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부탁드립니당

무서운 이야기 부탁드립니당

작성일 2023.01.15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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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1. 강원도 원주 <사랑의 집> 사건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에는 하나님의 복지 법인 사랑의 집(이하 사랑의 집)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의 대표 장진남 목사는 1964년부터 스물한 명의 장애인을 입양해 그들을 친자식처럼 돌봤고 장애인의 복지에 여러모로 힘을 쏟으며 일명 천사 아버지’로 이름을 알렸다. 군 제대 후 대구에서 전도사로 일하던 장 씨는 길에서 우연히 장애아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인근 야산의 폐가를 개조해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이런저런 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갔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이후에 수차례 언론을 타며 유명세를 얻게 됐고 사랑의 집을 후원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 후로 몇 차례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후 그는 1996년에 강원도 원주 용암리 산골에 터를 잡고 정착했다. 그의 선행과 희생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장 씨에 의해 철저하게 짜인 각본이었다. 그는 직함만 달고 있을 뿐 정식 안수를 받지 않은 가짜 목사였고 뒤로는 장애인들의 수당을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집 원생들은 모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으며 장 씨의 주도하에 심한 폭행과 물고문 등의 학대를 당했다. 손발톱을 빼거나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등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무려 네 번의 탈주를 시도한 원생도 있었다. 장 씨는 보호받아야 할 이들에게 하루 종일 강제 노동을 시켰으며 그들을 억지로 삭발시키고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장애인, 환자라는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심지어 그는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원생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기까지 했다. 당시 원생 중 한 명이었던 임 모 씨는 장 씨가 종종 알몸 상태로 여자 원생에게 안마를 시키거나 그녀를 때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는데 정황상 성적 학대와 성폭행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학대를 견디지 못해 숨진 원생들만 무려 여섯 명. 그들은 사망 당시 사랑의 집이 있었던 서울 강서구 발산동의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다고 한다. 그곳에 재개발이 진행되며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그 과정에서 일곱 점의 유골이 발견됐지만 그들의 신원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끔찍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추악한 실상은 2012년 6월 처음으로 방송에 보도됐는데 놀랍게도 장 씨는 사망한 두 원생 남녀의 시신을 무려 12년째 병원 냉동고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 이렇게 그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악랄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남매의 장례를 치르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들 앞으로 나오는 국가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였다. 장 씨는 친부모는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사랑의 집에 맡겨진 원생들을 입양했고 자신이 아이들의 친권자가 된 후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챙겼다. 그는 네 명의 장애인을 스물한 명으로 부풀려서 호적에 올렸는데 사진을 조작하거나 출생 신고나 주민 등록 등을 이중으로 올리는 등의 수법으로 아이들의 수를 부풀렸다. 그렇게 국가에서 받은 보조금만 2억 원에 후원금이 무려 5억 원이었다. 그는 취재진과 경찰들에게 폭언과 욕설, 저주를 퍼부었고 그들에게 온갖 혐의를 씌워 고소를 하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와 인권 단체가 장 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고 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방송사의 취재 내용을 증거로 답변확정해 조사를 시작하게 됐으며 검찰은 사랑의 집을 압수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장 씨가 불태운 서류의 흔적과 개의 뼛조각들이 마당 한편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 구속된 장 목사는 자신이 췌장암 환자라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서는 끝내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자신은 무고하다고 발악을 했다. 이런 인간이 1심 재판부에서 받은 판결은 고작 징역 3년 6개월. 당시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경찰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네 명의 원생들은 모두 구출되어 다른 시설로 옮겨졌는데 그중 장 모 씨는 안타깝게도 직장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아이들을 짓밟았던 30년의 세월 동안 결정적인 증거들이 많이 소실된 상태며 장 씨가 당시 원생이었던 피해자들을 전혀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살아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증언으로 답변확정될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6월 20일, 원주 대책 위원회는 장 씨를 살인죄로 추가 고소했고 12차 공판이 열렸으며 2015년 5월에는 대법원에서 장 씨의 친권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2. 전북 익산 살 적의 공포 실화

저는 현재 부산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제가 중3 때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겪었던 일을 투고해 보겠습니다. 당시 저는 예고 진학을 목표로 입시 학원에 다녔었는데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 동네에는 슈퍼가 딱 하나 있었고 버스 정류장도 두 곳뿐이었습니다. 집 근처에 사는 이웃도 전혀 없었고 온통 빈집과 나무뿐이었으며 가로등조차 몇 개 없었죠. 그리고 집 주변에 무덤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서 놀았다가 할아버지께 혼이 나곤 했습니다.

