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아좌태자가 정말 죽나요?>

서동요<아좌태자가 정말 죽나요?>

작성일 2005.12.21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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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동요를 꼭 빠지지 않고 봅니다.^^

 

 

그런데, 호기심에 백과사전으로 서동요에 대한것들을 찾아봤는데요..

 

 

아좌태자가 화가가 된다고 합니다.

 

죽지는 않나봐요.

 

그런데요 드라마에서는 아좌태자가 죽은걸로 나와요.

 

 

어느게 진실인가요?

 

 

그리고 법왕과 혜왕(부여선'부여선아버지)은 왜 왕을 1년씩 밖에 못하고

 

 

죽나요?

 

 

백과사전이 거짓을 할 일은 없고,, 드라마도  진실한걸 이왕이면 낼탠데. 진실이 어떤건가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드라마 상 내용이 거짓으로 저는 생각하거든요;
드라마 상에서 아좌태자가 너무 일찍 일본에서 귀국한듯 합니다.
백과사전 내용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아좌태자 일본에서 귀국한 때가 위덕왕이 죽기 1년 전;
' 아좌태자가 일본에 건너온 이듬해(다음해) 위덕왕이 죽자 숙부(혜왕)가 왕위를 이었다. '라는 대목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아좌태자가 지금쯤 일본에서 귀국하는게 정상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드라마 상 내용으로 볼 때, 위덕왕도 곧 죽을 것 같으므로;
역사 상 아좌태자는 암살을 당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의 대한 기록은 (?-?) 로 남아있습니다. 언제 죽었는지도 의문점이죠;

법왕과 혜왕이 왕을 1~2년 밖에 못 한 것은 당시 왕권이 매우 약해서 피비릿내나는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닐지;
혜왕(부여계)은 즉위 할 때가 70세가 넘는 고령이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위덕왕의 동생이며, 위덕왕이 대략 40년을 통치를 했으니,
위덕왕과 혜왕 둘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노인이 되었겠죠.
혜왕은 나이로 인한 자연사로 일찍 죽은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혜왕의 아들이자 법왕(부여선)은 불교에 흥취합니다.
자신을 반성한다는 뜻으로 왕호도 '법왕'이라는 칭호를 썻으며;
살생금지와 왕흥사 등의 대규모 절 창건 등 불교적인 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내부에서는 귀족간의 다툼이 있었나봅니다.
드라마상에서도 부여 씨 가문(부여선,부여계), 해 씨 가문(해도주) vs 진 씨 가문(진려) 로 나뉘어져 서로를 견제하려는 듯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법왕은 귀족들에의해 죽음을 당한 듯합니다.
실제로 훗날 드라마 '서동요'에서 해도주가 부여선을 죽인다고 나옵니다.
해도주와 부여선은 한패였는데, 부여선이 귀족들을 견제하려다가 암살한다고 나옵니다.

결론으로 봐서 역사상 아좌태자의 생애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므로 아무도 모릅니다. 드라마는 작가의 허구에 의해 창조되는것이거든요. 드라마에서 장이 위덕왕의 숨겨진 넷째아들로 나오지만, 역사서(백제왕조실록 등) 혹은 백과사전 등에서는 법왕(부여선)의 아들로 나옵니다. 드라마에서는 악역으로 설정을 했지만.
그리고, 혜왕,법왕 잇달은 단명(일찍 죽음)의 이유로서는 혜왕은 고령의 나이에 즉위를 하여, 자연사로 인한 사망이 아닐지 혜왕이 당시 황제가 되었을 때, 나이가 60~70 은 되었을 것인데, 그 시대로 그 정도로 산 것이면 다 산것이 아닌지;
그리고 법왕의 사망에 대해서는 귀족들을 불교적으로 견제하려다가 자신이 그 귀족들에게서 암살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는 허구적 요소 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삼국유사에 있는 '서동요'는 설화로 알고 있는데요.
이 드라마는 본 설화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만든 작품이 아닐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서동요라는 드라마는 그동안 전해져 내려온 서동설화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재미를 추가해서 각색한 것입니다. 사실 선화공주에 대한 것도 학계에서는 말이 많죠.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도 신라황실의 여인이다. 백제 황실의 여인이다. 기타등등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무왕이 되는 서동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는 드라마에서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부여선이 서동의 아버지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기록들을 보면 무왕의 아버지는 위덕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설득력을 갖기 못했는데 이제 학계에서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는군요.

