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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장.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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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 화려한 의자와 왕관을 쓰고 있는 사내 앞에 엎드려있었다. 왕관을 쓰고 있는 자는 심기가 불편한 듯 턱을 괴고 엎드리고 있는 사내를 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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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느냐?”
“왕자를 죽여야 합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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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이인 왕자를 죽이라니. 5년 만에 생긴 아이를 죽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오늘 아내가 아이를 놓아서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보러가고 싶은 상황에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지금 당장 검을 뽑아 저 사내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제국의 왕인만큼 그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침착함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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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냐? 왕자를 죽이다니.”
“왕자가 전하께서 앉아계신 곳에 앉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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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내가 죽으면 당연히 후계자인 왕자가 이 자리에 앉게 되겠지.”
“허나 전하의 운명은 왕자에 의해 끝이 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잠깐 놀라더니 다시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왕좌 뒤 벽에 가로로 걸려있는 네 자루의 검을 보았다. 맨 위 쪽에 자리 잡은 검은 그의 검이고, 그 아래에 거린 검들은 그의 형제들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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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칸 제국은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하고, 줄곧 바이트 대륙을 통치하였는데, 몇 십년간 그 제국이 네 개로 나뉘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인 일린 판 파이네의 아버지 루크 판 파이네가 그의 네 아들에게 제국을 나누어 주었다. 제국의 북쪽을 차지한 일린은 형제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였고, 직접 그의 검으로 형제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자기 형제들을 죽이면서 이 자리를 얻어내고 지켜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빼앗긴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린은 엎드려있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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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가? 자네 목숨을 걸 수 있겠느냐?”
“예, 전하.”
일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그의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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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값비싼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녀 옆에는 두 명의 하녀가 갓난아기를 각각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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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리옵니다. 쌍둥이 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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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하녀가 웃으며 말하였고, 누워있는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5년 만에 생긴 아이이고, 왕자인데다가 쌍둥이라니. 남편이 필시 기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하녀에게서 두 아이를 건네받고 안아보았다. 아이들은 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고, 그녀는 기뻐하는 남편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방에 들어온 것은 하인이었다. 그는 당황해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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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큰일 났습니다, 왕비마마. 저, 전하께서 왕자를 죽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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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이냐? 전하께서 왕자들을 죽인다니?”
하인은 그가 본 상황을 그녀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고, 설명을 모두 들은 그녀는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으로 가득 찼다. 희망과 축복으로 가득 찬 방에는 절망이 가득 찼다. 그녀 주변에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기사가 하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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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아, 아마 모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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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마마, 그렇다면 한 명은 살릴 수 있습니다.”
“한 명이라니. 모두 살려야만 한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병사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한 아이는 분명히 살릴 수 있습니다.”
“왕비마마,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
방에 들어왔던 하인이 말하였고, 왕비는 갈등을 하였다. 곧, 그녀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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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것입니까?”
“이곳에서 도망갈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 늙었고, 도망간다 하여도 곧 잡힐 것 입니다. 하지만 젊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자라면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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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근위대장인 오렌 워터스는 근위대에 들어온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마티스 로완을 쳐다보더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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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왕비마마께 충성을 맹세하였지.”
“예, 세르 오렌.”
“아이를 잘 지킬 수 있느냐?”
왕비가 마티스에게 묻자, 그는 멈칫하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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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겠습니다.”
왕비는 주머니와 단검을 마티스에게 건넸고, 마티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것들을 받았다. 마티스가 그것들을 받자 왕비가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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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검은 나중에 만약 아이가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된다면 전해주십시오,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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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하나를 건네받았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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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은 분주히 열 명도 되지 않는 기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기사 둘은 방을 나가 문 앞을 지켰다. 오렌은 왕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침대에 있는 천을 떼어내고 그것들을 이어서 긴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줄을 창 밖으로 내던지고는 마티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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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내려가거라. 2층이니 금방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달려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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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다른 손으로는 줄을 잡고 창문위로 올라갔다. 왕비는 그런 그와 아이를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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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좋겠습니다. 아이의 이름말입니다.”
마티스는 뒤돌아 왕비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여 절하고 창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방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티스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성 밖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고, 그것을 확인한 오렌은 손에 묶어놓은 줄을 풀고 검을 뽑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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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마마를 보호하라!”
그러자 6명의 기사들이 검을 뽑고 그의 옆에 서서 방문을 바라보며 섰다. 곧, 방문이 부서졌고, 병사들이 들어와 창끝으로 맞서 싸우려는 기사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병사들 뒤로 일린이 검을 든 채 나타났고, 그는 그의 아내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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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이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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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비는 그에게 아이를 건네주지 않았다. 왕은 한숨을 쉬더니 왕비 근위대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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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거두어라.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이 행동은 반역행위이지만, 지금 검을 거둔다면 자네들을 용서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검을 거두지 않자 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오렌이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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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다가오시면 공격하겠습니다, 전하.”
“너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다. 너는 내 부하란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저는 왕비마마의 근위대입니다. 저는 왕비마마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왕비가 일어나 아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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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이 아이는 전하의 아이입니다. 전하께서 그토록 바라던 왕자인데, 어찌 이 가엾은 아이를 죽인다는 말입니까?”
왕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그저 웃으며 허공에다가 손을 뻗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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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아이는 나를 죽일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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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씩 웃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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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라.”
그러자 그의 근위대와 병사들이 방 안에 있는 하인들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던 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병사들의 창과 검에 찔리고 베여 쓰러졌다. 기사들도 그들을 공격하는 병사들을 베었으나, 수적으로 불리해 기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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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이 병사들을 베어나갈 때, 창 하나가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고, 그는 신음을 흘렸다. 곧이어 창 하나가 더 날아와 그의 배를 뚫었고, 오렌은 몸에서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렌은 가래와 피가 섞인 침을 뱉고, 그의 왕을 올려다보았다. 왕은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충성을 맹세했었던 자에게 죽음을 당하다니,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병사들이 오렌의 몸에 꽂힌 창을 뽑았고, 오렌의 가슴과 배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오렌은 그대로 쓰러졌다. 왕은 왕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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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 어서 아이를 이리 주시오.”
예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고 앉아만 있었고, 그가 예니에게 다가가다 창문이 열린 것을 보았고, 그곳에 긴 천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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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망을 갔지?”
왕이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기사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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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근위대 한 명이 없어졌습니다.”
왕이 그가 왜 도망을 간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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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안정을 위해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 많이 보지 못 했지만, 그녀의 배는 다른 이들보다 더 컸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녀는 하나가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그가 예니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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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한 명은 어디로 갔지?”
“일린, 당신은 미쳤어.”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가 왕인 자신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으니 그는 더욱 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는 예니가 안고 있는 아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예니가 몸을 돌려 아이 대신 일린의 검을 받았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진 아이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고, 일린은 소리를 지르며 검으로 아이를 찔렀고, 더 이상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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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 본 일린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예니를 보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니는 피를 흘리며 서서히 불꽃이 꺼져가는 눈빛으로 일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린은 예니를 안았고, 예니의 긴 금발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니는 힘겹게 손을 뻗어 일린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니의 손은 아래로 떨어졌다. 일린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웃기 시작했고 점점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의 웃음소리는 끔찍한 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절규하는 듯 웃었고, 물줄기가 그의 양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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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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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문이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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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과 어른이 서로 검을 맞대며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검을 겨룰 충분한 시간을 귀족이 아닌 낡은 옷을 입은 평범한 평민이었고, 언뜻 보면 부자지간인 것 같게 보였으나, 둘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금발에 푸를 눈을 가졌지만, 어른은 머리와 눈동자 색 모두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라 불리는 어른이 검으로 소년을 공격하며 소년의 행동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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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피하기만 하지 말거라. 피하기만 하면 자꾸 뒤로 물러나가기만 한다. 검을 막으며 앞으로 나와.”
소년은 뒷걸음질을 멈추고 검을 들어올려서 위에서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계속 방어만 하던 소년이 갑자기 상대방의 배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상대방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고 그가 든 검의 옆면으로 소년의 등을 퍽하고 강하지 않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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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격하면, 등이 보이잖아.”
소년은 공격적인 자세를 풀고 뒤로 물러났다. 소년은 검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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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입술이 미소를 짓자, 소년의 입술도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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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버지는 못 이기겠군요.”
“이렇게 보여도 과거에는 기사 출신이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빵과 우유를 건넸고,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그것들은 받은 뒤, 먼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서 우유를 마시고, 빵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소년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아래에 검을 둔 뒤, 침대 위에 두었던 책을 집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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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자유의 기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어느 기사가 세상을 모험하며 자신이 겪은 일과 본 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놓은 책으로, 소년은 책을 보며 세상을 모험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고는 멋진 것 같아 흐뭇하게 웃었다.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있던 중, 방문이 열리더니 소년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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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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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알겠다며 책을 덮은 뒤, 아래로 내려갔다. 집 밖에는 소년의 또래로 보이는 6명의 아이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키가 가장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진 아이가 소년에게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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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거야, 루이스.”
“듣자마자 바로 내려 온 것이거든, 오스프리드.”
루이스가 손으로 오스프리드의 옆구리를 가볍게 툭 쳤고, 둘은 서로 마주보더니 웃긴지 씩 웃더니, 오스프리드가 어서 가자며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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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오스프리드의 집이었다. 오스프리드의 아버지인 오스문드 캐틀블랙은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사냥꾼인데, 오스프리드는 아버지가 어제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친구들과 석궁을 쏘아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위험하다며 단칼에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는 하루동아 계속 석궁을 사용하게 해달라며 조르고 졸랐고, 결국 오스문드가 포기를 하고 자신의 지도아래에서의 사용을 허락하였고, 오스프리드는 곧바로 친구들을 모아 소식을 전했고, 오늘 그의 집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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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오스프리드와 비슷하게 키가 크고 마른 사내가 있었고, 소년들은 사내에게 반갑다며 인사하였고, 사내는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사내는 주먹으로 오스프리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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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이나 먹은 녀석이 그렇게도 졸라대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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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이면 충분히 석궁을 만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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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그렇게 대답하자, 오스문드는 으이구, 라며 다시 한 번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따라 나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집 뒷마당으로 갔고, 그곳에는 꽤나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는 작은 원을 품고 있는 원이 그려져 있는 나무판이 두 개가 있었고, 오스문드는 준비해놓은 석궁에 볼트(bolt)를 끼우는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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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함께 줄을 당기면 된다. 자, 봐라. 장전이 되었지? 그러고 나면 과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석궁에 장착된 볼트는 바람을 가르며 나무판의 작은 원 안에 박혔다.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은 대단하다며 소리 질렀고, 오스문드는 바닥에 구르고 있는 볼트 하나를 집어 들고 소년들을 둘러보며, 누가 먼저 쏘아보겠냐고 묻자, 아이들은 먼저 하겠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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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루이스만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항상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른답게 행동을 하라고 교육을 시켰고, 루이스도 나중에 기사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되도록이면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하고 싶다며 외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그저 속으로만 그렇게 외칠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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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년이 오스문드의 눈에 들어왔고, 오스문드는 그에게 석궁과 볼트를 건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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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먼저 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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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먼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었던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석궁을 받고 자리에 섰다. 루이스는 오스문드가 보여준 대로 볼트를 석궁에 끼워놓고 과녁을 겨누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는 방아쇠를 당겼고, 볼트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과녁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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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과녁에 꽂힌 볼트의 위치를 보고는 흐음, 이라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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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 불지 않았더라면 원 안에 들어갔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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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옆에 있던 페티르 바엘리시가 석궁을 받고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큰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례대로 소년들이 석궁을 받고, 과녁안의 원을 맞추었다. 석궁을 모두 한 번씩 사용을 해 본 후, 페티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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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도 한 번 쏘고 싶어요.”
“하지만 나에게 있는 건 어른이 사용하는 것뿐인데. 사용하기 어려울 건데.”
오스문드가 페티르를 보며 말했다. 페티르는 10살이지만, 몸이 왜소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7살이나 8살의 꼬마로 보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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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르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아이에 약한 오스문드는 페티르를 보고 당황하였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집에서 나온 오스문드의 손에는 새총이 여러 개 있었고, 아이들은 좋아하며 그에게서 새총을 받아가 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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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아직 새총을 받지 않은 루이스에게 직접 새총을 건넸지만, 루이스는 그저 멍하니 새총만 바로보기만 하고, 새총을 받지 않았다. 오스문드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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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니? 어서 가서 놀아.”
“기사들도 활을 잘 쏘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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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오스문드를 올려다보았다. 루이스는 아이들 중 사용하기 쉬운 석궁으로 과녁안의 원을 맞추지 못 한 유일한 아이였다. 오스문드는 그 제서야 루이스가 왜 그렇게 힘없이 있는지 알고는 허허 웃으며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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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야 검을 잘 쓰면 되는 거지. 활이나 석궁도 잘 쓰면 좋겠지만, 기사들은 검을 사용하면서 싸우는 자들이잖아? 흠, 팩스터가 검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지 확인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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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턱을 어루만지며 씩 웃고는 집으로 들어가 목검 두 개를 가져오며, 그 중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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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한 번 봐야지.”
“저는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사용하는데요.”
“하아, 팩스터가 미쳤나보군. 진검을 사용하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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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그냥 목검으로 하자고 말한 뒤, 목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었고, 루이스도 목검을 두 손으로 저었다. 바스타드(bastard) 검을 모델로 한 목검이지만, 어린이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거운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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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루이스에게 먼저 공격하라는 손짓을 하였고, 루이스는 오스문드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목검을 내리쳤지만, 목검은 키가 큰 오스문드의 가슴 부분 높이까지밖에 공격 할 수밖에 없었고, 오스문드는 간단하게 루이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루이스가 위아래를 공격해오는 것을 막아냈다. 루이스는 다시 한 번 목검을 내리쳤고, 오스문드는 이번에는 막지 않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루이스는 곧바로 한 발자국 다가가며 내리친 검을 들어올리며 오스문드의 사타구니를 공격하려고 했다. 당황한 오스문드가 다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루이스의 목검 끝이 그의 몸통을 살짝 스치며 올라갔따. 그는 약간 놀랐지만, 곧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루이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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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방어만 하던 오스문드의 갑작스런 공격에 루이스는 당황했지만, 그는 목검을 들어올려 공격을 받아냈다. 둘은 서로 엉키며 공격을 주고받기를 수십 번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문드가 루이스의 머리를 공격했고, 루이스가 목검을 들어올려 그의 공격을 막았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검을 미끄러지게 하여서 뺀 뒤, 곧바로 루이스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루이스는 몸을 틀어 목검을 피했고, 아침에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것을 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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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목검이 자신의 등을 공격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검으로 루이스의 얼굴을 찔렀고, 그가 상대방이 소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급하게 손목을 비틀어 루이스를 때리지 않게 하였다. 목검은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루이스의 뺨을 엄청난 속도로 스치고 지나갔다. 목검이라도 날이 조금 날카로운 탓에 루이스의 뺨에 붉은 선이 생겼다. 갑작스런 이 일에 놀란 루이스는 멍하니 목검을 쥔 채 서 있었고, 오스문드는 당황해하며 소년의 뺨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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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놀랐니? 정말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그만…. 아프지 않니?”
루이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오스문드는 손수건을 꺼내 소년의 뺨에 살짝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주었다. 그는 소년의 뺨을 닦은 뒤 물러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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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은 실력이야. 팩스터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오스문드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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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열심히만 한 다면 기사가 될 수 있겠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랑 친하시죠?”
“그야 당연하지.”
뜬금없는 소년의 질문에도 그는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고,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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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에겐 그저 기사였다는 말 밖에 하시자 않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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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네 아버지는 훌륭한 기사였지. 나와 같은 하이아칸의 병사였어. 나는 궁수였고, 그는 기사였지. 실력이 뛰어나다 못 해 그는 왕비의…… 아니지, 아니야. 어쨌든 대부분의 검술 대회에서도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였어. 나는 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불편해 리오스로 옮겨 살았는데, 내가 여기 온 지 4년 정도 후에 그 녀석이 널 데리고 이곳으로 왔지. 나머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기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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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뜸을 드리고 중얼거렸다.
“가끔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잃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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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는 루이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루이스가 그를 쳐다 볼 때에는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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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식탁에 앉아 저녁식사로 밀 죽을 먹고 있었다. 평소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겠지만, 오늘따라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아버지도 딱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던 중 먼저 말을 꺼댄 것은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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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칸의 기사 이었다면서요? 뛰어난 실력이었다던데, 왜 리오스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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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의 입으로 가던 숟가락이 멈추었다가 다시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이스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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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써 한 약속을 어겼었나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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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가 중얼거렸고,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아 뭐라고 말하였는지 묻자, 팩스터가 씩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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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 오스문드가 살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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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내 생각을 접고 식사를 계속 이어갔다. 식사를 끝마친 루이스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방은 촛불 하나 없어 매우 깜깜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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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의 물음에 항상 대답을 해주었으나, 자신이나 자신의 아내에 대한 질문이면 항상 대답을 얼버무렸다. 오늘 낮에도 처음으로 아버지가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냐는 질문을 피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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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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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는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는 집을 나와 오스문드의 집으로 향했다. 오스문드의 집에 도착한 그는 문들 두드렸고, 집에서 오스문드가 나왔고, 팩스터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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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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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좀 합시다, 형님.”
그들은 뒷마당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마티스라고 불리는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었냐고 묻자, 오스문드는 그에게 낮에 있었던 밀과 루이스에게 한 말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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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에게 과거를 말해주지 마십시오. 그저 그 아이는 평범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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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기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가? 그래서 네가 그 얘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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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아이가 기사가 된 다는 것에 반대를 합니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죠. 저도 기사라는 작위 때문에 인생을 버렸습니다.”
“조용히 해. 오스프리드가 깨겠어. 그리고 내가 그 아이에게 사실을 말했나? 그리고 네가 나한테 화를 낼 처지인가? 자네의 기사 작위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 너뿐만이 아니야.”
오스문드의 얼굴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도리어 그가 팩스터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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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이아칸 제국의 왕자라는 녀석을 빼돌리는 바람에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몰살당했어. 네 부모님과 내 부모님, 그리고 친척, 형제들까지 말이야. 게다가 그날 부모님을 보러 간 내 아내까지! 그래도 나는 널 용서하고 아무 말 없이 너를 받아주지 않았나? 그런데 네가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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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기 바빠 바이트 대륙에 있는 가족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못 하고 무작정 리치 대륙으로 넘어왔고, 소식을 알 방법이 없어서 모른 채 살아왔으나, 그래도 모두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 하고 있던 팩스터가 말을 듣고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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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살… 이요?”
“허, 그것도 몰랐나? 네가 도망치면 끝인 줄 알았나? 왕의 명을 어기고 왕자를 데리고 도망간 너를 가만히 둘 줄 알았나? 가문이 몰살당하는 건 기본이야.”
“형님은 어떻게 그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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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좀처럼 오지 않아서 사람 하나를 보내보았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더군.”
“형수님은 분명히 침몰한 배에 탔다가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셨는데.”
“참나, 그러면 너한테 너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면 퍽이나 잘 살겠네. 너라도 살아남게 하려고 말을 안 했다. 몰살당한 가족 이야기하면 네가 극단의 방법을 할까봐 걱정이 되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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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됐다. 어차피 난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아.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내가 오스프리드를 데려가지 않았던 거지. 시작했던 일은 끝을 내라. 왕자, 아니 네 아들을 제대로 키워라.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게라도.”
그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오스문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팩스터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다. 팩스터가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단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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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잠이 깨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려고하다가 아버지와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말 하나하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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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왕자라는 친구 때문에, 자신은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지 못 하게 되었다. 그는 저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그는 혼란스러웠고, 방으로 돌아가도 잠에 들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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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잠에서 깼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팩스터는 아침 일찍 대장간으로 가는 일이 있어서 루이스는 오늘도 그러려나 싶어 혼자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웠다. 식사를 마친 그는 할 일없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 읽던 책을 다 읽었고, 그 책을 탁자 위에 둔 뒤, 또 다른 책을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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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로 내려갔다. 집을 찾아온 것은 오스프리드였다. 그는 안전부절 못하고 있었고, 루이스가 그를 부르자 그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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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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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날씨가 참 좋지?”
“어디 아프냐. 왜 그러는 거니. 일단 들어와.”
오스프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왔고, 둘은 루이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루이스는 간식거리를 들고 와 그에게 건넸고, 그는 고맙다며 과자를 먹었다. 둘 사이에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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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친구 때문에 자기 엄마가 죽었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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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프리드의 그런 질문에 루이스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지만,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한 뒤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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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아마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그 때문에 어머니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게 되었다면 더더욱. 하지만 직접적이 아니 였다면 용서를 할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만약 네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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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곧바로 성으로 가야지. 그런 뒤 아버지랑 친구들을 불러서 성에서 같이 살 거야.”
“그런데 왕자라면 지금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아니잖아. 왕이 아버지가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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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에이, 상관없잖아. 그럴 일도 없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그런데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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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져서.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벌써? 더 있다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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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프리드는 그저 미소를 지었고, 방을 빠져나와 집을 나갔다. 그는 이로써 한 가지를 더 알았다. 루이스는 그가 왕자라는 것, 그의 아버지, 팩스터가 진짜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가 일부러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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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망친 이유는 필시 죽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왜 왕자를 죽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집히면 그는 아마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가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날 들은 대화가 그저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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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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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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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오스프리드가 집에 오는 일은 흔하였는데, 그가 집을 찾아올 때에는 항상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안전부절 못한 채로 오더니 이상한 질문을 하고 곧바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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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왜 그러는지 생각을 해보았으나, 도저히 그 이유를 알지 못 해 생각을 접고는 침대 아래에 둔 검을 꺼냈고, 검을 칼집에서 뽑아보았다. 이가 몇 군데 나가있었다. 그는 검이나 갈고 손봐야겠다 싶어 칼집에 도로 끼워놓고 검을 허리에 찬 뒤, 아버지의 대장간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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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단검 하나를 보고 있었다. 날이 한 쪽에만 있고, 칼자루는 금색을 띄고 매우 화려했다. 칼집 또한 가죽이나 나무가 아닌 금속재질이었고, 칼자루와 같은 금색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서는 마치 귀족이 가지고 있을 듯한 단검을 가지고 있을 자가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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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멋진 검이네요.”
루이스가 말을 걸자, 팩스터는 급히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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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비싼 검 같은데, 누구 것인가요?”
“잠시 묵어가던 사람이 손 좀 봐달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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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적지만은 않았다. 대장간도 이 마을에선 이곳분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고 팩스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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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무슨 일이니?”
“칼날이 무뎌져서요.”
“이리 줘 봐.”
루이스는 검을 뽑아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상이 없는지 검을 자세히 훑어보았고, 그는 다시 아들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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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상은 없구나.”
루이스는 숫돌을 꺼내 검을 갈기  작했고, 팩스터도 단검을 내려두고 다른 검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팩스터가 무언가를 기억해내고는 짧은 검을 들고 나가면서 루이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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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 집에 갔다가 올 것이니 잠시 대장간 좀 보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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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알았다고 대답하였고, 계속 자신의 검을 가는데 집중을 하였다. 그는 하던 일을 끝마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할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몇몇 검과 갑옷, 방패가 전시되어 있듯 걸려있었다. 며칠 전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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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다가 책상에 올려진 금색의 단검을 보고, 뭔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가 단검을 집었다. 왜인지 모르게 친숙하고, 마음 한 쪽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스는 그 단검을 뽑아보았다. 검의 날 옆면에는 ‘나의 사랑’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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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사냥꾼 복장을 한 오스문드가 서 있었다. 분명 아버지는 그의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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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집에 가겼는데요.”
“허, 거참. 기다려도 검을 안 가져와서 직접 가지러 왔는데, 길이 엇갈려버렸네.”
“사냥을 나가시나 봐요?”
“그래. 이번에는 꽤나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니 아마도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지. 어쨌든 나는 너희 아버지나 찾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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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장간을 나가며 한마디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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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단검이구나. 잘 챙겨라.”
루이스는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쳐다보고 그 단검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으나, 오스문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팩스터가 돌아왔고, 루이스가 그가 빈손인 것을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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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문드 아저씨를 만났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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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되돌아오는 길에 만났어. 검은 다 갈았니?”
“예. 전 이제 그만 가볼게요.”
“그래. 조심히 가거라.”
루이스는 대장간을 나왔고, 집으로 향하던 발검을 돌려 시장가로 갔다. 어차피 집에 가면 할 일도 없으니, 산책도 할 겸, 시장가로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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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여행물품을 사려고 나온 여행객들이었다. 루이스가 걸어 지나가면 평소 안면이 있던 상인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며, 가끔씩 먹을 것을 그에게 주기도 하였다. 마침 그는 친구 아버지가 준 사과를 먹으며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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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것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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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말을 했다. 루이스는 처음에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으나, 앞에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 것을 알았다. 사내는 5월인데도 긴 소매가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두건을 깊이 내려쓰고 있어서 루이스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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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보다 덩치가 더 크고 어마어마한 근육을 가진 팔이 모두 드러나게 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었고, 그도 두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내와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팔뚝에는 ‘X’자로 겹쳐진 낫 모양이 새겨져있었고, 그 밑에는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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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말을 건넨 사내를 보고만 있자, 그는 다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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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구나,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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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는 처음 보는 자이고, 이름을 밝힌 적도 ㅇ벗었는데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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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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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치 루이스의 마음을 읽은 듯 루이스가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루이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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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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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지, 32.”
덩치 큰 사내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였고, 32라고 불린 사내는 손을 올려 루이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때, 그의 손목에서 덩치 큰 사내와 같은 문신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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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어린애들을 보면 항상 조용히 살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하지만, 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시 나와 만나겠군. 친구로 만나면 좋겠지만, 친구일지 적일지는 잘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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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라고 불린 사내는 루이스가 이해를 하기 어려운 소리를 하였고, 그들은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페티르의 아버지 로마바크가 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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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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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낫이 새겨진 문신밖에 못 봤거든요. 그런 자들은 우리 마을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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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얘기를 들은 로마바크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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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문신? 자세히 말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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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바크가 놀란 이유를 모르는 루이스는 그저 그가 본 문신의 모양을 그에게 설명해주었고, 루이스의 설명을 들은 그는 더 놀라며 루이스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는 아무 상처도 없는 것을 보고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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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낫’이다. 저번에 내 여관에 묵어가던 용병들에게 들어본 적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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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두개의 낫’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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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악명이 높은 암살조직이다. 암살범 중에 최고들만 모인 조직이지. 그들을 만나는 사람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 해지지. 그런데 왜 그들이 너랑 대화를 나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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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바크는 다시 한번 루이스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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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어느새 사라진 그들이 지나간 거리를 보았다. 그가 무심코 돌아가려는데, 길 위에 무언가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고, 그는 그것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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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모를 사내들 팔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이 있는 납작한 장식품이었다. 그저 둥근 원 안에 낫 두개가 겹쳐져 있는 모양일 뿐, 목에 걸거나 하는 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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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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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루이스는 오랜만에 책을 읽고 있는 팩스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개의 낫’에 대해 묻자, 팩스터는 흠칫 놀라더니 책을 덮고 루이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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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단체지. 최고의 암살 조직이야. 그들은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그 임무를 멈추지 않기에 그들의 목표가 된 자는 살아남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다 찾아내거든. 그들은 오직 암살을 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하긴, 그 조직에 들어가면 죽어야만 그 조직에서 빠져 나 올수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건과 해골가면을 써서 절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 조직에 있는 자 말고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가 없어.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지휘하는 두목인 ‘타나토스’에게는 엄청난 충성을 맹세하고, 돈을 주는 자를 절대 배신하지 않아.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 일린 왕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현재 그들은 일린 왕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보나마나 일린 왕이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었겠지. 그런데 어떻게 네가 ‘두개의 낫’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어쩌다보니 알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참 무서운 조직이네요.”
루이스는 혹시 아버지가 걱정을 할까봐 아침에 만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얘기를 들어보니 매우 위험한 조직이고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 왜 대화를 걸었을까. 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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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여러 생각에 잠긴 루이스에게 팩스터가 말을 걸었고, 루이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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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너도 이제 슬슬 대장간을 물려 받기위해 일하는 법을 배울 때가 되지 않았니?”
“대장간을 물려받다니요? 전 기사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아버지도 기사였고, 허락해주신 것이 아닌가요?”
“루이스, 전쟁하나 없는 이 평화로운 시대에 기사가 되어보았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기사였던 당시에야 하이아칸 제국이 분열상태여서 전쟁터에 나가는 등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너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너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검술 연습도 한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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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사가 되고 싶은 거냐?”
“명예롭잖아요. 용감하고 멋있고.”
“하아, 그래. 네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기사라는 것이 꼭 명예로운 위치가 아니지. 기사가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어. 그들이 죽을 때 전혀 명예롭지 않았어. 차라리 비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지. 나도 그 위치 때문에 기사를 그만둔 것이야.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냥 이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자. 기사가 되는 것도 쉽지가 않아. 그리고 네가 없어지면 혼자 살아야 하는 나는 어쩌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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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울상이 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기가 마음이 아픈지 팩스터는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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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하자구나.”
루이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올라갔고, 팩스터는 술을 꺼내 쉬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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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아버지가 미웠다. 자신은 기사가 되었으면서 아들이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그런 꿈을 완강히 반대했다. 도저히 그런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기사가 된다는 것을 반대를 하는 것인가. 왜 기사가 좋지 않다고만 말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알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가 기사를 그만두고 기사를 경멸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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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자신의 검을 꺼내 뽑았고, 칼날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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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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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가운 검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사는 이런 검을 들고 적을 죽이는 일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루이스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버지도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였고, 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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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루이스는 아버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그저 기사였다는 것, 하이아칸인이었다는 것, 지금은 대장장이라는 것 말고는 아버지인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과거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그에게 그의 과거를 물으면 그는 항상 질문을 회피할 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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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검을 제자리에 두고 촛불위에서 살랑거리는 불꽃을 입김을 불어 끄고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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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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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슬프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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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며칠간 놀지도 않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일을 배워나갔다. 여름의 더운 날씨와 화덕의 열기로 루이스는 집중력이 흩으려지는 것을 어렵사리 참아내고 있었다. 팩스터는 루이스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고 엄격하게 일을 가르쳤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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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동신경이 좋고, 아버지와 검술실력을 키우며 늘어난 체력으로 그는 의외로 일을 잘 해나갔고, 팩스터도 그런 그를 만족스럽게 보았다. 그는 문득 루이스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체력을 길렀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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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이 일찍 끝난 루이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리지은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루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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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요새 뭐하고 지내고 있기에 안 보이는 거야?”
