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화가들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작성일 2009.10.05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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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호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락

피에트 몬드리안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1. 화가들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세요.

 

2. 설명하신 화가들 중 2명을 골라 대표작 2개를 올려주세요.

 

3. 대표작에 대한 설명도 같이 올려주세요.

 

 

10/8 까지 부탁드릴게요 ; ㅂ;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에스파냐의 대표적 초현실파 화가. 피게라스 출생.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로니아 북부의 작은 마을 피게라스에서 공증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얀 암벽이라든가 심연의 바다 등에 경이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1922년 마드리드 미술 학교에 입학한 그는 학교의 수업에는 만족치 않고 인상파, 점묘파를 거쳐, 미래파, 피카소의 큐비즘 등에 관심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의 형이상 회화의 화가 키리코를 알고 나서 몹시 흥분하기도 했는데 그의 초현실적 성향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것이다. 그는 보기 드문 조숙아로 일찍이 인상파나 점묘파·미래파의 특질을 터득하고 입체파나 형이상회화파 등의 감화를 받으며 작풍편력(作風遍歷)을 하였다.



 강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 의식적 태도가 농후하며, 젊어서 받은 프로이트의 영향이 일생을 지배했다.그후 1925년 피카소의 신고적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져 실험을 거듭했지만 엄격한 기하학에 이내 싫증을 느끼고 만다. 그 밖에도 베르메르, 벨라스케스, 라파엘로에까지 관심을 보여 달리의 고전화에 대한 집착은 평생 그의 생애를 통해 일관되어진다.



 미술 학교 재학 시절 반정부 활동함으로 잠시 감옥에 갇힌 바 있는 그는 차츰 무정부적인 타락된 생활이 심화되어 그로 인해 1926년 퇴학 처분을 받고 귀향케 되었다. 1925년에서 1927년에 걸쳐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에서 발표된 그림들은 다소 모순된 양식의 그림들이지만 매우 면밀하게 그려져있다. 1927년 그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다. 파리로 나온 그는 피카소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의 그림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놀라운 변모를 보인다.


이 시절 그는 피카소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도 그에 구애되지 않았고 미로와의 접촉을 갖고 초현실주의 화가들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드디어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큐비즘, 미래파, 형이상 회화파 등에서 얻은 영향이 그나름의 독특한 회화로 이르는 바탕이 된다.



 1929년 카다퀘스의 집에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 중 러시아 태생 폴 엘뤼아르의 부인 엘레나(갈라)에게서 운명적인 만남을 직감하고 그녀에게 짙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파리에서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그들을 카다퀘스에 방문토록 초청한 것이다. 두 번째의 만나마에서 달리는 돌발적인 웃음과 이상한 행동 등으로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녀 역시 그러한 그의 열정에 못이겨 그에게 이끌리고 만다.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려던 그는 (그녀야말로 나를 치유해 줄 것이다.)라고 믿었으며 그녀에게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들은 1929년 말 파리에서의 작품전이 열리는 도중, 홀연히 그곳을 잠적, 사랑의 도피 여행을 더나 갚은 사랑에 빠져들었으며, 달리는 그때 요람 속의 기쁨을 재음미하기에 이른다. 한때, 달리는 기억의 근원은 태아 적부터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듯 그 요람의 세계를, (거기는 정말 성스러웠다. 그야말로 천국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폐쇄된 그 호텔의 방 속에서 갈라와의 생활을 통해 태아의 아늑한 꿈을 만끽한 것이다.



