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무영탑 내용을 알고 싶은데..

현진건의 무영탑 내용을 알고 싶은데..

작성일 2004.11.25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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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무영탑'의 좀 자세한 줄거리를 알고 싶어요ㅠ
한 편을 다 알면 좋겠지만..(알고 계시다면 부탁을..)
아시면 답 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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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無影塔]

현진건(玄鎭健)의 장편 역사소설.

저자 현진건
장르 역사소설
발표 1938~1939년

본문
1938~1939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어느 초파일 밤, 왕 일행은 불국사에 행차를 한다. 일행에 끼여 온 구슬아기는 석가탑의 정교한 솜씨에 감격하고 왕 앞에 나온 석공(石工) 아사달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러나 백제 사람인 아사달에게는 고향에 두고온 아내 아사녀가 있었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연적이었던 팽개의 치근거림을 피해 서라벌에 왔으나 남편을 만나지는 못하고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影池)에 비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영지 주변에서 기다리다 못에 빠져 죽는다.

탑은 완성되고 아내의 참변을 들은 아사달은 영지로 뛰어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구슬아기가 뒤따라 와서 함께 도망가기를 애원하다 국법을 어긴 죄로 죽음을 당한다. 아사달은 아사녀와 구슬아기의 영상(影像)을 합해서 아름다운 탑을 조각하고는 그도 또한 영지에 빠져 죽는다. 흔히 역사소설이 왕조의 영고성쇠(榮枯盛衰)나 세도가(勢道家)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리는 데 반해, 이 소설은 한 석공의 사랑과 예술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낭만적인 향기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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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현진건

  줄거리

 부여의 시골 석수장이 아사달은 두고 온 아내 아사녀와 신라 귀족의 딸 주만의 연정을 받으며 강렬한 예술적 신기를 갖고 석가탑을 만들어 간다. 찾아온 아내의 죽음, 주만의 죽음을 겪은 그는 두 여인의 환영(幻影) 때문에 더 이상 정(釘)을 쪼지 못한다. 그러나, 곧 이 두 여인의 얼굴이 조화된 부처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마침내 탑은 우뚝하게 솟아오른다.  

 

 선도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햇발이 그 부드럽고 찬란한 광선을 던질 때, 못물은 수멸수멸 금빛 춤을 추는데 흥에 겨운 망치와 정(釘) 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나 저녁나절의 고요한 못 둑을 울리었다.

 

 새벽만 하여 한가위 밝은 달이 홀로 정(釘) 자리가 새로운 돌부처를 비칠 제, 정 소리가 그치자 은물결이 잠깐 헤쳐지고 풍 하는 소리가 부조의 적막을 한 순간 깨뜨렸다.

  

  작품읽기

 

1

신라 경덕왕 시절.

사월 초파일이 내일 모레. 서라벌 서울에는 석가 탄일 준비가 한창 바쁘다.

눌지왕 때부터 몰래몰래 이 나라에 스며들어 온 서천 서역국 부처님 도는 법흥왕 말엽 이차돈의 순교로 활짝 길이 열리고, 삼한 통일을 거쳐 성덕, 경덕에 이르자 그 찬란한 연꽃은 필 대로 피었다.

그 당시, 초파일이라면 설, 대보름, 팔월 한가위보담 더 큰 명절이었다.

파일놀이에 첫째가는 연등과 관등. 여느 집에서도 가지각색 등을 만들기에 야단법석이다. 모난 놈에 둥근 놈, 기름한 놈, 암팡진 놈, 장구 모양, 북 모양, 푸드득 나는 양의 봉황새, 엉금엉금 기는 양의 자라 남생이…….

도림의 대를 베어 곰살궂은 잔손질로 휘엉휘청 등틀을 휘어매고 선두리는 금당지에 은당지, 싸바르는 종이도 오색이 영롱하다.

여느 집도 이러하거니, 하물며 부처님을 모신 절들이랴. 대천세계를 밝게 밝게 비출 등 준비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축하식 봉행 절차와 법연 베풀 자리며 재 올릴 분별에 웬만한 절들은 벌써 여러 밤을 하얗게 밝히었다. 더구나 황룡사, 분황사, 백률사 같은 큰절들은 당일 거둥을 맞이할 차비에 더욱 공을 들이고 애를 썼다. 다른 절차는 다 그만두고라도 잠시 잠깐이나마 임금님 듭실 옥좌와 고관대작을 영접할 처소를 마련하기에 쩔쩔매었다. 비지땀들을 흘리고 쩔쩔매기는 하면서도 중들은 저절로 으쓱으쓱 어깻바람이 났다. 한 번 거둥에 쌀과 금과 은과 피륙이 산더미로 쏟아지는 까닭이다. 수가 좋으면 몇십 결 보전의 시주가 내리기도 한다. 부처님이 나셨으니 좋고 임금님이 오시니 좋고 그보다 더 좋기는 생기는 것이 많은 것이요, 음식이 질번질번하고 새옷을 갈아입게 되니 대덕 중덕의 웃두리중은 물론이요, 비구 사미 따위의 아랫두리까지 싱글벙글 한시절을 만난 셈이다.

그럴싸해서 그런지는 모르되 목탁과 경쇠 소리도 요새따라 더한층 우렁차게 활기를 띤 듯하다.

온 서라벌이 발칵 뒤집히도록 야단법석을 하는 가운데 오직 불국사만은 다 가무러진 잿불처럼 절 안이 괴괴하다.

