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가 정말 거짓인가요?

영화 실미도가 정말 거짓인가요?

작성일 2004.02.11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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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보니까


그 실미도 군인들 주변사람이나,


가족들이 30여명되는 사람중에서


흉악범,살인범,범죄자가 한명도 없었고,


가난한 집안때문에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던중


서울가서 취직시켜준다는말에 속아


실미도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 사람 형제가,실미도 보다가


소리지르면서 일어나려고 했더던데..


정말 거짓말이라고 하던데요?


정말 영화가 잘못된건가요?


가족들이 영화화하는것도 반대했다던데...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요즘 실미도가 흥행하면서 이런 궁금증이 많아지는데요.

실제로 실미도 사건은 일어났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 실미도를 만들었구요.

다만 영화 실미도는 영화이기때문에 '픽션'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실미도에 간 사람들이 모두 범법자인것은 아니고 일부는 민간인이었다~

이거죠^^ 4-50%로는 범법자였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밝혀졌답니다^ㅡ^

아래 한 기사를 보여드릴테니 읽어보세요.

언론에서 김방일씨가 영화에서 허준호역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분이라고 하네요.

살인 공소시효가 15년이라 이제야 말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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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004.01.22. 1788호





‘실미도 부대’ 창설·훈련 소대장 충격 증언
“이탈 훈련병 6명 즉결 처형”“훈련병 베트남 파병·임관 등 건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두 없애자’ 제안”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당시 실미도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훈련병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기간병들도 그들과 똑같이 함께 꽁보리밥 먹고,같은 침대에서 자고, 혹독한 훈련을 겪으며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 다른 것을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배신을 꾀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는 자를 용서할 순 없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남겨둔다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두…, 죽였습니다.”

처음 모습 드러내는 핵심 인물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실미도 부대(1968년 4월 창설됐다 해서‘684부대’라 불리기도 함) 소대장 김이태(金利泰·60)씨는 충격적인 내용을 증언했다. 김씨는 1968년 4월 부대 창설과 함께 실미도로 부임, 훈련 전과정을 지휘하며 주요 순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그는 3개월 뒤 부임한 동기 김방일씨와 함께 3개 소대(1개 소대=10명)로 구성된 실미도 부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사람. 실미도에서 근무했던 기간병들은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그를 꼽고 있다.
또 다른 소대장 김방일씨 역시 “사고가 났던 1971년 8월 23일을 포함, 주요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나는 공교롭게 자리에 있지 않았다”며 “주요 순간에 현장을 지휘했던 사람은 김이태씨였다”고 말했다.
김이태씨는 증언 도중 여러 번 머뭇거렸다. 군데군데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일 아니겠느냐”며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지나간 악몽을 떨치지 못해 괴로워 하는 빛이 역력했다.

“31명의 대원 중 훈련과정에서 숨진 사람은 모두 7명입니다. 한 명은 물에 빠져 익사했고, 나머지 6명은… 처형됐습니다. 처음 처형된 사람은 2명이었습니다. (잠시 주저) 야간에 독도법 훈련을 할 때였습니다. 정해진 시각까지 집결지에 모여야 했는데, 이들이 돌아오질 않는 것입니다.
찾아봤더니 민가에 침입해 숨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북한으로 넘어가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다른 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군인으로서 저는, 그런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리했습니다.” 김씨의 어투는 전형적인 군인 말투였다. 군생활 상당 기간 동안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며 보낸 그의 말투는 대부분 ‘~했습니다’와 ‘~했습니까’형 어미로 종결됐다.

