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국어 슬견설 문제요.

중2국어 슬견설 문제요.

작성일 2007.04.13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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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국어교과서 슬견설 에서요.

 

문제가 '나'가 '어떤사람'을 대하는 태도 인것은?

1.비판적 2.감성적 3.감정적 4.적극적 5.관조적 이라 나오던데요.

 

답은 1번인게 확실하므로 이건 알겠는데요.

 

제가 질문하고 싶은것은 감성적,감정적,관조적인데요.

 

저 3개의 표현을 잘 모르겠는데요.

 

예문을 들어 설문좀 해주시길 바랍니다. 제발

 

내공은 많이 드릴게요. 제발 자세히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감성적이란 말은 원래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는 말인데, 사람의 태도에서 본다면 상대에게 쉽게 동조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공감적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정적이란 말은 감정이 앞선다, 즉 성급하거나 쉽게 폭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성적이란 말과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어 화자의 태도가 "개가 죽는 모습이 얼마나 참혹했길래. 자네 속이 많이 상한 모양이네."라고 한다면 감성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 어떤 녀석이 길거리에서 개를 잡아? 어디야? 살아있는 생명을 때려잡다니 미친 거 아냐?"라거나 "개가 죽는 게 어때서 그래? 이도 맨날 잡혀 죽는 거 안 보이냐? 너같이 큰 것만 중요하고 작은 건 안 중요하다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야!"는 식으로 분노하거나, 개가 불쌍하다고 엉엉 울어버린다면 감정적인 것이 되겠죠.

 

관조적이란 말은 멀리서 지켜보며 조감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통찰력을 갖고 사태의 추이를 전체적으로 지켜보는 것을 관조적이라고 합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방관적인 것이고, 좋게 표현하면 신중하고 고고한 것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어떤 손(客)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 이는 필연(必然)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들었다.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요점 정리

작자 : 이규보
갈래 : 한문수필, 설
성격 : 교훈적, 철학적, 사변적, 풍자적, 설득적, 우의적, 경세적, 극적
제재 : 개와 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구성 : 4단 구성 - 변증법적 전개[헤겔 철학에서, 동일률을 근본 원리로 하는 형식 논리와 달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는 논리.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반(反)-합(合) 삼 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한다. 좀더 쉽게 말하면  하나의 이론 <정(正)이라는 용어를 사용> 에 대해 이의를 제기<반(反)이라는 용어를 사용> 하면 그것의 문제점의 수정을 통해 <합(合)이라는 용어를 사용함>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여기에 다시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임]

손님의 생각 : 개의 죽음 - 마음이 아픔

(正)

나의 이야기 : 이의 죽음 - 마음이 아픔

(反)

손님의 생각 : 이는 微物이기에 죽음은 하찮음

(正)

나의 생각 : 생명체의 죽음은 모두 처참함,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같고 소중함

(合)

구성상의 특징 : ‘설’ 이라는 갈래는 ‘사실+의견’ 또는 ’체험 + 깨달음‘ 의 2단 구성으로 이루어지며, 우의적(寓意的)인 표현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글에서 우의적 표현이 활용된 점, 유추에 의한 사고의 확장과 주제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점 등은 설의 일반적인 표현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견해를 논박하는 형식을 통해 주제를 제시한 것은 이 글만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 : 대화에 의한 상황 전개와 사소한 일상에서 교훈적 의미를 덧붙이는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지고, 대조적 예시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변증법적 사고의 전개를 대화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주제와 형식간의 조화를 꾀함.(대화체를 사용하여 글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고, 설의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주지하는 내용을 강조했고, 다양한 예를 들어 문제 의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함)

글의 특징 : <내용면> '개'와 '이'의 비교 - 사물에 대하여 판단할 때 선입견을 버리고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개'와 '이' 등 사소한 사물을 문학적 소재로 사용 - 작가의 개성이 돋보임

<표현면> 두 대상을 대조시켜 주제를 드러내고, 대화에 의해 상황을 전개하며, 한문으로 된 옛글을 번역한 것으로 대체로 간결한 문장

주제 :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자. / 사물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자. / 사물의 편견 배제를 통해 사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 만물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함 / 사물을 바로보는 안목의 필요성

( ‘손’과 ‘나’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기는 것은 사고의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손’은 ‘큰 동물의 죽음만이 불쌍하다.’ 고 보고 있지만, ‘큰 동물이든 작은 동물이든 생명을 가진 것의 죽음은 불쌍’ 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생기게 된 원인은 ‘손’ 은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나’ 는 현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현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글이 주는 교훈이다.)
출전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내용 연구