 그들은 곧 카다퀘스로 돌아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리가크 항에 조그만 방을 구해 새 생활을 시작하였다. 타인의 아내를 가로챈 아들의 부도덕에 노한 아버지는 결국 그에게 절연장을 보내기에 이르렀고 달라는 그 충격으로 삭발하나 채, 먹다 남은 섬게 껍질과 함께 그 깍아버린 머리카락을 흙 속에 묻고 말았다. 그 매장은 곧 그를 낳고 기를 아버지와 가정이었으며 결국 그는 혈연을 잃은 대신 보다 정신적이며 숙명적인 갈라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로 친해 참다운 달리로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달리의 수많은 작품 속에는 갈라가 출현케 되고 모든 여성의 모습이 갈라로 변신되었다. 심지어 성모 마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도 갈라의 형상으로 대신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고통받는 그를 구하고 치유한 것이 갈라였기 때문이다. 아마 수많은 화가들 중 달리만큼 여자의 내조와 영향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또하나 달라의 예술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그가 성장한 카다퀘스의 해안과 리가트 항이다. 태양이 불타고 바닷물이 섬, 바위들 사이로 넘나드는 곳에서 변덕스로 그의 기분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그의 리가트 하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불모의 고장이요, 아침은 난폭하고 거친 명랑함을, 저녁은 기분나쁜 비애를 가끔 느끼게 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특이한 환경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황량한 땅이지만 깊숙히 위치한 마치 자궁 안과 같은 평안함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금세기의 가장 특이하며 괴이한 화가로서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의 작품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회의, 압도하는 무의식의 위력 등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그의 작품 속에는 통속적 경험과 상식으로써는 전혀 감지키 어려운 기묘한 것들로써 이루어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병적인 그림, 또는 광인의 그림이라고들 평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과 개성이 무의식적인 내용물의 홍수 속에 빠져들어 잠적하는 현상은 마치 정신 분열의 증세와도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그림을 두고 광인의 그림이라고 평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달리 자신의 언급처럼 광인과 자신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가 광인이라면 그의 작품에서 어떤 공감을 느끼겠는가? 만일 그것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모순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제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그의 손이 광인의 손이라 친다면 그의 괴이성을 체외하고라도 극사실적인 기법과 기발한 짜임새의 구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달리는 철저한 자기 본위의 독특한 화가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지닌 갖가지 고민, 불안, 모순, 공포, 절망 등이 숨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유하였다. 이듬해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 A.브르통에 의해 정식으로 이 파의 일원으로 인정되었다.



 그 스스로 ‘편집광적·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수법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하나의 대상을 2중 3중으로 다른 이미지로 보는 병적인 착각을 이용했다. 즉 말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거나 하나의 풍경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거나 하는 중복상을 교묘하게 화면에 표현했다.



 그는 <그림이란 많은 비합리적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천연색 사진이다>라고 정의하고, 이상한 환상을 객관적·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현대는 인간의 내적 상상력을 제어하고 인간의 추억이나 향수, 신앙, 전설, 영웅, 꿈들을 과감히 매도한다. 달리는 그러한 상상력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편집광적 비판 방법을 연마하여 자신만의 자유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그의 의도적인 괴이한 언행과 용모 속에는 비상함과 지속성이 내재되어 있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고뇌 속에 빠뜨렸던 수수께끼를 탐구하려는 끊임없는 욕망이 감추어져 있다. 달리의 회화성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과 비교할 때 혼란성을 띠고 있으나, 마그리트와 같은 분열성은 보이지 않는다. 또 그가 초자연의 세계를 여실하게 묘사하였고 그 대부분이 그로테스크하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중세의 화가 보시와 곧잘 비교되며, 달리를 현대의 보시라고 단순화해서 말하는 것에 관해 달리 자신은, (그것은 자기 개성에 관한 가장 나쁜 오해 중의 하나이다. 보시의 괴물은 안개 쌓인 유럽의 숲에 의한 것이며 중세에 대한 심한 소화불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보시의 그림은 형언하기 어려우리만치 세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달리의 그림은 두 세가지의 요소만으로도 그의 환상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환상 미술의 전례를 살펴보면 보시라던가 브뤼겔, 블레이크, 르동, 앵소르 등이 있지만 그들에 비해 달리는 보다 처절하고 본능적이며 노출증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다.그에게서는 파라노이아와 페티시즘이 특질로 나타나며, 내부와 외부를 전도시켜 마치 내장을 드러내 보이는 듯한 독특한 사실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밤같이 어두운 세계를 밝은 양광 아래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달리가 (비합리성에 도전)하게 된 것은 서구의 각국이 정치적 긴장의 팽배와 대립에 의해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1930년대였다. 즉, 유럽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개혁과 부정, 정치적으로는 혁신과 혁명을, 예술적으로는 재래의 예술 형식을 파괴, 부정하는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이러한 양상 아래 전개되는 제 미술 운동에 스페인 태생의 작가들이 많은 활약을 보인다. 이를테면 유기적 환상의 세계를 표줄한 건축가 가우디라든가 20세기의 조형 혁명으로 불리우는 큐비즘의 대표적 화가 피카소라든가 그리스 등이 있으며 초현실주의의 미로, 달리 등이 나타난 것이다.


