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시대의 화가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작성일 2009.08.07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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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평가 슬슬 시작해 보려고 자료 찾는중인데요

르네상스 전성기 때에 화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 를 제가 알고있거든요

근데 이 화가들은 저희가 이미 다 배웠기에 좀 다른 인물들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질문!

 

르네상스 전성기의 화가 (위에 열겨한 사람들 빼고요 되도록이면요 ^^;;)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당시 상황

이건 사회에서 제가 배운것같은데 생각이 안나내요 ㅎㅎ;

화가의 작품사진은 제가 작품이랑 알려주시면 찾아볼테니 작품이름이랑

화가 이름 연결해서 부탁드림니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안알려진 작품들 부탁,..,,;;

 

마지막으로!!!!
북유럽의 르네상스 제가 아는 사람은 브뤼겔, 반 아이크, 뒤러 가 있는데요

역시 이 분들 빼고 혹시 아는화가있으시면 적어주십시오!!

(작품도 옆에 살포시 적어주시면 ㄳ~)

 

아 죄송한데...

제 최고 걸수있는데 내공이 55 밖에 안되네요 ㅠㅠ

질문내용에 비해 내공이 심히 적은거 저도 압니다

불쌍한놈 돕는다는 심정으로 약간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첫째 마당. 르네상스란 무엇인가

 

 

1. 르네상스의 시기

 르네상스란 15~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문예 부흥 운동을 말한다. 부활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16세기 이탈리아 화가(미슐레)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로마의 성황을 되찾으려는 의욕이 강했지만 거기에는 단순한 복고 정신의 추구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가 들어있다.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즉, 인간 정신의 회복을 바탕으로 신앙 위주의 미술에서 인간 위주의 미술로 변호\하고자 했으며, 초자연적인 중세 미술에 반대하여 인간과 자연의 현세적인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실적인 미술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전반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미술사에서는 1420년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창의적인 생각을 덧붙여 피렌체 대 성당의 돔 공사가 기공된 무렵부터 1520년~30년 경에 고전적 미술이 매너리즘으로 이행한 연대까지 이탈리아 미술에 한정시켜 좁은 범위에 사용하고 있다.

 

2. 르네상스의 미술의 특색

 르네상스의 문화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교회 중심의 미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르네상스 미술은 단순히 교회 건축 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 건물에 까지 확산되어 나가면서 대중성을 띄게 된다. 또한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발달하고, 조각은 입체감 뿐만 아니라 공간감까지 가지게 된다.

 물론 조각이나 회화가 종교적인 내용에 머물렀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지만, 중세의 표현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을 인간과 똑같이 자애롭고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고딕식 첨탑이 사라지고 그리스나 로마에서와 같이 안정감 있고 균형적인 모습의 건축 양식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3. 르네상스 미술의 배경

 동 서 중개 무역에 의한 상공 시민 세력의 대두로 새로운 의식이 싹튼 것이 사상적 배경이다. 예술적으로는 의식적으로 고전적인 모범을 모방하려하거나, 고전적 가치 기준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 것은 고전 라틴 양식의 모방과 모든 고전적인 유물에 대한 무한한 찬양을 의미한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째, 이탈리아에서는 귀족 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둘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셋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 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소유물로 전락하는 계기 또한 된다고 생각한다. )

 특히 피렌체에서는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는데 예술가를 엘리트 집단으로 인정하면서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둘째 마당.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조각, 회화.

 

1. 건축

1-1. 브루넬레스키

공증인의 아들인 브루넬레스키는 1377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1402년 세례당 정문을 위한 유명한 공모에서 기베르티와 마지막 결승까지 올라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그의 조각이 보다 극적이었지만, 기베르티의 조각이 구도감이 좋다는 이유로 떨어지자 그는 크게 실망하여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로 향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브루넬레스키의 조각에 더 많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신은 공평했다. 브루넬레스키는 그 위대한 돔 건축을 이루려고 그 공모에서 실패한 듯 하다. 또한 기베르티 역시 조각에서 이름을 날렸으니 둘 다 성공한 셈이다.

 어쨌든 브루넬레스키는 그 시대 최대 관건이었던 피렌체 성당의 돔 건축에 참여하게 된다.

