 50 수로 된
한시에는 판소리 열두 바탕이 등장하며, 우춘대, 권삼득, 모흥갑 등 소리꾼의 이름도 나타난다.

  이 시기의 판소리의 존재 양식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역시 송만재가
[관우희]를 쓰게 된 연유를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 재인들을 불러 노래와 재주를 구경하는 풍속이 있는데, 금년 봄 우리 아이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안이 가난하여 한 바탕의 놀이를 베풀 수 없으므로 이 시를 짓는다'라고 밝힌 부분이다. 이를 보면, 초기의 판소리는 과거
급제와 같은 잔치에 초대되어 가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생의 중요한 계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와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판소리는 아직 음악이나 사설의 내용에 있어서 현재의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빈약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전기 8명창
시대


  19세기 초반은 판소리사에서 '전기 8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이 시대에 이르러
판소리는 완전히 12 바탕으로 완성되고, 여러 명의 훌륭한 명창들이 등장하여 판소리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판소리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8명창 시대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전기는 19세기 전반, 후기는 19세기 후반에
해당된다. 19세기의 판소리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그 두 시기의 판소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8명창 시대라고 하면 여덟 명의 명창이 활동하던 시기라는 뜻이겠으나, 여기서는 꼭
8이라는 숫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8명창 시대란 '여덟 명 정도'의 명창이 활동하던 시기라는 의미이며, 이 때의 '여덟 명 정도'는 그
당시 활동했던 명창들 중에서 뛰어났던 사람들을 총괄하는 의미를 띠고 있다. 또 사람에 따라서 평가의 기준이 달라서 꼽는 사람들도 다르다.

  전기 8명창에 거론되는 사람들은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주덕기, 황해천 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구체적인 더늠이나 특별한 선율 형태 등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러한 다양한 더늠과
선율의 개발을 통해 판소리의 음악적 세련에 큰 공헌을 하였다.


다. 후기 8명창
시대


  19세기 후반은 후기 8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이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8명창에 드는 사람들은 박유전, 박만순, 이날치, 김세종, 송우룡, 정창업, 정춘풍, 김창록, 장자백, 김찬업, 이창윤 등이다. 후기 8명창들은
전기 8명창의 소리를 계승하여 다양한 더늠들을 개발하였다. 전기 8명창들이 대부분 다양한 향토 선율을 판소리화하여 다양한 선율형을 개발한 데
비해, 후기 8명창들은 전기 8명창들이 개발해놓은 선율형들을 갈고닦아 판소리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더늠들을 만든 것이다.

이 시대 각 명창들의 활동 연대와 출신지, 더늠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borderColorLight=black border=1 130%" LINE-HEIGHT:
15px; 0px>































































face=돋움 size=2>이 름



face=돋움 size=2>활동 연대



face=돋움 size=2>출신지



face=돋움 size=2>더 늠



face=돋움 size=2>박유전



face=돋움 size=2>1834 - ?



face=돋움 size=2>전북 순창




size=2>이별가. 새타령. *서편제 소리의 시조



face=돋움 size=2>박만순



face=돋움 size=2>헌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북 고부




size=2>춘향 옥중가. 사랑가. [적벽가]



face=돋움 size=2>김세종



face=돋움 size=2>헌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북 순창




size=2>[춘향가]. 천자뒤풀이



face=돋움 size=2>이날치



face=돋움 size=2>헌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남 담양




size=2>[춘향가]. [심청가]. 춘향자탄가. 새타령



face=돋움 size=2>정춘풍



face=돋움 size=2>헌종-고종



face=돋움 size=2>충청도




size=2>소상팔경. [적벽가]



face=돋움 size=2>송우룡



face=돋움 size=2>헌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남 구례




size=2>[토끼타령]. 토끼 배 가르는 대목



face=돋움 size=2>정창업



face=돋움 size=2>철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남 함평




size=2>[흥보가]. 중 내려오는 대목



face=돋움 size=2>김창록



face=돋움 size=2>철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북 무장




size=2>[심청가]. 심청 부녀 이별 대목



face=돋움 size=2>장자백



face=돋움 size=2>철종-고종



face=돋움 size=2>전북 순창




size=2>[변강쇠타령]. [춘향가]. 광한루 경치



face=돋움 size=2>이창윤



face=돋움 size=2>고종



face=돋움 size=2>전남 영암




size=2>[심청가]. 심청이 제수 된 것을 고백



face=돋움 size=2>김찬업



face=돋움 size=2>고종



face=돋움 size=2>전북 흥덕




size=2>[토별가].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




  이 시대 판소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판소리가 궁중에까지 침투하게 됨으로써, 판소리를 감상하는 일이 양반 귀족들
사이에서도 일상화되었다는 점이다. 양반 청중들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판소리는 사설·음악·무대 표현 등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평민적
현실 인식과 반중세적 지향의 예술적 심화가 일단 그 사회적 문제성을 상당한 정도로 수정받고, 얼마간은 봉건적 의식의 개입까지도 감수하는 굴절을
겪었다. 그 결과는 전승 다섯 마당의 변개와 일곱 마당의 전승에서의 탈락으로 나타났다.

