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을 좋아하면 꼭 들어봐야될 록 명반 추천좀요~

록을 좋아하면 꼭 들어봐야될 록 명반 추천좀요~

작성일 2009.08.21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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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을 접한지 1년정도 된 사람인데.. 여태까지 90년대~2000년대 노래만 듣다가 이제 좀 더 오래전 노래를 듣고싶어서 질문해요~ 예를들어 비틀즈나 퀸처럼 오래된 밴드 노래말이에요ㅎ

딥퍼플이랑 레드제플린은 있으니깐 제외하고 추천해주세요 그리고 노래말구 앨범단위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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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들이 뽑은 록 명반 100선 耳(Music) 
 
 1. Nirvana
     [Nevermind]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리스트 집계 방식에서의 시행착오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것은 다소간 의외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여기 100장의 앨범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라 있는 이 앨범은 곧 우리 음악 듣기 관습의 영양 실조 상태에 대한 진단서이며, 단절된 역사 속의 생명 없는 화석으로만 남겨진 펑크의 기억에 보내는 청구서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자격 미달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그 영향력이 미미하나마 지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검증 절차 부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논의를 통하여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섹스 피스톨스와 라몬스가 재조명받고, 헤비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치에 대한 이론이 제기되는 상황이 모두 다 -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 '너바나 열풍'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지 열풍을 주도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얼터너티브의 가능성을 실현시킨 이 앨범은 '90년대의 개막과 함께 터져 나온 앤티 록 스타 시너지 효과의 중심축인 동시에, 그로부터 결정적인 지지를 받은 대세론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94년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너바나의 위상이 가공되고 과장된 신화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반영으로서의 록 본질을 담은 현실적 텍스트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은석)
 
 2. Jimi hendrix Experence
     [Are you Experienced?] (69)
 67년에 나온 이 앨범은 아마 찬사 말고는 받아 본 적이 없을 듯 싶다. 록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느니, 일렉트릭 기타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다느니, 그 당시 사람들이 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는 등..... 그렇다면 록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지금 1997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30년 전의 이 앨범을 들으면서 단지 '좋은 앨범' 이상의 의의를 찾는다는  게 가능할까? 특히, 아직까지 이 앨범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그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정도..." 지금 당신은 의 인트로와 의 솔로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가? "뭐 잘치긴 하지만 '충격'이랄 거 까지야..." 그럴만도 하다.
  벌써 30년 전의 '새로운 사운드' 아닌가. 그럼 당신은 그 당시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67년 이전에 나온 음악들만 듣다가 이 앨범을 들어 보도록.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의 약 100분의 1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꼭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록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 '역사적 의의'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윤병주)
 
 3. Velv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67)
 1967년 많은 사람들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urrealistic Pillow』등을 그해의 음반이라고 꼽을 것이다. 아니면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스의 데뷔 앨범을 꼽던가... 그렇지만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의 낭만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이들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 음악의 로제타 스톤이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모든 얼터너티브한 것의 시초이다."라는 외국 평론가의 말을 직접 발견하려는 것은 헛수고다. 존 케일의 비올라 사운드가 드런 사운드의 시조라고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앤디 워홀이 프로듀스했다는 사실도 상술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루 리드의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일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단지 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의 강렬한 불협화음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표현양식들을 음미하자는 권장 사항이 있다. 이들은 분명 실험적이지만 형식적 제한을 쉽게 무시하는 어설픈 자들은 아니었다. 엄격한 제한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 앨범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에서 이들은 드디어 형식마저 무너뜨린다. 드럼 비트는 흐트러지고 템포는 수시로 변하고 여러 악기가 상이한 템포로 나온다. 마지막에 비올라의 피드백. "대중적이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이라는 수식어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듯하다. (신현준)
 
 4. The Beatles
     [The Beatles] (68)
 아티스트 설립 레이블 제 1호인 애플 레코드사의 제 1호 앨범. 표면적으로는 비틀즈의 새출발이지만 이미 멤버 넷이 갈기갈기 찢겨져 눈에 띄게 그룹의 응집력이 떨어진 '한지붕 네가족' 음반이다. 존과 폴이 만들어준 곡만 노래하던 링고 스타마저 자기 곡 를 불렀으니 실로 '옴니버스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폴이 를 녹음했을 때 나머지 존, 조지, 링고는 밴드 동료가 아니라 '외주 세션맨'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흰색 앨범 재킷과는 달리 그룹의 내부 기류는 검은 색이 감돌고 있던 셈이다. 이 앨범이 평자들간에 『Pevolver』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비해 점수가 박약한 이유도 이같은 '팀플레이 부재'에서 비롯한다.
  그런데도 수록각 각각의 창작성은 가히 비틀즈의 전 앨범을 통틀어 최고의 수준. 동시대 경쟁 그룹과 비교하더라도 무적이었다.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뺀다면 이후 폴이 이 앨범의 곡들보다 우수한 선율의 작품을 쓴 적이 없었다. 「Martha my dear」, 「Blackbird」, 「Rocky racccoon」, 「I will」, 「Mother nature's son」 등에서 과시한 폴의 선율 제조 능력은 천재란 찬사가 어색하지 않다. 그는 빠른 곡 「Back in the USSR」, 헤비 메탈 「Helter skelter」에서도 기량을 뽐냈다.
  존은 「Dear Prudence」, 「Happiness is a warm gun」, 「Julia」, 「I'm so tired」에서 솜씨를 과시. 그의 '삐딱끼'는 여전해 「Let it be」와 「Abbey Road」앨범에 비해 아직까지는 폴과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타팬들은 조지의 에서 에릭 클랩튼을 맛보기 위해서인지 이 곡을 선호했다. 싱글은 없었지만 영국팬들에겐 수록곡 거의 곡이 인기를 누렸다. 창작성과 고나련, 금세기 최고의 록 앨범. (임진모)
 
 5. Led Zeppelin
     [Led Zeppelin] (71)
 신비주의로 채색된 레드 제플린의 걸작 앨범. 밴드명은 물론 앨범 타이틀마저도 기재되지 않은 이 네 번째 작품은 하드록을 지향했던 수 많은 밴드들의 텍스트였다. 이 앨범으로 말미암아 기타리스트로서의 지미 페이지와 보컬리스트로서의 로버트 플랜트,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 그리고 드러머 존 보냄은 뮤지션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상형으로, 레드 제플린은 아마츄어 밴드들의 준거 집단으로 격상하게 된다. 그리고 은 단선을 기타 리프의 교과서로, 은 로큰롤 리프의 전형으로, 은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가 종횡으로 엮이며 기승전결의 견고한 축조미를 보여준 록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특히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절정부에서 일렉기타의 속주 애드립으로 인계하는 '式 어레인지'와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꼭지점에서 폭발하고 다시 완만히 하강하는 '포물선 곡 전개방식'은 이후 수 많은 록 밴드가 답습하게 되는 록 발라드의 상투적 도식이 되었다.
  와 에서의 본격적인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 역시 팬들의 허를 찌르는 기획이었다. 등짐을 진 고단한 나그네가 지팡이로 땅을 딛고 있는 고답미 넘치는 재킷, 의미를 알 수 없는 4개의 심볼, 그리고 음반 표지에 기재된 의 가사와 타이틀의 보재는 이 앨범의 신비주의 색채를 더하는데 일조했다.
  만일 예술적인 양식미를 하드 록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서정과 록의 포효가 함께 휘감기고 있는 이 앨범은 그 정점에 자리할 만하다.(박신천)
 
 6. The Doors
     [The Doors] (67)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m and things that are unknown in between the doors.'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이 자주 암송하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도어스라는 그룹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1965년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짐 모리슨은 키보드 연주자였던 레이 만자렉과 만나 그룹을 결성하고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던 중 차츰 그들의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과 짐 모리슨의 독특한 카리스마성이 구두로 전해지면서 클럽 주변에서는 떠오르는 새로운 밴드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클럽 밴드 1년 만에 메이저 레이블 데뷔라는 감격스런 영예를 쟁취한다.
  도어스의 데뷔 앨범에는 자만, 용기, 지적 모험적, 자극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그러므로 로큰롤 앨범으로는 최고 수준의 록 스피릿이 넘치는 명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기억에서 멀어질 만하면 한 번식 도어스에게 유리한 바람 -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에 가 삽입되는가 하면, 독일 출신의 여성 듀오 바1카1라가 를 불러 화제가 되었고, 지금의 록세대들이 도어스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였을 것이다 - 이 불었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브리티시 록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60년대 중반, 도어스는 미국 록의 자존심이었다.
 
 7.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77)
 "재수없는 황실을 없애라! 종교도 싫다. 비틀즈도 싫고, 핑크 플로이드는 더 싫다. 우리도 싫다."
  요즘의 데스 메탈이나 네오 펑크, 하드 코어 테크노에 비교해도 전혀 난폭함에서 뒤지지 않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 실린 섹스 피스톨스의 정신이다. 이 앨범이 무려 20년 전에 발매됐으니 앞서갔어도 한참 앞서간 것이다.
  히피의 정신이 무너져도 대중 음악계가 디스코와 캔디 팝의 안일함에 젖어 있을 때, 이 한 장의 명반이 던진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X같으니 다 때려 부수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록 정신의 실천자들이었으며 아나키스트드링었다. 만약 이들이 90년대 밴드였다면 분명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대해 곱지 않은 X소리들을 늘어놨을 것이다.
  보컬리스트 쟈니 로튼을 비롯한 멤버 대부분이 저소득층 백수이며 음맹(Musical Illiterate)인 섹스 피스톨스는 영국이 실업난으로 허덕이던 70년대 중반 대중 음악계에 등장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지배 계층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냈다.
  "하느님, 여왕을 구해 줘. 그녀는 인간이 아냐. 영국엔 미래가 없어." 섬뜩한 가사가 담긴 이 곡은 영국 황실에 대한 서민들의 지독한 반감을 드러낸 이다. 이외에도 반기독교적이며 반체제적 독설을 내뿜은 와 'Fuck'이 난무하는 , , , 등이 위대하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생리적 반감을 미친 듯이 표출했던 이들이 오래 활동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면 말이 되겠는가? 섹스 피스톨스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종말을 맺고 말았다. (이무영)
 
 8. Derek & The Dominos
     [Layla &Other Assorted        Love Songs] (77)
 크림과 블라인드 페이스라는 수퍼 밴드들의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마감한 에릭 클랩튼은 부부 듀오인 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의 백 밴드의 일원으로 잠깐 동안 활약하게 되는데, 이 짤막한 경험이 이후 그의 음악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가장 많은 싱글 히트곡을 발표했던 70년대의 작품 경향은 다분히 이 듀오의 음악과 유사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 밴드에서 만나게 된 무명의 연주자들과의 인연이 그의 밴드 시절 중 가장 영롱히 빛나는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당시의 멤버들 - 드럼의 짐 고든, 베이스의 칼 래들, 키보드이 바비 위트락 - 과 함께 결성한 데릭 앤 도미노스는 각각 단 한 세트의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앨범 발표 직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듀언 올맨이 게스트로 참가해서 불꽃튀는 협연을 보여 준 그들의 유일한 스튜디오 녹음인 본작은 록 역사상 가장 블루스 / 록 앨범이자 사랑 노래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이 앨범 이전까지의 화이트 보이 블루스가 흑인들이 고안해 낸 블루스의 모사품에 불과하다면 는 최초의 진짜 백인들의 블루스라고 할 수 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명연주들로만 가득찬 이 앨범은 록 음악의 역사상 정점을 이루는 몇 안되는 필청 음반 중의 하나이다. (김우석)
 
 9. Metallica
     [Master of Puppets] (86)
 메탈리카의 가장 큰 공로는 스래쉬 메탈을 보편적으로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영국 헤비 메탈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메탈리카는 다분히 싱글 히트 지향적인 밴 헤일런이나 본 조비같은 여타의 미국 밴드들과는 달리, 마땅히 내세울 만한 프론트맨 하나 없이, 다만 심각하게 연주된 작품만으로써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음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과도 같다. 8분이 넘는 대작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의 늒ㄹ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구성해 놓기 때문에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이다.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팔뚝의 근육보다 냉철한 두뇌가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파워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이틀 트랙의 절도 있는 폭발도 일푸미지만, 이 앨범의 진가는 조금 더 세공과 치장에 신경을 쓴 듯한 과 처음 시작하는 인트로만 들어서는 도저히 연주곡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각 멤버의 연주를 하나씩 분리해 들어 보아도 대단한 연주력에 감탄하게 되지만, 모든 파트가 어울려서 명확한 기승전결을 이루면서 전개되어가는 방식을 보면 이들이 보통 밴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메탈리카를 다른 밴드와 다르게 만드는 요체이다. (김우석)
 
 10. David Bowie
      [The rise & fall of Ziggy  strardust        & spiders from mays] (71)
    
 거의 모두가 데이빗 보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지만 필자는 단연코 전작인 를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엔 과 이란 제목의 노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빼문 도 에 준할 만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중성적 이미지의 글램 로커와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외계인(Ziggy stardust)과의 만남이 바로 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열심히 듣는다고 Ziggy가 누구인지 앙ㄹ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스파이더의 존재는 더더욱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보위만이 알고 있는 이런 존재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존재들은 보위의 상상 속에 한 때 존재했었다고만 생각해 두자.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가 양성적 서향과 공상 과학, 영화나 연극의 시각적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때 모트 더 후플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 믹 론손의 지원과 와 등의 명곡들이 이 앨범에 담겨있는 점이다.
  의 예언과 달리 로큰롤은 아직도 왕성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모두가 꿈꾸는, 도저히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존재이다. 루 리드(Satellite of love)도 그랬고 도이 디비전(Disorder), 너바나(The man who sold the world;보위 원곡)도 그랬다. (이무영)
 11.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67)
 수 십 년에 걸쳐 음악 팬들의 귀에서 귀로 검증된 록 음악사상 최고의 명반. '컨셉트 앨범의 효시', '반기성과 사이키델릭의 온전한 시대상황이 담긴'...등등, 지금까지도 이 앨범을 놓고 쏟아지는 수 없는 담론은 역설적으로 이 앨범의 시대를 초월하는 지위를 말해준다.
  타임지는 이 앨범에 대해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틀즈는 좀더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비틀즈는 이 작품을 통해서 팝의 예술성이란 최고의 수확을 거두었다. 음반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팝의 일반 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에서 스톡하우젠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사용한 클래식 연주 악기를 활용, 마치 관현악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비틀즈는 전자 음향 효과를 극대화 시켰고, 테잎의 역회전과 속도 조절 등 믹싱의 갖가지 신기술을 총 동원했다.
  사랑의 찬가가 된 〈She's Leaving Home〉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한 곡이기도 하며, 〈When I'm Sixty four〉, 〈Lovely Rita〉, 〈Fixing A Hole〉같은 곡으로 예술성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 속에는 고독과 현실 세계의 탈출, 동양의 종교 등에 고양된 젊은이들이 심취했던 LSD, 마리화나의 환각 세계와 그 필연적 결과물이랄 수 있는 '60년대의 사이키델릭 시대 정서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를 대표하던 인물들로 채워진 앨범 재킷에서 세대간의 긴장과 '60년대의 고독감을 읽을 수 있다.(박신천)
 
 12. Pearl Jam
       [Ten] (91)
 '90년대 미국 젊은이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도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 이어진 미국 록 음악은 얼터너티브 시대에 이르며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복합적인 장르 혼합, 지역적인 스타일 분화, 주류와 비주류의 편가르기. 이 모두가 '90년대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 현상들이다. 그런지는 얼터너티브란 단어가 매체에 파생될 즈음 거의 동질의 의미로 알려졌다. 메탈이 아닌 록, R.E.M.이나 스미스와는 기본 골격이 다른 느낌. 얼터너티브는 새로운 주류 그런지를 탄생시켰고, 그런지는 시애틀을 록의 메카로 세상에 알렸으며, 시애틀은 펄 잼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뤘다.
  사실 데뷔 당시 펄 잼은 정체가 모호한 밴드였다. 보컬 에디 베더는 시애틀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멤버들 모두 긴 활동을 예상하고 밴드를 결성했다기 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든 친구들과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하기 전후로 해서 펄 잼은 급조됐고, 그런 까닭에 맴버 모두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스톤 고사드의 브래드, 제프 에이먼트의 쓰리 피쉬가 그 중 대표적-을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현재도 물론 운영 중이다). 다년 간의 마이너 시절을 통해 실력배양에 바빴던 너바나와 비교하자면 펄 잼은 시작부터 올스타 팀으로의 면모가 강했던 셈이다.
  이들은 앨범 발매전부터 영상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펼쳤고 시애틀의 보고서 영화 〈싱글스〉에 투입됐다. 결국「Ten」은 데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히트와 시회적 파문을 몰고 왔다. 펄 잼의 넉장 앨범 중 유일하게 넘버 원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미국인의 염원을 풀어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대중 스타로 거듭난 펄 잼은 '93년 MTV 비디오 어워드의 화두로 등장한 〈Jeremy〉(최근 본 조비 주연의 영화「Destination Anywhere」를 선보인 마크펠링턴 감독)를 끝으로 더 이상 뮤직 비디오 만들기를 포기했다. 이것은 음악적 본질을 흐리게하는 영상 매체에 대한 양심이기 이전에 음악 자체에만 전념하겠다는 팬들에 대한 맹세의 의미였을 것이다.
  펄 잼의 데뷔 앨범은 시애틀 그런지 올스타의 상징이자, 오버 그라운드 밴드의 인디적인 고민을 담은 초라한 앨범이다. 최악의 앨범 재킷, 최상의 원초적 울부짖음과 더불어.(이종현)
 