 어떤 손(客)이 나(수필적 자아, 작자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개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잔인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인지상정(人之常情) : 사람이 보통 가질 수 있는 마음 / 측은지심 [心  :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 ].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손은 대상의 외면적 특징을 기준으로 사물을 평가하는 사람으로 변증법적으로 보자면 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연민이 담긴 손님의 주관적 견해임)."- (기) 어떤 손(客)의 이야기로 개의 죽음을 아파함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사물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사물의 본질을 얼마나 잘못 파악하게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들어 대꾸한 것이다. 여기서 나의 말하기 방식의 특징은 상대의 견해를 뒤집어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을 대비를 통해서 편견 없는 사고를 이끌어 냄)."- (승) 나의 대답은 '이'의 죽음에도 마음이 아픔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변증법적 논리상 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아주 작은 생명체로 '이'는 불쌍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말로 '손'의 생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덩그렇게(높이 우뚝 솟아서 풍채가 좋게) 크고 육중(덩치가 크고 무거움)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손이 '개'는 육중하기에 귀중하고, '이'는 미물이기에 하찮은 존재라는 일반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말), 이는 필연(必然)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선입견이나 편견이 얼마나 사물을 잘못 파악하게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나의 의도적인 대꾸를 손(客)이 잘못 이해하여 한 말이다.]"
하고 대들었다. - (전) 손의 반응(反應)은 개는 육중한 짐승이고, '이'는 미물임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생명]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대유법으로 '생명'을 의미)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변증법적 논리로 합에 해당하는 말로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죽기 싫어한다는 뜻으로 모든 생명체는 귀중하고 소중하다는 뜻임)?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생명이 있는 것의 죽음이라는 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크기에 따른 선입관을 비판하고,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함을 강조한 말). 그래서 예를 들어서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 : 팔다리의 뼈마디)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메추라기의 준말)를 대붕[大鵬 : 하루에 구만 리(里)를 날아간다는, 매우 큰 상상(想像)의 새. 북해(北海)에 살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고 한다.]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달팽이의 뿔을 - 해 보십시오 : 작자의 의도가 드러난 주제가 담긴 진술로, 사물은 크기에 관계없이 근본적 성질이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견이나 선입견에 치우치지 말고 본질을 바로 보도록 하라는 것으로 교훈적 진술이다. 현상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또한 , 달팽이의 뿔과 메추리는 작고 하찮은 존재를, 쇠뿔과 대붕은 크고 가치있는 존재를 비유한 것으로 대조법을 사용]. 연후[그 이후에]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선입견을 버리고 참된 가치를 생각할 때 비로소 올바른 삶의 태도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이 글의 주된 전개 방법은 예시와 비교)

라고 했다.- (결) 나의 구체적 설명(說明)

위 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 : 개의 죽음이 불쌍함 - 손

반 : 이의 죽음이 불쌍함 - 나

합 : 개나 이의 죽음은 모두 불쌍함

궁극적 주장은 대상의 본질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큰 것

작은 것

엄지손가락

나머지 손가락

소의 뿔

달팽이의 뿔

붕새

메추리


'손'의 생각

큰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다.

이의 죽음은 큰 동물의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의 죽음은 불쌍하지 않다. - 사물의 가치를 현상만으로 파악하는 인물

'나'의 생각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생물은 동등하다.

이는 큰 동물은 아니지만 생명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의 죽음은 개나 돼지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인물

유사한 사물과의 관련

손가락을 깨물면 열손가락이 똑같이 아프다.
몸의 각 부분들이 느끼는 아픔이 같듯이 기운을 받은 생명은 모두 죽음을 싫어한다.

보편적인 깨달음

크기가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지 말고 생명이라는 본질을 보아야 한다.

즉, 형상에 머물지 말고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참고 : 변증법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다른 이견임

              손님 : 개와 이의 생명 가치는 다르다. - 모든 동물의 생명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 - 상대주의[(相對主義) : 모든 진리나 가치 따위의 절대적 타당성을 부인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 그리스 소피스트들이 대표적인데, 인식론에 있어서도 모든 인식은 인식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 인식 주체의 처지와 태도, 대상의 존재 방식에 의하여 제약되므로 상대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한다.]

나 : 개와 이의 생명 가치는 같다. - 모든 동물의 생명 가치는 같다. - 절대주의[(絶對主義) : 영원 보편의 타당성을 가진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추구를 철학의 근본 문제라고 하는 이론.]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은 ‘변증법[헤겔 철학에서, 동일률을 근본 원리로 하는 형식 논리와 달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는 논리.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 반(反) 합(合) 삼 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한다.]’ 구도로 가르치고 있다.

