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시,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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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5.2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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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

 

국경의 밤 - 김동환

남해 찬가 - 김용호

금강 - 신동엽

 

 

정형시

 

개화 -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벽공 -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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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공 - 이희승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개화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국경의 밤 - 김동환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 갔다 ─

오르명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어 놓고

밤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붙는 어유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 ─ 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림실이 벌부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 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지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죽일 때,

이 처녀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맞는 사내 일이라고

문비탈을 쓸어 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

겨울에도 한 삼동,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끊는 소리언만.

 

4

불이 보인다, 새빨간 불빛이

저리 강 건너

대안 벌에서는 순경들의 파수막에서

옥서장 태우는 빨간 불빛이 보인다.

까 ─ 맣게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호주에 취한 순경들이

월월월 이태백을 부르면서.

 

5

아하, 밤이 점점 어두워 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 없이 어두워 간다.

함박눈조차 다 내뿜으 맑은 하늘엔

별 두어 개 파래져

어미 잃은 소녀의 눈동자같이 깜박거리고,

눈보라 심한 강 벌에는

외아지 백양이

혼자 서서 바람을 걷어 안고 춤을 춘다.

가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의 마음을 핫! 핫! 놀래 놓으면서 ─

 

 

금강(錦江) - 신동엽


 1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 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정오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하고.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길 재촉했지.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
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는 기억 속에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그 일을 그분들은 예감했던 걸까.
그래서 눈보라치는 동짓달
콩강개 묻힌 아랫목에서
숨막히는 三伏 순이 엄마 목메었던
그 정자나무 근처에서 부채로 매밋소리
날리며 조심조심 이야기했던 걸까.

배꼽 내놓고
아랫배 긁는
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2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歷史)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永遠)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 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새 가리워졌지만
꽃들은 해마다
강산(江山)을 채웠다.

태양(太陽)과 추수(秋收)와 연애(戀愛)와 노동(勞動).

동해(東海),
원색(原色)의 모래밭
사기 굽던 천축(天竺) 뒷길
방학이면 등산모 쓰고
절름거리며 찾아나섰다.

없었다.
바깥 세상엔, 접시도 살점도
바깥 세상엔
없었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永遠)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제 1장

반도(반도)는,
가는 곳마다
가뭄과 굶주림,
땅이 갈라지고 서당(書堂)이 금갔다.
하늘과 땅을
후비는 흙먼지.

1862년
전봉준이 여덟 살 되던 해
경상도 진주(晋州)에서
큰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세금,
이불채 부엌 세간 초가집
다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
세미(稅米), 군포(軍布),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속 들어가
화전민(火田民) 됐지.

관리들은 버릇처럼 또
도망간 사람들 몫까지
이징(里徵), 족징(族徵)했다.
총칼 앞세운 진주병사(晋州兵使)
백낙신(白樂莘).

3천의
농민들이 대창 들고 관청에 몰려와
병사 내쫓고 아전 죽이고
노비 문서 불살라버렸다.

정부는 병사(兵使)를 잡아
더 좋은 기름 고을 벼슬을 주고.
다음해, 윷놀이가 한창인 정월 대보름날
진주 농민 마흔 일곱 명을 묶어
교수했다.

1871년
경상도 문경(聞慶)에서
농민군 2천 명이
동학 교도 이필의 지휘로
관아를 습격, 죄수들을 석방하고
노비 문서 불사르고 창고를 때려부숴
쌀을 꺼내다가 농민에게 나눠줬다.

황해도,
평안도,
이곳 저곳에서
농민반란은 터졌다.
마치 연주창처럼
걷잡을 수 없이, 팔도강산 이곳저곳에서
잇달아 터졌다.


 제 2장

짚신 신고
수운(水雲)은, 3천리
걸었다.

1824년
경상도 땅에서 나
열여섯 때 부모 여의고
떠난 고향.

수도(修道) 길.
터지는 입술
갈라지는 발바닥
헤어진 무릎.

20년을 걸으면서,
수운은 보았다.
팔도강산 딩군 굶주림
학대,
질병,
양반에게 소처럼 끌려 다니는 농노(農奴).
학정
뼈만 앙상한 이왕가(李王家)의 석양.

2천년 전
불비 쏟아지는 이스라엘 땅에선
선지자 하나이 나타나
여문 과일 한가운델
왜 못박히었을까.

3천년 전
히말라야 기슭
보리수나무 투명한 잎사귀 그늘 아래에선
너무 일찍 핀
인류화(人類花) 한 송이가
서러워하고 있었다.

1860년 4월 5일
기름 흐르는 신록의 감나무 그늘 아래서
수운은,
하늘을 봤다.
바위 찍은 감격, 영원의
빛나는 하늘.


 제 3장
 
어느 해
여름 금강변을 소요하다
나는 하늘을 봤다.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을
갈갈이 찢어
꽃 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죽음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는 세상을 밟아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는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生)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 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야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뻔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昇華)된 높은 의지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깊게. 높게.
땅 속서 스며나오듯한
말 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버린
오, 인간 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제 4장

수운은
왕명으로 체포되어
대구 감영 속 감금되었다가,
1864년 3월 10일
대구 노들벌에서 순교했다.

해월이 옥리를 매수하여
수운을 탈옥시키려고,
옥 안에 들어섰을 때, 수운은
담뱃대 하나 해월에게 쥐어주며
빨리 돌아가라 할 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주막집,
등잔불 아래 마주 앉은
문경접주 이필, 제 2세 동학교주 해월,

선사에게서 받은 담뱃대를 쪼개니
종이 심지.
종이 심지를 펴보니
깨알 같은 붓글씨,

 그대 마음이 곧 내 마음이어라
 우리의 죽음은 오히려 지붕 떠받드는
 기둥으로 영원한 것.

 나는 고이 하늘의 뜻에 따르려노니
 그대는 내일 위해 어서
 먼 땅으로 피하라.
 
<燈明水上 無嬚隙
 柱似枯形 力有餘
 吾는 順受天命하니
 汝는 高飛遠走하라 >


들에선 농부들이
거름을 퍼내고
거름 무덤에선
아침 햇살 속
흰 김이 무럭 피었다.

장꾼으로 변장한
해월,
이필, 그리고 몇 사람은
상주의 들을 거쳐
문경 새재 아흔아홉 굽이 휘어
태백산을 찾았지.

왕실에
선 천냥의 현상금 걸어
해월(海月)을 수배하고.

일찍이 수운은
두 권의 저서를 남겼다.

동경대전(東京大典),
용담유사(龍潭遺詞),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노비도 장사꾼도 천민도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우리는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계시니라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
모든 중생이여, 한울님 섬기듯 이웃 사람을 섬길지니라.

수운은
집에 있는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키어
하나는 며느리
하나는 양딸,

가지고 있던
금싸래기땅 열두 마지기
땅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제 5장

진달래,
지금도 파면, 백제 때 기왓장
나오는 부여 군수리
농사꾼의 딸이 살고 있었다.
송화(松花)가루 따러
금성산 올랐다
내려오는 길
바위 사이 피어 있는 진달래
한 송이 꺾어다가
좋아하는 사내 병석 머리맡
생화(生化)해 줬지.

다음 담 날
그녀는 진달래,
화병에서 뽑아, 다시
금성산 기슭
양지쪽에 곱게 묻어줬다.

백제,
천오백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진달래,
부소산 낙화암
이끼 묻은 바위서리 핀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읽었다.
숨결을 들었다.
손길을 만졌다.
어제 진
백제 때 꽃구름
비단 치마폭 끄을던
그 봄하늘의 바람 소리여.

마한 땅,
부리달이라는 사나이가
우는 아들 다섯 살배기를 맴매 했다.
귓가에 희미한 먹이 졌다.

귓가의 먹을 본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흙길에 앉아서 울었다.
마을 앞엔 정자나무가 있었고
정자 나무 옆엔 두렛마당,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부리달을
두렛마당에 불러다 놓았다.

흙바닥에 나무개피로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부리달로 하여금
사흘 밤낮을, 동그라미 속에 서 있게
벌줬다.

아소도 그 옆 또하나의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사흘 밤낮을 서서, 밤이슬 맞으면서
함께 울었다.


 제 6장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백제의 달밤이 지나갔다,
고구려의 치맛자락이 지나갔다,

왕은,
백성들의 가슴에 단
꽃.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앞마을 뒷마을은
한 식구,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쌀과 떡, 무명과 꽃밭
아침 저녁 나누었다.

가을이면 영고, 무천,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오,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흥겨운
농악이여.

시집가고 싶을 때
들국화 꽂고 꽃가마
장가가고 싶을 때
정히 쓴 이슬마당에서
맨발로 아가씨를 맞았다.

아들을 낳으면
온 마을의 경사
딸을 낳으면
이웃마을까지의 기쁨,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지주도 없었고,
관리도, 은행주도,
특권층도 없었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백성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 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반도는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분배의
무정부 마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청춘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살림을장식하기 위해 백성들 가슴에
달았던 꽃이, 백성들 머리 위 기어 올라와,
쇠항아리처럼 커져서 백성 덮누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산짐승, 유한(有閑)약탈자
쫓기 위해 백성들 문밖 세워뒀던 문지기들이,
안방 기어들어와 상전 노릇 하기
시작한 것은,

이조 5백년의
왕족,
그건 중앙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그 큰 마리낙지 주위에
수십 수백의 새끼 낙지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정승배, 대감마님, 양반나리, 또 무엇

지방에 오면 말거머리들이
요소요소에 웅거하고 있었다
관찰사, 현감, 병사, 목사,

마을로, 장으로
꾸물거리고 다니는 건 빈대,
봉세관(捧稅官), 균전사(均田使), 전운사(轉運使), 아전, 이속, 관세위원(官稅委員)
그들도 벼슬은 벼슬이었다.

벼슬자리란 공으로 들어오지
않는 법,
밑천을 들였으면
밑천을 뽑아야,
그리고 지금이나
예나, 부지런히 상납해야
모가지가 안전한 법,
그래서, 큰 마리낙지 주위엔
일흔 마리의 새끼 낙지가,
일흔 마리의 새끼낙지 산하엔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가,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 휘하엔
만 마리의 빈대 새끼들이,
아래로부터, 옆으로부터,
이를 드러내놓고 농민 피를 빨아

열심히, 상부로 상부로
올려바쳤다.
큰 마리낙지는
그럼 혼자서 살쪘나?

오늘, 우리들 책 끼고
출근 버스 기다리는 독립문 근처
상전국 사신의 숙소 모화관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무슨 호텔, 아니면 무슨 대사관,
해마다 왕실은
3십3만 냥의 금은보활,
청나라 황실에 상납.
그리고 3십 7만냥의 돈 들여
상전국 사신, 술과 고기와 계집으로 접대했다.

< 혹, 노예들에 의해
우리 왕실 밀려나게 됐을 때
즉각 귀국 군대로
도와주옵소서 >

신라왕실이
백제, 고구려 칠 때
당나라 군사를 모셔왔지.

옛날 사람 욕할 건 없다.

우리들은 끄떡하면 외세를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지.
팔·일오 후, 우리의 땅은
디딜 곳 하나 없이
지렁이 문자로 가득하다.
모화관에서 개성 사이의 행길에 끌려나와
청나라 깃발 흔들던 눈먼 조상들처럼,

오늘은 또, 화창한 코스모스 길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불쌍한 장님들은, 대중도 없이 서양깃발만
흔들어댄다.

허나 다녀가는 높은 오만들이여
오해 마시라,
그대들이 만져본 건 역사의 껍데기,

알맹이는 여기
언제나 말없이 흐르는 금강처럼
도시와 농촌 깊숙한 그늘에서
우리의 노래 우리끼리 부르며
누워 있었니라.

누구였던가, 무엇에 당선만 되면
다음날 당장 미국에 건너가
더 많은 동냥, 얻어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정치 거지는,

내 진실로 묻노니 그대들이 구걸해 온
동냥돈이, 단 한번만이라도 농민들의
밥사발에, 쌀밥으로 담겨져 본 적이 있었는가.

후진국의 땅은 포도주,
포도주는 썩어야 맛이 날까.

빠다와 째즈와 딸라와
양키이즘으로, 우리의 땅은 썩혀졌을까.

원조물자, 딸라는 효모,
발효한 항아리에서 포도주 빼가기에
바쁜 넥타이 맨 장사꾼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방마다에서 한국의 토산물
흥정되고, 자본의 앞잡이들은
한국지도 위 등불 밝혀 놓고
분주히 주판알 튀긴다.

자본이 벨을 누르면
중앙청 정승 대감들이
맨발로 달려와
머리 조아리고,
다음날 그들
은행실 벼슬아치들은
호남평야 원주민의 쌀값을
대폭 인하

자본실이 가지고 들어온
설탕값을 스물세 곱으로 올린다.

딸라의 냄새란 좋은 것,
미나리처럼 쭉쭉 뻗은
코라아산 여대생들
라이프지 끼고 그 근처 와
온종일 빙빙 돌지.

눈먼
백성들이여,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눈먼 행렬이여,

오늘의 하늘 아래
반도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작은 마리낙지,
새끼 거머리들이여.

눈도 코도 없이
벌거벗고 대낮 거리에 나온 화냥년들과 놀아나는
부잣나라 지키는 문지기들이여.

갈라진 조국.
강요된 분단선.
우리끼리 익고 싶은 밥에
누군가 쇠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구나.
너와 나를 반목케 하고
개별적으로 뜯어가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의 세상에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4월달, 우리들, 밥은
익었었는데
누군가가 쇳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연인이여, 너와 나의 쌀밥에
누군가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제 7 장

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인생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절대(絶大)한 거.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철들면서부터
그 지루한
30년, 50년을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굶주린 아들 딸애들의
그, 흰 죽사발 같은
눈동자를,
죄지은 사람처럼
기껏 속으로나 눈물 흘리며
바라본 적이 있은
사람은 알리라.

뼈를,
깎아 먹일 수 있다면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주고
싶은,
그 아픔을
맛본 사람은 알리라.

이미 끝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이미 죽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제 8 장

하늬는
한쪽 발을 조금
절었다.

세 살 때
김진사가 마당에
내던졌었다.
대문 여닫는 소리
박쪽 굴러다니는 소리
검불이 이리저리 날리고

먼 마을에서
대감집 닭이 세월도 없이
길게 울 때,

이런 땐
틀림없이 나무뿌리
소나무껍질, 일찍 나온 냉이
쑥뿌리 찾는 굶주린 행렬들이
산과 들판
시래기처럼 하이얗게
널리고,

누구네집 재를 내는
머슴은
대왕펄 보리밭에서
부옇게 재 뒤집어쓰고
재채기에 쳇머리 흔들고 있으리라.

그렇지
또 있다.
갈대꽃 날리는 강언덕
옷보자기 낀 아낙네가
치맛자락 날리며,
지금도 나룻배
기다리고 있겠지,
맞바우.