 13. Jeff Beck
       [Blow by blow] (75)
 우리나라 뮤지션들과 제프 벡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댄다는 것. 그렇다면 그 둘의 다른 점은? 전자가 한 앨범에 모든 장르를 쑤셔넣는 반면 후자는 일생 동안 여러 장르를 탐구한다는 것. 전자가 어정쩡하게 수많은 장르의 겉을 핥는 반면, 후자는 하나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한다는 것. 전자는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자기 색깔도 바뀌지만 후자는 어떤 스타일에서건 누가 들어도 제프 벡임을 알 수 있다는 것 등등...
  각설하고 「Blow By Blow」는 제프 벡이 1975년데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손잡고 만들어 낸,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록 기타 연주곡 앨범이다. 인스트루멘틀임에도 차트 성적 및 판매고에서 호조를 보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80년대에 시작된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 기타 인스트루멘틀 붐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그가 해 오던 로큰롤내지는 블루스 록 스타일에서 과감히 변화를 시도, 록과 재즈의 크로스오버를 완성도 높게 실현해 낸 앨범. 그 유명한〈Cause We've Ended As Lovers〉도 바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좋다면 이어지는 같은 성향의 두 앨범, 「Wired」와「There & Back」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후로 제프 벡은 하드 록을 필두로 각종 전자 사운드의 도입, 그리고 컨트리/로커빌리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그의 곡, 그리고 그의 연주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제프 벡'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명인과 평민의 차이점인 것이다.(윤병주)
 
 14.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70)
 이 앨범보다 훌륭한 '그룹 출신 뮤지션의 솔로 데뷔작'은 없을 것이다. 비틀즈 시절과는 전혀 질감이 다른 존 레논의 자기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비틀즈의 잔영을 담고가 그룹의 대표성을 견인하려 했던 폴 메카트니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나중 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앨범은 폴의 「Band On The Tun」이나 「McCartney」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우린 가능성을 획득했다. 그 가능성은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존은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앨범은 사운드의 파노라마로 〈Mother〉의 최소주의, 〈Love〉의 멜로디 취향, 〈Well Well Well〉의 소음 등이  '정갈하게' 교차된다. 〈Well Well Well〉은 당시의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라 해도될 만큼 진보적이다. 수록곡 중 더러 강렬한 사운드가 담긴 이유는 그무렵 존이 체험했던 아더 야노프 박사의 '원시적 외침(primal scream)' 요법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든 주 목적이 이것이다.
  본인의 체험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솔직히 묘사한 측면이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 '신은 고통을 재는 컨셉트일 뿐'이라고 입을 떼는 〈God〉이나 '노동 계급의 영웅이 되고 싶으면 나를 따르라'는 〈Working Class Hero〉와 같은 강성(强性)의 이데올로기 송은 어떤 아티스트에게서도 목격하기 어렵다.
  〈Mother〉에서 시작해서 〈My Mummy's Dead〉로 끝나는 수미상관 등 앨범의 구성력도 뛰어나다. 존의 영혼과 그것의 표현력이 번뜩이는 수작. 이것은 '육필수기'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들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명반이다.(임진모)
 
 15. Cream
       [Wheels of fire] (68)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음악이 귀에 와 닿을 때의 느낌이다. 흔히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 그 느낌의 질과 양에 의해 개인적인 음악에의 경험과 판단은 이루어진다. 형식과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음악(音樂) 외적인 요소이다. 곡의 진행 방식과 조(調)의 편성, 화성(和聲)의 배치 등에 있어 형식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감동도 얻지 못하는, 오히려 짜증스런 소리의 조합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클래식 록'이라 부르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등장한 숱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부분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그들이 음악을 쓸 때 그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영감(靈感)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 못할 벅찬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인 성향과 기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때의 음악에서 지금과의 유사점을 찾아내고는 놀라는 경우가 있음은 인정할 것이다.
  록의 거장들 세 명이 이루어 놓은 이 성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에릭 클랩튼이 주는 감동을 능가하는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각각의 곡들 특히 〈Toad〉에서 들을 수 있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 솔로는 하나의 교본과도 같다. 물론 다재다능한 잭 브루스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탄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3인 편성의 밴드 구성이라는 외형적인 요소 외에 블루스 록, 하드 록, 싸이키델릭, 그리고 아트 록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쉬 록에 있어 하나의 '원류(源流)'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작품이다.(김경진)
 
 16. Jimi hendrix experience
       [Electric ladyland] (68)
 '록 기타의 혁명아' 지미 헨드릭스의 세 번째 공식앨범. 아주 가끔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들을 일컬어 '혁명아' 또는 '천재'라고 한다.
  이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와 그 기타 혁명의 편린들이 때로는 예리한 바늘처럼, 때로는 스모그처럼 몽롱하게 청각을 자극한다.
  「Electric Ladyland 1」과 「Electric Ladyland 2」의 더블 LP로 발매된 이 기타 실험의 집대성판에는 시대를 앞선 첨단과 원시, '60년대 중반의 반전 시위과 LSD의 환각이 사이키델릭의 소음과 매캐하게 얽혀있다. 하울링을 기타 픽업으로 잡아내고 다시 스피커로 되돌려 음이 끊기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피드백의 '정교한 하드웨어의 메카니즘' 위로 헨드릭스의 보컬이 흐느적거리며 떠다니고, 퍼즈와 와우 와우, 트레몰로 암을 이용한 음의 왜곡이 인도하는 사이키델릭의 환각은 그 혼돈의 시절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포함해 생전에 그가 남긴 3장의 앨범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헨드릭스는 기타 혁명의 장(場)을 열었지만, 동시에 향후 기타로 새로운 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그는 기타로 실험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해내고 떠나버린 것이다. 헨드릭스의 경배자들의 찬가가 되어버린 〈Voodoo Chile〉,〈Have You Ever Been〉,〈Gypsy Eyes〉와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록의 고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이펙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틀로 바뀌었을뿐, 아직도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은 이미 30년전에 그가 끝낸 실험의 결과물을 답습, 확대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지존'으로서의 지미 헨드릭스의 지위는 여전히 유효하다.(박신천)  
 
 17. Yngwie malmsten
       [Yngwie malmsten's rising          force] (84)
 이 앨범이 여기 이 리스트에 한 자리를 -그것도 상위에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그 엄청난 파급력에 있다.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헤비 메탈씬에 있어서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기타리스트의 상징이었고,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것은 내적 성숙을 위한 통과제례의 의미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잉베이 맘스틴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6연음, 8연음의 고전적인 속주 패턴을 비웃는듯한 -그야말로 무한 질주의 핑거링 스피드와 클래식에 기초한 새로운 스케일/모드 패턴은 기타 플레이의 새로운 가능성임에 분명했다. 파급력 또한 그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스피디해서, 한동안은 전세계의 기타리스트들이 잉베이 신드롬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하와 지미 헨드릭스의 결합'이라는 잉베이의 원대한 목표에 있어서 이 앨범은 분명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 수가 보이는 뻔한 한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감성과 정신의 부재가 록의 이념에 위배된다'거나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라는 평가가 잉베이를 고립시키기도 했지만, 그의 그 신앙같은 자기 확신과 외곬의 행로는 '90년대의 펑크 키드들이 그토록 목놓아 역설하는 인디 정신의 본질에 다름 아니다.(박은석)
 
 18. Pink floyd
       [The wall] (79)
 핑크 플로이드라는 한 밴드의 역사와 사운드의 변천 과정을 놓고 볼 때 본작은 분명 기존의 작품들과 커다란 차별성을 가지는 '이질적'인 앨범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 -우주적인 꿈-은 간데없이, 「Animals」(77)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보다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가사와 사운드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로저 워터스라는 개인의 경험과 유년 시절의 콤플렉스가 그 자신의 가치관에 실려 음악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향력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됨으로써 다른 멤버들과의 돌이킬 수 없는 감정 불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릭 라이트의 탈퇴와 로저의 솔로 앨범과 다름없는「The Final Cut」(83)의 발표, 그리고 밴드의 해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앨범 자체는 여러 요소들과 맞물려 많은 이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사회가 가진 치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그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았던 듯 싶다). 기승전결식의 구조와 일정한 이야기 전개를 가진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컨셉트 앨범으로, 그 당시 밴드의 대규모 투어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로저 워터스 개인의 이름으로 행했던 공연에서도 볼수 있듯, 작품은 하나의 록 오페라 또는 록 뮤지컬의 형식을 가진다. 아마도 앨런 파커가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별다른 '손질'없이도 그 자체로 각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김경진)
 
 19. The clash
       [London calling] (79)
 런던 펑크 씬이 배출한 최고의 걸작 앨범으로 '79년말에 발표되어 '70년대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펑크 밴드 클래쉬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앨범 이전의 클래쉬는 과격한 가사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아직 음악적으로 발전 단계에 있었고, 이 이후의 클래쉬는 덥(Dub)과 레게에의 집착이 심해진 만큼 평크로서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말하자면 가장 위대한 펑크 밴드가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크에 있었을때의 위대한 작품이다.
  타이틀 트랙인 명곡 〈London Call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곡이 진행됨에 따라 레게, 록, R&B, 재즈, 로커빌리 등이 절묘하게 배합된 곡들이 계속 이어진다. 가사는 역시 클래쉬의 전매 특허인 정치적인 이슈들을 토해낸다. 대도시의 환경문제(London Calling), 스페인 내전 관련(Spanish Bombs), 빈부 격차(Brand New Cadillac, Lost In The Supermarket)등 당시 피끓는 젊은이들이었던 이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그러나 데뷔 당시보다는 객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당시 오랜 노동당 집권을 종식하고 새로 들어선 마가렛 대처 보수당 정권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이들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다.
  사운드 적인 면에서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전 세대 로커들의 거창함과 복잡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하면서 심플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모하기만 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달리 전략, 전술의 개념이 확실한 클래쉬의 영민함이 번득인다. 앨범의 재킷은 기타를 무대에 내리 치고 있는 사진으로 되어 있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직도 이들에 대해 팬들이 갖고 있는 향수는 대단해서 항상 재결성 희망 밴드 부문에서 1위를 하고 있다. 〈London Calling〉은 '90년에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80년대 최고 앨범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리더인 조 스트러머는 이 앨범이 '79년 12월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정원석)
 
 20. Prince
       [Purple rain] (84)
 프린스는 음악적 능력을 검증 받기도 전부터 상스러운 뮤지션으로 평가절하됐고,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성적 결핍이 분명하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정신 병원 진찰 요망'이란 외지 평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스를 얕잡아본 매스컴과 음해 세력들은 모두 '84년을 기점으로 살며시 프린스의 지지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바로 '84년을 대변하는 앨범 「Purple Rain」때문이었다.
  「Purple Rain」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 장의 영화 음악 이전에, 고만고만한 음악이 판을 치는 '80년대 초반을 평정하는 의미를 담은 중량감있는 앨범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상업적 파급력을 가지고 시대의 영웅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품귀 현상이 이어지던 팝 음악계의 공황기였다. 프린스는 프로듀서, 송라이팅, 노래, 연주는 물론 영화의 주연까지 맡은「Purple Rain」를 통해 완벽한 천재성을 피력했고, 대규모 사단(레볼루션, 더 타인, 실라 이, 시나 이스턴)을 지휘하며 팝 음악계에 많은 볼거리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음악적인 혁신과 파급 효과는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져 앨범이 24주가 차트 정상에 올랐고, 〈Let's Go Crazy〉가 2주간, 〈When Doves Cry〉가 5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타이틀곡〈Purple Rain〉2위, 〈I Would Die 4 U〉8위, 〈Take Me With You〉25위에 오르는 등 5곡의 싱글 히트곡을 쏟아냈다. 「Purple Rain」의 열기가 아직 수그러들기 전인 '86년 6월, 프린스는 1년만에 새로운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를 발표했고, 또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80년대 중반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불탔고, 세상은 능력있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이종현) 
 
 21. Queen
       [A night at the opera] (75)
 이 앨범을 더 이상 팝의 범주에 묶어 놓을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퀸의 역작은 이제 글자 그대로 고전(Classic)이 되었다.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가 이미 레코딩한 바 있지만, 머지않아 모든 성악가들이 〈Bohemian Rhapsody〉를 부르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록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앨범 중의 하나인 본작은 수록곡들의 다양함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트랙을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Love Of My Life〉외에도 경쾌한 스탠다드 넘버인 〈You're My Best Friend〉, 비틀스를 연상케하는 록 넘버 〈I'M In Love With My Car〉, 유랑 극단의 노래극 분위기를 담은 〈Seaside Rendezvous〉등 각양각색의 곡들이 물결치듯 파노라마를 이룬다. 퀸의 작품치고는 가장 특이한 성격을 드러내는 〈'39〉은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의 보컬에 귀 기울여 볼 만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에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뱃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흔히 대중성과 음악적 성취는 양립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지만, 퀸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당시의 펑크 뮤지션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김우석)
 
 22.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73)
 '70년대 초반 영국을 위시한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쓸만한 아트 록/프로그레시브 록이 꽤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력은 대부분 사운드의 비법에서 기인됐고, 그 대표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음향학을 이용한 공간감과 신서사이저의 실용화 등 핑크 플로이드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한 연주는 마술과도 같이 모두 새롭고 신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는 독특한 음반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특징이 함축된 앨범이며 제작에 있어서도 가장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을 받는 것은 멤버들의 능력이 고루 반영됐다는 점에 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의 영향력과 시회적인 무드를 따라 사이키델릭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70년대 중반에는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지한 기타 플레이가 조목받으며 실험보다는 음악 철학에 깊이를 두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로저 워터스의 부각은 메시지에 주안점을 둔 핑크 플로이드로 변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극단적인 스캣의 처절함도, 어두운 사회의 이면에 대한 반성도, 록 매니아라면 호감을 갖을 멜로우한 면모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73년 4월 28일 단 1주 넘버 운에 그쳤던「The Dark Side Of The Moon」는 이후 741주 동안 앨범 차트에 머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팝 음악 역사상 가장 롱런한 앨범이 되었다.(이종현)
 
 23. Bruce springsteen
       [Born to run] (75)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To Run」은 한 마디로 촌스러운 앨범이다. 문학적으로 그리 뛰어나지 못한, 밥 딜런 '뱁새 버전'(?)인 듯한 가사와 로이 비탄의 피아노와 올겐, 클라렌스 클레몬스의 색소폰 등 얼핏 느끼기에 록과는 거리가 먼 듯한 악기들의 구성이 이 앨범이 지닌 촌스러움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orn To Run」은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이 앨범처럼 하층 백인들의 생활을 정확하게 읽어낸 작품은 일찍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딜런의 노랫말처럼 지적이며 은유적이지 못하더라도 가장 서민적이어야 할 록 음악의 가사로선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운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만이 훌륭한 록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 앨범에 참여한 E 스트리트 밴드의 연주자들은 거의 모두가 스프링스틴이 브루크에일 커뮤니티 전문대를 중퇴하고 음악 생활을 시작한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음악의 동지들이다. 이들이 펼치는 연주의 조화와 미국적 에너지는 당시 영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미국 록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쾌거였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뉴 저지 주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Born To Run〉은 개처럼 뛰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서민들의 분노이며, 〈Thunder Road〉와 〈Tenth Avenue Freeze Out〉은 고통스러운 무명시절 스프링스틴의 상실감을 담고 있다. 〈Meeting Across The River〉는 돈 때문에 마약 딜러가 되려는 순진한 바보의 설레임을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가난한 실업자의 싸구려 자동차, 이것이 바로 「Born To Run」이다.(이무영)
 
 24. The rolling stones
       [Exile on main street] (72)
 밥 딜런, 킹크스, 더 후, 밴 모리슨, 롤링 스톤즈... 국내의 음악 시장에서 이들이 지니는 공통점은 그 유명세와 높은 평가에 비해 음악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곡된 방송계의 생리와 음악 전달자, 수용자들의 편협성은 대체 이들이 어떤 음악을 했는지 한 번 들어보려 해도 그 기회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요즘은 음반을 구하지 못해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참된 명제이다. 롤링 스톤즈의 경우, 우리에게 기껏 알려진 곡들은 난데없이 TV시리즈에 사용되었거나 분위기만 타는 DJ들에 의해 소개된 감미로운 발라드 뿐이지만, 이들 역시 비틀즈만큼이나 다양한 음악과 실험을 행했고 그만큼 대중 음악계에 끼친 영향 또한 적지 않다. 록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소울 감각으로 가득한 이들의 기본적인 음악 성향은 포크, 컨트리 앤 웨스턴과 싸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최초의 더블 앨범인 본작에서는 위의 요소들이 농축되고 또 증폭된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Beggars Banquet」(68), 「Let it Bleed」(69), 「Stidky Fingers」(71)등 여타 걸작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본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관악기 편성의 악곡 전개이다. 기존 멤버 외에 여러 명의 게스트 뮤지션들의 협연이 돋보이며, 더욱 안정되고 성숙된 스톤즈 사운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김경진)
 
 25. The Beatles
       [Abbey road] (69)
 자타가 공인하는 LP시절 최고의 명반이자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 〈Come together〉,〈Something〉등이 수록된 A면이 대중들의 감성을 기막히게 포착해낸 비틀즈 상업적 승리의 집약판이라면, 〈Because〉와〈Here Comes The Sun〉등이 꼬리를 물고 메들리처럼 이어지는  B면은 클래식 악곡 풍의 예술적인 심미안으로 가득 차 있다. 단언컨대, CD로 들으면 그 감흥이 반감된다. 판을 뒤집어 텐테이블에 올려놓는 그 짧은 시간의 간극이주는 A면과 B면의 뚜렷한 변별성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CD로 〈I Want〉까지 들은 후, 아주 잠시 쉬었다가 〈Here Comes The Sun〉을 들어 보라.)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오랜 헤게모니 싸움에서 그 주도권이 이 앨범에 이르러 폴 메카트니에게 넘어간다. 앨범의 기획을 비롯해 제작의 대부분을 지휘했던 폴 메카트니의 지배력이 앨범 전편에 넘실된다. 비록 존의 집중력이 이 음반에서 많이 떨어졌지만, 그의 〈Because〉는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친화력을 대중들에게 부여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아울러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짙은 그늘에 가려있던 조지 해리슨이〈Something〉과 〈Here Comes The Sun〉을 링고 스타가 〈Octopus's Garden〉을 통해 작곡자로서의 일취월장한 면모를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음악이지만, 비틀즈의 천재적인 창조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 정신은 지금에도 그 감동의 진폭이 줄지 않는다. 곳곳에서 해산의 징후를 맡을 수 있는 이 앨범의 마지만 트랙은 〈The End〉다. 이 앨범은 폴의 승리이며 그의 전리품이다.(박신천)
 