불국사로 말하자면 신라에 크게 불법을 일으키신 제 이십 삼대 법흥왕 시대의 초창으로 오늘날 장안에 즐비한 팔백팔 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찰이요, 초창 이후 여러 번 중창과 수리를 겪어 그 규모의 굉걸웅장한 품도 어느 절보담 못하지 않은 대찰이다. 더구나 서라벌의 제일 명산 토함산을 등진 그 절터는 비단 서울 근처뿐 아니라, 신라 전국을 뒤져 보아도 그런 절묘한 자리를 찾아내기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뒤로는 빼어낸 봉우리를 느신하게 짊어지고, 좌우로는 울창한 송림을 슬며시 끌어당기며, 쪽으로 그린 듯한 호숫가에 넌지시 발을 내어밀었는데, 앞으론 광활한 평야가 휠쩍 열리어, 눈길 가는 곳 막힐 데 없으니 명찰에 절승까지 겸하였다 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이만한 절이거니 파일 차림도 응당 굉장하련마는, 도무지 그런 기척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밤이 되었건만, 다른 절처럼 이글이글 하늘을 태울 듯한 화톳불도 놓지 않았다. 펄렁거리는 횃불도 볼 수 없었다. 마지못해 단 듯한 불전의 추녀 끝에 두어 개 촛불이 가물거릴 뿐 온 절 안이 죽은 듯이 고요한데 이윽고 '큰방'에서 두런두런 인기척이 난다.

'큰방'이란 절에 무슨 일이 있으면 공사하는 처소요, 또 이 절 주지 아상(阿湘)노장의 거처하는 곳이다.

 

 

2

불국사 중들은 저녁 불공을 마쳤으니 제각기 제 처소로 돌아가도 좋으련마는 그들의 발길은 의논이나 한 듯이 큰방으로 하나씩 둘씩 모여들었다.

풀기 하나 없는 그들은 주지 아상노장을 중심으로 한 겹 에워싸듯 둘러앉는다.

그들은 슬금슬금 노장의 기색을 살피며 무슨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그러나 아상노장은 감중련하고 그린 듯이 앉았을 뿐이요, 이가 빠져서 합죽하게 다문 입은 열릴 것 같지도 않다.

노장의 눈치를 보다가 지친 그들은 인제 저희들끼리 서로서로 눈치를 바라본다. 다 같이 제 흉중에 먹은 마음을 누가 활활 속시원하게 직설거를 해줄까 하고 서로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벌리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답답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누구인지 휘 하고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휘유' 소리가 무슨 군호 모양으로 여기저기에서 반향이 일어나고, 어떤 이는 제법 일장 설법이나 할 듯이 칵 하고 큰기침까지 하였다.

마침내 말문은 터졌다.

"흥, 작년 파일도 그냥 지내고……."

누구인지 혼자말같이 중얼거린다.

"작년뿐인가, 재작년 파일도 개 보름 쇠듯 안 했는가베!"

중늙은이 중 하나가 뒤받는다. 나이는 한 오십 가량밖에 되지 않았으나 겉늙어서 뺨은 살 하나 없이 홀쭉 빨았고 중풍증 탓인지 또는 신경질 탓인지 뾰쪽하게 내민 턱을 덜덜 떠는데 목청만은 쨍쨍하게 쇠되다.

"금년에는 꼭 공사를 끝내고 낙성 겸 굉장하게 파일을 지낼까 했더니 젠장맞을 그 원수엣놈의 탑이……."

구레나룻 자리가 새파란 이 절의 원주(살림 맡은 중)가 불쑥 이런 말을 하다가, 제 말씨가 너무 사나운 데 스스로 주

춤하고, 말은 중동무이를 하였으나마, 그 부리부리한 눈방울을 불평스러운 듯이 구을린다.

아상노장은 조는 듯하던 눈을 번쩍 떴다. 침같이 숭숭한 하얗게 센 눈썹 밑에서 그 눈은 이상한 광채를 발한다. 입을 놀리던 중들은 움찔하였으나 노장의 눈은 스르르 다시 감기고 말았다.

"그야 그렇게 말할 건 아냐. 어느 건 공든 탑이라고 그야 공이야 들지. 그렇지만 너무 오래란 말이야, 너무 오래야. 벌써 삼 년의 세월이 걸리지 않았나. 삼 년, 삼 년이면 일 년이 삼백육십 일이라, 가만있자 날수로 치면 천 날이 넘지 않나베. 에이 참 날짜로 따져 보니 엄청나군, 엄청나."

'떠는턱'은 뼈만 남은 앙살한 손가락을 꼽아 가며 한바탕 늘어놓는다.

"삼 년, 흥, 몇 석삼 년이 걸릴지……."

누구인지 곱씹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예 그런 말일랑 입 밖에도 내지 말게. 삼 년, 삼 년이 셋씩 걸리면 어떡하란 말인고. 우리는 말라죽으란 말인가."

떠는턱은 손을 쩔레쩔레 흔들며 펄쩍 뛴다.

"뚱뚱보는 말라깽이 되고, 말라깽이는 말라죽고, 킥킥."

어디서인지 웃음소리가 터진다.

떠는턱의 옴팡한 눈엔 대번에 쌍심지가 선다. 그리고 웃음 터진 곳을 노려보며,

"오 이놈, 네놈은 살푸덤이가 얼마나 붙었다고. 그래 석삼 년씩 굶어 봐라. 산돼지같이 살이 더 찔 테니."

"그러구말구. '장실' 말씀이 옳다뿐이오. 다 이를 말이오……."

장실(丈室)이란 중들끼리 서로 위해 부르는 칭호다.