하늬는,
김진사네집 머슴
돌쇠가 주워다 기르고 있었다.

세 살짜리는
날마다
배가 고팠다.
아랫목에 묻어 둔
콩강개도 없이.

그날은
김진사집에
서울 사는 정대감님이 오시는 날.

동네 노소부녀(老少婦女) 다 동원해서
한 달 전부터 길을 닦고
환영 준비에 바빴다.
마을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의
종이었으니까.

배가 고픈 하늬는
엎디어서 울었다
코를 땅에 박고
지치도록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연놈들이 말 잘 안듣는다고
노발대발, 치알치는 유첨지를 호령하던
김진사가 신발한 채 행랑방에 뛰어들어
우는 아이 마당 밖으로 집어던져
돼지우리 속 떨어졌다.

삼신 할머니가 받았음일까,
발목 복숭아뼈가 조금 삐져나왔을 뿐,
우는 소리가 뚝 그치고
한손으로 머리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날부터 하늬는
부소산 너머 뒷개 사는
조할머니가 앞치마에 꾸려다
길렀다.

조할머니의 남편은 광해군 때
애매한 역모죄로 귀양가 죽었다.
더없이 선량한 선비, 눈이 너무
맑아서 죄지을 줄 모르는 선비는
돼지죽 속 진주처럼 밀려나는 법일까.

하늬는 열두살 나던 해
조할머니를 잃었다.
아홉 해 동안 조할머니는
서기 어린 하늬의 뇌 속에
한서(漢書), 불경(佛經), 수십 권을 읽혔다.

하늬의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비가 오는 날, 돌쇠 앞에
흠씬 젖은 여인이 나타나
무명보자기에 싼 걸
맡기고 갔다.

 『이 아이 조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만
보살펴 주세요.
은공 잊지 않겠어요,
혹 못돌아 오더라도.
이름은 하늬에요,
성은 신.』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무명보자기와, 몇 잎의
동전 방바닥에 놓고
비 속을 사라졌다.

아기의 손엔
콩알만한, 노리개 은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하늬는,
철들면서부터 돌쇠를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의 몸에서, 콩알만한
그 수수께끼 같은 노리개 은방울이 떠날 날 없었듯.



 제 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불쌍할 뿐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석양,
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향나무가 두 그루 미루나무가 하나
무덤이 밭 가운데 있었다.

스물다섯에 만난 여자,
그리고 일년을, 깨알 쏟아지듯
다정하게 살림한 여자.
하늬는 괴로웠다.

벌거벗었던 마누라의
붉은 육체,
몸부림치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늙어빠진
김진사와,

그러면 그 김진사의 꼬임으로?
천둥번개 우르렁거리고
홍수 같은 소나기 밤새
퍼붓던 어느날 밤
그녀는, 하늬의 품 속에서
무서운 이야길
고백했었다.

그리고 자길 죽여 달라고
가슴 쥐어뜯으며
통곡했었다.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인가,
눈을 뜨지 못한 짐승,
그렇다,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
눈 뜨지 못한 짐승들이
사람 탈을 쓰고
밀려가고 있는가.

허나 어찌 할 건가
우리는 또 무언가.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저 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속서 저러고 싶어
꿈틀거리고 있을건가.

그렇다면,
봇물을 막는 뚝이여
너는 죄인.
한 생명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이여
네가 죄인.

터놓아라. 강물.
제멋에 이리저리
흘러다니도록,
터놓아라. 강물.
하늬는 기다렸다.
두 남녀의,
그 목줄기에 솟았던
굵은 심줄의 가련함을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늬는 하늘을 봤다
영원의 하늘,
내것도,
네것도 없이,
거기 영원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늬의 발밑엔,
꿈틀거리던
두 마리의 버러지.
그렇다,
불쌍하달 밖에 없었다
자기의 생 영위키 위해
삐걱삐걱 땀 흘리며
하루를 숨쉬던 허리.

내것
네것
없는 하늘 소리가
무한에서 와서
무한으로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수수잎을
흔들면서 한 무더기가
지나간다.

오, 아름다운 노을
저 노을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오, 아름다운 하늘
저 노을을 볼 때 어떻게 이 세상,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같이 투명한 마음으로.
한 덩이의 하루살이떼가
원무(圓舞)하며 풀밭으로 쏟아진다.

목화밭과 수수밭 사잇길에서
그녀는 나타났다.
조기를 한 꾸러미 들고 있었다.

이쪽을 보았다
금강의 낙조 속에서
보았다.

불빛이 튀는 걸까
먼빛으로도 그건
탄력있는 징그러움이었다.

웬일일까,
그녀는 돌아서서 뛰었다
조기 꾸러미를 논배미 던지며
달렸다.

살 맞은 뱀.
어디로 숨는 걸까,
무얼 보았단 말인가
절벽.
먹구름,
고향,
돌, 절벽.

그녀가 솔밭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뛰기 시작했다.

콩밭이 지나갔다,
황토 흙, 뫼, 대추나무,
우물바닥이 지나갔다.
척추 퍼붓는 땀의 비,
목화밭, 언덕,
소나무 숲, 개울,

강이 보였다,
흰 물구비,
언덕 위 바위,
바위의 싸늘한 감촉,

두 짝의 흰
고무신을 보았다.

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엔 이름모를 새가
날고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선
황소가 풀을 뜯고.



 제 10장

가을이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 송이
열차 속 사귄 손님처럼
속삭이며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북한산 골짝
머루,
도토리, 다래,
개암,
열매 터지는 소리
버섯,
억새, 통통 여문 벌레소리.

하늬는
가을 산을
헤매고 있었다.
허리엔 두 켤레의 짚신
그리고 괴나리봇짐.

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여인,
단풍 물든 자작나무 가지를 헤치며
옷보자기 끼고
산 속에 나타난 궁녀.

맑은 하늘 밑
물건 없는 산 속을
수놓은
하늘거리는 짐승.
땅의 끝에서
땅의 끝으로
피란길 떠나는
행색이었을까.

지친 이마,
쏟아진 어깨,

하늬를 보고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때까치가
머리 위 울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리는
붉은 단풍잎은
날짐승인가,
전설인가,

금빛 꾀꼬리가
한 쌍
영원의 공간 속을
횡단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을을 열어 놓은
산골짜기에서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바위 붙들고
그녀가
멎어섰다.
한쪽 무릎 접으며
다소곳 앉았다.

산 속에 핀
무지개.
향내가 골짝을 흔들었다.
눈빛이
바위 속 젖어들었다.

보라빛 들구과
한 송일 꺾어들고
하늬는 다가갔다.
바위 위 놓여있는
여인의 손 위
자기 손을 포개 얹었다.

다수운 살결,
여인의 마음은
높게 물결치고 있었을까.

윤기 짙은
검은 머리 위
굽어 든 하늘.

하늬는 여인의
숱많은 머리 다발 속
보라빛 들국활
꽂아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가엔
눈물처럼 스며 밴
미소.

얼마가 지났을까,
억겁쯤 지났을까,

그녀는 눈을 떴다.
미소,
발밑 억새꽃 한 모감
뽑아
공손히 두 팔 드려
남자에게 바쳤다.

하늬는
억새꽃을 받아
입에 물고,
여인의 손목 쥐며
얼굴 들여다 보았다.

흘러가는 강물,
가까운 거리에서
원초스런 눈초리로
일진, 일퇴,
속삭이고 있는
둘의 눈동자.

열려 있는 창문이었다.
자기들의
내실(內室)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열려 있는 창문
둘이서, 시간을 거스르며
서정을
두레박질하고 있었다.

사슴이 이따금 찾아와
입술 적시고 가는
숲 속의 호수,

열두 개의 보석을
쪼개고 들어가면,
자리하고 있을
이슬 젖은 선녀의
안마당,

지나간 바람과
내일의 하늘이
사이좋게 드나들고 있을
투명한 하늘,

이야기가
소용 없었다
촉촉히 젖은
둘의 입술,
가늘게 떨리면서
열렸단 멎고
열렸단 말 뿐,
손과 손
마음과 마음
역사와 역사는
얽혀 흐르면서
뼈 없이 녹아,

구석과 구석을 적시고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여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해조(諧調)의 음악이 되어

무한한 공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제 11장

 『궁에서
도망나오는 길이에요
눈독들이는 그 늙은이들의
입김이 싫어 못 배기겠어요

추석이 지나니 고향 생각도 나고.
아버지 장사지내러 왔었어요,
제 고향은 황해도 해주.

경복궁 개축공사 부역일에
아버지가 끌려 왔었어요.

육십 넘은 아버지.
등짐하다 바위 밑 깔려
객사하셨대요.

한강 가
제 손으로 묻어 드렸어요.
돌아가는 길 어느 노파에 끌려
궁으로 들어갔죠.』

『우물 점이 있군요,
당신의 이마엔.
언제부터 그 하늘의 그늘
생겼는지 기억하세요?』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 성이 도장 인(印)자에요
이름은 진아.』

『이상하군요, 어젯밤 나는
삼청동 객삿집에 묵으면서
꿈을 꿨소.

나라 위 자욱히
안개가 덮여 있더군,
고구려성의 왕관을 주웠어요
휘황찬란한.

금강산에서 내려왔다는
흰 말이 내 앞에 무릎 꿇더군.
그래 신발 대신 왕관을 신었는데
한쪽 발에 신을 신이 없어
걱정하다 잠을 깼소.』

『저도 꿈을 꿨어요
백제땅 금강이래요.

목욕하고 나오다
모래밭에서
사슴의 뿔을 얻었어요.

그 사슴의 뿔이 갑자기
용이 되어 하늘로 꿈틀거리며
오르더군요.
선생님, 저는 지금
도망가는 몸이에요.
고향도 안되고
어디 가면?』

『우스운 인연이군요
고구려의 밭,
백제의 씨,

우리들의
편안할 곳은 지금
아무데도 없오.
하늘과 땅,

눈먼 구데기떼처럼
땅에 엎디어 매질 받으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뿐
벙어리가 된
노예들의 땅.
그러나
가십시다, 진아라고 했죠?
금강 언덕
초가삼간.

아직 차령산맥 남쪽에
서기(瑞氣)가……』

석양,
가랑잎 위에서, 둘의 알몸뚱이는
꽃뱀처럼 얽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의,
바람과 햇빛과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면서, 둘의 피는
음악처럼 굽이쳐 흘러가고
있었다.

이때 설악산
양양골에선
해월이 양지밭에 앉아
짚신을 삼고 있었지.



 제 12장

독일, 윈극장에선
교향곡 <운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원의 손과 귀,
베토벤, 그는 1827년에 죽었던가,
그 음악은 이조말의 반도 하늘에도
메아리쳐 오고 있었을까,

베트남 정글 속에선,
불란서 식민지 침략군 맞아 싸우는
원주민의 우렁찬 함성,

일본에선
2백 년의 봉건쇄국주의가
문을 깨치고
미일수호조약을 체결,
기름기 오른 군벌 자본가들이
요정에 앉아 공장을
설계하는 날,

경복궁에선
조대비가, 중국 곤륜산서 따온
사슴 사향,
양지바른 대청마루 앉아
천산남로 거쳐온, 중국 상인과
흥정하고 있을 때.

1854년,
전봉준은
서해가 보이는 고부 땅
두승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내려오는
농민의 아들,
키는 절구통 같은 오 척,
시원한 이마
맑고 두리두리한 눈동자가
벌어진 어깨 위에서 빛났다.

편안한 코,
우렁우렁한 음성은
듣는 사람의
살 속에 스몄다.

어려서부터
말이 없었는 편.

서당에서 책 끼고
돌아오는길,
양지쪽 메운
동네 아이들의 맨발과
두 줄기 콧물 보면,

함께 뛰어들어
자치기, 연날리기,
말타기, 씨름을
이끌었다.

고욤나무,
대나무가 많은 마을,
병으로 십여년 누워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농사일도 하고
서당 훈장일도 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
이따금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다.

추석날이면
국화,
칠석날이면
참외,

세월은 갔다.
철이 들수록
그는 말수가 더
적어갔다.

어느날,
삼례장 갔다오는 길
길가 주막집 들러
막걸리 두 대접 마시고
나오니 누군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충청도, 동학접주 서장옥,
첫눈에 썩
뛰어난 그의 인품에
놀란 서장옥이,
부지런히 풋고추 고추장 찍어
입가심하고 뒤를 따라나섰다.

밀밭길 걸어오면서
열혈파 서장옥은 동학 얘기를 했다.
소맷 속서 꺼내주는
필사본 동경대전에서
들기름 냄새가 풍겼다.

개화정변에 실패,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이,
상투 깎고 어두운 마음
동경 은좌 거리를
걸어오고 있을 때,

1888년
전봉준은, 서장옥의 소개로
동학에 입도했다.

태백산 속
은신해 있던 해월이
보은으로 나왔다.
나흘을 걸어 보은땅
속리산 기슭 초가집에서
전봉준은 해월을 만났다.

수중 십만리
걸어온 사람의 얼굴이었을까,
가시밭길 삼만리
맨발로 걸어온 사람의
얼굴이었을까.

나무뿌리같이 드러난,
뼈로 얽어놓은
육신
그 속에서
하늘이 주었을까,
깊은 눈동자만, 조용히
세상을 뚫어보며
빛나고 있었다.

해월은,
1898년 6월 2일
서울 광희문 밖 형장 교수대에서
순교하던 일흔두살,
삼십사년 간을, 탄압에 쫓기며

동학을 물고
전국 방방곡곡
농어촌 찾아
노동자를 조직,
포교했다.

상엿군,
장돌뱅이,
거지,
엿장수,
로 변장하고.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노인 집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수저를 들으려니
안방에서 들려오는
베 짜는 소리,

『저건
무슨 소립니까?』

『제 며느리가
베짜는가 봅니다.』

『서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서노인이, 며느리 데리고 나와
상머리에 앉을 때까지
해월은 경문 외며 정좌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떠나는 해월을 전송하러
서노인 집안이 동구 밖
논길가지 나왔다,

막내 아이가
따라나오며 우니
서노인은 눈을 부릅떠
위협, 쫓아보내려 했다,
해월은,
주인을 가로막아
어린이의 머리 쓰다듬으며
그 자리 흙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서노인에게
말했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

가는 곳마다,
내일 떠날지
오늘밤 떠날지
알 수 없는 빈 집,
쓰러진 외양간에 묵으면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짚신을 삼고
멍석을 짜고
노끈을 꼬고
구럭을 얽고
과수나무를 심고
채소씨를 뿌렸다.