 26. Deep Purple
       [Machine head] (72)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 로버 글로버로 구성된 딥 퍼플 최고의 라인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2기의 대표작으로 통산 7번째 앨범. 재론의 여지가 없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교각으로 자리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들 최고의 히트곡(전미 싱글 차트 4위)으로 기록된 〈Smoke On The Water〉는 록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기타 리프를 낳았고 〈Highway Star〉역시 기타 속주의 초기 교과서로 남아있는 하드 록의 명곡이다. 이외에도 〈Space Trucking〉,〈Lazy〉등, 이들은 5분 내외의 단시간에 교향악적인 코드 변환과 관현악과 같은 다이내믹한 사운드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짧은 하드 록'을 창조했다. 하드 록의 명반이면서 동시에 록 역사에 '기타명반'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의 에너지와 연주기량은 동시대 록계를 양분했던 레드 제플린의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72년 1월 발매와 동시에 영국 앨범 차트를 석권했고, 미국에서도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마저 거머 쥐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앨범의 주도권은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완전히 이양된다.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클래시컬 악곡들이 주를 이뤘던 초기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하드 록의 기념비적인 역작들,「Burn」(74),「Made In Japan」(76)의 출현은 예고된 것이었다.(박신천)
 
 27. AC/AC
       [Back in black] (80)
 그냥 재미 삼아서 록의 역사에 스탬프처럼 남아 있는 기타 리프를 세 개만 뽑아보자. 먼저 기억나는 것은 롤링 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다. 그 다음은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조금 더 발전된 느낌이다. 여기까지는 영국인데, 세 번째는 어찌된 일인지 호주 출신 AC/CD의 〈Back In Black〉이 떠오른다.
  인기 면에서나, 밴드가 갖고 있는 무게로 보나 반바지 차림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이 록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의 두 선배에 비해서 턱없이 가벼운 것이 사실인데, 이 앨범 타이틀곡의 리프는 너무도 인상적이다. 잘 기억이 안나시는 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Rock & Roll Dance〉라는 노래의 인트로를 떠올려 보시라. 그렇다...바로 그 리프가 그 리프이다.
  기타라는 악기는 록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새로운 유형의 록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기타 리프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AC/CD가 '80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팬들의 뇌리에 확실히 남을 만한 리프 하나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앨범이다.
  본 스코트의 죽음 이후 새 보컬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슨과 만든 첫 작품인데, 이 앨범의 성공으로 인하여 그들은 비로소 장수 그룹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You Shook Me All Night Long〉, 〈Hell's Bells〉등 대중적인 곡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부담없이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김우석)
 
 28. Ramones
       [Ramones] (76)
 얼핏 봐도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담벼락 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헐렁한 차림의 꽤나 반항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네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의 앨범 커버만으로도 여기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라는 공동체를 강조한 듯 마치 형제처럼 라몬(Ramone)이라는 가명을 이름에 사용한 이들 네 명이 이루는 사운드는 록 음악사에 기록된 어떤 음악보다도 단순하고 또 직선적이다. 아이들의 시처럼 직설적이고 간결한 가사, 불명확하게 대충 훑어 내리는 듯한 발음, 게다가 모든 곡이 2분 안팎의 짧은 수록 시간을 가진다.
  록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제 완전한 성숙의 단계로 들어선 무렵 이런 '얼토당토 않은' 파격적인 내용물을 담은 데뷔작을 발표하여 음악계를 놀라게 한 이들은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펑크를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전의 이기 팝이나 이후의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등에 의한 펑크 록의 걸작으로 인정되는 앨범들이 록의 역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할 수 있지만, 본작이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90년대 이후 다시 록의 거대한 흐름으로서 등장하게 된 모던 펑크 밴드들의 기본적인 사운드 구조는 본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달리 눈에 띄는 곡 하나 없이, 단순한 코드 반복으로 이루어진 열네 곡의 단편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냥 즐거운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다.(정원석)
 
 29. Roxy music
       [Siren](75)
 '아트 록과 글램 록의 사생아'라는 또 하나의 세평을 만들어낸 이 밴드가 와해되기 직전(물론 뒤에 재결합했지만)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 특유의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대폭 간소화했다.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는 이전의 그 미래주의적이고 데카당스한 지향을 거두고 그 대신 상큼하고 유쾌한 크루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의 빅 히트작인 디스코풍의 〈Love Is Drug〉,이완된 컨트리 풍의 〈End Of The Line〉만 들어도 충분하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당시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과 더불어 지극히 '1970년대적'이다. 때는 '60년대의 낭만적인 잔치가 끝나고 잔칫상에는 날이 갈수록 파리만 들끓고 있을 때다.
  물론 아트 록과 헤비 메탈로 가득찬 잔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록시 뮤직은 이 복잡 미묘한 시기를 한편으로 경배하고 한편으로 비웃었고, 이제 드디어 맥이 빠졌다. 기타, 드럼, 베이스 뿐만 아니라 신서사이저, 바이올린, 색소폰, 오보에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의 마지막 '지성적 키치'가 그 맥빠짐의 증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70년대 록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된다.(신현준)
 
 30. Fleetwood Mac
       [Rumours](77)
 오리지널 플리트우드 맥은 '60년대 후반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이 낳은 최고의 블루스 록 밴드였다. 존 메이올과 블루스브레이커스를 모체로 삼아 탄생한 플리트우드 맥 초기의 음악적인 주도권은 기타리스트 피터 그린이 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969년 피터 그린이 그룹을 탈퇴하기 전까지의 앨범에 더 애착이 간다.)
  도표를 그려가며 따져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가는 복잡한 멤버 교체를 반복하면서, 셀프 타이틀 앨범 「Fleetwood Mac」에 이르러 그룹의 상업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문제는 다음 앨범이었다. 다음 앨범이 성공하면 이번의 히트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뿐만 아니라 수퍼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실패할 경우 다시 멤버 교체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발표된 본 앨범 「Rumours」는,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큰 성공을 가져왔다.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싱글 커트된 〈Go Your Own Way〉,〈Don't Stop〉등 3개의 싱글이 톱 10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는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그룹만이 만들 수 있었던 노래가 대히트를 했는데, 떠나가는 밴드 멤버를 아쉬워하는 내용의 곡이었다.
  "또 떠나가는 건가요? 자유를 원한다구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뭐예요? 당신의 짐만 되나요. 잘 들어보세요 당신의 사운드는 외로워요, 밴드의 멤버 모두들 연주하고 있을 때의 당신을 가장 좋아해요..."-〈Dreams〉의 가사이다.(신용현)
 31. Led Zeppelin
       [Led Zeppelin] (69)
 레드 제플린의 위대한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첫 앨범부터 이렇게 훌륭하고 이렇게 완벽해도 되냐는 거다. 자기 손으로 멤버들을 끌어모아 이 앨범을 자기 돈을 들여 직접 프로듀스한 지미 페이지에게 큰 절을 하번 올림직하다.
  여기에 담긴 제플린의 음악은 100% 새로운 건 아니다. 수록곡의 절반은 블루스와 포크의 리바이벌이며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에 관해서라면 이미 핸드릭스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후인데다, 샤우트 창법은 당시에 유행이었고 화려한 드럼 연주는 후의 키스 문이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 네 명이 함께 내는 사운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혼연일치란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굴 보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제플린을 봤다면 역시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첫 곡 〈Good Times Bad Times〉나 〈Communication Breakdown〉, 처절한 마이너 곡 〈 Babe, I'm Gonna Leave You〉도 좋지만 진정한 앨범의 백미이자 앞으로 제플린이 '크게 될 분들'임을 알려주는 건 바로 〈Dazed And Confused〉일 것이다. 최고의 감독(지미 페이지)에 당대 최강의 선수들. 결국 그들은 10년간 리그를 평정했다.(윤병주)
 
 32. Boston
       [Boston] (76)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출신의 공학도 탐 슐츠를 주축으로 브래드 델프, 배리 구드로, 프랜 시핸, 시브 해시언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 보스톤의 데뷔앨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로 뛰어오른 첫 싱글 커트곡 〈More Than A Feeling〉을 시작으로 〈Long Time〉, 〈Peace Of Mind〉등 후속 싱글들이 줄줄이 히트를 치며 9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구매 요인은 록 음악이면서도, 완벽하리 만치 탄탄한 곡 구조와 사운드 그리고 그 섬세한 멜로디 라인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사전에 철저히 조율되고 계산된 프레이즈에 한음 한음 쌓아올려간 탐 슐츠의 공학도로서의 꼼꼼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데뷔 앨범의 그 더없이 아름다운 코러스 하모니와 깔끔한 트윈 기타의 앙상블은 "지나치게 계산되었다."는 비판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실상 록의 커다란 미덕인 '살아 숨쉬는 즉흥 연주가 실종'되었던 때문이다.
  이 음반이 화제가 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기타 톤 때문이었는데,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기름진 그 디스토션이 걸린 매력적인 음색은 그 때가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색이었다. 물론 그 픽업은 공학도였던 탐 슐츠가 제작하여 기타에 장착한 자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기타 음색은 보스톤과 탐 슐츠의 트레이드 마크로 뮤지션과 일선 기타 제작사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탐 슐츠는 그 픽업 제작 기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대신, 직접 기타 픽업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의 이런 학구적인 자세는 그와 보스톤의 음악에도 짙게 투영되어 있으며, 그는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프레이즈를 들려준 스튜디오 뮤지션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박신천)
 
 33. 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 (89)
 영국 북부의 억양과 발음은 언제나 낯설다. 아마도 가장 이질적인 영어 발음중 하나일 게 틀림 없다. 오아시스 두 형제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코카서스 지방 설인들의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대부분이다. 스톤 로지즈의 음악은 이토록 영국 북부처럼 지독하고 낯설게 다가섰다.
  '89년 오랜 무명 시절의 마감을 의미하는 스톤 로지즈의 데뷔 앨범은 한창 확산 붐을 이루던 맨체스터 사운드의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이키델릭에서 기초한 맨체스터 전통의 흡입력과 충실한 그루브감을 앞세웠던 맨체스터 사운드는 당시 큰 주류로 각광 받던 런던의 펑큰롤에 비견할 인기 장르로 수 년간 군림했다.
  맨체스터 사운드는 비교적 뿌리가 깊은 편이다. 런던과 리버풀 등에 비해 주목받게 된 시기가 늦은(80년대 전후)감은 있지만 수퍼 밴드들의 발굴을 통해 나름의 연대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이 디비전, 스미스, 뉴 오더.
  맨체스터 사운드는 펑크, 뉴 웨이브, 모던 록을 이어주는 프론트 라인이었지만 언제나 그 성향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오버 그라운드화되지 못했다. 현재영국에서 오버 그라운드와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인디 씬. 맨체스터 사운드가 인디의 모토가 되었다면 스톤 로지즈는 인디의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매스컴의 인디 앨범 걸작 선정엔 스톤 로지즈의 본작이 여지 없이 정상에 올라있고, '80년대의 가장 큰 뉴스로 스미스의 해산과 스톤 로지즈의 데뷔를 꼽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나른한 몽상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해피 먼데이스가 '매드체스터'란 오명에 약물과 오욕의 역사를 가져온 뉴스 메이커였다면 스톤 로지즈는 사운드의 혁신을 가져온 파이오니아였다. 이제는 영국 수퍼 밴드의 계보를 확산(밴드 해체후 멤버들은 시호시스 등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스톤 로지즈. 〈I Wanna Be Adored〉의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던 어설픈 춤 사위는 '80년말 변화 없는 팝 음악계를 조롱한, 혹은 '90년대 모돈 록을 예언한 징표였던 것이다.(이종현)
 
 34. Van Halen
       [Van Halen] (78)
 밴드로서의 밴 헤일런의 '업적'은 로큰롤에 기반한 어메리칸 하드 록 시대의 본격 개막에 남긴 혁혁한 전과와(데이비드 리 로스라는 상징적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유희'로서의 록에 대한 원초적 요구에의 군더더기 없는 접근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밴 헤일런은 창조적 리더이자 혁신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킹을 하지 않고서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혁명적 발상을 구체화시킨 라이트 핸드 탭핑의 충격적 '분출'. 〈Eruption〉이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스트루멘틀의 하나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느낌의 브라운 톤(Brown Tone)을 만들어낸 사운드 메이킹 아이디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코드 보이싱 패턴 역사도, 록 기타가 에드워도 밴 헤일런에 빚지고 있는 값진 유산이다.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연주는 '계단을 소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다 현관에 이르러 똑바로 착지하는' 것과 같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얘기는, 그의(나이답지 않게) 천진하고 장난스러운 시도가 록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 온 결정적 모티브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러나 정확하게)설명하는 명징한 사례이다.(박은석)
 
 35. Ozzy Osbourne
       [Blizzard of Ozz] (81)
 Never Say Die」(78)에서의 실망스러운 사운드를 뒤로 한 채 블랙 사바스를 떠난 오지는 새 날개를 달았다. 토니 아이오미나 기저 버틀러의 음습하고 육중한 리프가 아니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오지 오스본은, 밴드가 새로운 프론트맨 로니 제임스 디오를 맞이하여 성공적인 재기를 이룬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발표한 본작을 통해 그 자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마치 전설처럼 되어 버린 랜디 로즈의 이름 하나만으로 본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클래식에 바탕을 둔 그의 프레이즈는 오지의 음울한 목소리에(이상하게도)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며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Mr. Crowley〉와 〈Revelation(Mother Earth)〉에서의 클래시컬한 리프와 서사적인 아름다운 멜로디의 조화-〈Revelation〉의 완벽한 사운드 미학적 구조은 흡사 '70년대 아트 록 그룹들이 행했던 곡 전개를 연상케 한다-는 이후의 「Diary Of A Madman」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다.
  유라이어 힙을 탈퇴한 리 커슬레이크와 레인 보우 출신의 밥 데이즐리의 탄탄한 리듬 파트를 바탕으로 콜로시엄Ⅱ, 레인보우 등에서 활동했던 돈 에이리의 건반이 빛을 발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있다.(김경진)
 
 36. Bruce springsteen
       [The River] (80)
 아직 CD라는 오디오 포맷이 일반화되기 전인 1980년데 LP 2장 짜리로 발표된 「The River」는 미국의 중산계층의 삶, 그중에서도 외롭고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애환과 약간 삐뚤어진 10대의 방황과 사랑을 가사에 담아 스트레이트한 록 비트에 실어 들려주는 시원한 로큰롤 앨범이다. 내용적으로는 '75년도에 발표한 「Born To Run」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느낌을 주지만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 한 단계 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CD시대인 지금과 달리 LP시절에는 앨범 한 장에서도, 사이드 A와 B로 나누어져 있어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앨범 구성에 지금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물며 2장 짜리에서는 음악이 4번 단절됨으로 음반 한 면마다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 순서를 정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첫 곡 시작부터 미디움 템포의 〈The Ties That Bind〉로 시작해 라이브 녹음의 곡인 〈Sherry Darling〉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질주하는 듯한 로큰롤을 이어나가다가 발라드 곡으로 끝을 맺는 패턴을 몇 번 반복하는데, 2장 짜리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아직 '메이저'해지기 전의, 그리고 그의 E 스트리트 밴드가 가장 기름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을 때의 작품이다.(신용현)
 
 37. Bob Dylan
       [Blood on the Tracks] (75)
 '트랙 위의 피'란 제목처럼 당시 딜런은 피를 흘리는 고통에 처해 있었다. 월플라워스의 제이콥을 낳은 아내 사라 노운즈와 파경을 맞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딜런의 명작 「Bonde On Blonde」가 사라와의 '웨딩앨범'이라면 '75년의 이 음반은 '이혼음반'이다. 그래서일까? 〈Tangled Up In Blue〉나 7분 40초짜리의 대곡 〈Idiot Wind〉등 처절하게 목청을 높이는 곡들이 많다. 아니면 〈Simple Twist Of Fate〉처럼 구슬픈 노래들이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60년대의 어쿠스틱 포크 풍으로 되돌아갔다.
  직전의 경향이었던 컨트리 록이나 회고조의 노래에서도 벗어났다. 당연히 '70년대 딜런의 앨범 가운데 '가장 포크적'이다. 딜런 스스로도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일종의 '귀거래사'다. '롤링 스톤'지는 '60년대의 고전 「Blonde On Blonde」에서 보여준 '시적(詩的) 감화력'을 회복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이 앨범으로 딜런과 함께 격동의 시대를 치달아간 베이비붐 세대의 지성들이 다시 딜런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그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허탈감에 젖어 있었던 상황. 이 앨범이 그들을 달래주었다. 환희가 걸작을 낳기도 하지만 역시 명작은 슬픔의 소산인 듯. 비평가 폴 넬슨의 리뷰가 인상적이다. "결혼이 깨져가고 공연과 앨범은 언론의 관심 밖이었다. 딜런은 다시 쫓기는 심정에 불안정했다. 그것은 아마도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취자의 심저를 흔드는 앨범. 그가 '20세기의 지성'임을 웅변하는 문제작이다.(임진모)
 
 38. Led Zeppelin
       [Physical Grafitti] (75)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하드 록 이라는 장르로 인해 단순무식 단세포적 리프 메탈 밴드들과 같이 묶이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그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인 여러 장르의 수용과 융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1, 2집에서의 헤비 블루스 록, 3집에서의 브리티쉬 포크 탐구, 4집에서의 정통 로큰롤 구사, 5집에서의 메탈/포크 퓨젼과 레게에의 접근 등 실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졌었다.
  「Physical Graffiti」는 '75년 발표된 통산 6집으로서 정규 앨범중 유일한 더블 LP발매의 대작이다. 제플린의 사운드가 실험성과 웅대함이 실린 헤비 사운드로 정의된다면 이 앨범을 가장 레드 제플린적인 앨범이다. 〈Stairway To Heaven〉이나 〈Rock & Roll〉과 같이 라디오 전파를 잘 타는 인기곡은 없지만 앨범 전체 구성력이 뛰어나고 초기의 헤비 블루스로의 회귀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많은 제플린 팬으로부터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여기에 수록된, 제플린의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곡 〈Kashmir〉는 중동 풍의 선율을 시도하여 그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또한 11분의 대곡 〈In My Time Of Dying〉, 〈Trampled Under Foot〉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제플린의 정신은 헤비 메탈의 최전성기인 '80년대 밴드들보다 오리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게서 더욱 진한 감이 있다. 사운드 가든은 대표적 예로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제플린적 체취가 역력하다. 최근 등장한 신인 중에서는 토닉(Tonic)이 대표적으로 역시 제플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2장의 트리뷰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80년대 메탈맨들이 참가한 최근의 「Stairway To Heaven」보다 얼터/모던 록계가 대거 참여한 '96년의 「Encomium」이 훨씬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이 있다. 아마도 제플린의 정신은 단순한 스타일의 답습보다는 오리지넬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Physical Graffitti」는 이런 점에서 가장 '90년대적인 레드 제플린 앨범이다.(정원석)
 