그날도 저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밤 11시 반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늘 그렇듯 그 시간에는 저와 같이 내리는 사람이 아예 없었습니다. 저는 주변을 한 번 슥 둘러본 후 집을 향해 홀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류장의 가로등 불빛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누군가 저를 쫓아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등골이 오싹해졌고 옆쪽의 대나무숲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각에 저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문제는 집으로 올라가는 산길이었습니다. 이 산길에 들어서면 그나마 서너 대씩 지나다니던 차들도 보이지 않고 가로등 대신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길이 너무 어두워서 손전등을 켜고 올라갔는데 큰 도로가에서 멀어질수록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조금씩 흐려지는 겁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와 나무들이 흔들리며 분위기가 음산해졌고 그렇게 5분 정도 걸어가니 시든 꽃다발과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인 묘지 터가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더욱더 선명해졌고 저는 뒤를 한 번 확인한 후 후다닥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길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자주 다녔던 길이라 할머니 생각을 하며 무서움을 꾹 참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길 끝에 소복을 입은 누군가가 서 있을 것만 같은 망상마저 들었죠. 그날은 눈을 질끈 감고 길을 지나갔는데 바람 소리가 유독 심하게 들리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몸에 바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바람이 그렇게 심하게 부는데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걸음을 재촉해서 집 앞에 도착해 보니 그동안 저에게 한 번도 짖지 않았던 우리 집 백순이가 저를 보며 미친 듯이 짖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대략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비쩍 마른 남자의 실루엣이 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둡고 먼 거리에서도 남자의 움직임과 씩 올라간 입꼬리가 제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저는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 후 힘을 세게 주다가 그만 문 손잡이를 부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근 후 모든 창문에 커튼을 치고 화장실에 숨어서 덜덜 떨기를 한참 후,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지만 그래도 불안하셨던지 며칠 후 집 근처에 CCTV를 4대나 설치하셨죠. 가끔 고향에 갈 때면 그날의 일이 떠오르고 CCTV를 보면 누군가 뛰어다니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제가 그렇게 아꼈던, 평소에 무척 건강했던 백순이는 그로부터 한 달 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제가 본 사람 형체는 뭐였으며 백순이는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인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3. 새벽의 비명 소리 그리고 악취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누나를 통해서 심령 현상과 그런 장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유명하다는 심령 스팟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하루는 동네 뒷산의 폐교에 갔다가 거기서 주운 염주를 차고 다녔는데 그 이후 간접적으로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됐습니다. 심한 가위눌림을 겪고 이상한 형체를 자주 목격하며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폐교에서 주워 온 염주를 보셨고 어머니는 염주 가운데에 새겨진 도깨비 문양을 보며 기겁을 하시더니 당장 버리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자주 접속하는 공포 카페에 염주 사진을 올렸더니 무당이 굿을 할 때 쓰는 거라고 하더군요. 문제의 그 염주를 곧바로 버렸지만 기분이 너무 찝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올해 5월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첫날부터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사를 가는 집이 같은 아파트의 바로 옆 라인에 있는 호수라 짐만 옮기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사 갈 집은 짐 정리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았던 겁니다. 부동산 사람과 대판 싸운 후 청소를 하고 짐을 옮겼는데 집 안은 이런저런 잡동사니로 엉망이 돼 있었죠.

며칠 후. 하루는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어떤 하얀 형체가 슥 지나가는 게 보였습니다. 형체를 몇 번이고 목격했지만 저는 애써 잘못 본 거라 믿었고 집 안의 불을 다 켜 둔 채 방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드르르르륵)

어디선가 묘하게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소리는 점점 커졌고 몸을 일으켜 귀를 기울이려는 순간

(으아아아아아악─)

그 소리는 안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고 저는 혼자 주무시고 계실 어머니가 걱정돼 제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다 켜 뒀던 집 안의 조명들이 모두 꺼져 있는 겁니다. 천천히 안방으로 가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린 저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온통 하얀 옷에 긴 팔다리를 늘어뜨린 사람의 형체가 관절을 기괴하게 꺾으며 기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너무 놀라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더군요. 제 시선을 느꼈는지 형체는 어느 순간 스르르 사라져 버렸고 저는 미친 듯이 안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안방에 정자세로 누워 계신 어머니가 팔을 쭉 뻗으신 상태로 제가 들었던 그 이상한 소리를 내고 계신 겁니다. 어머니를 부르며 팔을 툭 치자 어머니는 무언가에 놀라신 듯 벌떡 일어나서는 제 이름을 마구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일어나시는 순간 생전 처음 맡아 보는 심하게 불쾌하고 역겨운 악취가 풍겨왔습니다.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된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꿈에 횃불이 길게 늘어선 기와집이 보였고 어머니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기와집 제일 끝 쪽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누우셨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의 여자아이들과 같이 누워 있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옆에 웬 남자 하나가 누워 있더랍니다. 손톱이 아주 길고 새까맸던 그 남자는 온몸이 심하게 마른 상태였다고 합니다.

"너 누구야? 너 누구야? 너 누구야?"

그렇게 남자는 시선을 피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마구 기어 다녔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어머니는 손에 든 휴대폰으로 저에게 전화를 거셨답니다. 그 순간 남자는 어머니의 양팔을 꽉 눌렀고 손톱이 피부에 닿는 느낌도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때 제가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고 어머니께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살려 달라고 소리치자 남자가 어머니의 목을 잡아서 아예 눌러 버렸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안간힘을 쓰며 소리를 세 번 지르셨고 그러자 남자가 방 밖으로 조용히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꿈에서 깨셨는데 제가 옆에서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있었던 거죠. 제가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어머니 역시 꿈을 꾸실 적에 그 악취를 맡았다고 하시더군요. 정확히는 그 남자에게서 그런 역한 냄새가 났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날이 밝는 대로 새벽 기도를 하러 가셨고 밤을 꼬박 새워 버린 저는 점심 무렵이 다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간밤의 일이 떠올라서 확인차 베란다로 갔는데 제가 그 이상한 형체를 봤던 자리에 악취가 나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있는 겁니다. 그 냄새 나는 액체는 사실 이 집에 이사를 들어오는 날 청소를 할 적에 안방 침대 밑에서 발견했던 것으로 어머니와 제가 맡았던 그 악취와 비슷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 집사님과 목사님이 집으로 오셨고 신방 예배를 하셨습니다. 다행히 그 뒤로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 악취를 풍기는 액체는 뭐였을까요. 혹시 제가 폐교에서 주웠던 염주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이 집에 살았던 아주머니의 남편이 세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됐는데 혹시 그분과 어떠한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모든 것은 의문으로 남게 됐습니다.