마리사 반스가 다가왔다. 루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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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한테서 일을 배우고 있거든.”
“벌써? 너무 이르지 않나? 어쨌든. 나중에 사냥하러 안 갈래?”
언뜻 보면 조용하고 얌전하게 생긴 소녀지만, 치마를 입은 적을 주변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소년다운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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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라고?”
“응. 토끼 같은 걸 잡는 거지. 오스프리드가 석궁도 들고 온데. 재미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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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망설이자, 소녀는 옆에 있던 알렉산더 스테드몬을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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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생각은 어때?”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겠지. 어차피 조금만한 동물을 잡을 거니깐 위험하지도 않을 거야. 싫다면 안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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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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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대신 어른들께 말하면 안 돼. 걱정할거니깐. 그러면 이틀 후에 데리러 갈게.”
“그럼 이틀 후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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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헤어진 직후 루이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 옆을 보았고, 그곳에 말을 탄 기사 두 명이 밧줄에 묶인 자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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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마을에서 누군가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없던 루이스는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면이 드러나는 투구를 쓴 기사들은 루이스 앞에서 멈추었고, 한 명이 루이스에게 여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낮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루이스는 그들에게 상세히 위치를 알려주고, 루이스가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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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요?”
“알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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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궁금해 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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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젊은 기사가 어느새 투구를 벗고는 루이스를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런 그를 중년기사가 ‘쓸 때 없는 소리를…’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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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금사냥꾼이라고 알고 있니? 악당을 잡고 사례금을 받는 자들이지. 그 중 유명한 사냥꾼이 잡은 악당을 보다시피 끌고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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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기사를 쳐다보자 기사는 웃으며 나쁜 일을 하지 말라며 당부한 뒤 여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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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게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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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여섯 명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물을 들고 있는 페티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불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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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째 돌아다녀도 사냥감 하나 안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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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 쉬운 줄 알았니?”
앞장서서 가던 마리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페티르는 그저 툴툴거리며 걸었다. 심심한 오스프리드는 들고 있는 석구에 계속 볼트를 끼웠다가 뺐다가를 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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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계속 주위를 보며 사냥할 동물을 찾아보았지만 식물을 제외한 살아있는 생물을 보지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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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계속 걷던 그들은 점심때가 되어 잠시 멈추어 쉬자고 하였고, 그들은 주변 바위에 앉거나 나무에 기대어 다리를 풀어주었고,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이 빵을 먹으며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스프리드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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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다.”
그는 급하게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모두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알렉산더도 화살을 활에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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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스프리드가 토끼를 향해 석궁을 쏘았지만 빗겨나갔고, 토끼도 낌새를 눈치 챘는지 도망을 가려고하는 순간, 알렉산더가 쏜 화살이 날아가더니 토끼의 뒷다리에 그대로 꽂혔다. 하지만, 토끼는 절뚝거리며 힘겹게 달아나려고 했고, 오스프리드는 다시 한 번 석궁을 쏘았지만 이번에도 빗겨나갔다. 아이들도 토끼를 잡으러 달려갔다. 부상을 입은 토끼는 속도가 매우 느렸고, 얼마 못 가 아이들에게 따라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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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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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가 외치자 페티르가 그물을 던졌고, 그물을 그대로 토끼를 덮치게 되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그물을 들어올리자마자 토끼의 귀를 잡고 들어올렸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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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땅에 박힌 볼트를 뽑고 돌아가려는데, 그의 발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친구들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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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가 그의 발목을 묶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지만, 밧줄에 손이 닿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서 있었다. 그때, 거꾸로 축 늘어져있던 루이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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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다.”
루이스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볼트가 꽂힌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사내가 앉아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마리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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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머리에…. 죽었나…?”
그때, 그 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그의 투구에는 오스프리드의 볼트가 꽂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머리에 볼트가 꽂혀있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아이들이 놀라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로 걸어왔고, 그 모습을 본 한 아이는 덜덜 떨더니 결국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갔고, 몇 명도 그 뒤를 따라 도망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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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는 다급해하며 루이스를 잡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걸어오는 사내를 흘끗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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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그리고 시체가 걸어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모두 전설속의 옛이야기거나 동화 속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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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줄을 끊는 것을 포기하고 활에 화살을 끼우고 사내를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은 그대로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사내는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더니 화살을 두 동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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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 어서 도망가.”
알렉산더가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말했고, 아이들은 그의 말대로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혼자 남아있는 마리사가 주춤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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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지만 루, 루이스가 아직….”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깐 먼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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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가 잠시 주춤하더니 마을 쪽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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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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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채 매달려있는 루이스가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입술꼬리만 올라갈 뿐, 얼굴은 그대로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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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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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도 루이스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을 뿐, 그도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에 겁을 먹었다. 루이스는 그런 그를 보며 무서움을 참고 간신히 웃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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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잡아먹겠어요?”
“맛이 없어서 아마도 안 먹을 거야.”
책임감이 강한 알렉산더는 루이스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짤막한 검을 뽑고는 걸어오는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알렉산더는 사내를 ㅎ야해 검을 내리쳤지만, 사내는 몸을 틀어 검을 피한 뒤, 손으로 알렉산더의 목 뒷부분을 내리치자 알렉산더는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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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다시 루이스에게로 다가왔고, 루이스는 자신의 허리에 있는 검을 뽑아 사내를 향해 마구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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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 오면 죽일 거야!”
사내는 검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춰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루이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검을 뽑았고, 루이스에게로 한발자국 더 다가가자 루이스는 더 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내는 왼손을 들더니 손바닥으로 검을 받았다. 검은 손바닥에 박혔고, 사내는 손을 오므려 검을 쥐고는 루이스의 손에서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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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묶인 채 유일한 무기인 검까지 괴물에게 빼앗긴 루이스는 울상을 짓더니 결국 몸을 흔들어대며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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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기 싫다고! 오지 마!”
사내는 검을 높이 들어서 가로로 검을 그었다. 루이스의 몸은 아래로 떨어졌고, 머리부터 떨어진 루이스는 알렉산더처럼 정신을 잃었다. 사내는 보통 어른들보다 키도 그렇고 덩치도 매우 컸다. 마치 곰을 닮은 것 같아보였다. 사내는 손에 박힌 검을 힘주어 뽑았고, 투구에 박힌 볼트를 뽑으며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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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를 잘 못 끼워서 다행이지 제대로만 끼웠으면 난 죽었다. 그리고 아니, 거참. 살려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활을 쏘지 않나, 도망을 가지 않나, 검을 휘두르지 않나, 괜히 의수만 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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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갑을 끼고 있던 왼손을 잡고 뽑았다. 그리고 그의 가방에서 금속재질의 의수를 꺼내 왼팔에 붙였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는 흐뭇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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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법은 좋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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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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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숲을 빠져나왔고, 마을에 다다랐을 때, 한 무리가 급하게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농기구나 몽둥이 등 무기를 하나씩 들고 그 주위를 둘러쌌다. 어른들 뒤에는 아이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무기를 든 그들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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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상황은. 내가 악당 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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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바닥에 내려두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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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프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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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남성이 원형탁자에 앉아있었다. 그 중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덩치에 비해 매우 작은 나무잔에 든 포도주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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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셔보는 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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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은 그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나무잔을 탁자에 두고 자신의 작은 배낭에서 기사 증명서를 꺼내 탁자에 올려두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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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의 이야기 때문에 제 소개가 늦었구려. 전 페르(per) 자베르 몽메르시 라고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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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한 말투를 보니 부르봉 왕국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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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는 이 여관의 주인인 로마바크가 말하자 자베르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바크 옆에 앉은 팩스터는 그의 상처투성이인 얼굴과 마치 진짜 손처럼 살아 움직이는 가짜 손이 붙은 왼팔을 번갈아보며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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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시기에 상처가 많군요. 부르봉 왕국의 기사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보다시피 전 떠돌이기사라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먹고 살기위해 사냥을 하다보니 상처가 생기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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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동물들도 날 있는 무기를 들고 싸우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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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냥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들인데 말이오. 이 손은 타나토스의 개와 싸우다 잃었소.”
자베르가 왼손을 들어올려 보였다. 타나토스의 개라고 말하였을 때, 3명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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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 하나 잡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 녀석들이 나를 사냥을 하려고 들더구려. 이제는 아예 상황이 뒤바뀌었소. 하하하.”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로마바크가 잠시 무언가를 기억하더니 그가 생각해내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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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이곳에 왔었다면 잡혔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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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낫’이 우리 마을에 왔었단 말이오?”
로버트 반스가 놀라 묻자, 로마바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팩스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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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그들이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팩스터가 잠깐 놀란 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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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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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55살인가. 그래, 딱 30년 되었소. 부르봉 왕국을 떠나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지 말이오. 아스팍 대륙과 바이트 대륙을 모두 돌아보았으니, 이제는 이곳을 여행해볼까 하여 2년 전에 그란그라드로 들어와 여기 리오스로 여행을 떠나 온 것뿐이오. 그러다가 숲에서 이곳 아이들이 절 공격했고, 전 기절한 아이들을 데려온 것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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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이들을 때려눕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기사라며 기사도 정신이란 것도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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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의 아버지인 레오 스테드몬이 자베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였다. 그가 자베르의 신경을 건드릴만한 말을 하였으나, 자베르는 그저 나무잔을 비우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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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하지 않았소. 그 아이들이 먼저 저를 공격하였다고 말이오. 전 충분히 그들을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 참았소. 그 덕에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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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사람이 그게 할 소리요!”
레오가 탁자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자베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노인이 레오에게 손짓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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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게나. 이 자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촌장님,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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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네, 그만하게나. 난 모로스 슬린트라 하오. 이 마을의 촌장이지.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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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도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반갑다고 하였다. 모로스는 허허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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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나빠 보이지는 않잖소? 우리가 언제 나쁘지 않은 자를 내쫓은 적이 있었소? 이 자도 악의가 있어서 한 일은 아닌 것 같으니 서로 화낼 일은 없다고 생각하네. 이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네. 페르 자베르께서도 우리 마을에 있는 동안 편히 지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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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로스으이 호의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답하며 이번에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나와 어딘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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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든 루이스는 두통이 느껴져 머리를 감쌌다. 왜 자신이 방에 누워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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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마을 옆 숲 속으로 사냥을 하러 갔었고, 그러던 중 토끼 한 마리를 잡고, 볼트를 수거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눈에 보였던 것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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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체가 걸어 다녔다. 분명히 그 괴물이 검으로 날 베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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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웠다. 허리 아래로 사라진 부분은 없었다. 한 가지는 안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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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루이스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왔고, 그가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현기증으로 휘청거렸지만, 심하지 않아 그는 다시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 앞에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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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인보다 더 큰 키와 체구, 곰 같은 외형, 무표정한 얼굴. 분명히 숲 속에서 본 그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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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놀라 뒷걸음을 치려고 하자, 사내는 웃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사내를 향해 휘두른 자신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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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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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검을 받을까말까 망설였지만, 사내가 받으라는 손짓을 하자 루이스는 검을 받고 꾸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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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감사합니다.”
“난 부르봉 왕국의 기사 가문인 퐁메르시 가(家)의 자베르다. 가문의 문장은 생긴 것과 같이 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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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에요. 루이스 레드윈.”
“많이 놀랐느냐?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계속 공격을 하는 바람에 나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놀랐다면 사과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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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괴물로 알고 있던 자베르의 갑작스런 친절로 루이스는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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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세요?”
루이스의 그런 질문에 자베르는 웃긴 지 한 번 크게 웃고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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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사람이니 지금 너와 마주보며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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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숲 속이였을 때, 석궁에 맞고, 검에 베여도 멀쩡하던데.”
자베르는 그에게 그 오해를 해명하였다. 그리고 의수를 설명할 때에는 직접 팔에서 의수를 뽑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자베르가 열심히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자, 루이스도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지 경계를 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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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조금 전 자신이 밖에 나가려는 것도 잊고는 자베르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루이스는 그에게 간단히 대접할 간식거리를 준비하러 식당으로 갔고, 자베르는 보잘것없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무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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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갑옷이 있고, 왼쪽에는 방패, 오른쪽에는 검, 그리고 위에는 투구가 걸려있었다. 갑옷과 방패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X자로 교차된 검 중앙에 둥근 성탑이 새겨져 있었다. 자베르가 유심히 보던 중 갑옷 안쪽에 초록빛 천이 약간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그가 천을 잡아 아래로 잡아당기자 얇은 천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넓게 펼쳐보았다. 초록색 배경에 갑옷과 방패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양이 흰색으로 새겨져있는 망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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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루이스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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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 것이냐?”
“예. 아버지가 과거에 기사이셨거든요.”
“훌륭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여기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다니.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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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자베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라는 것을 알아차린 자베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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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킥. 이것 참 놀랍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위대한 기사 가문의 후계자라. 넌 이 문장이 무슨 가문의 것인지 모른단 말이냐?”
자베르가 루이스를 쳐다보았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고, 그가 자베르와 그가 들고 있는 망토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자베르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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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소,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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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잠깐 세르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기사 중 상급기사, 왕의 근위대나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인정한 기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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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호칭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자베르와 당황한 아버지를 루이스는 멍 한채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팩스터는 자베르를 노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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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에게 무엇을 말했습니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더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사냥?”
팩스터가 손을 슬쩍 뒤로 두는 것을 본 자베르는 들고있는 것을 접고 갑옷 위에 걸쳐두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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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짓 말게나. 어차피 나도 이 문장을 보고 알았으니 말이오. 우리 퐁메르시 가문은 부르봉 왕국에서 꽤나 유명한 기사 가문이오. 뭐, 로완 가문에 비한다면 보잘것 없는 가문이겠지만 말이오. 어쨌든 나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잡다한 지식을 모으고 다녔소. 그리고 당연히 유명한 로완 가문을 아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소? 자네, 아니지. 세르는 시골에 이 문장을 알아볼 자는 없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걸어둔 거겠지만 말이오. 하지만, 로완 가문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명하다오.”
“루이스, 넌 집에 있어라. 페르께서는 제 대장간으로 가시지요.”
그리고 그 둘은 팩스터의 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들의 대화는 대장간의 지하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베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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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가문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세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하이아칸의 왕이 죽이려고 했던 왕자가 사라지고, 그 배후로 로완 가문이 찍힌 것. 그리고 가문 중 하인이라도 살아남지 못 한 꼴이 된 것, 그 왕이 왕자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까지. 최근엔 그 열기가 식었지만 말이오. 세르의 이름을 알고 싶소. 본명을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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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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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토리오스 제국의 황제의 근위기사였으며,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한 뒤, 하이아칸 제국의 왕의 근위기사를 맡아 온 로완 가문의 마티스 로완입니다.”
“이제는 로완 가문의 가주이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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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확실하게 더 있거든요.”
“더 있다니? 그게 누구요?”
“그건 비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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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고 있었고, 자베르는 그저 허허하며 웃었다. 그가 팩스터에게 술을 좀 달라고 말하자, 팩스터는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들고 왔다. 자베르가 한 모금을 마셔보고는 불만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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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잖소?”
팩스터는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는 그저 입맛을 다시고는 한 모금을 더 마시고는 잔을 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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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명한 기사 가문의 기사께서 떠돌이 생활을 하니 말입니다.”
자베르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잠시 생각을 하였고, 팩스터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자베르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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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용병, 사냥꾼이라고 할까. 이것 모두 맞소. 처음에는 왕국 기사단에 소속이였고, 그 후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용병으로 지내고, 프리미스트(Primist) 기사단에서 성기사로 지내기도 했소. 그때부터 난 열렬한 프리미스트 교의 신자가 되었소. 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소. 아, 11년 전에는 하이아칸 제국의 왕국 기사단 소속인 적도 있었소. 그때, 맡은 일이 사라진 왕자를 찾는 일이였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미네르(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행운과 승리의 여신)께서 세르를 좋아하시나 보오. 하하하.”
그가 웃으며 말했다. 팩스터는 자베르의 말이 끝나자 아무 대꾸 없이 불편한 듯 물을 마셨다. 무신론자인 팩스터는 당연히 프리미스트 교의 12신이며, 미네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물을 다 마시고서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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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동안 왕국 기사로 지내셨습니까?”
“자베르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피며 들었다. 팩스터는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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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린 왕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사라진 왕자와 그를 데려간 기사를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소. 그리고 왕비의 장례식을 거창하게 했소. 그리고 계속 용서를 빌더군. 미안한지 다시는 왕비를 두지 않을거라고 하였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하이아칸 제국에는 후계자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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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물을 마신 뒤, 진지한 표정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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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어볼 것을 물어봐야겠소. 루이스가 왕지이오?”
“아니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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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왕자는 어디있소? 인생과 가족을 버리고 떠났는데, 왕자까지 버렸다 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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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제가 왕자를 데리고 키우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아이는 세르의 아이이요? 리오스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이라도 한 것이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아내는 어디 있소? 버림이라도 받았나?”
“잠시 부모님을 뵈러 갔을 뿐입니다.”
“그렇소? 그런데 아들 분이 아내 분을 닮았나 보구려. 그런데 혹시 아내 분이 왕족이오? 하이아칸의 왕과 아들 분이 아주 닮았던데 말이오. 완전 판박이던데.”
“이 넓은 세상에서 닮은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보게, 세르. 세르는 왕비의 근위대이었지?”
자베르가 갑작스레 주제를 바꾸었고, 팩스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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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왕비 근위대였죠.”
“왕비 근위대는 왕비에 대한 충성과 왕비의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래서 왕의 명을 어기서라도 왕비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지. 그렇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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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왕비가 부탁한 아이가 루이스가 맞지 않소?”
“아닙니다.”
“정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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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페르?”
자베르는 씩 웃더니 탁자위에서 검지로 탁자를 툭툭 치고있는 팩스터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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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는 거짓말을 할 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버릇을 고쳐야겠소. 그리고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루이스가 왕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날 없앨 필요는 없을거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오.”
팩스터가 미간을 찌푸려 그를 노려보자, 그는 옷 안에 둔 프리미스트 교의 상징인 포크(fork)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팩스터에게 보여주었다. 양 끝 두개가 바깥쪽으로 직각으로 꺾인 삼지창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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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하늘의 신이며, 신들의 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이 맹세는 디아나(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달과 맹세의 신)께서 보았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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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구들이 잔뜩 있는 지하실을 잠시 둘러보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가 대장간을 나오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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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셔도 좋습니다, 페르. 단, 맹세를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
“난 신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네.”
자베르가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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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두 명이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오스프리드였고, 또 다른 한 명은 티토스 스타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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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티토스가 오스프리드에게 돈을 빌렸었는데, 그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갚으라는 오스프리드와 다투고 있던 것이었다. 오스프리드는 돈을 어서 갚으라며 주장하였고, 티토스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프리드는 구경하고 있던 무리에 있던 루이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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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루이스도 있었지? 너도 내가 돈을 빌려 주는 거 봤지?”
“흐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일이라서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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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스 형이 분명히 10탈레온을 빌려갔었잖아.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모은건데 말이야.”
“정말 귀찮게. 고작 10탈레온 가지고.”
티토스는 주머니에서 탈레온 동전 11개를 꺼내어 오스프리드 발 앞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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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없는 새끼가. 1탈레온은 그냥 네가 가져라.”
아무도 오스프리드와 루이스 앞에서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루이스가 놀라 오스프리드를 보았을 때, 오스프리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고, 주먹을 세게 쥐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티토스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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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스를 향해 달려간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그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보다 두 살이 더 많고, 덩치도 더 있는 그는 오스프리드를 밀쳐내고 조금 전 상황과 반대로 쓰러진 오스프리드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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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티토스 무리는 그 행동에 호응을 하였고, 3명뿐인 오스프리드의 친구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다시 한 번 티토스의 몸이 쓰러졌고,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갔다. 심하게 발로 차인 오스프리드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며 쓰러져있었다. 티토스 무리 중 한 명이 티토스를 때리고 있는 루이스를 발로 차 떨어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으로 쓰윽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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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돌았나. 야, 다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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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스 무리가 움직이자, 그들보다 어린 오스프리드 친구들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그들은 굳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루이스와 오스프리드를 욕을 하며 그들을 마구 밟고 차기 시작했다.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둘은 그저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만 있을 뿐, 그대로 공격에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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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맞고 있을 때, 티토스가 침을 뱉고는 무리에게 그만 가자고 하였고, 무리가 사라지자 둘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있었다. 숨을 몰아쉬던 루이스는 그대로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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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오스프리드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저 끙끙거리는 소리만 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스프리드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서,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오스프리드를 쳐다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어느새 일어나있었고, 그대로 울고 있었다. 루이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어났고, 절뚝거리며 오스프리드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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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오스프리드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루이스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그는 원망이 가득 찬 눈으로 루이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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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이야. 너만 여기 안 왔었더라면 우리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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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이야? 왜 그래, 오스프리드.”
“왕자라는 녀석이 왜 쓸 때 없이 여기 와서 남에게 피해를 주냔 말이야.”
“뭐?”
“네가 하이아칸의 왕자라는 거 알고 있어? 그리고 하이아칸 왕이 널 죽이려고 했는데, 너희 아버지가 널 살리려고 널 이곳으로 몰래 데려왔고, 왕은 너희 아버지 가문을 몰살을 했어. 그때, 잠시 하이아칸에 갔던 우리 엄마도 있었고 말이야. 네가 이곳으로 와서 죽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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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농담이지?”
“모두 너 때문이야.”
그는 루이스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그대로 뛰어갔고, 루이스는 멍하니 그가 뛰어간 곳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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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윈 집에서 묵고 있던 자베르는 어느 정도 팩스터와 친하게 되었고,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루이스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본 팩스터가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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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루이스?”
루이스는 퀭한 눈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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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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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운거야?”
“내가 보기엔 싸운 것 보단 일방적으로 맞은 것 같소만.”
자베르가 말하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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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았어? 누구한테?”
“전 누구에요?”
루이스가 엉뚱한 말을 하자 팩스터가 그의 머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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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다쳤어?”
“저, 아버지 자식 맞죠? 그렇죠?”
팩스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라는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볼 때, 루이스가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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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이아칸의 왕자야?”
“무슨 소리야? 누구한테 들었어?”
“맞구나…. 거짓말쟁이….”
“그럴 리가 있니. 넌 평범한 대장장이인 내 아들이야.”
“왕국기사가 평범한 건가요?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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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루이스가 이 사실을 안 것일까? 이 사실은 자신과 자베르, 그리고 오스문드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고, 자베르는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자베르는 그가 맹세한 것을 어길 리가 없는 것 같아보였고, 확실히 자신 앞에서는 둘은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을 보지 못 했다. 그렇다면 오스문드가 말한 것일까? 하지만, 그도 약속을 어길 리가 없으며, 그는 현재 집을 비운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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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도대체 누가, 누가 루이스에게 말한 것일까? 루이스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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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말해주세요. 사실인가요? 이번에는 제발 얼버무리지 말아주세요.”
루이스의 물음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하였다. 그는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몰러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루이스에게 고개 숙여 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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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칸 제국의 황비 근위대 소속이며, 현재는 황자님을 보호하는 호위기사인 세르 마티스 로완입니다.”
자베르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루이스에게 고개를 숙여 절하였다.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이며, 그가 태어나자마자 무슨 일을 겪은 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고, 설명을 듣는 내내 루이스는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루이스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그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팩스터도 문 앞에 음식만 갖다 놓으며 식사를 하라고 말만 할 뿐, 루이스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하루 동안 루이스를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그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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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식사를 끝낸 자베르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는 숙박비와 음식값으로 팩스터에게 3데나리온을 건네자, 팩스터는 그 돈을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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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일주일 간 지낸 것 가지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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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건네면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오, 세르.”
“마음만 받겠습니다, 페르.”
자베르는 잠시 미소를 짓고는 돈을 지갑에 도로 집어넣고는 현관문으로 다가가며 다시 팩스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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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잘 지냈소이다.”
그리고 그가 나가려던 순간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이스가 아래로 내려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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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페르.”
자베르와 팩스터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활동하기 편한 두건이 달린 긴 외투를 입고 있었으며, 가벼운 배낭과 검을 챙겼다. 팩스터가 그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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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까?”
“말했다시피 페르 자베르를 따라갈 겁니다,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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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어째서 힘들고 위험한 생활을 하신다는 겁니까.”
“저를 속인 사람과는 함께 못 있을 것 같거든요. 페르께서는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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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거야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니…. 거참.”
“함께 가도 좋다는 걸로 받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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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떠나실 생각입니까? 모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험은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떠나셔도 됩니다. 차라리 기사가 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니 모험을 떠난 다는 생각은 잠시…….”
“이 결심은 절대 안 바뀔 것 입니다,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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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루이스를 말리려던 팩스터의 말을 끊고, 루이스가 단호히 말했다. 팩스터가 계속 그를 말리려고 했으나, 루이스의 뜻을 결코 굽히지 못 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팩스터는 한숨을 쉬고는 루이스를 자신의 대장간에 데려갔다. 대장간에 오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에게 맞는 얇은 판금갑옷과 스큐툼(scutum) 방패, ‘Y’자형 바붓(barbute) 투구, 단단한 강철로 만든 쇼트 소드(shortsword)와 소드 벨트(sword belt), 그리고 황금색 단검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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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가져가십시오. 이 검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할 겁니다. 그리고 이 단검은 황비님께서 황자님께 전해주시라는 것 입니다. 소드 벨트에 단검도 끼우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두면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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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터는 주머니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고, 루이스는 그 안을 보고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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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님께서 맡기신 겁니다. 3, 40아우리온 정도는 될 것이니, 당분간은 걱정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걸 다 가져가면 세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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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차피 제가 따로 모은 재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이스는 팩스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는 대장간 밖에서 기다리는 자베르에게로 갔다. 팩스터가 그를 불렀고,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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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정말 갈 거니?”
루이스는 팩스터를 바라보게 선 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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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버지.”
그리고 그는 자베르와 함께 마을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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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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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카울(cowl)을 입고 있는 소년과 사내가 퍼 붇는 소나기를 맞으며 들판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들판인지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들 모두 비를 피하기에는 부적합했고, 허허벌판인 이곳에서 비를 피할만한 장소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에 방패를 맨 소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고, 사내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롱하우스(longhouse) 한 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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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집이 있어요.”
“잠시 저기서 비를 피하면 되겠구나.”
둘은 비를 피하기위해서 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그들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백발이 만성한 늙은 남자가 나왔다. 사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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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된다면 헛간이라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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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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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집안에는 늙은 여자가 집 한가운데에 있는 난로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카울을 벗어 벽에 달린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두건을 벗자 소년의 금발머리가 드러났다.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패와 검, 배낭과 투구를 벽에 기대어놓았다. 노인은 사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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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주겠소만 우리 집에는 가져갈 것이 없다우.”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여행자들입니다. 비만 그치면 바로 가겠습니다.”
전신에 방어구를 입은 사내가 말하고는 검을 풀어 벽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무엇을 끓이는지 궁금하여 그것을 흘끗 보았다. 그녀가 끓이고 있던 것은 밀죽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릇에 옮겨담고는 소년과 사내에게 하나씩 건넸다. 6월 달이라 더웠지만, 비를 계속 맞아 추위를 약간 느낀 소년은 감사히 그것을 받고는 따뜻함을 느끼며 떠먹었고, 사내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에 사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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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맨리스까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아십니까?”
“2, 3일만 더 걸어가면 될 것이오.”
그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편안히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사내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방패와 투구, 검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그쳤고, 그들은 감사 인사를 한 후에 집을 나와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품을 한 번 하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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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만 있었으면 벌써 맨리스에 도착했을 것이다. 리오스는 정말 도로상황이 엉망이야. 그나저나 루이스 넌 도시가 처음이 아니냐?”
“시골에서만 살았으니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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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론 맨리스는 비교적 작은 도시라고 하던데. 가장 큰 도시는 당연히 리오스의 수도인 웨스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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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치는 소토리오스 제국의 수도이며, 현재 리오스의 수도로, 가장 거대하며 여러 석상들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어 미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다른 도시보다는 비교적 왕래가 편하지만, 도시 안 중앙에 위치한 왕의 성만은 산엄한 경비로 그 주변조차 다가가기 힘들어, 중앙이 텅 빈 도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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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사는 것인데 말이야.”
생긴 것과는 달리 사내는 말이 무척이나 많았고, 결국 루이스가 그에게 짜증나는 말투로 한 마다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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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데 조용히 좀 합시다, 페르 자베르.”
“본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황자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자베르가 말하자, 잠시 루이스는 구시렁거리더니 이내 입을 다물고 걷는 일에 집중하였다. 사내는 걸을 때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 때문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얼마 뒤, 그들은 저 멀리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었고, 그것은 약 열 명 정도의 기수(騎手)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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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인가? 하지만 깃발이 보이지 않는데, 용병? 하지만 그럴 일은 없고.”
자베르는 그들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기사들은 보통 최소한 한 명의 기수(旗手) 그들이 따르는 영주나 그들이 속한 기사단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움직인다. 그리고 대부분 용병들은 말이 비싸 말을 잘 사지도 않기에 말을 타고 움직이지 않는다. 기수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자베르는 드디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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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족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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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자, 루이스가 검을 뽑기 위해 손을 칼자루로 옮겼다. 그러자 자베르가 루이스의 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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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저들을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기수들은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기수들은 그들 앞에서 멈추어 섰다. 머리를 한 갈래로 땋은 야만족들은 그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리오스어였다. 소토리오스 제국의 초대 왕인 아더 왕이 리오스어로 언어를 통일시켰고, 그 후로 리오스어를 공용어라 불리게 되었지만, 리오스의 많은 야만족들은 고대 언어를 말하고 있었고, 공용어가 생긴 후에는 그들이 말하는 고대 언어를 리오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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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리오스어로  말하고 있는 야만족들에게 서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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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 아레 프레이만.”
“프레이만? 웨 아레 프레이만, 토우.”
야만족 하나가 비웃듯이 말하자, 다른 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만족 중 몸에 문신이 가장 많은 자가 루이스와 자베르를 내려다보며 공용어로 서툴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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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이 자유인이 아니다.”
“자기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요.”
자베르가 공용어로 대답하였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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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에는 다른 국가에 비해 아직 많은 야만족들이 남아있으며, 그들은 작은 마을이나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거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야만족들에게 공격을 당한자들이 영주들에게 고통을 호소해 보았지만, 대부분 영주들은 작은 마을이 공격당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오스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거나 무리를 지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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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족 중 하나가 무어라 말하자 그들은 시끄럽게 서로 다투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고, 공용어를 사용했던 사내가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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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족은 작다. 돈이 필요하다. 가진 걸 내놔라. 옷, 돈 모두. 목숨은 살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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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이 안 되요.”