 

개가 죽는 것은 불쌍하다. - 정

이가 죽는 것도 불쌍하다. - 반

모든 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다. - 합

 ‘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논리로 변증법을 끌어왔는지는 모르나 이는 잘못이다. 변증법은 모순을 먹고 사는 논리다. ‘개가 죽는 것이 불쌍하다’와 ‘이가 죽는 것이 불쌍하다’가 모순은 아니다. 모순 관계라면 차라리 손님과 이의 대립 관계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변증법을 약방의 감초처럼 갖다 붙이는 태도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변증법 갖다 붙이기는 ‘나’의 입장을 절대화시키려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과연 손님의 입장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며 나의 입장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 김 슬옹(목원대 강사)

 

손님과 나의 입장을 편중되지 않게 분석하기

구분

중립적 비교

나 위주 비교

손님 위주 비교

손님

상대주의

현실주의

미시적

(부분)

선입견

(편견)

생명경시

차별

실용적

친근감

가치(의미)

절대주의

이상주의

거시적

(전체)

진리

생명존중

평등

비실용적

비친근감

무가치

(무의미)

 

지도방법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정리하며 읽도록 한다.

 이 글은 ‘이’와 ‘개’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두 사람이 벌인 논쟁을 기록한글이다. 논쟁의 내용과 두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강등의 원인을 분석하며 읽도록 지도한다.

 사고의 진행과정에 유의하며 읽도록 한다.

 이 글에서 사고의 진행 과정은 두 사람의 대화 전개 과정에 따라 진행된다. 대화의 전개 과정에 따라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며 읽도록 지도한다.

 작자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점을 추리하며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대화에 함축된 작자의 의도를 추리하여,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1) 구성. 창작 이 글은 ‘손’과 ‘나’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정리된 ‘손’ 의 말을 참고하여 다음 빈칸에 적절한 내용을 채워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글의 내용을 구조적으로 정리해 보는 활동이다. 학생들은 이 활동을 통해, 글은 일정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의 내용을 구조화하면 글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 ‘설’ 이라는 한문 수필의 양식은 비유나 우의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풀이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펴는 형식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손'의 생각 :

 

     큰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다.

     이의 죽음은 큰 동물의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의 죽음은 불쌍하지 않다.

   '나'의 생각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생물은 동등하다.

     이는 큰 동물은 아니지만 생명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의 죽음은 개나 돼지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유사한 사물과의 관련

     손가락을 깨물면 열손가락이 똑같이 아프다.
     몸의 각 부분들이 느끼는 아픔이 같듯이 기운을 받은 생명은 모두 죽음을 싫어한다.

   보편적인 깨달음

     크기가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지 말고 생명이라는 본질을 보아야 한다.

     즉, 형상에 머물지 말고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2) 이 글은 ‘개와 이의 죽음’ 이라는 사소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의 자세에 대한 보편적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개’와 ‘이’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른 사물로 바꾸고, 이 글처럼 보편적인 깨달음을 주는 글을 구상하여 써 보자.   

이끌어주기 :

 앞에 1) 번 활동과 연계된 활동이다. 앞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글이 일정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의 구조를 이해하면 글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활동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 쓰기 활동에 적용한 것으로, 글쓰기에 대한 방법적인 지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할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 수필의 개념과 특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한다.

  글쓰기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지도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필요한 경우 모둠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①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를 일상생활에서 찾아보도록 한다.

 ②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일반화된 진술로 정리해 본다.

 ③ ①,② 의 활동 경과를 바탕으로 글의 개요를 작성해 본다.

 ④ 작성된 개요에 따라 들을 쓰고, 퇴고한다.

 ⑤ 모둠별로 발표하고, 상호 평가와 교사 평가 순서로 평가를 진행하여, 학습 내용을 강화한다.

예시답안 :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공장의 폐수가 하천을 더럽히고, 그 때문에 각종 어류들이 병들고, 그 물고기를 먹은 동물들도 병들고, 결국은 인간들까지도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는 걸 알았어. 난 학교에 결석을 하더라도 ‘공장 폐수 처리 방법을 강구하라!’는 환경 단체의 시위에 참여해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려고 해.”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눗물이 하천을 더럽히고, 그 때문에 각종 어류들이 병들고, 그물고기를 먹은 동물들도 병들고, 결국은 인간들까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난 이제부터 목욕이나 세수를 하지 않기로 맘먹었어.”

친구는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씻지 않고 산단 말이니? 난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안을 강구하려는 진지한 생각해서 한 말인데, 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니? 날 놀리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정말 너무한데......”

나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물론 환경문제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지. 하지만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업도 빠지고 시위에 참가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오히려 환경 문제를 우리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본다는 거 아니겠어? 씻지 않겠다고 말한 내 대답이 좀 과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말하려던 의도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작은 생활 속의 실천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거였어. 사실 환경 문제를 생활 속의 문제로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생활 습관과 태도를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야. 기업하는 사람들이나 과학자들만 환경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우리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태도 아닐까?”