4. 내가 실제로 겪은 여러 가지 공포 실화들 (1편)

저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풀어 보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중계동에 있는 학원에 다녔습니다. 학원의 화장실은 남자용과 여자용이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었는데 남자용의 변기 칸이 여자용의 세면대와 붙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하루는 학원에 다니는 누나들이 새벽까지 남아서 공부하다 화장실에 갔는데 남자 화장실과 붙어 있는 벽 쪽에서 누군가 벽을 쿵쿵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정작 남자 화장실에는 불도 꺼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는 제가 고3이 될 때까지 꾸준히 소문으로 돌았는데 저는 입시 스트레스를 받은 학생들이 환청을 들었거나 과장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능을 치른 후 대학교 입학만을 앞둔 어느 날, 평소 영어를 좀 했던 저는 영어 선생님과 친해서 개강 전까지 영어 수업 조교를 맡게 됐습니다. 그 시기에는 주로 예비 고3들을 위한 특강 수업을 진행해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이 꽉 차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도와 수업 준비를 하느라 학원 교무실에서 자주 밤을 새우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저는 같이 학원에 다녔던 친구와 교무실에 남게 됐고 영어 선생님은 다른 과목 조교 형과 간단히 술을 드시러 가셨습니다. 친구와 학원 로비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과 조교 형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저와 친구는 두 사람을 놀래켜 주려고 강의실 구석 쪽에 숨었습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온 후 곧장 화장실로 갔는데 화장실 안에서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교 형이 로비로 후다닥 뛰어나와서는 뭔가에 크게 놀란 듯 욕을 마구 내뱉는 겁니다. 조교 형은 혼잣말로 계속 욕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선생님은 수업 준비가 얼마나 남았냐 물으시더니 나머지는 내일 아침 일찍 하고 짐을 챙겨 나오라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근처 술집으로 데려가셨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때까지도 조교 형의 안색이 심하게 창백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변기 칸 안에서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문을 똑똑 두드리자 안에서 다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은 저나 친구 둘 중에 한 명인 줄 알고 이름을 불렀는데 아무리 불러도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교 형이 옆 칸으로 가서 변기를 밟고 올라가 봤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순간 크게 놀라고 당황한 조교 형이 욕을 하며 그렇게 로비로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저와 친구는 그동안 학원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털어놨고 선생님은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학생들 학습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며 오늘 이 일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체 그 남자 화장실에는 뭐가 있었던 것일까요. 정말로 귀신이 안에서 문을 두드렸던 것일까요.

시간이 흘러 대학교 3학년이 된 저는 동기와 함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자취방은 학교 서쪽의 작은 하천 건너편에 있는 작고 조용한 곳으로 거실과 욕실, 방 두 개가 있는 구조입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 1학기 기말고사 기간부터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다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거실로 나와 봤더니 화장실 전등 커버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집에 처음 입주할 때 제가 새 형광등을 사서 화장실 조명을 직접 교체했는데 그때 혹시라도 허술하게 하면 유리가 떨어져서 다칠까 봐 제가 분명히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확인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밤중에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먼저 욕실로 들어간 동기가 저에게 다짜고짜 자기 칫솔에 손대지 말라고 하더군요. 동기는 칫솔을 습관처럼 늘 같은 자리에 두는데 전날 밤에 분명히 확인을 해도 다음 날 아침만 되면 칫솔이 다른 자리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성격에다 제 칫솔이 뻔히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상태가 아니고서야 동기의 칫솔에 손을 댈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서로 뭔가 착각한 거라 생각했고 그 일을 그렇게 넘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는 시험을 마친 후 평소 친하게 지내는 다른 과 동생 두 명을 자취방에 불렀고 조촐한 종강 파티를 했는데요. 시간이 많이 늦어서 동생들을 동기 방에서 재우고 저와 동기는 제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한밤중에 제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우리를 다급히 깨우는 겁니다. 동기의 방에는 불투명한 유리로 된 작은 베란다가 있었는데 에어컨 실외기가 베란다에 있었습니다. 실외기 때문에 베란다 문이 자꾸만 열려서 아예 잠가 뒀었는데 그날 새벽에 누군가 밖에서 베란다 문을 열려는 듯 자꾸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까지 들려서 동생들 중 한 명이 문을 확 열어젖혔는데 그 베란다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집 안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동생들의 말까지 들으니 더욱 무서워지더군요. 그날 우리는 거실에 다 같이 모여서 잠에 들었습니다. 이게 최근에 겪었던 일인데요.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너무 두렵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인 아버지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할아버지의 얼굴도 잘 모릅니다. 어릴 때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자주 보지 못했다 하셨고 할머니 역시 평소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잘 안 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거라고는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꽤 힘 있는 군인이셨는데 전역 후에 갑자기 술이 늘어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다는 정도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할머니께서 암 수술 때문에 대학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할머니가 워낙 고령이셔서 수술 후에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셨습니다. 하루는 할머니를 뵈러 병원에 갔는데 그날은 할머니께서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꿈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장난으로 UDT에 들어가서 훈장을 타다 할머니 목에 걸어 드리는 게 꿈이라 했는데 그 순간 할머니께서 정색을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어라. 생긴 것도 지 할아버지 어릴 때랑 똑같아갖고는···. 할아버지처럼 되려고 그러냐?"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젊으셨을 때 중정에서 일하셨는데 미군과도 가깝게 지냈고 북한에도 몰래 몇 번을 다녀오셨다는 겁니다. 소위 힘깨나 있으셨다는 할아버지는 계엄령이 떨어져도 술을 마시며 놀다가 형사들에게 잡혀가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곧바로 풀려나셨다고 합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께 할아버지에 대한 것을 좀 더 여쭤봤는데 서울과 속초를 오가며 일하셨던 할아버지는 속초에서 훈련시킨 부대원들과 함께 실제로 북파도 몇 번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셨는데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군복과 함께 M16 소총이 아닌 AK 소총을 차고 계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속초에 군 정보 사령부 산하의 북파 공작 부대가 있었고 당시의 국정원인 중앙정보부와 미국 CIA와 함께 북파 공작을 시행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정보 사령부의 높은 요직에 있는 장교셨거나 중앙정보부의 간부 정도 되셨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었죠. 시간이 흘러 퇴직을 하신 할아버지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며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깊이 잠들기 위해서 술을 그렇게 많이 드셨다고 하는데 그 술 때문에 병을 얻어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던 것이죠. 그로부터 얼마 후, 할머니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셨는데 뒤에 인민군 복장을 한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데려가야 한다며 그 사내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고 할머니는 이미 죽은 사람이 감히 자기 자식을 데려갈 생각을 하냐며 몽둥이로 할아버지를 내쫓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친구분과 함께 차를 몰고 나가셨다가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셨습니다. 아버지의 차가 반파될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그때 같이 타고 있었던 친구분은 중상을 입고 입원했지만 아버지는 다리에 멍이 들었을 뿐 무사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쫓아내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지 못했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북파됐을 당시 할아버지의 손에 죽은 북한군의 영혼이 할아버지를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북한군의 영혼이 죽어서도 그 복수를 하기 위해 아버지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기지로 아버지가 무사하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5. 내가 실제로 겪은 여러 가지 공포 실화들 (2편 完)