아까 말실수로 무참했던 원주가 기회를 얻은 듯이 떠는턱의 역성을 드는 척하면서 쏟아 놓기 시작한다.

"그러께 작년만 그냥 넘긴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워낙 대공이라 이태쯤 걸리는 건 용혹무괴로되, 금년 파일까지도 끝을 못 내다니. 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노라리야 노라리. 굼벵이가 쌓아도 천 날을 쌓으면 열층탑이라도 열은 쌓았을 것 아니냐 말야……."

말씨는 점점 우락부락해 간다.

"자 이건 역군일세 뭘세, 밥을 몇 솥을 쪄내도 금세금세 없어지고 들어오는 게 뭐 있느냐 말야. 대공을 끝내기 전이라 해서, 거둥 한번이 계신가, 대갓집에서 어엿한 행차가 있는가. 여느 집 재 올리는 것마저 절금이니 대관절 우리네는 뭘 먹고 살란 말이냐 말야."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친다.

 

 

3

화랑을 쫓아다니다가 입산한 지 얼마 안 되는 '빨갱이'가 그 별명마따나 다혈질의 시뻘건 얼굴을 더욱 붉히며 자리를 헤치고 나앉는다.

말하기 전부터 목줄대에 핏대가 선다.

"우리 신라에도 사람이 없지 않은데 도대체 그런 막중 대사를 부여놈 따위에게 맡기는 게 틀렸단 말이오. 그래 우리 신라에는 석수장이가 한 놈도 없단 말이오. 아무리 한들 그래 그까짓 부여놈 재주를 못 당한단 말이오. 꾀죄죄한 잔손질은 혹 빠질는지 모르지만 큰 솜씨야 어디 어림 반푼 어치나 있단 말이오. 정말 이 서라벌 석수들이 적이 핏기나 있는 놈들 같으면 목을 따고 죽어 마땅하지. 그놈들도 다 죽었지그려. 그런 대공을 시골뜨기 석수에게 빼앗기고 열손 재배하고 가만히들 있으니. 에이 못생긴 것들, 다 죽은 것들……."

팔을 부르걷고 분개한다.

"아니 여보, 그 말은 그 부여 석수장이를 욕하는 말이오, 또는 우리 신라 석수장이를 욕하는 말이오. 말이란 종을 잡을 수 있게 해야지."

본래부터 빨갱이의 화랑 냄새를 싫어하는 떠는턱이 한마디 따진다.

"누가 말시비를 캐자는 거요.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지. 그래, 신라에는 석수장이가 씨가 말랐단 말이오."

빨갱이는 빨근하며 뇌까린다.

"원, 부여는 신라 땅이 아닌가베. 원 내가 석수장이를 만든단 말인가. 씨가 마르고 안 마른 걸 내가 어찌 알꼬."

"이건 말책만 잡으면 제일이오. 아니 그래 그놈이 제 재주만 믿고 거드름을 피는 게 장실은 아니꼽지 않단 말이오. 능라주단으로 제 처소를 꾸미고 진수성찬에 엇들고 받드니 아주 제가 젠체하고 이건 누구를 보고 인사 한마디를 할 줄 아나, 혹 수작을 붙여 보아도 대꾸는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마니 그래 그놈이 벙어리란 말이요, 먹쟁이란 말이오. 도대체 제 명색이 뭐란 말이오. 한금해야 돌 쪼는 석수장이 아니오. 원 아니꼽살스럽게."

"그건 또 딴말이지."

"아니 그래 장실은 끝끝내 남의 비윗장만 흔들어 놓을 작정이오. 딴말이 무슨 딴말이오. 다 한말이지. 아무튼 일을 해야 공사가 끝이 나든지 재랄을 하든지 할 것 아니오. 이건 멀거니 탑 위에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탑을 쌓는 게 아니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잡으려는 건지. 이걸 나날이 쳐다보고 오늘이나 얼마쯤 되었나, 내일이나 끝이 나려나 하는 우리 불국사 승려야말로 불쌍하지 않소. 그놈이 아마 고량진미에 배때기가 부르고 대우가 융숭하니까 제 고장에 돌아가기가 싫어서 일부러 공사를 질질 끌기만 하는 거야."

"처음 올 적에는 밥 한 그릇씩 그냥 때려눕히더니만 인젠 아주 귀골이 됩셨는지 밥은 한 술밖에 안 뜨니……."

원주가 빈정거린다.

"흥, 배때기에 발기름이 오르면 고량진미도 보리겨떡만 못한 법이거든."

빨갱이가 또 개탄한다.

뭇입이 찧고 까부는 사이에 졸고만 있던 아상노장은 아까부터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다가 이때야 또 그 영채 도는 눈을 번쩍 떠서 원주를 본다.

"요새도 그렇게 공양을 자시지 않느냐."

위엄 있고도 간곡한 목소리다.

원주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굽실하며,

"예, 한술을 뜰까말까 하오이다."

아상노장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응, 그것 안되었구나. 저번에도 일렀지만 별좌(반찬 맡은 중)를 신칙해서 찬 같은 것 정결스럽게 하느냐."

"녜에, 여러 번 신칙을 했습니다. 찬이야 있는 대로는 다 올리옵지요."

"각별 신칙하여라. 먼 데 손님이 병환이나 나시면 어떡하느냐. 알아듣느냐."

부드러우나마 꾸짖는 듯한 타이르는 듯한 말조다. 그리고 인제는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너희들이야 얼마를 떠들든지 나는 자던 잠이나 자겠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빨갱이와 원주는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외우시고 입을 삐쭉한다.