 달리는 회화의 목적은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내적세계와 외적세계 사이의 육체적 장벽을 동시에 제거하고 , 현실과 비현실 및 명상과 행위를 서로합하여 혼합되어전생명을 지배하는 초현실성을 창조하는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페인은 유럽 중에서도 거구에 속하지 아니하며 역사적으로 동방 문화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인종이나 정치적인 면으로도 파악키 힘든 복합적 요소를 지닌 나라인 것이다. 달리의 말을 빌면 (프랑스은 가장 지성이 풍부하고 합리적인 나라인데 반해 스페인은 가장 비합리적인 또한 가장 신비스러운 나라)라고 한다. 그러한 환경 요인이 그들을 서양 회화의 위기적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게 한 것으로 보여진다.



 1937년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로 복귀하려는 욕구가 커졌으며, 초현실주의 화가 모임에서 제명당하면서까지도 원자과학이나 가톨릭의 신비성을 추구하여 왕성한 제작을 하였다. 40년 미국에 귀화하여 왕성한 제작활동을 하였다. 달리는 (천재의 일기(1964))에서 (미치광이인 채하며 피타코라스적 정확성을 가춘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잇다. 전후의 달리는 겨우 합리와 비합리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기에 이른다.



 작품으로 《피는 꿀보다 달콤하다(1928)》 《기억의 잔재(1931)》 《불타는 기린(1935)》 《레다 아토미카》 등이 있다. L.브뉴엘과 함께 전위영화 《안달루시아의 개(1929)》 《황금시대(1931)》 등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정신 착란의 그림

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달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시와 이론적 주석을 발표하면서 회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였다.  이 글 중 몇몇 작품은 그의 초현실주의의 여러 특징과 유명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일찍부터 예고하고 있다.1929년 파리의 초현실주의에 가입하면서 그의 예술적 개성은 성숙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이 후 10년동안 달리는 이 운동에 전적으로 참여했으며 이 그룹의 최고 지도자인 앙드레 브르통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달리는 그의 화업에 있어 중요한 이 시기에 <초현실주의 혁명>, <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 <마노타우로>와 같은 초현실주의의 공식적인 기관지에 정규적으로 글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때는 달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모델이며 뮤즈와도 같았던 갈라와의 관계가 시작되던 해이기도 했다(당시 갈라는 시인 폴 엘뤼아르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름의 시작, 1928

초기 작품들 중에서 완전히 초현실주의적인 성향을 띤 작품 중의 하나.  달걀 노른자처럼 끈끈하고 내장과 같이 부드러운 형태는 도망가는 선들, 글자, 그리고 숫자에 의해 표현된 엄격한 기하학적 공간의 도식 안에서 분배된다.  사물들의 정확한 표현과 재현된 내용 안에서의 비현실성의 혼합은 달리의 이후 모든 작품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한다.