거대한 돔을 세우면 건축은 무너지기 쉬웠지만 그는 돔 안에 작은 계단을 달아 그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작업하며 가벼운 돔을 세울 수 있게 설계하는데 성공한다. (솔직히 이 부분은 책으로 자세히 읽었지만,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어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로마에 가서 이 피렌체 대 성당의 천정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

 고딕건축의 수직적 상승성을 배제하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중한 공간을 살린 르네상스 건축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또한 그 성과를 피렌체의 교회 건축들에 적용하여 현실적으로 제한된 도시 공간에 균형잡힌 명석한 각 부분의 비례와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르네상스 건축의 한 획을 긋게 된다.

 

1-2.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망명한 피렌체 귀족의 아들로 1404년 제노바에서 태어난 그는 지적 작업에 재능을 타고나 여러 학문을 망라하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알베르티는 27세에 로마에 정착하여 브루넬레스키 밑에서 건축을 배우게 된다.

 이탈리아의 모든 궁정에서 환영받는 알베르티는 여러 가문을 위해 설계도와 정면을 그린다. 1459년에는 세인트 안드레아 성당에서는 반구형 천장이 목재 천장을 대신하게 되는데 이는 로마 세인트 피에트로 성당의 원형이 된다.

 알베르티가 설계한 건축으로는 피렌체의 피티 궁, 루첼라이 궁, 말라테스타 성당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베키오 궁의 안뜰이 유명하다.

 

2. 조각

2-1. 기베르티

앞서 얘기했던 유명한 피렌체 세례당의 정문 공모에서 기베르티는 어렵게 브루넬레스키를 이기고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기베르티의 작품으로는 "천국의 문"을 들 수가 있다. 이 천국의 문은 굉장히 우아하게 동작이 표현되어 있다. 이 유명한 두 쪽으로 나뉜 여닫이문의 열 개의 부조판은 각각이 개별적 작품을 이루는 것 못지않게 당시로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원근이 녹아들고 있었다.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능숙한 솜씨로 빚어진 위대한 동판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제작은 단지 소조뿐만 아니라 판화와 조각술의 모든 재료와 수법들을 시험하고 있다.

 시원스레 마음을 끄는 이 걸작은 기베르티가 거기에서 자연에 대한 시적 감수성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단순히 눈길을 끄는 데에만 그쳤을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꼼꼼함과 숙련으로 빚어진 이 작품은 창조의 아름다움에 대한 천재적 사랑으로써 건조함과 난제를 이겨내고 있다. 알몸이거나 옷을 입은 수백의 작은 인물들은 극도의 우아함과 조화로운 형태와 자세를 나타낸다.

 

2-2. 도나텔로

 1386년 태어난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가라 할 수 있는 도나텔로의 작품은 수 없이 많다. 그 작품들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고, 균형이 잘 잡혀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그의 투철한 관찰력이 이런 리얼리즘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15세부터 조각을 하기 시작하여 20대에는 성 요한, 성 게오르기우스, 그리고 예언자 다윗 등의 작품을 만든다.

 1435년 로마로 간 도나텔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상상력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감실 한 채를 제작한다. 그리고 수태고지와,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찬사를 들은, 챙 넓은 모자를 쓴 다윗 등을 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선 리얼리즘에서 조금 멀어진 감이 있다.

1456년 경 그는 다시 피렌체와 돌아와 조용히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는 세례 요한과 유디트, 막달라 마리아를 제작한다. 특히 그의 작품,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책에서 봤을 땐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말라빠지고 볼품없는 마리아를 과연 그가 조각했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왜 이렇게 작품 성향이 눈에 띄게 달라졌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어느 책에서도 그 궁금증은 해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도 나는 궁금한 채로 남아 있다. 이건 도나텔로의 인생을 추적해 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3. 회화