한 달 전에 <내가 실제로 겪은 여러 가지 공포 실화들>이라는 이야기를 투고했던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며칠 전까지 동기와 함께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지내다가 자꾸만 반복되는 이상한 일들 때문에 현재는 각자의 본가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1학기가 끝나고 계절 학기와 여름 방학 동안에는 딱히 이상한 일이 없었습니다. 1학기 동안 겪었던 일들은 술자리 안주로 삼을 만큼 저와 동기 둘 다 무덤덤해진 상황이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기가 시작됐고 여느 때와 같이 욕실에서 씻고 있는데

(삐 삐 삐 삐 삐 삐 철커덕 띠릭─)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쿵쿵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닌 후에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밖에 나갔던 동기가 집에 잠시 들른 거라 생각했습니다. 몇 시간 후,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동기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동기가 집에 들렀던 적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옆집에서 나는 소리를 착각한 거라 여기고 그냥 넘겼습니다. 다음 날, 동기는 외출을 하고 혼자 집에서 씻고 있는데 또다시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열리는 겁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누군가 쿵쿵거리며 거실을 지나 동기의 방으로 들어갔고 저는 강도라도 들었으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샤워를 하며 음악을 틀어 둔 상황에서 저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기의 방으로 들어갔던 발소리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집 안을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곧장 동기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신고를 할까 하다가 집주인에게 말씀드린 후에 입구 중앙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학교와 PC방, 친구 집 등을 전전하며 자취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그로부터 몇 주 후에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본가가 있는 서울로 갔고 함께 사는 동기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자취방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긴 연휴를 보낸 후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 동기의 표정이 썩 좋지 않더군요. 동기의 말은 이랬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여자 친구와 집에서 음식도 해 먹고 영화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휴 마지막 날 밤중에 여자 친구가 동기 녀석을 깨워서는 베란다에 누가 있는 것 같다며 무섭다고 했다는 겁니다. 불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귀를 기울여 보니 베란다 쪽에서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고 용기를 내서 베란다 문을 확 열어 보니 텅 빈 베란다에 슬리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기분이 몹시 불쾌해지더군요. 집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작년 말에 주인이 바뀐 상태였고 우리는 어렵게 예전 집주인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냥 끊어 버렸는데 다음 날에 예전 집주인이 우리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자취방에 찾아오신 겁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우리들이 겪었던 일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나 참··· 도둑이라도 든 줄 알고 놀라서 왔더니. 젊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겁이 많아? 이 집은 아무 일 없이 멀쩡해.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착각한 모양인데 살다 보면 귀신보다 훨씬 무서운 게 사람이야. 그러니까 문단속들 잘 하고 살아."

그렇게 집주인은 우리를 달래 주셨지만 무서움을 떨칠 수 없었던 우리는 한동안 동기의 방에서 같이 잠을 잤습니다.

며칠 후, 동기 방 침대에 누워서 졸음을 참으며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오른쪽 귀가 간지러워졌습니다. 귀를 한두 번 긁고 말았는데 그 간지러움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겁니다. 무심코 귀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순간 웬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서서는 제 귀를 손가락으로 마구 간지럽히고 있는 겁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고 소름이 쫙 돋으며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그 남자가 저와 동기가 집을 비운 사이 숨어든 강도라 생각했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이렇게 죽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굳은 몸이 풀렸고 휴대폰 너머로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여자 친구와 통화를 마친 후 제 방으로 가서 담배를 들고 베란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반투명 유리로 된 베란다 문에 가로등 빛에 비친 사람 형태의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겁니다. 저는 겉옷을 챙겨서 그대로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날 저와 동기는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잤고 다음 날 점심 무렵에 급히 짐을 싸서 각자의 본가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비웃으셨고 성당에 다니시는 어머니와 할머니께서는 제가 학교생활에 지쳐서 그렇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더군요. 지금 할머니께서 주신 묵주를 차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역시 집을 처분해야 하는 거겠죠. 그 집에 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동아리에서 만나 친해진 누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와 한 학번 차이가 나는 누나는 나이가 세 살이 더 많은데 서울 쪽 대학에 다니다가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1년을 산 후 제가 다니는 학교로 편입했다고 합니다.