  이 시대 판소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또 한 사람으로는 고창의 신재효를 들 수
있다. 신재효는 중인 출신으로 자신의 사랑채에 수많은 소리꾼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판소리 사설의 정리와 개작에
나서기도 했는데, 그 결과가 판소리 여섯 바탕 사설집과 14편에 이르는 창작 단가이다. 신재효는 양반들의 미의식을 매개로 하여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기 때문에, 신재효의 업적에 대해서는 부정적 요소를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둘째, 서편제 소리의 성립으로 상징되는 서민지향적 감성의 판소리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보아 후기 8명창 시대 판소리는, 그 사설 내용에 있어서는 양반의 미의식에
접근해갔으면서도, 감성적인 면에서는 서민지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라. 5명창
시대


  이 시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5명창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박기홍, 김창환, 김채만,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유성준, 전도성, 정정렬 등이다.

  이 시기는 서구 문화의 유입과 누적된 사회적 모순으로 조선조 봉건 체제가 해체되면서,
일제에 의한 국권의 침탈이라는 민족적 비운에 처해진 시기이다. 서구 문화의 유입은 판소리 존립의 기초가 되는 전통사회를 그 근저에서부터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판소리도 변화되어가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체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창극화로 나타났다.

  1912년 이후에는 광주 출신 김채만의 협률사를 시발로 협률사라고 하는 순회 공연
활동이 재개되었다. 또한 1920년대 이후에는 유성기 보급에 따른 레코드 취입도 성행하게 되어, 판소리는 점점 더 일반 대중의 취향에 의존하게
되었다. 판소리는 대중적 취향과 함께 계면화(슬픈 가락으로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대중의 슬픈 소리 취향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은 송만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사람은 정정렬이며, 1930년대 이후 슬픈 소리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사람은 임방울과 이화중선이다.

  이 시대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일은, 1920년 경에 전국 주요 도시에 권번(기생
조합)이 설치되어 여기서 판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함으로써 다수의 여자 창자가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 중에서, 5명창에는 들지 못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이선유, 장판개, 김정문, 박봉래, 공창식, 박동실 등이 있다.

  이 시기의 말기에는 임방울, 김연수, 강장원 등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 해방 이후의
판소리


  해방이 되자, 4일 후인 8월 19일 국악 건설 본부가 발족되었으며, 이는 후에
'국악원'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창극 운동도 다시 활발해져 다시 여러 단체가 생기는 가운데, 1948년 5월에는 여성 국악인 30여 명으로
구성된 '여성국악동호회'가 결성되어, 여성만으로 창극을 공연하게 되었으며, 레퍼터리도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 설화나 야사, 야화 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때의 대표적인 창극 단체와 창극은 국극사의 [만리장성], 국극협단의 [예도성의
삼경], 조선창극단의 [왕자호동], 김연수 창극단의 [단종과 사육신] 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한편 여성국악동호회의
[햇님달님]도 공전의 대히트를 하여, 공연장마다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호황도 잠깐, 6.25로 인하여 거의 아사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6.25
이후에는 다시 여성국극단이 생겨 일시 인기를 끄는 듯했으나, 마침내는 16개 단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1958년 이후는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4.19 이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여성국극단의 종말은 판소리의 종말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판소리는 순수 판소리를 고집하던
임방울, 정응민, 박봉술, 신영채 등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창극단이나 여성국극단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화 이후 계속되어온 판소리의 창극화가 여성국극단에 이르러 종언을 고하게 되는
과정은, 장르의 순수성이 무너질 때 그것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서구식 무대의 도입에 의해 '청취의
대상'이었던 판소리가 '관람의 대상'으로 바뀌고, 관람의 대상으로서 '볼거리'에 치중하면서 마침내 전통적인 내용과 형식을 벗어나게 되어, 창극은
자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여기에 민족적 시련과 서구화에 의한 민족문화의 해체가 가속작용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1961년 11월에는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가 발족되었고, 1961년 정부조직법의
개정으로 국립극장이 마련되어 여기에 국립창극단이 창설되었으며, 1973년부터는 국립창극단 단원 전원에게 유급제가 실시되어, 정부가 판소리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은, 1964년 일본에 이어
시행된 무형문화재 제도로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리하여 1964년 김연수, 정광수, 김소희, 김여란이 판소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박동진,
박녹주, 박초월, 박귀희, 정권진, 한승호, 강도근, 오정숙,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씨등이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무형문화재
제도의 실시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을 느낀 정부에 의해 시행되었지만, 그 시행 자체가 이미 전통문화가 자생력을
잃었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판소리가 재생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정부의 무형문화재 지정에 뒤이은 판소리 창자들의
완창 발표회, 그리고 일부 뜻 있는 들에 의해 주도된 판소리 감상회였다. 판소리 완창 발표회는 판소리 한 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발표회로, 1968년 박동진에 의해 처음 실시된 이래, 판소리 창자 및 감상자들 사이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확산되었으며, 이제는 이
방식이 소리꾼의 기량을 선보이고 평가받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이는 서양식 무대와 서양식 제도를 이용하면서도 전통 판소리를 전혀 훼손하지
않음으로써, 바람직한 방식으로 자리를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판소리와 오페라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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