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사에서 백화소설이란?...당배백화소설의 특징..?

중국문학사에서 백화소설이란?...당배백화소설의 특징..?

작성일 2006.03.10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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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찾고찾고 또 찾아도 어떻게 요약이 안되고..어지럽기만하네요..ㅠㅠ

발표때문에 그러는데....고수님들의 답변기다리겠습니당....

 

1.백화소설이란무엇인가?.....

그리고

2.당대백화소설의 발생학적특징과....유형적특징은 무엇인가?...

 

이 2가지입니다....

 

내공진짜 팍팍겁니다....

 

나중에 감사내공까지 꼭 드릴꼐요..빠른답변부탁드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당(唐) 시대는 백화문이 나타나기 전이고, 뒷날 송대 이후에 나타난 백화소설의 바탕이라고 보여지는 변문(變文)이 성행했습니다.

 

백화소설(白話小說) : 백화 즉 구어와 속어체의 문장으로 쓴 소설. 송대 설화인(說話人)들의 설화소설이 그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 ↔ 문언소설(文言小說).

당대 변문에 백화소설의 성분이 농후한 부분이 많이 있어 송대 백화소설의 기원을 변문에서 찾는 이가 많습니다. 원·명 간에 백화소설은 크게 발전하여 중국 장편 소설 가운데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은 대개 백화로 쓰인 것들입니다.

우아하고 간결한 문언으로는 담을 수 없는 평민들의 사상과 생활을 표현하는데에 적합하였고 신이한 경험담이나 영웅호걸들의 초인적인 활약상, 재자가인의 달콤한 사랑 등 현실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평민들의 꿈과 희망을 담기에 적절하였으므로 급속도로 유행하였습니다.

 

송대 이후 흥성한 화본, 명·청대의 장회체 장편 소설은 백화소설입니다. 고전소설의 주류는 역시 민중과 더불어 발전해 나간 백화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삼국지연의·수호전·서유기·금병매·삼언(三言)·이박(二拍)·유림외사·홍루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백화 소설에는 역대 중국의 소설 중에서 평민들이 사용하는 백화문으로 씌어진 소설 전반이 포함되지만, 좁게는 1890년대 이후 서구문학의 충격으로 인해 나타난 백화 문화 운동의 주장에 따라 씌어진 일련의 소설을 일컫는 말로 한정됩니다.

 

 

당대 변문(唐代變文) : 문체는 시대에 따라 크게 변천해 왔는데 주나라 이후 춘추전국시대에는 우언(寓言)·비유 등을 통하여 논리를 세우는 수사법이 발달하였습니다. 전한·후한 및 삼국시대에는 부(賦)의 유행에 따른 대구(對句)기법 발달이 산문에 큰 영향을 미쳐, 문체가 수식이 많은 과장된 표현 위주로 변모하였습니다. 육조시대에는 대구만으로 문장을 구성, 4언구·6언구가 기본인 변려문(騈儷文)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사륙변려체라고도 하는 이 문장은 기교·수사가 지나쳐 당나라 때 변혁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즉 한유·유종원 등은 한나라 이전의 고문을 되살리자는 운동을 추진하였고, 백거이 등이 그 정신을 이었으며 그 뒤 송나라 때 구양수·소식 등 당·송 팔대가라 불리는 산문 대표자들이 이를 대성시켰습니다.

 

중당(766~835)은 안사(安史)의 난이 끝난 이후의 시기로서, 나라 전반에 걸친 혼란과 변혁으로 인해 문학작품에서도 현실주의적 경향이 짙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백거이의 신악부(新樂府) 운동과 한유·유종원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이 일어납니다. 고문운동은 한유가 창도했는데, 그는 1,000여 년 동안 숭상해온 변려체(騈儷體)의 문장을 일소하고, '문장복고(文章復古)'와 '문이재도(文以載道)'를 주장했습니다.