 39. The Rolling Stones
       [Sticky Fingers] (71)
 지구상에서 록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을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쪽은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머지 안 쪽은 이해 못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롤링 스톤즈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 나라의 록팬들이라면 〈Angie〉나 〈As Tears Go By〉 정도는 금방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롤링 스톤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게 되려면 블루스, R&B, 컨추리 음악 등의 폭넓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록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 얻어진 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한 방향으로 모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Stoclu Fomgers」라는 앨범은 '60년대를 지나 혼돈의  '70년대, 비틀즈 분열의 틈을 타서 록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에 가득찬 앨범이라는 발매 당시의 평가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이고, 불후의 명곡 〈Wild Horses〉을 세상에 내보낸 작품이라서 롤링 스톤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롤링 스톤즈가 록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스톤즈 속에는 록의 모든 것이다 있다!(신용현)
 
 40. Neil Young
       [Rust Never Sleeps] (79)
 'A면은 어쿠스틱, B면은 앨렉트릭'이라는 2원 구조를 갖고 있는 그런지의 대부 닐 영의 LP시절 명반이다. 음반의 시작 〈My My, Hey Hey(Out Of The Blue)〉와 끝〈Hey Hey My My(Into The Black)〉이 절묘한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 이 음반은 섹스 피스톨스의 해산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한 펑크 시대에 대한 고참으로서의 경의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환언하면 펑크가 음악계에 몰고 온 그 거센 소용돌이에 대한 고참의 해석판이요, 'Punk Will Never Die'의 정신을 일깨우는 경의의 헌사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이 혜안은 작금에 이르러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비록 그 시대 정신은 벗어버리고, 그 외피만을 뒤집어 썼으나 네오 펑크가 일대 돌풍을 몰고 왔고, 그 보다 더 큰 물결, 얼터너티브가 90년대를 뒤흔들었다.
  얼터너티브를 견인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지상 최후의 말은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에 대한 사랑의 맹세도, 잘먹고 잘살아라의 'Fuck You'도 아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지 이 앨범의 싱글 〈My My Hey Hey〉의 가사 중 한 구절 - "서서히 시드느니 차라리 불타 없어지는 게 낫다." -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닐 영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이 앨범이 품귀 현상을 맞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의 행로와 음악여정은 철저한 자기중심이었다. 그는 대중과 타협하지도 않았으며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음악으로 대중을 유혹한 일은 더더욱 없으며, 음반사에 값싼 미소를 던지는 추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앨범들은 언제고 일정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그의 고뇌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 열렬 팬들의 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비록 그의 변신의 과정을 놓고 평자들의 분분한 평이 양극단을 달리긴 하지만, 그가 음악계에 짙게 드리운, 그리고 아직도 그 끝을 놓지 않고 있는 치열한 시대정신의 노력은 결코 평하될 수 없다. 그는 록계의 'Die Hard'다. 이 앨범을 그것을 백마디의 웅변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박신천)
 
 41. Black Sabbath
       [Paranoid] (71)
 '1970년에 화제의 데뷔를 했던 블랙 새버스의 두 번째 앨범이자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8비트의 힘찬 배킹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은 지금 들어봐도 역시 충격적이다. 밴드의 최소 단위인 기타, 베이스, 드럼만 가지고 이렇게 공격적인 사운드를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블랙 새버스가 온전한 헤비 메탈 그룹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을 기계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하드 록 중에서 훨씬 공격적이면서 빠른 템포로 정형화된 것을 헤비 메탈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영국의 다른 그룹들이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록 음악을 연주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최초의 브리티시 헤비 메탈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지 오스본의 음산한 목소리와 기괴한 쇼맨쉽, 그리고 종말, 죽음, 파괴 등을 주제로 다룬 가사로 인해서 보수적인 평론가들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플래티넘을 기록했던 것을 보면 당시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던지 알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이들의 싱글 히트곡은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Paranoid〉 하나 밖에 없지만, 〈Iron Man〉 같은 대곡은 기념비적인 헤비 메탈 넘버이다. 정상적인 템포로 노래가 이어지다가 토니 아이오미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면서 더블타임으로 빨라지는 구성은 이후에 등장하는 헤비 메탈 곡들의 전형처럼 되어버렸다. 〈War Pig〉 역시 마찬가지.(김우석)
 
 42. Green day
       [Dookie] (94)
 '펑크로부터 플래티넘으로'였던가...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이렇게 평했던 듯하다. '파티 펑크'(Party Punk)였던가... A.P지는 이들을 이렇게 비아냥거렸던 듯하다. 어떤 통신 문구에서는 '정박아 펑크'라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1,00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 펑크 레코드'라는 영예는 버클리 출신의 펑크 트리오 그린 데이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시대를 빛낸 명반' 축에는 못 낄 듯하다. '펑크 록'이라는 비교적 영예스러운 칭호도 못받고 겨우 '펑크 팝'이라고 불렸으니까. 게다가 이 앨범은 그런지 폭발이 '스멀스멀 사라지기 보다는 불타 없어지는 것을 선택한' 뒤(실제로는 그 반대 아니었을까) 무주공산 같이 되어버린 자리에 무혈입성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펑크라는 무정형의 운동을 팝 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 "내 푸념소리를 들어줄 시간이 있겠어"라는 빌리 조 암스트롱(Billi Joe Amstrong)의 하소연이 던진 「Basket Case」에 열광한 건 개러지 펑크족들만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었다.
  그런데 '시대를 빛낸 명반'이 아닐지라도 그 시대가 어수선하고 하수상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빛이 나지는'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앨범이야말로 비판가들에게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를 외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90년대 중반, 그리고 그 시대는 미국이 요즘처럼 다시 '쿨'해지기 전의 과도기였고 이들은 과도기의 적나라한 초상이었다. 그 점에서 이들은 망나니이기는 해도 얼간이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레코드는 '60년대 이후 수많은 개러지 펑크 밴드들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신현준) 
 
 43. Television
       [Marquee Moon] (77)
 뉴욕의 펑크 록계에는 라몬스와 같은 전형적인 3 코드 펑크와 함께 아트 스쿨(Art-School)이라 불리는 좀 더 실험적인 스타일의 밴드들이 공존했다. 이중 대표적인 그룹으로 토킹 헤즈와 텔레비전을 들 수 있다. 텔레비전은 전설적 펑크 록 클럽 CBGB가 배출한 최초의 스타 그룹으로서 록 역사상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팀으로, 단명했던 것이 무척 아쉬운 밴드다. 이들은 펑크 록이 갖고 있는 특유의 스피드감이나 파괴 충동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것보다 한 차원 놓은 수준의 예술적 감흥을 던져준다. 지적인(Intelligent) 테러리스트라고나 할까?
  이들 음악의 핵심은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 2명의 기타리스트에 의한 도취적인 듀얼 기타 사운드에 있다. 마치 서서히 약물에 의해 취해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타 사운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그 위를 흐르는 초현실적 가사의 보컬은 그만큼 히스테리컬하다. 요약하자면 텔레비전의 음악은 에로틱하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이다. 이들은 '60년대의 사이키델릭·드럭 컬쳐의 계승자이며 음악적으로 도어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직접적 영향하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이다.
  「Marquee Moon」은 결코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후의 수많은 모던 록 밴드들(특히 기타 위주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벨벳 언더그라운드-텔레비전-소닉 유스의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텔레비전은 이후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고 해산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걷다가 '90년대 초 잠깐 재결성 됐으나 역시 앨범 한 장으로 끝나게 된다.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매튜 스위트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었다)는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시대만큼의 작품을 발표하기는 힘들 것 같다.(정원석)
 
 44. Metallica
       [Metallica] (91)
 일명 블랙 앨범으로 불리는 이 동명 타이틀 이전의 메탈리카 앨범은 전부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지닌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앨범들은 고수 메탈 팬 이외의 일반 대중이 즐기기에는 너무 헤비하고 격하다. 이 앨범에 와서야 드디어 메탈리카는 본격적으로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제도권의 오버그라운드 매체를 장식하게 된다. 메탈리카의 이런 변화에 대해 골수 헤드 뱅어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예상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보다 많은 멜로디가 부여되고 발라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앨범은 역시 스래쉬 메탈임에 틀림없다.
  '90년대에 들어 많은 헤비 메탈 밴드들이 몰락해버린 상황에서 메탈리카 마저 구태 의연하게 '80년대식 죽여라(?) 사운드를 구사했다면 메탈계는 아예 씨가 말라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답습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창조적 뮤지션 집단인 이들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 쏟아진 비난의 대부분은 스래쉬 메탈 순수주의자들의 폐쇄성을 드러낸 이기심의 발로로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 앨범의 사운드 프로덕션은 헤비 메탈이 갖고 있는 미학을 최대한도로 극대화시켰다. 드럼 소리가 이처럼 웅장하고 강력한 음반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도 드라마틱함의 진수를 들려준다. 앨범 전체를 듣고 나면 마치 격한 운동 후의 기분 놓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8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그들의 위치는 이 작품으로 보다 견고해졌다. 이 앨범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천만장 가까이 판매되었다. 이런 종류의 헤비 사운드로서 가능한 최고의 판매고가 아닌가 싶다. 메탈리카는 영리하다.(정원석)
 
 45. Dire straits
       [Dire straits] (78)
 때는 디스코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1978년이었다.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록 넘버들이 펑크와 뉴 웨이브에게 조차 밀리며 설 자리를 잃어갈 무렵, 마크 노플러는 일렉트릭 기타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낮은 음의 스토리 송을 읊어댔다. 그의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라 갔다. 이제 F.M. 록을 지킬 사람들은 롤링 스톤즈나 로드 스튜어트가 아니었다. 모든 노장 가수들도 디스코 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상황에서 다이어 스트레이츠 같은 그룹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들은 블루스와 컨트리의 영향을 받은 은근한 맛의 음악을 연주했고, 노랫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밥 딜런풍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온통 춤곡 일색인 차트에 깔끔한 연주와 희망적인 노랫말이 등장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결국 이들의 데뷔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단 하나의 싱글 히트곡으로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이 앨범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좋은 곡들을 많이 담고 있다. 우리 나라의 팬들은 〈Sultans Of Swing〉만을 기억하겠지만,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전형적인 앨범 아티스트이다. 이건 정말인데... 그들의 모든 앨범에는 버릴 곡이 단 한 곡도 없다.(김우석)
 
 46.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67)
 '67년 6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의 시작을 알리게 된 계기를 이룬 대규모 록 공연인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두 번째 앨범 「Surrealistic Pillow」가 록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의는 일반적인 평가 이상이다.
  반전과 평화, 사랑과 자유가 최상의 가치일 수 있었던 시대, 젊음의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그 때에 개인 또는 집단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 방식으로서 록 음악이 지닌 가능성을 알아 본 선각자들은 하나의 커다란 음악적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미국 샌프랜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선 인물들에 마티 볼린, 폴 캔트너, 그리고 그레이스 슬릭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크 록 성향의 평범한 데뷔작 이후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의 가입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닥치게 될 싸이키델릭 시대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역시 몬트레이 페스티발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샌 프랜시스코 사운드의 걸작 〈Somebody To Love〉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환각 상태에 관한 〈White Rabbit〉-영화 〈플래툰〉에서도 들을 수 있는-등 그레이스의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시절의 두 곡이지만, 그 외에 마티 몰린의 나른한 보컬로 펼쳐지는 몽롱한 〈Comin' Back To Me〉와 포크적인 바탕 위에서 꿈결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짧은 기타 연주곡 〈Embryonic Journey〉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다.(김경진)
 
 47.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Vol. 1] (58)
 '56년부터 '58년까지 엘비스가 광풍을 일으키던 시절의 주요 히트곡을 망라한 앨범. 그의 '로큰롤 황제'로의 등극을 만방에 고한 앨범인 동시에 '로큰롤의 위대한 승전보'이기도 하다. 엘비스의 로큰롤은 결코 안전 운행이 아닌, 엄청난 기존 제도권의 공세를 딛고 일어선 전리품이다. 또한 당시의 대중음악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탠다드 팝과 샅바 싸움에서도 이겼다.
  스탠다스 팝과의 타이틀 매치를 승리로 이끈 첫 번째 요인은 격정적인 음악을 열망하는 젊은층의 욕구였다. 아버지와 함께 스탠다드를 들어야 했던 '몰개성'의 청춘들은 〈Heartbread Hotel〉, 〈Hound Dog〉,〈Jailhouse Rock〉으로 마침내 자신들만의 음악을 소유하게 되었다.
  두 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엘비스의 자질이었다. 스탠다드 진영에선 로큰롤 가수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힐난했지만 전혀 그게 아니었다. 엘비스는 스탠다드의 '음정'보다 더 가치있는 '음색'을 타고났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탤런트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고유의 음색을 지닌 가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 을 듣고 눈을 흘기던 기성 세대들은 , , 에서 발휘된 음색에 감탄했다. 그리고 백인이 흑인의 감정을 소화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이 록큰롤이었다. 시로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인 블루스와 백인 컨트리의 융합인 로큰롤의 정체를 밝혔다. '50년대의 사운드 트랙. 이 앨범이 없으면 로큰롤의 진화 과정을 알도리가 없다.(임진모)
 
 48. M. S. G.
       [The Michael Schenker Group]
 마이클 셴커의 앨범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유력한 단서 중 하나이다.
  신의 경지로까지 추앙되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마이클 셴커의 연주가 정중동의 미학에 길들여진 우리의 취향에 정확히 합치된다는 점에 있다. 특히, 경쾌한 리프 패턴과 서정적인 멜로디의 드라마틱한 배치에 있어서 마이클 셴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심미안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와 를 보라!) 크라이베이비를 사용한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과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리듬감 역시 마이클 셴커의 장점이다.
  사실, 이 앨범은 록 역사에 가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에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겸손한 마이스터의 힘있는 작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의 매니어들에게는 여전히 존경받을 만한 작픔으로 유효하다.(박은석)
 
 49. Talking heads
       [Remain in light] (80)
 토킹 헤즈의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의 위대함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리더 데이빗 번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있다. 항상 지적인 밴드로 불리우는데 싫증난 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적 정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또 하나의 인물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며 토킹 헤즈의 초창기부터 번과 호흡을 맞춰 온 브라이언 이노이다. 그는 작곡과 편곡, 기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 연주에서 특유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Remain In Light」의 전체적 사운드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근거해 멜로디에 의한 코드 체인지에 의존치 않고 대담한 반복 리듬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사운드는 대단히 펑키(Funky)하고 댄스적이다.
  대부분의 실험적 음반이 상업적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데 반해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9위까지 진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히트곡 을 비롯,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한 마디로 「Remain In Light」은 '제3세계 음악'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나 스팅의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등이 모두 이 앨범에 큰빚을 지고 있다.(이무영)
 
 50. Led Zeppelin
       [Led Zeppelin Ⅱ] (69)
 '헤비 메탈의 형식미를 완성시켰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레드 제플린의 2번째 앨범. '예술지상주의'가 레드 제플린의 음악 행로를 초지일관 관통하고 있는 예술적 모토-동시에 록 음악이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이긴 했지만, 그 지칠 줄 모르는 탐미주의는 사실상, 이 음반으로부터 출발한다.
  블루스에 기반을 두었던 데뷔 앨범과는 달리,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레드 제플린의 하드 사운드, 헤비 블루스가 본격화 되었다. 특히 이 앨범이 구현하고 있는 각 포지션의 연주 기법과 구성, 그리고 그 기재들은 헤비 메탈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된다. 때문에 '70년대의 하드 록 역사의 정중앙을 관통한 가장 중요한 앨범 가운데 한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록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은 그러나 펑크 진영으로부터 '부르조아, 엘리트 록'으로 비판을 받으며, 이른바 그 '처단대상'에 오르는 명암이 교차하기도 했다.
  로큰롤의 가장 전형적 리프와 구성미를 보여주고 있는 와 어쿠스틱 분위기 물씬한 , , 지미 페이지의 파워코드의 리프가 멋진 , 존 보냄의 파워 드러밍이 일품인 은 이 앨범의 빛나는 트랙들이다. 로큰롤과 블루스, 어쿠스틱 사운드가 뒤섞인 하드 록의 역동적 감각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견고함은 많은 부분, 천재적인 편곡자로서 밴드의 숨은 구심점 역할을 했던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의 몫이다.(박신천)
 
 51. Beach Boys
       [Pet sounds] (66)
 66년 당시로 볼 때는 '기적'과도 같은 앨범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효과음을 냈을까? 또 어떻게 이런 고급의 곡을 썼단 말인가?
  일렉트릭 시대에 이것은 그 단계를 초월해 있었다. '일렉트로닉'이었다. 사람들은 로 스튜디오 음악데 눈을 떴다. 필 스펙터늬 '월 오브 사운드'를 응용해 거기에 사이키델릭 효과까지 '믹스'해내었다. 녹음실의 엔지니어까지도 이 앨범의 주체인 브라이언 윌슨의 천재성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브라이언은 곡을 쓰는 것도 녹음 방식을 대입했다. 구조를 신봉하는 전통적인 작곡 기법과 이별한 채 단락의 형태로 나눠 나중에 그것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헤쳐모여'라고 할까. 그의 곡은 듣기에 다소 실험적이긴 했어도 결코 어색하지가 않았다. 가히 천재의 소유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
  브라이언에 감탄한 사람은 같은 캐피틀 소속사의 라이벌인 폴 매카트니였다. 그는 이 앨범이 의 예술성을 능가하는 걸작임을 인정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를 두고 '팝 역사에 지금까지 쓰여진 가운데 가장 우수한 곡'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사실 브라이언이 이 앨범을 만든 것은 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카운터 펀치를 맞은 비틀즈가 를 넘어서기 위해 만든 앨범이 바로 . 브라이언이 직간접적으로 팝계에 새긴 자취가 많은 셈이다. 여기 수록된 는 국내에서 당시 널리 애청되었다. 그 곡을 다시 한번 들어 보라! (임진모)
 