 

 

4

빨갱이는 끊어진 수작의 실마리를 찾으며 원주를 보고,

"참 언젠가 장실이 이야기한 것이지만 요즈막은 공양은 어데로 올린다누. 제 처소로 올리는가 또는 탑 위까지 모셔 올리는가."

빨갱이는 노장을 슬슬 곁눈질하고 깍듯이 위해 올리며 빈정빈정한다.

"단층만 쌓았을 적 말이지 인제야 탑 위로는 못 올리지. 벌써 두 층이나 쌓았으니까 무슨 주제로 그 꼭대기에서야 공양을 받겠다 하겠소. 아침 점심은 제 방으로 가져가고 저녁은 역시 일터로 가져간다오. 대중공양(중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밥 먹는 것)에나 한몫 끼었으면 좋으련마는 이건 밥 먹는 자리까지 일정하질 않으니 원 성가시어."

하다가 아상노장을 꺼리어 말소리를 낮춘다.

"우리끼리 말이지만 언제든지 아침상은 그대로 나온대. 한나절까지 뒤여진 듯이 자빠져 있다가 오시가 훨씬 지난 뒤에야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개울에 나가 늘어지게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하고 제 방에 돌아와서는 점심을 뜨는 둥 만 둥 일터로 올라간대. 일터에 올라가서는 그대로 꿇어앉아서 그래도 잠이 미흡한지 꾸벅꾸벅 졸기만 하고 저녁때가 되어도 내려올 줄을 모르니 부득이 저녁상을 일터로 가져갈 수밖에 있소. 공양을 보고도 내려오지를 않고 손짓으로 탑 아래 두라는 뜻만 보인다오. 상이 났는가 하고 몇 번을 가보아도 상이 그대로 있다는구려. 열 나절이나 스무 나절이나 제 한이 차야 부시시 내려와서 몇 술을 뜨고 또 올라간대. 그러니 일껏 지은 더운밥이 다 식고 국과 찬은 먼지투성이가 되고……."

"제 고장 있을 때 식은 밥 먹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더운 밥을 먹으면 혓바닥이 부르터 오르는 게지."

빨갱이가 혀를 찬다.

"다 어두운 뒤에 또 올라가면 무슨 일을 할 거냐 말야, 흥."

원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기 말이지. 그래 탑 위에 올라가면 역시 등신같이 앉아만 있다오. 밤이 이슥하도록 내려올 생각도 않고 어느 틈에 제 방에 내려와서 자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밖에."

"그러면 언제 일은 한다는 말이오."

떠는턱이 묻는다.

"글쎄 그게 별판이야. 그래도 그 잔손질 많은 다보탑을 끝내고 석가탑을 시작한 것만 별판이지.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이 걸려도!"

"그것 참 불가사의로군. 이녁들 말 같을 지경이면 그야말로 그 사람이 신통력을 가진 게로구려. 일하는 낌새도 없는데 세상에도 진기한 탑이 이루어지니."

떠는턱이 또 말에 티를 넣었다.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원주는 그 사나운 눈알을 흘긴다.

"이 좌중에 물어 보시오. 요지막에 그 작자의 일하는 걸 본 사람이 있나 없나."

"어 그렇게 진심을 내지 마시기오. 일하는 싹도 없는데 일이 되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베. 딴은 나도 일하는 걸 보지는 못했으니."

"이상은 한 노릇이야. 우리도 그 석수가 탑 위에 앉고 서고 하는 건 봤지만 손대는 것은 못 보았는걸."

누가 맞장구를 친다. 좌중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들을 끄덕인다.

"저는 여러 번 봤어요."

먼발치에 앉아 있던 어린 사미 하나가 말참례를 한다.

"오, 차돌이냐. 참 너는 잘 알겠구나. 그 방에서 시중을 드는 터이니깐. 그래 그 어른이 어느 때 일을 하시던."

떠는턱은 차돌의 말에 옳다구나 하는 듯이 반색을 한다.

파일을 잘 못 쉬는 분풀이로 부여 석공에게 원정이 가게 되고, 원정 끝에 그 인격과 행동까지 티를 뜯고, 나중에는 애당초에 일은 손에도 대지를 않은 것처럼

 비난의 화살이 날아,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 가는 줄도 몰랐다.

우 하고 토함산 기슭을 스쳐 내려오는 산바람은 큰방 장지를 흔들고 첫여름의 눅눅한 풀 향기를 들이친다.

우울과 불평과 원망에 어리인 방 안의 무거운 공기도 이 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밤바람에 얼마쯤 완화된 듯하였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떵그렁떵그렁 운다.

꼬끼요, 아랫마을에서 첫 홰를 치는 닭소리가 그윽이 들려 온다.

 

 

5

"그래, 차돌아, 그 어른이 어느 때 일을 하시던."

떠는턱은 또 한번 재촉을 한다.

차돌은 그 총기 있는 눈을 깜박거리며 여러 스님을 돌아본다. 이런 자리에 말을 하기가 주눅이 드는 듯, 그 여상진 흰 얼굴을 살짝 붉힌다.

"어서 얘기를 하려무나. 갑갑하구나. 본 대로 말을 못 해---"

원주는 벌써 호령조다.

차돌은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고 어디서부터 허두를 내어야 옳을지 몰라 망설이는 듯하다가 가느나마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말을 끄집어내었다.

온 방의 귀와 눈은 차돌의 입술로 몰리었다.