 

같은 시대의 유종원은 고문운동의 또 다른 대표자로서, 고문체를 운용하여 산수유기문(山水遊記文)과 소품문(小品文)을 창작했는데 고문운동은 또한 당대 전기(傳奇)의 발전을 촉진시켰습니다. 전기는 일반적으로 고문으로 기술하여, 편폭은 짧지만 구성이 비교적 짜임새가 있습니다. 전기는 애정고사·협의(俠義)고사·신선전기·귀신지괴(志怪) 등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이전의 형식에 치우친 변려문으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는지라 새로운 문체의 개발은 필연이었습니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이 불경의 번역입니다. 철저한 불교 배척론자인 한유가 불경의 문체를 자신의 글에 응용한 것은 기묘한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수·당 시대에 걸쳐 인도의 산스크리트 불교 경전을 번역한 한역 불전의 독특한 문체가 승려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이전의 변려체에서 탈피하여 일상어·통속어를 혼용하고 사륙문도 뒤섞인 창도적 문체가 성행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당나라 말기의 문체를 변문이라 합니다. 불경 또한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구태의연한 표현법을 쓰는 것으로 보이지만 번려문이 성행하던 당시의 눈에는 혁명적인 문체였지요.

 

당대에는 불교가 매우 성행하였는데 승려들은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을 모아 경전을 낭독하며 전수함으로써 포교하였고 효율적인 포교를 위해 때에 따라 역사 이야기나 민간의 전설 등을 경전 사이사이에 끼어넣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이야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속강승(俗講僧)이라는 승려들도 생겨났고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변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변문은 민간의 이야기(즉 설화) 예술과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설화예술이란 동화 구연이나 만담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겠습니다. 설화예술이 오히려 속강과 변문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지요. 변문의 특징은 이야기와 노래가 반목된다는 것입니다. 운문과 산문이 결합되면서 언어가 통속적이고 일상의 구어에 근접해 있었는데 이는 동시에 설화예술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변문강석(變文講釋)의 문체는 통속적이기는 하였으나 그 뒤 송나라·원나라의 백화소설이나 원나라·명나라 때의 소설과 희곡문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백화소설의 발생학적 특징과 유형적 특징

 

백화소설의 기원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노신의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노신은
송이라고 하는 한 시대의 문인들이 지은 지괴작품은 이미 평범한데에다 문채마저 결여되어 있었다. 또 그들의 전기(傳奇)는 대부분 지나간 일들을 기탁하고 근래의 일을 피했다. 과거의 작품을 모방한 것은 그 수준이 훨씬 미치지 못했으니 독창적이라 할만 한 것들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시정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문예가 나타났다. 그것은 곧 속어로 책을 짓고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엇으니 그것을 평화(平話)라고 하였다. 곧 지금의 백화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후의 연구자들은 대개 노신의 이 말을 받아들여 백화 소설이 송대에 유행했던 직업적인 설화인들의 대본이라는 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 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데마(W. L. Idema)는 백화소설의 기원에 대해 설화인의 대본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이른바 재능이 있으나 펼 자리가 없었던(懷才不遇한) 문인들의 발분으로 씌어진 소설들을 설명할 길이 없어지게 되고, 백화 문학과 구비 문학 사이의 차이점도 강조되지 못하며 설화인 이야기와 기록물 사이의 차이도 명확하게 인식되지 못하게 되고 설화인과 소설, 구연과 기록 사이의 관계가 명료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데마는 대다수 서구 비평가들이 중국 고전 전통 소설을 논하면서 중국 소설의 결점만을 찾기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바로 백화소설의 기원이 장바닥의 오락물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하면서, 백화소설은 곧 설화인의 구연에 바탕한 것이라는 도식적 이해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이데마는 다음의 세 층위를 고려할 것을 내세웠습니다.