누나가 일본 오사카에서 혼자 1년 동안 살았을 때 일입니다. 누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일본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하루는 월급을 받고 퇴근 후에 자전거를 타고 근처 맥줏집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맥주를 마신 후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이 없더랍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갑을 자전거 바구니에 뒀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장 밖에 세워 둔 자전거로 가 봤지만 지갑은 이미 없어진 뒤였습니다. 누군가 자전거까지 통째로 가져가려 했는지 자전거의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더군요. 곧장 경찰서에 가서 아는 일본어를 총동원하여 사정 설명을 했지만 경찰관은 시큰둥하게 듣고 있기만 하더랍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누나는 다음 월급을 받을 동안 하루에 라면 하나를 먹으며 버텼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누나는 그 무렵 심한 우울증과 거식증을 겪게 됐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쓰러질 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누나는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고 하는데요. 자다가 문득 눈을 뜨면 불 꺼진 어두운 방 천장에서 시커먼 형체가 빙글빙글 돌며 누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깊은 절망감을 느낀 누나는 자기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며 줄로 매듭을 묶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천장에 줄을 달기 위해 고개를 치켜든 순간

"빨리! 빨리! 빨리!"

누나의 머리 위를 계속 빙빙 돌던 검은 형체가 ‘빨리’라는 뜻의 일본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속삭였다는 겁니다. 누나는 그 검은 형체를 바라보며 밤새도록 마구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이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누나는 마음을 다잡고 악착같이 버텼고 겨우 원래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누나의 곁을 맴돌던 그 검은 형체도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사실 귀신보다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 나를 괴롭히던 검은 손

저는 어릴 때부터 같은 내용의 악몽을 반복해서 꾸거나 주기적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중학생이 된 후로는 거의 매일을 제대로 못 잘 정도가 됐는데 가족들 중에 저처럼 가위눌림을 겪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공책에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써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자주 했었습니다. 주로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로 가위에 눌렸는데 몸을 천천히 움직여도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교실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는 상태에서도 가위에 눌렸습니다. 짝꿍에게 내가 가위에 눌린 것 같으면 꼭 깨워 달라고 부탁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책상 아래에 백발을 한 젊은 남자가 무서운 얼굴로 나타났고 그 얼굴을 제 코앞까지 순식간에 들이대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형체들을 목격했는데 저를 가장 심하게 괴롭혔던 것은 ‘검은 손’이었습니다. 그것이 제 신체 일부를 꼭 붙잡고 저를 밤새 괴롭히는 겁니다. 두 다리가 검은 손에 붙잡혀서 머리와 이마가 벽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는 악몽에 시달리다 깨면 그 상태로 가위에 또 눌렸습니다. 검은 손은 제 발목을 여전히 세게 붙잡고 있었고 실제로 피가 통하지 않는지 다리까지 저려왔습니다. 가위를 풀려고 몸에 힘을 주면 검은 손은 제 발목을 더욱 세게 눌렀습니다. 겨우 가위를 풀고 보면 제가 발을 30도 각도로 꼿꼿하게 들고 있었고 그 모습에 저는 경악하면서 발목을 주무르고 살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달리고 나면 발목에 한동안 통증이 느껴지고 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져서 넘어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 존재를 쫓기 위해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거나 목사님께 안수를 받고 오는 날에는 가위눌림 증상이 더욱더 심해지는데 그때마다 어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다고 될 줄 알아? 흐흐흐흐···."

가위를 풀려고 몸에 힘을 주며 안간힘을 쓰다 보니 근육이 경직되며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위눌림은 제 일상생활의 일부가 돼 버렸고 집은 물론 학교와 독서실에서도 저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하루는 동아리 친구에게 제 고민을 털어놨는데 친구가 혹시 밖에서 주워 온 물건이나 기분 나쁘게 생긴 물건이 있지 않냐고 묻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꽤 많은 물건들을 주워 오셨더군요. 각종 인형과 포스터, 헤비메탈 CD나 카세트테이프 등의 잡동사니였는데 저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 물건들을 대부분 버렸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제 발목을 움켜쥐고 괴롭히는 가위눌림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3 입시를 마친 후. 짝꿍이었던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친구가 대학 합격 기원 기도를 하기 위해 교회 기도원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당시 친구는 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두 언니와 함께 그 기도원에 갔는데 그때 나이가 가장 많은 언니가 기도굴에 들어갔다가 사람과 비슷한 검은 형체에게 양쪽 발목이 붙잡혀 몸이 내동댕이쳐졌다는 겁니다. 제가 몇 년간 검은 손에 시달렸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친구는 전에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죠.

