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웰 사건?

로즈웰 사건?

작성일 2007.06.24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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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웰에 유에포가 떨어졋다하자나요.

 

정말인가요?

 

지금은 로즈웰 어떻게 됫어요?


#미국 로즈웰 사건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출처 - 외계인 루머와 진실

 

 

다. 로즈웰 사건


UFO문제에 있어서, 로즈웰 사건은 대표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UFO의 목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추락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 경위를 살펴보면 다른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을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고 더구나 처음엔 순진하게 그대로 발표를 했다가 허겁지겁 은폐로 급선회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 사건 하나를 통해서 우리는 UFO에 관한 오랜 논쟁을 명쾌하게 종결하고 사실은폐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많은 목격자와 증거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을 했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은폐되어 온 사건이다. 그래서 전세계에 걸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UFO관련 사건 중, 이 사건 하나만이라도 자세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1947년 미국 남서부 사막에서 지구에 사는 인류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은 처음엔 이 사건을 그대로 발표했다. 그러나 곧이어 미군은 이를 부정했고 그 후 지금까지 비밀주의에 가려져 있다.

* 사건의 내용

1947년 7월 첫 주 어느날 뉴멕시코주 시골의 한 농장에서 농장주인 맥 브라즐은 간밤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집중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 일찍 말을 타고 농장을 둘러보다가 상당히 많은 이상한 물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에 수 십 미터나 되는 긴 홈이 패어져 있고 어떤 잔해물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 중에서 특이한 것 몇 개를 주워서 이웃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플로이드와 로레타 프록타와 간이 로즈웰로 가서 윌콕스 보안관을 만났다. 월콕스 보안관은 부관들의 도움으로 로즈웰 육군 비행장에 있는 당국에 통보를 해서 조사가 진행되게 되었다.

조사가 시작되고 나서 군 당국은 며칠동안 그 지역을 폐쇄하고 잔해물들을 수거해갔다. 그 잔해물은 로즈웰 비행장으로 이관되었다.
1947. 7. 8. 아침 당시 세계 유일의 핵폭탄 취급부대인 509전폭단의 모기지인 로즈웰 육군 비행장에서 윌리암 블랜차드 대령은, 추락한 비행접시의 잔해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이 언론보도는 즉각 전파를 타고 같은 날 미국의 30여 개의 석간지의 해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것은 쇼킹한 특종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추락지점으로부터 600㎞ 이상 떨어진 텍사스 포트워즈 육군 비행장에 있는 제8공군 사령부의 로져 라메이 장군이 그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509 전폭단에 있는 블랜차드 대령과 장교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비행접시의 잔해라고 발표한 그 물건들은 밝혀지지 않은 기상 관측용 기구이고 그것이 비행접시의 잔해인 것처럼 레이더에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목격하고 직접 관여한 많은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비밀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사건의 윤곽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해 볼 수 있다.
윌리암 블랜차드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확실하고 사무적인 사람이며 결코 확인도 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드라마틱한 기자회견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나중에 미 공군 대장으로 부 참모총장이 된 것을 보아도 그런 평가는 바른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이 찾아낸 첫 목격자인 제스 마슬 예비역 중령(509부대 정보장교)은 기꺼이 증언하고 그의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대단히 유능했고, 실제 추락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장교 중 한 명이다.
1947년 비디오로 녹화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것은 지상 기구가 아니었고 항공기나 미사일도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잔해물체 중 이상한 성질을 가진 것에 대해 그는 “그것은 타지 않았고 전혀 무게가 없었고 아주 얇아서 담배 은박지와 같았다. 그래서 휘어 보려고 했는데 휘어지지 않아서 7.5㎏짜리 해머로 찌그러뜨리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유일한(당시) 핵폭탄 그룹의 정보 장교인 제스 마슬 같이 충분한 자질과 경력을 지닌 사람이 기상 기구의 잔해를 가지고 그의 표현대로 ‘이 지구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실수를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설령 당시에 그런 착오를 범했다 하더라도 나중에(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 후에 당시 트루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는 소련의 첫 번째 핵실험 보고서 준비를 포함해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봐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는 기지로 돌아와 잠시 집에 들러서 그의 아내와 열한 살 된 아들에게 그 요상한 잔해의 몇 조각을 보여 주었다. 아이빔(I자 모양의 빔)의 작은 부분인 한 조각은 표면에 무슨 상징 같은 이상한 상형문자가 있었다.