 

 

정신 착란적 주제들

1930년대는 달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10년이었다.  이 때 그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표면화되는데 유연하게 늘어진 시계(<기억의 영속성>, 1931)나 이중 이미지(<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 부패한 음식들과 신체 기관(<섹스어필의 환영>, 1934), 밀레의 <만종>에 대한 집착과 같은 주제들이 표현된다.  다른 여러 이론적 글들을 통해 그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공동작업한 <황금의 시대>라는 영화가  프랑스의 검열에 의해 상영이 금지됨으로써 그의 추문이 더욱 더 확고하게 굳어졌다.  달리는 과장되고 세속적인 이미지들을 계속하여 만들어냄으로써 곧바로 대중적인 인기 작가로 변하여 갔고 언론의 덕택으로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맛보게 되었다.

 

변형(anamorphosis)

변형(anamorphosis), 또는 왜곡된 형상은 초현실주의 그림에 당연히 나타나는데 이러한 기법은 감각의 거짓성을 나타내는 예로서 바로크 시대부터 그림에 나타나는 수사학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달리의 그림에는 이같은 시각적 기법이 자주 나타난다.  이중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소재로 <보이지 않는 남자>를 비롯하여<갈라의 영광스런 세 수수께끼들>을 제작하였다.

 


 

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

 달리는 형상을 다양한 오브제의 묘사로 대체하여 그림을 그린 16세기 매너리즘 화가 아르침몰도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이중 이미지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주제를 접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1933년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인용하면서 꿈의 내용을 적용시킨 완전한 예이다.

 


 

나르시스의 변모, 1937

나르시스의 신화는 특별히 달리에게 흥미로운 주제었으며 달리의 나르시시즘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더욱이 연못의 물 안에 반사되어진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혼동은 그 배경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이러한 이중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거의 불가사의한 상징이다.

 

 

달리는 날카롭고 정밀한 소묘가 주된 역할을 하도록 물감을 단조롭고 적게 사용하고 다른 모든 기법을 포기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정밀함은 환상적인 주제와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역설적 표현은 20, 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환영적이고 기념비적인 도시의 그림에서 배운 것이며, 또한 카다케스의 꾸불꾸불한 절벽을 관찰하면서 배우게 된 것이다.  수평선의 암시가 인물들을 위협하는 이러한 텅 빈 풍경은 젊은 시기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빛으로 가득 찬 화면에 나타나는 정례식의 변형과도 같은 종류의 그림 안에서 달리의 정신 착란을 표현하기 위해 즐겨 쓰여지던 화면이다.

 

달리의 이미지는 비록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자유 연상에 의해 표현된다. 때때로 달리는 꿈을 거의 문학적으로 그렸는데 그러한 작품들은 잠에서 깨어나 캔버스에 옮기려 분투하는 화가에 의해서 기억되어져 다소 근거가 확실한 플롯으로 구성된 환영들이다.  종종 이러한 그림에서는 환영의 증인과도 같은 어린 소년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유년 시절로 회귀하려는 화가의 꿈과 잠재 의식의 비유로 나타난다.

 


 

현기증, 또는 쾌락의 탑, 1930

키리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가장 대표적인 형이상학적 그림이다.  그림의 외부에서 투사된 검은색 그림자와 신비스러운 형상은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오며, 이것은 불안전한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는 공도 그러한 역할을 한다.  한 쌍의 부부, 사랑과 죽음의 상징, 그리고 사자의 머리는 <위대한 수음자>와 이 시기 다른 그림에서도 역시 나타난다.

 


 

섹스-어필의 유령, 1934

 어린 달리는 거의 주체할 수도 없는 목발을 한 늙은 노파의 신체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노파의 상체 부분은 거대한 소세지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대립된 죽음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목발은 때로 달리의 회화 세계에서의 성불구를 상징한다.

 


 

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 1944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물-갈라-위로 덤벼들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는 꿈 속에서 벌의 이미지이다.  착검을 한 장총은 분명히 곤충의 위협적인 찌름을 암시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이 폭력적인 연회장으로 달리의 작품에 다시등장하고 있다.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 1950

편집광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재창조하여 카다케스 해변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표현하였다.