루이스가 불평하였다. 그들이 가만히 있자, 야만족들은 허리에 차고 있는 시미터(scimitar)를 뽑아들고 ‘후리 우프.’라고 외쳤다. 루이스도 무슨 일이 생기면 검을 바로 뽑을 수 있게 칼자루에 손을 갖다대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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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래?”
“빼앗길 수는 없어요.”
“수적으로는 우리가 밀려.”
“그렇다고 제가 가진 돈을 모두 주라는 겁니까?”
“그건 안 되겠지.”
자베르가 씩 웃더니 말하고는 롱소드(longsword)를 뽑았다. 그들에게 말을 하던 야만족이 그들을 베기 위해 검을 높이 들었고, 자베르와 루이스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검을 내리치려던 야만족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그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쓰러진 그의 뒷목에는 볼트가 꽂혀있었다. 곧이어 2명이 더 볼트에 맞아 쓰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들은 석궁을 자신들에게 겨누고 있는 4명을 찾았다. 그때, 볼트 하나가 날아오더니 야만족 한 명의 목에 꽂혔고,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목으로 갖다대던 중 몸이 옆으로 쏠려 말에서 떨어졌다. 한 명이 화를 내며 말에 박차를 가하며 자베르에게로 달려갔고, 그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그러자 자베르는 보이는 것과 달리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 검을 피하고, 자신을 공격한 자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손목이 잡힌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말과 반대로 뒤로 몸이 쏠려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자베르는 롱소드를 거꾸로 잡고 쓰러진 그의 배를 내리찍었고, 사내는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자베르가 검을 뽑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더니 자베르가 한 번 더 찍어버리자 그는 조용해졌다. 또 다시 날아오는 볼트에 한 명이 더 죽자, 그때서야 야만족들은 죽은 이들의 말들을 챙겨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들을 공격한 자들은 석궁을 아래로 내리고 루이스와 자베르에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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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멍하니 죽은 자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충격을 먹은 듯 했지만, 침학하기도 하고,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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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그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나?”
“사람이 죽는 건 처음 봤거든요. 느낌이 뭐랄까… 이상하네요. 이 자들도 가족이 있겠죠?”
“더 이상은 아니지.”
루이스는 맨 처음 볼트가 뒷목에 박혀 죽은 자를 보았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려던 그때 그 표정을 그대로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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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떻게 죽은 지 모르고 죽으면 어떨까요?”
“궁금하지는 않을 거야.”
“끈적끈적하네요.”
“뭐가?”
“피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끈적끈적한 것 같네요. 색깔도 새빨갛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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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칼끝으로 땅을 몇 번 쓱쓱 긋고는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그들을 도와준 자들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걸음을 멈춘 그들은 두건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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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도 있는데 무모하군요.”
무리 중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자베르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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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오. 은인에게 실례지만 왜 도와주셨소? 야만족들이 표적을 바꿀 수도 있었는데 말이오.”
“아아, 저도 예전에 야만족들에게 가진 것을 빼앗긴 적이 있어서요. 복수도 한 셈이죠.”
그녀가 대답하고, 바로 옆에 쓰러진 자의 몸에 박힌 볼트를 뽑아 죽은 자의 옷에 볼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여자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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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십니까?”
“맨리스에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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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됐군요. 저희도 맨리스로 갑니다.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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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에서는 일행이 많을수록 안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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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볼트를 수거하며 말했다. 볼트를 모두 수거한 여자는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엘라 브락스이고, 그녀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그녀의 오빠인 리만 브락스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 뺨에 화상자국이 있는 자는 베릭 스파크, 남자가 보아도 잘생긴 외모를 가진 자는 로스비 알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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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도 그들에게 자신과 루이스를 소개하였다. 소개가 끝나자 그들은 함께 맨리스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오늘은 그만 걷자는 의견에 동의를 하고, 한 장소에 멈추어 쉬었다. 투그를 벗은 자베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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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아주 좋더군.”
잠시 이해를 못 했던 리엘라가 그 말을 이해하고는 석궁을 들어올려 보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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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을 사용한 것도 10년 가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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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자들이오?”
“용병입니다. 떠돌며 의뢰를 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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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용병단 소속이 아니면 의뢰가 들어오기가 힘든데 실력이 좋은가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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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의뢰를 성공하니 말이죠.”
“그러면 맨리스에는 의뢰 때문에 가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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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자세히는 의뢰를 구하러 가는 길이죠.”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루이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자베르가 배낭에서 빵을 꺼내 루이스에게 건넸다. 루이스는 허기를 달래기위해서 질기고 맛이 없는 빵을 억지로 먹다시피 하였고, 자베르도 빵을 하나 더 꺼내 먹기 시작했고, 그는 루이스와 달리 빵과 함께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자베르가 꺼낸 것이 물이 든 주머니인 줄 알았으나,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맡은 리엘라가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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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족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술을 마시다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요.”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다.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 모금 마시겠소?”
자베르가 그녀에게 주머니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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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안 마셔요.”
야만족들에게서 얻은 시미터의 상태를 확인하던 리만이 그녀를 ‘리엔’이라고 부르며 빵을 던졌고, 그녀는 놓칠 뻔 하였지만, 간신히 빵을 받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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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르던 이름을 아직도 부르니깐 저를 아이 취급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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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라는 것은 좋은 것이오.”
“형제가 있나요?”
“제 형제들 말이오? 모두 잘 살고 있을 것이오. 형님은 부르봉 왕국의 왕국기사이고, 동생은 부르봉 왕국의 어느 백작의 기사단 소속이니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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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국 사람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발음이 부르봉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소. 아더 왕께서 세 대륙 언어를 통일시키신 덕분에 대화에 아무 지장이 없지요. 만약 그분이 언어를 통일시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부르봉 왕국 언어를 사용하고 있겠지요.”
그가 공용어가 아닌 다른 말로 무어라 말하였지만, 그녀는 당연히 무슨 듯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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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를 통일시킨 것도 위대한 업종이시지.”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들러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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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좀 피우죠.”
“불을 지피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야만족들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될 거야.”
베릭이 말하자, 리엘라가 투정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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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건 싫은데.”
“2년만 있으면 30살이 되는 사람이 투정은.”
로스비가 시미터를 바닥에 두고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자베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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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도 기사십니까? 형제 모두 기사라면 기사 가문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신갑옷, 투구, 롱소드까지 가지고 있으시니 전형적인 기사 복장이 아닙니까?”
“이제는 아니오. 그리고 맨리스에 가면 최소한의 방어구를 빼고는 팔 예정이오. 옛날엔 이것보다 더 무거운 것을 입고도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갑옷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말이오. 그래도 아직은 팔팔하오.”
자베르가 팔팔하다고 말하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가슴을 툭툭 쳤다. 루이스가 빵을 다 먹었을 즈음 리엘라가 그를 보며 자베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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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는 누구에요? 우리와 만났을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던데.”
“내 제자요. 함께 여행 중이지.”
“이렇게나 어린 애가 제자라고요? 이름이 루이스라고 했던가, 몇 살이니?”
그녀가 묻자 루이스는 입에 있던 빵을 재빨리 씹은 뒤 삼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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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입니다.”
그녀는 최소한 그가 14살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12살이라고 말하자 놀라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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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이라고? 그렇게나 어린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거야?”
“사실…….”
“저 녀석은 사실 고아라오. 그나마 꽤 검을 잘 쓴다 싶어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오. 물론 비용은 모두 제가 부담하고 있지만 말이오.”
자베르가 갑자기 사실이 아닌 말을 하여서 루이스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자베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당황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그의 말에 맞추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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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있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이 생활이 길거리 생활과 다를 것이 뭐가 있니.”
그들은 그 후로도 대화를 더 나누었고, 많이 걸어 피로가 많이 쌓인 루이스가 먼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신의 카울을 바닥에 깔고 누우려고 할 때, 자베르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듯 한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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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앞으로 네가 하이아칸의 황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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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무슨 말인지 다시 물으려다가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 때문에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 그에게 따로 묻기로 마음먹었고, 지금 당장 묻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피곤했기 때문이었고, 그는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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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시체가 가득한 정장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곳곳에는 깃발들이 불러져 너부러져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기사와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고, 그들은 그가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처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일정하지 않은 복장과 무구로 무장되어 있어서 오합지졸 부대-심지어 몇몇은 농기구를 들고 있는 평민들이었다.-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 지금당장이라도 그 오합지졸 부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회색빛의 기사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기사들 앞에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자가 꿇어앉아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오합지졸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검을 든 채 황금 갑옷을 입은 자 앞에 서 있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입이 무어라 말하였지만,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장은 검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목을 내려쳤고, 검붉지 않은, 매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머리 없는 몸이 건물이 무너지듯 쓰러졌고, 한참 후에야 주인을 잃은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고, 승리한 자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높이 들며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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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우리가 이겼따! 우리의 새로운 왕 만세!”
그들은 계속 ‘새로운 왕 만세’라는 말을 계속 외쳤고, 목을 벤 자는 그들의 환호에 답하듯 그의 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고, 그의 칼날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루이스는 환호하는 무리 사이에서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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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정리되어 있지 않은 땅을 걸어온 그들 앞에 ‘맨리스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팻말과 미약하지만, 그나마 정리되어진 도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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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와 팻말이 나온 것을 보니 거의 다 온 것 같군요. 점심 때 쯤 이면 도착하겠네요.”
리만이 말하고는 길을 따라 걸었다. 루이스는 그들을 만난 후로 매우 편안히 걷고 있었다. 그들과 만나기 전에 그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지만, 험악한 인상을 주는 베릭은 외모와 달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가 루이스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었다고, 루이스는 그저 자신의 갑옷과 투구, 방패, 그리고 검만 가지고 걸었다. 언뜻 보면 루이스는 기사 흉내를 내는 꼬마아이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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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은 여행 내내 루이스에게 맛있는 것을 주거나 루이스의 검을 닦고 갈아주는 일을 대신 해주었고, 그 때문에 루이스도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를 매우 잘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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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안한 차림의 여행자, 무리지어 다니는 용병들, 그리고 길옆에는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이 허전한 바구니를 앞에 두고 드물지 않게 나타났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말발굽소리가 들렸고,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자, 일렬로 5명의 말을 탄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기사는 번개모양의 칼날을 가진 검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옆으로 비켜 기사들이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자베르는 그의 옆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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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리스 영주의 라이드이구나. 아참, 맨리스 영주가 기사라는 건 알고 있니?”
루이스는 대답하지 않고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사들을 보았다. 기사 중 한 명이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주었고, 동전은 신기하게도 거지 앞에 놓여진 바구니로 정확하게 들어갔고, 거지는 고맙다며 멀어지는 기사에게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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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그들은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의 성문에 다다랐다. 자베르가 이 맨리스라는 도시가 작은 도시라고 하였으나, 도시에 처음 온 루이스가 보기에는 매우 큰 도시였고, 사람들 또한 엄청 많다고 생각하였다. 자베르는 맨리스에 함께 온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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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이었지만 만나서 매우 반가웠소.”
“저희와 함께 다니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리만이 묻자, 자베르는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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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저 방랑자일 뿐이오.”
“싫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자베르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고, 베릭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헤어지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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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지내라.”
루이스도 그에게 건강하라고 말하였고, 그들은 헤어졌다. 자베르는 먼저 여관으로 가자고하여 그들은 잠시 여관을 찾다가, 여관을 찾고는 그곳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여관에 들어와 그들이 먼저 한 일은 갑옷을 벗는 것 이었다. 갑옷을 벗은 자베르는 어깨를 돌려 근육을 풀어주었고, 허리를 쫙 피며 자신에게 불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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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나, 몸이 많이 뻐근하고 힘드네. 이제 이것들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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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품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황금색에 화려한 황실 문장이 새겨진 단검.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이름조차 알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몸을  풀던 자베르가 그가 들고 있는 단검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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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단검이냐? 이런 것도 갖고 있었나? 어라, 하이아칸 황실 문장이 아니냐?”
루이스는 그가 하이아칸 제국의 제국 기사단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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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름을 아시나요?”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이야 알지. 예니 판 파이네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초상화를 본 적이 있지. 아주 미인이더군. 남자라면 누구나 한 눈에 보면 반할 정도였지. 난 처음에 봤을 때 엘프인 줄 알았어. 엘프처럼 정말 매혹적인 외모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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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루이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단검이 무엇이냐고 묻자, 루이스가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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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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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요하겠구나.”
“당연하죠.”
“간수 잘 해라. 오랜만에 식사같은 식사 좀 하자. 갑옷도 팔아야 되니깐 말이야.”
루이스도 동의하고, 그들은 여관에 있는 식당대신 여관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대륙보다 리오스가 있는 리치 대륙, 특히 중부 지방에서는 벼가 많이 자라 맨리스에서도 쌀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고깃국과 쌀로 만든 밥을 먹었다. 고깃국의 간은 매우 싱거웠고, 고기는 그저 종이 조각을 씹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행 내내 마른 빵만 먹어온지라 별 불평 없이 식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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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낸 그들은 자베르가 갑옷을 팔기 위해 대장간으로 갔다. 대장간에 온 루이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비록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진짜 아들처럼 12년간 길러주었다. 자신이 진짜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면, 지금도 친아버지인 줄 알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떠난 것이 잘한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대장장이와 자베르의 실랑이 때문에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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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0데나리온이라니. 최소한 10아우리온 정도는 줘야할 것은 아니오? 이것은 50아우리온 상당의 가치의 물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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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아우리온이라니. 아예 작은 집 한 채를 달라고 하겠구만. 50아우리온 가치라고 하여도 이건 흠집이 꽤나 나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하여도 10데라이온은 너무 적소.”
“하아, 좋소. 2아우리온.”
“여덟 닢으로 끝냅시다.”
“하이고, 거참. 다섯 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받지 못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정도도 제가 엄청 많이 양보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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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검으로는 뚫지 못 하는 갑옷인데, 좋소. 다섯 닢으로 하죠.”
대장장이는 자베르에게 금화 다섯 닢을 건넸고, 그들은 그곳을 나왔다. 루이스는 막 괜히 팔았나라며 후회하는 자베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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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모두 팔아도 괜찮아요?”
자베르는 입고 있는 옷을 살짝 들어올려 안에 있고 있는 쇠사슬 갑옷을 보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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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있으면, 어차피 웬만한 녀석들은 근처에도 못 올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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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베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왜 웃느냐고, 묻자 루이스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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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도 못 온다니, 아이들이 쏜 석궁에도 맞았잖아요.”
“아니, 그때 그것은 내가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볼트가 날아온 거잖아. 공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면 맞지도 않았어.”
자베르가 당황하며 해명을 하자, 루이스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떠나와서 웃은 적이 있었던가?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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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시 여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고, 뒤를 돌아보자 리만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건넨 후 리만이 자베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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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도 한잔 하러 가시죠. 돈은 물론 제가 내겠습니다.”
“술이라…. 좋소. 루이스, 여관에 먼저 가 있어라.”
“꼬마도 같이 데려가죠. 위험하게 혼자 보내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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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말이오?”
“제가 아는 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음료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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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어떻게 할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럼 어서 가죠.”
리만이 손바닥을 마주대어 비볐다. 그들이 간 곳은 작은 술집이었고, 손님도 자신들을 포함해 10명이 채 되지 못 했고, 개중에는 베릭과 로스비도 있었다. 그들은 자베르와 루이스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며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의자에 앉은 리만은 주인에게 마실 것을 주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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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잔. 어린이 손님을 위한 것도.”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마 안 되어 자리에 앉은 그들 앞에 각자 주문 한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루이스 앞에는 오렌지 주스를, 리만과 자베르에게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를 주었다. 자베르는 컵을 집고는 코 가까이 가져다놓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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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술, 보드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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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보드카가 리오스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 진정한 보드카의 맛을 볼 수 있죠.”
“진짜 진정한 보드카를 맛보고 싶다면 하이아칸 북부로 가시게나. 나도 그곳에서 보드카를 한 번 마셨다가 그날 죽는 줄 알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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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마셔보고 싶군요.”
리만은 잔을 들어 허공에 잔을 부딪치고는 입으로 갖다대어 마셨다. 자베르도 잔을 비우고는 ‘크’ 라는 감탄사를 하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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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긴 독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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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빤히 주스를 쳐다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목이 마르는 것 같은 느낌에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 그의 앞에 과자가 든 그릇이 두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검은머리에 콧수염을 가진 선한 인상의 주인이 싱긋 웃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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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며 각 나라의 상황에 대해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는 어른 네 명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자베르가 술을 더 권하는 리만에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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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 술에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데, 오랜만에 술친구가 생겨 떠들다보니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구려. 잠도 밀려오고, 이제 그만 가봐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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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명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베르와 달리 얼굴이 약간 붉어졌을 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술에 취한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로스비가 웃으며 자베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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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가 한 명 더 느니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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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하품을 크게 하고는 잘 지내라며 말한 뒤, 루이스와 함께 여관으로 갔다. 여관에 도착한 그들 둘 다 피곤하다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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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있던 루이스는 누가 자꾸 그를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와 깨기 싫던 그는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부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르며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앞에 바닥에 누워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자베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불편하게 두 손을 등 뒤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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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우리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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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려는데 자신의 손이 등 뒤에서 움직이지 못 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움직여도 두 손이 서로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이곳이 잠이 들기 전에 있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루이스가 자베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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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죠?”
“쉿, 쉿. 조용히 해라. 잠깐만 기다려봐.”
자베르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났을 때에는 횐팔에 있어야 할 손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진짜 손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의수를 집고 왼팔에 붙이고, 의수의 손가락을 움직이고는 중얼거리며 루이스에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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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술에 취하면 안 된다니깐.”
그는 루이스의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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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과 로스비와 대머리의 사내가 원형 탁자에 앉아있었고, 베릭이 동전 한 닢을 손가락으로 튕겨 하늘로 띄운 뒤, 공중에서 재빨리 낚아채고는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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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대머리의 사내가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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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로스비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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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앞이면, 난 뒤.”
베릭이 주먹 쥔 손을 피자 안에는 그림이 그려진 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동전이 있었다. 그것을 본 대머리의 사내의 얼굴에는 짜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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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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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머니에서 10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로스비에게 주었다. 그러자 로스비는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동전을 받았다. 로스비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5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숫자가 적힌 면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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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위에 좀 갔다 오면 줄게.”
“자기가 감시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러기냐.”
그는 로스비의 손에서 돈을 빼앗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어느 방문 앞으로 가 방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눈에는 밧줄을 막 풀고 이어난 중년남성과 꼬마 아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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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는 손을 허리에 찬 검으로 갖다대려는 순간, 중년남성이 재빨리 다가 와 밧줄을 그의 목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는 밧줄을 잡고, 목을 조이지 않기 위해 힘껏 당겼지만, 중년남성의 힘은 매우 좋았고,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힘만 더 빨리 빠진다는 것을 알고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팔꿈치로 상대방의 몸을 가격했지만, 오히려 목을 조이는 힘만 더 강해졌다. 다급해진 그는 손으로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려보았지만 이미 힘이 거의 빠진 그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 했다. 숨이 막혀 얼굴이 붉어진 그는 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검을 뽑았을 때, 그의 손에서 검이 사라졌고, 그는 자신 앞에서 자신의 검을 들고 있는 꼬마아이를 보았다. 그는 점점 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밧줄을 풀려고 바둥바둥 거렸지만, 그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잠시 뒤, 그는 두 팔이 축 늘어지더니, 두 다리가 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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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성은 사내를 바닥에 조심스레 두고는 꼬마아이에게 검을 받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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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다려라, 루이스.”
그가 소리 없이 방 밖으로 나가 밖을 힐끔 보았다. 1층에는 두 명의 사내가 탁자에 앉았었는데, 둘 다 그가 있는 곳을 등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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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저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올 떄, 한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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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로스비? 베릭?”
그러자 둘이 그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들이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들고 있는 검을 바로 잡으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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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냐?”
“자, 잠시 얘기 좀 하시죠. 검은 내려놓으세요.”
베릭이 당황해하며 말하자, 베릭이 그 대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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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 님은 그냥 가시면 됩니다. 물건도 그대로 보관해놓았으니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저 어린아이만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대가로 돈도 드리죠.”
“어린 꼬마 데리고 뭐 할 것이오?”
“그저 용병단에 팔 겁니다. 이런 길거리 생활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게 용병인가? 돈에 팔려서 가는 것이? 어린 꼬마가 용병단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소?”
“그저 몇 년 일하면 되는 겁니다.”
“돈도 못 받고 노예처럼 몇 년을 일하라니. 그게 할 짓이오? 아이 물건은 어디있소?”
“돈이 많이 있어서 무구들은 가만히 놔두었지요.”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오? 아이들을 용병단에 팔아넘기고, 돈을 훔치고 말이오?”
로스비가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가 다가가자 그들은 검을 집어 들었다. 로스비는 바스타드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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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서로 피 볼 일은 없지 않습니까.”
“갈 길 가기위해서 루이스가 필요하지.”
“어쩔 수 없군요.”
로스비는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검을 내리쳤다.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자베르는 몸을 틀어 간단히 공격을 피한 뒤, 로스브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그는 내리친 검을 다시 올리며 자베르의 검을 쳐냈다. 다시 로스비는 자베르를 공격해왔지만, 자베르는 그의 공격을 모두 막고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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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베릭은 싸움에 끼어들어 로스비를 도와줄지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는 자신이 다칠 수가 있었고,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로스비와는 우정이 아닌 돈으로 맺어진 동료사이이고, 결국 그는 일단은 지켜만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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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비는 자베르와 검을 몇 번 부딪히고는 떨어졌다. 로스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한 상대이다. 그는 잠시 어떻게 자레르를 공격할지 고민을 하고는 다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검을 내리쳤고, 자베르가 몸을 뒤로 빼자, 로스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치고 있던 검을 중간에 멈추고 그대로 그의 명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 순간, 그는 자베르의 눈빛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까지 그의 눈에서는 살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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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검으로 로스비의 검을 쳐 내린 뒤, 다시 검을 쳐올렸고, 로스비가 검을 쥔 손이 피를 뿜으며 하늘로 떠올랐다. 로스비는 몸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잘려나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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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으아악! 내 손을, 손을!”
자베르는 검으로 허공을 베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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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아니라 쓰러진 로스비를 바라보고 있는 자베르를 발견했고, 그는 칼자루를 꽉 쥔 뒤 그에게로 달려갔다. 자베르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한 박자가 늦었다. 베릭이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을 때, 나무의자 하나가 그에게로 날아오더니 그대로 그를 들이박았고, 베릭은 의자와 함께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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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가 의자가 날아 온 곳을 보자, 계단 위에 서 있는 루이스가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자베르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베릭에게로 다가가 발로 검을 멀리 밀어내고 칼끝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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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을 부리지 말지 그랬소.”
베릭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미친 듯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던 루이스가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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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뒤에!”
자베르의 뒤에서 로스비가 검으로 그를 내리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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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검을 가로로 그으며 몸을 돌렸고 로스비의 가슴 윗부분이 그의 손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붕 떠올랐고, 땅에 붙어있는 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서야 베릭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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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붙어있었을 것인데.”
자베르는 둘로 나뉘어진 로스비의 몸통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상체를 일으키고 누워있는 베릭을 보았다. 그는 로스비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고, 베릭은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고, 검은 그대로 그 옆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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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물건은 어디 있소?”
“여기 있어요.”
루이스가 구석에 두어진 자신의 물건들 앞에 서서 말했다. 물건들을 확인하던 그는 몸을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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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졌어요. 단검까지….”
“돈이랑 단검이라면 리만과 리엘라가 가지고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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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은……”
“어디있죠?”
루이스가 자베르의 말을 끊고 대신 말을 이었다. 그러자 베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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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용병단과 만나고 있겠지.”
“어디서요?”
“남쪽 광장일거야.\"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갑옷을 서둘러 입었다. 그런 그를 베릭이 보더니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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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는 거지?”
“찾으러 가야죠.”
“그곳에 간다고? 하하하, 이거 의외군. 너를 용병단에 팔려고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니? 넌 지금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거야. 나라면 차라리 도망을 가겠다. 돈이야 좀 아깝겠다만, 목숨이 더 소중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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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막 방패를 든 루이스는 검을 뽑고 그에게 다가와 검으로 그를 겨누었다. 루이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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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하, 사람은 죽여 봤니, 꼬마야?”
“지금이 처음이 될 수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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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라는 반응이 어떤 거야? 내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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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이 루이스를 조롱하듯이 말하였고, 곧 그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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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렸다가는 검을 그 입 안에 쑤셔 넣어주지.”
루이스는 베릭의 손등을 찍은 검을 다시 뽑았다. 검이 제대로 박혀 루이스가 힘껏 뽑다가 검이 뒤틀리는 바람에 베릭의 상처가 찢어졌고, 그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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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베릭은 잠시 루이스를 노려보더니 일어나 상처가 너덜너덜해진 손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루이스는 검을 집어놓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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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이에요?”
“어차피 난 소속만 없을 뿐이지, 기사는 기사야. 기사가 도둑 하나 죽인다고 문제가 되겠니. 그런데 내 걱정보다는 네가 문제다. 그곳에 정말 갈거니?”
“단검을 되찾아야 되죠. 그에 있어야 나중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가 누군지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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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베르는 그런 그를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그도 그의 검을 챙기고 밖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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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조각상과 리오스 왕가의 깃발과 영주의 깃발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광장에 무장을 한 십 여 명이 리만과 리엘라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수가 많은 쪽이 무장을 했지만, 검정색 바탕에 상단부가 뾰족한 붉은 히터(heater)가 그려진 팰스만 같을 뿐, 방어구와 무기가 제각각인 것을 보니 그들을 용병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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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행인들은 그저 그들을 잠깐씩 쳐다만 볼 뿐,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리만이 용병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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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아이를 넘겨받은 후에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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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쪽이 먼저 주시지. 우리가 너희 ‘붉은 방패’와는 첫거래지만 우리는 거래를 망친 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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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앞에 데려오면 그때 주지.”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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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다리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는데?”
리엘라가 한 곳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무장한 소년과 사내가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용병들을 사이에 두고 남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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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검은 어디있지?”
“그 녀석들은 저런 것들도 감시 못 하고 뭐하는 것인지. 이야, 그런데 이거 의외인걸. 수십 아우리온보다 단검을 먼저 찾다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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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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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버렸는데, 이걸 어쩌나.”
레일라가 말하자 루이스가 움찔하더니 검을 뽑았고, 용병들은 일제히 무기를 쥐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자베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러자 용병 중 대장이 손짓을 하자 용병들은 일제히 양옆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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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참 무서워 죽겠군요, 꼬마 기사님.”
“단검을 어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베어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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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죽겠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넌 검인데 난 장거리 무기인 석궁이란 말이야.”
그녀가 석궁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볼트를 끼웠고, 루이스는 방패를 몸으로 끌어당겨 앞면에 세웠다. 그녀는 석궁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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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막아보렴.”
“뭐하는 짓이지? 꼬마를 죽이면 어쩌자는 건가?”
용병대장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석궁을 흔들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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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지금 잡으면 되잖아.”
“그러면 잡아주지.”
용병들은 루이스와 자베르 쪽을 제외하고 붉은머리의 남매 주위를 구멍 뚫린 원처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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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하는 짓이야.”
용병대장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살짝 들자, 한 용병이 작은 뿔나팔을 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수십 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고, 맨리스의 영주의 문장이 새겨진 초록색의 전투복을 입은 라이드와 브루도가 광장을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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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기사들의 등장에 당황한 리만은 그도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레일라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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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이야! 갑자기 기사는 뭐야.”
루이스 뒤에 선 그들의 전투복 색과 문장그대로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 왼편의 기사가 말을 몰고 루이스의 뒤에 다가온 뒤 그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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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리스의 영주 세르 티클러 스피세르께서 6개월 전 그의 조카이신 루시온 님을 납치, 용병단에 팔아넘긴 너희 붉은석궁남매를 잡으라는 명을 내리셨다. 무기를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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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온 그 녀석이 교양이 철철 넘친다고 했었다. 다가오면 이 아이를 죽여버리겠어!”
“상관없다.”
“이런 젠장.”
리엘라는 리만을 쳐다보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루이스 뒤의 기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따. 어차피 그들에게 잡혀 던전(dungeon) 같은 곳에 갇힐 바에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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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몸을 옆으로 틀어 볼트를 피하자, 곧바로 리만이 그 기사를 향해 볼트를 쏘았다. 기사는 중심을 잡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었고, 볼트는 정확히 그곳을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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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볼트는 날아가다 중간에서 멈추었다. 자베르가 왼손에 힘을 주자 볼트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고, 그는 부러진 볼트를 바닥에 버렸다. 곧바로 기사들이 달려와 그 둘을 제압했고, 볼트에 맞을 뻔한 기사는 자베르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며 감사의 말을 전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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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를 졌군요. 조금 전 일, 감사합니다.”
기사는 다시 말을 몰고 용병대장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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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렉.”
“저흰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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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갔다. 티렉은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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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를 손으로 잡다니 놀랐군,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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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 녀석의 졸개들의 무기에 비하면 볼트의 속도는 달팽이야. 잘 지냈나, 붉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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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바와 같이. 용병단도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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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넬 보았을 때 엄청 놀랐는 거 아나? 자네가 이런 거래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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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님의 의뢰였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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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옆에 있던 루이스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걸어갔다. 기사들이 그가 다가오지 못 하게 막으려고 하자, 기사대장이 가만히 두라는 손짓을 보냈고, 루이스는 리엘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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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은?”
“기사 양반, 왼쪽 허리에 찬 주머니 좀 이 꼬마에게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리엘라가 자신 옆에 서 있는 브루도에게 말하자, 그는 기사대장을 쳐다보았다. 기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머니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주머니 안에는 5 데나리온이 들어있었고, 리엘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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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네 단검을 팔고 남은 돈이다. 그리고 미안한데 너의 돈으로는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진 빚을 갚는데 써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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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들은 루이스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그를 본 기사대장이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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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면 네가 죽여도 좋다. 어차피 영주님께서도 이 녀석들을 죽여서라도 데려오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네 동료가 내 목숨도 구해주었으니 말이야.”
루이스는 잠시 동안 리엘라를 노려보더니 그녀를 향해 검을 찔렀고, 그의 검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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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팔았지?”
“킥킥. 말해 줄 것 같니, 꼬마야?”
그녀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꽂힌 검을 살짝 비틀었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눈빛으로 조금 전 질문을 다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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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찌른 기분이 어때?”
루이스는 조금 전과 반대 방향으로 검을 비틀었다. 그녀는 다시 고통을 참지 못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자기 여동생이 고통을 받는 걸 차마 보지 못 하겠던 리만이 대신 루이스에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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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에스터라는 티리아 상인에게 팔았다. 지금쯤 이곳을 떠나 호스터로 향했을거야. 호스터에 가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는 티리아에도 가기 때문에 쉽게 만나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는 매년마다 맨리스에 온다.”
리만이 말을 끝내자, 루이스는 그를 쳐다보고는 리엘라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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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을 잃어 버리다니. 자신이 가진 유일한 어머니의 유품인 그 단검 하나를 지키지 못 했다. 그리고 가진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렇게 제 몸 하나 지키지 못 하는데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모험을 떠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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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일 거냐?”
기사대장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루이스는 검을 높이 들어 그녀를 벨 자세를 잡았지만, 곧바로 내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검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검에 묻은 피는 그의 눈물과 동시에 흘러내려 땅에 떨어졌다. 기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고는 ‘귀환’이라고 외치며 말을 성이 있는 곳으로 돌렸고, 모든 기사들도 그를 쫓아 남매를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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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아직 그곳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이스의 투구 때문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모르고 그저 그가 몸을 부들거리는 것을 용병들은 그저 멀리 떨어져서 그를 지켜만 보았고, 붉은기사라고 불린 티렉은 자베르와 나란히 서서 루이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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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야.”
“자네에게 동료가 있단 말인가? 위험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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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과 함께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어. 그 동안은 그저 여행자처럼 조용히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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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상인은 내년에 다시 이곳에 올 거야. 매년 그랬거든. 그나저나 단검이 그렇게나 저 애에게 중요하나?”
“암, 중요하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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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한 명이 루이스에게로 다가갔다. 용병은 로브를 입고 두건을 쓰고, 천으로 눈 아래를 가려 성병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활을 옆 동료에게 맞기고, 루이스 앞에서 입을 가린 천을 내린 뒤, 루이스의 투구를 벗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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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가 무겁지 않니?”
그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런 그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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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곳에 오며 몇몇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 때문에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직접 사람을 검으로 찔러 고통을 준 것에 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단검을 지키지 못 하는 자신이 한심해 눈물이 더 나왔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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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울음을 그친 루이스에게 자베르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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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거니?”
루이스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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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 말이야.”
“아, 찾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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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터로 가게?”
“하지만 그랬다가는 길이 엇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여기서 그를 기다려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야 되기는 하지. 하지만 난 6아우리온이 다야. 충분히 기다릴 수야 있겠지만, 그 후에 여행을 떠나면 돈이 부족할 거야.”
“곰, 그 아이와 함께 우리 용병단에 들어 올 생각은 없나? 돈은 많지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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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렉이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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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시설은 기본으로 주지.”
루이스는 티렉에게 시선을 떼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자베르도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다시 티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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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얼마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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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적이구나. 좋아. 그런데 넌 4급용병이란 말이지. 하지만 자베르의 추천이면 3급이니 계약금으로 4데나리온을 먼저 주지. 그리고 매달마다 2데나리온을 주마.”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붉은기사?”
“하지만 얘는 기껏 해보았자 자잘한 심부름이 다가 아니겠나? 이 정도면 자네를 생각해서 많이 주는 거야. 넌 어떠니?”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요. 잘 곳도 주고, 저 같은 어린이에게도 돈을 주니 말이죠.”
“공짜로 주는 건 아니지. 기간은 얼마동안 할래?”
“상인이 이곳에 올 때까지요.”
“거참, 녀석 뻔뻔하네. 좋아, 그렇게 하지. 곰, 자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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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는 끙 거리는 소리와 함게 고민을 하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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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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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놀라 그를 쳐다보자 자베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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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자가 나보다 더 뛰어난 기사다. 나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될거야.”