3-1. 회화 기법의 네 가지 혁신

3-1-1. 유화

 유화는 르네상스 시기에 발명된 매체이다. 유리라는 광물질을 곱게 갈아서 테라핀과 기름에 섞으면 유채물감이 된다. 유채물감이 지니는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로 화가들은 색조의 단계적 변화를 무리 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되어 3차원적인 현태와 질감을 표현하는데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3-1-2. 원근법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평면위에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법인 원근법의 발전이다. 이 방법은 이후 500년 동안 서구 회화의 기초가 된다. 마사초의 그림(성 삼위일체)등을 보면 그림 속의 선 들이 예수의 머리 뒤로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화가들은 사물이 뒤로 갈수록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사물의 크기를 줄여 나가거나 색조를 흐리게 하고 세부를 간략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3-1-3. 명암 대조법

평면으로부터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을 주기 위해 그림 속에 어두운 부분으로부터 밝은 부분이 떠오르듯 형체를 묘사해 나가는 회화 기술을 말한다.

3-1-4. 피라미드 구조

딱딱한 측면 초상이나 그림의 앞부분에 격자 모양의 수평선에 맞춰 인물들을 배치하는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보다 3차원적인 피라미드 구조가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그림,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를 보면 그 그림의 중심점은 인물의 머리 부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2. 대표적인 미술가 세 사람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3-2-1.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가장 먼저 모나리자가 떠오르는 미술가이다. 이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술가들은 "쟁이"에 불과했다. 단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장인 취급 밖에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나 뒤러 등은 스스로 쟁이에서 벗어나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오늘날 지칭되는 "Renaissance man"이란 완벽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시대의 르네상스 맨은 바로 뒤러나 레오나르도가 아니었다 싶다.

 - 모나리자 :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나리자는 마력을 지닌 매혹적인 미소로 유명하다. 가끔 팜므 파탈의 전형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평가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눈썹이 없는 탓일까... 왜 그녀의 미소가 잔인하다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 목적으로 그려진 최초의 그림이라 일컬어진다. 또한 유화 물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윤곽선을 강조했던 기존의 화가들과는 달리 레오나르도는 명암 대조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형체를 다듬어 나갔다. 또한 모나리자의 손을 보면, 레오나르도가 해부학에 대하여 면밀한 관찰을 통해 이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흠이 있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눈썹이 없다는-하나일 것이다.

 - 최후의 만찬 :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할머니 댁 벽에 걸려 있는 양탄자 그림이라고 기억한다.(우리 친가나 외가는 다들 독실한 크리스챤이다.) 그 후로도 나는 이 최후의 만찬 그림을 여러 번 보았지만, 그림이 양탄자에 그려져 있든 캔버스에 그려져 있든 늘 형태는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서양 미술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부터 서야 이 그림이 상당 부분 마모된 벽화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이 그림은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종교화일 것이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의 인물들은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에서 본 최후의 만찬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너무도 흡사하여 감독 멜 깁슨이, 이 그림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제자들의 다양한 포즈와 표정들을 통해 제자들의 성격과 심리 상태가 잘 나타나고 있는 수작이다.

 3-2-2. 미켈란젤로

 -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 : 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더 좋아한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조각 "피에타"를 보고, 그 대리석 조각의 수려함에 감탄에 감탄을 더했다. 친한 친구 하나가 두 달 전 바티칸 미술관에 다녀와서 그 미술관에 소장된 예술품 모두가 수록된 책자 하나를 사다주었는데 그 부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직 해외엔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나는, 해외 여행의 첫 번 째 목표를 그 바티칸 미술관으로 삼았다. 그 중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은 역시 미켈란젤로의 조각인 피에타와, 미켈란젤로가 3년 동안 누워서 작업했다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다.

 그 방대한 그림은, 가운데 아담과 하느님이 손가락 하나씩 들어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장면인 아담의 창조가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그림의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조금 어리둥절한 면도 적잖이 발견된다. 여성의 육체가 지나치게 근육미 넘치고, 전혀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슴 곡선 등이 그것인데 이 것은 미켈란젤로가 평생 여성의 몸을 본 적이 없는 까닭이라고 한다.

- 최후의 심판 :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나는 세종문화회관에 갔었다.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원했다는 세계 명화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미술관에서 처음 최후의 심판을 봤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괜히 눈물이 흐르는데, 누가 볼 세라 챙피해서 얼른 닦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때의 감동은 가끔 다시 살아나 가슴이 울렁거리곤 한다.

