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에 쓰인 표현법들

안녕하세요

시를 읽을때 질문자님처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현대시를 공부할 때 시에 쓰인 표현법들을 모두 외우려 하는것은 바람직한 공부법이 아닙니다.

표현법들의 정확한 정의와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연습을 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대구법이란, 비슷한 어조나 어세를 가진 어구를 짝 지어 표현의 효과를 나타내는 수사법을 의미하고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이란 문장 구조상 유사한 형태가 반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을 먼저 보겠습니다.  작자 미상의 '관등가' 의 일부입니다.

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 답교하고 노니는데

우리 님은 어디 가고 답교할 줄 모르는고

이월 청명일 나무마다 춘기들고

잔디 잔디 속잎 나니 만물이 화락한데

우리 님은 어디 가고 춘기 들줄 모르는고

반면 대구법이 사용된 구절을 보면,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아니한고

이황의 '도산십이곡'의 부분입니다.

차이점을 아시겠나요?

통사 구조의 반복은 말 그대로 '문장 구조의 반복'입니다.

엄마가 밥을 먹었다.

엄마가 밥을 먹었대.

엄마가 밥을 먹었지.

같은 문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통사 구조의 반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 대구법은 문장 구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단어의 반복 역시 관련이 없습니다.

단, 문장이 A B C D로 이루어져 있으면, A' B' C' D'의 형태로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대응해야 합니다.

조건 두 가지를 잘 챙기세요, ABCD의 대응+앞문장 뒷문장 입니다.

ㄱㅅㅈ 바보 ㅇㅈㅇ 천재

ㄱㅅㅈ 천재 ㅇㅈㅇ 바보

두 문장은 완벽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ㄱㅅㅈ 바보 ㅇㅈㅇ 천재

룰루룰

ㄱㅅㅈ 천재 ㅇㅈㅇ 바보

이 구절은 대구를 이루지 않습니다.

대구를 이루는지 여부를 판단할 두 문장을 엮으려고 할 때, 가운데 룰루룰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 드리자면,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은 '시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대구법은 '구절 안에서'나타나는 수사법입니다.

즉, 대구법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1번 문장과 2번 문장이 대구를 이룹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3개 이상의 문장이 대구를 이뤄 3,4,5...번 문장까지 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은 시 전체를 조감하며 "이 시에서는 유사한 통사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 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사평역에서 의 일부분 입니다. 대구법은 한눈에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구절이 3음보의 운율을 가지고 있어서 대구법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은 시 전체에서 파악해하는것이 원칙입니다.

시 전문을 보았을 때, 정형화된 통사 구조의 반복은 보이지 않으나, 질문하신 부분에서는 통사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A-로 묶어 놓고 문제에서 -A-부분에서는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으로 ~하고 있다. 라고 물어보면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열거법은 두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물들이 나열되었다, 즉 열거되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감, 배, 사과, 딸기 ... 이런식으로 개념들을 나열할 때 사용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만약 이 문장이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이라고 표현되었으면 대구법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 내에서는 애매한 지위를 가집니다.

통사구조는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질문자님이 시를 공부하면서 가지시는 의문들에 대하여 100% 공감합니다. 참고서에 보면 사평역에서의 표현법에 대한 설명으로 시각적 이미지와 대비의 효과적 사용, 소멸과 떠돎의 이미지를 담은 시어 사용 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궁금해 하시는 대구법, 통사구조 반복, 열거법 등은 절대로 나와있지 않을겁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시를 쓸 때, 강조하기 위해 수사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中

'아아'라는 말을 쓴 이유가 분명 존재합니다. 시적 화자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겠죠. 따라서 참고서에서 님의 침묵을 찾아보면 영탄법이 중요한 표현법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사평역에서' 에서 작가가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라고 표현할 때, "문장을 예쁘게 배열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겠군!"라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주목할 표현법은 비유법입니다. 몇몇이 조는 모습을 그믐처럼 존다. 라고 표현하여 사라지는 그믐달과 같이 희미하고 힘없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중요하지 않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수능시험에 나오지 않습니다.

수능시험은 45문제밖에 출제하지 못합니다. 문학은 15문제이고, 현대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많아야 4문제 정도입니다. 학생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출제자들이, 1년간 학생들이 고생고생하여 공부한 내용을 평가할 때 물어보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대구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시를 읽고 화자의 상황/정서/태도를 파악할 수 있는가. 그것이 시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또, 사평역에서가 출제되었는데 표현을 물어보는 문제에 오답 선지로 

'대구법이 사용되었다.'가 사용된다면,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때문에 대구법이 사용되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겠죠.

애매한 것은 절대로 내지 못합니다. 절대로요.

우리가 현대시 두개 주고 비교하는 문제를 틀리는 이유는

1. 선지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 막말로 대구법이 뭔지 모르면 못 풀겠죠...

2. 선지의 표현법이 (가), (나)에 있는것을 찾지 못해서

-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학 개념어를 정확히 정의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만, 촉박한 시간 하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명확한 근거를 답변확정하지 못한 채로 답을 고르기 때문도 있습니다. 시간만 있다면 선지의 표현법이 어느 부분에서 나타났는지 느긋하게 찾겠죠.

학생의 태도처럼 '사평역에서'에 나온 표현법들을 알려주세요 라고 질문하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수사법을 나열하여 필기하는 것은 쉽지만, 참고서들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닥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 자체를 외우지 않아서 수능시험을 틀릴 일은 없다는 겁니다.

만약 그러한 참고서가 있어서 달달달 외워서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면 한 문제는 맞출 수 있겠습니다.

31번.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과 같은 문제 말입니다.

따라서 시를 공부할 때는 화자의 상황/정서/태도를 파악하고, 이를 작가가 어떻게 표현하였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아~ 지금 화자가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상황)

몇 사람이 조는 모습을 그믐처럼 존다고 표현했구나, (표현)

그믐달의 힘없는 이미지를 가져왔군! 화자는 지금 힘없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구나! (정서)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물론 시험장 가서 일일히 이렇게 따지다보면 시간이 부족하니까...이해하며 넘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표현법은 중요한 것을 체크하고, 보기에서 물어보는 것을 찾는 것이 맞습니다.

시 문제집을 푸는 건 상황, 표현을 한번 훑는다고 생각하면서 보세요. 어차피 처음 보는 작품 나옵니다. 처음 보는 작품도 이해할 수 있는 점수을 길러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는모습 너무 예쁩니다. 1월달 질문인데 4월에 답변해서 미안합니다.

바보 ㄱㅅ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