특수훈련 전문가… 실제 계급은 중사
“두 번째로 처형된 녀석들은 3명이었습니다. 인질을 붙잡고 난동을 부렸던 놈들입니다. 그놈들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민간인을 강간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질을 붙잡고 있던 놈들에게 제가 갔습니다. ‘일단 나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간인 풀어주고 나와라. 그러면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주모자가 ‘개소리 마라’며 ‘우린 다 죽기로 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배신 행위였습니다. 그놈들한테 기울인 정이 얼만데…, 인간적으로 정을 다 줬었는데…, 우리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훈련병들이 민간인을 강간한 사실은 영화에도 나온다. 영화엔 훈련병 2명이 초등학교 여교사 한 명을 강간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와 다르다. 3명의 훈련병이 20대 초반의 민간인 처녀 2명을 강간한 후, 학교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고 난동을 벌였다. 사고를 당한 처녀 2명은 훗날 결혼, 자녀를 낳고 평범히 살아가고 있다.
‘실미도’란 소설을 써 당시 사건을 재조명한 백동호(49)씨는 “이탈한 훈련병 3명이 무의초등학교로 침입했다”며 “여교사가 자리에 없는 것을 알고 거리로 나가 민간인을 붙잡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현장을 봤다는 한 사람은 “얼마나 무자비하게 다뤘으면, 교실 안에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가 말을 이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놈들은 군인입니다.
이건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민간인을 강간한 놈들은 처벌돼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 없앴습니다.”