지금은 개업 의사이고 헬리콥터 조종사 자격이 있는 항공의사인 그의 아들 제스 마슬 주니어 박사는 그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잔해에 그려진 상징들의 자세한 부분까지 그릴 수 있었다. 고 토마스 드보스 장군은 당시 대령으로 텍사스 주 포트워즈에 있는 미 제8공군 사령부의 라메이 장군의 참모장이었다. 드보스장군은 1992년 사망하기 이전에 당시 워싱턴 D.C에 있는 앤드류스 육군비행장에 있는 클레멘트 맥뮬런 장군으로부터 사건을 은폐하라는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다.

예비역 장성인 아더 이 엑슨은 로즈웰에서 그 잔해들이 반입된 1947년 7월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있는 라이트 비행장에서 중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90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자재 시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화학분석, 응력 시럼, 압축 시험, 굽히기 등 온갖 시험을 다했습니다. 그 물체들은 우리 자재 형가시험실로 들여왔는데 대부분은 쉽게 변형되거나 쭈그러졌지만 어떤 것은 아주 얇지만 지독하게 강해서 큰 해머로도 굽힐 수 없었습니다.
그 시험을 한 사람들은 그것이 외계(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로즈웰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거의 같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 사건서 중요한 부분이 되는 특이한 사실이 빠져 있다. 사건 당시 5살의 소년이었던 제랄드 안데르센이 43년 후에 입을 연 이야기와 최면상태에서 밝혀진 내용들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또 발동할 수 있다. 미국에서 600여 개 대학에서 UFO에 관한 강의를 한 핵물리학자이고 저술가이기도한 스탠튼 프리드만은 그를 “1947년 여름 뉴멕시코에서 발생한 우주선 추락사건에 있어서 안데르센은 정말 의미 있고 잠재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격자”라고 소개했다.

안데르센의 가족들은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때 그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방금 이사온 5살의 안데르센에게, 온통 산과 바위와 잡목으로 뒤덮인 광경은 마치 딴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튿날 그는 정말 외계로부터 온 살아있는 생명체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모두 넷이었는데 둘은 죽었고 하나는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분명히 다치지 않았어요.

그 생명체는 키가 약 120cm정도였고, 머리는 몸에 비해 상당히 컸어요. 그리고 눈은 아몬드형인데 전체가 시커멓게 보였지요” 라카웨이 비치에서 경찰로 근무했고 태니시(市) 부 보안관이었고 그 후 스프링필드에서 보안관리로 근무하고 있는 안데르센의 말은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아주 단호한 어조였다. 그들은 약 15 미터 쯤 되는 은색 미행접시의 그늘로 뛰어 들어 갔다.

“나는 그들을 보았고 심지어 만져보기도 했어요. 난 그 비행접시 안에 머리를 디밀어 봤어요. 그리고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나의 아버지, 아저씨, 형 그리고 사촌 모두가 보았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모두 말하지 않았지요.”

안데르센도 43년만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과 로켓트 기술의 요람인 중부 뉴멕시코에서 1947년 7월 “불가사의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군 당국은 그것이 기상 기구였고, 사람이 만든 것이었고, 자연적인 현상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꾸준하게 퍼져 나가 신문에 나오게 되고 책으로 출간되고 심지어는 영화로 만들어져, 실상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생물체가 방문한 것이었고 그와 같은 은하간의 대원정은 미국의 높은 사막지대에서 비극으로 끝났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이때, 살아 있던 외계인은 구출되어 이브(EBE외계 생물체)라고 명명되었고 사실상 EBE-1이 된다. 이브는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심문자가 하는 질문에 대해 통상적인 대답 밖에는 말하지 않았다. 사로잡힌 지 1년이 지난 어느날부터 이브는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가 말한 정보는 최소한만 이야기해도 기절할 정도였다. 이 때 밝혀진 내용이 ‘옐로우 북’의 근간이 되었다.

EBE-1은 1951년 후반에 중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사가 그들의 생물학적인 구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브의 생물학적인 계통은 엽록소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음식물을 에너지화 하는 것도 식물들의 방식과 같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브-1의 치료를 위해 식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식물학자 길레르모 멘도자 박사를 불러 이브가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멘도자 박사는 1952년 중반에 이브-1이 죽을 때까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했다. 멘도자 박사는 외계 식물학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다.