저는 학창 시절에 개봉동에서 살았는데 그곳이 예전에는 온통 묘지와 논밭뿐이었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이사를 하며 개봉동 집에는 외삼촌이 사시게 됐는데 외삼촌은 그 집에 사시면서 숙모와 자주 다투셨고 결국 이혼 후에 집을 나가게 됐습니다. 집 안을 정리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갔는데 묘하게 소름이 끼쳤습니다. 집터가 좋지 않아서 제가 그런 일을 겪었던 것일까요.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꿀 때면 개봉동 동네가 보이곤 합니다. 몇 년 전에 직장 동료가 소개한 무속인에게 몇 번 정성을 드린 후로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목을 졸리거나 팔이 붙들리는 가위는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위를 풀고 보면 목에 통증이 느껴지고 심지어 팔에 멍까지 들어 있는데 나중에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갑상선과 목 쪽에 혹이 12개나 생겼다고 하더군요. 가위에 눌린 후에 피부가 심하게 가려워서 속옷을 벗어 보면 제 것도 우리 가족의 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머리카락이 나오곤 합니다.

제 주변에는 여전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무속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늘 죄책감을 느끼지만 매일 밤 저를 괴롭히던 가위눌림에서 이렇게 벗어나니 정말 홀가분합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이 또 계신가요. 이 경험을 저와 비슷한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용기 내어 글을 써 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가 없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7. 간호 학교의 담력 시험

제가 간호 학교에 다닐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저희 학교는 전원 기숙사 제도로 선배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담력 시험을 했는데 2학년의 주체하에 1학년이 해부실과 표본실, 영안실을 순서대로 도는 것이었죠. 각 반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놔두는데 세 군데에서 총 세 장을 가져와 마지막 결승점에서 기다리는 선배들에게 보여 줘야만 했죠. 저 역시 1학년 때 호되게 당했는데 해부실이나 영안실은 별로 무섭지 않았지만 표본실은 정말로 오싹했습니다. 포르말린 속에 온몸이 통째로 담긴 여성과 남성의 시신이 있었고 반으로 잘린 태아의 시신이나 기형아의 시신도 있었습니다. 그때 반쯤 울면서 도망쳐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이 담력 시험에는 숨겨진 전통이 있는데 조금 눈에 띄는 신입생이 있다 싶으면 이 아이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일부러 만들지 않습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어린 학생들이 모여 있다 보니 장난스레 그런 철없는 행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 학년에서는 미인형 얼굴에 머리가 좋았던 K가 지목됐고 아무것도 모르는 K는 세 개의 교실을 차례로 돌며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찾아다녔습니다. 하필 제일 무섭다는 표본실에 그 종이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두 장만 들고 결승점으로 간 K는 선배들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참다못한 K가 그 자리에서 종이를 찢어 버리자 선배들은 K를 표본실에 가둬 버렸고 이 일이 학교에 알려지며 꾸지람을 듣게 된 2학년들은 더욱 심하게 K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K는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죠.

그리고 얼마 후에 그녀를 특히 눈엣가시로 여기던 선배 세 명이 차례대로 끔찍한 일을 겪게 됐습니다. 한 명은 온몸에 발진이 났고 다른 한 명은 사고를 당했으며 K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선배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양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1학년들 사이에서 K의 생령이 복수를 하고 있는 거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저 실체 없는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K와 가장 친했던 동급생 S가 세 명의 선배들의 머리카락과 속옷을 몰래 K에게 줬던 게 발각된 겁니다. 실제로 선배들이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겁먹은 S가 사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모든 사실이 드러나게 됐죠. 사감 선생님은 문제의 선배들을 데리고 K에게 직접 사과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K는 예전과 달리 심하게 야윈 모습으로 두 눈만 퀭하니 치켜뜨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학교에서는 담력 시험이 엄격하게 금지됐습니다. 마음을 곱게 쓰지 않았던 선배들 때문에 결국 스스로를 잃어버린 K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8. 암시를 주는 예지몽들

저는 3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쁜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예지몽과 비슷한 꿈을 꾸곤 합니다. 어릴 때는 이게 예지몽인지 깨닫지 못하다가 10대 후반이 된 후부터는 꿈의 내용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의 예지몽은 구체적인 사건을 특정하여 자세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저 또는 제 주변인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암시하듯 던져 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예지몽을 몇 가지 풀어 보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가족은 15층짜리 아파트 8층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경비 아저씨께서 손자뻘인 저를 유독 예뻐해 주셨었죠. 하루는 꿈에 학교를 마치고 아파트 건물로 돌아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던 엘리베이터는

(쿠구궁─ 끼이이익─)