“하지만 떠난다니요? 어째서…. 단검을 찾은 후에 전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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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혼자 해야 많은 걸 배운단다. 나도 너와 함께 있는 게 낫겠지만, 차라리 너 혼자 있는 게 안전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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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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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마라. 이 붉은기사가 널 잘 돌보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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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내 의견은?”
“싫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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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내가 이 녀석 추천서를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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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베르도 함께 용병단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쉰다섯 살에 무엇을 하겠나? 늙어죽기 전에 모험이나 더 해야지.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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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뒤, 브리퍼드를 방문 한 뒤 글레메일로 향하던 자베르는 글레메일 평원에서 로브를 입은 두 명을 만났다. 자베르는 검을 뽑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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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도 정말 끈질기군.”
“우리를 공격한 자의 목숨을 무조건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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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은 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꺼냈고, 그 옆에 있는 자는 대거를 꺼냈다. 자베르도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곧, 로브를 입은 자들은 공격을 해왔고, 자베르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았지만, 그들의 무기 때문에 자베르는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조차도 접근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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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에게 밧줄이 날아왔고, 밧줄은 그의 검에 걸렸다. 밧줄을 사용하는 자는 검에 걸린 밧줄을 힘껏 당겼고, 자베르는 검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힘을 주었다. 그때, 대거하나가 날아와서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대거가 꼽히자 곧 그는 그의 왼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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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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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그의 검은 밧줄에 끌려 날아갔고, 대거가 다시 날아와 그의 몸에 박혔다. 그는 대거가 박힌 부위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곧, 그의 다리에도 대거가 날아와 박혔고, 그는 마비 된 다리에 힘을 주지 못 해 쓰러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중심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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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임무도 이제 끝났군.”
그들은 대답대신 밧줄을 던졌고, 밧줄은 자베르의 목을 감쌌다. 자베르는 눈을 감았고, 로브를 입은 자는 밧줄을 힘껏 당겼다. 자베르의 목은 돌아갔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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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를 입은 자 중 밧줄을 사용하던 자의 팔뚝에는 두개의 낫의 문장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자의 팔에는 똑같은 문장과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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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위(부를 때 : 작위 이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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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인정한 기사 : 세르(ser). 정식기사 한 명과, 준기사 세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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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기사 : 페르(per). 준기사 한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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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기사 : 페이(pei). 임명 받거나 돈을 주고 작위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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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스트(Primis)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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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리아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신교 종교로, 현재 티리아의 국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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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신 : 데우스(신들의 왕. 하늘의 신), 마르스(전쟁과 지혜의 신), 아폴로(태양의 신), 디아나(달과 맹세의 여신), 케레스(자연의 여신), 넵투누스(바다와 물의 신), 미스트(문학과 예술의 신), 소르트(대양의 신), 미네르(승리와 행운의 여신), 플루토(죽음의 신), 불카누스(불의 신), 유피드(연애와 가정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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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단위(티우스->탈레온->데나리온(은화)->아우리온(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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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티우스=1탈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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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탈레온=1데나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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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데나리온=1아우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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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붓(barbute) : 르네상스 시대의 투구. 얼굴 부위가 둥근 ‘T\' 모양으로 뚫려있었따. 원래는 고대 그리스 투구이었지만, 르네상스가 숭배하던 고대 세계의 유산을 부활시킬 때 함께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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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큐툼(scutum) : 크고 반원통형으로 구부러져 있으며, 앞에서 보았을 때는 직사각형으로 생긴 방패. 로마 레기온 부대가 사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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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드 : 기사와 용병들 중 말을 타고 싸우는 전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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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스 : 어깨부터 발목이나 발끝까지의 길이의 어깨에 착용하는 천. 기사, 용병들이 소속을 알리거나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위해 사용하는 얇은 망토이다. 보통 소속을 나타내는 문장이거나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영주나 군주의 문장이 새겨져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자신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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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도 : 기사와 용병들 중 땅에서 싸우는 전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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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dungeon) : (과거 특히 성 안에 있던) 지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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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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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은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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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_3070103_165717319', '   0장. 탄생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 화려한 의자와 왕관을 쓰고 있는 사내 앞에 엎드려있었다. 왕관을 쓰고 있는 자는 심기가 불편한 듯 턱을 괴고 엎드리고 있는 사내를 째려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느냐?”“왕자를 죽여야 합니다, 전하.”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이인 왕자를 죽이라니. 5년 만에 생긴 아이를 죽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오늘 아내가 아이를 놓아서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보러가고 싶은 상황에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지금 당장 검을 뽑아 저 사내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제국의 왕인만큼 그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침착함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왕자를 죽이다니.”“왕자가 전하께서 앉아계신 곳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내가 죽으면 당연히 후계자인 왕자가 이 자리에 앉게 되겠지.”“허나 전하의 운명은 왕자에 의해 끝이 날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왕은 잠깐 놀라더니 다시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왕좌 뒤 벽에 가로로 걸려있는 네 자루의 검을 보았다. 맨 위 쪽에 자리 잡은 검은 그의 검이고, 그 아래에 거린 검들은 그의 형제들의 검이었다. 하이아칸 제국은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하고, 줄곧 바이트 대륙을 통치하였는데, 몇 십년간 그 제국이 네 개로 나뉘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인 일린 판 파이네의 아버지 루크 판 파이네가 그의 네 아들에게 제국을 나누어 주었다. 제국의 북쪽을 차지한 일린은 형제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였고, 직접 그의 검으로 형제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자기 형제들을 죽이면서 이 자리를 얻어내고 지켜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빼앗긴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린은 엎드려있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사실인가? 자네 목숨을 걸 수 있겠느냐?”“예, 전하.”일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그의 검을 뽑았다. 한 여인이 값비싼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녀 옆에는 두 명의 하녀가 갓난아기를 각각 들고 있었다. “축하드리옵니다. 쌍둥이 왕자입니다.” 하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하녀가 웃으며 말하였고, 누워있는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5년 만에 생긴 아이이고, 왕자인데다가 쌍둥이라니. 남편이 필시 기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하녀에게서 두 아이를 건네받고 안아보았다. 아이들은 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고, 그녀는 기뻐하는 남편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방에 들어온 것은 하인이었다. 그는 당황해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왕비마마. 저, 전하께서 왕자를 죽일 것 입니다.” “무, 무슨 말이냐? 전하께서 왕자들을 죽인다니?”하인은 그가 본 상황을 그녀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고, 설명을 모두 들은 그녀는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으로 가득 찼다. 희망과 축복으로 가득 찬 방에는 절망이 가득 찼다. 그녀 주변에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기사가 하인에게 물었다. “전하께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아, 아마 모를 것입니다.” “왕비마마, 그렇다면 한 명은 살릴 수 있습니다.”“한 명이라니. 모두 살려야만 한다.”“시간이 없습니다. 곧, 병사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한 아이는 분명히 살릴 수 있습니다.”“왕비마마,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방에 들어왔던 하인이 말하였고, 왕비는 갈등을 하였다. 곧, 그녀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것입니까?”“이곳에서 도망갈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 늙었고, 도망간다 하여도 곧 잡힐 것 입니다. 하지만 젊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자라면 가능하겠지요.” 왕비 근위대장인 오렌 워터스는 근위대에 들어온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마티스 로완을 쳐다보더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 왕비마마께 충성을 맹세하였지.”“예, 세르 오렌.”“아이를 잘 지킬 수 있느냐?”왕비가 마티스에게 묻자, 그는 멈칫하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겠습니다.”왕비는 주머니와 단검을 마티스에게 건넸고, 마티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것들을 받았다. 마티스가 그것들을 받자 왕비가 그에게 말했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검은 나중에 만약 아이가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된다면 전해주십시오, 세르.” 마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하나를 건네받았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오렌은 분주히 열 명도 되지 않는 기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기사 둘은 방을 나가 문 앞을 지켰다. 오렌은 왕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침대에 있는 천을 떼어내고 그것들을 이어서 긴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줄을 창 밖으로 내던지고는 마티스에게 말했다. “어서 내려가거라. 2층이니 금방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달려라. 알겠느냐?”“알겠습니다, 세르.” 마티스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다른 손으로는 줄을 잡고 창문위로 올라갔다. 왕비는 그런 그와 아이를 보고 말했다. “루이스가 좋겠습니다. 아이의 이름말입니다.”마티스는 뒤돌아 왕비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여 절하고 창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방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티스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성 밖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고, 그것을 확인한 오렌은 손에 묶어놓은 줄을 풀고 검을 뽑으며 외쳤다. “왕비마마를 보호하라!”그러자 6명의 기사들이 검을 뽑고 그의 옆에 서서 방문을 바라보며 섰다. 곧, 방문이 부서졌고, 병사들이 들어와 창끝으로 맞서 싸우려는 기사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병사들 뒤로 일린이 검을 든 채 나타났고, 그는 그의 아내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이를 이리 주시오.” 하지만 왕비는 그에게 아이를 건네주지 않았다. 왕은 한숨을 쉬더니 왕비 근위대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검을 거두어라.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이 행동은 반역행위이지만, 지금 검을 거둔다면 자네들을 용서할 것이다.”하지만 어느 누구도 검을 거두지 않자 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오렌이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다가오시면 공격하겠습니다, 전하.”“너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다. 너는 내 부하란 말이다!”“하지만 그 전에 저는 왕비마마의 근위대입니다. 저는 왕비마마의 안전이 우선입니다.”그 말을 들은 왕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왕비가 일어나 아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전하, 이 아이는 전하의 아이입니다. 전하께서 그토록 바라던 왕자인데, 어찌 이 가엾은 아이를 죽인다는 말입니까?”왕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그저 웃으며 허공에다가 손을 뻗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를 죽일 녀석이다. 왕이 씩 웃더니 말했다. “죽여라.”그러자 그의 근위대와 병사들이 방 안에 있는 하인들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던 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병사들의 창과 검에 찔리고 베여 쓰러졌다. 기사들도 그들을 공격하는 병사들을 베었으나, 수적으로 불리해 기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오렌이 병사들을 베어나갈 때, 창 하나가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고, 그는 신음을 흘렸다. 곧이어 창 하나가 더 날아와 그의 배를 뚫었고, 오렌은 몸에서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렌은 가래와 피가 섞인 침을 뱉고, 그의 왕을 올려다보았다. 왕은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충성을 맹세했었던 자에게 죽음을 당하다니,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병사들이 오렌의 몸에 꽂힌 창을 뽑았고, 오렌의 가슴과 배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오렌은 그대로 쓰러졌다. 왕은 왕비를 바라보았다. “예니, 어서 아이를 이리 주시오.”예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고 앉아만 있었고, 그가 예니에게 다가가다 창문이 열린 것을 보았고, 그곳에 긴 천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도망을 갔지?”왕이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기사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왕비 근위대 한 명이 없어졌습니다.”왕이 그가 왜 도망을 간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예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안정을 위해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 많이 보지 못 했지만, 그녀의 배는 다른 이들보다 더 컸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녀는 하나가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그가 예니에게 외쳤다. “쌍둥이, 한 명은 어디로 갔지?”“일린, 당신은 미쳤어.”흥분한 상태에서 아내가 왕인 자신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으니 그는 더욱 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는 예니가 안고 있는 아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예니가 몸을 돌려 아이 대신 일린의 검을 받았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진 아이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고, 일린은 소리를 지르며 검으로 아이를 찔렀고, 더 이상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 본 일린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예니를 보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니는 피를 흘리며 서서히 불꽃이 꺼져가는 눈빛으로 일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린은 예니를 안았고, 예니의 긴 금발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니는 힘겹게 손을 뻗어 일린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니의 손은 아래로 떨어졌다. 일린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웃기 시작했고 점점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의 웃음소리는 끔찍한 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절규하는 듯 웃었고, 물줄기가 그의 양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1장. 진실 1. 의문이 생기다 한 소년과 어른이 서로 검을 맞대며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검을 겨룰 충분한 시간을 귀족이 아닌 낡은 옷을 입은 평범한 평민이었고, 언뜻 보면 부자지간인 것 같게 보였으나, 둘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금발에 푸를 눈을 가졌지만, 어른은 머리와 눈동자 색 모두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라 불리는 어른이 검으로 소년을 공격하며 소년의 행동을 지적했다. “계속 피하기만 하지 말거라. 피하기만 하면 자꾸 뒤로 물러나가기만 한다. 검을 막으며 앞으로 나와.”소년은 뒷걸음질을 멈추고 검을 들어올려서 위에서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계속 방어만 하던 소년이 갑자기 상대방의 배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상대방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고 그가 든 검의 옆면으로 소년의 등을 퍽하고 강하지 않게 내리쳤다. “그렇게 공격하면, 등이 보이잖아.”소년은 공격적인 자세를 풀고 뒤로 물러났다. 소년은 검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어른의 입술이 미소를 짓자, 소년의 입술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버지는 못 이기겠군요.”“이렇게 보여도 과거에는 기사 출신이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집에 들어가자마자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빵과 우유를 건넸고,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그것들은 받은 뒤, 먼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서 우유를 마시고, 빵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소년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아래에 검을 둔 뒤, 침대 위에 두었던 책을 집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의 ‘자유의 기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어느 기사가 세상을 모험하며 자신이 겪은 일과 본 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놓은 책으로, 소년은 책을 보며 세상을 모험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고는 멋진 것 같아 흐뭇하게 웃었다.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있던 중, 방문이 열리더니 소년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친구가 찾아왔다.” 소년은 알겠다며 책을 덮은 뒤, 아래로 내려갔다. 집 밖에는 소년의 또래로 보이는 6명의 아이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키가 가장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진 아이가 소년에게 툴툴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거야, 루이스.”“듣자마자 바로 내려 온 것이거든, 오스프리드.”루이스가 손으로 오스프리드의 옆구리를 가볍게 툭 쳤고, 둘은 서로 마주보더니 웃긴지 씩 웃더니, 오스프리드가 어서 가자며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오스프리드의 집이었다. 오스프리드의 아버지인 오스문드 캐틀블랙은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사냥꾼인데, 오스프리드는 아버지가 어제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친구들과 석궁을 쏘아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위험하다며 단칼에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는 하루동아 계속 석궁을 사용하게 해달라며 조르고 졸랐고, 결국 오스문드가 포기를 하고 자신의 지도아래에서의 사용을 허락하였고, 오스프리드는 곧바로 친구들을 모아 소식을 전했고, 오늘 그의 집으로 간 것이다. 집에는 오스프리드와 비슷하게 키가 크고 마른 사내가 있었고, 소년들은 사내에게 반갑다며 인사하였고, 사내는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사내는 주먹으로 오스프리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13살이나 먹은 녀석이 그렇게도 졸라대는 거냐.” “13살이면 충분히 석궁을 만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요, 아버지.” 소년이 그렇게 대답하자, 오스문드는 으이구, 라며 다시 한 번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따라 나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집 뒷마당으로 갔고, 그곳에는 꽤나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는 작은 원을 품고 있는 원이 그려져 있는 나무판이 두 개가 있었고, 오스문드는 준비해놓은 석궁에 볼트(bolt)를 끼우는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볼트와 함께 줄을 당기면 된다. 자, 봐라. 장전이 되었지? 그러고 나면 과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석궁에 장착된 볼트는 바람을 가르며 나무판의 작은 원 안에 박혔다.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은 대단하다며 소리 질렀고, 오스문드는 바닥에 구르고 있는 볼트 하나를 집어 들고 소년들을 둘러보며, 누가 먼저 쏘아보겠냐고 묻자, 아이들은 먼저 하겠다며 외쳤다. 하지만, 루이스만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항상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른답게 행동을 하라고 교육을 시켰고, 루이스도 나중에 기사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되도록이면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하고 싶다며 외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그저 속으로만 그렇게 외칠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그런 소년이 오스문드의 눈에 들어왔고, 오스문드는 그에게 석궁과 볼트를 건네며 말했다. “네가 먼저 해보지 않을래?” 자신이 먼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었던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석궁을 받고 자리에 섰다. 루이스는 오스문드가 보여준 대로 볼트를 석궁에 끼워놓고 과녁을 겨누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는 방아쇠를 당겼고, 볼트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과녁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오스문드는 과녁에 꽂힌 볼트의 위치를 보고는 흐음, 이라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바람만 불지 않았더라면 원 안에 들어갔을 거야.” 루이스 옆에 있던 페티르 바엘리시가 석궁을 받고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큰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례대로 소년들이 석궁을 받고, 과녁안의 원을 맞추었다. 석궁을 모두 한 번씩 사용을 해 본 후, 페티르가 말했다. “활도 한 번 쏘고 싶어요.”“하지만 나에게 있는 건 어른이 사용하는 것뿐인데. 사용하기 어려울 건데.”오스문드가 페티르를 보며 말했다. 페티르는 10살이지만, 몸이 왜소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7살이나 8살의 꼬마로 보일 것 이다. 페티르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아이에 약한 오스문드는 페티르를 보고 당황하였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집에서 나온 오스문드의 손에는 새총이 여러 개 있었고, 아이들은 좋아하며 그에게서 새총을 받아가 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오스문드는 아직 새총을 받지 않은 루이스에게 직접 새총을 건넸지만, 루이스는 그저 멍하니 새총만 바로보기만 하고, 새총을 받지 않았다. 오스문드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어서 가서 놀아.”“기사들도 활을 잘 쏘아야 할까요? 루이스가 오스문드를 올려다보았다. 루이스는 아이들 중 사용하기 쉬운 석궁으로 과녁안의 원을 맞추지 못 한 유일한 아이였다. 오스문드는 그 제서야 루이스가 왜 그렇게 힘없이 있는지 알고는 허허 웃으며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았다. “기사야 검을 잘 쓰면 되는 거지. 활이나 석궁도 잘 쓰면 좋겠지만, 기사들은 검을 사용하면서 싸우는 자들이잖아? 흠, 팩스터가 검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지 확인 해볼까?” 오스문드는 턱을 어루만지며 씩 웃고는 집으로 들어가 목검 두 개를 가져오며, 그 중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실력을 한 번 봐야지.”“저는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사용하는데요.”“하아, 팩스터가 미쳤나보군. 진검을 사용하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원.” 오스문드는 그냥 목검으로 하자고 말한 뒤, 목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었고, 루이스도 목검을 두 손으로 저었다. 바스타드(bastard) 검을 모델로 한 목검이지만, 어린이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거운 무기였다. 오스문드는 루이스에게 먼저 공격하라는 손짓을 하였고, 루이스는 오스문드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목검을 내리쳤지만, 목검은 키가 큰 오스문드의 가슴 부분 높이까지밖에 공격 할 수밖에 없었고, 오스문드는 간단하게 루이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루이스가 위아래를 공격해오는 것을 막아냈다. 루이스는 다시 한 번 목검을 내리쳤고, 오스문드는 이번에는 막지 않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루이스는 곧바로 한 발자국 다가가며 내리친 검을 들어올리며 오스문드의 사타구니를 공격하려고 했다. 당황한 오스문드가 다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루이스의 목검 끝이 그의 몸통을 살짝 스치며 올라갔따. 그는 약간 놀랐지만, 곧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루이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계속 방어만 하던 오스문드의 갑작스런 공격에 루이스는 당황했지만, 그는 목검을 들어올려 공격을 받아냈다. 둘은 서로 엉키며 공격을 주고받기를 수십 번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문드가 루이스의 머리를 공격했고, 루이스가 목검을 들어올려 그의 공격을 막았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검을 미끄러지게 하여서 뺀 뒤, 곧바로 루이스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루이스는 몸을 틀어 목검을 피했고, 아침에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것을 따라했다. 오스문드는 목검이 자신의 등을 공격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검으로 루이스의 얼굴을 찔렀고, 그가 상대방이 소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급하게 손목을 비틀어 루이스를 때리지 않게 하였다. 목검은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루이스의 뺨을 엄청난 속도로 스치고 지나갔다. 목검이라도 날이 조금 날카로운 탓에 루이스의 뺨에 붉은 선이 생겼다. 갑작스런 이 일에 놀란 루이스는 멍하니 목검을 쥔 채 서 있었고, 오스문드는 당황해하며 소년의 뺨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안 놀랐니? 정말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그만…. 아프지 않니?”루이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오스문드는 손수건을 꺼내 소년의 뺨에 살짝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주었다. 그는 소년의 뺨을 닦은 뒤 물러나며 말했다. “나쁘지 않은 실력이야. 팩스터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야.”소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오스문드는 미소를 지었다. “계속 열심히만 한 다면 기사가 될 수 있겠어.”“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랑 친하시죠?”“그야 당연하지.”뜬금없는 소년의 질문에도 그는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고,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에겐 그저 기사였다는 말 밖에 하시자 않으셨거든요.” “흐음, 네 아버지는 훌륭한 기사였지. 나와 같은 하이아칸의 병사였어. 나는 궁수였고, 그는 기사였지. 실력이 뛰어나다 못 해 그는 왕비의…… 아니지, 아니야. 어쨌든 대부분의 검술 대회에서도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였어. 나는 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불편해 리오스로 옮겨 살았는데, 내가 여기 온 지 4년 정도 후에 그 녀석이 널 데리고 이곳으로 왔지. 나머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기사였어.” 그는 잠시 뜸을 드리고 중얼거렸다.“가끔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잃을 수 있지.” 오스문드는 루이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루이스가 그를 쳐다 볼 때에는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식탁에 앉아 저녁식사로 밀 죽을 먹고 있었다. 평소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겠지만, 오늘따라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아버지도 딱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던 중 먼저 말을 꺼댄 것은 아들이었다. “하이아칸의 기사 이었다면서요? 뛰어난 실력이었다던데, 왜 리오스로 왔어요?” 팩스터의 입으로 가던 숟가락이 멈추었다가 다시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이스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기사로써 한 약속을 어겼었나요?”“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팩스터가 중얼거렸고,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아 뭐라고 말하였는지 묻자, 팩스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 오스문드가 살고 있었잖아.” 루이스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내 생각을 접고 식사를 계속 이어갔다. 식사를 끝마친 루이스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방은 촛불 하나 없어 매우 깜깜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아버지는 아들의 물음에 항상 대답을 해주었으나, 자신이나 자신의 아내에 대한 질문이면 항상 대답을 얼버무렸다. 오늘 낮에도 처음으로 아버지가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냐는 질문을 피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루이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팩스터는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는 집을 나와 오스문드의 집으로 향했다. 오스문드의 집에 도착한 그는 문들 두드렸고, 집에서 오스문드가 나왔고, 팩스터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 마티스?” “얘기 좀 합시다, 형님.”그들은 뒷마당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마티스라고 불리는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었냐고 묻자, 오스문드는 그에게 낮에 있었던 밀과 루이스에게 한 말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화를 냈다. “그 녀석에게 과거를 말해주지 마십시오. 그저 그 아이는 평범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아이가 기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가? 그래서 네가 그 얘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 아니냐.” “검술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아이가 기사가 된 다는 것에 반대를 합니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죠. 저도 기사라는 작위 때문에 인생을 버렸습니다.”“조용히 해. 오스프리드가 깨겠어. 그리고 내가 그 아이에게 사실을 말했나? 그리고 네가 나한테 화를 낼 처지인가? 자네의 기사 작위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 너뿐만이 아니야.”오스문드의 얼굴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도리어 그가 팩스터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네가 하이아칸 제국의 왕자라는 녀석을 빼돌리는 바람에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몰살당했어. 네 부모님과 내 부모님, 그리고 친척, 형제들까지 말이야. 게다가 그날 부모님을 보러 간 내 아내까지! 그래도 나는 널 용서하고 아무 말 없이 너를 받아주지 않았나? 그런데 네가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도망치기 바빠 바이트 대륙에 있는 가족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못 하고 무작정 리치 대륙으로 넘어왔고, 소식을 알 방법이 없어서 모른 채 살아왔으나, 그래도 모두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 하고 있던 팩스터가 말을 듣고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몰살… 이요?”“허, 그것도 몰랐나? 네가 도망치면 끝인 줄 알았나? 왕의 명을 어기고 왕자를 데리고 도망간 너를 가만히 둘 줄 알았나? 가문이 몰살당하는 건 기본이야.”“형님은 어떻게 그 소식을….” “아내가 좀처럼 오지 않아서 사람 하나를 보내보았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더군.”“형수님은 분명히 침몰한 배에 탔다가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셨는데.”“참나, 그러면 너한테 너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면 퍽이나 잘 살겠네. 너라도 살아남게 하려고 말을 안 했다. 몰살당한 가족 이야기하면 네가 극단의 방법을 할까봐 걱정이 되서 말이지.” “죄송합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됐다. 어차피 난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아.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내가 오스프리드를 데려가지 않았던 거지. 시작했던 일은 끝을 내라. 왕자, 아니 네 아들을 제대로 키워라.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게라도.”그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오스문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팩스터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다. 팩스터가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단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누군가가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잠이 깨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려고하다가 아버지와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말 하나하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제국의 왕자라는 친구 때문에, 자신은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지 못 하게 되었다. 그는 저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그는 혼란스러웠고, 방으로 돌아가도 잠에 들지 못 했다. 루이스가 잠에서 깼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팩스터는 아침 일찍 대장간으로 가는 일이 있어서 루이스는 오늘도 그러려나 싶어 혼자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웠다. 식사를 마친 그는 할 일없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 읽던 책을 다 읽었고, 그 책을 탁자 위에 둔 뒤, 또 다른 책을 집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로 내려갔다. 집을 찾아온 것은 오스프리드였다. 그는 안전부절 못하고 있었고, 루이스가 그를 부르자 그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왜 그래?”그는 무언가를 망설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날씨가 참 좋지?”“어디 아프냐. 왜 그러는 거니. 일단 들어와.”오스프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왔고, 둘은 루이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루이스는 간식거리를 들고 와 그에게 건넸고, 그는 고맙다며 과자를 먹었다. 둘 사이에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러 지나갔다. “만약 친구 때문에 자기 엄마가 죽었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오스프리드의 그런 질문에 루이스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지만,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한 뒤 대답하였다. “나라면 아마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그 때문에 어머니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게 되었다면 더더욱. 하지만 직접적이 아니 였다면 용서를 할 수도 있겠지.”“그렇구나. 만약 네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그렇다면 곧바로 성으로 가야지. 그런 뒤 아버지랑 친구들을 불러서 성에서 같이 살 거야.”“그런데 왕자라면 지금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아니잖아. 왕이 아버지가 되는 거지.” “그런가? 에이, 상관없잖아. 그럴 일도 없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그런데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져서. 그럼 난 이만 가볼게.”“벌써? 더 있다가 가.” 오스프리드는 그저 미소를 지었고, 방을 빠져나와 집을 나갔다. 그는 이로써 한 가지를 더 알았다. 루이스는 그가 왕자라는 것, 그의 아버지, 팩스터가 진짜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가 일부러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그가 도망친 이유는 필시 죽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왜 왕자를 죽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집히면 그는 아마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가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날 들은 대화가 그저 꿈일까? 그리고 그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나?” 루이스는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오스프리드가 집에 오는 일은 흔하였는데, 그가 집을 찾아올 때에는 항상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안전부절 못한 채로 오더니 이상한 질문을 하고 곧바로 나갔다. 루이스는 왜 그러는지 생각을 해보았으나, 도저히 그 이유를 알지 못 해 생각을 접고는 침대 아래에 둔 검을 꺼냈고, 검을 칼집에서 뽑아보았다. 이가 몇 군데 나가있었다. 그는 검이나 갈고 손봐야겠다 싶어 칼집에 도로 끼워놓고 검을 허리에 찬 뒤, 아버지의 대장간으로 갔다. 그가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단검 하나를 보고 있었다. 날이 한 쪽에만 있고, 칼자루는 금색을 띄고 매우 화려했다. 칼집 또한 가죽이나 나무가 아닌 금속재질이었고, 칼자루와 같은 금색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서는 마치 귀족이 가지고 있을 듯한 단검을 가지고 있을 자가 없을 것 이다. “우와, 멋진 검이네요.”루이스가 말을 걸자, 팩스터는 급히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많이 비싼 검 같은데, 누구 것인가요?”“잠시 묵어가던 사람이 손 좀 봐달라고 하더구나.”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적지만은 않았다. 대장간도 이 마을에선 이곳분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고 팩스터가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니?”“칼날이 무뎌져서요.”“이리 줘 봐.”루이스는 검을 뽑아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상이 없는지 검을 자세히 훑어보았고, 그는 다시 아들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딱히 이상은 없구나.”루이스는 숫돌을 꺼내 검을 갈기  작했고, 팩스터도 단검을 내려두고 다른 검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팩스터가 무언가를 기억해내고는 짧은 검을 들고 나가면서 루이스에게 말했다. “오스문드 집에 갔다가 올 것이니 잠시 대장간 좀 보고 있어라.” 루이스는 알았다고 대답하였고, 계속 자신의 검을 가는데 집중을 하였다. 그는 하던 일을 끝마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할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몇몇 검과 갑옷, 방패가 전시되어 있듯 걸려있었다. 며칠 전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은 없었다. 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다가 책상에 올려진 금색의 단검을 보고, 뭔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가 단검을 집었다. 왜인지 모르게 친숙하고, 마음 한 쪽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스는 그 단검을 뽑아보았다. 검의 날 옆면에는 ‘나의 사랑’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검일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사냥꾼 복장을 한 오스문드가 서 있었다. 분명 아버지는 그의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저씨 집에 가겼는데요.”“허, 거참. 기다려도 검을 안 가져와서 직접 가지러 왔는데, 길이 엇갈려버렸네.”“사냥을 나가시나 봐요?”“그래. 이번에는 꽤나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니 아마도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지. 어쨌든 나는 너희 아버지나 찾아야겠구나.” 그는 대장간을 나가며 한마디를 더했다. “멋진 단검이구나. 잘 챙겨라.”루이스는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쳐다보고 그 단검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으나, 오스문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팩스터가 돌아왔고, 루이스가 그가 빈손인 것을 보고 말했다. “오스문드 아저씨를 만났나보군요.” “그래. 되돌아오는 길에 만났어. 검은 다 갈았니?”“예. 전 이제 그만 가볼게요.”“그래. 조심히 가거라.”루이스는 대장간을 나왔고, 집으로 향하던 발검을 돌려 시장가로 갔다. 어차피 집에 가면 할 일도 없으니, 산책도 할 겸, 시장가로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여행물품을 사려고 나온 여행객들이었다. 루이스가 걸어 지나가면 평소 안면이 있던 상인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며, 가끔씩 먹을 것을 그에게 주기도 하였다. 마침 그는 친구 아버지가 준 사과를 먹으며 걷고 있었다.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가?” 한 사내가 말을 했다. 루이스는 처음에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으나, 앞에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 것을 알았다. 사내는 5월인데도 긴 소매가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두건을 깊이 내려쓰고 있어서 루이스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 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보다 덩치가 더 크고 어마어마한 근육을 가진 팔이 모두 드러나게 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었고, 그도 두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내와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팔뚝에는 ‘X’자로 겹쳐진 낫 모양이 새겨져있었고, 그 밑에는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있었다. 루이스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말을 건넨 사내를 보고만 있자, 그는 다시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루이스.” 이 자는 처음 보는 자이고, 이름을 밝힌 적도 ㅇ벗었는데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이름을 알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그가 마치 루이스의 마음을 읽은 듯 루이스가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루이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누구세요?”“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사람이지.” “어서 가지, 32.”덩치 큰 사내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였고, 32라고 불린 사내는 손을 올려 루이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때, 그의 손목에서 덩치 큰 사내와 같은 문신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너 같은 어린애들을 보면 항상 조용히 살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하지만, 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시 나와 만나겠군. 친구로 만나면 좋겠지만, 친구일지 적일지는 잘 모르겠구나.” ‘32’라고 불린 사내는 루이스가 이해를 하기 어려운 소리를 하였고, 그들은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페티르의 아버지 로마바크가 그에게 다가왔다. “누구니?”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낫이 새겨진 문신밖에 못 봤거든요. 그런 자들은 우리 마을에 없잖아요?” 문신 얘기를 들은 로마바크의 눈이 커졌다. “낫 문신? 자세히 말해보거라.” 로마바크가 놀란 이유를 모르는 루이스는 그저 그가 본 문신의 모양을 그에게 설명해주었고, 루이스의 설명을 들은 그는 더 놀라며 루이스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는 아무 상처도 없는 것을 보고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 그에게 말했다. “‘두개의 낫’이다. 저번에 내 여관에 묵어가던 용병들에게 들어본 적이 있지.” “예? ‘두개의 낫’이요?” “가장 악명이 높은 암살조직이다. 암살범 중에 최고들만 모인 조직이지. 그들을 만나는 사람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 해지지. 그런데 왜 그들이 너랑 대화를 나누었을까?” 로마바크는 다시 한번 루이스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루이스는 어느새 사라진 그들이 지나간 거리를 보았다. 그가 무심코 돌아가려는데, 길 위에 무언가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고, 그는 그것을 주었다. 정체모를 사내들 팔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이 있는 납작한 장식품이었다. 그저 둥근 원 안에 낫 두개가 겹쳐져 있는 모양일 뿐, 목에 걸거나 하는 줄은 없었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루이스는 오랜만에 책을 읽고 있는 팩스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개의 낫’에 대해 묻자, 팩스터는 흠칫 놀라더니 책을 덮고 루이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위험한 단체지. 최고의 암살 조직이야. 그들은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그 임무를 멈추지 않기에 그들의 목표가 된 자는 살아남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다 찾아내거든. 그들은 오직 암살을 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하긴, 그 조직에 들어가면 죽어야만 그 조직에서 빠져 나 올수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건과 해골가면을 써서 절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 조직에 있는 자 말고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가 없어.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지휘하는 두목인 ‘타나토스’에게는 엄청난 충성을 맹세하고, 돈을 주는 자를 절대 배신하지 않아.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 일린 왕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현재 그들은 일린 왕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보나마나 일린 왕이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었겠지. 그런데 어떻게 네가 ‘두개의 낫’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어쩌다보니 알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참 무서운 조직이네요.”루이스는 혹시 아버지가 걱정을 할까봐 아침에 만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얘기를 들어보니 매우 위험한 조직이고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 왜 대화를 걸었을까. 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여러 생각에 잠긴 루이스에게 팩스터가 말을 걸었고, 루이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나저나 너도 이제 슬슬 대장간을 물려 받기위해 일하는 법을 배울 때가 되지 않았니?”“대장간을 물려받다니요? 전 기사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아버지도 기사였고, 허락해주신 것이 아닌가요?”“루이스, 전쟁하나 없는 이 평화로운 시대에 기사가 되어보았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기사였던 당시에야 하이아칸 제국이 분열상태여서 전쟁터에 나가는 등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너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너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전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검술 연습도 한 거라고요.” “왜 기사가 되고 싶은 거냐?”“명예롭잖아요. 용감하고 멋있고.”“하아, 그래. 네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기사라는 것이 꼭 명예로운 위치가 아니지. 기사가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어. 그들이 죽을 때 전혀 명예롭지 않았어. 차라리 비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지. 나도 그 위치 때문에 기사를 그만둔 것이야.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어?”“하지만….”“그냥 이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자. 기사가 되는 것도 쉽지가 않아. 그리고 네가 없어지면 혼자 살아야 하는 나는 어쩌란 거니.” 루이스는 울상이 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기가 마음이 아픈지 팩스터는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일부터 하자구나.”루이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올라갔고, 팩스터는 술을 꺼내 쉬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아버지가 미웠다. 자신은 기사가 되었으면서 아들이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그런 꿈을 완강히 반대했다. 도저히 그런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기사가 된다는 것을 반대를 하는 것인가. 왜 기사가 좋지 않다고만 말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알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가 기사를 그만두고 기사를 경멸하게 된 것일까? 루이스는 자신의 검을 꺼내 뽑았고, 칼날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이 차가운 검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사는 이런 검을 들고 적을 죽이는 일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루이스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버지도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였고, 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득 루이스는 아버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그저 기사였다는 것, 하이아칸인이었다는 것, 지금은 대장장이라는 것 말고는 아버지인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과거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그에게 그의 과거를 물으면 그는 항상 질문을 회피할 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루이스는 검을 제자리에 두고 촛불위에서 살랑거리는 불꽃을 입김을 불어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난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은데….” 루이스는 슬프게 중얼거렸다. 루이스는 며칠간 놀지도 않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일을 배워나갔다. 여름의 더운 날씨와 화덕의 열기로 루이스는 집중력이 흩으려지는 것을 어렵사리 참아내고 있었다. 팩스터는 루이스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고 엄격하게 일을 가르쳤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게 하였다. 평소 운동신경이 좋고, 아버지와 검술실력을 키우며 늘어난 체력으로 그는 의외로 일을 잘 해나갔고, 팩스터도 그런 그를 만족스럽게 보았다. 그는 문득 루이스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체력을 길렀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날 일이 일찍 끝난 루이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리지은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루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루이스, 요새 뭐하고 지내고 있기에 안 보이는 거야?”마리사 반스가 다가왔다. 루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서 일을 배우고 있거든.”“벌써? 너무 이르지 않나? 어쨌든. 나중에 사냥하러 안 갈래?”언뜻 보면 조용하고 얌전하게 생긴 소녀지만, 치마를 입은 적을 주변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소년다운 소녀였다. “사냥이라고?”“응. 토끼 같은 걸 잡는 거지. 오스프리드가 석궁도 들고 온데. 재미있지 않겠어?” 루이스가 망설이자, 소녀는 옆에 있던 알렉산더 스테드몬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생각은 어때?”“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겠지. 어차피 조금만한 동물을 잡을 거니깐 위험하지도 않을 거야. 싫다면 안가도 돼.” “갈래요.” “좋아. 대신 어른들께 말하면 안 돼. 걱정할거니깐. 그러면 이틀 후에 데리러 갈게.”“그럼 이틀 후에 봐요.” 그들이 헤어진 직후 루이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 옆을 보았고, 그곳에 말을 탄 기사 두 명이 밧줄에 묶인 자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누군가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없던 루이스는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면이 드러나는 투구를 쓴 기사들은 루이스 앞에서 멈추었고, 한 명이 루이스에게 여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낮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루이스는 그들에게 상세히 위치를 알려주고, 루이스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알거 없다.” “아이가 궁금해 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옆에 있던 젊은 기사가 어느새 투구를 벗고는 루이스를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런 그를 중년기사가 ‘쓸 때 없는 소리를…’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현상금사냥꾼이라고 알고 있니? 악당을 잡고 사례금을 받는 자들이지. 그 중 유명한 사냥꾼이 잡은 악당을 보다시피 끌고 가고 있어.” 루이스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기사를 쳐다보자 기사는 웃으며 나쁜 일을 하지 말라며 당부한 뒤 여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2. 알게된 비밀 아이 여섯 명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물을 들고 있는 페티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불평을 하였다. “몇 시간째 돌아다녀도 사냥감 하나 안 보이잖아.” “사냥이 쉬운 줄 알았니?”앞장서서 가던 마리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페티르는 그저 툴툴거리며 걸었다. 심심한 오스프리드는 들고 있는 석구에 계속 볼트를 끼웠다가 뺐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들은 계속 주위를 보며 사냥할 동물을 찾아보았지만 식물을 제외한 살아있는 생물을 보지도 못 했다. 아침부터 계속 걷던 그들은 점심때가 되어 잠시 멈추어 쉬자고 하였고, 그들은 주변 바위에 앉거나 나무에 기대어 다리를 풀어주었고,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이 빵을 먹으며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스프리드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토끼다.”그는 급하게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모두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알렉산더도 화살을 활에 끼웠다. 먼저, 오스프리드가 토끼를 향해 석궁을 쏘았지만 빗겨나갔고, 토끼도 낌새를 눈치 챘는지 도망을 가려고하는 순간, 알렉산더가 쏜 화살이 날아가더니 토끼의 뒷다리에 그대로 꽂혔다. 하지만, 토끼는 절뚝거리며 힘겹게 달아나려고 했고, 오스프리드는 다시 한 번 석궁을 쏘았지만 이번에도 빗겨나갔다. 아이들도 토끼를 잡으러 달려갔다. 부상을 입은 토끼는 속도가 매우 느렸고, 얼마 못 가 아이들에게 따라잡혔다. “그물을 던져!” 알렉산더가 외치자 페티르가 그물을 던졌고, 그물을 그대로 토끼를 덮치게 되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그물을 들어올리자마자 토끼의 귀를 잡고 들어올렸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루이스는 땅에 박힌 볼트를 뽑고 돌아가려는데, 그의 발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친구들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알렉산더가 그의 발목을 묶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지만, 밧줄에 손이 닿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서 있었다. 그때, 거꾸로 축 늘어져있던 루이스가 말했다. “사람이다.”루이스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볼트가 꽂힌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사내가 앉아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마리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을 더듬었다. “머, 머리에…. 죽었나…?”그때, 그 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그의 투구에는 오스프리드의 볼트가 꽂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머리에 볼트가 꽂혀있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아이들이 놀라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로 걸어왔고, 그 모습을 본 한 아이는 덜덜 떨더니 결국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갔고, 몇 명도 그 뒤를 따라 도망을 갔다. 알렉산더는 다급해하며 루이스를 잡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걸어오는 사내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그리고 시체가 걸어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모두 전설속의 옛이야기거나 동화 속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건 무엇인가? 그는 줄을 끊는 것을 포기하고 활에 화살을 끼우고 사내를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은 그대로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사내는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더니 화살을 두 동강을 냈다. “먼저 가. 어서 도망가.”알렉산더가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말했고, 아이들은 그의 말대로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혼자 남아있는 마리사가 주춤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루, 루이스가 아직….”“내가 알아서 할 거니깐 먼저 가.” 마리사가 잠시 주춤하더니 마을 쪽을 향해 달려갔다. “형도 어서 가요.” 겁에 질린 채 매달려있는 루이스가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입술꼬리만 올라갈 뿐, 얼굴은 그대로 굳어있었다. “어떻게 그러냐.” 알렉산더도 루이스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을 뿐, 그도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에 겁을 먹었다. 루이스는 그런 그를 보며 무서움을 참고 간신히 웃어보았다. “설마 잡아먹겠어요?”“맛이 없어서 아마도 안 먹을 거야.”책임감이 강한 알렉산더는 루이스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짤막한 검을 뽑고는 걸어오는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알렉산더는 사내를 ㅎ야해 검을 내리쳤지만, 사내는 몸을 틀어 검을 피한 뒤, 손으로 알렉산더의 목 뒷부분을 내리치자 알렉산더는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사내는 다시 루이스에게로 다가왔고, 루이스는 자신의 허리에 있는 검을 뽑아 사내를 향해 마구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마! 오면 죽일 거야!”사내는 검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춰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루이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검을 뽑았고, 루이스에게로 한발자국 더 다가가자 루이스는 더 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내는 왼손을 들더니 손바닥으로 검을 받았다. 검은 손바닥에 박혔고, 사내는 손을 오므려 검을 쥐고는 루이스의 손에서 빼앗았다. 거꾸로 묶인 채 유일한 무기인 검까지 괴물에게 빼앗긴 루이스는 울상을 짓더니 결국 몸을 흔들어대며 울기 시작했다. “난 죽기 싫다고! 오지 마!”사내는 검을 높이 들어서 가로로 검을 그었다. 루이스의 몸은 아래로 떨어졌고, 머리부터 떨어진 루이스는 알렉산더처럼 정신을 잃었다. 사내는 보통 어른들보다 키도 그렇고 덩치도 매우 컸다. 마치 곰을 닮은 것 같아보였다. 사내는 손에 박힌 검을 힘주어 뽑았고, 투구에 박힌 볼트를 뽑으며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볼트를 잘 못 끼워서 다행이지 제대로만 끼웠으면 난 죽었다. 그리고 아니, 거참. 살려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활을 쏘지 않나, 도망을 가지 않나, 검을 휘두르지 않나, 괜히 의수만 버렸잖아.” 그는 장갑을 끼고 있던 왼손을 잡고 뽑았다. 그리고 그의 가방에서 금속재질의 의수를 꺼내 왼팔에 붙였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는 흐뭇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마법은 좋다니깐.” “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지.” 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숲을 빠져나왔고, 마을에 다다랐을 때, 한 무리가 급하게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농기구나 몽둥이 등 무기를 하나씩 들고 그 주위를 둘러쌌다. 어른들 뒤에는 아이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무기를 든 그들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뭐지 이 상황은. 내가 악당 역인가.” 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바닥에 내려두며 중얼거렸다. “골치 아프겠군.” 6명의 남성이 원형탁자에 앉아있었다. 그 중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덩치에 비해 매우 작은 나무잔에 든 포도주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술이군.” 다른 이들은 그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나무잔을 탁자에 두고 자신의 작은 배낭에서 기사 증명서를 꺼내 탁자에 올려두며 말했다. “숲 속에서의 이야기 때문에 제 소개가 늦었구려. 전 페르(per) 자베르 몽메르시 라고 하오.” “느끼한 말투를 보니 부르봉 왕국 사람이군요.” 그들이 있는 이 여관의 주인인 로마바크가 말하자 자베르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바크 옆에 앉은 팩스터는 그의 상처투성이인 얼굴과 마치 진짜 손처럼 살아 움직이는 가짜 손이 붙은 왼팔을 번갈아보며 그에게 말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상처가 많군요. 부르봉 왕국의 기사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보다시피 전 떠돌이기사라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먹고 살기위해 사냥을 하다보니 상처가 생기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동물들도 날 있는 무기를 들고 싸우나 보죠.” “제가 사냥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들인데 말이오. 이 손은 타나토스의 개와 싸우다 잃었소.”자베르가 왼손을 들어올려 보였다. 타나토스의 개라고 말하였을 때, 3명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딱 하나 잡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 녀석들이 나를 사냥을 하려고 들더구려. 이제는 아예 상황이 뒤바뀌었소. 하하하.”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로마바크가 잠시 무언가를 기억하더니 그가 생각해내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일찍 이곳에 왔었다면 잡혔겠군요.” “‘사신의 낫’이 우리 마을에 왔었단 말이오?”로버트 반스가 놀라 묻자, 로마바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팩스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며칠 전에 그들이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팩스터가 잠깐 놀란 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런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내가 지금 55살인가. 그래, 딱 30년 되었소. 부르봉 왕국을 떠나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지 말이오. 아스팍 대륙과 바이트 대륙을 모두 돌아보았으니, 이제는 이곳을 여행해볼까 하여 2년 전에 그란그라드로 들어와 여기 리오스로 여행을 떠나 온 것뿐이오. 그러다가 숲에서 이곳 아이들이 절 공격했고, 전 기절한 아이들을 데려온 것뿐이지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때려눕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기사라며 기사도 정신이란 것도 없습니까?”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레오 스테드몬이 자베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였다. 그가 자베르의 신경을 건드릴만한 말을 하였으나, 자베르는 그저 나무잔을 비우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소. 그 아이들이 먼저 저를 공격하였다고 말이오. 전 충분히 그들을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 참았소. 그 덕에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이지요.” “아니, 이 사람이 그게 할 소리요!”레오가 탁자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자베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노인이 레오에게 손짓 하였다. “진정하게나. 이 자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촌장님, 하지만….” “됐네, 그만하게나. 난 모로스 슬린트라 하오. 이 마을의 촌장이지. 반갑네.” 자베르도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반갑다고 하였다. 모로스는 허허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이 자가 나빠 보이지는 않잖소? 우리가 언제 나쁘지 않은 자를 내쫓은 적이 있었소? 이 자도 악의가 있어서 한 일은 아닌 것 같으니 서로 화낼 일은 없다고 생각하네. 이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네. 페르 자베르께서도 우리 마을에 있는 동안 편히 지내십시오.” 자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로스으이 호의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답하며 이번에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나와 어딘가로 갔다. 정신이 든 루이스는 두통이 느껴져 머리를 감쌌다. 왜 자신이 방에 누워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하였다. 친구들과 마을 옆 숲 속으로 사냥을 하러 갔었고, 그러던 중 토끼 한 마리를 잡고, 볼트를 수거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눈에 보였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 시체가 걸어 다녔다. 분명히 그 괴물이 검으로 날 베었었다. 루이스가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웠다. 허리 아래로 사라진 부분은 없었다. 한 가지는 안심되었다. 그런데 그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루이스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왔고, 그가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현기증으로 휘청거렸지만, 심하지 않아 그는 다시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 앞에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일반 성인보다 더 큰 키와 체구, 곰 같은 외형, 무표정한 얼굴. 분명히 숲 속에서 본 그 괴물이었다. 루이스가 놀라 뒷걸음을 치려고 하자, 사내는 웃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사내를 향해 휘두른 자신의 검이었다. “너의 것이 아니냐?” 루이스는 검을 받을까말까 망설였지만, 사내가 받으라는 손짓을 하자 루이스는 검을 받고 꾸벅거렸다. “가, 감사합니다.”“난 부르봉 왕국의 기사 가문인 퐁메르시 가(家)의 자베르다. 가문의 문장은 생긴 것과 같이 곰이지.” “루이스에요. 루이스 레드윈.”“많이 놀랐느냐?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계속 공격을 하는 바람에 나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놀랐다면 사과하마.” 숲 속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괴물로 알고 있던 자베르의 갑작스런 친절로 루이스는 당황스러웠다. “저기…, 사람이세요?”루이스의 그런 질문에 자베르는 웃긴 지 한 번 크게 웃고는 답했다. “당연히 사람이니 지금 너와 마주보며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지만 숲 속이였을 때, 석궁에 맞고, 검에 베여도 멀쩡하던데.”자베르는 그에게 그 오해를 해명하였다. 그리고 의수를 설명할 때에는 직접 팔에서 의수를 뽑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자베르가 열심히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자, 루이스도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지 경계를 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루이스는 조금 전 자신이 밖에 나가려는 것도 잊고는 자베르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루이스는 그에게 간단히 대접할 간식거리를 준비하러 식당으로 갔고, 자베르는 보잘것없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무구를 보았다. 중앙에 갑옷이 있고, 왼쪽에는 방패, 오른쪽에는 검, 그리고 위에는 투구가 걸려있었다. 갑옷과 방패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X자로 교차된 검 중앙에 둥근 성탑이 새겨져 있었다. 자베르가 유심히 보던 중 갑옷 안쪽에 초록빛 천이 약간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그가 천을 잡아 아래로 잡아당기자 얇은 천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넓게 펼쳐보았다. 초록색 배경에 갑옷과 방패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양이 흰색으로 새겨져있는 망토였다. 그는 루이스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너희 아버지 것이냐?”“예. 아버지가 과거에 기사이셨거든요.”“훌륭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여기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다니.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냐?”“예?” 루이스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자베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라는 것을 알아차린 자베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킥킥. 이것 참 놀랍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위대한 기사 가문의 후계자라. 넌 이 문장이 무슨 가문의 것인지 모른단 말이냐?”자베르가 루이스를 쳐다보았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고, 그가 자베르와 그가 들고 있는 망토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자베르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반갑소, 세르.” 루이스는 잠깐 세르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기사 중 상급기사, 왕의 근위대나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인정한 기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 호칭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자베르와 당황한 아버지를 루이스는 멍 한채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팩스터는 자베르를 노려보며 물었다. “루이스에게 무엇을 말했습니까?”