한편 이브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기술우위인 이브의 종족들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1952년 초에 광막한 우주 공간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이브가 죽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은 응답을 얻지 못했지만 이 계획은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지속되었다.

 

*쿠퍼의 정보와 그의 용기

 

(이 책이 나올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생존했었으나 그는 현재 이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비밀을 폭로하며 연설을 하고 다니다가 결국 의문의 의문의 총격에 의해 살해 당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가장 위험한 토크쇼 진행자"라고 맹비난 하기도 했었습니다. )

 

[동영상] 전 미국 태평양함대 총사령관 본부참모 윌리엄 쿠퍼 William Cooper (빌 쿠퍼)의 UFO 강연.
http://www.youtube.com/v/yrawMEG6Vo8

 

빌 클린턴 대통령 - "빌 쿠퍼는 미국 안에서 가장 위험한 토크쇼 호스트다."

 

윌리엄 쿠퍼는 미 공군과 해군에 근무하면서 탑 시크릿 top secret(미국최상급비밀정보)를 접했던 사람으로서 자신dl 접한 탑 시크릿의 내용을 대중에게 퍼뜨리고 다니다가 결국 2001년 11월 5일 의문의 총격을 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동영상] 정보자유의 권리를 외치다가 끝내 의문의 살해를 당한 윌리엄 쿠퍼
http://www.youtube.com/v/gi5NaQZVC48

 

 

 

 

여기서 잠시 윌리암 밀튼 쿠퍼씨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는 철옹성 같은 은폐의 장벽을 넘어 용기있게 정보를 널리 제공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한 연설에서 자신을 소개한 부분을 들어보자.


“저는 군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애국자였고 전쟁터에 나가 싸웠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했고 미국의 헌법을 믿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미국의 헌법이 곧 미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아버지-아버지는 조종사였습니다-와 다른 조종사들로부터 푸 파이터foo fighter(2차 대전 시 전투기의 날개 부분에 불타는 공 모양으로 나타나 자유자재로 비행기의 날개 주위를 돌아다녔다), UFO 그리고 지구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한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공군에 복무할 때, 추락한 외계인의 비행체의 복구에 참여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공군을 떠나 해군에 들어왔을 때, 저에게 중요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각 군에 복무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주 모험적이었고 아주 열정적인 젊은이였고 그런 사실이 자신을 상당히 흥분시킨 것 같습니다. 저는 잠수함 부대에 지원해서 USS타이룻 SS-416잠수함에 근무했는데, 포트랜드/시애틀 지역과 모기지인 진주만 사이를 지나는 동안 좌현 감시로서 저는 어떤 비행물체를 보았습니다. 비행접시 모양인데 미드웨이 급 항공모함 만한 크기였어요.

정말 엄청나게 큰겁니다. 그것이 대략 4~5㎞ 떨어진 곳에서 수면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자체의 축방향으로 천천히 구르다시피 하더니 구름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전 이 사실을 갑판 장교에게 보고했습니다. RMJ나 전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았을 경우엔 배 안에서 나혼자만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본 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갑판 장교에게 제가 그 지역을 계속 감시하게 해달라고 했지요, 잠시 후 같은 비향물체인지 다른 것인지 아주 똑 같은 것이 구름 속에서 내려와서는 빙 돌면서 물 속으로 들어갔스비낟. 갑판 장교인 엔사인 볼은 문자 그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현 감시를 하던 수병 드제랄리모도 이것을 목격하고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했습니다.

엔사인 볼은 함교에 있는 대위를 불렀고 병참장교가 35㎜카메라를 들고 따라 왔습니다.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 때 꼭 같이 보이는 비행물체가 물로 들어가고 물에서 치솟았습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지적으로 유도되었고 아주 거대했습니다. 저는 공군과 해군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그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었던 것 모두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해군 정보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얼마 후 베트남으로 전속되었습니다. 처음엔 다낭 항에서 순찰정 캡틴으로 배속되었습니다.