그렇게 순식간에 1층으로 곤두박질쳤고 문이 열리면서 내부를 들여다보니 사람이 없는 관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겁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 꿈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바로 그다음 날 초저녁 무렵, 다른 집의 이사를 돕던 경비 아저씨께서 추락사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내 꿈이 아저씨의 죽음을 암시한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우리 반 바로 옆 반의 담임 선생님은 가정 과목 선생님이셨는데 아주 젊은 여자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하시는 등 그 당시 분위기로는 무척 튀는 복장을 자주 하고 다녔고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저와 친구들은 그런 선생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가정 선생님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색 복장을 하고는 교무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선생님을 따라서 교무실로 들어가 보니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계셨죠. 그런데 유독 가정 선생님 자리의 책상 위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니 선생님의 것으로 보이는 각종 서류 뭉치들과 가정 과목 참고서, 교과서 같은 것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책들을 선생님 자리에 올려놓자 선생님께서 그것을 툭 밀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겁니다. 그러다 잠에서 깼는데 느낌이 왠지 싸하더군요. 저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옆 반의 부반장에게 가서 가정 선생님께 당분간 몸조심하시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차를 몰고 출근하시던 선생님은 북악터널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계셨던 선생님의 지인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선생님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셨죠. 하지만 그날을 끝으로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제가 강원도 홍천의 모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을 때의 일인데요. 당시 저희 중대는 바로 옆 건물에 있었던 통신 중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중대 간의 위치가 가까워서 주말에는 축구나 족구를 함께 하고 같은 휴게실을 쓰면서 대화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통신 중대원 중에 사교성이 무척 좋은 상병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통신 중대 자체 군수 파트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 중대에도 몰래 A급 피복류를 챙겨 주곤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제가 부대원들과 함께 행군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행군 대형을 갖춰 나지막한 산의 초입부인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얼핏 봐도 그 굵기는 성인 남자의 허벅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기상 상태가 나쁘다거나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거나 하지는 않았고 저는 멀쩡한 나뭇가지가 왜 갑자기 부러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주 주말에 통신 중대원 상병이 2층 외벽 가설 작업을 하다가 머리 쪽부터 떨어져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제 꿈은 늘 이런 식으로 앞으로 닥칠 일을 암시하듯 보여 주기 때문에 꿈을 꾸고 나면 저 스스로 예측해서 당분간 최대한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의 내용을 메모해 두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미리 연락을 합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꿈으로 보여 주기만 하는 것이라 해도 이렇게 미리 조심해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저의 이 예지몽은 언제쯤 끝나게 될까요.

9. 장롱 안에

제가 13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동네에는 동네 친구 A와 B가 있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해진 친구들이라서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놀았죠. 어느 날, 저의 부모님이 저와 친구들을 데리고 외식을 시켜 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친구 A가 우리 집에서 조금 더 놀고 싶다고 하더군요. B는 집으로 돌아가고 저와 A는 같이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A 녀석은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았는데 그날도 자꾸 ‘네 옆에 귀신 있다’ 하면서 저를 놀리더군요. 서로 티격태격하며 놀다가 A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저는 음료수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방에 있던 A가 저에게 막 달려오면서

"야, 저기 뭐가 있는 거 같아."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러고 놀면 재밌냐? 그만 좀 해라."

그렇게 친구에게 핀잔을 주며 음료수를 꺼냈죠. 그리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A가 자꾸 진짜 뭐가 있다고 하면서 울먹이는 겁니다. 처음에는 장난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A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욕까지 하더군요. 평소에 욕도 잘 안 하고 나름 착한 녀석이 갑자기 이러니 뭔가 좀 많이 이상했습니다.

"아니··· 어디에 뭐가 있단 거야? 너 오늘 왜 그래, 진짜?"

곧 울 것 같은 A의 표정에 저는 뭘 봤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A가 장롱 쪽에 무언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대체 뭐가 있길래 이러냐며 방으로 들어가서 장롱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A가 기겁을 하면서

"저, 저기··· 저기 말이야···."

이러며 울면서 말을 더듬습디다. A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저도 갑자기 소름이 확 돋으면서 등 뒤가 싸해졌습니다. 저는 A에게 빨리 나가자고 소리치며 장롱 문을 닫고 방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A가 눈이 뒤집히면서 쓰러져 버리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고 황당해서 큰 소리로 A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A를 끌고 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녀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많이 맺혀 있더군요. 그렇게 녀석을 흔들고 뺨을 때리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별짓을 다 해 봤지만 A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꺼내서 119에 전화를 했고 친구가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는다며 빨리 이쪽으로 와 달라고 고함을 내질렀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주소를 몇 번이나 다시 불렀고 저는 구급차를 기다리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올라와서 문이 열리고 막 타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키히히히히힉···."

이렇게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군요. 환청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엘리베이터 안과 우리 집 복도 쪽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구급차가 왔고 저의 부모님과 친구의 부모님이 급히 집으로 오셨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된 거냐 물으셨고 저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요즘 잠만 자면 꿈자리가 계속 사나웠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시더군요. 친구는 그 일로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저는 B와 함께 A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저는 A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야, 도대체 뭘 봤길래 그렇게 쓰러진 거냐?"

"너··· 진짜로 못 봤어? 진짜로 안 보였다고? 너 음료수 가지러 나가고 누워서 휴대폰 만지고 있는데 자꾸 누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 그러면서 장롱 문이 자꾸 저절로 열리려고 하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너한테 갔지. 근데 네가 같이 방에 와서 장롱 문 열었을 때··· 장롱 안에 어떤 여자애가 있는 걸 봤어. 희번덕한 눈알에 흰자만 가득하고 입이 귀밑까지 쭉 찢어져갖고는 우리 쪽을 쳐다보는 거야. 그거 보고 너무 놀랐는데··· 그다음부터 기억이 없어."

"여자애라고?"

A의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때 구급차를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제가 들은 소리도 어떤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였기 때문이죠.

저는 집에 가자마자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다음 날 어찌어찌해서 무당집에 찾아갔습니다. 그 무당은 엄마를 보자마자 집터가 안 좋다고 하면서 거기에 계속 살면 아들이 미쳐 버릴 거라고 말했다더군요. 집터가 안 좋은 데다 집 안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하니 그것이 잡귀들을 마구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 방의 장롱을 딱 집어 가리키더니 장롱 안의 물건을 싹 다 버리고 부적을 붙이라고 했다더군요. 엄마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서 당장 이사 갈 집을 알아보셨고 아빠와 함께 제 방 장롱 안에 있는 물건들을 싹 다 끄집어내셨습니다. 그런데 두껍게 겹쳐진 이불 사이로 웬 일본식 목각 인형이 하나 툭 떨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평소에 무속 신앙과 귀신 등에 관심이 많으셔서 기묘한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그 인형을 제 방 장롱에 넣어 두셨던 겁니다. 엄마는 장롱 안에서 나온 이불과 그 인형을 모두 가져다 태우시고는 부적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은 2~3일 뒤에 바로 급하게 이사를 갔죠. 그 장롱이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사 간 뒤로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제 기억에는 엄마가 계속 불길하다고 하시면서 결국은 그 장롱을 버리신 것 같습니다. 외할아버지께도 제가 겪은 일을 얘기하시면서 다시는 그런 무서운 물건들 모으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도 좀 갖다 버리시라고 한동안 엄청나게 잔소리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그 황당하고도 무서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추억 삼아 안줏거리로 얘기하곤 합니다.