화자와 손님의 인식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두 사람의 사유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작은 동물에 대한 관점을 모든 동물에 대한 시각으로 일반화하고 있다. 이는 작은 동물 자체의 아픔이라는 실질적인 것을 문제삼고 있다기보다는 형식 논리적인 관점에 의존한다. 왜냐 하면 우선 아주 작은 동물들은 인간이 기르는 것이 아니어서 동물의 죽음에 대해 모든 사람이 불쌍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신체의 일부인 손가락의 아픔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지만, 그것이 동물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손님이 예로 든 큰 동물들은 모두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보편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화자와 손님의 차이점은 제재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출처 : 하강진, '이규보 수필의 구조와 의미')

인식과 체험의 확장

 수필은 평범한 대상에 대한 체험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대상의 겉모양이나 현상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의미를 남다르게 발견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연상이나 유추와 같은 정신 활동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이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시키거나, 한 대상의 통찰을 통해서 알게 된 이치를 다른 데에 옮겨서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히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수필을 읽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변증법적 수법의 대화를 통해 상황이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사소한 사물에 교훈적 의미를 덧붙이는 필자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고, 일상적 일에서 철학적 사유를 하는 지은이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개(犬)를 죽이는 것은 참혹하며 이를 죽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손(客)에게 작자는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죽기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선입견(先入見)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보도록 하자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기법상의 특징은 풍자적 수법이라 할 수 있고, 표면적(表面的) 사실(개와 이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이면적(裏面的) 진실(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라)을 밝히는 관조적인 내용이 재치있게 드러나고 있다.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는 지은이의 의도가 드러난 주제적 진술이라 할 수 있으며, 관조적으로 보면 사물은 크기에 관계없이 쓰임에 따라 또는, 근본적 성질에 따라 같을 수도 있다는 교훈적 진술이 담겨 있는 수필이다.

이해와 감상1

 이 글은 이나 개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손과 내가 논쟁을 벌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손'과 '나'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기는 것은 사고의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손'은 '큰동물의 죽음만이 불쌍하다'고 보고 있지만, '나'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큰 동물이든 생명을 가진 것의 죽음은 불쌍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론도 다른 것이다. 작자가 손과 독자에게 주는 교훈은 사물은 크기에 관계없이 근본적 속성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보는 안목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도달했을 때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나 '개'의 죽음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소한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 뜻은 크고 깊다. 수필은 대상이 지닌 의미를 남다르게 발견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신기하거나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수필을 많이 읽는 것은 이러한 안목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이규보의 ‘슬견설

 이 작품은 비교와 대조, 연역, 대화에 의해서 전개된다. 비교와 대조는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손님은 개와 이를 대조하지만, 작자는 개와 이를 비교한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은 손님과 작자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깊이 살피면, 이 작품은 작자가 자신의 모순되는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중요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개’ 와 ‘이’ 는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는 주인을 따르고 반긴다. 그러므로 ‘개’는 집권 세력에 속하던 사람을 가리키고, ‘이’는 피지배 계급 - 농민이나 노예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규보가 살던 시대에는 잦은 정권 투쟁과 반란으로 고급 관리와 군인과 민중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었다. 이 작품에 표현된 ‘개’의 죽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배 계급의 인물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고, ‘이’ 의 죽음은 부패한 정부의 지나친 착취를 견딜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키고 죽음을 당하던 민중을 비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불에 태워 죽이는 비유는, ‘곡식을 나누어 준다는 말에 속아서 창고 안으로 모인 반란 민중을 정부의 군대가 죽이려하자, 반란 민중이 스스로 불을 내서 타죽은 사건’으로부터 연상되었거나 그러한 사건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규보가 속한 지배 계급의 사람들은 같은 계급의 인물이 죽는 것을 슬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죽음에는 무관심하거나 그러한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규보는 지배 계급에 속한 인물의 죽음과 백성의 죽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유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규보가 이 작품에서 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태도 - 같은 계급의 죽음을 아깝게 여기고 민중의 죽음에 무관심하던 태도를 반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가 속한 계급의 사람들이 죽는 것은 슬퍼하면서 백성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집권 세력의 태도를 비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처 : 이대규, '수필의 해석')

설(說)
 

   (1) 뜻: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의 이치를 밝히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글

   (2) 특징:

        ① 이치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고 자기 의견을 설명하는 한문 문학의 한 갈래

        ② 비유나 우의적인 방법 많이 사용

        ③ 국문학상의 갈래로는 교훈적인 수필에 가까움

        ④ 독자를 설득시키고자 하는 내용이 많음

        ⑤ 일반적으로 ‘사실(예화)+의견(주제)’의 2단 구성을 취함

        ⑥ 우리 나라 최초의 설은 이규보의 경설, 슬견설 등이다.

