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이야기 최대한 많이 부탁드려용

무서운이야기 최대한 많이 부탁드려용

작성일 2023.02.1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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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신것들은 재밌게 잘읽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또 부탁드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무서운 이야기

1. 덫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뒷산에 올라가서 버섯이나 산나물 같은 것을 캐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흰색과 빨간색 천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표시해 주셨고 우리는 그 천을 보며 산 곳곳을 살피고 다녔습니다. 마을이 산의 바로 아래쪽에 있다 보니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들이 농작물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요. 그래서 덫을 곳곳에 설치해 두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피해 등산로와 채집 장소로 이어지는 길목을 따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날도 저는 흰색과 빨간색 천을 보며 등산로 쪽으로 이동했고 혹시나 덫을 밟을까 걱정하신 할아버지는 저에게 긴 막대기를 주시며 발을 디디기 전에 바닥을 한 번 찔러 보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저는 나물을 캐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막대기로 바닥을 확인해 가며 조심스레 길을 따라가던 그때 마지막 지점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나며 덫이 걸렸고 나무 막대기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에 놀란 저는 소리를 질렀고 곧바로 달려오신 할아버지는 이곳은 덫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이상하다며 서둘러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채집 길목에 묶인 두 가지 색의 천들이 처음과는 달리 위치가 온통 엉망이 돼 있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천이 묶인 곳에 다가가는 순간 하얗고 가느다란 줄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줄이 할아버지의 정강이 쪽에 닿는 순간

(딸랑딸랑딸랑딸랑)

어디선가 요란한 방울 소리가 들리면서 줄이 끊어졌습니다. 우리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복면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총을 메고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급히 산을 내려오셨고 마을 사람들에게 확인해 봤지만 그곳에 그런 덫을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과 논을 둘러보신 할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셨습니다. 마을로 출동해서 문제의 그 장소를 확인한 경찰은 누군가 야생 동물을 잡기 위해 불법으로 설치한 덫 같은데 그것을 설치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잡기가 쉽지 않다며 주민들이 각별히 조심해야겠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 마을 뒷산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고 한탄하셨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 덫은 누가 봐도 사람이 다니는 길로 보이는 곳에 의도적으로 설치돼 있었습니다. 보통 야생 동물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을 피해서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렇다면 그 덫은 뭘까요. 설마 사람을 잡기 위해 설치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2. 지인들이 겪은 무서운 이야기

· 외숙모의 실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기 위해 우리 집 가족들과 외삼촌, 이모네 식구들이 충남 청양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외가댁으로 모두 모였다. 운동 중에 발가락을 다치신 외숙모는 사촌 동생과 함께 집에 계시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 모두 벌초를 하러 가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외숙모는 가마솥에 불을 지피러 마당으로 나오셨다. 그런데

"히히히히히히히···."

대문 쪽에서 웬 여자가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웃고 있었다. 빈틈없이 쪽을 찐 머리에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을 한 그 여자는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하얀색 소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요?! 누군데 남의 집에 막 들어와요!"

"흐흐흐흐흐흐···."

하지만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웃으며 천천히 숙모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숙모가 아닌 작은방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자는 방에서 자고 있는 사촌 동생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숙모는 곧장 방으로 가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발가락이 불편한 상태인 데다 마당의 흙 상태가 좋지 못해서 자꾸만 미끄러졌다고 한다. 예상대로 여자는 작은방 앞까지 가서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히익···!!"

여자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마당 한쪽 구석으로 튕겨나갔다.

"네가 방해하는구나···!"

방문으로 다가가서 문고리를 잡은 여자는 또다시 튕겨나갔고 그러자 여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을 경계하며 방문 쪽을 노려봤다.

"하···! 하하하하하···!"

여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마당 주변을 돌았고 여자가 악귀라는 것을 짐작한 숙모는 주변에 있는 농기구들을 마구 던지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여자는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서서는 숙모를 노려봤다. 그때 벌초를 갔던 가족들이 돌아왔고 대문이 열리는 순간 여자는 사라져 버렸다. 숙모는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숙모는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지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은 외삼촌과 어머니, 이모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시골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떠도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손각시라는 요물이 동네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것이었다. 손각시는 주로 아이들을 유혹해서 강물에 빠뜨리거나 산속의 벼랑 아래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정말로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10살이었던 나는 숙모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철모르는 어린아이였던 초등학생 시절. 당시 우리 가족은 44동까지 있었던 M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대략 1996년도~97년도 사이였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공터에서 자주 놀곤 했는데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그 근방에 상추나 깻잎들을 심어 키우셨기 때문에 우리가 공터에서 공놀이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그래서 공놀이보다는 술래잡기를 많이 했다.

그날도 저녁까지 공터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숨었는지 지훈 형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며 형을 찾았다. 하지만 형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형이 말없이 먼저 집에 간 줄만 알았다. 그런데

"흑흑··· 흐흐흑···."