10. 아날로그 TV

이 이야기는 2년 전 제가 월세를 내고 살던 집에서 실제로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 저는 양주시 서고리라는 촌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스가 잘 지나가지 않았고 주변에는 공업사가 많은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가족들과 같이 살던 서울과는 거리가 있는 의정부 소재의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라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겸 공장 근처에 있는 싼 원룸이 없나 찾아보다가 방이 하나 있어서 열 평 정도로 보이는 단독 주택의 지하방을 얻게 됐습니다. 지방이라 그런지 월세도 싼 편이었고 보증금도 공장에 다니면서 모아 둔 적금을 깨서 해결하고도 넉넉했기 때문에 이득을 봤다 싶은 뿌듯한 마음으로 집주인과 만나 부동산에서 계약했고 그다음 날 바로 용달 업체를 불러 짐을 풀게 됐습니다. 냉장고는 주인 댁에서 친히 대여해 주셨고 도배나 장판 등도 새로 갈았는지 아주 말끔한 게 마치 새로 지은 집인 것만 같았죠. 안방 쪽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먼지 쌓인 아날로그 TV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TV 지원이 끊긴 지 2년쯤 됐을 텐데도 희한하게 TV가 잘 켜졌고 셋톱박스를 연결한 게 아닌데도 공영 방송이 잘 나왔습니다. 그럭저럭 볼 만한 화질로 잘 돌아가더군요. 어차피 평소에 TV도 잘 안 보고 본다고 해도 뉴스 같은 프로그램만 챙겨 보던 터라 TV는 따로 장만하지 않았고 집 안에 있던 아날로그 TV로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하방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이사 온 지 한 3개월쯤 됐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라면 한 봉지에 적당히 끼니를 때웠는데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오후 11시 정도에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은 채로 온몸이 땀에 찌든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상태로 그냥 침대 위로 자빠져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 꿀잠을 자고 있는데 창밖으로 웬 길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한두 마리도 아닌 대여섯 마리쯤은 돼 보이는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렸습니다. 결국 잠에서 깼는데 고양이 울음소리는 뚝 그쳤고 눈앞에 켜지도 않은 아날로그 TV가 켜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소에 보던 채널도 아닌 엉뚱한 채널로 돼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치지지지지직─)

이런 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날은 볼륨도 끝까지 올라간 상태였습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리모컨을 분명 TV 위에 올려 두고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켜진 그 TV에 저는 마치 등짝에 차가운 얼음물을 쏟아부은 듯 싸늘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콘센트에 꽂힌 TV의 코드를 뽑아 버리고 방 안에 불이란 불은 다 켜 놓은 채로 방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집 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옷장부터 침대 밑, 싱크대, 베란다 할 것 없이 집 안을 검찰 수사라도 온 것마냥 다 뒤져 봤지만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경찰에 전화를 했지만 경찰에서는 TV가 고장 난 것이 아니냐, 집 안에 사라진 물건은 없느냐 등등을 물어보더니 오늘은 일단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내일 A/S 센터를 불러서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아날로그 TV에 A/S라니. 요즘 시대에 가능할 리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TV는 버리기로 하고 내일 매장에라도 가서 쓸 만한 TV 하나 사 와야겠다 마음먹었고 TV 콘센트는 뽑아 둔 채 다시 불을 끄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십 분쯤 지났을까, 제 귀에 다시 들려서는 안 될 그 망할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겁니다. 마치 귓가에 대고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분 나쁜 소리가 말이죠. 그 소리는 처녀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고 볼륨은 최대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콘센트는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바꿔 보려 해도 바뀌지 않고 소리를 줄여 보려 해도 줄지 않은 채 그 기괴하고 듣기 싫은 지지직대는 소리는 어찌 된 영문인지 더욱더 커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참다 참다 못해서 저 TV를 밖에 갖다 버려야겠다 생각한 뒤 지지직 소리가 나는 TV를 잡고 힘껏 들어 올렸죠. 하지만 그때 저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머리는 산발에 낡아서 너덜너덜한 흰 소복을 입고 얼굴은 발끝까지 닿는 머리카락으로 모두 가린 채 마치 백내장에 걸린 듯한 허연 눈을 번뜩 뜨고는 저를 쳐다보고 있던 귀신이 저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찢고 미친 듯이 웃는 모습을 말이죠. 저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깨어나 보니 인근의 작은 종합 병원 입원실이었습니다. 제 옆에는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계시더군요. 그때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방을 빼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고 TV는 건드리지 말고 그 자리에 두고 가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병원비는 모두 아주머니께서 부담하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더 여쭤봤지만 아주머니께서는 미안하다는 말씀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퇴원하자마자 용달을 불러 짐을 쌌고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직장도 그 후 며칠 뒤 그만뒀죠.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중견 기업에 취직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가끔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제게 그때 그 일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미스터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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