   (3) 구성

        ① 사실 제시 + 의미 부여

        ② 개인적인 체험 + 그 체험의 보편화

        ③ 근거 + 주장

 한문 문체의 하나. 설체는 ‘설’의 자의(글자의 뜻)가 말하듯이 해석과 서술을 주로 하는 문체이다. 다시 말하여 설체는 의리(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자기의 의사를 가지고, 종횡억양(縱橫抑揚 : 자유스럽고 분망하게 글을 짓는 것을 이름.)을 가하여 좀더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논체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설이라는 명칭은 본디 ≪주역≫ 설괘(說卦)에서 시작되었다. 한나라 때의 허신(許愼)의 ≪설문해자 說文解字≫도 그 명칭이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문체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는 동안 설의 이름을 가진 것은 조식(曺植)의 문집 가운데의 2편뿐이다. 이로 인하여 ≪문선 文選≫에서는 설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당나라 때에 이르러 고문운동에 편승하여 설체가 새롭게 창안되었다.
 한유(韓愈)의 〈잡설 雜說〉·〈사설 師說〉을 비롯하여 유종원(柳宗元)의 〈골설 結說〉·〈포사자설 捕蛇者說〉·〈승부설 乘辣說〉·〈적룡설 謫龍說〉·〈웅설 熊說〉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도 〈사설〉과 같이 직유적인 것이 있으나 대체로 은유적인 것이 많다.
〈잡설〉 4에서는 지우의 어려움을 천리마와 백락(伯樂)의 관계로 다루었고, 〈포사자설〉에서는 폭정의 혹독함을 뱀이나 범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리하여 설체는 우의적인 작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송나라 때의 소순(蘇洵)에 이르러 이와는 약간의 성격을 달리하는 설체가 등장하였다.
 이는 〈명설 名說〉·〈자설 字說〉로서 〈중형자문보설 仲兄字文甫說〉·〈명이자설 名二字說〉 등이 그것이다. 이 문체는 그러한 이름이나 짓게 된 소이(所以; 이유)를 해설하여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보며 그 뜻을 되새김.)를 은근히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다. 대부분 문장이 간결한 것이 특색이다.
 우리 나라에 〈명설 名說〉·〈자설 字說〉 두 가지 체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으로 우리 문헌에 보인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에서이다. 여기에 〈경설 鏡說〉·〈주뢰설 舟賂說〉·〈슬견설 芒犬說〉·〈뇌설 雷說〉 등 다수의 설체가 수록되었다. 모두 우의적인 작품이다.
〈경설〉은 깨끗한 거울(똑똑함을 드러낸 사람)과 더러운 거울(똑똑함을 감추고 있는 사람)의 두 가지 중에 더러운 거울의 경우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설체는 한유나 유종원을 배운 것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설작품이 많이 지어졌다. 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 訓子五說〉, 권호문(權好文)의 〈축묘설 畜猫說〉, 이식(李植)의 〈교송설 矯松說〉, 김매순(金邁淳)의 〈작치설 鵲悉說〉, 이건창(李建昌)의 〈응설 鷹說〉 등이 명작으로 손꼽힌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순을 배운 명설·자설·호설도 계속 유행되었다. 분량으로 따지면 자설이 제일 많고 다음이 호설이다. 명설은 희귀한 편이다. 자설은 고려조 이곡(李穀)의 〈경보설 敬父說〉·〈심보설 深父說〉에서 비롯되었고, 호설은 백문보(白文寶)의 〈율정설 栗亭說〉·〈척약재설 洙若齋說〉에서 비롯되었다.
 명설은 조선초 하륜(河崙)의 〈명자설 名子說〉에서 시작되었는데 설리적인 설체에 비하여 간결한 단편이라는 것이 특색이다.

≪참고문헌≫ 東文選, 高麗名賢集, 文體明辨(徐師曾), 韓昌黎集(韓愈), 柳河東集(柳宗元), 朝鮮歷代文選(金都鍊, 保景文化社,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국이상국집