"언젠가 제가 새벽녘에 잠을 깨었지요. 그래 무심코 아랫목을 보니까, 그 어른이 누워 계시던 자리에 그 어른이 계시지를 않겠지요. 뒷간에나 가셨나 하고, 그냥 쓰러져 누우려다가 웬일인지 그날은 잠이 설들어요. 암만 기다려도 그 어른은 오시지를 않고, 휘저엇한 게 어쩐지 무서운 생각이 나요……."

하고 차돌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옳지, 그래 어린것이 무섭기도 하겠지. 그래, 그래서……."

떠는턱이 연방 재촉을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아마 작년 겨울인가 봐요. 눈보라가 몹시 쳐서 문풍지는 덜덜 떨고…… 잠은 점점 달아나고 무섭기는 하고, 그래 제가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옹크리고 있노라니 눈보라가 버석버석 창에 부딪히는데 어디선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와요. 쩡쩡…… 그때 '석' 하시는 스님은 아직 안 나오시고 온 절 안이 괴괴한데 이 난데없는 소리를 듣고 저는 간이 콩만했다가 겁결에도, 오 옳지 이 어른이 이 눈 오시는 새벽에도 탑을 지으시나 부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겠지요!"

"오, 그래서."

어느결엔지 아상노장이 눈을 떠서 귀여운 듯이 차돌을 바라본다.

"제가 그대로 뛰어나와 버석버석하는 눈 위로 줄달음질을 쳐서 탑 모시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지요. 새벽이라 해도 아직 날이 덜 새어서 어둑어둑했지만 눈길은 환했습니다. 올라가 보니 아니나다를까 그 어른이 정을 들고 한참 바쁘게 일을 하시더군요. 제가 곁에 가도 사람 오는 줄도 모르시고 머리에 등에 눈을 뒤집어쓰신 채 정과 망치를 번개같이 놀리시겠지요. 거기가 워낙 바람 모지가 되어서 저는 얼마를 서 있지를 못해 귀가 떨어져 달아날 것 같고 발이 쓰리고 온몸이 덜덜 떨려서 '에이 추워' 소리가 저절로 나와 버렸습니다. 그제야 그 어른이 놀란 듯이 저를 돌아보시는데 그 얼굴에는 구슬 같은 땀이……."

"그 추운데 땀이……."

누가 감탄을 한다.

"저는 숨길도 얼어붙을 것 같은데 그 어른의 비 오듯 하는 땀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그 어른은 저를 보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추운데 왜 나왔니. 어서 들어가거라. 감기 들라.' 그래도 제가 머뭇머뭇하고 섰노라니 '오, 네가 혼자 무서워서 나온 게로구나.' 마치 제 속을 들여다보시듯이 말씀을 하시고 저를 데리고 내려오시는데, 저는 오금이 얼어붙어 댓 자국을 못 옮기겠는데 그 어른은 여상스럽게 걸어오시겠지요. 참 신통력을 가지신 어른이에요."

일좌의 얼굴에는 감동하는 빛이 흘렀다.

"그래, 그 후에도 일하는 걸 또 본 적이 있니."

원주가 종주먹을 댈 듯이 묻는다.

"보고말고요. 낮에 틈틈이 일하시는 것도 저는 가끔 봅니다마는 사람을 기하시는지 인기척만 나면 곧 일을 중지하시지요. 요새도 꼭 밤을 새우시는걸요. 아침이 되어 여러 스님이 일어나실 때쯤 해야 처소로 돌아오셔요. 제 귀에는 밤중에도 정소리가 역력히 들려 와요."

"참말 명공은 명공이야."

"천수관세음의 현신이시어."

"그런 명공을 얻은 것은 첫째 부처님의 법력이시고 둘째 우리 절의 복이야."

"아니 우리 신라의 복이지."

제가끔 떠들 때에 차돌은 갑자기 손으로 제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들 계셔요. 자, 자, 저 소리를 들어 보세요. 저 소리를."

나직하게 속살거린다.

여럿은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가 그윽이 그윽이 들려 온다.

여럿은 숨소리를 죽였다. 귀가 쏠리면 쏠릴수록 그 소리는 더욱 또렷또렷해진다.

똑 똑 바로 추녀 끝에서 완연히 낙수가 떨어지고 자그륵 자그륵 연잎에 급한 소나기가 지나가는 듯하다가 문득 찡 하고 우람한 울림이 지동처럼 울려 온다.

성기고 배게, 느리고 자지러지게, 높으락낮으락 그 소리는 저절로 미묘한 곡조를 이루어 쪼는 이의 신흥을 가르쳐 준다.

여럿은 말없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소리 오는 곳을 눈익혀 보려는 것처럼.

바깥은 옻빛같이 캄캄하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일동은 서로 돌아보았다.

그 이튿날 뜻밖에 위로 고마우신 분부가 내리었다. 대역이 끝나기 전이니 어엿한 거둥은 못 하셔도 다른 절에서 불식을 마치신 후, 미행으로 듭신다는 분부다.

 

 

6

불국사의 저녁 나절.

연옥색 하늘을 인 토함산 꼭대기 너머로 너붓이 내다보이는 담회색 구름장은 서쪽으로 향한 송아리가 햇솜처럼 눈부시게 피어난다. 산기슭 울창한 송림은 푸른 기름이 질질 흐르는 듯.