“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더군.”“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사냥?”팩스터가 손을 슬쩍 뒤로 두는 것을 본 자베르는 들고있는 것을 접고 갑옷 위에 걸쳐두며 말했다. “허튼 짓 말게나. 어차피 나도 이 문장을 보고 알았으니 말이오. 우리 퐁메르시 가문은 부르봉 왕국에서 꽤나 유명한 기사 가문이오. 뭐, 로완 가문에 비한다면 보잘것 없는 가문이겠지만 말이오. 어쨌든 나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잡다한 지식을 모으고 다녔소. 그리고 당연히 유명한 로완 가문을 아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소? 자네, 아니지. 세르는 시골에 이 문장을 알아볼 자는 없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걸어둔 거겠지만 말이오. 하지만, 로완 가문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명하다오.”“루이스, 넌 집에 있어라. 페르께서는 제 대장간으로 가시지요.”그리고 그 둘은 팩스터의 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들의 대화는 대장간의 지하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베르였다. “멸망한 가문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세르.”“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하이아칸의 왕이 죽이려고 했던 왕자가 사라지고, 그 배후로 로완 가문이 찍힌 것. 그리고 가문 중 하인이라도 살아남지 못 한 꼴이 된 것, 그 왕이 왕자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까지. 최근엔 그 열기가 식었지만 말이오. 세르의 이름을 알고 싶소. 본명을 말이오.” 팩스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과거 소토리오스 제국의 황제의 근위기사였으며,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한 뒤, 하이아칸 제국의 왕의 근위기사를 맡아 온 로완 가문의 마티스 로완입니다.”“이제는 로완 가문의 가주이겠구려.” “아닙니다. 확실하게 더 있거든요.”“더 있다니? 그게 누구요?”“그건 비밀이죠.” 아직까지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고 있었고, 자베르는 그저 허허하며 웃었다. 그가 팩스터에게 술을 좀 달라고 말하자, 팩스터는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들고 왔다. 자베르가 한 모금을 마셔보고는 불만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렸다. “물이잖소?”팩스터는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는 그저 입맛을 다시고는 한 모금을 더 마시고는 잔을 내려두었다. “페르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명한 기사 가문의 기사께서 떠돌이 생활을 하니 말입니다.”자베르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잠시 생각을 하였고, 팩스터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자베르가 입을 열었다. “기사, 용병, 사냥꾼이라고 할까. 이것 모두 맞소. 처음에는 왕국 기사단에 소속이였고, 그 후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용병으로 지내고, 프리미스트(Primist) 기사단에서 성기사로 지내기도 했소. 그때부터 난 열렬한 프리미스트 교의 신자가 되었소. 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소. 아, 11년 전에는 하이아칸 제국의 왕국 기사단 소속인 적도 있었소. 그때, 맡은 일이 사라진 왕자를 찾는 일이였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미네르(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행운과 승리의 여신)께서 세르를 좋아하시나 보오. 하하하.”그가 웃으며 말했다. 팩스터는 자베르의 말이 끝나자 아무 대꾸 없이 불편한 듯 물을 마셨다. 무신론자인 팩스터는 당연히 프리미스트 교의 12신이며, 미네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물을 다 마시고서야 입을 열었다. “얼마동안 왕국 기사로 지내셨습니까?”“자베르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피며 들었다. 팩스터는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일린 왕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사라진 왕자와 그를 데려간 기사를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소. 그리고 왕비의 장례식을 거창하게 했소. 그리고 계속 용서를 빌더군. 미안한지 다시는 왕비를 두지 않을거라고 하였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하이아칸 제국에는 후계자가 없소.” 자베르는 물을 마신 뒤, 진지한 표정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물어볼 것을 물어봐야겠소. 루이스가 왕지이오?”“아니면요?” “그럼 왕자는 어디있소? 인생과 가족을 버리고 떠났는데, 왕자까지 버렸다 이거요?” “굳이 제가 왕자를 데리고 키우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그렇다면 그 아이는 세르의 아이이요? 리오스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이라도 한 것이오?”“그럴 수도 있지요.”“그럼 아내는 어디 있소? 버림이라도 받았나?”“잠시 부모님을 뵈러 갔을 뿐입니다.”“그렇소? 그런데 아들 분이 아내 분을 닮았나 보구려. 그런데 혹시 아내 분이 왕족이오? 하이아칸의 왕과 아들 분이 아주 닮았던데 말이오. 완전 판박이던데.”“이 넓은 세상에서 닮은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이보게, 세르. 세르는 왕비의 근위대이었지?”자베르가 갑작스레 주제를 바꾸었고, 팩스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왕비 근위대였죠.”“왕비 근위대는 왕비에 대한 충성과 왕비의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래서 왕의 명을 어기서라도 왕비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지.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왕비가 부탁한 아이가 루이스가 맞지 않소?”“아닙니다.”“정말이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페르?”자베르는 씩 웃더니 탁자위에서 검지로 탁자를 툭툭 치고있는 팩스터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르는 거짓말을 할 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버릇을 고쳐야겠소. 그리고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루이스가 왕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날 없앨 필요는 없을거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오.”팩스터가 미간을 찌푸려 그를 노려보자, 그는 옷 안에 둔 프리미스트 교의 상징인 포크(fork)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팩스터에게 보여주었다. 양 끝 두개가 바깥쪽으로 직각으로 꺾인 삼지창 모양이었다. “데우스(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하늘의 신이며, 신들의 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이 맹세는 디아나(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달과 맹세의 신)께서 보았을 것이오.” 자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구들이 잔뜩 있는 지하실을 잠시 둘러보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가 대장간을 나오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셔도 좋습니다, 페르. 단, 맹세를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난 신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네.”자베르가 돌아보며 말했다. 소년 두 명이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오스프리드였고, 또 다른 한 명은 티토스 스타크였다. 오래 전, 티토스가 오스프리드에게 돈을 빌렸었는데, 그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갚으라는 오스프리드와 다투고 있던 것이었다. 오스프리드는 돈을 어서 갚으라며 주장하였고, 티토스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프리드는 구경하고 있던 무리에 있던 루이스에게 물었다. “그때 루이스도 있었지? 너도 내가 돈을 빌려 주는 거 봤지?”“흐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일이라서 잘 모르겠어.” “티토스 형이 분명히 10탈레온을 빌려갔었잖아.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모은건데 말이야.”“정말 귀찮게. 고작 10탈레온 가지고.”티토스는 주머니에서 탈레온 동전 11개를 꺼내어 오스프리드 발 앞에 던졌다. “엄마도 없는 새끼가. 1탈레온은 그냥 네가 가져라.”아무도 오스프리드와 루이스 앞에서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루이스가 놀라 오스프리드를 보았을 때, 오스프리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고, 주먹을 세게 쥐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티토스에게로 달려갔다. 티토스를 향해 달려간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그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보다 두 살이 더 많고, 덩치도 더 있는 그는 오스프리드를 밀쳐내고 조금 전 상황과 반대로 쓰러진 오스프리드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티토스 무리는 그 행동에 호응을 하였고, 3명뿐인 오스프리드의 친구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다시 한 번 티토스의 몸이 쓰러졌고,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갔다. 심하게 발로 차인 오스프리드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며 쓰러져있었다. 티토스 무리 중 한 명이 티토스를 때리고 있는 루이스를 발로 차 떨어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으로 쓰윽 닦았다. “이것들이 돌았나. 야, 다 잡아.” 티토스 무리가 움직이자, 그들보다 어린 오스프리드 친구들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그들은 굳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루이스와 오스프리드를 욕을 하며 그들을 마구 밟고 차기 시작했다.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둘은 그저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만 있을 뿐, 그대로 공격에 노출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맞고 있을 때, 티토스가 침을 뱉고는 무리에게 그만 가자고 하였고, 무리가 사라지자 둘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있었다. 숨을 몰아쉬던 루이스는 그대로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오스프리드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저 끙끙거리는 소리만 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스프리드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서,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오스프리드를 쳐다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어느새 일어나있었고, 그대로 울고 있었다. 루이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어났고, 절뚝거리며 오스프리드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왜 그래?”오스프리드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루이스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그는 원망이 가득 찬 눈으로 루이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여기 안 왔었더라면 우리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야.” “무, 무슨 말이야? 왜 그래, 오스프리드.”“왕자라는 녀석이 왜 쓸 때 없이 여기 와서 남에게 피해를 주냔 말이야.”“뭐?”“네가 하이아칸의 왕자라는 거 알고 있어? 그리고 하이아칸 왕이 널 죽이려고 했는데, 너희 아버지가 널 살리려고 널 이곳으로 몰래 데려왔고, 왕은 너희 아버지 가문을 몰살을 했어. 그때, 잠시 하이아칸에 갔던 우리 엄마도 있었고 말이야. 네가 이곳으로 와서 죽은 거라고.” “노, 농담이지?”“모두 너 때문이야.”그는 루이스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그대로 뛰어갔고, 루이스는 멍하니 그가 뛰어간 곳을 쳐다보았다. 레드윈 집에서 묵고 있던 자베르는 어느 정도 팩스터와 친하게 되었고,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루이스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본 팩스터가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루이스?”루이스는 퀭한 눈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거짓말….” “싸운거야?”“내가 보기엔 싸운 것 보단 일방적으로 맞은 것 같소만.”자베르가 말하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맞았어? 누구한테?”“전 누구에요?”루이스가 엉뚱한 말을 하자 팩스터가 그의 머리를 확인했다. “머리 다쳤어?”“저, 아버지 자식 맞죠? 그렇죠?”팩스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라는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볼 때, 루이스가 다시 말했다. “내가 하이아칸의 왕자야?”“무슨 소리야? 누구한테 들었어?”“맞구나…. 거짓말쟁이….”“그럴 리가 있니. 넌 평범한 대장장이인 내 아들이야.”“왕국기사가 평범한 건가요?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팩스터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루이스가 이 사실을 안 것일까? 이 사실은 자신과 자베르, 그리고 오스문드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고, 자베르는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자베르는 그가 맹세한 것을 어길 리가 없는 것 같아보였고, 확실히 자신 앞에서는 둘은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을 보지 못 했다. 그렇다면 오스문드가 말한 것일까? 하지만, 그도 약속을 어길 리가 없으며, 그는 현재 집을 비운 상태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누가 루이스에게 말한 것일까? 루이스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좋은 것인가. “어서 말해주세요. 사실인가요? 이번에는 제발 얼버무리지 말아주세요.”루이스의 물음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하였다. 그는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몰러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루이스에게 고개 숙여 절하였다. “하이아칸 제국의 황비 근위대 소속이며, 현재는 황자님을 보호하는 호위기사인 세르 마티스 로완입니다.”자베르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루이스에게 고개를 숙여 절하였다.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이며, 그가 태어나자마자 무슨 일을 겪은 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고, 설명을 듣는 내내 루이스는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루이스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그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팩스터도 문 앞에 음식만 갖다 놓으며 식사를 하라고 말만 할 뿐, 루이스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하루 동안 루이스를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그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끝낸 자베르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는 숙박비와 음식값으로 팩스터에게 3데나리온을 건네자, 팩스터는 그 돈을 거절하였다. “고작 일주일 간 지낸 것 가지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런 걸 건네면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오, 세르.”“마음만 받겠습니다, 페르.”자베르는 잠시 미소를 짓고는 돈을 지갑에 도로 집어넣고는 현관문으로 다가가며 다시 팩스터에게 말했다. “그간 잘 지냈소이다.”그리고 그가 나가려던 순간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이스가 아래로 내려와 말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페르.”자베르와 팩스터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활동하기 편한 두건이 달린 긴 외투를 입고 있었으며, 가벼운 배낭과 검을 챙겼다. 팩스터가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까?”“말했다시피 페르 자베르를 따라갈 겁니다, 세르.” “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어째서 힘들고 위험한 생활을 하신다는 겁니까.”“저를 속인 사람과는 함께 못 있을 것 같거든요. 페르께서는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안 될 거야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니…. 거참.”“함께 가도 좋다는 걸로 받아드리겠습니다.” “정말 떠나실 생각입니까? 모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험은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떠나셔도 됩니다. 차라리 기사가 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니 모험을 떠난 다는 생각은 잠시…….”“이 결심은 절대 안 바뀔 것 입니다, 세르.” 열심히 루이스를 말리려던 팩스터의 말을 끊고, 루이스가 단호히 말했다. 팩스터가 계속 그를 말리려고 했으나, 루이스의 뜻을 결코 굽히지 못 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팩스터는 한숨을 쉬고는 루이스를 자신의 대장간에 데려갔다. 대장간에 오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에게 맞는 얇은 판금갑옷과 스큐툼(scutum) 방패, ‘Y’자형 바붓(barbute) 투구, 단단한 강철로 만든 쇼트 소드(shortsword)와 소드 벨트(sword belt), 그리고 황금색 단검을 건넸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이 검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할 겁니다. 그리고 이 단검은 황비님께서 황자님께 전해주시라는 것 입니다. 소드 벨트에 단검도 끼우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두면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팩스터는 주머니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고, 루이스는 그 안을 보고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황비님께서 맡기신 겁니다. 3, 40아우리온 정도는 될 것이니, 당분간은 걱정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이걸 다 가져가면 세르는….” “전 어차피 제가 따로 모은 재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루이스는 팩스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는 대장간 밖에서 기다리는 자베르에게로 갔다. 팩스터가 그를 불렀고,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루이스, 정말 갈 거니?”루이스는 팩스터를 바라보게 선 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버지.”그리고 그는 자베르와 함께 마을을 벗어났다. 3. 세상으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카울(cowl)을 입고 있는 소년과 사내가 퍼 붇는 소나기를 맞으며 들판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들판인지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들 모두 비를 피하기에는 부적합했고, 허허벌판인 이곳에서 비를 피할만한 장소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에 방패를 맨 소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고, 사내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롱하우스(longhouse) 한 채가 있었다. “저기 집이 있어요.”“잠시 저기서 비를 피하면 되겠구나.”둘은 비를 피하기위해서 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그들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백발이 만성한 늙은 남자가 나왔다. 사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된다면 헛간이라도 괜찮습니다.” “들어오시구려.” “감사합니다.”집안에는 늙은 여자가 집 한가운데에 있는 난로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카울을 벗어 벽에 달린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두건을 벗자 소년의 금발머리가 드러났다.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패와 검, 배낭과 투구를 벽에 기대어놓았다. 노인은 사내에게 말했다. “미리 말해주겠소만 우리 집에는 가져갈 것이 없다우.”“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여행자들입니다. 비만 그치면 바로 가겠습니다.”전신에 방어구를 입은 사내가 말하고는 검을 풀어 벽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무엇을 끓이는지 궁금하여 그것을 흘끗 보았다. 그녀가 끓이고 있던 것은 밀죽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릇에 옮겨담고는 소년과 사내에게 하나씩 건넸다. 6월 달이라 더웠지만, 비를 계속 맞아 추위를 약간 느낀 소년은 감사히 그것을 받고는 따뜻함을 느끼며 떠먹었고, 사내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에 사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맨리스까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아십니까?”“2, 3일만 더 걸어가면 될 것이오.”그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편안히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사내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방패와 투구, 검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그쳤고, 그들은 감사 인사를 한 후에 집을 나와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품을 한 번 하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길만 있었으면 벌써 맨리스에 도착했을 것이다. 리오스는 정말 도로상황이 엉망이야. 그나저나 루이스 넌 도시가 처음이 아니냐?”“시골에서만 살았으니 그렇죠.” “내가 알기론 맨리스는 비교적 작은 도시라고 하던데. 가장 큰 도시는 당연히 리오스의 수도인 웨스치야.” 웨스치는 소토리오스 제국의 수도이며, 현재 리오스의 수도로, 가장 거대하며 여러 석상들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어 미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다른 도시보다는 비교적 왕래가 편하지만, 도시 안 중앙에 위치한 왕의 성만은 산엄한 경비로 그 주변조차 다가가기 힘들어, 중앙이 텅 빈 도시로 보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사는 것인데 말이야.”생긴 것과는 달리 사내는 말이 무척이나 많았고, 결국 루이스가 그에게 짜증나는 말투로 한 마다릴 내뱉었다. “힘든데 조용히 좀 합시다, 페르 자베르.”“본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황자님.”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자베르가 말하자, 잠시 루이스는 구시렁거리더니 이내 입을 다물고 걷는 일에 집중하였다. 사내는 걸을 때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 때문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얼마 뒤, 그들은 저 멀리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었고, 그것은 약 열 명 정도의 기수(騎手)들이었다. “기사들인가? 하지만 깃발이 보이지 않는데, 용병? 하지만 그럴 일은 없고.”자베르는 그들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기사들은 보통 최소한 한 명의 기수(旗手) 그들이 따르는 영주나 그들이 속한 기사단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움직인다. 그리고 대부분 용병들은 말이 비싸 말을 잘 사지도 않기에 말을 타고 움직이지 않는다. 기수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자베르는 드디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야만족들이잖아.” 그가 말하자, 루이스가 검을 뽑기 위해 손을 칼자루로 옮겼다. 그러자 자베르가 루이스의 팔을 잡았다. “되도록이면 저들을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기수들은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기수들은 그들 앞에서 멈추어 섰다. 머리를 한 갈래로 땋은 야만족들은 그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리오스어였다. 소토리오스 제국의 초대 왕인 아더 왕이 리오스어로 언어를 통일시켰고, 그 후로 리오스어를 공용어라 불리게 되었지만, 리오스의 많은 야만족들은 고대 언어를 말하고 있었고, 공용어가 생긴 후에는 그들이 말하는 고대 언어를 리오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자베르는 리오스어로  말하고 있는 야만족들에게 서툴게 말했다. “웨 아레 프레이만.”“프레이만? 웨 아레 프레이만, 토우.”야만족 하나가 비웃듯이 말하자, 다른 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만족 중 몸에 문신이 가장 많은 자가 루이스와 자베르를 내려다보며 공용어로 서툴게 말하였다. “복장이 자유인이 아니다.”“자기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요.”자베르가 공용어로 대답하였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리오스에는 다른 국가에 비해 아직 많은 야만족들이 남아있으며, 그들은 작은 마을이나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거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야만족들에게 공격을 당한자들이 영주들에게 고통을 호소해 보았지만, 대부분 영주들은 작은 마을이 공격당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오스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거나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야만족 중 하나가 무어라 말하자 그들은 시끄럽게 서로 다투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고, 공용어를 사용했던 사내가 다시 말했다. “우리 부족은 작다. 돈이 필요하다. 가진 걸 내놔라. 옷, 돈 모두. 목숨은 살려주겠다.” “이건 말이 안 되요.”루이스가 불평하였다. 그들이 가만히 있자, 야만족들은 허리에 차고 있는 시미터(scimitar)를 뽑아들고 ‘후리 우프.’라고 외쳤다. 루이스도 무슨 일이 생기면 검을 바로 뽑을 수 있게 칼자루에 손을 갖다대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빼앗길 수는 없어요.”“수적으로는 우리가 밀려.”“그렇다고 제가 가진 돈을 모두 주라는 겁니까?”“그건 안 되겠지.”자베르가 씩 웃더니 말하고는 롱소드(longsword)를 뽑았다. 그들에게 말을 하던 야만족이 그들을 베기 위해 검을 높이 들었고, 자베르와 루이스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검을 내리치려던 야만족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그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쓰러진 그의 뒷목에는 볼트가 꽂혀있었다. 곧이어 2명이 더 볼트에 맞아 쓰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들은 석궁을 자신들에게 겨누고 있는 4명을 찾았다. 그때, 볼트 하나가 날아오더니 야만족 한 명의 목에 꽂혔고,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목으로 갖다대던 중 몸이 옆으로 쏠려 말에서 떨어졌다. 한 명이 화를 내며 말에 박차를 가하며 자베르에게로 달려갔고, 그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그러자 자베르는 보이는 것과 달리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 검을 피하고, 자신을 공격한 자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손목이 잡힌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말과 반대로 뒤로 몸이 쏠려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자베르는 롱소드를 거꾸로 잡고 쓰러진 그의 배를 내리찍었고, 사내는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자베르가 검을 뽑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더니 자베르가 한 번 더 찍어버리자 그는 조용해졌다. 또 다시 날아오는 볼트에 한 명이 더 죽자, 그때서야 야만족들은 죽은 이들의 말들을 챙겨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들을 공격한 자들은 석궁을 아래로 내리고 루이스와 자베르에게로 다가왔다. 루이스가 멍하니 죽은 자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충격을 먹은 듯 했지만, 침학하기도 하고,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조금 전 그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나?”“사람이 죽는 건 처음 봤거든요. 느낌이 뭐랄까… 이상하네요. 이 자들도 가족이 있겠죠?”“더 이상은 아니지.”루이스는 맨 처음 볼트가 뒷목에 박혀 죽은 자를 보았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려던 그때 그 표정을 그대로 짓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은 지 모르고 죽으면 어떨까요?”“궁금하지는 않을 거야.”“끈적끈적하네요.”“뭐가?”“피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끈적끈적한 것 같네요. 색깔도 새빨갛고 말이에요.” 루이스는 칼끝으로 땅을 몇 번 쓱쓱 긋고는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그들을 도와준 자들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걸음을 멈춘 그들은 두건을 벗었다. “꼬마도 있는데 무모하군요.”무리 중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자베르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감사하오. 은인에게 실례지만 왜 도와주셨소? 야만족들이 표적을 바꿀 수도 있었는데 말이오.”“아아, 저도 예전에 야만족들에게 가진 것을 빼앗긴 적이 있어서요. 복수도 한 셈이죠.”그녀가 대답하고, 바로 옆에 쓰러진 자의 몸에 박힌 볼트를 뽑아 죽은 자의 옷에 볼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여자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맨리스에 가오.” “잘 됐군요. 저희도 맨리스로 갑니다.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리오스에서는 일행이 많을수록 안전하죠.” 여자가 볼트를 수거하며 말했다. 볼트를 모두 수거한 여자는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엘라 브락스이고, 그녀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그녀의 오빠인 리만 브락스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 뺨에 화상자국이 있는 자는 베릭 스파크, 남자가 보아도 잘생긴 외모를 가진 자는 로스비 알란이라고 한다. 자베르도 그들에게 자신과 루이스를 소개하였다. 소개가 끝나자 그들은 함께 맨리스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오늘은 그만 걷자는 의견에 동의를 하고, 한 장소에 멈추어 쉬었다. 투그를 벗은 자베르가 말했다. “솜씨가 아주 좋더군.”잠시 이해를 못 했던 리엘라가 그 말을 이해하고는 석궁을 들어올려 보이며 답했다. “석궁을 사용한 것도 10년 가까이 됩니다.” “뭐 하는 자들이오?”“용병입니다. 떠돌며 의뢰를 받지요.” “요즘에는 용병단 소속이 아니면 의뢰가 들어오기가 힘든데 실력이 좋은가 보오.” “대부분의 의뢰를 성공하니 말이죠.”“그러면 맨리스에는 의뢰 때문에 가는 것이오?”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자세히는 의뢰를 구하러 가는 길이죠.”그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루이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자베르가 배낭에서 빵을 꺼내 루이스에게 건넸다. 루이스는 허기를 달래기위해서 질기고 맛이 없는 빵을 억지로 먹다시피 하였고, 자베르도 빵을 하나 더 꺼내 먹기 시작했고, 그는 루이스와 달리 빵과 함께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자베르가 꺼낸 것이 물이 든 주머니인 줄 알았으나,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맡은 리엘라가 그에게 말했다. “야만족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술을 마시다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요.”“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다.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 모금 마시겠소?”자베르가 그녀에게 주머니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술은 안 마셔요.”야만족들에게서 얻은 시미터의 상태를 확인하던 리만이 그녀를 ‘리엔’이라고 부르며 빵을 던졌고, 그녀는 놓칠 뻔 하였지만, 간신히 빵을 받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을 아직도 부르니깐 저를 아이 취급하는 것 같네요.” “형제라는 것은 좋은 것이오.”“형제가 있나요?”“제 형제들 말이오? 모두 잘 살고 있을 것이오. 형님은 부르봉 왕국의 왕국기사이고, 동생은 부르봉 왕국의 어느 백작의 기사단 소속이니 말이오.” “부르봉 왕국 사람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발음이 부르봉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그렇소. 아더 왕께서 세 대륙 언어를 통일시키신 덕분에 대화에 아무 지장이 없지요. 만약 그분이 언어를 통일시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부르봉 왕국 언어를 사용하고 있겠지요.”그가 공용어가 아닌 다른 말로 무어라 말하였지만, 그녀는 당연히 무슨 듯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화폐를 통일시킨 것도 위대한 업종이시지.”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들러보며 말했다. “불 좀 피우죠.”“불을 지피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야만족들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될 거야.”베릭이 말하자, 리엘라가 투정을 부렸다. “어두운 건 싫은데.”“2년만 있으면 30살이 되는 사람이 투정은.”로스비가 시미터를 바닥에 두고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자베르로 옮겼다. “그쪽도 기사십니까? 형제 모두 기사라면 기사 가문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신갑옷, 투구, 롱소드까지 가지고 있으시니 전형적인 기사 복장이 아닙니까?”“이제는 아니오. 그리고 맨리스에 가면 최소한의 방어구를 빼고는 팔 예정이오. 옛날엔 이것보다 더 무거운 것을 입고도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갑옷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말이오. 그래도 아직은 팔팔하오.”자베르가 팔팔하다고 말하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가슴을 툭툭 쳤다. 루이스가 빵을 다 먹었을 즈음 리엘라가 그를 보며 자베르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에요? 우리와 만났을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던데.”“내 제자요. 함께 여행 중이지.”“이렇게나 어린 애가 제자라고요? 이름이 루이스라고 했던가, 몇 살이니?”그녀가 묻자 루이스는 입에 있던 빵을 재빨리 씹은 뒤 삼키고, 대답하였다. “12살입니다.”그녀는 최소한 그가 14살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12살이라고 말하자 놀라움을 드러냈다. “12살이라고? 그렇게나 어린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거야?”“사실…….”“저 녀석은 사실 고아라오. 그나마 꽤 검을 잘 쓴다 싶어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오. 물론 비용은 모두 제가 부담하고 있지만 말이오.”자베르가 갑자기 사실이 아닌 말을 하여서 루이스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자베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당황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그의 말에 맞추기로 하였다. “길거리에 있는 것보다는 낫거든요.”“이 생활이 길거리 생활과 다를 것이 뭐가 있니.”그들은 그 후로도 대화를 더 나누었고, 많이 걸어 피로가 많이 쌓인 루이스가 먼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신의 카울을 바닥에 깔고 누우려고 할 때, 자베르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듯 한마디를 던졌다 “되도록이면 앞으로 네가 하이아칸의 황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루이스가 무슨 말인지 다시 물으려다가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 때문에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 그에게 따로 묻기로 마음먹었고, 지금 당장 묻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피곤했기 때문이었고, 그는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루이스는 시체가 가득한 정장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곳곳에는 깃발들이 불러져 너부러져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기사와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고, 그들은 그가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처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일정하지 않은 복장과 무구로 무장되어 있어서 오합지졸 부대-심지어 몇몇은 농기구를 들고 있는 평민들이었다.-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 지금당장이라도 그 오합지졸 부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회색빛의 기사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기사들 앞에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자가 꿇어앉아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오합지졸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검을 든 채 황금 갑옷을 입은 자 앞에 서 있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입이 무어라 말하였지만,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장은 검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목을 내려쳤고, 검붉지 않은, 매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머리 없는 몸이 건물이 무너지듯 쓰러졌고, 한참 후에야 주인을 잃은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고, 승리한 자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높이 들며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따! 우리의 새로운 왕 만세!”그들은 계속 ‘새로운 왕 만세’라는 말을 계속 외쳤고, 목을 벤 자는 그들의 환호에 답하듯 그의 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고, 그의 칼날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루이스는 환호하는 무리 사이에서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정리되어 있지 않은 땅을 걸어온 그들 앞에 ‘맨리스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팻말과 미약하지만, 그나마 정리되어진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와 팻말이 나온 것을 보니 거의 다 온 것 같군요. 점심 때 쯤 이면 도착하겠네요.”리만이 말하고는 길을 따라 걸었다. 루이스는 그들을 만난 후로 매우 편안히 걷고 있었다. 그들과 만나기 전에 그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지만, 험악한 인상을 주는 베릭은 외모와 달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가 루이스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었다고, 루이스는 그저 자신의 갑옷과 투구, 방패, 그리고 검만 가지고 걸었다. 언뜻 보면 루이스는 기사 흉내를 내는 꼬마아이 같이 보였다. 베릭은 여행 내내 루이스에게 맛있는 것을 주거나 루이스의 검을 닦고 갈아주는 일을 대신 해주었고, 그 때문에 루이스도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를 매우 잘 따랐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안한 차림의 여행자, 무리지어 다니는 용병들, 그리고 길옆에는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이 허전한 바구니를 앞에 두고 드물지 않게 나타났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말발굽소리가 들렸고,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자, 일렬로 5명의 말을 탄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기사는 번개모양의 칼날을 가진 검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옆으로 비켜 기사들이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자베르는 그의 옆에서 말했다. “맨리스 영주의 라이드이구나. 아참, 맨리스 영주가 기사라는 건 알고 있니?”루이스는 대답하지 않고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사들을 보았다. 기사 중 한 명이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주었고, 동전은 신기하게도 거지 앞에 놓여진 바구니로 정확하게 들어갔고, 거지는 고맙다며 멀어지는 기사에게 크게 외쳤다. 어느덧 그들은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의 성문에 다다랐다. 자베르가 이 맨리스라는 도시가 작은 도시라고 하였으나, 도시에 처음 온 루이스가 보기에는 매우 큰 도시였고, 사람들 또한 엄청 많다고 생각하였다. 자베르는 맨리스에 함께 온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만나서 매우 반가웠소.”“저희와 함께 다니실 생각은 없으십니까?”리만이 묻자, 자베르는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하였다. “우린 그저 방랑자일 뿐이오.”“싫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자베르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고, 베릭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헤어지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건강하게 지내라.”루이스도 그에게 건강하라고 말하였고, 그들은 헤어졌다. 자베르는 먼저 여관으로 가자고하여 그들은 잠시 여관을 찾다가, 여관을 찾고는 그곳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여관에 들어와 그들이 먼저 한 일은 갑옷을 벗는 것 이었다. 갑옷을 벗은 자베르는 어깨를 돌려 근육을 풀어주었고, 허리를 쫙 피며 자신에게 불평하였다. “나이가 들었나, 몸이 많이 뻐근하고 힘드네. 이제 이것들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군.” 루이스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품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황금색에 화려한 황실 문장이 새겨진 단검.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이름조차 알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몸을  풀던 자베르가 그가 들고 있는 단검에 관심을 보였다. “무슨 단검이냐? 이런 것도 갖고 있었나? 어라, 하이아칸 황실 문장이 아니냐?”루이스는 그가 하이아칸 제국의 제국 기사단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에게 물었다. “황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름을 아시나요?”“본 적은 없지만, 이름이야 알지. 예니 판 파이네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초상화를 본 적이 있지. 아주 미인이더군. 남자라면 누구나 한 눈에 보면 반할 정도였지. 난 처음에 봤을 때 엘프인 줄 알았어. 엘프처럼 정말 매혹적인 외모였지.” 자베르는 루이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단검이 무엇이냐고 묻자, 루이스가 대답을 하였다.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거래요.” “그렇다면 중요하겠구나.”“당연하죠.”“간수 잘 해라. 오랜만에 식사같은 식사 좀 하자. 갑옷도 팔아야 되니깐 말이야.”루이스도 동의하고, 그들은 여관에 있는 식당대신 여관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대륙보다 리오스가 있는 리치 대륙, 특히 중부 지방에서는 벼가 많이 자라 맨리스에서도 쌀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고깃국과 쌀로 만든 밥을 먹었다. 고깃국의 간은 매우 싱거웠고, 고기는 그저 종이 조각을 씹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행 내내 마른 빵만 먹어온지라 별 불평 없이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그들은 자베르가 갑옷을 팔기 위해 대장간으로 갔다. 대장간에 온 루이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비록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진짜 아들처럼 12년간 길러주었다. 자신이 진짜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면, 지금도 친아버지인 줄 알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떠난 것이 잘한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대장장이와 자베르의 실랑이 때문에 중단되었다. “고작 10데나리온이라니. 최소한 10아우리온 정도는 줘야할 것은 아니오? 이것은 50아우리온 상당의 가치의 물건이오.” “10아우리온이라니. 아예 작은 집 한 채를 달라고 하겠구만. 50아우리온 가치라고 하여도 이건 흠집이 꽤나 나 있단 말입니다.”“그렇다하여도 10데라이온은 너무 적소.”“하아, 좋소. 2아우리온.”“여덟 닢으로 끝냅시다.”“하이고, 거참. 다섯 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받지 못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정도도 제가 엄청 많이 양보한겁니다.” “웬만한 검으로는 뚫지 못 하는 갑옷인데, 좋소. 다섯 닢으로 하죠.”대장장이는 자베르에게 금화 다섯 닢을 건넸고, 그들은 그곳을 나왔다. 루이스는 막 괜히 팔았나라며 후회하는 자베르에게 물었다. “갑옷을 모두 팔아도 괜찮아요?”자베르는 입고 있는 옷을 살짝 들어올려 안에 있고 있는 쇠사슬 갑옷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어차피 웬만한 녀석들은 근처에도 못 올 것이니깐.”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베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왜 웃느냐고, 묻자 루이스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근처에도 못 온다니, 아이들이 쏜 석궁에도 맞았잖아요.”“아니, 그때 그것은 내가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볼트가 날아온 거잖아. 공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면 맞지도 않았어.”자베르가 당황하며 해명을 하자, 루이스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떠나와서 웃은 적이 있었던가?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다시 여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고, 뒤를 돌아보자 리만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건넨 후 리만이 자베르에게 말했다. “술이라도 한잔 하러 가시죠. 돈은 물론 제가 내겠습니다.”“술이라…. 좋소. 루이스, 여관에 먼저 가 있어라.”“꼬마도 같이 데려가죠. 위험하게 혼자 보내다니요.” “술집에 말이오?”“제가 아는 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음료도 있지요.” “루이스, 어떻게 할래?”“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따라가면 안 될까요?”“그럼 어서 가죠.”리만이 손바닥을 마주대어 비볐다. 그들이 간 곳은 작은 술집이었고, 손님도 자신들을 포함해 10명이 채 되지 못 했고, 개중에는 베릭과 로스비도 있었다. 그들은 자베르와 루이스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며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의자에 앉은 리만은 주인에게 마실 것을 주문하였다. “두 잔. 어린이 손님을 위한 것도.”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마 안 되어 자리에 앉은 그들 앞에 각자 주문 한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루이스 앞에는 오렌지 주스를, 리만과 자베르에게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를 주었다. 자베르는 컵을 집고는 코 가까이 가져다놓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독한 술, 보드카군.” “이 집의 보드카가 리오스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 진정한 보드카의 맛을 볼 수 있죠.”“진짜 진정한 보드카를 맛보고 싶다면 하이아칸 북부로 가시게나. 나도 그곳에서 보드카를 한 번 마셨다가 그날 죽는 줄 알았다네.” “한 번 마셔보고 싶군요.”리만은 잔을 들어 허공에 잔을 부딪치고는 입으로 갖다대어 마셨다. 자베르도 잔을 비우고는 ‘크’ 라는 감탄사를 하며 중얼거렸다. “독하긴 독하군.” 루이스는 빤히 주스를 쳐다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목이 마르는 것 같은 느낌에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 그의 앞에 과자가 든 그릇이 두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검은머리에 콧수염을 가진 선한 인상의 주인이 싱긋 웃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술을 마시며 각 나라의 상황에 대해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는 어른 네 명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자베르가 술을 더 권하는 리만에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원래 술에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데, 오랜만에 술친구가 생겨 떠들다보니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구려. 잠도 밀려오고, 이제 그만 가봐야겠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명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베르와 달리 얼굴이 약간 붉어졌을 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술에 취한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로스비가 웃으며 자베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술친구가 한 명 더 느니 재미있었습니다.” 자베르는 하품을 크게 하고는 잘 지내라며 말한 뒤, 루이스와 함께 여관으로 갔다. 여관에 도착한 그들 둘 다 피곤하다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있던 루이스는 누가 자꾸 그를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와 깨기 싫던 그는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부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르며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앞에 바닥에 누워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자베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불편하게 두 손을 등 뒤에 두고 있었다. 가만, 우리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던가?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려는데 자신의 손이 등 뒤에서 움직이지 못 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움직여도 두 손이 서로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이곳이 잠이 들기 전에 있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루이스가 자베르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죠?”“쉿, 쉿. 조용히 해라. 잠깐만 기다려봐.”자베르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났을 때에는 횐팔에 있어야 할 손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진짜 손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의수를 집고 왼팔에 붙이고, 의수의 손가락을 움직이고는 중얼거리며 루이스에게로 다가왔다. “이래서 술에 취하면 안 된다니깐.”그는 루이스의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베릭과 로스비와 대머리의 사내가 원형 탁자에 앉아있었고, 베릭이 동전 한 닢을 손가락으로 튕겨 하늘로 띄운 뒤, 공중에서 재빨리 낚아채고는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앞, 뒤?”대머리의 사내가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앞.”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로스비가 말하였다. “네가 앞이면, 난 뒤.”베릭이 주먹 쥔 손을 피자 안에는 그림이 그려진 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동전이 있었다. 그것을 본 대머리의 사내의 얼굴에는 짜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항상 지는 거지.” 그는 주머니에서 10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로스비에게 주었다. 그러자 로스비는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동전을 받았다. 로스비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5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숫자가 적힌 면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나 대신 위에 좀 갔다 오면 줄게.”“자기가 감시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러기냐.”그는 로스비의 손에서 돈을 빼앗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어느 방문 앞으로 가 방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눈에는 밧줄을 막 풀고 이어난 중년남성과 꼬마 아이가 보였다. “이런.”그는 손을 허리에 찬 검으로 갖다대려는 순간, 중년남성이 재빨리 다가 와 밧줄을 그의 목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는 밧줄을 잡고, 목을 조이지 않기 위해 힘껏 당겼지만, 중년남성의 힘은 매우 좋았고,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힘만 더 빨리 빠진다는 것을 알고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팔꿈치로 상대방의 몸을 가격했지만, 오히려 목을 조이는 힘만 더 강해졌다. 다급해진 그는 손으로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려보았지만 이미 힘이 거의 빠진 그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 했다. 숨이 막혀 얼굴이 붉어진 그는 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검을 뽑았을 때, 그의 손에서 검이 사라졌고, 그는 자신 앞에서 자신의 검을 들고 있는 꼬마아이를 보았다. 그는 점점 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밧줄을 풀려고 바둥바둥 거렸지만, 그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잠시 뒤, 그는 두 팔이 축 늘어지더니, 두 다리가 풀려버렸다. 중년남성은 사내를 바닥에 조심스레 두고는 꼬마아이에게 검을 받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루이스.”그가 소리 없이 방 밖으로 나가 밖을 힐끔 보았다. 1층에는 두 명의 사내가 탁자에 앉았었는데, 둘 다 그가 있는 곳을 등지고 있었다. 문득,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저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올 떄, 한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로스비? 베릭?”그러자 둘이 그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들이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들고 있는 검을 바로 잡으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이냐?”“자, 잠시 얘기 좀 하시죠. 검은 내려놓으세요.”베릭이 당황해하며 말하자, 베릭이 그 대신 말했다. “자베르 님은 그냥 가시면 됩니다. 물건도 그대로 보관해놓았으니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저 어린아이만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대가로 돈도 드리죠.”“어린 꼬마 데리고 뭐 할 것이오?”“그저 용병단에 팔 겁니다. 이런 길거리 생활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그게 용병인가? 돈에 팔려서 가는 것이? 어린 꼬마가 용병단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소?”“그저 몇 년 일하면 되는 겁니다.”“돈도 못 받고 노예처럼 몇 년을 일하라니. 그게 할 짓이오? 아이 물건은 어디있소?”“돈이 많이 있어서 무구들은 가만히 놔두었지요.”“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오? 아이들을 용병단에 팔아넘기고, 돈을 훔치고 말이오?”로스비가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가 다가가자 그들은 검을 집어 들었다. 로스비는 바스타드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당신은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서로 피 볼 일은 없지 않습니까.”“갈 길 가기위해서 루이스가 필요하지.”“어쩔 수 없군요.”로스비는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검을 내리쳤다.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자베르는 몸을 틀어 간단히 공격을 피한 뒤, 로스브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그는 내리친 검을 다시 올리며 자베르의 검을 쳐냈다. 다시 로스비는 자베르를 공격해왔지만, 자베르는 그의 공격을 모두 막고 피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베릭은 싸움에 끼어들어 로스비를 도와줄지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는 자신이 다칠 수가 있었고,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로스비와는 우정이 아닌 돈으로 맺어진 동료사이이고, 결국 그는 일단은 지켜만 보기로 하였다. 로스비는 자베르와 검을 몇 번 부딪히고는 떨어졌다. 로스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한 상대이다. 그는 잠시 어떻게 자레르를 공격할지 고민을 하고는 다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검을 내리쳤고, 자베르가 몸을 뒤로 빼자, 로스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치고 있던 검을 중간에 멈추고 그대로 그의 명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 순간, 그는 자베르의 눈빛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까지 그의 눈에서는 살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자베르는 검으로 로스비의 검을 쳐 내린 뒤, 다시 검을 쳐올렸고, 로스비가 검을 쥔 손이 피를 뿜으며 하늘로 떠올랐다. 로스비는 몸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잘려나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내 손, 으아악! 내 손을, 손을!”자베르는 검으로 허공을 베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베릭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아니라 쓰러진 로스비를 바라보고 있는 자베르를 발견했고, 그는 칼자루를 꽉 쥔 뒤 그에게로 달려갔다. 자베르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한 박자가 늦었다. 베릭이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을 때, 나무의자 하나가 그에게로 날아오더니 그대로 그를 들이박았고, 베릭은 의자와 함께 쓰러졌다. 자베르가 의자가 날아 온 곳을 보자, 계단 위에 서 있는 루이스가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자베르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베릭에게로 다가가 발로 검을 멀리 밀어내고 칼끝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고집을 부리지 말지 그랬소.”베릭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미친 듯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던 루이스가 소리를 질렀다. “뒤, 뒤에!”자베르의 뒤에서 로스비가 검으로 그를 내리치려고 하였다. 자베르는 검을 가로로 그으며 몸을 돌렸고 로스비의 가슴 윗부분이 그의 손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붕 떠올랐고, 땅에 붙어있는 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서야 베릭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붙어있었을 것인데.”자베르는 둘로 나뉘어진 로스비의 몸통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상체를 일으키고 누워있는 베릭을 보았다. 그는 로스비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고, 베릭은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고, 검은 그대로 그 옆에 박혔다. “자, 우리 물건은 어디 있소?”“여기 있어요.”루이스가 구석에 두어진 자신의 물건들 앞에 서서 말했다. 물건들을 확인하던 그는 몸을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돈이 없어졌어요. 단검까지….”“돈이랑 단검이라면 리만과 리엘라가 가지고 있을 거요.” “그 녀석들은……”“어디있죠?”루이스가 자베르의 말을 끊고 대신 말을 이었다. 그러자 베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용병단과 만나고 있겠지.”“어디서요?”“남쪽 광장일거야.\"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갑옷을 서둘러 입었다. 그런 그를 베릭이 보더니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찾으러 가야죠.”“그곳에 간다고? 하하하, 이거 의외군. 너를 용병단에 팔려고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니? 넌 지금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거야. 나라면 차라리 도망을 가겠다. 돈이야 좀 아깝겠다만, 목숨이 더 소중하지 않나.” 베릭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막 방패를 든 루이스는 검을 뽑고 그에게 다가와 검으로 그를 겨누었다. 루이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하, 사람은 죽여 봤니, 꼬마야?”“지금이 처음이 될 수가 있겠지.” “네가 바라는 반응이 어떤 거야? 내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베릭이 루이스를 조롱하듯이 말하였고, 곧 그는 비명을 질렀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렸다가는 검을 그 입 안에 쑤셔 넣어주지.”루이스는 베릭의 손등을 찍은 검을 다시 뽑았다. 검이 제대로 박혀 루이스가 힘껏 뽑다가 검이 뒤틀리는 바람에 베릭의 상처가 찢어졌고, 그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꺼져.”베릭은 잠시 루이스를 노려보더니 일어나 상처가 너덜너덜해진 손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루이스는 검을 집어놓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이에요?”“어차피 난 소속만 없을 뿐이지, 기사는 기사야. 기사가 도둑 하나 죽인다고 문제가 되겠니. 그런데 내 걱정보다는 네가 문제다. 그곳에 정말 갈거니?”“단검을 되찾아야 되죠. 그에 있어야 나중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가 누군지 알 수 있겠죠.”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베르는 그런 그를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그도 그의 검을 챙기고 밖을 나갔다. 여러 조각상과 리오스 왕가의 깃발과 영주의 깃발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광장에 무장을 한 십 여 명이 리만과 리엘라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수가 많은 쪽이 무장을 했지만, 검정색 바탕에 상단부가 뾰족한 붉은 히터(heater)가 그려진 팰스만 같을 뿐, 방어구와 무기가 제각각인 것을 보니 그들을 용병인 듯싶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저 그들을 잠깐씩 쳐다만 볼 뿐,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리만이 용병에게 말을 걸었다. “돈은?”“아이를 넘겨받은 후에 주겠다.” “그 쪽이 먼저 주시지. 우리가 너희 ‘붉은 방패’와는 첫거래지만 우리는 거래를 망친 적은 없어.” “아이를 앞에 데려오면 그때 주지.”“원한다면.” “여기서 기다리지.”“기다릴 필요는 없겠는데?”리엘라가 한 곳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무장한 소년과 사내가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용병들을 사이에 두고 남매에게 말했다. “내 단검은 어디있지?”“그 녀석들은 저런 것들도 감시 못 하고 뭐하는 것인지. 이야, 그런데 이거 의외인걸. 수십 아우리온보다 단검을 먼저 찾다니 말이야.” “단검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팔아버렸는데, 이걸 어쩌나.”레일라가 말하자 루이스가 움찔하더니 검을 뽑았고, 용병들은 일제히 무기를 쥐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자베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러자 용병 중 대장이 손짓을 하자 용병들은 일제히 양옆으로 갈라졌다. “이것 참 무서워 죽겠군요, 꼬마 기사님.”“단검을 어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베어버릴 거야.” “무서워 죽겠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넌 검인데 난 장거리 무기인 석궁이란 말이야.”그녀가 석궁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볼트를 끼웠고, 루이스는 방패를 몸으로 끌어당겨 앞면에 세웠다. 그녀는 석궁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한 번 막아보렴.”“뭐하는 짓이지? 꼬마를 죽이면 어쩌자는 건가?”용병대장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석궁을 흔들며 대꾸했다. “니들이 지금 잡으면 되잖아.”“그러면 잡아주지.”용병들은 루이스와 자베르 쪽을 제외하고 붉은머리의 남매 주위를 구멍 뚫린 원처럼 둘러쌌다. “뭐, 뭐하는 짓이야.”용병대장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살짝 들자, 한 용병이 작은 뿔나팔을 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수십 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고, 맨리스의 영주의 문장이 새겨진 초록색의 전투복을 입은 라이드와 브루도가 광장을 둘러쌌다. 갑작스런 기사들의 등장에 당황한 리만은 그도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레일라가 외쳤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기사는 뭐야.”루이스 뒤에 선 그들의 전투복 색과 문장그대로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 왼편의 기사가 말을 몰고 루이스의 뒤에 다가온 뒤 그들에게 말했다. “맨리스의 영주 세르 티클러 스피세르께서 6개월 전 그의 조카이신 루시온 님을 납치, 용병단에 팔아넘긴 너희 붉은석궁남매를 잡으라는 명을 내리셨다. 무기를 버려라.” “루시온 그 녀석이 교양이 철철 넘친다고 했었다. 다가오면 이 아이를 죽여버리겠어!”“상관없다.”“이런 젠장.”리엘라는 리만을 쳐다보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루이스 뒤의 기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따. 어차피 그들에게 잡혀 던전(dungeon) 같은 곳에 갇힐 바에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사가 몸을 옆으로 틀어 볼트를 피하자, 곧바로 리만이 그 기사를 향해 볼트를 쏘았다. 기사는 중심을 잡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었고, 볼트는 정확히 그곳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볼트는 날아가다 중간에서 멈추었다. 자베르가 왼손에 힘을 주자 볼트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고, 그는 부러진 볼트를 바닥에 버렸다. 곧바로 기사들이 달려와 그 둘을 제압했고, 볼트에 맞을 뻔한 기사는 자베르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며 감사의 말을 전했따. “신세를 졌군요. 조금 전 일, 감사합니다.”기사는 다시 말을 몰고 용병대장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렉.”“저흰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페르.” 기사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갔다. 티렉은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볼트를 손으로 잡다니 놀랐군, 곰.” “타나토스 녀석의 졸개들의 무기에 비하면 볼트의 속도는 달팽이야. 잘 지냈나, 붉은기사?” “보는 바와 같이. 용병단도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네.” “처음 자넬 보았을 때 엄청 놀랐는 거 아나? 자네가 이런 거래를 한다니.” “영주님의 의뢰였으니 말이야.” 둘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옆에 있던 루이스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걸어갔다. 기사들이 그가 다가오지 못 하게 막으려고 하자, 기사대장이 가만히 두라는 손짓을 보냈고, 루이스는 리엘라 앞에 섰다. “단검은?”“기사 양반, 왼쪽 허리에 찬 주머니 좀 이 꼬마에게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리엘라가 자신 옆에 서 있는 브루도에게 말하자, 그는 기사대장을 쳐다보았다. 기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머니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주머니 안에는 5 데나리온이 들어있었고, 리엘라가 말했다. “그게 네 단검을 팔고 남은 돈이다. 그리고 미안한데 너의 돈으로는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진 빚을 갚는데 써버렸어.” 말을 들은 루이스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그를 본 기사대장이 그에게 말했다. “좋다면 네가 죽여도 좋다. 어차피 영주님께서도 이 녀석들을 죽여서라도 데려오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네 동료가 내 목숨도 구해주었으니 말이야.”루이스는 잠시 동안 리엘라를 노려보더니 그녀를 향해 검을 찔렀고, 그의 검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누구한테 팔았지?”“킥킥. 말해 줄 것 같니, 꼬마야?”그녀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꽂힌 검을 살짝 비틀었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눈빛으로 조금 전 질문을 다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찌른 기분이 어때?”루이스는 조금 전과 반대 방향으로 검을 비틀었다. 그녀는 다시 고통을 참지 못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자기 여동생이 고통을 받는 걸 차마 보지 못 하겠던 리만이 대신 루이스에게 말해주었다. “피에르 에스터라는 티리아 상인에게 팔았다. 지금쯤 이곳을 떠나 호스터로 향했을거야. 호스터에 가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는 티리아에도 가기 때문에 쉽게 만나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는 매년마다 맨리스에 온다.”리만이 말을 끝내자, 루이스는 그를 쳐다보고는 리엘라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았다. 단검을 잃어 버리다니. 자신이 가진 유일한 어머니의 유품인 그 단검 하나를 지키지 못 했다. 그리고 가진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렇게 제 몸 하나 지키지 못 하는데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모험을 떠나다니. “안 죽일 거냐?”기사대장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루이스는 검을 높이 들어 그녀를 벨 자세를 잡았지만, 곧바로 내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검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검에 묻은 피는 그의 눈물과 동시에 흘러내려 땅에 떨어졌다. 기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고는 ‘귀환’이라고 외치며 말을 성이 있는 곳으로 돌렸고, 모든 기사들도 그를 쫓아 남매를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루이스는 아직 그곳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이스의 투구 때문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모르고 그저 그가 몸을 부들거리는 것을 용병들은 그저 멀리 떨어져서 그를 지켜만 보았고, 붉은기사라고 불린 티렉은 자베르와 나란히 서서 루이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내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야.”“자네에게 동료가 있단 말인가? 위험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었나?” “저 녀석과 함께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어. 그 동안은 그저 여행자처럼 조용히 다녔지.” “피에르 상인은 내년에 다시 이곳에 올 거야. 매년 그랬거든. 그나저나 단검이 그렇게나 저 애에게 중요하나?”“암, 중요하고말고.” 용병 한 명이 루이스에게로 다가갔다. 용병은 로브를 입고 두건을 쓰고, 천으로 눈 아래를 가려 성병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활을 옆 동료에게 맞기고, 루이스 앞에서 입을 가린 천을 내린 뒤, 루이스의 투구를 벗기며 말했다. “투구가 무겁지 않니?”그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런 그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그는 이곳에 오며 몇몇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 때문에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직접 사람을 검으로 찔러 고통을 준 것에 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단검을 지키지 못 하는 자신이 한심해 눈물이 더 나왔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잠시 뒤, 울음을 그친 루이스에게 자베르가 다가왔다. “어떻게 할 거니?”루이스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말을 덧붙였다. “단검 말이야.”“아, 찾아야죠.” “호스터로 가게?”“하지만 그랬다가는 길이 엇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여기서 그를 기다려보는게 낫지 않을까요?”“그러면야 되기는 하지. 하지만 난 6아우리온이 다야. 충분히 기다릴 수야 있겠지만, 그 후에 여행을 떠나면 돈이 부족할 거야.”“곰, 그 아이와 함께 우리 용병단에 들어 올 생각은 없나? 돈은 많지 주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렉이 다가와 말했다. “숙박시설은 기본으로 주지.”루이스는 티렉에게 시선을 떼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자베르도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다시 티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돈을 얼마 주나요?” “계산적이구나. 좋아. 그런데 넌 4급용병이란 말이지. 하지만 자베르의 추천이면 3급이니 계약금으로 4데나리온을 먼저 주지. 그리고 매달마다 2데나리온을 주마.”“너무 적은 거 아닌가, 붉은기사?”“하지만 얘는 기껏 해보았자 자잘한 심부름이 다가 아니겠나? 이 정도면 자네를 생각해서 많이 주는 거야. 넌 어떠니?”“너무 좋은 조건이잖아요. 잘 곳도 주고, 저 같은 어린이에게도 돈을 주니 말이죠.”“공짜로 주는 건 아니지. 기간은 얼마동안 할래?”“상인이 이곳에 올 때까지요.”“거참, 녀석 뻔뻔하네. 좋아, 그렇게 하지. 곰, 자네는?” 자베르는 끙 거리는 소리와 함게 고민을 하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루이스가 놀라 그를 쳐다보자 자베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자가 나보다 더 뛰어난 기사다. 나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될거야.”“하지만 떠난다니요? 어째서…. 단검을 찾은 후에 전 어떻게 해요?” “모험은 혼자 해야 많은 걸 배운단다. 나도 너와 함께 있는 게 낫겠지만, 차라리 너 혼자 있는 게 안전할거야.”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이 붉은기사가 널 잘 돌보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봐, 내 의견은?”“싫다는 건가?”“그럴 리가 있겠나.” “좋아, 내가 이 녀석 추천서를 쓰지.” “그냥 자베르도 함께 용병단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쉰다섯 살에 무엇을 하겠나? 늙어죽기 전에 모험이나 더 해야지.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안 될 거야.” 3개월 뒤, 브리퍼드를 방문 한 뒤 글레메일로 향하던 자베르는 글레메일 평원에서 로브를 입은 두 명을 만났다. 자베르는 검을 뽑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정말 끈질기군.”“우리를 공격한 자의 목숨을 무조건 앗아간다.” 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은 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꺼냈고, 그 옆에 있는 자는 대거를 꺼냈다. 자베르도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곧, 로브를 입은 자들은 공격을 해왔고, 자베르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았지만, 그들의 무기 때문에 자베르는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조차도 접근하지 못 했다. 자베르에게 밧줄이 날아왔고, 밧줄은 그의 검에 걸렸다. 밧줄을 사용하는 자는 검에 걸린 밧줄을 힘껏 당겼고, 자베르는 검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힘을 주었다. 그때, 대거하나가 날아와서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대거가 꼽히자 곧 그는 그의 왼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독인가….’ 순간, 그의 검은 밧줄에 끌려 날아갔고, 대거가 다시 날아와 그의 몸에 박혔다. 그는 대거가 박힌 부위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곧, 그의 다리에도 대거가 날아와 박혔고, 그는 마비 된 다리에 힘을 주지 못 해 쓰러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중심을 잡고 있었다. “너희들의 임무도 이제 끝났군.”그들은 대답대신 밧줄을 던졌고, 밧줄은 자베르의 목을 감쌌다. 자베르는 눈을 감았고, 로브를 입은 자는 밧줄을 힘껏 당겼다. 자베르의 목은 돌아갔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로브를 입은 자 중 밧줄을 사용하던 자의 팔뚝에는 두개의 낫의 문장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자의 팔에는 똑같은 문장과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 *기사작위(부를 때 : 작위 이름 성) -왕이 인정한 기사 : 세르(ser). 정식기사 한 명과, 준기사 세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정식기사 : 페르(per). 준기사 한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준기사 : 페이(pei). 임명 받거나 돈을 주고 작위를 산다. *프리미스트(Primis) 교 : 티리아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신교 종교로, 현재 티리아의 국교이다. -12신 : 데우스(신들의 왕. 하늘의 신), 마르스(전쟁과 지혜의 신), 아폴로(태양의 신), 디아나(달과 맹세의 여신), 케레스(자연의 여신), 넵투누스(바다와 물의 신), 미스트(문학과 예술의 신), 소르트(대양의 신), 미네르(승리와 행운의 여신), 플루토(죽음의 신), 불카누스(불의 신), 유피드(연애와 가정의 신) *화폐 단위(티우스->탈레온->데나리온(은화)->아우리온(금화) -100티우스=1탈레온 -100탈레온=1데나리온 -20데나리온=1아우리온 *바붓(barbute) : 르네상스 시대의 투구. 얼굴 부위가 둥근 ‘T\' 모양으로 뚫려있었따. 원래는 고대 그리스 투구이었지만, 르네상스가 숭배하던 고대 세계의 유산을 부활시킬 때 함께 등장했다. *스큐툼(scutum) : 크고 반원통형으로 구부러져 있으며, 앞에서 보았을 때는 직사각형으로 생긴 방패. 로마 레기온 부대가 사용했었다. *라이드 : 기사와 용병들 중 말을 타고 싸우는 전투원. *팰스 : 어깨부터 발목이나 발끝까지의 길이의 어깨에 착용하는 천. 기사, 용병들이 소속을 알리거나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위해 사용하는 얇은 망토이다. 보통 소속을 나타내는 문장이거나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영주나 군주의 문장이 새겨져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자신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브루도 : 기사와 용병들 중 땅에서 싸우는 전투원. *던전(dungeon) : (과거 특히 성 안에 있던) 지하 감옥   -----------------------------------------------------------------------------------------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아직 끝은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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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작성일 2013.01.2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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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장. 탄생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 화려한 의자와 왕관을 쓰고 있는 사내 앞에 엎드려있었다. 왕관을 쓰고 있는 자는 심기가 불편한 듯 턱을 괴고 엎드리고 있는 사내를 째려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느냐?”
“왕자를 죽여야 합니다, 전하.”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이인 왕자를 죽이라니. 5년 만에 생긴 아이를 죽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오늘 아내가 아이를 놓아서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보러가고 싶은 상황에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지금 당장 검을 뽑아 저 사내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제국의 왕인만큼 그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침착함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왕자를 죽이다니.”
“왕자가 전하께서 앉아계신 곳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내가 죽으면 당연히 후계자인 왕자가 이 자리에 앉게 되겠지.”
“허나 전하의 운명은 왕자에 의해 끝이 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잠깐 놀라더니 다시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왕좌 뒤 벽에 가로로 걸려있는 네 자루의 검을 보았다. 맨 위 쪽에 자리 잡은 검은 그의 검이고, 그 아래에 거린 검들은 그의 형제들의 검이었다.