 고려 후기의 문신·문인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 53권 13책. 목판본. 아들 함(涵)이 1241년(고종 28) 8월에 전집(前集) 41권을, 그 해 12월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 간행하였고, 1251년에 칙명으로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교정, 증보하여 개간하였다.
조선시대에도 몇 차례 간행된듯한데 실본(失本)된 것을 일본에서 입수하여 다시 간행하였다는 이익(李瀷)의 말로 보아, 오늘날 완전히 전해지는 판본은 영조시대의 복각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집 41권에는 책머리에 이수(李需)의 서문과 연보가 실려 있고, 권1에는 외부(畏賦) 등 6편의 부와 시가 있으며, 권2∼18에 시, 권19에 잡저·운어(韻語)·어록, 권20에 전(傳), 권21에 설·서(序), 권22에 잡문, 권23·24에 기, 권25에 기·방문(頓文)·잡저, 권26·27에 서(書), 권28에 서(書)·장(狀)·표(表), 권29에 표, 권30에 표·전(箋)·장, 권31에 표, 권32에 장, 권33에 교서·비답(批答)·조서, 권34에 교서·마제(麻制)·관고(官誥), 권35에 비명, 권36에 뇌서(柰書), 권37에 애사·제문, 권38에 도량재초소제문(道場齋醮疏祭文), 권39에 불도소(佛道疏)·초소(醮疏), 권40에 석도소제축(釋道疏祭祝), 권41에 석도소(釋道疏)의 차례로 되어 있다.
후집 12권에는 이함의 후집서문에 이어, 권1∼10에 시, 권11에 찬·서(序)·기·잡의(雜議)·문답, 권12에 서(書)·표·잡저·묘지, 그리고 책 끝에 정지(鄭芝)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이규보의 뇌서와 이수가 쓴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 이익배의 발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141운 282구의 〈동명왕편〉을 비롯하여 300운에 이르는 〈차운오동각세문정고원제학사 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와 43수로 된 〈개원천보영사시 開元天寶詠史詩〉, 100운의 〈정장시랑자목 呈張侍郎自牧〉 등 100운이 넘는 시만도 상당수가 있다.
특히, 전집 권3에 수록된 〈동명왕편〉은 장편의 민족서사시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해모수(解慕漱)와 유화(柳花)가 만나는 과정으로부터 주몽(朱蒙)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시련을 이기고 고구려를 건설하기까지의 모습과 왕자 유리의 왕위계승,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임금들이 너그럽고 어진 마음과 예의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희망하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서문을 통하여 ≪구삼국사 舊三國史≫라는 우리나라 사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시 속의 많은 분주(分註)에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노무편 老巫篇〉(전집 권1)은 민중을 미혹시키는 무당을 경계하는 뜻에서 지은 시로서 무당의 의식(儀式)을 서술하였기 때문에 무속연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며, 〈개원천보영사시〉(전집 권4)는 안녹산의 난으로 사직을 거의 망칠뻔했던 당나라 현종의 유적 등을 읊은 것이다.
〈답전이지논문서 答全履之論文書〉(전집 권22)에는 옛 시인을 모방, 답습하지 말고 새롭게 표현할 것을 역설한 시론(詩論)이 보이고, 〈논시중미지약언 論詩中微旨略言〉(전집 권22)에는 주의론(主意論)을 비롯한 시에 대한 그의 많은 견해가 피력되어 있다.
작문과정에서 시인이 주의해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한 그의 구불의체론(九不宜體論)이 특히 돋보인다. 〈당서불립최치원열전의 唐書不立崔致遠列傳議〉(전집 권22)에서는 최치원의 전기를 책에 수록하지 않은 당나라 사람들의 편협성을 개탄하고 있어, 〈동명왕편〉에서 보인 바와 같이 그의 민족에 대한 긍지와 주체사상의 일면이 보인다.
전집 권20에 수록된 〈국선생전 麴先生傳〉과 〈청강사자현부전 淸江使者玄夫傳〉은 가전체문학으로, 〈국선생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과 인간과의 미묘한 관계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은 작품이고, 〈청강사자현부전〉은 거북을 의인화하여 작아서 알기 어려운 것을 미리 살펴 방비하는 데에는 성인도 간혹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여 매사에 삼갈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 가전체문학작품은 우리나라 소설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볼 때, 설화와 소설을 잇는 교량적 구실을 담당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백운거사전 白雲居士傳〉(전집 권20)은 이규보가 젊었을 때에 천마산에 은거하면서 도연명(陶淵明)의 〈오류선생전 五柳先生傳〉을 본떠 시와 술을 벗하여 안빈낙도하며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그린 자서전적 전기이다.
〈칠현설 七賢說〉(전집 권21)은 무신의 집권으로 속세를 등지고 스스로 맑고 고고함을 자랑하던 강좌칠현(江左七賢)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된 것인데, 끝내 죽림에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 한수에 벼슬 하나를 얻는 문재(文才)로, 나이 칠십으로 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벼슬길을 헤쳐나간 그의 인생관을 엿보게 해주는 글이다.
이 책은 이규보의 뛰어난 시와 문 등의 문학작품이 수록된 귀중한 문헌일 뿐만 아니라 사료로서도 귀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대장경각기고문 大藏經刻祈告文〉을 통해 ≪팔만대장경≫ 판각의 연혁을 알게 되고, 〈신인상정예문발미 新印詳定禮文跋尾〉에 의해 금속활자의 사용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것 등이 그것이다. 〈논시중미지약언〉·〈당서불립최치원열전의〉·〈백운거사전〉 등 일부 내용들은 ≪백운소설 白雲小說≫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13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조선고서대계 朝鮮古書大系≫ 속22·23집에 활자본으로 상·하 2책을 간행하였고, 1958년 동국문화사에서 규장각도서본을 영인, 출간하였으며, 197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고려명현집≫ 1권에 이승휴(李承休)의 ≪동안거사집 動安居士集≫과 함께 영인하여 합본으로 간행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다시 대동문화연구원의 영인본을 대본으로 하여 원문을 영인하여 싣고, 이를 국역하여 1979년부터 3년에 걸쳐 7책으로 간행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의 영인본과 민족문화추진회의 국역본에는 ≪백운소설≫이 권말에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東國李相國集(李石來, 韓國의 名著, 玄岩社, 1969), 高麗名賢集 1(李佑成, 成均館大學校大東文化硏究院, 1973), 이규보연구(朴性奎, 계명대학교출판부, 1982), 李奎報文學硏究(金鎭英, 集文堂, 1984), 李奎報詩文學硏究(金慶洙, 亞細亞文化社, 1986), 東國李相國集解題(金東旭, 국역동국이상국집, 民族文化推進會,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동국이상국집'은 무신정변 이후 중앙 정계에 등장하여 문명을 드날린 이규보(李奎報)의문집이다. '동국이상국집'은 모두 53권 13책으로, 시(詩)·부(賦)·사(辭)·설(設)·전(傳)을 비롯한 각종의 문학적인 글들이 25권을 이루고, 나머지는 서(書)·장(狀)·표(表)등 실용문에 해당하는 글들이다. 특히 외교 문서에 해당하는 글이 상당한 양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조정은 외교상 필요한 글에 있어서 그에게 크게 의존했던 것 같다.