 52. Kraftwerk
       [Trans - Europe Express] (74)
 크라우트록(Krautrock)... 캔,파우스트,노이 등의 실험적 혹 음악은 `아트 록'이 반드시 거장적 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가 `록 음악`을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미래는 `미래는 전자 음악의 시대이다'라고 확신한 이들은 전자 악기 및 전자기기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승부수는 로보틱(Robotic)하고 강박적인 일렉트로닉 펄스(Electronic Puise)에 기포한 감정 없고 비인간적인 사운드였다. 8비트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 일렉트로닉 키보드의 리프(혹은 시퀸스)는 자칫 단조롭게 들리기 쉽다.
그러나 은 22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속하면서도 이런 단조로운을 떨쳐 버린다. 갖가지 음향효과가 양념처럼 들어가고 특유의 몰환적 기타 사운드는 최면적 효과를 발휘한다.
'테크놀로지 속의 스피리추오 리티'(Spirituclity in technology)라는 후대의 테크노 씬의 맹아는 이미 여기부터 존재한다.
 그들의 미래주의적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들이 주 영향은 협의의 록 음악분만 아니라 록의 외부까지 멀리 환장된다. 뉴 로민틱스, 알렉토로신서 캅, 하우스, 테크노ㅡ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에 이르기까지 크라프트베르크의 유산은 지대하다. 독자는 그들의 초기 작품이 정말 실험적인 록 음반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독일의 록음악이 이 앨범이 없었다면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졌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에 속한다.(신현 준)
 
 53. Sly & The family stone
       [There's a riot goin' on] (71)
 제임스 브라운 밴드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이 흑인 음악과 록의 역사에서 요인으로 거론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펑크(Funk)란 것 때문이다.
 펑크에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밴드`란 것인데 거기에는 `아프리카의 정글 리듬`을 구현하되 스스로 그것을 한다는 의식이 묻어 있다 예전에 흑인 음악은 다수가 보일 경우 노래만 하는 `보컬그룹`을 의미했다 악기 연주는 저 멀리 있었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은 펑크의 선구자로 기록된다 곡들에 질 편한 베이스와 강도 높은 색소폰 그리고 일정한 드럼의 비트가 자체 연주에 의해 끈적끈적하게 그리고 사이카델릭하게 베어있다. 게다가 그것을 백인 지배 사회에 대한 비아냥 등 반항적 메시지와 묶었다 제목만 보면 이 앨범도 그렇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회적 항변보다 개인적 불만의 내용이 주를 이른다 `69년에 나온 Stand 와 여기서 차이가 난다.
 이상한 것은 그 것만이 아니다 사운드도 전에 확립한 패턴에서 많이 이탈해 있다 다분히 `일렉트로'적이었다 그에게 `뭔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죽자는 `이 앨범을 듣는 것은 마약 상용자가 고개를 떨구는 걸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당시 그는 예약된 공연을 마구 취소하는 무례를 일삼았다 그 때문에 관객이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런 기행(?)이 여기에도 보인다 아마도 그 이상스러움으로 인해 이 앨범이 평가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린스가 그랬다 평자들은 슬라이가 성공적인 프린스의`일렉트로 펑크`에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데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물론 차트 1위곡는 빼고...(임진모)
 
 54. R. E. M.
       [Murmur] (83)
 `얼터너티브 록의 원조` 라는 소문만 듣고 이 앨범을 구한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할 지도 모른다.
 록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이기에는 포크같은 그것도 포크 록보다는 포크 팝에 가까운 이 음악이 무슨 얼터너티브의 원조? 조지아 출신의 이 밴드는 처음부터 이런 수수께끼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실망은 호기심으로 바뀐다 `징글 쟁글`한 피터 벅의 기타는 솜씨좋고 능숙한 아르페지오로 백킹을 반복한다 아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가사로 시적 몽롱함을 만들어낸다 매끄럽고 명칭한 사운드의 전성기에 이들의 사운드는 때로 불길하다는 느낌마저도 줄 정도로 `앳모스리어릭(atmospheric)`하다 을듣고  뉴웨이브의 리듬을 을 듣고 포크 록의 리프를 그리고 무든 곡에서 아메리칸 포크로부터 팝적 선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고 외경스럽다 팝을 전복하는 팝 즉 팝이라는 개념은 영국의 스미스와 더불어 R.E.M에게 특히 이 앨범에 가장 잘 어울린다.
 평론가들은 R.E.M을 논할 때 버즈와 벨벳언더그라운드동시적 영향을 언급한다 참 이상하다
 히피와 비트는 당대에는 상극이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것 사이에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과거에는 얼터너티브 밴드였고 현재는 주류에서의 성공을 관리하면서 버티는 비결일지 모른다 R.E.M의 수수께끼는 얄미울 정도로 계속된다.
 
 55. Bob Marley
       [Legend] (84)
 라스타파리아니즘 (아디오피아의 황제 하일 세라시를 숭배하는 사상으로 아프리카로 의 복귀를 주장)백인들의 인종 차별과 월권 행위에서 비롯된 소수 민족들의 숱한 역사적 사건들을 만들어 냈고 뿌리 깊은 한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에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 풍의 요소가 접목되어 탄생된 레게음악에는 민족적인 한과 종교적 신념이 어려 있다.
 지미 클리프와더불어 지역 음악에 불과했던 레게사운드를 전세계로 전파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밥 말리는 자메이카인 들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힘을 준 정신적 영웅이었음은 물론 음악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이다
 레게의 독특한 리듬에 실린 사회 참여적인 가사 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자국민들에게는 물론 백인들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Burmin(73) Narty Dread(75) Rastaman Vibration(76) Ewodus(77)등  등 일련의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하며 대중 음악계에 하나의 장르를 완전히 정착시킨 그의 길지 않은 음악 생에는 사후 발표된 본작을 통해 접대성되었다  초기작인 을 비롯하여 밥 말리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되는 아름다운 에릭 클랩튼의 리메이크로도 유명한 와 그 자신이 가장 아꼈던 에 이르기까지 밥 말리 음악은 정수가 담겨 있다(김경진)
 
 56. Carole king
       [Tapestry] (71)
 케롤 킹은 `60년대 팝 록의 양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송라이터의 한 명이다 전남편인 게리 고핀이라는 작사가와 같이 만든 히트곡은 드리프터즈의 버즈의 슈렐즈의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히트곡이 있다 이 곡들은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케롤과 케리는 부부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이혼 후에도 그들은 공동작업을 계속했지만 그들 특유의 10대의 로맨틱한 꿈과 같은 공상은 작품에서부터 사라져버린다 캐롤 킹은 갤리포니아로 건너가 베이시스트인 찰스 라기와 재혼하여 전업주부에만 전념을 하다가 1970년 작곡 뿐만 아니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 변모하여 음악계에 복귀한다 첫 번째 솔로앨범 는 별반응 없이 자나가버렸지만 두 번째인 본작Topestry 는 큰 성공을 획득한다
 대 히트곡 는 지금도 우리 나라의 올드 팝 프로그램에서는 자우 흘러 나오는 곡이고 제임스 테일러가 불러 대히트한 역시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한 때 그녀가 만든 곡 없이는 전세계 많은 올드 팝 프로그래에서 방송할 앨범이 없을 정도로 캐롤 킹은 `60년대의 대중 음악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이후 Topestry를 능가하는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신용현) 
 
 57. U2
       [War] (83)
 조슈아 나무 에 경배를 올릴때만 해도 U2가 동물원을 거쳐  디스코테크로 갈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고 같은 이유로 이 앨범은 그들의 순수했던 지금의 그들이 `불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순한 록 밴드로 언급하기엔 너무 거대해진 현재와는 비교되는 개념의 초창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향기를 담고 있다.
 U2 의 가장 지명도 높은 싱글 리스트에 한 자리 씩을 차지하고 있는 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 앨붐은 `10월`혁명을 경험한 `소년`이 `전쟁`에 대해 느기는 분노를 강도높은 억양으로 표현하고 있는`90년대 식 프로테스티즘의 정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이 록팬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지 그 것의 메시지가 `기성비판적`이라는 대의명분 때문만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일개 클럽 밴드에서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 전환점으로서 본작의 미덕은 분출하는 이성을 감성적 표현으로 치환해낸 그 균형잡힌 방법론에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식을 록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화학 작용이 이 앨범 안에 있으며 그 석은 U2가 `80년대 전체를 홀로 지탱하며 고군분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박은석)
 
 58. Judas priest
       [British steel] (80)
 평자들이 주다스 프리스트의 최고의 역작으로 꼽고 있는 통산 9번째 앨범 이 앨범으로 인해 주다스 프리스트는 헤비 메탈 전성기의 정점에 위치하게 되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마저 거머쥔다 그러나 이 역작은 사실 `70년대의 후반을 장식할 뻔했다 앨범의 믹싱만을 남겨둔 단계에서 마스터 테입이 분실되고 재킷의 디자인이 바뀌는 우여곡절  겪었던 것 그러나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헤비메탈의 부흥기을 예견하는 `80년대 조미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앨범이 되었다
유다 (judas예수의 12사도였던 가릇 유다)와사제 라는 밴명처럼 이들은 자뭇 의미심장한 종교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극력한 헤비 메탈 사운드에 담아냈다 과연 이들만큼 철저하게 헤비 메탈로만 일관한 밴드가 있을까?롭헬포드의 쇠고리 지글대는 보컬 음색과 특히 K.K다우닝과 글렌 팁튼의 그 트윈 기타 시스템은 뒤에 등장하는 헤비 메탈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과거 록 밴드들의 트윈 기타 시스템은 켈로디 (혹은 애드립)를 주로 연주하는 소위 `허스트 혹은 리드 기타`와 그뒤를 리듬으로 받쳐주는 `세컨드 기타`라는 역할  분담이 분명한 도식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이 주다스 프리스트에 이르러 퍼스트와 세컨드 기타의 경계와 역할이 무너지게된다.
 반복 악절을 주고 받으며 한 소절씩 교환하는 그 졍교한 트윈 기타 앙상블로 발젖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헤비 메탈 밴드의 편성에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는 가장 공격적인 형태의 트윈 기타 시스템을 헤비 메탈계에 구축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앨범의 격렬하고 공격적인 사운드 역시 상당부분이 트윈 기타 시스템에 기대고 있다 절도있는 기타 배킹의 직진하는 힘이 팽팽한 간판싱글 와 역시 싱글 히트곡자신들의 송가 등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싱싱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단 이 앨범에 발라드는 없다 달콤한 마찰음 뿐이다 영국의 빈민 소년들의 오랜 신분 상승의 꿈은 이 앨범으로 비로서 완성됐다.(박신천)
 
 59. The clash
       [The clash] (77)
 어느 매체의 신청에서도 클래쉬가 섹스 피스톨서보다 우의에 섰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국내조사 역시 클래쉬는 섹스 피스톨 서를 꺽을수 없었다 클래쉬에게는 쟈니 로튼이라는 불세줄의 카리스마도 시드 비셔스라는 죽은 자에 대한 연민도 해당사항이 없다.
 세스 피스톨스를 위시한 대개의 펑크 밴드들이 세월따라 유행따라 모두 사라져 갔고 결국 g=펑크는 네오 펑크에 이르기 전까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없었다지만, 유독 한 팀 클레쉬만은 계속된 펑크 소멸 속에서도 비교적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갔다 어쩌면 펑크 리바이벌은 클래쉬의 마지막 역류가 있었기에 가증햇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펑크가 연주력이 무시된 극단적인 아마츄여리즘의 표상이라지만 많은 펑크 밴드들이 기타를 어개에 두른 사길 하나로도 감각하면 단순무식의 극지를 뿌듯해 한다 특히 펑크의 열기가 가장 곡을 달했던 `77년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안좋았던 시기로 합주 한번 해본적 없는 밴들들이 그 놈의 아마츄어리즘에 용기를 얻어 퍼포먼스로 승부수를 띄워보던 일이 허다 했다이 때 데뷔한 클래쉬는 단순과 평범이 교차하는 일차원적인 연주 패턴의 펑크에 다양성을 부각시킨밴드였다.
지금에 이르러 빛을 보게된 스카 펑크 (랜시드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스 등 구사) 도 다지고 보자면 클래쉬가 일찍이 구사했던 특징 중 (수록 곡중 )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인 걸출한 보컬의 스타 시스템을 펑크를 지양하고 소의 말하는 `떼창`을 통한 관중들과의 연대감을 저성하고 있다(이것은 훗날 뉴욕 하드 코어에서도 자주 써먹게 되는 방법) 데뷔 앨범부터 싹수가 보였던 클래쉬 깔끔한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과 영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품고 있었기에 이들의 분노는 설득력이 있었다 Oil Oil Oil (이중현)
 
 60. Stevie wonder
       [Talking book] (72)
 우리에게도 사랑 받은 와 Superstition 등 두 곡의 차트 넘버 원 송이 실려있다 다른 싱글은 없다 이런 경우도 흔하지 않다 이 무렵의 스티비 원더는 모타운 레코드사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한 이를테면 `홀로서기` 움직임이 맨 먼저 연상된다 홀로서 기한 뮤지션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자유`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바로 이런 아티스트 `자주권의 산물` 이란 점에서  의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엄밀히 홀로 서기의 첫 음반은 전해인 `70년에 나온  Music Of My Mind 이다 그런데도 이 앨범이 오히려 역사적 명예를 차지하는 것은 어쩌면 넘버 원 싱글 때문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앨범이 그만큼 유리하다는 것이다.
 원래 제프 백에게 주기위해 만들어졌다는 은 빌보드지에 따르면  어떤 카테고리로 한정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준의 작품이다 더욱이 이 곡은 당시 뮤지션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너도 나도 달려들었던 무그 신서사이저의 매력을 제대로 알렸다(후의 Who`s Next 도 그렇다 하지만 은 힙합 뮤지션에 의해 언제가는 샘플링될 것 같은 풍부한 감성과 하모니가 일품이다
이 앨범도 그렇지만 이푸의 역작들이< Fullfillingness First Finale>등 그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놓쳐서는 안될 `생필품들`이다.(임진모)
 
 61. The police
       [Synchronicity] (83)
 이 작품을 뛰어난 컨셉트 앨범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시각이다) 인위적인 스토리 보드에 의거하여 `연출`되고 `편집` 된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의 일괄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 분명한 의식의 흐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을 쓴 스팅 칼구스타푸 용으로부터 차용해온 `동시성 (Synchronicity)`의 개념을 아더코에스톨러의 이성적 기준으로 굴절시킴으로써 시니컬한 `시인` 으로써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폴리스를 뉴 웨이브라는 소속 집단으로부터 상당부분 분리시키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음은 물론 팝 스타덤에의 `참을수 없는 가벼움` 과도 분명하게 차별 화되는 그들 의상의 결정적인 바탕으로 작용했다 (마더 콤플렉스에 관한 악몽 악몽은 대중적 감성과 인텔리 겐차의 의식사이의컴플레스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폴리스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사운드의 측면에 있어서도 폴리스의 유니크함은 돋보인다 재즈 콤보 혹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서의 활동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연주력은 핵심을 명확히 하고 과장된 클리세를 제거 함으로서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으면 회화적인 이미지와 명쾌한 멜로디라인의 인상적인 결함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설명이 필요 없는 No. 1 히트곡 는퍼프 대디의 사진으로 최근 다시 한 번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고, 는 스팅의 시니컬한 유머의 장점이며, 는 회화적 이미지즘으로 그려놓은 익조티카이다.(박은석)
 
 62. Rainbow
       [Ritchie blackmore's rainbow]         (75)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양육강식의 논리일까?
 엘프의 멤버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밴드로 불러들일수 있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커다란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로니 제임스 디오의 보컬 역량 역시 이 앨범에 와서야 비로소 빛을 발함으로써 그를 본격적으로 오버그라운드로 진출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변화하는 딥 퍼플의 사운드에 흥미를 잃게 된 리치가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완벽히 드러낸 작품( 아예 자기 자신의 밴드임을 공공현히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으로 딥 퍼플의 블루스지향적인 사운드와 리치 자신의 중세적인 분위기의 요소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역시 하드 록의 또 다른 전향을 제시했다 할수 있으며 이듬 해 발표된 두 번 째 앨범 Raing (76)과 함께 밴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멜로트론의 감동적인 음향이 물결치듯 흐르는 명곡<(Catch The  Rainbow )>를 비롯하여 로니의 힘찬 보컬이 돋보이는 싱글 히트를 기록했던 국내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멋진 발라드 그리고 야드버즈의 곡을 리메이크하여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던 < Still I`m Sad>등 어는 하나 범작이라 평가할수 없는 최상급으로만 이루어진 뛰어난 작품이다 (김경진)
 
 63. Nine inch nails
       [The downward spiral] (94)
 나인 인치 네일스는 혁명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다 미니스토리가 다져놓은 `80년대는 강탈과 달콤함이 공준하는 모순의 땅(The Land Of Rape And Honey)이었고 그 위에서 트레트레즈너와 그의 9인치 짜리 손톱(NINE INCH NAILS)은 `예쁘고 혐오스러운 기계를 몰고 `90년대를 경작했다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새로운 방법은 장르의 개념으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트레트 제즈너는 사운드의 혁명이였다 하드웨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늦추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외도된 해러독스를 납득시킨 시니컬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세기말의 최고 히트 싱글 는 그에 대한 확정적인 증거이며 섀도매쳐키즘으로 얼룩진 현실사회에 대한 소름끼티는 진실의 고백인 동시에  도발적 페티슈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이 트레트 레즈너의 위상이 이만한 자리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록의 `산업혁명`이 이 땅에서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며 록 음악 소용 패턴의 변화를 얘기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이다.(박 은 석)
 