형은 할머니들이 일구는 자그마한 텃밭 근처에서 울고 있었다. 우리는 형이 어딘가 긁히거나 넘어져서 다친 거라 생각했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 날 우리는 지훈 형에게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형은 텃밭의 맞은편에 있는 울타리 위쪽 숲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나무들이 많고 잡초들이 무성해서 아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 자신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숲 주변으로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형이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한참 동안 숲속에 숨어 있던 형은 우리가 자신을 찾지 못하자 그만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 무심코 고개를 돌린 형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앞쪽에 있는 상추밭에서 어떤 남자가 엎드린 자세로 형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막 넘어갈 무렵이라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째서인지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는 스멀스멀 형에게 기어 왔고 무서워진 형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단숨에 형을 따라잡았고 형의 다리를 덥석 붙잡았다. 남자의 엄청난 힘에 놀란 형은 마구 발버둥 치며 울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때마침 우리가 달려오자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형은 우리와 잘 놀다가도 가끔 혼자 멍해질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형이 착각을 했거나 거짓말을 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형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일 이후로 형이 본 것과 비슷한 형상을 봤다는 사람들의 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텃밭을 일구던 옆 동의 할머니도, 홀로 산책을 나갔던 아래층 아주머니도 공터 쪽에서 비슷한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아파트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괴담이 잠잠해질 무렵, 어느 날 텃밭에 나갔던 옆 동 할머니는 누군가 자신의 상추밭에 장갑을 버려둔 것을 보게 됐다. 할머니가 짜증을 내며 그것을 주우려는 순간

"이게 뭐야···!"

장갑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온몸이 불에 탄 시체가 텃밭 아래쪽에 묻혀 있었는데 누군가 남자의 몸을 칼로 난도질한 후 그곳에 유기한 거라고 한다. 지훈 형과 동네 사람들이 봤다던 형체는 정말로 그 남자의 영혼이었을까.

3. 17세 일본 여고생 독살 블로그 일기 충격

일본 열도가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청소년에 의한 흉악 범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자신의 친어머니를 독극물을 사용한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 사건들과는 달랐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녀는 인체 실험의 경과를 인터넷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더 충격을 줬다.

지난 10월 31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고교 1학년인 한 소녀가 체포됐다. 독극물인 탈륨을 사용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려 한 살인 미수 혐의였다. 경찰 조사에서 소녀는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화학 지식을 자랑하는 등 잡담에만 응할 뿐 사건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소녀가 어머니가 마시는 음료에 몰래 탈륨을 탄 것으로 봤다. 학교나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그 소녀는 얌전하고 성실한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해 과학 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변 사람들은 소녀가 장차 화학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지 화학적 호기심이 비롯된 것이라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이 사실은 소녀가 블로그에 올린 일기를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일기는 남성의 이름으로 쓴 것으로 그해 6월 말부터 시작됐다. 일기의 첫 부분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나 친구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7월쯤으로 접어들면서 약물이나 동물 학대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예전에 산 멀미약을 정상 복용량의 8배나 마셨다. 뭔가 공중에 붕 뜬 기분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이 든다.]

[점심때 쇼핑을 하러 걸어가고 있는데 길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가 깨져 안에서 뇌가 흘러나와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동물을 살육해 왔다. 그걸 가지고 노는 건 즐거웠지만 동시에 아주 피곤했다. 왜냐하면 시체의 처리에만 몇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체포 당시 소녀의 방에는 시험관, 비커 등과 함께 화학식이 쓰인 약품 병 등이 책장 위에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도마뱀이나 까마귀, 개구리, 고양이 머리 등이 포르말린 병에 담겨 있었는데 이 표본들은 그녀가 직접 해부하고 방부 처리한 것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표본으로 만든 동물이 부패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내용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8월 하순에는 그녀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탈륨을 손에 넣은 것과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관찰한 내용이 중심이 됐다. 만일 일기에 쓴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소녀는 자신이 탈륨에 중독된 것을 알고 스스로 해독제까지 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화학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월 19일. 어제부터 어머니의 상태가 나쁘다. 전신에 발진이 일어나고 특히 얼굴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8월 26일. 배가 아프다. 원인은 알고 있다. 어제 실수로 탈륨 수용액에 손가락을 담갔다. 바로 손을 씻었지만 손끝이 하얗게 표백됐다. 자고 일어나도 상태가 나쁘고 손과 발이 붓기 시작해서 해독제를 만들었다.]

[9월 12일. 오늘도 어머니의 상태는 나쁘다. 2~3일 전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드디어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됐다. 2층에 있는 내 방에도 올라오지 못한다.]

소녀의 어머니가 결국 10월 2일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소녀는 병원에 가서 어머니의 사진을 찍으며 상태를 관찰했다.