절 앞 넓고 넓은 못은, 바람도 없건마는 제 흥에 겨운 듯이 찰랑찰랑 몰려 들어와 새로 쌓아 올린 석축에 부딪는다. 바그를 흰 물꽃을 날리고 갈길을 몰라 쩔쩔매는 듯하다가 더러는 수멸수멸 뒷걸음을 쳐서 멀리 물러가고, 더러는 옆으로 빙그를 돌아 청운교 연화교 가를 더듬더니 마침내 돌로 튼 홍예문을 찾아내어 앞을 다투며 몰려 나가서는 어지럽다는 듯이 뱅뱅 돈다.

저 건너 언덕에는 그림배 여러 척이 매였다. 물결이 일렁대는 대로 자줏빛 남빛 누른빛, 비단 휘장이 한가롭게 펄렁펄렁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하고 뱃머리에 여의주를 문 청룡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배는 아마 임금을 모실 배이리라.

물새 몇 마리가 너울거리는 날갯자락을 적실 듯 적실 듯하며 물얼굴을 스쳐 난다.

그 긴 부리로 넝큼넝큼 송사리 따위를 잡아 삼키다가, 별안간 놀란 듯이 그 반질반질한 작은 몸을 솟구쳐서 높이높이 공중으로 사라진다.

입실(절 어구) 부근에서 들리는 인기척이 떠들썩하게 가까워 오는 까닭이리라.

거둥이 듭신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쳐 놓고 웃두리중들은 영접차로, 아랫두리중들은 구경차로 절을 텅 비우다시피 하고 들끓어 나왔다가 인제야 제각기 제 맡은 소임을 생각하고 줄달음질로 들어오는 것이다. 어지러운 그림자, 허둥거리는 바쁜 걸음. 종용하던 공기는 흔들렸다. 찢어질 듯이 긴장한 가운데 물끓듯 워글워글한다.

미행이라 하였지만, 도리어 화려하고 가족적인 단란한 거둥이었다.

왕은 젊으신 왕비 만월부인과 후궁 비빈을 거느리셨고 배종하는 몇몇 대관들도 왕명을 받들어 그 부인과 딸들을 데리었다.

이번 거둥은 기실 젊으신 왕비께서 오래 불국사 구경을 못 하시어 한번 소창을 하시자고 낙성이 되기 전이건만 왕을 조르신 까닭이다. 안압지 서줄지의 뱃놀이도 좋지마는 절 안으로 저어드는 불국사의 그림배엔 버리지 못할 풍치가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새로 이룩된 다보탑이 세상에도 진기하다는 소문을 들으셨음에랴.

기름 같은 물결 위에 그림배는 꼬리를 맞물고 술렁술렁 떠나간다.

배가 기우뚱기우뚱, 번쩍번쩍하는 금관이 물 속에 흔들리자, 수없는 구옥이 어지럽게 춤을 춘다. 희빈들의 어여쁜 얼굴들이 연꽃송이처럼 둥둥 떴다. 실바람에 나부끼는 구름조각과 같이 아른아른한 깁옷자락도 흐른다. 간댕간댕하는 황금 귀걸이와 구실 목걸이가 물거품 사이로 숨기잡기를 한다.

실바람을 따라 고귀한 향기가 그윽이 풍기었다.

중류를 지나자 길게 누운 으리으리한 전각의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부서졌다.

동쪽으로 청운교 백운교, 서쪽으로 연화교 칠보교가 뚜렷이 나타난다. 불국사 자랑의 하나인 돌사다리다. 번들번들하게 대패로 밀어 놓은 듯한 층댓돌과 그 층층 상하에 손잡이 돌이 우뚝우뚝 서고, 그 머리에 구멍을 뚫어 늘어뜨린 은사실을 바라보고 배 안에서는 경탄의 속살거림이 일어났다.

"얘 털아, 참 아름답기도 하고나."

꽃 같은 희빈들 중에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웬 아가씨가 맥맥히 돌사다리를 바라보다가 제 옆에 앉은 시비에게 소곤거렸다. 그는 은실 금실로 수놓은 끝동 소매를 조금 치켜서 옥 같은 손으로 뱃전을 짚고 그 날씬한 허리를 반나마 배 밖으로 기울였다.

"어쩌면 돌층층대를 바로 물 속에 만들었어요, 구슬아가씨."

털〔毛兒〕이란 시비는 그 동그란 눈을 더욱 동글게 뜨며 맞방망이를 친다.

"그보담도 저 웃사다리와 밑사다리 어름을 좀 봐라. 그 밑에 돌로 홍예를 튼 것이 보이지 않니. 물결이 그 조그마한 홍예 안으로 들락날락하는 게 가지고 놀고 싶구나."

구슬아가씨란 이의 그 거슴츠레한 눈은 황홀해진다.

 

 

7

그는 이손(伊 ) 유종(唯宗)의 딸 주만(珠曼)이었다. 흔히는 구슬아가씨라고 부른다.

"아이 야릇도 해라. 참 거기 물문이 있구먼요. 아가씨는 눈도 밝으셔."

털이는 그 동그란 눈을 이번에는 지그시 감은 듯이 하고 바라본다.

"그 물문 안으로 배를 타고 한번 돌아보았으면."

주만은 혼잣말같이 중얼거린다.

"그게 뭐 어려워요. 좀 돌아보자고 사공에게 그럽지요."

"글쎄, 그럼 그래 볼까."

주만은 뛸 듯이 기뻐하며 배 안을 돌아보고,

"우리 저 물문으로 지나가 볼까요."

하고 물었다.

"그래요, 참 그래 봐요."

"그러면 작히나 좋을까."

몇몇 젊은 아가씨들도 손뼉을 칠 듯이 찬성을 한다.