 

     正統小說                                         文言
                            讀者階層
     大衆小說                                         白話

 

여기에서 말하는 정통소설이란 구성이 독특하고 문언으로 된 서문・발문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6대소설과 삼언, 이박을 가리키고 대중소설은 상투화되고 단순한 문언으로 창작된 것들을 가리키는데, 무협소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다시 독자 계층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독자계층은 다시 '대략 읽고 쓸 줄 아는 계층'과 '어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계층', 그리고 '고급 식자층'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이데마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독서층과 고급 독서층의 경우 문언 문학으로 기울고, 그보다 낮은 계층의 독서층인 경우에는 백화 문학으로 기울었다는 식의 구분은 지나친 단순화에 빠져 정통소설과 대중소설 사이의 경계선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실제로는 읽고 쓸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특권적인 능력 이었고, 따라서 특정 시대 특정 서적에 대한 수요는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 서적의 유통 역시 매우 더디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은 인쇄술을 발명한 나라였음에도 서적은 여전히 소수 부유한 자들의 사치품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 소수의 사람들이 즐겼던 것이 곧 난해한 문언이나 생동감 넘치는 방언이 등장하는 정통 소설이고 이 점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많은 문언으로 기록된 자료들이 정통 소설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면서도 대중소설에 대하여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백화소설의 기원을 설화인의 대본에서만 찾아서는 안되고 당시 상층 문인들 손에 이루어진 정통 소설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데마의 생각은 그의 다른 글에서 平話가 텍스트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한 데에서도 드러납니다.
평화는 아무래도 텍스트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출전이 아주 다양하고 애초부터 독서용으로 개발되었던 평화는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아마도 몽고의 궁정에서 유래되었음직하며, 현재 알려진 판본들은 아마도 돈이 많고 문자를 해독할 줄 아는 사회의 소수 계층을 위하여 편찬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아무리 가설적이라고 하여도 평화의 기원을 구비, 연행, 예술만으로 한정하는 것 역시 평화로부터 발전한 이후의 장편 소설의 특징을 설명해 내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백화소설을 설화인의 대본이 아닌 읽기 위한 독본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이데마의 주장은 명대의 이야기 구연의 성격 변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명대의 이야기 구연은 상당한 전문성을 지닌 전달자에 의한 대중적인 오락이 되긴 하였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의미의 예술은 더 이상 아니었다. 이러한 질적인 변화는 설화인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작가의 창조적 활동과 설화인의 재생산활동, 즉 구연이 서로 분리되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락스의 사대기서 문인소설 설은 이러한 주장을 한 걸음 더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플락스에 따르면 사대기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로 통속소설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게 씌어진 문언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의 예술적 기교뿐만 아니라 그 속에 체현된 문인의 의식면에서 보더라도 사대기서는 만명(晩明) 문인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이야깁니다.

 