[10월 4일. 할머니에 따르면 어머니는 환각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있지도 않은 벌레가 있다거나 문 옆에 있는 하얀 그림자 때문에 고생이라고. 혈압은 150 전으로 내려갔지만 아직까지 멀었다.]

[10월 12일. 특별한 이상은 없음.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오빠에게 눈빛이 무섭다는 말을 들었다. 소름이 끼친다고 말이다.]

소녀의 오빠는 이전부터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 소녀가 동물을 상대로 독살 실험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를 의심한 가족은 가능한 한 그녀가 어머니와 단둘이 있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지만 소녀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머니의 컵을 씻는다고 가지고 나와서 컵 안에 탈륨을 묻혔다. 현재 피해자인 어머니는 집중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의 방에는 세 명을 독살하여 유명해진 영국의 살인마 ‘그레이엄 영’의 사진과 나치 집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소녀는 중학교 때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레이엄 영을 들고 있다. 또한 자신의 블로그에서도 ‘그레이엄 영의 <독살 일기> 존경하는 사람의 전기, 그는 14살 때 사람을 죽였다.’라고 쓰여 있다. 그레이엄 영은 1964년 14살의 나이로 의붓어머니를 비롯하여 아버지, 여동생, 동급생을 탈륨을 이용해 독살한 살인마다. 그가 의붓어머니를 독살한 원인은 증오가 아니었다. 탈륨을 이용한 인체 실험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의붓어머니를 택한 것은 단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관찰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녀의 범행 수법 역시 그레이엄 영과 흡사하여 모방 범죄로도 보인다. 이 사건은 당초 소녀의 방에서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과 독살 일기가 발견되며 자백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소녀는 ‘어머니가 탈륨 중독인 것은 알고 있지만 어머니가 혼자서 멋대로 탈륨을 마신 것이다.’라며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또한 정서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아이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는 등 마치 다중 인격자와 같은 증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에서는 ‘과연 책임 능력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나왔다.

4. 미완공 아파트의 비밀

제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이야기하곤 하는 평생 잊지 못할 해프닝에 대해 투고할까 합니다. 우리 동네에는 무려 20년이 넘도록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가 있습니다. 건설사가 부도 나는 바람에 방치된 곳인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곳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저와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절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던 그 아파트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어른들이 그러시는 이유가 뭔지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마침 여름 방학을 맞아 동네를 배회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우리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낮 1시쯤 그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한여름에 오후 1시 정도면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도로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날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파트 단지 주변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고 으스스한 냉기가 느껴질 만큼 그늘져 있더군요. 저와 친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굳게 닫힌 아파트 입구 철문에 다다랐습니다. 그 철문에는 [관계자 외 무단출입 금지. 적발 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단지 내에서 죽거나 다쳐도 해당 건설 업체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런 내용의 글이 붉은색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꼬맹이들에 불과했죠. 우리는 모두 각자 타고 온 킥보드를 내동댕이치고 작은 몸을 꾸역꾸역 철문에 집어넣어서 단지 내로 들어갔습니다.

입구로 들어서자 온갖 잡초들이 무성했고 말라붙은 피처럼 보이는 게 묻어 있는 유리 파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겁니다. 쇠 파이프는 검은 실인지 머리카락 같은 것에 칭칭 감겨 널브러져 있었고 썩은 밧줄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칼싸움을 할 수 있는 좋은 막대기들이 많다며 환호성을 내질렀죠. 그런데 그때 한겨울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아주 차가운 칼바람이 저와 친구들을 매섭게 훑고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마침 더운데 시원하고 좋다며 더 불어 달라고 까불었고 그러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칼바람이 또다시 불어왔습니다. 신이 난 저와 친구들은 키득거리며 아파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습니다.

안쪽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없는 인형과 이상한 문자가 쓰인 부적, 다 쓰고 심지가 타 버린 촛불 등 조금 괴상한 물건들이 보이더군요. 하늘 너머 우리 동네에는 강렬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아파트 내부에는 온통 싸늘한 그늘 천지였습니다. 그때부터 저와 친구들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친구 한 명이 외쳤습니다.

"야! 저기 옥상에 어떤 누나가 서 있어!"

그 말에 모두 위를 올려다보니 정말 어떤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없이 우리 쪽을 응시하던 그 여자가 씨익 하고 웃더니 옥상에서 그대로 떨어져 버리는 겁니다. 순간 우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고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여자가 뛰어내린 아파트 라인 쪽으로 어떤 남자가 올라가는 게 보이는 겁니다. 그 남자도 우리 쪽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뭔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순식간에 옥상으로 올라갔고 똑같이 투신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목놓아 울면서 바들바들 떨며 눈을 감고 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투신했던 그 여자와 남자가 코앞까지 다가오는 겁니다. 그리고

"여긴 아무나 못 들어오는데~."