 64. Lou reed
       [Transformer] (72)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탈퇴한 후 루 리드는 약 2년 동안 혼란에 빠졌다 자신의 음악적 진로 문제로고민하던 그는 영국으로 건너간 후 자신의 열광적 팬인 데이빗 보위를 만나 Transfomer를 레코딩하게 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진보적 성향 때문인지 항상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루 리드는 이 앨범으로 첫 상업적 성공을 누리게 된다
 물론 이 앨범이 성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은 프로듀서로 참여한 데이빗 보위다 그는 루 리드의 개성과 작가 정신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운드를 이끌어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로 인해 Transfomer 는 글램록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고 루 리드는 수록곡 로 유일한 빌보드 20위권 히트를 기록한다.
 Transfomer의 강점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시절부터 드러난 루 리드의 어두운 면 에 있다 뉴욕의 어두운 구석을 철저히 파헤친 이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은 기준의 대중음악이 다루기 꺼려하는 마약 중독자와 동성연애자 실업자 등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는 뉴욕에서 흔히 볼수 있는 트랜스베스타이트 (이성의 복장을 하는 사람)와 마약 딜러 창녀들의 생활을 표현한 곡이다 루 리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출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이 곡의 모델로삼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최근 영화 트레인스포팅 의삽입곡 으로 화제를 모은 와 말 많은 뉴욕 가십쟁이 들을 비난한 마약에 찌든 한 인간의 중얼거림을 담은 등이 삶 자체에 대해부정적 견해를 지닌 루 리드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잇다 (이무영)
 
 65. Van morrison
       [Moondance] (70)
 명실상부한 밴 모리슨 최고의 작품이며 처음으로 미국시장을 상업적으로 관통했던 그의 네 번째 앨범 `1968년 에 발표한 걸작 앨범 Astral Weeks 가 록의예술적 지평을 넓히고 로큰롤로 그의 새시대를 열었다면 이 Moondance 는 확고한 대중적 지위를 획득했다.
`제2의 롤링 스톤즈`로 불리정도로 뎀 시절의 그는 아메리칸 소울과 블루스에 심취 했으며 후일 야드버즈에 가입하게 되는 지미 페이지 역시 이 시기에 모리슨으 밴드 뎀을 거쳐갔다 밴 모리슨은 밴드 뎀을 해산했던 67년에서 70년말까지 가장 창작력이 왕성했으며 상업적으로도 소기의 성공을 거뒀던 시기였다 그는 솔로로 데뷔한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모국 아일랜드의 정서를 자신의 음악에 수렴했으며 아메리칸 소울에 아일랜드의 토속 정서를 결합한  소위 캘틱 소울을 록계에 심었다.
제작은 물론 기타와 키보드 색소폰 프로듀서 까지 도말은 Moondance 의 신비로운 캘틱소울 창법이 넘실대는  와그리고 록 클래식으로 남은 와에는 그의 캘틱 정서가 가득하다 록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가 그의 음악을 두고 `그의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 아닌 모국의 것`이라고 평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모국 아일랜드의 정서를 록 음악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거대 그룹이 아니면서도 평자에게나 대중에게나 이만큼 호평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로서 `특이사례`에 속했다.
 그가 아알랜드 음악의 정신적 대부로 자리하고 아직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뮤지션들이 그를 경해하는 이유를 이 앨범은 잘 말해주고 있다 는 밴 모리슨의 예술적 고양이 극정에 다달았던 시기의 결과물이다(박신천)
 
 66. The Who
       [My generation] (65)
 볼륨의 크기라는 측면에서 최초의 진정한 록밴드는 누구인가?Who?이 앨범을 들으면 주저하지 않고 후라고 응담하게 될 것이다 대표곡이자 타이틀곡인 < My Generation> 은 확실히 헤 비 메탈적인 요소가 많다 펑크의 기운도 퍼져있다 발표된 때가 스테레오가 완성도 되기 전인 `65년임을 상기해야 한다(미국에선 `66년 발매 제목도 (The Who Sings My Generation)따라서 후는 헤비 메탈과 펑크 계보도의 맨 꼭대기에 설 수 있다 이를테면 록의 `하드코어` 로서 당시 챔피언이 그들이다.
 `90년대가 나인 인치 네일스라면 60년대는 후이다 지미 핸드릭수 크림의 에릭 클랩튼도 이 그룹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가 데뷔시켰거나 어려울 때 원조해준 인물들이다 `최초`의 영예는 어디가지나 후라는 얘기다 후의 멤버들은 영국의 당시 삐딱한 청년들을 일컫는 모드 (Mod)족이었다 그래서인지 로저 달트리 피트 타운센드 키스 문 존 엔트위슬 넷 모두 생김새로부터 불량해 보인다 이 앨범은 `반항하는 젊은 세대`로서의 모드 정서를 구한한 앨범이르는 점에서 록 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즉 반항을 일상화시켰다.
은 세대으 찬가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tion>과 같고 `90년대로 치자면 너바나의 < Smells Like Teen Sprit >펄 잼의 가 된다 늙기 전에 죽고싶다 는 표현은 당시로선 상상할수 없는 발상이다 역시 세대의 찬가 등도 다관련이 있다 는 `숨겨진 보석` 제임스 브라운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는 조금 어색하다 메탈이니 펑트니 하지만 생각보다 청취하기가 펀한(?)앨범이다(임진모)
 
 67. U2
       [The Joshua tree] (87)
 U2의 앨범을 순서대로 모두 들어볼수있다면 그것은 `80년대 록 음악의 전반적인 발전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다 U2는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을 수가 없었다. `80년대 팝 음악 전반에 나타난 상업화의 물결은 록과 메탈마저 상업화와 타협하게 만들어서 성공을 위한 요건에 굴복한 로커들이 대거 등장하게되는데 이런 일련의 흐름중에는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LA메탈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에 상업화 물결에 밀려서 침몰해버린 펑크의 후예들은 조금 더 단순화되었으나 세련된 음악과강한 메시지의 노랫말과 갈고 닦고 있었고 이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던 U2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이들 중 일부가 얼터너티브라는 비주류 음악인들의 일단을 이루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80년대에도 훌륭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던 폴리스라는 밴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폴리스는 해체 되고 그나마 가뭄의 단비처럼 그들의 음악을 찾아듣던 록 팬들은 또 다른 해방구를 원하게 된다 그 때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던 U2가 `85년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나타나게 되고 굳 이어 `87년 에 발표된 Joshua Tree 는 상상을 뛰어 넘는 대 히트작이 된다.
 절묘한 상황도 상황이지만 이 앨범의 품질은 그들의 다른 모든 앨붐을 능가흐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U2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앨범을 발표할때마다 실험과 변신을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로 인해 U2는 훌륭한 평가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김우석)
 
 68. Bob dylan
       [Highway 61 revisited] (65)
 Highway 61Revisited 는 `순수 포크`를 지향하는 골수 팬들의 가슴을 비수로 찌른 앨범으로 교통사고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80년대 중반 딜런이 내놓은  Bring it All Back Home  Blonde On Blonde 와 함께 3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중요한 작품이다.
`65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일레트릭 기타를 들고나와 포크 팬들의 야유를 들었던 딜런은 이 앨범에서 완벽한 일레드릭 포크 록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자신을 지원해 온 모든 팬들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적모험을 선택한 딜런의 자신만만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앨범이 바로 Highway 61Revisited 인 것이다. `순수 포크` 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Highway 61Revisited 는 음악적 변화 뿐만 아니라 더욱 냉소적이며 과격해진 딜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에게 메이저 히트를 제공한 은 이런 변화를 잘 입증하고 잇다 `넌 한때 좋은 옷을 입고 잘난 척 했지. 사람들이 전화로 `그러다 넘어진다`고 충고했지만 넌 아랑곳하지 않았어 넌 항상 별볼일 없는 사람들을 비웃었지 하니만 이젠 크게 떠들지 못하는군 다음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 하게된 마당에 별로 자랑스럽지도 못라게 됐군 기분이 어때? 집 없이 떠도는 지금 처지가? 완전히 무명이 돼 버린 신세가? 구르는 돌이 된 기분이 어때?` 딜런에겐 순수와 전통만을 고집라며 변화를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창의력을 깔아뭉개려는 세력도 척결돼야 할 구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던 팬들이더라도...(이무영)
 
 69. Iggy & the stooges
      [Raw power] (73)
 이기 팝의 최근 모습은 완전히 백발마녀전이다. 파골리 상점한 거죽은 허물 벗기 직전의 방울뱀을 연상시키고 약으로 망가진 몰골은 재생이 불가능할 정도 곱게만 늙었어도 그에 대한 평가가 아마 지금보단 몇곱절 좋았을 것이다.
 앨리스 쿠퍼에 준하는 활약을 펼쳐온 디트크이트 출신의 기인 이기 팝이 국내에 상륙하기까지는 약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영화 트레인스포팅 수록곡의 역할이 컸을 듯 지금껏 목에 칼리 들어돠도 나긋나긋한 음악은 하지 않았던 이가 팝이었기에 국내의 서정파 매니아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데 에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본작 역시 각종 외지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회에 어긋난다는 것으로 그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왔다 밴드 스투지스와의 세 번째 공동 작업의 Raw Power  는 본격적인 펑크 무브먼트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다.
 최고 순의 182위라는 밋밋한 기록을 남겼던 이 앨범은 싱글의 제목을 로 바꾸어 `77년 재발매 하였는데 펑크의 선각자란 이름하에 이전보다 나은 대접이 가능했다. 철저한 로큰롤을 실현하고 있는 본작은 절대 오버 그라운드의 기준에 맞춰서는 합당한 명반이 될 수 없다.탁한 사운드 거칠고 일그러진 목소리 그야말로 로우 파이적인 녹음 수준은 물론이거니와 파트별의 연주 역시 적절한 매치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러한 막나가는 스타일. 이기팝과 동료들의 `원초적인 마력`이  본 작을 대표하는 성격이며 바로 펑크라는 장르의 발단이었기에 누구도 본작에 관해 허튼 소리를 할 수 없다.
 세그 파스톨스마저 `펑크의 대부`라 칭송했던 이기 팝. 레드 핫 질리 페퍼스는 의 리메이크를 통해 경의를 표했고 이제 곧 트리뷰트 앨범이 발표된다고 한다.(이중현)
 
 70. Elvis costello
       [My aim is true] (77)
 이 인텔리겐 차 펑크 로커에 대한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처절할 정도로 미약하다 `엘비스`의 이름에 `우디 앨런`의 외양을 한 코미디언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 조차 있을 정도이니 할말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엘비스 코스텔로는`70년대를 출발하여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중반을 넘긴 현재까지도 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허울만이 아닌)존경스런 고장 뮤지션이며 지칠줄 모르는 로커이다.
 이 앨범은 `77년 발표된 그의 `역사적` 인 첫 번째 앨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문화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문장들은 평크 록의 수준을 한 단계 성숙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의 입지를 펑크 록의 한계로부터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 라스트에 그의 앨범이 세장이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박은석)
 
 71. Van morrison
       [Astral weeks] (68)
 밴 모리슨 가끔 그는 놀라울 정도의 많은 앨범 판매를 기록하거나 그의 노래가 아주 널리 알려질 때도 있지만 밴 모리슨을 누구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1966년 그의 밴드 뎀과 함께 로큰롤의 걸작를들고 나온 이후론 다른 음악가또는 평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의 주종자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는다.
 솔로 활동을 전개하면서부터 그의 소울은 깊이를 더해가는데 그를 단순히 위대한 백인 R&B싱어 즘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그는 몇안되는 개인적이면서도 정감넘치는 독자적인 블루스를 발명한 아티스트라고 생각된다 밴 모리슨을 자신을 상당히 신비적인 경향이 있는 이민일 뿐이라고 평가하면서 그의 음악을 가레도니아 소울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Astral Weeks는 1966년에 발표된 화려한 노래의 주옥집이라고 말할수 있는 앨범이다 거의 환벽하고 깊은 정감과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시적인 가사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이 여기에 있다(신용현)
 
 72. Patti smith
       [Horses] (75)
 펑크롤 섹스 파스톨스나 라몬스의 거칠고 바른 사운드로 미리 `정의`한 사람들에게 패티 스미스의 이 앨범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분명 해티 스미스는 펑크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여성 록 역사에서도 고립된 섬같은 존재다.
 `60년대의 개러지(Garage)밴드를 10년 뒤에 재현한 레니 케이의 거친 기타 사운드 위에 패티 스미스는 프랑스 상징주의 같은 시적 가사를 읖조린다 이 시적 가사의 전통은 짐 모리슨과 밴 모리슨이르는 록의 영웅들로부터 유래하는 것 아니나 다를가에서는 도어스의가 에서 그녀의 코러스는 즉흥적이고 그래서 더욱`원초적`으로 불린다.
그녀는 남성지배적 언어를 거부하고 바벨탑이전의 원초적 언어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처럼 무당처럼 자유시를 중얼거린다. 언어가 음악에 북종하는 로큰롤의 문법은 점점 극단화되고 이제 의미는 음악 속으로 무너져 들어간다. 쟈그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와남근 중심주의를 연결지었던가?크리스테바는 `시어의 혁명`을 외쳤던가 그들의 책을 뒤지기 싫으면 이 앨범을 들어라 제목마져도 `말`이라는 여성의 원초적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로 이루어진 포스트비트시인(Post-Beat Poer)의 사운드를...(신현준)
 
 73. Beck
       [Mellow gold] (94)
 `I`m a baby. so why don`t you kill me`이 구절이 코러스 부분에 포함된 곡는 너바나의 라디오헤드의 과 함께 90년대의 대표곡이 될 공산이 크다. 그 곡을 포함한,벡이라는 20대 초반의 창백한 젊은이의 데뷔작 Mellow Gold 역시 90년대 가장 특징적인 작품 중 하나다.
 10대 때부터 미 대륙 전체를 떠돌며 사서 고생한 그는 미국 대중 문화의 온갖 잡동사니들을 그의 음악 작업 속에 용해시켰다. 힙합, 포크, 사이키 델릭,실험음악 팝 록큰롤의 모든 음악장르들이 그의 고물 녹음기채속에서 비빔밥처럼 섞었고 그것은 굉장히 맛있었다. 벡처럼 싸구려 녹음 기채로집에서 아무렇게나 녹음한 것같은 음악은 하나의 유행이 되어 로 파이(하이-파이와 상반된)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는 그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이다.
 벡의 음악을  들은 사람드의 평은 극단적이다."굉장하다. 천재다" 라는 부류와 "장난 같다. 치졸하다"라고 평가하는 쪽 이렇게 두 갈래로 완전히 구분된다. 아직 그의 음악은 무난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단 하나 그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은 그의 음악이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앗던 새로운 것이다` 라는 점이다. 벡의 음악이 ` 연주하기 어렵다`거나 `노래부르기 어렵다`라고 생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범인의 그것을 뛰어 넘는 아이디어와 실험성이 잇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위의가사에 나타난 것과 갘이 `90년대 초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자학과자포자기의 정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난해한 형태로 나타난다.(사실 그의 가사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앞뒤가 안 맞는 횡설수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바로 `90년대 얼터너티브 문화 전형이고 벡은 그 상징적 존재이다(정원석)
 
 74. T - Rex
       [Electric Warriors] (71)
 티 렉스가, 그리고 마크 블란이 세삼스러운 것은 `90년대를 물들이고 있는 브릿 팝의 과장된 포장이 한꺼풀 씩 벗겨져나가는 요즘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브릿 팝은 비틀즈를 출발하여 모드와 글램, 펑크와 뉴 웨이브 그리고 포스트 펑크 시대를 거치면서 퇴적된 영국 음악 유산의 화석에 다름 아니며, 마크 블란과 그외 밴드 티렉스는 `주라기 공원` 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이 `번들거리는` 세상을 지배한 공룡이었다. 또 데이빗 보위가 시시각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간 카멜레온이라면 마크 블란은 글램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빙하기 시대의 익룡인 셈이다.
 물론 이 앨범은 그 역사적 영향력보다는 자체의 완성도로 평가받는 편이 더 속 편한 쪽이지만, 퇴폐와 불건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수입이 완전 봉쇄되었던 당대의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월등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의미없는 선택은 결코 아니라고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파워 스테이션을통해 알려지는 참담한 풍토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와 는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레파토리이며, 물론 오리지널은 dml 의 매력은 두 말할 나위 없다.(박은석)
 
 75. R. E. M.
       [Automatic for the people] (92)
 본작 은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전작 Out Of Time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보다 하드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음량 키우기` 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름다눈 추억에 대한 노스랠지어, 연민과 화구의 아려한 감성을 담은 서정성으로 그들은 로큰롤의 `인간적인` 음악으로서의 큰 사랑을 받았던 와 존 폴 존스와 아름다운 현악 앙상블이 담긴 는 바로 그 증거이다. 그리고 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이 앨범이 결코 단순한 멜로 드라마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박은석)
 
 76. U2
       [Achtung baby] (91)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록 밴드? 그렇지만 U2 는 상찬과 경멸을 동시에 닫은 밴드였다 한편으로 그들은 경건함과 정열로 '록이 죽었던' '80년대 최고의 록 레코드로 손꼽히는 「Joshua Tree」(87)이후 하나의 팝 밴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이는 동시에 그들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계기이기도 했다 스타일과 형식은 메시지와 내용을 각각 압도해 버렸다. 아이러니와 캠프가 난무했던 '80년대 팝의 상황에 서 아이러니 없이 순수함을 드러내려는 그들의 전략은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록의 뿌리가 있다고 믿었던 「Rattle And Hum」(88)에서의 여행 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몇년뒤「Achtung Baby」는 이들의 진지하고 신실한 믿음이 유머, 위트, 아이러니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짐을 보여 주었다. 의 가사에서 보듯 이들의 감정은 여전히 강렬하고 진득하다.
  그렇지만 나 같이 '맨체스터 사운드' 로부터 영향받은 듯한 댄스 그루브는 이 들이 새로운 표현방식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대형 경기장 공연에서 U2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지위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1997년 현재, 불확실하게 "가자 가자 디스코텍으로... LOVE"라고 외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에 속한다.(신현준)
 