 

아좌태자의 얘기로 가면 아좌태자는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됩니다. 한문학과 유학을 전파하는데도 일조하죠. 그리고 훗날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는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를 남깁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호류사에 모셔져 있던 이 그림은 호류사의 화재로 1949년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담징의 금당벽화도 같이 소실되 버리고 말죠. 하여튼 아좌태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는데 아좌태자의 기록이 전무하다보니 많은 정보를 얻을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와 같이 위덕왕과 부여계 부여선과는 대립관계였다는 기록도 있으니 아마도 부여선의 자객에게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을 가집니다. 혜왕인 부여계가 왕좌에 오르는데 아마도 그 과정에서 암살을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혜왕의 경우에는 왕좌에 오른지 1년정도 되었을때 병사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법왕의 경우는 법왕 즉위시 귀족들간의 내분과 권력다툼이 심각하게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법왕은 정적들에게 암살을 당하게 되죠.

 

사실 성왕의 관산성 전투의 전사로 인한 왕권의 추락으로 위덕왕때부터 귀족들에게 많이 휘둘리게 됩니다. 서동인 무왕이 왕권을 강화하기 전까지는 백제 황실은 많이 불안정하였습니다. 법왕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반대세력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네. 아좌태자 죽습니다.

 

서동이 끝까지 보호하지만

 

결국 시장인가? 거기서 죽죠.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백과사전이 틀릴확률 50%이상입니다.

 

첫 째로 고대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된 해석이 불가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사의 내용은 아쉽게도 일제침략기 때 일본사람이 그들의 판단과 나름대로 조선보다 학문적으로 우월하다는 입장에서 해석해 놓은 것이라..믿기 힘들죠!

 

 참고로 이 세상에서(한국말고 이 세상에서) 조선왕조실록을 한번이라도 다 읽어본사람은 딱! 1명 계셨으며, 그나마 돌아가셨죠.  즉! 정말로 연산군이 그토록 악인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가들도 부분적으로만 알뿐이죠.

그리고 지금의 역사가들을 해석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놈들은 당쟁이니, 임나일본부 설이니 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들먹이죠

아마 10년 쯤 지나면 조선왕조실록이 부분부분적으로 작업이 끝나고 또 몇년이 지나야 그러한 부분부분들이 정리되리라 봅니다.

 

조선사도 이런데 고대사는 더하지요! 게다가 중국이나 일본 것까지 골라내다 보면말이죠!

 

걱정되는 것은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다는 사실이기에...

 

 백제의 교육기관에 태학사와 박사제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거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위덕왕과 아좌태자가 일본으로 이민? 가서 그 뒤로 일본역사서에 더 자주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화가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고는 하죠! 그저 학설일뿐 논란의 여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본 드라마는 70%정도가 허구입니다.

 

 서동요라는 노래도 과연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현재 입장에서는 아마도 삼국통일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법왕과 혜왕이 왜 빨리 죽나?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당시 백제가 한강도 빼앗기고 수나라도 당나라로 바뀌는 혼란한 시기고 해서 무왕(서동)이 죽였을 수도 있고... 아무도 몰라요~

단, 드라마에서 혜왕은 병? 노환?으로 일찍죽고, 법왕(부여선)은 측근(부여선 장인, 해씨일가)에서 암살당하는 것으로 나온데요!

서동요<아좌태자가 정말 죽나요?>

... ^^ 그런데, 호기심에 백과사전으로 서동요에 대한것들을 찾아봤는데요.. 아좌태자가... 그리고 법왕과 혜왕(부여선'부여선아버지)은 왜 왕을 1년씩 밖에 못하고 죽나요?...