이런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눈을 떠 보니 아파트 단지 입구 철문이 보였고 어스름이 깔린 저녁 해가 보였습니다. 저와 친구들의 부모님이 아파트 관계자에게 계속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계셨고 관계자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매우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네 할머니들께 혼이 났고 상황을 겨우 수습한 뒤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 가서도 아버지의 매운 회초리를 맞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됐고 시간은 10년이 넘게 훌쩍 지나갔습니다.

모두 각자의 생활에 찌들어 바쁘게 지내다 오랜만에 모인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때 그 이야기가 나왔죠. 우리는 시간을 내서 그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철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한눈에 들어오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파트 건설 담당 관계자들이 입구에서 감시를 하고 있더군요. 그분께 자초지종을 여쭤봤지만 모른다고만 하실 뿐 그 이상의 말은 아끼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그러다 7개월 전에 아파트 건설 관리자 중 한 명이 그곳에서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대체 그 아파트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또 우리가 봤던 것들은 뭐였을까요. 철없이 뛰어다니던 그 시절은 다시 돌이켜보면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새겨 준 그 아파트는 이제 두 번 다시 거들떠 보기도 싫은 곳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5.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척 오빠가 겪었던 일을 투고해 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면 항상 모든 친척이 큰집에 모여서 제사를 지냅니다. 지난 명절에도 큰집에 갔었는데 큰집 첫째 오빠의 안색이 심하게 어둡고 피곤해 보이는 겁니다. 오빠는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렇다고 했고 우리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죠.

몇 달 후, 어머니께서 오빠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당시 오빠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근처의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발소리가 들렸다는 겁니다. 집 전체가 반지하다 보니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하루는 발소리가 들리는 시간에 맞춰서 조심스레 창문을 열어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가 그 집에서 산 지 9개월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는데 오빠가 그날따라 반지하 방에 혼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시간이 이미 늦어서 딱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오빠는 두려움을 애써 참아 가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이번에는 현관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 소리에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오빠는 가위에 눌렸고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문틈으로 스르르 들어오는 게 보였다고 합니다. 검은 연기는 사람 형체로 변해서 오빠에게 점점 다가왔고 오빠는 가위를 풀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 사이에 검은 사람 형체는 몸을 타고 올라와서 오빠의 목을 졸라댔고 실랑이 끝에 겨우 가위를 풀고 보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남자인 것으로 보이는 그 검은 형체는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나타나서 오빠의 목을 미친 듯이 졸랐고 버티다 못한 오빠는 친한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한동안 친구네 집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2주일 후. 그날도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는데 마루 쪽에서 또다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빠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또다시 가위에 눌려 버렸고 매일 밤 오빠를 괴롭혔던 그 검은 형체가 오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있으면 못 찾을 줄 알았어?"

그렇게 남자는 오빠의 목을 졸랐고 오빠는 발버둥을 치다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오빠는 큰어머니께 그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놨고 큰어머니는 오빠를 데리고 유명한 무속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당이 오빠를 한번 슥 훑어보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더라는 겁니다.

"어디서 저런 잡귀를 달고 왔어!"

그렇게 무속인은 오빠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모든 상황을 알아맞혔고 잡귀의 한이 너무 깊다며 최근에 이상한 데 갔다 오지 않았냐고 묻더랍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오빠는 문득 한 달 전에 선후배들과 강원도로 MT를 갔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담력 체험을 한다고 빈집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서 어떤 열쇠고리 하나를 주워 온 겁니다. 열쇠고리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와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오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빈집에서 주워 온 그 열쇠고리를 자신이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것이었죠. 오빠는 학교 내에서 자신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강원도에 갔을 때 이런 장난을 친 것 같다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 열쇠고리를 반드시 제자리에 가져다 놔야 한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오빠는 부랴부랴 강원도로 갔고 문제의 빈집을 찾아서 열쇠고리를 놓은 후 그 집 대문 앞에서 무당이 써 준 부적을 태웠다고 합니다. 그 후로 신기하게도 오빠를 괴롭혔던 검은 형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빠는 편안하게 잠들 수가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주인을 알 수 없거나 버려진 물건은 절대 함부로 집 안에 들여선 안 된다는 겁니다. 모두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6. 탈북자 등에 업혀 온 아버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난 것은 우리 동네의 어느 식당이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요즘 식당에 가면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일을 많이 하신다. 내가 자주 가는 식당 중 한 곳도 조선족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서빙을 하셨다. 우리는 자주 보며 친해졌고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아주머니는 일도 정말 열심히 하시고 정이 참 많으셨는데 조금 독특한 영가가 그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주 비참한 모습의 남자 영가 하나가 아주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아귀인가 싶을 정도로 영가는 해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가는 아주머니를 보호하려고 할 뿐 해를 끼치려는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그냥 계속 못 본 척하고 있었다.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살아서 그런지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대충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얼굴을 저절로 익히게 됐고 혼자 갔다가 자리가 없으면 합석을 하기도 했다. 하루는 밥을 먹으러 갔다가 혼자 온 아저씨 손님과 합석을 하게 됐는데 밥을 먹으며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때 내가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아주머니도 같은 조선족이라 친근하실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저씨가 저분은 조선족이 아니라고 하셨다. 말투가 비슷해서 내가 착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가 중국을 거쳐 남쪽으로 넘어온 탈북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며칠 후, 일이 좀 늦게 끝나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 그 식당에 갔다. 혼자 살면 장 봐서 해 먹기도 애매하고 사실 귀찮을 때가 많다. 그런데 그날은 일찍 문을 닫은 것인지 아니면 쉬는 날인지 식당 간판 불이 꺼져 있었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홀에 사람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주머니가 어떤 남자와 마주 앉아서 불 하나를 켜 두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가게 앞을 기웃거리던 나를 발견하신 아주머니는 들어오라며 손짓하셨고 잠시 망설이던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총각, 저녁 먹으러 왔어?"