모든 것은 비밀… 가명 사용해 통솔
김씨의 실제 계급은 중사. 공군 정보대였던 ‘2325 전대’에서 특수전 교육과 낙하산 침투 교육을 받은 특수부대원이다. 그의 원래 임무는 적지에 떨어져 포로가 된 아군 조종사를 구출해 오는 것. 실미도 부대가 창설되면서 공군은 공작원을 훈련시킬 적임자를 물색했고, 그 결과 당시 23세의 ‘강인한 군인’김 중사(당시 하사)가 선발됐다.
“소대장들은 모두 중사였습니다. 하지만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곳에선 계급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북괴 김일성의 목을 따 온다’는 한 가지 임무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훈련병들에겐 우리가 공군이란 사실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생활은 묻지도 않았습니다. 걔들이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형제관계가 어땠는지 그런 것들은 저희들도 모릅니다. 알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애들에겐 군번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들 이름도 숨겼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김빈’이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동료 상대로 남색 저질러 처형
증언을 하면서 김씨는 ‘북한’과 ‘북괴’를 섞어 사용했다. 그가 아직도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실미도에 있던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집에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아버님이 편지를 보내셨는데, 한참 뒤에 받아보니 겉봉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누구든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이 사람(수신인)이 죽었나 살았나, 제발 그 사실만 좀 알려달라’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니 훈련병들은 어땠겠습니까?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지금하고 많이 달랐습니다.” 김씨의 증언은 세 번째로 처형된 훈련병 이야기로 이어졌다.
“계간(鷄姦·남색)이라고 아십니까? 그놈은 화장실 가는 동료들을 상대로 계간을 한 놈입니다. 하도 거칠어서 별명이 오랑캐였었는데…. 불응하면 애들한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훈련병들 눈치가 이상하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냐고요. 그런데 애들이 두려워하면서…, 소대장에게도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놈이 작업할 때 기간사병을 딸려 보내, 무슨 일인가 알아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기간병을 구타한 것입니다. 그 기간병은 맞아서 기절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없앴습니다.” 김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것은 반역행위입니다. 그놈을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놈들 중엔 사회에서 살인까지 저지른 놈도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끝까지 다 갔던 애들입니다. 그리고 기간병들보다 나이도 많았습니다. ‘김일성 목을 따오는 것’ 오직 그 하나를 위해 훈련받아온 놈들입니다. (한숨) 기간병 중 일부는 특수훈련을 받아 북한에 갔다오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기본 훈련만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놈들이 우습게 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소대장이 용납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어디서 무슨 사고가 또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는 김씨는 또 다시 말을 멈췄다.
잠시 후 다시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사람이 인생에서 그런 일을 한번 겪는다는 것은…. (한숨) 바닷가를 혼자 걸으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훈련병의 당시 평균연령은 30세.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은 38세,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21세였다고 한다. 이야기는 처형 방식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훈련병끼리 때려 죽이기도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계간을 저지른 그놈은…,때렸습니다. 다른 훈련병들이 때리게 했습니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 번 정도 때리니까…. 축 늘어졌습니다. 인질을 잡고 난동 부리던 3명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관계되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한숨) 처리했습니다.”
영화에는 난동 부렸던 훈련병을 때려 죽인 것으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나머지 둘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김이태씨는 힘들어했다. 중간중간 말이 끊기기도 했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증언을 잠시 쉬던 그는 “어쨌든 그것이 사실”이라며 말을 이었다.
“훈련과정엔 목표와 방식만 있었습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기준은 북한 124군부대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라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강해야 했습니다. 인도주의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직 124군부대를 능가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애들한테 정을 줘서…. 애들도 저를 많이 따랐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착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에 못이 박혀서…. 얼마 있다가 이놈들이 북으로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돌아서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몽둥이로 구타… 머리 터지면 꿰매
김씨는 영화와 사실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영화에 나타난 훈련과정은 실제보다 약하게 나왔습니다. 애들에게 특수전 훈련을 모두 다 시켰습니다. 북한에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에 제식훈련도 우리식·북한식 두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가다가 발이 틀리거나 하는 놈들은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그런데 때리는 부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데고 마구 내리쳤습니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내리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터진 곳을 꿰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바닷가를 달리는 장면이 나오던데, 실미도 해안의 돌길은 매우 미끄러워,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넘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는 많이 시키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증언은 계속 됐다. “하지만 줄을 타고 계곡을 건너는 장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훈련받다가 한 명이 떨어져 죽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저는 10m 높이 절벽에서 뛰어내린 뒤, 다시 기어올라 올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훈련병들에게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나보다 더 강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 놓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김씨는 기간병과 훈련병들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과 떠난 사람들에게 누가 된다”며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훈련병들에게 ‘체포됐을 때의 행동방식’도 교육시켰다고 했다.
“영화에는 고문에 대비해 인두로 살을 지지는 훈련 장면이 나오잖습니까?
그런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괴군한테 잡히면 자폭하라’고 수없이 교육시켰습니다. 훗날 섬을 탈출한 놈들이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하지 않았습니까? 그 소식을 듣고 ‘이놈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긴 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부대라도 격파할 자신 있었다
이탈한 훈련병들을 처형한 것에 대해 김이태씨는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법적문제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군 형법을 배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임무가 최우선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큰 일을 위해서라면…. (잠시 주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제겐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임무를 강조했다. 자신의 임무는 “최강의 부대를 만드는 것이었다”는 김씨는 훈련병들의 전투력에 대해 망설임없이 ‘최고’라고 평가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 갖다 놔도,해병대·특공대 아니라 그 어떤 부대가 오더라도 격파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막강한 부대를 그냥 썩힐 수 없었다”며 “이들의 베트남 파병을 상부에 건의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애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넘어가 임무를 완수하고 오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들을 베트남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부대의 존재는 기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애들을 (정식 군인으로) 임관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한숨)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이태씨는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놈들을 그냥 놔두면 반드시 사고를 칠 것 같았습니다. 3년이 넘도록 본능을 억압하며 살아온 애들입니다. 갈매기건 뭐건 보이는 것은 죄다 쏴 죽이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녁 때 사방이 어슴푸레해지면 훈련병 동향 파악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죽여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제가 직접 해치우겠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실미도 사건이 나기 전, 저는 다른 낙하산 부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사고가 터졌습니다.” 보안사 준위로 예편한 김씨는 현재 고향에서 이장으로 일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이제 이렇게 저를 찾으셨으니…. 만약 제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같은 행동을 똑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머뭇)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임무는 어디까지나 임무였으니까….”김씨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TV엔 비리혐의로 구속된 국회의원들 소식이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미도 부대는 ‘김일성 목을 따기 위한’ 목적으로 1968년 4월 만들어진 북파부대다. 창설 주역은 김형욱 당시 중정부장과 이철희 제1국장. 훈련병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키워졌지만, 미·중 데탕트와 남북화해 분위기로 인해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3년 4개월이 지난 1971년 8월 23일, 이들은 결국 사고를 치기로 결심, 기간병들을 살해한 뒤 배를 타고 인천 송도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대방동까지 진입했지만 군·경과 교전끝에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고 말았다.
중상을 입은 생존자 4명은 훗날 군사재판을 거쳐 총살됐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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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대충 감이 오시죠^^?