하이아칸 제국은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하고, 줄곧 바이트 대륙을 통치하였는데, 몇 십년간 그 제국이 네 개로 나뉘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인 일린 판 파이네의 아버지 루크 판 파이네가 그의 네 아들에게 제국을 나누어 주었다. 제국의 북쪽을 차지한 일린은 형제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였고, 직접 그의 검으로 형제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자기 형제들을 죽이면서 이 자리를 얻어내고 지켜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빼앗긴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린은 엎드려있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사실인가? 자네 목숨을 걸 수 있겠느냐?”
“예, 전하.”
일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그의 검을 뽑았다.


한 여인이 값비싼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녀 옆에는 두 명의 하녀가 갓난아기를 각각 들고 있었다.

“축하드리옵니다. 쌍둥이 왕자입니다.”

하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하녀가 웃으며 말하였고, 누워있는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5년 만에 생긴 아이이고, 왕자인데다가 쌍둥이라니. 남편이 필시 기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하녀에게서 두 아이를 건네받고 안아보았다. 아이들은 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고, 그녀는 기뻐하는 남편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방에 들어온 것은 하인이었다. 그는 당황해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왕비마마. 저, 전하께서 왕자를 죽일 것 입니다.”

“무, 무슨 말이냐? 전하께서 왕자들을 죽인다니?”
하인은 그가 본 상황을 그녀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고, 설명을 모두 들은 그녀는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으로 가득 찼다. 희망과 축복으로 가득 찬 방에는 절망이 가득 찼다. 그녀 주변에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기사가 하인에게 물었다.

“전하께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아, 아마 모를 것입니다.”

“왕비마마, 그렇다면 한 명은 살릴 수 있습니다.”
“한 명이라니. 모두 살려야만 한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병사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한 아이는 분명히 살릴 수 있습니다.”
“왕비마마,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
방에 들어왔던 하인이 말하였고, 왕비는 갈등을 하였다. 곧, 그녀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것입니까?”
“이곳에서 도망갈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 늙었고, 도망간다 하여도 곧 잡힐 것 입니다. 하지만 젊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자라면 가능하겠지요.”

왕비 근위대장인 오렌 워터스는 근위대에 들어온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마티스 로완을 쳐다보더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 왕비마마께 충성을 맹세하였지.”
“예, 세르 오렌.”
“아이를 잘 지킬 수 있느냐?”
왕비가 마티스에게 묻자, 그는 멈칫하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겠습니다.”
왕비는 주머니와 단검을 마티스에게 건넸고, 마티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것들을 받았다. 마티스가 그것들을 받자 왕비가 그에게 말했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검은 나중에 만약 아이가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된다면 전해주십시오, 세르.”

마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하나를 건네받았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오렌은 분주히 열 명도 되지 않는 기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기사 둘은 방을 나가 문 앞을 지켰다. 오렌은 왕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침대에 있는 천을 떼어내고 그것들을 이어서 긴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줄을 창 밖으로 내던지고는 마티스에게 말했다.

“어서 내려가거라. 2층이니 금방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달려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세르.”

마티스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다른 손으로는 줄을 잡고 창문위로 올라갔다. 왕비는 그런 그와 아이를 보고 말했다.

“루이스가 좋겠습니다. 아이의 이름말입니다.”
마티스는 뒤돌아 왕비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여 절하고 창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방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티스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성 밖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고, 그것을 확인한 오렌은 손에 묶어놓은 줄을 풀고 검을 뽑으며 외쳤다.

“왕비마마를 보호하라!”
그러자 6명의 기사들이 검을 뽑고 그의 옆에 서서 방문을 바라보며 섰다. 곧, 방문이 부서졌고, 병사들이 들어와 창끝으로 맞서 싸우려는 기사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병사들 뒤로 일린이 검을 든 채 나타났고, 그는 그의 아내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이를 이리 주시오.”

하지만 왕비는 그에게 아이를 건네주지 않았다. 왕은 한숨을 쉬더니 왕비 근위대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검을 거두어라.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이 행동은 반역행위이지만, 지금 검을 거둔다면 자네들을 용서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검을 거두지 않자 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오렌이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다가오시면 공격하겠습니다, 전하.”
“너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다. 너는 내 부하란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저는 왕비마마의 근위대입니다. 저는 왕비마마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왕비가 일어나 아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전하, 이 아이는 전하의 아이입니다. 전하께서 그토록 바라던 왕자인데, 어찌 이 가엾은 아이를 죽인다는 말입니까?”
왕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그저 웃으며 허공에다가 손을 뻗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를 죽일 녀석이다.

왕이 씩 웃더니 말했다.

“죽여라.”
그러자 그의 근위대와 병사들이 방 안에 있는 하인들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던 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병사들의 창과 검에 찔리고 베여 쓰러졌다. 기사들도 그들을 공격하는 병사들을 베었으나, 수적으로 불리해 기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오렌이 병사들을 베어나갈 때, 창 하나가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고, 그는 신음을 흘렸다. 곧이어 창 하나가 더 날아와 그의 배를 뚫었고, 오렌은 몸에서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렌은 가래와 피가 섞인 침을 뱉고, 그의 왕을 올려다보았다. 왕은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충성을 맹세했었던 자에게 죽음을 당하다니,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병사들이 오렌의 몸에 꽂힌 창을 뽑았고, 오렌의 가슴과 배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오렌은 그대로 쓰러졌다. 왕은 왕비를 바라보았다.

“예니, 어서 아이를 이리 주시오.”
예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고 앉아만 있었고, 그가 예니에게 다가가다 창문이 열린 것을 보았고, 그곳에 긴 천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도망을 갔지?”
왕이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기사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왕비 근위대 한 명이 없어졌습니다.”
왕이 그가 왜 도망을 간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예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안정을 위해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 많이 보지 못 했지만, 그녀의 배는 다른 이들보다 더 컸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녀는 하나가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그가 예니에게 외쳤다.

“쌍둥이, 한 명은 어디로 갔지?”
“일린, 당신은 미쳤어.”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가 왕인 자신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으니 그는 더욱 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는 예니가 안고 있는 아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예니가 몸을 돌려 아이 대신 일린의 검을 받았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진 아이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고, 일린은 소리를 지르며 검으로 아이를 찔렀고, 더 이상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 본 일린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예니를 보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니는 피를 흘리며 서서히 불꽃이 꺼져가는 눈빛으로 일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린은 예니를 안았고, 예니의 긴 금발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니는 힘겹게 손을 뻗어 일린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니의 손은 아래로 떨어졌다. 일린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웃기 시작했고 점점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의 웃음소리는 끔찍한 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절규하는 듯 웃었고, 물줄기가 그의 양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1장. 진실


1. 의문이 생기다


한 소년과 어른이 서로 검을 맞대며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검을 겨룰 충분한 시간을 귀족이 아닌 낡은 옷을 입은 평범한 평민이었고, 언뜻 보면 부자지간인 것 같게 보였으나, 둘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금발에 푸를 눈을 가졌지만, 어른은 머리와 눈동자 색 모두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라 불리는 어른이 검으로 소년을 공격하며 소년의 행동을 지적했다.

“계속 피하기만 하지 말거라. 피하기만 하면 자꾸 뒤로 물러나가기만 한다. 검을 막으며 앞으로 나와.”
소년은 뒷걸음질을 멈추고 검을 들어올려서 위에서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계속 방어만 하던 소년이 갑자기 상대방의 배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상대방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고 그가 든 검의 옆면으로 소년의 등을 퍽하고 강하지 않게 내리쳤다.

“그렇게 공격하면, 등이 보이잖아.”
소년은 공격적인 자세를 풀고 뒤로 물러났다. 소년은 검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어른의 입술이 미소를 짓자, 소년의 입술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버지는 못 이기겠군요.”
“이렇게 보여도 과거에는 기사 출신이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빵과 우유를 건넸고,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그것들은 받은 뒤, 먼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서 우유를 마시고, 빵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소년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아래에 검을 둔 뒤, 침대 위에 두었던 책을 집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의 ‘자유의 기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어느 기사가 세상을 모험하며 자신이 겪은 일과 본 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놓은 책으로, 소년은 책을 보며 세상을 모험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고는 멋진 것 같아 흐뭇하게 웃었다.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있던 중, 방문이 열리더니 소년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친구가 찾아왔다.”

소년은 알겠다며 책을 덮은 뒤, 아래로 내려갔다. 집 밖에는 소년의 또래로 보이는 6명의 아이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키가 가장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진 아이가 소년에게 툴툴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거야, 루이스.”
“듣자마자 바로 내려 온 것이거든, 오스프리드.”
루이스가 손으로 오스프리드의 옆구리를 가볍게 툭 쳤고, 둘은 서로 마주보더니 웃긴지 씩 웃더니, 오스프리드가 어서 가자며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오스프리드의 집이었다. 오스프리드의 아버지인 오스문드 캐틀블랙은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사냥꾼인데, 오스프리드는 아버지가 어제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친구들과 석궁을 쏘아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위험하다며 단칼에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는 하루동아 계속 석궁을 사용하게 해달라며 조르고 졸랐고, 결국 오스문드가 포기를 하고 자신의 지도아래에서의 사용을 허락하였고, 오스프리드는 곧바로 친구들을 모아 소식을 전했고, 오늘 그의 집으로 간 것이다.

집에는 오스프리드와 비슷하게 키가 크고 마른 사내가 있었고, 소년들은 사내에게 반갑다며 인사하였고, 사내는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사내는 주먹으로 오스프리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13살이나 먹은 녀석이 그렇게도 졸라대는 거냐.”

“13살이면 충분히 석궁을 만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요, 아버지.”

소년이 그렇게 대답하자, 오스문드는 으이구, 라며 다시 한 번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따라 나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집 뒷마당으로 갔고, 그곳에는 꽤나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는 작은 원을 품고 있는 원이 그려져 있는 나무판이 두 개가 있었고, 오스문드는 준비해놓은 석궁에 볼트(bolt)를 끼우는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볼트와 함께 줄을 당기면 된다. 자, 봐라. 장전이 되었지? 그러고 나면 과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석궁에 장착된 볼트는 바람을 가르며 나무판의 작은 원 안에 박혔다.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은 대단하다며 소리 질렀고, 오스문드는 바닥에 구르고 있는 볼트 하나를 집어 들고 소년들을 둘러보며, 누가 먼저 쏘아보겠냐고 묻자, 아이들은 먼저 하겠다며 외쳤다.

하지만, 루이스만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항상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른답게 행동을 하라고 교육을 시켰고, 루이스도 나중에 기사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되도록이면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하고 싶다며 외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그저 속으로만 그렇게 외칠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그런 소년이 오스문드의 눈에 들어왔고, 오스문드는 그에게 석궁과 볼트를 건네며 말했다.

“네가 먼저 해보지 않을래?”

자신이 먼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었던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석궁을 받고 자리에 섰다. 루이스는 오스문드가 보여준 대로 볼트를 석궁에 끼워놓고 과녁을 겨누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는 방아쇠를 당겼고, 볼트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과녁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오스문드는 과녁에 꽂힌 볼트의 위치를 보고는 흐음, 이라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바람만 불지 않았더라면 원 안에 들어갔을 거야.”

루이스 옆에 있던 페티르 바엘리시가 석궁을 받고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큰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례대로 소년들이 석궁을 받고, 과녁안의 원을 맞추었다. 석궁을 모두 한 번씩 사용을 해 본 후, 페티르가 말했다.

“활도 한 번 쏘고 싶어요.”
“하지만 나에게 있는 건 어른이 사용하는 것뿐인데. 사용하기 어려울 건데.”
오스문드가 페티르를 보며 말했다. 페티르는 10살이지만, 몸이 왜소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7살이나 8살의 꼬마로 보일 것 이다.

페티르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아이에 약한 오스문드는 페티르를 보고 당황하였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집에서 나온 오스문드의 손에는 새총이 여러 개 있었고, 아이들은 좋아하며 그에게서 새총을 받아가 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오스문드는 아직 새총을 받지 않은 루이스에게 직접 새총을 건넸지만, 루이스는 그저 멍하니 새총만 바로보기만 하고, 새총을 받지 않았다. 오스문드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어서 가서 놀아.”
“기사들도 활을 잘 쏘아야 할까요?

루이스가 오스문드를 올려다보았다. 루이스는 아이들 중 사용하기 쉬운 석궁으로 과녁안의 원을 맞추지 못 한 유일한 아이였다. 오스문드는 그 제서야 루이스가 왜 그렇게 힘없이 있는지 알고는 허허 웃으며 루이스의 머리를 흩으려놓았다.

“기사야 검을 잘 쓰면 되는 거지. 활이나 석궁도 잘 쓰면 좋겠지만, 기사들은 검을 사용하면서 싸우는 자들이잖아? 흠, 팩스터가 검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지 확인 해볼까?”

오스문드는 턱을 어루만지며 씩 웃고는 집으로 들어가 목검 두 개를 가져오며, 그 중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실력을 한 번 봐야지.”
“저는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사용하는데요.”
“하아, 팩스터가 미쳤나보군. 진검을 사용하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원.”

오스문드는 그냥 목검으로 하자고 말한 뒤, 목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었고, 루이스도 목검을 두 손으로 저었다. 바스타드(bastard) 검을 모델로 한 목검이지만, 어린이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거운 무기였다.

오스문드는 루이스에게 먼저 공격하라는 손짓을 하였고, 루이스는 오스문드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목검을 내리쳤지만, 목검은 키가 큰 오스문드의 가슴 부분 높이까지밖에 공격 할 수밖에 없었고, 오스문드는 간단하게 루이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루이스가 위아래를 공격해오는 것을 막아냈다. 루이스는 다시 한 번 목검을 내리쳤고, 오스문드는 이번에는 막지 않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루이스는 곧바로 한 발자국 다가가며 내리친 검을 들어올리며 오스문드의 사타구니를 공격하려고 했다. 당황한 오스문드가 다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루이스의 목검 끝이 그의 몸통을 살짝 스치며 올라갔따. 그는 약간 놀랐지만, 곧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루이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계속 방어만 하던 오스문드의 갑작스런 공격에 루이스는 당황했지만, 그는 목검을 들어올려 공격을 받아냈다. 둘은 서로 엉키며 공격을 주고받기를 수십 번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문드가 루이스의 머리를 공격했고, 루이스가 목검을 들어올려 그의 공격을 막았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검을 미끄러지게 하여서 뺀 뒤, 곧바로 루이스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루이스는 몸을 틀어 목검을 피했고, 아침에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것을 따라했다.

오스문드는 목검이 자신의 등을 공격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검으로 루이스의 얼굴을 찔렀고, 그가 상대방이 소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급하게 손목을 비틀어 루이스를 때리지 않게 하였다. 목검은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루이스의 뺨을 엄청난 속도로 스치고 지나갔다. 목검이라도 날이 조금 날카로운 탓에 루이스의 뺨에 붉은 선이 생겼다. 갑작스런 이 일에 놀란 루이스는 멍하니 목검을 쥔 채 서 있었고, 오스문드는 당황해하며 소년의 뺨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안 놀랐니? 정말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그만…. 아프지 않니?”
루이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오스문드는 손수건을 꺼내 소년의 뺨에 살짝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주었다. 그는 소년의 뺨을 닦은 뒤 물러나며 말했다.

“나쁘지 않은 실력이야. 팩스터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오스문드는 미소를 지었다.

“계속 열심히만 한 다면 기사가 될 수 있겠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랑 친하시죠?”
“그야 당연하지.”
뜬금없는 소년의 질문에도 그는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고,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에겐 그저 기사였다는 말 밖에 하시자 않으셨거든요.”

“흐음, 네 아버지는 훌륭한 기사였지. 나와 같은 하이아칸의 병사였어. 나는 궁수였고, 그는 기사였지. 실력이 뛰어나다 못 해 그는 왕비의…… 아니지, 아니야. 어쨌든 대부분의 검술 대회에서도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였어. 나는 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불편해 리오스로 옮겨 살았는데, 내가 여기 온 지 4년 정도 후에 그 녀석이 널 데리고 이곳으로 왔지. 나머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기사였어.”

그는 잠시 뜸을 드리고 중얼거렸다.
“가끔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잃을 수 있지.”

오스문드는 루이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루이스가 그를 쳐다 볼 때에는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식탁에 앉아 저녁식사로 밀 죽을 먹고 있었다. 평소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겠지만, 오늘따라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아버지도 딱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던 중 먼저 말을 꺼댄 것은 아들이었다.

“하이아칸의 기사 이었다면서요? 뛰어난 실력이었다던데, 왜 리오스로 왔어요?”

팩스터의 입으로 가던 숟가락이 멈추었다가 다시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이스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기사로써 한 약속을 어겼었나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팩스터가 중얼거렸고,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아 뭐라고 말하였는지 묻자, 팩스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 오스문드가 살고 있었잖아.”

루이스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내 생각을 접고 식사를 계속 이어갔다. 식사를 끝마친 루이스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방은 촛불 하나 없어 매우 깜깜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아버지는 아들의 물음에 항상 대답을 해주었으나, 자신이나 자신의 아내에 대한 질문이면 항상 대답을 얼버무렸다. 오늘 낮에도 처음으로 아버지가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하이아칸 제국의 기사였냐는 질문을 피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루이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팩스터는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는 집을 나와 오스문드의 집으로 향했다. 오스문드의 집에 도착한 그는 문들 두드렸고, 집에서 오스문드가 나왔고, 팩스터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 마티스?”

“얘기 좀 합시다, 형님.”
그들은 뒷마당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마티스라고 불리는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었냐고 묻자, 오스문드는 그에게 낮에 있었던 밀과 루이스에게 한 말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팩스터가 오스문드에게 화를 냈다.

“그 녀석에게 과거를 말해주지 마십시오. 그저 그 아이는 평범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아이가 기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가? 그래서 네가 그 얘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 아니냐.”

“검술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아이가 기사가 된 다는 것에 반대를 합니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죠. 저도 기사라는 작위 때문에 인생을 버렸습니다.”
“조용히 해. 오스프리드가 깨겠어. 그리고 내가 그 아이에게 사실을 말했나? 그리고 네가 나한테 화를 낼 처지인가? 자네의 기사 작위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 너뿐만이 아니야.”
오스문드의 얼굴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도리어 그가 팩스터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네가 하이아칸 제국의 왕자라는 녀석을 빼돌리는 바람에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몰살당했어. 네 부모님과 내 부모님, 그리고 친척, 형제들까지 말이야. 게다가 그날 부모님을 보러 간 내 아내까지! 그래도 나는 널 용서하고 아무 말 없이 너를 받아주지 않았나? 그런데 네가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도망치기 바빠 바이트 대륙에 있는 가족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못 하고 무작정 리치 대륙으로 넘어왔고, 소식을 알 방법이 없어서 모른 채 살아왔으나, 그래도 모두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 하고 있던 팩스터가 말을 듣고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몰살… 이요?”
“허, 그것도 몰랐나? 네가 도망치면 끝인 줄 알았나? 왕의 명을 어기고 왕자를 데리고 도망간 너를 가만히 둘 줄 알았나? 가문이 몰살당하는 건 기본이야.”
“형님은 어떻게 그 소식을….”

“아내가 좀처럼 오지 않아서 사람 하나를 보내보았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더군.”
“형수님은 분명히 침몰한 배에 탔다가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셨는데.”
“참나, 그러면 너한테 너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면 퍽이나 잘 살겠네. 너라도 살아남게 하려고 말을 안 했다. 몰살당한 가족 이야기하면 네가 극단의 방법을 할까봐 걱정이 되서 말이지.”

“죄송합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됐다. 어차피 난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아.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내가 오스프리드를 데려가지 않았던 거지. 시작했던 일은 끝을 내라. 왕자, 아니 네 아들을 제대로 키워라.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게라도.”
그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오스문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팩스터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다. 팩스터가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단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누군가가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잠이 깨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려고하다가 아버지와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말 하나하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제국의 왕자라는 친구 때문에, 자신은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지 못 하게 되었다. 그는 저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그는 혼란스러웠고, 방으로 돌아가도 잠에 들지 못 했다.


루이스가 잠에서 깼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팩스터는 아침 일찍 대장간으로 가는 일이 있어서 루이스는 오늘도 그러려나 싶어 혼자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웠다. 식사를 마친 그는 할 일없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 읽던 책을 다 읽었고, 그 책을 탁자 위에 둔 뒤, 또 다른 책을 집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로 내려갔다. 집을 찾아온 것은 오스프리드였다. 그는 안전부절 못하고 있었고, 루이스가 그를 부르자 그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왜 그래?”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날씨가 참 좋지?”
“어디 아프냐. 왜 그러는 거니. 일단 들어와.”
오스프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왔고, 둘은 루이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루이스는 간식거리를 들고 와 그에게 건넸고, 그는 고맙다며 과자를 먹었다. 둘 사이에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러 지나갔다.

“만약 친구 때문에 자기 엄마가 죽었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오스프리드의 그런 질문에 루이스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지만,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한 뒤 대답하였다.

“나라면 아마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그 때문에 어머니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게 되었다면 더더욱. 하지만 직접적이 아니 였다면 용서를 할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만약 네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그렇다면 곧바로 성으로 가야지. 그런 뒤 아버지랑 친구들을 불러서 성에서 같이 살 거야.”
“그런데 왕자라면 지금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아니잖아. 왕이 아버지가 되는 거지.”

“그런가? 에이, 상관없잖아. 그럴 일도 없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그런데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져서.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벌써? 더 있다가 가.”

오스프리드는 그저 미소를 지었고, 방을 빠져나와 집을 나갔다. 그는 이로써 한 가지를 더 알았다. 루이스는 그가 왕자라는 것, 그의 아버지, 팩스터가 진짜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가 일부러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그가 도망친 이유는 필시 죽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왜 왕자를 죽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집히면 그는 아마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가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날 들은 대화가 그저 꿈일까?

그리고 그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나?”

루이스는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오스프리드가 집에 오는 일은 흔하였는데, 그가 집을 찾아올 때에는 항상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안전부절 못한 채로 오더니 이상한 질문을 하고 곧바로 나갔다.

루이스는 왜 그러는지 생각을 해보았으나, 도저히 그 이유를 알지 못 해 생각을 접고는 침대 아래에 둔 검을 꺼냈고, 검을 칼집에서 뽑아보았다. 이가 몇 군데 나가있었다. 그는 검이나 갈고 손봐야겠다 싶어 칼집에 도로 끼워놓고 검을 허리에 찬 뒤, 아버지의 대장간으로 갔다.

그가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단검 하나를 보고 있었다. 날이 한 쪽에만 있고, 칼자루는 금색을 띄고 매우 화려했다. 칼집 또한 가죽이나 나무가 아닌 금속재질이었고, 칼자루와 같은 금색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서는 마치 귀족이 가지고 있을 듯한 단검을 가지고 있을 자가 없을 것 이다.

“우와, 멋진 검이네요.”
루이스가 말을 걸자, 팩스터는 급히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많이 비싼 검 같은데, 누구 것인가요?”
“잠시 묵어가던 사람이 손 좀 봐달라고 하더구나.”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적지만은 않았다. 대장간도 이 마을에선 이곳분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고 팩스터가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니?”
“칼날이 무뎌져서요.”
“이리 줘 봐.”
루이스는 검을 뽑아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상이 없는지 검을 자세히 훑어보았고, 그는 다시 아들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딱히 이상은 없구나.”
루이스는 숫돌을 꺼내 검을 갈기  작했고, 팩스터도 단검을 내려두고 다른 검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팩스터가 무언가를 기억해내고는 짧은 검을 들고 나가면서 루이스에게 말했다.

“오스문드 집에 갔다가 올 것이니 잠시 대장간 좀 보고 있어라.”

루이스는 알았다고 대답하였고, 계속 자신의 검을 가는데 집중을 하였다. 그는 하던 일을 끝마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할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몇몇 검과 갑옷, 방패가 전시되어 있듯 걸려있었다. 며칠 전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은 없었다.

루이스는 대장간을 둘러보다가 책상에 올려진 금색의 단검을 보고, 뭔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가 단검을 집었다. 왜인지 모르게 친숙하고, 마음 한 쪽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스는 그 단검을 뽑아보았다. 검의 날 옆면에는 ‘나의 사랑’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검일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사냥꾼 복장을 한 오스문드가 서 있었다. 분명 아버지는 그의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저씨 집에 가겼는데요.”
“허, 거참. 기다려도 검을 안 가져와서 직접 가지러 왔는데, 길이 엇갈려버렸네.”
“사냥을 나가시나 봐요?”
“그래. 이번에는 꽤나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니 아마도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지. 어쨌든 나는 너희 아버지나 찾아야겠구나.”

그는 대장간을 나가며 한마디를 더했다.

“멋진 단검이구나. 잘 챙겨라.”
루이스는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쳐다보고 그 단검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으나, 오스문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팩스터가 돌아왔고, 루이스가 그가 빈손인 것을 보고 말했다.

“오스문드 아저씨를 만났나보군요.”

“그래. 되돌아오는 길에 만났어. 검은 다 갈았니?”
“예. 전 이제 그만 가볼게요.”
“그래. 조심히 가거라.”
루이스는 대장간을 나왔고, 집으로 향하던 발검을 돌려 시장가로 갔다. 어차피 집에 가면 할 일도 없으니, 산책도 할 겸, 시장가로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여행물품을 사려고 나온 여행객들이었다. 루이스가 걸어 지나가면 평소 안면이 있던 상인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며, 가끔씩 먹을 것을 그에게 주기도 하였다. 마침 그는 친구 아버지가 준 사과를 먹으며 걷고 있었다.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가?”

한 사내가 말을 했다. 루이스는 처음에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으나, 앞에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 것을 알았다. 사내는 5월인데도 긴 소매가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두건을 깊이 내려쓰고 있어서 루이스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 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보다 덩치가 더 크고 어마어마한 근육을 가진 팔이 모두 드러나게 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었고, 그도 두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내와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팔뚝에는 ‘X’자로 겹쳐진 낫 모양이 새겨져있었고, 그 밑에는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있었다.

루이스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말을 건넨 사내를 보고만 있자, 그는 다시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루이스.”

이 자는 처음 보는 자이고, 이름을 밝힌 적도 ㅇ벗었는데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이름을 알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그가 마치 루이스의 마음을 읽은 듯 루이스가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루이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사람이지.”

“어서 가지, 32.”
덩치 큰 사내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였고, 32라고 불린 사내는 손을 올려 루이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때, 그의 손목에서 덩치 큰 사내와 같은 문신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너 같은 어린애들을 보면 항상 조용히 살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하지만, 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시 나와 만나겠군. 친구로 만나면 좋겠지만, 친구일지 적일지는 잘 모르겠구나.”

‘32’라고 불린 사내는 루이스가 이해를 하기 어려운 소리를 하였고, 그들은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페티르의 아버지 로마바크가 그에게 다가왔다.

“누구니?”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낫이 새겨진 문신밖에 못 봤거든요. 그런 자들은 우리 마을에 없잖아요?”

문신 얘기를 들은 로마바크의 눈이 커졌다.

“낫 문신? 자세히 말해보거라.”

로마바크가 놀란 이유를 모르는 루이스는 그저 그가 본 문신의 모양을 그에게 설명해주었고, 루이스의 설명을 들은 그는 더 놀라며 루이스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는 아무 상처도 없는 것을 보고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 그에게 말했다.

“‘두개의 낫’이다. 저번에 내 여관에 묵어가던 용병들에게 들어본 적이 있지.”

“예? ‘두개의 낫’이요?”

“가장 악명이 높은 암살조직이다. 암살범 중에 최고들만 모인 조직이지. 그들을 만나는 사람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 해지지. 그런데 왜 그들이 너랑 대화를 나누었을까?”

로마바크는 다시 한번 루이스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루이스는 어느새 사라진 그들이 지나간 거리를 보았다. 그가 무심코 돌아가려는데, 길 위에 무언가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고, 그는 그것을 주었다.

정체모를 사내들 팔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이 있는 납작한 장식품이었다. 그저 둥근 원 안에 낫 두개가 겹쳐져 있는 모양일 뿐, 목에 걸거나 하는 줄은 없었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루이스는 오랜만에 책을 읽고 있는 팩스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개의 낫’에 대해 묻자, 팩스터는 흠칫 놀라더니 책을 덮고 루이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위험한 단체지. 최고의 암살 조직이야. 그들은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그 임무를 멈추지 않기에 그들의 목표가 된 자는 살아남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다 찾아내거든. 그들은 오직 암살을 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하긴, 그 조직에 들어가면 죽어야만 그 조직에서 빠져 나 올수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건과 해골가면을 써서 절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 조직에 있는 자 말고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가 없어.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지휘하는 두목인 ‘타나토스’에게는 엄청난 충성을 맹세하고, 돈을 주는 자를 절대 배신하지 않아. 하이아칸 제국의 현왕 일린 왕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현재 그들은 일린 왕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보나마나 일린 왕이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었겠지. 그런데 어떻게 네가 ‘두개의 낫’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어쩌다보니 알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참 무서운 조직이네요.”
루이스는 혹시 아버지가 걱정을 할까봐 아침에 만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얘기를 들어보니 매우 위험한 조직이고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 왜 대화를 걸었을까. 멀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여러 생각에 잠긴 루이스에게 팩스터가 말을 걸었고, 루이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나저나 너도 이제 슬슬 대장간을 물려 받기위해 일하는 법을 배울 때가 되지 않았니?”
“대장간을 물려받다니요? 전 기사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아버지도 기사였고, 허락해주신 것이 아닌가요?”
“루이스, 전쟁하나 없는 이 평화로운 시대에 기사가 되어보았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기사였던 당시에야 하이아칸 제국이 분열상태여서 전쟁터에 나가는 등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너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너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검술 연습도 한 거라고요.”