"네. 근데 오늘은 일찍 마치셨나 봐요?"

"오늘이 가게 쉬는 날이라 그래. 돈은 안 받을 테니까 여깄는 반찬에 한술 뜨고 가."

"그래도 돼요?"

"왜 안 되겠니? 날래 들어와. 얘는 내 친동생이야."

아주머니의 동생분은 서울에서 일을 하는데 마침 서로 쉬는 날이 많아서 아주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으며 두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런데

"누나, 이제 잊어버리자. 아바지는 돌아가신 게 틀림없어."

"뭐이 어드래?!"

(짝!)

"누나!"

"종간나 새끼, 니 아바지 돌아가셨단 말을 우이 그래 쉽게 하니?! 너 오늘 내 손에 죽어 보갔어?"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다가 날벼락을 맞은 나는 순간 얼음이 돼 버렸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내 흥분을 가라앉힌 아주머니는 나에게 급히 사과를 하셨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아주머니는 북한의 평범한 노동 계급인 부모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셨다. 아래로는 네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날 봤던 분은 아주머니의 막냇동생이었다. 잘 살지는 못했어도 가족 모두 밥을 굶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막냇동생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동구권의 공산 국가들이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북한에도 그 유명한 고난의 행군 시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간혹 혼자 사는 분이 고독사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이 있지 않은 한 굶어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무려 급식을 하는 곳도 있고 도시락 봉사 같은 일들이 나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달랐다. 특히 그 무렵에는 자고 일어나면 누가 굶어 죽는 게 일상다반사였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사람의 시신을 먹었다는 끔찍한 소문이 끝도 없었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힘들다 힘들다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투정인지 알 것 같았다.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주머니와 막냇동생뿐이었다. 내 또래였던 동생분은 키가 160cm가 채 되지 않았는데 북한에서는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키라고 한다. 굶주림 때문에 자식을 셋이나 잃은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지키려고 음식이 있으면 모두 아주머니와 동생에게 주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아주머니의 어머니는 차디찬 얼음장 같은 방에서 동사하고 말았다. 그 후로 아주머니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험한 일부터 도둑질까지 안 해 본 게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셨는데 그때 감시가 너무 심해서 어른인 아버지 대신 어린 남동생만을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중국에 도착한 두 사람은 얼마 못 가서 헤어지게 됐고 아주머니는 중국의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혀서 시골로 팔려 가셨다고 한다. 그러다 극적으로 남동생을 다시 만난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연락을 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셨고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지 아버지의 편지를 받게 되셨다. 아주머니는 아버지를 탈북시킬 계획을 세워서 편지를 보내고 국경 너머로 아버지를 마중 나가셨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약속 장소에 나오시지 않았다. 아버지의 탈북을 도우러 갔던 브로커가 돈만 받고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소식이 끊긴 아주머니는 울면서 남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진을 꺼내 나에게 보여 주셨다. 사진 속에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을 본 나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바로 아주머니를 따라다니는 그 영가였다. 아마 그날 아버지는 약속 장소에 오셨을 것이다. 산 사람이 아닌 영혼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마 그 이후로 아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계속 따라다니신 것 같다.