할 일 없으면
꼬았던 노끈 풀어서
다시 비볐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몇 날 안가 또
딴 데로 떠나셔야 할 텐데
그런 일 해
뭘 하시렵니까』

『안될 말,
한울님께서 사람을 내신 건
농사지으라고 내신 건데
농사짓지 아니하고
생산하지 아니하면
양반보다 나을게 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가
혹 이 멍석 쓰지 못하고
이 채소와 과일 먹지 못하고
딴데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이 다음날 누군가가 이곳에
와, 멍석을 쓰고
채소와 과일을 따먹게 될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한다면, 어디 가나 이 지상은
과일과 곡식,
꽃밭이 만발할 것이요
모든 농장은
모든 인류의 것,
모든 천지는 모든 백성의 것
될게 아닌가?』



 제 13장

쑥냄새 풍기는,
해월 묵고 있는
초가집엔 하루에도
수십명씩,
멀린 황해도, 평안도에서까지
농삿군 교도들이
괴나리봇짐 얽매고
드나들었다.
비록 굶주리고
헐벗은 행색들일망정,
눈동자마다에선 광채가 빛나고,
멀리서 온 동지들을 만나
서로 주먹 싸 쥐며, 눈물로
반가와하고,

왕가의 기둥뿌리가 썩었음을,
세상은 말세임을,
양반이 각지에서 마지막 발악하고 있음을,
서울 장안, 부산항군, 이미
왜국상인, 왜국간판에게 아랫배까지 내주기 시작했음을
개탄했다.
한 달을 묵으면서
각지의 농민 지도자들과 사귄
전봉준은 자기가
외롭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합천 해인사
경주 토함산, 마산, 진주 촉석루
여수, 순천, 화엄사를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봉준은 그해 겨울
뜻 아니, 아끼는 아내의
죽음을 만났다.

동네 사람들 사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론,
봉준은 아내의 죽음을 두고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

황토현 남쪽
양지바른 기슭,
가루 고운 흙 속에
자기 손으로 묻고
잔디를 입혔다.
밟으면서 울었다.

봄이면 꽃
여름이면 하늘
가을이면 귀뚜라미
겨울이면 추위

전봉준은 자주
아들의 손을 이끌고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말 없이
몇 시간씩
서 있다 가곤 했다.

그림이었으리라,
서해에 노을이 물든 석양,
그리고 달밤
동네 사람들은 언덕 위
어른과 소년
두 사람의 그림잘
자주 보았다.

그후, 봉준은
가끔, 두루마기 빨아 입고
서울을 다녀왔다.

밤길,
새벽길, 소맷자락으로 땀 씻으며
그의 집 드나드는
사람의 수도 많아갔다.

남원 사람 김개남,
그는 이미 열세 살 때
세미(稅米) 받으러 와
늙은 아버지께 행패하는
관속 두 사람
한 아름에 몰아
수채 구멍 쑤셔 박은 일로
곤장 백 개 맞은, 그리고서도 웃으며 일어났다는
8척 장사.

얼굴이 흰, 칠보 사람
손화중, 그는 임진왜란 때
전주성의 이조실록
내장산으로 묘향산으로 끌고 다니며
보전케 했던
손홍록장군의 후손,
가녀린 미남으로
일찍부터 해월의 감화 받은
그러나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밖에
많은 호남지방
동학접주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다음해 여름
봉준은 두 벌 김매놓고
서울을 다녀왔다.
서소문 밖, 객주집에
두 달을 묵으면서
인심,
세정을 살폈다.

같은 방 묵게 된
충청도 사람
신하늬와 의형제를 맺었다.

전봉준과 신하늬는, 마치
하늘이 마련해놓은
연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만나자 첫눈에
배포와 뜻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갔다.

두 살 위인 전봉준이 형
하늬가 아우,
그들은 해만 뜨면
거리 구경.
해만 지면 돌아와
등잔불 아래 엎뎌
세상 얘기로
밤을 새웠다.

남별궁,
지금 반도호텔이 서 있는 자리엔
그때 남별궁이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의 숙소,
이미
남별궁 근처, 일본인들의
전횡 무대,

언제 보아도
게다 신은
닷도상 옆에
수십 명의 갓쓴
벼슬아치
장사치들이 올망졸망
모여 서서
손을 비비는
광경.

자본,
대포,
를 앞세운
명치의 진출 앞에

벌써 냄새 잘 맡는
사대가
빌붙기 시작한 걸까,

청나라에 주었던
남한산성을
이젠
사무라이에게 주고 싶어
저리 간사
떨고 있는 걸까,

예나 내일이나
식민지하의
관리들이 배우는 건
오직 하나
아첨과 비겁,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왕실에서는 조심조심
청에 원병을 청했던 것.
청국은 원세개를 서울에 주둔시켰다,
일천 명의 군대와 함께.

금은,
아편,
비단,

그리고 상전국으로서의
권력을 함께 가지고 온
그들의 주변에는
정치 장사꾼
여자,
소매 상인.

주둔군은
한 가지 한 가지
사기 시작했다,

곶감, 대추, 명태, 돼지,
여자, 집, 명동 일대의 대지,
그리고 비단에 약한
조선사람들의
마음까지를,
그래서 명동
금싸래기 땅은
지금까지도 그의
아들의 소유,

그런데 또 일본이 왔다.
이조말의
반도는 흡사
접시 위 올라앉은
벌거벗은 생선,

멀리는 불란서, 미국, 영국,
러시아,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마치 그들은
내기나 하려는 듯,
네가 두 발짝
나는 세 발짝
나는 세 발짝
너는 여섯 발짝

접시 위 생선을 두고
한 발 한 발
접근해오고 있었다.

청국의 왕실과
이왕가의 왕실 사이엔
주종의 관계 맺었다지만
양족 다
왕실의 지붕은 이미
무너지며 있었고
그래서
무너지는 옷을 벗고
실권자인 군부가
주인이 되어 반도를
호령하려 한 것,

2천만의 농민이
제주에서 두만가지 사이
뜸물처럼 엎디어
땅을 갈고,

2천만의 농민이
엎디어, 이루어 놓은
육체의
산더미 위

왕권은 대초롱을
깊이, 깊이 박고
김대감,
박정승,
아전,
이속들과
힘을 모아
2천만 농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이성계가 파놓은 우물,
그리고 대대로 전승되는
그 살기름의 우물터는,
대대로 모든 지식분자들의
아귀다툼의 마지막 겨냥
출세의 최종 목표,

흙냄새 섞인,
기름이 스며 나오는
우물의 흡구(吸口)에
누구든 한 번
코를 박아본 사람이면
간도
눈도 미쳐서

세상없는 놈이 와,
뒷덜미 도끼로 찍어도,
목이 잘리우고도
혼만은 살아서
흡구 근처 떠나지 못하고
추억이 되어 빙빙
남아 돈다.

고시 공부 한다는 건
출세하기 위한 것,

출세한다는 건,
피 빨아먹는 자리,
놀고 먹는 자리,
배성의 피기름 솟는
흡구 자리 하나
차지한다는 것,

피라밋처럼
정상을 향해
벼슬길로
기어오른다.

형제의 등을 밟고
친구의 목을 부러뜨리고
제 자신의 낯짝도
쥐어뜯어 가며

벼슬 높은
정상으로
정상으로,

여기 저기
나 있는
달 표면의
분화구 자죽 같은
흡구 곁으로 기어올랐다.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가.

변한 것은 무엇인가
서대문 안팎, 머리 조아리며
늘어섰던 한옥 대신
그 자리 헐리고 지금은
십이층 이십층의 빌딩
서 있다는 것,

진고개에 청계천, 이쪽 저쪽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의
옷맵시가, 갓에서 넥타이로
변모했다는 것밖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도 우물터
피기름 샘솟는
중앙 도시는 살찌고
농촌은 누우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발
한 발자국

움직이는 손
한 팔짓이

누구의 등을 안 파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잡초만 무성하는
악의 밭,
유린과 착취가
무한대로 자유로운
버려진 땅.

불성실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들은,
비지 먹은 돼지처럼
눈은 반쯤 감고, 오늘을 맹물 속에서 떠 산다.
도둑질
약탈, 정권만능
노동착취,
부정이 분수없이 자유로운
버려진 시대

반도의
등을 덮은 철조망
논밭 위 심어놓은 타국의 기지.

그걸 보고도
우리들은, 꿀먹은 벙어리
눈은 반쯤 감고, 월급의
행복에 젖어
하루를
산다.

그날
하늬와 봉준이 본
이왕가의 내면도
그러한 것이었을까.



 제 14장

1892년,
해월은 전국 교도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11월 1일
매서운 북풍 속서
호남평야 삼례역
3천 군중이 모였다,

제 1차 신원 시위 운동
보리밭 속서
충청, 전라, 양 관찰사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동학을 허하여 주옵서.
지금 각지방에서는 군수로부터
서리 군교, 간사한 토호(土豪) 양반에
이르기까지 아침저녁으로
우리 죄없는 농민들의 가산
탈취하며, 살상 구타 능욕을
일삼고 있으니,

이는 오직 정부가 우리 동학을
사학시(邪學視)하여 제 1세 교주 수운 선생을
참수한 데에 비롯되나니
억울하게 순교한 수운선생의
원을 이제라도 풀어주옵소서.

우리의 도가 척양척왜(斥洋斥倭),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사인여천(事人如天)
일진대 이 어찌 사도(邪道)가 되옵니까.』

닷새만에
전라관찰사 이경직의
깃달린 편지를 받았다,

『동학은 왕실이 금하는 바라.
어리석은 농민들이여, 칼로 베이기 전에
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학을
취하라.

앞으로 관리들에겐
푼전도 뜯어가지
못하게 이르겠노니.』

동이나 서나 세리(稅吏)들의 입은
열두 개, 적당한 기회에 적당한 말을
적당히 지껄여놓고 잊어버린다.

3천의 군중은
보은, 동학 총본부를 거쳐
서울로 모였다.

광화문 앞 광장
3천의 군중이
바둑판처럼
땅을 짚고
엎디어 있었다.
1892년 2월 초순
제 2차 농민 평화시위운동.

입에 물 한 모금 못 넘긴
사흘 낮과 밤
통곡과 기도로 담너머 기다려 봐도
왕의 화답은 없었다.

마흔아홉 명이 추위와
허기와 분통으로 쓰러졌다.
그러는 사흘 동안에도
쉬지 않고
눈은 내리고 있엇다.

금강변의 범바위 밑
꺽쇠네 초가 지붕 위에도
삼수갑산 양달진 골짝에도, 그리고
서울 장안 광화문 네거리
탄원시위 운동하는 동학농민들의
등 위에도,
쇠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늘 깊숙부터 수없이
비칠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아테네 반도
아니면 지중해 한가운데
먹 같은 수면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을까.

모스코, 그렇지
제정(帝政)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정신사의 하늘에
황홀한 수를 놓던 거인들의
뜨락에도 눈은 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챠이코프스키, 그렇다
이날 그는 눈을 맞으며
페테르부르그 교외 백화나무 숲
오바 깃 세워 걷고 있었을까.

그날 하늘을 깨고
들려온 우주의 소리, <비창>
그건 지상의 표정이었을까.
그는 그해 죽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짐승들의 염통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정릉으로 내려오는 능선길
성문 옆에선,
굶주리다 죽어가는 식구들
삶아먹이려고 쥐새끼 찾아나온
사람 하나가,
눈 쌓인 절벽 속을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수유리 골짝 먹는
멧돼지 두 마리가, 그
남루한 옷 속서
발을 찢고 있었지.

산은 푸르다,
말없이 푸르기만 하다.
오늘도 일요일이면, 낯선 사람들과
수통의 물 나누며 오르는
보현봉,
반도에 눈이 내리던 그날에도
말없이 서울 장안을
굽어보고만 있었다.

광화문이 열렸다,
사흘동안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군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문은 금새 닫혔다,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그 사이
쥐새끽 지나갔단 말인가, 아니야,
바람이었다, 거센 바람이
굳게 닫힌 광화문의 빗장을
부러뜨리고 밀어제켜 버린 것이다.
그 문의 빗장은 이미
썩어 있었다.

모든 고개는 다시 더 제껴져
하늘을 봤다.
그 무수의 눈동자들은 다시 내려와
서로의 눈동자를 봤다,
눈동자.
주림과 추위와 분노에 지친
사람들의 눈동자,

단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맑다,
서로 마주쳐 천상에서 불타는
두 쌍, 천 쌍, 억만 쌍의
맑은 눈동자.

바둑판의 중앙에서
장대 같은 사나이가 일어섰다.
그의 어깨에도
괴나리봇짐이 메어져 있었다,
군중의 등불 같은 눈동자들이
집중했다. 장두 박광호,

『우리는 사흘을 기다렸다,
많은 동지들이 쓰러졌다,
죽음은 우리앞에 있다,
회답이 없다.
우린 파리새끼만 못한 목숨인가?

백성의 강산이다, 우리 조선은
광화문은, 왜 우리 어질고
착한 백성의 발길을 막는가.』

군중은 일어섰다.
주먹을 싸잡으며 하늘을
우러렀다,
벌판에서 솟구치는 무수한 미루나무 숲.

박광호는
두 팔을 활짝 벌여
손짓했다.

『앉아주시오. 그리고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역적이 되고 싶은,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문을 흔듭시다,
주먹으로 두드려봅시다.』

농민들은 다 일어섰다.
열 사람이 뽑혔다,

군중과 광화문과의 사이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속을, 열한 사람의
대표는 허기진 기색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벽은 죽음이었다,
문은 죽음이었다,
죽음의 나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슴뿐이었다.
불덩이 같은 가슴,
가슴은 터지리라,

문이다,
고리다,

열하나의 가슴이
최후를 밀 듯
죽음을 밀었다.

열하나의 육신이 미끌어
쓰러지면서 스물두 개의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노란 천지를 상대로, 끝없이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머리로 받았다,
이미 끝난 일이다.

싱겁다.
허사였다, 기다렸던
벌도 없었다
그 길로 교도들은
보은 속리산을 향했다.

이왕실은 치마꼬리가
삭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드랑 밑으로 다시
추켜 올리면 될 것 같았지만
추키려 해도 추키려 해도
붙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아무릴 단도 깃도 허리끈도
다 삭아서, 빌빌 하는 걸,

늙고 메마르고 멍들고
삭정이만 남은 앙상한
허리 아래가 드러났다.

이제 엉덩뼈가 그 못생긴
한쪽 엉덩짝이 나타나리라.

해월이 대도소(大都所)에 나타나는
3월 열하루, 보은 땅에는
십여만 명의 농민이 모여들었다.
제 3차 무저항 농민 시위운동,

밥짓는 연기,
막사짓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
발과 발,

무엇을 보았는가,
이조 5백 년, 억울하게만
살아온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 주먹을 보았는가, 이제야
자기의 얼굴
자기의 가슴을 보았는가.

어느새, 누가
달았는가, 여기저기
깃발이 나부꼈다,

『양민을 학살하지 말라』

『물리치자 폭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양놈
몰아내자 모든 외세』

『백성은 한울님이니라』

『일어나라 백성들이여
물리치자 관의 횡포』

급보에 접한, 조정
양반배들은
선유사 어윤중,
보은군수 이규백,
충청병사 홍계훈,
그리고 그의 휘하
일천 명의 군대를
보은땅 보내
해산하라고 위협,

지도자들과
사흘을 숙의한 해월은
사월 초닷새
자진 해산령을
내렸다.