“왜 기사가 되고 싶은 거냐?”
“명예롭잖아요. 용감하고 멋있고.”
“하아, 그래. 네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기사라는 것이 꼭 명예로운 위치가 아니지. 기사가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기사라는 위치 때문에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어. 그들이 죽을 때 전혀 명예롭지 않았어. 차라리 비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지. 나도 그 위치 때문에 기사를 그만둔 것이야.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냥 이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자. 기사가 되는 것도 쉽지가 않아. 그리고 네가 없어지면 혼자 살아야 하는 나는 어쩌란 거니.”

루이스는 울상이 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기가 마음이 아픈지 팩스터는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일부터 하자구나.”
루이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올라갔고, 팩스터는 술을 꺼내 쉬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아버지가 미웠다. 자신은 기사가 되었으면서 아들이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그런 꿈을 완강히 반대했다. 도저히 그런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기사가 된다는 것을 반대를 하는 것인가. 왜 기사가 좋지 않다고만 말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알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가 기사를 그만두고 기사를 경멸하게 된 것일까?

루이스는 자신의 검을 꺼내 뽑았고, 칼날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이 차가운 검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사는 이런 검을 들고 적을 죽이는 일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루이스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버지도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였고, 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득 루이스는 아버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그저 기사였다는 것, 하이아칸인이었다는 것, 지금은 대장장이라는 것 말고는 아버지인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과거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그에게 그의 과거를 물으면 그는 항상 질문을 회피할 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루이스는 검을 제자리에 두고 촛불위에서 살랑거리는 불꽃을 입김을 불어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난 그래도 기사가 되고 싶은데….”

루이스는 슬프게 중얼거렸다.


루이스는 며칠간 놀지도 않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일을 배워나갔다. 여름의 더운 날씨와 화덕의 열기로 루이스는 집중력이 흩으려지는 것을 어렵사리 참아내고 있었다. 팩스터는 루이스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고 엄격하게 일을 가르쳤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게 하였다.

평소 운동신경이 좋고, 아버지와 검술실력을 키우며 늘어난 체력으로 그는 의외로 일을 잘 해나갔고, 팩스터도 그런 그를 만족스럽게 보았다. 그는 문득 루이스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체력을 길렀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날 일이 일찍 끝난 루이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리지은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루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루이스, 요새 뭐하고 지내고 있기에 안 보이는 거야?”
마리사 반스가 다가왔다. 루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서 일을 배우고 있거든.”
“벌써? 너무 이르지 않나? 어쨌든. 나중에 사냥하러 안 갈래?”
언뜻 보면 조용하고 얌전하게 생긴 소녀지만, 치마를 입은 적을 주변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소년다운 소녀였다.

“사냥이라고?”
“응. 토끼 같은 걸 잡는 거지. 오스프리드가 석궁도 들고 온데. 재미있지 않겠어?”

루이스가 망설이자, 소녀는 옆에 있던 알렉산더 스테드몬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생각은 어때?”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겠지. 어차피 조금만한 동물을 잡을 거니깐 위험하지도 않을 거야. 싫다면 안가도 돼.”

“갈래요.”

“좋아. 대신 어른들께 말하면 안 돼. 걱정할거니깐. 그러면 이틀 후에 데리러 갈게.”
“그럼 이틀 후에 봐요.”

그들이 헤어진 직후 루이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 옆을 보았고, 그곳에 말을 탄 기사 두 명이 밧줄에 묶인 자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누군가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없던 루이스는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면이 드러나는 투구를 쓴 기사들은 루이스 앞에서 멈추었고, 한 명이 루이스에게 여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낮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루이스는 그들에게 상세히 위치를 알려주고, 루이스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알거 없다.”

“아이가 궁금해 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옆에 있던 젊은 기사가 어느새 투구를 벗고는 루이스를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런 그를 중년기사가 ‘쓸 때 없는 소리를…’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현상금사냥꾼이라고 알고 있니? 악당을 잡고 사례금을 받는 자들이지. 그 중 유명한 사냥꾼이 잡은 악당을 보다시피 끌고 가고 있어.”

루이스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기사를 쳐다보자 기사는 웃으며 나쁜 일을 하지 말라며 당부한 뒤 여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2. 알게된 비밀


아이 여섯 명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물을 들고 있는 페티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불평을 하였다.

“몇 시간째 돌아다녀도 사냥감 하나 안 보이잖아.”

“사냥이 쉬운 줄 알았니?”
앞장서서 가던 마리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페티르는 그저 툴툴거리며 걸었다. 심심한 오스프리드는 들고 있는 석구에 계속 볼트를 끼웠다가 뺐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들은 계속 주위를 보며 사냥할 동물을 찾아보았지만 식물을 제외한 살아있는 생물을 보지도 못 했다.

아침부터 계속 걷던 그들은 점심때가 되어 잠시 멈추어 쉬자고 하였고, 그들은 주변 바위에 앉거나 나무에 기대어 다리를 풀어주었고,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이 빵을 먹으며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스프리드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토끼다.”
그는 급하게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모두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알렉산더도 화살을 활에 끼웠다.

먼저, 오스프리드가 토끼를 향해 석궁을 쏘았지만 빗겨나갔고, 토끼도 낌새를 눈치 챘는지 도망을 가려고하는 순간, 알렉산더가 쏜 화살이 날아가더니 토끼의 뒷다리에 그대로 꽂혔다. 하지만, 토끼는 절뚝거리며 힘겹게 달아나려고 했고, 오스프리드는 다시 한 번 석궁을 쏘았지만 이번에도 빗겨나갔다. 아이들도 토끼를 잡으러 달려갔다. 부상을 입은 토끼는 속도가 매우 느렸고, 얼마 못 가 아이들에게 따라잡혔다.

“그물을 던져!”

알렉산더가 외치자 페티르가 그물을 던졌고, 그물을 그대로 토끼를 덮치게 되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그물을 들어올리자마자 토끼의 귀를 잡고 들어올렸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루이스는 땅에 박힌 볼트를 뽑고 돌아가려는데, 그의 발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친구들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알렉산더가 그의 발목을 묶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지만, 밧줄에 손이 닿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서 있었다. 그때, 거꾸로 축 늘어져있던 루이스가 말했다.

“사람이다.”
루이스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볼트가 꽂힌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사내가 앉아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마리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을 더듬었다.

“머, 머리에…. 죽었나…?”
그때, 그 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그의 투구에는 오스프리드의 볼트가 꽂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머리에 볼트가 꽂혀있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아이들이 놀라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로 걸어왔고, 그 모습을 본 한 아이는 덜덜 떨더니 결국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갔고, 몇 명도 그 뒤를 따라 도망을 갔다.

알렉산더는 다급해하며 루이스를 잡고 있는 줄을 자르려고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걸어오는 사내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그리고 시체가 걸어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모두 전설속의 옛이야기거나 동화 속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건 무엇인가?

그는 줄을 끊는 것을 포기하고 활에 화살을 끼우고 사내를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은 그대로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사내는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더니 화살을 두 동강을 냈다.

“먼저 가. 어서 도망가.”
알렉산더가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말했고, 아이들은 그의 말대로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혼자 남아있는 마리사가 주춤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루, 루이스가 아직….”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깐 먼저 가.”

마리사가 잠시 주춤하더니 마을 쪽을 향해 달려갔다.

“형도 어서 가요.”

겁에 질린 채 매달려있는 루이스가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입술꼬리만 올라갈 뿐, 얼굴은 그대로 굳어있었다.

“어떻게 그러냐.”

알렉산더도 루이스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을 뿐, 그도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에 겁을 먹었다. 루이스는 그런 그를 보며 무서움을 참고 간신히 웃어보았다.

“설마 잡아먹겠어요?”
“맛이 없어서 아마도 안 먹을 거야.”
책임감이 강한 알렉산더는 루이스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짤막한 검을 뽑고는 걸어오는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알렉산더는 사내를 ㅎ야해 검을 내리쳤지만, 사내는 몸을 틀어 검을 피한 뒤, 손으로 알렉산더의 목 뒷부분을 내리치자 알렉산더는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사내는 다시 루이스에게로 다가왔고, 루이스는 자신의 허리에 있는 검을 뽑아 사내를 향해 마구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마! 오면 죽일 거야!”
사내는 검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춰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루이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검을 뽑았고, 루이스에게로 한발자국 더 다가가자 루이스는 더 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내는 왼손을 들더니 손바닥으로 검을 받았다. 검은 손바닥에 박혔고, 사내는 손을 오므려 검을 쥐고는 루이스의 손에서 빼앗았다.

거꾸로 묶인 채 유일한 무기인 검까지 괴물에게 빼앗긴 루이스는 울상을 짓더니 결국 몸을 흔들어대며 울기 시작했다.

“난 죽기 싫다고! 오지 마!”
사내는 검을 높이 들어서 가로로 검을 그었다. 루이스의 몸은 아래로 떨어졌고, 머리부터 떨어진 루이스는 알렉산더처럼 정신을 잃었다. 사내는 보통 어른들보다 키도 그렇고 덩치도 매우 컸다. 마치 곰을 닮은 것 같아보였다. 사내는 손에 박힌 검을 힘주어 뽑았고, 투구에 박힌 볼트를 뽑으며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볼트를 잘 못 끼워서 다행이지 제대로만 끼웠으면 난 죽었다. 그리고 아니, 거참. 살려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활을 쏘지 않나, 도망을 가지 않나, 검을 휘두르지 않나, 괜히 의수만 버렸잖아.”

그는 장갑을 끼고 있던 왼손을 잡고 뽑았다. 그리고 그의 가방에서 금속재질의 의수를 꺼내 왼팔에 붙였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는 흐뭇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마법은 좋다니깐.”

“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지.”

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아이들이 도망간 곳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숲을 빠져나왔고, 마을에 다다랐을 때, 한 무리가 급하게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농기구나 몽둥이 등 무기를 하나씩 들고 그 주위를 둘러쌌다. 어른들 뒤에는 아이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무기를 든 그들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뭐지 이 상황은. 내가 악당 역인가.”

그는 알렉산더와 루이스를 바닥에 내려두며 중얼거렸다.

“골치 아프겠군.”


6명의 남성이 원형탁자에 앉아있었다. 그 중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덩치에 비해 매우 작은 나무잔에 든 포도주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술이군.”

다른 이들은 그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나무잔을 탁자에 두고 자신의 작은 배낭에서 기사 증명서를 꺼내 탁자에 올려두며 말했다.

“숲 속에서의 이야기 때문에 제 소개가 늦었구려. 전 페르(per) 자베르 몽메르시 라고 하오.”

“느끼한 말투를 보니 부르봉 왕국 사람이군요.”

그들이 있는 이 여관의 주인인 로마바크가 말하자 자베르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바크 옆에 앉은 팩스터는 그의 상처투성이인 얼굴과 마치 진짜 손처럼 살아 움직이는 가짜 손이 붙은 왼팔을 번갈아보며 그에게 말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상처가 많군요. 부르봉 왕국의 기사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보다시피 전 떠돌이기사라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먹고 살기위해 사냥을 하다보니 상처가 생기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동물들도 날 있는 무기를 들고 싸우나 보죠.”

“제가 사냥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들인데 말이오. 이 손은 타나토스의 개와 싸우다 잃었소.”
자베르가 왼손을 들어올려 보였다. 타나토스의 개라고 말하였을 때, 3명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딱 하나 잡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 녀석들이 나를 사냥을 하려고 들더구려. 이제는 아예 상황이 뒤바뀌었소. 하하하.”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로마바크가 잠시 무언가를 기억하더니 그가 생각해내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일찍 이곳에 왔었다면 잡혔겠군요.”

“‘사신의 낫’이 우리 마을에 왔었단 말이오?”
로버트 반스가 놀라 묻자, 로마바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팩스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며칠 전에 그들이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팩스터가 잠깐 놀란 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런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내가 지금 55살인가. 그래, 딱 30년 되었소. 부르봉 왕국을 떠나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지 말이오. 아스팍 대륙과 바이트 대륙을 모두 돌아보았으니, 이제는 이곳을 여행해볼까 하여 2년 전에 그란그라드로 들어와 여기 리오스로 여행을 떠나 온 것뿐이오. 그러다가 숲에서 이곳 아이들이 절 공격했고, 전 기절한 아이들을 데려온 것뿐이지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때려눕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기사라며 기사도 정신이란 것도 없습니까?”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레오 스테드몬이 자베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였다. 그가 자베르의 신경을 건드릴만한 말을 하였으나, 자베르는 그저 나무잔을 비우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소. 그 아이들이 먼저 저를 공격하였다고 말이오. 전 충분히 그들을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 참았소. 그 덕에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이지요.”

“아니, 이 사람이 그게 할 소리요!”
레오가 탁자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자베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노인이 레오에게 손짓 하였다.

“진정하게나. 이 자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촌장님, 하지만….”

“됐네, 그만하게나. 난 모로스 슬린트라 하오. 이 마을의 촌장이지. 반갑네.”

자베르도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반갑다고 하였다. 모로스는 허허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이 자가 나빠 보이지는 않잖소? 우리가 언제 나쁘지 않은 자를 내쫓은 적이 있었소? 이 자도 악의가 있어서 한 일은 아닌 것 같으니 서로 화낼 일은 없다고 생각하네. 이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네. 페르 자베르께서도 우리 마을에 있는 동안 편히 지내십시오.”

자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로스으이 호의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답하며 이번에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나와 어딘가로 갔다.

정신이 든 루이스는 두통이 느껴져 머리를 감쌌다. 왜 자신이 방에 누워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하였다.

친구들과 마을 옆 숲 속으로 사냥을 하러 갔었고, 그러던 중 토끼 한 마리를 잡고, 볼트를 수거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눈에 보였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 시체가 걸어 다녔다. 분명히 그 괴물이 검으로 날 베었었다.

루이스가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웠다. 허리 아래로 사라진 부분은 없었다. 한 가지는 안심되었다.

그런데 그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루이스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왔고, 그가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현기증으로 휘청거렸지만, 심하지 않아 그는 다시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 앞에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일반 성인보다 더 큰 키와 체구, 곰 같은 외형, 무표정한 얼굴. 분명히 숲 속에서 본 그 괴물이었다.

루이스가 놀라 뒷걸음을 치려고 하자, 사내는 웃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사내를 향해 휘두른 자신의 검이었다.

“너의 것이 아니냐?”

루이스는 검을 받을까말까 망설였지만, 사내가 받으라는 손짓을 하자 루이스는 검을 받고 꾸벅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난 부르봉 왕국의 기사 가문인 퐁메르시 가(家)의 자베르다. 가문의 문장은 생긴 것과 같이 곰이지.”

“루이스에요. 루이스 레드윈.”
“많이 놀랐느냐?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계속 공격을 하는 바람에 나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놀랐다면 사과하마.”

숲 속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괴물로 알고 있던 자베르의 갑작스런 친절로 루이스는 당황스러웠다.

“저기…, 사람이세요?”
루이스의 그런 질문에 자베르는 웃긴 지 한 번 크게 웃고는 답했다.

“당연히 사람이니 지금 너와 마주보며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지만 숲 속이였을 때, 석궁에 맞고, 검에 베여도 멀쩡하던데.”
자베르는 그에게 그 오해를 해명하였다. 그리고 의수를 설명할 때에는 직접 팔에서 의수를 뽑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자베르가 열심히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자, 루이스도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지 경계를 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루이스는 조금 전 자신이 밖에 나가려는 것도 잊고는 자베르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루이스는 그에게 간단히 대접할 간식거리를 준비하러 식당으로 갔고, 자베르는 보잘것없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무구를 보았다.

중앙에 갑옷이 있고, 왼쪽에는 방패, 오른쪽에는 검, 그리고 위에는 투구가 걸려있었다. 갑옷과 방패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X자로 교차된 검 중앙에 둥근 성탑이 새겨져 있었다. 자베르가 유심히 보던 중 갑옷 안쪽에 초록빛 천이 약간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그가 천을 잡아 아래로 잡아당기자 얇은 천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넓게 펼쳐보았다. 초록색 배경에 갑옷과 방패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양이 흰색으로 새겨져있는 망토였다.

그는 루이스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너희 아버지 것이냐?”
“예. 아버지가 과거에 기사이셨거든요.”
“훌륭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여기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다니.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냐?”
“예?”

루이스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자베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라는 것을 알아차린 자베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킥킥. 이것 참 놀랍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위대한 기사 가문의 후계자라. 넌 이 문장이 무슨 가문의 것인지 모른단 말이냐?”
자베르가 루이스를 쳐다보았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고, 그가 자베르와 그가 들고 있는 망토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자베르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반갑소, 세르.”

루이스는 잠깐 세르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기사 중 상급기사, 왕의 근위대나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인정한 기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 호칭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자베르와 당황한 아버지를 루이스는 멍 한채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팩스터는 자베르를 노려보며 물었다.

“루이스에게 무엇을 말했습니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더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사냥?”
팩스터가 손을 슬쩍 뒤로 두는 것을 본 자베르는 들고있는 것을 접고 갑옷 위에 걸쳐두며 말했다.

“허튼 짓 말게나. 어차피 나도 이 문장을 보고 알았으니 말이오. 우리 퐁메르시 가문은 부르봉 왕국에서 꽤나 유명한 기사 가문이오. 뭐, 로완 가문에 비한다면 보잘것 없는 가문이겠지만 말이오. 어쨌든 나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잡다한 지식을 모으고 다녔소. 그리고 당연히 유명한 로완 가문을 아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소? 자네, 아니지. 세르는 시골에 이 문장을 알아볼 자는 없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걸어둔 거겠지만 말이오. 하지만, 로완 가문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명하다오.”
“루이스, 넌 집에 있어라. 페르께서는 제 대장간으로 가시지요.”
그리고 그 둘은 팩스터의 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들의 대화는 대장간의 지하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베르였다.

“멸망한 가문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세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하이아칸의 왕이 죽이려고 했던 왕자가 사라지고, 그 배후로 로완 가문이 찍힌 것. 그리고 가문 중 하인이라도 살아남지 못 한 꼴이 된 것, 그 왕이 왕자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까지. 최근엔 그 열기가 식었지만 말이오. 세르의 이름을 알고 싶소. 본명을 말이오.”

팩스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과거 소토리오스 제국의 황제의 근위기사였으며, 소토리오스 제국이 멸망한 뒤, 하이아칸 제국의 왕의 근위기사를 맡아 온 로완 가문의 마티스 로완입니다.”
“이제는 로완 가문의 가주이겠구려.”

“아닙니다. 확실하게 더 있거든요.”
“더 있다니? 그게 누구요?”
“그건 비밀이죠.”

아직까지 팩스터는 자베르를 경계하고 있었고, 자베르는 그저 허허하며 웃었다. 그가 팩스터에게 술을 좀 달라고 말하자, 팩스터는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들고 왔다. 자베르가 한 모금을 마셔보고는 불만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렸다.

“물이잖소?”
팩스터는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는 그저 입맛을 다시고는 한 모금을 더 마시고는 잔을 내려두었다.

“페르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명한 기사 가문의 기사께서 떠돌이 생활을 하니 말입니다.”
자베르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잠시 생각을 하였고, 팩스터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자베르가 입을 열었다.

“기사, 용병, 사냥꾼이라고 할까. 이것 모두 맞소. 처음에는 왕국 기사단에 소속이였고, 그 후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용병으로 지내고, 프리미스트(Primist) 기사단에서 성기사로 지내기도 했소. 그때부터 난 열렬한 프리미스트 교의 신자가 되었소. 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소. 아, 11년 전에는 하이아칸 제국의 왕국 기사단 소속인 적도 있었소. 그때, 맡은 일이 사라진 왕자를 찾는 일이였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미네르(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행운과 승리의 여신)께서 세르를 좋아하시나 보오. 하하하.”
그가 웃으며 말했다. 팩스터는 자베르의 말이 끝나자 아무 대꾸 없이 불편한 듯 물을 마셨다. 무신론자인 팩스터는 당연히 프리미스트 교의 12신이며, 미네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물을 다 마시고서야 입을 열었다.

“얼마동안 왕국 기사로 지내셨습니까?”
“자베르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피며 들었다. 팩스터는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일린 왕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사라진 왕자와 그를 데려간 기사를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소. 그리고 왕비의 장례식을 거창하게 했소. 그리고 계속 용서를 빌더군. 미안한지 다시는 왕비를 두지 않을거라고 하였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하이아칸 제국에는 후계자가 없소.”

자베르는 물을 마신 뒤, 진지한 표정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물어볼 것을 물어봐야겠소. 루이스가 왕지이오?”
“아니면요?”

“그럼 왕자는 어디있소? 인생과 가족을 버리고 떠났는데, 왕자까지 버렸다 이거요?”

“굳이 제가 왕자를 데리고 키우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아이는 세르의 아이이요? 리오스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이라도 한 것이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아내는 어디 있소? 버림이라도 받았나?”
“잠시 부모님을 뵈러 갔을 뿐입니다.”
“그렇소? 그런데 아들 분이 아내 분을 닮았나 보구려. 그런데 혹시 아내 분이 왕족이오? 하이아칸의 왕과 아들 분이 아주 닮았던데 말이오. 완전 판박이던데.”
“이 넓은 세상에서 닮은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보게, 세르. 세르는 왕비의 근위대이었지?”
자베르가 갑작스레 주제를 바꾸었고, 팩스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왕비 근위대였죠.”
“왕비 근위대는 왕비에 대한 충성과 왕비의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래서 왕의 명을 어기서라도 왕비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지.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
“왕비가 부탁한 아이가 루이스가 맞지 않소?”
“아닙니다.”
“정말이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페르?”
자베르는 씩 웃더니 탁자위에서 검지로 탁자를 툭툭 치고있는 팩스터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르는 거짓말을 할 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버릇을 고쳐야겠소. 그리고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루이스가 왕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날 없앨 필요는 없을거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오.”
팩스터가 미간을 찌푸려 그를 노려보자, 그는 옷 안에 둔 프리미스트 교의 상징인 포크(fork)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팩스터에게 보여주었다. 양 끝 두개가 바깥쪽으로 직각으로 꺾인 삼지창 모양이었다.

“데우스(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하늘의 신이며, 신들의 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이 맹세는 디아나(프리미스트 교의 12신 중 달과 맹세의 신)께서 보았을 것이오.”

자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구들이 잔뜩 있는 지하실을 잠시 둘러보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가 대장간을 나오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셔도 좋습니다, 페르. 단, 맹세를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
“난 신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네.”
자베르가 돌아보며 말했다.


소년 두 명이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오스프리드였고, 또 다른 한 명은 티토스 스타크였다.

오래 전, 티토스가 오스프리드에게 돈을 빌렸었는데, 그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갚으라는 오스프리드와 다투고 있던 것이었다. 오스프리드는 돈을 어서 갚으라며 주장하였고, 티토스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던 중, 오스프리드는 구경하고 있던 무리에 있던 루이스에게 물었다.

“그때 루이스도 있었지? 너도 내가 돈을 빌려 주는 거 봤지?”
“흐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일이라서 잘 모르겠어.”

“티토스 형이 분명히 10탈레온을 빌려갔었잖아.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모은건데 말이야.”
“정말 귀찮게. 고작 10탈레온 가지고.”
티토스는 주머니에서 탈레온 동전 11개를 꺼내어 오스프리드 발 앞에 던졌다.

“엄마도 없는 새끼가. 1탈레온은 그냥 네가 가져라.”
아무도 오스프리드와 루이스 앞에서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루이스가 놀라 오스프리드를 보았을 때, 오스프리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고, 주먹을 세게 쥐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티토스에게로 달려갔다.

티토스를 향해 달려간 오스프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그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하지만, 오스프리드보다 두 살이 더 많고, 덩치도 더 있는 그는 오스프리드를 밀쳐내고 조금 전 상황과 반대로 쓰러진 오스프리드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티토스 무리는 그 행동에 호응을 하였고, 3명뿐인 오스프리드의 친구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다시 한 번 티토스의 몸이 쓰러졌고,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갔다. 심하게 발로 차인 오스프리드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며 쓰러져있었다. 티토스 무리 중 한 명이 티토스를 때리고 있는 루이스를 발로 차 떨어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으로 쓰윽 닦았다.

“이것들이 돌았나. 야, 다 잡아.”

티토스 무리가 움직이자, 그들보다 어린 오스프리드 친구들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그들은 굳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루이스와 오스프리드를 욕을 하며 그들을 마구 밟고 차기 시작했다.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둘은 그저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만 있을 뿐, 그대로 공격에 노출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맞고 있을 때, 티토스가 침을 뱉고는 무리에게 그만 가자고 하였고, 무리가 사라지자 둘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있었다. 숨을 몰아쉬던 루이스는 그대로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오스프리드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저 끙끙거리는 소리만 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스프리드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서,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오스프리드를 쳐다보았다. 오스프리드는 어느새 일어나있었고, 그대로 울고 있었다. 루이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어났고, 절뚝거리며 오스프리드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왜 그래?”
오스프리드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루이스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그는 원망이 가득 찬 눈으로 루이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여기 안 왔었더라면 우리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야.”

“무, 무슨 말이야? 왜 그래, 오스프리드.”
“왕자라는 녀석이 왜 쓸 때 없이 여기 와서 남에게 피해를 주냔 말이야.”
“뭐?”
“네가 하이아칸의 왕자라는 거 알고 있어? 그리고 하이아칸 왕이 널 죽이려고 했는데, 너희 아버지가 널 살리려고 널 이곳으로 몰래 데려왔고, 왕은 너희 아버지 가문을 몰살을 했어. 그때, 잠시 하이아칸에 갔던 우리 엄마도 있었고 말이야. 네가 이곳으로 와서 죽은 거라고.”

“노, 농담이지?”
“모두 너 때문이야.”
그는 루이스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그대로 뛰어갔고, 루이스는 멍하니 그가 뛰어간 곳을 쳐다보았다.


레드윈 집에서 묵고 있던 자베르는 어느 정도 팩스터와 친하게 되었고,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루이스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본 팩스터가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루이스?”
루이스는 퀭한 눈으로 팩스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거짓말….”

“싸운거야?”
“내가 보기엔 싸운 것 보단 일방적으로 맞은 것 같소만.”
자베르가 말하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맞았어? 누구한테?”
“전 누구에요?”
루이스가 엉뚱한 말을 하자 팩스터가 그의 머리를 확인했다.

“머리 다쳤어?”
“저, 아버지 자식 맞죠? 그렇죠?”
팩스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라는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볼 때, 루이스가 다시 말했다.

“내가 하이아칸의 왕자야?”
“무슨 소리야? 누구한테 들었어?”
“맞구나…. 거짓말쟁이….”
“그럴 리가 있니. 넌 평범한 대장장이인 내 아들이야.”
“왕국기사가 평범한 건가요?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팩스터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루이스가 이 사실을 안 것일까? 이 사실은 자신과 자베르, 그리고 오스문드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고, 자베르는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자베르는 그가 맹세한 것을 어길 리가 없는 것 같아보였고, 확실히 자신 앞에서는 둘은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을 보지 못 했다. 그렇다면 오스문드가 말한 것일까? 하지만, 그도 약속을 어길 리가 없으며, 그는 현재 집을 비운 상태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누가 루이스에게 말한 것일까? 루이스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좋은 것인가.

“어서 말해주세요. 사실인가요? 이번에는 제발 얼버무리지 말아주세요.”
루이스의 물음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하였다. 그는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몰러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루이스에게 고개 숙여 절하였다.

“하이아칸 제국의 황비 근위대 소속이며, 현재는 황자님을 보호하는 호위기사인 세르 마티스 로완입니다.”
자베르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루이스에게 고개를 숙여 절하였다.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이며, 그가 태어나자마자 무슨 일을 겪은 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고, 설명을 듣는 내내 루이스는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루이스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그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팩스터도 문 앞에 음식만 갖다 놓으며 식사를 하라고 말만 할 뿐, 루이스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하루 동안 루이스를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그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끝낸 자베르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는 숙박비와 음식값으로 팩스터에게 3데나리온을 건네자, 팩스터는 그 돈을 거절하였다.

“고작 일주일 간 지낸 것 가지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런 걸 건네면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오, 세르.”
“마음만 받겠습니다, 페르.”
자베르는 잠시 미소를 짓고는 돈을 지갑에 도로 집어넣고는 현관문으로 다가가며 다시 팩스터에게 말했다.

“그간 잘 지냈소이다.”
그리고 그가 나가려던 순간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이스가 아래로 내려와 말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페르.”
자베르와 팩스터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활동하기 편한 두건이 달린 긴 외투를 입고 있었으며, 가벼운 배낭과 검을 챙겼다. 팩스터가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까?”
“말했다시피 페르 자베르를 따라갈 겁니다, 세르.”

“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어째서 힘들고 위험한 생활을 하신다는 겁니까.”
“저를 속인 사람과는 함께 못 있을 것 같거든요. 페르께서는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안 될 거야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니…. 거참.”
“함께 가도 좋다는 걸로 받아드리겠습니다.”

“정말 떠나실 생각입니까? 모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험은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떠나셔도 됩니다. 차라리 기사가 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니 모험을 떠난 다는 생각은 잠시…….”
“이 결심은 절대 안 바뀔 것 입니다, 세르.”

열심히 루이스를 말리려던 팩스터의 말을 끊고, 루이스가 단호히 말했다. 팩스터가 계속 그를 말리려고 했으나, 루이스의 뜻을 결코 굽히지 못 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팩스터는 한숨을 쉬고는 루이스를 자신의 대장간에 데려갔다. 대장간에 오자, 팩스터는 루이스에게 그에게 맞는 얇은 판금갑옷과 스큐툼(scutum) 방패, ‘Y’자형 바붓(barbute) 투구, 단단한 강철로 만든 쇼트 소드(shortsword)와 소드 벨트(sword belt), 그리고 황금색 단검을 건넸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이 검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할 겁니다. 그리고 이 단검은 황비님께서 황자님께 전해주시라는 것 입니다. 소드 벨트에 단검도 끼우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두면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팩스터는 주머니 하나를 루이스에게 건넸고, 루이스는 그 안을 보고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황비님께서 맡기신 겁니다. 3, 40아우리온 정도는 될 것이니, 당분간은 걱정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걸 다 가져가면 세르는….”

“전 어차피 제가 따로 모은 재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이스는 팩스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는 대장간 밖에서 기다리는 자베르에게로 갔다. 팩스터가 그를 불렀고,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루이스, 정말 갈 거니?”
루이스는 팩스터를 바라보게 선 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버지.”
그리고 그는 자베르와 함께 마을을 벗어났다.

3. 세상으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카울(cowl)을 입고 있는 소년과 사내가 퍼 붇는 소나기를 맞으며 들판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들판인지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들 모두 비를 피하기에는 부적합했고, 허허벌판인 이곳에서 비를 피할만한 장소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에 방패를 맨 소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고, 사내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롱하우스(longhouse) 한 채가 있었다.

“저기 집이 있어요.”
“잠시 저기서 비를 피하면 되겠구나.”
둘은 비를 피하기위해서 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그들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백발이 만성한 늙은 남자가 나왔다. 사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된다면 헛간이라도 괜찮습니다.”

“들어오시구려.”

“감사합니다.”
집안에는 늙은 여자가 집 한가운데에 있는 난로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카울을 벗어 벽에 달린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두건을 벗자 소년의 금발머리가 드러났다.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패와 검, 배낭과 투구를 벽에 기대어놓았다. 노인은 사내에게 말했다.

“미리 말해주겠소만 우리 집에는 가져갈 것이 없다우.”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여행자들입니다. 비만 그치면 바로 가겠습니다.”
전신에 방어구를 입은 사내가 말하고는 검을 풀어 벽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무엇을 끓이는지 궁금하여 그것을 흘끗 보았다. 그녀가 끓이고 있던 것은 밀죽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릇에 옮겨담고는 소년과 사내에게 하나씩 건넸다. 6월 달이라 더웠지만, 비를 계속 맞아 추위를 약간 느낀 소년은 감사히 그것을 받고는 따뜻함을 느끼며 떠먹었고, 사내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에 사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맨리스까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아십니까?”
“2, 3일만 더 걸어가면 될 것이오.”
그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편안히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사내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방패와 투구, 검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그쳤고, 그들은 감사 인사를 한 후에 집을 나와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품을 한 번 하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길만 있었으면 벌써 맨리스에 도착했을 것이다. 리오스는 정말 도로상황이 엉망이야. 그나저나 루이스 넌 도시가 처음이 아니냐?”
“시골에서만 살았으니 그렇죠.”

“내가 알기론 맨리스는 비교적 작은 도시라고 하던데. 가장 큰 도시는 당연히 리오스의 수도인 웨스치야.”

웨스치는 소토리오스 제국의 수도이며, 현재 리오스의 수도로, 가장 거대하며 여러 석상들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어 미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다른 도시보다는 비교적 왕래가 편하지만, 도시 안 중앙에 위치한 왕의 성만은 산엄한 경비로 그 주변조차 다가가기 힘들어, 중앙이 텅 빈 도시로 보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사는 것인데 말이야.”
생긴 것과는 달리 사내는 말이 무척이나 많았고, 결국 루이스가 그에게 짜증나는 말투로 한 마다릴 내뱉었다.

“힘든데 조용히 좀 합시다, 페르 자베르.”
“본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황자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자베르가 말하자, 잠시 루이스는 구시렁거리더니 이내 입을 다물고 걷는 일에 집중하였다. 사내는 걸을 때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 때문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얼마 뒤, 그들은 저 멀리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었고, 그것은 약 열 명 정도의 기수(騎手)들이었다.

“기사들인가? 하지만 깃발이 보이지 않는데, 용병? 하지만 그럴 일은 없고.”
자베르는 그들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기사들은 보통 최소한 한 명의 기수(旗手) 그들이 따르는 영주나 그들이 속한 기사단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움직인다. 그리고 대부분 용병들은 말이 비싸 말을 잘 사지도 않기에 말을 타고 움직이지 않는다. 기수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자베르는 드디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야만족들이잖아.”

그가 말하자, 루이스가 검을 뽑기 위해 손을 칼자루로 옮겼다. 그러자 자베르가 루이스의 팔을 잡았다.

“되도록이면 저들을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기수들은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기수들은 그들 앞에서 멈추어 섰다. 머리를 한 갈래로 땋은 야만족들은 그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리오스어였다. 소토리오스 제국의 초대 왕인 아더 왕이 리오스어로 언어를 통일시켰고, 그 후로 리오스어를 공용어라 불리게 되었지만, 리오스의 많은 야만족들은 고대 언어를 말하고 있었고, 공용어가 생긴 후에는 그들이 말하는 고대 언어를 리오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자베르는 리오스어로  말하고 있는 야만족들에게 서툴게 말했다.

“웨 아레 프레이만.”
“프레이만? 웨 아레 프레이만, 토우.”
야만족 하나가 비웃듯이 말하자, 다른 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만족 중 몸에 문신이 가장 많은 자가 루이스와 자베르를 내려다보며 공용어로 서툴게 말하였다.

“복장이 자유인이 아니다.”
“자기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요.”
자베르가 공용어로 대답하였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리오스에는 다른 국가에 비해 아직 많은 야만족들이 남아있으며, 그들은 작은 마을이나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거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야만족들에게 공격을 당한자들이 영주들에게 고통을 호소해 보았지만, 대부분 영주들은 작은 마을이 공격당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오스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거나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야만족 중 하나가 무어라 말하자 그들은 시끄럽게 서로 다투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고, 공용어를 사용했던 사내가 다시 말했다.

“우리 부족은 작다. 돈이 필요하다. 가진 걸 내놔라. 옷, 돈 모두. 목숨은 살려주겠다.”

“이건 말이 안 되요.”
루이스가 불평하였다. 그들이 가만히 있자, 야만족들은 허리에 차고 있는 시미터(scimitar)를 뽑아들고 ‘후리 우프.’라고 외쳤다. 루이스도 무슨 일이 생기면 검을 바로 뽑을 수 있게 칼자루에 손을 갖다대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빼앗길 수는 없어요.”
“수적으로는 우리가 밀려.”
“그렇다고 제가 가진 돈을 모두 주라는 겁니까?”
“그건 안 되겠지.”
자베르가 씩 웃더니 말하고는 롱소드(longsword)를 뽑았다. 그들에게 말을 하던 야만족이 그들을 베기 위해 검을 높이 들었고, 자베르와 루이스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검을 내리치려던 야만족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그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쓰러진 그의 뒷목에는 볼트가 꽂혀있었다. 곧이어 2명이 더 볼트에 맞아 쓰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들은 석궁을 자신들에게 겨누고 있는 4명을 찾았다. 그때, 볼트 하나가 날아오더니 야만족 한 명의 목에 꽂혔고,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목으로 갖다대던 중 몸이 옆으로 쏠려 말에서 떨어졌다. 한 명이 화를 내며 말에 박차를 가하며 자베르에게로 달려갔고, 그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그러자 자베르는 보이는 것과 달리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 검을 피하고, 자신을 공격한 자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손목이 잡힌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말과 반대로 뒤로 몸이 쏠려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자베르는 롱소드를 거꾸로 잡고 쓰러진 그의 배를 내리찍었고, 사내는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자베르가 검을 뽑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더니 자베르가 한 번 더 찍어버리자 그는 조용해졌다. 또 다시 날아오는 볼트에 한 명이 더 죽자, 그때서야 야만족들은 죽은 이들의 말들을 챙겨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들을 공격한 자들은 석궁을 아래로 내리고 루이스와 자베르에게로 다가왔다.

루이스가 멍하니 죽은 자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충격을 먹은 듯 했지만, 침학하기도 하고,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베르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조금 전 그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나?”
“사람이 죽는 건 처음 봤거든요. 느낌이 뭐랄까… 이상하네요. 이 자들도 가족이 있겠죠?”
“더 이상은 아니지.”
루이스는 맨 처음 볼트가 뒷목에 박혀 죽은 자를 보았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려던 그때 그 표정을 그대로 짓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은 지 모르고 죽으면 어떨까요?”
“궁금하지는 않을 거야.”
“끈적끈적하네요.”
“뭐가?”
“피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끈적끈적한 것 같네요. 색깔도 새빨갛고 말이에요.”

루이스는 칼끝으로 땅을 몇 번 쓱쓱 긋고는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그들을 도와준 자들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걸음을 멈춘 그들은 두건을 벗었다.

“꼬마도 있는데 무모하군요.”
무리 중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자베르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감사하오. 은인에게 실례지만 왜 도와주셨소? 야만족들이 표적을 바꿀 수도 있었는데 말이오.”
“아아, 저도 예전에 야만족들에게 가진 것을 빼앗긴 적이 있어서요. 복수도 한 셈이죠.”
그녀가 대답하고, 바로 옆에 쓰러진 자의 몸에 박힌 볼트를 뽑아 죽은 자의 옷에 볼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여자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
“맨리스에 가오.”