아주머니가 중국을 탈출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것은 아주머니를 돈으로 샀던 늙은 중국인 농부였다. 그는 아주머니를 젊은 첩으로 들였는데 동생과 아버지를 찾는 것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감시가 너무 심했다고 한다. 그런 아주머니가 어렵게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중국인 농부가 급사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좀 있어도 아주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아주머니를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영혼이 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영가에게서 가끔씩 번뜩이는 광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눈빛부터 다르다고 하듯이 영혼도 그렇다. 사람을 죽여 본 영혼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니 말이다. 평범한 영혼은 사람을 해치면 자신도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꼭 받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이 많거나 한번 마음먹고 덤비는 영가는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판사판 공사판인 것이다. 그런 귀신을 통상적으로 악귀라고 부르는데 그 아버지 영가가 그랬다. 평소에는 아주머니를 항상 측은하게 바라보시고 아주머니에게 친절한 사람들 역시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신다. 그런데 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막 대하는 인간들 있잖은가. 손님이 왕이네 뭐네 하면서 꼴 같지 않은 갑질을 하는 인간들 말이다. 아주머니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아버지 영가는 엄청난 살기를 뿜으시는데 그 기운이 분명히 사람을 해쳐 본 기운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나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진다. 사람을 해친 악귀가 지나가던 특공 저승사자 눈에 띄면 바로 붙들려가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수차례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돕는 것을 느끼셨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제들이 도운 거라 믿고 계시지만 나는 아버지 영가가 아주머니를 도우셨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는 아버지는 꼭 살아 계실 거다, 언젠가는 꼭 찾을 거다 하셨고 그런 아주머니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 말을 믿지도 않으시겠지만 아주머니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사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가에게 새겨진 상처들을 보아하니 아버지는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신 것 같았다. 아마도 탈북 계획이 발각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꼭 다시 만나실 거라며 아주머니를 위로했고 사진관에 가면 바로 어제 찍은 것처럼 가족사진을 다시 만들어 준다고 알려 드렸다. 나중에 새로 보정한 사진을 보니 정말 잘 나와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께 탈북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많으니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분명히 몇 번을 더 속으신 것 같다. 제발 아주머니가 더 이상 마음을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7. 운명과 우연의 경계선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많이 약했습니다. 툭하면 코피를 쏟았고 자주 체하기도 했으며 감기를 늘 달고 살았습니다. 산에 사시는 저의 할아버지 역시 젊으셨을 적에 몸이 무척 약하셨다고 하는데요. 열이 40도가 다 되는 상태로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무속인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와서는 집 안을 노려보더니 신이 노했다며 대뜸 신내림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했답니다. 할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할아버지를 신내림 받게 하셨고 그러자 할아버지의 열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집에 불상을 모시게 됐고 점사를 보며 부적을 쓰는 일을 하셨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제가 초등학생 때,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던 그날 할아버지께서 집에 전화를 거셔서는 저를 빨리 집에 데려오라고 마구 화를 내셨다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꿈을 꾸셨는데 다리가 없는 귀신이 나타나서는 제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제가 다쳤던 다리가 바로 오른쪽 다리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물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하마터면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할아버지께서 예지몽을 꾸셨답니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저를 근처에서 낚시하는 분이 끌어올려 주셨는데 심하게 부어오른 제 다리에 손자국 같은 게 찍혀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향에 자꾸만 불이 붙지 않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제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던 그 전날에는 손가락이 없는 남자가 물 밑에서 저를 끌어내리는 꿈을 꾸셨다고 하더군요. 성인이 된 저는 입대를 하게 됐고 군대에서의 마지막 휴가를 두 달 정도 앞두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저에게 손을 흔드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 후에 마지막 휴가를 나왔는데 할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더군요. 저는 가족들에게 화를 내며 왜 알리지 않았냐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저를 절대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라는 말씀과 함께 부적 하나를 유품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저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됐고 그러다 나이를 먹으며 제 생활을 찾게 됐고 어엿한 직장인이 됐죠.

하루는 회사 사장님 지인의 부탁으로 현장 파견을 가게 됐는데 어느 시골에 길을 내는 작업의 보조를 맡게 됐습니다. 사장님과 부장님을 모시고 차로 한 시간 거리의 현장으로 갔는데 그곳이 마침 할아버지가 사셨던 곳과 가깝더군요. 당시 내성 발톱 때문에 수술을 받고 슬리퍼를 신고 다녔던 저는 부장님의 지시로 안전화를 신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현장에 도착해서 잠시 쉬면서 담배를 피웠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논두렁 같은 곳에 서서 마구 웃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여쭤봤더니 아주머니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딸까지 사고로 죽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살던 동네에도 그런 분이 있었기에 저는 참 안타깝게 생각했고 준비를 마친 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 자체는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멍해진 사이에 포크레인에 걸어 둔 부자재가 떨어졌고 그 순간 저는 누군가 확 밀치는 느낌을 받으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흐흐흐··· 아깝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안전한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라앉힐 겸 담배를 꺼냈는데 그때 부적이 바닥에 툭 떨어지더군요. 그것을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께서 여전히 나를 지켜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심한 부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저도 나쁜 일과 관련된 꿈을 꿀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번은 신기 있는 아는 형님을 만나서 술을 마시게 됐는데 형님이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꿈 이야기 같은 것을 함부로 하지 말라더군요. 제 기운이 많이 강해서 걱정이 된다며 말입니다. 사실 저의 할아버지가 봉산 심법사님이라고 해서 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었거든요. 살아 계셨을 때는 물론 돌아가신 후로도 여전히 저를 걱정하고 아껴 주시는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든든한 느낌이 들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할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을 덧붙여 봅니다.