 제 15장

날이 갈수록
세상 인심은
스산했다.

노른자와 흰자가
암탉 품 속에서
스무 하루를 지내면
병아리가 되어
껍질을 깨고
귀염 떨며 나온다.

한갓, 노른자와 흰자이던
액체가 자기 생명을 의식하고
다숩게 조직하며,
기구(祈求)하며,
내일을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달걀 속의 세상은
평화가 깨지고
불안 초조해진다.

내부의
살의
성장에 밀려나
깨어지는 달걀 껍질은
내부의
병아리 새낄
저주하리라,
반역자, 라고.

자각된 농민들의
성장으로
달걀 껍질은
균열되기 시작한 걸까.

어찌됐거나
세상 인심은
날이 갈수록
수런거렸다.

눈 녹이 바람
이 마을 저 마을
들썩여 놓고 다닐 때,
얼어붙었던
대지의 껍질도
나무의 껍질도
우리의 피부나
마음의 껍질도
싱숭생숭해지듯,

봉건사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대구 팔공산에선
이름 모를 새들이 나타나
한 달 동안
하늘의 해와 달을 가리고
싸웠다,

이상한 울음 우는
칼새가 나타나
양쪽 새 다 죽이고 판가름냈다.
땅에 떨어지는
새의 시체가
소나기 같았다,

이상한 소문은
꼬리를 이었다.

오대산 속에선
소나무에 꽃이 피었다,

평안도 용강
우물 속에선
용대가리 같은
깜정 꽃줄기가 두 개,
관리나 양반이 가면
종적도 없어지고.

수덕사에선
겨울인데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6월 초열흘날 밤에
불비가 오리라,
그 불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흙에 발붙인 사람과
손에 흙묻친 사람뿐이리라,

무주 구천동에서
오백 명의 신출귀몰하는
군사가 훈련중이다,
석달 열흘의 불가뭄이 지나면
그 군사들이 나와
세상을 뒤집어 엎고
편안한 새세상 오게 하리라,

가는 곳마다
정자나무 밑 모여 앉아
농민들은 긴 한숨 쉬었다,
에이 쌍,
하늘과 땅
멧돌질이나 해라!

1893년 11월
전주 익산 등지에서, 또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고부에서도 일어났다,
허리띠 조른
삽과 지게의 행렬, 3년
부녀자까지 동원된
부역의 열매
북면 만석 저수지와
팔왕리 저수지,

가을이 되니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에게 또 저수지 수세를 배당했다,

한 마지기 당
쌀 서 말,

엎친 자리 덮쳤다
호남 전운사 조필영,
호남지방 납세미(納稅米)를
배태워 보냈는데
서울 가서 되어 보니
5천 석이 모자란다,
미안하지만 다시 징수하겠노라,
고, 이속 앞세워
마을 뒤지고 다녔다.

익산면에선
영수증 없는 3천8백 석의 세미(稅米) 거둬
저희끼리 나눠먹고
다시 고지서를 내돌렸다,
곤장질, 당근질, 주리틀기로
난리 피우며.

오지영을 선두로
3천명의 농민이
익산 관아에 모여
시위했다.

고부군에선
전창혁을 필두로
5천 명의 농민이
관아에 쇄도하여
시위했다.

조대비의 심복
고부군수 조병갑은,
소원 들어줄 테니 전체가 해산하고
대표자 세 사람만 나와
협상하자고 제의했다.

나이 많은 세 사람이
자원하여 동헌 마당으로 들어갔다,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
김도삼, 정일서.

희끗
희끗
눈발 날리는
동헌 바깥마당,
수천 농민은
쇠스랑 삽, 끄을며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을 기다렸다.

이틀째도
눈은 날리고
아이들은 보채고
된장은 끓는데
소식은 없었다.

그 사이,
조병갑은 세 농민을
전주로 압송했다
전라감사 김문현께,
민란의 장본인을 보내오니
엄치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전라감사 김문현은
세 농민대표를
형틀에 올려 반죽음시킨 뒤
고부로 되돌려보냈다.

조병갑은 이미 반죽음된
세 사람을 다시
새 형틀 위 묶어놓고, 밤새도록
불로 지지고 주리를 틀었다.

그날 새벽
매에 못견뎌
급기야 전창혁이 죽었다.

눈은 닷새째나
산과 들을 덮었다.
날리다 멎고
멎었단 다시
펑펑 쏟아졌다.

눈 벌판을
소요하는
된장찌개
동김치 냄새,

마을은 쥐죽은 듯
삼엄했다,
웃음소리 하나, 거리
한가하게 나 다니는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아지도,
수채구멍으로
얼굴을 조금 내놓았다간
이내 사라졌다.

다듬이소리,
어린애 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전갈을 듣고
녹두는 관아로 갔다,
아버지의 시체는 거적자리에 싸여
창고 옆 버려져 있었다.

봉준은,
눈물 한 방울
말 한 마디
얼굴색 하나,
까딱
없이,

뚜벅뚜벅,
그 두꺼운 손으로
아버지 전창혁의
늘어진 육체를 업었다.

업고 문 밖에 나오니
사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눈길
두승산으로 가
언 땅을 파고
전창혁을 묻었다.

끝난 것일까,
봉준의 얼굴은
전날보다 더
너그럽고
편안해 보였다.

십여일 후, 고부에는
왕명받은 안핵사 이용태
역졸 8백 명 달고 나타나,
고을을 뒤집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닥치는대로 때려잡아
고기 엮듯 엮어
옥에 가두고
부녀자들은 총칼로 겁탈하고,

집엔 불을 질렀다.

봉준은,
후취 부인과 아들, 딸
사랑방으로 불러놓고
조용히
마주 정좌했다,

남매의 머릴
쓰다듬었다.

『얼마동안 태인 친정집
가 있어주오.

석이놈, 곶감을 좋아하는데
너무 먹어서
배탈이랑 나지 않게,

간간이 글공부시키고
분이랑 잘 키워주오.

무슨 일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며,
경우 봐서
애들 데리고
해남땅으로 가
변성명시켜

때 기다리도록 하오.』

봉준은 아들
석이 이마, 눈
딸 분이의 코, 입술을 번갈아 보았다.

까만
딸기 같은 촉촉한 눈동자
총기있는, 그러나
철없는 눈동자.

밖에선
눈보라가 날리고
문풍지가
심란스럽게 울었다.

며칠 뒤
봉준은 먼빛으로 보았다,
불에 싸인
자기 집.

그리고, 밤하늘
아름답게 수놓으며
불타는 자기 마을과
이웃마을들.

 제 16장

『세상의
어지러움은, 그 까닭이
외부에만 있는 거, 아닙니다,
손짓 발짓은 흘러가는 물거품,
우리의 내부가 더 문제입니다.
알맹이가,
속살이,
씨알이 싱싱하면
신진대사에 의해
외형은 변질됩니다.

외부로부터
다스려 들어오려 하지 말고
우리들의 내부에
불을 지릅시다.』
태인 최경선집의 사랑채,
충청도서 달려 온
하늬의 말이었다,

봉준은 고개를 저었다,

요원한 이야기요,
물론 옳은 생각이긴 하지만,

석가 죽은지 이미 3천년
노자 죽은지 이미 2천 수백년

그분들은 하늘을 보았지만
그분들만 보았을 뿐

30억의 창생은
아직도 하늘을 보지 못한게 아니오?
아직도 구제되지 못한게 아니오?

동학은
현실개조의 종교요.
자기혁명, 국가혁명, 인류혁명,
이게 바로 동학의
삼단계 혁명 아니오?

지금은 그래도, 기껏
지방관리들이나 양반 토호들
부패, 행패, 횡포로 끝나지만
이대로 더 둬보오,
십년도 못가서
강산은, 일본 아니면
청국 아니면 어딘가의
밥이 될게요,

9십9의 인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1의 악은
제거돼야 할 줄 아오.

좌시하면
9십9가 4십 되고
4십이 십 5가 되어
어느덧 우리의 자리는
악과 어둠의 세력에 의해
지워져버리오.』

『알겠습니다,
봉준형의 뜻.

제가 염려한 건 바로 그 문제입니다,
분풀이나
폭동은
무고한 희생만 남길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왕 일어서려는 의지
굳게 하셧으면
하늘끝까지,
벽을 찢고
하늘끝까지,

전쟁을 넘어서서
사회혁명으로 이끌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봉기하면
국내문제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외세,
그들의 벽과 부딪치게 될지 모릅니다,

각오하셔야
됩니다, 외국의
조직된 신식 군대와
성능 좋은 대량 학살 무기,

구라파에서는 산업혁명 뒤,
신흥 자본주의 국가로의
꿈을 안고 껑충껑충
도약운동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
식민주의 전쟁
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워낸 새로운
살인무기를, 일본이나
청국은 사들여 오고 있습니다,

각오하셔야 됩니다,
이왕 피를 보아야 된다면
책임도 지셔야 됩니다,
백성들만의 지상낙원,
손에 흙묻혀 일하는 사람들만의
꽃밭.

정권없는,
통치자 없는,
정부 없는
농민들만의 세상, 이상 사회.
우리들 손으로 이룩할
책임,
우리가 업어야 합니다.』

질화로에선
새로 담아온 불이
이글거렸다.
봉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하복부에서
중부로
가슴까지
점점 넘칠 듯이
부풀어올라왔다,
눈을 떴다,

두리두리한 눈,
그리고 서서히
손을 내밀었다.

하늬도 봉준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네 개의 손이 마주 얽혀
다숩게 감격하고 있었다,

봉준의 눈은
어느덧 감겨졌고
두 줄기의
물방울,
콧잔등의 기슭을 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 17장

그로부터 한 달 후,
1894년 3월 21일.
전봉준이 영솔하는
5천 농민이
동학농민혁명의 깃발
높이 나부끼며
고부 군청을 향해 진격했다,

머리마다 휘날리는
노랑 수건,
질서 정연한
대열, 여기저기
높이 펄럭이는
깃발,

『물리치자 학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뙤놈
몰아내자 모든 외세』

『백성은 한울님이시니라』

『일어나라, 세상 모든 농민들이여
굴레를 벗어라』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농민혁명의 서곡은
반도에 그 첫 보습을
댔다,

엽총,
화승총,
장도칼,
쇠스랑,
괭이,
낫,
호미,
죽창,

울둘목,
성난 밀물처럼,
관아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울둘목, 그렇다, 목포에서 배타고
제주 가본 사람은 알리라
쏜살처럼 달리는 그
성난 밀물,

하늘에서는 까마귀떼
참새떼 까치떼도 신바람이 났음일까,
날개를 가슴끝 휘저으며
동학군의 머리 위, 설레발이쳐
따랐다,

집집마다에서
쏟아져나온 강아지, 바둑이,
부얼이, 삽살이까지도, 웬일일까
짖지도 않고
농민군의 앞 내지르며
신나게 뛰었다,

병석에 누워있던
부황든 노인네들도
지게 작대기 끄을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행렬의 뒤를
넘어지며
따랐다,

집이 불태위고
아버지 빼앗긴
열두살짜리 소년들,
그리고, 남편 잃은 머리가 쑤세미 된
부인들까지도
돌멩이 두 개씩 안고
달렸다,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얻어맞았단 말인가
깨어졌단 말인가

깨진 항아리 속에서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휘장을 찢고 무엇을 보았단 말인ㄱ

맑은 강물을 보았단 말인가
안창에서 흐르고 있는
붉은 강물을 보았단 말인가

살 속 숨쉬고 있는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정신 깨치고 흐르는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생명을 보았단 말인가
광란에 마비돼 가던 혈관이
사관침으로 소생하기 시작했단 말인가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피의 노랠 들었단 말인가
쇠옷을 긁어내고
다수운 피를 만졌단 말인가,

그들은 벌써
관아를 향해 뛰고 있는 발이 아니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힘이 전신에 솟구쳐
견딜 수 없어, 그저 달리고 있었다

그건 기맥힌 하나의
슬픔이었을까.
수백 년의 누더기 속서 풀려나와
고삐를 스스로 끊고
뛰고 있었다

이유없이 얽매이었던
수십 대의 고비를 끊고
뛰고 있었다

하늘을 본 것이리라
자기 가슴속의 피를
만져 보고 놀란 것이리라

자기의 하늘을 보고
놀란 것이리라.

관아는 텅비어 있었다,
조병갑은 어젯밤 벌써
전주로 도망갔고
이속들도 쥐구멍 속 다
숨었다,

옥을 부쉈다,
뼈만 남은 농민들이 기어나와
관아에 불을 질렀다,

창고를 부쉈다
석류알 같은 3천 석의
쌀이 썩고 있었다,

무기고를 부쉈다
열한 자루의 일본도
스물두 자루의 양총
6백 발의 탄환이 나왔다.
동학군은
대오를 정돈했다
인원을 점검하니 3천이 늘어서 8천명,
전봉준을 둘러싼
수뇌진에서는
동학농민당 선언문을 작성하여
각 고을에 붙였다,

『전략 - 오늘의 고관들은 나라를 생각지
않고 녹위(祿位)를 도둑질하며 아첨을 일삼아,
충고하는 선비를 간언(奸言)이라 배척하고 정
직한 사람을 비도(匪徒)라 트집잡아 안으로 나
라 생각하는 인재가 없고 밖으로 학정의 관(官)만
늘어가니 인심은 갈수록 변하여 들어앉아도
편안한 날이 없고 나가도 보신(保身)의 길이 없도다,
  중앙의 벼슬아치나 지방의 벼슬아치에 이르 
  기까지 민족의 위태는 생각지 않고 내몸 내집
을 살찌게 할 계략에만 눈이 어두워
벼슬 뽑는 길은 축재(蓄財)하는 길로 되고
과거보는 마당은 물물거래하는 시장이 되며,
허다한 세금은 국고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 금고에 충당되며, 사치와
음란이 두려운 줄을 모르니 팔도는
고기밥이 되고 만민은 도탄에 빠져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 허약하면
나라가 쇠약해지는 법이라,
보국안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병을 두어
오직 혼자 잘 살기만 도모하고 녹위를
도둑질하니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우리 일당은 비록 초야의 농민이나
나라의 땅으로 먹고 살고 나라의 옷을
입고 사는지라, 나라의 위망을 좌시할 수
없어 팔도가 마음을 함께 하고

억조가 의논을 거듭하여 이제 의로운
깃발 들고 보공과 안민을 목숨 걸고
맹세하노니, 오늘의 이 광경이 비록
놀라운일이라 하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 생업에 안온하여, 함께 강산의 태평세월
을 축하하며 다 함께 성스런 혜택 누리게 되
면 천만다행으로 아노라,
1984년 3월 21일
『동학농민혁명본부』

울 밑,
각시풀, 닭꽁지
바람에 날리고
나물 캐는 처녀들 다홍치마 속
심술스런 봄바람 부풀 때

태백,
두메 산골,
양지쪽 움돋는 산나물 눈
보고
암사슴 마음은
미쳤다.