실제 실미도에서는 영화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그럼..좋은 답변 되기를..^^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00% 다 거짓은 아닙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온것처럼 대부분은 일반인이였고 그 중 몇 명만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영화는 거의 허구성이 많아서 '실화를 근거로 만들었다' 라는 말도 믿을게 못되죠.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얼마전에 실미도 부대가 정식부대로

인정받았다는 뉴스를 봤지요

거기서 말하길 실미도의 대원들은

대부분 하층민 또는 범죄자 들이였다고들

하는대요 영화에서는 훈련중 죽은이가 1명으로

나오는걸로 아는데 사실은 5명이 죽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따지고보면 사실대로 이야기를 만들면

누가 영화를 보겠어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있어야 보지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실화를 영화를 만드는 순간부터

영화는 허구가 된다고 강우석 감독이 말한적있습니다..

그만큼 실화 그대로 영화를 만드는게 어렵다는 것이지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완전히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실미도 훈련병들을 모집하는 방법은 거짓이라고 보면되구요... 영화에서는 사형수에게 은밀히 다가가 제의를 하는걸루 나오는데... 실지로 실미도 부대에는 사형수는 한명도 없구 평범한 청년들이 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방부관계자들이 실미도의 진실이 알려지자 그래도 아무런 죄없는 청년을 데려가 인권을 묵살시켰다라고 알려지기 보다는 사형수라고 하면 그래도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라고 조금이나마 덮어질까하여 실미도 684부대원들이 거의 사형수들이였다고 얘기를 했답니다. 제가 생각 할때 영화를 만들기전에 강우석 감독의 사전조사가 좀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북파공작원들을 착축할때 사형수들이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나 실미도 부대와 북파공작원은 약간 성격이 틀린 집단인데...실미도는 벅정희놈이 개인적 보복감정으로 만든 부대 쟎아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만약 사형수라고 해도 인간을 저렇게 다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에 대해 비판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비판하기에 앞서 영화로 인해 그동안 어둠에 묻혀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에대해 국민들은 가슴아파하며 눈물흘리며 억울한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 실미도가 정말 거짓인가요?

... 형제가,실미도 보다가 소리지르면서 일어나려고 했더던데.. 정말 거짓말이라고 하던데요? 정말 영화가 잘못된건가요? 가족들이 영화화하는것도 반대했다던데... 요즘...

영화 '실미도'를 보고 궁금한게 생겼어요.

실미도를 봤는데 정말 슬프더군요...ㅜ.ㅜ 역시 소문대로 않보면 후회했을것 같은 영화였어요...... 1.국가에서는 684부대를 무장공비라고 거짓을 말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실미도랑 태극기 휘날리며 보신분

...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이 일부러 화면을 촌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였는데요. 한미디로 정말 촌스럽습니다. 그에 비해 태극기의 비쥬얼은 확실히 역대 한국영화 최고입니다....

실미도도 이승연 위안부 애기랑 비슷하지...

... 그런점에서 실미도는 그때부터 이어져오던 썩어빠진 정치의 모습을 부각시켜주니 잘못을 빌기보다는 오히려 정말 대단한 영화고, 기획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승연은...

684부대에 관한 몇 가지 의문점들

어제 영화 실미도를 보고나서 684부대에 관한 몇 가지... 3.백동호 씨가 정말 강인찬으로부터 실미도 이야기를... 것은 거짓인가요? 또, 전자가 사실이라면 민간인이 버스에서...

정말 슬픈 영화.. 추천해주세요..

...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돈텔파파, 늑대의유혹, 머... 내가 여태 운 영화정말 슬픈영화 와도 무관하게 스릴러... 콜린파렐이 나중에 울면서 자백할때 나도 저렇게 거짓으...

영화던 애니던 무조건 잼있는거...

... ㅋ 아니 좀 이해 안되는거 있지만 내가 애니영화는 평점을 잘줄수 밖에 없다. 나는 왠지 감동먹어. 별 내용도 없었지만...ㅋ 마지막 노래 정말 멋졌다..............................

영화 추천 받습니다..

... 실미도 이런 영화도 좋아합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나, 지금까지 정말 당신 만나 사랑했던 거 후회한 적... 마침내, 유중원은 고국장과 이장길에게까지 거짓 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