"어떤 존재가 내 눈에 보이고 소리가 들려도 절대 아는 척하지 마라. 그리고 흉가에는 절대 발도 들이지 말고.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들이 많으니까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마라."

8. 그녀와 헤어진 이유

제가 20대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시 26살이었던 저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서 회식을 하다가 옆 테이블에 있는 여성분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고 용기를 낸 끝에 그녀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영안이라고 불리는 불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여자 친구 역시 어릴 때 귀신을 본 적이 몇 번 있다며 종종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불꽃 축제까지 구경한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습니다. 깔끔한 시설과 분위기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했는데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었는지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기분 좋게 씻고 나와서 그녀 몰래 준비한 케이크와 와인을 꺼내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기분이 확 나빠지는 겁니다. 눈을 떠 보니 그녀와 제가 마주 보는 자세로 누워 함께 자고 있었는데 바로 그 뒤쪽에 20대 중반 정도로 돼 보이는 여자 귀신이 입가에 기괴한 미소를 지은 채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영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탓에 꾸준한 기 수련과 어떠한 의식을 통해서 정신을 단련한 저는 이제 그 정도 귀신에는 놀라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살짝 움찔하며 몸을 움직이자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고 저는 비몽사몽한 그녀를 설득해서 숙소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잠이 깨도록 세수라도 하고 오라며 그녀를 화장실로 보낸 후 저를 계속 노려보고 있는 귀신을 무시한 채 태연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습니다. 그런 존재를 아는 척하거나 놀라는 행동을 보이게 되면 오히려 착 달라붙거나 계속 따라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 당시 화장실 한쪽 벽면이 불투명한 유리로 돼 있었는데요. 그녀는 그게 몹시 창피하다며 화장실 불을 켜지 않고 욕조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귀신이 그녀가 있는 화장실로 슬금슬금 기어가는 겁니다. 그러더니 욕조를 밟고 올라서서는 그녀의 뒤에 서서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며 춤을 추는 듯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 소리를 지른다거나 그녀를 데리고 나오는 행동은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굳이 제가 본 것을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귀신이 춤을 추는 동작을 멈추더니 몸을 쭉 뻗어서는 허리를 숙인 채 그녀의 얼굴을 노려봤고 그녀도 그것을 봤는지 호텔이 떠나가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보니 그녀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몸을 흔들어도 보고 뺨까지 때려 봤지만 눈이 완전히 뒤집어진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충 옷을 입힌 후 그녀를 업고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녀의 비명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갔는지 다른 손님들과 직원들이 저희가 머물렀던 객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연락을 받으신 그녀의 부모님이 와 계셨고 저는 온갖 욕설과 함께 뺨까지 얻어맞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가 없었고 연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그녀는 예전의 밝고 환한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은 다행히 정상적인 생활을 찾은 것 같더군요. 그녀를 너무 사랑했고 너무 그리워했기에 SNS를 통해서라도 연락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도 가끔 했었습니다. 저도 제가 참 무책임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저도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사실 그날 그녀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길에 귀신에 빙의된 그녀의 모습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고 말았거든요.

"후후후··· 우리 이제 1일이야."

아직도 그 목소리와 표정이 잊히지 않네요. 그녀가 어디에서든지 행복하고 건강하기만을 빌겠습니다.

9. 인천 관교동 아파트 공포 실화

우리 가족이 인천 남구 관교동의 모 아파트에 살았을 때의 일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때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2001년의 봄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관교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당시 그 집이 109동 104호였습니다. 그곳은 보통 전세, 시세의 반값 정도 되는 가격으로 부모님은 깨끗한 집을 저렴한 값에 구했다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때 부모님은 맞벌이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집에 단둘이 남게 된 저와 연년생 동생은 작은방에서 밤늦도록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곳으로 이사 간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날도 작은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저는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한 열병에 시달리며 한 학기 동안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밤이 되면 무서워서 일부러 방문을 열어 둔 채 게임에 몰두했는데 그때마다 안방 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리 와··· 이리 와··· 어서··· 어서···."