승무원도 있고 수 백만불짜리 순찰정이었어요. 항구 주면에 사는 사람들이나 항구를 거쳐가는 선원들로부터 저보를 수집새서 항구와 선박운행에 있어서 안전과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저의 임무였스니다. 약 5개우러 후 저는 북쪽 비무장지대인 타칸 상에 있는 콰비아프라는 곳으로 가게 되엇습니다.

우리들의 베이스 캠프는 강 어구에서 다하까지, 그리고 쾅트리 출구에서 쾅트리 시까지 다니면서 강벼에 사는 사람들을 사귀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매일 밤 순찰을 하면서 강과 수상교통의 안전과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엄청나게 많은 UFO와 외계인의 황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거기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적 헬리콥터’로 공식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베트남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북베트남에는 헬리콥터가 없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헬리콥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비무장지대까지 날아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음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대는 가끔 이 ‘적 헬리콥타’의 공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가끔 사라지곤 했습니다. 한 번은 외계인의 활약으로 적어도 한 마을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베트남을 떠난 후 마지막으로 배속된 것이 지주만을 굽어보는 작은 언덕인 하와이 마칼라파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합대의 총 사령관 본부 참모였습니다.
저는 특히 태평양 함대총사령관에 대한 정보 브리핑팀에 배속 받았습니다.
근무하는 과정에서 가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제라는 사실에 저 자신이 적응하기 어려운 그런 믿기 어려운 서류들이 제 손에 들어올 까가 있었습니다.

아마 어떻게 그 정도의 비밀서류가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잠시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정보가 필요할 때, 그 정보의 등급에 해당하는 보안 패스를 필요로 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가진 정보 패스는 미국에서 최고 등급이었습니다. 이 패스를 받으려면 약 6개월 가량 걸리는 FBI의 배경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요원을 집으로 출신 학교로 그리고 여러분의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서류에 이름을 적은 모든 사람, 이웃들과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확인하는 지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증만 보이고 바로 질문을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복무 기록 카드 복사본을 받은 분들은 첫 페이지를 보면 거기엔 보안 패스라고 쓰여진 곳에서 ‘B.I'라는 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사국(B.I) 패스입니다. 그 패스가 있으면 탑 시크릿top secret 및 그 이상을 포함한 어떤 정보에 대해서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인도양, 태평양,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대륙 등 지구 표면의 절반 이상인 작전지역에 관하여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쟁이 났다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가해서 적을 항만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 미국 해군입니다. 여러분은 지역사령관이 알아야 할 정보와 자료의 양이 얼마나되는 지 모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그 정도로 알아야 하고 항상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사람이 그렇게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브리핑팀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지역 사령관이 24시간 내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가끔 탑 시크릿top secret, 매직magic, 제한정보라고 표시된 메시지를 받는데 그것은 아부도 알 수 없는 식으로 암호화합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두 종류의 서류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프로젝트 그럿지’라는 1936년이래 외계인이 개입한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1936년 추락한 비행접시를 독일이 복구해서 그 기술의 복제를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약 그들이 복제에 성공했다면 그 무기를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독일이 비행접시의 복제에 성공했다면 지금 이 강당 앞에도 독일 국기가 걸려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좀 앞선 부분은 있었습니다. 승전 후 우리는 몇몇 과학자와 일부 하드웨어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1947년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뉴멕시코주 로즈웰시 근처에서 발생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럿지에서 저는 그 비행접시와 죽은 외계인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외계인의 사진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해부사진, 내부기관을 보았습니다. 이브라고 명명된 외계인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는 1952년 6월 2일 죽을 때까지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손상되지 않고 복구된 외계인 비행체를 실험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프로젝트 레드라이트라고 하며 처음엔 네바다 주 시험장에 있는 토노파 시험장에서 시행했고 그 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한 ‘에어리어area-51’지역(암호명 드림랜드)으로 옮겼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구에게 묻든지 정부에 편지를 보내든지 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겁니다. 그 비행체로 비행을 해보고 시험비행을 해보는 계획은 한 비행체가 시험장에서 멀지 않은 상공에서 폭발한 1962년 어느 시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조종사는 사망하고 그 폭발은 3개 주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왜 폭발되었는지 아무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비행접시 조종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외계인들이 도와주기 위해 세 대의 비행접시와 인원을 제공할 때까지 프로젝트 레드라이트는 업무를 중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조종하는 비행접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획득한 기술을 이용하여 우리가 만든 비행체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보고하는 비행접시 중에는 미국인이 조종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여러분에게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의 기술 발전 중 많은 부분은 에어리어-51이라는 곳에서 정기적으로 외계인으로부터 기술을 교환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계인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를 한 참 들은 것은, 이런 경력과 성장배경을 가진 그가 과연 의도적으로 근거없는 이야기를 유포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에서는 정부측의 대응 방법을 통해 그의 말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기로 한다.