다른 배들이 돌사다리 밑 돌기둥에 닻줄을 매려 할 때에, 주만을 실은 배만 슬쩍 뒤로 빠져나왔다. 청운교 백운교 사이의 홍예 밑을 돌고 다시 연화교 칠보교 물문을 접어들었다.

주만은 뱃전에 찰랑찰랑하는 물결을 손으로 움켜 보기도 하고 물굽이를 따라 배가 뱅뱅 도는 것을 어린애같이 좋아라 한다.

배가 닿을 데 닿은 뒤에도 주만은 제가 지나온 물문을 보고 또 보며 맨 나중까지 머뭇거린다.

일행은 벌써 다 배에서 내리어 행여나 뒤질세라 하고 종종걸음들을 친다.

"어서 내립쇼. 너무 뒤에 떨어지면 어떡하실라구……."

털이는 조바심을 한다.

"뭘 그 동안이 얼마나 되겠니."

주만은 태연하다.

그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엔, 왕을 모신 옥교는 동쪽 사다리 위에 오르시어 자하문 안으로 납시

었다. 일행들은 걸어서 왕의 뒤를 모시었다.

주만은 배 안에서 머뭇거릴 때와는 딴판으로 질질 끌리는 치마 뒷자락을 돌아다볼 생각도 않고 나는 듯이 돌사다리를 오른다. 털이는 방구리 같은 키를 꼬불거리며 아가씨의 치마 뒷자락을 추켜들고 쌔근쌔근 뒤를 따랐다.

자하문을 들어서자 그렇게 서둘 필요는 없었다. 왕은 옥교에서 내리시어 일행을 데리시고 다보탑 앞에 걸음을 멈추신 까닭이다. 주만과 털이는 쉽사리 그 행렬에 끼일 수 있었다.

주만은 다보탑을 한번 보고 제 눈을 의심 않을 수 없었다.

저것이 돌로 된 것일까. 저것이 단단하고 육중한 돌로 된 것일까. 돌을 어떻게 다루었으면 저다지도 어여쁘고 아름답고 빼어나고 의젓하고 공교롭게 지어 낼 수 있었을꼬.

네 귀에 웅크리고 앉은 사자 네 마리는 당장 갈기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다. 사자등 너머로 자그마한 예쁜 돌층층대가 있고 그 층층대를 눈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편편한 바닥이 되는데 그 한복판에는 위층을 떠받치는 중심기둥이 있고 네 귀에도 병풍을 접쳐 놓은 듯한 돌기둥이 또한 섰는데 그 기둥들이 둘째 층 밑바닥을 고인 어름에는 나무를 가지고도 그렇게 곱게 깎음질을 해내기 어려울 듯한 소로가 튼튼하게 아름답게 손바닥을 벌렸다. 첫 층의 지붕엔 둘째 층의 네모난 돌난간이 둘리어 쟁반 모양 같은 둘째 층 지붕을 받들었고, 셋째 층에는 난간이 팔모가 지고 기둥도 여덟 개가 되어 세상에도 진기한 꽃잎을 수놓은 역시 팔모진 지붕을 떠 이고 있다.

주만의 눈길은 그 뛰어난 솜씨의 자국자국을 샅샅이 뒤지는 듯이 치훑고 내리훑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흥을 자아낸다.

"절묘, 절묘."

마침내 왕께서 먼저 절찬하셨다.

"그 돌 다루는 재주는 참으로 하늘이 내신가 하옵니다."

왕의 곁에 모셨던 이손 유종이 아뢰었다. 너그러운 뺨에 자가 넘는 흰 수염이 은사실같이 늘어졌다.

"경신읍귀의 재화라 함은 이런 재주를 이름인가 합니다."

고자처럼 노리캥캥하고 수염도 없이 맹숭맹숭한 시중(侍中) 금지(金旨)가 한문 문자를 써가며 맞방망이를 올린다.

"저 탑이 분명히 돌로 지은 것일까. 바로 밀가루나 떡고물 반죽이라면 몰라도."

만월부인께서도 감탄하신다.

"마마의 비유가 그럴듯하오마는 떡가루를 가지고도 마마는 저렇게 빚어 내기 어려울 것 같소."

하고 왕은 웃으신다.

 

 

8

"모든 것이 부처님의 법력이시고 상감마마의 원력이신 줄로 아룁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유착한 바위라도 높으신 원력 앞에는 나무보담 더 연하옵고 물보담 더 무른 것인가 합니다."

하고 아상노장이 합장을 한다.

"연전에 감역 금대성(金大成)이 천하의 명공을 얻었다 하더니 저 탑도 그 명공이 쌓은 것인가."

왕이 물으신다.

"분부와 같습니다. 오직 그 명공의 혼잣손으로……."

"혼잣손으로?"

왕은 놀라신다.

"과연 천하명공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구나. 늙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십 남짓한 젊은 사람이올시다."

"이십 남짓한 젊은 사람!"

여러 사람들도 서로 돌아보며 혀를 내어두른다.

"이십 남짓한 젊은 사람!"

주만도 속에 새기듯 곱삶았다.

"서라벌 사람이오?"

이번에는 이손 유종이 묻는다.

"아닙니다. 부여에서 왔다 합니다."

"그러면 부여 사람이오?"

"부여에 유명한 부석(扶石)이란 석수의 수제자라 합니다."

"지금도 그 석수가 이 절에 있소."