그리고 열이 심해서 안방에 누워 있으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닿는 여자가 자꾸만 보였습니다. 저와 동생이 심하게 무서워하자 부모님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친척 누나와 초등학교 6학년인 동네 누나, 그리고 어머니 친구분께 부탁을 하셨고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집으로 와서 우리를 돌봐 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 집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친척 누나는 안방 화장실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수도꼭지를 잠그러 갔다가 누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긴 머리의 여자를 봤다고 했습니다. 동네 누나는 우리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좋아해서 집에 자주 놀러 왔었는데 베란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매번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자 동네 누나는 결국 우리 집에 발길을 아예 끊어 버렸죠. 하루는 우리가 이모라고 불렀던 어머니 친구분과 함께 공포 관련 프로그램을 봤는데 프로그램이 끝나며 잠시 동안 까맣게 변한 TV 화면에 웬 여자 얼굴이 쑥 올라오는 겁니다. 저는 TV 화면을 가리키며 울면서 이모의 등 뒤로 숨었고 이모는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며 저를 달래 주셨습니다. 그 일 이후로 친척 누나와 이모마저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 집에 오지 않았고 저는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해야 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안방에 누워 있으면 베란다 쪽에서 저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를 따라서 저도 모르게 베란다로 갔다가 기절하기도 했었죠. 어머니 역시 안방 욕실에서 긴 머리의 여자를 보시는 일이 잦아졌고 심한 가위눌림 때문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용한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셨고 하루빨리 이사를 가라는 무당의 말에 우리는 결국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사를 갔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30대 여성분이 그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됐다는데요. 그분 역시 긴 생머리의 여자를 목격했고 3개월을 못 채우고 이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아파트가 들어선 그 터가 과거에 공동묘지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런 오싹한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요.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이 됐지만 저는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10. 호텔 보안 알바 공포 실화

제가 군대 가기 전이었으니 1998년 여름이었을 겁니다. 그때 저는 친구와 함께 E 호텔에서 보안직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우리는 밤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야간 근무를 했는데 주로 새벽에 객실을 돌면서 술에 취한 사람이나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순찰을 도는 일을 했습니다.

장마철의 어느 날. 그날은 인원이 부족해서 저 혼자 순찰을 돌게 됐습니다. 순찰은 총 20층으로 돼 있는 호텔 꼭대기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후 건물 각 층의 양쪽 끝에 있는 비상구를 통해서 한 층씩 내려오며 객실을 도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저는 평소대로 객실을 한 층씩 살펴보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곳 중 하나가 16층에 있는 커피숍과 12층에 있는 비상구였습니다. 불이 모두 꺼진 새벽의 커피숍은 빈 의자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섬뜩했고 12층의 비상구는 항상 전구가 나갔기 때문입니다. 순찰 일지에 늘 전구 교환이라고 써 놓는데도 다음 날 출근해 보면 전구가 꺼져 있었죠. 갈아도 갈아도 전구가 또 나간다는 겁니다. 전류가 이상하다느니 배선이 잘못됐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빗소리를 들으며 12층 비상구를 무사히 지나쳐 객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객실 끝 쪽에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 검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가 시간이 새벽 2~3시 정도 됐을 때라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아, 안녕하십니까."

얼떨결에 제가 한 말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제 넥타이가 달린 쪽을 지긋이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죠. 내 눈을 쳐다보지 않는 게 왠지 더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몸을 돌려서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이 호텔의 구조 자체가 직선이 아닌 안쪽으로 조금 휘어져 있는 구조라 모서리만 돌아가면 그 여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모서리까지 걸어가는 그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서리를 돌아간 후에 멈춰 서서 조심스레 여자가 앉아 있던 곳을 바라봤는데 순간 욕이 나오더군요. 그 사이에 여자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새벽의 객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서 문을 여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가 그대로 다 들립니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마구 뛰어가면서 귀신이 나타났다는 무전을 보냈습니다. 로비로 내려가 보니 무전을 받은 사람들 모두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죠. 당직 차장과 팀장님, 벨맨까지 다 올라가서 확인하고 CCTV까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제가 영락없는 겁쟁이로 낙인찍힐 판이었습니다. 진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답답할 따름이었죠.

그런데 한 시간 정도 후에 당직 차장님께서 저를 살짝 부르시더니 진짜로 봤냐, 진짜 검은색 원피스가 맞더냐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진짜 본 게 확실하다는 제 대답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던 차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년 전에 호텔에서 자살한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약혼한 남자와 헤어지게 된 것을 비관하여 호텔 17층에서 목숨을 끊었다는데 호텔 창문은 위쪽으로 완전히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객실에서는 뛰어내리지 못하죠. 하지만 비상구라면 가능합니다. 바로 호텔의 한가운데에 있는 또 다른 비상구인데 그곳이 원통형의 구조라 1층에서 20층까지가 훤히 보이도록 돼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그곳은 완전히 폐쇄됐는데 차장님도 야간 근무 때 16층 커피숍에서 그 여자를 봤다고 합니다. 누군가 커피숍 안에 앉아서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얼핏 보니까 하체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그곳에서 근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일주일 후에 일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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