 

 

* 쿠퍼 정보에 대한 방해공작

UFO에 대한 정보를 노출시키는 데 있어서는 위험성이 많다. 그런 정보를 노출시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도 안전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쿠퍼가 그의 정보를 널리 배포하고 그것이 단 번에 아주 많은 사람들-신문사, 의회, 주장관, 전세계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스며들어갔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그는 엄청나게 시달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정보가 아주 빨리 확산되었기 때문에 그 정보가 배포된 후 그를 침묵시키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단지 그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몇 마디 언급했을 뿐이다.
1990년대 초, 쿠퍼에 대해 위협적인 방법으로 다루느냐 아니면 그를 불신하게 만드느냐를 놓고 열띤 논란이 있었다. 약 100만 불을 사용하기로 계획된 한 캠페인은 그를 불신하게 하는 노력이었다.

쿠퍼가 여러 소스로부터 정보를 입수해서 자신이 돈을 벌 목적으로 그것을 유포시켰다는 것을 알리는 데 그 돈을 모두 쓸 계획이었다. 정규 방송을 통해서는 나가지 않았지만 UFO잡지와 조종할 수 있는 대부분의 UFO단체를 통해 기사를 싣고 폭로식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1990년이 끝나는 시점까지 UFO에 대한 다른 내용을 배포하는 것도 계획했고 여러 가지 많은 시나리오가 떠돌아 다녔다. 사람들은 어느것이 암까마귀이고 어느것이 수까마귀인지 알 수 없었다. UFO에 관심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들만 쿠퍼의 자료에 관심을 보이는 동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을만한 사람들이 쿠퍼의 자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땐 그를 불신하게 할 노력을 시작할 참이었다. 사전에 높게 분류된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공개되었다. 우리는 지금 살해당하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말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들이 모두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정보는 계속 공급되고 있다.

차츰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우리는 광막한 우주를 더욱 넓고 깊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존재가 지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주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자신에게 좀 더 냉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한 편 외계와 외계인에 대해 현실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라. 사실 은폐와 그 이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에 대한 은폐정책은 아주 강력하고도 집요한 것이었다. 앞에서도 우리는 드보스 대령이 클레멘트 맥뮬런 장군으로부터 은폐지시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모든 목격자와 관계자들에게 은폐는 똑 같이 강요되었다.

월콕스 보안관의 가족들에 의하면 그는 그의 아내가 있는 곳에서 그가 본 것에 대해 발설하게 되면 그와 전가족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군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1980년 이래 로즈웰 사건이 많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잔해 수습에 관련된 목격자들 중 자진해서 나타나서 그 잔해에 대해 설명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겠는가?

또하나 결정적인 사례를 보자. 1969년 10월 죠지아 주지사인 지미카터는 UFO목격담을 이야기했다. 그후 1976년 대통령 후보로서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UFO에 관한 모든 정보를 대중들과 과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대통형이 되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된 영문인지 UFO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더하지 않았다. 만약 더 밝힐만한 정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사실을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자신의 약속을 명예롭게 지키는 쉬운 방법인데도 말이다.

왜 미국 정부는 UFO현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외계 생물체의 증거는 추측일 뿐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하기야 사안이 워낙 중대한 만큼, 모든 것을 그대로 발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계 여러나라에 외계인과 접촉한 사실이 있고, 관련시설이 있지만 아직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밝힌 나라는 없다.

은폐의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째, 대중의 공황상태를 염려한 것이다.
둘 째,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해 염려한 것이다.
셋 째, 종교 단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정부가 지적(知的) 외계 생물체에 대한 정보 공개를 유보하고 있는 전형적인 변명으로 저 유명한 1938년의 오손 웰스의 세계전쟁 방송에 대한 반응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법이 원용되고 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 의한 그 화성인의 공격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더구나 소위 우주시대에 진입한 지 반세기에 이르고 있고 특히 현세대는 핵전쟁으로 인한 대량 파괴의 위협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체 살아오고 있고, 거기다 에이즈, 폭력범죄의 증가, 국제 테러 등의 위협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이런 시대, 이런 세대에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해서 대중적 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본다.