 77.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75)
 1967년 핑크 플로이드가 데뷔 앨범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룹의 기타리스트는 데이빗 길모어가 아니었다. 시드 배릿이라는 오리지널 멤더는 팀의 장단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나, 첫 앨 범의 성공 후 심각한 신경쇠약에 빠져서 그룹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데이빗 길모어가 가입해서 초기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조금 더 폭넓게 확장시켜 나가면서 로저 워터스가 노랫말을 쓰고 길모어가 작곡을 하는 분업체제를 이루어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은 성공작을 내기에 이르른다.
  그 다음 작품이 바로 원년 멤버인 시드 배릿에게 바친 본작 「Wish You Were Here」이다. 여기에는 총 9부작에 이르는 와 로저 워터스가 쓴 가장 애절한 노랫말을 담은 타이틀 트랙 가 담겨 있는데, 핑크 플로이드가 발표한 가장 감성적인 앨범이라고 부를 만하다.
  반면에 풍자적인 내용을 담은 과 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효과음의 사용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어서 그들의 작픔 경향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다. 비록 핑크 플로이드의 최고의 걸작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모든 앨범들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누군가가 그립거나 우울한 날에는 이 앨범의 노랫말을 펼쳐놓고 음악을 들어보면 독특한 맛이 느껴진다. 가사의 양은 매우 적다. 앨범 러닝타임의 70%이상이 연주니까...(김우석)
 
 78. Jackson browne
       [Running on empty] (78)
 이 앨범이 록 앨범 100선에 선정된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사람의 감성을 흔드는 레퍼토리의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와 라이브라는 특이한 구성의 이 음반은 변함없이 컨트리 록의 여 정을 걸어온 잭슨 브라운의 예술적 극점의 구현 판이요, 집대성판이라 할 만하다 로드 스튜어트, 블론디, 도나 서머, 심지어 롤링 스톤즈마저 디스코의 거센 광풍에 편승하여, 톡톡히 재미보고 있을 무렵, 음악계에서 툭 던져진 이 한 장의 음반은 차트의 상위권을 뒤흔들었다.  온통 댄스판이었던 음악계에 이 음반은 사람들의 서정성에 호소했고, 그것은 주효했다.
  저항적 노랫말과 인생의 본질 문제에 깊이 천착해 온 그는 이 앨범에서도 자신이 동승할 수 없는 삶과 그 어두운 단면들을 그리고 있으며 , , 의 노랫말에서 나타나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의 색채는 전작들보다 한결 짙어졌다. 이같은 회색빛 우울은 많은 부분, 아내의 자살이라는 중격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데뷔 당시의 저항적 메시지에서 인생 문제로 귀착하기 시작한 그의 뚜렷한 방향 전환 역시, 이 앨범에서 한결 그 농도가 짙어졌다. 아울러 이 앨범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70년대 지성인들의 우상이었던 그는 확고한 대중 가수로서의 지위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부자연스럽고 산만한 구성은 흠으로 남는다 누가 뭐라해도 국내에서 만큼은 '확고한 명반' 그리고 그 지위는 바로 이 곡, 때문이다 이 앨범은 그의 5번째 작품이다. (박신천)
 
 79. Whitesnake
       [1987] (87)
 딥 퍼플의 해산 후 근 10년간 화이트스네이크를 이끌어 오던 데이빗 커버데일과 타이거스 오팬탱, 신 리지를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은 존 사이크스. 한창 물이 오른 두 브리티쉬 록의 거물이 만나 탄생한 수퍼 베이비가 바로 이 앨범이다. 물론 이건 화이트스네이크가 아니라는 골수 팬들의 말도 맞다. 그간 커버데일이 미키 무디, 버니 마스덴과 함께 만들어 내던 블루지한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데이빗 커버데일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1987」을 만들어 낸 밴드의 이름이 화이트스네이크이건 아니건 간에 이 앨범이 대 단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자신의 곡을 다시 리메이크한 과 존 사이크스 특유의 도회적 편곡이 돋보이는 는 상업적이라 욕먹기에 너무나도 완벽하고, 역시 전작(前作)의 수록곡을 새로 연주한 에서의 커버데일의 보컬과 사이크스의 기타는 만국공통어라는 에스페란 토로도 형용이 불가능할 듯. 하지만 앨범의 정점이자 밴드 결성 이래 죄대의 명곡으로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을 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윤병준)
 
 80. 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96)
 이 앨범은 음악으로 본 '80년대 미국 흑인들의 농축된 의식' 이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 제시 잭슨이나 운동권의 총수 루이스 패러칸의 설교 못지 않게 위력적이고 또 선동적이다. 과격하다 못해 (시체말로) 살벌하다.
  '80년대 흑인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랩. 전보다 현실이 더욱 각박해진 도시의 게토 흑인들이 지껄이며 분노를 터뜨리는 음악이다. 공적(公敵; Public Enemy)이라면 이러한 성격에 주목해서 거기에다 드높은 흑인의식을 담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공적의 대표 척 디(Chuck D)의 일성. "난 마빈 게이의 명반 「What's Goin' On」을 힙 합으로 해석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프로듀서 행크 쇼클리의 생각도 같다. "사람들은 랩을 그냥 소음(지껄임)으로만 여긴다. 그걸 노이즈라고 생각한다면, 소음을 제대로 보여주자 그러나 동시에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주자!"
  뭔가 생각하지 않으면 이 앨범은 느낌이 없다. 음악팬들은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 , , 그리고 을 들으면 즉각 이 그룹이 잔뜩 화가 나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을 안다. "흑인들이여 깨우치자! 모이자! 떠들자! 그리고 나가 싸우자!"고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건 갱스타 아닌가.
  이후 L.A.서 번성한 갱스타 랩의 '롤 모델' 이 된 앨범이다. 형식은 메탈 랩. 그래서도 록계가 높게 평가한다. 소란의 정당성 선언, 투쟁의식 고취, 백인 지배사회와의 일전 불사 태세가 메아리 친다. 정말 이 앨범 이후로 많은 흑인들이 무서워졌다. (임진모)
 81. Smashing Pumpkins
       [Gish] (91)
 스매싱 펌킨스의 어떤 앨범이 가장 훌륭한가는 앞으로 10년쯤 뒤에나 논의될 일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작품은 전부 '90년대를 대표할 명작이고 고유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
  이 앨범 100선에서는 「Siamese Dream」과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를 제치고 대중적으로 가장 덜 알려진 그들의 데뷔작이 선정되었다. 이 결과는 자못 의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평론가들이 이 앨범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고 선호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Gish」가 다른 작품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특징은 가장 인디적이며(사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는 마이너 배급망인 캐롤라인 레이블에서 발매 되었다) 순수하다는 것이다. 또 가장 사이키델릭 하다.
「Siamese Dream」과 「Mei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는 상대적으로 다분히 메탈적이고 아트 록 지향적이다. 리더인 빌리 코건이 어느 시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상을 수상하면서 한 말, "우리가 아직도 얼터너티브라니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한 그 얘기가 바로 현재의 그들의 위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록계에서 공룡과 같은 거대 밴드인 것이고 그만큼 얻은 것과 잃은 것도 많다. 「Gish」는 바로 지금의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선정된 것이다. 격렬함과 우아함, 폭력성과 고요함, 광기와 냉철한 지성 등 모든 상반된 요소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또 하나, 이 앨범의 특기할 점은 프로듀서 버치 빅의 역할이다. 현재 가비지를 이끌고 있는 그는 '90년대 초 얼터너티브 혁명의 가장 혁혁한 공로자일 것이다(이 100선에서 1위를 한 「Nevermind」도 그의 손에 의한 것임). 사운드의 완급 조절에 탁월한 그의 실력이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빌리 코건과 부치 빅, 두 천재의 만남이 현재의 스매싱 텀킨스를 있게 했고 이 작품은 굳건한 초석이었다. 음악 애호가들이 격언처럼 하는 말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아티스트든 데뷔 앨범을 구입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이 말은 스매싱 펌킨스에게도 100%적용된다. (정원석)
 
 82. Peter Gabriel
       [Peter Gabriel 3] (80)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는 라이브 앨범 「Seconds Out」을 비롯하여 여러 장의 컨셉 트 앨범으로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제네시스는 두 번 그들의 음악을 확연하게 변모시 켰는데, 첫 번째의 변화는 첫 번째 앨범에서 두 번째 앨범인 「Trespass」사이. 지금에 와서는 아
주 입수하기가 힘든 제네시스의 데뷔 앨범은 듣고 있으면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나오는 최악의 앨범이었다. 2,3분대의 짧은 곡들은 모두 만들다가 만 것 같은 팝송으로 가득 채워졌는데, 두 번 째 앨범에서 보인 변화는 '록계의 7대 수수께끼' 에 집어넣을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피터 가브리엘이 탈퇴하고 나서 이 그룹의 음악은 또 한 번 달라졌다. 그 변화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거론될 수 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네시스는 피터 가브리엘의 밴드였다는 사실이다.
  탈퇴 후 그는 두 장의 같은 이름의 앨범 「Peter Gabriel」을 발표하였는데, 둘 다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여기 선정된 작품은 나중에 발표된 것으로 피터 가브리엘의 통산 세 번째 작품이며, 는 그 가장 대표적인 곡이다. (신용현)
 
 83. Madonna
       [Immaculate collection] (90)
 아마도 이 앨범은 여기 100장의 리스트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이며 예상치 못했던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앨범은 이 리스트가 건져낸 가장 돋보이는 개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록 음악의 엄숙주의로부터 탈피함은 물론이고 유교적 성차별의 관습에도 쐐기를 박음으로써 록이, 록 매니아들이 지향해야 할 카운터 파트로서의 역할에 비로소 연대동참을 선언하는 시금석... 이라고까지 장황하게 떠들지 않더라도, 이 앨범이 국내 음악팬들의 심각한 탐미주의 음악 듣기습관에 통렬한 카운터 펀치를 날린 작품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촌스러운 신서사이저 음향의 단순반복 패턴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역사상 가장 관능적인 팝 스타의 매력을 확인하는데 조금의 모자람도 없으며, '비범한 여인(She' s So Unusual; 신디 로퍼. 아시다시피)을 능가한 저력은 바로 그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처녀처럼(Lilke A Virgin)' 등장한 자의식 강한 '럭키 스타(Lucky Star)'가, '당신 자신을 표현(Express Yourself)'하고 '소중히(Cherisf)'하며,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Justify My love)'해가는 10년 간의 과정을 보여주는 생생한 다큐멘터리이며, 에비타를 꿈꾸는 명예욕의 노예가 되기 이전의 순수했던 '창부' 로서의 마돈나를 추억하게 하는 각진 앤솔러지. (박은석)
 
 84. Megadeth
       [Peace sells...But who's          buying?] (86)
  메탈리카와 더불어 스래쉬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던, 그리고 지금까지도(전과는 상이한 변 질된 사운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는 메가데스는 여타 스래쉬 댄 드들과는 다른 음악적 노선을 걸어왔다.
  각각의 멤더들이 기본적으로 갖춘 스피드와 파괴력에 있어서의 강력한 파워 외에 이들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코드와 곡 진행의 복잡성과 난해함이다. 그래서 단 한 번만 들어도 뛰어난 작곡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메탈리카의 음악과는 달리 메가데스 사운드의 참 맛을 알 기 위해서는 여러 번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지 않는 수많은 변박 악절과 다양한 리프야말로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전해지는 쾌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아이언 메이든의 에디와 함께 늘 '건전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빅 래틀헤드의 모습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발매될 수 없었던 본작에 목말라 하던 이들에게는 너무도 멋진 상징이었다.
  데뷔작에서의 다소 산만하던 느낌은 사라지고 스래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본작에 이 르러 밴드의 본령(本領)은 여지없이 나타난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가 새뮤엘슨의 더블 레이스 드럼과 데이브 머스테인, 크리스 폴랜드의 트윈 기타 라인이 이루어 내는 사운드는 분명 기존의 귀에 익숙한 소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이들만의 뛰어난 역량이 담긴 스래쉬의 걸작이다. (김경진)
 
 85. Frank zappa and the mothers of        invention
       [We're only in for the money]         (68)
 본 앨범은 사이키델릭 시대의비틀즈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67) 의 패러디 즉, 풍자적 조롱이다.(참고로 국내에 달매된 CD는 '67년 발매됐던 본작 「We' re Only In It For The Money」에 그 이듬해인 '68년 솔로 앨범으로 발매되었던 「Lumpy Gravy」의 합돈인 딜럭스 영태다.)
  이 앨범 역시 프랭크 자파 특유의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색채로 가득차 있다. 사이키델릭 의 매괘한 소음이 난무하는 , "난 낙오자(Drop Out)로 남을거야"라는 신랄한 독설의 , "엄마, 사람들이 그러는데요, 군인들이 소년들을 총으로 쐈대요. 엄마, 당신의 아이들이 군인들의 총을 맞고 공원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라는 내용의 - 반전시위 대학생들에 총격을 가해 사망자들이 속출한 켄트 주립대 사태에 대한 분노를 팝 아트의 전위적인 양식으로 그리고 있는 등, 위트와 광기로 번뜩이는 1, 2분대 짧은 트랙들이 메들리로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이 앨범에 담겨있는 곡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며, 같은 곡은 비틀즈의 그 뛰어난 악곡을 무색케 할 정도다.
  재즈에 클래식, 하드 록 그리고 전위적인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프랭크 자파의 음악에 대한 탐식은 끝이 없었다. 아방가르드 록의 대부로서 프랭크 자파는 사망하기 전까지 그 실험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걸작이되, 사회성/정치성의 부재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프랭크 자파의 본 앨범은 바로 이러한 비틀즈의 '시대정신의 부재 비틀어보기' 이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몰고 온 열풍에 상대적 으로 소외됐던 동시대 천재 뮤지션의 답례품인 셈이다. (박신천)
 
 86. Elvis Costello
       [Armed fores] (79)
  너도 나도 죽기살기로 으르렁 거려야만 했던 '70년대 말의 영국 록 음악 씬. 못사는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펑크 밴드들이 클럽가를 수놓는 가운데 고시생 이미지의 한 인물이 기타를 들고 홀연히 등장했고 그는 통열한 비판과 자기주관을 앞세우며 일순간에 펑크 륵의 스타로 떠올 랐다.
  당시 매스컴과 평론가는 갖가지 미사여구로 그를 떠받쳤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그와 거리가 멀었고,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에 대한 찬사와 인기는 언제나 반비례할 뿐이다. 엘비스 코스텔로. 그는 영원한 비주류의 이름이다. 좋은 음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많이 팔려서, 독설을 담고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당시 사회상을 대변해서. 엘비스 코스텔로의 3번째 앨범인 「Armed Forces」는 펑크 로커답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각광을 닫게 된 케이스다. 펑크, 뉴 웨이브 시대가 낳은 죄고의 싱어송라이터 엘비스 코스텔로는 3집을 통해 익숙한 코드 진행과 설득력있는 멜로디를 구사하며 사회의 독소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음악적인 변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소위 '코끼리 앨범'으로 알려진 본작에는 그의 최강의 넘버들로 평가되는 , 를 시작으로 '80년대 신경향을 예언한 . 평화의 예찬과 전쟁의 경고를 동시에 담은 등 다양한 주제를 선도이고 있다.
  단편적인 시각의 펑크 로커에서 질 높아진 문제 제기를 끄집어내는 문화 혁명자로 성숙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초기 4장의 작품 중 가장 낮은 평가에 머물렀던 본작은 재 발매를 통해 엘비스 코스텔로 최상의 아이템으로 둔갑하게 된다 (라이브를 포함한 8곡의 진귀한 보너스 트랙 수록).(이종현)
 
 87. Captain beefheart & his magic        band
       [Trout mask replica] (69)
 이것은 예정된 컬트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희대의 해프닝이었으며, 모순의 극치를 이 끌어낸 마법이었다.
  캡틴 비프하트와 웃기는 이름 - 주트 혼 롤로, 안텐네 지미 세멘스, 더 마스카라 스네이크, 로 케트 모튼, 드럼보 - 을 가진 그의 멀티 인스트루 멘틀리스트 (실제로 악기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친구들은, 프랭크 자파라는 당대의 기인을 프로듀서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송어' 들을 복제해냈다.
  차트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이 앨범이 록 역사를 장식하는 '힘있는' 작품으로 널리 회자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당대에 없었고, 여전히 불가사의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 난해한 현대시와도 같은 중얼거림과 대기를 떠다니는 온갖 불협화음의 극단적인 부조화. 그리고 조화. 이 상호모순된 전제 사이에서 이 앨범은 그 독특한 위상을 확인시키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주체할 수 없는 리비도와 넘치는 충동의 욕구를 단 한 번의 세션으로 완성시킨 그 마술과도 같은 반동적 해체 행위의 대담함에 있어서 이 앨범의 제작 과정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프랭크 자파의 그것을 추월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스튜디오로 들어갔고, 모든 곡들을 단 한 번에 연주했으며, 그(프랭크 자파)는 그것들을 그냥 녹음했고, 그런 다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보컬 녹음에 이틀, 믹싱을 하는데 하루가 걸렸다. 결국 4일만에 앨범은 완성되었다"는 멤버들의 고백은 이 작품의 성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단서인 셈이다. (박은석)
 
 88. Blur
       [Park life] (93)
 백화점식 앨범이란 말이 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장르란 장르는 모두 담고 있으며 록에서 댄스로 갑자기 발라드로 다재다능한 재능을 과시하긴 하나 분명한 자기색이 없는 어설픈 앨범. 블러의 「Park Life」앨범은 누가 봐도 명백한 백화점식이다. 댄스가 있고, 모던 록이 있으며, 심지어는 카바레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Park Life」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한 평가를 얻는 이유는 철처히 크로스오버적이고 이단적인 '90년대 음악 조류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블러 스타일의 백화점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말이다. 앨범 전체를 일순간에 묶어놓는 일관성, 즉 블러 식으로 녹아내린 런던의 모던함이 숨쉬고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펑크 세대 이후 영국 록 음악의 역사는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뭔가 불량스러우며 뒤틀린 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주도해 나갔다. 블러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돌을 던졌다. 충분히 인텔리적인 냄새를 풍기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말쑥한 외모와 사회 전복이 없이도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일이 충분히 가능했다. 굳이 어렵거나 심각해야만 명반은 아니다. 위트, 유머, 동경, 장난. 이 속에서 끈질기게 숨쉬는 자기만의 목소리. 블러의 음악은 언제나 행복하고 업그레이드된 삶으로의 비젼이 있어 뵌다.
  세기말 증후군? ? 블러는 그 따위 것들에 전전긍긍해 하지 않는다. 브릿 팝, 세련된 매너, 블러「Park Life」. 지을 수 없는 '93년의 영국 기억들. (이종현)
 