특이한 것은 대표적인 백화소설들을 통속소설로 보고 있는 중국의 연구자들과 달리 미국의 중국 고전소설 연구자들(C. T. Hsia와 Robert Hegel 포함)은 상당수의 전통 백화소설이 문인(文人)소설의 범주에 들지 민간의 통속작품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 학자들이 통속소설이라는 개념을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데마는 아예 통속소설이라는 용어를 회피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통속소설이라는 용어가 작품을 이해하고 가상하는 다수의 집단을 떠올리게 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통속적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근대 이전의 중국에 광대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대 이전 중국의 문자 보급율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상당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속소설이 중국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황위총(黃衛總)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사대기서가 모두 만명 작품이라는 Andrew Plaks의 주장은 현존하는 판본의정황에서 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 문인소설이라는 개념을 들이대면서 모든 전통 백화소설을 통속소설로 간주하는 것이 착오라는 주장은 지나친 듯하다. 더구나 어떤 특정 작품이 통속소설인지 문인소설인지를 구분하는기준을 확정하기란 훨씬 어려운 점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만명 이후 일반소설은 모두 문인의 손을 거쳤다. 문인소설과 통속소설의 구분은 당시의 상이한 독자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통해 결정되어야 할 듯하다. 나는 소설의 주요 특징이 상이한 계층에 속하는 독자의 반향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야기가 통속적이라는 점은 이른바 '고급독자와 대중독자의 공통 취향(雅俗共賞)'을 말하는 것이며, 사실상 수많은 전통소설의 특징은 그것의 포용성에 있다. 소설은 각종 상이한 가치 관념 체계를 포용할 수 있고, 소설 텍스트 내에서 그것들은 상호 경쟁하면서 각자의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황위총의 지적은 우리가 이데마와 플락스의 주장에 대해 품고 있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을 제대로 짚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문인소설이라 할 때 문인의 범주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가 하는 것까지도 지적이 되고, 나아가 그에 대한 설명까지 이루어 졌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데마와 플락스의 논의를 우리가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의 백화소설이 문인화(文人化)와 아화(雅化)로 나아간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장르의 규정력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시는 배타적이고 소설은 포섭력이 큰 장르인데 백화소설의 소재를 중심으로 한, 타장르 끌어당기기가 구연되던 이야기와 그 기록이라는 층위를 벗어나 점점 읽히고 쓰여진 이야기와 기존의 문언기록으로 옮아 가 그것을 토대로 보다 더 창조적이고 개인적인 작품들이 탄생 하는 것이 곧 문인화와 아화라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곧 정통소설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아류의 작품을 낳게 되고,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창작물이 나오게 되는 다층적인 순환구조를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시사적인것은 독자—작자—유통과 재생산구조를 둘러싼 백화소설의 사회적 존재방식이 청대로 오면서 점차 통속성과 진지성이라는 두 층위의 공존과 각각의 영역의 독자적 발전 그리고 양자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되는 상황이 오히려 현재 우리의 문학 지형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백화와 문언의 관계가 통속성과 진지성이라는 말로 환치되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인지 모르지만 문언과 백화를 별개의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되며, 양자의 상호 교호관계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상의 논의를 총괄하면 문제의 관건이 되는 것은 백화소설의 기원인데, 여기에 설화인의 구연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문인들의 손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인지를 놓고 어느 쪽에 강조점을 두느냐 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기원 동일론(筆記影響論)과 기원 부동론(獨自發展論)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습니다. 기원부동론은 기원과 체제가 전혀 다른 문언소설과 백화소설 두 유형이 상호 독자적으로 평행 발전한 것으로보는 관점을 말하며,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동일기원론은 백화소설과 문언소설이 송대 이후 비록 평행 발전의 양상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백화소설은 문언소설의 기반 위에서 발전되었다고 보는 관점으로 서구의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이상의 두 가지 입장에 대해서 현재까지 무어라고 단정할 만한 자료가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논의를 통해 어떤 변화의 추세를 그려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언어적인 차원에서 중국 소설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던 해넌은 이에 대해 유용한 관점을 한 가지 제시한 바 있습니다. 우선 해넌은 백화가 곧 구어라고 하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면서 구어 문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구연물의 집적이기도 한 문자 백화의 존재를 상정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백화문학 자체도 결국은 문자 기록의 층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견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도 입말(spoken language)과 글말(written language)은 엄격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백화(vernacular)라고 하는 것은 이미 현실 언어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 완전한 문자어로서의 고문(classical language)과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입말로서의 구어(colloquiall) 사이에 놓여 있는 중간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아울러 해넌은 이 세 가지 언어 형태가 사회에서의 계급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에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였을 따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세 가지가 중국 문학 내에서 서로 다른 지향점을 반영하고 있는데, 세 문학 양식의 잠재적 대중을 동심원으로 생각해 보면 고문문학이라는 원은 백화문학이라고 하는 좀 더 큰 원에 의하여 둘러싸이고 다시 이 두 문학의 동심원은 근대 이전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중 문학이었던 구어 문학이라는 좀 더 큰 원에 의해 흡수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해넌은 중국 백화문학의 발전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면서, 당대 이후 송·원·명대에 나온 소설작품들이 많은 경우 고문과 백화를 혼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고문은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고, 백화는 다른 작품을 차용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각각의 언어가 소설 속에 쓰이는 것은 나름대로의 용도에 의한 것으로, 해넌은 이것을 장르적 관습이라는 말로 불렀습니다. 해넌에 의하면 소설은 몇몇 대가들의 실험을 제외하면 모두 백화로 쓰여졌고 최소한 고문과 백화의 중간 형태로 창작되었지만, 그렇게 해서 쓰여진 소설의 서문은 편집자나 작가에 의하여 쓰여질 때 그것이 본문과 동일한 독자들을 상정하고 있는데도 고문으로 작성 되었는데 이것은 서문이 백화 소설과는 구분이 되는 장르였고 관습적으로 고문으로 쓰이던 장르였기 때문이라는것입니다.