 

흘러내리는 시계

달리의 잘 알려진 편집광적 소재 중 하나는 부드럽게 녹아 내리는 듯한 오브제의 재현이다.  <기억의 영속성>과 <정거장의 때이른 석화>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으로 그 유명한 흐물흐물한 시계가 등장함으로써 부드러운 오브제가 일반화되었다.  달리의 그림에서 부드러움은 어떠한 딱딱한 대상에게나 적용되며 일반적으로 꿈의 세계의 의식적 증거물인 유령적 또는 환영적 조건을 지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가 표현된 작품에서 시계는 아주 심오한 함축적 이미지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의 관계성을, 즉 '4차원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달리의 모든 작품에서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부드러운 것은 소화될 수 있는 것,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상호 침투될 수 없고 다른 상태로 변화될 수 없는 딱딱한 성질의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거장의 때이른 석화, 1930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 일 년 전 부드러운 시계가 표현된 첫 작품이다.  앙상한 인체는 기차역이 연상케 하는 동적인 특징과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형이상학적 풍경화로 변화하는 작품은 1930년대 초반에 많이 나타난다.

 


 

기억의 영속성

 


 

4차원을 찾아서, 1979

아인슈타인의 공간과 시간은 이 작품에 있어서 볼록하고 오목한 굴 옆의 바퀴와 부드러운 시계에 의해 암시된다.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쌍의 인물들은 라파엘의 작품 <아테네 학당>에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케 한다.

 

 

서랍

달리는 마요카라 출신의 중세 말기의 지성인 라이문도 루리오나,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줄리오 카밀로의 <기억의 연극>에서 영감을 받아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술과 연관된 기억의 바퀴와 기타 기계장치에 관심을 보였다.  달리는 일생을 통해 많은 그림에서 특징적인 조형 요소인 가구나 인물로 기억술과 관련된 장치를 번안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랍이다.

 


 

불이 붙은  기린, 1936~1937

 


 

우주적인 운동 선수, 1968

 

 

서랍들은 무의식을 의미한다.  

달리는 "인간의 신체는 그리스 시대에는 순수한 신플라톤적이었다.  오늘날의 신체는 비밀스러운 서랍들로 가즉 차 정신분석 학자들만이 열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건축물을 사용한 비유도 이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

화가들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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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적확히 10.1.6까지!!!!!!!!!!!!!!!!!!!!!!!!!!!!!!!!!!!!!!!!!!!!!!!!!!!!!!!!!!!!!!!!!!!!!!!!!!!!!!!!!!!!!!!!!!!꼭!!!!!!!!!!!!!!!!!!!!! 1.화가는 무슨 일을 하나요?(3가지) *모두...

고흐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제가 고흐화가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을 봤는데 넘 잘그린것같아서 또 제맘에 들기도 해서 그 화가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답변해주세요 '빈센트 반 고흐' 인물...

이그림을 그린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화가 Gabriel Ledesma가그린 공장이있는 풍경 에서 화가 이름 발음이랑 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알아가야하는데 아무리검색해도 나오질안아 글올림니다 최대한 빨리 답변...

작품 제목과 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이 그림의 작품 제목과 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 고흐가 1888년 그린 수확이라는 작품입니다. 님이 올리신 그림은 수확의 일부분 같은데요.. 도움이 되셨는지요..^^ ★고흐...

화가가 되려면 .. 화가대해서

... 2.낭만주의 화가(이런 무슨주의 화가 이세상에 있는거 다 알려주세요^^) 인상파 (이런 파 같은것도,,) 그런 것을 알고싶으시면 미술사에대해서 공부하셔야합니다....

고메즈란 화가대해서 알려주세요1!!

... 했는데요 화가도 조사해야하거든요 ㅠ 근데아무리 찾아봐도 ;; 엘레나 고메즈에 대해서아시는거 있으면 다!!! 알려주세요1 번역된 건 간략한 것 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