두승산에서
황토현이르는 언덕
수놓은
화창한 진달래,

그날,
강산을 채웠으리라,
하늘
을 비치는
투명한
꽃잎.

고부성에는
최경선 인솔하는 팔백명 남겨두고
농민군 주력부대는
백산을 향해 진격했다,
서울 갈 세미
수십만 석이
쌓여 있는 항구,

농민군이 이르기 전
백산에서는 백여명의 관병들이
환영 깃발 들고 십리 밖까지 나와
농민군을 영접했다,
꽃다발 쏟아지는
무혈 입성.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작전계획,
부대편성,
인원 점호했다,
전녹두, 김개남, 손화중, 김남지,
신하늬, 그리고
일만 삼천 명,

용서……,
이 뒤,
전주성 입성까지의
상세한 영웅적인 전투 이야긴
다 기록할 수도 없지만
생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며칠 뒤, 오늘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서 있는
황토현, 잔솔밭 언덕에서,
대포 2문까지 끌고 온 전주관군 3천명이
농민군의 대창과 쇠스랑에 전멸되고, 더러는 투항하고
칠팔십명만 살아 돌아갔다는 이야기,

서울에서 보낸 홍계훈 휘하의 왕병 2천명이
대포 8문 끌고 군산항 상륙하여 뒤쫓아왔지만
농민군의 의기와 전략에 지리멸렬
재티처럼 흩날렸다는 이야기,

전라땅 곳곳에 농민들, 말단관리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관아를 점령하고 농민군 주력부대에
합세하여 와, 한 달 후 전주성에 무혈입성할 때엔
농민군의 총수 12만 명이 되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여기
처참한 황토현 싸움이 끝난 다음날
동학군이 각 고을에 내붙인
선언문 한 토막만 부기한다,

『관병과의 접전에서 허다한 인명이
손상됨은 심히 유감된 일이다,

우리는 조금도 나라와 인명을 해코자 함이 아니노라,
나라와 인민을 가난과 시달림에서 구출하고
이 강토에 만민의 평등과 생존의 권리를
실현시키고자 함이 그 목적이라,
안으로는 탐학하는 관리들을 베고 나라 밖으
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고자 함이니
관군일지라도 병졸은 물론이요 지휘관에 이르
기까지 우리 의기 아래 귀순하는 자에게는
조금도 해가 없을 것인즉,
안심하고 우리 백성의 의거에 동심 협력하라
『동학농민혁명군본부』

제 18장

미움의 난간을 끼고
조심조심
열두 굽이 돌아도
연민은 끝나지 않는다,

백 권 천 권의 책을 뒤져도
우리들의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헤매도, 헤쳐도,
두들겨도, 찢어도,
그래도 남는다,

연민,

누가 누구를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한 수렁 속에 돋아난 버러지,
버러지의 기다림이
불쌍하게만 여겨짐이여,

사랑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미움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속리산 운장대 위 올라
은실 같은 낙동강 줄기 보았는가,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보았는가
노고단 상상봉에서 활개 펴고
그 꽃밭
그 하늘 보았는가,

금강산 비로봉
밤하늘의, 사발덩이 같은 물먹은 별
마셔보았는가
그 밤하늘 마셔보았는가,

백두의 천지 가에 서 본 일이 있는가
전신이 터지게
호수 건너편 벽 향해
소리쳐본 일이 있는가,

한라, 그렇다
한라도 백록담
시로미 밭을 밟고 서서
보았는가,
천공(天空),
천공(天空),

하늘,
하늘 흘러가는
하늘 소리를 들었는가,

보이지 않은
하늘 너머.

하늘 너머
그 멀리 흘러 다니는
하늘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빛보다 빠른
시간보다 빠른
초시간(超時間)을 짚어보았는가,
하늘 땅보다 깊은
공간보다 깊은
초공간(超空間)을 짚어보았는가,

시공(時空)의 흐름을 거슬러
공간(空間)의 흐름을 거슬러,

자유자재로
시공 위 좌정(坐定)해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보았는가
무엇을, 너는,
없음이어라
없음이어라

없었노라. 바람이었노라
지나가는 음영(陰影)이었노라,
없음이어라. 없음이어라.

그러나 어찌하랴
그래도 여전히
남는 건 연민임을,

아퍼, 괴로워하는
이 시간의 살덩이만이
불쌍할 뿐이어라,

지금, 이 시간
어디선가
찡그리고 있을 피부가
불쌍할 뿐이어라,

미워할 사람도
예뻐할 사람도 없었노라
다만
살아있음한 목숨의
불쌍함 뿐,

그럼 우리가 본 하늘은
무슨 하늘이었단 말인가,

불쌍,
우리는 보았다
가엾은 심줄,
애처로운 목,

서러운 사람들이
서러운 목 뽑고
서러운 코 흘리며
서러웁게,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 있음의
불쌍함이여,
숨쉬고 있음의
불쌍함이여, 살아 있음의 불쌍함이여.

이제 고만
우리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임오년,
군부 쿠데타에 쫓겨
다락방으로 여주 논길로
치맛자락 끄을며
헐떡이던 뒤꿈치.

은하수,
무자위, 견우, 직녀, 짚신할머니
경복궁 부엌 굽어도는 가을
방방곡곡의 이름난 무당 불러들여
아들의 장수무강,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마다
쌀 한 가마, 비단 한 필씩 걸어
푸닥거리 드리던 왕비,

오늘은
민영준을 불러 청나라
원세개 앞으로
파병 요청서를 썼다,
조작청원이었을까?
타의에 의한?

『소국 전라도땅에, 태인 고부 마을이 있사옵니다,
원래 습성이 고약한게 우리나라 백성들입니다마는
이 고을은 유독합니다,

요즘엔 동학당이라는 비적들과
배가 맞아
만여명의 무리를 일으켜
어느덧 고을을 휩쓸더니
이제는 호남의 요지 전주성까지
저들의 손에 넣었습니다,

이미, 잘 훈련된 왕가 군사를 뽑아
이를 물리치도록 내려보냈사오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 역도들의 무리는
죽음도 무섭다 하지 않고 버티고 싸워옵니다,

궁병은 그들에게
터지고 패하여
많은 대포와 총검을 빼앗긴 채
퇴각해버렸나이다,

이제 저들은
서울을 넘보는 듯하나이다,

그러나 소국의 궁중에 둔
새로 훈련된 군대는 그 수가 적어
겨우 궁성을 지킬 정도에 지나지 못하며
더구나 실전에 경험이 없는 풋내기들이옵니다,

생각하옵건대, 이 비적의 무리들이
점점 더 번성 창궐하게 되면
저희 왕실보다도 귀대국에 많은 염려를 끼치 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미 임오, 갑신, 두 차례의
내란 때 귀대국의 군대의 힘으로
명맥을 유지한 우리 궁중의 일가친척

이번도 오직
귀총리님의 넓으신 재량에
의지코자 하오니 곧 북양대신 이홍장 폐하께
전보를 치시어, 얼마간의 군대를 보내시게 하 여,
소국의 내란을 대신 소탕해 주심과 아울러
소국의 미숙한 군대들도
귀국 장군을 모시고
군무 배울 수 있도록 주선해 주옵소서.』

산에선
원추리가 피기 시작하는
6월 초순
아산만엔
야포 4문
87미리 대포 4문 이끈
엽지초의 청군 6천명이
양총 들고 상륙,

이왕가에서 보낸
영접사 이중하의
꽃다발

합장대배를 받았다,

남진(南進)!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재빠르게
등덜미 잡는
손,

인천 가두에
5천 4백 명의
까마귀 떼 같은
일본군이 상륙
차렷 행렬로
점호,
왕가와
아산만의 눈치를 살폈다,

기름진 평야, 나누어먹고 싶은 배포였을까?
아니면 통째 혼자 먹고 싶었을까?

전함 일곱,
포함 둘,
체신선 하나,
기선 다섯,

사령관, 그도 고국엔
우렁바가지 같은 마누라 가진
일본군 제 5사단장
육군중장 야진도관,

여단장
육군소장 대도의창,

동학 농민군을 찾아
상륙한 이들 청·일군은
1894년 6월 11일
저희끼리 발포하기 시작했다,

성환으로,
서울로,
평양으로,
쫓기고 쫓으면서
딩굴었다,

청일 전쟁.

한 달도 안가서
전세는 판가름났다
백기 들고
배상금 내고
물러가는 중국,

이왕가 5백 년의
머리 위, 뿌리 늘였던
대륙 낙지발이 잘리고
대신, 섬나라
낙지발이 이날부터
석양진 이왕가 머리 위
뿌리 늘인 의미일까,

한편, 이 무렵,
농민혁명군 총본부
경기전 뜨락
고목 가지에선 매미가 울고
대들보 드러난
선화당 대청마루에선
농 · 관 협상회의가 열렸다,

삼베 전투복 입고 정좌한
전봉준,
가슴 열고 부채질하는 김개남
맞은편엔
도망간 김문현 자리 부임한
전라감사 김학진,
왕명으로 서울서 내려온 안무사 엄세영,

그리고 먹을 가는 몇 사람의
입회 서기

간장독에 앉았다 날아가는
파리 쫓아 고의바람으로 삼십리
뛰었다는 진주 꼽장이의 여름도
이런 무더운 공간이었을까.

흰 구름은
은행나무 위 머물러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위,
유화,
풀밭.

전봉준은
팔짱 끼고, 또
눈 감았다

『우리가 자진 해산하면
일군과 중국군은 과연
철수할까?

철수한 다음의
재기.
늦지 않을까?』

몇 시간 만이었을까,
양측 대표는 협정서에
서명을 마쳤다,

『전라도 5십 3주에 집강소를 설치
동학교인이 이를 맡아 민정에 참여한다,

동학도인과 정부 사이에 섞여 있는
미움을 일소하며, 탐관오리는 낱낱이
들추어 엄징한다.

모든 토지는 농민에게 평등분배한다,

횡포한 부호, 지주, 불량한 유림과
양반 족속을 엄징한다.

칠반 상놈 제도를 뜯어고치고
노비의 호적 문서를 불살라버리며
백성은 패랭이 꼭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과부의 개가를 허락한다,

무명 세리를 일체 거두지 못하며
공사채를 물을 것 없이 기왕의 모든
채무관계를 백지로 돌린다.

외국인과 잠통(潛通)하는 자를 엄벌한다.』

전봉준은 일어섰다,
『그럼
우린 싸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선은.

호남 땅에서만이라도
동학과 농민의
꿈은 쟁취됐습니다,

오늘밤 안으로
우린 전주성을
비웁니다,

선정 베푸시오,
집강소를 가지고
우리가
살펴봅니다.』

그날밤 자시
김개남이 이끄는 부대는
남문을 나서 남원 방면으로,

전봉준이 이끄는
주력부대는
북문을 나서
금구 방면으로 향했다

하늬는 봉준의 뒤를 따라
덕소길 걸으면서 울었다,

하늘엔 은하와 북두,
이따금 유성이
그 깊은 영원 속, 직선
긋고 간다,
어딜까?

사발덩이 같은
샛별이 동녘 하늘에
떴다,

우타박거리는 수없는
발과 발,
삼례에서 하늬는
봉준과 작별인사
나눴다,

봉준의 이마엔
구슬땀, 아니면 이슬방울인가,

가로 새겨진 깊숙한 세 줄기 강물,

하늬는 조국을 보았다.
끝나지 않는다.

『그 길로 서울 밀고 올라가
중심 도려냈어야 했습니다,
봉준형,

전주성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그 길로 서울 직충했더면
벌써 스무날 전에 우린
한양성 점령할 수 있었죠,

왜놈과
뙤놈들의 상륙하기 전.

중앙에
동학 농민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동과 서에
국제의 사다리
내려 걸쳤더면.

이제 늦었습니다,
봉준형, 어쩌실 셈입니까?』

하늬의 눈동자를, 그리고
자기의 내부를
그 긴 역사를
번갈아, 보며
앉아 있던 봉준

『옳았소, 그때
하늬 말이,

그러나 호남 일원에서만이라도
집강소의 설치로
우리 동학의 꿈
열매 익는다면.
좀더, 두고
기다려 봅시다
국제의 바람과 구름,

지금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이래야
또 달리 없지 않소?』

산에서
일찍, 잠 깬
새벽 바람이
삼베 적삼 속
기어들었다가, 소매 밖으로
나갔다,

바람내, 그렇지
머릿다발의
진아 살내,

『길은 아직
있습니다,

정공법(正攻法),
만 피하면 됩니다
정공법만.

만이 아니라
5만이 와도
이 나라 풍습과
지리에서 소외당한, 그
검은 바지,
청색 저고리,

아무리, 기관포
대포로
둘렀다 해도

밤 발라내듯
발라서, 망태 속 넣기란
쉽습니다,

유격전으로.
동에서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가슴에서.

온 백성은
산천은

우리편입니다.

봉준형,
밤으로, 산으로,
2백여 개의 유격대 나누어
북상시키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전봉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다문
입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십분,
동양의 하늘 밑, 또
 2십분,

나무,
하늘, 강,
밥짓는 연기.

『고맙소, 하여
그러나, 또 그보다 다른
길도 있을 것 같소
맡겨주오, 내께,
그동안 수고했소

천명(天命),
아마 쉬 다시
만나게 될 날 있을 것
같구려,』

두 사람은
눈 감은 채
손목 싸 쥐었다,

만경평야

아침 깬 바람이
벼포기 잎사귀 위
이슬방울 흔들면서
이 논, 저 논
인사를 다녔다.



 제 19장

금마.
하늬는 전우들과 작별
부여로 가는 길
마한, 백제의 꽃밭
금마를 찾았다.

언제였던가
가을걷이 손 털고
재작년 늦가을
진아는 하늬의 손가락 끼어
미륵사 탑 아래
그림으로
서 있었지,

그날은
저 탑날개
이끼 위
꽃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7세기 초
백제인들 슬기로 건축
8세기 초
낙뢰(落雷)로 반파(半破),
거대한 8층탑은
반공에 그 부러진
한쪽의
어깨.

진아의 아름다움에
홀려, 마을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었다,

동지 섣달이면
진아의 분신이
세상에 나온다,

아들?
딸?

남남 북녀,
북남 남녀,
먼 지방 사람끼리 만나면
우생학상 좋은
2세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가족 근친혼
마을 혼인
꺼려왔고,

눈이 가는 여잔
눈이 사슴 같은 사내,

입술이 얇은 사낸
입술이 넓고 두터운 여자,
비만한 여잔
깡깡한 사내,
마음이 가을 물같이
차가운 남잔
마음이 겨울 이불 속같이
다수운 여자를
찾아 다니는 법,

진아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그 푸담한
가슴.
꿈꾸는 듯 깊은
눈매 깜박이고
있을까,

계룡산쯤
동학사에라도
피란 가 있게 할 걸,

먼 고향
해주까지 보냈을까,
어리석음이여,

떠나기 싫어하던
진아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무거운 몸인데도, 하늬따라
종군하겠다고 우기던
진아.

