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풍 시대물 로판이 무협이나 정통 판타지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작가가 참조한 국가와 시대마다, 아니면 상상한 배경에 따라 설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로판의 설정은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설명하기 어려워서 전 실제 유럽에서의 역사와 로판을 같이 설명할 거고 이건 고증을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고 이게 더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쉬워서일 뿐입니다.
1. 유럽인들의 성씨는 외모적 특징, 지명, 직업, 아버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많습니다. 성씨 없는 평민이지만 직업이나 지명, 외모적 특징, 아버지 이름을 성처럼 이름 뒤에 써서 동명이인들끼리 구별하고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귀족이 아닌 평민인데 집안 대대로 쓴 성이 있는 경우도 있고요. 로판에서는 근대에 가까울수록 성 없는 평민 캐릭터는 고아라 성을 모른다는 설정이 붙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근대에서 멀수록 성 없는 평민 캐릭터가 나오는 편입니다. 제가 말한 근대는 19세기 이후를 참조한 듯한 로판 작품에서 나오는 19세기, 20세기적 요소로 증기기관차, 백화점, 상비군, 사관학교, 전등, 전화 같은 것입니다.
2. 귀족이면 성이 있겠죠.
3. 단승작위는 상속되지 않습니다. 성씨만 상속됩니다.
3번 질문을 하신 이유가 작위랑 성이 헷갈려서 인 듯한데, 아무래도 로판 작품에서 성씨와 봉작지가 일치하게 불리는 귀족 캐릭터들이 많아서 혼동하시는 듯합니다. 유럽의 작위는 국왕 또는 황제가 영지를 하사하면서 주는 것으로, 영지에 딸려오는 개념의 재산입니다. 예를 들어 윌리엄 그로스베너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름은 윌리엄이고 성은 그로스베너입니다. 그에게 영국 국왕이 웨스트민스터 공작령을 주면서, 웨스트민스터 공작위도 준 것입니다. 국왕이 하사하는 이 땅 웨스트민스터는 '봉작지'이고, 웨스트민스터는 해당 봉작지의 지명입니다. 이제 그는 웨스트민스터 공작입니다. 그는 영국에서는 '윌리엄 그로스베너, 웨스트민스터 공작'이라 불립니다. 만약 그가 독일어권 국가의 군주 또는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군주에게 바덴 공작령을 받는다면, 그는 바덴 공작이 되었지만 '그로스베너 공작'으로 흔히 불릴 겁니다. 이제 아시겠나요? 영국에서는 작위가 있는 귀족을 부를 때 이름, 성, 봉작지, 작위를 모두 정확히 언급합니다. 다만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봉작지명을 생략하고 성과 작위만 붙여 부르는 게 관습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로판 작품들이 독일과 러시아의 관습으로 성과 작위만 붙여 부르는 겁니다.
한 로판 작품이 이러하자(일본의 유럽풍 순정만화들도 많이 이랬었고) 다른 작가나 독자들도 봉작지명, 작위, 성씨와 독일과 러시아, 영국과 프랑스 등 국가와 시대마다의 작위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다들 쓰고 있을 뿐입니다.
봉작지명을 생략해 부를 뿐 성과 봉작지명이 따로 존재하는 귀족이 많습니다.
영국 스펜서 백작처럼 봉작지명과 성이 일치하는 귀족도 있지만 그 귀족이 단승작위를 가졌으면 작위, 즉 작위라는 재산만 상속이 안 될 뿐 성씨는 상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