 

결국 장르적 관습이란 앞서 해넌이 말한 백화=구어라는 도식을 대신하기 위해 제시한 이념형(idea typus)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해넌을 비롯한 서구의 연구자들은 중국 소설의 변천을 구어로 된 산만하고 느슨한 형식으로부터 정련된 형식으로 갖춘 문자화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주요 백화소설의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타당성을 입증받을 수 있습니다. 과연 삼국연의 를 비롯한 사대기서, 그리고 홍루몽을 비롯한 청대의 대표적인 백화소설을 접하다 보면 이들 소설들이 갖고 있는 정제된 형식미와 우미한 수사적 표현들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을 일반 대중들이 쉽사리 접근해 즐길 수 있었을까 하는 우려는 사실 기우에 지나지 않는지 모르지요. 이를테면 경극이나 지방희(경극의 대립개념)의 대사에 쓰이는표현은 백화소설 못지 않게 정련되어 있지만, 공연을 즐기러 온 관객들은 그 내용에 관계없이 열광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유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택후(李澤厚)는 의미있는 심미축적론이라는 것을 제기하였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천에 더불어 이와 같이 원래는 <의미있는 형식>이었던 것이 그 중복된 모방 제작으로 인하여 날이 갈수록 이와 같은 의미있는형식을 잃어버리고 규범화한 일반적인 형식미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본래 이택후가 말하는 의미있는 형식의 심미 축적이라는 것은 원시 무술이나 원시 의례가운데 발견되는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는 감정은 강렬하며 모호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의 이성와 논리로는 분명히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이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감각기관에서 느껴질 만큼 축적되면 개념으로 말해 내거나 완전히 표현해낼 수 없는 일종의 깊이있는 정서적 반응으로 변모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디테일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앞서는 어떤 아우라(aura)도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인化・아화의 과정으로 중국 소설의 변천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은 논리상 별로 흠잡을 데가 없으나 이러한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문인화・아화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 가운데 하나는 아문화(雅文化)와 종교의 관계입니다.

 

중국의 정통 관념을 대표하는유가 사상과 소설의 불편한 관계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불교와 도교는 중국 소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 종교가 아문화와 아름다운 결합을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교와 도교는 중국의 역사에있어 반역의 무리와 연계되어 기존 사회를 부정하는 세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습니다. 곧 불교와 도교는 지배계급의 종교라기보다는 일반 백성의 바람·희망을 담아 냈던 민간의 종교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양자는 중국의 통속 문화와 연계되어 고찰되어 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의 소설 역시 타락한 시대의 타락한 형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文人化・雅化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다른 하나는 문자화를 통한 사상 금제입니다. 우리는중국이나 서구나 똑같이 19세기 이전에는 소설이 멸시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근대 이후 서구의 소설이 누렸던 것과 같은 지위에 오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통념입니다. 그에 대한 예증으로는 명・청대에 조정에 의해 내려졌던 소설에 대한 금령이 상투적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중국에서 소설이 그토록 천대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선 중국에서의 소설은 황제를 비롯한 고관대작들에 의해 탐독되던 독서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平話)가 영락대전(永樂大典)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금서령의 경우에도 백화 소설이나 설화 구연 그 자체를 금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고문을 공포한 적은 없었고 다만 설화나 희곡이 포고문에 등장하는 경우는 이것들이 다수의 청중들을 불러 모으게 되는지라 도박꾼이나 창녀들이 소란을피우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점만이 언급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초기의 서사작품들 경우에는 민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좋은 자료로서 정부에서 패관이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민간의 이야기를 수집할 정도로 이야기의 가치를 높이 살 정도였습니다. 곧 당시에는민간의 이야기가 정보information knowledge 로서의 인식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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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명나라의 중국 소설을 베트남어로 번역한 뒤... 베트남 문학사에서 응웬 주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쓰여졌다는 특징과 함께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고전 소설에대해 알려주세요....

... 한국문학사에서중국문학사에서와 마찬가지의 폭넓은 소설 개념을 따랐다. 그러나... 연암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풍자적 성격과 사실주의적 특성이다. 연암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