그리고 안보상의 이유에서라면, 미국 정부가 기술상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에 한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것으로 인정될 것이지만 그런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카터가 선거 운동 때 약속한 것을 실행하지 않은 것은 종교 단체에 대한 고려에서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것은 또한 소수의 이해를 다수의 이해보다 중시하는 것이 된다.

다윈의 진화설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마찬가지로 로즈웰 사건의 증거는 어떤 종교적 이념에 도전하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현대인과 현대의 고급 영장류와 공통되는 영장류 조상을 연결하는 화석 증거가 있을 수 있다는 다윈론은 다른 생물체에 비해 인간이 월등히 고귀한 존재라고 보는 창조론자들의 견해와 갈등을 빚었다.

그것은 전 우주의 다양한 선진 인종들의 진화적 발전을 비교하는 저울 위에서 인간이 높은 등급을 나타낼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 초라한 현실인식이 일부 소수를 괴롭힐지는 모르지만 대다수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함께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당시 지구가 창조의 중심이라는 가르침과 모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 중에서 지적 생명체의 중심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양중심설 이전의 지구 중심설은 아직도 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로즈웰 사건의 증거들은, 우주의 여러 지적 존재들의 거대한 공동체에 있어서 인간이 유일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지구중심의 견해를 쫓아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마. 대중의 반향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사전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차츰 행동을 보익 시작했다. 다른 전반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로즈웰 사건에 대히 일대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로즈웰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은 로즈웰 선언의 전문이다.

 

 


* 로즈웰 선언

47년 전(1994년 기준) 미국 남서부에서 인류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거기에는 외계의 것으로 주장하는 물질을 미군이 수습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사건은 전국 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해 1947년 7월 8일 미군이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것은 기상 기수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장으로 곧 바로 부정되었다. 그 후 그 사건은 정무의 비밀주의에 가려져 있다. 그 사건은 후에 4성 장군이 되어 미 공군의 부 참모총장이 된 로즈웰 육군 비행장 509전폭단 월리암 블랜차드 대령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것이다.

기상기수 이야기가 은폐작전이라는 것은 워싱턴 디시로부터 은폐시키라는 전화를 직접 받은 고 토마스 드보스 장군을 포함해서 그 사건에 관련된 개인들에 의해 확인되어 왔다. 믿을 만한 군과 민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첫 기자회견 내용이 진실이고 로즈웰의 잔해는 외계의 것이라는 것을 증언했다.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은 509전폭단의 정보장교였고 현장에 처음부터 있었던 군 장교였던 제스 마슬 소령이다.
1994년 1월 12일 미국 하원의원인 뉴멕시코주 알부커크 출신 스티븐 쉬프는 그가 선거구민과 목격자를 대신해서 1947년 로즈웰 사건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을 때 국방부가 철저하게 방해를 했다고 발표를 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조사하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방부의 무반응은 놀라운 것이며 그것은 분명히 정부의 또다른 은폐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공식적인 확인이나 부정은 종종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것은 역사에서 보아 왔다.

로즈웰 사건의 진실이 나타나게 될 것을 보장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즉, UFO의 존재나 외계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대통령령으로 비밀해제시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조치는 적절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모든 목격자들에게 적극적인 확신을 주기 위해 그런 내용을 확실히 진술하고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조치는 대통령 후보 지미 카터가 약속하고 18년 전 1976년에 미국민들에게 돌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주장하듯이 만약 로즈웰 사건, UFO, 혹은 외계인에 대한 정보를 유보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대통령령으로 비밀에서 해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형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밝힐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령은 기록을 바르게 유지한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시민들의 눈에서나 전세계인의 눈에서 오랜 논쟁과 의혹이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로즈웰 사건의 목격자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고 외계인에 대한 정보가 존재한다면 미국 정부의 소수 특권층만이 독점권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인이 가져야 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아주 중대한 것이다. 그 발표는 역사적인 정직과 호의로서 전세계에 알려야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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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의 내용과 같이 UFO와 외계의 지적 존재에 대한 미국 정부의 모든 정보를 대통령령으로 비밀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그런 정보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간에 전 세계인은 이 문제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지금이야말로 그런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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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로즈웰 선언에서 [전 세계인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저자도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2007년 7월 7일 로즈웰 60주년을 기념하여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질 듯합니다.