어느 핸가 여름
대전에서 전주 가는 뻐스
타고가던 우린
금마에서 내렸었지,

선화공주의 남긴
적삼바람
어느 나뭇가지엔가
걸려 있을지도
몰라,

금마에서
서북쪽으로 2십리
가도 가도 황톳길
쏟아지는 땡볕 아래
엠원총 멘 제 2 훈련소
훈련병들의
굳은 행렬만,
지나갔다,

목은 말라도
구멍가게엔
건빵, 쪼코렡 뿐
막걸리, 김치 생각은
굴안 같은데
가게엔 영어로 쓴 부란디
화학주 뿐,

냇가에선
수십명의 수건 두른
부인들이
모래를 일는다,
탄피, 소총 알,
날품값 보리 두 되 값이라던가,

사십 쯤 되었을까,
한 아주머니가
담배를 청했다.

일본서 돌아온 곳간차 타고
돌아온 얼굴, 틀림없이
남편은 남양군도 징용 가
소식이 끊어졌겠지,

기준성 있었던
미륵山 정상엔
테레비 안테나,
세우느라, 기재 실은 차가
다녔다,

논배미에선
뜸부기가 울고.
하늬는 기왓장을
주워 들었다.

금마에서 남으로 십 리,
지금 5층 왕궁석탑이
서 있는 고구마밭은
황토언덕
옛날 무왕의 이궁(離宮)터,

신라 땅에 가
섬섬 옥수
선화공주 꼬여온
낭만.

선화공주 위해
무왕이 된
마동은
별장을 지었다,

어느날
선화는
미륵산 아래
산책하다
미륵불 캤다

땅에서
머리만 내놓은
미륵부처님의
돌.

마동왕의 손가락
이끌고 다시 가보았다,
안개.
비단 무지개,

백성들이 모여
합장,
묵념.

그들은
35년의 세월
머리에 돌 이고
염불 외며
농한기
3만 평의 땅에
미륵사,
미륵탑, 세웠다.

마동왕의 어머닌
부여 마래
화지산 기슭에
살았다,

지금도 마래
이궁터 방죽 가엔
돌 우물,
밤으로만
평복하고 나타나는
법왕 위해
마동 어머닌
돌 사발, 돌 우물
떠 바쳤다,

그, 돌 우물가엔
지금도 초가집 몇 채.

그 흙담집
고운 흙 위에서,
우린 출생했지,

돋나물,
미나리방죽, 냉이
달래 캐던 그 가녀린
손매디들은 어디 갔을까,

누나,
주워다 기른 누나
우린
마뿌릴 캐
궈 먹으며
여섯 살,

멍석 딸기 밭에서
고샹 뜯다
뱀을 봤지, 그리고 낮잠,

우린
먼 길 가는
바람, 아니면
햇빛,

열매,
지고, 피고

우린 어디까지
왔을까.

이틀을 걸어
하늬는 고향으로 왔다,
문설주에서도
수저,
툇마루쪽에서도
진아의 목소리,

들길에서도
콩밭,
앞산에서도, 웃음 머금고
치맛자락 아무리며
사쁜사쁜
걸어오는
입모습,

비단자락 밑의
살 냄새,

하늬의 마음과 몸은
휘말려 갔다,
혁명처럼, 해주로.
 제 20장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반도에서 청군이 퇴각한
다음 날,

일본에선
수뇌회담이 열렸다.

『쑥대밭 돼버리면
어때,

차라리 할 수 있으면
초토로 만들어버리렴아,

본토에서
반쯤 이민시키게,

그래서, 그 동학당인가
농민군인가 씨 말려버린 담에,
흥정하는 거야, 왕족과,

요리상은 이미,
받아놓은 요리상, 하하하.』

우리는 들었다
일본 어느 고장엔가, 지금도
잔디 입힌 코 무덤,

일찍이
식인종이었던
섬나라,

조선 사람의
대가리, 그 대가리가 왜
탐이 났을까,

칼로 베서
병아리새끼처럼
엮어 가던
임진년.

마늘접처럼
죽으로 엮여 가던
사람은 누구?

마늘접을
배에 싣고 가던 사람은
누구?

짐이 무거웠겠지
대가린 버리고
코만 베 갔다,

실로 꿰서
코를 가지고 가면
일본 천황 이하
대신들이

코날을 헤어서
조선 사람 코 열 개에
쌀 두 가마
무명 두 필을 상급했다던가,

가죽은
더 비쌌다,
인피,
구두 만들려고?
더 큰 충성으로 보였겠지, 사람가죽
한 장에 비단 세 필,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야만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사람을, 총으로
쏘고 있지 않은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반도에서,
그리고 나뭇잎 싻트는
따스한 봄날
교수대에서.

아, 일찍이
인류 예지의 발상지였던
아시아,
평화와 꽃밭과 덕망의 땅이었던
아시아,

오늘
누가 와서
함부로 총질하고
있는가.

임진년,
조선 사람의 종잘
말릴 순 없어, 칼 씻으며
그들은 돌아갔다.

민비,
여인이었다,
남과 북이
진창 되어도
자기 안방의 따뜻함
금은 노리개의 상자 속의 평화,
아들 남편의 영화 만은 목숨 내놓고
확보하고 싶은.

대원군.
이조가 내놓은
비뚤어진 사마귀,
양반은,
잘못 돋아난
물사마귀,

이미 대세 기운
파장에서 초조하게
우왕좌왕하는
더덕사마귀.

생의 마차를,
불성실하게 끌어온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발바닥 붙이지 못하고
당황한다,

임종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은

아닌 줄 알면서

안될 줄 알면서도
무엇인가,

아무꺼구
손에 잡히는대로
이 약
저 약, 목에 주워넣는다.

그래서
이조말의
더덕사마귀 떼들은

아닌 줄알면서도
원세개 장군이여
일본군님이여, 하며
서학놈들이여, 동학놈들이여,
동으로, 서로
수선피웠으리라,

어찌 됐거나
일본군대는
1894년 9월
충청남도 서산에 상륙,
금강 방면으로 내려왔다.

때를 같이 하여
서울에서도
3천의 왕병과
5천의 일군이
남진.

전봉준은 호남일대의
전 농민군에게
긴급 동원령을 내렸다,

『조선의 전체
동학 농민군이여,
어서 무장하고 시월 5일 밤까지
논산벌로 모여라.』

추수가 끝난
마을마다에선
그동안, 곳간 속
묻어뒀던
창,
엽총,
죽창,

없는 사람은
쇠스랑,
호미
낫까지
닦아 들고 나섰다,

만삭이 된 아내의
귀밑머릴 만져주며,
병든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무릎 나온 아들딸들의
코를 닦아주며,

그리고 정든 기둥나무에
눈 인사를 보내며
우리의 조상들은, 서리 내린 아침
집을 떠났다.

아침엔 태양
낮엔 까마귀
밤엔 시퍼런 하늘.

태백산,
바위틈서리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금강 줄기의 원천처럼,
논산벌로 모이는 길은
산마을에서 들마을로 내려서며
강물처럼, 사람은
불었다.

홍수,
사로, 팔방에서
모여오는
창과 머리
발과 증오의 홍수.

시월 십일
노성산에서
논산 이르는 벌판엔
20만의 농민이 집결.

낮이면
하늘을 가리는 흙먼지
밤이면
어둠을 수놓는
수천 개의 모닥불.

어디서 왔는가
바위 같은 주먹,
꿈틀거리는 심줄이여,

오,
무서운 감격이여,
반란이여,

오 무서운
힘이여
신이 나는 모임이여,

내일은 공주
모레면 수원
글피면 한양성

천추에
한 못다 풀
양반성의
점령이여

조국의 해방이여
백성의 해방이여

농민의,
노동하는 사람들의 하늘과 땅이여

오, 벌거벗고 싶은 감격이여
오, 위대한 반란이여,

꿀과 젖이 흐르는 땅,
꽃과 과일이 만발하는 강산이여,

눈빛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땅,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여.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여.

농민군 총지위 본부 막사
쉴 사위 없이
전령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남접대장
전봉준 총수,
의형제로 그제 밤 아우가 된 북접 대장
손병희 총수,

중앙에 높이 펄럭이는
깃발엔

『왜적을 몰아내자』

『썩은 왕실을 도려내자』

천안 세성산엔
북접 농민군 5천을
전위부대로 배치했다.
지휘자 이희인, 김복용,

홍성 방면엔
상륙한 일군의 남진을 저지코자
7천명을 배치했다
지휘자 박덕칠, 박인호,

만명을 손화중, 최경선에게 주어
전남 광주로 돌렸다,
왜군의 후방 상륙에 대비.

김개남은
1만 5천의 직속부대를 이끌고
진잠고개 넘어 청주로 진격했다,

시월 21일, 무서리 내린 아침
세성산 유진했던 농민군 전초부대가
왜군 기관총소대의 기습으로
전멸됐다는 소식이
본부에 들어왔다.

주력부대는
삼로로 진격했다

계룡산 동쪽 기슭 돌아
대교 쪽에서
공주감영 공격하는
손병희 부대 5만 명,

정남에서
노성 효포 거쳐 북상하는
신하늬 부대 4만명,

7만명 이끈 전봉준은
노성산 서쪽 돌아
이인에서 우금티를 넘었다.

산의 벽과
산의 벽이
마주 울고

역사와 노도가
산을 문질렀다

꽃도, 나무도,
돌도, 강물도,
北쪽 하늘 향해, 일제히
머릴 나풀거렸다,

감발과 감발
짚신과 짚신
꿰진 무릎과 무릎,

돌,
몽둥이,
삽,
호미,
쇠스랑,
괭이,
부엌칼,
부지깽이,

그렇다
정말,
눈 못보는 허리굽은 할머니들,
아들딸의 뒤를
따라, 부지깽이 들고
좇았다,

창,
심지총,
죽창,

살과 살,
뼈와 뼈,

눈동자와 눈동자,
이마와 이마,
가슴과 가슴,
쓸개와 쓸개,
미움과 미움,
분노,

고개 넘고
내 건느고
마을 지나

밑없는
어둠을 뛰었다.

일어나자
조국의
아들딸들아,

일어나자
반도의
중생들아,

목숨 살아 있는
동학교인이여, 모든 농삿군이여

일어나라,
조국의
모든 아들딸들이여,

손톱도 발톱도
돌도 산천도, 이 나라의 기름먹은
흙도 바라도
새도 벌레도 일어나라,

두렛군이여
조국이여
너를 부른다, 두렛군이여,
녹두알이여, 너를 부른다.

땅도 강물도
깃 털고 중천 높이 솟아라
너를 부른다

너의 피를 부른다
여문 뼈, 노랑 수건 휘날리며 오라
농민군이여.

우리들은 이때 공주 싸움에서
있었던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다.

23일 이른 아침
이인에서 곰나루 건너던
농민군이, 영목소위가 인솔한
일군 기관총 부대의 반격을 통쾌하게
때려 엎은 이야기,

지금의 공주 교육대학 뒤 봉황산 마루에 있던
관 · 일 혼성부대가 농민군의 포위공격에
쫓기어 무기 버리고 성내(城內)로 도망간 이야기,

그러나 무슨 소용이랴,
역사도 울고
산천초목도 울었다.

공주 우금티,
황토흙 속 유독 아카시아가
많은 고개였어,

어느 여름
땀 흘리며 뻐스로 올라가는
이 고개는 메미소리뿐이었지,

그날 낯선 여학생이 나보고
까닭없이 웃었지.
오빠였을가? 형무소에서 나오던
그 잘생긴 사내.

그리고 어느핸가
폭격이 있었다, 황소가 쓰러져 있는 마을
고갯길 한가운데
탱크가 누워 있었지,
부러진 포신.

귀를 째는
제트기 폭음,
즐비하게 흩어진 외제
기관포 탄환
의 깍지,

그 우금티 고개에서
동학군은 악전고투했다,
상봉 능선에
일렬로 배치,
불을 뿜는
왜군 제 5사단의
최신식 화력,

야전포,
기관총,
연발소총,
수류탄.

꽃이 지듯
밑 없는 어둠으로
수백명씩
만세를 부르며,
흰 옷자락 나부껴
수천명씩
차례차례
뛰었다.

민족의 제전,
반도의 산봉우리 높이
불타고 있는 저 모닥불 속에
던져라,
우리의 젊음.

없었노라
이 목숨 내맡길 자리.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성화(聖火),
 
젊음을 부르는
성화.

왔노라,
이제야 왔노라
거대한 천명.

이제야 보았노라,
우리들의 하늘.

발 밑에서 불타는,
우리의 하늘.

던져라
젊음.
던져라
창.
던져라.
증오.
던져라
반역.

영원의 강물이
우릴 손짓한다

오, 위대한
몸부림이여.

깊은 하늘,
용광로 불길 속에
사방, 팔방에서
무수히 던져지는
저 꽃다발.

지글거리는
역사의 밭이여.

꽃불 튀기는
피의 잔치여.

내가 왔노라,
이제야
내가 여기 왔노라.

뼈를 남기고
승천하는
승리여.

내 여기 왔노라
이제야
처음, 내 여기 왔노라.

내 여기서
불타며 승리했노라.
살덩이를 여기
찢어 던지며
내 영혼은 여기서
승리했노라.
만세,
만세를 불렀노라.

노래했노라
우리의 형제들은.

다음날의
백화(百花) 요란한
하늘밭 위해,
우리의 목숨을
거름밭에 던졌노라
용감히 노래하며 던졌노라.

알맹이를 발라서,
던졌노라.



 제 21장

사흘 밤낮의 싸움 끝에
전봉준은
총 후퇴령을 내렸다,

하늬는 이때 삼십명의
장정을 이끌고
적진 깊숙이, 봉황산 골짜기에 들어가
일본군의 대포 2문을 파괴하고,

관군의 본부 향해
화살 편지를 쏘았다,

『왜놈들 미워하긴
그대들이나 동학군이나 다를 바
없을 줄 아노라,

총부리 어서 왜놈들의 등으로 돌리오.』

뒷날 전해진 이야기로, 3천의 관군
거느렸던 서산 군수 성하영은 편지보고
고민했다. 그러나 그의 곁엔 일군의
감시병이 24시간 떠날 날 없었다,

갑자기 잠잠해진
함성 소리,
하늬는
척추에 땀 느끼며
유격대의 후퇴를 지휘했다.