“잘 됐군요. 저희도 맨리스로 갑니다.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리오스에서는 일행이 많을수록 안전하죠.”

여자가 볼트를 수거하며 말했다. 볼트를 모두 수거한 여자는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엘라 브락스이고, 그녀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그녀의 오빠인 리만 브락스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 뺨에 화상자국이 있는 자는 베릭 스파크, 남자가 보아도 잘생긴 외모를 가진 자는 로스비 알란이라고 한다.

자베르도 그들에게 자신과 루이스를 소개하였다. 소개가 끝나자 그들은 함께 맨리스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오늘은 그만 걷자는 의견에 동의를 하고, 한 장소에 멈추어 쉬었다. 투그를 벗은 자베르가 말했다.

“솜씨가 아주 좋더군.”
잠시 이해를 못 했던 리엘라가 그 말을 이해하고는 석궁을 들어올려 보이며 답했다.

“석궁을 사용한 것도 10년 가까이 됩니다.”

“뭐 하는 자들이오?”
“용병입니다. 떠돌며 의뢰를 받지요.”

“요즘에는 용병단 소속이 아니면 의뢰가 들어오기가 힘든데 실력이 좋은가 보오.”

“대부분의 의뢰를 성공하니 말이죠.”
“그러면 맨리스에는 의뢰 때문에 가는 것이오?”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자세히는 의뢰를 구하러 가는 길이죠.”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루이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자베르가 배낭에서 빵을 꺼내 루이스에게 건넸다. 루이스는 허기를 달래기위해서 질기고 맛이 없는 빵을 억지로 먹다시피 하였고, 자베르도 빵을 하나 더 꺼내 먹기 시작했고, 그는 루이스와 달리 빵과 함께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자베르가 꺼낸 것이 물이 든 주머니인 줄 알았으나,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맡은 리엘라가 그에게 말했다.

“야만족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술을 마시다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요.”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다.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 모금 마시겠소?”
자베르가 그녀에게 주머니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술은 안 마셔요.”
야만족들에게서 얻은 시미터의 상태를 확인하던 리만이 그녀를 ‘리엔’이라고 부르며 빵을 던졌고, 그녀는 놓칠 뻔 하였지만, 간신히 빵을 받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을 아직도 부르니깐 저를 아이 취급하는 것 같네요.”

“형제라는 것은 좋은 것이오.”
“형제가 있나요?”
“제 형제들 말이오? 모두 잘 살고 있을 것이오. 형님은 부르봉 왕국의 왕국기사이고, 동생은 부르봉 왕국의 어느 백작의 기사단 소속이니 말이오.”

“부르봉 왕국 사람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발음이 부르봉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소. 아더 왕께서 세 대륙 언어를 통일시키신 덕분에 대화에 아무 지장이 없지요. 만약 그분이 언어를 통일시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부르봉 왕국 언어를 사용하고 있겠지요.”
그가 공용어가 아닌 다른 말로 무어라 말하였지만, 그녀는 당연히 무슨 듯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화폐를 통일시킨 것도 위대한 업종이시지.”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들러보며 말했다.

“불 좀 피우죠.”
“불을 지피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야만족들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될 거야.”
베릭이 말하자, 리엘라가 투정을 부렸다.

“어두운 건 싫은데.”
“2년만 있으면 30살이 되는 사람이 투정은.”
로스비가 시미터를 바닥에 두고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자베르로 옮겼다.

“그쪽도 기사십니까? 형제 모두 기사라면 기사 가문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신갑옷, 투구, 롱소드까지 가지고 있으시니 전형적인 기사 복장이 아닙니까?”
“이제는 아니오. 그리고 맨리스에 가면 최소한의 방어구를 빼고는 팔 예정이오. 옛날엔 이것보다 더 무거운 것을 입고도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갑옷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말이오. 그래도 아직은 팔팔하오.”
자베르가 팔팔하다고 말하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가슴을 툭툭 쳤다. 루이스가 빵을 다 먹었을 즈음 리엘라가 그를 보며 자베르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에요? 우리와 만났을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던데.”
“내 제자요. 함께 여행 중이지.”
“이렇게나 어린 애가 제자라고요? 이름이 루이스라고 했던가, 몇 살이니?”
그녀가 묻자 루이스는 입에 있던 빵을 재빨리 씹은 뒤 삼키고, 대답하였다.

“12살입니다.”
그녀는 최소한 그가 14살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12살이라고 말하자 놀라움을 드러냈다.

“12살이라고? 그렇게나 어린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거야?”
“사실…….”
“저 녀석은 사실 고아라오. 그나마 꽤 검을 잘 쓴다 싶어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오. 물론 비용은 모두 제가 부담하고 있지만 말이오.”
자베르가 갑자기 사실이 아닌 말을 하여서 루이스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자베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당황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그의 말에 맞추기로 하였다.

“길거리에 있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이 생활이 길거리 생활과 다를 것이 뭐가 있니.”
그들은 그 후로도 대화를 더 나누었고, 많이 걸어 피로가 많이 쌓인 루이스가 먼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신의 카울을 바닥에 깔고 누우려고 할 때, 자베르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듯 한마디를 던졌다

“되도록이면 앞으로 네가 하이아칸의 황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루이스가 무슨 말인지 다시 물으려다가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 때문에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 그에게 따로 묻기로 마음먹었고, 지금 당장 묻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피곤했기 때문이었고, 그는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루이스는 시체가 가득한 정장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곳곳에는 깃발들이 불러져 너부러져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기사와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고, 그들은 그가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처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일정하지 않은 복장과 무구로 무장되어 있어서 오합지졸 부대-심지어 몇몇은 농기구를 들고 있는 평민들이었다.-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 지금당장이라도 그 오합지졸 부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회색빛의 기사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기사들 앞에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자가 꿇어앉아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오합지졸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검을 든 채 황금 갑옷을 입은 자 앞에 서 있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입이 무어라 말하였지만, 루이스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장은 검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목을 내려쳤고, 검붉지 않은, 매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황금 갑옷을 입은 자의 머리 없는 몸이 건물이 무너지듯 쓰러졌고, 한참 후에야 주인을 잃은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고, 승리한 자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높이 들며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따! 우리의 새로운 왕 만세!”
그들은 계속 ‘새로운 왕 만세’라는 말을 계속 외쳤고, 목을 벤 자는 그들의 환호에 답하듯 그의 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고, 그의 칼날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루이스는 환호하는 무리 사이에서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정리되어 있지 않은 땅을 걸어온 그들 앞에 ‘맨리스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팻말과 미약하지만, 그나마 정리되어진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와 팻말이 나온 것을 보니 거의 다 온 것 같군요. 점심 때 쯤 이면 도착하겠네요.”
리만이 말하고는 길을 따라 걸었다. 루이스는 그들을 만난 후로 매우 편안히 걷고 있었다. 그들과 만나기 전에 그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지만, 험악한 인상을 주는 베릭은 외모와 달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가 루이스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었다고, 루이스는 그저 자신의 갑옷과 투구, 방패, 그리고 검만 가지고 걸었다. 언뜻 보면 루이스는 기사 흉내를 내는 꼬마아이 같이 보였다.

베릭은 여행 내내 루이스에게 맛있는 것을 주거나 루이스의 검을 닦고 갈아주는 일을 대신 해주었고, 그 때문에 루이스도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를 매우 잘 따랐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안한 차림의 여행자, 무리지어 다니는 용병들, 그리고 길옆에는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이 허전한 바구니를 앞에 두고 드물지 않게 나타났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말발굽소리가 들렸고,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자, 일렬로 5명의 말을 탄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기사는 번개모양의 칼날을 가진 검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옆으로 비켜 기사들이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자베르는 그의 옆에서 말했다.

“맨리스 영주의 라이드이구나. 아참, 맨리스 영주가 기사라는 건 알고 있니?”
루이스는 대답하지 않고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사들을 보았다. 기사 중 한 명이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주었고, 동전은 신기하게도 거지 앞에 놓여진 바구니로 정확하게 들어갔고, 거지는 고맙다며 멀어지는 기사에게 크게 외쳤다.

어느덧 그들은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의 성문에 다다랐다. 자베르가 이 맨리스라는 도시가 작은 도시라고 하였으나, 도시에 처음 온 루이스가 보기에는 매우 큰 도시였고, 사람들 또한 엄청 많다고 생각하였다. 자베르는 맨리스에 함께 온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만나서 매우 반가웠소.”
“저희와 함께 다니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리만이 묻자, 자베르는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하였다.

“우린 그저 방랑자일 뿐이오.”
“싫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자베르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고, 베릭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헤어지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건강하게 지내라.”
루이스도 그에게 건강하라고 말하였고, 그들은 헤어졌다. 자베르는 먼저 여관으로 가자고하여 그들은 잠시 여관을 찾다가, 여관을 찾고는 그곳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여관에 들어와 그들이 먼저 한 일은 갑옷을 벗는 것 이었다. 갑옷을 벗은 자베르는 어깨를 돌려 근육을 풀어주었고, 허리를 쫙 피며 자신에게 불평하였다.

“나이가 들었나, 몸이 많이 뻐근하고 힘드네. 이제 이것들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군.”

루이스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품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황금색에 화려한 황실 문장이 새겨진 단검.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이름조차 알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몸을  풀던 자베르가 그가 들고 있는 단검에 관심을 보였다.

“무슨 단검이냐? 이런 것도 갖고 있었나? 어라, 하이아칸 황실 문장이 아니냐?”
루이스는 그가 하이아칸 제국의 제국 기사단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에게 물었다.

“황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름을 아시나요?”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이야 알지. 예니 판 파이네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초상화를 본 적이 있지. 아주 미인이더군. 남자라면 누구나 한 눈에 보면 반할 정도였지. 난 처음에 봤을 때 엘프인 줄 알았어. 엘프처럼 정말 매혹적인 외모였지.”

자베르는 루이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단검이 무엇이냐고 묻자, 루이스가 대답을 하였다.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거래요.”

“그렇다면 중요하겠구나.”
“당연하죠.”
“간수 잘 해라. 오랜만에 식사같은 식사 좀 하자. 갑옷도 팔아야 되니깐 말이야.”
루이스도 동의하고, 그들은 여관에 있는 식당대신 여관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대륙보다 리오스가 있는 리치 대륙, 특히 중부 지방에서는 벼가 많이 자라 맨리스에서도 쌀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고깃국과 쌀로 만든 밥을 먹었다. 고깃국의 간은 매우 싱거웠고, 고기는 그저 종이 조각을 씹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행 내내 마른 빵만 먹어온지라 별 불평 없이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그들은 자베르가 갑옷을 팔기 위해 대장간으로 갔다. 대장간에 온 루이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비록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진짜 아들처럼 12년간 길러주었다. 자신이 진짜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면, 지금도 친아버지인 줄 알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떠난 것이 잘한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대장장이와 자베르의 실랑이 때문에 중단되었다.

“고작 10데나리온이라니. 최소한 10아우리온 정도는 줘야할 것은 아니오? 이것은 50아우리온 상당의 가치의 물건이오.”

“10아우리온이라니. 아예 작은 집 한 채를 달라고 하겠구만. 50아우리온 가치라고 하여도 이건 흠집이 꽤나 나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하여도 10데라이온은 너무 적소.”
“하아, 좋소. 2아우리온.”
“여덟 닢으로 끝냅시다.”
“하이고, 거참. 다섯 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받지 못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정도도 제가 엄청 많이 양보한겁니다.”

“웬만한 검으로는 뚫지 못 하는 갑옷인데, 좋소. 다섯 닢으로 하죠.”
대장장이는 자베르에게 금화 다섯 닢을 건넸고, 그들은 그곳을 나왔다. 루이스는 막 괜히 팔았나라며 후회하는 자베르에게 물었다.

“갑옷을 모두 팔아도 괜찮아요?”
자베르는 입고 있는 옷을 살짝 들어올려 안에 있고 있는 쇠사슬 갑옷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어차피 웬만한 녀석들은 근처에도 못 올 것이니깐.”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베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왜 웃느냐고, 묻자 루이스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근처에도 못 온다니, 아이들이 쏜 석궁에도 맞았잖아요.”
“아니, 그때 그것은 내가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볼트가 날아온 거잖아. 공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면 맞지도 않았어.”
자베르가 당황하며 해명을 하자, 루이스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떠나와서 웃은 적이 있었던가?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다시 여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고, 뒤를 돌아보자 리만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건넨 후 리만이 자베르에게 말했다.

“술이라도 한잔 하러 가시죠. 돈은 물론 제가 내겠습니다.”
“술이라…. 좋소. 루이스, 여관에 먼저 가 있어라.”
“꼬마도 같이 데려가죠. 위험하게 혼자 보내다니요.”

“술집에 말이오?”
“제가 아는 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음료도 있지요.”

“루이스, 어떻게 할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럼 어서 가죠.”
리만이 손바닥을 마주대어 비볐다. 그들이 간 곳은 작은 술집이었고, 손님도 자신들을 포함해 10명이 채 되지 못 했고, 개중에는 베릭과 로스비도 있었다. 그들은 자베르와 루이스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며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의자에 앉은 리만은 주인에게 마실 것을 주문하였다.

“두 잔. 어린이 손님을 위한 것도.”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마 안 되어 자리에 앉은 그들 앞에 각자 주문 한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루이스 앞에는 오렌지 주스를, 리만과 자베르에게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를 주었다. 자베르는 컵을 집고는 코 가까이 가져다놓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독한 술, 보드카군.”

“이 집의 보드카가 리오스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 진정한 보드카의 맛을 볼 수 있죠.”
“진짜 진정한 보드카를 맛보고 싶다면 하이아칸 북부로 가시게나. 나도 그곳에서 보드카를 한 번 마셨다가 그날 죽는 줄 알았다네.”

“한 번 마셔보고 싶군요.”
리만은 잔을 들어 허공에 잔을 부딪치고는 입으로 갖다대어 마셨다. 자베르도 잔을 비우고는 ‘크’ 라는 감탄사를 하며 중얼거렸다.

“독하긴 독하군.”

루이스는 빤히 주스를 쳐다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목이 마르는 것 같은 느낌에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 그의 앞에 과자가 든 그릇이 두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검은머리에 콧수염을 가진 선한 인상의 주인이 싱긋 웃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술을 마시며 각 나라의 상황에 대해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는 어른 네 명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자베르가 술을 더 권하는 리만에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원래 술에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데, 오랜만에 술친구가 생겨 떠들다보니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구려. 잠도 밀려오고, 이제 그만 가봐야겠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명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베르와 달리 얼굴이 약간 붉어졌을 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술에 취한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로스비가 웃으며 자베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술친구가 한 명 더 느니 재미있었습니다.”

자베르는 하품을 크게 하고는 잘 지내라며 말한 뒤, 루이스와 함께 여관으로 갔다. 여관에 도착한 그들 둘 다 피곤하다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있던 루이스는 누가 자꾸 그를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와 깨기 싫던 그는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부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르며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앞에 바닥에 누워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자베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불편하게 두 손을 등 뒤에 두고 있었다.

가만, 우리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던가?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려는데 자신의 손이 등 뒤에서 움직이지 못 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움직여도 두 손이 서로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이곳이 잠이 들기 전에 있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루이스가 자베르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죠?”
“쉿, 쉿. 조용히 해라. 잠깐만 기다려봐.”
자베르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났을 때에는 횐팔에 있어야 할 손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진짜 손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의수를 집고 왼팔에 붙이고, 의수의 손가락을 움직이고는 중얼거리며 루이스에게로 다가왔다.

“이래서 술에 취하면 안 된다니깐.”
그는 루이스의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베릭과 로스비와 대머리의 사내가 원형 탁자에 앉아있었고, 베릭이 동전 한 닢을 손가락으로 튕겨 하늘로 띄운 뒤, 공중에서 재빨리 낚아채고는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앞, 뒤?”
대머리의 사내가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앞.”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로스비가 말하였다.

“네가 앞이면, 난 뒤.”
베릭이 주먹 쥔 손을 피자 안에는 그림이 그려진 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동전이 있었다. 그것을 본 대머리의 사내의 얼굴에는 짜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항상 지는 거지.”

그는 주머니에서 10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로스비에게 주었다. 그러자 로스비는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동전을 받았다. 로스비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5탈레온짜리 동전을 꺼내 숫자가 적힌 면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나 대신 위에 좀 갔다 오면 줄게.”
“자기가 감시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러기냐.”
그는 로스비의 손에서 돈을 빼앗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어느 방문 앞으로 가 방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눈에는 밧줄을 막 풀고 이어난 중년남성과 꼬마 아이가 보였다.

“이런.”
그는 손을 허리에 찬 검으로 갖다대려는 순간, 중년남성이 재빨리 다가 와 밧줄을 그의 목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는 밧줄을 잡고, 목을 조이지 않기 위해 힘껏 당겼지만, 중년남성의 힘은 매우 좋았고,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힘만 더 빨리 빠진다는 것을 알고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팔꿈치로 상대방의 몸을 가격했지만, 오히려 목을 조이는 힘만 더 강해졌다. 다급해진 그는 손으로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려보았지만 이미 힘이 거의 빠진 그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 했다. 숨이 막혀 얼굴이 붉어진 그는 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검을 뽑았을 때, 그의 손에서 검이 사라졌고, 그는 자신 앞에서 자신의 검을 들고 있는 꼬마아이를 보았다. 그는 점점 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밧줄을 풀려고 바둥바둥 거렸지만, 그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잠시 뒤, 그는 두 팔이 축 늘어지더니, 두 다리가 풀려버렸다.

중년남성은 사내를 바닥에 조심스레 두고는 꼬마아이에게 검을 받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루이스.”
그가 소리 없이 방 밖으로 나가 밖을 힐끔 보았다. 1층에는 두 명의 사내가 탁자에 앉았었는데, 둘 다 그가 있는 곳을 등지고 있었다.

문득,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저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올 떄, 한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로스비? 베릭?”
그러자 둘이 그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들이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들고 있는 검을 바로 잡으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이냐?”
“자, 잠시 얘기 좀 하시죠. 검은 내려놓으세요.”
베릭이 당황해하며 말하자, 베릭이 그 대신 말했다.

“자베르 님은 그냥 가시면 됩니다. 물건도 그대로 보관해놓았으니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저 어린아이만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대가로 돈도 드리죠.”
“어린 꼬마 데리고 뭐 할 것이오?”
“그저 용병단에 팔 겁니다. 이런 길거리 생활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게 용병인가? 돈에 팔려서 가는 것이? 어린 꼬마가 용병단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소?”
“그저 몇 년 일하면 되는 겁니다.”
“돈도 못 받고 노예처럼 몇 년을 일하라니. 그게 할 짓이오? 아이 물건은 어디있소?”
“돈이 많이 있어서 무구들은 가만히 놔두었지요.”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오? 아이들을 용병단에 팔아넘기고, 돈을 훔치고 말이오?”
로스비가 어깨를 으쓱였고, 자베르가 다가가자 그들은 검을 집어 들었다. 로스비는 바스타드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당신은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서로 피 볼 일은 없지 않습니까.”
“갈 길 가기위해서 루이스가 필요하지.”
“어쩔 수 없군요.”
로스비는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검을 내리쳤다.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자베르는 몸을 틀어 간단히 공격을 피한 뒤, 로스브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지만 그는 내리친 검을 다시 올리며 자베르의 검을 쳐냈다. 다시 로스비는 자베르를 공격해왔지만, 자베르는 그의 공격을 모두 막고 피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베릭은 싸움에 끼어들어 로스비를 도와줄지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는 자신이 다칠 수가 있었고,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로스비와는 우정이 아닌 돈으로 맺어진 동료사이이고, 결국 그는 일단은 지켜만 보기로 하였다.

로스비는 자베르와 검을 몇 번 부딪히고는 떨어졌다. 로스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한 상대이다. 그는 잠시 어떻게 자레르를 공격할지 고민을 하고는 다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검을 내리쳤고, 자베르가 몸을 뒤로 빼자, 로스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치고 있던 검을 중간에 멈추고 그대로 그의 명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 순간, 그는 자베르의 눈빛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까지 그의 눈에서는 살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자베르는 검으로 로스비의 검을 쳐 내린 뒤, 다시 검을 쳐올렸고, 로스비가 검을 쥔 손이 피를 뿜으며 하늘로 떠올랐다. 로스비는 몸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잘려나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내 손, 으아악! 내 손을, 손을!”
자베르는 검으로 허공을 베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베릭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아니라 쓰러진 로스비를 바라보고 있는 자베르를 발견했고, 그는 칼자루를 꽉 쥔 뒤 그에게로 달려갔다. 자베르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한 박자가 늦었다. 베릭이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을 때, 나무의자 하나가 그에게로 날아오더니 그대로 그를 들이박았고, 베릭은 의자와 함께 쓰러졌다.

자베르가 의자가 날아 온 곳을 보자, 계단 위에 서 있는 루이스가 있었다. 루이스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자베르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베릭에게로 다가가 발로 검을 멀리 밀어내고 칼끝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고집을 부리지 말지 그랬소.”
베릭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미친 듯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던 루이스가 소리를 질렀다.

“뒤, 뒤에!”
자베르의 뒤에서 로스비가 검으로 그를 내리치려고 하였다.

자베르는 검을 가로로 그으며 몸을 돌렸고 로스비의 가슴 윗부분이 그의 손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붕 떠올랐고, 땅에 붙어있는 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서야 베릭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붙어있었을 것인데.”
자베르는 둘로 나뉘어진 로스비의 몸통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상체를 일으키고 누워있는 베릭을 보았다. 그는 로스비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고, 베릭은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고, 검은 그대로 그 옆에 박혔다.

“자, 우리 물건은 어디 있소?”
“여기 있어요.”
루이스가 구석에 두어진 자신의 물건들 앞에 서서 말했다. 물건들을 확인하던 그는 몸을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돈이 없어졌어요. 단검까지….”
“돈이랑 단검이라면 리만과 리엘라가 가지고 있을 거요.”

“그 녀석들은……”
“어디있죠?”
루이스가 자베르의 말을 끊고 대신 말을 이었다. 그러자 베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용병단과 만나고 있겠지.”
“어디서요?”
“남쪽 광장일거야."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갑옷을 서둘러 입었다. 그런 그를 베릭이 보더니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찾으러 가야죠.”
“그곳에 간다고? 하하하, 이거 의외군. 너를 용병단에 팔려고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니? 넌 지금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거야. 나라면 차라리 도망을 가겠다. 돈이야 좀 아깝겠다만, 목숨이 더 소중하지 않나.”

베릭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막 방패를 든 루이스는 검을 뽑고 그에게 다가와 검으로 그를 겨누었다. 루이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하, 사람은 죽여 봤니, 꼬마야?”
“지금이 처음이 될 수가 있겠지.”

“네가 바라는 반응이 어떤 거야? 내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베릭이 루이스를 조롱하듯이 말하였고, 곧 그는 비명을 질렀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렸다가는 검을 그 입 안에 쑤셔 넣어주지.”
루이스는 베릭의 손등을 찍은 검을 다시 뽑았다. 검이 제대로 박혀 루이스가 힘껏 뽑다가 검이 뒤틀리는 바람에 베릭의 상처가 찢어졌고, 그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꺼져.”
베릭은 잠시 루이스를 노려보더니 일어나 상처가 너덜너덜해진 손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루이스는 검을 집어놓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이에요?”
“어차피 난 소속만 없을 뿐이지, 기사는 기사야. 기사가 도둑 하나 죽인다고 문제가 되겠니. 그런데 내 걱정보다는 네가 문제다. 그곳에 정말 갈거니?”
“단검을 되찾아야 되죠. 그에 있어야 나중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가 누군지 알 수 있겠죠.”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베르는 그런 그를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그도 그의 검을 챙기고 밖을 나갔다.


여러 조각상과 리오스 왕가의 깃발과 영주의 깃발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광장에 무장을 한 십 여 명이 리만과 리엘라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수가 많은 쪽이 무장을 했지만, 검정색 바탕에 상단부가 뾰족한 붉은 히터(heater)가 그려진 팰스만 같을 뿐, 방어구와 무기가 제각각인 것을 보니 그들을 용병인 듯싶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저 그들을 잠깐씩 쳐다만 볼 뿐,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리만이 용병에게 말을 걸었다.

“돈은?”
“아이를 넘겨받은 후에 주겠다.”

“그 쪽이 먼저 주시지. 우리가 너희 ‘붉은 방패’와는 첫거래지만 우리는 거래를 망친 적은 없어.”

“아이를 앞에 데려오면 그때 주지.”
“원한다면.”

“여기서 기다리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는데?”
리엘라가 한 곳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무장한 소년과 사내가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용병들을 사이에 두고 남매에게 말했다.

“내 단검은 어디있지?”
“그 녀석들은 저런 것들도 감시 못 하고 뭐하는 것인지. 이야, 그런데 이거 의외인걸. 수십 아우리온보다 단검을 먼저 찾다니 말이야.”

“단검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팔아버렸는데, 이걸 어쩌나.”
레일라가 말하자 루이스가 움찔하더니 검을 뽑았고, 용병들은 일제히 무기를 쥐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자베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러자 용병 중 대장이 손짓을 하자 용병들은 일제히 양옆으로 갈라졌다.

“이것 참 무서워 죽겠군요, 꼬마 기사님.”
“단검을 어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베어버릴 거야.”

“무서워 죽겠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넌 검인데 난 장거리 무기인 석궁이란 말이야.”
그녀가 석궁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볼트를 끼웠고, 루이스는 방패를 몸으로 끌어당겨 앞면에 세웠다. 그녀는 석궁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한 번 막아보렴.”
“뭐하는 짓이지? 꼬마를 죽이면 어쩌자는 건가?”
용병대장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석궁을 흔들며 대꾸했다.

“니들이 지금 잡으면 되잖아.”
“그러면 잡아주지.”
용병들은 루이스와 자베르 쪽을 제외하고 붉은머리의 남매 주위를 구멍 뚫린 원처럼 둘러쌌다.

“뭐, 뭐하는 짓이야.”
용병대장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살짝 들자, 한 용병이 작은 뿔나팔을 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수십 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고, 맨리스의 영주의 문장이 새겨진 초록색의 전투복을 입은 라이드와 브루도가 광장을 둘러쌌다.

갑작스런 기사들의 등장에 당황한 리만은 그도 석궁에 볼트를 끼웠고, 레일라가 외쳤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기사는 뭐야.”
루이스 뒤에 선 그들의 전투복 색과 문장그대로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 왼편의 기사가 말을 몰고 루이스의 뒤에 다가온 뒤 그들에게 말했다.

“맨리스의 영주 세르 티클러 스피세르께서 6개월 전 그의 조카이신 루시온 님을 납치, 용병단에 팔아넘긴 너희 붉은석궁남매를 잡으라는 명을 내리셨다. 무기를 버려라.”

“루시온 그 녀석이 교양이 철철 넘친다고 했었다. 다가오면 이 아이를 죽여버리겠어!”
“상관없다.”
“이런 젠장.”
리엘라는 리만을 쳐다보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루이스 뒤의 기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따. 어차피 그들에게 잡혀 던전(dungeon) 같은 곳에 갇힐 바에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사가 몸을 옆으로 틀어 볼트를 피하자, 곧바로 리만이 그 기사를 향해 볼트를 쏘았다. 기사는 중심을 잡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었고, 볼트는 정확히 그곳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볼트는 날아가다 중간에서 멈추었다. 자베르가 왼손에 힘을 주자 볼트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고, 그는 부러진 볼트를 바닥에 버렸다. 곧바로 기사들이 달려와 그 둘을 제압했고, 볼트에 맞을 뻔한 기사는 자베르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며 감사의 말을 전했따.

“신세를 졌군요. 조금 전 일, 감사합니다.”
기사는 다시 말을 몰고 용병대장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렉.”
“저흰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페르.”

기사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갔다. 티렉은 자베르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볼트를 손으로 잡다니 놀랐군, 곰.”

“타나토스 녀석의 졸개들의 무기에 비하면 볼트의 속도는 달팽이야. 잘 지냈나, 붉은기사?”

“보는 바와 같이. 용병단도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네.”

“처음 자넬 보았을 때 엄청 놀랐는 거 아나? 자네가 이런 거래를 한다니.”

“영주님의 의뢰였으니 말이야.”

둘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옆에 있던 루이스는 브락스 남매에게로 걸어갔다. 기사들이 그가 다가오지 못 하게 막으려고 하자, 기사대장이 가만히 두라는 손짓을 보냈고, 루이스는 리엘라 앞에 섰다.

“단검은?”
“기사 양반, 왼쪽 허리에 찬 주머니 좀 이 꼬마에게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리엘라가 자신 옆에 서 있는 브루도에게 말하자, 그는 기사대장을 쳐다보았다. 기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머니를 루이스에게 건넸다. 주머니 안에는 5 데나리온이 들어있었고, 리엘라가 말했다.

“그게 네 단검을 팔고 남은 돈이다. 그리고 미안한데 너의 돈으로는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진 빚을 갚는데 써버렸어.”

말을 들은 루이스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그를 본 기사대장이 그에게 말했다.

“좋다면 네가 죽여도 좋다. 어차피 영주님께서도 이 녀석들을 죽여서라도 데려오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네 동료가 내 목숨도 구해주었으니 말이야.”
루이스는 잠시 동안 리엘라를 노려보더니 그녀를 향해 검을 찔렀고, 그의 검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누구한테 팔았지?”
“킥킥. 말해 줄 것 같니, 꼬마야?”
그녀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꽂힌 검을 살짝 비틀었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눈빛으로 조금 전 질문을 다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찌른 기분이 어때?”
루이스는 조금 전과 반대 방향으로 검을 비틀었다. 그녀는 다시 고통을 참지 못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자기 여동생이 고통을 받는 걸 차마 보지 못 하겠던 리만이 대신 루이스에게 말해주었다.

“피에르 에스터라는 티리아 상인에게 팔았다. 지금쯤 이곳을 떠나 호스터로 향했을거야. 호스터에 가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는 티리아에도 가기 때문에 쉽게 만나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는 매년마다 맨리스에 온다.”
리만이 말을 끝내자, 루이스는 그를 쳐다보고는 리엘라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았다.

단검을 잃어 버리다니. 자신이 가진 유일한 어머니의 유품인 그 단검 하나를 지키지 못 했다. 그리고 가진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렇게 제 몸 하나 지키지 못 하는데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모험을 떠나다니.

“안 죽일 거냐?”
기사대장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루이스는 검을 높이 들어 그녀를 벨 자세를 잡았지만, 곧바로 내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검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검에 묻은 피는 그의 눈물과 동시에 흘러내려 땅에 떨어졌다. 기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고는 ‘귀환’이라고 외치며 말을 성이 있는 곳으로 돌렸고, 모든 기사들도 그를 쫓아 남매를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루이스는 아직 그곳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이스의 투구 때문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모르고 그저 그가 몸을 부들거리는 것을 용병들은 그저 멀리 떨어져서 그를 지켜만 보았고, 붉은기사라고 불린 티렉은 자베르와 나란히 서서 루이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내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야.”
“자네에게 동료가 있단 말인가? 위험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었나?”

“저 녀석과 함께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어. 그 동안은 그저 여행자처럼 조용히 다녔지.”

“피에르 상인은 내년에 다시 이곳에 올 거야. 매년 그랬거든. 그나저나 단검이 그렇게나 저 애에게 중요하나?”
“암, 중요하고말고.”

용병 한 명이 루이스에게로 다가갔다. 용병은 로브를 입고 두건을 쓰고, 천으로 눈 아래를 가려 성병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활을 옆 동료에게 맞기고, 루이스 앞에서 입을 가린 천을 내린 뒤, 루이스의 투구를 벗기며 말했다.

“투구가 무겁지 않니?”
그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런 그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그는 이곳에 오며 몇몇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 때문에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직접 사람을 검으로 찔러 고통을 준 것에 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단검을 지키지 못 하는 자신이 한심해 눈물이 더 나왔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잠시 뒤, 울음을 그친 루이스에게 자베르가 다가왔다.

“어떻게 할 거니?”
루이스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말을 덧붙였다.

“단검 말이야.”
“아, 찾아야죠.”

“호스터로 가게?”
“하지만 그랬다가는 길이 엇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여기서 그를 기다려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야 되기는 하지. 하지만 난 6아우리온이 다야. 충분히 기다릴 수야 있겠지만, 그 후에 여행을 떠나면 돈이 부족할 거야.”
“곰, 그 아이와 함께 우리 용병단에 들어 올 생각은 없나? 돈은 많지 주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렉이 다가와 말했다.

“숙박시설은 기본으로 주지.”
루이스는 티렉에게 시선을 떼고 다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자베르도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다시 티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돈을 얼마 주나요?”

“계산적이구나. 좋아. 그런데 넌 4급용병이란 말이지. 하지만 자베르의 추천이면 3급이니 계약금으로 4데나리온을 먼저 주지. 그리고 매달마다 2데나리온을 주마.”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붉은기사?”
“하지만 얘는 기껏 해보았자 자잘한 심부름이 다가 아니겠나? 이 정도면 자네를 생각해서 많이 주는 거야. 넌 어떠니?”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요. 잘 곳도 주고, 저 같은 어린이에게도 돈을 주니 말이죠.”
“공짜로 주는 건 아니지. 기간은 얼마동안 할래?”
“상인이 이곳에 올 때까지요.”
“거참, 녀석 뻔뻔하네. 좋아, 그렇게 하지. 곰, 자네는?”

자베르는 끙 거리는 소리와 함게 고민을 하더니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루이스가 놀라 그를 쳐다보자 자베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자가 나보다 더 뛰어난 기사다. 나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될거야.”
“하지만 떠난다니요? 어째서…. 단검을 찾은 후에 전 어떻게 해요?”

“모험은 혼자 해야 많은 걸 배운단다. 나도 너와 함께 있는 게 낫겠지만, 차라리 너 혼자 있는 게 안전할거야.”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이 붉은기사가 널 잘 돌보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봐, 내 의견은?”
“싫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나.”

“좋아, 내가 이 녀석 추천서를 쓰지.”

“그냥 자베르도 함께 용병단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쉰다섯 살에 무엇을 하겠나? 늙어죽기 전에 모험이나 더 해야지.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안 될 거야.”


3개월 뒤, 브리퍼드를 방문 한 뒤 글레메일로 향하던 자베르는 글레메일 평원에서 로브를 입은 두 명을 만났다. 자베르는 검을 뽑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정말 끈질기군.”
“우리를 공격한 자의 목숨을 무조건 앗아간다.”

소매가 없는 로브를 입은 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꺼냈고, 그 옆에 있는 자는 대거를 꺼냈다. 자베르도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곧, 로브를 입은 자들은 공격을 해왔고, 자베르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았지만, 그들의 무기 때문에 자베르는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조차도 접근하지 못 했다.

자베르에게 밧줄이 날아왔고, 밧줄은 그의 검에 걸렸다. 밧줄을 사용하는 자는 검에 걸린 밧줄을 힘껏 당겼고, 자베르는 검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힘을 주었다. 그때, 대거하나가 날아와서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대거가 꼽히자 곧 그는 그의 왼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독인가….’

순간, 그의 검은 밧줄에 끌려 날아갔고, 대거가 다시 날아와 그의 몸에 박혔다. 그는 대거가 박힌 부위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곧, 그의 다리에도 대거가 날아와 박혔고, 그는 마비 된 다리에 힘을 주지 못 해 쓰러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중심을 잡고 있었다.

“너희들의 임무도 이제 끝났군.”
그들은 대답대신 밧줄을 던졌고, 밧줄은 자베르의 목을 감쌌다. 자베르는 눈을 감았고, 로브를 입은 자는 밧줄을 힘껏 당겼다. 자베르의 목은 돌아갔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로브를 입은 자 중 밧줄을 사용하던 자의 팔뚝에는 두개의 낫의 문장과 3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자의 팔에는 똑같은 문장과 2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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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위(부를 때 : 작위 이름 성)

-왕이 인정한 기사 : 세르(ser). 정식기사 한 명과, 준기사 세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정식기사 : 페르(per). 준기사 한 명을 직접 임명 가능하다.

-준기사 : 페이(pei). 임명 받거나 돈을 주고 작위를 산다.


*프리미스트(Primis) 교

: 티리아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신교 종교로, 현재 티리아의 국교이다.

-12신 : 데우스(신들의 왕. 하늘의 신), 마르스(전쟁과 지혜의 신), 아폴로(태양의 신), 디아나(달과 맹세의 여신), 케레스(자연의 여신), 넵투누스(바다와 물의 신), 미스트(문학과 예술의 신), 소르트(대양의 신), 미네르(승리와 행운의 여신), 플루토(죽음의 신), 불카누스(불의 신), 유피드(연애와 가정의 신)


*화폐 단위(티우스->탈레온->데나리온(은화)->아우리온(금화)

-100티우스=1탈레온

-100탈레온=1데나리온

-20데나리온=1아우리온


*바붓(barbute) : 르네상스 시대의 투구. 얼굴 부위가 둥근 ‘T' 모양으로 뚫려있었따. 원래는 고대 그리스 투구이었지만, 르네상스가 숭배하던 고대 세계의 유산을 부활시킬 때 함께 등장했다.


*스큐툼(scutum) : 크고 반원통형으로 구부러져 있으며, 앞에서 보았을 때는 직사각형으로 생긴 방패. 로마 레기온 부대가 사용했었다.


*라이드 : 기사와 용병들 중 말을 타고 싸우는 전투원.


*팰스 : 어깨부터 발목이나 발끝까지의 길이의 어깨에 착용하는 천. 기사, 용병들이 소속을 알리거나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위해 사용하는 얇은 망토이다. 보통 소속을 나타내는 문장이거나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영주나 군주의 문장이 새겨져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자신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브루도 : 기사와 용병들 중 땅에서 싸우는 전투원.


*던전(dungeon) : (과거 특히 성 안에 있던) 지하 감옥

 

-----------------------------------------------------------------------------------------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아직 끝은 아니구요...


#소설 평가 사이트 #소설 평가 기준 #아몬드 소설 평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많이 쓰셨네요.

 

개인적으로 봤을 때, 꽤나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부분 부분 좀 더 내용이나 묘사 등을 보강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왕이 왕자를 죽이려고 할 때.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왕이라면 자기가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한다는 것에 마음이 가벼울리가 없죠. 그 부분에서는 왕의 고뇌를 좀 더 그려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루이스가 팩스터와 마티스의 대화를 엿듣고 자신의 과거를 아는 부분. 그 부분에서도 팩터스와 마티스가 과거 이야기를 좀 더 조심스럽게 말하는 태도를 보여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소설을 쓴 뒤에 2~3번 정도 다시 읽으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다시 읽게 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작 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 들어가서 소설 평가 좀 해주세요. 장점, 단점, 그리고 그 외 다른 점들까지 자세하게 평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공 냠냠, 욕설은 신고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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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소설의 문제점이 뭔지 , 어떤 방식으로 쓰면 더 좋을지, 문장력 묘사 글이 매끄러운지 등, 자신이 썼으면 어떻게 썼을지 등등 평가해주세요 소설가가 꿈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