 

그 당시 UFO추락 현장을 직접 조사하였던 하웃 중위의 회고록이 60억 인류에게 공개된다고 하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진실이라 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겁니다.미국 정보부에서 말이죠 .

 

하지만 uFO가 떨어진건 사실입니다.당시 로즈웰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보도 하였고 군부대측에서도 인정했죠 .

 

지금 로즈웰은 UFO 나 외계인 도시로 유명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아마 진짜 ufo가 떨어졌어도 일반인은 모르죠.

떨어졌다는 건 사실같은데 역시

미국 정보부 사람들이 안말하겠죠.

그러니까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구요.

지금은 그냥 있습니다.

여기가 그때 그자리구나 하구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당시 목격자들도 존재했었으며 미군이 도착하기전에 일부 목격자들은 추락한 잔해를

 

몰래 가져와 기념으로 갖고있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추락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미군이 도착했고 잔해와 시신을 모두 수거해 갔으며

 

목격자들에게는 맨인블랙이 찾아와서 발설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고갔다고 합니다.

 

잔해들은 네바다주에있는 Aera51구역 비밀 군사 기지에 옮겨졌다고하고

 

거기서 잔해들을 다시조립하고 시신을 해부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로스웰 외계인 해부 비디오는 정부측에서 조작한 자료인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진짜 해부 비디오는 정부의 엄중한 경계속에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되고

 

있다고 합니다.

 

네바다주  Aera51구역에서는 빈번하게 UFO가 목격이 되는데 대다수의 목격자들은

 

외계에서 온 UFO가 아니라 Aera51구역에서 재조립한 UFO와 그것을 토대로 만든

 

미 공군의 새로운 전투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것 같구요.

 

미국정부에서 은폐한 많은 기록중에 그런 기록도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로즈웰 사건에 대해서 질문..

... 그리고 제작년쯤 미공군의 로즈웰사건 발표도 있었습니다. 당시 공군의 신형 전투기 모의비행훈련중이였는데 그 전투기중 한대가 추락했고 바로 회수했다고 하네요. 물론...

로즈웰 사건이란 무엇이죠??

... - 로즈웰사건 1947년 로즈웰(Roswell) UFO 추락 사건은 UFO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공개된 비밀이다. 이 사건은 거의 50년 동안 베일에 가려진 채 있다가...

로즈웰 사건에 대해...

... 로즈웰사건., MJ-12라고 불리웁니다. 제가 대략 기억나는것만 적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어떤주였던가..그곳에 유에프오가 추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방경 몇킬로 주변에서...

로즈웰사건에 대햐 궁금한것있어요

제가 로즈웰사건을 정말 최근에서야 알게됬거든요 그것도 사후세계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요 근데 유튜브에 어떤 사람이 외계인이 지구는 감옥행성이라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로즈웰사건의 진실은 왜 공개되지...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602&docid=83059&l_url=L3NwZWNpYWwvbGlzdC5waHA/ZGlyX2lkPTAmZG9jaWQ9ODMwNTkmZGlyX3JlZj02MDImbmF2ZXJ0Yz0x#g_b_zone 로즈웰 사건 자체는 진실이지만...

로즈웰 사건?

... 지금은 로즈웰 어떻게 됫어요?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당시 목격자들도 존재했었으며 미군이 도착하기전에 일부 목격자들은 추락한 잔해를 몰래 가져와 기념으로...

로즈웰 사건'이 뭔가요

책의 질문이네요 로즈웰 사건은 1947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Roswell)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때 거기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증거를 믿어야 하는지에...

로즈웰사건이 뭔가요?

... 1947년 "로즈웰사건 " 당시 추락한 UFO의 우주인을 미국 정부의 감시하에 검시, 해부하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뉴멕시코의 사막지대에 있는 로즈웰에 47년 UFO가 추락하여...

로즈웰사건에 대해 궁굼한거있어요

제가 로즈웰사건을 정말 최근에서야 알게됬거든요 그것도 사후세계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요 근데 유튜브에 어떤 사람이 외계인이 지구는 감옥행성이라 말하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