 문학적인 글이든 실용문이든'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읽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이규보는 빼어난 글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동국이상국집」에는 주옥 같은 시 작품과 탁월한 문학 이론도 담겨 있어 이규보가 후대에 여러 평자들로부터 고려 시대 제일 가는 문호로 평가받는데 충분한 자료의 구실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이 담겨 있고, 그러한 상상력을 탁월한 수사법으로 형상화해 냄으로써「동국이상국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장학 교과서라고 이를 만하다. ―최웅, '탁월한 수사법, 상상력 가득 담긴 문장학 교과서'

이 규보〈슬견설〉읽기의 주요 관점 설정 -고전 읽기와 관점 설정의 중요성-

1

이 규보(李圭報, 1168~1241) 시문집인《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는〈슬견설(?犬說)〉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더욱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현 7차 과정 교과서에서는 빠짐). 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흔한 ‘이와 개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논점)를 던져 주니 그야말로 친근한 고전 작품이다. 진정한 고전은 다양한 관점으로 읽어 낼 수 있으면서 삶의 바람직한 가치를 구성해 주는 작품이어야 한다. 바로〈슬견설〉이 그런 작품인데 교육 현장에서는 일정한 관점을 강요하거나 작품을 고정된 도식으로써 전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점을 비판하고〈슬견설〉읽기의 다양한 관점을 풀어 보기로 한다. 작품이 지향하는 관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관점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고전 읽기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 글은 이 규보가 지향하는 관점인 작품의 관점을 비판하는 관점 설정을 보일 것이다.

2

관점은 삶의 사유와 실천을 구성해 주거나 규정해 주는 가치관이며 세계관이다. 관점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역동적이다. 관점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정되고 구성된다. 고정된 관점을 강요하는 전략 속에서는 고전은 없다. 작품의 다양한 관점을 분석하기 위해 기본 줄거리를 추려 보자. 작품은 손님의 견해와 ‘나’의 견해의 대립으로 되어 있으면서 ‘나’가 손님을 타이르는 구도로 되어 있다. 곧 손님의 견해는 개와 같은 육중한 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지만 이와 같은 작은 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지 않다는 것이고, ‘나’는 개나 이나 다 죽는 것은 불쌍하다는 견해이다. 그래서 ‘나’가 “당신(손님)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끝내고 있다. 이런 관점은 다음과 같이 상대주의 관점과 절대주의 관점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손님 : 개와 이의 생명 가치는 다르다. - 모든 동물의 생명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 - 상대주의

나 : 개와 이의 생명 가치는 같다. - 모든 동물의 생명 가치는 같다. - 절대주의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은 ‘변증법’ 구도로 가르치고 있다.