사십보 앞 개울에서
포탄이 터졌다,

엎디었다,

뒤에서 또 터졌다
어디서 또 터졌다.
콩볶는 듯한
기관총 소리,
마당쇠의 고개가 부러져 있었다,

하늬는 보았다
능선 바위 사이 히노마루
기관총 사수,
검정 군복의 이마

쏘았다
겨냥없이,

미움으로 겨냥하고
마음놓고 쏘았다,
기관총이 굴러떨어졌다.
하늬는
뛰었다.

보리 뿌리
쥐어뜯으며 전우들은
꺾여져 있었다,

산마루
눈을 흡뜨고
네 활개 벌렁
왜군 기관총 사수는
누워 있다,

피가 어깨를 적시고
흙에도 스민다
피의 고향은 흙일까?

살이 아프거든
마찬가지,

그러나
여기가 어딘데?

너에게도
고국 가면, 콩밥 묻어 둔
아랫목.

쪽니 나온 마누라가
웃고 있겠지?

『불쌍한 것들』

하늬는
흙 한 줌 주검의 가슴 위
던져주며 뛰었다.

골짜기마다 시체의 산
피의 개울,
싸움은 끝난 걸까?

초겨울,
보리밭에 뿌려진
허연 거름 건더기처럼
골짜기, 갯바닥을 덮은
누더기 죽.

몇 달 두고
금강 이쪽 저쪽에선
살기름냄새 가시지 않았고

우금티, 무너미 황토고개에선
지금도 간간이
밭 매다 뼈마디 추려내는 일
있다 했다,

진아가, 와 있었다고
들었다, 앞치마 두르고
부녀자들 속에 섞여 동학군의 밥
나르고 있었다 한다.

하늬는 이인 장터에 이르렀다,
어제까지 수백의 아낙들이
국을 끓이고 부상병을 치료하던 장터는
홍수지나간 갯벌처럼 쓸쓸하였고,
수십 개의 가마솥, 생솔가지 꺾어 만든 막사들만
주인 잃고 쓰러져 있었다,

진아는 어디 갔을까,
그리고 그 많은 아낙들은,
또 부상병들은?

하늬는 소롯길로 들어
계룡을 향했다,

계룡산,
갑사로 가는 길가엔 농바위가 있다,

어느 해 여름
우린 손길 맞잡고 휘파람 날리며
깨꽃 피는
절길 걸었었지.
참외.

인천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는 어느
할아버지가 동학란 때 애길 들려줬다,

미처 후퇴 못한
부상 농민군이 이 마을에서
하루를 먹고 갔다

일병, 왕병 수백 명이
포위하고 기관포 난사하여
마을은 불바다가 됐다,

남자들은 없었고, 아닌밤중 천지 뒤집는
총소리에, 부녀자, 노인, 어린애들은
방에서 부엌, 부엌에서 변소로 뛰다가 죽었다.

요행히 살아남은 20여명의 아낙들이
불붙은 옷을 찢어던지며 뛰다가 日·王兵에
잡히어 윤간당하고 살해되었다,

옹기장수 부인 하나는, 일본군의 국부를 뽑아 죽이고
자기도 혀 깨물어 자결했다,

열두 살 먹은 소년 하나가, 헛간 속에 숨어 있다가
엄마의 비명 소리
듣고 달려가 일본군의 등에 쇠스랑을
꽂았다,

어느날 밤
대창 든 검은 그림자 셋이
나타나 일본군 보초 두 명의
가슴 뚫어놓고 총 뺏아 사라졌다,

며칠 후 역시 대창 든 세 그림자가
나타나, 관군 둘, 일본군 하나의 가슴
뚫어놓고 사라졌다,
그러나 뒤쫓은 일제 사격,
벌판을 뛰던 세 그림자 중 두 개가 거꾸러졌다,

머리에 노랑수건 두른
고향 모를 농군들이었다,
자취 감춘
한 사람의 게릴라가
하늬였을까.

억수로
비가 쏟아졌다,
초겨울인데도 여름비처럼
이틀 밤을 쉬지 않고 퍼붓는 비
그리고 때아닌 뇌성벽력,

사람은
산천의 아들,
아들이 아프면 산천도 찡그린다,
사람 마음에 궂은 일이 있으면
산천도 따라 울어줬다,
외적의 행패가 못마땅해
산천이 날씨를 궂혀 방해하고 있는 걸까,

갑사에서 하루를 묵은 하늬는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팔도강산에
고루 내리는 빌까,
서곡은 끝났다.
우선 끝났다,

뇌성벽력은 누구의 분놀까,
누구의 잘못을 꾸짖고 있는걸까,

십만의 농민이
죽고 다쳤다, 이제 그 가족
50만명이 학살당하고
주리틀리고 곤욕당해야 한다,

하늬는
계룡산 주봉 향해 뛰었다,
뛰다 걷다 뛰다 쓰러졌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쥐어뜯으며 뛰었다.
비는 옷을 적시고
살 속 스며 허리 아래로
흘러나리는 강물,

상봉에 가까울수록
뇌성은 하늘을 가르며
으르렁쳤다,

하늬는 기구(祈求)하며 뛰었다, 벼락아
때려라, 벼락아. 벼락이여, 나를 때려라, 내
대갈통을 부숴라, 벼락이여, 이 못난 놈을
박살내다오, 벼락아, 벼락이여,

하늬는 어느새 상봉에 올라와
바위 위 무릎 꿇고 있었다,

비는 더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도 더 무섭게 으르렁댔다,

얼마가 지났을까,

정신이 맑아왔다.
네 활개 벌리어
바위 껴안고 잠들어 있었던
하늬,

비는 멎고
하늘은 맑았다,

아침,
눈부신 태양이
동쪽 먼 산마루 위
떠 있었다,

저 태양은
영원한 걸까,

금강의
부드러운 물굽이가
멀리서
희게 빛난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이 흘러가는 강물.

등성이 두어 개만 내려가면
애화(哀話) 얽힌 오누이탑,
그리고 동학사,
진아와 앉아 쉬던
돌방석 아직도
나무 그늘 반쯤
비껴 있을까?

시뻘겋게 젖어 있는 바위,
봉황산에서 부상한 손바닥
찍어붙인 쑥이 비에 씻겨 없어지고
피가 맘껏 흐르다가 제풀에
멎어 있었다.

들여다 보았다
손, 맞창이 난
손바닥.

벼 베러 다니던 손,
진달래 꺾어 이웃 소꿉 동무
나누어 주던 손,

진아의 보드라운 볼 어루만질 때
그리고 그녀의 가슴
허리 아래 어루만질 때
이 손은 내 전부였다,
생명,
천재(天才),

그녀는 자주 내 손
되받아, 꼬옥 쥐어왔지

마곡사에서
범종 함께
쳐 볼 때도 이 손이었다.

엄마는 비 오는 날,
비.
어떻게 생겼었을까,
내 손 만들어 놓고 간
엄마는,
그 피는 어떤 피였을까,


마음은,
목소리.

하늬는
바위 위 기댔다,
동쪽 향해 경사(傾斜)로 누웠다.
반도 위
누워 있었다,

눈을 감았다.
원허(原虛),
텅빈 바람의 마을,

눈을 떴다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박혀 빛난다,

눈을 감았다,
하늘,
가슴 속
생명 속, 안방 다락방까지
골고루 적셔 들어오는 하늘 소리.

꿈이었을까
반도, 산과 마을
도시와 농촌,
태평가 부르며
일하는 노동자들 머리마다에서
분수가 솟았다,

반도 전역은
옥 같은 분수,

분수에 휘말려
곤두재주 넘으면서, 쏟아진다, 쏟아진다,
무수한 양반 아전, 수령 왕족들이
바다로 쏟아진다,
양총멘 뙤놈
왜놈들이
곤두재주 넘으면서 쏟아진다,

전봉준은 어찌 됐을까,
김개남, 최해월은?
손병희, 손화중은?
재조직,
그렇다 재조직,
그리고, 알맹이만 모음
유격부대 조직,
동학 농민 혁명위원회
의 깃발.


 제 22장

씻어 내면 또
모여들 올 텐데,

씻어 내면
또 열흘도 못 가
모여들 올 텐데,

이 맑은 피로만
채워버리면
좋겠는데,

이틀도 못 가
검은 찌꺼기들은
또 모여들 올 텐데,

그러나, 내일
새 거품 모여 올지라도
우선, 오늘
할 일은

씻어 내는 일,
저 하늘의 검은 찌꺼기
오늘 할 일은 모두
씻어 내는 일.

1960년 4월
우리의 남이는 소방차 앞에서
허리를 꺾었다.

유에스의 상표 찍힌
탄환이 그의 어깨를
쪼갰다.

26일,
옆에 라이락가지 들고
낯선 소녀가 서 있었다,
남이는 꽃에 손을 뻗치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보았죠? 푸른 얼굴.
영원의 강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어.
우리들의 발밑에,
너와 나의 가슴 속에.

우리들은 보았어, 영원의 하늘,
우리들은 만졌어, 영원의 강물, 그리고 쪼갰어,
돌 속의 사랑, 돌 속의 하늘.
우리들은 이겼어.



 제 23장

시월 25일
공주 우금티의 결전 이후
일본군과 이왕병은, 패잔한 농민군, 농민군 가족,
농민군에게 밥 지어준 부녀자들까지 수색, 추격,
총으로 쏘고 칼로 찔렀다,

가는 곳마다, 마을은
태풍이 지나간 벌판처럼
쓸쓸하였고,
두어 그루의 나무가
중둥이 부러진 채 추레하고
서 있었다.

집집마다 연기가 끊어지고
인적도 끊어졌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도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땅을 굽어보고, 그러나 눈은 불안에
떨면서, 그렇지
쫓기는 사람처럼 바삐바삐
지나갔다,

눈발 날리는
11월 한달, 가마니 짜고
짚신 삼는 12월 한 달, 다음해
정월 대보름, 2월, 3월
자운영 피는 춘궁기까지,
이왕병은 왜군과 손잡고 다니면서
팔도강산 방방곡곡을
총검으로 쑤셨다,

영동에선
아궁이 속 숨어있는
일곱 살짜기 계집앨 끌어내
아버지 있는 곳 대지 않는다고
기관총 갈긴
일병,

청산에선
미친개, 이진호 이겸제 등이 거느린
왕병과 일군 기관총 소대가
3백 5십명의 농민 사살하여
보리밭에 버렸다,

그들은 다음날
옥천에 들어가
동학교도 정원준 서도필 등
아홉 명의 노인을
눈 사태 속 끌어내
발가벗겨 세워놓고
사격,

이두황이 인솔한 왕병은, 왜군 기관총 소대의 지원을
얻어 온양에서 농민 9십여 명을 창고 속에 몰아,
넣고 불질렀다, 그리고 동네 부녀자들 강간한 뒤,
기관총 난사.

이두황, 그도 엄마 젖을 빨며 자란, 사람 아들이
었을까, 바람 맑은 반도에서도 이따금 그런
고장난 기계가?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백 2십명, 4백명,
2백 7십 명씩 총살하고 강간하며
해미, 서산, 매현
유구, 노성, 은진
정산 등으로 설쳤다,

이제 고만,
팔도 휩쓸던 이런
고장난 얘기는 끝도 없고
부끄러운 얘기,

다만 아직도 몇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후퇴령을 내린 전봉준은
잔존부대 만여명 이끌고 전북
금구까지 와,
산과 내를 이용하여
반격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월등한 화력 앞에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아성,
대포와 기관폴 맨몸으로 막을 순
없었다, 더구나 봉준의 오른쪽 어깨엔
깊숙한 파편,

봉준은, 자진 해산령을 내렸다,

『동지들,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의 날, 기다리고 있어 주오.』

눈 벌판 속을,
순창 땅 향해
산길 걷는 외로운
그림자,
봉준의 마음,

하늬가 말하던
유격대,
유격작전을
생각하며 산길을 뛰었다,

순창군 노피리
김접주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갑오년 12월 초이틀,
밤,

군불 넣은
쩔쩔 끓는 아랫목.
밖에선 함박눈,
내년의 풍년을 예고하는
소담한 함박눈이
오리나무 숲의 시린 발등을
덮으며
쌓인다,

지리산 양지쪽,
눈 덮인 붉은 흙 속에선
쑥, 진달래 뿌리들이
봄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그 향내나는 살로,

처마 속 잠자던
참새들이 푸득푸득 날아
뒤꼍 장작우리 속으로
숨었다,

그날 새벽
봉준은,
눈길 위 자죽난
천냥의 현상금 따라 뒤쫓아온
토반(土班) 관병 스무 명에게 포위되어
묶였다,

눈먼 토반들은
다음날 천 량 받고 봉준을
일본군에게 인도했다,

봉준은
동앗줄로 묶인 채
들것에 실려
서울로 압송,

들 것을
네 귀퉁이서 얽메고 가는
사람은 상투 튼 조선 사람
그 뒤 총들고 따르며 담배 피는
사람은 왜놈,

봉준은
서울 오는 나흘 동안
입 한 번 열지 않았다.

눈은
감은 채, 물 한 모금
담배 한 모금
입 대지 않고
조용히, 그림처럼 정좌하고
있었다,

머리 위서
반도의 하늘이 그를 호송하는 듯
따라오고,

어디선간
방울새, 한 마리
그의 어깨 위 날아와 앉았다간
냇물 건널 때
날아갔다,

산이
가면 마을, 마을이
가면
들이 열렸다,

기다리는 사람은
맛보는 사람,

돌아 다니는 사람은
먹는 사람.

을지로 6가
지금은 도로공사로 헐렸지만
광희문 밖,
언젠가
미군 찦이
대포집 들이받아
안방 뒤집어 놓고
핸들 잡은 채
껌 씹고 있던,

그리고 그 앞으로
천연스럽게
여대생,
너는 걸어오고 있었지,

지금도 있을까
녹두지짐이를 팔던
눈이 무른 그
과부댁들,

언제 보아도, 광희문
너는
우중충한 돌이끼.

1895년
3월 29일, 아침부터
줄기차게 비가 왔다,

형리가
동아줄 끄르는
자기 손가락마저
분간 못할만큼
비가 쏟아졌다,
온종일.

그리고
오후 세 시, 돌문 밖
질경이랑 반지꽃이랑 냉이랑
예쁘게 돋은 흙언덕
높은 장대 위,

교수된
전봉준의 머리는
칼로 다시 잘리워
매달리웠다,

다섯 차례의
혹독한 왜식 고문,
일본인 낭인 무전, 전중의 번갈은
일본망명 권유,
인품에 감동, 뒷날의 쓸모를 계산한
일본 공사 정상의 은근한 호의
들은 체하지 않고
발 밑에 이까려버린
농민지도자
전봉준의
비.

그는
목매이기 직전
한 마디의 말을 남겼다

『하늘을 보아라!』

그의 곁엔
고창에서 체포된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성두한,
의 머리가 나란히 효시됐다.