아상노장은 다보탑 서쪽으로 여남은 간 떨어진 자리에 두 층만 쌓아 놓은 석가탑을 가리킨다. 그 탑에 걸치어 사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아직도 집채만큼씩 한 바윗덩이가 여러 개 남아 있고 치우고 쓸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돌조각이 여기저기 떨어진 것이 아직도 공사중인 것을 가리킨다.

"이 다보탑은 작년에 끝을 내고 지금은 저 석가탑을 짓는 중입니다."

일행은 석가탑 앞으로 발길을 옮기었다.

아직 완성도 되지 않았지마는 얼른 보기에 다보탑처럼 혼란한 깎음새와 새김질이 없어 다보탑에 얻은 감흥이 너무 컸던 만큼 여럿은 적이 실망을 하였다.

"제아무리 명공이라 할지라도 다보탑에 기진역진한 게로군."

금시중이 대번에 타박을 한다. 경솔하게 입 밖에는 내지 않았을망정 금시중과 동감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주만이만 이 말에 맘속으로,

'아니오, 아니오.'

하고 외쳤다. 층마다 술밋한 돌병풍이 둘리고 그 병풍 네 귀에 접어 넣은 듯한 돌기둥이 한데 어우러져 탑신을 이루었는데 그 거칠 것 없이 쭉쭉 뻗은 굵은 선이 어디인지 장중하고 웅장한 풍격을 갖추어 비록 다보탑과 같이 잔재미는 적을망정 그 수법이 범상치 않은 것을 일러준다.

"아니올시다. 공은 이 탑이 더 든다 합니다. 탑 한 층마다 온전히 돌 한 덩이를 가지고 지어 낸다 합니다. 그러니 공사가 거창하기로는 오히려 다보탑보담 여러 갑절이라 합니다."

아상노장이 타이르듯 금시중의 말을 반박하였다.

주만은 제가 바로 알아본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리고 속으로,

'한 층이 돌 하나로 되었다면 다보탑보담 공이 더 들고말고.'

혼자 뇌었다.

"딴은 공사가 거창은 하겠군. 그 우람스러운 품으로는 그럴 성도 싶소. 그러면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미인에 견줄진대 이 탑은 훤훤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까, 허허."

금시중도 아까 제 말이 너무 경솔했던 것을 뉘우치고, 그 득의의 한문 문자를 휘몰아 쓰며 얼른 둘러맞춰 버리고 그 노리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살을 편다.

"그 석수가 지금도 있다면 잠깐 불러올 수 없을까."

하시고 왕은 아상노장을 보신다.

왕의 이 말씀에 여럿의 귀는 번쩍 뜨이었다. 저마다 그 석수를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뛰어난 재주를 지닌 그 석수장이는 과연 어떠한 사람일까. 여럿의 눈은 호기심에 번쩍였다.

그 중에도 주만의 눈이 더욱 빛났다.

"어려웁지 않습니다."

하고 들어가는 아상노장의 걸음이 느린 것이 원망스러웠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하략합니다>

 

  

  핵심정리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불교 국가인 신라

* 주제: 한 석수장이의 지고 지순한 사랑과 예술혼의 승화. 이성간의 지고한 애정.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운수좋은 날>(1924), <B사감과 러브레터>(1925)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 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현진건의 무영탑 내용을 알고 싶은데..

'현진건의 무영탑'의 좀 자세한 줄거리를 알고 싶어요ㅠ 한 편을 다 알면 좋겠지만..(알고 계시다면 부탁을..) 아시면 답 좀 부탁드려요.. 무영탑 [無影塔] 현진건(玄鎭健)의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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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생애에 대해서 알고싶은데요.. 현진건의 어린시절이야기, 작가가 된계기...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우리 나라 근대...

무영탑에 얽희 전설에 대해..[내공 30]

무영탑에 얽힌 전설을 알고 싶은데요...ㅎ 최대한 짧게 해주세요.. 내용을 잘 알수 있으면서도 짧게.... 어렵겠지만 부탁 해용~>ㅁ<// (내공 30이구용 한 5~7줄정도로 해주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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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내용인지 정리해 보자(서술형) 답좀 달아주세요ㅠ 내공30드림!!!!!!! 운수좋은 날 1. 작가 : 현진건 호 빙허... (赤道) ’무영탑(無影塔) ‘흑치상지(黑齒常之)등 장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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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무영탑 독후감 좀 빨리 부탁드립니다 !! 분량은 거의 상관 없지만... 무영탑내용의 주체가 되는 석가탑의 전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 무영탑 .....

석가탑에 대해 알고싶어요.

현진건의 무영탑에서 ㅡ 석가탑에 나오는 연못 ........ 연못의 이름도 알고싶은데 찾을 수가 없네요. .. 문제 제시자님 , 내공좀 많이 주셨으면 해요~!! 이것은 무영탑이고...

관형절(안긴문장) 속 생략된 성분

‘나는 어제 그일이 일어난 이유를 알고 있다’ 속... 피수식어('이유')의 내용이 관형사절로 나타납니다. 생략된... 꽁꽁 앓으면 툭툭 털고 일어나겠지그려. 출처 <<현진건, 무영탑>>

한국 현대문학(내공 검)

... 간단한 내용을 알아 보려 하는데요.. 1.이기영의 '가난한 사람들' 2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3현진건의 '무영탑... 영신의 죽음을 알고 난 동혁은 이제부터는 두 사람의 몫을 해낼...

중3 6단원에 나온 책들 줄거리..

중3 6단원에 나온 책들있잖아요 거기에 나온 책들의 내용을... 일일 현진건 - 무영탑 채만식 - 태평천하 이기영 - 고향...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