 

개가 죽는 것은 불쌍하다. - 정

이가 죽는 것도 불쌍하다. - 반

모든 동물이 죽는 것은 불쌍하다. - 합

‘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논리로 변증법을 끌어왔는지는 모르나 이는 잘못이다. 변증법은 모순을 먹고 사는 논리다. ‘개가 죽는 것이 불쌍하다’와 ‘이가 죽는 것이 불쌍하다’가 모순은 아니다. 모순 관계라면 차라리 손님과 이의 대립 관계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변증법을 약방의 감초처럼 갖다 붙이는 태도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변증법 갖다 붙이기는 ‘나’의 입장을 절대화시키려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과연 손님의 입장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며 나의 입장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글쓴이는 앞에서 관점은 설정된다고 했다. 그것은 관점을 구성해 주는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님의 상대주의 관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주어진 글에서는 개와 이를 차별하는 기준이 크기만 나와 있지만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보면 개와 이를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개는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지만 이는 이로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와 이가 똑같이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본다 하더라도 그 느낌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를 떠나 단지 크기만을 가지고 생각하더라도 상대적 크기가 상대적 느낌의 차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손님의 관점은 다분히 현실주의 관점이고 실용적 관점이다.

이에 반해 ‘나’는 구체적 인식의 상대적 차이는 접어두고 죽음이라는 동일한 상황 속에서 그 가치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식의 상대성을 극도로 추상화시켜 최종 가치를 절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반 사람들의 행태로 보면 이상적, 추상적 관점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생물의 가치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불교적 관점이라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손님이나 나나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관점을 구성하고 있다. 당연히 손님의 입장에서 나를 비판할 수 있으며 나의 입장에서 손님을 비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나의 입장을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작품이 나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할지라도 관점이 설정되는 맥락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글쓴이가〈슬견설〉분석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와 절대주의는 꼭 대립된 관점이 아니라는 점이다.〈슬견설〉의 논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은 두 논점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곧 절대주의 아니면 상대주의, 나는 이쪽이다 저쪽이다 경직된 사고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나누는 것 자체가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두 관점이 그렇게 배타적으로만 설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농촌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개나 돼지의 가치를 이나 개미보다 더 높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개는 꼬리치고 돼지는 방긋방긋 웃고 또한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해 주지 않는가. 그러니 어찌 이와 개미와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명의 가치 측면에서는 동일시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나(글쓴이)는 개미를 죽이는 친구들과 싸움까지 했을 정도이다. 이렇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차별할 수도 있고 동일시할 수도 있다.

초점을 사람 관계로 옮겨와 보자. 만돌이와 천돌이는 순돌이의 같은 반 친구다. 순돌이 입장에서 친근성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천돌이와 만돌이는 똑 같은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만돌이와 공유하는 점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만돌이와 주로 간다. 그러나 만돌이와 천돌이가 똑같이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는 두 친구 모두에게 병 문안을 가게 된다. 아프다는 상황에서는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맞고 틀리다는 식으로, 또 주어진 글에서처럼 ‘나’ 입장에서 손님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도(道)’라는 이름으로 ‘나’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한다면 인식의 구체성까지 소멸시킬 수 있다. 곧 개가 매에 맞아 죽는 것은 분명 나쁜 것이고 불쌍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개를 잔인하게 때려 죽여야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그렇게 죽일 경우 개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가므로 무척 잔인한 짓이 된다. 그러나 이를 화롯불에 태워 죽이는 것도 잔인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일시적인 고통을 주므로 개를 패서 죽이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줄 수는 없다. 물론 ‘나’의 입장은 존중할 수 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손님의 입장도 있을 수 있고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관점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느냐는 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3

우리 사회에서 고전은 작품의 범주가 아니라 삶의 가치 기준으로 작동된다. 고전 읽기가 관점 설정 읽기로 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슬견설〉분석을 관점 분석 위주로 해 보았다. 작품이 절대주의 관점 위주로 되어 있다고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절대주의 관점 읽기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달팽이 뿔과 쇠뿔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슬견설〉이 권위적인 교과서에서 빠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슬견설〉의 관점을 고정화시켜 가르쳤던 처참한 교육 현장에 대한 아픈 추억을 잊고자 이 글을 세상에 공표한다. 글쓴이 : 김 슬옹(목원대 강사)

 

 

 

답변확정 안하면 싱하형이 굴다리로 부른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감성적 : 감성을 위주로 하거나 감성에 관한. 또는 그런 것

      예    :   아이들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며 감성적으로 많이 경험해 보아야 한다

감성적이나,,감정적이나...비슷

 

관조적 :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또는 그런 것

 

감성적,감정적이랑 관조적이랑 느낌이 반대라고 보시면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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