그 앞을, 누가 지나갔고
누가 지나왔을까,
그리고 며칠 후, 서소문 밖
장터 네거리엔 전주 숲정에서
참수된 김개남, 성재식의
머리가 효시됐다,

맨발벗은 아이들이
손가락 물고 서서
구경하고 있었을까,

그 무렵
여행용 트렁크 들고
한양성에 들른 영국 관광객
비숍 여사는, 표현했다, 효시된
혁명지도자들
얼굴마다,
서릿발이, 엄숙하고
잘생겼더라.

기록에 의하면
갑오년서 다음해 봄까지 사이
전국에 5십만명의 농민이 봉기,
싸웠다,

그리고
십만명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었다,
충청, 전라도에선 전지역,

경상도 상주, 문경, 영주
진주, 마산, 밀양, 김해,

강원도 원주, 춘천, 홍천,

황해도 해주, 사리원, 백천,
구월산, 풍천, 장연, 수안,

평안도 용강, 평양, 신의주,
정주, 진남포,

함경도 원산, 청진,
방방곡곡에서
쇠스랑 들고 함성지르며
일어났다,

벗고도 싶었으리라, 굴레,
찢고도 싶었으리라, 알살 덮은
쇠항아리
찢어진 쇠항아리 사이로 잠깐
빛난 하늘,

살무더기의 소망
꽃들의 기구
쌀밥 사발의 기원,

누가 꺾었나,

그러나
꺾였을까?

<밀알 한 알이 썩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 알로 있을 뿐이나,
땅에 떨어져 썩으면
더 많은 밀알 새끼치느니라.>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그러나
찢기우지 않은 바람버섯은
하늘도 못보고,
번식도 없다.



 제 24장

불달은
몸둥아리엔
꽃이 피었다.

멍석
그늘.

돌창을
던져라,

꽂힌
바위.

호수 위엔
맑은 바람

아우성은
승리 높이

상천에
뻗고,

죽음은
빛났다.

숱한 낮.
태양 익은
능선따라

서린
입김.

돌창을 꽂아라,
푸른
동자.

돌창을 꽂아라
푸른
동자.

연고(戀苦)는
빛났다.

새벽

이슬 쏟은

네 발

사자.

죽음은 썩고
뿌리 적신
생피.

비단 젖가슴
흙밭 위에,

억센
사지,

돌창을 꽂아라
푸른 동자.

쓰러지지 않았다,

혼은
뛰쳐나와
하늘을
갔다.

숱한 밤.
멍석 딸기 골짝마다

꿈은,




 제 25장

진아는
금강 가에 서 있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
수면은, 수억만 개의 물팡개
싣고 흘러간다

조그만
보자기 끼고 나룻배
기다리는 진아의 머리, 목덜미
앞가슴 허리 아래를
강물은 흘러내린다,

살아 있을까 하늬는.
아직, 그리고
나 생각하고 있을까,

불타던
부여의 집,
통곡하던 마을과 마을,
그럼 우리가 갈 곳은?

하늬는
자기 죽음을 예감했던 걸까,
진아는 허리 더듬어 치마 속으로
은방울 만져 보았다,

아기 낳거든
자기와 똑같은 이름, 하늬로
부르라 했다, 그리고 은방울 달아주고,
해주길 떠나던 날 아침.

즐거웠던
시절은 철없이 뛰놀던 해주땅,
아빠는 지게 바작 위
나 태워
산나무 다니셨지,

사과밭,
낯 모르는 할아버지가
치마 한 아름 사과
안겨주고 즐거워하셨지,

소꿉동무들,
각시풀 다듬던 그 손매디, 맑디맑던
그 눈동자,
윤기 짙은 머릿다발,

그러나
어려선 그렇게 예쁘던
손과 살색,
나이 들면 스물도 되기 전
누우렇게 시들고 말았지,
궁중 생활,
그건 잠자는 시간밖엔
살아 있는 마음이 없었다,

하루종일
지껄여대는 여자들,
외양간에 검불만도 못한 이야길
그 찢어진 입으로.

돼지 같은 남자
많이 지껄이는 여자
그건 같은 말.

훌륭하다면
한없이 훌륭
못됐다면 한없이 못된건
여자,

엉덩이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하늬,
하늬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여자.

하늬를
만나기 위해 성장한
육체,

곧,
또하나의 하늬가
내 몸속에서 세상에
나온다,

진아는
눈을 감았다,

다시 태어나진
못하겠죠, 하늬?
한번 더 걷고 싶어요
강 언덕길, 손길
마주잡고.

석양이 비단처럼
비쳐들던 숲 속,

당신은 나리꽃 앞에
무릎 꿇고 꽃 입술에
입맞춤하며
날 놀리셨죠,

금빛 꾀꼬리가
우리 머리 위를 장난치듯
아슬아슬하게
날아갔어요,

풀방석 위서
까불며, 속삭이며 새우던
하룻밤,

전, 원추리꽃으로
왕관 만들어 당신 머리 위
올려놔 드렸어요,
끝났군요,

당신 말씀대로
정말 우리는 한 가지 목숨의
흐름일까요,

이 세상은,
우주에 있는 모든 생물은
한 가지 목숨의
강물일까요,

그래서
죽음도, 삶도
없는걸까요,

영원한
바람만 있는걸까요,
정상을 향한.

당신도, 나도
한 가지 강물의 흐름 위에
돋아난 잠깐의
표정일까요,

그럼 구태여 혁명까지 조직하셨어요,
한 모서리 희생을 치러야 하는.

잘 모르겠어요,
당신을.

나룻배, 흠씬 젖은
애꾸 할아버지가
나룻배를 모래밭에
대고 닻을 던졌다.

그녀가
서 있던 강기슭,
언젠가, 6월
아름다운 석양,
소녀들이 노래하며 지나갔다,

강산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가는 곳마다
도시와 마을
마을과 어촌이
쑥대밭되던 폭격,

제트기의 폭음
그때 우리들은 그걸
호주기라 불렀지,
오스트라리아산이라던가,

또는 쌕쌕이라고도 불렀지,
소리도 없이
한쪽 하늘에서 나타나
땅을 뒤짚고 사라질 때 그제서야
비행기 소리가 났지,

내 친구
철이 누난
부엌 안에서 보리 방아 찧다
날아갔어,

순이와
순이 엄만
콩밭 매다, 아름다운 코
흙에 박았지,

그 여름
우리들은 쫓겨 다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른 체,
기껏 눈인사나
나누며 남으로 북
밀려다녔지,

곰나루,
왕진나루,
백강,
귀암나루,
맞바우,

사람은
비어있고,

대낮,

역사 없는
박물관 속,
오, 소리쳐도
들리지 않던
공간이여.

꿈속같던
강나루, 사공은 어디가고
빈 배만
온종일
철썩이던
강언덕,

내,
부여안고
울었던 미루나무여.

그핸
가물었다, 해서
우리는 불달은 흰
모래밭,

옷 벗어
머리 이고
한 발 한 발
강물을 건넜지,

나의 등에
업혀 금강 건너던,
여름인데도 겨울 쉐타 입었던 네 살짜리
서울 아가여, 그후, 엄만
찾았는지? 지금은 대학생?
천안 고개
호젓한 소롯길에서
우리 함께 붉은 까치밥
따 먹으며 피난길 걷던 노량진 소녀여
지금은 어디?



 제 26장

황폐한 땅에도 아침은 온다,
아득한 평야에 새벽이 열리면
어디서라 없이 들려오는 가벼운 휘파람 소리,

물 길어 오는 아낙의 물동이 가에
반도의 아침이 열린다,

냇가에선
일찍 깬 물새가
강언덕 인사를 보내며
이리저리 준비운동을 하고,

외양간에선
건장한 황소가 긴
심호흡을 한다,

진아는
아들을 낳았다,
복슬복슬한
아기 하늬,

금강의
흰 물굽이가 가물가물 내려다보이는 동혈산,
쉰 길 바위 아래 초가집, 사리원댁
할머니의 도움으로
꼬마 하늬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애정
쏟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벌어진 석류알처럼 피어나고
눈동자는 물먹은 별
습기차게 빛난다,

자침(磁針)이
겨냥을 얻어
조금 흔들렸단 멎고
기둥 못을 뽑아 달아나려고 하듯,

넘칠 곳
찾던 저수지의 물이
터 놓은 물꼬를 얻어
미친 듯 춤추며 휘말려가듯,

암 전기가
수 전기를 만나
힘을 규합하며 커다랗게
빛 발하듯,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화안히 피어난다.

진아의 얼굴도
봄과 함께, 사랑과 행복으로
다숩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
그렇다
햇빛이 준 아름다움일까,

옛날
하늬가 그랬었듯
꼬마 하늬의 탐스런 손목에서도
조그만 은방울 떠날 날
없었다.

아기 하늬
품에 안고 진아는 뜰에 앉아
골짜기 덮은 진달래
구경,

옆에선
하늬 얼르며
뜨개질하는 사리원댁,
할머니.

우리의 가슴 적시며
노래가 지나가듯,
우리의
강산 디디며
비는 지나갔나,

비먹은
진달래, 강산을 채워
일제히 진달래 마을로
피어나는데,

우리의
가슴마다
새 비 맞은 진달래 화창히
피어나는데,

진아는
품속의 하늬, 얼르며
먼 금강줄기
바라보다
머루알 깨물었다.

그러나
슬프진 않았다, 하늬는
진아의 전부, 전 우주,
어디서 오는걸까, 이 사랑
이 나른한 충족.

이제 고만.
진아의 이야긴 섭섭하지만
끝내련다,

다만
하늬가 남아 있다,
어떻게 됐을까, 계룡산 산마루에서 빛났던 그 정신,
그러나, 오늘까지
아무리 자료를 뒤져도
그에 관한 소식
얻을 수 없다,

다만
젤 마음에 지피는 이야기
하나,

곰나루 함성 뒤
석달 지난 다음해 정월
보름날,

서정리 역에선
왕병과 왜군, 동네 토반, 유림들이 합세
마을 농민 스물일곱 명을
능지처참했다,

네 마리의, 말 허리에 감겨진
쇠줄로 사지를 묶어
사방으로 달리게 채찍한다,

눈 벌판 속
수십 개의 모닥불 피워놓고
온종일 술잔 기울이며
베푸는 장님들의
피의 잔치,
북소리,
환호성.

어쩌자는 걸까,
바람버섯 찟는 걸까,

꽃노을
아름답게 물든 저녁나절
웬 낯선 청년 하나가 산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형장의 중앙 향해
걸어 들어갔다,

형리들의 손
뿌리치며,

그리고선
눈 위에 네 활개
펴고 드러누웠다,
이목구비가 수려한
사나이, 얼굴에
돋는 무지개.

어서
나, 찢으라고 말할 뿐
딴 말이 없었다,

한쪽 손바닥에
덜 아문
흉터가 있었다,

네 쪽으로
찢길 때도
떡이 찢기듯,
살덩이만 몸부림쳤을 뿐,
신음소리 하나
없었다.



후화 < 1 >

밤 열한시 반
종로 5가 네거리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통금에
쫓기면서 대폿잔에
하루의 노동을 위로한 잡담 속
가시오 판 옆
화사한 네온 아래
무거운 멜빵 새끼줄로 얽어맨
소년이, 나를 붙들고
길을 물었다,

충청남도 공주 동혈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소년의 눈동자가
내 콧등 아래서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들고
바삐바삐 지나가는 인파에
밀리면서 동대문을
물었다,

등에 짊어진
푸대자루 속에선
먼길 여행한 고구마가
고구마끼리 얼굴을 맞부비며
비에 젖고,

노동으로 지친
내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 2 >

1894년 3월
우리는
우리의, 가슴 처음
만져보고, 그 힘에
놀라,
몸뚱이, 알맹이채 발라,
내던졌느니라.
많은 피 흘렸느니라.
1919년 3월
우리는
우리 가슴 성장하고 있음 증명하기 위하여
팔을 걷고, 얼굴
닦아보았느니라.
덜 많은 피 흘렸느니라.

1960년 4월
우리는
우리 넘치는 가슴덩이 흔들어
우리의 역사밭
쟁취했느니라.
적은 피 보았느니라.
왜였을까, 그리고 놓쳤느니라.

그러나
이제 오리라,
갈고 다듬은 우리들의
푸담한 슬기와 자비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 세상 쟁취해서
반도 하늘높이 나부낄 평화,
낙지발에 빼앗김 없이,

우리 사랑밭에
우리 두렛마을 심을, 아
찬란한 혁명의 날은
오리라,

겨울 속에서
봄이 싻트듯
우리 마음 속에서
연정이 잉태되듯
조국의 가슴마다에서,
혁명, 분수 뿜을 날은
오리라.

그럼,
안녕.

언젠가
또다시 만나지리라,

무너진 석벽, 쓰다듬고 가다가
눈 인사로 부딪쳤을 때 우린
십 겁의 인연,

노동하고 돌아가는 밤
열한시의 합승 속, 혹, 모르고
발등 밟을지도 몰라,
용서하세요.

그럼
안녕,
안녕,

논길,
서해안으로 뻗은 저녁노을의
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
우리의 입김은 혹
해후할지도
몰라.

정형시,서사시

서사시3개 정형시3개 제목이랑 작가이름도써주세요. 서사시 국경의 밤 - 김동환 남해 찬가 - 김용호 금강 - 신동엽 정형시 개화 -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벽공 -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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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시 서정시...? 뜻

제가 중 1인데 정형시 서사시 서정시 내형률 외형률같은거 뜻을 잘 모르겠는데 몇가지만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시의 종류> (1) 형식상종류 1) 정형시(定型詩) 정형시라 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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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정형시,산문시,서적시,서사시

자유시,정형시,산문시,서적시,서사시의 개념 알려주세요ㅠ [국어 ] 이곳으로 질문하시면 좋은 답을 얻으실 겁니다. http://kin.naver.com/qna/list.nhn?dirId=11080102

중세 유럽 정형시의 하나로 주요...

... 중세 유럽 정형시의 하나로, 음유시인에 의해 불려진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를 "발라드(ballade)"라고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에 있습니다. http://100....

정형시,자유시,서정시,서사시,극시에데해서

정형시,자유시,서정시,서사시,극시 각각에 관련된 시 2개씩 준비해주세요... 학교 에서 셤을보는데 차이점좀 알아보려고하는데요.. 님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에 따라 답이...

서사시 극시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 중...

예를 들면 시조는 정형시인것 처럼요 향가나 고려가요는 시의 갈래인데 서정시 서사시 극시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 중 어디에 해당되나요? 1. 향가 * 내용상; 서정시 -향가의...

내제율과 외제율,그리고 정형시..

정형시는 그러니깐 규칙이 짜여진 형태..틀에 맞춰서 써야되는거잖아요 그런 형식좀... 고대에서는 서사시나 극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서정시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시 순우리말

... 형식에 따라 정형시ㆍ자유시ㆍ산문시로 나누며, 내용에 따라 서정시ㆍ서사시ㆍ극시로 나눈다. 3.명사 문학 한문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고대 중국에서 이루어진 양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