 그는 종교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면서 신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이 그림에 표현했다. 가운데 예수를 기준으로 여러 성직자와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최근에 이 성당 벽화 역시 몇 번의 청소 작업으로 깨끗해졌다하니 얼른 바티칸 미술관에 가야할 것 같다.

3-2-3. 라파엘로

전성기 르네상스를 빛낸 여러 예술가, 특히 세 명의 대표적인 예술가 중에서(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인물은 바로 라파엘로였다. 다른 두 사람이 널리 존경받았으며 그들의 작품은 찬탄의 대상이었던 반면, 라파엘로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부드러운 색조와, 유려한 곡선, 그리고 안정감 있는 구도 덕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라파엘로의 그림은 부드럽게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의 작품 아테네 학당은 가장 유명하다. 그리스의 고전주의를 답습한 냄새가 확 풍기는 이 그림은 그리스 시대 유명한 학자들을,  시대를 무시하고 한 화폭에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라파엘로 자신도 그림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마치 '내 그림 어때?' 라고 묻는 것 같이 느껴진다.

3-2-4. 그 밖의 작가들.

그 밖에도 조토, 마사초, 보티첼리, 만테냐, 한스 홀바인, 얀 반 아이크. 티치아노, 뒤러 등 유명한 작가들이 많지만 이 작가들을 다 말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단순히 제일 특징적인 제 작가만 예로 들었다. 모두가 다 종교화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리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셋째 마당. 르네상스 미술이 끼친 영향

 

1. 르네상스 미술이 후 세대에 끼친 영향

르네상스 시대 이후 현실을 묘사하는 데 문제가 되었던 난점들은 모두 해결되었으며 예술은 완벽함과 조화를 달성하였다. 그런데 사실주의가 낭만주의를 반대했듯이 역시 지극한 조화와 이성, 현실성을 대신해서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욕망에 후기 르네상스 화가들, 이른바 매너리즘 화가들은 자연의 관찰에 기초한 사실주의 양식을 저버리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과장하여 귀족적인 우아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양식을 가져온다. 그 결과 안정감대신 불안정감이 자리 잡은 매너리즘이 탄생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인간의 형태를 꼬고, 비틀어 표현한다. 그러나 그 속에 이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논리와 이론을 표현하고자 애를 썼다. 그래서 그에 바탕을 두고, 현대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2. 르네상스와 현대의 관계

먼저 신고전주의에 매료된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비례를 자랑하는 건축물을 본 따 현대에도 건물을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버지니아 주 청사와 클로 페스그 양조장을 들 수 있다. 단순한 예지만, 이런 단순한 예를 통해 우리는 아직도 현대에 영향을 미치는 르네상스를 알 수가 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시도 인체의 완벽한 비례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을 알아야 그 기본을 바탕으로 한 창작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포스트모더니즘은 완벽한 기본을 쌓은 다음, 즉 조화와 비례의 균형미에 대해 탐구한 다음 그 것을 작가 나름대로 비틀고 조작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 즉, 현대 미술이 발전하는데 하나의 발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뒷 이야기. 르네상스 미술의 한계 - 가문을 위한 주문

 

가장 대표적인 가문으로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세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하게 다루는 것 중 하나이다.

 예술품이 작가의 순수한 창작품이라고 믿던 낭만주의적인 사고의 세계를 뒤로 하고 예술은 정치, 경제를 포함해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하고 있었다. 즉, 그들의 후원은 단순히 예술을 장려하기 위함이 아닌, 그들 가문을 빛내고 사회적인 지위 상승을 의미했으며,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몇 몇 미술가가 그만 그들의 경제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지위를 상승시켜주는 액세서리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심히 불편한 일이다. 유명한 그림들이 작가의 창작이 아닌, 주문자의 머리에서 나온 구도며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배신감 비슷한 감정마저 느꼈다. 그러나 미술을 볼 때 그 배경보다는 미술 자체에 관점을 두어야 한다면 이건 억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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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인가요???

미술수행이라서 그런데 피카소가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인가요? 아닙니다 르네상스는 14세기-16세기)이며 피카소(1881-1973)는 19세기 후기인상파 후에 입체파를 대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