 89. Wu-tang clan
        [Enter the Wu-tang] (93)
 '93년은 여러모로 힙합이 변화를 맞던 시기였다.  갱스터 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도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거셌고, 신인들의 급부상이 있었지만 수퍼 밴드들과 랩퍼들은 기나 긴 슬럼프와 연이은 해체를 거듭하고 있었다. 뉴욕 아트 힙 합 씬 역시 맥을 못추고 힙합의댄 도착화만이 심화되던 그 즈음 우-탱 클랜이라는 기이한 단체가 등장했다. 런 디엠씨, 퍼블 릭 에네미, N.W.A. 등 수많은 집단들이 힙 합 씬에 존재해 왔지만 우 탱 클랜만큼 파격적인 성격을 지닌 팀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데뷔 시절부터 별난 존재로 특별한 관심을 모았다. 각각의 솔로 활동을 펼치는 수 명의 랩퍼, 이들을 도와 상품 개발과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는 수백의 추종자 우-탱 클랜은 기존의 어느 잣대로도 정의 할 수 없는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 골격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들은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힙 합 음악에 대한 경향과 나가야 할 이념을 제시했다. 가장 큰 특징은 샘플링의 다양성. 죠지 클링턴을 축으로 한 펑크(Funk)를 가장 중요한 샘플링의 요소로 생각하던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우-탱 클랜은 재즈에서 라운지에 이르는 다양하고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힙 합 표현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게스트를 동반한 10여 명이 쏟아대는 래핑은 각각의 다른 라이밍을 구사하며 래퍼만의 고유한 독자성을 확립하는데 자극제의 역할을 했다. 최근 우-탱은 4년만에 두 번째 앨범을 차트 정상에 올려놓은 바 있으며, 흑인 음악 전문지 '바이브'의 4주년 기념호 표지를 장식하고, 대중 음악지 '스핀' 선정 현시대를 움직이는 40팀의 아티스트중 4위에 랭크된 바 있다. (이종현)
 
 90. Asia
       [Asia] (82)
 '83년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달 표면을 걷는 듯한 춤과 B급 좀비 영화 같은 비디오로 전 세계를 집어 삼켜가고 있을 때, 실력으로 그와 대응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 바로 이 앨범 -아시아의 셀프 타이틀 데뷔작 「Asia」이다.
  예스와 킹 크림슨, E.L.&P., 버글스 등, 당대의 진보 진영을 이끌었던 대형 밴드 출신의 네 멤버- 스티드 하우, 존 웨튼, 칼 팔머, 제프 다운스 - 가 조직한 이 용병 수퍼 그룹은 당초 예싱과는 달리 전향적인 대중지향성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당시 주류 록계를 장악하고 있던 펌프 록/A.O.R. 성향이 앨범의 전체 인상을 결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중적 실험'의 첫 포문이 되었던 -그리고 과 로 이어지는 멜로디 지향의 수려한 팝 록 넘버들은 저니와 R.E.O. 스피드웨건, 스틱스 등 이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한 동시대의 동료들을 대표하는 한국적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박은석)
                  
 
91. beastie boys
       [Licensed to Ⅲ](86)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311, 벡, 서태지, 김종서, 패닉, DJ DOC등이 공통적으로 영향받 은 아티스트는? 바로 이 비스티 보이스(이하 비스티스)다. 비스티스가 최초로 힙합을 시도한 백인들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중적으로 이들 이전에 알려진 백인 래퍼들은 없다. 그리고 이 앨범은 흑백을 통틀어 최초로 넘버원을 획득한 랩 앨범이다. 그러나 이런 차트 액션 등을 떠나 이 작품이 얼마나 팝 역사상 획기적이었나 하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데뷔 앨범 이전에 이들은 하드 코어 펑크 밴드였었고 자신들의 홈 타운에서 조금 알려진 존재였었다. 그런 이 세 악동들이 갑자기 음악적 노선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비스티스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고 '80년대 초·중반에 10대 시절을 보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완벽히 힙 합 혁명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브루클린은 힙 합의 탄생지이자 성지(聖地)이다. 자신들 주위의 흑인 청소년들이 역동적인 리듬에 맞춰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언어의 유희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쿨(Cool)했던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선택한 이들은 운 좋게도 릭 루빈이라는 지지자를 만나 순풍에 돛을 달게 된다.    릭 루빈은 백인으로서 힙 합의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한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레코드사 사장이었다. 당시 데프 잼이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퍼블릭 에너미, LL Cool J등을 스타덤에 올려놓는다.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낸 이 앨범은 언제 들어도 그 다이내믹한 비트와 래핑 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하드 코어 시절의 비스티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메탈 리프가 곁들여져 있어 흥미롭다.
  이 작품 이후 흑인이 아닌 수많은 청소년들이 힙 힙을 시작하게 됐고 랩 메탈이라는 새로운 장 르가 탄생하였다. 심지어 이 한반도에서도. (정원석)
 
 92. lYNYRD SKINYRD
       [Pronunced Leh-nerd         Skin-nerd] (73)
 전설의 서던 록 밴드 레너드 스킨너드의 데뷔 앨범. 이 앨범으로 레너드 스키너드는 서던 록의 태두로 군림하고 있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카리스마를 유일하게 뛰어넘은 최강자로 떠올랐다. , , 는 록의 명곡으로 남았고, 이 앨범은 서던 록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록 역사상 미국 남부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낸 그룹이다. 블루지하고 부 드러운 감성의 서던 록을 구사한 올맨 브라더스 밴드에 비해, 레너드 스키너드는 힘과 에너지로 가득한 서던 록을 만들어 냈다. 투박하지만 낙천적이고 또 호쾌한 남부의 기질을 록 격전지의 주 역으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트리플 기타 체제를 도입해 화려한 기타 사운드로 팬들을 매혹시켰다. 세 대의 기타가 자웅을 겨루듯 쏘아대는 격정적인 애드립의 는 팬들을 흥분상태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후의 서포트 밴드로 시작된 이들의 라이브 밴드로서의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77년 10월 20일 비행기 사고로 보컬리스트 로니 밴 잰트와 기타리스트 스티브 게인즈, 백 보컬리스트 케시 게인즈 등 세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중상을 당하는 참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형 참사로 밴드는 해산되고, 이들의 분신인 로싱톤 콜린스 밴드외 38 스페셜은 그 영광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길지 않은 기간 '73년 9월-'77년 10월 활동했으나, 그들의 영광은 이제 비극적인 전설로 남았으며, 이 앨범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진혼곡으로 팬들의 가슴에남았다. (박신천)
 
 93. Guns & Roese
       [Appetite for destruction] (87)
 건스 앤 로지즈는 '80년대 중반 L.A.. 지역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던 많은 하드 록/헤비 메탈 밴드 중의 하나로 '80대 후반과 '90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록 밴드로 성장한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롤링 스톤즈나 에어로스미스 같은 노장 그룹의 부기 스타일을 그 악명 높았던 펑크의 정신으로 연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벽한 복고적인 경향은 그전까지 LA.를 지배했던 메탈과는 차별성을 갖게 되는데, 결국 이 건스 앤 로지즈의 세력이 팽창함에 따라 종전의 L.A. 메탈은 자취를 감추고 복고적인 성향을 갖는 다양한 록들이 '90대에 등장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건스 앤 로지즈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우선, 등장과 함께 미디어에 무성한 화제를 쉴 새 없이 제공한 액슬 로즈라는 강력한 프론트맨이 있다는 것이다. 액슬 로즈는 부드럽게 중얼거리는 듯한 도컬부터 울부짖듯이 강력한 목소리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실력 면에서도 프론트맨의 자격이 충분하다. 게다가 슬래쉬와 이지 스트래들린 두 명의 기타 시스템이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차드와 믹 타일러 콤비에 필적할 만큼 효과적인데, 넘버 원 히트에 빛나는 을 들어보면 그 강점을 만끽할 수 있다.
  '87년에 발표된 이들의 데뷔 앨범은 에어로스미스의 오프닝 밴드로서의 투어 활동과 MTV의 지원에 힘입어서 이듬해에 차트 정상에 오르고, 비로소 건스 앤 로지즈의 화려한 성공의 시기가 열리게 된다. (김우석)
 
 
94. David bowie
       [Changes one bowie] (73)
 
 해적판 시절 데이빗 보위의 앨범 가운데 우리 록 팬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요곡들을 망라한 매력적인 '컴필레이 션' 앨범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왕성하게 활동중인 아티스트가 히트곡 모음 앨범을 내는 일이 드물었다. 마침 그때는 보위가 을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그에 대한 팬들의 호기심이 증가하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본 작은 '보위의 개론서' 역할을 했다. 많은 록 팬들이 이 앨범으로 보위의 존재와 음악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은 결코 상업성 제고를 겨냥한 상투적 베스트 모음집이 아니었다. 그는 전 에 자신에게 부착된 지기(Ziggy)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한 '고별작'으로 이 앨범을 구상했다. 그의 특허 상표는 양성체(兩性體)의 지기 이미지를 낳은 이른바 글램(Glam)이었다. '시각적 효과' 를 중시하는 글램의 대전제는 무대였다. 하지만 보위는 잠정적으로 무대를 떠나고 싶었다. 온통 뇌리에는 '스튜디오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곧 '자극' 에서 '뮤지션쉽과 예술성' 으로 방향을 옮겨가는 음악적 전향을 의미했다. 글램에 대한 '발전적 해체' 라고 할까 ?
  후대에의 영향을 고려할 때 수록곡은 가히 '초호화판 , , , 를 비롯, 전에 싱글로 소개되지 않은 게이 찬가 도 실려 있다. 이 앨범 이후 보위는 전위적 아티스트 브라이언 이노와 손잡고 일련의 공작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보위의 팬들은 이 앨범의 수록곡을 보석처럼 더 애지중지 했다.(임진모)
 
 95. Alice in chain
       [Dirt] (95)
 둠 메탈보다 더 가라 앉았고, '60년대 말엽의 플라워 무브먼트 만큼 사이키델릭하며, 스래쉬 메탈의 공격성을 갖춘 데다, 데스 메탈보다 더욱 심도있게 죽음을 논하고, 그 내재된 분노의 무게 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들이 뽑아내는 멜로디는 누구보다도 수려하다. 바로 앨리스 인 제인스. 아직 세 장의 앨범 밖에 내놓지 않은 그들이지만 앞으로의 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두 번째 앨범 「Dirt」는 길이 기억될 것이다. (윤병주)
 
 96. Oasis
       [(What's he story)Morning          glory?] (95)
 솔직히 100선에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보다는 1집 「Definitely Maybe」가 선정됐으면 했다. 데뷔 앨범보다 나은 2집은 없다' 란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하겠지 만, 2집은 이제껏 각종 지면을 통해 너무도 지겹게 울궈 먹어졌고, 나이트 클럽 블루스 타임에도 울려퍼질 정도의 범민족 인기 앨범이기에 그다지 새롭게 언급할 것도 없다.
  '96년 여름, 영국 잡지만 펼치면 등장했던 오아시스와 블러의 '브릿팝 내전'. 오아시스가 이겼고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뻔한 레퍼토리가 이젠 팝 역사의 한 자리에 중요하게 기술되고 있는 실정이 돼버렸지만,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하자면 블러는 이미 오아시스의 스파링 파트너로 의미가 없었고, 결과 역시 뻔한 게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매니아 노선을 걷기 시작한 블러의 4집과 대중 노선을 추구한 오아시스 2집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단 얘기다.
  오아시스는 비틀즈, 롤링 스톤즈, 폴 웰러 등의 선배들을 답습하며 음악성과 대중성이 교차할 수 있는 합일점에 다가서기 시작했고, 고전들의 카피와 흡수를 통해 영국석권과 미국 진출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본작을 통해 쏟아진 싱글은 모두 4개. 이 중 를 제외한 3개의 싱글이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싱글과는 상관없이 두 곡의 비디오 클립이 더 제작되었다. 최초의 넘버 원 싱글이 된 는 티 렉스의 흔적을, 미국 모던 록 차트를 강타한 은 조지 해리슨의 이미지 카피를 보여주며 세대를 이어주는 밴드 오아시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종현)
 
 97. Red hot chili peppers
       [Blood sugar sex magik] (91)
 솔직히 이 앨범이 100장의 리스트에 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었다. 물론 이 작품이 잘 만들어진 록 앨범이고 그들 경력의 베스트이며 (당연히)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사적(史的) 의미에 있어서의 비중은 상당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앨범은 제인스 어딕션의 「Ritual De Lo Habitual」과 너바나의 「Nevermind」사이에 샌드위치 마크를 당함으로써 얼터너티브 시대의 과도적 단계에서 어정쩡하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페이스 노 모어와 수어사이덜 텐던시스 등 헤비메탈/하드 코어 계열과의 연관성으로 그 위상이 미묘한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밴드와 앨범의 지명도 확산이 그들 본래 색깔과는 거리가 있는 싱글 의 깜짝 히트로부터 결정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그 풍요로운 리듬과 농담 같은 개성이 여전히 대중성과 영향력 사이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본고장과 다르다는 점에서라면 이 결과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얼터너티브 유입 초기의 그 강렬한 인상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여전히 프로토타입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박은석)
 
 98. The beatles
       [Rovolver] (66)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으로서의 록이 태동하여 활발히 진화를 이루던 시절, 진정 진보 인 다양한 시도와 방법의 도입으로 록을 더욱 풍성한 모습으로 일구어 놓은 아티스트 또는 그룹을 꼽는다면 비틀즈는 단연 그 선두에 설 자격을 갖춘다. 스트링과 브라스 등 고전 음악적 요소 차용이라든지 멜로트론, 테이프 역회전, 뒤틀린 사운드의 배치 등 스튜디오에서의 혁명적인 시도 등은 그들을 위대한 이름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러한 '실험' 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 방면의 전형(典型)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Rubber Soul」을 통해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면, 「Revolver」는 ,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에서 , , 그리고 , 등 중후반기 명곡들로 넘어가는 발판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도 극찬했던 의 선율적인 아름다움과 완벽한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라든지 와 에서의 달콤함, 의 연장선상에서 이후 로 이어 지는 라가(Raga) 록 , 존 레논 의 환각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후 사 이키델릭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 등 앺으로의 커다란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된 앨범이다 클라우스 부어만의 탁월한 킨더 아트워크 또 한 비틀즈의 모든 앨범들 중 최상의 자리를 차지 할 만하다. (김경진)
 
 99. Elvis Costello
       [This year's model] (69)
 '77년의 런던에는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쉬와  같은 과격파 정치적 밴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런던의 펑크 씬에는 실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했고 그들 나름대로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었.
  미디어의 편의에 의해 기존의 팝 음악과 다른 새로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도매급으로 펑 크, 뉴 웨이드로 불렸고 그 레테르는 지금도 계속 따라 다닌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데뷔 당시 분명히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의 정서를 지니고 있었지만 단순히 펑크, 뉴 웨이드로 불리기에는 억울한 점이 많은 뮤지션이다. 오히려 그를 더 잘 표현한 용어는 싱어송라이터일 것이다.  그의 음악 여정을 살펴보면 너무나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감탄하게 된다. 초창기의 록큰롤 스타일, '80년대 중반의 소울과 컨트리 탐구, '90년대의 클래식 섭렵까지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영·미 언론은 그를 현존 최고의 뮤지션 중 한 사람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상대 적으로 국내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소개되긴 못 했고 그긴 이름 정도나 알려진 뮤지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두드러진 것이 미국 싱글 차트 위주의 국내 팝 풍토 와 가사의 이해가 안된다는 점이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데뷔 당시부터 냉소적이고 지적인 가사로 한 몫했던 뮤지션 이다. 한마디로 문학적인(Literate) 아티스트다. 이번 100선 앨범에 그의 작품이 3장 이나 포함되어 있어 고무적이며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를 바란다.     이 작품 「This Year's Model」은 '78년 발표된 그의 2집으로서 오른팔과도 같은 백밴드 어트렉션스와 함께 한 첫 작품이다. 초창기 그의 특징인 간결하고 경쾌한 록 비트와 조롱하는 듯한 창법에 실린 페이소스 넘지는 가사가 빛난디 과 <(I Don't Want To Go To) Chelsea>등이 대표곡이고 그의 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록적인 음반이다. (정원석)
 
 100. The Wallflowers
         [bringing down the horse] (96)
 여기 우리가 뽑은 100장의 록 앨범 리스트가 월플라워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아메리칸 록의 자존심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비슷한 성향의 뮤지션들 - 브루스 스프링 스틴, 존 멜렌캠프, 톰 페티, 밥 시거- 에 대한 박정한 평가가 인지상정이었던 시대가 바로 엊그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닌가?
  물론 이 앨범은 장르별 지분을 할당받은 낙하산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강경 한 메시지의 나열도 없고, 대중들을 경악케 할 만한 사운드의 혁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여기 이 자리에 당당하게 설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여기에는 청자를 사로잡는 그 무언가가 있다. 선율의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그 긍정적이고 미묘한 에너지는 구체적 언급이 불가능 하고, '록의 위대한 작품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에 의해 기적저럼 완성된다' 는 추상적인 논리의 취약성은 어느새 진리가 된다. 이 밴드의 리더가 밥 딜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몰라도 좋다. 고집스러운 표정을 제외하고 제 이콥 딜런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수혜를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대중친화적(상업성 지향적이라는 말과는 엄연히 다른) 편안함을 갖춤으로써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박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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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들어 봐야 하는 명곡

... 명곡들 알려주세요 나라 상관 없이... Queen (이들의 앨범 전체 모두 추천합니다. 좋은 곡이... Metallica (역시 앨범 전체를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대략...

일본교토에서 봐야될추천좀해주...

... 있으면 추천 바래요 교토 안에서만 해주세요 오사카나 이런 곳 말고요... 우리가 들고 있는 비닐 봉지 안에는 유카타가 들어있었다. 각자 기쁜 마음으로 들고 찍음. 별...

여행가는데 봐야 될추천좀...

... 가보지않으면 후회하고 가서 봐야될 그런 관광지돔 추천부탁드립니다!! 네티즌이... 해안도로로 들어서는 안내판이 나옵니다. 하귀-애월 해안도로는 하귀,구엄,중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